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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世紀)의 사냥꾼 8 - 1

Bollnow 2024. 5. 5. 08:40

142. 정글북

143. 미친 불곰

144. 산서 산맥의 큰 산양(山羊)

145. 태백산맥의 식인호(食人虎)

146. 사살 작전

147. 마푸드의 죽음

148. 아마존의 변화

149. 경찰견 카크와 마약사범

150. 흡혈(吸血)박쥐

151. 뱀나라의 여왕

152. 시베리아 자연보호구

 

 

142. 정글북

인디아 중앙에 동서로 뻗어 있는 데칸고원과 그 동쪽에서 남북으로 뻗어 내려간 동고츠산맥이 부딪치는 지역에는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많다. 산악과 산림지대이므로 촌락은 드물고 야생짐승들의 나라다. 그 산들 중에 세실리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기슭 마을에서 식인범의 행적을 조사하던 산림관 라른에게 이상한 보고가 들어왔다. 산림에 있는 동굴에 백인이 숨어있다는 보고다. 19388월이었으므로 뭇 야수들이 득시글거리는 그곳에는 사냥꾼들도 들어가지 않았다. 라른은 식인범의 발자국 조사를 중단하고 인디아인 조수 칸타를 데리고 갔다. 어두운 동굴에 인기척이 있다. 동굴에는 희미한 빛이 비치고 있어 사람의 윤곽이 드러났다. 라른의 손전등 불빛에 백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간이천막과 취사도구가 있고 총도 있었다. 그리고 대여섯 권의 책, 젊은이는 단정한 용모고 미친 사람 같지 않았다. 젊은이가 촛불을 켜면서 손전등을 끄라고 했다. 런던에서 사용하는 표준영어다.

산림관이라고?’

그렇소. 무엇을 하는 거요?’

키플링을 아십니까? 정글북을 읽어봤소?’

키플링은 인디아 태생 영국 문학가고, 190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정글북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저서다. 인디아의 원시림에서 늑대에게 양육된 모글리 늑대소년의 이야기다.

나는 런던에 있는 대학원에서 동물학을 연구하는 버나드입니다. 여기에서 정글북에 나오는 인디아의 산림의 자연과 동물을 조사, 연구하려고 합니다.’

혼자서?’

, 대학 동료들이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오지 않습니다.’

그들이 온다면 아마 자네 장례식을 치러주려고 오겠지.’

버나드가 웃었으나 장난기는 없다. 약간 마른 몸매였지만 단련된 몸이다. 대학체육부에서 승마, 사격, 수영, 스키, 럭비, 축구 등을 배웠다고 했다.

동굴에서 나가지 마시오. 내일 다시 올테니 그때까지 동굴에 숨어있어야 합니다. 특히 밤에는 꼼짝딸싹도 하지 말고.’

산림관이 그 일대에 범이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젊은이가 놀라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덧붙였다.

그 범은 식인범이고 며칠 동안 굶주렸소.’

산림관이 조수와 함께 산림 안으로 들어가더니 벼락에 맞아 죽은 고목을 한 그루 끌고 왔다.

땔감이요.’

산림관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살인범이 돌아다닌다고?’

혼자가 된 버나드는 좀 불안했으나 용기를 냈다.

그렇지. 붉은 꽃이야!’

붉은 꽃은 야생짐승들의 말이며 인간만이 피울 수 있는 불을 의미한다. 정글북은 의인화 소설이며 동물들과 모글리 소년은 말을 주고받는다. 동물들이 모글리에게 인간 마을에 가서 붉은 꽃을 가져오면 큰 힘이 된다고 요청했다. 버나드는 산림관이 고목을 가져다준 이유를 알아챘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버나드는 동굴 입구에 모닥불을 피우고 손도끼로 고목 가지를 잘라 넣었다. 모닥불이 탁탁거리며 타오르고 붉은 불꽃이 밤하늘로 피어올랐다. 버나드는 동굴의 벽에 기댔는데 총을 들고 있었다. 총신이 두 개인 라이플이다. 입구의 모닥불을 타 넘기 전에는 어느 맹수도 동굴 안으로 침입할 수 없다.

시아칸도 저 붉은 꽃을 타고 넘지는 못할 거야.’

시아칸은 정굴북의 사납고 교활한 범인데 모글리를 잡아먹으려고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정글북에서는 시아칸이 가장 나쁜 역할을 맡았는데 인디아의 범은 50년 후에도 아주 나쁜 짓을 했다. 산림관이 추적하는 범은 최근 한 달 동안에 산간마을에서 세 사람의 농민을 잡아먹었다. 버나드는 밤새 식인범의 환영(幻影)에 시달리고 새벽에야 겨우 눈을 붙였는데 꿈속에서도 시아칸이 으르렁거렸다. 다행히 식인범은 모닥불을 터넘어 동굴에 침입하지 못했고, 꿈속의 시아칸은 버나드가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던지자 도망갔다. 붉은 꽃의 위력이다. 그런데 인디아의 농민들은 왜 쉽게 범의 밥이 되는 것일까? 인디아총독부의 통계에 의하면 인디아의 범들은 매년 200여 명을 잡아먹었는데 시아칸보다 훨씬 더 잔악한 악당들이다.

날이 밝아오자 버나드는 총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동굴 밖에 커다란 꽃무늬 발자국이 있었다. 식인범이 밤에 동굴에 왔으나 활활 타는 모닥불을 보고 물러난 것이다. 범은 붉은 꽃을 두려워한다. 버나드는 꺼져가는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더 넣고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폈다. 산림은 조용했으나 뭔가 수상쩍다. 정글북에서는 시아칸이 나타나면 온 산림의 짐승들이 숨을 죽인다고 되어있는데 정말 움직이는 것이 없다. 그때까지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나무에 앉았다. 까치가 나무 밑을 보고 깍깍거리며 울었다. 정글북과 같았다. 버나드는 망원경으로 나무 주변의 풀밭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무서운 살기가 퍼져있다. 끈질기게 관찰하는데 풀밭 한구석이 움직이고 누런 빛깔이 떠올랐다. 범은 계곡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몸을 숨기고 소리도 내지 않았으나 까치가 따라가며 봄의 소재를 알려주고 있다.

깍깍깍깍! 범이 있으니 조심하라! ’

이런 나쁜 놈!’

늑대소년 모글리는 시아칸과 악연惡緣이 있었던 것처럼 버나드도 범과 악연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버나드는 산림관의 경고를 따랐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동물학자인 버나드는 범이 어떤 짐승인지 잘 알고 있었다. 두 시간 뒤에 산림관이 왔다.

식인범을 보았다고?’

산림관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곧 산림관은 버나드가 냉정한 이성을 지닌 동물학자라는 걸 깨우쳤다. 특히 까치가 따라다닌다는 정황이 의심할 수 없는 증거다. 산림관은 조수와 범이 내려갔다는 계곡으로 내려갔다. 버나드도 함께 갔다. 런던에서 온 청년은 모글리처럼 용감하다. 그는 모글리와 달리 총을 가지고 있다. 영국사격협회 회원증도 갖고 있다. 범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마을에서 어린 소년을 잡아먹은 범이 산줄기를 타고 멀리 도망칠 줄 알았는데 교활한 식인범은 추격대가 따라올 줄 알고 추격대를 빼돌리려고 했다.

산림관은 범과 표범을 여덟 마리나 잡았으며 총독부로부터 두 번 표창을 받은 명포수다. 조수를 데리고 계곡으로 내려가면서 버나드에게 나무 위에 올라가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이 범은 사람을 전문으로 잡아먹은 살인범이야. 범과 싸울 생각하자마!’

범의 발자국이 계곡 밑에서 사라졌다. 교활한 범이 계곡물로 들어가 발자국을 지워버렸다. 물이 꽤 빠르게 흘러서 범이 아래쪽으로 갔는지 위쪽으로 갔는지 분간할 수 없다. 산림관은 위쪽으로 가면서 조수를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수색을 하라고 지시했다. 조수는 믿을만한 사냥꾼이다, 구식 단발총을 갖고 있지만 총을 잘 다룬다. 총독부가 인디아인에게는 총의 소지를 불허했으나 조수는 특별허가를 받았다. 산림관이 범을 잡아 포상금으로 총을 사줬는데 조수는 그 총을 보물처럼 아꼈다. 늘 손질을 하고 기름칠을 해서 윤기가 흘렀다.

천천히 수색해! 놈이 없다는 걸 확인하기 전에는 앞으로 나가면 안 돼!’

수색을 할 때는 눈보다는 코와 귀에 의존한다. 범을 전문으로 잡는 그의 코는 범의 냄새에 민감하다. 범은 몇 포기의 풀만 있어도 완벽하게 몸을 숨겼으나 그 냄새만은 감출 수 없다. 풀밭에서는 범의 누런 색깔이 풀 색깔과 어울려 구분이 안 된다. 범의 줄무늬도 그림자처럼 보인다. 범이 풀밭에 은신하면 시력이 좋은 동물들도 구분하지 못하고 옆을 지나가다가 잡혀 먹힌다. 그러나 범이 동물을 잡아먹고 숨결에 내뱉는 시큰한 냄새는 범이 이빨을 닦지 않는 한 없애버릴 수 없다. 동물의 눈과 코를 지닌 산림관이 한 시간 동안이나 수색을 해도 범은 보이지도 냄새도 없다. 바람이 위에서 불어오고 있으므로 범은 위쪽에는 없다. 산림관이 계곡 아래쪽으로 수색 방향을 바꿨다. 300m나 아래로 갔는데 조수로부터 신호가 없다. 수상하면 조수가 새 우는 소리로 신호를 한다. 뭔가 좀 이상하다. 위에도 없고 아래쪽에도 없다면 범은?

아차!’

산림관이 혀를 찼다. 범은 계곡으로 들어간 것처럼 시늉만 하여 추적자를 따돌리고 계곡에서 도약하여 물에서 튀어나왔다. 범은 쉽게 6~7m를 도약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물가 양쪽에는 범의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산림관이 조수에게 추격 중지를 지시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산중복에서 기다리는 버나드가 걱정이 되었다. 나무에서 내려오지 말라고 당부했으나 모험심이 많은 젊은이라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산림관이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데 염려했던 상황이 일어났다. 범의 발자국이 있었다. 그때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버나드다. 총소리는 단 한 발뿐이었다. 총소리의 메아리가 사라지고는 조용해졌다.

버나드, 괜찮아? 범이 그리로 갔는데 .’

대답이 돌아왔다. 약간 떨리는 소리였으나 침착했다.

괜찮아요.’

됐어. 곧 갈테니 기다려!’

버나드는 나무 위에 있었다. 표정이 창백했으나 웃으려고 했다. 두 손으로 총을 들고잇었다.

조심하세요. 범이 있어!’

정말 범이 풀밭에 있었다. 편안하게 옆으로 길게 누웠다. 범의 이마 왕자 주름살 한가운데 구멍이 나고 피가 흘러내렸다. 범은 즉사했다. 급소에 정확한 사격을 받으면 인디아 산림의 폭군도 어쩔 수 없다. 뒤늦게 달려온 조수가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두 손을 벌렸다. 산림관은 총독부에서 받은 포상금의 절반을 버나드에게 주었다. 인디아의 자연과 생태계를 연구하는 데 사용하라는 격려다. 버나드는 계속 동굴에 머물면서 연구를 했다. 1주일쯤 되었을 때 산림관이 찾아왔다.

자네, 시아칸은 만났지만 아직 카아는 못 봤지?’

카아를 만나고 싶은가, 안내해주지.’

카아는 정글북에 나오는 비단뱀이다. 몸길이가 9m나 되는 거대한 뱀이며 몸에 노란색, 갈색, 검정색의 무늬가 있다. 카아는 매우 점잖은 뱀이며 하루 종일 똬리를 틀고 누워있다. 카아는 모글리를 사랑하고 보호했다. 못된 원숭이들이 모글리를 납치했을 때도 카아가 구해주었다.

카아가 어디에 있어요?’

비단뱀 카아는 동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산다. 서남쪽 데칸고원 남쪽 기슭의 야산에 다원(茶園)이 있는데 카아는 다원 인근 - 야산에서 다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산다. 정글북에서도 비단뱀 카아 아저씨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즐긴다. 몸길이 9m의 카아만 못 하지만 큰 뱀이고 누런 바탕에 붉고 검은 점이 있는 6m쯤 되는 뱀이다. 주민이 비단뱀한테 안내를 했다.

저 뱀은 주민들과 친합니다. 다원에서 일을 하는 여인들과도 친구지요.’

사람들은 그 뱀을 해치지 않았다. 다원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예사로 뱀 옆을 지나갔다.

뱀은 지킴이입니다. 나쁜 짐승들이 다원에 들어오지 못하게 지켜줍니다.’

비단뱀은 3, 4년 전부터 지킴이가 되었다. 그전에는 다원의 잡초밭에 몸길이가 4m나 되는 킹코브라가 살고 있어 다원에서 일하는 여인들을 물어죽이고 사육하는 물소도 죽였다. 보통 뱀은 몸이 작은데 킹코브라는 상반신을 사람의 키보다 더 높이 일으켜 세운다. 킹코브라는 제 몸의 2/3를 일으켜 세운다. 4m의 킹코브라가 숨어있는지 모르고 가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세우면, 부챗살처럼 펼친 목덜미에 새겨진 도깨비 눈 같은 쟁반처럼 큰 동그란 눈 모양 무늬와 2m가 넘는 큰 키에 놀라 지나가던 사람은 놀라서 기절한다. 킹코브라는 기절한 사람을 둘둘 말아 뼈를 부러뜨려서는 엿가락처럼 만들어 삼켜버린다. 삼키기에는 큰 남자는 독이빨로 물어 죽여 둘둘 말아 삼킨다. 공포에 떨었으나 인디아의 힌두교는 살생을 금지하므로 킹코브라를 신성시하고 있으므로 잡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사람이 물려 죽으면 운명으로 치부한다. 그런 어느 날 비단뱀이 나타났다. 비단뱀은 독이 없으므로 킹코부라에 물리면 죽는다. 킹코브라가 비단뱀을 보고 상체를 일으켜 세워 위협했다. 두 마리가 싸우면 무서운 독을 가진 킹코브라가 이긴다. 그러나 비단뱀은 물러서지 않고 킹코브라에게 다가갔다.

킹코브라도 물러서지 않았다. 킹코브라는 상체를 2m나 일으켜 흔들었다. 그놈은 계속 다가서는 적의 시선을 어지렵혀 독침을 찍어 넣을 기회를 노렸다. 비단뱀은 그래도 다가갔다. 킹코브라 신경질이 되어 일으킨 상체로 후려치듯 덤벼들었다. 그때였다. 아주 무신경하고 동작이 느린 것 같았던 비단뱀이 긴 꼬리로 킹코브라의 일으킨 상체를 후려쳤다. 전광석화 같은 반격이다. 킹코브라는 대가리로 위에서 밑으로 공격하고 비단뱀은 꼬리로 옆을 반격했는데 싸움이 일순간에 결판이 났다. 킹코브라가 나가떨어졌다. 꽤 강한 충격을 받은 듯 킹코브라는 일어나지 못했다. 킹코브라가 한참 뒤 정신을 차려 도망가려고 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비단뱀의 아가리가 킹코브라의 대가리를 콱! 물었다. 킹코브라가 하체로 비단뱀의 몸을 감아 조이려고 했으나 비단뱀은 개의치 않고 아가리에 물린 킹코브라의 대가리를 천천히 삼켰다. 킹코브라는 필사적으로 비단뱀의 몸을 조이려고 했으나 조이는 힘은 비단뱀이 더 강하다. 킹코브라의 저항력이 서서히 약해졌다. 비단뱀은 국수 가락을 삼키듯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킹코브라를 삼켰다. 악명 높은 킹코브라의 비참한 마지막이다. 싸움을 구경하던 일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비단뱀 만세!’

비단뱀은 그날부터 그 일대의 영주권을 얻어 상주했다. 비단뱀은 킹코브라나 독사들을 잡아먹고 가축에는 해를 끼치지 않았다. 총독부 통계에 의하면 인디아는 세계에서 독사에 의한 피해가 많은 나라며 매년 수천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그러나 비단뱀이 사람을 잡아먹은 사례는 없다. 정글북의 카아가 아니더라도 인디아의 비단뱀은 사람을 도와주었다.

카아 아저씨, 안녕하세요?’

비단뱀은 만난 버나드가 인사를 하자 잠에서 깨어난 비단뱀이 눈을 뜨고 버나드를 보았다.

, 잘 있었느냐, 모글리.’

비단뱀이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비단뱀의 아랫배가 불룩했다. 며칠 전 꽤 큰 도마뱀을 먹었다고 주민들이 알려주었다. 며칠 동안 먹지 않아도 된다. 뱀은 소식을 한다. 쓸데없이 움직여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낮잠을 즐긴다. 통째로 먹은 먹이를 천천히 소화시킨다. 버나드는 카아 아저씨의 낮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산림관은 비단뱀을 만난 다음 급히 떠났다. 붉은 승냥이 떼가 나타나 농민들이 사육하는 물소를 습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물소 두 마리가 죽고 소몰이 소년이 죽었다. 정글북의 저자 키플링은 정글북에서 붉은 승냥이를 인디아에서 가장 사납고 잔인한 동물로 묘사했다. 붉은 승냥이는 닥치는 대로 동물을 습격했으며 그들이 나타난 지역에는 살아남은 동물이 없다. 만주에서 붉은 승냥이는 야생동물은 물론 사람도 습격하여 매년 백 명이 넘는 희생자가 생겼다. 무장한 일본군대를 습격하여 여섯 명이 그들의 밥이 되었다. 서양에서는 돌이라고 부르는데 역시 살육자다. 현장에는 뼈만 남은 물소의 시체와 거죽에 덮여있는 소몰이 소년의 시체가 있었다. 소년의 시체는 두개골만 남았다. 뼈까지도 다 먹어 치웠다. 붉은 승냥이에게 잡혀 먹힌 물소는 300kg이 넘고 커다란 뿔이 있고 화가나면 범에게도 덤벼들었다. 정글북에서 모글리는 물소 떼와 힘을 합쳐 사악한 시아칸을 죽였는데 이번에는 승냥이의 밥이 되었다. 지방 포수 세 명을 포함한 사냥꾼들이 즉시 붉은 승냥이 발자국을 추적했는데 그날 밤에는 야영을 했다. 사냥꾼이 여섯 명이나 되었으나 그래도 좀 위험하다. 붉은 승냥이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 살육자다. 밤이 되자 승냥이들이 사냥꾼을 포위했다. 모두 서른 마리가 넘는다. 그러나 그들은 모닥불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하고 덤벼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람사냥을 포기한 건 아니다. 다음 날 새벽에는 승냥이가 50여 마리로 불어났다. 세가 불어나자 승냥이들이 사람사냥을 시작했다. 불도 총도 겁내지 않고 다가왔다.

버나드가 망원경으로 보았는데 뜻밖에 그들은 예쁜 모습이었다. 커다란 귀와 맑은 눈동자를 가진 날씬한 몸매였고 애완견처럼 귀여웠다. 늑대보다 덩치가 작고 몸놀림이 민첩하다. 그러나 역시 소문대로 무서운 맹수들이다. 가까이서 보니 맑은 눈동자에 차가운 살기가 어리고 아가리는 예리한 이빨이 있다.

아직 쏘지 마!’

산림관은 하무부로 야생동물을 죽이지 않았으나 승냥이는 예외다. 승냥이를 되도록 가까이 당겨놓고 몰살시킬 심산이다. 승냥이들이 모닥불을 포위하고 주위를 돌았다. 그들이 6, 7m까지 접근하도록 내버려 둔다. 근거리에서 일제사격을 하여 몰살시키려고 했는데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승냥이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6, 7m 거리는 승냥이에게는 아주 좋은 공격 범위다. 대체로 개 종류의 짐승들은 함부로 공격을 하지 않고 적을 관찰해서 공격해도 좋다는 판단이 내릴 때까지 기회를 노린다. 그러나 승냥이는 예외였다. 기회를 보지도 기다리지도 않았다. 바로 덤벼들었다. 상대가 6명이나 되고 총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승냥이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개들처럼 요란하게 짖지도 않고 늑대들처럼 으르렁거리지도 않는다. cl 무성영화에 나오는 괴물들처럼 소리 없이 살육을 한다.

쏘아! 모두 발사!’

산림관이 명령했는데 그 명령이 조금 늦었다. 승냥이가 빨랐다. 가볍게 3, 4m를 뛰어올랐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사방에서 일제히 덤벼들었고 3, 4m나 되는 공중에서 몸을 날렸다. 난전이다. 사냥꾼들이 일제사격을 했다. 온 산림에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화약 냄새가 진동을 했다. 열 마리가 넘는 승냥이들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쓰러진 게 승냥이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승냥이가 가을철 논밭의 메뚜기처럼 사람을 덮쳤다. 열 마리가 넘는 동료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냥꾼들이 당황했다. 산림관도 팔을 물려 피를 흘렸다.

조수도 위험하다. 승냥이가 그의 발목을 물고 있었다. 뿌리쳐도 승냥이는 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버나드가 발포했다. 산림관이 나서지 말라고 했으나 싸움은 승냥이와 사람의 싸움이다. 전세는 사람이 위험하다. 버나드가 두 마리를 쏘아죽였으나 다시 장탄(裝彈)을 할 여유가 없다. 버나드는 붉은 꽃을 생각해냈다. 정글북에서 동물들의 말을 알아듣는 모글리에게 야생짐승들은 무엇보다도 붉은 꽃을 싫어한다고, 마을에 가서 붉은 꽃을 얻어오라고 했다. 모글 리가 붉은 꽃을 얻어와 동굴 안에 피웠는데 모글리를 해치려는 범도 승냥이도 붉은 꽃이 두려워 동굴 안으로 침입하지 못했다.

그렇다, 붉은 꽃이다!’

총 대신 붉은 꽃으로 승냥이들과 싸워야 하겠어!’

버나드가 모닥불에서 타고 있는 장작을 꺼내 승냥이들에게 던졌다. 불 공세에 승냥이들이 당황했다. 털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예민한 후각을 갖고있는 승냥이들은 그 고약한 냄새를 견디지 못했다. 털에 불이 붙은 승냥이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붉은 꽃은 동물들이 끝내 넘지 못할 벽이다. 동물들도 사람처럼 진화를 했으나 불을 만들지 못했다. 붉은 꽃은 동물과 사람의 분계선이다. 불 공세를 받은 승냥이들이 주춤거리는 사이에 총탄의 집중 세례를 받고 열 마리가 죽었다. 나머지는 도망쳤다. 산림관이 웃엇다.

역시 키플링이 옳았어. 불은 화약보다 더 무서운 무기야.’

산림관의 상처는 가벼웠기에 소독만 하고 새 임지로 떠났다. 이번에는 산림이 아니라 도시다. 인구가 10만 명이 넘는 도시였는데 그곳의 치안을 맡고 있는 보안관이 도움을 청했다. 그와는 군대에서 함께 장교로 복무했다.

골치가 아파. 못된 놈들이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어.’

못된 놈들은 원숭이다. 1만 마리나 되는 원숭이무리가 도시를 온통 점령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피난을 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원숭이 따위의 등쌀에 못 이겨 살고 있는 마을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인디아에서는 그런 일이 흔하다.

바나드는 산림관과 함께 문제의 도시에 가는 중에 기차 안에서 원숭이를 만났다. 지정석이 정해진 1등 객차인데 열서너 마리의 원숭이들이 티켓도 없이 좌석 위의 선반을 독점하고 있었다. 돈을 내고 기차표를 산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데리고 온 것도 아니다. 원숭이들은 제멋대로 기차에서 타고 내렸다. 원숭이는 사람 따위는 완전히 무시하고 못된 장난질을 치면서 킥킥거리고 있었고 선반 위에 자리 잡은 놈들이 오줌, 똥을 배설하고 사람들 위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과일이나 과자봉지를 채가는 놈도 있고 과자봉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아이의 뺨을 할퀴는 놈도 있었다. 과자봉지를 빼앗긴 아이가 울었고 뺨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런 못된 놈들!’

보다 못한 버나드가 주먹을 쥐고 일어나자 산림관이 말렸다.

안 돼! 저놈들을 건드리면 큰일 나.’

인디아는 힌두교가 국교고 힌두교는 원숭이를 성스러운 동물로 숭배한다. 옛날 원숭이가 곤경에 빠진 힌두교도를 도와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인디아를 지배하는 승려들이 원숭이를 해치거나 푸대접하는 사람들을 엄벌에 처한다. 기차가 역에 도착하자 원숭이들이 내렸고 다른 원숭이들이 올랐다. 원숭이들은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키플링은 원숭이에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를 했어요.’

키플링은 정글북에서 원숭이들이 못된 장난질을 일삼는 고약한 동물로 묘사했다. 모글리를 납치하여 괴롭혔다. 카아가 구출해주었으나 원숭이들은 50년이 지난 후에도 못된 버릇을 고치지 않은 것 같다. 버나드도 원숭이를 싫어한다. 그러나 원숭이는 영장류이고 사람과 조상이 같다.

동물학자는 원숭이가 사람과 가까운 친척이며 오랫동안 사람과 같이 진화해왔다고 한다. 원숭이는 진화하면서 그 어떤 동물보다 더 지능지수가 높다. 사람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원숭이의 진화는 거기까지다. 그 이상은 진화를 하지 못했다. 원숭이는 사람처럼 영리했으나 그 영리성은 교활이라는 말이 더 옳다. 원숭이는 사람의 좋은 면을 배우지 못하고 나쁜 면만 배웠다. 남을 속이고, 약자를 멸시하고, 강한 자에게 아첨하는 법을 배우고, 잔인한 성격까지도 배웠다. 사람이 갖고 있는 고도의 지성이나 관용은 원숭이에게는 없다.

현지에 도착해보니 원숭이들의 횡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 도시는 힌두교의 본거지인데 고위직의 승려들이 철저하게 평민이나 천민을 다스렸다. 승려는 사람들에게는 엄격했으나 원숭이들에게는 관대했다. 관대가 아니라 방임이다. 시장에 가봤는데 수천 명의 사람들과 수백 마리의 원숭이들이 바글거렸다. 농산물 집산지고 농사꾼들과 장사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장사꾼들이 제대로 장사를 할 수 없었다. 물건을 팔려고 내놓으면 원숭이들이 훔쳐 간다. 공공연히 약탈을 한다. 장사꾼들은 그걸 눈앞에서 보면서도 말리지 못한다. 못 헤게 말리면 원숭이가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을 하고 그런 원숭이와 싸우면 경찰에 잡혀가 곤욕을 치른다. 교활한 원숭이들은 그걸 알고 횡포를 부린다. 원숭이들의 횡포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깟 원숭이 따위야 쉽게 죽일 수도 쫓아낼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승려와 경찰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승려뿐만 아니라 힌두교를 맹신하는 서민이나 천민들까지도 원숭이가 박해당하는 걸 보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날 밤, 영국인 보안관, 산림관 그리고 버나드가 회합을 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못된 원숭이들을 가만두면 안 된다고 했다. 다른 동물보다 지능이 높다고 사람을 깔보는 놈들을 응징해야 한다. 그러나 자칫 승려들과 충돌이 일어난다. 승려는 인디아 계급사회의 으뜸이며 절대자들이다. 승려와 싸울 수 없다. 보안관과 산림관은 우선 실태조사를 하기로 하고 원숭이 본거지 사원으로 갔다. 힌두교의 중심사원이며 대지가 5만 평이나 되었는데 수천 마리의 원숭이들이 모여있었다. 사원의 참배객보다도 더 많은 수다. 거기에서도 원숭이들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는데 버나드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어찌 된 일인지 원숭이들은 사원의 경내에는 들어왔지만 본당이나 승려들의 기숙사, 부엌 같은 건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건물 밖에서만 돌아다녔다. 원숭이들도 힌두교의 신성함을 아는 것인가? 버나드가 사원의 경비실에 가보았다. 경비와 청소를 하는 천민 일꾼들 50여 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경비실 뒤쪽에 창고가 있고 거기에 이상한 물건이 있었다. 기다란 가죽끈이 달린 막대기와 호두 크기의 하얀 돌이 쌓여있다. 무엇 하는 물건일까? 버나드의 머리에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막대기는 원숭이를 쫓는 데 사용하는 게 아닐까? 가죽끈으로 원숭이를 후려쳐 쫓아내는 매인 것 같다. 하얀 돌멩이는 원숭이들에게 던지는 것이고.’

버나드는 매를 한 개 훔쳤다. 원숭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슬그머니 매를 보여주었더니 원숭이들이 전기에 감전이나 된 것처럼 후다닥 뛰어 도망을 쳤다. 보안관과 산림관도 경비실에서 조사를 했다. 경비실 구석에 상자가 있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 상자 안에는 피투성이 원숭이 시체가 있었다. 보안관이 경비실 책임자를 체포하여 조사를 했다. 원숭이를 죽인 사람은 중벌을 받게 되어있으므로 책임자가 벌벌 떨었다. 그자를 체포한 것은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숭이를 죽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경비원이 처벌을 면하기 위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사원의 고위급 승려들은 경비원들에게 사원의 본당이나 중요 건물에 들어오는 원숭이들에게 가차 없이 매질을 하고 돌을 던져 쫓아버리라고 지시했다. 힌두교의 승려는 원숭이를 신성시하고 보호하고 있었으나 그 희생자는 바로 자신들이었다. 원숭이들이 본당에 들어와 불단에 똥오줌을 싸고 신도들이 갖고 온 공양물을 약탈했다. 그래서 본당이 장터처럼 시끄러워지고 쓰레기장이 되었다. 황금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불단이 원숭이들의 똥오줌을 덮어썼다. 그래도 승려들이 직접 원숭이와 싸울 수는 없다. 그래서 많은 경비원을 고용하여 못된 원숭이들을 쫓아냈다. 경비원이 무슨 짓을 해도 사원 뒷마당에 숨어서 모른 체했다. 원숭이들이 가죽 매를 맞고 지르는 비명소리도 못 들은 체했다.

우리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가죽매는 승려들이 신에게 말씀드려 원숭이를 때려도 좋다는 허가를 받은 신성한 매입니다. 그리고 돌멩이도 사원 바닥에 깔린 신성한 돌입니다. 우리는 그 돌을 원숭이에게 던져도 좋다는 승려들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됐어.’

보안관이 다음 날 사원의 경비원을 동원했다. 보안관 자신이 앞장서고 산림관과 버나드가 뒤를 따랐다. 50여 명의 경비원들이 원숭이들이 날뛰는 시장으로 갔다. 과일과 과자를 약탈하는 원숭이들을 신성한 매로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도망가는 놈들에게는 신성한 돌을 던졌다. 원숭이들 중에는 이빨을 드러내고 반항하는 놈들도 있었으나 그놈들은 더 세찬 매를 맞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원숭이는 본디 강한 자에게는 약한 놈들이다. 시장이 온통 뒤집어졌다. 시장의 장사꾼들이 신성한 원숭이들이 몰매를 맞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여 경찰서로 달려갔다. 원숭이들을 폭행하는 자들을 잡아달라고 진정했으나 경찰관들은 못 들은 척했다. 영국인 경찰서장의 지시가 있었다. 장사꾼들은 시장으로 돌아가 경비원과 합세하여 원숭이의 폭행에 가담했다. 평소 원숭이에게 당했던 분풀이다. 시장에서 난동이 일어나 원숭이 님들이 마구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사원의 고위 승려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승려들이 격분했다.

아니, 신성한 원숭이 님들에게 매질을 하고 돌팔매질을 하다니 . 당신들 그것을 보고만 있어? 당신들은 목이 몇 개나 있소?’

승려들이 보안관에게 삿대질을 했으나 보안관이 시치미를 뗐다.

염려 마십시오. 원숭이 님을 때린 매는 신의 허가를 받은 신성한 매입니다. 돌도 사원에서 가져온 신성한 돌이지요. 승려님들께서 신성한 매로 원숭이 님들을 때려도 좋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승려들의 말문을 막아놓고 보안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그보다는 더 큰 일이 있습니다. 사원 경비실에서 원숭이 님 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매질을 당해 죽은 사체입니다. 조사를 해 보니 사원에서는 그전에도 원숭이 님들을 매질로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최고 사원에 보고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원의 승려들은 목이 몇 개나 있어도 모자랄 것이다. 승려들의 낯이 창백해졌다. 승려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슬금슬금 피하듯 돌아갔다. 그들도 원숭이들의 나쁜 짓을 알고 있었다. 키플링도 인디아의 원숭이들이 못된 장난을 일삼는 동물이라고 기술하지 않았던가.

다음에는 인디아의 곰이다. 원숭이 작전을 무사히 끝내고 인디아의 곰을 만나려고 했다. 키플링은 곰을 점잖은 동물이라고 썼다. 평화를 사랑하고 나쁜 동물을 응징하는 동물이다. 키플링의 그런 기술은 좀 이상하다. 곰이란 일반적으로 미련하고 사나운 동물이며 범이나 승냥이와 같이 생태계의 으뜸으로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살육자다. 그러나 버나드가 인디아 남쪽 산림에서 만나 곰을 달랐다. 인디아의 곰은 러시아나 극동 지역 또한 북미에서 사는 불곰, 갈색곰과 다르다. 인디아의 곰은 검은 곰이며 덩치도 작다. 그들은 따뜻한 인디아의 산림에서 주로 초식을 했다. 따뜻하고 먹을 것이 많아 좀 게으르지만 조용히 살았다.

곰이 사람이나 가축을 해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도 그들을 해치지 않습니다.’

곰이 차지하고 있는 영지에는 사람을 해치는 승냥이나 논밭을 망치는 멧돼지들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곰은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역시 키플링의 기술은 옳다. 정글북에 나오는 흑곰 바루는 모글리를 보호해주고 도와주었다.

곰은 근시다. 버나드가 꽤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고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 했다. 다만 바람을 타고 오는 사람의 냄새는 어렴풋이 감지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안녕, 바루 아저씨. 오래오래 사세요.’

버나드는 인근의 마을로 갔다. 인디아의 산림은 키플링이 묘사한대로 평화로웠다. 날씨가 좀 덥기는 해도 수액과 풀냄새가 향기롭고 달콤한 꽃냄새도 났다. 벌과 나비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버나드가 마을 가까이 갔을 때 저쪽 구릉 너머 하늘에서 솔개가 원을 그리고 있었다.

무엇일까?’

정글북에서도 솔개 틸이 등장했는데 틸은 나쁜 원숭이들이 모글리를 납치한 걸 곰 바루 아저씨에게 알려주었다. 솔개 틸은 산림의 전령이었으며 모든 동물들에게 산림에서 일어난 일을 알려주었다. 틸은 산림의 상공을 날아다녔으며 눈이 아주 예리하였으므로 누구도 그의 눈을 속일 수 없다. 버나드의 예감이 옳았다. 마을에서 사람 대여섯 명이 창과 총을 들고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밤에 양이 한 마리 없어졌습니다.’

사냥꾼들이 손가락질하는 풀밭에 핏자국이 있었다. 야수가 양을 물고간 자국이다. 버나드가 하늘에 솔개가 떴다고 알려주었다.

그곳입니다.’

사냥꾼들도 솔개가 전령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버나드도 사냥꾼을 따라 솔개가 맴도는 잡목림으로 갔다. 핏자국이 사라졌다. 그러나 하늘에 솔개가 계속 맴돌았다.

이봐요. 사냥꾼 아저씨들. 당신들 눈에는 보이지 않나요?’

늙은 소나무 위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하얀 양이 온통 붉은 빛이 되어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다. 배가 갈라졌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또는 빨리 상하는 배를 갈라 내장을 먼저 처치한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놈은 오직 표범뿐이다. 먹이를 나무 위에 올려다 놓을 수 있는 놈도 표범뿐이다. 범인은 보이지 않았으나 주변 가까이 숨어서 사냥꾼들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살기가 느껴졌다. 사나운 살육자가 인근에 있을 때 노련한 사냥꾼은 살기를 느낀다. 사냥꾼들이 긴장했다. 불안한 표정들이다. 표범은 범보다 더 위험한 맹수다. 표범은 은신술의 명수이며 발견하기 어렵다. 숨어있다가 소리 없이 덤벼든다. 인디아에서는 표범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사냥꾼들이 긴장해서 사냥을 중단하고 보안관에게 보고하자고 했다. 버나드도 동의했다. 그러나 늙은 포수 한삼 영감이 반대했다. 총을 믿는 것 같았다. 그가 가진 총은 구식 단발총이며 믿을 수 없는 총이다. 인디아 정부는 원주민들에게 총의 소지를 금지했으며 그래서 포수들이 가지고 있는 총은 불법으로 조립된 총이다.

이봐, 표범이 무에 그리 무서운가? 사냥 계속해! 나는 범을 네 마리, 표범을 세 마리나 잡았어.’

늙은 포수 한산 영감이 큰소리를 쳤다. 정말일까? 정글북에서도 늙은 포수 바르데오 영감이 등장하고 그 영감은 늙었지만 정정하고 많은 짐승을 잡았다. 그러나 모글리는 영감을 믿지 않았다. 영감은 자기가 용감하게 보이려고 거짓말을 했다. 표범을 잡겠다고 큰소리치는 한산 영감도 바르데오 영감처럼 대언장담(大言壯談)하는 버릇이 있는 건 아닐까? 사냥꾼과 낚시꾼은 과장이 세다. 인디아의 원주민들이 표범이나 범을 잡았다고 주장하는데 백인 사냥꾼을 안내하고 백인이 잡은 사냥감을 자기가 잡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는 여럿이 사냥감 몰이를 해주고도 그런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버나드는 사냥을 하기로 했다. 원주민 사냥꾼 한 사람을 보안관에게 보내고 보안관이 도착할 때까지 표범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쉽게 발견될 표범이 아니다. 알록달록한 단풍이 든 산림에서 알록달록한 무늬를 가진 표범을 찾아낼 수 있을까? 표범의 은신술은 모든 짐승들 중 으뜸이다. 마른풀 서너 포기만 있어도 몸을 숨길 수 있다. 제 몸보다도 작은 바위 하나만 있어도 몸을 감출 수 있다. 산림은 조용했고 표범은 없다. 그 고요가 위험하다. 사냥꾼들은 제풀에 지쳤다. 언제 어디서 덤벼들지 모른다. 날이 어두워지자 사냥을 중지했다. 무작정 찾으려고 할 게 아니라 표범이 양을 걸쳐놓은 나무 아래서 표범을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그날은 달이 차는 날이고 비도 바람도 없어 잠복 사냥을 할 수 있어 버나드도 잠복 사냥에 참가하기로 했다. 지방 포수 한삼 영감이 자신만만하게 자기가 사냥 지휘를 하겠다고 나섰다. 양의 시체가 잘 보이는 곳에 구덩이를 두 개 팠다. 깊이 2m, 넓이가 한 평쯤 되는 구덩이를 파고 지붕을 나뭇가지와 풀로 덮었다. 한 구덩이는 버나드와 원주민 사냥꾼과 함께 들어가고, 다른 구덩이에는 한삼 영감과 사냥꾼 두 사람이 들어갔다. 준비는 완벽하고 표범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그날 밤 표범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놈이 도망쳤나?’

한산 영감이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다. 표범은 잡은 먹이를 포기하고 도망가지 않는다. 절대로 다른 짐승에게 빼앗기지도 않는다. 구덩이 주변에 발자국이 있었다. 표범이 구덩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람이 잠복한 걸 알고 도망갔다. 어떻게 된 것일까? 달 밝은 밤에 표범이 유유히 돌아다녔는데 사냥꾼들은 보지 못했다.

하룻밤 더 기다려야지.’

한산 영감이 말했으나 사냥꾼들이 찬성하지 않았다. 표범에게 물려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표범은 구덩이 안에 대가리를 넣기도 했다. 그때 표범이 마음을 달리 먹었다면 사냥꾼들은 독 안의 쥐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날 정오께 보안관과 산림관이 달려왔다. 산림관은 한산 영감을 질책했다. 산림관은 한산 영감을 조수를 채용한 적이 있었으나 몇 달 후에 해고했다. 큰소리만 잘 치고 사냥 능력이 없다.

큰일 날 뻔했소. 이 표범은 현상금이 걸려있는 식인 표범입니다.’

그 표범은 암살자검은 그림자로 불리우며 3년 동안 열세 사람을 잡아먹었다. 그림자처럼 몸을 드러내지 않는 검은 색깔의 표범이다.

몸 색깔이 검어서 이놈이 밤에 돌아다니면 발견할 수가 없어.’

보안관의 말이 맞다. 다섯 명의 사냥꾼들이 표범이 바로 옆을 돌아다녔는데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표범이 검은 표범이라는 말에 버나드가 놀랐다. 정글북에서도 검은 표범이 등장한다. 키플링이 정글북에 등장시킨 동물들은 거의 변하지 않았으나 예외가 단 하나, 검은 표범이다.

정글북에 나오는 검은 표범 바기라는 뜻밖에 착한 역할을 맡았다. 바기라는 착한 표범이었으며 모글리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30년 후 인디아의 표범 검은 그림자는 그렇지 않다. 검은 그림자는 식인 표범이며 공포의 대상이다. 키플링은 왜 표범을 착한 역할로 등장시켰을까? 산림관이 30년 전에는 착한 표범도 있었을 거라고 했다. 당시 인디아의 지방 영주들은 범이나 표범을 애완동물 또는 경비 동물로 사육하고 있었고, 인디아의 영국인의 고급주택에서는 범이나 표범이 응접실에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산림관은 키플링이 표범을 애완동물로 사육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키플링은 동물을 사랑했으며 많은 개와 고양이를 사육했는데 표범을 사육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만약 그가 표범을 사육했다면 그의 저서에서 검은 표범을 착한 역할로 등장시킬 만하지 않았겠는가? 검은 표범이 어떻게 등장했든 간에 산림관은 표범을 사냥하기로 했고 버나드도 참가하기로 했다. 키플링은 검은 표범 바기라가 영리하며 날쌔고 용감하다고 썼는데 그 점은 검은 그림자도 마찬가지다. 검은 그림자는 이미 거기에 없다. 사냥꾼들이 자기를 노리는 줄을 알고 잡아놓은 양고기 따위는 포기했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100Km를 달려 멀리 파몬드마을에 나타났다. 인구가 200명쯤 되는 농촌인데 집집마다 양, 토끼, 닭을 사육했다. 산림관과 버나드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에서는 초상을 치루고 있었다. 지난밤에 시집온 지 얼마 안 되는 아낙네가 표범에게 물려 죽었다. 그림자의 소행이다. 사람을 죽이고 처분하는 방법도 그놈의 수법이다. 놈은 몰래 소리 없이 희생자의 등 뒤로 다가가 목덜미를 물고 쓰러뜨려 짓눌렀다. 희생자는 그놈의 모습을 보지도 소리를 듣지도 못 하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그림자는 여인을 마을 앞 산림까지 끌고 가 거기서 다리 하나를 뜯어먹고 나머지 다리를 물고 갔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무거운 시신을 다 끌고 가지 않았다.

산림관은 전에도 그림자를 추적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림자는 나무들이 울창한 산림으로 들어가 나뭇가지를 타고 행적을 감춰버렸다. 원숭이처럼 이 나무 저 나무를 타고 도망가버렸다. 사냥꾼들의 추적은 발자국을 쫓는다는 것을 알고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것이다. 그림자는 더 교활하다. 밤에 인구가 많고 자동차, 소달구지, 마차가 다니는 도시를 통과했는데 도시에서는 추적이 어려워 중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림관은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잡아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산림관이 지방 영주들에게 부탁하여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그림자를 포위했다. 도망 길목에는 몰이꾼을 배치하고 몰이꾼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밤샘 경계를 했다. 버나드가 높은 산에 올라가 포위망을 봤는데 엄청난 규모다. 산이 세 개, 강이 두 개 포함된 광대한 지역일대에 불을 피워 마치 산불이 일어난 것 같았다. 야생동물이 가장 싫어하는 붉은 꽃이 만발했다. 교활하고 날쎈 그림자도 당황했다. 그놈은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았으나 발자국만은 없앨 수 없다. 놈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고 나무 위에 올라가고 물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산림관의 조수 칸타가 집요하게 추적을 했다. 포위망에서 탈출이 불가능하다.

나리, 저걸 보시오.’

추적 사흘 만에 칸타가 하늘을 가리켰다. 서너 마리의 솔개가 야산의 상공을 돌고 있었다. 키플링의 말대로 솔개는 산림의 전령이다. 솔개가 내려다보는 곳에는 뭔가가 있다. 물소의 시체였다. 끊어진 목줄에서 피가 마르지 않았다. 산림관이 주변을 상세히 조사했다. 정글북에 나오는대로 물소는 커다란 덩치와 무지무지한 괴력을 갖고 있는 맹수이며 그림자에게 그리 쉽게 당할 짐승이 아니다. 싸움이 격렬했으며 그림자도 무사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표범이 죽인 물소를 놔두고 도망을 갔다. 포위를 당한 지 1주일, 그림자는 몹시 굶주리고 있었으므로 무리수를 두었다. 강적인 물소를 공격했다. 결국 물소를 죽였으나 먹지 못했다. 그 자신도 상처가 깊었다.

산림관이 핏자국을 세밀히 조사했다.

그림자는 어깨를 다쳤어. 물소 뿔에 받힌 거야.’

큰 상처는 아니지만 상처를 입은 그림자는 죽는다. 더구나 표범은 부상에 약하다. 신체 구조가 정교한 표범은 상처를 입으면 활동이 어려워지고 사냥을 못 하면 굶어 죽는다. 정교한 기계가 고장이 잘 난다. 사람처럼 약을 바를 수도 없다. 고작 혀로 상처 부위를 핥아 치료를 하지만 여의치 않아 곪기라도 하면 죽는다. 그래서 가장 강한 맹수이면서도 늑대나 여우들에게 먹이를 내준다. 작은 상처라도 입으면 죽기 때문이다. 더구나 표범은 단독생활을 하므로 먹이를 나눠주는 동료도 없다. 산림관이 이제 그림자는 그냥 놔둬도 죽을 테지만 죽을 때까지 1주일이 문제라고 했다. 더구나 상처를 입은 맹수는 포악해진다. 사람도 습격한다. 복수를 하겠다는 집념과 굶주렸으므로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이판사판이다. 또 사람은 가장 사냥하기 쉬운 대상이다. 산림관이 주변 마을에 경고를 했다. 마을마다 경비대를 조직하여 순찰을 하고, 사람들이 마을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사고가 일어났다. 경고가 내려진 바로 다음날 인근 마을 앞 벌판에서 젊은 여인과 네 살 된 딸이 죽었다. 모녀는 밭에서 일을 하는 남편에게 점심을 가지고 가다가 변을 당했다. 그림자는 딸을 먼저 죽이고 여인을 덮쳤다. 배가 고파서 한 짓이 아니고 인간에 대한 증오다. 그림자의 발자국을 추적했다. 다음날 상처가 곪아 고름투성이가 되어있는 그림자가 발견되었다. 그래도 그림자는 산림관에게 덤벼들려고 했으나 집중사격을 받고 최후를 맞았다. 산림관과 버나드가 죽은 그림자의 목에 밧줄을 걸어 마을까지 끌고 갔다. 마을에서는 죽은 모녀의 초상이 치러지고 있었다. 시신은 화장하여 강에 뿌렸다. 마을 사람들은 환생을 믿었다. 인디아인들은 신앙심이 깊었으며 소박하고 순진하다. 키플링이 정글북에서 인디아인들의 소박하고 순진함을 기술하면서도 어리석음을 탄식하기도 했는데 그 어리석음은 30년 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143. 미친 불곰

1921년 여름, 함경북도 무산 서남쪽 산림에 머물던 이원술 포수의 산막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일본인 경찰 지서장과 화승포를 가진 지방 포수들도 있었다. 이원술 포수는 몇천 석을 하는 지주였으나 무산 일대에서 사냥을 하는 포수들의 대부(代父)로 더 알려졌다. 그는 총독부 촉탁엽사(囑託獵士)로서 조선에 온 외국 명사들의 사냥안내도 하고 인축(人畜)을 해친 맹수를 잡기도 했다. 그 산막은 이포수의 사냥집인데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팔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넓은 방이 있다. 방안에 촛불이 켜지고 저녁상이 차려졌으나 분위기가 무거웠다. 심각한 표정들이다.

그해 초 보름에 서두수 상류에 살고 있던 어느 산간마을에서 사람들이 사라져버렸다. 모두 스무 명이나 되는 마을 사람들이 서두수 상류로 가서 개척을 하겠다면서 나간 다음 소식이 끊어졌다. 이포수가 무엇을 감추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 일대는 불곰들이 삽니다. 열서너 마리쯤 되는데 서로 영역을 나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범이나 표범도 거기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사냥꾼들도 그곳에는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갔다는 개척민들의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이다. 다만 한 달쯤 전에 그곳에 들어갔던 늙은 심마니 한 사람이 이포수를 찾아와 강변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심마니는 집에까지 가보지는 않았다. 주변에 불곰의 발자국이 찍혀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30여 년이나 함경도의 산림을 돌아다녔던 심마니는 짐승을 잘 안다. 그곳에 살고있는 불곰이 어떤 짐승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불곰의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위험을 피해 왔던 길로 되돌아섰다.

조사를 해봐야겠습니다. 이선생께서 그 일을 맡아주시고, 저는 경찰서로 돌아가 총독부에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만 그동안 이선생께서 이 사람들을 데리고 현지에 가주시겠습니까?’

스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실종되었으니 그대로 있을 수 없다. 이포수가 승락했다. 경찰지서장은 다음 날 무산에 있는 경찰서로 돌아갔으나 이포수는 산막을 나서지 않았다. 지방포수들이 빨리 가자고 서둘렀으나 그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화승포를 가지고는 있었으나 믿을 수 없는 무기다. 고작 사슴이나 멧돼지를 잡는 데 유용할 뿐이다. 이포수는 산막에서 잡일을 하는 머슴을 심부름 보냈다.

나리, 누구를 불러올 생각입니까?’

박영태 포수야.’

박영태 포수라는 말에 지방 포수가 펄쩍 뛰어오르며 안 된다고 반대했다. 박포수는 주정뱅이였으며 성질이 포악하고 심술궂어 술만 마시면 누구라도 붙잡고 시비를 거는 위인이다. 사냥꾼들은 모두 그를 싫어하고 같이 사냥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를 데리고 가면 안 됩니다. 그는 실종된 사람 중에 있는 정서방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말대로 정서방을 보면 죽일 것입니다.’

이포수도 그 걸 알고 있다. 2~3년 전, 정서방은 박포수가 사냥을 나간 사이에 박포수의 젊은 처를 유혹해서 간통을 했다. 이포수가 지방 포수를 달랬다.

박포수의 성격이 삐뚤어졌다는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그를 데리고 가야 해. 이번 일은 위험해. 실종된 사람들이 머물렀던 곳은 곰들의 영토야. 대여섯 마리의 곰들이 설치고 있으니 그들과 싸워야 해. 그러려면 박포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해.’

그 점은 지방 포수들도 인정을 했다. 박포수는 범과 표범을 여덟 마리, 곰을 다섯 마리 잡은 포수다. 함경도에서 이포수 다음 가는 포수다. 그러나 그날 늦게까지 기다려도 박포수가 오지 않았다. 심부름 간 머슴은 그가 술에 취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사냥꾼들이 산막을 나섰다. 사냥꾼들은 빠른 걸음으로 서두수를 따라 서북쪽으로 갔다. 서두수는 두만강의 지류였으나 두만강에서 흘러오는 물줄기가 아니고 함경산맥과 마천령산맥에서 쏟아져내려오는 물을 북쪽 두만강으로 올려보냈다. 따라서 일행은 수량이 불어나며 두만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따라갔다. 이포수는 그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야영을 했다. 불곰의 발자국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발자국이다. 그 일대에 사는 불곰은 몸무게가 100(400kg)에 가까운 괴물이었으며 움직이는 것을 보면 덮어놓고 달려들었다. 거친 털과 두꺼운 지방층을 지닌 곰이므로 웬만한 총탄은 지방층을 뚫을 수 없다. 그놈들과는 어둠 속에서는 싸울 수도 없다. 사냥꾼들이 모닥불을 두세 군데 피웠다. 관솔을 던져넣은 모닥불이 붉은 화염과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면서 밤새 타고 있었다. 모닥불 주위에서 자면서 한 사람씩 불침번을 섰다.

실종된 사람을 찾는 일이 잘되지 않았다. 불길했다. 볼곰들이 설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날씨도 좋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렸다. 빗줄기가 긁어졌다. 벼락을 치고 번개가 번뜩였다. 오래 갈 것 같았다. 어쩌면 여름 장마가 시작된 지도 모른다.

불곰들이 고함을 질렀다. 곰은 비나 눈을 싫어하며 비를 맞으면 미쳐 날뛰는 버릇이 있다. 다른 짐승 같으면 비를 피해 조용히 기다리겠지만 성미가 급한 곰은 마구 돌아다니면서 하늘을 보고 고함을 지른다. 천지신명께 욕설을 퍼붓는 것인가? 곰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신경질적이 된다. 비를 맞으면 체력이 떨어지고 감기에 든다.

이포수는 수색을 중단하고 바위산으로 올라갔다. 동굴이 있다. 곰들이 동면을 하는 동굴에서 비를 피하려고 했다. 반나절이나 찾은 동굴에 도착하니 불빛이 새어나왔다. 모닥불이 타고있고, 선객(先客)이 있었다. 산발머리에 수염투성이 중년 사나이가 모닥불 옆에 앉아있었다. 술냄새가 났다. 사나이는 술에 취했다.

박가놈 아니냐? 웬일로 여기에 있냐?’

박가는 어른이 먼저 말을 걸었는데 일어나지도 않았다.

, 나리가 머슴을 보내 와 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박가는 이포수 일행을 먼저 보내놓고 뒤를 따라왔다. 그는 귀신처럼 발자국을 추적하는 사냥꾼이다.

그렇다고 불곰들이 설치는 산중을 혼자 돌아다니다니 .’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까짓 농사꾼 놈들이야 죽든 말든 알게 뭡니까? 그러나 나는 왔지요. 그 농사꾼 놈들 중에 꼭 죽여야 할 놈이 있기 때문이지요.’

죽일 놈이란 마누라를 유혹해간 놈이다. 죽이겠다는 집념에 변함이 없다. 박가의 눈이 번들거렸다. 살기다. 그를 아는 지방 포수가 달래듯 말했다.

계집이야 얼마든지 있는데 그까짓 바람쟁이 여펜네 때문에 사람을 죽일 거야?’

네놈, 아가리를 다물어!’

이포수도 그 계집을 안다. 박가가 큰돈을 주고 화전민 마을에서 사 온 젊은 여인이었는데 살갗이 희고 육감적인 여인이다.

당시 이포수는 박가를 사냥 조수로 데리고 있었는데, 박가는 벌어들인 돈을 모두 젊은 마누라를 위해 썼다. 비단옷을 사주고 금반지도 사줬다. 그러나 이포수는 여인이 너무 젊고 육감적이라고 염려했다. 거친 사냥꾼과 오래 살 여인이 아니었다. 이포수는 여인을 데려간 농사꾼 총각도 안다. 얌전하고 잘 긴 총각인데 그는 사냥꾼들에게 쌀, 보리를 야생짐승의 고기, 가죽과 바꿨다. 박가는 그 총각이 자기가 없는 사이에 집에 들어와 마누라를 겁탈하고 끌고 갔다고 주장했으나 아닌 것 같다. 이포수가 짐작하기로는 먼저 유혹을 한 것은 박가의 마누라고 도망가자고 한 것도 그녀다. 박가가 술을 마시고 성질이 삐뚤어진 것은 그때부터다.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 과부를 붙여주려고 했으나 거부했다. 다른 여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도망친 여펜네만 생각하고 년놈을 죽이겠다고 했다. 이포수는 박가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래도록 조수로 데리고 있으면서 정이 들었고 박가보다 사냥을 더 잘하는 포수가 없었다. 도망간 남녀는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지난해 개척민 마을에 숨어있었다. 그 마을은 가뭄이 들어 굶어 죽게 되자 산중 깊이 들어갔는데 남녀도 마을 사람들을 따라갔다. 이포수는 내력을 잘 알고 있었으나 동굴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극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술을 마신 박가는 모닥불 옆에서 코를 골았는데 총만은 쥐고 잤다. 그 총은 5년 전에 이포수가 사준 총이다. 박가의 도움으로 범을 두 마리 잡았는데 그 보상이다. 일본의 무라다 총포사가 만든 단발 산탄총인데 20여 년이 된 고물(古物)이다. 박가는 보물처럼 아끼고 손질을 했다. 기름칠이 잘 된 총은 언제나 번들거렸다. 마누리를 잃고 자포자기했어도 박가는 총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이포수가 부르면 언제나 달려왔다. 뭐니 뭐니 해도 박가는 유능한 포수고 그가 쏜 총탄은 어김이 없다. 한 번 추적을 하면 끝장을 내는 집념도 변함이 없다.

사람들에게는 타고난 재주가 있다. 경험과 학습에 의한 재주가 아니라 날 때부터 지니고 태어난 본능적인 재주인데 박가에게는 그게 있다. 이포수는 그 박가의 재주를 믿고 실종자들을 수색하기로 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으나 사냥꾼들은 비를 맞으면서 서두수를 거슬러 올라갔다. 20여 명이나 되는 실종자들이 위험하다. 불곰이 우글거리는 원시림 속에 방치된 사람들의 안부가 위험하다. 비가 내려서 발자국을 찾는 일이 어려웠으나 박가는 발자국을 찾아냈다. 정오께 멧돼지나 노루를 잡기 위해 설치된 덫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발자국도 있었다. 꽤 오래된 발자국이었으나 박가는 추적을 했다. 오후 늦게 바위산을 넘어서자 산기슭에 집들이 있었다. 통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흙으로 벽을 친 움막집이 서너 채 붙어있었다. 그런데 저녁때가 되었는데 화기가 없고 연기도 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것 같았다. 불길하다. 박가가 걸음을 멈추었다. 산사태가 일어나 모래밭이 들어난 곳을 손가락질했다. 발자국이 있었다. 곰의 발자국이다. 백관이 넘는 발자국이었으므로 빗물에도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발자국을 조사하던 박가가 말했다.

피 냄새다.’

자세히 보니 모래 바닥이 불그스럼하다. 예상대로 움막집은 비어있다. 그러나 시신들이 있었다. 머리카락과 굵은 뼈, 찢겨진 옷가지들이 널려있다. 모두 네 사람이다. 남자 두 사람, 여자와 아이가 죽었다. 일주일 전쯤이라고 박가가 말했다. 저녁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덮쳐 잡아먹고 남겨두었다가 다음날 다시 와서 먹었다.

이런 죽일 놈들!’

이포수가 신음했다. 처절한 광경을 보지 못하게 박가가 사냥꾼들을 막았다. 그리고 하나하나 조사를 했다.

특히 여인의 시체를 자세히 조사했다. 머리카락을 조사했다. 찾고 있는 여인이 아니다. 중년의 여인과 남자다. 다음날 다시 수색에 나섰다. 부상자들이 있는 것 같았다. 부상 당한 사람을 들것에 싣고 피신하고 있었다. 뜻밖에도 사람들은 남쪽으로 가지 않고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남쪽으로 가야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는데 두만강본류가 흐르는 북쪽으로 갔다. 두만강 북쪽은 만주 땅이다.

만주로 도망가려는 거야. 나를 피해 국경을 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는 안 돼!’

박가는 복수의 화신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두 개의 들것을 들고 비틀거리면서 걷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무사할 것 같지 않았다. 그곳은 불곰의 영지였으며 굶주린 불곰들이 제 발로 걸어들어온 먹이를 내버려 둘 리가 없다. 불곰은 가장 탐욕스럽고 잔인한 맹수다. 불곰은 동족도 잡아먹었다. 불곰의 수컷은 새끼만 보면 덮쳤다. 범이나 표범이 드물게 새끼를 죽이는 수가 있다. 그러나 먹이로 삼으려는 건 아니다. 다른 수컷의 새끼를 죽여 자기의 씨를 퍼뜨리려는 의도다. 또는 새끼를 죽임으로써 암컷의 발정을 촉진시키려는 뜻도 있다. 그러나 결코 먹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곰에게는 동료나 새끼는 먹이감이다. 불곰은 가뭄이 들면 더욱 사나워진다. 불곰은 잡식성이며 감자나 딸기도 먹는데 가뭄이 들면 식물성먹이도 부족해서 닥치는 대로 살육한다.

이포수가 염려했던 대로 불곰은 또 잔인무도한 짓을 저질렀다. 마을 사람들의 발자국을 추적하는 중에 또 다른 시신이 발견되었다. 심마니가 망태기를 꼭 껴안고 죽었는데 다리는 뼈만 남았다. 부패 되지 않아 죽은 지 3~4일 된 것 같았으며 주위에 불곰의 발자국이 있었다. 발자국으로 봐서 마을 사람들을 해친 불곰은 아니고 5~6년 된 젊은 불곰이다. 엎어진 심마니를 뒤집어보니 이포수가 아는 얼굴이다. 실종된 마을 사람들의 소식을 알려준 늙은 심마니를 따라다니는 젊은 심마니다. 짐승을 잘 아는 심마니는 서두수 강변에서 불곰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심마니들은 되돌아왔는데 오다가 젊은 심마니는 생각이 바뀌었다. 서두수 서쪽의 큰 산기슭의 삼나무삼림이 생각났다. 삼나무삼림에는 산삼이 자랐다. 큰 산의 그늘에 가려진 삼림은 예사로운 삼림이 아니다. 심마니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게 있다. 욕심이다. 그러나 탐욕은 참사를 부른다. 젊은 심마니는 늙은 심마니를 따돌리고 혼자 삼나무숲으로 되돌아갔다. 예상대로 산삼을 캤으나 산삼이 든 망태기를 안고 불곰의 밥이 되었다. 그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 불곰을 만났을 때 죽은시늉을 하라는 말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곰은 죽은 시체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곰은 죽은 시체에 덤벼들 수도 덤벼들지 않을 수도 있다. 대체로 덩치가 작고 온순한 반달곰은 자기를 해칠 우려가 없다고 판단하면 시체에는 덤벼들지 않을 수도 있다. 곰은 잡식성이나 반달곰은 채식을 주로 하고 불곰은 육식성이다. 육식을 하는 불곰은 썩은 고기도 먹기 때문에 시체라고 하더라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육식을 하는 불곰이 나 잡아 잡수시오.’하고 엎드려있는 사람을 그냥 둘 리가 없다. 그래서 불곰은 죽은시늉을 하는 심마니를 잡아먹었다. 이포수는 심마니의 산삼을 심마니의 부인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죽은 심마니가 신부에게 금반지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말이다.

이포수는 박가에게 곰사냥을 맡기기로 하고 지방 포수를 한 사람 붙여주었다. 이포수는 실종된 사람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박가가 지방 포수는 소용없다고 거절했다. 사냥의 방해가 된다는 말이다. 지방 포수도 박가와 같이 가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주정꾼과는 사냥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위험했으나 박가는 혼자서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혼자서 범 사냥을 한 적도 있었다. 비가 그쳤다. 젖은 옷을 말릴 틈도 없이 마을 사람들을 수색했다. 곰의 영토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언제 곰의 습격을 받을지 모른다. 빨리 찾아야 한다. 하오 실종된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바위산에서 그들이 야영한 장소를 발견했다. 옥수수밥을 지어 먹고 잠을 잔 자국이 남아있었다. 들것에 실려 가는 부상 당한 사람은 중태로 계속 피를 흘리고 있다. 이포수가 그 사람에게 주목했다. 그는 여인의 간호를 받고 있었다. 짐작이 갔다. 박가를 배신한 여인과 그 정부(情婦). 이포수 일행도 그곳에서 야영을 했는데 한밤중에 곰의 포효가 들려왔다. 서너 마리의 곰들이 서로 영토싸움을 했다. 자기들의 영토에 들어온 먹이 싸움인지도 모른다. 곰의 밥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구출해야 한다. 다음날 새벽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도처에 곰들의 발자국이 있었다. 지방 포수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불안한 표정으로 이포수를 따라갔다.

나리, 일본 경찰서장이 사람들을 데리고 오기로 했으니 좀 기다리는 게 어떻습니까?’

기다릴 수 없다. 경찰서장이 언제 올지 모르고 안 올 수도 있다.

자네들도 포수 아닌가? 총을 가지고 있으면서 곰이 두렵나?’

그런 게 아니고 .’

그날 늦은 오후에 이포수는 바위산 정상에 올라갔다.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무산 서북쪽 산맥들은 장관이다. 톱니처럼 이어지는 바위산들의 사이에 서두수가 뱀처럼 꾸불꾸불 뚫고 나간다. 서두수는 급류가 되어 바위에 부딪혀 물보라를 날린다. 그 계곡에 불곰들이 있었다. 여섯 마리의 불곰들이 계곡에서 산천어사냥을 하고 있다. 그런 곰들에게 잡힐 산천어가 아니다. 가끔 바위 위로 떨어지는 산천어가 있었으나 배가 차지 않는다. 그러나 계곡물이 워낙 급류라 뛰어들 용기는 없다. 눈앞에 고가를 두고 잡지 못해 안달이 난 곰들에게는 다른 먹이가 필요하다. 곰의 영토인지 모르고 들어온 사람들은 좋은 먹잇감이다. 정오께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던 이포수가 가느다란 연기를 발견했다. 바위산 중턱인데 동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를 발견했으나 산 두 개를 넘어야 한다. 산을 넘다가 총소리를 들었다. 박가의 총소리다. 단발 무라다 구식 총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났다. 산탄총은 참새나 노루 따위를 잡는 데 사정거리가 짧고 관통력이 약해서 곰사냥을 하는 것은 위험하나 박가는 그 총으로 범, 표범, 곰들 맹수를 잡았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 단 한 발로 급소를 맞추기 때문이다. 급소는 심장이다. 단 한 발로 심장을 맞추지 못하면, 특히 곰은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서 심장에 총을 맞고도 10m를 달리는데 그 거리에 사냥꾼이 있으면 곰에게 찟겨 죽는다. 그런 사냥은 박가만 할 수 있다. 이포수가 모닥불을 피웠다. 모두 허기가 져서 보리밥이라도 먹어야 한다. 이포수가 모닥불에 일부러 관솔과 생솔나무를 던져넣어 연기를 피워올렸다. 박가에게 소재를 알리기 위해서다. 동굴 안에 피신한 마을 사람들도 연기를 볼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수색을 시작했는데 박가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모닥불 흔적을 발견하면 곧바로 따라올 것이다. 발자국 추적의 명수인데 항차 모닥불이랴. 날이 어두워져 야영을 하려고 할 때 박가가 나타났다. 피투성이고 비린내가 났다. 박가는 쓸개가 붙어있는 내장을 들고 왔다. 잡은 곰 껍질은 나무에 걸어놓고 왔다고 했다.

그놈의 고기는 못 먹어요. 뱃속에서 사람의 팔목이 나왔으니까.’

며칠 전에 잡아먹은 젊은 심마니의 시신이다.

다음날 새벽, 아직 날이 밝지도 않았는데 박가가 동굴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자 이포수가 제지했다.

어디를 가겠다는 거야?’

마을 사람들을 빨리 찾아야 할 게 아닙니까?’

안 돼! 수색은 다 함께 해야 해.’

이포수는 박가의 속셈을 눈치채고 있었다. 배신한 여인과 정부를 발견하면 이포수가 말리기 전에 처치하려는 속셈이다. 박가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있다. 오후에 바위산에 도착했는데 곰의 발자국이 여기저기에 찍혀있었다. 마을을 덮쳤던 늙은 곰의 발자국이다.

이놈이 또 사람들을 덮치려고 해. 부상한 사람을 자기가 잡은 먹이로 알고 찾으려는 거야.’

부상자들이 피를 흘리고 있어 피 냄새에 민감한 곰이 따라붙었다. 피고름의 고약한 냄새가 곰을 유인했다. 곰은 썩은 고기도 먹는 악식가(惡食家). 연기가 나는 동굴을 발견했다. 꽤 깊고 넓은 동굴인데 사람들은 그 동굴에서 며칠 동안 꼼짝도 못 하고 누워있었다. 처참하다. 모닥불에는 박쥐, 뱀 등을 구워 먹은 흔적이 남아있고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은 일어나지도 못했다. 수색대가 동굴 안에 들어서자 그들의 표정에는 불안감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촌장은 수색대에 경찰이 없다는 걸 알고 안심하는 눈치다. 지난해 그들은 산림을 개간하려고 산불을 놓았다. 화전을 일구려는 것이다. 화전을 만들어 감자나 보리, 옥수수를 심는다. 허가 없이 화전을 일구면 감옥에 간다. 범죄자도 있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도둑질을 한 자도 있고, 횡포를 부리는 일본 관헌들을 폭행하고 도망친 사람도 있으며, 더러는 살인자도 있고, 박가의 처처럼 간통을 하고 도망친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두만강을 건너 만주 땅으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쫓아오는 곰 때문에 동굴에 갇혔다.

그 년놈 어디 있어?’

동굴에 들어서자 말자 박가가 고함을 쳤다. 총을 들어 올렸다.

다쳤어요. 아주 심하게 다쳐 다른 동굴에 있어요.’

그년은 어디 있어!’

함께 있을 거요.’

박가가 뛰쳐나가려고 했는데 이포수가 고함을 질렀다.

그 총 내려놔!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박가가 총을 이포수에게 넘겼다. 시무룩했으나 대들지는 못 했다. 성질이 거칠어 아무에게나 대드는 박가였으나 오직 이포수에게는 복종한다. 박가뿐만 아니라 촌장과 마을 사람들도 이포수의 지시를 받았다. 이포수는 무산 일대의 대부다. 정부(情婦)와 총각이 위험하다. 부상을 입힌 곰이 따라다닌다. 비단 곰뿐만 아니라 짐승들은 자기가 잡으려다가 놓친 먹이에 집착한다. 더구나 먹이가 피를 흘리면 끝까지 따라가 잡는다. 곰은 피 냄새를 십 리 밖에서도 감지한다. 남녀가 은거한 동굴 주변에 곰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방금 찍힌 발자국이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사냥꾼들이 오는 걸 알고 피한 것이다. 동굴 입구에 모닥불이 있으나 연기만 올라왔다. 동굴 안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고 상처가 곪은 역겨운 냄새가 났다. 이포수의 손전등 불빛 속에 남자가 누워있었다. 피고름을 흘리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겨우 숨을 부지했다. 남자가 눈을 떴으나 공포심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박가를 보자 비명을 질렀다.

살려주시오!’

죽일 것도 없다. 죽어가고 있다.

그년은 어디 있어!’

박가가 고함을 쳤다. 박가의 관심은 그년에게 있다.

도망갔어요. 날 버리고 도망갔어.’

남의 아내를 빼앗은 그는 그녀에게도 버림받았다. 이포수가 청년의 눈을 감겨주었다. 이포수가 청년의 임종을 지켜보는 사이 박가가 사라졌다. 이포수가 박가의 뒤를 따랐다. 배신한 여자를 죽이기 전에 여인을 구출해야 한다.

여인의 발자국과 추적하는 박가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여인이 계곡으로 도망갔다. 여인도 계곡으로 가면 불곰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쪽으로 도망갔다. 여인은 곰보다도 박가가 더 두려웠다. 몇 년 동안 자기를 쫓고 있는 박가에게 잡히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 사나이가 자기를 잡으면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 그 사나이는 복수심에 불타고 있다.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도망친 여펜네를 용서해줄 리가 없다.

빨리 찾아야 해!’

이포수가 다른 사냥꾼들을 재촉했다. 계곡에는 산천어를 잡으려는 곰들이 모여있을 것이다. 산천어를 잡지 못해 신경질이 난 곰들이 제발로 뛰어든 먹잇감을 가만 보고 있을 리 없다. 여인은 계속 몇 시간째 계곡을 따라 도망가고 있다. 상류에 다가가자 곰들이 보였다. 그런데 해가 떨어지고 있다. 계곡이 어두워지고 있다. 사람의 눈은 밤에는 무력하다. 곰은 근시이고 밤눈이 어두웠으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십리 밖에서도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코와 귀가 있다. 박가가 아무리 사냥을 잘해도 밤에는 별수 없다. 더구나 총도 없고 맨손이다. 곰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기를 내뱉는 소리다. 이포수가 멈췄다. 여인과 박가만 위험한 게 아니다. 이포수가 냄새를 느꼈다. 이포수의 코는 여느 사람과 다르다. 노련한 포수만 감지하는 느낌 같은 것이다. 육식동물의 시큼한 냄새가 풍겼다. 귀에도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백관(400kg)이나 되는 거대한 짐승이 모래를 밟는 소리다. 이포수가 총신에 묶어놓은 손전등을 켰다. 어둠을 뚫고 나간 불빛에 괴물이 나타났다. 불과 10m.

곰이 두 발로 서있다. 먹이를 덮칠 때 취하는 자세다. 이포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곰은 두꺼운 지방층을 가진 짐승이며 웬만한 총탄에는 쓰러지지 않는다. 범이나 표범은 총 한 방에 쓰러져 죽지만 곰은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포수가 쏜 총탄이 바로 가슴팍을 뚫었다. 피지직! 총탄이 두꺼운 지방층을 뚫고 들어가는 소리다. 이포수의 총은 예사 총이 아니다. 당시 총독부는 조선인은 물론이고 일본인에게도 산탄총만 허가하고 라이플은 허가해주지 않았다. 산탄총은 새나 토끼, 노루 따위를 잡는 총이며 사정거리도 짧고 관통력도 없다. 그러나 라이플은 총탄이 회전하며 날아가는 총이며 강력한 관통력이 있다. 그래서 총독부는 요인 암살을 염려하여 소지를 금지했는데 총독부 촉탁엽사인 이포수에게만 라이플을 허가했다. 당시 조선에 좋은 사냥터가 많다는 소문이 나서 외국의 귀빈들이 빈번하게 조선에 들어왔는데 총독부는 이포수에게 외국 귀빈들의 사냥 안내를 맡겼다. , 표범, 곰들의 사냥에는 귀빈들의 신변안전과 보호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포수에게만 라이플을 허가했다. 이포수의 라이플은 영국제 좌우 2연발이며 총신이 두 개 나란히 달려있고 값은 8,000엔이다. 서울 장안의 기와집 서너 채 값이다. 그 라이플이 이포수를 살렸다. 총탄이 지방층과 근육층을 뚫고 갈비뼈를 통과해서 심장에 박혔다. 아무리 강한 짐승도 심장에 직격탄을 맞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 하고 비명을 지르며 곰이 주저앉았다. 커다란 수컷이다.

그놈은 죽었어. 내버려 둬!’

이포수가 달려온 사냥꾼들에게 소리쳤다. 다시 추적을 했다. 총소리가 난 뒤 5, 6분 뒤 계곡 상류에서 불빛이 보였다. 박가다. 소재를 알리려고 불을 피웠다. 이포수도 소재를 알리기 위해 공포를 쏘면서 달려갔다. 연달아 발사되는 총소리가 곰들에게 위협이 되어 사람에게 덤벼들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박가가 모닥불 옆에 앉아있고 그 곁에 여인이 있었다.

괜찮아?’

이포수가 물었으나 박가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착잡한 표정으로 여인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다. 몇 년 동안 잡아 죽이겠다고 눈에 불을 켰으나 막상 잡아놓고 보니 그 기분은 사라진 것 같았다. 안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여인이 죽지 않고 살아 자기 옆에 있다는 안도감이다. 여인에 대한 미련이다. 여인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포수가 턱짓으로 여인을 불렀다.

불울 더 키우고 먹을 걸 좀 만들어.’

이포수가 박가에게 총을 던져주었다.

내일은 새벽부터 곰사냥을 해야 해. 눈을 좀 붙여.’

이포수는 주변을 돌아다니는 곰을 심안(心眼)으로 볼 수 있다. 박가도 그렇다. 토끼고기와 꿩고기가 다갈색으로 구워지고 보리밥이 구수하게 김을 내며 끓고 있다. 첩첩산중에서 작은 잔치판이 벌어졌다. 이포수가 술잔을 돌리고 박가 받았다. 사랑과 증오의 갈림길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내를 안심시켜야 한다. 여인도 박가가 그녀를 죽일 생각이 없다는 걸 알려주고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당분간 이포수가 여인을 보호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박가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나리가 마구 총을 쏘았기 때문에 곰이 멀리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래도 잡아야 해. 두만강을 건너서라도 끝까지 따라가 죽여야 돼.’

그렇게 하지요.’

박가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사냥꾼은 사냥을 해야 한다. 사냥에 일생을 걸고 보람도 느낀다. 다음날 새벽에 사냥꾼들이 곰의 발자국을 쫓았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들판이 파랗게 살아나고 있다. 수액 냄새가 상큼하고 달콤한 들꽃 냄새가 떠돌았다.

나리, 이걸 보세요.’

그날 오후 산을 두 개 넘었을 때 박가가 걸음을 멈췄다. 새끼 곰의 뼈와 털이었다. 생후 5개월쯤 되었을까.

늙은 불곰의 소행이다. 그놈은 동족을 잡아먹었다. 불곰은 배가 고프면 자기 새끼도 잡아먹는다. 이포수가 현장을 샅샅이 살폈다. 어미 곰의 발자국이 있다. 어미 곰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수컷과 싸웠다. 수컷은 암컷보다 월등하게 크고 힘이 세다. 암컷이 항거해도 당하지 못한다. 암컷은 수컷의 앞발치기에 맞아 쓰러지고 수컷은 새끼를 물고 가버렸다. 어미곰이 일어나 수컷의 뒷발을 물고 늘어졌다. 수컷이 어미 곰을 뿌리쳤으나 상처를 입었다. 암컷도 비틀거리며 도망갔다.

어미 곰을 잡으면 안 돼! 어미 곰을 쫓지 마.’

사냥꾼들의 추적은 빨랐다. 박가는 일일이 발자국을 추적하지 않았다. 곰이 어디로 가는가를 짐작하고 추적했다. 곰이 몰렸다. 상처가 곪았다. 곰이 비틀거리면 도망갔으나 서두수가 앞을 가로막았다. 서두수가 격류가 되어 두만강을 흘러가기 때문에 곰은 강을 건널 수 없다. 추적 사흘째 곰은 뒷다리를 쓰지 못했다. 추적 나흘째, 높은 산에 올라갔다. 두만강본류가 멀리 푸른 선으로 보인다. 곰은 고통으로 누워서 쉬었다. 사냥꾼들이 쉬지 않고 곰을 몰아부쳤다. 나흘 동안이나 잠을 설치며 걸었는데 사냥꾼들은 별로 지친 기색이 없다. 그게 무산의 사냥꾼이다. 산에서 태어나고 산에서 자란 사냥꾼이다. 그날 밤 사냥꾼들이 야영을 하고 있을 때 멀리 불빛이 보였다. 파람 점들이 산기숡에서 명멸했다. 이리들이다. 그곳의 이리는 늑대와 다르다. 덩치가 크고 20(80kg)이나 된다. 그들이 무엇인가 사냥을 하고 있다.

다음날 새벽에 불곰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분노에 찬 고함 소리다. 늙은 불곰이 산림 어귀에 있었다. 피투성이다. 불곰은 이리 한 마리를 앞발로 짓누르고 있었는데 이리는 이미 죽은 것 같았다. 대여섯 마리의 이리들이 주위를 포위했으나 덤벼들지는 못 한다. 불곰은 쇠약했지만 이리 따위는 상대가 아니다. 사냥꾼들이 나타나자 불곰이 도망치려 했으나 뒷다리 하나를 쓰지 못해 비틀거렸다. 이리들이 물러나지 않았다. 다 잡은 먹이를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빨을 까뒤집으며 으르렁거렸다. 박가가 불곰에게 다가갔다. 박가는 불곰의 몇 발자국 앞에까지 갔으나 총을 쏘지 않았다. 고통과 공포에 질려 떠는 불곰을 가만히 보고 있다.

이 새끼, 이젠 네 놈이 죽을 차례야. 사람을 잡아먹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냐?’

불곰이 아가리를 벌리며 독기를 토해내며 달려들었다. 박가가 그놈의 대가리에 청탄을 박아넣었다. 쓸개와 껍질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대가리를 쏘았다. 여섯 명의 사냥꾼들이 들것을 만들어 불곰을 운반했다. 백관이나 되는 놈이었으므로 힘겹게 운반했다. 마을에는 경찰서장이 여섯 명의 순경을 데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순경을 보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포수가 말렸다. 화전을 만들려고 산불을 놓았으므로 잡혀갈지 알았다.

괜찮아, 내가 처리할 테니 걱정 마.’

이포수는 무산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경찰이나 군수의 힘은 산골까지 미치지 못한다.

노고가 많습니다!’

일본인 경찰서장이 이포수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마을 사람들의 눈이 둥그레졌다. 그 늙은 곰은 여섯 사람을 죽였고, 일본 산림계직원도 포함되었다. 식인 곰을 잡은 공로는 경찰서장이 받는다.

알았습니다.’

경찰서장이 마을 사람들의 화전을 인정했다.

 

144. 산서 산맥의 큰 산양(山羊)

중국 서북단과 몽골 동북단에 산서산맥이 걸쳐있다. 높이 3,000m가 넘는 산들이 첩첩이 이어진 산맥인데 거기에는 큰 산양들이 살고 있다. 아르가리라고 불리는 그 산양은 산양 종류 중에서 가장 크고 당당하다. 어깨높이가 1~2m, 몸무게가 200kg이 되는 거물이었으며, 2m나 되는 뿔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면서 대가리를 장식하고 있다. 놈은 산사산맥의 왕이며 범이나 표범도 발굽에 차여 횡사한다. 그러나 아르가리는 높은 고산지대에 서식하기 때문에 세계의 박물관에는 없다. 그래서 1928년 영국의 탐험가들이 아르가리를 잡으려고 중국과 몽골의 국경지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은 맹수들이 우글거릴 뿐만 아니라 산적들의 소굴이었으므로 중국당국은 목숨을 보장 못 한다면서 여행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탐험대는 목숨을 걸고 들어갔다. 탐험대는 동물학자 로날드 박사와 그의 조수 리차드 교수, 지질학자 바이켈 박사와 그의 처 식물학자 낸시 여사 그리고 그들을 경호하는 수렵가 소로프 포수, 그의 조수 중국인 양인달 포수다. 중국당국은 탐험대가 거기에 들어가는 것까지도 금지하여 호텔에 억류시켰으나 소로프 포수와 양인달 포수가 그들을 경호한다는 조건을 붙여 억류조치를 해제했다. 두 포수는 범과 표범을 열 마리나 잡은 유명한 포수다. 탐험가 일행은 늦가을 국경지대의 주막酒幕에 도착했다. 500평이나 되는 앞마당이 있고 열서너 대의 소달구지와 당나귀 달구지가 들어서 있는 굉장한 주막이다. 소와 당나귀들이 지르는 소리로 주막은 소란스러웠고 그들의 배설물 냄새가 고약했다. 초저녁이었으므로 부엌에서 나오는 하얀 김과 새카만 연기가 흘러나와 주막 마당을 덮었다. 안마당을 빙 둘러 수십 개의 방이 있고, 백여 명의 유숙객이 떠들고 있었으며 장터처럼 붐비고 시끄러웠다. 방에서는 유숙개들이 화로를 둘러싸고 이 사냥을 했다. 옷을 벗어 화롯불에 쬐면 이들이 톡톡! 떨어져 죽었다. 방에는 벼룩도 있어 손바닥으로 벽을 치는 소리도 요란하다. 탐험대들이 들어간 방벽에도 빈대 핏자국이 있었다. 아무래도 편하게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재미도 있다. 주막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였다. 마치 중국의 축소판이다.

유숙객들 중에는 지방 토호들이 있다. 비단옷을 입은 뚱뚱한 지주가 전족(纏足)을 해서 잘 걷지도 못하고 뒤뚱거리는 세 명의 부인과 머물고 있고, 서너 명의 하인들이 시중을 들었다. 그들은 넓고 깨끗한 방을 차지하고 전속 요리사가 부엌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주막에서 가장 좋은 방을 차지한 사람은 그들이 아니다. 객실까지 붙어있는 호화로운 방에는 관리들이 묵었다. 그 일대를 관장하는 군대와 행정관청에서 나온 감독관들이다. 아직 초저녁이었는데 술상을 벌였다. 그게 그 당시 중국의 실상이다. 상인들도 있다. 중국은 본디 상인들이 많다. 유숙객 중에는 소달구지에 냄비, , 농기구 등 상품을 산더미처럼 싣고 다니는 대상(大商)도 있고, 여자들이 사용하는 거울, 빚 등을 몇 개씩 갖고 다니는 행상(行商)도 있으며, 약초나 호골(虎骨) 등 강장제를 파는 약장수도 있다. 자칭 천하가 다 알아준다는 전설적인 명의 화타와 편작에 버금가는 의사도 있고, 점을 잘 치는 스님도 있다. 10분 만에 머리를 깎아주는 이발사, 헌 옷을 수리하는 여인들도 있다. 떠돌이 연예인도 있어 뱀 껍질로 만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들보다 더 화려한 치장을 한 여인들이 방을 돌아다니며 웃음을 팔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단정한 옷차림을 한 중년 사나이가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술을 사주었는데 눈빛이 날카로웠다. 양포수가 그를 주목했다. 눈빛과 잘 단련된 몸집으로 봐서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산적의 첩자입니다.’

첩자는 정보를 수집한다. 외지사람들의 동태다.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그곳에 왔고, 그중에 돈이 많은 사람이 누구인지 살폈다. 첩보원들은 군대나 관공서에 들어가서도 정보를 수집했는데 한 번도 발각된 예는 없다.

그렇다면 저 사람을 잡아야겠군.’

단장인 로날드 박사가 말하자 양포수가 웃었다.

그러는 것보다 그를 역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탐험대에서 약탈당할 물건은 서너 자루의 총뿐이라는 걸 첩자가 알게 해주고, 탐험대에는 유명한 포수가 끼어있고, 중국 중앙정부에서 보낸 경호원이 붙어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산적들이 그 사실을 알면 감히 탐험대를 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갈 산에는 산적들이 얼마나 있지요?’

수백 또는 천 명이 넘을지도 모릅니다.’

북경에 있는 중앙정부가 여권을 내주지 않은 이유를 알만하다. 위험하다. 그러나 탐험을 중지할 수는 없다.

왜 중국군대나 정부는 산적을 소탕하지 않소? 내가 보기에는 꽤 많은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

양포수가 또 웃었다. 첫째 이유는 그 산적들은 비교적 신사적이다. 그들은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을 만나면 우선 협상을 한다.

무사히 통과시켜줄 테니까 얼마를 내놓을 것이냐? ’통행세가 너무 작으면 더 내놓으라고 하고, 협상이 결렬되면 실력행사를 하는데 그래도 가급적 죽이지는 않는다. 돈이나 물건만 약탈하고 피는 흘리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 산적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 군대가 출동하기 때문이다. 군대와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 평화란 좋은 것이고 서로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 군대로 봐서도 군대가 아무리 강해도 첩첩산중에서 산적들과 싸우는 것은 위험하다. 산적들이 지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군대에게 당하지 않는다. 그래도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싸움이 벌어지면 수백 명의 군대가 요란한 전진 나팔을 불면서 쳐들어간다. 군대가 총을 마구 쏘기 때문에 산적들이 전멸할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산적들은 응사를 하지 않는다. 총탄이 아깝기 때문이다. 슬금슬금 물러난다. 도망가는 게 아니라 도망가는 척한다. 산적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죽을 리 없다. 군대가 공포를 쏘기 때문이다. 군대는 되도록 많은 총탄을 소비해야 한다. 그래야 상부로부터 많은 총탄을 공급받는다. 군대의 사령관은 싸움이 끝난 뒤에 이렇게 상부에 보고한다.

‘0000, 본 부대는 산적들과 교전하여 산적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산적들은 멀리 도주했음. 전투는 치열했고 본 부대는 수만 발의 총탄을 소비했음. 총탄의 보급을 요청함,’

그래서 상부에서 총탄이 보급되면 군사령관은 산적들과 교섭을 했다. 산적들이 그 동안 행인들로부터 약탈한 돈을 받고 새로 공급받은 총탄을 넘겨준다. 교섭은 성공하고 군사령관과 산적들은 축하연을 벌인다.

탐험대 일행은 산적의 첩자가 숙소 주위를 돌아다니는데도 모른 척했다. 주막에 상주하는 중국 관리들도 역시 모른 체하고 있었다. 그들이 산적 첩보원을 모른 체하는 이유는 첩자를 체포하면 산적의 영업방해가 된다. 첩자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어야 산적은 돈 많은 여행객을 털 수 있고, 그래야만 그곳에 주둔하는 군대도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탐험대 일행도 그곳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는데 그 정보를 종합한 결과 산서산맥의 산적들도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산적들은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큰 산양 등 귀중한 동물들을 보호했다. 산적들이 있기 때문에 밀렵꾼들이 사냥을 못 했다. 탐험대 일행은 주막에서 사흘을 지낸 뒤 출발했다. 빈대와 벼룩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해 눈이 부었고 이가 들끓어 피부병이 생겼다. 바깥에도 황토 바람이 불었다. 중국 서북부 일대는 온통 황토의 나라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10m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가 내리면 또 온통 진흙탕이 되어 트럭이 주저앉았다. 일행은 악전고투 끝에 다음날 오후에야 산기슭에 도착했다. 황토 먼지는 사라졌으나 앞길은 수천 미터나 되는 바위산이 가로막았다. 군데군데 산림이 있었으나 황량하다. 일행은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했는데 좀 춥기는 했으나 오랜만에 잠을 잤다. 밤중에 늑대들이 나타나 주변을 돌아다녔으나 감히 덤벼들지는 못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산적들이 나타났다. 모닥불을 피웠으니 모를 리 없다. 서른 명쯤 되었는데, 중국식 솜옷을 입은 놈, 양복 차림, 군복을 입은 놈까지 있었다. 총도 군용 라이플, 산탄총, 화승포까지 다양하다. 모두 털투성이고 우락부락하다. 그래도 상하 질서는 확연하다. 두목이 앞으로 나오며 인사 대신 큰 기침을 했다.

가지고 있는 돈과 물건을 다 내놔! 목숨이 아까우면 시키는 대로 해.’

일행을 경호하던 중국 관리 두 사람이 나섰다. 눈짓으로 두목을 옆으로 불러내더니 밀담을 나눴다. 잠시 후 두목이 돌아와 다시 큰 기침을 했다. 관리들이 넘겨준 약간의 돈을 받고 타협이 되었다.

산적들은 주막에 있던 첩보원의 정보를 받고 타협을 했다. 괜히 관리의 보호를 받는 외국인을 괴롭혀서 정부와 충돌하는 것보다는 타협이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그 타협으로 산적의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때 만난 산적은 중국 관리와 한통속인 소위 신사적인 산적이었으며 정말 무서운 산적은 따로 있었다.

탐험대가 바위산을 하나 넘어갔을 때 높은 바위산에서 총소리가 났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열서너 명의 사내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숨어있었다. 50 명쯤 되었는데 대부분이 군복을 입었다. 총도 군용총이다.

군인들이로군.’

단장 로날드 박사는 안심했으나 경호 관리 두 사람은 표정이 창백했다.

저들은 군인이 아닙니다. 군대에서 탈주한 탈영병입니다.’

군대와 경찰에 감금되어있었던 죄수들이 탈옥하여 약탈, 살인을 하고 있었다. 로날드 박사가 관리들에게 상세한 내용을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박사님, 이 일대는 몽고와 접경입니다. 저 능선이 몽고의 영토입니다.’

임무가 끝났다는 말이다. 관리들은 변변한 작별 인사도 없이 황급히 돌아가 버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로날드박사는 탐험을 중단하고 돌아가려고 했으나 이미 때가 늦은 것 같았다. 등 뒤에 있는 산에도 여 명이 넘는 탈영병들이 있다. 탐험대를 포위했다. 경호하는 소로프 포수와 양포수가 심각한 표정이다. 본디 탈영병집단은 가장 흉포하고 잔인한 살육자다. 그들은 사람을 발견하면 무조건 죽여놓고 약탈을 한다. 그들은 탈주하려고 상관이나 경찰관들을 살해한 자들이다. 잡히면 무조건 처형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들이라 두려운 것이 없다. 대상자를 살려주면 자기들의 정보가 새어 나가기 때문에 살려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들과는 타협이 되지 않겠군.’

소로프 포수와 양포수가 단호했다.

싸우자고 했지만 저들은 60여 명이고 탐험대는 여섯 명이다. 총도 네 자루인데 저들은 60자루다. 그것도 강력한 군용총이다.

중국에는 산적들이 많습니다. 특히 북만주의 산에는 산적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요새要塞를 만들어 상주합니다. 그래서 북만주에서 사냥을 하는 사냥꾼들은 짐승과 사람을 동시에 사냥합니다.

당신도 산적과 싸운 경험이 있습니까?’

소로프 포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양포수와 범 사냥을 하다가 열 명쯤 되는 산적들과 싸웠다. 산적들은 범과 총을 빼앗으려고 기습을 했다. 그래서 산적 네 명을 죽였고 나머지는 도망쳐버렸다. 만주와 조선의 국경 지역 원시림에서도 싸웠다. 네 명의 산적들이 미행을 하다가 사냥꾼들이 사슴을 잡는 걸 보고 녹용과 총을 빼앗으려고 습격했다. 산적 두 명이 사살되자 나머지는 항복했다.

사냥꾼과 산적이 싸우면 사냥꾼이 유리합니다. 사냥터이기에 사냥꾼은 산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총솜씨도 사냥꾼이 낫습니다.’

소로프 포수의 말에 탐험대는 용기를 냈다. 바이켈 박사의 부인 낸시 여사도 호신용 권총을 꺼냈다. 산정에 있던 산적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항복을 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말이겠지만 믿을 수 없다. 소로프 포수가 탐험대를 일단 산기슭으로 후퇴시켰다. 작전이다. 후퇴를 하는 척하여 산적들을 속이고 바위틈을 이용하여 산정으로 올라갔다. 조금 전까지 산적들이 있었던 곳이다. 산중턱까지 내려온 산적들은 탐험대가 산정으로 도망친 걸 보고 산정을 포위했다. 도망갈 길을 차단했다. 탐험대는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산적들이 올라오는 걸 기다렸다.

산적들이 총을 난사했다. 난사한 총탄이 맞을 리 없을 뿐만 아니라 총구에서 나오는 불빛이 과녁이 되었다. 소로프 포수가 연사를 하고 양포수도 발사했다. 세 명의 산적이 쓰러졌다. 소로프 포수와 양포수는 어둠 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유격전을 폈다. 어둠을 이용하여 탐험대를 덮치려던 산적들의 계획은 실패하고 오히려 탐험대에게 이용을 당했다. 언제 어디서 총탄이 날아올지 몰라 산적들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산적들이 새벽에 공격을 했다. 우윳빛 안개가 온 산을 뒤덮였다. 산적들이 안개 속에서 몰래 산정으로 올라왔다. 산정에서부터 안개가 서서히 걷혔다. 탐험대가 숨어있었던 산정이 햇빛에 드러났다.

됐다! 공격!’

두목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산적들은 총을 쏘면서 산정으로 올라갔다. 산정에는 아무도 없었다. 산적들의 작전을 눈치챈 소로프 포수가 미리 탐험대를 이동시켜버렸다. 탐험대는 몽고와 중국의 국경이 되어있는 산을 넘어 몽고의 영토인 다른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몽고령으로 들어갔으나 인간사냥을 포기할 산적이 아니다. 산적들이 다시 탐험대를 포위했다. 피를 본 그들이 끝내 복수를 하려고 했다. 탐험대를 버리고 간 중국 관리들이 몽고령까지 지원병을 데리고 와 구해줄 리도 없다. 절망 상태다. 산적들과 싸우느라 총탄도 거의 바닥이 났다. 산적의 포위망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한가닥 희망이 있다. 탐험대가 산서산맥의 큰 양을 연구할 계획을 세웠을 때 중국 정부뿐만 아니라 몽고의 자치정부에도 협조를 구했는데 몽고 정부가 두 명의 사냥꾼을 선발해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탐험대가 몽고령으로 들어오면 몽고 사냥꾼들이 사냥 안내를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로날드 단장이 몽고의 사냥꾼들에게 희망을 걸었으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겠다는 심정이다. 몽고의 사냥꾼들과 언제 어디서 만나겠다는 약속도 아니고 설사 그들을 만나더라도 두 명의 사냥꾼들이 이 곤경을 벗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50여 명에게 포위된 탐험대가 탈출할 희망은 없다. 그날 정오께, 절망적인 상황에서 누군가 산정에서 총을 쏘았다.

산적이 아니다. 울긋불긋한 옷을 입었다. 무대의 배우처럼 화려한 옷차림이다.

몽고인입니다.’

그 옷은 몽고의 정장이다. 빨간모자도 그렇다.

아니? 저 사람들이 .’

망원경으로 몽고인을 관찰하던 로날드 단장이 크게 놀랐다. 몽고인은 두 사람인데 말을 타고 있었다. 높이가 2,000m가 넘는 험한 바위산에서 말을 타고 돌아다니다니? 어처구니없는 짓이었으나 몽고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 몽고인들은 말을 타고 세계를 정복했다. 징기스칸은 세계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했다. 그 세계정복의 원천은 말이다. 몽고인들은 태어나면서 말을 탄다. 걷기 전에 말부터 탄다. 말 위에서 밥을 먹고, 말 등에서 잠을 자고, 배변도 한다. 바람처럼 쳐들어오는 몽골의 기마전사를 어떤 민족도 어떤 나라도 당해낼 수 없었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몽고의 말발굽 아래 무릎을 꿇었다. 거칠게 키워 세계에서 가장 강인한 말과 양고기 건포 한 자루와 양가죽주머니의 물 그리고 칼 한 자루로 보급부대도 필요 없이 세계를 정복했다. 로날드 단장이 총을 쏘아 몽고인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몽고인들이 손을 흔들었다. 다음 순간 그들이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말을 탄 몽고인들이 다시 산날에 나타났다. 산날을 타고 달렸다. 바람처럼 빨랐다.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산정에 나타났다. 몽고인들이 산정에서 탐험대를 포위한 산적들에게 총을 쏘았다. 말을 달리면서 총을 쏘았다. 산적들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사냥꾼은 나뉘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산적을 공격했다. 총을 쏠 때마다 비명이 들렸다. 산적은 말을 달리며 기습을 하는 몽고사냥꾼을 대항할 수 없었다. 사냥꾼들은 바위를 굴렸다. 사냥꾼이 싸우고 있을 때 지원 사냥꾼들이 도착했다. 산적들은 더 이상 대적을 못 했다. 산적들이 도망갔다. 사냥꾼들이 산적을 중국의 국경 너머로 쫓아버렸다.

안녕, 서양 손님!’

몽고 사냥꾼들이 웃으며 인사했다.

큰뿔산양을 잡겠다고? 어렵지 않아요. 우리가 도와드리지요.’

사냥꾼 두목 칸타이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동생과 함께 산적을 쫓아버린 사냥꾼이다. 아직 30대의 다부진 몸매를 가진 사냥꾼인데 몽고의 사냥꾼들은 모두 다 그를 알고 있다. 몽고의 영웅이다.

아주 큰 산양을 잡겠다는 것입니까?’

큰 산양뿐만이 아니다. 탐험대는 영국박물관의 요청에 의해 산양의 암수와 어미 배에서 갓 태어난 새끼에서부터 아주 늙은 산양까지 모두 잡아야 한다. 큰뿔산양의 완전한 포본이다. 할 수만 있다면 살아있는 산양도 잡아야 한다.

좋소. 한 달쯤이면 됩니다. 한 마리 정도는 사로잡을 수도 있고.’

본래 몽고인들은 대언장담(大言壯談) 허풍을 떠는 버릇이 있다는데 중국인 양포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중국인과 몽고인은 예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몽고인이 한 때 중국을 정복했었던 기마민족이기 때문에 몽고인은 중국인을 깔보는 성향이 있고, 중국인은 몽고인을 야만족이라고 평가했다. 칸타이 포수는 대언장담하는 사내가 아니었다. 그는 산서산맥 서쪽 몽고령에 서식하는 큰뿔산양을 잘 알고 있다. 모두 3,000마리쯤 살고 있는데 그들은 높이 2,000m의 바위산을 맘대로 뛰어다니고 있어 중국인들에게는 큰뿔산양은 감히 접근조차 어려웠다. 몇 년 전, 영국의 사냥꾼들이 큰뿔산양을 잡으려다가 높은 언덕에서 떨어져죽었다. 여섯 명의 사냥꾼 중에서 한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중상을 입은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대규모 사냥이라 탐험대는 산기슭에 간이천막을 치고 나무, , 흙으로 사냥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칸타이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렸다. 산기슭에 초원이 있고 몽고인들이 사는 집들이 있어 그 집을 한 채 산에 옮겨놓으면 된다고 했다. 탐험대는 어이가 없었다. 집을 어떻게 옮긴다는 말인가? 하지만 몽고인들은 집을 옮겼다. 다음날 정오께 몽고인의 집이 옮겨졌다. 겔이라고 불리는 천막집인데 탐험대가 다 들어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넓다. 몽고인들은 겔을 분해하여 말에 싣고 운반했다. 그리고 다시 조림하여 지붕을 덮었는데 소요 시간은 단 하루다. 대언장담이 아니고 몽고인들은 탐험대들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다음 날 아침부터 큰뿔산양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산정에 산양 두목이 우뚝 서 있다. 말만큼 크고 당당한 놈이다. 총소리가 울리고 사냥꾼들이 말을 타고 돌아다녔는데도 산양은 도망가지 않았다. 산서산맥의 왕자인 큰뿔산양들은 그까짓 것에는 겁을 먹지 않는다. 두목 주변에 젊은 산양들이 진을 치고 새끼를 거느린 암컷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바위틈에서 자란 이끼 종류의 풀인데 식물학자인 낸시 여사는 그 풀이 단백질과 미네랄이 농축된 고단위 영양소라고 했다. 산양은 시력이 좋아 탐험대가 가지고 있는 망원경보다 더 멀리까지 불 수 있다. 사냥꾼이 접근해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두목은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사냥꾼의 동태를 살폈다. 그렇다면 쉽게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냥꾼들이 구릉을 하나 넘어간 사이에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몽고 사냥꾼이 저쪽 산정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나 망원경으로 보니 두목이 있다. 전에 있던 산정과 지금 산정의 거리가 1,000m가 넘는데 어느 사이에 거기까지 달려갔을까? 산서산맥의 산양은 천리안과 무쇠 다리를 갖고 있다. 튼튼한 다리와 단단한 각질의 발굽, 발굽 안 바닥에는 고무처럼 부드럽고 탄력 있는 근육이 있다. 그 고무바닥을 자유자재로 부풀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바위에 밀착시킨다. 발바닥에서는 진득거리는 액체가 분비되어 발굽이 바위에 부딪힐 때 생기는 열을 식혀준다. 조물주는 치밀했다. 산양의 발굽 주변에는 거친 털들이 밀생되어 있는데 그 털이 바위에 부딪힐 때 충격을 완화시킨다. 그 털들 때문에 산양이 바위를 달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말발굽과 다르다. 사냥꾼들이 접근하자 산양들은 또 산날을 타고 도망쳤다. 바람처럼 빠르다. 탐험대는 비로소 산양들이 잡히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세계의 동물원이나 박물관에 산양을 전시하는 곳이 매우 드물다. 그러나 이번에는 꼭 잡아야 한다. 그놈들을 잡기 위해 수만 리 떨어진 영국에서 왔다. 몽고의 사냥꾼들이 작전을 바꿨다. 말을 버렸다. 산적을 잡는데 말은 유효하나 산서산맥의 왕자들과 겨루는 데는 방해가 되었다.

밤새 토론을 했으나 산양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밤중에 국경지대에서 콩 볶듯 총소리가 났다.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인가? 총소리에 놀라 산양들이 중국 쪽으로 도망갈 것이다. 요란한 총소리는 무엇일까? 다음 날 아침에 서너 명의 사나이들이 탐험 단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털과 수염이 더부룩한 사나이들은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

옳아!’

관군과 내통하는, 탐험대와 협상을 한 자칭 신사적인 산적이다. 그 신사적인 산적이 며칠 전 탈영병 산적과 싸웠다. 산적들에게도 소위 영지라는 게 있는데 탈영병 산적이 영지를 침범했기 때문이다. 연이틀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신사적 산적이 승리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신사적 산적은 관군과 연합하여 탈영병 산적을 공격했으므로 탈영병 산적은 전멸했다. 처음에는 탈영병 산적이 수적으로 우세했으나, 탈영병 산적은 탐험대와 싸워 20여 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고, 출동한 관군이 200여 명이나 되었으므로 참패했다. 큰 공을 세운 관군은 탈영병의 시신을 모두 수거해서 끌고 갔다. 탐험대가 사살한 시신도 함께 가지고 가서 전과를 부풀렸다. 부대장이 진급하고 많은 포상금을 받았다. 신사적 산적 두목이 우선 영국제 담배 한 갑과 위스키를 달라고 했다. 자기들끼리 천천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더니 말했다.

큰뿔산양을 잡으려는 걸 알고 있소. 도와줄 테니 미국 돈 3,000달러를 주시오.’

어떻게 산양 잡는 걸 도와줄 수 있소?’

국경지대의 산양을 몽땅 당신들에게 몰아오겠소.’

그깟 3,000달러쯤 문제 될 것 없다. 산양 한 마리 값도 안 된다.

로날드 박사가 약속했다. 그런데 정말일까? 산적들은 즉시 몰이를 시작했다. 수십 마리의 산양이 중국에서 몽고로 넘어왔다. 기가 막히는 솜씨의 몰이꾼이다. 로날드 박사가 망원경을 살펴보니 산양을 모는 것은 산적만이 아니라 군복을 입은 중국군도 함께 몰이를 한다. 산적은 고작 30여 명이었으나 100여 명의 중국군이 가세했다. 기가 막히는 현상이다. 거기에 몽고 사냥꾼 20여 명이 합세했다. 중국 군인, 중국 산적, 몽고 사냥꾼, 영국 사냥꾼과 영국학자까지 200여 명이 큰뿔산양을 몰았다. 큰뿔산양이 아무리 산악지대의 왕자라고 해도 그 수많은 몰이꾼들에게는 어쩔 수 없다. 그날 오후께 약 50여 마리의 큰뿔산양이 계곡에 몰렸다. 계곡 양쪽을 사냥꾼들이 막고 있었으므로 산양은 병풍 같은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 탈출할 수 있다. 탐험대가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산양을 한 마리씩 사살했다. 잔인한 짓이다. 학자들은 가슴이 아팠다. 산양은 문자 그대로 희생양이 되었다. 산양의 사체는 학자들에 의해 해부되어 연구자료가 되고 박물관에 전시된다. 그러나 결론은 산양의 멸종을 막는다. 연구자료에 의해 산서산맥의 큰뿔산양의 보호와 멸종대책이 마련될 것이다. 성별 연령별로 나뉘어 여섯 마리의 산양을 잡았고 새끼 두 마리는 사로잡았다. 탐험대는 산양 두목은 잡지 않았다. 말만큼이나 큰 놈이고 당당한 놈이었으나 그놈은 잡으면 안 된다. 그놈이 살아있어야 산양을 통솔하고 보호할 수 있다. 높은 바위에서 주변을 감시하던 두목은 부하 산양이 사냥꾼들에게 죽어가자 사냥꾼들에게 돌진했다. 무서운 기세로 덤벼들었으며 사냥꾼들이 위협 사격을 해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자폭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냥꾼들이 도망을 갔다. 두목은 날뛰다가 힘이 빠질 때까지 설쳤다.

큰뿔사냥은 성공했다. 관군과 산적들이 도와준 비스포츠적인 사냥이었으나 탐험대의 목적은 표본수집이었으므로 목적은 달성되었다. 사냥이 끝나자 산적 두목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군복을 입은 친구도 한 사람이 같이 왔다. 로날드 박사는 약속대로 3,000달러를 주고 덤으로 담배 열 갑과 위스키 다섯 병을 줬다. 그러자 뒷전에 있던 군복 사내가 산적 두목과 귓속말을 나누었다. 군복 사내가 로날드 박사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으나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중국의 고급장교는 체면을 존중하는 법이다. 산적 두목이 큰기침을 한 번 하더니 로날드 박사에게 말했다. 그는 뭔가 어려운 말을 하려는 것 같았으며 말을 빙빙 돌려 얘기를 했는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통역을 맡은 양포수가 애를 썼으나 역시 잘 되지 읺았다. 양포수는 영어는 잘했으나 중국말이 서툴렀다. 중국인은 같은 중국인이라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중국이 워낙 넓었고 표준말이 없었기 때문에 지역이 다르면 외국과 같다. 답답했든지 군복 사내가 직접 나섰다. 그는 관군의 부대장이라고 소개를 하고 서투른 영어와 몸짓으로 얘기를 했다. 부대장은 사단장 앞으로 로날드 박사가 감사장을 한 장 써주면 대단히 고맙겠다고 했다.

존경하는 사단장님 귀하. 우리 영국탐험대는 산서산맥의 큰뿔산양의 표본수집을 성공리에 목적을 달성했는데, 목적달성에 용맹스럽고 친절한 중국군의 도움을 가능했습니다. 중국군은 사냥의 방해가 된 사악한 산적들을 소탕하고 우리가 산양사냥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큰 공헌을 하였으므로 영국 정부의 이름으로 감사장을 드립니다.’

그 감사장이 어떻게 사용될지는 알만하다. 중국 정부에 감사장을 보내면 중앙정부는 용맹한 사단장에게 포상을 할 것이고, 중장이었던 사단장은 대장으로 진급할 것이다. 따라서 연대장과 부대장도 진급한다. 부대장은 몇 번이나 감사장의 문구를 고친 끝에 만족했다. 그는 수고를 한 산적 두목과도 악수를 했다. 뭔가 또 반대급부가 있을 것이다. 큰뿔산양의 수집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은 박물관에서 로날드 박사에게 몇 가지 더 지시를 했다. 몽고까지 간 김에 몽고 영양의 생태를 조사하고 표본을 수집하라는 지시다. 몽고 영양은 초원이나 사막에 서식하는 소과 동물인데 달리기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동물로 알려졌다.

몽고 영양은 고비사막 등 사막지대에서 수십 마리 때로는 수백 마리가 무리지어 사는데 수컷에게만 긴 뿔이 있다. 상반신은 적갈색 하반신은 흰색이다. 어깨높이가 1m고 날씬하면서도 튼튼한 다리를 갖고 있다. 몽고 영양은 사막의 달리기 선수인데 단거리나 장거리 모두 잘 뛴다. 아프리카에는 수십 종의 영양들이 있으나 시속 80km 이상을 달리는 선수는 없다. 지구력도 약해서 장거리에 약하다. 몽고 영양은 시속 90km를 달린다. 아프리카의 치타가 전속력으로 달리면 시속 110km를 달리는데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비공식조사다. 탐험대는 이번에 몽고 영양의 생태를 조사하며 주력도 조사하기로 했다. 영국의 대학이 몽고 영양을 주력을 조사하는데 필요한 최신형 지프를 보냈다. 탐험대는 몽고 영양의 생태를 조사하기 위해 몽고 사냥꾼 칸타이의 안내로 산서산맥에서 내려와 고비사막 북쪽으로 들어갔다. 반사막이므로 드문드문 풀이 있다. 다음날 몽고 영양을 발견했다. 모래언덕에 50여 마리가 있었다. 곧 늑대가 나타나 영양사냥을 했다. 영양과 늑대가 달리기경주를 했다. 아프리카 초원이었다면 포식자가 풀밭에 숨어있다가 먹잇감을 덮쳤겠지만, 사막에서는 그런 사냥을 할 수 없다. 달리기경주로 승패가 결정된다. 보고 있으니 영양들이 늑대를 갖고 놀았다. 일부러 천천히 달려 늑대가 바짝 다가오도록 해놓고 속력을 낸다. 경주상대가 되지 않아 금방 거리가 벌어진다. 영양은 거리가 벌어지면 늑대들이 따라오도록 기다리다가 늑대가 가까워지면 다시 달아났다. 본래 늑대는 지구력이 강한 짐승이었으나 몽고 영양도 쉬지 않고 몇십 km를 예사로 달린다. 영양과 늑대들이 몇 시간 동안 광막한 사막에서 술래잡기를 했는데 그래도 늑대는 영양을 포기하지 않았다. 생각하기에 따라 늑대들이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생각한다. 몇 시간 동안 영양들의 장난감이 되어 영양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줄곧 달리던 영양무리 중에 탈락자가 생겼다. 늙은 영양 한 마리가 무리에서 낙오되었다. 늙은 영양과 늑대의 거리가 좁혀졌다. 늙은 영양은 필사적으로 달렸으나 거리가 좁혀졌다. 늙은 영양이 도움을 요청하듯 슬피 울었다. 무리는 매정하게 늙은 영양을 두고 달아나버렸다. 늑대들이 늙은 영양을 덮쳤다. 영양 한 마리는 늑대 대여섯 마리의 한 끼 식사로는 충분하다. 그런데 그 게 영양무리에게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자연도태다. 늙고 병든 영양은 도태되어야 한다. 먹이 배분도 많아지고 전염병에 걸릴 염려도 없다.

그날 밤 몽고 겔마을에서 잔치가 열렸다. 몽고인들은 성미가 급하고 화를 잘 냈으나 손님에게는 친절하다. 어떤 외부인도 귀빈으로 환영을 받는다. 광대한 사막에서 사는 몽고인들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몽고인들은 본래 중국인을 싫어했으나 그때는 중국인 양포수외 요리사 진노인도 환영했다. 몽고인 사냥꾼 두목 칸타이는 자기 겔을 탐험대에게 통째로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친척이 사는 겔까지 옆에 붙여주었다. 친척의 겔은 옆마을에 있었으나 해체하고 운반하여 몇 시간 만에 조립했다. 칸타이가 양을 두 마리 잡아 잔치를 벌였는데 양고기가 푹 익었을 때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났다. 마치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 같았다. 말발굽 소리는 겔 밖에서 딱 멈췄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열 마리의 말들이 일제히 급정지했다. 몽고 기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승마 기술이다.

샤이(안녕)!’

열 명의 사나이들이 겔 안으로 난입했다. 모두 울긋불긋 정장을 하였으며 손에 술이나 치즈 등 선물을 들고 왔다.

대체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잔치상을 차리는 칸타이 마누라의 엉덩이를 툭툭! 치는 사내도 있다. 그들 중에는 칸타이의 동생들도 끼어있는데 동생들이 마누라의 엉덩이를 쳐도 칸타이는 웃고 마누라도 좋아한다. 그럴만 하다. 두 명의 동생들은 모두 칸타이 마누라의 남편들이다. 유목을 하는 몽고인들은 일처다부제다. 동생들은 형이 먼 곳으로 양떼를 몰고 나가면 형수와 잠을 잔다. 형제가 한 집에서 교대로 공동의 마누라 방에 들어간다. 마누라가 아이를 낳으면 형제들 중 누구의 아이인지 몰라도 따지지도 않고 공동으로 양육한다. 어차피 형제의 피는 같다.

난입자들은 아직 차려지지 않은 음식을 마구 먹고 손님들이 가지고 온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셨다. 몽고의 풍습이다. 내것 네것이 없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의 물건을 나눠 쓰는 건 당연하다.

몽고 영양을 사냥한다지요? 몽고 영양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사냥하기가 어렵지만 걱정마시오. 우리가 도와줄 테니까.’

그들의 도움 없이 몽고 영양을 잡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시속 80km를 달리는 영양을 무슨 수로 잡을 수 있겠는가? 다음날 영양사냥이 시작되었다. 사냥꾼들이 영양무리를 발견하고 포위했다. 모두 20여 명이다. 그 일대에서 선발된 모두 내노라 하는 베테랑들이다. 열 명이 주력그룹 선발대고 대기 그룹이 양 측면에서 덮친다. 영양은 100여 마리다. 그 사냥에는 최신형 지프가 참가했다. 시속 150km의 속력을 낼 수 있다. 지프는 로날드 박사의 조수 리차드 교수가 운전한다. 영국육군 예비역 장교이며 운전에 능숙하다. 소로프 포수와 양포수도 지프에 동승한다. 탐험대의 다른 대원과 몽고 사냥꾼들이 구릉에서 망원경으로 사냥을 관찰한다. 말과 지프가 합동작전을 펴는 호쾌한 사냥이 시작되었다.

몽고 사냥꾼 두목 칸타이가 공포를 쏘았다. 출발신호다. 모두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몽고영양, 몽고 사냥꾼, 지프가 동시에 뛰기 시작했다. 시야가 탁 트인 사막이었으므로 서로 상대를 보면서 경주를 했는데 그 경주에는 목숨이 걸렸다. 본래 다리가 빠른 주자는 자존심과 경쟁심이 강하다. 육상에서 가장 빠른 치타나 바다에서 가장 빠른 돌고래는 경쟁자를 발견하면 덮어놓고 도전한다. 몽고 영양도 그랬다. 몽고 영양은 흙먼지를 날리며 질주했다. 소문대로 빠르다. 강한 다리로 땅을 차면서 지상 1m쯤 되는 저공에서 뛰었다. 뛰는 게 아니라 날았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이 보이지 않았다. 동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수로 자처하는 몽고 기수도 경쟁 상대가 없어 몸이 근질근질했던 터라 쾌속 질주했다. 바람보다 빨랐다. 모래 먼지가 말 한참 뒤를 따랐다. 리차드 교수도 운전광이라 자처한 만큼 동승한 포수들에게 손잡이를 잡으라고 경고하고 엑셀레이터를 최대한 밟았다. 역시 몽고 영양은 빨랐다. 초반에 승부를 내겠다고 거리를 벌렸다. 500m쯤 달렸을 무렵 몽고 영양과 몽고 말의 거리는 50m로 벌어졌다. 그러나 경주는 그때부터였다. 대기하고 있었던 몽고 사냥꾼 별동대가 경주에 뛰어들었다. 다섯 마리의 말들이 영양들 앞에 나타나자 영양들이 방향을 바꿔 크게 오른쪽으로 돌아 달아났다. 영양들이 바짝 옆으로 따라오는 말들을 따돌렸으나 이번에는 오른쪽에 대기하고 있었던 별동대가 앞을 막았다. 영양들은 다시 크게 좌회전하면서 따돌리려고 했으나 좌측의 별동대가 옆에 붙었다.

좋아!’

지프를 몰던 리차드 교수가 소리쳤다. 지프는 다소 여유를 두고 추격을 했으나 전속력을 냈다. 영국육군이 만든 지프는 역시 성능이 우수하다. 그러나 스피드를 100km로 올렸으나 영양들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그때까지 2,000m쯤 달렸는데도 영양들은 지치지 않았다. 지프가 바짝 따라온 걸 본 영양이 다시 주력을 높였다. 영양은 릴레이식으로 주자를 바꾸며 따라오는 몽고 말과 거리를 다시 벌렸고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지프에게도 선두를 내주지 않았다.

경주가 중거리에서 장거리로 들어갈 무렵에는 영양이 선두가 되고 바로 뒤를 지프가 따라갔으며 몽고 말이 뒤로 쳐졌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장거리경주가 시작된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몽고 말의 주력부대가 뛰어들었다. 주력부대는 지름길로 영양이 달려가는 옆으로 나가 달렸다. 지프는 영양과 평행으로 달렸다. 영양을 앞질러 지프를 세우고 사격을 할 작정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할 문제가 생겼다. 반사막지대에는 군데군데 잡풀이 있기는 했으나 지프가 달리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프는 마구 달렸는데 반사막지대는 자동차 경주장과는 달랐다. 개미들이 문제다. 검은 개미가 여기저기 함정을 파놓았다. 구멍의 직경이 20cm가 넘으면 바퀴가 빠진다. 더 위험한 것은 흰개미다. 검은 개미는 땅속에 집을 만들었으나 흰개미는 땅 위에 고층 건물을 지었는데 그 높이가 30cm 이상이면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흰개미집은 콘크리트 보다 더 단단하다. 리차드 교수는 이미 그걸 알고 조심스럽게 지프를 몰았으나 먼지가 날아올라 앞이 보이지 않았다. 스피드광은 본래 위험성을 경시한다. 영양들과 병행하여 달리던 리차드 교수가 힘껏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영양과 지프가 모두 100km 넘은 속력을 냈는데 갑자기 쾅! 소리가 났다. 흰개미집에 부딪힌 지프가 공중으로 날아갔다. 지프가 2m 이상 공중을 날았으나 다행히 뒤집어지지 않았다. 낙하산처럼 내려앉았다. 사람들도 손잡이를 쥐고 있었으므로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흰개미집과 정면으로 맞부딪친 지프는 전면이 온톨 찌그러졌다. 리차드 교수가 운전석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염려마시오. 난 죽지는 않소. 다리가 부러진 것 같군.’

다른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영양, 말과 지프의 경주는 지프의 참패다. 우승은 몽고 말이다. 몽고 사냥꾼도 그날 사냥은 포기했다. 리차드 교수는 낸시 여사의 응급치료를 받고 울란바토르병원으로 갔으나 지프는 수리 불능 상태였다. 그렇다고 몽고 영양을 포기할 수는 없다. 로날드 단장이 대원들을 푹 쉬게 한 다음 다시 사냥을 하기로 했다. 몽고 사냥꾼들도 사냥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비사막 북쪽 끝에 사는 몽고 영양은 강한 생존력을 가진 동물이다. 무쇠 다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다리로 몽고 말과 영국 최신형 지프를 물리쳤다. 그러나 탐험대들이 조사한 결과 몽고 영양은 멸종위기에 있다. 탐험대가 다음 사냥을 준비하는 동안 영양을 관찰했다. 땅을 1m쯤 파고 움집을 만들어 마른 풀로 지붕을 덮어 그 안에서 자고 먹으며 조사를 했다. 그 일대는 물이 없고 거친 마른풀이 있는데 가축은 그 풀을 먹지 않는다. 소화도 안 되고 영양도 없다. 그런데 몽고 영양은 그 풀을 먹는다. 겨울이면 그 풀이 얼어붙는데 영양은 뿔로 땅을 파서 그 뿌리를 캐 먹었다. 그나마 양이 적어 늘 굶주렸다. 초겨울이었는데 영양무리가 집결하고 있었다. 가족무리로 살다가 겨울이 되면 가족무리가 집결하여 그 힘으로 산다. 수백 마리의 집단은 노련한 두목과 지도자의 지휘 아래 혹독한 겨울을 넘겼으나 무리의 1/5은 죽는다. 강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모래가 섞임 바람이 사막을 뿌옇게 덮고 기온이 떨어졌다. 영양은 밤이면 한군데에 모여 서로 몸을 붙여 체온을 유지한다. 서있는 자세로 눈을 감고 죽은 듯이 잠을 잔다. 탐험대는 영양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았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집념으로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낸다. 나흘 만에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영양을 잡는 일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실태를 알아야 보호할 수 있고 멸종은 막을 수 있다.

탐험대가 신중하게 계획을 세웠다. 사막지대에서 영양을 쫓아 잡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가젤이나 누우를 지프로 추격하여 잡는 것은 쉬웠으나 몽고 영양을 추격하여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프 추격으로 영양이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리는 것은 확인했다. 그런 영양을 몽고 사냥꾼들이 말을 타고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몽고 말은 시속 60km. 몽고 사냥꾼 두목 칸타이가 저번의 실패에 화를 냈다. 수를 50명으로 늘렸다. 먼 곳에 사는 친구들까지 불러 모았다. 흩어져 사는 몽고인들이 50여 명이 모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로날드 단장은 보수를 염려했으나 보수는 필요 없다. 보수란 말에 도리어 화를 냈다. 먼 곳에서 온 친구를 돕는 것이 몽고인들에게는 즐거움이다.

몽고인들이 이번에는 경주를 하지 않기로 했다. 여러 그룹으로 영양을 포위하여 사격대가 움집을 파고 잠복한 곳으로 몰아넣기로 했다. 영양은 그걸 몰랐다. 영양은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으나 그날은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50여 마리의 말과 100여 마리의 영양들이 달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먼지에 싸여 10m 앞도 보이지 않았다. 영양은 포위망을 뚫지 못했다. 몽고 사냥꾼이 사방에서 공포를 쏘아대고 있었기 때문에 겁에 질려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도망갔는데 그곳이 사냥꾼이 숨어있는 움집이었다. 탐험대는 시중했다. 그들은 모두 여섯 마리를 잡을 계획이다. 성별, 연령별로 선발한 영양이다. 그 외 희생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영양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격을 해서 모두 여섯 마리를 잡았다. 뜻하지 않은 덤이 붙었다. 어미를 따라온 새끼영양 한 마리를 생포했다. 쓰러진 어미 옆에서 울다가 사로잡혔다. 생후 3개월쯤 되는 귀여운 새끼는 이전에 사로잡힌 큰뿔산양과 함께 무사히 런던까지 수송했다. 붙잡힌 큰뿔산양과 영양은 해부되어 표본이 되어 전시되고 사로잡힌 큰뿔산양과 몽고 영양은 런던 교외 리치 동물원에서 사육했다.

 

145. 태백산맥의 식인호(食人虎)

조선 시대 정조가 즉위한 지 4, 5년쯤 되던 해 늦가을이었다. 왕실 어용엽사(御用獵師) 박동희 포수는 특별한 왕명을 받았다. 어용엽사는 왕실에 직속된 포수인데 전국 각지의 사냥꾼 중에서 선발된 포수다. 모두 열 명쯤인데 그들 중 일부는 궁중에 상주했다. 본래 조선의 계급사회에서는 포수는 천민이었으나 어용포수는 양반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중인 대접을 받았다. 어용엽사는 녹용, 웅담 등 약재를 조달했고 호피 등 각종 동물의 모피도 공급했다. 그들은 사냥을 하려고 조선에 온 외국 귀빈들의 사냥안내도 하고 전국 각지에서 들어오는 민원에 따라 범, , 늑대 등 인축(人畜)을 해치는 해수(害獸)를 잡았다.

박포수에게 내려진 왕명은 강원도 양구에 가서 식인호를 잡으라는 것이었다. 박포수는 즉시 출발하여 사흘 후 강원도와 함경도의 접경지대에 있는 광주산맥 남쪽 기슭의 포수 마을에 도착했다. 집이 서른 채나 되는 포수 마을이고 대대로 포수 가업을 잇는 포수들이다. 그 마을의 포수는 화승포를 잘 다루는데 마을에는 화승포를 만드는 대장간도 있고 비밀이지만 화약도 제조했다. 화약 제조는 민간에는 금지되었으나 관아가 눈감아주었다. 박포수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첫눈이 내렸다. 포수에게 첫눈은 산신이 내려준 선물이다. 눈 위에 짐승들의 발자국이 찍히기 때문에 사냥이 쉽다. 그래서 첫눈이 내리는 날 포수 마을은 잔칫날처럼 들뜨는데 어쩐지 그 마을은 침울하다. 마을에서 장정들을 볼 수 없고 대장간의 문도 닫혀있다.

정포수는 없소이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요.’

조막손 촌장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포수들은 조막손이 많다. 화약을 다루다가 손가락이 날아간다. 촌장의 아들도 옆방에 누워있다. 표범에게 물려 한쪽 다리가 잘려 나갔다. 박포수가 찾는 정포수는 몇 년 전에 함께 사냥을 한 유능한 포수다. 정포수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의 뜻을 짐작했다. 함흥차사와 범 사냥에 나간 강원도 포수의 숙명이다. 정포수는 오랜 홀아비 생활에서 벗어나 지난봄에 젊고 예쁜 마누라를 얻어 아주 사이좋게 살았는데 그해 가을 사냥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사냥을 가지 말라고 울며 매달린 마누라도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다. 부부가 모두 행방불명이 된 정포수의 집은 텅 비었는데 빈집은 그 집뿐만 아니다. 모두 여섯 채의 집이 비어있었다. 여섯 명의 포수 중에서 세 명은 그나마 뼈라도 찾았지만 나머지는 행방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범에게 물려 병신이 되어 돌아왔다.

위험한 범 사냥을 하지 않으면 될 거 아니요.’

촌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시오?’

함흥차사가 원해서 가는 게 아닌 것처럼 강원도 포수는 마을 수령이나 관아의 관리들에게 등을 떠밀려 범 사냥을 했다. 범이나 표범이 사람을 잡아먹을 때마다 관아의 아전이 포졸들을 데리고 마을에 나와 고함을 질렀다.

범 사냥에 나가기 싫다고? 이런 쌍것들을 봤나! 네놈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병역도 치르지 않는 놈들이야. 그런 놈들이 어르신의 명을 듣지 않겠다고?’

아전이 눈을 부라리고 포졸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말을 듣지 않으면 아예 마을을 없애버린다고 협박을 했다. 하기는 그곳을 다스리는 수령도 편치 않다. 감사나 조정의 관리로부터 왜 사람을 잡아먹은 범을 잡지 못하느냐고 질책을 받았고 때로는 지위를 박탈당했다.

, 범이 한두 마리여야 잡든지 죽이든지 하지.’

장소가 좋지 않다. 그곳은 북쪽에서 뻗어오는 태백산맥이 서쪽 광주산맥으로 줄기를 뻗는 지역이다. 범들이 마천령산맥이나 함경산맥을 타고 태백산맥으로 들어왔고 그 일부는 광주산맥을 타고 내려갔다. 그곳은 조선범들의 통로다. 통로를 타고 모여드는 범들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관아에는 호벌대(虎伐隊)라는 사냥꾼조직이 있어 열서너 명쯤 되는 창꾼들이 있다. 범을 포위하여 긴 창으로 찔러 잡는 사냥꾼인데 보기에는 위세당당했으나 그들이 범을 잡은 일은 한 번도 없다. 그들에게 포위되어 창에 찔려죽을 정도로 강원도 범들이 멍청하지 않다. 그래서 관리들은 강원도 포수를 범 사냥에 몰아부쳤다. 포상을 하겠다고 유인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잡아 가두겠다고 협박도 했다. 마을 촌장이나 장로를 잡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어용엽사 박포수는 그런 짓을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도와주는 포수에게 후한 보수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범이 잡히든 못 잡든 일당을 지불하기로 했다. 촌장은 먼 곳에 사냥을 나간 포수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어용엽사 박포수가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 한 무리의 관리들이 마을에 들이닥쳤다. 수령의 심복이라는 아전이 대여섯 명의 포졸을 데리고 왔다. 범이 광주산맥 남쪽 자락에 있는 김대감댁 산소를 덮쳐 능참봉을 물고 갔다고 한다. 김대감은 당대의 세도가였으므로 그곳 관아가 발칵 뒤집어졌다. 관아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범이 산소를 덮쳐 능참봉을 물고갔느냐고 호령을 했다. 수령의 목이 위태로워졌다.

빨리 포수를 보내 식인호를 잡아! 며칠 안에 잡지 못하면 촌장 네 놈을 관아로 끌고 가겠어!’

아전이 화약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촌장 앞에 내던지면서 고함을 질렀다. 조정에서 특별히 하사한 화약이다. 화포를 쏘는 포수에게 화약은 귀중한 물건이었으나 촌장은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화약이 없어 범을 잡지 못한 게 아니다. 포수 마을에 범을 잡을만한 포수가 없다.

! 포수가 없어? 포수 마을에 포수가 없어?’

어떻게 하오리까? 늙은 이놈이 나가서 범 사냥을 할까요? 옆방에 누워있는 병신 아들을 내보낼까요?’

아전의 명령으로 포졸들이 숨어있는 포수를 찾으려고 마을을 뒤집었다. 포졸이 박포수를 발견했다.

네놈은 포수가 아니냐?: 이리 나와!’

아전이 달려와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포수였으나 예사 포수가 아니다. 박포수는 아전을 보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런 버릇없는 놈 같으니 .’

버릇없는 놈은 오히려 아전이다. 그는 박포수가 내놓은 증명서를 보고 새파랗게 질렸다. 조정에서 발부한 증명서인데 모든 관리들은 어용엽사를 도우라는 명령서다. 아전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였고 박포수가 아전과 포졸을 쫓아버렸다. 또다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면 상감님께 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다음날, 멧돼지사냥에 나갔던 포수 넷이 멧돼지를 잡아 돌아왔다. 멧돼지를 잡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이 굶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을 했다. 사냥꾼들은 사냥에 미숙한 젊은이들이었으나 단 한 사람 임영감이 있다. 임영감은 바른손 손가락이 네 개 없고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으나 유능한 발짝꾼으로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박포수는 예전에 영감과 함께 사냥을 한 적이 있다. 임영감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의 조카라는 젊은이도 따라나섰다.

임영감과 그 젊은이가 범 사냥에 나서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포수 마을의 명예를 지키려고 했다. 대대손손 이어온 포수 마을이 아니던가.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능참봉을 물어간 범이 양구의 식인호라고 의심했다. 만약 그놈이 양구의 식인호라면 복수를 해야 한다. 강원도 포수는 자기들의 동료를 죽인 짐승은 반드시 복수를 한다. 죽은 포수의 아들이나 친척들이 없으면 이웃들이 나섰다. 강원도 포수들의 오랜 전통이다. 강원도의 어느 포수집안에서는 아들 대신에 딸이 남장을 하고 아버지를 죽인 범을 추적하여 잡은 일도 있다. 양구의 범에게는 벌써 네 사람의 포수가 희생되었고 그중에는 명포수로 알려진 정포수가 포함되어있다. 정포수는 양구의 식인범을 사냥하다가 행방불명되었다. 임영감과 함께 나선 젊은이는 바로 그 정포수의 조카다. 박포수는 임영감과 젊은 정포수를 데리고 김대감댁 산소에 갔다. 호벌대의 창꾼과 군졸들이 몰려있었다. 대여섯 명의 호벌대는 모두 건장한 장년들이었으나 그들은 아직 범에게 물려간 능참봉의 시신도 찾지 못했다. 범을 잡기 위해 조직되고 훈련한 사람들이었으나 겁을 먹었다. 호벌대 창꾼과 군졸이 핏자국을 추적했으나 날이 어두워지자 돌아왔다. 야영을 했어야 하는데 겁을 먹었다. 창꾼들이 범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말뿐이다. 이틀 전에 사람을 물고간 범이 아직도 그 산에 있을 리 없다. 창꾼들이 박포수를 따라가겠다고 했으나 거절했다. 사냥터에서 비겁한 동료는 적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사냥을 방해할 뿐 아니라 겁에 질려 함부로 총을 쏘고 활이나 창을 날려 사고를 친다. 박포수는 포수 마을 사냥꾼들만 데리고 현장을 조사했다. 피 묻은 범의 발자국이 있다. 발자국을 본 임영감이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양구의 식인호입니다.’

일찍이 보지 못한 거대한 발자국이다. 조선범은 그런 거물이 없다. 만주 범이다. 놈의 몸무게는 80(320kg)이 넘는다. 보통 조선범은 50관 정도였으므로 조선범이 그놈과 영토 다툼을 할 수 없다. 그놈이 만주에서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오자 조선범들이 쫓겨났다. 그래서 그놈은 태백산맥과 광주산맥 일대에 걸친 수백 리나 되는 영토를 갖게 되었다.

임영감은 식인호를 잘 알고 있다. 식인호는 최근 5년 동안 열여섯 명의 산간마을 사람을 잡아먹었다. 관아가 많은 포수를 동원했으나 포수들까지 희생되었다. 두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행방불명되었다. 그래서 조정이 어용엽사를 동원했다. 식인호를 쫓던 사람들이 다음날 능참봉의 시신을 발견했다. 능참봉을 덮친 지점에서 2km쯤 떨어진 잡목림이다. 구겨진 갓과 담뱃대가 남아있었다. 굵은 뼈만 있고 육신은 없다. 다 먹어 치운 것이다. 거대한 범의 한 끼 식사가 되었다. 상황으로 보아 능참봉은 갓을 쓰고 끝까지 양반 체통을 지켰다. 능참봉은 담뱃대를 휘두르며 범에게 썩! 물러서라고 호통을 친 것 같았다. 예부터 범이 담배를 싫어한다고 전해졌다. 아마 독한 냄새를 싫어했을 법하다. 식인호를 추적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얇게 깔려있어 도장을 찍은 듯한 발자국이 찍혀있다. 박포수가 추적을 하다가 무엇인가 발견했다. 이미 여덟 마리의 범을 잡은 박포수는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다.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걸어가는 범의 다리 중 하나가 불편한 것 같았다. 왼쪽 뒷다리 발자국이 다른 다리보다 희미하게 찍혔다. 몸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맞습니다. 놈은 뒷다리에 총탄을 맞은 일이 있었습니다.’

화승포의 불확실한 조준에 의해 총탄이 빗나가며 입힌 상처다. 범이 도망쳤으나 포수는 범이 총탄에 맞았다고 했다. 그 포수는 멧돼지사냥을 하다가 죽었지만 근거 없는 말을 할 포수는 아니다. 맹수사냥은 정확하게 급소를 겨눠야 하지만 화승포는 그게 잘 안 된다. 선불 맞은 맹수는 끝까지 추적하여 죽여야 하는 것이 포수의 철칙이다. 부상한 짐승은 마구 날뛰고 엉뚱한 사람이 희생된다. 양구의 식인호도 그런 경우다. 뒷다리의 상처는 치유되었으나 후유증이 남아있다. 뒷다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사슴, 노루 등 발 빠른 짐승을 잡지 못하게 되었다. 멧돼지도 못 잡는다. 범이 쉽게 사냥할 수 잇는 건 사람이다. 다리가 두 개뿐인 사람은 뒷다리가 불편해도 잡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래서 식인호는 전문적으로 사람만 공격했다.

포수들은 그날 밤 야영을 했다. 박포수는 그게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범에게는 어둠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으나 사람에게는 그게 없다. 사람은 어둠에서는 장님이며 장님이 범과 싸울 수 없다. 그래서 포수들이 야영을 하다가 범에게 당한다. 박포수는 높은 언덕을 등에 지고 모닥불을 피웠다. 좌우로 두 개를 피우고 가운데다가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교대로 불침번을 섰다. 언제 덮쳐들지 모르는 범이 덮치더라도 모닥불을 타고넘어야 한다. 열다섯 자쯤 되는 거리인데 뒷다리를 잘 쓰지 못한 범은 그럴 능력이 없다. 범이 사람을 공격하려면 모닥불 빛에 드러난다. 그게 포수가 총을 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박포수는 언덕에 기댄 자세로 비스듬하게 누었다. 왼손에는 총을 쥐고 있다. 영국의 귀빈이 사냥 안내의 기념으로 선물한 최신형 총이다. 단발총이기는 해도 당시에 조선에는 몇 자루 없는 총이다. 그날 밤 범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박포수는 그놈이 모닥불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느꼈다. 포수의 본능으로 노리끼리한 육식동물 특유의 냄새를 느끼고 발자국 소리도 들었다. 살육자가 소리를 죽이려고 애를 써도 80관의 몸무게가 실려있는 발자국 소리를 고양이처럼 지울 수는 없다. 아침에 조사를 해보니 역시 느낌이 옳았다. 범이 불빛이 미치지 않는 곳을 빙빙 돌았으나 공격을 못 했다. 사냥꾼들이 태연히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범이 좀 질렸다. 추적이 계속되었다. 추적은 신속해야 한다. 바짝 쫓아야 멀리 가지 못한다. 거리가 벌어지면 사냥을 해서 힘이 생긴다. 사냥을 못 하면 굶주릴 뿐만 아니라 신경질이 된다. 추적 사흘 후 범이 산간 화전민 마을로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사냥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화전민 마을에는 모닥불이 타고 대여섯 명의 장정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호벌대 두 사람과 군졸도 있다. 전날 박포수가 아전에게 마을에 호벌대와 군졸을 파견하여 마을을 보호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래서 양구의 식인호는 마을을 덮치지 못했다.

됐어.’

박포수는 마을을 지키는 호벌대와 군졸들에게 격려하고 다른 마을 경비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사냥을 막아놓고 추적을 할 심산이다. 범은 사냥을 하면 한꺼번에 많이 먹는다. 그리고 1주일이고 열흘이고 먹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계속 굶게 되면 견디지 못한다. 성미가 급해서 신경질을 내고 무리한 행동을 한다. 그때가 기회다. 추적 나흘째 범이 멧돼지사냥을 하다가 실패한 흔적을 보았다. 양구의 식인호가 산날을 타고 가다가 멧돼지를 발견하고 몰래 기습을 하려다가 발각되었다. 건강한 범 같으면 추적하여 잡았을 것이지만 식인호는 뒷다리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달아나는 멧돼지를 1km쯤 추격하다가 포기했다. 놈은 주력이 느린 사람밖에 사냥감이 없다. 범이 풀밭에 누워 쉬다가 추적을 알고 도망갔다. 추적 닷새째 식인호는 여전히 동쪽으로 가고 있다. 태백산맥 방향이다.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고 있다. 나무들도 휘청거린다.

이거, 좋지 않은데 .’

잿빛 하늘을 쳐다보는 임영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을 무렵 포수들이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바람에 눈이 섞였다. 눈가루가 시야를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추적했던 범의 발자국도 지워졌다. 추적이 중단됐다. 눈보라 속에서는 포수들의 안전이 위험하다. 다행히 임영감이 작은 동굴을 알고 있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포수들이 땔감을 마련해놓고 보리쌀도 있다. 포수들은 동굴에서 눈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눈은 연이틀 계속 내리다가 그쳤다. 바람도 수그러졌다. 사냥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포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얗게 눈이 쌓인 태백산맥을 천천히 걸어갔다. 놈은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강한 눈바람에는 범도 맥을 못 춘다. 범은 의외로 추위에 약하다. 놈도 포수들처럼 어딘가에서 눈보라를 피했을 것이다.

포수들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날 오후 태백산맥 산날에 얼룩무늬가 보였다. 범은 먹이를 찾느라고 아래를 살피며 걸어간다. 지친 것 같았으니 불사조 같은 놈이다. 포수둘도 지쳤으나 추적을 계속했다. 사냥이란 어차피 인내의 싸움이다. 눈바람이 그친 태백산은 조용하다. 무서운 포식자가 돌아다니므로 멧돼지, 사슴, 노루들이 숨을 죽이고 숨어있고 날짐승도 날지 않는다. 날이 어두워지자 범이 산날에서 서쪽 능선을 타고 내려왔다. 태백은 짐승들의 나라였으나 서쪽 산자락에는 드물지만 마을이 있다. 평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마을이 위험하다. 포수에게 추적을 당해 오랫동안 굶은 범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산자락의 화전민 마을에서는 연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대여섯 채의 흙벽돌집에 인기척이 없다. 산림에 불을 놓아 옥수수를 경작하고 겨울이라 돌아가 버린 것 같다. 범이 그 집들을 뒤지다가 부엌에서 썩은 감자를 먹은 흔적이 있다. 육식동물인 범이 감자를 먹다니 . 포수들은 그날 밤 빈집에서 밤을 보냈다. 폐가였으나 불을 지피니 견딜 만했다. 불침번을 세웠으나 범은 기척이 없다. 오랫동안 집요하게 추적하는 사람들에게 좀 지친 것 같다. 그런데 한밤중에 총소리가 들렸다. 첩첩산중에 웬 총소리? 이런 시기에 이곳에 들어올 사람은 없다. 다음날 총소리가 났던 산에 가보았다. 그리 높지 않았으나 나무들이 울창한 산이다. 온통 바위산인 태백에서 특이한 산이다. 식인호가 바로 그 산으로 올라갔다. 급히 뛰어가고 있다. 먹잇감을 찾은 것이다. 포수들도 뛰었다. 범이 먹잇감을 덮치기 전에 먼저 잡아야 한다. 숲속에 동굴집이 있었다. 집 앞에 땔감이 쌓여있다. 그런데 눈 위에 핏자국이 있었다. 총탄이 꼬리에 맞은 듯 뼛조각과 털이 떨어져 있다. 범은 덜렁거리는 꼬리를 끌고 도망갔다. 누가 쏘았을까? 흉악범들이 포졸을 피해 산중에 숨는 경우가 있다.

박포수는 만사에 조심스럽다. 다른 포수를 제지하고 동굴집 주변을 살폈다. 사람 발자국이 있다. 크고 작은 발자국이다. 인기척은 느껴지나 조용하다. 박포수가 나직하게 말했다.

안에 있는 분 들으시오. 우리는 강원도에서 온 포수들이니 통성명을 하시지요.’

기침 소리가 났다. 통나무로 짠 문이 열렸다. 만감이 억눌린 쉰목소리다.

임영감, 오랜만이요. 박포수님도.’

중년 남자가 나왔다. 온통 짐승껍질을 입었다. 임영감이 펄쩍 뛰었다.

이게 누구요? 정포수 아니요?’

지난해 식인호를 잡으려고 나갔다가 행방불명된 정포수다. 강원도에서 이름난 포수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동굴집으로 들어간 포수들은 또 한 번 놀랐다. 젊은 여인이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정포수의 젊은 아내다. 그 여인은 남편이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자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사라졌다. 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내가 불러들였습니다. 몰래 데리고 왔습니다.’

정포수는 초췌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조카를 보고도 웃지 않았다. 박포수도 정면으로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많은 범을 잡은 명포수였으나 식인호를 잡지 못했다. 아예 범 사냥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때가 가을이었으며 온산에 단풍이 들었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면 범 사냥은 금기다. 단풍색과 같은 범이 단풍 숲에 숨으면 사람의 눈과 코로는 발견하지 못한다. 발견할 수 없는 맹수와 어떻게 싸우겠는가? 양구의 식인호를 잡아라는 지시가 내렸을 때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 연기해달라고 하소연했으나 소용없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무슨 소리냐고 질타를 당했다.

그해 봄에 만난 신부가 범 사냥에 나가지 말라고 울면서 옷자락을 잡았으나 정포수는 범 사냥에 나섰다. 관아의 독촉도 어려웠지만 범이 두려워 사냥에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세상의 뒷소문이 더 두려웠다. 자기 명예뿐만 아니라 마을의 명예까지 손상시키는 일이다. 사냥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데리고 간 창꾼이 독사에 물렸다. 본래 화승포를 사용하는 포수에게는 두 사람의 창꾼이 따른다. 그런데 그때 정포수는 한 사람만 데리고 갔다. 나서는 창꾼이 없었다. 정포수가 신속하게 처리를 해서 목숨을 살렸으나 창꾼은 돌려보내야 했다. 정포수는 혼자서 범 사냥을 했다. 예사 범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으나 그 범은 사람을 10여 명이나 잡아먹은 식인호다. 예상대로 식인호는 단풍 숲을 조용히 기어 다녔다. 유령처럼 발자국도 남기지 않았다.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한 사람뿐이라는 걸 알고는 사람사냥을 하려고 했다. 포수의 뒤를 돌아 미행했다. 정포수는 등뒤에서 육식동물의 노리끼한 냄새를 맡았으나 모습을 볼 수 없다. 용감무쌍한 그가 패배감과 절망을 느꼈다. 그해 갓 결혼한 아내가 생각났다. 젊고 사랑스런 아내를 두고 죽을 수 없다.

정포수가 식인호와 대결을 피했다. 그곳에서 벗어났으나 마을에는 돌아갈 수 없다. 강원도 포수는 범을 잡가 전에는 돌아가지 않는다. 태백산맥을 타고 북쪽으로 갔다. 범을 피해 이틀 동안 걸었다. 잡목림에서 동굴을 발견했다, 곰의 동면굴(冬眠屈)이다. 주위에 나무가 울창해서 밖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식물을 채취하고 덫을 놓아 토끼, 오소리를 잡고, 개울에서 가재, 물고기를 잡았다.

정포수는 동굴에서 젊은 아내와 편안하게 살았다. 첩첩산중에서 사는 일은 육체적으로는 고달팠지만, 마음은 편했다. 관아 관리들의 질타도 없고, 주위 사람들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범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그런데 전날 밤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동굴 주변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범이다. 공포를 느꼈다. 오들오들 떠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태연한 척했으나 그 자신도 떨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으뜸가는 명포수가 왜 그럴까?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동물들에게는 한 번 싸워서 진 상대에게는 다시 도전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다. 무리 안의 서열 경쟁에서 진 짐승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이긴 상대를 보면 겁에 질려 다시 도전하지 않는다. 사냥개들은 멧돼지를 추격해서 잘 잡았으나 어쩌다 멧돼지의 반격을 받아 다치거나 도망친 일이 있으면 다시는 멧돼지사냥에 이용할 수 할 수 없다. 사냥개로서는 폐견이다. 오소리사냥에서 다친 사냥개는 오소리를 보면 오줌을 싼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끼리 서열 싸움에서 진 아이는 다시는 도전하지 않는다. 정포수는 동굴 주변을 돌아다닌 범이 양구의 식인호라는 걸 안다. 소리와 냄새로 안다.

어험, 염려하지 마!’

정포수가 아내를 달래놓고 화승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양구의 식인호는 모닥불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굴 안에서 그놈에게 당하는 것보다는 바깥에서 싸워야 한다. 어둠 속에서 범과 겨루면 승산이 없다. 어둠 속에서는 화승포의 총탄이 범에게 맞을 확률은 거의 없다. 정포수는 그걸 잘 알고 있으나 강원도에서 으뜸가는 명포수다. 3년 전에 어둠 속에서 범을 잡은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어용엽사 박포수와 임영감도 있었다. 사냥꾼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불침번을 섰는데, 정포수는 어둠이지만 무엇인가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노리끼한 냄새도 났다. 움직이지 않으면 공기가 움직이지 않아 기척도 못 느끼고 냄새도 흘러나오지 않지만 움직이면 공기가 흔들려 냄새가 퍼진다. 그래서 숨어있는 동물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숨소리마저 죽인다. 분명히 냄새를 맡았다. 맹수 포수의 육감이다. 그럴 경우 다른 포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정포수는 자신만만한 범 사냥꾼이라 다른 포수를 깨우지 않고 혼자 냄새를 향해 기어갔다.

박포수와 정포수가 범 사냥을 했던 옛날, 모닥불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사냥꾼들이 잡은 노루가 있었다. 뒷다리를 잘라 야식(夜食)으로 먹고 남은 노루고기가 모닥불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두었다. 그런데 그 노루가 움직였다. 정포수가 화승포에 불을 붙여놓고 상황을 살폈다. 어둠 속에서 반짝 푸른빛이 명멸했다. 범의 눈빛이다. 범이 노루를 끌고 가고 있었다. 정포수가 주저 없이 푸른빛을 향해 발포했다. 난데없는 총소리에 잠을 자던 박포수가 황급히 일어났다. 박포수가 총을 들어 올렸으나 방아쇠를 당길 필요가 없었다. 범은 이미 치명상을 입고 발버둥조차 치지 못한다. 정포수가 쏜 총탄이 정확하게 범의 대가리를 뚫었다. 그래서 정포수는 강원도에서 으뜸가는 포수다.

그러나 그건 옛날얘기다. 지금 정포수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가 어둠 속에서 범과 대결하겠다고 나선 건 아내를 위해서다. 범이 으르렁거렸다. 먹이에 덮쳐들 때 내는 소리다. 정포수가 발포했다. 겁에 질려 쏘는 총탄이 맞을 리 없다. 다행히 총탄은 범의 꼬리에 맞았고 범은 충격과 고통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양구의 식인호는 늙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범은 자기를 쏜 포수에게 달려들어 포수를 갈기갈기 찢었을 것이다. 식인호는 사람사냥을 포기하고 도망쳤다. 정포수는 범이 도망갔는데도 불안했다. 밖에도 나가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밖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고 문틈으로 보니 박포수와 임영감이 있었다. 옛날 함께 범 사냥을 했던 포수들이다. 어용엽사인 박포수는 천하의 명포수다. 정포수 눈에는 그들이 부처님으로 보였다. 박포수는 꼬리가 잘린 식인호를 추적했으나 정포수는 데리고 가지 않았다. 정포수는 옛날의 정포수가 아니다. 용기를 잃은 사냥꾼은 겁을 먹어 오줌을 흘리는 사냥개와 같다. 그러나 옛 명포수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정포수는 여기서 기다리시오. 이런 곳에 여자를 혼자 둘 수 없소. 부인을 지키시오.’

나리, 오늘은 저놈을 지옥으로 보내야겠습니다.’

박포수가 그렇게 말하는 임영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 열흘째 식인호가 생명력이 다 해 가는 것 같았다. 하얀 눈 위에 피가 뚝뚝! 떨어져 있고 발자국이 비틀거렸다. 오후에 산날을 타고 가는 식인호를 보았다. 본디 범은 산날을 타고 다니며 산을 감시한다. 두려운 것이 없는 산림의 왕자는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 식인호의 총탄에 맞은 꼬리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처참한 모습이다. 강원도 사냥꾼들은 건재하다. 열여섯 명을 잡아먹은 식인호를 잡겠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임영감의 추적이 빨라졌다.

이 새끼, 곧 네놈의 껍질을 벗겨주마.’

포수들은 날이 어둡기 전에 범을 잡기로 했다. 더 이상 발자국을 추적할 필요가 없다. 범이 몸을 숨기지 않고 산날을 타고 북쪽으로 가고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면 태백산맥은 개마고원과 마천령산맥에 이어지고 백두산을 넘어 만주땅 장백산맥으로 나간다. 양구의 식인호가 태어난 고향이다. 범은 죽을 때가 되면 고향을 찾는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어원(語源)이다. 그날 오후 늦게 포수들은 개마고원 소백산 산정에 추적을 멈췄다. 커다란 바위 뒤에 숨어 범은 기다렸다. 범이 오다가 50m쯤에서 멈춰섰다.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을 응시했다. 범은 그곳에 적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사람을 피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너무 지치고 신경쇠약 상태다. 맹수사냥은 끈기 싸움이다. 정포수는 끈기 싸움에서 졌지만 박포수와 임영감은 이겼다. 식인호는 도망가는 것도 포기했다. 식인호가 포효했다. 선전포고다. 몇 날 며칠 자기를 괴롭힌 적에 대한 증오다. 20여 년 동안 태백산을 누비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까지 밥으로 삼았던 놈이 이제 사람들과 마지막 한 판 결전을 벌어야 한다. 박포수도 바위 뒤에서 나왔다. 우뚝 선체로 범과 마주 섰다.

오냐, 이놈 덤벼라!’

식인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굶주리고 춥고 지쳤으나 맹수의 본능이 남아있다. 범의 눈에 시퍼런 불이 일고 벌어진 아가리에서 긴 송곳니가 뿌리 채 드러났다. 반쯤 잘려진 꼬리가 뻣뻣하게 일어섰다. 범이 땅을 차고 올랐다. 눈가루가 날렸다.

이놈, 불 받아라!’

강원도 포수들이 맹수와 싸울 때 지르는 고함이다. 전통의 범잡이 전법이다. 화승포나 창으로 맹수와 싸우는 포수는 맹수의 기를 꺾고 순간적으로 싸울 태세를 갖추기 위해 고함을 질렀다. 맹수가 고함 소리에 움칠 놀라 순간 멈춰 선다. 그 순간이 총을 겨냥하거나 창으로 급소를 찌르는 기회다. 양구의 식인호가 공중에 몸을 날린 상태에서 일순 멈칫! 했다. 박포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화승포가 아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총탄이 나가는 최신형 총이다. 총구에서 시퍼런 불빛이 나오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범이 무자비한 살육자라면 포수는 냉철한 살상자다. 심장에 직격탄을 받은 범이 윽! 신음소리를 내고 풀썩 주저앉았다.

무슨 일일까?’

범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변을 둘러본다.

이놈, 그래도 덤빌 테냐?’

범이 일어서려고 했으나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범은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간파한다. 범의 눈에서 불이 꺼졌다. 증오에 이글거리던 눈에 체념과 슬픔이 감돌았다. 박포수는 범이 마지막 경련을 일으키자 총구를 내렸다. 임영감은 곰방대를 물었다. 식인호의 몸에는 화살촉 두 개가 박혀있고 총탄도 두 개 박혀있었다. 그것들은 범에게 큰 고통을 주었고 증오심과 복수심을 키웠다. 그렇게 병신이 된 식인호는 짐승사냥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발이 느린 사람을 노렸다. 사냥 의식에 따라 박포수가 범의 생간을 잘라 정포수에게 먹였다. 정포수는 식인호의 간을 먹고 공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평생 산을 내려오지 않고 아내와 함께 산에서 살았다.

 

146. 사살 작전

동아프리카의 탕가니카호 동쪽 연변 습원(濕原)은 흰코뿔소의 서식지다. 그곳에는 몇 백 년 전부터 수백 마리의 흰코뿔소들이 살았는데 1940년부터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영국의 국제 동물보호협회는 흰코뿔소가 멸종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하여 구호대를 현지에 보냈다. 예사 구호대가 아니며 군대나 사냥대와 같았다. 단장은 아프리카에서 20년 동안 산림관을 한 코네리고 육군 정보장교 베른 대위와 잘 훈련된 밀렵단속원 열여섯 명이 예속되어있다. 그리고 세계동물구호협회 간부 시몬스 여사가 참가했다. 시몬스 여사는 수의사인데 열렬한 동물구조대원이다. 일행이 현지 산림보호소에 도착했을 때 현지 보안관이나 조수는 없고 서너 명의 원주민 밀렵단속반이 멍! 하니 앉아있었다. 산림관과 조수가 1주일 전에 피살당했다.

나리, 오랜만입니다.’

밀렵 단속 단장 모르키 영감이 코네리에게 인사를 했다. 만난 지 12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영감은 백발이고 코네리도 반백이다.

보안관과 조수가 피살된 숲에는 핏자국이 말라붙어있었다. 사람 키보다 높은 잡초가 무성했으며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다. 밀렵단이 쏜 총탄의 탄피가 서너 개 떨어져 있다.

미국산 연발 윈체스터입니다. 군용과 암살용으로 쓰입니다.’

베른 대위가 설명했다.

최신형이며 아직 민간에는 보급되지 않은 총입니다.’

그렇다면 예사 밀렵꾼이 아니다. 그밖의 단서는 없다. 자동차나 달구지가 지나간 자국도 없고, 발자국도 없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는 살인자들이라고 모르키 영감이 말했다. 모르키 영감은 최근 50마리 이상의 흰코뿔소가 밀렵되었다는 시몬즈 여사의 조사보고를 시인했다. 그게 검은코뿔소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아프리카 일대에는 아직 1만 마리 이상 검은코뿔소가 있다. 아프리카에 몰려든 밀렵자들이 검은코뿔소를 죽여 코뿔을 잘라갔으나 그래도 검은코뿔소는 멸종될 위험은 없다. 그러나 코뿔소 중에서 흰코뿔소, 자바코뿔소, 수마트라코뿔소는 멸종위기다. 흰코뿔소와 수마트라코뿔소는 불과 몇백 마리가 남아있다. 그런 흰코뿔소가 50여 마리나 밀렵되었다면 그대로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더구나 밀렵단속반까지 죽였다.

이들은 내가 겪은 밀렵들 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자들입니다. 이놈들은 꼭 잡아야 합니다. 사살해야 합니다.’

학자고 의사인 시몬스 여사가 그런 말을 했다. 코네리도 동감이다. 그 회의석상에서 코네리는 모르키 영감의 도움을 요청했다. 영감은 10여 년 동안 세 명의 산림관을 도와 밀렵 단속을 했다. 누구보다도 이곳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본디 원주민들은 백인들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 특히 백인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에는 함구했다. 말을 잘못했다가는 일에 엉켜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백인사회는 복잡다단하다. 원주민들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모르키 영감은 코네리를 존경한다. 그는 영국 신사의 기품을 지녔고 원주민을 차별하지 않았다. 같은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같은 숙소에서 잠을 잤다. 모르키 영감이 그날 밤 코네리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조용히 말했다. 모르키 영감이 보기에 첫 번째 보안관은 문제가 없었다. 그가 부임한 후 흰코뿔소 한 마리가 죽었으나 원주민인 식량으로 하기 위해 죽인 것이다. 보안관이 원주민을 처벌했고 경고했다. 그 후 흰코뿔소 밀렵은 없었다. 그 보안관이 전근을 하고 후임 보안관이 문제였다. 그는 식민지 아프리카에서 일한 영국 관리 중에서 대표적인 나쁜 사람이다. 적도 하의 무더위에 시달린 그는 게으르고 낮잠만 자며 마구 술을 마셨다. 그리고 타락했다. 그는 부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무실을 비우고 환락의 도시 나이로비에서 술과 도박, 여자들과 살았다. 그가 사무실을 비우면 조수가 대행을 했으나 군대의 상사인 그도 술을 마시고 잠만 잤다. 그 사이 흰코뿔소들이 마구 밀렵되었다. 하루 한두 마리씩 죽었고 때로는 암수와 새끼들까지 죽었다. 그래도 조수는 밀렵자를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한 달 한 번쯤 사무실에 나오는 보안관은 조수와 단속반에게 규정된 봉급의 서너 배 돈을 주고 영국산 고급 위스키와 담배를 선물로 주었다. 흰코뿔소 밀렵은 더욱 빈번해지고 숲에는 독수리와 하이에나가 몰려들었다. 밀렵자들이 흰코뿔소의 대가리만 잘라갔기 때문에 사체의 나머지는 그들의 밥이었다.

모르키 영감은 두 번째 보안관이 밀렵자들에게 매수당했다고 말했지만 밀렵단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그 밀렵단은 예사 밀렵단이 아니다. 보통 코뿔소 밀렵자는 직접 사냥을 하지 않고 원주민을 시켰다. 코뿔소는 코끼리처럼 집단생활을 하지 않고 혼자서 살았고 암컷만 새끼를 데리고 다녔다. 그래서 밀렵자는 한꺼번에 많은 코뿔소를 잡을 수 없어 원주민에게 총을 주고 잡은 코뿔만 가져간다. 나머지 고기는 원주민 몫이다. 물론 원주민에게 약간의 사례금을 준다. 그런데 이번의 코뿔소 밀렵단은 직접 잡았다. 원주민들에게 정보만 얻고 자기들끼리 몰래 사냥을 했다.

그들은 연달아 다섯 발이 나가는 총을 가졌습니다. 코뿔소를 잡으면 대가라를 통째로 잘라갑니다.’

보통 코뿔소 밀렵단은 코뿔만 도려내는데 그들은 대가리채 가져간다. 왜 그럴까? 검은코뿔소가 아니라는 증명을 하려고 한다. 흰코뿔소는 흰색이 아니라 회색이다. 그래서 검은 코뿔소와 구별이 어렵다. 다른 점은 피부가 아니라 주둥이다. 검은코뿔소는 주둥이가 길고 좁았으나 흰코뿔소는 넓적하다. 흰코뿔소 밀렵단은 군용총으로 밀렵을 하고 지프를 타고 달아났다.

가끔 이상한 차도 나타났습니다. 관광회사의 고급 야외용 승용차입니다. 그 차는 보안관도 타고 다녔습니다. 검은 안경을 낀 백인이 운전하고 여자도 있습니다. 금발의 백인 여자입니다.’

그 차가 나타나면 지프들이 호위를 했기 때문에 금발여인이 두목인 것 같았다. 관광차에 백인 여자를 싣고 다닌 보안관은 6개월 전에 해임되었다. 근무 태만이다. 세 번째 보안관은 30대 젊은이였는데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그리고 용감하다. 그는 사무소의 기강을 바로잡고 밀렵 단속을 해서 밀렵이 줄어들었다.

세 번째 보안관이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금발여인이 타고 다니던 야외용 관광차가 보안관 사무실에 도착했다. 금발여인이 양주를 상자째 선물로 갖고 왔다. 아마 두툼한 돈 봉투도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나 보안관이 단호하게 선물을 거절했다. 웃으면서 사무실에 들어섰던 여인이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섬뜩한 눈빛이다. 그때부터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밀렵 순찰에 나선 단속반의 등 뒤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사무실에 총탄이 날아와 유리창이 박살 났다. 보안관은 그래도 굴복하지 않았다. 총탄이 점점 빈번하게 날아왔고 단속반이 어깨에 총탄을 맞기도 했으나 보안관은 밀렵 단속을 늦추지 않았다.

그들이 보안관 조수를 죽인 게 분명합니다.’

보안관 조수가 순찰을 하려고 지프에 타려고 했을 때 총탄이 날아왔다. 암살자들이 50m쯤 떨어진 숲에서 총을 쏘았는데 정확하게 머리와 가슴을 꿰뚫었다.

흰코뿔소 밀렵단의 사살 작전이 짜여졌다. 코네리는 케냐 나이로비에 가서 정보를 수집하려고 했다. 나이로비는 코뿔소 밀렵단과 그 배후세력이 암약하는 본거지다. 그러나 코네리의 조사는 처음부터 벽에 막혔다. 코네리가 가장 유력한 정보제공자로 지목한 두 번째 보안관이 행방불명이었다. 그는 흰코뿔소 밀렵단과 오래토록 거래를 한 사람이며 그를 조사하면 밀렵단의 정체가 드러날 것인데 그가 사라져버렸다. 코네리가 그의 행방을 조사했다.

그가 몇 달 전에 몸바사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몸바사는 나이로비 동쪽의 항구도시인데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밀렵단의 거점이다.

그는 술에 취해 해변을 걸어가다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현지 경찰은 그렇게 대답했으나 코네리는 믿지 않았다. 검시관을 만났다. 익사자가 술에 취한 증거가 없다. 물에 빠져 죽었는지 죽은 사람을 물에 던졌는지도 불분명하다. 시체해부를 하지 않고 묻어버렸다. 코네리는 살해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보안관 살해 혐의가 있는 밀렵단 여두목의 행적을 찾아낼 수 없었다. 본 사람이 없다. 나이로비와 몸바사의 어느 호텔이나 유흥업소에서도 그런 여인은 본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타고다닌 지프나 야외용 관광차도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보안관 암살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흰코뿔소 서식지에서 급보가 날아왔다. 전날 흰코뿔소 암수 두 마리가 밀렵당했다. 특별단속반이 철저하게 감시를 하고 있는데도 밀렵을 감행했다.

이러다가 몇 달 안에 흰코뿔소가 멸종되겠습니다.’

시몬즈 여사가 한숨을 쉬었다. 현장에는 대가리가 잘린 시체만 남아있었다. 수십 마리의 하이에나와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먹이 쟁탈전을 벌였다. 현장 상황으로 봐서 밀렵단은 서너 명이고 백인이다. 그들의 밀렵은 치밀했다. 코뿔소는 시력이 나빠 눈앞의 물체도 식별하지 못했으나 대신 코와 귀가 예민히다. 100m 밖에서도 움직임을 감지하고 도망을 한다. 그런데 그곳의 코뿔소는 사람들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사람이 접근해도 도망가지 않는다. 사람들의 보호로 자기 방어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밀렵단이 쉽게 잡을 수 있다. 미국제 라이플은 코뿔소의 두꺼운 가죽을 쉽게 뚫었고 뼈까지도 부수는 강력한 총이다. 현장에 지프 바퀴 자국이 남아있다. 모르키 영감이 바퀴 자국을 조사했으나 지프는 몸바사로 가는 도로를 타고 달아나버렸다. 다음날 또 코뿔소가 죽었다. 아직 성장하지 않은 수컷인데 악랄한 밀렵자다.

다음날 보안관 사무실에서 다시 대책 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가 야생동물보호역사에서 괄목할만한 회의가 되었다. 그동안 벌였던 흰코뿔소 보호작전은 실패했다. 경비를 철저하게 해도 밀렵은 계속되었고, 단 한 명의 밀렵자도 잡지 못했다. 그 사건과 관련된 보안관 암살사건 수사도 실패했다. 범인도 단서도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영국의 자연 동물보호협회에서 중대한 결정을 하려고 했다. 흰코뿔소를 잡아 뿔을 제거한다는 결론이다. 뿔이 없으면 밀렵도 없다. 또 다른 계획은 흰코뿔소 집단수용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막가파식 대책이다. 뿔이 잘린 코뿔소는 존재가치가 없다. 집단수용소도 자연의 배반이다. 그래서 베른 대위가 그때까지 사용한 동물보호 방법을 바꾸자고 제의했다. 경비원들의 순찰로는 밀렵을 막을 수 없다. 베른 대위가 잠복 작전계획을 세웠다. 움막을 파놓고 기다리다가 역습을 한다. 게릴라 작전인데 전과를 올릴 수도 있다. 보호 대원들이 흰코뿔소를 한군데로 몰아놓고 주변에 잠복소를 만들었다. 서너 명의 대원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밤샘 경비를 했다. 밀렵자들이 나타나면 경고 없이 사살해도 된다는 명령이다. 사흘 후 잠복 작전에 밀렵단들이 걸려들었다. 그날은 달이 반쯤 찬 밤이었으며 달빛이 희미하게 잡풀밭을 비추고 있었다. 베른 대위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잡풀이 술렁거렸다. 거리가 30m쯤 되었을 때 베른 대위가 경고를 했다.

총을 버려! 그리고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코뿔소 밀렵토벌대장 코네리는 밀렵자들에게 사전경고 없이 발포해도 좋다는 지시를 내렸으나 베른 대위는 그래도 상대가 인간인만큼 법에 규정된 사전경고를 했다. 그게 착각이다.

총을 버려라!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그 순간 밀렵자들이 반사적으로 일제히 총을 난사했다. 최신형 자동 연발총이 기관총처럼 불을 뿜었다. 빠르기도 했지만 조준도 정확했다. 움막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던 단속반원 두 사람이 총탄에 맞았다. 한 대원은 즉사하고 또 한 대원은 중상이다. 응사를 했다. 20m쯤 떨어진 움막에 있는 코네리와 세 명의 대원이 응사에 가세했다. 두 방향에서 집중사격을 받은 밀렵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사격 중지!’

코네리가 쓰러진 밀렵자들에게 달려갔다. 생포를 하여 정보를 얻어낼 요량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 밀렵꾼은 모두 네 명인데 옅은 카키색 사냥복을 입었고 엷은 가죽장갑을 끼고 있다. 코네리는 밀렵꾼, 전과자, 상습범을 많이 알고 있었는데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다. 30대였고 단련된 체구다. 신분증이나 신분을 밝힐만한 아무것도 없다. 철저하게 준비된 밀렵자들이다. 인근에 있던 지프는 몸바사도로로 달아났다. 흰코뿔소 단속은 또 실패했다. 코네리가 나이로비에 갔다. 밀렵 수사는 밀렵 현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밀렵으로 잡은 짐승을 거래하는 암시장에서도 밀렵자들을 수사하고 체포할 수 있다. 20년 동안 밀렵 단속을 한 코네리는 암시장을 잘 알고 있다. 나이로비의 단골 호텔에 도착해서 피 묻은 옷을 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이로비의 밤거리로 나갔다. 나이로비의 밤은 찬란하다. 선진국의 도시 보다 더 밝고 붐빈다. 세계 각국의 밀렵자나 밀무역업자들이 모여든다. 코네리는 코뿔소 밀거래업자들이 모여드는 코뿔소 전문시장을 염탐했다. 정상적인 모피거래 간판을 달고 뒷마당에서는 밀거래를 하거나 호텔의 로비에서 또는 술집에서도 거래를 한다. 코네리가 심상치 않은 정보가 입수했다.

암시장에서는 많은 코뿔이 거래되고 있었다. 수백 개의 코뿔이 거래되고 있다. 코뿔소의 코뿔은 상아 다음으로 큰 거래 품목이다. 그런데 거래되는 코뿔은 모두 검은 코뿔 뿐이고 흰코뿔이 없다. 코네리가 앞잡이를 내세워 큰돈으로 흰코뿔을 구했으나 없다. 검은 코뿔의 30배를 준다고 했으나 팔려는 상인이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너 배만 주면 구할 수 있었는데 점점 희귀품이 되어 최근에는 20배가 되더니 아예 없다. 밀렵을 안 했다는 말인가? 아니다. 최근에도 밀렵꾼들이 흰코뿔소 밀렵을 하지 않았는가? 누군가 매점을 하고 있다. 그게 누구일까? 큰돈으로 나이로비의 코뿔을 매점할 수 있는 암거래상인은? 코네리가 나이로비의 차이나타운에 갔다. 차이나타운에는 중국인 거상(巨商)들이 군림한다.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의 자본과 연계된 그들은 조용하고 점잖케 큰 장사를 한다. 그들은 차이나타운뿐만 아니라 나이로비 전체의 상권에 영향을 미친다. 코네리는 그런 거상을 알고 있다. 서대인大人70이 넘은 노령이었으나 아직도 기력이 좋아 젊은 부인을 세 사람이나 거느린다. 코네리는 예의를 지켜 사전에 예약을 했다. 다음날 차이나타운의 찬팅(고급요리점) 밀실에서 서대인과 만났다. 코뿔의 밀거래는 홍콩계 중국인들이 주도한다. 중국, 인디아 등 동양에서는 예부터 코뿔을 정력제로 구입했고 특히 정력이 약한 노인들은 좋은 코뿔이면 부르는 값으로 사들였다. 서대인도 코뿔에 관여하고 있다. 그의 간여없이 코뿔의 큰 거래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서대인은 직접 코뿔을 사고팔지는 않는다. 그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관여한다. 서대인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자가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코네리도 웃으면서 한발 물러섰다.

서대인은 코네리를 정중하게 대접했다. 코네리가 그 중국 귀족을 존경하듯 그도 영국 신사를 좋아했다. 술은 중국에서 가져온 명주 마오타이지우였고 안주는 코네리가 좋아하는 전복 해삼요리다.

흰코뿔소의 뿔이 암시장에 없다고?’

서대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사실을 시인한 것인데 설명하지 않았다. 서대인은 코네리에게 술을 권하고 자기도 마셨다. 벌써 다섯 잔씩을 마셨다. 그가 마시는 술잔의 수는 상대와 주고받는 상담의 중대성과 비례한다. 중요하지 않으면 한두 잔으로 상담을 끝낸다. 코네리가 흰코뿔소 밀렵단 얘기를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다고 실토를 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서대인이 또 한 잔 술을 들더니 화제를 돌렸다. 자기가 잘 아는 친구가 코뿔소의 뿔을 대량으로 구입하려고 하는 데 도와달라고 했다. 당시 케냐 정부는 밀렵품은 공개적으로 불살라버렸는데 때로는 비공식적으로 파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정부의 재정이 곤란할 때는 비공식적으로 팔아서 재정에 충당했다.

그 코뿔이 얼마나 되지요?’

‘500개입니다.’

큰 거래다. 코네리가 다시 술 두 잔을 더 마셨다. 큰거래지만 불법은 아니다. 서대인이 그런 제안을 한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그는 분명히 무엇인가를 거래하려고 한다. 그가 내놓을 카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이쪽에서 주는 큰 이득에 상응할 것이다. 코네리가 바라는 것일 것이다. 거절할 수 없다. 밀렵자를 찾아야 한다. 동고동락한 대원을 죽인 놈들이다.

서대인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지요.’

서대인이 다시 술잔을 들었다. 눈이 반짝인다.

흰코뿔소뿔은 현재 여기뿐만 아니라 홍콩에도 없습니다. 홍콩의 어느 약재상이 독점을 하여 가루로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그 값은 검은코뿔의 50배입니다. 그래도 흰코뿔은 없어서 못 팝니다.’

서대인은 만사에 신중하고 말을 아꼈다. 그날 밤에는 술울 좀 과하게 마셨는데 그 취기가 입을 열게 만들었다.

흰코뿔가루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걸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신 노인들의 정력이 되살아났지요. 시들어졌던 남근이 뻣뻣해지고 상대한 여인들이 즐거워했습니다. 임신을 한 여인도 있었습니다.’

한약은 약효나 부작용을 입증할 근거나 통계를 제시하지 못하는 법인데 흰코뿔가루는 의심할 수 없는 사례들이 나왔다.

그래서 흰코뿔 가루를 독점 판매한 약방에 노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인디아나 중국의 귀족들이고 멀리 아랍에서도 몰려왔습니다. 돈을 아끼지 않는 노인들입니다.’

독점을 하는 약방의 주인이 누굽니까?’

서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흘 후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코네리는 그 사이에 서대인과의 약속을 지켰다. 케냐의 산림국은 서대인이 지정한 중국 무역상에게 압류한 검은 코뿔을 불하했다. 코네리가 사흘 후 서대인을 만났다. 서대인이 말없이 흰가루가 든 병을 코네리에게 건네주었다. 홍콩의 흰코뿔 가루를 독점 판매하는 약방에서 구한 가루다.

그 약방 주인이 누구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서대인이 일어서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 약방 뒤에 흰 손이 있다는 암시다. 흰 손은 백인이다. 본디 흰 손은 동양에서 못된 짓을 했으며 그들은 악의 근원이다. 중국인에게 아편을 강매한 사람들이다.

조심해요. 당신 뒤에도 흰 손들이 따라다니고 있소.’

코네리는 약병을 영국 보건당국에 보내 성분 감정을 의뢰했다. 약병에는 흰코뿔 가루가 들어있었는데 소량의 비타민제가 첨가되어 있었다. 최근에 개발된 고단위 비타민제인데 임상실험 결과 노인들의 정력회복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조사대상 300명 중 200명에게서 탁월한 효능이 입증되었다. 단점은 약효가 일시적인 것이다. 부작용도 있었다. 다른 장기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영국당국은 그 비타민제를 제조한 제약회사에 제조 중지와 판매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 제약회사가 그 명령을 이행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흰코뿔소 밀매단의 정체가 희미하게나마 드러나고 있었다. 흰 손이 홍콩의 한약시장에 끼어들어 무서운 독을 뿌리고 있다. 고객들이 보는 앞에서 흰코뿔을 갈아 몰래 비타민제를 섞었다. 고객들이 흰코뿔로 효험을 본 것은 강력한 비타민의 효력 때문이었는데 어리석은 고객들은 흰코뿔 가루의 효력으로 믿었다. 그 약으로 일시적인 효험을 본 고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비타민제에는 무서운 부작용이 있었으나 흰 손들은 그런 부작용쯤은 무시했다. 부작용이 있든 말든 돈만 벌면 된다.

코네리와 시몬즈 여사가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들이 문제의 비타민제를 제조한 제약회사를 찾아갔으나 사장은 시치미를 뗐다. 비타민제는 당국의 명령으로 제조 중지되었고 판매한 증거도 없다. 시몬즈 여사는 영국에 남아 뒷조사를 하기로 하고 코네리는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범인을 찾아야 한다. 돌아온 날 코네리에게 부고장이 날아왔다. 서대인의 장례식에 참석해달라는 내용이다. 서대인의 장례식은 나이로비에 거주하는 중국인단체가 치른다. 수백 명의 중국인들이 모인 성대한 장례식이었는데 서대인이 노환으로 돌아가셨다고들 했다. 그러나 코네리는 믿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걸려있는 서대인의 영정이 자기는 타살당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코네리에게 원수를 갚아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코네리가 서대인의 시신을 해부하려고 했으나 친척들이 거부했다. 고인을 두 번 죽이는 거라는 주장이다. 나이로비의 영국인 병원 의사는 시신을 해부할 수는 없었으나 수상한 징후가 있다고 했다. 독살 가능성을 귀띔했다. 코네리가 계속 조사를 했다. 서대인은 나이로비의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난 뒤 쓰러졌다.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고통 없이 죽었다. 식당 종업원들을 조사하고 있는데 시몬즈 여사가 돌아왔다. 중대한 정보를 가지고 왔다.

고성능 비타민제를 제조 판매하다가 영국당국으로부터 제지를 당한 스텐드 제약회사는 경영상황이 비밀에 가려져 있었다. 기업활동이 별로 뚜렷하지 않은데 최근에 전용 비행기를 구입하여 임원들이 그 비행기를 타고 홍콩 등지에 날아다녔다. 중형비행기에는 여섯 명이 탈 수 있고 물건도 실었다.

그 임원들 중에 앤드류스라는 여자가 있어요. 회사의 대표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그 여자가 사실상의 대표입니다.’

시몬즈 여사가 코네리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30대의 백인 여자인데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상당한 미모였으나 푸른 눈동자가 차가웠다. 코네리가 긴장했다. 직업상 많은 범죄자들을 알고 있는데 범죄자들은 일반사람들과 다른 용모를 가지고 있다. 사기범들은 예민한 용모가 많다. 코네리는 금발과 푸른 눈동자의 범죄자들을 아는데 냉혹하고 잔인한 자들이다. 아이를 납치하여 돈을 요구하고, 남편을 독살한 여자도 있다. 코네리가 앤드류스라는 여인에게 주목했다. 코네리는 그날 밤 나이로비의 호텔에서 비밀스러운 인물을 만났다. 나이로비의 유력자고 살인 청부를 하는 사나이다.

이게 웬일입니까? 코네리 보안관님! 네게 무슨 볼일이라도? 아시다시피 나는 최근에는 나쁜 짓에서는 손을 씻고 얌전히 살고 있습니다만.’

그래요? 일주인 전에 이탈리아 마피아 두목이 암살된 사건에 관련이 있는 줄 아는데 .’

천만의 말씀을 . 난 모르는 일이요. 증가라도 있습니까?’

증거가 필요하다면 찾아낼 수 있지. 그러나 그 전에 부탁할 게 있소. 그걸 들어주면 증거 따위를 찾는 귀찮은 일은 없을 거요.’

마담 앤드류스의 사진을 본 사나이가 긴장했다. 낯이 창백해졌다. 무엇인가 알고 있다. 그럴 때는 술이 필요하다. 코네리는 사나이와 말없이 술을 마셨다. 밀수 혐의로 구속된 부하 한 명을 풀어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었다. 일종의 거래다. 코뿔소 밀렵단을 잡기 위해서는 어떤 거래도 한다. 흰코뿔소뿐만 아니라 대원과 서대인까지도 살해한 밀렵단은 무슨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잡아야 한다.

코네리, 이 여인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귓속말로 전해지는 소문만 있습니다.’

소문은 두 군데서 나왔다. 그 여인이 자가용 비행기로 나이로비의 비행장에 나타난다는 것. 또 다른 소문은 케냐에 파견된 영국인 경찰청장 관사에 몰래 드나든다는 것이다. 여인이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뛰어난 미모와 금발 머리 그리고 푸른 눈동자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검은색 안경을 썼는데 공항의 입국심사 관리가 여인이 안경을 벗는 걸 보고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안경을 벗으라는 공항 직원의 말에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안경을 벗었는데 눈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또 다른 소문은 경찰청장 관사를 찾았던 어느 무역업자의 입에서 나왔다. 응접실에 금발의 여인이 앉아있다가 방문객이 들어가자 나가버렸다는 말이다. 잠시 보았을 뿐인데 그 특이한 용모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여인은 날이 어두워지면 고급자동차로 나이로비의 중국인 거리에 나타난다는 소문도 있었고, 그럴 때는 건장한 경호원들이 뒤를 따랐다.

코네리, 조심하시오. 그 여인이 나타나는 시기와 장소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는 소문이요.’

코네리는 그때 그 말을 그냥 넘겼으나 나이로비의 단골 찬팅(고급 중국식당)에 갔을 때 그 말을 상기했다. 찬팅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으나 코네리가 허리에 찬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코네리는 시몬즈 여사와 만나 저녁 식사를 했다. 식당 안에는 대여섯 테이블에 손님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취기가 오르자 좀 시끄러워졌다. 그 때 요리를 나르는 종업원이 코네리의 식탁 가까이 오고 있었는데 그 뒤에 백인 한 명이 따라오고 다른 두 명이 또 그 뒤를 따랐다. 종업원 뒤를 따라오던 백인이 순식간에 종업원을 밀치고 권총을 발사했고 거의 동시에 코네리가 시몬즈 여사를 밀치고 앞으로 나가며 권총을 발사했다. 코네리가 빨랐다. 그리고 정확했다. 암살자의 총탄이 코네리의 왼손에 맞았으나 코네리가 쏜 총탄은 암살자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암살자의 뒤를 따라오던 두 명이 권총을 뽑았으나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었던 중국인 세 명이 일제히 총을 발사했다. 백인 암살자들을 겨냥하여 발사했다.

중국인들의 사격으로 암살자들이 쓰러졌다. 코네리의 총탄에 맞은 자는 즉사했고, 두 명은 가슴과 배에 총탄을 맞았다.

보안관님, 괜찮으세요?’

중국인들이 달려왔다. 죽은 서대인의 심복이고 경호대장인 양씨와 그 부하들이다. 서대인은 경호 대장에게 코네리를 몰래 경호하라고 지시했다. 만사에 사려 깊은 서대인은 흰코뿔소 밀렵단이 코네리를 암살하려고 하리라고 예상하고 그런 지시를 내렸는데 그 자신이 독살될 줄은 몰랐다. 쓰러진 백인 암살단 중 한 명은 치명상을 입었으나 배에 총탄을 맞은 자는 의식이 있었으며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으로 알던 무자비한 살육자도 자기 자신은 죽기 싫다고 애원을 했다.

이 새끼, 너희 두목 어디 있어? 그 금발 머리 계집년 어디 있느냐 말야!’

코네리가 권총을 그자의 이마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태세다.

난 몰라, 난 그런 건 몰라.’

좋아, 그럼 죽어!’

코네리가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을 때 밖에서 요란한 싸이렌을 울리면서 경찰차와 구급차가 도착했고, 스무 명이나 되는 경찰이 우르르! 뛰어들었다.

이봐, 난 산림보안관이다. 너희들은 이 사건에 끼어들지 마라!’

코네리가 소리쳤으나 경찰들이 덮어놓고 사상자들을 끌고 나갔다. 그들은 중국인 경호원까지 수갑을 채워서 끌고 나갔다. 경찰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경찰차에 태워서 연행했다. 경찰이 코네리도 사람을 죽였으니 연행하려고 했다.

이 팔 놓지 못해!’

코네리가 발로 경찰은 차며 항의했으나 경찰은 막무가네다. 코네리와 경찰이 다투고 있을 때 경찰 간부가 들어왔다.

산림보안관이라고? 신분증을 보여주시오. 정당방위라고? 그건 조사해보면 밝혀지겠지.’

경찰 간부가 산림청에 전화를 하더니 코네리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코네리가 화가 나서 고함을 쳤다.

암살자들은 어디 있어? 심문을 해야 해!’

병원으로 갔소. 범법 용의기 있어도 우선 치료는 해야 할 거 아니요. 심문은 서장의 허가가 있어야 하오.’

경찰서장의 허가가 난 게 한 시간 후였다. 코네리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암살자들은 모두 침대에 누워있었고 하얀 시트로 덮여있었다. 모두 죽었다고 의사가 말했다.

코네리가 펄쩍! 뛰었다.

그럴 리가 있소. 가슴팍에 총탄을 맞은 자는 죽었겠지만 아랫배에 총탄을 맞은 자는 죽지 않았을 것이요.’

의사가 시트를 들어 올렸다. 아랫배에 총탄을 맞은 자도 숨이 끊어져 있었다. 그자의 심장에도 총탄이 박혔다는 말이었다. 그자의 가슴에 총탄 자국이 있다. 코네리는 경찰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경찰은 죽지 않은 자의 가슴팍에 총탄을 쏴 죽여버렸다. 코네리를 떼어놓고 그런 짓을 했다. 그자의 입을 막기 위해서다. 경찰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누가 경찰에게 시켰을까? 코네리의 머리에 어떤 영상이 떠올랐다. 금 발머리 여인이다. 푸른 눈이 얼음처럼 차가운 여인. 흰코뿔소 밀렵단 여두목은 나이로비 경찰까지 마음대로 조종했다. 그래서 밀렵단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전 보안관이 암살되었다. 경찰은 그 사건을 단순한 익사 사고로 처리했다. 보안관이 술에 취해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서대인도 단순히 노환으로 죽었다고 처리했다. 독살된 증거는 없애버렸다.

다음날 코네리의 상사 산림국장이 케냐 파견 행정장관실에 갔다. 경찰청장이 와있었다.

, 여러분, 우리 얘기 좀 해봅시다. 마치 행정청 내부에 내분이 일어난 것처럼 되면 모양새가 좋지 않소.’

행정장관이 말했다. 산림국장이 경찰이 고의적으로 흰코뿔소 밀렵단 수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청장은 냉소했다.

그런 증거가 있소? 차이나타운에서 일어난 사건은 폭력단들의 집안싸움이었습니다. 그 코네리라는 산림관은 중국인 폭력단을 데리고 다니면서 공연한 일을 벌여 놓았습니다.’

사실 증거가 없다. 증언할만한 사람은 모두 죽어버렸고, 증거가 될만한 것들은 모두 없애버렸으니까. 행정장관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그는 양측 모두를 달랬다. 코네리가 암살자를 사살한 것은 정당방위로 인정하고, 암살자를 쏘아죽인 중국인들도 자기방어로 인정하여 석방하기로 하였다. 코네리의 참패다. 밀렵단 수사가 중단되었다. 범인의 정체가 드러났으나 체포할 수가 없다. 그러나 흰코뿔소 수사가 완전히 종결된 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흰코뿔소의 멸종을 막으려는 집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국의 야생동물보호협회가 일어났다. 회원인 시몬즈 여사의 보고를 들은 그들이 우르르! 내각의 수상실로 몰려갔다.

수상을 대리한 고등판무관이 시몬즈 여사를 만났다. 그는 상황을 들었다. 증거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시몬즈 여사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나 판무관은 식민지 케냐에 파견된 관리들의 나태와 부패상을 짐작하고 있었다. 특히 경찰청장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알았습니다. 제가 적절히 처리하겠습니다. 야생동믈 보호에 수고가 많습니다.’

사흘 후 케냐 행정장관은 다시 경찰서장과 행정국장을 불렀다. 장관은 그 자리에서 경찰서장의 직무를 해제했다. 당분간 쉬고 있으라는 명령이다.

아니, 장관님 무슨 증거가 있어 저를 해임시키는 것입니까?’

증거? 야생동물보호협회 같은 민간봉사단체에서 그런 것은 제시하지 않아요. 그런 것은 관공서에서나 통하지. 그리고 그런 증거는 앞으로 산림국장이 제시하겠지. 그렇지 않소, 산림국장.’

증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이로비 경찰서 소속 토마스경사가 치이나타운에 있는 찬팅의 종업원 한 명을 검거했다. 서대인이 마지막 식사를 했던 찬팅이다. 토마스 경사는 새로 임명된 경찰청장으로부터 코네리와 함께 일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그는 코네리와 같이 군대에서 근무했던 퇴역 장교다. 검거된 중국인 종업원은 자기가 서대인 테이블에 요리를 나르면서 독약을 탔다고 자백했다. 폭력단으로부터 돈과 함께 받은 독약이다. 또 증거가 드러났다. 사림 보안관의 시체를 해부했던 검시관 조수 젊은 의사가 익사했다는 보안관의 몸 안에 바닷물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죽은 뒤에 바다에 던져진 것이다. 조수가 그때 검시관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으나 검시관이 그 보고를 무시했다고 증언했다. 검시관은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부인했으나 직무태만으로 해직되었다. 그날 나이로비 공항에 머물고 있었던 어느 비행기의 운항금지령이 내려졌다. 런던으로 떠나려던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토마스 경사가 내린 조치다. 케냐에서 빠져나가는 비행기, 선박, 차량 등에 대한 검색이 실시되었다. 금발 머리 푸른 눈동자 여인을 검거하라는 지시다. 금발 머리는 염색으로 감출 수 있으나 푸른 눈동자는 색안경으로도 감출 수 없다. 흰코뿔소 밀렵단은 케냐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궁지에 몰린 그들, 몸바사에서 타란기레 산림으로 가는 도로로 수상한 차량이 지나갔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타란기레는 흰코뿔소의 서식지다. 차량은 지프고 대여섯 명쯤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는 정보다.

코네리가 즉시 추격대를 편성했다. 영국 육군특전대의 베른 대위, 밀렵단속반장 모르키 영감과 원주민 출신 단속대원 12명이 다음날 새벽에 출동했다. 그들에게는 밀렵단을 사살해도 좋다는 코네리의 명령이 내려졌다. 사살 작전이다. 밀렵단은 흰코뿔소뿐만 아니라 대원들을 죽였다. 아프리카 흰코뿔소 멸종을 막으려는 특별조사단은 한 달 동안이나 그들을 추적했고, 밀렵단은 아프리카 사바나지역으로 도망을 쳤다. 발자국 추적의 명수 모르키 영감이 사바나로 들어간 지프 자국을 발견했다.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 지역은 흰코뿔소 서식지입니다. 지프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모르키 영감의 말대로 지프는 멀리 가지 못했다. 사바나에는 난쟁이 나무들의 뿌리와 가지들이 엉켜있다. 그래도 길은 있다. 코뿔소가 지나간 길이다. 갑옷처럼 두꺼운 껍질로 무장한 코뿔소가 뚫어놓은 터널 같은 길이다. 지프가 그 길로 들어가려고 했다가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사바나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코뿔소 암수 두 마리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돌진했다. 코뿔소는 수많은 동료를 죽인 밀렵단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밀렵단은 당황했으나 총을 쏘지 못했다. 추적대에게 자기들의 소재를 알려주게 된다. 밀렵단이 지프를 후진시켰으나 코뿔소들이 더 빨랐다. 충돌사고가 일어났다. 몸무게가 3t이나 되는 코뿔소의 힘에 지프가 뒤집어졌다. 뒷좌석의 물탱크가 파괴되어 물이 쏟아졌다. 사람들도 부상을 당했다. 밀렵단이 지프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들은 나무뿌리에 감기고 넝쿨 줄기에 엉키면서 허둥지둥 도망쳤다. 무덤이 있었는데 부상 당한 밀렵단은 가슴에 칼자국이 있었다. 밀렵단은 부상 당한 단원을 죽여버렸다. 푸른 눈의 두목이 한 짓이다. 밀렵단이 계속 도망갔으나 대낮의 사바나는 지옥 같았다. 마리 위에서 태양이 번쩍이고 땅, 나무, 풀이 모두 타버렸다. 추적대는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밀렵자들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그날 오후에 통조림통, 술병, 담배들이 발견되었다. 물통은 비어있었다. 작전을 지휘하던 베른 대위가 본대에서 떨어져 나갔다. 별동대는 도망자들을 앞질러 도주로를 막기로 했다.

베른 대위는 영국군 특전대의 장교다. 특전대는 전쟁터의 상황에 따라 포위 작전이나 게릴라 작전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심리작전을 펴기도 한다. 심리전으로 적의 심기를 어지럽혀 총을 사용하지 않고 승리를 이끌어낸다. 베른 대위가 심리전을 폈다.

그래 그쪽으로 가고 있어. 빨리 따라가 모조리 쏴 죽여!’

덮어놓고 지르는 소리였으나 쫓기는 도망자에게는 적이 소재를 알고 하는 말 같았다. 겁에 질려있으면 그런 술책에 말려든다. 그래서 밀렵단은 덮어놓고 도망갔다. 쓸데없이 총질을 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추격대는 적의 소재를 파악하고 발사했다. 비명이 들렸다. 밀렵단이 흩어졌다. 그들은 흰코뿔소 서식지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흰코뿔소들이 날뛰었다. 총소리에 신경질이 된 코뿔소가 사람 냄새가 나는 곳으로 돌진했다. 코뿔소는 눈이 근시였으나 예민한 코와 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밀렵단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을 쳤다. 싸움은 사실상 그날 밤에 끝났다. 베른 대위의 심리전에 걸린 밀렵단은 전투력을 상실했다. 추격대가 다음 날 아침에 수색을 했다. 한 명이 죽었는데 동료의 오발 사고다. 다른 한 명은 코뿔소에 받혀 치명상을 입었다. 하복부가 찢겨 살아날 가망이 없다. 한 명은 풀밭에 누워있었는데 피로와 공포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데 여두목이 없다. 수색대가 흩어져 여두목을 찾았는데 그때 코네리릐 등 뒤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캡틴 코네리. 나는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다. 금발 머리와 푸른 눈의 여인이다. 여인은 권총을 들고 있었으나 곧 내렸다. 여인이 가죽 주머니를 코네리에게 던졌다. 콩알보다 큰 다이아몬드가 가득 들어있다.

캡틴 코네리, 당신이 영국 신사라면 항복한 여자를 죽이거나 짓밟진 않겠지? 나를 놓아주시오.’

코네리가 주머니를 여인에게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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