군주론
군주론
Niccolò Machiavelli
니꼴로 마키아벨리가 훌륭하신 로렌조 디 삐에르 데 메디치 전하께 올림
대체로 군주의 은고를 받고자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물건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나 혹은 군주가 받아서 기뻐할 것을 가지고 배알하러 가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군주에게 말이나 갑옷 비단 보석과 그리고 군주의 권위에 알맞은 장신구 등이 헌납 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충성의 징표를 갖고 전하를 뵙고자 원하였습니다만 제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근래에 일어난 여러 사건에 대한 오랜 경험과 옛 것에 관한 계속적인 연구를 통하여 터득한 위인의 행적에 대한 저의 지식 외에는 별로 소중히 여기거나 존중할 만한 것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신중하고도 참을성 있게 심사숙고하고 검토한 지식을 여기 작은 책으로 엮어 전하께 바치고자 하는 바입니다. 비록 이 책이 전하께 드리는 선물로서 알맞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오랫동안 많은 고생과 대가로 제가 익히고 알게 된 것을 전하께서 짧은 시간 안에 이해하실 수 있게 하는 것 이상으로 더 좋은 선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인자하신 전하께서 이 책을 기꺼이 받아 주실 것을 감히 바라는 바입니다. 이 작품은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글을 쓰거나 꾸미는 데 있어서 흔히 사용하는 유창한 미사여구와 과장된 술어 그리고 비본질적 문장 수식은 일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으로 명성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의 진실됨과 주제의 중요성이 전하께 받아들여지길 바랄 뿐이기 때문입니다. 신분이 미천한 자가 대담하게도 군주의 정치에 관해 논술하거나 규정하려는 것은 외람된 짓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만 그렇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는 지세도를 그리려는 사람이 산이나 고지의 특성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평지에도 내려와 보아야 하고 평지의 광경을 알기 위해서는 산 위에 올라가야 하듯이 백성을 이해하려는 이는 군주의 입장이 되어 보아야 하고 군주에 대해 분명한 견해를 가지려면 백성의 지위에 서야만 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하께서는 제 심정을 살피시어 이 작은 선물을 받아주시기 바라옵니다. 전하께서 만일 이 책을 숙독하시고 숙고하신다면 운명의 신과 전하의 자질에 따라 위대한 자리에 오르시게 될 것이며 그것이 저의 최고 소망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전하가 후일 위대함의 절정으로부터 이 보잘것없는 낮은 곳으로 눈을 돌려주신다면 제가 얼마나 혹독하고도 끊임없는 운명의 악의를 받고 있는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제1장
군주국의 종류와 그 획득 방법에 대하여
지금까지 사람들을 다스려 왔거나 또 현재 다스리고 있는 모든 나라의 국체는 공화국이 아니면 군주국이다. 군주국은 주권이 통치자의 혈통을 통해 이어지는 세습제거나 아니면 새로 생겨난 군주국이다. 새로운 군주국은 프란체스꼬 스포르자가 통치한 밀라노와 같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든지 또는 스페인 국왕이 다스리고 있는 나폴리 왕국처럼 정복한 군주에 의하여 세습국의 일부분으로 병합되어 버리는 새로운 나라이다. 이렇게 하여 획득된 영토에서 한 군주의 지배하에 혹은 자유롭게 사는 데 익숙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라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군주의 무력에 의하거나 아니면 타국의 무력에 의하는 경우가 있으며 또 요행에 의하거나 실력에 의하는 경우도 있다.
제2장
세습 군주국에 대하여
공화국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길게 논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이야기하지 않겠다. 여기서는 군주국에 한해서만 다루며 그리고 위에서 논한 개요에 따라 어떻게 군주국은 통치되고 유지되는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세습 국가 즉 군주의 혈통을 이어 오고 있는 국가를 유지하는 일은 새로운 국가의 그것보다. 어려움이 훨씬 적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군주는 선왕이 남겨 놓은 관습에 벗어나지 않고 또 불의의 사건에 대해서 적절히 대처하기만 하면 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습 군주가 남들만큼 근면하다면 돌발적이고도 강대한 힘에 의해 그 나라를 빼앗기지 않는 한 그의 국가를 유지할 수가 있다. 그리고 비록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찬탈자에게 어떤 불운이 닥치면 다시 되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로는 이탈리아에 있어서는 페라리공이 있는데 만일 그가 대대로 왕가를 이어 온 집안 출신이라는 뒷받침이 없었더라면 1484년의 베네치아군의 공격을 견디어냈거나 1510 년의 교황 율리우스의 공격을 이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습 군주는 민중으로부터 한층 더 사랑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며 지나친 악행으로 백성들의 미움을 받지 않는 한 자연히 백성들의 호감을 사게 된다. 더욱이 군주의 통치가 옛부터 면면히 이어지는 경우는 혁신의 기억도 동기도 사라져 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하나의 변혁은 항상 또 다른 변혁의 열장끼움을 남기기 때문이다.
제3장
복합형 군주국에 대하여
그러나 새로 장악한 곳에서는 통치권에 대한 많은 곤란이 따른다. 첫째 그 군주국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신구영토를 합한 복합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의 일부분에 해당되는 새로운 나라의 경우 거기에서 일어나는 변혁은 모든 새로운 나라가 안고 있는 고유의 곤란에서 주로 생겨난다. 즉 그것은 민중이 보다. 나은 여건을 위해서는 지배자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런 기대 속에서 민중은 지배자에 대항하며 무기를 들게끔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나중에야 상태는 전보다. 더욱 나쁘게 된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군주로서는 군대를 동원해야 하고 자기의 새로운 통치권에 대항하여 발생하는 사태에 대해서 온갖 악행을 자행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점이 어쩔 수 없이 그리고 흔히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이 통치권을 장악하는 동안에 군주에 의하여 피해를 본 자들은 모두 적으로 되며 뿐만 아니라 일찍이 협력하였던 자까지도 그들이 기대했던 만큼의 보상을 해주지 못할 때는 우정은 지속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대했던 만큼 그들을 만족시켜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여 은혜를 입고 있는 그들에게 강권을 휘두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강력한 병력을 갖고 있는 군주라 할지라도 새로운 지방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는 그곳 주민의 호감을 살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의 루이 12세가 신속하게 밀라노를 점령했으면서도 곧 그것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리고 로도비꼬 스포르자가 자기의 군대만으로써 프랑스 왕으로부터 그것을 한 번 되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프랑스 왕에게 성문을 열어 주었던 백성들이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고 장래의 행복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새로운 지배자에 대한 반감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반이 있었던 영토를 다시 획득하면 이는 쉽게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군주가 지난번의 반란을 거울삼아 반역자들을 처벌하고 혐의자들을 재판하여 자기의 안전을 꾀하며 자기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그의 위치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랑스 왕으로부터 밀라노를 되찾기 위해서 로도비꼬공은 변두리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재차 밀라노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전국토가 프랑스에 대항하고 프랑스군을 격파하여 이탈리아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는 앞에서 말한 원인 때문이다.
결국 프랑스 왕은 두 번이나 밀라노에서 내쫓겼다. 프랑스 왕을 첫 번째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논하였다. 두 번째의 이유에 대해 논하고자 하며 그리고 그때 프랑스 왕이 취한 대책과 또 다른 후계자가 그의 입장에 있었다고 하면 정복한 나라를 이 왕보다 더욱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데는 어떤 방책이 있었는지 논하려 한다.
그런데 정복되어 본국에 병합된 영토의 경우 같은 영토 안에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영토와 언어가 같으며 더욱이 주민이 지금껏 자치적인 생활에 익숙치 못한 경우 영토를 보전하는 일은 용이하다. 그 영토들을 확고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지배해온 군주의 혈통을 근절시켜 버리면 충분하다. 기타의 것은 주민에게 옛날부터의 상태를 지속시키면 풍속 습관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주민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예를 들면 브르따뉴 부르고뉴 가스꼬뉴와 노르망디에서 보는 봐와 같이 그들은 오랫동안 프랑스에 병합되어 있었다. 비록 그들 사이에는 다소간 언어상의 차이는 있었으나 풍속에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쉽게 결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영토를 획득한 군주가 그것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는 그 영토의 군주의 혈통을 근절하는 일이고 둘째는 종래의 법률이나 세제를 고치지 않는 일이다. 이러한 방법에 의해 짧은 기간 내에 새로이 획득한 영토는 구영토와 완전히 일체가 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언어도 풍습도 제도도 다른 지역의 영토를 획득하는 경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보전하는 데도 커다란 행운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 영토를 처리하는 최상의 효과적인 방책의 하나는 정복자가 그 지방에 이주하는 일이다. 이 방책은 영토의 보전을 더욱 안전하게 더욱 영속적으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터키가 그리스에 대하여 취했던 대책이다. 만일 터키 왕이 그리스에 이주하지 않았더라면 그 영토를 보전하기 위하여 어떠한 방책을 강구하였다. 하더라도 이 나라를 이 나라를 보전해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지에 살고 있으면 분란이 일어나더라도 초기에 탐지하여 즉각 대책을 수립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떨어져 있으면 분란이 확대될 때까지 들을 수 없으므로 대책을 세우지 못하게 된다. 더욱이 군주가 살고 있으면 그의 영토가 부하에 의하여 약탈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주민들도 그들의 군주에게 언제나 의지할 수 있기에 만족하게 된다. 그리고 만일 주민이 충성심을 품고 있으면 군주를 흠모하게 되고 역심을 품을 때라도 군주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되며 이 나라를 공격하려고 꾀하는 외부의 적도 무척 신중을 기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군주가 현지에 살고 있는 한 그 나라를 빼앗는 일은 극히 어렵다.
다른 최선의 방책은 영토의 중요 거점 한두 곳에 이민단을 보내는 일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많은 수의 기병대나 보병을 주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민단에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들을 파견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적은 비용을 들이거나 전혀 자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다만 새로운 이주자에게 주기 위해 그 토지와 가옥을 빼앗긴 소수인의 노여움을 살 뿐이다. 그러나 손해를 입은 사람들은 그 사회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산재해 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에 군주에게 위험한 존재로 되지는 않는다. 다른 주민들은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기에 쉽게 조용해질 것이고 동시에 그들의 소유물이 약탈당한 사람들과 같은 운명에 빠지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전전긍긍할 것이다. 요컨대 이와 같은 이민은 군대보다 비용이 덜 드는데다가 훨씬 충실하며 또 사람들에게 해를 덜 입히게 된다. 손해를 입은 이들도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가난하고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해를 입히지 못한다. 여기서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민중을 친절하게 대우해주든가 아니면 철저하게 억누르든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소한 침해에는 복수하려 하지만 중대한 침해에 대해서는 복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해를 끼칠 때엔 복수의 두려움이 없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이민단 대신에 군대를 파견하게 되면 비용은 크게 늘어나며 국가의 전 수입은 이 군대를 유지하는 데 소모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영토의 획득이 오히려 해가 되고 또 군대의 주둔지를 여러 곳으로 이동함으로써 영토 전체에 해를 끼치게 되어 주민에게 더 심각한 피해를 주게 되므로 모든 주민은 고통을 통절히 느껴 모두 적으로 되고 만다. 그들은 비록 정복당했지만 그들 자신의 나라에 살고 있기에 군주에게 해를 끼칠 힘을 갖고 있는 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모든 면에서 이민단은 효과적이나 주둔군은 불리하다. 법률과 언어가 그 자신의 국민의 것과 다른 지역을 다스리는 군주는 약한 이웃 나라들의 맹주나 보호자가 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지방에서 강대한 자의 힘을 약화시키고 뜻하지 않은 사건에 의해 자기와 대등한 정도로 강력한 외부 세력이 지역 안에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야심이나 공포심으로 인하여 자기나라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은 항상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아는 바와 같이 옛날 아에토리아인들이 그리스에 로마군을 끌어들인 것이 그 예이다. 로마군이 다른 모든 지역에 진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지방 주민의 영접이 있었던 때문이다. 사물의 일반적인 추세는 강력한 외부의 한 군주가 어느 지방에 침입하여 오자마자 그 지방의 약소국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을 지배하고 있던 원한으로 인해 이 침입자를 편들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 약소국가에 관해서는 그들을 손에 넣는 데는 별다른 수고나 어려움이 없다. 왜냐하면 약소국들은 그 지역을 정복할 외래 군주의 통치에 그들의 운명을 함께하여 일체가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군주는 그들이 지나치게 큰 세력으로 성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세력과 그들 나라의 선의에 의한 지원으로 우세한 나라들을 쉽게 정복하게 되어 그 지역의 우월자로 남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방책을 잘 다루지 못하는 자는 그가 획득한 것을 곧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비록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곤란과 재난이 영역 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로마인은 그들이 획득한 지방에서 내가 기술한 방법을 애써 따르고 있다. 그들은 이주민을 정착시키고 약소국에 대해서는 그들의 세력을 증대시키지 않고 회유하며 강대국에 대해서는 자존심을 꺾었으며 강력한 외국 세력이 영향력을 획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 예로 다음 일을 드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그리스에 있어서 로마군은 아카에인과 아에토리아인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마케도니아 왕국을 꺾고 안티오코스를 내쫓았다. 그러나 아카에인도 아에토리아인도 이 공적으로 그들의 세력을 증대시키지는 못했다. 또한 필립포스왕의 설득은 그 자신을 굴욕적인 것으로 하는 조건에서가 아니면 로마인의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안티오코스의 강한 세력까지도 그 지방에서의 어떤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로마인은 현명한 지배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즉 현명한 지배자는 현재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장래의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모든 노력을 다해 이것에 대처하여야 하는 것이다. 재난이 아직 멀리 있을 때 예견하면 쉽게 대책을 세울 수 있으나 그것이 눈앞에 닥치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 이미 성복 뒤에 약방문으로 병을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사가 소모열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병의 초기엔 이것을 고치기는 쉬우나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프랑스 문제로 되돌아가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대책을 프랑스가 채택했는지의 여부를 검토해 보자 샤를 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루이 왕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하는데 그 까닭은 루이 왕은 오랫동안 이탈리아를 점유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행동 특징을 보다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외국 영토를 유지하기 위하여 당연히 해야 할 것과는 정반대의 일을 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루이 왕이 이탈리아를 침공한 것은 롬바르디아 영지의 반을 루이 왕의 개입에 의하여 획득하려고 한 베네치아인의 야심에 기인한다. 나는 이 개입이나 루이가 취한 조치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탈리아에 발판을 구축하려고 하였으나 그 지방에는 그의 우군이 없었으며 뿐만 아니라 반대로 지난날 샤를왕의 행동 결과로 모든 성문이 그에 대해 폐쇄되어 있었기에 그는 그가 포착할 수 있는 우호 관계는 무엇이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만일 다른 행동 면에 있어서의 실패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용이하게 성공하고 있었을 것이다. 루이 왕은 롬바르디아 회복에 의해 샤를 왕이 상실했던 명성을 즉각 되찾았다. 제노바는 항복하였고 피렌체는 한편이 되었다. 만투아 후작, 페라리 공작, 벤띠보글리오, 폴리부인 그리고 파엔자, 페사로, 리미니, 까메리노, 피옴비노의 영주들과 룩카, 삐사, 시에나의 주민들은 모두 우호 관계를 맺으려고 접근했다. 롬바르디아에서 두 개의 도시를 획득하기 위하여 이탈리아의 3분의 2가 프랑스 왕의 지배하에 놓여 버린 베네치아인은 그때 가서야 자기들이 취한 분별없는 조치를 후회하게 되었다.
루이 왕이 앞에서 말한 원칙을 지키고 그의 우방들을 확보하여 그들로부터 보호를 받았더라면 이탈리아에서의 그의 권위는 힘 안 들이고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들 국가와 영주들은 힘이 약하여 어떤 자는 교황을 또 어떤 자는 베네치아인을 두려워하고 있었기에 프랑스 왕의 편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 왕은 그들을 이용함으로써 어떤 다른 강국에 대항하여 쉽게 자신의 안전을 기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밀라노에 입성하자마자 로마냐 지방을 점령하려고 교황 알렉산데르를 원조하여 반대의 노선을 취했다. 이와 같은 일로 인하여 그는 자기의 동맹군 및 그의 지배하에 모였던 사람들과 사이가 멀어지게 되어 자신의 세력이 약화되고 한편 강력한 권위를 부여하는 교권에다. 세속적 권력을 추가해 줌으로써 교황권을 강화시켜 줬다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 원초적 실수 때문에 그는 거듭 실수를 반복하게 되었고 교황 알렉산데르의 야망을 견제하고 교황이 또스까나의 지배자가 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왕 스스로가 이탈리아를 쳐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교황의 세력을 강화시키고 자신의 동맹군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나폴리 왕국을 소유하기위해 스페인 왕과 그것을 분할하려 했다. 루이는 이탈리아 맹주였었는데 경쟁자로써 스페인 왕을 끌어들였고 이 때문에 이 지역의 야심가들과 불평분자들은 도움을 청할 인물을 갖게 된 셈이다. 루이 왕은 그에게 공물을 바칠 허수아비 왕을 그 자리에 남겨 두어야 했었는데도 불구하고 루이 왕 자신을 추방시킬 강력한 인물을 놓아두었다.
영토 획득욕은 매우 당연하고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능력 있는 자가 이것을 기도할 때 그들은 비난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받을 것이다. 그러나 능력이 미치지 못하면서 무리하게 강행하려는 것은 잘못이며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프랑스 왕이 자국의 병력으로 나폴리를 공격할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한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폴리를 분할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베네치아와 함께 롬바르디아를 분할한 것은 이탈리아에 프랑스 왕이 발판을 구축하였다는 의미에서는 변명이 성립될 것이다. 그러나 꼭 그럴 만한 구실이 없는 나폴리 분할의 경우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루이는 다음 다섯 가지의 과실을 저질렀다. 첫째 약소국가를 멸망시켰다. 둘째 이탈리아에서 강력한 한 군주의 세력을 강화시켰다. 셋째 이탈리아에 대단히 강력한 외국 세력을 끌어들였다. 넷째 그 자신이 이탈리아에 정착하지 않았다. 다섯째 이민단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를 빼앗은 여섯 번째의 실수를 범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말한 실수로 왕이 살아 있는 동안은 그에게 큰 피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교황권을 강화시켜 주지 않고 스페인을 이탈리아로 끌어들이지만 않았더라도 그가 베네치아인을 굴복시킨 것은 정당하고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과실을 범하였다. 하더라도 베네치아를 멸망시키려고 노력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베네치아인이 강대한 동안은 다른 나라가 롬바르디아를 침략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자기 국가가 롬바르디아의 맹주가 되지 않고서는 어떤 정책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3국이 프랑스로부터 롬바르디아를 빼앗아 이것을 베네치아인에게 돌려줄 리도 없으며 그렇다고 이 두 나라에 감히 도전할 만한 용기도 없었다.
루이 왕이 로마냐를 교황 알렉산데르에게 양도하고 나폴리를 스페인에게 양도한 것은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면 나는 앞서 말한 이유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사람은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그의 계획이 저지되는 것을 버려둬서는 안 되며 전쟁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이것을 회피함으로써 손해만 볼 뿐이라고 그리고 루이 왕이 자기의 이혼 문제와 담보아즈를 추기경으로 만들기 위한 대가로 교황과 행한 전쟁 협정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다면 차후 군주의 약속과 그 약속은 어떻게 지켜지는가에 관해 말하는 대목에서 답하겠다.
이와 같이 루이 왕은 점령지를 보전하려는 사람이 지켜야 할 방침의 어느 것 하나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롬바르디아를 잃고 만 것이다.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며 당연하고도 자연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교황 알렉산데르의 아들로서 일반적으로 체자레 보르지아라고 불리는 발렌띠노 공이 로마냐를 점령하고 있을 때 나는 낭뜨에서 루앙의 추기경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루앙의 추기경이 이탈리아인은 전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였기에 나는 프랑스인은 정치를 모른다. 왜냐하면 프랑스인이 정치를 알고 있다면 로마 교황권이 이렇게 강력하게 자라도록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의 교황권 및 스페인 세력이 강력하게 된 것도 프랑스 때문이었으며 또 프랑스의 파멸은 그들의 득세에 의하여 이루어 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보편적인 원칙을 끌어낼 수 있다. 즉 다른 사람을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은 끝내 스스로 멸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약삭빠른 재치와 폭력으로 남을 강하게 만들지만 세력을 얻게 된 자는 이 두 가지의 수단에 대해 불신을 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초기에 발견해 손을 쓰지 않으면 시간이 감에 따라 병을 발견하기는 쉽지만 치료하기는 불가능하게 된다. 국사에도 이와 같은 일이 많다. 현명한 통치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나 국가의 불안 요소를 시초에 발견하게 되면 쉽게 다스릴 수 있으나 발견하지 못한 채 모든 사람이 분명하게 알 때까지 진행해 버린다면 이미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로마인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재난을 예견하여 항상 대책을 강구하였고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재난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쟁은 회피할 수 없는 것이고 또 이것을 연기 하는 일은 적을 이롭게 하는 것뿐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인은 이탈리아에서 싸우는 것을 피하고 그리스에서 필립포스왕이나 안티오코스와 전쟁하는 것을 택했다. 비록 이때의 전쟁은 그들이 피하려고 하였으면 둘 다. 회피할 수가 있었던 것이나 그들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고 로마인은 오늘날 현자들이 항상 말하는 "때를 기다리라"는 격언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용기와 선견지명의 결과에 의지하였다. 왜냐하면 때라는 것은 모든 것을 몰고 오며 선과 악을 함께 가져오기 때문이다.
제4장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된 다레이오스 왕국에서 그의 사후에도 왜 후계자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아시아의 정복자가 되어 그 지역을 완전히 영유하기도 전에 죽었는데 새로 획득한 영토를 보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 생각한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죽음을 계기로 정복된 모든 나라는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왕의 후계자들은 훌륭히 그것을 보전하였다. 그들 자신의 야심이나 상호간의 시기에서 생겨나는 어려움을 제외하고는 다른 곤란을 찾아볼 수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역사적인 기록을 상고해 보면 모든 군주국은 두 가지의 방법에 의하여 통치되어 왔는데 하나는 한 사람의 군주 및 그의 애고와 호의를 받고 대신처럼 국정을 보좌하는 신하들에 의한 방식과 나머지 하나는 한 사람의 군주와 봉건 제후에 의한 방식인데 이들 제후는 군주의 은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오래된 혈통에 의하여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각각 자기의 영지와 그들을 영주로서 우러르며 충성을 바치는 백성을 갖고 있다. 한 사람의 군주와 그 신하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 나라에서의 군주는 거의 완전한 경력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군주는 전국을 통하여 지고의 존재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군주 이외의 어떤 사람들에게 복종한다. 하더라도 그를 일게 대신이나 관리라고 생각할 뿐이지 그에게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일은 없다.
이러한 두 가지 통치 형태의 예를 오늘날에는 터키와 프랑스 왕에게서 볼 수 있다. 터키 왕국은 한 사람의 군주에 의해 통치되고 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의 신하이었다. 그는 그의 왕국을 몇 개의 산자크(sanjaks)로 분할한 후 거기에 여러 행정관을 파견하되 득실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이동시키거나 교체시켰으나 프랑스 왕은 오래된 가문의 제후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들 제후들은 각자 그의 백성들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리고 그들은 각기 특권을 누리고 있었는데 왕은 왕권이 침해되지 않는 한 이 특권을 박탈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이 두 나라의 서로 다른 특징을 생각해 본 사람은 터키를 점령하는 일은 어려우나 한번 획득하기만 하면 용이하게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터키 왕국을 정복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은 그 왕국의 군주가 외세를 끌어들이지 못하며 또 군주의 측근자들의 반란이라도 일으켜서 정복을 용이하게 해주리란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말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인데 즉 모든 관리들은 노예이고 그들은 군주에게 예속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매수되지 않는다. 또 매수된다. 하더라도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그들에게 백성까지 동조시킬 수가 없으므로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기에 터키를 공격하려면 우선 연합 전선을 형성해야 하며 그리고 적의 분열을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터키가 전쟁에서 압도당하고 패배하여 그의 군대를 재조직할 수 없게 되면 그 외에 염려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군주의 혈통을 근절하여 버리기만 하면 된다. 군주의 혈통이 끊어지게 되면 민중의 신뢰를 받을 수 없게 되며 그리고 정복자는 승리 이전에 백성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정복 후에도 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프랑스와 같이 통치되고 있는 나라는 이것과 반대이다. 거기에는 불평분자와 같이 통치되고 있는 나라는 이것과 반대이다. 거기에는 불평분자와 변혁을 바라는 무리들이 있기에 그 나라 제후의 누군가를 수중에 넣으면 쉽게 그 나라에 침입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이유에 의하여 그들은 그 나라에 침입할 길을 열어 주고 정복을 용이하게 해준다. 그러나 나중에 이 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는 정복자를 원조하여 주었던 사람들과 정복자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로부터의 끝없는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이때는 군주의 혈통을 근절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새로운 반역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을 만족시킬 수도 없고 또 타도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회가 오기만 하면 나라는 빼앗기게 된다.
다레이오스 왕의 통치 형태가 어떤 것인가를 본다면 이 나라는 터키 왕국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따라서 알렉산드로스에게는 무엇보다. 먼저 다레이오스를 철저히 패배시키고 그의 영토를 빼앗는 일이 필요하였다. 패전 후 다레이오스는 죽었기에 앞서 설명한 이유에 따라 알렉산드로스는 그 나라를 영원히 보전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이 단결만 유지했더라면 혼란 없이 그 영토를 보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왕국에서는 그들 자신의 내부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저항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왕국과 같은 정치 조직을 갖고 있는 나라의 경우는 그처럼 쉽게 평온을 유지시킬 수는 없다. 로마인에 대한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난 반란은 많은 군소 제후들이 있었던 까닭이다. 백성들에게 이들 제후들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로마인들은 그들의 영토 보전이 결코 안정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뿌리 내린 로마제국의 통치가 계속되었기에 그러한 기억이 사라지고 로마인의 점령은 확실한 것으로 되었다. 그 후 로마인들은 그들 사이에 내분이 일자 각자가 획득한 세력에 따라 각각 그 나라의 일부를 점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지역의 주민들은 옛 군주의 혈통을 단절시켜 버린 로마인만을 지배자로서 승인 하였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알렉산드로스에겐 아시아에 있어서 영토의 확고한 보전이 가능하였으며 피로스를 비롯한 여타의 많은 군주들은 정복지를 보전하는 데 곤란을 겪었으리라는 것에 대해서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정복자가 지닌 능력의 우열에서보다 오히려 정복된 나라의 상이한 특성에서 생겨난 것이라 하겠다.
제5장
점령하기 전에 자치 하에 있었던 도시나 국가는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정복된 나라가 그들 자신의 법률 하에서 자유롭게 사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경우 정복자가 그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그 나라를 멸망시켜 버리는 것 둘째 정복자 자신이 그곳에 옮겨 사는 것 셋째 그들 자신의 법률 하에 살도록 허가하고 조공을 바치게 하며 그 영내의 군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수자의 통치 즉 과두정치를 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는 새로운 군주에 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군주의 보호와 지지 없이는 존립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군주의 나라를 유지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한 도시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그 시민을 이용하는 것이 용이한 방법이다.
정복한 국가를 보전하기 위한 이와 같은 예를 스파르타인과 로마인에게서 볼 수 있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테바이에 과두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이러한 도시들을 보전하였으나 결국은 그들을 상실하였다. 로마인은 카푸아 카르타고와 누만티아를 정복하기 위하여 이 나라들을 파괴해 버렸으나 그것들을 상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하려 할 때 스파르타가 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하려고 생각하여 그곳에 자유를 주고 그 자신의 법률에 의하여 통치되도록 허락하였기에 실패하였다. 그러므로 그것을 보전하기 위해서 많은 도시들을 파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경우에 있어서 그 나라를 확고하게 보전하기 위해서는 파괴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며 자유를 누리며 사는 데 익숙해진 한 도시의 지배자로 된 이는 누구든 그 도시를 파괴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도시에 의하여 자기가 타도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반란이란 항상 자유와 옛 법률이란 명목 하에서 동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자유와 옛 법률의 양자는 긴 세월로도 어떤 선정으로도 잊게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어떤 시설을 가지든 어떤 방비를 하든 주민들을 분산시키지 않으면 그들은 자유와 옛 질서를 결코 잊어버리지 않기에 군주에게 재난이 닥치면 언제든지 즉각적으로 그에게 반항하게 된다. 마치 백 년 동안 피렌체에 예속되어 있던 삐사가 봉기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군주의 지배 하에서 살아 왔고 더욱이 그 혈통이 끊어져 버린 새로 획득한 도시나 국가에서는 한편으론 새 지배자에게 충성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들의 옛 지배자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 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 합의를 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유민으로서 살아가는 방법도 모르고 또 쉽사리 반란을 일으키지도 못하기에 외래의 군주는 그들을 쉽게 정복할 수 있고 또 자신을 그들 위에 군림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공화국에 있어선 강력한 생명력이 있고 격렬한 증오가 있으며 복수에의 예리한 갈망이 있다. 그들이 지난날 지녔던 자유에의 기억이 그들로 하여금 휴식을 취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곳을 통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안전한 길은 그들을 파멸시키든가 아니면 군주 자신이 그들 속으로 가서 함께 사는 일이다.
제6장
자기의 무력과 역량으로 획득한 새 군주국에 대하여
완전히 새롭게 획득한 통치권에 관해 말하는 데 있어서 내가 가장 위대한 인물과 정부들을 인용한다. 하더라도 이상히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사람은 대체로 타인의 발자취를 따르고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게 되는 것이나 선인이 걸어간 길을 정확하게 지킬 수는 없는 것이고 또 본받고자 하는 인물의 능력에 도달하기도 어려우므로 현명한 사람은 항상 위인이 걸어간 길을 따르고 가장 뛰어난 인물을 모범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비록 그가 위인들과 똑 같이 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 향기의 얼마만이라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사려 깊은 궁술가와 같은 행동이다. 궁술가는 그가 맞추고자 하는 과녁이 너무 멀고 화살이 날아갈 수 있는 거리를 알면 과녁보다. 훨씬 더 높은 곳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화살을 더 높이 쏨으로써 과녁을 맞출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군주가 새로운 완전히 새로운 통치권에 있어서 획득한 나라를 보전하는 데 따르는 곤란은 이 나라를 획득한 군주의 역량 여하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일개 평민이 군주가 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능력에 의한 것이었던지 행운에 의한 것이었던지 이 두 가지 조건 중 어느 한쪽이 많은 곤란을 어느 정도 완화해줄 것이다. 그러나 운에 덜 의지하는 이가 결국엔 보다 더 성공적으로 된다. 그리고 다른 영토를 갖지 않았기에 자신이 새롭게 획득한 국가에 옮겨 살아야만 하는 경우에는 군주에게 더욱 유리하게 된다.
행운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역랑에 의해 군주가 된 사람을 보면 그들 중에서도 모세, 키로스, 로물루스, 테세우스 등이 가장 탁월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집행하는 데 지나지 않은 사람이므로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나 그가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그를 위대하게 만든 은총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하다. 그리고 키로스를 비롯하여 왕국을 획득했거나 건설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들은 훌륭하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이나 특수한 제도를 연구하여 볼 때 아주 위대한 스승이었던 모세의 그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음을 느끼게 된다. 더욱이 그들의 행동과 생애를 조사해 보면 그들은 다만 그들에게 소재를 제공해 줄 수 있고 이것으로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물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였던 기회이외에 아무런 행운도 입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없었더라면 그들의 정신력도 쓸모없이 소모되었을 것이고 반면에 자질이 없었더라면 그런 기회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르고 그들의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이집트인들에게 억압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발견해야 하는 일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로물루스가 로마의 왕이 되고 로마의 건설자가 되기 위해서는 알바에 그대로 머무르는 것보다.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아이로 되었던 것이 오히려 다행한 일이었다. 키로스에게는 메디아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던 페르시아인과 오랜 평화로 인해 안일하고 나약한 메디아인을 만나 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아테네인이 분열되어 있고 분산되어 있는 것을 보지 않았더라면 테세우스도 그의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들을 성공하게 만든 것은 그들의 기회였으며 이런 기회를 인식 포착하여 그들 조국의 영광과 번영으로 전환시킨 것은 그들의 능력이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능력에 의하여 군주가 된 사람에게는 나라의 획득에는 곤란이 따르나 보전하는 일은 용이하다. 국가를 획득하는데 따르는 곤란은 주로 그 나라의 건설과 보전을 위하여 강제적으로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새로운 법률과 제도에서 생겨난다. 지도자로서 새로운 통치 방법을 시행하려고 시도하는 것보다. 실행에 있어서 위험하고 어려우며 성공이 의심스러운 것은 없다. 왜냐하면 개혁을 단행하는 이는 낡은 질서 하에서 혜택을 입어 온 모든 사람들을 그의 적으로 삼아야 하고 또한 새로운 제도 하에서 혜택을 입게 될 사람들도 다만 소극적인 지지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극적인 기질은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유리한 법률을 갖고 있는 반대자들의 공포심과 한편으로는 체험의 결과에 의하여 확인될 때까지 새로운 것의 가치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의심에서 생겨난다. 어쨌든 변화에 적의를 가진 자들은 공격을 가할 때는 언제나 당파적 열의를 갖고 달려들지만 반면에 상대방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주장이 위험에 빠질 만큼 미약한 방어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관한 분명한 이해를 위해서는 이들 개혁자들이 자신의 힘으로 추진하고 있는가 아니면 제 3자의 지원에 의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들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남에게 간원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힘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항상 실패하며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기략에 의지하여 힘을 사용할 때는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무장한 모든 예언자는 승리하고 무장하지 않은 모든 예언자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이유 이외에 인간의 본질은 변덕스럽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민중을 설득하기는 쉽지만 그들을 그 설득 상태에 그대로 고정시켜 두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그들이 더 이상 믿으려고 하지 않을 때에는 힘에 의하여 믿도록 하는 수단을 강구하여야 한다.
모세와 키로스와 테세우스와 로물루스도 무력을 갖추고 그들을 억압하지 않았더라면 장기간에 걸쳐 그들의 율법을 민중으로 하여금 지키도록 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수도사인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에게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그에 대한 민중의 신뢰가 흔들리자마자 새로운 통치를 위한 그 자신의 제도 속에서 몰락했다. 그는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믿음을 지속시켜줄 수 있는 수단을 가지지 못했으며 불신자들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계획을 수행하는 데 큰 곤란을 겪게 된다. 그리고 모든 일에 위험을 직면하며 그것은 다만 용기와 능력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곤란을 극복하면 존경을 받게 되고 또 그들의 훌륭한 능력에 질투를 느끼는 무리들을 타도하여 버리면 그들은 권세와 안정과 명예와 번영을 누리게 된다.
앞에서 인용한 훌륭한 실례에다가 사소한 예를 하나 첨가 하겠다. 양자 사이에는 어느 정도 관계가 있으므로 이와 비슷한 성질의 것을 이것으로써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라쿠스 왕 이에론의 예가 그것이다. 그가 평민의 신분으로 시라쿠스의 왕이 되었으며 그도 역시 기회 이외의 행운은 입지 않았다. 즉 그는 압제받고 있던 시라쿠스인들이 그를 그들의 지도자로서 선출하였으며 그는 당연히 그들의 왕이 되고자 의무를 다했다. 일개 평민이었을 때에도 그의 능력은 매우 뛰어났으며 "왕으로서 그에게 부족한 것은 다스릴 왕국이 없다는 것뿐이다. " 라고 그에 관한 한 저서의 저자는 말하였다. 그는 종래의 군사 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군제를 실시했으며 기존의 동맹 관계를 폐기하고 새로운 동맹 관계를 수립했으며 자기의 군대와 동맹군을 갖게 되자 그 기초 위에 그가 원하는 건물을 세우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국가를 처음 획득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획득한 것을 보전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제7장
다른 사람의 무력에 의해 획득한 새 군주국에 대해
평민의 신분으로 단순히 행운에 의해 군주가 된 사람들은 군주가 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그것을 보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들은 목적지까지는 나는 듯이 내달았기 때문에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었으나 그들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곤란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금전에 의해서거나 또는 다른 사람의 호의에 의해서 나라를 양도받은 경우이다. 다레이오스 왕이 자기의 안전과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의 지도자들을 군주로 임명한 이오니아와 헬레스폰토스의 도시 국가에서 어려움이 많이 일어난 것이 그 예이다. 또 군대에 뇌물을 줌으로써 일개 평민이 제왕의 권좌를 획득한 그런 황제들의 경우에도 일어났다. 이러한 군주들은 그들을 권력자로 만들어 준 사람들의 뜻에 따라 권력을 유지할 수 있고 그들의 정치적 생명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지위를 유지하는 노력과 힘을 결여하고 있다. 그들의 통치 방법이 탁월치 못한 것은 그들이 훌륭한 능력이나 역량이 없기 때문이며 줄곧 평민의 신분에서 살았기 때문에 통치하는 법을 배웠다고 기대할 수도 없다. 그들은 힘이 결여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애착심과 충성심을 가진 군대가 없기 때문에 통솔할 수 없다.
더욱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나라는 급하게 생겨나서 빨리 성장하는 식물과 같이 악천후를 견딜 수 있는 뿌리를 가질 수가 없다. 정녕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갑자기 군주가 된 사람들은 그들의 무릎 위에 가져다 준 운을 지키는 방법을 빨리 자질을 갖고 있지 못하며 그리고 다른 이들은 군주가 되기 전에 해두는 기초 작업을 자신은 군주가 된 후에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즉 능력이나 행운에 의해서 군주가 되는 이러한 방법 중에서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예를 골라 보겠으며 특히 프란체스꼬 스포르자와 체자레 보르지아의 경우를 들어 보려 한다. 프란체스꼬 스포르자는 적절한 수단과 탁월한 능력으로 평민의 신분에서 밀라노공이 되었다. 그것을 획득하는 데는 무한한 노력이 필요했으나 그것을 보전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반면에 일반적으로 발렌띠노 공이라고 불리는 체자레 보르지아는 아버지의 덕분에 그의 왕국을 획득하였으나 그 운이 기울자 나라를 잃어버렸다. 비록 다른 사람의 무력이나 다른 사람의 덕분에 그에게 양도된 나라를 잘 보전하기 위해서 분별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취해야 할 모든 노력과 수단을 다하긴 하였다.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처음에 기초 작업을 하지 못한 사람은 만일 그가 뛰어난 자라면 나중에 기초를 쌓는 데 성공할지 모르나 거기에는 건설자의 불편은 물론 건축 그 자체에도 위험이 따른다. 그런데 발렌티노 공에 의해 취해진 다양한 방법들을 고려해 보면 그가 장래의 권력을 보전하기 위하여 얼마나 엄청난 기초를 쌓았는가를 알게 된다. 새로이 군주가 된 이에겐 그의 행동의 예보다. 더 효과 있는 교훈도 없기에 그것을 여기서 검토해 보는 것은 쓸모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록 그가 취한 방법이 궁극적으로 그에게 이롭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특이하고도 극단적인 악운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알렉산드르 6세가 자기 아들 발렌띠노 공을 위대하게 만들려한 과정에 있어서 당시에도 또 앞날에 있어서도 많은 곤란에 부딪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첫째 교황령의 나라가 아닌 어떤 나라에도 그를 군주로 앉힐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한편 만일 교황령에 속해 있는 어떤 나라를 그에게 주기위해 빼앗으려 한다면 밀라노공과 베네치아인이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파엔자와 리미니는 이미 베네치아인의 보호 하에 있었다. 더욱이 이탈리아의 군대와 특히 그가 동원할 수 있는 군대는 교황권의 강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들 즉 오르시니가와 꼬론나가 및 그 추종자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기존 질서를 깨뜨리고 이탈리아의 여러 나라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그들 지방에 안전하게 군림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베네치아인이 재차 프랑스군을 이탈리아로 끌어들일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 교란은 쉽게 되었다. 따라서 교황은 베네치아인들의 계획에 반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프랑스 루이 왕의 이혼을 허락해 줌으로써 계획을 더욱 용이하게 하였다. 루이 왕은 베네치아인의 권고와 교황 알렉산데르의 동의에 의하여 이탈리아에 침입하였다. 루이 왕이 밀라노에 들어오자마자 교황은 그에게 병력을 빌어서 로먀냐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고 로마냐는 프랑스군의 명성에 의하여 즉각 굴복하고 말았다. 로마냐를 획득하고 꼬론나가를 평정한 후에 발렌띠노 공은 정복을 추구 확대하려고 했으나 두 가지 장애가 가로 막고 있었다. 하나는 자기가 거느린 군대가 미덥지 못하다는 것과 또 하나는 프랑스왕의 속셈이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이용해 온 오르시니가의 군대가 그에게 등을 돌려서 그 후 그의 정복을 방해할 뿐 아니라 그가 획득한 것을 빼앗아 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루이 왕도 같은 행동을 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발렌띠고 공은 파엔자의 점령 후 볼로냐 공격을 시작했을 때 그의 군대들이 그 공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오르시니가를 의심했다. 루이 왕에 대해서는 우르비노 공국을 장악하고 또스까나 공격을 시작했을 때 그가 이 공격을 저지하였기에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발렌띠노 공은 타인의 무력이나 행운에는 더 이상 의지하지 않으려고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첫 조치는 로마에 있는 오르시니 꼬론냐 양가의 도당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의 도당에 속해 있는 귀족들을 모두 자기의 귀족으로 만들고 그들에게 충분한 보수를 주며 그들의 지위에 알맞은 지휘권과 관직을 부여했다. 이렇게 하자 몇 달 안에 그들의 옛 당파에 대한 애착심은 소멸되고 모든 희망을 오직 발렌띠노 공에게만 걸게 되었다. 그는 꼬론나가의 무리들을 분산시킨 후에 오르시니가의 우두머리들을 제거시키기 위해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 기회가 오자 그는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때 발렌띠노 공과 로마 교황권의 강대화가 스스로 무너지기에는 너무 늦다는 것을 알게 된 오르시니가는 뻬루지노의 마지오네에서 회합을 가졌다. 이로 인해 우르비노의 반란과 로마냐의 소요가 일어나는 등 발렌띠노 공은 커다란 위험에 직면했으나 프랑스의 도움으로 이들 사건을 극복하였다. 이렇게 하여 자신의 명예를 회복한 발렌띠노 공은 더 이상 프랑스나 다른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지 않았으며 또한 공공연히 그들과 맞서는 것을 피하고 책략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을 교묘하게 숨겼기에 오르시니가는 빠울로 전하의 중재로 공에게 화해를 청해 왔다. 발렌띠노 공은 빠울로에게 돈과 의복과 말을 주고 대단히 우정 어린 친절을 베풀어 안심시켰다. 어리석은 그들은 시니갈리아에서 바렌띠노 공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렇게 하여 지도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추종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우르비노의 공국과 함께 전체 로마냐를 장악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로마냐의 모든 주민들이 그들의 복지를 기뻐하며 공의 비위를 맞추게 됨으로써 공은 자신의 장래 권력에 대한 튼튼한 기초를 충분히 쌓을 수가 있었다. 그가 이때 취한 방법은 음미해 볼 만하고 남이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기에 나로서도 말없이 지나쳐 버릴 수 없다.
발렌띠노 공이 로마냐를 손에 넣은 후 이 지방은 그들의 신하를 바르게 통치하기보다는 약탈을 하고 단결보다는 분열의 원인을 신하들에게 주는 무능한 제후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이 지방은 강도와 폭동과 그리고 온갖 종류의 불법이 만연하고 있었다. 발렌띠노는 이 지방에 평화를 가져오며 그의 권위에 순종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하면서도 선정을 베풀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그는 엄격하고 기민한 통치자인 메세를 레미로 데 오르꼬에게 거다란 권한을 부여하여 로마냐에 파견하였다. 그는 대단히 짧은 기간 내에 이 지방의 평온과 질서를 회복시켜 신뢰를 획득하였다. 그 후 발렌띠노 공은 그러한 무제한한 권한 행사는 민중의 원한을 산다고 염려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결정하였다. 그리고 우수한 장관을 가진 민사 재판소를 이 지방의 중심지에 설치하였고 그 지방의 모든 도시는 그곳에 변호인을 두었다. 그리고 발렌띠노 공은 과거의 가혹함이 그에 대한 반감을 낳았음을 알고 민중의 마음속에서 반감을 없애고 그들에게 신의를 얻기 위하여 지금까지의 모든 잔인함은 공 자신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부하의 거친 성질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한 구실을 만들려고 하던 어느 날 아침 체세나의 광장에서 레미로의 목을 자르고 그 옆에 받침 나무와 피 묻은 도끼를 놓아두었다. 이 잔인한 광경을 보고 민중들은 깜짝 놀라는 동시에 만족을 느꼈다.
이제 다시 본제로 되돌아가자. 발렌띠노 공은 그 자신의 군대를 갖추었고 가까이에서 그를 위협하던 장애를 대부분 제거하자 그 자신은 상당히 강력하게 되고 당면한 위험에 대해 안전을 유지하는 방책을 발견하였다고 하겠다. 만일 그가 정복을 계속하려고 했다면 처리해야 할 것은 프랑스 왕이었다. 왜냐하면 늦게나마 공의 세력 증대가 자신의 과실임을 알아차린 루이 왕으로부터 더 이상의 지지는 기대할 수 없음을 발렌띠노 공이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새로운 동맹국을 찾기 시작했으며 프랑스 왕과는 사이를 멀리하기 위해 가에따를 포위하고 있던 스페인군과 대전하기 위해서 나폴리 왕국으로 진격하고 있었던 프란스에 대해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의 목적은 프랑스에 대해서 자기 자신의 안전을 기하는 것이었다. 만일 교황 알렉산데르가 살아 있었더라면 그는 곧 성공하였을 것이었다.
이것이 당면한 위급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그가 취한 노선이었다. 장래에 대해 생각할 때 로마 교회의 새로운 계승자는 그의 편이 된다고 할 수 없으며 교황 알렉산데르가 그에게 부여한 것을 빼앗으려 할지 모른다는 근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그는 네 가지 방책을 취하려고 생각했다. 첫째는 그가 일찍이 탈취한 나라의 제후들의 혈통을 모조리 근절시킴으로써 새 교황과 결탁하지 못하게 하는 것 둘째 가능한 한 모든 로마 귀족들을 회유하여 교황을 견제하는 데 그들의 도움을 얻는 것 셋째 가능한 한 추기경단을 자기 통제 하에 두는 것 넷째 그의 아버지인 현 교황의 사망 전에 그의 권위를 확고히 하여 첫 공격의 충격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 네 가지 방책 중 교황 알렉산데르가 사망할 때까지 이미 세 가지는 달성하였고 네 번째 것도 거의 달성해 가고 있었다. 그가 장악한 국가의 제후는 가능하면 살해하여 버렸으며 재난을 면한 자는 거의 없었다. 또 그는 로마 귀족들을 자기편으로 끌어 들였으며 추기경의 절대 다수를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나아가 새로운 영토의 정복을 위해서 또스까나의 지배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미 뻬루지노와 피옴비노를 점령하고 삐사를 그의 보호 하에 두어 그 도시에서 도약을 하려하고 있었다. 프랑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염려할 필요가 없어졌는데 왜냐하면 프랑스군은 이미 스페인군에 의해 나폴리 왕국에서 쫓겨났고 그런 상황 하에서 쌍방이 다. 같이 발렌띠노 공의 호의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발렌띠노 공은 이런 상황이 되자 재빨리 삐사를 탈취했고 룩카와 시에나는 피렌체에 대한 질투와 공에 대한 공포로 인해 곧 항복하였으며 피렌체 공화국의 지위도 절망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교황 알렉산드라가 죽으면 바로 수행하려 했던 계획을 발렌띠노 공이 매년 수행했더라면 다른 사람의 세력이나 운에 의지함이 없이 그 자신의 세력과 역량만으로도 설 수 있는 힘과 명성을 획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그가 칼을 뺀 때로부터 5년 만에 알렉산데르는 죽었고 그의 아들인 발렌띠노 공에게 확실하게 남겨준 것이라고는 로마냐의 영토뿐이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적대하는 두 강국 즉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끼여 불안정하였고 발렌띠노 공 자신도 중병에 걸려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발렌띠노 공은 대단한 정열과 용기를 가졌었다. 그는 민중을 어떻게 회유하며 또 어떻게 하면 잃게 되는가도 잘 알고 있었다. 매우 짧은 기간이었으나 그가 쌓은 토대가 견고한 것을 생각해 볼 때 만일 이들 강국의 군대가 그를 공격하지 않고 또 그의 건강이 좋았더라면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였을 것이다. 그의 기초가 얼마나 튼튼하였는가는 다음 사실에 의해 알 수 있다. 즉 로마냐는 중태에 빠진 그를 한 달 이상이나 조용히 기다렸고 로마에서는 병으로 거의 죽어가고 있었으나 신변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 바리오니가와 비뗄리가와 오르시니가의 무리가 그 당시 로마에 왔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에게 반역을 꾀하지 않았다. 또 그는 비록 그가 좋아하는 이를 교황의 자리에 앉히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그가 싫어하는 이의 선출을 방해할 수는 있었다. 교황 알렉산데르가 죽었을 때 건강하기만 했더라도 모든 일이 그에겐 용이하였을 것이다. 율리우스 2세가 교황에 선출되었을 때 발렌띠노 공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교황이었던 아버지가 사망함으로써 일어난 일들을 나는 예견하였고 그 대책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었을 때 나 역시 죽음의 문턱에 있게 되리라는 것은 결코 예측하지 못했다."라고.
발렌띠노 공이 취한 모든 행동을 생각해 보면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행운이나 타인의 세력으로 권좌에 오른 모든 군주가 본받아야 할 인물로서 그를 추천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위대한 용기와 숭고한 정신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한 것 이상의 것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계획이 실패했던 유일한 것은 그의 아버지의 단명과 그 자신의 병이었다. 그러므로 새로이 획득한 국가에 대해서는 적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지킬 것 자기편을 끌어들일 것 힘 또는 계략에 의해 정복할 것 주민으로부터 사랑받음과 동시에 외경토록 할 것 병사로부터 존경받고 그들을 복종토록 할 것 군주를 해칠 수 있고 또 해치려 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버릴 것 낡은 제도를 새 제도로 개혁할 것 엄격함과 동시에 정중하고 관대하면서도 인심이 후할 것 반항적인 군대를 해산하고 새로운 군대를 조직할 것 자기를 돕는 것이 그들의 이익이 되고 기분을 상하게 하면 위해가 따른다는 관계에서 국왕 및 제후들과 친교를 유지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행동만큼 빛나는 예는 드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비난받을 만한 일은 선택을 잘못하여 율리우스 2세를 교황으로 선출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는 비록 자기가 바라는 이를 교황으로 선출하지는 못하였으나 어떤 사람이 교황이 되는 것을 방해할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박해한 추기경이나 또 교황이 되어 그에게 두려움을 줄 추기경 중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일에는 결코 동의해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포심이나 증오심이 원인이 되어 적이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박해한 사람들은 특히, 산 삐에르 아드 빈꾸라, 꼬론나, 산 지오르지오와 아스까니오 등이다. 담보아즈와 스페인의 추기경들 (후자는 동맹 관계와 의무에서 전자는 프랑스와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힘을 배경으로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교황이 되면 그를 두려워할 이유를 가졌다. 그러므로 발렌띠노 공은 첫째로 스페인 출신의 누군가를 교황으로 앉힐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에 실패하면 담보와즈의 선출에 동의해야만 했으며 산 삐에로 아드 빈꾸라에 동의해서는 결코 안 되었던 것이다. 위대한 인물은 새로운 은전 때문에 구원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므로 발렌띠노 공은 이 선거에서 실수를 저질렀으며 이것이 그의 궁극적인 파멸의 원인으로 되고 말았다.
제8장
비행으로 군주가 된 사람들에 대해서
그런데 일개 평민의 신분에서 군주가 되는 데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으나 그것을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이나 운만으로 탓할 수는 없다. 그 하나에 관해서는 공화국을 논할 때에 보다. 충분히 검토하기로 하겠지만 여기서 그 문제를 언급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말한 두 가지 방법이란 첫째 사악하고 범죄적인 수단으로 군주의 지위에 오르는 경우와 둘째 일개 평민이 동료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 그 나라의 통치자가 되는 경우이다. 첫 번째의 방법에 대해서 두 가지의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하나는 오래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의 것인데 이러한 예를 드는 것으로 충분하기에 이 논제의 장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깊이 다루지 않겠다.
시칠리아의 아가토클레스는 일개 평민일 뿐만 아니라 가장 비천한 출신 계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라쿠스의 왕이 되었다. 도공의 아들로 태어나서 평생 동안 잔혹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의 악독은 정신적 육체적 활기와 결부되어 있었다. 그는 군에 투신하자마자 군무의 다양한 계급을 거쳐서 시라쿠스의 집정관이 되었다. 그 지위에 오르자 곧 군주가 되어 지금까지 자동적으로 그에게 위임된 권위를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감 없이 폭력에 의하여 유지하려고 결심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그 당시 시칠리아에서 전쟁을 하고 있던 카르타고군의 아밀까르에게 그의 계획을 양해시키고 어느 날 아침 국정에 관한 심의가 있는 양 꾸며 시라쿠스의 시민들과 원로들을 소집하였다. 그런 후에 미리 짜 놓은 신호에 따라 그의 병사들이 원로원의 원로들과 부호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이 살육후 그는 시민들의 저항 없이 주권을 장악하였다. 나중에 카르타고군에게 두 번이나 패전하였고 마침내 포위까지 당했으나 그는 자기의 도시를 잘 방위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대의 일부를 남겨 도시를 지키게 하고는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아프리카를 침공하였다. 이로 인하여 단시일 내에 시라쿠스의 포위는 풀리고 카르타고군은 극단적인 궁지에 몰려서 그와 화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며 결국 시칠리아를 포기하고 아프리카의 소유에만 만족하도록 하였다.
아가토클레스의 이러한 행동과 업적을 검토하여 보는 이라면 누구나 그에게는 운에 돌릴 만한 것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누구의 호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군대의 정규적 계급을 하나씩 올라가 수많은 곤란과 위험을 치르고서 군주의 지위에 도달했고 그 후도 심지어 무모하기조차 했던 군센 용기로 그 자리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반하며 체면도 동정심도 종교심도 없는 것을 역량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러한 수단으로써 권력을 장악할 수는 있으나 영광을 획득할 수는 없다. 여하튼 아가토클레스가 곤란에 부닥치고 위험을 극복할 때의 용기와 역경을 견디고 극복할 때 그의 정신의 굳건함은 종래의 위대한 장군들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악랄하기 짝이 없던 잔인성과 비인간성 헤아릴 수 없는 비행 등이 그를 위인의 대열 속에 넣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운도 능력도 없이 그가 달성한 바를 운이나 능력의 탓이라고 돌려 버릴 수는 없다.
오늘날에 있어서의 예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치하에서 고아가 되어 외숙부인 지오반니 폴리아니에 의해 길러진 페르모의 시민 올리베로또를 들 수 있다. 청년 시절에 빠울로 비뗄리의 부하로 종군 하였으며 그 장군 밑에서의 훈련을 통해 군인으로서 출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 하였다. 빠울로가 죽은 뒤 그의 동생인 비뗄로쪼 밑에서 복무하였는데 극히 짧은 기일 안에 날카로운 기지와 대담성과 결단력을 지녔기에 그 부대의 제 1인자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 밑에서 봉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는 비뗄로쪼가의 호의와 조국의 자유보다는 노예 상태를 택하는 페르모의 소수 시민의 원조를 얻어 페르모시를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그는 외숙부인 지오반니 폴리아니에게 편지를 쓰고서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으므로 고향에 돌아가 숙부를 뵈옵고 싶으며 자기의 상속 재산도 조금 살펴보고자 한다고 뜻을 피력했다. 그리고 자기가 이제까지 노력한 것은 오직 명성을 얻기 위해서이며 부질없이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싶기 때문에 추종자들인 백 명의 기사들을 이끌고 당당하게 돌아가고 싶다고 제의했다. 그러므로 페르모의 시민도 예를 갖추어 환영할 준비를 해주어야 할 것이며 이는 다만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자기를 길러 준 숙부에게도 영예가 될 것이라고 간청했다.
그래서 지오반니는 조카에 대해 진정한 정성을 베풀고 시민들에게도 정중하게 환영케 한 후에 조카를 자기 집에 묵게 했다. 올리베로또는 페르모에서 며칠을 보냈고 그의 간계를 수행하기위한 모든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의례적인 연회를 베풀어 그의 숙부와 페르모시의 모든 주요 인사들을 초대하였다. 식사가 끝나고 그러한 연회에 어울리는 여흥도 끝나자 올리베르또는 재치 있게 중요한 문제로 화제를 돌리며 교황 알렉산데르와 그의 아들인 체자레의 위대성과 그들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그러자 지오반니와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응수를 하게 되자 올리베르또는 돌연히 일어서서 이러한 문제는 보다. 더 은밀한 장소에서 토론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방으로 옮기자고 했다. 그래서 숙부 지오반니와 다른 사람들도 그를 뒤따라갔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잠복해 있던 병사들이 튀어나와 지오반니와 다른 시민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이 살육이 끝나자 올리베르또는 말을 타고 시내를 행진하여 장관이 있는 정청을 포위해 버렸다. 이렇게 되자 모든 사람들은 공포에 의해 복종하게 되었고 그를 우두머리로 하는 새 정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불만을 품고 그에게 맞설 수 있는 자들을 모두 죽여 버렸고 내치와 군사에 관한 새로운 법령으로 자신을 강화시켰다. 이렇게 하여 군주의 지위를 획득한 지 1년 만에 그 도시에서 확고한 지위를 유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웃 나라들이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미 말한 것처럼 오르시니와 비뗄리 양가가 시니갈리아에서 체자레 보르지니아의 올가미에 걸렸을 때 올리베르또가 만일 보르지아의 술책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가토클레스를 무너뜨리는 것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숙부를 죽인 범죄를 저지른 1년 후에 시니갈리아에서 용기와 악덕으로는 그의 스승이었던 비뗄로쪼와 함께 교살되었다.
아가토클레스와 기타의 사람들이 배반과 잔인한 행동을 무수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라에서 오랫동안 평안하게 살 수 있었고 외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동료 시민에 의한 모반이 없었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다른 많은 지배자들은 그들의 잔인성 때문에 위험한 전시는 말할 나위도 없고 평화 시조차 그들의 자리를 유지하는 데 실패하지 않았는가? 이 결과는 잔인함의 선용이나 악용에 의해 좌우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악에 대해서도 선용이라고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이러한 잔인성이 선용되었다는 것은 자기 보존의 필요에서 단 한 번은 그것을 행사했더라도 그 후에는 이것에 집착하지 않고 피지배자의 이익으로 변경하는 한에서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잔인함을 악용했다는 점은 한 번 악용된 잔인성은 처음에는 작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게 된다. 첫째의 방법을 따르는 사람은 아가토클레스의 경우처럼 신과 인간의 호의로 그들의 국가에 다소나마 기여를 할 수 있었겠지만 둘째 방법을 적용한 사람은 그들 나라에서 그들 자신조차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나라를 빼앗을 경우 찬탈자는 그가 가하지 않으면 안 될 가해 행위를 날마다. 되풀이하지 말고 한 번의 타격으로 마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 가해 행위를 중지하여 민심을 안정시키고 은혜를 베풀어서 민심을 얻도록 하는 교훈을 배워야 할 것이다. 겁에 의해서나 잘못된 헌책에 따라 이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한 사람은 항상 칼을 빼 들고 있어야 하고 그의 신하들마저 믿을 수 없게 된다. 신하들도 계속적이고 부단한 새로운 위해 때문에 군주에게 신뢰감을 가질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가해 행위는 단번에 취해져야만 하며 그로 인한 영향이 일시적이면 사람들의 고통도 그만큼 작게 할 수 있다. 한편 혜택은 사람들이 보다. 충분히 맛보게끔 조금씩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군주는 좋은 일이든 언짢은 일이든 자신의 계획을 바꾸게끔 하는 일이 없도록 신하들과 함께 살아야 만 한다. 왜냐하면 역경으로 인해 그의 계획을 바꿀 필요가 생겼을 때는 필요한 조치를 취하려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지고 만다. 이러한 때 어떤 자비를 베푼다. 해도 그것은 소용없이 버려지는 것으로 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베푼 것으로 간주되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감사도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제9장
시민형 군주국에 대하여
그러면 이제 평민의 신분으로 군주가 되는 두 번째 방법 즉 사악한 방법이나 폭력에 의하지 않고 동료 시민의 호의에 의하여 군주가 되는 경우를 말하겠다. 이것을 시민형 군주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의 달성은 커다란 용기나 능력이나 행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운이 따르는 민첩성에 의거한다. 그러므로 이런 군주의 지위에 오르는 경우는 민중의 호의와 귀족의 지지에 의한다. 왜냐하면 민중은 귀족에 의한 지배와 억압을 원하지 않고 귀족은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국가에는 두 개의 대립하는 당파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하여 상반되는 두 가지의 요구로 인해 그들 도시에는 군주정 공화정 무정부의 세 가지 형태 중 어느 하나가 반드시 생겨난다.
군주정은 민중이나 귀족의 의지에 따라 이 두 파 가운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고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왜냐하면 귀족이 민중과 대항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들 동료 중 한 사람의 명예와 영향력을 높여 그를 군주로 삼는다. 그러고 나서 그의 세력 하에서 자유롭게 그들의 욕망을 취하게 된다. 한편 민중도 귀족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한 시민에게 명예와 영향력을 부여하여 그를 군주로 만든 후 그들은 그의 권위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귀족의 지지를 받고 군주가 된 자는 민중의 지지로 군주가 된 자보다 자신을 보전하는 데 훨씬 큰 곤란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귀족의 지지로 군주가 된 자는 그 주위에 군주와 대등하다고 생각하는 동료가 많으며 이 때문에 그는 자기 뜻대로 지배하거나 통치할 수 없다. 그러나 민중의 지지를 받고 군주가 된 사람은 자유로우며 그 주위에 복종하려 하지 않는 이는 전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매우 적다.
더욱이 귀족들의 요구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 없이 군주의 명예만을 가지고 귀족들을 만족시킬 수 없지만 똑같은 방법으로 민중들은 만족시킬 수가 있다. 민중의 목적은 귀족의 그것보다. 훨씬 소박한 것이며 귀족은 억압을 추구하는 반면에 민중은 억압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에 첨가하여 말한다면 민중은 다수이기 때문에 이들을 적대시하는 군주는 안전을 유지할 수 없으나 귀족은 소수이기 때문에 귀족을 적대시한다고 해도 안전을 유지할 수 있다. 군주가 민중을 적대시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태는 민중이 그를 외면하는 일이다. 군주가 귀족을 적대시할 때는 그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의 반항도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귀족은 교활하고 선견지명이 있기에 그들은 항상 사전에 자신의 안전을 꾀하고 또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편에 붙으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주는 항상 민중과 생활을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귀족은 없어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군주는 자신의 뜻대로 귀족을 언제든지 만들거나 없앨 수 있고 또 그들에게 권력을 주거나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논점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말하고 싶은 것은 귀족들은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귀족들이 전적으로 군주의 운명에 그들 자신을 결부시키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 이다. 그들 자신을 군주에게 결부시키고 있으면서도 탐욕하지 않는 자는 사랑하고 예우해야 한다. 그들 자신을 군주에게 결부시키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다뤄야 한다. 소심하거나 타고난 용기의 결여에 의해 복종하지 않는 경우의 사람들은 등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 가운데 분별 있는 자에 대해서는 특히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그들은 번영할 때에는 군주를 존경하고 군주가 역경에 처해 있더라도 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의나 야심적 목적으로 군주에게 그들 자신을 밀착시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군주보다 그들 자신의 일을 더 생각하는 부류이다. 군주는 이런 사람들을 경계하고 이들을 공개적인 적으로 간주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단 유사시에 그들은 군주에게 등을 돌리고 군주의 파멸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민중의 지지에 의해 군주가 되는 이는 항상 민중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주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민중은 억압당하지 않는 것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족의 지지로 민중의 의사에 반하여 군주가 된 이는 무엇보다도 먼저 민중의 환심을 사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민중을 그의 보호 하에 두기만 하면 쉽게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해를 가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은혜를 베풀어 주면 그 은혜를 베푼 자에게 더 큰 호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민중은 그들의 지지로 군주가 된 이보다도 그들을 보호해 주는 군주에게 더 많은 호감을 갖게 된다. 군주가 민심을 획득하는 방법은 많이 있으나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여기서 일정한 법칙을 주장할 수 없기에 더 이상의 것은 생략하겠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군주는 민중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긴요하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역경에 처해졌을 때 대책을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의 군주 나비스는 그리스의 전군과 승리로 의기양양한 로마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그들로부터 그의 조국과 왕좌를 지켰다. 그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소수의 신하에 대해서는 자기의 안전만을 꾀하면 될 수 있었겠지만 그가 민중을 적대시하고 있었더라면 감당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말한 것에 대해 "민중을 토대로 하는 자는 진흙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하는 낡은 격언을 인용해 반박하지 않길 바란다. 일개 평민의 신분으로 군주가 된 사람이 그의 적이나 귀족에게 위협 당했을 때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으니 민중의 구원을 생각할 경우 이 격언은 진실이라 하겠다. 이러한 경우 예컨대 로마의 그락쿠스 형제와 피렌체의 지오르지오 스카리에게 일어난 경우와 같이 그들은 자신들이 민중에 의해 기만당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국가가 민중위에 토대를 구축했으면서도 지휘를 잘하며 역경에 처했을 때 정신력을 상실하지 않고 용기와 인내로 사회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신중한 방어 태세를 게을리 하지 않는 다면 그는 민중에 의해 배신당하는 일이 없고 그의 토대를 훌륭히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군주국에서의 가장 위대한 위기는 시민정치에서 전제정치로 바뀔 때다. 그리고 이러한 군주들은 직접적으로나 또는 집정관들을 통하여 그들의 권력을 행사하는데 후자의 경우일 때는 군주들의 지위가 한층 약해지고 위험해진다. 왜냐하면 군주는 집정관으로 임명한 자들의 힘에 전적으로 좌우되고 그리고 집정관들은 특히 역경에 처하게 되면 군주에게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않거나 하여 극히 용이하게 군주의 권력을 빼앗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위기에 처하여 군주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할 시간적 여유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집정관의 명령을 늘 받아 온 시민들과 영민들도 위기를 당해서는 군주의 명령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러한 위급 시에 군주가 신뢰할 수 있는 이는 언제나 극소수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군주는 시민들이 국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평화로운 시기에 본 것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평화 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군주를 위해 뛰고 서약하며 그리고 죽음의 위험이 임박하지 않을 땐 누구나 군주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겠다고 서약한다. 그러나 막상 위험이 닥쳐 군주가 그러한 시민을 참으로 필요할 때가 되면 그런 시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경험은 다만 한 번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은 더욱 크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언제나 유리하든 불리하든 간에 시민들이 국가와 군주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항상 군주에게 충성을 다할 것이다.
제10장
군주국의 국력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군주국의 다양한 특성을 검토함에 있어서 또 하나의 사실을 고려해야 하는데 즉 군주는 필요한 경우 자신의 힘만으로써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강한가 아니면 계속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사실을 보다. 분명히 설명하자면 자기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인적 자원과 재력을 가지고 잘 조직된 군대를 편성하여 어떠한 침략자도 격퇴할 수 있으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군주라고 하겠다. 그러나 반대로 적에게 대항해서 싸우지도 못하고 성벽 안으로 후퇴하여 거기서 방해하는 자는 끊임없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이미 논하였으며 필요에 따라 앞으로 다시 말하겠다. 후자에 관해서는 군주가 살고 있는 도시의 방비를 견고히 하고 요새화하여 성외 영지에 대해 염려치 않도록 노력하라는 것 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의 도시를 완전히 요새화하고 또 이미 말한 바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논하게 될 것이지만 민중에 기반을 둔 언제나 섣불리 공격받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상 위험이 따르는 계획에 대해서는 머뭇거리게 되며 그 도시가 견고하게 요새화되어 있고 또 민중의 증오를 받고 있지 않는 군주를 공격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독일의 도시들은 커다란 자유를 누렸다. 속영지는 거의 없으며 이들 도시는 형편에 따라 마음이 내키면 황제에게 복종하기는 하지만 황제나 이웃의 다른 어떤 유력한 군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 이들 도시도 견고하게 요새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그것을 점령하는 것은 시일이 걸리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즉 이들 도시는 모두 해자와 그리고 알맞은 성벽으로 방비되어 있고 대포도 충분히 갖추어져 있으며 도시의 창고에는 1년분의 식량과 음료와 연료가 항상 비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의 손실 없이 하층 계급을 부양하기위해 이러한 도시의 생명이요 원동력인 수공업의 1년간 종사할 수 있는 재료의 공유 재산이 있으며 그리고 그 직업에 의해 일반 민중은 살아간다. 더욱이 군사 훈련이 중시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많은 규정이 있다.
따라서 강력한 도시를 가지고 있고 거기에다 민중의 지지를 잃지 않는 군주는 공격받지 않으며 설사 공격당할지라도 침략자는 패퇴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사는 변하기 때문에 하릴없이 1년 동안 성을 포위한 채 군대를 방치하는 일은 어떤 사람에게도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반박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일 시민들이 도시 밖에 재산을 가지고 있는데 그곳이 불타는 것을 보게 되면 그들은 안절부절 못하게 될 것이며 또한 장기간의 포위에서 오는 어려움과 이기심으로 인해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잊게 될 것이라고 이에 대한 나의 답은 이러하다. 유능하고 용기 있는 군주는 그의 시민들에게 어느 때는 이런 재난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희망을 갖게 하고 또 어느 때는 자기를 적대시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신하들을 재치 있게 방어할 수만 있다면 그러한 곤란은 항상 극복하게 될 것이라는 답을 하고 싶다.
이외에 또한 적군은 그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즉각 촌락을 불태우거나 파괴할 것이 예측된다. 그러나 이때는 자기편의 사기도 높고 방위를 위한 결의도 넘치는 때이다. 그렇지만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군주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며칠이 지나면 차츰 처음의 열정도 가라앉고 이미 받은 손해나 재난도 원상회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은 군주를 지키기 위하여 그들의 집이 불태워졌고 토지가 파괴되었으니 군주는 자기들에게 의무감을 느껴 보상해 주리라고 생각하여 더욱 쉽게 군주와 협력하게 된다. 왜냐하면 은혜를 입은 것만큼 은혜를 베풀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방어를 위한 준비와 수단만 결여되지 않는다면 시종일관 민심을 장악하는 일이 사려 깊은 군주에게는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제11장
교회국가에 대하여
이제 나에게 남겨진 것은 교회국가에 대해서 논하는 것뿐이다. 이런 나라의 어려움이란 국가를 획득하는 과정에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능력이나 행운에 의하여 획득되지만 보전하는 데는 이 두 가지가 필요 없다. 이러한 나라는 종교에 뿌리박은 오래 된 숭엄한 율법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에 군주가 어떻게 통치하고 처신하든 군주의 권위가 보전되는 특성과 성질을 갖고 있다. 이러한 군주들만이 방위할 필요가 없는 영토를 가지고 있고 통치할 필요가 없는 신민을 갖고 있다. 그들의 영토는 방비가 없어도 빼앗기는 일이 없으며 신민은 통치되지 않고 있다는 것에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충성을 포기하는 일을 생각지도 않으며 또 그렇게 할 힘도 없다. 따라서 이러한 군주국가 만이 안전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이러한 나라는 인간의 지혜가 미칠 수 없는 보다. 높은 조물주의 섭리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는 까닭에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되는 나라이며 그것에 대해 감히 논한다는 것은 지각없고 건방진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 알렉산데르 이전에 있어서 이탈리아의 권력자들은 -그렇게 불려지고 있는 군주뿐만 아니라 보잘것없는 봉건 귀족이나 군후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속권에 대하여 경멸해 온 반면에 오늘날 교황은 프랑스 왕을 자기 앞에서 두려워 떨게 하고 또 그를 이탈리아에서 내쫓았으며 베네치아인을 파멸시킬 만큼 강대화의 절정에 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하고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비록 이 사건은 주지의 사실이나 그 중요한 점에 대해 기억을 환기시키는 일이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 왕 샤를이 칩입 하기 이전의 이탈리아는 로마 교황과 베네치아인과 그리고 나폴리 왕과 밀라노공과 피렌치아인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들 지배자들에게는 두 가지의 중대한 목표가 있었는데 그 첫째는 무장한 외국인이 이탈리아로 침입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지배자들 중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영토를 확장하는 것을 용서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계가 필요했던 것은 교황과 베네치아인이었다. 베네치아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페라라의 방위에서 보았던 것처럼 다른 모든 나라의 결속이 필요하였다. 한편 로마교황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로마 귀족들을 적절히 이용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오르시니아와 꼬론나의 양파로 분열되어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었고 교황의 눈앞에서조차 무기를 잡고 서서 교황청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식스투스 4 세와 같은 영명한 교황이 나타난 적도 있었으나 그의 현명함이나 행운도 이러한 성가신 일을 제거 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교황들의 단명에도 원인이 있다. 즉 교황들의 재위 기간은 평균 10 년 정도였으므로 그들은 이 양파의 어느 하나를 억압하는데 성공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비록 한 교황이 꼬론나파를 거의 괴멸시켰다. 하더라도 다음에 오르시니파를 적대시하는 교황이 즉위하여 꼬론나파가 되살아나게 되며 그렇다고 하여 오르시니파를 완전히 제거시킬 만한 여유도 없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교황의 속권이 무시되는 사태가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알렉산데르 6세가 나타나 재력과 교권만 있으면 교황이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를 그의 전임자들의 어느 누구보다. 잘 보여주었다. 교황은 발렌띠노 공을 방편으로 이용하면서 이탈리아에 대한 프랑스군의 침략 기회를 포착하여 이미 앞에서 발렌띠노 공의 행동에 대해 말한 것들을 모두 성취하였다. 비록 알렉산데르의 목적은 교황권이 아니라 발렌띠노 공을 강화시키는 것이었으나 그의 모든 노력은 로마 교권을 증대시키게 되었다. 교황이 사망하고 발렌띠노 공도 멸망한 뒤 그의 노력의 결과는 교회로 계승되었다.
그 뒤 율리우스 교황이 나타났을 때 교회는 로마냐의 모든 지역을 획득하고 로마 귀족들의 세력을 제거하였으며 그 파벌도 이미 알렉산데르 교황의 타격 하에 분쇄되어 있었으므로 교황권은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율리우스는 알렉산데르 이전에는 행해진 일이 없는 축재의 길이 열려 있음을 발견했다. 율리우스는 이러한 이점을 이용했을 뿐 아니라 확대 발전시켰다. 그는 볼로냐를 정복하고 베네치아를 멸망시켰으며 이탈리아에서 프랑스군을 추방하려고 계획하였다. 이런 모든 계획은 성공하였으며 그리고 그가 행한 모든 것은 어느 개인의 강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세력 확장을 위한 것이었기에 더욱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더욱이 그는 오르시니와 꼬론나의 파당을 그가 교권을 계승했던 당시의 한계 속에 묶어 두는 데 성공했다. 비록 그들 사이엔 반항을 하려는 자들이 다소간 남아 있었으나 다음 두 가지 사태가 그들을 견제하는 데 작용하였다. 그 첫째는 로마 교회의 강대한 세력인데 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였고 둘째는 당파의 모든 분쟁에 원인이 되는 추기경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추기경들이 존재하는 한 이 양파는 결코 휴식을 취할 수 없다. 그 까닭은 이 추기경들이 로마의 안팎에서 분쟁을 조장하였고 따라서 귀족들은 둘 중 어느 한 파를 지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위 성직자들의 야심이 귀족들 간의 소동과 알력을 일으킨다. 교황 레오 10 세 성하는 결국 가장 강력한 교황권의 기초를 세웠다. 바라건대 그의 전임자들은 무력에 의하여 교회를 강대하게 하였으나 교황은 그의 인자함과 한없는 덕성으로 교회가 더욱 강대해지고 더욱 존경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제12장
군대의 종류와 용병에 대하여
내가 첫머리에서 논하려고 계획한 군주국가의 다양한 모든 성질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했고 각 나라의 강함과 약함의 원인에 대해서도 다소간 고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나라를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군주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수단에 대해서도 지적하였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모든 종류의 군주국가가 이용할 공격과 방어의 수단에 관해서 일반적으로 논술하는 일이다.
군주가 견고한 기초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이미 말한바 그대로다. 왜냐하면 기초가 견고하지 못하면 그는 불가피하게 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운 군주국이든 오래 된 군주국이든 복합국가이든가에 모든 국가의 중요한 기초는 훌륭한 법률과 훌륭한 군대이다. 그러나 훌륭한 군대 없이 훌륭한 법률을 가질 수 없으며 훌륭한 군대만 있다면 훌륭한 법률도 아마 가지게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법률에 관한 모든 논의는 생략하고 다만 군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그런데 그 나라를 방어하는 군대는 군주 자신의 것이거나 용병이거나 원병이거나 아니면 혼성군이라고 하겠다. 용병과 원병은 백해무익이며 용병군의 이용에 의해 그 국가를 유지하는 군주는 결코 견실하지도 안전하지도 못하다. 왜냐하면 용병은 서로 반목하고 야심적이고 반항적이며 배신적이기 때문이다. 자기편들 사이에서는 용감하나 적 앞에서는 비겁하고 신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며 사람에 대한 신의가 없다. 따라서 군주들은 공격당하면 패배하게 된다. 그러므로 평화 시에는 그들에 의해 약탈당하고 전시에는 적에 의해 약탈당한다. 용병들은 그 알량한 보수 이상의 어떤 명분이나 유대 때문에 참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급료는 그들의 목숨을 바쳐가면서 싸울 만큼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군주가 평화 시에는 군주의 병사이길 원하나 전쟁이 선포되면 그들은 도망치거나 사라져 버린다. 이 사실을 납득시키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탈리아의 몰락은 여러 해 동안 이 용병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그들 용병은 잠시 동안은 쓸모가 있었고 서로 용맹을 다투기도 했으나 외국 군대가 출현하자마자 그들이 지녔던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왕 샤를은 분필만으로 이탈리아를 정복할 수가 있었다. 그 원인에 대해서 어떤 이는 우리 이탈리아인에게 죄가 있다고 말했으며 사실 그렇다. 그러나 이런 잘못은 용병을 믿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용병이란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에 있다. 이런 경우는 군주의 잘못이며 따라서 고통 받는 것도 군주이다.
나는 이 용병군의 고약한 특성에 대하여 보다. 분명히 논증하려고 한다. 용병대장 중에는 유능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있다. 만일 유능한 자라면 신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군주를 억압하거나 군주의 뜻에 반하여 다른 나라를 억압하면서 항상 그들 자신의 세력 강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한편 용병대장이 무능한 자이면 당신은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용병이든 아니든 그의 수중에 무기를 가진 자라면 이와 같은 방법으로 행동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한다. 즉 군주국가나 공화국이 군대를 사용할 때 군주국의 군주는 스스로 전장에 나아가 대장으로 수의 역할을 행해야 하고 공화국은 그 시민의 대표를 파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파견한자의 무능함이 증명되면 경질해야 하며 반대로 유능한 것이 증명되면 적당한 테두리 속에 법률의 힘으로 묶어 두지 낳으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군대에 의존하고 있는 군주국이나 공화국은 크게 성공하였으나 용병군을 사용했을 때는 손해밖에 가져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아가 그 자신의 군대를 신뢰하는 공화국은 외국군대에 의지하고 있는 나라에 비해 한 사람의 시민에게 농락당하는 위험성이 적다. 로마와 스파르타는 그들 자신의 군대로 무장을 하고 있었으므로 오랫동안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스위스는 가장 잘 무장 되었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또한 용병의 위험성에 대해서 카르타고의 예를 들 수 있다. 카르타고 군은 비록 그들이 용병을 지휘하였으나 로마와의 제 1자 전쟁 후 그들은 용병에 의해 거의 파멸되고 말았다.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는 에파미논다스의 사후 테바이인에 의해 사령관으로 추대되었으나 승전 후에는 그들에게 자유를 박탈당했다.
마찬가지로 밀라노 시민은 필립포스공이 죽자 프란체스꼬 스포르자를 고용하여 베네치아인에 대한 전쟁을 지휘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까라바지오에서 적을 격파한 후 그의 주인인 밀라노 시민을 억압하기 위하여 적인 베네치아와 동맹을 맺었다. 그의 아버지인 스포르자도 역시 처음엔 나폴리 여왕 조안나의 용병 대장이었으나 갑자기 여왕 곁을 떠나 버렸기에 군대를 상실한 여왕은 왕국을 지키기 위해 아라곤 왕에게 몸을 의탁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베네치아인과 피렌체 사람들은 용병에 의하여 영토를 확장하였으나 용병대장들이 군주가 되려는 기도도 없었고 충성스럽게 그들의 상전에게 봉사하였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자 한다. 이 점에 대해서 피렌체 사람들은 행운을 입고 있었다. 왜냐하면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용감한 용병대장 중 어떤 이는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고 어떤 사람은 경쟁자를 갖고 있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야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승리를 거두지 못한 이들 중엔 지오반니 아꾸또가 있었는데 그는 승리를 얻지 못하였기에 그의 충성도 증명되지 못했다. 만일 그가 승리를 거두었더라면 피렌체는 완전히 그의 손아귀에 오가의 반대가 있었으며 양자는 서로 견제하고 있었다. 더욱이 프란체스꼬가 밀라노에 대해 야심을 가질수록 프란치오는 교회와 나폴리 왕국에 야심을 두었다. 어쨌든 최근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눈을 돌려 보자 피렌체인은 그들의 용병대장으로 빠올로 비뗄리를 기용하였다. 그는 가장 사려 깊은 지휘관이며 일개 평민의 신분이었으나 일약 군에서 최고의 명성을 떨쳤던 것이다. 만일 그가 삐사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더라면 피렌체인들은 완전히 그의 세력 하에 들어갔으리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적의 용병대장이 되었더라면 피렌체인들은 파멸되었을 것이고 한편 그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더라면 시민들은 그의 뜻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베네치아인에 관해서인데 우리가 그들 세력의 성장을 고려해 본다면 시민 전원이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은 영광과 안전에 찬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며 육지 쪽으로 그들의 계획을 돌리기 이전에는 귀족이나 평민 출신의 사람들이 함께 제휴하여 용감히 싸웠다. 그러나 그들은 육지에서 전쟁을 하게 되면서부터 탁월하였던 이 방법을 버리고 이탈리아의 관습을 따르는데 만족하게 되었다. 처음 그들의 세력을 대륙에 확대할 당시는 영토를 거의 가지지 못했지만 높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용병대장에 관해서는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까르마노라의 지휘 하에 그들의 영토를 확장하고자 했을 때에 그들은 그 과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베네치아인들은 그의 지휘 하에 밀라노 공을 격파하였을 당시 그가 용감하고 숙련된 장군임을 인정했으나 한편으로 그가 전쟁을 수행하는 데 태만하다는 것을 느꼈다. 베네치아인들은 그의 지휘 하에서는 앞으로의 승리는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으나 그들이 획득한 것을 상실할 두려움 때문에 그를 해고시킬 수가 없었다. 베네치아인은 그로부터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그를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베네치아인은 베르가모의 바르또로메오 산 세베리노의 루베 르또 삐띠리아노 백 등을 용병대장으로 기용했으나 그들 지휘 하에서는 승리보다는 패전을 두려워하였다. 예를 들면 바이라에서 있었던 것처럼 베네치아인은 8백 년간 의 노력 끝에 획득한 것을 불과 하루 만에 잃어버렸다. 요컨대 용병에 의해 얻어지는 이득은 느리고 또한 사소한 것이나 손실은 갑작스러워 어안이 벙벙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과거 오랫동안 용병에 의해 지켜진 이탈리아의 실례를 보아 왔으나 이 용병 제도를 채택하게 된 기원과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과고를 교정하기 위해 주제의 본질을 향해 더욱 깊숙이 파고 들어가고자 한다. 그러면 최근에 황제의 지배력이 이탈리아에서 쇠퇴되기 시작하고 교황권이 더욱 명성을 떨치자 이탈리아는 갑자기 수많은 나라로 분열되고 만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즉 지난날 황제의 지원으로 시민을 억압해 왔던 귀족에 반항하여 대부분의 대도시가 무기를 들고 봉기하였을 때 교회는 속권의 확대를 꾀하여 이 도시들을 원조하였다. 다른 많은 도시들은 몇몇 시민이 지배자가 되었다. 이렇게 되어 이탈리아는 로마 교회와 몇몇 공화국의 수중으로 들어갔으나 승려들로 이루어진 로마 교회나 공화국의 시민들은 군대의 통치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국인의 군대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군대의 평판을 울린 최초의 사람은 로마냐 출신의 알베리고 다 꼬니오였다. 그의 군사 훈련을 받은 이들 중 특히 브랏치오와 스퍼르자는 당시 이탈리아의 대결자였다. 그들 이후에도 많은 인물들이 나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들 용병대를 지휘하여 왔다. 그리고 그들의 능력 덕분으로 이탈리아는 샤를에 의해 유린되고 루이에게 약탈당하며 페르난도에 의해 짓밟히고 스위스 군에게 모욕당했다. 이들 용병대장의 첫째 목적은 그들의 공훈을 올리기 위하여 보병대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그들에게는 영지가 거의 없고 다만 용병이라는 직업에 매달려야 했으므로 소수의 보병으로는 그들의 명성을 떨치지도 못했고 다수의 병력을 거느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공훈을 세울 수 있고 쉽게 양성할 수 있는 소수의 기병에 의지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2만 명의 부대원 중 보병은 불과 2천명에도 못 미치는 상태가 되었다. 나아가 그들은 자기 자신들과 병사들의 고생 및 위험을 덜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전투에서는 서로 죽이지 않고 포로로 하여 나중에 몸값 없이 석방하도록 하였다. 야간에는 도시를 에워싼 군대도 공격하지 않았으며 또 도시 안에 있는 군대도 포위군에게 야습을 가하지 않았다. 야영도 하지 않았다. 모든 이러한 양해 사항은 그들의 전쟁 법칙에 의해 승인되었으며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고생과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용병을 고용한 이탈리아는 노예와 멸시의 상태로 떨어지고 말았다.
제13장
원병과 혼성군과 국민군에 대하여
두 번째로 무익한 군대는 원병인데 이것은 어떤 군주가 다른 유력한 군주에게 구원을 청했을 때 그 군주의 보호와 원조를 위해 파견되는 것이다. 최근에 교황 율리우스 2세가 페라라 계획 에서 용병대에 의해 쓰라린 경험을 맛보았기 때문에 원병에 의뢰하였다. 그러고는 기병과 보병을 가지고 원조해 줄 것에 대해 스페인의 페르난도 왕과 협정하였다. 원병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우수하고 유익한 군대이나 그것을 불러들인 군주에겐 항상 유해하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패배하면 군주는 파멸하고 설령 승리한다. 해도 군주는 그들의 포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옛 역사에 허다하나 나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예를 지나칠 수가 없다. 그것은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는 오직 페라라를 획득해야겠다는 열망 때문에 그 자신을 외국인의 품안에 맡겨 버렸다. 사실상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그 결과는 엉뚱하게도 다행스런 결과를 낳았다. 왜냐하면 그의 원군이 라벤나에서 패배했을 때 스위스 군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승리자를 국외로 추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황은 도망친 적에게 포로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원군에게도 포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적군의 패배는 그의 원병에 의해서라기보다. 다른 군대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피렌체인은 자기 자신의 군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삐사를 보위하기 위하여 1만 명을 프랑스군을 보냈으나 이로 인해 지난날의 어떤 위험한 때보다도 훨씬 커다란 위험이 생겨났다.
이웃 나라를 대적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의 한 황제는 1만 명의 터키군을 그리스에 끌어 들였는데 전쟁이 끝난 뒤에 터키군은 돌아가기를 거부하였고 이것이 그리스가 이교도에게 예속하게 된 시초이다.
그러므로 성공의 모든 기회를 빼앗기려는 이는 원병에 의뢰하라 원병은 용병보다. 훨씬 더 위험하기 때문이며 원병으로 인한 파멸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원병은 단결되어 있고 전적으로 그들 장교의 지휘 하에 있는 까닭이다. 용병의 경우 승리를 거둔 후라 하더라도 고용주인 군주를 해칠 수 있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절호의 기회가 필요하게 된다. 그 이유는 용병은 분리된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용주에 의해 모집되고 급료를 받고 있으므로 군주에 의해 사령관으로 임명된 자가 군주를 위협할 만한 권력을 용병 속에서 즉각적으로 장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용병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은 그들의 우둔함과 비겁함이며 원병의 경우는 그 용감성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항상 이러한 군대를 피하고 자기 나라 군대를 신뢰하며 그리고 외국 원병에 의한 승리보다. 자국 군대에 의한 패배를 택한다. 외국의 지원에 의한 승리는 참다운 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체자레 보르지아와 그 행동의 예를 인용하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원병과 함께 로마냐에 침입하였고 다만 프랑스의 군대만을 이끌고 이모라와 포르리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후 이 군대를 신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위험이 적으리라고 생각한 용병에 의지하였다. 그래서 오르시니와 비뗄리를 고용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변덕스럽고 허위적이며 배신적임을 발견하고는 그들을 해고하고 자국의 군대에 의지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군대의 차이점은 보르지아 공이 프랑스 군에만 의지하였던 때 및 오르시니와 비뗄리의 용병을 고용했을 때와 또한 자국의 군대와 자기의 힘에만 의지하였을 때 그의 명성이 각기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는 그의 명성이 항상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자기 군대의 유일한 명령자임을 모든 사람이 인식하게 되었을 때만큼 그의 명성이 최고에 달한 적이 없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최근에 일어난 예를 제외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미 내가 그 이름을 열거한 사람들 중의 하나인 시라쿠스의 이에론의 경우만은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앞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시라쿠스인들에 의해서 그들 군대의 지휘관이 되었으나 그 군대가 용병이고 우리 이탈리아의 용병군과 흡사한 병사들로 이루어져 있어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당장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유지할 수도 해체할 수도 없기에 전원을 제거해 버렸으며 나중에 타인의 도움 없이 다만 자기 나라 군대만으로 전쟁을 치렀다.
나는 여기서 이 문제와 관계가 있는 한 예를 (구약성서)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다윗은 필리스틴의 전사 골리앗과 싸울 것을 사울 왕 에게 제의하였다. 사울은 그를 격려하기 위해 자기의 무기를 사용하고 갑옷을 입게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 갑옷을 몸에 걸쳐 보자마자 만일 이 무구들을 사용한다면 힘을 쓸 수 없으니 투석기와 칼만을 갖고 적과 싸우겠다고 말하면서 거절하였다. 즉 다른 사람의 갑옷이란 너무 넓어서 등을 벗어나거나 몸을 내리 누르거나 꽉 죄거나 하여 몸에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루이 11세의 아버지 샤를 7세는 그의 행운과 용맹을 가지고 국으로부터 프랑스를 해방시켰는데 그는 오로지 신의 군대에만 의존할 필요성을 깨달은 나머지 왕국 내에 포병과 기병 그리고 보병의 정규군을 편성해 놓았다. 그러나 그 후 그의 아들 루이 왕은 보병을 폐지하고 스위스 용병을 고용하였다. 이 실책은 다음의 군주들에 의해 계승되었고 앞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프랑스 왕국을 몰락으로 이끌어 간 위험의 원인으로 되었다. 왜냐하면 스위스의 명성을 높여 준 반면에 프랑스 국민군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보병을 완전히 폐지하였고 기병은 외국 보병을 지원에 의존토록 하였으며 스위스 군과 합동으로 전투하는 습관이 생겨 스위스 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군은 일부는 스위스 군에 대항할 수도 없고 스위스 군이 없으면 다른 외국군에 대항해 승리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군은 일부는 국민군 일부는 용병 군으로 이루어진 혼성 군으로 되었다. 이렇게 구성된 군대는 단순한 용병이나 단순한 원병보다는 훨씬 수월하나 순수한 국민군보다는 훨씬 열등하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실례가 증명하고 있다. 프랑스 왕국이 만일 샤를 7세의 군사 재도를 유지하고 확대 시켰더라면 무적의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려가 부족한 인간은 처음에 향기로운 맛을 느끼면 그 뒤에 숨어 있는 독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앞에서 말한 소모열과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재난이 퍼지기 전에 깨닫지 못하는 군주는 참으로 현명한 군주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능력은 극히 소수인에게만 부여되어 있다. 우리가 로마제국 쇠망의 최초 원인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고트인의 용병을 고용하기 시작한 데 그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로마제국의 세력은 쇠미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모든 덕성은 고트인에게로 옮겨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자국의 군대를 갖지 않으면 어떠한 군주도 안전하지 못하며 반대로 역경에 처했을 때 나라를 지킬 힘이 없기 때문에 운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고. 그러므로 현자들은 항상 국민군에 기반을 두지 않는 권력이나 명성만큼 확고하지 못하고 덧없는 것은 없다. 라고 하는 경구를 마음속에 간직해 왔다. 국민군이란 신하 시민 그리고 예속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말하며 기타 모든 군대는 용병이나 원병을 의미한다. 국민군을 조직하는 방법은 내가 앞에서 열거한 법칙들을 잘 고려하여 본다면 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필립포스를 비롯하여 다른 많은 군주들과 공화국들이 어떻게 준비를 갖추고 그 군대를 다루었나를 주의 깊게 본다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제도에 전적인 신뢰를 두고 있다.
제14장
군사에 관한 군주의 임무에 대하여
군주는 그의 군대의 전술과 군사 조직과 훈련 이외의 어떤 배려나 생각도 가져서는 안 되며 군주의 특수한 직무로서 오직 이일에 열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통치자가 추구하는 유일한 기능인 까닭이다. 그리고 그러한 효력은 세습 군주인 사람에게는 그 자리를 유지하게 해줄 뿐만이 아니라 때때로 일개 평민의 신분에서 군주의 자리로 오를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다른 한편 군주가 군대보다도 오히려 쾌락에 탐닉하게 될 때는 나라를 잃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아 왔다. 이 기능을 소홀히 하는 것이 국가를 잃게 되는 첫 번째 원인이며 반면에 그 기능에 능숙하게 되는 것이 권력을 획득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프란체스꼬 스포르자는 군사에 있어서의 명성 때문에 평민의 신분으로 밀라노공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군대 생활의 어려움과 고달픔을 피하였기에 군주의 지위에서 평민으로 전략하고 말았다. 적당한 군사력을 갖지 못한 데서 오는 여러 가지 병폐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군주가 멸시받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명예는 곧 설명하게 되는 것처럼 군주가 가장 조심스럽게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군사력이 있는 사람과 군사력이 없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가 없으며 그리고 군사력이 있는 이가 군사력을 갖지 못한 이에게 자발적으로 항복할 것이며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 군주가 군사력이 있는 신하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왜냐하면 이쪽은 저쪽을 멸시하고 그리고 저쪽은 이쪽에 대해 불신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잘 해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군사에 대해 무식한 군주는 다른 불행보다도 특히 그의 병사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그도 그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따라서 군주는 군사 문제의 연구로부터 그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서는 결코 안 된다. 그리고 전시보다. 평화 시에 더욱 그 일에 주력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육체적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것이다.
육체적인 것에 관해 말하면 그의 병사들을 잘 훈련시키는 외에 끊임없이 사냥을 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려움과 피로에 대해 육체를 익숙케 하는 것이요 동시에 산의 경사 열려 퍼지는 계곡의 모양 평야의 펼쳐지는 상태 등을 관찰함으로써 지형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고 강과 늪의 특징에 대해서도 통달하게 된다. 군주는 이 문제에 대해 커다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한 지식은 두 가지 의미에서 유익하다. 즉 첫째로 자기 나라를 잘 알게 됨으로써 유사시에 어떻게 나라를 방위해야 하는가를 보다. 더 훌륭히 이해하게 된다. 둘째로 각 지역에 대해 잘 알고 나서 어떤 지방을 관찰하게 되면 다른 지역의 특징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 이유를 들면 또스까나 지방의 구릉 계곡 평야 강 늪 등은 다른 지방의 그것들과 유사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지방의 지세에 대한 지식으로 다른 지방에 관한 유사한 지식을 쉽게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식이 결여되어 있는 군주는 훌륭한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요건을 결하고 있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 지식에 의해 적을 기습하는 법 야영지를 선택하는 법 또 지세의 이점을 확보하는 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카에인의 장군 필로포이멘이 역사가들로부터 받고 있는 칭송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즉 평화 시에도 그는 항상 전술을 생각하였고 친구들과 함께 들판을 걸을 때도 발길을 멈추고 전술에 관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령 적이 저 언덕에 배치되어 있고 우리가 여기에 군대를 배치하고 있다면 어느 쪽이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가, 우리가 가장 안전하고 또 최선의 질서 속에서 적과 맞서기 위해선 어떻게 추격해야 할 것인가 라고 그는 말하였다. 이런 식으로 그는 산책하면서 어느 군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을 친구들에게 제기 하였다. 그는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또 자기의 의견을 말하면서 여러 논거들을 가지고 그것을 입증하였다. 그러한 심사숙고를 끊임없이 하였기 때문에 실제로 군대를 지휘하게 되었을 때 그가 처리할 수 없는 복잡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우리가 말한 정신적 훈련에 관해서는 군주는 역사를 읽고 여기에서 위인의 행적을 알며 그들이 전쟁 중에 어떻게 행동하였는가를 살피고 그들의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검토하며 후자를 피하고 전자에서의 그들을 본받지 않으면 안 되며 무엇보다도 과거의 많은 위인들의 행동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그 위인들도 그들 이전에 명성을 날린 유명한 사람들을 귀감으로 하여 그 행위와 업적을 끊임없이 마음속에 간직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킬레스를 케사르는 알렉산드로스를 스치삐오는 키로스를 모방하려 했다고 한다. 크세노폰이 쓴 키로스 전을 읽어 본 사람이면 스치삐오의 일생에 있어서 키로스 왕에 대한 모방이 얼마나 그의 영광의 원천으로 작용했던가를 알 수 있다. 또 스치삐오의 순결과 정다움 친절과 관용이 크세노폰이 묘사한 키로스 왕의 특성과 얼마나 많이 합치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그러한 방법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시에 있어서도 결코 태만하게 지내서는 안 되며 역경에 처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운명이 자신을 버릴지라도 그 시련을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15장
인간 특히 군주가 찬양받거나 비난받는 원인에 대하여
이제부터는 신하나 친구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군주가 취할 행동과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 생각해 보자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쓴 적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같은 문제에 대해서 쓰는 일은 외람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두렵다. 내가 그것을 다루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취하였던 견해와 다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내가 쓰는 목적은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나는 상상적인 견해보다. 사물의 구체적인 진실을 따르는 것이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현실적인 존재로서 보지도 알지도 못한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방식과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될 방식 간에는 많은 거리가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열중한 나머지 현실을 포기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멸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 완벽한 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착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파멸 당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지위를 보전하고자 하는 군주는 좋지 않은 직을 행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언제 그것이 필요하고 언제 그것이 필요치 않은가를 배우는 것이 긴요하다. 그러므로 군주에 대한 모든 공상적인 개념은 제쳐놓고 오직 실제적인 것에 대해 살펴보면 세평에 오르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특히 군주는 그 지위가 높기 때문에 비난이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성품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관대하고 어떤 사람은 인색하다고 평해진다. 인색하다는 말은 또스까나어로 아바로 라고도 하고 미제로 라고도 하는데 아바로 는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강탈하는 사람을 말하고 미제로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쓰지 않으려 하는 사람을 말한다. 어떤 이는 선심을 잘 쓰는 반면에 어떤 이는 탐욕스럽고 또 어떤 이는 잔인한 반면에 어떤 이는 자비심이 많으며 어떤 이는 불성실한 반면에 어떤 이는 성실하며 어떤 이는 나약 비겁한 반면에 어떤 이는 기개 있고 용감하며 어떤 이는 겸손한 반면에 어떤 이는 무례하며 또 어떤 이는 음탕한 반면에 어떤 이는 순결하고 어떤 이는 진실한 반면에 어떤 이는 교활하며 어떤 이는 단호한 반면에 어떤 이는 경솔하며 어떤 이는 근엄한 반면에 어떤 이는 경박하며 어떤 이는 신앙심이 깊은 반면에 어떤 이는 신앙심이 없다는 등등으로 생각한다. 위의 여러 자질 중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부여받은 군주가 가장 칭찬받게 되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성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까닭에 한 사람의 군주가 그 모든 것을 가지고 끊임없이 실천해 간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다. 군주는 적어도 자기 나라를 빼앗기는 악덕의 오명을 피하기 위해서 매우 신중해야만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러한 악행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여하튼 그러한 악덕이 없이 그의 권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는 그런 악덕의 오명을 쓰는 것에 결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전반적인 문제를 잘 생각해 보면 미덕처럼 보이는 것도 그것을 행하는 도중에 자기의 파멸을 가져오는 수가 있고 반면에 악덕으로 보이는 것도 그것을 따름으로써 안전과 번영이 보장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제16장
관대함과 인색함에 대하여
그러면 앞에서 말한 여러 자질 가운데서 첫 번째 것부터 시작하면 관대하다는 평판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나 그것에 대한 좋은 평판이 없는 관대함은 이로울 리가 없다. 왜냐하면 훌륭하고 정직하게 관대한 행위가 이루어졌을지라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올바로 인식되지 않으면 비난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관대하다는 명성을 유지하려면 호사스러운 허식의 형식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 결과 관대한 기질의 군주는 그러한 일에 자기의 전 재산을 탕진하고 만다. 게다가 관대하다는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과대한 세금을 그의 민중에게 부과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몰수와 기타의 모든 수단을 다. 자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 때문에 그는 민중의 원한을 사게 될 뿐만 아니라 재정적 빈곤으로 인해 아무에게도 존경받지 못하게 된다. 그의 낭비로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지만 혜택은 별로 받지 못하게 된다. 그는 우선 많은 폐해로 고통 받게 되며 결국은 위태롭게 된다. 이점을 알아차리고 비용을 삭감하려고 하면 즉시 인색하다는 오명을 쓰게 된다.
그러므로 군주는 스스로의 손실 없이 일반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관대함이라는 미덕을 행할 수 없는 경우 그가 현명한 군주라면 인색하다고 불리어지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군주의 절약에 의하여 세입이 충실하게 되고 외적에 대해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되며 민중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신의 과업을 추진한다는 것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알려지면 그는 오히려 더 관대하다는 평을 받게 된다. 관대하다는 것은 군주가 아무것도 취할 수 없는 이들에게 행하는 것으로서 그런 사람은 무한히 많다. 이에 반해 인색은 군주가 아무것도 베풀 수 없는 사람에게 행하며 그런 사람은 아주 드물다.
오늘날 우리들이 본 바로는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군주는 인색하다는 평판을 받은 사람들이며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은 실패하였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교황의 지위에 오르기까지는 관대하다는 평판을 이용했으나 그 후 프랑스 왕과 전쟁을 할 때는 그 평판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민중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많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가 오랫동안 절약을 계속하여 이 막대한 비용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현재의 스페인 왕이 관대하다는 평판을 받았더라면 그렇게 많은 계획을 결코 수행하지도 또 성공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그의 민중을 착취하지 않으며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며 재정의 빈곤과 멸시를 피하고 또 약탈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색하다는 비난에 대해 개의치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인색은 그의 나라를 보전키 위해 그가 취할 수 있는 악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율리우스 케사르는 그의 관대함으로 인해 권력을 획득했으며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서 관대하다는 평판을 받았기에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언급하건대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이 군주가 되었는가 아니면 군주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자의 경우 관대함은 유해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관대하다는 인식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케사르는 로마의 주권자가 되려고 노력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만일 그가 주권자가 된 후에도 낭비를 줄이지 않고 계속했더라면 로마제국을 파멸시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가 반론하여 가장 관대하다는 세평을 받은 많은 군주들이 자기들의 군대를 가지고 위업을 성취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군주가 소비하는 재화는 군주 자신에 속하는 것이거나 그의 신하에 속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 속하는 것 등 어느 하나이다. 전자의 경우 군주는 인색하지 않으면 안 되나 후자의 경우는 조금이라도 관대함을 절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군주가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 약탈 전리품과 몸값 등으로 군대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관대함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의 병사들은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키로스, 케사르, 알렉산드로스가 했던 것처럼 군주의 것이나 신하의 것이 아니면 아낌없이 베풀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나의 재물을 갖고 마구 인심을 써도 군주의 명성은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한층 높아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군주를 해치는 일은 군주 자신의 것을 써 버리는 경우뿐이다.
그러나 관대함만큼 그 자신을 빨리 망치는 것은 없다. 관대함을 시행하고 있는 동안은 그 관대함을 행할 잠재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정이 궁핍해지고 멸시당하며 궁핍을 피하려고 하면 강탈하게 되어 결국 원한을 사게 된다. 관대함은 멸시와 원한을 사게 되는 이 두 가지 경과 중의 어느 것을 가져오게 되므로 군주는 이를 경계해야만 한다. 따라서 관대하다는 평판을 듣기 위해서 욕심을 부려 불명예와 증오를 낳게 되는 경우보다는 비록 불명예는 따르겠지만 증오는 낳지 않는 인색하다는 평판을 듣는 쪽이 훨씬 현명하다고 하겠다.
제17장
잔인함과 인자함 그리고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을 당하는 것 중 어느 편이 나은가
위에서 말한 여러 자질 중의 다른 한 가지로 이야기를 옮겨 보자 모든 군주는 자비롭다는 평을 받아야지 결코 잔인하다는 평을 들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이 자비로움이 악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체자레 보르지아는 잔인하다는 평을 받았으나 그는 이 잔인성으로 인하여 로마냐를 회복했고 그 지방에 질서와 평화 그리고 충성심을 심어 놓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된 견해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면 잔인하다는 평판을 피하기 위하여 삐스또이아가 두 당파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도록 버려 둔 피렌체 민중보다는 체차레 보르지아가 현실적으로 훨씬 자비로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군주는 그의 신하들을 결속시키고 복종토록 하기 위해서는 잔인하다는 비난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지나칠 정도로 많은 자비심을 베풀어 혼란 상태를 초래하고 마침내 약탈과 유혈 사태를 빚게 하는 군주에 비하면 가끔 잔인함을 보여 무질서를 진압하는 자가 결과에 있어서는 보다 더 자비롭게 보일 것이다. 그 이유는 군주의 가혹함은 단지 소수의 개개인을 해치는 데 지나지 않으나 전자의 경우는 나라 전체를 해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군주들 중에서 특히 새로이 군주의 지위에 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국가는 온갖 위험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다. 보면 잔인하다는 악명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베르질리우스는 디도의 입을 통하여 그녀의 잔혹성은 그 통치의 새로움에 기인한다고 변명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운명의 박정함과 나의 통치에서의 새로움 때문에 나에게 그런 조치를 강요하며 넓은 영토를 감시케 하네.
그렇지만 군주는 너무 쉽게 믿어서도 안 되고 경솔하게 실행해서도 안 되며 자신의 두려움으로 인해 쉽게 놀라서도 안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스스로의 경계를 버려서는 안 되고 얼토당토않은 불신으로 스스로 견디기 어렵도록 만들어서도 안 되며 친절함으로서 사려를 조절 하여야만 한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자면 두려움을 받는 것보다 사랑받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을 받는 것이 좋은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두 가지 다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는다는 것은 어렵다. 만약 우리가 양자 중의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 사랑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받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왜냐하면 대체로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허위적이고 위험을 피하려고 고심하며 이익에 탐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군주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는 동안은 군주에게 헌신적이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위험이 절박하지 않을 때는 그들의 피를 흘리고 재산을 헌납하고 그들의 목숨과 그들 자식까지도 군주를 위해 기꺼이 바칠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군주가 그것을 필요로 할 때는 그들은 군주에게 등을 돌린다. 따라서 다른 안전 대책 없이 그들의 선언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군주는 몰락하고 만다. 왜냐하면 위대하고 고결한 정신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고 대가를 치르고 얻은 우정은 비록 상당한 값어치가 있다 할지라도 실질적인 것이 못 되며 그것을 사용하여야 할 경우엔 소용이 없게 된다. 더욱이 인간은 자기가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보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해치는 일에 덜 주저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악한 동물이므로 의리의 유대에 의하여 유지되는 애정 따위는 사사로운 이해관계의 변동에 따라 끊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형의 공포에 의해 묶여져 있으므로 결코 사람을 버리지 못한다. 어쨌든 군주는 민중들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면 적어도 증오를 초래하지 않을 만큼 자신을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두려움을 받는 것과 증오를 사지 않는 것과는 확실히 양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군주가 그의 신하들의 재산이나 그들의 아내들을 넘겨다보지 않는 한 그와 같은 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만일 어느 누구를 부득이 죽이지 않으면 안 될 때에는 분명한 이유와 타당한 변명을 가지고서 집행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삼가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유산의 상실보다도 아버지의 죽음을 더 빨리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중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서는 어떠한 이유의 결핍도 있어서는 안 된다. 약탈을 일삼는 군주라도 남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서는 구실을 찾아야 한다. 는 반대로 피를 흘리게 할 구실은 훨씬 드물며 또한 덧없는 것이다. 그러나 군주가 그의 군대와 함께 있고 많은 병사들을 지휘하는 경우에는 잔혹하다는 비난에 마음을 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군주에 대한 그러한 평판 없이는 군대의 결속을 유지할 수 없고 군대를 통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니발의 눈부신 활약 중에는 이 점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대군을 인솔하고 외국 땅에서 싸웠으나 그가 운이 좋을 때나 나쁠 때를 막론하고 병사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어떤 모반도 없었다. 이것을 우리는 오직 그의 초월적인 잔인성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위대한 자질과 결부된 이 잔인성은 병사들의 눈에 존경과 두려움을 주었던 것이다. 잔인하다는 평판 없이 다른 덕성만을 가지고서는 이와 같은 성과를 거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각없는 저술가들은 한편에서는 그의 업적을 찬양하면서도 그 성공의 주된 원인을 비난한다. 그것은 그의 다른 자질이 그에게 그렇게 효과 있는 것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우리는 스치삐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는데 그는 그의 시대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볼 수 있는 모든 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부하들에게 군율과 일치하지 않는 자유를 지나치게 허용한 자비심으로 인해 스페인에서는 부하들이 그에게 반항했다. 그 이유 때문에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원로원에서 그를 탄핵했다. 로마 군대를 타락시킨 자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로크리아 주민들은 스치삐오의 한 부관에 의해 사정없이 궤멸 당했으나 그들은 그에게 복수하지도 않았으며 그는 그 부관의 횡포도 벌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유유한 성격에서 나온 것이다. 그를 두둔하는 어떤 사람이 원로원에서 스치삐오를 변명하기를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방법 보다. 자기는 어떻게 하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가를 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만일 스치삐오가 그러한 성격을 계속 지닌 채로 사령관의 지위에 머무르고 있었더라면 그의 명성과 명예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손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원로원의 통제 하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이 유해로운 성격은 감추어졌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에게 영광을 안겨다. 주었다.
여기서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 받는 문제로 되돌아가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사랑받는 것은 그의 신하에 의지하고 두려움 받는 것은 그 자신에 의지하고 있는 까닭에 현명한 군주는 딴 사람의 의사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의사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불명예스럽되 증오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18장
군주는 어떻게 신의를 지켜야 할 것인가
군주에게 있어서 신의를 지키며 교활하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칭찬받을 만한 일인가는 누구나가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신의를 별로 중요시 하지 않고 간지로써 사람들을 잘 속이는 군주가 오히려 위업을 성취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신의를 믿는 군주를 압도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투쟁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 첫째는 법을 좇는 것이고 둘째는 힘에 의지하는 것이다. 전자는 인간들이 수행해야 할 것이고 후자는 짐승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첫째 방법으로는 때때로 불충분하기 때문에 두 번째 방법에 의지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군주는 사람과 짐승에 따라 두 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옛날 저술가들이 은밀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들은 아킬레스를 비롯한 많은 군주들이 반인반수의 케이론에게 맡겨져 양육되고 훈도를 받았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반인반수의 괴물에게 양육되었다는 것은 군주는 이 두 가지 성질을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필요하며 어느 한쪽이 결여되면 다른 한쪽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짐승의 성질을 이용하는 방법을 잘 알려고 할 경우에는 짐승 중에서도 사자와 여우를 선택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자는 올가미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고 여우는 늑대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올가미를 분간하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쫓아 버리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전적으로 사자의 본성만 취하는 사람은 자신의 할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려 깊은 군주라면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 유해하거나 서약 당시의 조건이 이미 소멸되었을 때는 신의를 지킬 수 없을 뿐더러 또 지켜도 안 된다. 만일 모든 인간이 선량하다면 이 말은 잘못된 충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하여 군주와의 신의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군주도 그들에 대한 신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 그리고 군주는 신의를 깨뜨릴 만한 그럴 듯한 구실이나 이유를 언제나 갖고 있다. 여기에 대해선 최근에 일어났던 많은 실례를 들 수 있다. 그리고 군주의 신의가 결여 됐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중대한 조약과 약속이 깨어지거나 효력을 상실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또 여우의 역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군주가 가장 훌륭히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녕 이 성질에 멋진 채색을 하는 것이 필요하며 흉내 내거나 얼버무리는데 능숙해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은 아주 단순하며 당면한 필요에 따라 절대적으로 예속되기 때문에 기만하기를 원하는 자는 그 속임수에 잘 넘어갈 사람을 반드시 발견하게 된다. 최근의 한 예에서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사람을 속이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또 그것을 실행할 구실을 항상 찾았다. 이 교황만큼 말로 확약을 해 놓고도 중대한 서약을 선서해 놓고선 그것들을 지키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인간 본성의 이런 측면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협잡은 항상 성공하였다.
그런데 군주는 내가 앞에서 열거한 모든 좋은 자질을 꼭 가져야 할 필요는 있다. 나는 감히 확언하건대 만일 군주가 그러한 자질을 갖추고 있고 그것을 변함없이 실행하는 일은 이로울리 없지만 그것을 갖추고 있고 그것을 변함없이 실행하는 일은 이로울리 없지만 그것을 갖춘 것처럼 보이는 것은 유익하다. 자비롭고 신의가 있으며 인정 있고 경건하고 공명정대해야 하며 또한 실제로 그렇게 행동해야 하지만 그러한 덕과 반대되는 일을 해야 하지만 그러한 덕과 반대되는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 반대쪽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능숙히 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한다.
군주는 특히 새 군주는 사람들이 선이라고 말하는 행동 규범을 모두 지킬 수는 없으며 또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신의와 자비와 인정과 신심에 반대되는 행동을 종종 강요당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군주는 운명의 바람과 물결의 전환에 따라 방향을 변경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선한 방향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며 그러나 부득이한 때는 악한 방향도 따라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군주는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 자질을 갖추고 있지 않은 듯한 말을 입 밖에 내는 일이 없도록 극히 주의해야 한다. 그리하여 군주를 보거나 군주의 말을 듣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군주는 인자하고 고결하며 인간적이며 신실하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독실한 신앙심을 갖추고 있는 득이 보이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손으로 접하여 판단하는 것보다.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은 군주에 대하여 접촉은 소수자 밖에 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군주에 대하여 외관만 알 뿐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사람은 소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소수자는 국가의 권의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다수자의 의견에 감히 반대하지 않는다. 더욱이 모든 사람들의 행동에 있어 특히 군주의 행동에 있어서는 호소할 수 있는 재판소가 없기 때문에 다만 결과만을 보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그의 권위를 확립하고 보전하는 데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수단은 모든 사람에 의해 항상 영광스런 것으로 판단되고 찬양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민중은 항상 표면적인 것과 결과에 의하여 평가하게 되는데 세상 어느 곳이나 그런 민중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극소수의 사람들이 지위와 국가를 영유하고 있는 반면에 다수자는 그들을 결코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 이름을 말하지는 않겠으나 오늘날 어떤 군주는 항상 평화와 신의를 설교하나 사실 그는 이 양자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그가 만일 설교한대로 그것을 실행했더라면 몇 번이나 그의 왕국과 권위를 상실하였을 것이다.
제19장
경멸과 증오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런데 앞에서 지적한 여러 자질 중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언급하였기에 나머지 것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의견으로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이미 부분적으로 말한 바와 같이 군주는 증오나 경멸을 사게 될 행동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을 피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다른 악덕을 행했다고 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군주는 신하의 재산이나 부녀자를 빼앗거나 겁탈하면 가장 증오를 사게 되므로 이를 삼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의 재산과 명예를 빼앗기지 않는 한 사람들은 만족하게 살기 때문에 군주는 다만 소수자의 야심과 맞서기만 하면 되는데 이를 위해선 많은 방법이 있을 뿐 아니라 쉽게 억제할 수도 있다.
군주는 변덕스럽고 경박하며 나약하고 무기력하며 우유부단 하다고 보여질 때 멸시 당한다. 이러한 결점에 대해 군주는 배가 위험한 암초에 부딪히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과 같이 위대함과 용기와 엄숙함과 과단성을 보여주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하와의 사사로운 문제에 있어서도 군주의 결정은 결코 철회될 수 없으며 아무도 군주를 속이거나 농락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평을 듣게끔 해야 한다.
그러한 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는 군주는 위대하게 평가되며 위대하게 평가된 군주에 대한 반역은 어렵다. 그가 탁월한 군주이고 신하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한 쉽게 공격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주는 두 가지 사실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하나는 신하들을 두려워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외세를 두려워해야 한다. 후자에 대해서는 훌륭한 군대와 좋은 동맹국이 있으면 자신을 방위할 수 있다. 그리고 훌륭한 장비를 갖추고 있으면 항상 좋은 동맹국을 갖게 된다. 그 나라가 음모에 의해 혼란스럽다 하더라도 대외적인 문제가 안정되어 있다면 국내적인 문제도 안정될 것이다. 만일 외세의 침입이 있다고 하더라도 앞서 논한 것처럼 군주가 행하고 잘 조직된 군대만 있다면 모든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스파르타인 나비스의 예가 여기에 속한다.
그의 신하에 대해서는 외환이 없을 때에 그들이 은밀한 음모를 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서 군주는 증오와 멸시를 피하며 그의 백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 가장 안전하게 자기를 지킬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이미 상세하게 설명한 바 있으며 긴요한 것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신하의 무리들에 의해 증오되거나 멸시받지 않는 것이 군주가 음모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어 방법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은 항상 군주를 죽임으로써 민중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환심이 아니라 민중의 분노를 사게 된다고 생각하면 그들을 그 계획을 수행할 용기를 상실하고 만다. 그 이유는 음모가들에게는 무한한 곤란이 있기 때문이며 경험에 의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음모는 많았으나 성공한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음모는 단독으로 꾀할 수 없으며 불평이 많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같은 패거리로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군주가 불평가들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게 되면 그들에게 만족할 만한 어떤 기회를 제공하는 경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군주의 속마음을 알았다는 것을 기회로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편에 있어서는 확실한 이득이 다른 한편에서는 의심과 위험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만일 그들이 군주의 비밀을 지킨다면 그들은 군주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것이며 배신한다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것이다.
이 문제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음모가의 편에는 두려움과 질투 그리고 형벌에 대한 공포가 있고 반대로 군주의 편에는 법률과 왕권의 위엄과 그를 지켜 주는 친구들과 국가의 보호가 있다. 거기에 민중의 일반적인 선의가 추가되면 어느 누구도 경솔하게 음모를 꾸미기는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경우에 있어서 악행을 실행하기 전에 공포를 느끼게 되며 이 경우에 있어선 범죄를 저지른 뒤에도 민중을 그의 적으로 삼게 되었기 때문에 역시 두려워한다. 그러기에 은신처를 찾기 위한 모든 희망도 끊어지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한 수많은 실례를 들 수 있으나 나는 우리 선대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예만을 드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멧세르 안이바레의 할아버지이자 볼로냐의 군주였던 멧세르 안니바레 벤띠보리는 깐네스키 일족의 모반에 의해 살해 되었으며 그때 벤띠보리의 일족으로는 강보에 싸인 멧세르 지오반니만이 살아남았다. 살해 직후 민중들이 봉기하여 깐네스키 일족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이것은 벤띠보리가가 볼로냐의 민중들에게 신망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멧세르 안니바레의 사후 그 가문의 출신으로서 나라를 통치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남겨지지 않았으나 벤띠보리가의 한 후예가 그때 대장장이의 아들로서 피렌체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볼로냐의 시민들은 그를 찾아가서 그에게 그 도시의 통치권을 위임하였다. 그는 멧세르 지오반니가 정무를 맡아 볼 나이가 될 때까지 그 도시를 통치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군주는 민중들이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을 때는 음모 등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되나 민중이 적의를 갖고 혐오감을 품게 될 때에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질서가 잘 잡힌 국가나 현명한 군주는 귀족들이 절망감에 빠지지 않도록 또 민중들이 만족하며 안심하고 살도록 극단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요컨대 이것이 군주가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될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오늘날에 있어서 가장 질서가 정연하고 훌륭히 통치되고 있는 왕국 중에 프랑스가 있다. 이 나라에는 왕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훌륭한 제도가 무수하게 많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고등법원과 그 권능이다. 이 나라의 창시자들은 귀족의 야심과 그 횡포를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억제하고 견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와 동시에 민중들이 귀족에 대해 공포감에서 생겨난 증오심을 품고 있음을 알고 민중을 위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민중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왕에게 부과된 특별한 관심사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민중을 두둔하면 귀족에게서 증오심이 일어날 것이고 또 귀족을 두둔함으로써 일어날지도 모를 민중들의 증오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주의 지시가 없더라도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를 누를 수 있는 중재자로서 행동하기 위한 고등법원을 설치했다. 왕과 왕국의 안전을 위해 이것보다. 더 현명한 제도는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른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군주는 책임이 따르는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나 은혜와 도움에 관계되는 문제는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군주는 귀족들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로 인해 민중들에게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
로마 황제들의 생애와 죽음을 고찰해 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로마 황제 중에는 훌륭한 인생을 살았고 위대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제국을 상실하거나 음모를 꾸민 신하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기까지 했으니 재가 말한 견해에 반대되는 실례가 아니냐고 할 것이다. 이 반론에 답하기 위하여 나는 몇몇 황제의 성격을 검토하여 그들의 몰락 원인은 내가 지적한 것과 모순되는 것이 아님을 밝히려 한다. 이렇게 하는 것과 동시에 당시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주목할 만한 것을 제시하고자 한다.
철학자 마르쿠스의 시대로부터 막시미누스의 시대에 이르는 동안 통치하였던 모든 황제를 들어 반론에 답할 것이다. 이 기간 중의 황제는 마르쿠스 그의 아들 콤모두스, 패르티낙스, 율리아누스, 세베루스 그리고 그의 아들 안토니누스 카라칼라, 마크리누스, 헬리오가발루스, 알렉산데르와 막시미누스 등이다.
그런데 먼저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은 다른 군주국에 있어서의 군주는 다만 귀족의 야심과 민중의 오만함에 맞서기만 하면 되는데 로마 황제는 병사들의 잔혹함과 탐욕을 감내해야만 하는 보다. 더한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것은 많은 황제들의 파멸 원인이 되었을 만큼 매우 커다란 문제였다. 왜냐하면 병사와 민중의 양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후자는 평화를 사랑하기에 온건한 황제를 좋아 하였으나 전자는 호전적이고 가혹하며 거만하고 탐욕스런 군주를 택했다. 병사들은 자기들의 급료를 배로 올리고 그들의 탐욕과 잔인성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하기위해 황제가 민중에게 그러한 기질을 행사할 것을 바랐다. 그러므로 민중과 병사를 견제할 만한 정도의 권의를 이어받지 못하였거나 획득하지 못한 황제들은 언제나 몰락하였다. 많은 황제들 가운데 특히 새로 제위에 오른 경험 없는 황제는 이 두 상이한 부류의 마찰로부터 발생되는 어려움을 알고서는 병사를 만족시키기 위해 민중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데는 별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이러한 것은 필요한 조치였다. 왜냐하면 군주가 어느 한 부류의 증오를 피할 수 없다고 할 때 무엇보다. 군중들로부터 증오 받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보다. 강한 부류의 증오를 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낳으면 안 된다. 따라서 세러이 황제가 된 자는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민중이 아니라 병사에 의존하였다. 그런데 이 방침이 황제에게 유익 하였던가 불리하였던가는 황제가 병사들로부터 그의 권의를 유지 하였던가 못하였던가에 달려 있다.
앞에서 지적한 점으로 볼 때 마르쿠스, 페르티낙스, 알렉산데르 등은 온전한 성격의 군주들로서 정의를 사랑하고 잔혹함을 미워하며 정중하고 인정이 많았으나 마르쿠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행한 최후를 마쳤다. 오직 마르쿠스 혼자만이 가장 명예로운 삶을 살았는데 그 이유는 상속권에 의해 제위를 계승 받았기 때문에 명사나 민중의 지지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더욱이 그는 존경받을 만한 많은 미덕을 갖추고 있었다. 그 생애를 통해 양자와는 적당한 범위 내에서 관계를 유지했으므로 증오와 멸시를 받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다.
그러나 페르티낙스는 군대의 뜻에 반하는 황제였는데 콤모두스 치하에서 방종한 생활에 익숙해진 병사들은 후계자인 페르티낙스가 자신들을 바로잡기 위해 추구한 엄격한 기율을 견뎌내지 못했다. 결국 그는 미움을 사게 되었고 그의 노령으로 인해 멸시를 받아 통치의 초창기에 몰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선행도 악행과 마찬가지로 증오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권력을 보전하여야 할 군주는 종종 선행이 아닌 행동을 강요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군주가 그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의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계급이 그것이 민중이든 병사든 귀족이든 간에 부패하였을 때는 군주는 그들에게 자기 자신을 적용시키고 그들을 만족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상황 아래서 선행을 한다는 것은 다만 군주를 해치게 될 뿐이다.
여기서 알렉산데르의 경우를 보자. 그는 공명정대한 지배자였고 칭찬받을 만한 행동이 많았으나 그 중에서도 14년간의 제의 기간을 통해 정식 재판 없이 그에게 사형당한 자는 한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나약하다고 평가되고 그의 어머니의 뜻에 따라 통치한다고 간주되어 경멸당했으며 군인들이 음모를 꾸며 그를 살해하고 말았다.
우리가 콤모두스나 세베루스, 막시무스 그리고 카라칼라 등의 성격을 검토해 보면 그들은 모두 잔인하고 탐욕스런 군주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병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민중에게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세베루스를 제외하고 그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세베루스는 비록 민중을 억압하긴 했지만 탁월한 능력으로 병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순조롭게 통치할 수가 있었다. 그의 위대한 자질이 민중의 눈에나 병사들의 눈에도 존경할 만한 인물로 보였기 때문에 민중은 그를 훌륭하고 두렵게 생각한 반면 병사들은 그를 존경하고 만족스러워 했다. 그런데 그의 행동은 새로운 군주로서는 비범한 것이었기에 그가 사자와 여우의 본성을 이용하는 것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었던가를 간단히 지적하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런 성격은 군주가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율리아누스 황제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안 세베루스는 일리리아 에서 그의 지휘하의 군대에게 지난번 금위군에 의해 살해된 페르티낙스의 복수를 위해 로마로 진격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라고 설득하였다. 이 구실 하에 로마제국에 대한 그의 계획을 노출시키지 않고 군대를 로마로 진군시켰으며 그의 출동이 로마에 알려지기도 전에 이탈리아에 도착하였다. 그가 로마에 도착하자 공포에 떤 원로원은 그를 황제로 선출하였고 율리아누스를 죽여 버렸다. 이 첫 조치를 취한 후에 로마제국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려고 한 그에겐 아직 두 가지 장애가 남아 있었다. 하나는 아시아에 있었는데 거기서 아시아 방면의 군대를 지휘하고 있던 니게르가 황제를 자칭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서방에 있었는데 거기에는 황제를 열망하고 있는 알비누스가 사령관으로 있었다. 그리하여 세베루스는 양자에 대해 동시에 전쟁을 선포하게 되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니게르는 군대로 공격하고 알비누스에게는 술책을 걸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알비누스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신은 원로원에 의해 황제로 선출되었기에 알비누스와 이 권위를 나누어 갖고자 그대에게 케사르의 칭호를 보내며 원로원의 결정에 따라 그대와는 동직으로 되었다고 알렸다. 알비누스는 이 말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세베루스가 니게르를 패배시켜 죽여 버리고 동방의 평온을 회복한 다음 로마로 회군하자마자 원로원에 호소하여 알비누스는 나에게서 받은 호의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배신하여 나를 파멸시키려 하고 있으니 그의 망언을 처벌하러 부득이 출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후에 프랑스로 가서 알비누스를 공격하여 그의 영토와 생명을 빼앗아 벼렸다. 그런데 이 황제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검토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에게서 사자의 영맹함과 여우의 교활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그는 민중들에겐 경외의 대상이 되었고 군인에겐 증오 받지 않았기에 비록 새로운 군주이긴 했으나 그토록 거대한 제국을 장악 보전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그의 탁월한 명성은 그의 잔인함과 탐욕으로 인하여 민중들이 품을 수도 있었던 혐오감으로부터 항상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인 카라칼라도 역시 탁월한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으며 민중에게 찬사 받고 군인들에게 환대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상무정신을 가졌고 어려움을 잘 견디어 내며 미식과 그 밖의 모든 나약한 것을 경멸하였기 때문에 군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흉악성과 잔인성은 엄청날 뿐 아니라 전대미문의 것이었으며 여러 번에 걸쳐 대다수의 로마 주민과 알렉산드리아 주민 거의 전체를 살육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전 세계로부터 혐오감을 사게 되었고 측근자들까지도 두려워하게 되어 마침내 군중에서 한 백부장에게 살해되었다.
막시미누스의 성격에 대한 설명이 아직 남아 있다. 그는 매우 호전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알렉산데르의 나약한 성격에 싫증이 난 군인들이 그를 죽이고 막시미누스를 황제로 선출했다. 그러나 이 권력을 그는 오래 보전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두 가지 상황이 그에게 증오와 경멸을 가져다주었다. 하나는 출신의 비천함인데 그는 한때 트라쎄 지방에서 양치기로 있었는데 그 사실이 널리 알려져서 모든 사람들이 경멸하게 되었다. 또 하나는 황제가 됨을 선포하였을 때 로마로 가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일을 늦춘 것이다. 그는 로마뿐 아니라 제국의 각지에 파견한 장관들을 통해 저지른 많은 잔혹 행위에 대해 잔인무도하다는 평을 듣게 되었다. 그 결과 전 세계는 그의 미천한 혈통에 대해 경멸감을 일으켰고 또 그 잔인성에 대한 공포감이 증오심을 불러일으켜 먼저 아프리카에서 뒤이어 원로원과 로마 민중과 이탈리아 전체가 그에게 반항하였다. 이 반란에는 황제의 군대마저도 가담하였다. 왜냐하면 병사들이 아귀레이아를 포위하고 있었을 때 그것을 점령하는 데는 많은 곤란이 있음을 알았으나 황제의 잔인성에 진절머리가 났으며 그리고 그를 반대하는 자들이 많음을 알고선 그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 마침내 죽여 버렸다.
나는 리오가발루스와 마크리누스 또는 율리아누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그들은 모두 비열하였기 때문에 곧 몰락하고 말았다. 오늘날의 군주는 그들의 군대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는 곤란은 거의 없다고 말함으로써 이 논의에 대한 결론을 맺고자 한다. 물론 오늘날의 군주는 병사들에게 얼마간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일은 쉽게 해결된다. 그 이유는 이러한 군주들은 로마제국의 군대처럼 그 지방의 통치나 행정에 익숙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 시대에는 민중보다. 병사들을 더 만족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은 병사들이 민중보다. 더 강력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터키와 이집트의 술탄을 제외하고는 병사들보다. 민중을 만족시키는 일이 모든 군주에겐 더욱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훨씬 영향력이 있고 군대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집트의 술탄과 터키를 제외한 이유는 터키 군주는 그의 주위에 항상 1만 2천의 보병과 1만 5천의 기병을 갖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왕국의 안전과 힘을 의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터키 군주는 민중을 위한 모든 고려는 부차적이고 병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집트의 술탄 정부도 모든 것이 군대의 통제 하에 있으므로 민중에 대한 배려 없이 병사들과의 친밀한 관계만을 잘 유지하면 되었다. 그러나 술탄 왕국은 다른 모든 군주국들과 같지 않다는 점에 주의하여야 한다. 즉 신왕국으로도 세습 왕국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기독교의 교황제와 비슷하다. 왜냐하면 죽은 군주의 자식들이 그의 상속자로서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선출의 권한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것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기존의 제도이므로 이 왕국을 신왕국이라고 일컬을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거기에는 신왕국에 수반되는 어려움이 전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비록 군주는 새롭더라도 국가의 제도는 기존의 것이고 선출된 군주가 마치 세습적 군주처럼 받아들여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본제로 돌아가서 앞에서 내가 말한 것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본 사람들은 여러 황제들의 파멸 원인이 증오와 경멸에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황제들 중에 어떤 사람이 한 행동을 취하면 다른 사람은 반대의 행동을 취했으나 이러한 방법으로 어떤 사람은 행복한 최후를 맞이하였고 어떤 사람은 불행한 최후를 겪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이 황제가 된 페르티난스와 알렉산데르가 세습 군주였던 마르쿠스를 모방했던 것은 유해무익하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카라칼라와 콤모두스와 막시미누스가 세베루스를 모방하려고 했던 것도 결정적인 과오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베루스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자질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왕위에 오른 새로운 군주는 마르쿠스의 행동을 모방할 필요도 없고 세베루스의 모든 행동을 본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세베루스로부터는 나라의 기초를 닦는 데 필요한 부분의 행동을 배우고 마르쿠스로 부터는 국가를 유지하는 데 합치되는 행동과 명성을 얻는 데 필요한 행동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제20장
성채나 기타 군주가 자주 의지하는 방편들은 유익한가 유해한가
보다 안전하게 통치하기 위해 어떤 군주들은 영민의 무장을 해제했고 또 어떤 군주들은 통치하의 도시들을 보전하기 위해 당파간의 분열을 꾀했다. 또 어떤 군주들은 영민들 상호간의 반감과 적개심을 길렀고 어떤 군주들은 통치의 초기에 자기에게 불신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회유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군주들은 성채를 쌓았는가 하면 어떤 군주들은 성채를 철거하거나 파괴해 버리기도 했다. 사태를 그렇게 밖에 처리할 수 없었던 그 나라의 특수성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지 않고서는 이러한 사실 자체만을 가지고 좋다 나쁘다를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렇지만 나는 문제의 본질이 허용하는 법위 내에서 총괄적으로 말하려고 한다.
어떤 새로운 군주가 그 영민들의 무장을 해제한 일은 아직껏 없었다. 반대로 그들이 무장하고 있지 않은 것을 본 군주는 언제나 그들을 무장시켰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무장은 군주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군주가 의심하였던 자들은 충성스럽게 되며 또 처음부터 충성스러웠던 이들은 충성을 계속할 것이며 군주의 영민들은 군주의 도당으로 될 것이다. 비록 모든 영민들을 무장시킬 수는 없다. 할지라도 무장시킨 이들을 특별히 애호해 주면 그 나머지 사람을 더욱 안전하게 다를 수 있다. 군주가 무장을 시킨 사람과 무장을 시키지 않은 사람들에게 차별적으로 대우하면 무장을 시키지 않은 사람들에게 차별적으로 대우하면 무장한 사람은 군주에게 더욱 의지하게 되고 무장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군주를 위해 위험하고도 어려운 일을 맡은 사람에게 커다란 보상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군주를 양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민들의 무장을 해제시킨다면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왜냐하면 군주가 그들의 용기나 충성심을 의심함으로써 불신을 표시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불명예는 군주에 대한 증오심을 일으킨다. 군주가 무장을 해제시키면 자신을 방어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용병에 의지하게 된다. 용병이 어떤 것인가는 이미 말한 대로 그들이 비록 훌륭할지라도 강력한 외적이나 군주를 불신하는 영민으로부터 군주를 방어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신왕국에서 등극한 새로운 군주는 항상 무장을 갖추어 왔다. 이에 대한 실례는 역사 속에 허다하다. 군주가 새 영토를 획득하여 그의 옛날 영토의 일부로 병합했을 경우 그 획득에 있어서 자기편이었던 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주민의 무장을 해제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도 시간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약하고 나약하게 만들어 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새 영토의 군대는 군주의 본토에서 그에게 봉사해 온 그 자신의 군대가 장악하도록 문제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의 조상이나 현인이라고 존경받았던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삐스또아는 파벌 싸움에 의해 유지되었고 삐사는 성채에 의해 유지되었다라고 이 원칙 위에서 많은 속령들을 적은 노력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도시에 분열을 조장하였다. 이것은 이탈리아가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 당시에는 추구할 만한 신중한 대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그것을 정책의 일반적 법칙으로서 권장하기에는 불가능한 듯하다. 왜냐하면 분열 정책이 좋은 효과를 가져 온다고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적이 침공하였을 때 분열된 도시는 당장 점령되고 만다. 왜냐하면 약한 당파는 항상 침략자의 편을 들게 되며 그리고 상대측 당파는 독자적으로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컨대 앞에서 든 이유에 의하여 베네치아인은 그들의 지배하에 있는 여러 도시에 구엘포 파와 기벨리네 파를 양성했다. 베네치아인은 양파 간에 유혈의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치는 않았으나 양파의 반목을 조장하였다. 이는 베네치아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곳에서 시민들이 자기들에게 반항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이것은 베네치아인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바이라에서 베네치아의 패배 후 양파 중의 하나가 돌연히 용기를 회복하여 그들의 모든 영토를 베네치아인으로부터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것은 군주의 세력이 약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이유는 강력한 정부 하에서는 그런 분열은 결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방법은 평화 시에는 영민을 쉽게 다룰 수 있는 방편으로서 유익할 것이나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이 방법은 부적당하다는 것이 증명된다.
의심할 것도 없이 군주는 모든 어려움과 그에게 대항하여 일어날 수도 있는 반대 세력을 극복함으로써 위대하게 된다. 그래서 운명의 여신은 세습 군주보다 명성을 획득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새로운 군주를 강대하게 하려고 할 때 그에 대해 적을 일으키고 그를 공격케 하여 그에게 적을 제압할 기회를 주어 적이 설치한 사다리를 통해 명성의 고지로 오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일정한 지역에 교묘하게 적대 관계를 촉진시키고 그것을 궤멸시켜 그의 위대성을 높이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 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군주는 특히 새로운 군주는 가끔 그가 통치했을 때부터 신뢰할 수 있었던 이들보다 신뢰할 수 있었던 이들보다 신뢰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서 보다. 큰 충성심과 유용함을 발견하게 된다. 시에나의 영주 빤돌포 빼뜨릇치는 한때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신용하지 않았던 아들의 도움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사정에 따라 각각 다르므로 어떤 일반적인 법칙을 정립할 수는 없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군주가 통치하던 초기부터 적대적이었던 이들도 그들의 생존을 위해 군주의 도움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군주는 항상 용이하게 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에 군주에게 보였던 비호의적인 인상을 선행으로 해소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군주에게 더욱 충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주는 너무나 완전한 안이 속에서 봉사함으로써 자기의 임무를 게을리 하는 신하들보다 이런 사람들로부터 항상 더 많은 도움을 얻게 된다. 문제의 중요성 때문에 나는 한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의 지지에 의해 새로운 나라를 획득한 군주에게 한 가지 사실을 깨우쳐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그런 호의를 보였는가를 잘 고찰하여야 한다. 만일 신군주에 대한 자연적인 애정에서가 아니라 단지 구정권에 대한 불만에서 그렇게 행동했다고 한다면 신군주는 그들을 작가 편에 잡아두는 데 있어서 커다란 어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만족시키는 일은 신군주로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금의 실례를 통하여 그 이유를 조심스럽게 검토해 보면 단지 구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신군주 편을 들어 통치권 찬탈을 도운 자들보다 구정권에 만족하여 신군주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군주는 영토를 더욱 안전하게 유지하고 반란을 꾀하려는 자들에 대한 억제와 제지용으로 쓰이며 갑작스런 공격에 대한 안전한 피난처로 사용될 성채를 쌓는 습관이 있다. 나는 이 습관에 찬성한다. 그 까닭은 이것은 옛날부터 행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있어서 멧세르 니꼴로 비뗄리는 그 도시를 보전하기 위하여는 칫따 딕가스뗄로에 있는 두 개의 성채를 파괴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르비노공 구이도우발도는 체자레 보르지아에 의해 추방되었으나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공국 내의 성채들을 기초까지 허물어 버렸다. 그는 성채가 없어지면 두번 다시 쉽게 나라를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벤띠보리가의 삶들이 볼로냐로 돌아가서도 같은 방법을 취했다. 그러므로 성채는 상황에 따라 유익하기도 하고 유해하기도 하다. 한편으론 유익하지만 다른 편으로는 군주를 해치게 된다.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즉 외국 세력보다. 자기 나라 국민들을 더욱 두려워하는 군주는 성채를 쌓지 않으면 안 되고 자기 나라 국민보다. 외세를 더 두려워하는 군주는 성채를 내버려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란체스꼬 스포르자에 의해 밀라노에 세워진 성채는 스프르자가에게는 국내의 다른 어떤 분규보다. 더욱 위험한 것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성채는 민중들의 증오를 사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군주가 성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민중들로부터 증오를 받게 되면 성채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민중이 무기를 잡고 일어서게 되면 그들을 도우려는 외세가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 오늘날 성채가 어떤 군주에게 도움이 되었던 일은 없다. 다만 지로라모 백작이 살해되었을 때 그의 부인이었던 폴리 백작부인이 겪은 경우는 예외이다. 그녀는 이 성채 때문에 반란자들의 습격을 피할 수 있었고 밀라노로부터의 구원을 기다려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당시의 상황은 민중들이 어떤 외세의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후 그녀가 체자레 보르지아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녀에게 적대감을 가졌던 민중들은 외세와 연합하게 되어 성채는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녀가 민중을 적으로 가졌던 것보다. 성채를 가지지 않았던 편이 그녀에게는 훨씬 안전하였을 것이다. 이상의 모든 문제를 참작해 볼 때 나는 성채를 쌓은 사람이든 쌓지 않은 사람이든 칭찬할 수 있으나 성채를 믿는 나머지 민중의 증오를 사는 것을 개의치 않는 자는 비난할 것이다.
제21장
군주가 명성을 얻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군주가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고 몸소 훌륭한 모범을 보이는 것만큼 그의 명성을 높이는 방법은 없다. 오늘날 그러한 군주로는 현재의 스페인 왕인 아라곤가의 페르난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등극할 당시 가장 미약한 존재였으나 명성과 명예라는 면에서 기독교 국왕 중 제일의 인 물이 되었다는 점을 보면 신군주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업적을 고찰해 보면 모드 위대하며 어떤 것은 비범하기까지 했다. 통치 초기에 그는 그라나다와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 행동이 그의 권력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이 전쟁을 수행할 무렵 방해를 받으리라는 근심 없이 유유히 전쟁을 수행했다. 왜냐하면 그는 까스띨 귀족들을 전쟁에 참여시켜 그들의 신경을 전쟁에만 집중시켰기에 그들은 왕이 제기할 쇄신책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왕은 귀족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명성을 얻었고 그들에 대한 지배군을 획득했다. 그는 로마교회와 민중의 돈으로 군대를 훈련시킬 수 있었고 장기간에 걸친 전쟁을 통하여 뒷날 그를 무척이나 유명하게 만든 군기의 기초를 닦을 수가 있었다. 보다. 더 위대한 사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그는 항상 종교의 구실로 자신을 보호하면서 소위 신앙적 잔혹성에 의지하여 무어인들을 그의 왕국에서 추방하고 일소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은 확실히 놀랍고도 엄청난 예이다. 같은 구실을 이용하여 그는 아프리카를 공격했고 이탈리아를 항복시켰으며 마침내 프랑스까지 공격하였다. 그는 끊임없이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바빴으며 신하들의 마음을 불안과 경탄 속에 사로잡아 자기의 행동에 그들의 관심을 집중토록 하였다. 그는 그런 식으로 계속 일을 수행하여 신하들이 그에게 대항할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또한 밀라노의 베르나보와 같은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그 예로 들어 본다는 것도 군주가 국내 정치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크게 도움을 줄 것이다. 베르나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행을 하는 사람에겐 상을 주고 악행을 하는 사람에겐 벌을 주었는데 이는 그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군주는 매사에 있어서 자신이야말로 위대하고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주는 충실한 친구이거나 철두철미한 적이거나 하는 것을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을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일을 망설이지 않고 분명히 선언할 때 역시 존경을 받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것보다. 항상 유익하다. 왜냐하면 이웃의 강력한 두 세력이 다투게 되어 어느 한쪽이 승리하게 되면 군주는 그 승리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거나의 어느 쪽이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이든 군주는 자기 입장을 명백하게 밝히고 또 분명하게 어느 한편과 제휴하는 편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첫째의 경우에 있어서 자기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지 낳으면 승리자의 희생물이 되고 패배자에게는 만족과 기쁨을 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양자 중 어느 한쪽에 자기를 보호하거나 원조해 달라고 호소할 명분도 잃게 된다. 그 이유는 승자는 역경에 처했을 때 도움이 될 수 없는 의심스런 친구를 싫어하게 되고 또 패자는 칼을 잡고 지기와 운명을 함께 하지 않았던 자를 거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티오코스가 아에토리아인의 요청을 받고 로마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그리스로 진격하였을 때 그는 로마와 우호 관계에 있던 아카에인에게 사절을 보내어 중립을 지켜 주도록 권고하였다. 한편 로마군도 자가들을 위하여 무기를 잡고 일어설 것을 그들에게 촉구했다. 이 문제는 아카에의 평의회에서 토론되었는데 안티오코스의 사절이 중립을 다시 촉구하자 로마군의 사절은 중립을 다시 촉구하자 로마군의 사절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당신 나라를 위해 가장 좋고 가장 유익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내가 보기엔 당신들이 취한 태도는 당신들에게 조금도 유리한 점이 없소 왜냐하면 중립을 지킴으로써 당신들은 호의도 명성도 얻지 못하고 다만 승자의 전리품이 될 뿐이오." 이처럼 군주의 우방이 아닌 나라는 중립을 요구하며 군주의 우방은 무기를 잡고 자기들의 입장을 지지하여 싸워줄 것을 요구하는 일은 항상 일어난다. 당면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결단력 없는 군주는 일반적으로 중립의 길을 택하며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런 군주는 파멸하게 된다. 그러나 군주가 어느 한쪽을 지지할 것을 용감하게 선언했을 때 군주가 지지한 편이 승리하였다고 하면 비록 그 승리자가 우세하여 군주는 그의 뜻대로 되는 형편이라 하더라도 승리자는 군주의 은혜를 입은 의리가 있기 때문에 군주의 친구로 된다. 그리고 인간이란 이런 상황 하에서 배은망덕하여 자기를 도운 사람을 파멸시킬 만큼 파렴치 한 존재는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승리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고 더욱이 정의라는 것조차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완벽한 것일 수는 없다. 설령 군주가 지지한 편이 패배하였다. 하더라도 그 패배자는 도와 준 군주를 항상 호의적으로 대할 것이다. 운이 만회되었을 경우 군주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둘째의 경우에 있어서 즉 교전 당사자의 어느 편이 이기더라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때 군주가 어느 편에 가담하기 위해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군주가 신중함이 없이 어느 한편을 도와주게 되면 다른 한편은 멸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일 도움을 받은 편이 이겼다. 하더라도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으므로 그는 도움을 준 군주의 위력 하에 남아 있게 된다. 여기에서 주의하여야 할 것은 군주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필요에 의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제 3자를 공격함에 있어서 자기보다. 강한 자와 제휴하여서는 결코 안 된다. 왜냐하면 군주와 제휴한 자가 승리하게 되면 제휴한 군주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군주는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베네치아인은 밀라노 공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는데 그들이 거절할 수 있었던 그 동맹으로 인해 파멸되고 말았다. 그러나 교황과 스페인이 군대를 이끌고 롬바르디아를 공격하였을 때의 피렌체 공화국의 경우처럼 동맹을 피할 수 없을 때는 앞에서 말한 이유에서처럼 군주는 어느 쪽을 편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어느 나라이든 완전히 안전한 정책만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말아야 한다. 오히려 불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의 재난을 피하면 다른 재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모든 인간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중함이란 손실의 정도를 식별하는 방법을 알고 손실이 적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일치한다.
나아가 군주는 능력 있는 자의 보호자이고 일기에 뛰어난 자를 존경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함께 군주는 상업이든 농업이든 기타 어느 것이든 간에 안전하게 자기들의 직책을 추구할 수 있도록 그의 영민을 고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이들이 약탈에 대한 근심 때문에 그들의 재산을 풍족하게 불리는 것을 단념하거나 세금에의 공포로 인해 상거래를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도시나 국가의 위대함에 기여할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이에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포상할 준비도 해두어야 한다.
나아가 1년 중 적당한 시기에 축제나 구경거리로 민중들을 즐겁게 해 주어야만 한다. 또 도시는 직업 조합과 지역 단체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군주는 이런 집단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여야 하고 종종 그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정중함과 관대함의 모법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항상 그의 지위에 대한 위엄을 보여야 하는데 이것은 어떤 상황 하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제22장
군주의 측근 대신에 대하여
측근 대신을 선택하는 일은 군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들은 군주의 사려분별에 따라 좋게도 되고 나쁘게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의 품성과 현명함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군주의 측근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된다. 측근들이 유능하고 성실하면 우리는 항상 그 군주는 현명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측근들의 능력을 인식할 줄 알고 그들의 충성을 유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반대라고 하면 우리는 그 군주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그 이유는 그 군주의 첫 번째 실수는 잘못된 인선에 있기 때문이다.
시에나의 군주 빤들포 뻬뜨룻치의 재상 안또니오 다 베나프로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그를 재상으로 뽑은 빤돌포는 가장 사려 깊은 통치자로 간주되고 있다. 대체로 인간의 지능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자기 스스로 이행하는 것, 둘째는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것을 이해하는 것, 셋째는 자기 스스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이 생각한 바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첫째는 가장 우수하고 둘째도 우수하지만 셋째의 정도에는 들어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언행의 선악을 분별할 수 있을 만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비록 그가 재능은 결여되어있다고 하더라도 재상의 능력과 과실을 분별하여 옳은 것은 권장하고 그른 것은 시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상도 그런 군주를 속이려 하지 않고 선행을 계속할 것이다.
군주가 대신의 자질을 분별하는 방법에 관해서 말한다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방법이 하나 있다. 즉 대신이 군주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더 생각하고 매사에 있어서 그의 모든 행동이 그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려고 생각한다면 그는 충성스런 대신이 될 수 없고 신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라의 책무를 위임받은 자는 그 자신의 일은 절대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다만 군주의 일만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군주와 관련이 없는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심도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한편 군주는 측근자에게 충성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에게 명예를 주고 생활을 풍족하게 해주며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자기에게 묶어 두고 관직과 더불어 명예도 그에게 나누어 주어서 그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시에 군주의 지원이 없이는 자신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고 커다란 책임을 부여하여 변혁을 두려워하게 하며 많은 명예와 부를 주어 다른 방향에서 그것들을 추구하지 못하게 방향 전환을 시켜야 한다. 군주와 측근 신하가 이런 바탕 위에 서게 되면 그들은 상호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이나 그 반대일 경우에는 그들 중의 어느 한쪽이 항상 잘못되게 된다.
제23장
아첨배들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군주가 매우 신중하지 못하거나 훌륭하게 인선을 하지 못했을 경우 소홀히 하기 쉬운 하나의 과오가 있는데 이는 아주 중요하므로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결코 없다. 이는 아첨 배들에 관한 것이다. 이 아첨배들은 조정에 가득 차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너무 믿으며 또 그 점에서 남에게 속임을 잘 당하므로 이러한 결점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 결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서 측근자들의 경멸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진실을 고할지라도 군주가 화내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이외에는 아침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군주에게 자유로이 진실을 말하게 되면 존경심은 상실되고 만다.
이러하기에 신중한 군주는 중도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신하들 중 사려 깊은 일정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그들에게만 자유롭게 진실을 말하는 것을 허락하고 그것도 군주가 하문하는 문제에 관해서 그들의 생각을 아뢰게 하며 기타의 것은 그러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군주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그들의 의견을 묻고 그들이 말하는 바를 들은 후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의 모든 충간자들에게 그들이 솔직하게 아뢰면 아뢸수록 그들의 충언이 환영받는다는 것을 그들 각자가 알 수 있도록 군주는 처신해야 한다. 이들 이외의 사람들의 말은 결코 듣지 않으며 결정한 것은 반드시 실행하고 그 후 자신의 결정에 대해 확고히 집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달리 행동하게 되면 아첨배에 의해 잘못 악용되며 잡다한 의견에 따라 자기 의견에 따라 자기 의견을 끊임없이 바꾸게 되어 군주의 평판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나는 최근의 예를 하나 인용하겠다. 현 황제 막시밀리안의 신하인 루까 사제는 이 황제에 대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아무에게도 충고를 구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자신의 뜻대로 처리하지도 않았다라고 이것은 내가 앞에서 권유한 것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 결과이다. 왜냐하면 그는 은밀한 성격의 소유자이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의 주장을 피력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의견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계획이 실행 단계가 되어서야 노출되고 알려지게 되며 동시에 측근들은 계획을 반대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군주는 계획을 간단히 철회하고 만다. 그리하여 오늘 행한 것을 다음날에는 취소하기 때문에 그의 희망과 계획을 완전히 확인할 수는 결코 없다. 따라서 그의 결정을 신뢰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군주는 항상 타인의 의견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나 다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때가 아니라 오직 그 자신이 듣고 싶을 경우에만 해야 한다. 아니 군주가 요구하지 않는 문제에 대하여 조언하려고 덤비는 모든 사람들의 의욕을 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군주는 조언을 요구할 때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하며 또 그가 요구한 문제에 대해서는 참을성 있는 진실의 청취가 되어야 하고 그리고 어떠한 동기에 의해 신하들이 충언을 하지 않는 것을 알면 이를 꾸짖어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군주가 총명하다는 평을 얻고 있는 경우도 그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 측근의 현명한 조언자의 덕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으나 이것은 확실히 오해이다. 왜냐하면 현명하지 않은 군주는 다른 사람의 충언을 잘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틀림없는 법칙이요 통칙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연히 군주가 아주 사려 깊은 어떤 사람을 만나 그에게 전적으로 맡겨 버리는 경우는 예외이지만 현명하지 못한 군주는 남의 충고를 적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충간자를 만나 통치하는 경우 그는 곧 군주의 나라를 빼앗아 버릴 것이기에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만일 현명하지 못한 군주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듣게 된다면 일관된 조언을 얻을 수가 없게 되고 또 그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알지 못하게 된다. 조언자들은 각기 이해관계를 생각하게 되어 군주는 그 조언들을 간파하지도 시정하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언자들이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정직하게 되나 그렇지 않을 경우는 군주에 대해서 항상 나쁜 직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좋은 조언은 그것이 어디에서 오든 간에 군주의 깊은 사려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현명한 조언에서 군주의 신중함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제24장
이탈리아의 군주들은 무슨 이유로 그들의 영토를 잃었는가
위에서 말한 교훈을 신중하게 지키기만 한다면 새로운 군주도 오래 된 군주처럼 여겨지고 또 조상으로부터 그 권위를 물려받은 군주보다. 그의 지위를 더욱 확고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 군주의 행동은 세습 군주보다. 훨씬 주목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훌륭하다고 인정되면 혈통이 오래 된 군주보다도 민심을 얻는 데 보다. 효과적으로 되고 그들을 자기에게 밀착시킬 수 있게 된다. 그 까닭은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지사보다. 현실적인 일에 더 깊은 관심이 있고 현재 상태에서 그들의 행복을 발견하게 되면 이 행복을 즐기면서 더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다른 문제에 있어서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한 그들은 신군주를 보호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와 같이 군주가 새로운 왕국의 기초를 구축함에 있어서 그리고 그것을 강화하고 장식함에 있어서 훌륭한 법률과 군대와 성실한 친구와 위대한 행동으로서 행한다면 그에게 이중의 영광이 돌아갈 것이다. 이와 반대로 군주로 태어났으나 그 자신의 지혜 부족으로 나라를 상실하게 되면 이중의 불명예가 따르게 된다.
오늘날 나폴리 왕 밀라노공과 기타 사람들처럼 이탈리아에서 그들의 영토를 상실한 군주들과 제후들에 대해 관찰해 보면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결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이미 언급한 이유처럼 군사 면에 있어서 공통적인 결점을 갖고 있다. 둘째로 그들의 약간 명은 민중을 적으로 삼았거나 친밀했지만 귀족에 대하여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책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이러한 결점이 없다면 전장에 군대를 파견할 만큼 강력한 국가가 전복되는 일은 결코 없다.
티투스 퀸티우스에게 패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가 아닌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는 자신을 공격한 로마인이나 그리스인의 세력에 비해 우세한 나라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상무정신이 강한 군주였으며 민중의 지지를 획득하고 귀족의 충성심을 유지하는 데 능숙하였으므로 공격자에 대항하여 여러 해 동안 자기 자신을 보전하였고 비록 몇 개의 도시를 잃기는 했지만 마침내 왕국을 구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므로 다년간 유지해 왔던 그들의 영토를 상실한 이탈리아의 군주들은 운명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무능을 탓해야 한다. 왜냐하면 평온무사한때에는 변화가 닥쳐오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서 이는 바다가 잔잔할 때 폭풍우를 고려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지만 한번 역경이 그들을 덮치면 방어할 생각은 않고 도망할 궁리만 하게 되며 정복자의 오만을 혐오하는 민중이 자기들을 불러 주기만을 기다렸다. 이 방법은 다른 대책이 없을 경우에 따르는 것은 좋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그것만 믿고 다른 대책 강구를 포기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붙잡아 일으켜 줄 것을 믿고 스스로 넘어지려는 사람과 같다. 그러나 민중에 의해 군주가 다시 재기하는 일이 있든 없든 간에 그것은 군주에게 안전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비열한 수단이다. 왜냐하면 그런 재기는 군주 스스로의 힘에 의지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힘에 의지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방위 수단만이 훌륭하고 확실하며 오래 가는 것이다.
제25장
운명은 인간사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또 운명에는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인간 세상의 일이란 운명과 신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어떤 사려 분별로써도 그것을 변경할 수 없으며 또 개선책도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해 왔고 또 지금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런 까닭에 어떤 일에 대해서 굳이 애쓸 필요가 없으며 모든 일은 운명에 의해 결정 되도록 맡겨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를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이 모든 인간의 예측에 어긋나는 세태의 커다란 변화를 보았고 또 매일처럼 보고 있기 때문에 이 견해는 쉽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나도 종종 이 문제를 생각할 경우 부분적으로는 이 견해에 동의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의 자유의지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한 운명은 인간 행의의 절반만을 주재할 뿐이고 나머지 절반이나 혹은 그것보다 더 작은 부분은 인간들에게 남겨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운명의 여신을 거친 격류에 비유하고자 한다. 이 격류는 노하면 들판을 범람시켜 나무와 집들을 쓸어 가고 이쪽제방의 흙을 날라 다른 쪽 제방으로 옮겨 놓는다. 모든 사람은 이 격류에 대항하지도 못하고 그 격노 앞에서 도망치거나 무릎을 꿇고 만다. 이것이 격류의 본성이기는 하나 사람들은 일기가 평온할 때에 둑과 방파제를 쌓음으로써 다시 홍수가 나더라도 인공 운하에 의해 위험을 넘기거나 최소한 억제시킬 수 없는 파괴적인 물결의 방향을 돌릴 수는 있다. 운명도 이와 같아서 운명에 대항할 조직적인 힘이 없는 곳에 위력을 발휘하며 이를 극복할 제반 대책이 없는 곳에서 더욱 위해를 떨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가 자주 일어나고 또 그러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오인을 안고 있는 이탈리아를 살펴보면 제방도 울타리도 없는 들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독일 프랑스 스페인과 같이 지혜와 용기 등을 겸비했다면 이탈리아는 바뀌지도 않았을 뿐더러 변화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으로써 운명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에 관한 일반적인 언급은 충분히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수한 문제에 국한시켜 볼 때 오늘날 번창하던 군주가 그의 성실이나 특성에 어떤 변화를 볼 수 없는데도 다음날에는 몰락해 버린다는 데에 나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이미 살펴본 원인에서 연유하는데 즉 운명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군주는 운명이 바뀌면 멸망하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아가 시대의 정세에 가장 민감하게 적응하는 군주는 번영하고 반대로 시대의 정세에 적응치 못하는 이는 실패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 즉 영광과 부를 향해 사람들은 상이한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조심스럽게 어떤 이는 성급하게 어떤 이는 폭력에 호소하며 어떤 이는 교묘하게 어떤 이는 인내심을 갖고 그들 각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에 이를 때까지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똑같이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목적을 달성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경우를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기질의 두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경우를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기질의 두 사람 즉 조심스러운 자와 성급한 자가 똑같이 성공하는 예를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행동 방식이 시세와 일치하였는가 일치하지 않았는가 하는 데서 일어난다. 즉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서로 다르게 행동한 두 사람이 같은 결과에 도달하고 똑같이 처신하였는데 한 사람은 성공하고 한 사람은 실패하게 된 것은 모두 시세에 적응하며 처신했는지의 여부에 기인한다. 마찬가지로 운의 부침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그 성공의 여부는 시세에 달려 있다. 만일 한 인간이 사려 깊고 참을성 있게 행동한다면 시세와 주위 환경의 도움으로 성공할 것이지만 시세와 주의 환경이 바뀌어도 자신의 처세를 바꾸지 않는 한 그는 몰락할 것이다. 이러한 시세와 주위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알 만큼 사려 깊은 사람은 별로 없는데 그 첫째 이유는 인간은 자연에서 받은 성질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다음 이유는 한 가지 일에 집착해서 성공하게 되면 자신이 집착해 왔던 일에서 쉽사리 벗어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시세에 조심스런 사람이라도 과감하게 행동할 시세를 맞이했는데도 어찌할 줄 모르면 결국 파멸하고 만다. 반면에 시세와 주위 상황에 따라서 자신을 변화시킨다면 운명도 그를 버리진 않을 것이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그의 모든 계획을 성급하게 추진시켰으나 시세와 상황이 그의 행동 양식과 조화되었기에 매사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 지오반니 벤띠보리가가 몰락하기 이전 무력 볼냐에 대한 그의 첫 원정을 살펴보면 된다. 베네치아인들은 이 계획을 지지하지 않았고 스페인 왕도 반대했으며 프랑스 왕과 교황도 이 문제에 관한 협의를 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그의 몸에 밴 대담성과 과단성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원정에 나섰다. 이 행동으로 스페인 왕과 베네치아인은 견제되고 말았다. 후자는 공포 때문에 전자는 나폴리 왕국의 모든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열망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는 프랑스 왕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교황의 움직임을 보고 프랑스 왕은 베네치아인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교왕과 동맹을 맺고자 하였으며 이는 자신의 손해를 보지 않고 그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그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율리우스는 과감한 행동으로 다른 교황들이 지혜와 슬기를 갖고서도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을 수행했다. 그러나 다른 교황처럼 그의 모든 계획이 매듭지어지고 모든 준비가 충분히 갖추어 질 때까지 로마에서의 출발을 늦추었더라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 왕은 그의 행동을 연기시킬 수 있는 많은 구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고 다른 나라들도 수차례의 경고로써 그를 위협했을 것이다.
나는 교황의 다른 행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다른 행동들은 모두 비슷한 성질의 것이고 또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단명하였기에 불운을 경험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신중하게 행동할 필요성이 있을 시기가 도래했더라면 그는 파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타고난 성질대로의 행동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운명은 변화하고 사람은 그들 자신의 방식에 집착하려고 하기 때문에 양자가 조화를 이루는 한 번영하고 조화되지 못할 때는 번영하지 못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용의주도한 것보다. 과감하게 행동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운명의 신은 여신이기에 그녀를 정복하려고 하면 두들기고 난폭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운명은 아주 신중하게 접근하는 사람들보다. 거칠게 다루는 사람들에게 더욱 쉽게 복종한다. 그리고 운명은 여성이기 때문에 젊은이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젊은이는 조심성이 적고 발랄하며 그리고 방약무인한 행동으로 그녀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제26장
야만족으로부터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권고
앞서 논한 모든 문제를 심사숙고해 보건대 현재 이탈리아에 있어서 신군주에게 명예를 수여할 때가 왔는가 또 현명하고 용감한 군주에게 영광을 부여함과 동시에 이탈리아의 국민 전체에게 행복을 부여할 수 있는 적당한 기회가 왔는가에 대하여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아는 바로는 새로 등극한 군주에게 매사가 유리하게 조성되어 있어 군주가 영광을 이루기에는 지금처럼 유리한 때는 일찍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모세가 용맹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되는 것이 필요하였고 키로스 왕의 위대함과 용기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페르시아인이 메디아인에게 억압받아야 했고 테세우스의 탁월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아테네인이 분산되고 분열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하면 지금이야말로 이탈리아인의 위대한 정신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의 현재 상태를 헤브라이인보다 더 비참한 노예 상태로 되어야 하고, 페르시아인보다 더욱 억압받아야 하며, 아테네보다 더욱 분열되어야 하고, 지도자도 없고 질서도 없고 두들겨 맞고 약탈되며 갈기갈기 찢겨지고 짓밟혀서 온갖 재난을 겪어야만 한다.
그런데 최근 어떤 사람이 이탈리아의 해방을 신으로부터 명령받았다는 한 가닥 희망을 보여주었지만 그의 행동의 절정기에 운명에 의해 버림받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생기를 잃어버린 채 다만 누가 상처를 어루만져 줄 롬바르디아 지방의 유린과 약탈에 종지부를 찍으며 나폴리와 또스까나 지방의 과중한 세금과 부과금을 종식시키고 또 오랫동안 곪았던 깊은 상처를 고쳐 줄 사람의 출현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탈리아는 이런 야만적인 잔인함과 압제에서 구원해 줄 인물을 보내 주도록 얼마나 신에게 빌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이탈리아는 누군가 깃발을 올리는 이가 있기만 하면 그 깃발을 따를 각오와 열의가 되어 있음을 우리는 또한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 능력과 행운을 갖추고 있고 신과 로마 교회로부터 지지받고 있으며 세속 질서를 다스리고 있는 교회에서 최상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저명한 전하 일가를 제외하고는 구원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만일 전하께서 앞에서 내가 이름을 든 사람들의 생애와 행동을 기억에 되새기신다면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과제는 아닐 것이다. 비록 그들은 탁월하고 비범한 사람들이긴 했지만 결국 그들도 인간이었으며 그들의 어느 누구도 지금 전하께서 누리시고 있는 것과 같은 절호의 기회는 가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과업은 우리의 과업만큼 정당하지도 용이하지도 않았으며 또 전하만큼 신의 가호도 받지 못했다. 바로 이점에서 전하께서 이탈리아의 해방자가 되실 수 있는 명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필요불가결할 때의 전쟁은 정당하며 무력이외에 희망을 걸 수 없을 때 무기 또한 신성하다. 오늘날 주위의 모든 환경은 이러한 과업을 수행할 최적의 상태에 놓여 있다. 만일 전하께서 내가 앞서 열거한 방법을 쓰신다면 나라를 중흥시키기 위한 과업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로 여기에 하느님이 베풀어 주신 불가사의하고도 전례 없는 기적이 나타나고 있다. 바다는 갈라지고 구름이 길을 인도하며 바위는 샘물을 내뿜고 하늘에서는 만나가 쏟아지고 있다. 모든 것이 전하의 위대함을 고무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남은 것은 전하께서 이루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신은 모든 것을 하려고는 하지 않으며 우리들의 자유의지를 빼앗거나 우리에게 부여된 영광의 몫을 빼앗아 버리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훌륭하신 전하 집안이 이룩하여 줄 것이라고 희망하는 바를 앞에서 이름을 든 이탈리아인의 어느 누구도 이룩하지 못하였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수많은 혁명과 전쟁 소동 속에서 이탈리아의 군사력이 기진맥진한 듯 보일지라도 놀랄 것이 못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구제도의 결함과 새로운 제도를 안출할 사람이 없는 데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법률과 제도를 고안하는 것만큼 군주에게 명예를 부여하는 일은 없다. 이들 법과 제도가 훌륭한 기초 위에 서게 되고 뿌리 내리게 되면 그 군주는 존경받고 찬양받게 된다. 그리고 이탈리아에는 개량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일들이 무수히 많다.
머리는 약할 지라도 다리는 튼튼하다. 그리고 우리는 결투와 소규모의 싸움에서 이탈리아인이 힘과 기민함과 지혜에 있어서 얼마나 월등한가를 매일 보고 있다. 그러나 군대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런 특징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원인은 그들 지도자의 결점에서 유래한다. 군대에서 유능한자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모든 이는 제각기 자기가 유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자신의 능력과 행운에 의해 다른 사람들을 복종시킬 만한 인물이 없었다. 이 때문에 20년의 긴 세월 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전쟁에서 그 군대가 순전히 이탈리아인만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항상 패하였다. 이러한 사실의 증거로는 첫째가 따로의 싸움이고 다음은 알렉산드리아 까뿌아 제노아 바이라 볼로냐 메스뜨리의 싸움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훌륭하신 전하 집안이 과거 자기의 나라를 구원한 이들 위대한 인물들의 모범을 따르려고 하신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한 것은 그러한 모든 과업의 참된 기초로서 전하 자신의 군대를 양성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자국의 군대만큼 용감하고 진실하며 충성스런 군대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병사 개개인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전하께서 그들을 직접 지휘하고 그들에게 직접 명예를 내리며 그들을 신임할 경우 그들은 집단적으로 더욱 훌륭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탈리아인의 용맹을 갖고 외세에 대해 전하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능한 첫 단계는 이러한 군대를 양성하는 일이다.
그리고 스위스와 스페인의 보병이 두려운 상대로 평가되고 있으나 이 양자에게도 결점이 있으므로 그들을 저지시킬 수 있고 그들을 타도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제 3의 군대를 조직해야 한다. 왜냐하면 스페인군은 기병 부대에게는 대항하지 못하며 스위스인은 전장에서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완강한 보병대를 만나면 물러나게 된다. 따라서 이미 본 바와 같이 그리고 앞으로도 보게 될 것이지만 스페인의 보병은 프랑스 기병의 공격을 견디어 내지 못하며 스위스군은 스페인의 보병을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다. 후자에 대해서는 분명한 예를 들 수 없으나 라벤나의 싸움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스페인 보병은 스위스와 같은 전술을 사용하는 독일 부대와 교전했다. 스페인군은 민첩한 행동과 그들의 왼손에 둥근 방패를 들고 독일군의 창 아래로 뚫고 들어가 공격하였기 때문에 긴 창을 든 독일군은 더 이상 자신을 방어하지 못했다. 만일 그때 기병대의 공격이 없었더라면 독일군은 전멸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양국 보병대의 결점을 알면 기병대와도 대항할 수 있고 또 보병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의 체제 위에서 자신의 군대를 훈련시킬 수 있을 새로운 군대를 조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군대의 창설뿐만 아니라 군대의 조직 및 훈련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군주가 명성과 위대함을 얻을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이다.
오랜 세월이 자나 마침내 구원자를 찾아낸 지금 이탈리아는 이 기회를 놓쳐 버려서는 안 된다. 외국인의 침략으로 고통 받는 이탈리아의 모든 지방에서 그 구세주는 얼마나 열렬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며 복수심에 불타고 또 얼마나 확고한 충성심과 헌신과 많은 눈물로 맞아들일 것인가는 나의 필설로는 역부족이다. 이 사람에 반대하여 닫혀질 성문이 있을 것인가 어떤 민중이 그에 대한 순종을 거부할 것인가 어떤 질투심이 그의 길에 맞설 것인가 어떤 이탈리아인이 그에의 경의를 거부할 것인가 이 야만인의 횡포는 모든 사람들의 코에 악취를 풍기고 있다. 그러므로 훌륭하신 전하 일가는 이 정의로운 대의에 관하여 모든 용기와 희망을 갖고 이 일을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하의 깃발 아래 우리 조국은 고귀하게 되고 전하의 보호 하에 빼뜨라르까가 한 말이 실증될 것입니다.
힘은 야만인의 광포에 대항해 무기를 잡고 일어나라
싸움은 곧 끝나리라
옛부터의 용기는 이탈리아인의 마음에 아직도 살아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