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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世紀)의 사냥꾼 6 - 2

Bollnow 2024. 5. 5. 08:34

126. 살육의 땅

캡틴 코네리는 그 집안에서 화약 냄새를 맡았다. 피 냄새도 났다. 19328월 아프리카의 케냐 나이로비 서남쪽 철도 마을 마차 코스였다. 1899년 인도양 몸바사에서 기공한 철도가 서북쪽 우간다로 뻗어가며 생긴 마을이었는데 나이로비와는 세 시간 거리다. 미국 서부 개척지에서 볼 수 있는 호텔과 술집을 겸한 허름한 2층집은 시끄럽고 무질서했다. 열대여섯 명의 사냥꾼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으며 사냥꾼 외에 인디아인이나 중국인 장사꾼도 드나들었다. 가끔 원주민도 나타났다. 영국육군 예비역 대위 코네리는 화약 냄새에 예민했다. 군대에서 사격 교관을 했고 몇 년 전 제대를 하고 아프리카에 온 뒤에도 케냐 수렵청 소속 수렵관리인 일을 했다. 캡틴 코네리는 영국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답게 단정한 용모였고 영국제 대구경총을 지니고 다녔다.

신임 수렵관이시지요?’

호텔 술집 마담 미셀이 다가왔다. 프랑스인인데 술집에서 일하기에 아까운 미모였다. 프랑스제 향수 냄새를 풍겼다. 세련된 몸가짐이었는데도 어딘가 어두운 표정이었다. 장미꽃의 가시 같은 거였는데 어쩌면 독가시일지도 모른다.

, 마담. 미남 관리인에게 마음이 있나? 캡틴, 한 잔 사야겠는데 .’

안면이 있는 여행사 안내인이 야유쪼로 말했다. 마담 미셀이 안내인을 쏘아보더니 술집 안쪽 칸막이 자리로 갔다. 마담이 말없이 혼자서 트럼프를 쳤다. 카드점을 쳤다.

내 점괘도 봐주겠소?’

안내인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안 치는 게 좋을 것. 점괘가 나오기 전 예감이란 게 있지. 그게 좋지 않아. 그래도 점괘를 볼 테야?’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안내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무서운 여자입니다.’

신임 관리관을 마중 나온 관리지청 관리가 속삭였다.

전임 관리관이 죽기 전에 여기서 저 여자의 점괘를 봤는데 죽음의 괘가 나왔어요. 그는 바로 그날 밤에 횡사했습니다.’

코네리가 맨처음 할 일은 전임 관리관의 사인(死因) 조사다. 의사의 진단은 독살이다. 바른팔에 화살 자국이 있는 것으로 봐서 와캄바족의 소행이라고 결론지었다.

코네리는 와캄바족을 잘 알았다. 농경족이지만 수렵도 하는데 활을 잘 쏘았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호전적이라는 마사이도 와캄바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와캄바의 활은 마사이의 창과 필적했으며 마사이는 활 때문에 와캄바를 침략하지 못했다. 와캄바는 강력한 독을 만들었다. 짙은 녹색인데 화살촉에 발랐다. 독화살에 맞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느끼는 최고의 고통을 느끼며 이틀 안에 죽었다. 와캄바는 말이 없는 부족이고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사이처럼 다른 부족을 함부로 침략하지 않았고 죽이지도 않았다. 그런 와캄바가 왜 수렵관리인을 죽였을까?

최근 아프리카는 변하고 있었는데 와캄바의 생활이 궁핍해졌다. 아이들이 굶어 죽었다. 그 당시 케냐 수렵관리청은 마차코스 동남쪽 차보 북부지역 일대를 야생동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이전부터 살고 있었던 와캄바에게 땅의 일부를 유보지로 주었다. 유보지는 자치지역인데 사냥을 포기하고 농사를 지으라는 지시다. 그러나 와캄바의 옥수수는 수확을 내지 못했다. 수천 마리의 코끼리들이 옥수수를 먹어 치웠다. 붉은 코끼리가 차보 지역에 가장 많았다. 수만 마리가 서식했다. 밀렵꾼들에게 쫓긴 코끼리들이 성질이 사나워져 사람들에게 덤벼들었다. 그런 코끼리가 옥수수밭을 지나가면 옥수수밭은 쑥대밭이 되었다. 마사이의 소 떼도 와캄바의 옥수수밭을 짓밟았다. 유목 부족 마사이는 백인들이 지정한 와캄바의 유보지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소 떼를 몰고 지나갔다. 마사이의 생활도 비참했다. 인구가 늘어났으나 소는 늘지 않았다. 야생동물 보호지역에서는 방목이 금지되었으므로 마사이의 소는 비쩍 말라 뼈와 가죽만 남았고 마사이는 신경질이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던 백인들도 신경질이 되고 사나워졌다. 수렵 보호청이 강력하고 단호한 밀렵 단속을 했다.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야생동물보호단체와 학술단체들의 압력을 받은 케냐 수렵관리청은 나이로비에 숨겨져 있던 상아를 수색하여 수천 마리 상아를 불태웠다. 상아 밀거래를 막기 위한 조치였는데 세계의 상아 시장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 세계 각국으로 공급되던 상아가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코끼리 밀렵자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상아의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기 때문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밀렵을 했다. 케냐 수렵관리청은 밀렵을 단속하는 한편 사냥꾼들에게 합법적인 코끼리사냥을 허가했다. 상아 거래도 제한적이지만 허락했다. 사냥 허가 대금을 받고 사냥 수를 제한했다. 상아의 값이 오르자 합법적인 사냥꾼들도 날뛰기 시작했다. 마차코스의 술집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술에 취한 사냥꾼 서너 사람이 코네리에게 시비를 걸었다.

관리관 나리, 그런 눈으로 우리를 보지 말아! 우리는 밀렵꾼이 아니야. 당당하게 수렵청에 돈을 내고 허가를 받은 사냥꾼이야. 우리가 낸 돈으로 당신들이 봉급을 받는 거야. 우리는 당신들을 먹여 살리는 손님이야. 나리, 당신의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돼먹지 않았어. 알아!’

그들은 스스로 합법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밀렵꾼과 별다르지 않았다. 허가장소도 지키지 않고, 허가 수량도 지키지 않았다. 한 명이 벌개진 얼굴로 술병을 들고 다가왔다. 지난해 허가조건을 위반하여 코끼리 밀렵을 하다가 코네리에게 적발되어 몇 달 동안 감옥살이를 한 사냥꾼이다. 코네리의 조수 존스가 말리려고 했으나 그들은 존스를 마치 부하 다루듯 했다. 그들이 존스를 밀어붙이고 코네리에게 덤벼들었다. 술집에 살기가 돌았다. 그들은 모두 총을 가지고 있었다. 코네리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떠올랐다.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덤벼드는 사내에게 일격을 했다. 코네리의 총대가 사내의 아랫배를 내리찍었다. 전광석화 같은 솜씨였다. 아프리카 최고의 사수로 알려진 코네리는 총을 그렇게 사용했다.

코네리에게 덤벼든 사내는 키가 2m나 되는 거인이었으나 일격을 당하고 아랫배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걸 본 다른 사내가 총을 들어 올렸으나 다음 순간 몸이 얼어붙은 듯 경직되었다. 어느새 코네리의 총구가 그의 이마를 겨냥하고 있었다. 아무 반항도 못 했다. 싸늘하게 웃고 있는 영국군 대위는 어김없이 총탄을 날릴 것이다. 마담 미셀이 나섰다.

저쪽 길 건너에 병원이 있어. 그 옆에 장의사도 있지.’

사내들이 마담에게도 아무 대꾸도 못 했다. 대꾸뿐만이 아니라 두려워했다. 마치 마담의 몸에 스며있는 죽음이 자기들에게 옮겨붙을까 봐 불안해했다. 마담 미셀이 코네리의 술병을 들고 칸막이로 갔다.

캡틴, 당신의 점괘를 봐줄까?’

그보다 먼저 누가 전임 관리관을 죽였는지 점을 쳐주시오.’

마담이 어깨를 들먹거렸다.

캡틴, 죽음이란 죽이는 사람에게 점괘가 나오는 게 아니요. 죽은 사람 자신에게 점괘가 있지. 그 사람은 와캄바의 독화살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죽게 되어 있었지.’

마담이 수을 한 잔 마시고 캡틴에게 주었다.

그 사람은 술이 과했어. 밤낮 술을 마셨어. 뚱뚱해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어. 아마 남자구실도 못 했을걸. 쯧쯧, 꽤나 예쁜 마누라가 있다던데 .’

코네리는 존스와 함께 부임지에 갔다. 코네리의 관할지는 아주 넓었다. 사바나도 있고 초지와 삼림도 있었다. 수평선에는 강이 있었다. 야생동물 서식지로는 자연환경이 훌륭했다. 그러나 불길했다. 수백 마리의 독수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 무리의 하이에나도 달려갔다. 큰 먹이가 있는 것 같았다. 독수리와 하이에나가 모여든 곳에 코끼리의 시체가 있었다. 열 마리가 넘는 코끼리시체가 상아가 잘려나가고 시커멓게 썩고 있었다. 사바나에도 독수리가 몰려들고 있었다.

대머리독수리나 하이에나는 밀림의 장의사다. 죽은 동물의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장의사나 시체처리 동물이 여러 군데서 돌아다니는 것은 불길했다. 많은 동물들이 죽는다는 의미다. 신임 관리관의 임지는 죽음의 나라였다. 사바나 남쪽의 풀밭에도 소가 한 마리 죽어있었고 마사이 서너 명이 서성거렸다. 마사이는 피투성이 젊은이를 들것에 실었는데 젊은이는 목뼈가 부러져 죽어가고 있었다. 사자들의 소행이다. 굶주린 사자가 소 떼를 덮쳤고 소를 보호하려는 마사이를 죽였다. 관리관을 보는 마사이의 눈살이 험악했다.

이건 사자가 한 짓이 아니다. 와캄바가 일부러 사자를 소 떼가 있는 곳으로 몰아넣었다.’

존스가 마사이의 주장을 시인했다. 와캄바는 경작지를 짓밟은 마사이에게 사자를 몰아넣는 방법으로 복수했다. 그러나 마사이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원주민끼리만 싸우는 게 아니다. 허가지역 밖에서 코끼리사냥을 하던 네덜라드인 세 명이 밀렵자들의 총격을 받았다고 했다. 허가를 받은 백인 코끼리 사냥꾼과 밀렵꾼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졌다. 나이로비에서 밀거래를 하는 밀수꾼들과 가래를 유지하기 위해 백인 코끼리 사냥꾼들이 서로 다투었다.

코네리가 죽은 전임 관리관의 부인을 만났다. 젊고 예뻤는데 술기가 있었다.

나는 아직도 관사에서 살고 있는데 설마 당장 나가라고는 하지 않겠지요?’

관리관의 관사는 사무실과 붙어있는데 총각인 코네리에게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다.

이사할 준비가 될 때까지 사십시오.’

코네리는 그날 밤 사무실에서 잠을 잤는데 밤중에 미망인이 찾아왔다.

여기서 주무시지 말고 관사로 오십시오. 방 하나를 비워놓았으니 거기서 기거하시지요. 주방 일을 하는 원주민부부가 식사도 해줄 것입니다.’

전임 미망인과 한집에서 지내는 것이 꺼림칙했다. 미망인의 제의를 사절하고 밀렵단속반 원주민 두목 킨제르 영감과 유보지 안에 있는 와캄바 마을을 방문했다. 코네리는 군대에서 불하받은 로리를 천천히 몰았는데 불빛이 명멸하고 총소리가 들렸다.

밀렵자들인가?’

아닙니다. 허가받은 백인 사냥꾼들입니다.’

밤 사냥은 못 하게 되어 있는데 .’

킨제르 영감은 입장이 난처한 듯 대답하지 않았다. 전임 관리관이 제대로 수렵 관리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조수 존스도 그렇고. 그날 밤에 만난 와캄바 추장이 확인시켜주었다. 백인 사냥꾼들은 밤에도 코끼리와 코뿔소사냥을 했고, 한꺼번에 열 마리가 넘는 코끼리를 잡았다고 했다.

단속 따위는 하지 않았어요. 수렵관리관, 조수와 허가받은 백인 사냥꾼이 모두 한통속이었지. 수렵관리소는 밀렵꾼도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어.’

추장은 와캄바가 전임 관리관을 죽였다는 말을 부인했다. 와캄바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긴 독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해서 범인이 와캄바라고 단정 지울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와캄바의 활을 구해서 살인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코네리가 밤늦게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관사에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전임 관리관의 미망인과 존스 같았다.

전임 관리관이 죽고 난 뒤 미망인과 조수가 관사에서 거주했는가?’

킨제르 영감이 머뭇거렸다.

늘 그런 건 아닙니다. 관사에는 여러 사람들이 출입을 했습니다. 존스 조수님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오신 손님들도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코네리는 전임 관리관이 남자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마담의 말을 상기했다. 마담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냥꾼들과 존스 그리고 밀렵자들의 대화를 듣고 짐작하고 있는지 몰랐다. 어쩌면 점괘를 통해 범인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뭔가 수상쩍다. 미망인은 밤낮없이 남자들을 관사로 불러들였다. 낮에도 술기가 있었다. 눈길이 좋지 않았다. 남자를 유혹하는 눈길이다.

다음날, 순찰한 단속반이 코뿔소 네 마리가 죽었다고 보고했다. 백인 사냥꾼의 짓이다. 한 달 사이에 스무 마리가 죽었다. 조수 존스는 케냐 관리청이 강력하게 상아와 코뿔을 밀렵 단속을 해서 코뿔소의 수요가 늘어나 밀렵꾼들이 설친다고 했다.

왜 단속을 하지 않느냐고요? 단속을 했지요. 그 결과 원주민 단속반 두 사람이 죽었고 나도 죽을 뻔했습니다. 등 뒤에서 총알이 날아왔습니다.’

관리소의 기구와 운영 방법을 바꿔야겠소.’

코네리가 단호하게 지시했으나 존스는 코웃음을 쳤다.

무슨 돈으로 어떻게 운영을 바꾸겠다는 것입니까?’

사실 돈이 없었다. 당장 로리의 수리비와 새로 구입해야 할 총과 단복 구입비도 없다. 죽은 원주민의 위자료도 주지 못했다. 스무 명이 넘는 대원들에게 줄 봉급조차 몇 달 분이 밀렸다.

그동안 내가 이럭저럭 돈을 마련했고 캡틴이 허락한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네리는 <이럭저럭>이란 말의 뜻을 알았다. 많은 사냥꾼을 데리고 와 불법 사냥을 하는 여행사가 주는 검은돈이다. 밀렵자들에게서도 돈을 받고 원주민들에게서도 착취했다. 그 때문에 몇십 마리의 코끼리가 어금니가 잘려 죽었고, 코뿔소의 코뿔이 잘려 나갔다. 악어, 사자, 표범과 얼룩말의 껍질이 벗겨지고 . 코네리는 원주민 대원들에게 제복을 입히고 사격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며칠 후 대원을 데리고 살육의 땅을 순찰했다. 그는 여행사직원, 사냥꾼들 외부인사들이 수렵 지소 사무실을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금지시키고, 관리관관사에서 파티도 열지 못하게 했으며 아무도 사무실에서는 술을 마시지 못하게 금주령을 내렸다. 대원들이 와캄바 유보지 가까운 곳에 들어갔을 때 총소리가 들렸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요란하게 연달아 발사되는 총소리다. 코네리는 소위 허가받은 백인 사냥꾼들의 코끼리사냥의 실상을 봤다.

붉은 흙벽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수십 마리의 붉은 코끼리 앞에 사냥꾼들이 늘어서서 일제사격을 했다. 대여섯 마리의 코끼리가 피바다 속에 쓰러져있었다. 대원들이 공포를 쐈다.

모두 총을 버려! 안 버리면 사살한다!’

코네리가 노호했다. 코네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총을 쏘던 사냥꾼이 팔에 총을 맞았다.

캡틴, 이게 무슨 짓이요? 당신을 살인 혐의로 고소하겠소.’

여행사 안내인이 덤벼들었다.

우리는 허가를 받았어. 와캄바 옥수수밭을 침입한 코끼리를 사살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

조수 존스가 허가를 해줬다는 말이었다. 수렵 관리 지소는 코끼리를 쫓아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존스는 그 일을 여행사가 데리고 온 사냥꾼들에게 맡겼다. 그러나 그들은 코끼리를 쫓아내는 게 아니라 몰살시키고 있었다. 상아를 얻으려고 대량 학살을 했다. 그 코끼리들은 이미 와캄바의 사냥꾼들에 의해 옥수수밭에서 쫓겨나 사바나 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는데 백인 사냥꾼들이 도주하는 코끼리의 앞길을 막고 일제사격을 했다. 코네리가 안내인과 사냥꾼들에게 수갑을 채워 관리 지소로 연행했다. 존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수갑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코네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존슨, 너는 오늘부터 직무 정지야. 본청에서 해임 통고가 올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말아!’

관사에서 열린 파티가 중단되고 열 명쯤 되는 백인 사냥꾼들이 쫓겨났다. 그날 밤, 코네리가 숙직실로 사용하는 방에 미망인 루시가 들어왔다. 이미 만취가 되어 비틀거리면서도 술병을 쥐고 있었다. 루시는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방바닥에 쓰러졌다.

여보시오. 관리관 나리. 당신이 뭣인데 나를 못살게 구나. 당신은 순직한 전임 관리관 부인에게 위자료도 주지 않았고 먹을 것 마실 것까지 다 빼앗아갔어. 죽일 거야. 난 당신을 죽일 거야.’

술 취한 루시가 권총을 들어 올렸다.

부인, 총을 버리시오! 돌아가신 남편의 위자료는 내가 지급하는 게 아니라 본청에서 지급할 것입니다.’

언제?’

부인, 그보다도 더 급한 일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남편이 왜 죽었는지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내가 조사하고 있으니 부인도 협조를 해주시지요.’

남편을 죽인 범인? . 그야 뻔하지 뭐.’

부인은 범인을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럼, 알고 있지. 범인은 바로 나야!’

루시가 총이 무거워 더 들고 있기 어렵다는 것처럼 총을 버렸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내 얘기를 더 듣겠다면 술을 줘요. 위스키 한 잔 줘요. 당신도 마시고 . 주정뱅이 바람둥이 여편네와는 함께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거야?’

나는 부인을 그렇게 여기지 않아요.’

거짓말도 잘하네. 다 알고 있으면서 . 기어이 내 잔을 받지 못하겠단 말이지? 그래, 나는 그런 년이야. 술과 사내 없으면 못 사는 년이지. 나는 아무 술이나 마시고 아무 놈하고도 자지. 그거 없으면 못 사는 년이니까. 술 중독자고 당뇨병에 걸려 사내 구실을 못 하는 서방과 사는 년이 하는 짓이란 뻔하지. 한 잔 더 줘요.’

미망인 루시가 술에 못 이겨 쓰러졌다.

난 남편이 살아있을 때도 술을 마셨고 여러 놈들하고 잤지. 당신 조수인 존스와도 그랬고 여기 드나드는 사냥꾼 놈들 하고도 잤어. , 범인이 누구냐고? 범인은 그 년놈들이지. 모두 짜고 주정뱅이 관리관을 죽였어.’

그럴런지도 모른다. 터놓고 여러 남자와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부인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남편의 갈 길이란 죽음의 길뿐인지도 모른다. 아직 범인이 누구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우나 일확천금을 노리고 살육을 일삼는 불법 사냥꾼이나 밀렵자들이 모여드는 아프리카 사냥터의 분위기가 살인사건의 원인인 것 같았다. 코네리가 의자에 쓰러진 루시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방에서 나가는데 등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잠든 줄 알았던 루시가 말했다.

캡틴, 등 뒤를 조심해! 언제 총탄이나 독화살이 날아올지 모르잖아.’

그 말에 코네리가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초원으로 걸어 나가자 원주민 일꾼 두목 킨제로 영감이 따라왔다.

부와나(나리), 날이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어둠 속에서 혼자 다니면 안 됩니다.’

코네리는 킨제로 영감을 데리고 로리를 타고 와캄바 마을에 가려고 했다. 몇 년 전에 준공된 새 도로 옆에 있는 마을은 와캄바의 종주(宗主) 마을이다.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그 마을이 밀렵의 근거집니다. 백인 사냥꾼들이 드나들고 마을 사냥꾼이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코네리가 끝내 가자고 고집을 하자 영감이 이상한 제안을 했다. 마담 미셀과 함께 가자는 말이었다. 코네리는 영감의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미셀의 가게가 가는 길의 도로변에 있었으므로 승낙했다. 마담 미셀은 와캄바 마을에 함께 가자는 코네리의 요청을 듣고 한참 생각을 했다. 미셀이 술집 안쪽 칸막이에 있는 원주민과 얘기를 했다. 원주민은 와캄바였으며 머리에 꽂은 깃털로 봐서 상당한 지위에 있는 인물이다. 미셀이 와캄바도 데리고 가기로 했다. 미셀이 마을 어귀에 도착하자 와캄바를 먼저 마을로 들여보냈다. 와캄바가 한참 뒤에 마을의 점술사를 데리고 왔다. 점술사는 추장과 동등한 위치다. 마을에 긴장감이 돌았다. 무장을 한 수십 명의 와캄바 사냥꾼들이 돌아다녔다. 와캄바 사냥꾼들이 코네리의 앞길을 막았으나 점술사의 호통에 비켜섰다. 안쪽에 있는 별채에 네덜란드인 밀렵 사냥꾼 대여섯 명이 있었다. 쪽귀 파렌타이가 밀렵단의 우두머리고 밀렵 전과 4범이다.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풀려났다. 그 뒤에는 유명한 변호사가 있는데 나이로비의 판검사들이 꼼짝을 못했다.

, 이게 누구요. 캡틴 코네리 아니요. 마담 미셀도 오셨고 .’

쪽귀가 능청을 떨었다. 그 능청에 적의와 살의가 보였다.

캡틴 코네리, 나는 요즘 사냥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 나를 잡을 생각은 하지 마시오.’

짐승 밀렵은 하지 않아도 사람 밀렵은 하겠지.’

뭐라고?’

쪽귀가 고함을 지르며 덤벼들었으나 점술사가 말렸다.

쪽귀는 밀렵을 계획하고 있었다. 늘 그러하듯이 마을 사냥꾼들을 동원해서 코끼리나 코뿔소를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백인 밀렵자들과 와캄바 사냥꾼들은 공생관계다. 와캄바가 코끼리가 있는 것을 알려주고 때로는 몰아주기도 했다. 아프리카 야생짐승을 그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백인 밀렵자는 코끼리의 상아와 코뿔소의 뿔만 도려내고 고기는 와캄바 차지다. 옥수수와 감자만으로 굶주린 와캄바에게 코끼리와 코뿔소는 많은 식량이다. 그뿐만 아니라 돈도 주었다. 돈을 몰랐던 와캄바는 돈이며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돈은 마법의 종이였다. 백인 밀렵자와 와캄바에게 수렵관리관은 공통의 적이다. 케냐의 행정당국이 야생동물보호 방침을 세워 밀렵을 단속하자 와캄바는 사냥을 하지 못했다. 야생동물들이 옥수수밭이나 감자밭을 짓밟아도 사냥을 할 수 없었다. 쪽귀들이 와캄바를 선동하여 수렵관리관을 살해했다는 의심이 갔다. 쪽귀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다. 그는 몇 년 전에도 마사이 랜드에서 수렵관리관을 죽인 혐의 코네리에게 체포되었으나 유력한 변호사의 암약으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쪽귀가 의심스러웠으나 현장에서 체포해야 한다. 현장에서 도망쳐버리면 증거확보가 어렵다.

나리, 빨리 빠져나갑시다. 위험합니다.’

킨제로 영감이 말했는데 옳았다. 언제 어디서 독화살이 날아올지 모른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마담 미셀이 와캄바 사냥꾼들에게 다가갔다. 사냥꾼들이 미셀을 보자 슬금슬금 물러섰다. 험악하던 표정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악마를 피하듯 공포가 떠올랐다. 점술사도 불안한 표정이다.

마담 미셀은 이상한 여인이다. 미모였으나 언제나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원주민은 미셀이 마술을 부린다고 믿습니다. 미셀이 신들린 사람이며 그녀에게 잘못 보이면 저주를 받는다고 믿습니다.’

미셀은 프랑스의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와캄바에서 급한 환자가 생기면 점술사가 환자를 미셀의 술집으로 보냈다. 술집 뒤 별채에서 환자를 치료했다. 미셀이 봐주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 환자가 금방 조용해졌다. 미셀은 몰핀을 주사했다. 말라리아에는 키니네를 먹였고 종기는 칼로 쨌다. 뼈가 부러진 환자는 부목을 대고 붕대로 감았다. 또 미셀은 죽음을 예언했다. 불치의 병은 죽는 시기를 예언했다. 그래서 원주민뿐만 아니라 백인들도 미셀을 두려워했다. 전임 수렵관의 죽음을 예언했다. 언젠가는 멀쩡한 밀렵꾼이 죽는다고 예언했는데 그 밀렵꾼은 다음날 죽었다. 코끼리의 발자국을 쫓다가 표범에게 기습을 당하여 목줄이 끊어졌다. 그날 밤 코네리는 미셀의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그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나 위스키를 연거푸 마셨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 미셀이 늘어져 있는 코네리에게 왔다.

캡틴 조심하세요. 여난(女難)의 상이야. 여인들을 조심하시오. 죽은 관리관의 미망인을 조심하시오. 그리고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여인도 조심하고 .’

미셀이 요염한 눈으로 코네리를 보았다.

그때 어두운 밀실 유리창에 밝은 빛이 반짝였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다. 끼익! 급정거하는 차바퀴 소리가 나고 밤 12시가 가까웠는데 버스와 트럭이 도착했다. 버스는 런던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고급차고 트럭은 군용차다. 버스에서 열서너 명의 남녀가 내리고 트럭에서는 원주민 일꾼들이 내렸다. 트럭에는 야영에 필요한 물품이 가득 실렸다. 나이로비에 있는 특급여행사가 새로 계획한 아프리카 사파리여행이다. 관광회사는 부유한 세계 각지의 관광객을 위해 고급차량과 장비를 갖춰 초원에 천막촌을 세웠다. 호화로운 식당, 무도장과 샤워실까지 구비한 천막촌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남녀들이 미셀의 술집에 난입했다. 이미 술기가 있었고 큰 소리로 떠들었다. 코네리가 체포한 관광회사 안내인이 있었는데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미망인 루시는 남편의 퇴직금과 위로금을 타려고 나이로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다. 루시는 검은 상복을 입었으나 술에 취했다.

어때요? 사내놈들은 이런 상복 입은 여자를 좋아한다는데 .’

상복을 입지 않아도 사내들은 당신을 좋아하지 않나요?’

그래요. 사내들은 날 좋아하지. 나도 그들을 좋아하고. 이 저주받은 나라에서는 여자는 다 타락하기 십상이야. 미셀은 그렇지 않나요? 여자는 다 타락하고 남자는 마구 피를 뿌리는 살육자가 되지. 하긴 캡틴 코네리는 좀 다르지만 .’

루시가 코네리와 앉아있는 미셀을 번갈아 보았다.

나이로비는 좀 시원하지 않았나요? 거리도 깨끗하고 음식도 맛있고 .’

그런데 왜 다시 돌아왔느냐는 말?’

나는 이 타락한 땅에 중독되었어. 빠져나가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마담 미셀도 벌써 여기에서 5~6년 살지 않았어요?’

저기 저 숙녀들도 여기서 3~4일쯤 머물면 다 그렇게 되요. 살육자가 된 남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춤을 추다가 타락하지. 하긴 여기서는 그것도 지겹지. 땀을 줄줄 흘리면서 정사를 하는 것도 지겨워. 온몸이 진득거리는 것도 싫고 .’

그때 홀에서 거친 고함이 들렸다. 남자들이 다투었다. 밀렵자 쪽귀가 부하 서너 명을 데리고 있었다.

이건 영토 침입이야! 우리는 여기서 오랜 세월 사냥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당신들이 우리의 사냥터를 망치고 있어. 총질을 마구 해서 사냥감을 쫓아버려 우리는 사냥도 못 해 굶고 있단 말야!’

여행사 안내인이 쪽귀를 달랬으나 쪽귀는 막무가내다.

합법적이라고? 합법 좋아하시네. 아프리카 삼림에서 법이 통할 줄 알아? 여긴 강한 놈이 살고 약한 놈은 죽는 곳이란 말야!’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나 캡틴 코네리가 나타나자 누그러졌다. 코네리의 지시로 여행사 안내인이 관광객을 데리고 나갔고 문을 막고 있던 밀렵자들이 코네리를 흘끗 쳐다보고는 길을 터주었다.

캡틴, 당신에게도 할 말이 있어!’

관광객이 모두 나가자 쪽귀가 시비를 걸었다.

수렵관리청은 왜 우리들만 단속하고 저 친구들은 내버려 두지? 우리는 밀렵을 해도 코끼리나 코뿔소의 새끼들은 죽이지 않아. 돈이 되지 않으니까 잡지 않아. 상아나 코뿔이 시원찮은 암컷들도 죽이지 않아.’

그러나 허가를 받고 사냥을 하는 관광객들은 그걸 가리지 않았다. 코끼리의 무리에게 덮어놓고 총질을 했다. 허가된 마릿수도 무시했다.

우리는 잡은 코끼리나 물소고기를 불쌍한 원주민에게 넘겨주지만 저 친구들은 그런 처리도 하지 않아. 초원에 짐승의 시체들이 방치되어 썩고 있어. 파리들이 들끓어 병균이 원주민들에게 퍼져나가고 있어.’

1930년대의 동물보호에 문제가 있었다. 수많은 사파리가 보호지역에 들어와 동물을 학살했고 자연을 황폐화시켰다.

케냐 수렵관리청은 야생동물보호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다. 울타리를 설치하고, 단속반원과 장비가 필요했는데 케냐 정부에서는 보조가 없었고 동물애호단체의 기부금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관리청은 사파리로부터 적절한 입장료를 받고 서비스료도 받았다. 사냥한 동물의 수에 따라 돈을 받았다. 사냥할 수 있는 동물과 수효는 제한적이었으나 코끼리를 잡으면 상아값만큼의 돈을 내고 사자를 잡으면 사자 껍질 값에 해당하는 돈을 냈다. 법과 규정대로라면 별문제가 없엇다. 사파리는 돈을 내면 사냥을 즐길 수 있고 관리청은 관리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선 사파리가 법을 지키지 않았다. 마구 총질을 했다. 사람들에게는 살육의 잔인성이 잠재되어 있다. 영양무리를 발견하면 서로 경쟁하듯 총질을 했다. 어미, 새끼를 구분하지도 않았고 임신한 어미도 죽었다. 사자, 악어와 치타가 그렇게 몰살되었다. 더 큰 문제는 관리지역의 관리관과 보조원들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미 여행사에게 매수되었다. 임자가 없는 밀림의 동물들을 일부가 사살되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날, 영국에서 온 귀족이 강변 갈대밭에서 물소사냥을 하겠다고 했다. 그곳은 물소사냥이 금지된 지역이다. 물소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맹수였으며 안내인은 안내를 하지 못하게 통보했다. 그래서 관리관 존스는 귀족에게 거기에서는 사냥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괜찮아, 나는 영국사격협회 회원이야. 그까짓 물소쯤 문제없어.’

존스는 회원증이 돈만 내면 아무나 발급되는 명예 회원증이란 걸 알고 있었으나 귀족에게 굽실거렸다. 뭉칫돈을 집어주는 높은 어른에게 거기는 안 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사파리에 대한 총책임은 관리관에게 있으니 그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좋지, 그야 어려울 게 없어.’

물소사냥을 떠날 때 관리관은 해장술에 만취되어 있었다.

좋지요, 백작님. 조건이 있습니다. 본관이 직접 따라가겠습니다.’

관리관은 비틀거리면서 물소 사냥에 참가했다. 갈대밭에서 물소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가장 위험한 떠돌이 수컷이었다. 갈대숲에 숨어있었다. 술 취한 관리관이 소리쳤다.

각하 좀 기다리십시오. 계속 추적하는 건 위험하니 몰이꾼들이 이쪽으로 물소를 몰아오면 사냥합시다.’

존스가 데려온 와캄바 사냥꾼 세 사람이 몰이를 했다. 와캄바는 우수한 사냥꾼이다. 지형을 살펴서 물소가 숨어있는 곳을 알아내고 백인 사냥꾼들에게 지적했다. 자기들이 할 일은 다 했으므로 갈대숲에 숨어서 백인들이 사냥하는 걸 기다렸다. 관리관이 비틀거리면 앞장을 서서 물소가 숨어있는 갈대숲으로 들어갔다. 뒤 따라간 안내인은 존스를 믿었다. 그 뒤를 따라가는 백작은 그 두 사람을 믿었다. 백작이 총을 쏘기 전에 물소는 죽을 것이고 자기는 죽은 물소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으면 된다. 존스는 사냥대가 갈대숲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그는 위험한 사냥을 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때 관리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 물소가 저기 있다! 이 새끼 썩 나오지 못해!’

관리관의 취한 눈에도 물소가 보인 것 같았다. 관리관이 발포했다. 물소가 뛰어나왔으나 뒤따라 두 사람이 총질을 하자 등을 돌려 도망갔다.

뭣들 하고 있어, 물소가 도망치는데 .’

관리관이 호통을 치자 두 사람이 또 총을 쏘았다. 물소는 총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도망을 쳤다. 관리관이 물소 뒤를 쫓았다. 물소 앞에 뭔가가 어른거렸다. 와캄바 사냥꾼들이 물소의 도주로를 막고 있었는데 술 취한 관리관은 알아보지 못했다. 관리관은 윈체스터 연발총을 다 쏘았다. 한 발은 물소에게 맞았고 또 한 발이 와캄바에게 맞았다. 물소는 그대로 돌진하여 총에 맞은 와캄바를 짓밟았다. 그 결과 물소뿐만 아니라 와캄바도 죽었는데 모두 쉬쉬했다. 코네리는 전임 관리관 피살사건을 조사하다가 그 보고서를 읽었는데 미셀이 그 보고서가 엉터리라고 말했다.

사냥에 참가했던 와캄바로부터 사실을 확인했어요. 죽은 사냥꾼의 동생입니다.’

그렇다면 관리관을 죽인 범인은 . 동생이 형을 죽인 복수를?’

미셀은 찬성하지 않았다.

단정할 수 없어요. 동생 와캄바를 보낼 테니 조사해보세요. 그러나 조심하세요. 와캄바 뿐만 아니라 백인도 조심해야 합니다. 등 뒤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날 밤 나이로비에 있는 상부로부터 특별지시가 내려왔다. 영국의 왕족과 귀족들이 야영캠프를 쳤는데 원주민들의 움직임이 불온하다고 했다. 원주민이 습격하여 사상자가 생기면 큰일이라는 말이었다. 코네리가 즉시 30여 명의 대원을 동원하여 캠프 주변을 경호했다. 여행사의 경호원 수십 명도 경비에 합세했다. 마치 전쟁터의 군대 사령부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불온한 원주민은 없었다.

(젠장!)

코네리가 혀를 찼다. 캠프에 갔다. 한밤중인데도 대낮처럼 밝았다.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있었다. 미셀과 루시가 있었다. 술을 권했으나 뿌리치고 캠프장을 순찰했다. 야영장 뒤편에 큰 천막이 있었는데 그곳은 조용했다. 여행사 간부, 안내인들이 드나들었다. 며칠 전에 해임된 존스도 있었다. 홍콩에서 온 코뿔소 전문 거래상 중국인도 있었다. 거물급 거래상이며 수십 명의 밀렵자를 거느렸다. 코네리가 여행사 상무를 만났다. 마달발이었으며 나이로비의 유지다. 상무는 사파리 허가서를 내밀었다. 너무 관대한 허가서였다. 수렵 장소, 수렵 종류와 마릿수도 애매했다. 잡고 난 다음에 보고하라는 허가서다. 허가 유효 날짜도 없었다. 상대가 왕실 귀족이었다. 다음날 코네리는 보호지역의 원주민을 찾아갔다. 광대한 보호지역에서 일어난 일은 원주민만 알고 있다. 보호지역에는 <지옥의 숲>이라는 잡초지가 있다. 파리와 모기가 들끓어 사람은 들어가지 않았다. 오직 열서너 마리의 코뿔소들만 살았다. 그런 그곳이 이변이 생겼다. 코뿔소는 단독생활을 하고 2년에 한 번 암수가 만나 교미를 했다.

그게 코뿔소의 생태였는데 10년에 한 번쯤 암수 코뿔소가 한꺼번에 같은 장소에 모이는 일이 있었다. 원주민들은 그걸 <코뿔소의 집단교미>라고 불렀는데 3~4년 전부터 코뿔소가 <지옥의 숲>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코뿔소 밀렵꾼들이 코뿔소를 찾아 헤맸으나 잡기 어려웠다. 코끼리처럼 집단생활을 하지 않고 단독생활을 하기 때문에 발견하기도 어렵고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운 좋게 코뿔소의 집단교미기를 만나면 여나문 마리를 잡을 수도 있다. 코뿔소의 뿔값은 상아보다 비싸기 때문에 코뿔소의 잡단 교미 장소를 덮치면 일확천금을 할 수 있다. 단속이 심해지자 코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코네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했다. 홍콩의 코뿔 암거래상과 코뿔소 전문 밀렵꾼이 캠프장에 모인 건 우연이 아니다. 집단교미기의 코뿔소들이 지옥의 숲에 모여드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코네리가 사무실에서 동생 와캄바를 만났다.

자네가 전임 관리소장을 죽였는가?’

아니요. 나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자네가 죽였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데 .’

내가 전임 소장을 죽이려고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형님의 원수를 갚겠다고 여러 사람들에게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소장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누군가? 다른 와캄바인가?’

아닙니다. 와캄바가 아닙니다. 와캄바에는 독이 없고 독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담배 피우나?’

!’

코네리가 담배를 권하며 사연을 물었다. 와캄바 마을에서 독을 만들고 보관하는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다.

점술사가 추장의 감독을 받으며 그 일을 했다. 몇 날 며칠에 걸쳐 만든 독은 특별히 그 독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항아리에 넣고 밀봉을 했다. 추장의 허락 없이 그 독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관리관이 2~3일 전에 그 독항아리를 가지고 갔다. 독 사용이 위법이므로 압수해갔다.

관리지소에서 누가 나왔는가?

조수 존스가 대원 세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독항아리는 돌려받았는가?‘

아니요.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존스가 범인인 것 같았다. 그는 자기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마을에서 압수한 독항아리에서 빼낸 독을 화살에 발랐다. 그걸로 관리관을 찔러 죽였다. 그리고 와캄바에게 뒤집어씌웠다. 코네리가 관리사무소의 지하창고에 갔다. 증거인 독항아리를 검증하려고 창고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캡틴, 내가 등 뒤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던 말 잊었어요?’

미망인 루시다. 루시는 관사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가 자동차 소리를 들었다. 존스가 밀회를 할 때 타고 왔던 지프다. 지프가 사무실 앞에서 정지했다. 코네리가 사무실의 불을 껐다. 지프가 초원으로 도망갔다. 놈은 코네리가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걸 알고 도망쳤다. 코네리가 순찰용 트로리에 시동을 걸자 와캄바와 루시가 차에 올랐다. 광대한 초원에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달리자 야생동물들이 놀라 후다닥! 뛰어나왔다.

조심해요. 저놈은 미친놈이니까.’

코네리가 웃었다. 침착한 사나이였으며 믿음직스러웠다. 코네리가 천천히 추격했다. 존스가 발포했으나 총탄이 닿지 않는 거리다. 응사하지 않고 계속 추격했다.

존스가 발악하듯 난사를 하다가 구릉에서 멈췄다. 지프의 불을 끄고 기다렸다. 거기서 결판을 내자는 셈이다. 와캄바가 활을 들고 차에서 내려갔다. 와캄바는 풀밭에 엎드려 기었다. 와캄바는 존스와 싸울 생각이었다. 그 결과는 뻔했다. 어둠 속에서 활을 든 와캄바와 총을 가진 존스와의 싸움은 결과는 뻔했다. 백인은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총도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와캄바는 어둠 속에서도 눈이 보이고 화살을 날릴 수 있다. 특히 움직이는 물체에는 정확하게 화살을 날렸다.

죽이면 안 돼! 놈은 사로잡아야 해.’

와캄바가 웃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이빨이 드러났다. 총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마구 쏘는 총이다. 총소리가 사라지고 얼마 후 존스의 처참한 비명이 들렸다.

아이구, 이놈이 사람 죽이다. 코네리, 이놈을 좀 말려줘. 야만인이 나를 죽이는 걸 내버려 둘 거야?’

와캄바는 존스를 죽이지 않았다. 존스의 팔을 비틀어 묶어 데리고 왔다. 허벅지에 화살이 꽂혀있었으나 와캄바가 독은 없다고 했다.

코네리. 날 살려줘. 협상을 하자. 내게 미국 돈 백만 달러가 있어. 믿기 어려우면 저금통장을 보여줄게. 호주머니에 있어.’

믿을 수 있다. 오랫동안 밀거래를 했으니까 그쯤의 돈은 있을 거였다.

거래는 성립된 거야. 반반으로 하자. 아니, 2/3를 너에게 주지.’

코네리가 냉소했다. 더러운 돈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그러자 존스는 루시에게 매달렸다.

루시, 날 살려줘. 돈은 다 네게 주겠어. 목숨만 살려줘.’

싫어. 난 돈을 좋아하지만 네놈의 돈은 싫어.’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 게 아냐? 반년 동안 한 침대에서 놀지 않았나? 그 돈을 가지고 미국에 가서 행복하게 살자.’

뭐가 어째? 이 무식한 놈아. 네 놈은 여자란 그 짓만 해주면 다 좋아하는 줄 알지만 아무리 네놈이 그 짓을 해줘도 네놈을 좋아할 여자는 없어.’

루시가 존스의 얼굴에 침을 뱉았다.

그렇다면 여자는 저 코네리 같은 놈을 좋아하나? 네년은 벌써 정신이 나갔군.’

그렇다. 미망인 루시는 코네리가 좋았다. 그 사나이는 여기도 저기도 있는 그런 사내가 아니다.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당당하게 그리고 멋있게 사는 사나이, 미망인 루시는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도 좋았다. 코네리는 그 길로 나이로비에 갔다. 존스를 살인 혐의로 검찰국에 넘겼다. 이번에는 세상 어떤 변호사가 붙어도 살인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다음날 다시 차보로 돌아갔다. 사바나로 차를 몰았다. 사바나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총소리가 울렸다. 밀렵자들이 <지옥의 숲>에서 코뿔소를 학살하고 있었다. 30여 명이나 되는 사냥꾼들이 숲을 에워싸고 집중사격을 했다. 지옥의 숲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대머리독수리 수천 마리가 하늘에서 빙빙 돌았다. 수백 마리의 하이에나도 모여들었다. 코네리가 공포를 발사했다. 대여섯 명의 대원들도 하늘을 향해 공포를 쏘았다.

모두 총을 버리고 손들어!’

웃기지 마, 이 새끼야. 우린 사냥허가서를 갖고 있어. 네 놈의 상관이 발행한 사파리 허가서야.’

가짜야. 네놈들이 사기 쳐서 얻어낸 가짜허가서야.’

네 놈의 상관이 위조 사인을 했단 말인가?’

그런 건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당장 총을 버려!’

네 놈이 무슨 권한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이곳의 수렵관리관이다. 이곳은 수렵관리관의 영토다. 총을 버려! 명령을 듣지 않으면 내 권리를 보여주마.’

밀렵단이 총을 버리기는커녕 발사를 했다. 총탄이 코네리의 뺨을 스쳤다.

사냥을 계속해! 책임은 내가 지겠소. 여기 영국 왕실 윌리암 백작이 사냥 허가를 신청했고 케냐 수렵관리청을 대신하여 고등판무관이 사인한 사파리 허가서기 있지 않소.’

여행사 전무가 고함을 질렀다. 밀렵하는 놈들보다 그놈이 더 나쁜 놈이다. 넥타이 정장 차림으로 행정관청을 들락거리며 나쁜 일만 일삼는 놈이다.

그래, 네 놈이 책임지겠다? 그래, 한 번 책임져봐라!’

코네리가 총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위협이 아니다.

아이고, 저놈이 날 죽인다.’

허벅지에 총을 맞은 안내인이 네 다리로 기었다. 밀렵단 두목이 총을 들어 올렸다. 코네리를 겨냥했다. 놈은 누구나 다 아는 사수며 실수가 없는 놈이다. 두목의 총과 코네리의 총이 동시에 발사되었으나 코네리가 일순 빨랐다. 영국 육군 교관의 속사다. 동시에 대원들이 발사했다.

항복, 항복할 테니 목숨만 살려줘!’

모두 체포해서 끌고 가!’

여행사직원과 밀렵자들이 나이로비에 끌려갔다. 두 명은 시체가 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일은 후에 아프리카 자연보호 역사에 기록되는 사건이 되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자연보호 상황이 달라졌다. 여행사, 총포사와 밀거래업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신문도 대서특필했다. 자연보호를 한다지만 사람을 죽여서야 되겠느냐고 비난했다. 사람의 목숨과 동물의 목숨 중 어느 게 소중한가? 더구나 밀렵꾼들은 형식적이었지만 허가서를 갖고 있었다. 수렵관리청은 자기들이 발행한 사파리 허가서에 의해 사냥을 한 사냥꾼들을 죽일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영국 장교 출신의 관리관에 대한 비난이 높았고 살인 혐의로 체포하라고 주장하는 신문도 있었다.

더구나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건 왕실의 윌리엄 백작이 관련된 것이다. 윌리엄 백작은 1차대전 때 대 독일 전쟁에 참가한 장군이며 군대의 존경을 받았다. 그런 명예로운 장군을 코뿔소밀렵자로 몰아 단속하다니 . 아닌 게 아니라 장군이 크게 노해 당장 그 건방진 수렵관리관을 잡아넣으라고 케냐 정부에 불호령을 내렸다. 그런데 마담 미셀이 윌리엄 백작을 만났다. 윌리엄 백작은 나이로비에 온 지 나흘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 프랑스부인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본디 영국인이란 프랑스에 문화적 향수를 느꼈으며 윌리엄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백작은 차보에 세운 천막촌에 미셀을 초대하고 자기의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을 과시했다. 미셀도 크게 감탄하여 브라보를 연발했다. 미셀이 백작의 기분을 사로잡았다.

백작 각하, 나는 영국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군인은 예외입니다. 특히 육군 정규부대의 장교들은 신사답고 멋있지요.’

어허, 그 사람 볼 줄 아는데. 하긴 요즘 영국 놈들은 타락했어. 돈만 알고 아첨만 해. 그러나 군인들은 달라. 영국 군인들은 영국 사회의 귀감이야. 정의롭고 용기가 있지.’

그래요, 바로 그래요. 특히 차보 북부지역 수렵관리관 코네리가 모범적이에요.’

! 그 친구가 캡틴 코네리인가?’

그래요. 각하의 나라의 정의로운 군인이지요. 그러나 그 여행사의 간부들은 모두 타락한 영국인입니다. 그들은 명예로운 각하의 이름을 팔아 위조 사파리 허가서를 받아냈습니다.’

그런 것 같았다. 그 관리관은 정말 멋있는 영국 장교다. 그런 장교가 나쁜 짓을 하겠는가? 윌리엄 백작이 즉시 사파리 허가서가 발행된 경위를 알아봤다. 그건 자기도 모르게 관광회사에서 신청했는데 내용이 엉터리였다. 적당한 지역에서 적당한 종류의 야생짐승을 적당히 잡는다는 허가서다. 뭐가 적당인가? 한 마리도 적당이고 백 마리도 적당인가? 케냐 수렵관리청에서 적당이라는 말은 현지 관리관이 판단하고 지시할 문제라고 해석했다. 현지 관리관 맘대로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행사 간부와 그 일당들이 밀렵을 했다. 코뿔소를 스무 마리나 학살했다.

본디 아프리카의 코뿔소는 그리 대단한 사냥감이 아니다. 사냥꾼이 알아주는 사냥감은 첫째 사자다. 둘째는 표범, 세 번째가 물소고, 다음이 코끼리고 코뿔소는 다섯 손가락 안에 끼지 못했다. 눈이 어둡고 동작이 느렸으며 성질이 급한 것 같아도 한 방 맞으면 똥을 싸며 달아났다. 돈으로 따지면 코끼리보다도 비쌌으며 그건 밀렵자의 평가일 뿐 사냥꾼은 코뿔소 사냥꾼을 사냥꾼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국이 자랑하는 윌리엄 각하가 시시한 코뿔소 사냥꾼으로 전락할 뻔했다. 코뿔을 팔아 돈을 탐하는 패덕자로 밀렵자로 추락할 뻔했다.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백작은 크게 노하여 자기를 속인 놈들을 엄벌하라고 지시했다. 진상을 철저하게 재조사했다. 코네리가 코뿔소를 집단 학살한 밀렵자를 사살한 행위는 정당하다고 평가했다. 그 후 밀렵자들에게 대원들이 총으로 대결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프리카 검은코뿔소는 번식이 느려 최근 무분별한 남획으로 그 수가 격감하였다. 코네리가 코뿔소의 전멸을 막았다. 백작이 차보의 천막을 그대로 두었으나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부르고 미셀과 루시를 초청하여 유쾌한 야영 생활을 했다. 사파리란 말이 사냥에서 관광으로 바뀌었다.

대위 자네 어느 연대에 속했나?’

, 각하! 36연대 마델 대령님 휘하에 있었습니다.’

, 마델 대령이란 말이지. 내가 아꼈던 부하였지.’

백작이 영국 예비역 장군의 단체에서 주는 훈장을 코네리의 목에 걸어주었다. 정부에서 주는 훈장보다 더 명예로운 훈장이다.

 

127. 범의 나라, 인디아

19262, 인디아에서 왕족 대우를 받는 브라만(귀족)이고 인디아 남부지역에 영국의 웬만한 주()만큼이나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타이른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중풍으로 돌아가신 부친의 유언에 따라 기울어진 가산을 바로 세우기 위해 그는 토질연구를 하는 대학 친구 이든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함께 돌아왔다. 타이른이 영토에 들어서자 타이른가의 집사, 군수 그리고 경찰서장이 코끼리를 타고 마중 나왔다.

도련님, 어서 오십시오. 코끼리에 타십시오.’

집사, 내가 이런 의례나 격식을 싫어한다는 걸 알 텐데 .’

도련님, 도련님은 이제부터는 도련님이 아니라 타이른가를 대표하는 나리입니다. 그러니까 손님을 모시는데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손님을 코끼리에 태우는 건 의례가 아니라 안전이다. 지형이 완만한 경사지였는데 아래쪽은 옥수수, 감자밭이고 위쪽은 다원(茶園)이었다. 결코 좋은 토질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그렇게 황폐화되도록 방치될 땅은 아니다. 그런데 구릉에 핏자국이 있고 비린내가 떠돌았다. 머리카락과 찢겨진 옷이 남겨져 있었다. 커다란 매화무늬 발자국이 있었다.

세 가락의 늙은 수컷입니다. 1년 동안 벌써 서른 명을 잡아먹었습니다.’

경찰서장이 해명했다. 별로 흥미가 없다는 표정이다. 범이 사람을 잡아먹는 건 인디아에서는 흔한 일이고 얘깃거리도 되지 않았다. 사람이 범을 잡아도 흥밋거리가 안 된다. 인디아는 넓다. 한도 끝도 없이 넓다. 이웃 중국보다 더 넓다. 그래서 사람과 범은 서로 죽이면서 살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범에게 잡아먹히는가?’

나리의 영지에서만 한 달에 열 명쯤 잡아먹힙니다.’

그렇다면 1년에 120명이다.

그런데도 보고만 있다는 말인가?’

집사는 두 손을 벌리고 어깨를 올렸다 내렸을 뿐이다.

저택에 들어가자 타이른이 대대적인 범 사냥계획을 세웠다. 범 사냥은 인디아 토호들이 즐겨 벌이는 연중행사였으나 이번에는 규모가 달랐다. 동원된 사냥꾼이 300, 돈을 받고 사냥을 하는 전문 창꾼이 100, 포수가 열두 명이다. 타이른은 코끼리 20마리를 동원했다. 늙은 집사는 어마어마한 경비에 당황했다. 그렇지 않아도 가계가 어려운데 그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겠다는 말인가?

걱정말아!’

영국의 은행에서 광대한 토지를 담보로 하면 얼마든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다음날부터 범 사냥이 시작되었다. 30km²나 되는 산림을 포위했다. 타이른과 이든이 코끼리를 타고 포위망의 중심에서 사냥을 총지휘했다. 그들은 영국 수렵인협회 회원이었으며 아프리카에서 사자와 표범을 사냥한 경험이 있었다. 범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모두 네 마리다. 발가락이 세 개인 세 발가락도 있었다. 최근 1년 동안 30명의 사람을 잡아먹은 놈이다.

이 발자국을 절대로 놓치지 말아!’

몰이꾼들이 포위망을 압축했다. 한 줄로 된 몰이꾼은 서로의 간격이 20m 정도였기 때문에 범은 빠져나갈 수 없다. 몰이꾼 뒤에는 창꾼과 포수가 배치되었다. 하오에는 포위망이 10m로 압축되었다. 이제 범은 창꾼과 부딪치지 않고는 포위망을 탈출할 수 없다. 코끼리를 탄 지휘 본부는 만족스러웠다. 범들은 낮은 산으로 몰렸다. 그런데 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발자국으로 보아 별로 당황한 것 같지도 않았다. 긴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천천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몰이꾼이 산정을 둘러싸고 범들은 그 안에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으나 범들이 어둠을 틈타 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가능성은 없다. 사냥꾼들이 10m 간격으로 모닥불을 피웠다. 다음날 정오께가 범 사냥의 고비였다. 산림을 돌아다니는 누런 범들이 보였다.

범이다! .’

몰이꾼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산중복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코끼리가 범의 냄새를 맡고 포위망 안으로 들어갔다.

식인 범이야! 식인 범을 잡아!’

타이른은 신이 나서 코끼리를 독촉했다. 그런데 하오가 되자 계곡에 몰린 범들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언제까지나 코끼리나 사람들에게 몰려 도망 다닐 범이 아니다. 그들은 인디아 산림의 왕이며 두려움을 모르는 맹수다.

사람들에게 몰린 범이 분노하며 포효했다. 포효는 무서운 살기를 띄었으며 타이른이 탄 코끼리도 뒷걸음질 쳤다. 사육사가 갈구리로 찍으면서 고함을 질러도 코끼리는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몰이꾼들도 꽹과리를 치고 나팔을 불었으나 포위망을 좁히지 못했다. 그때 타이른이 아래쪽 계곡 바위틈에서 범이 튀어나오는 걸 발견했다. 화살처럼 사람들에게 덤볐다. 몰이꾼이 5m 간격으로 포위망을 치고 있는데 사람들 앞으로 돌진했다. 몰이꾼들 틈에 끼어있던 창꾼이 창으로 찌르려고 하자 방향을 바꿨다. 마치 사열이라도 하는 것처럼 달리다가 포위망의 틈을 발견했다. 포위망을 친 몰이꾼들 사이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범은 바위를 가볍게 타 넘으면서 뒷발로 바위를 강하게 찼다. 고양이과 동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순발력과 도약력이다. 창을 던지거나 총을 쏠 틈도 없었다. 젊은 범은 포위망을 뚫고 나갔고 그걸 계기로 범과 사람들이 난전을 벌였다. 이 난전 과정에서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 얼마나 무기력한지가 드러났다. 범은 자유자재로 포위망을 뚫고 다니는 데 비해 창과 총탄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총을 쏘지 마라!’

사말과 범이 접근한 상태에서 총을 발사하는 걸 보고 타이른이 고함쳤으나 우려한 일이 일어났다. 총을 맞은 범 한 마리가 쓰러지고 범과 싸우던 창꾼도 쓰러졌다. 타이른과 이든이 난전에 뛰어들어 총 사냥꾼을 제지했다. 사람과 범을 한꺼번에 잡으려는 듯 총 사냥꾼들이 설쳤다. 타이른이 범 사냥을 중지했다. 원시 사냥법이고 야만의 사냥이었다. 범 사냥꾼들이 범을 잡았다고 환성을 질렀다.

범은 한 마리를 잡고 또 한 마리에게는 중상을 입혔다. 빗나간 총탄에 창꾼이 어깨에 총탄을 맞아 피를 흘렸다. 희생자는 또 있다. 총탄을 맞고 도망가던 범이 나무꾼을 덮쳤다. 범은 피를 보면 흉폭해졌으며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사냥꾼에게 총을 맞고는 엉뚱한 나무꾼에게 분풀이를 했다. 나무꾼은 범의 앞발치기에 맞아 목뼈가 부러졌다. 식인 범은 잡히지 않았으며 아무도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300명의 몰이꾼, 10명의 총 사냥꾼과 30여 명의 창 사냥꾼이 스무 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되었는데 겨우 젖떨어진 새끼 범 한 마리를 잡았다. 사냥이 끝난 다음 날 몇 km 떨어진 마을에서 또 희생자가 나왔다. 땔감을 하러 마을 앞산에 갔던 처녀가 범에게 물려갔다. 발자국으로 봐서 그 늙은 식인 범의 소행이다. 식인 범이 돌아다니는 산에 왜 처녀들이 올라갔을까? 사람은 언젠가는 죽으며 내세가 있다는 힌두교의 교리가 목숨 경시 풍조를 만들었을까?

나리, 그 방법도 좋지 않습니다.’

늙은 범에게 현상금을 걸겠다는 타이른의 제안을 집사가 반대했다. 식인 범에게 상금이 걸리면 많은 사냥꾼들이 도처에서 몰려들지만 식인 범을 잡은 사례가 거의 없다고 했다. 많은 범을 잡아 오지만 식인 범이라는 확증이 없다는 말이다.

미스터 코베트입니다. 그만이 식인 범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날 밤 늙은 집사는, 어떻게 하면 식인 범을 잡을 수 있겠느냐고 묻자 조용하게 대답했다. 타이른도 그 명성을 들었다. 신화적인 범 사냥꾼이다.

코베트는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영국인이고 30대 중반이라는 것 외에는, 인디아 주둔 영국육군에서 근무했다. 일선 부대 장교였으리라 짐작하였으나 근무지나 군대 경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일부러 군대 경력을 숨기는 것 같았다. 당시 영국군을 침략군이었으며 독립군을 탄압했고 민중을 억압했으므로 코베트는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신의 군대 경력을 감추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타이른이 코베트를 초청하기로 하고 인디아총독부 고급판무관 조세프에게 부탁했다. 조세프가 군대를 수소문하여 이틀 후에 코베트의 소재를 알려주었다. 마침 코베트가 남부 인디아의 타밀나드주에 머물고 있었으므로 타이른은 조세프 판무관의 소개장을 가지고 코베트를 찾아갔다.

코베트나리는 어젯밤 범 사냥에 나갔습니다.’

며칠 전에 식인 범이 아이를 물고갔으므로 코베트가 범을 쫓고 있다고 했다. 촌장은 상대가 귀족임을 알고는 자기가 직접 코베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겠다고 나섰다. 코베트는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에 있었다. 나무 위에 잠자리를 만들어 반쯤 기대어 누워있었다.

코베트 나리는 저렇게 잠을 자는 걸 좋아합니다. 나리는 밤에는 범과 싸우지 않으려고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타이른이 실망했다. 포수가 사냥감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가다니 . 코베트는 맹수 사냥 직업 포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맹수를 잡아야 한다. 재미로 사냥을 하는 게 아니다. 허름한 차림과 흑갈색의 얼굴은 인디아인 같았다. 그러나 최신형 사냥총을 두 자루나 가지고 있었다. 값비싼 영국제 2연신 산탄총과 미국제 반자동 라이플이다. 모두 대구경이었는데 왜 그런 무거운 대형 총을 가지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짧게 대답했다.

용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코베트는 말이 없는 사내였다. 상대편의 얘기를 듣고 필요한 말을 짧게 대답했다. 코베트가 타이른의 초청을 받아들였으나 조건이 있다. 현재 쫓고있는 독부(毒婦)라는 암범을 잡은 뒤에 타이른의 영지로 가겠다는 조건이다.

독부라는 암범은 언제쯤 잡게 되겠습니까?’

사흘 이내에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 할 수 있을까?

암범에게는 네 마리의 새끼가 있습니다. 독부는 그 새끼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코베트는 그 새끼들이 있는 곳을 짐작하고 있었다. 얼마 멀지 않은 산림이다. 코베트가 나무에서 내려와 독부를 쫓겠다고 말했으나 타이른이 동행하겠다는 제안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언제나 혼자서 사냥을 했다. 필요하면 인디아인 몰이꾼은 동원했으나 포수의 도움은 받지 않았다. 코베트가 혼자서 식인 범을 쫓아다니는 것은 버릇이다. 새처럼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들고 잠을 잤는데 인디아의 북쪽은 밤의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추위뿐만 아니라 강한 바람이 부는 날도 있고 비가 내리는 날도 있었다. 코베트는 모기장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우비도 없었으며 그가 가지고 다니는 것은 총, 화약, 손도끼, 로프 그리고 약간의 식량이다. 돌멩이처럼 단단한 빵 덩어리와 말린고기, 파와 마늘뿐이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었으나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독부를 찾으러 떠난 지 꼭 사흘 후에 코베트가 타이른을 찾아왔다.

독부를 잡았습니까?’

아니요. 독부는 붉은 들개에게 잡아먹혔습니다.’

인디아 산림의 왕자인 범도 다른 짐승의 밥이 될 수도 있다. 독부는 네 마리나 되는 새끼를 키우려고 너무 지쳤다. 젖이 말라 이유식을 마련하려고 사람고기를 구해 동굴로 돌아가다가 열 마리쯤 되는 붉은 들개의 습격을 받았다. 물고가던 사람의 하반신 정도만 들개에게 넘겨주었으면 봉변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네 마리나 되는 새끼들 때문에 먹이를 넘겨주지 않으려고 들개와 싸워 네 마리를 죽였으나 자신도 죽었다.

범은 혼자 살아가는 짐승이다. 그러나 새끼가 있을 때는 다르다. 새끼를 기르는 암범은 어떤 짐승들보다 강하고 헌신적이다. 무리를 지어 사는 짐승들에게는 관행이 있어서 관행을 역이용하면 쉽게 잡을 수 있다. 늘 다니는 길, 늘 가는 물터나 먹이터 등 버릇이다. 그러나 범에게는 관행이 없다. 범은 하루에 100km 필요하다면 몇백 킬로미터를 달린다. 범에게는 무한한 끈질김과 인내심이 있다. 범은 먹이를 잡기 위해 뜨거운 적도의 불볕에서 반나절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엎드려 기다린다.

사람들은 범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요. 특히 사냥꾼은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범을 경시하다가 봉변을 당합니다.’

범은 다른 짐승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짐승입니다. 범의 몸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범은 태어난 후에도 짐승을 죽이는 일에 전념하여 살육의 기술을 연마합니다. 그이 모든 지능이 살육에 집중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사람이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짐승을 죽이는 살육에서는 범이 사람보다 훨씬 교활하고 유능해요. 그래서 예로부터 인디아에서는 범과 사람이 서로 죽이고 죽는 관계에 있습니다.’

코베트가 도착한 날, 1km 떨어진 소작인 마을에서 범이 소녀를 물고갔다. 그 소식을 듣자 타이른이 총을 들고 나섰다. 그만한 일에 직접 나설 일이 아니라고 집사가 말렸으나 뿌리쳤다. 소작인은 한 식구와 같은데 어찌 <그만한 일>로 치부하느냐고 집사를 꾸짖었다. 코베트가 그 젊은 지주를 다시 봤다. 영국에서 유학을 한 지주는 달랐다. 코베트가 타이른과 이든과 함께 현장에 갔다. 태양이 올라와 아침이슬이 증발되고 있었는데 코베트가 조심스럽게 앞장을 섰다. 코베트가 앞길의 마른 풀밭을 보고는 멈췄다. 코베트가 허리에 감고 다니는 로프를 풀었다. 땅을 굴리면서 풀밭으로 돌진했다. 그 순간 풀밭에서 기다란 물체가 솟아올라 코베트를 덮쳤다. 코베트가 로프로 그 물체를 후려쳤다. 코브라다. 몸길이는 1m밖에 되지 않았으나 맹독猛毒을 가졌다. 인디아에서 코브라는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이다. 연간 만 명을 죽였다. 범보다도 많이 죽인다. 그래서 코베트는 범 사냥을 하면서 코브라도 잡았다. 범보다도 더 많이 코브라를 잡았다. 3년 전에는 몸길이가 5m나 되는 킹코브라도 잡았다. 그놈은 죽이지 않고 영국의 동물원에 보냈다.

나리, 코브라를 제가 가져도 됩니까?’

물론이지, 그런데 자네 딸은 시집을 갔는가? 아직 안 갔다면 알려주게, 선물을 할 테니까.’

뭘요, 이거면 충분합니다. 옷을 한 벌 사줄 수 있을 테니까요.’

독사는 단 한 번의 매질에 죽었다. 코베트는 인디아 서민들의 친구였다.

나리, 이번에는 어디로 갈 것입니까? 생각 같으면 차오이 마을이 좋을 텐데 . 차오이에서는 닷새동안 잔치가 열립니다.’

잔치가 열리면 사람들이 북적거려 범이 오지 않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그 반대다. 잔치판이 열리면 먹잇감이 많다. 잔치에 휩쓸려 경계가 소홀해진다. 코베트는 마을 사람들의 의견에 따랐다. 오랫동안 범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범의 습성을 잘 알았다. 코베트는 식인 범을 추적했으나 다른 사냥꾼처럼 발자국을 추적하지 않았다. 곧바로 차오이 마을로 갔다. 타이른과 이든이 몰래 코베트를 따라갔으나 얼만 안 가서 놓쳤다. 추적이 빨랐다. 달리다시피 추적을 했으므로 코베트는 범을 놓치지 않았다. 발자국을 추적하면 다음 살인 현장에서나 범의 행적을 만나게 된다. 포수와 범이 서로 뺑뺑이만 돌다가 만다. 타이른과 이든이 다음날 밤 모닥불을 피우고있는 코베트를 만났다. 코베트는 두 사람이 따라온다는 걸 알고 불을 피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여기서 밤샘을 하면 범이 멀리 도망가지 않겠어요?’

코베트가 웃었다. 그도 이렇게 밝게 웃을 때가 있는가?

원주민들은 내가 범을 추적하다가 코브라를 잡으면 반드시 범을 잡는다는 주문 같은 믿음을 가졌어요. 물론 부질없는 미신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래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범이 코브라가 숨어있는 곳을 좋아하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코베트가 두 사람에게 나무 위의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저 아무렇게나 만든 것 같았으나 푹신하고 파리나 모기떼도 없었다. 다음날 새벽 코베트가 추적할 생각은 않고 하늘을 오래도록 보고 있다가 빙그레 웃었다.

갑시다. 놈이 돌아다니는 곳을 알았어요.’

거기서 15km쯤 떨어진 곳에 광엽수림이 있는데 까마귀들이 그 삼림 위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까마귀는 범을 따라다니며 먹이의 찌꺼기를 얻어먹었다. 까마귀의 안내를 받고 삼림으로 들어갔는데 꽤 넓은 삼림이었으며 그 끝에 차오이 마을이 있었다. 코베트는 거기에서도 발자국 추적은 하지 않았다. 그 삼림에도 친구들이 있었다. 만슈리라는 대형 원숭이였는데 나무에서 내려와 풀뿌리를 캐먹었다. 무리가 풀뿌리를 파려고 나무에서 내려오면 두목과 친위대가 나무 위에 높이 올라가 경계를 했다. 두목이 경계신호를 했는데 그게 코베트를 도와주었다. 코베트가 원숭이 신호를 듣고 전진하다가 멈췄다. 범의 발자국이 있었다.

이놈은 배앓이를 합니다. 설사를 하는데 배앓이 때문에 신경질적이지요.’

코베트는 거기에서 두 사람과 헤어졌다. 라이플을 사용하지 않고 산탄총을 들었는데 그건 위험했다. 관통력이 약한 산탄총으로는 범을 잡을 수 없다. 그러나 범과 포수가 가까운 거리에서 난전을 할 때는 산탄총이 라이플보다 유리할 수도 있다. 산탄총은 한꺼번에 많은 총탄이 날아가기 때문에 명중률이 높았다. 더구나 코베트 같은 명포수가 산탄총을 쏘면 단 한 발로 범을 쓰러뜨릴 수 있다. 코베트는 두 사람을 남겨놓고 삼림 안으로 들어갔다. 원숭이들이 위험하다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으나 코베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잔치가 벌어진 차오이 마을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식인 범은 그 사람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고 있다.

(설마,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코베트에게 정보를 알려주던 원숭이들의 고함소리가 이제는 살기를 띠었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범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코베트가 야생짐승처럼 신속하게 뛰어나갔다. 10분 후에 총소리가 들렸다. 단 한 발이다. 떠들던 원숭이도 조용해졌다.

이리 오시오. 범을 잡았습니다.’

200여 명의 사람을 잡아먹은 살인범이 그렇게 쉽게 죽을 줄이야. 원숭이들이 식인 범을 내려다보며 욕을 했다.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뱉는 놈들도 있었다. 두목 원숭이는 코베트가 바나나를 던져주자 덥석 받았다.

이 원숭이들은 전혀 훈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개보다 유능합니다. 지능이 높기 때문에 범을 속여 포수가 있는 곳으로 유인도 합니다.’

원숭이들은 분명히 의도가 있다. 사람의 힘을 빌려 천적 범을 죽이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까마귀에게는 그런 의도는 없다. 찌꺼기를 얻어먹겠다는 생각뿐이다. 식인 범의 배를 가르자 사람의 이빨과 팔찌, 반지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밤에 지주 저택에서 유족을 초청하여 범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위령제를 지냈다. 30여 명의 유족들이 거적에 싸여있는 식인 범을 발로 차고 침을 뱉었다. 어머니를 잃은 열두 살 된 소녀는 흐느껴 울면서 칼로 범을 난자했다. 이든이 눈물을 흘렸다. 코베트가 유족들에게 위로금을 주었다. 현상금을 나눠주었다. 또 책을 한 권씩 주었는데 호환(虎患)을 예방하는 주의사항이다. 밤에 돌아다니지 말 것, 문단속을 할 것, 경비대를 조직할 것 등이다. 또 다른 책에는 코브라예방법이었는데 신발을 신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다음날에는 잔치가 벌어졌다. 인디아는 힌두의 나라고 힌두교는 다신()의 종교다. 전날에는 죽음과 불행의 신에게 범이나 코브라에게 물려 죽은 사람들의 위령제이고 오늘은 선과 행복의 신이 마을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신임 지주가 여러 사제와 악대를 초청했고 염소 열 마리를 잡아 신선한 피를 뿌렸다. 신임 지주가 앞으로는 자기의 영토에서 범에게 물려가거나 코브라에게 물려 죽거나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고 말했는데 그날 밤 차를 재배하는 마을에 범이 나타나 아이를 낳고 있는 여인과 그 아이를 물고갔다. 아이의 아버지가 잔치판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다. 범은 마을에 남자들이 없다는 걸 알고 초저녁부터 마을에 들어와 돌아다니다가 출산하는 집에서 나는 피 냄새를 맡고 침입하여 물고갔다. 코베트가 소식을 듣고 즉시 일어서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 마을의 늙은 사냥꾼과 상의했다.

‘2년 전에 탄생한 3형제 범들의 소행입니다.’

인디아는 사람이 과잉이지만 범도 과잉이다. 범은 1년에 두세 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르는데 새끼가 성장하면 어미가 쫓아냈다. 쫓겨난 새끼가 갈 곳이 없다. 다른 범들이 이미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영토에 들어가면 죽는다.

새끼 범의 2년 생존율은 2할인데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5년이 걸리고 생존율은 절반을 넘는다. 영토 다툼에서 쫓겨나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갔다가는 총에 맞아 죽는다. , 돼지 등 가축을 잡아먹었다가 죽고 사람을 잡아먹었다가 복수를 당한다. 젊은 범이 사람의 영토를 돌아다녔다. 코베트가 염소 한 마리를 잠아 끌고 다니다가 나무에 묶었다. 범이 염소를 물어 당기면 나무 위에 설치한 총이 자동으로 발사되게 만들었다.

이건 지극히 비스포츠적인 발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범을 잡지 않으면 아이들이 범에게 물려갑니다.’

마을 주변에는 소년들이 소를 몰고 소녀들이 물을 긷고 있었다. 독미끼를 사용하면 독에 죽은 범을 다른 동물이 먹고 죽고, 함정을 파면 다른 동물이 빠지거나 사람이 다칠 염려가 있다. 그날 밤 이든이 코베트와 함께 나무에 올라갔다. 비가 롱 것 같다고 했으나 이든은 염려 마십시오. 나도 영국군대 예비역 중위입니다. 그까짓 비 좀 맞아도 괜찮습니다.’

언제 중위로 제대했소?’

코베트가 무심코 물었는데 그 말로 숨겨져 있는 코베트의 군대 경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코베트와 이든이 나무 위에서 기다렸다. 비가 내렸다. 둘은 위스키를 나눠마시며 기다렸다. 가끔 들개들이 으르렁거렸다. 먹이 냄새를 맡고 왔다가 그 염소가 자기들이 먹이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후다닥 도망을 쳤다. 범이 숨어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한밤중에 총소리가 들렸다. 미끼에 연결된 총이 발사되었다.

아직 움직이지 말아요.’

코베트가 손전등으로 아래를 살펴보더니 혀를 찼다.

범이 총에 맞은 것 같으니 당신은 내려오지 마시오.’

코베트는 총솜씨뿐만 아니라 덫을 만드는데도 탁월한 솜씨가 있었다. 많은 핏자국이 있었다. 아랫배에서 나온 피다. 시커먼 색깔로 봐서 장에서 나온 피다. 범은 복수심이 강하므로 부상 당한 범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 코베트가 전등을 높이 들고 흔들자 마을쪽에서 불빛이 보였다. 부상한 범이 그쪽으로 가니 조심하라는 신호에 대답하는 횃불신호다. 조금 있으니 차밭에서 불빛 신호가 보였다. 범이 차밭쪽에 나타났다는 신호다. 이든은 코베트의 지시에 따라 나무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이든은 숲속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뭔가 번쩍였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같았다. 배터리가 다 된 헤드라이트 같았다.

(이상하다. 총에 맞은 범이 다시 돌아왔나?)

또 불빛이 반짝거렸다.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기다란 꼬리가 보였다. 이든이 코베트와 약속을 어기고 발사했다. 사냥꾼의 본능이다. 누런 물체가 스치고 어헝! 하는 고함이 울려 퍼졌다. 엄청난 소리다. 이든은 비로소 범의 정체를 알았다.

총소리가 들렸다. 코베트가 부상한 범을 쫓고 있는 차밭쪽이다. 이든이 총을 쏜 후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코베트가 또 총을 발사했다? 어찌 된 것일까? 3~4분 동안 산림이 조용했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들리고 횃불이 올라왔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오고 있었다. 이든이 불안해서 전등을 켰다. 불빛 속에 코베트가 있었다. 나무 밑을 조사하더니 말했다.

내려오시오. 범은 죽었소. 단 한 발이 정확하게 두개골을 뚫었소.’

두 마리의 범의 시체가 있었다. 군중이 환호성을 올렸다. 하룻밤에 범을 두 마리나 잡은 것이다. 이든이 쏜 범은 코베트가 쫓는 부상한 범이 아니고 동복(同腹)형제다. 형제가 사람들에게 쫓기는 걸 보고 도우려고 나왔다가 이든의 총에 맞았다.

정말 형제애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아요.’

이런 날 어찌 잔치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범을 두 마리나 잡았는데 . 모닥불만 피워놓으면 나머지는 코베트나리가 할 테니까. 자기 영토에서 범이 두 마리나 잡혔다는 말을 듣고 새 지주가 뛰어왔다. 자기 친구 이든이 코베트와 함께 범 사냥의 주인공이 된 걸 보고 크게 기뻐했다.

다음날 코베트는 떠났다. 식인 범 사냥 일정이 촘촘하게 정해져 있었다. 범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처럼 그는 범을 쫓아 죽였다. 영국인 주지사로부터 요청을 받았다. 벌써 오래전부터 열여덟 명이나 잡아먹은 놈이었으나 일정에 밀려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런데 이든이 뒤를 따라왔다. 식인 범 사냥에 데려가달라고 간청했다.

당신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따라갈 테니 데리고 가주시오. 결코 방해가 되지는 않을 거요.’

코베트는 일생에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같이 사냥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때는 생각이 바뀌었다. 코베트는 영국인 지질학자 이든을 다시 보고 있었다. 그는 결코 예사로운 사냥꾼이 아니다. 아마튜어 포수가 아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연구실을 벗어나 해외로 산림으로 실습을 하는 필드 학자들이 많았다. 동식물학자, 지질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아프리카, 인디아와 남미 등으로 갔는데 사격술은 필수였다. 맹수 더러는 활이나 창을 든 원주민과도 싸워야 했다. 이든도 그런 학자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두 마리의 표범을 잡았고, 남미에서는 재규어를 잡았다. 코베트가 이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총 한 자루, 배낭 한 개를 매고 허리에 취사도구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코베트가 다음날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사고 현장을 찾지 않았다. 산림에서 독수리와 까마귀들이 난무를 하고 있었다. 사람과 새들이 합동 장례식을 올렸다. 인디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한다. 새들은 사람고기를 얻어먹는다. 이번에 현상금이 걸린 범은 인디아 동북쪽지대에 있는 산에서 내려온 놈이다.

범이란 정말 이상한 놈이다. 늘 뛰어다닌다. 같은 고양이과 사자는 하루 종일 시원한 그늘에서 낮잠을 자는데, 특히 수컷은 암컷들이 사냥한 먹이를 맨처음에 먹는 우선권이 있다. 범에게는 그런 무리가 없다. 혼자 살고 혼자 먹이를 잡아먹는다. 범들은 하루에 200km²를 돌아다닌다. 정기적으로 자기 영토를 순회한다. 사냥 성공율은 약 20%. 이든은 구마온에서 온 수범 행적을 추적했는데 좌충우돌이다. 다른 범의 영토였고 위협을 받았다. 덩치가 큰 수범에게 공격을 받아 왼쪽 귀가 찢어지고 뒷다리껍질이 벗겨졌다. 구미온의 범을 끝내 죽일 심사였다. 다음날 이든이 구마온의 수범을 발견했다. 망원경을 보았는데 흐뭇한 기분이다. 피투성이가 된 놈의 옆에 덩치가 좀 작은 암범이 누워 상처를 혀로 핥아주고 있었다. 구마온의 수범도 기분이 좋아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다.

그 옛날 태고 때부터 사람도 많고 범들도 많은 인디아에서는 사람과 원숭이 등 유인원은 진화과정에서부터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고 일부 인디아 동물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때 범들이 인간과 유인원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범들에게 그들은 매 끼니 밥이었다. 학자들은 범의 공포를 선천적인 공포라고 한다. 쥐가 고양이에게 대적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절대 공포다.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데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본디 인간은 원숭이처럼 수상생활을 했는데 나무에서 내려오자 범이나 뱀의 밥이 되었다. 초원에서 빠져나가는 숲에서 뱀이 물어뜯었고 초원에는 범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은 속수무책이었다. 인간의 다리는 퇴화되어 달리지도 못하고 초원에는 도망쳐 올라갈 나무가 없었다. 칼날 같은 아가리를 벌리고 덤비는 범과 무엇으로 싸우겠는가? 인간은 범의 밥이 되었고 그때부터 공포감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코베트나 이든은 그런 주장에 동조하는 건 아니었으나 현실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범에게 무력한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여섯 명의 건장한 장정들이 범 한 마리를 보고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다가 맥없이 잡아먹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원주민들 뿐만이 아니다. 훌륭한 총을 가지고 훈련을 잘 받은 미국인이 숲속에서 범을 만났다. 코베트가 안내했는데 재수 좋은 기회였다. 짧은 풀밭이었으며 범의 전신이 노출되었다. 거리는 30여 미터.

천천히 정확하게 조준을 해서 쏘시오.’

뒤에는 코베트가 있었다. 설사 실수를 하더라도 고객은 안전하다. 미국인은 총을 발사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범의 코발트색 눈빛 때문이다. 범의 코발트색 눈빛은 요사스럽게 노란색으로 변하고 푸른색으로도 변한다. 태고 이래 범이 사람에게 사용하는 마법이다. 하기야, 범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코베트도 범의 눈을 정면으로 보지 않았다. 범의 대가리나 가슴팍을 노렸다. 범의 마법을 피하려고 했다.

코베트는 그날 밤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산림 안에 매어두었다. 불쌍했지만 식인 범을 잡기 위해 부득이한 조치다. 달밤이었는데 염소가 가느다란 소리로 우는 것이 처량했다. 코베트와 이든이 나무 위에 숨었다. 나이 어두워지자 기온이 3~4도까지 급격하게 떨어졌다. 밤 사냥을 나가는 박쥐 떼가 머리 위를 지나가고는 조용했으나 결코 평화로운 고요함은 아니다. 이든이 배가 아프다고 나무에서 내려갔다. 아무 데서나 용변을 할 수 없었다. 냄새가 문제라서 이든은 좀 멀리 떨어진 산림 안쪽으로 들어갔다. 코베트의 지시로 손에 하얀 분칠을 하여 손바닥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소재를 알렸다. 이든이 용변을 마치고 일어서려고 했을 때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발이 풀을 밟는 소리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으나 200kg의 몸무게를 없앨 수는 없다. 손전등을 켰다. 손전등은 밤 사냥을 하는 사냥꾼들이 어쩔 수 없이 들고 니기는 하지만 목숨을 앗아가는 흉물이기도 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불을 켠다는 것은 <나 여기 있으니 잡아 먹으시오.> 하는 것과 같았다. 많은 사냥꾼들이 그런 실수로 죽었다. 그때도 그랬다. 갑자기 포효가 울렸다. 폭발하는 듯한 노호(怒號). 등 뒤 2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불 꺼! 엎드려!’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코베트가 달려오면서 고함쳤다. 코베트는 우선 범을 위협하려고 공포를 발사했다. 그러나 늦은 것 같았다. 이든은 바람을 가르는 범의 도약과 뺨에 뜨거운 입김을 느꼈다. 이든은 본능적으로 총신을 내밀었다. ! 하는 충격을 느꼈다. 범이 총신을 후려치고 낯을 스치며 지나갔다. 피가 분출하었다.

이든은 피를 뿌리면서도 코베트가 <엎드려!> 라는 고함을 들었다. 이든은 충격으로 풀밭에 뒹굴면서 5~6m 앞 공중에 떠있는 범의 대가리를 보았다. 이든을 후려쳐놓고 다시 뒤돌아 덮쳐들다가 추격해오는 코베트가 휘두르는 전등에 잡혔다. 두 눈에 불을 켜고 어흥! 고함을 지르며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코베트가 산탄총을 발사했다. 산탄총은 표범 사냥이나 밤 사냥에 사용했다. 총탄이 십여 발 한꺼번에 나가기 때문에 명중률이 높았다. ! 하는 소리가 들리고 털썩! 하고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대로 있어! 꼼짝 말고 .’

이든은 가만히 있었다. 주위가 조용했다. 잠시 후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손에 횃불을 들고 달려왔다.

괜찮아? 이든 괜찮아!’

영어로 소리치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쥬리아야, 저 건 쥬리아의 목소리야.)

타이른의 여동생이다. 올해 스물세 살 된 처녀였는데 타이른과 함께 영국에서 함께 지낸 일이 있었다. 최근에는 어느 지주의 아들과 혼담이 있어 집안에서 조용히 지낸다는데 웬일일까? 촌장이 서른 명이나 되는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왔다. 지주 타이른과 쥬리아 그리고 집사도 함께 왔다. 쥬리아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이든을 보고 울었다.

괜찮아요. 좀 할퀸 것뿐이니까.’

코베트의 말에 안심을 했으나 늙은 집사는 뭔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아가씨가 외간 남자의 상처를 보고 그렇게 큰 충격을 받는 걸 보면 그 관계가 짐작되었다. 정숙한 인디아의 여인이기 때문에 말썽은 일으키지 않았지만 여인의 마음이 그만큼 순결하면 사랑은 매우 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크다. 쥬리아 아가씨는 이미 지주의 아들과 약혼이 되어 혼인날까지 잡혀있다.

새벽인데도 축제가 열렸다.

나리, 놀라지 마십시오. 나리가 잡은 놈은 구마온에서 온 수컷이 아닙니다. 이곳에 영토를 가진 젊은 암범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

놈은 폭정자(暴政者)입니다.’

그 일대 주위 300km²의 광대한 세력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세력권 안의 다른 범들을 못 살게 구는 늙은 수컷이다. 힘이 강하고 심술궂은 놈이며 암범이 새끼를 낳으면 틀림없이 찾아와 죽이는 버릇이 있다. 확인된 것만도 네 마리다. 사람들이 폭정자의 시체를 보고 범 사냥꾼 코베트의 신기(神技)를 확인했다. 코베트는 어둠 속에서 범이 이든을 덮치는 걸 눈치채고 우선 공포를 쏘아 범에게 위협을 하여 물러서게 한 다음 놈이 다시 덤벼들자, 바른손에 전지를 들고 왼손으로 총을 들고 있다가 전지를 켜면서 왼손으로 총을 발사했는데 총탄은 범의 두개골에 두 개, 목에 한 개가 박혔다. 치명타다. 그런데 산탄총이 라이플보다 가볍다고는 하지만 무게가 4~5kg이나 되는데 어떻게 왼손 한 손으로 발사할 수 있었을까?

쥬리아가 이든 곁에 붙어 치료를 했다. 늙은 집사의 근심이 깊어졌다. 힌두의 나라 인디아에서 이교도의 사랑은 쉽지 않았다. 목숨을 건 사랑도 실패했다. 그러나 쥬리아의 태도에는 굳은 결심이 보였다. 이든은 타이른과 쥬리아를 따라 돌아가지 않았다. 계속 코베트를 따라 범 사냥을 배우려고 했다. 이든의 결심도 확고했다.

다음, 코베트가 쫓는 건 유령이라는 범이다. 범인지 표범인지 들개인지 정체를 몰랐다. 유령은 인디아 중남부에서 서부를 걸쳐 돌아다녔는데 최근 반년 동안에 서른 명이 넘은 아이들이 밥이 되었다. 해당 지역의 군수들이 많은 현상금을 걸었는데도 잡히지 않아 세 명의 군수가 공동대책을 협의했다. 유령의 정체는 주장하는 사람마다 달랐다. 원주민사냥꾼은 범이라고 했다. 군대 출신 영국인 사냥꾼은 표범이라고 했다. 그가 본을 떠서 제시한 발자국은 범보다는 작았다. 들개라는 주장도 유력했다. 며칠 전 마을 어귀에 개들이 서너 마리 있었다. 그래서 아이 엄마들은 안심하고 마을로 돌아갔는데 잠시 후 아이들의 비명을 들었다. 엄마들이 비명을 듣고 쫓아가자 큰 개가 여섯 살 아이를 물고 갔다. 사육되는 개들이 야수화되어 짐승을 잡아먹는다고 했다. 인근에 개들이 있었는데 짖지도 않았고 싸우지도 않았다는 게 그놈들이 들개라는 주장이다.

코베트가 최근에 여섯 살 된 계집애를 물고간 마을에 갔다. 현상 사냥꾼 열서너 명이 있고 세 명의 군수도 있었다. 코베트가 현장을 조사하는 걸 주목했다. 코베트는 현장을 돌아보면서 현장에 떨어진 털이나 피해자의 유품을 조사했다.

범인을 알아냈습니까?’

군수의 물음에 코베트는 머리를 저었다. 확신이 없으면 말하지 않았다.

어제 비가 내려 발자국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범인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

코베트는 20여 년간의 사냥 경험으로 인디아의 하늘을 도사처럼 알아맞혔다. 계절풍의 계절이 다가오고 곧 장마가 질 것이다.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고 이슬이 내리는 것도 아닌 가는 비가 내리는 계절이다. 코베트는 그걸 알고도 추적을 멈추지 않았다. 비를 피할 곳도 우비도 없었으나 그저 묵묵히 걸었다. 모닥불 피울만한 곳이 있으면 불을 피우고 밥을 먹었다. 배낭에 넣고 다니다가 잠잘 때는 베개 대신으로 사용하는 검은 빵을 칼로 잘라먹었다. 걷다가 잡은 노루나 토끼를 구워 먹었다. 범이나 표범이 먹고 남긴 고기도 얻어먹었다.

캡틴, 이 비는 언제까지 내리겠습니까?’

꽤 오래, 이번 주 내내.’

이든이 검은 빵을 씹고 있는 코베트의 옆얼굴을 봤다. 인디아인처럼 피부가 검게 탔으며 거칠고 굵은 힘줄이 움직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거인의 모습이다. 인디아에 많은 고행자들처럼 스스로 고행을 즐기는 것 같았다. 코베트의 말대로 비는 사흘 동안 계속 내렸으나 추적을 중단하지 않았다. 닷새째 되는 날 어느 지주가 코베트를 초대했다. 자기 영토에서 희생자가 넷이나 났다고 했다. 코베트가 얘기를 듣고 말했다.

그놈은 범이 아니고 표범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

개들입니다. 이 부근의 영국인들이 사육하는 개들이 식인 개로 둔갑을 했습니다.’

코베트답지 않게 단언을 했으며 날카로운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들보다 더 나쁜 놈들이 있습니다. 영국 요크셔지역에서 온 부리더(개 사육가)들입니다. 의도적으로 식인 개를 사육하는 건 아니지만 책임은 져야 합니다.’

영국의 요크셔 사람들은 가축 품종개량의 원조다. 모든 가축을 개량했고 개들도 개량했다. 품종개량가는 종래에 없었던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고 그 품종은 안정시키려고 했는데 그들은 그 일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괴물 가축을 만들어냈다. 요크셔지역에 사는 벤쳐는 5,000평의 땅을 구입하여 각종 개들을 개량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코베트와 충돌했다. 하마터면 총이 발사되고 개가 아닌 사람을 쏠뻔했다. 코베트는 식인 범을 쫓고 있었는데 별안간 등 뒤에 살기를 느꼈다. 노련한 사냥꾼만 느끼는 살기다. 코베트가 뒤돌아섰다. 사냥집 같은 통나무집에서 나온 개가 코베트에게 다가왔다. 겉보기에는 와이마라너였다. 독일산 경비견으로 사냥도 하는 만능 개다. 그러나 만능 개라는 말은 그 개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코베트는 그 개를 싫어했다. 60cm, 무게 30kg의 중형 개였는데 눈빛이 사나웠다. 잿빛이었으며 차가웠다. 더구나 그때 나타난 와이마라너는 괴물이다. 체중이 40kg이나 될 것 같았고 잿빛 눈빛도 한층 더 사나웠다. 괴물개가 빠른 걸음으로 으르렁거리며 다가왔다. 코베트는 개를 잘 다루는 사냥꾼이다. 개도 사냥꾼을 알아보는 법이다. 아무리 사나운 개도 총을 가진 사냥꾼에게는 덤비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는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괴물개가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이 새끼!’

코베트는 그런 개를 용서하지 않는다. 개가 개의 처지를 잃고 사람에게 덤비면 그건 개가 아니다. 맹수다. 총성이 폭발했다. 괴물 개는 두 눈 사이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개가 나왔던 오두막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영국 요크셔에서 온 부리더 벤쳐다. 죽은 개처럼 잿빛 눈의 사내다.

벤쳐는 부리더협회를 통해 항의를 했다. <사냥꾼은 야생짐승을 사냥하는 사람이지 사육 개를 사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인디아에 파견된 영국 고등판무관이 코베트를 불러 개 사육가협회의 주장을 말하면서 일리가 있다고 했다. 코베트가 냉소했다.

<사냥꾼이 야생짐승을 사냥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으나 개는 사람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동물이다. 사람에게 사육된 개가 사람에게 이빨을 내밀며 덤벼들면 그건 이미 개가 아니다. 야수보다 못한 괴물이다. 그런 괴물개는 반드시 사살해야 한다. 사육사도 책임을 져야 하고.>

고등판무관도 부리더협회 회원이었으나 아무말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러니 그것으로 범, 표범 등 야생동물과 사람이 사육하는 개의 관계가 조정된 건 아니다. 야생동물과 개가 화해될 리가 없었다. 하필 코베트가 도착한 날 영국 개사냥협회 세미나가 열렸다. 영국 예비역 대령 키트박사가 영국 사냥개들이 인디아에서 얼마나 큰 활약을 하는가에 대해 강연을 했다.

여러분은 마스티브를 알고계시지요? 나는 마스티브와 그 근연(近緣)의 개들을 사육하는데 그들을 범 사냥용으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범을 두 마리나 잡았습니다. 그들은 용맹한 사냥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키트 대령은 영국 사교계의 유력자이고 그 누구도 그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키트 대령이 초청을 받아 회의장에 들어선 코베트를 보았다. 대령은 박수를 치며 코베트를 환영하고 그이 의견을 물었다. 과연 대형 개들이 인디아의 범족과 싸워 이길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코베트가 싸늘하게 웃었다.

대령님의 개들이 어떻게 범을 잡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개는 개고 범은 범입니다. 하긴 마스티브는 키가 75cm나 되고 무게도 70kg이 되기 때문에 그 힘이 강력하지만 역시 개는 개입니다. 마스티브는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시속 60km를 뛸 수 없고 3~4m 높이를 넘지 못 합니다.’

영국군인 출신 귀족은 병적으로 자존심이 강하다. 특히 키트 대령이 모범적이다. 그 자리에 참석한 영국 고급 관리들이 모두 그의 눈치를 보고 있으며 대령이 사육하는 용맹한 사냥개를 찬양했다.

여보슈, 캡틴 코베트. 난 당신이 수십 마리의 범을 잡은 훌륭한 사냥꾼이라는 걸 알고 있으나 당신은 범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개는 모르잖소!’

키트 대령의 부관이 덤볐다.

대령님은 근거 없는 주장은 하지 않는 분입니다. 옆방에 가면 대령님이 사육한 개들이 범을 잡은 사진이 있고 직접적인 증거품도 있습니다.’

세미나장에 있는 사람들이 부관의 안내로 우르르! 옆방으로 몰려갔다. 쓰러져있는 범 옆에 서 있는 개는 개가 아니라 괴물이었다. 몸무게가 80kg이나 되는 개가 범을 압도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코베트는 쓰러져있는 범의 앞발에 주목했다. 발톱이 두 개나 없었다. 병신 범이다. 범의 앞발치기는 엄청나다. 앞발치기는 400kg이 넘는 황소도 목뼈를 부러뜨린다. 사람이 맞으면 얼굴이 모두 날아간다.

개가 먼저 공격했소?’

그렇습니다.’

코베트가 상세하게 질문을 했다. 그날 대령은 50명의 지방 사냥꾼을 동원하여 식인 범을 포위하여 본인은 코끼리를 타고 옆에는 마스티브와 투견을 거느렸다. 마스티브가 병신 범에게 덤볐다. 동료 두 마리도 함께 덤볐다. 다음날 개가 범을 잡았다는 기사가 나가자 인디아사람들이 흥분했다. 늘 범에게 피해를 입었으나 인디아 범이 영국 개에게 잡혔다는 기사는 인디아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인디아의 범이 영국의 개 따위에게 질 수 있느냐는 말이다. 아무리 피해를 입혀도 인디아의 범은 인디아의 범이다.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세고 영리한 산림의 왕이다. 그래서 대령의 개와 인디아의 병신 범이 싸우는 걸 목격한 사냥꾼들이 사실을 폭로했다.

범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사냥개를 만들겠다는 키트 대령의 발상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대령의 계획에 부리더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말도 거짓말이었다. 누구보다도 개를 잘 아는 부리더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었다. 세계 어디에도 범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개들은 없다. 개의 한계를 벗어난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고리드(러시아와 만주 국경 지대의 사냥족)도 개를 시켜 범을 잡는 일은 하지 않았다. 고리드 개는 단결심이 강하여 멧돼지, 곰과 표범 사냥은 했으나 범 사냥은 하지 못했다. 범의 전광석화 같은 앞발치기에 걸리면 개들 따위야 팽이처럼 튕겨 나간다. 러시아 사냥꾼들이 잡종 개를 범 사냥의 희생물로 사용하는데 범 한 마리 잡는데 대여섯 마리가 희생되었다. 키트 대령과 부리더가 대물 개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실패했다.

코베트는 식인 개를 추적했다. 유령이라는 그 개는 잡히지 않았다. 식인 개는 영리했으며 코베트가 다가오면 멀리 달아났다. 코베트와 이든은 고생을 했다. 장마가 계속되어 비를 맞고 돌아다녔으며 발목이 진흙에 빠졌다. 20일이 지나자 코베트도 지쳤다.

이든이 열을 내는 코베트를 쉬게 하려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인근 마을에서 정보가 들어왔다. 남자들이 도시에 일하러 가고 부인들만 남아있는 마을인데 초저녁에 산림 어귀에 수상쩍은 짐승이 보였다. 삼림 이리 같기도 하고 붉은 승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나이 든 부인이 들개라고 했다.

꼬리를 보면 알아. 이리의 꼬리는 축 처져있고 들개는 뻣뻣하게 서 있어. 저 건 들개야. 아주 큰 들개야.’

코베트는 그 할머니의 말이 옳다고 보고 잠복했다. 개가 좋아하는 염소를 끌고 다니다가 숲에 던져놓았다. 모처럼 비가 그쳐 달빛이 보였다. 유령이 나타나지 않아 단념을 하려고 했을 때 숲에서 소리가 났다. 유령 같았다. 코베트가 총을 들고 잠복한 나무에서 내려갔다. 유령이 염소의 뼈를 깎는 소리가 들렸다. 코베트가 뒤따라오는 이든에게 손을 들었다. 멈추라는 지시다. 뭔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하는 마찰음이 들렸다. 표범이다. 뒤이어 처참한 비명이 들렸다. 개가 내는 소리다. 코베트는 전지를 켜지도 않았고 총을 쏘지도 않았다. 표범과 개의 싸움이고 사람이 끼어들 일이 아니다.

 

128. 유랑의 강~니제르

N.S 대학은 비록 지방대학이지만 영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신흥대학인데 최근 몇 달째 대학당국자들이 매우 난처해졌다. 지정학을 전공하는 다니엘 조교수가 반년째 행방불명이다. 다니엘 교수는 아직 미혼의 소장 여류학자며 진취적인 활동으로 다른 대학가에서 주목을 받았다. 다니엘 교수는 필드(야외 활동)을 주로 했으며 세계 각지의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일정한 지역의 지리와 지정이 그곳에 사는 주민 또는 부족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게 민족들의 역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었다. 학교의 교무과장은 부지런히 뒤쫓아 다니면서 다니엘 교수가 어디서 뭘 하는지를 조사했으나 행방이 묘연했다. 출발할 때는 아프리카에 간다고 보고했고 최근에는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에게 아프리카 니제르강 주변을 돌아다닌다는 엽서가 한 장 날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다니엘 교수의 상사고 그 연구 활동을 감독할 입장에 있는 지정학 주임교수 번즈교수는 다니엘 교수의 실종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뭘 늘 있는 일이 아닌가? 다니엘 교수는 본디 그런 여인이다. 제멋대로 계획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수렵용 단총이 들어있는 가죽가방 하나를 어깨에 매고, 지난해에는 인디아밀림에 들어갔고, 거기서 돌아오자마자 아마존의 오지에 갔다. 다행히 번즈 교수는 아마존을 몇 차례 탐험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현지에 달려가 현지의 브라질 관리들과 문제를 일으켜 연금상태에 있는 그녀를 겨우 구출했지만 그녀는 또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런데 놀랄 일이 있었다. 그녀는 그 와중에서도 연구논문을 꾸준히 쓰고 있었으며 비록 완성을 하지는 못했으나 논문은 틀이 훌륭하게 잡혀있었다. 한 마디로, 말썽은 부리지만 다니엘 교수는 유능하고 부지런한 교수다.

(그러면 되지 뭐.)

연구 활동을 하다가 사고가 나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건 그 교수의 개인 문제다. 감독할 주임교수라고 해서 거기까지 책임을 질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 교수회의에서 번즈교수의 해명을 들은 많은 교수들이 상을 찌푸렸다. 혀를 차는 노()교수도 있었다. 그 주임교수에 그 부하 교수다. 주임교수가 모른다면 누가 그 일을 알겠는가? 교수회의는 번즈 교수의 처리를 지켜보기로 했다. 하긴 번즈 교수는 영국학계가 알아주는 탐험가다.

번즈 교수는 다니엘 교수의 한 수 위 학자고 탐험가다. 번즈 교수는 영국군대 특수부대의 지도 교관이었으므로 그는 밀림의 어느 산중에 알몸으로 던져놓아도 어김없이 집을 찾아올 사람이다. 또 그는 각종 사격대회의 우승자다. 번즈 교수는 영어,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물론이고 중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몇몇 아프리카 원주민 말도 할 수 있다. 번즈 교수는 대학 당국의 강제 지시가 떨어지자 이내 현지로 출발했다. 현지 어디로? 니제르강이 흐르는 니제르 정부나 말리 정부의 관리들은 두 팔을 흔들면서 우리가 그런 걸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했다. 하긴 그럴 것이다. 아프리카 서쪽 사막 또는 반()사막지대에 있는 두 나라는 비록 국토는 넓었고 수백만 명의 인구도 있었으나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였으며 그 정부라야 그저 존재가치가 있을 뿐이다. 거기다가 니제르 정부의 관리는 좋지 못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이제 6월부터 건기가 되기 때문에 원주민들의 유랑이 시작되고 있으며 주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유랑하면 소나 양들 가축도 유랑을 하고 거기에 따라 가축을 노리는 표범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미 수십 마리의 양들이 희생되었고 니제르 주민 네 명이 표범에게 잡아먹혔다는 정보가 있다고 했다. 번즈 교수는 그럴 줄 알았다. 니제르강이 흐르는 사막 또는 반사막은 그런 곳이다. 도대체 유럽에서는 니제르강이 어디에 있는 어떤 강인지도 모른다. 니제르강은 엄연히 아프리카 3대 강의 하나다. 나이르강과 콩고강에 이은 세 번째 긴 강이고 수량도 많았다. 적도하赤道下의 반사막지대를 흐르며 어느 곳에서는 강이 얕아지고 줄기가 좁아지기는 해도 좀처럼 말라붙는 일은 없다. 니제르강의 희한한 강이다. 아프리카 서해안 키니 인근의 바위산에서 발원한 그 강은 처음에는 바다의 반대쪽으로 흐르다가 어찌 된 일인지 크게 돌아 남쪽으로 흘렀다. 강줄기가 니제르와 말리의 국토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니제르 원주민 나마키는 그 강에 의존하여 간신히 굶주림에서 벗어났다. 강은 그 일대의 교통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기들이 많았다. 원주민들은 농경민도 아니고 유목민도 아니며 엄격히 분류하면 천렵민(川獵民)이다. 연중 강의 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다. 고기라야 이상하게 생긴, 뼈다귀와 지느러미뿐인 고기지만 .

, 번즈 교수는 어쩔 수 없이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이에 있는 호텔에 투숙했다. 그곳에서 시설이 가장 좋다는 호텔이었으나 그저 잠이나 자고 식사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번즈 교수가 호텔의 지배인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30대 초반의 프랑스 여인이었다. 프랑스 여인이란, 세계 어디에 가도 자기가 그곳에서 가장 아름답고 똑똑하며 가장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확인하는 법이었는데 그 여인도 그랬다. 마담 로셔는 대학교수라는 멋쟁이 남자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놀랐다. 마담은 오랜만에 남자다운 남자를 만났다는 듯 포도주잔을 비웠다. 번즈 교수와 마담 로셔는 술을 마실만큼 마신 다음 번즈가 예약해놓은 호텔의 특등실로 옮겨갔다. 남녀의 정이란 참 이상한 것이다. 시기나 장소에 관계없이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번즈는 다음날 정오 식사 때 로셔로부터 5~6개월 전 어느 영국 여인이 니제르강 남쪽에 있는 어느 원주민 거주지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얻었다. 로셔가 호텔 소유의 보트를 빌려주었다. 낡은 보트였으나 길이가 5m나 되는 모터보트다. 햇볕을 피할 지붕도 있고 간단한 취사도구도 있었다. 번즈가 그 보트를 니제르강에 띄웠다. 번즈는 세계의 큰 강을 거의 돌아봤으나 아프리카 사막지대를 흐르는 니제르강처럼 지저분한 강은 처음이다. 아프리카의 강은 대부분 다갈색의 흙탕물이었는데 니제르는 황갈색이었다. 수면 전체가 마른 풀과 지푸라기에 덮히고 풀과 지푸라기 위에는 사람의 것인지 짐승들의 모를 분뇨가 쌓여있어 냄새가 지독했다. 니제르는 강폭이 좁거나 수량이 적은 강이 아니다. 대안(對岸)이 안 보일 정도로 넓었고 수심이 3m는 될 것 같았다. 수십 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무거운 물살에 밀려 천천히 떠내려갔다. 화물선이나 여객선인데 낡을 대로 낡은 고물이다. 그렇게 많은 화물이나 사람을 싣고 가라앉지 않은 것이 신통했으나 조종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니제르강에는 그런 이상한 배들이 떠돌아다녔다. 유랑의 뗏목이다. 유랑의 뗏목은 니제르가 변덕을 부렸기 때문에 생겼다. 니제르는 우기와 건기에 따라 모습이 달라졌고 제멋대로 흐르는 물줄기의 향방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달랐다.

니제르의 북쪽에는 사바나가 있고 그게 바로 사하라사막과 연결되어 있다. 건기에는 사바나의 풀이 말라붙어 사막이 되었다. 니제르의 남쪽은 습지와 잡초지였고 비가 많이 오면 습지와 잡초지는 강물 속으로 잠겨버린다. 니제르 남쪽의 원주민들은 습지에서 고기를 잡고 잡초지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리고 북쪽 지역에서는 사바나에 소나 염소를 방목하며 살았는데 건기가 되면 남쪽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가축을 몰고 가기도 하고 뗏목에 실어나르기도 했다. 니제르유역에는 오래전부터 이름 없는 소수민족들이 살았는데 그들은 이미 고대 때부터 타민족에게 노예로 팔렸다. 미국의 아프리카 노예 시대 이곳 노예들이 가장 많이 팔려나갔다. 번즈는 뗏목을 타고 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살고 있었던 집을 뗏목에 옮겨 싣고갔다. 오래전부터 살았던 소수민족인데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다. 온갖 고생을 흡수해버린 표정이었으며 어쩌면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친 민족의 고통이 그 표정에 배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번즈는 그 뗏목 배들 사이를 천천히 뚫고 나가다 뜻밖의 얼굴을 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반짝이고 하얀 이빨이 드러나 있는 아이들이었다.

안녕, 밥 먹었어?’

번즈가 인사를 했다. 어학의 천재라는 그는 1주일 만에 웬만한 원주민 말을 익혔다. 번즈가 자기들 말을 하는데 놀란 어른들이 인사에 대답했다.

당신들은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남쪽 대안에서 살았는데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말라붙었다. 그래서 하류로 간다.’

혹시 이 부근에서 백인 여자를 보았는가? 머리칼이 은색이고 눈동자가 푸르다.’

그러자 아이가 손뼉을 쳤다.

안다 알아. 그 백인 아줌마는 내 친구다.’

번즈는 눈이 큰 예쁜 소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 강 하류 남쪽 대안으로 배를 몰았다. 우기에는 습지 또는 잡초지였으나 건기라 땅이 말라붙었으며 원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없었다. 우기에는 마을이 여섯 개쯤 있었고, 마을마다 서너 가구가 살았으므로 인구가 50여 명이었는데, 그런 마을이 강 유역의 광대한 습지와 잡초지에 모여 300여 명이 살았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떠났는데 아직도 남아있는 가족들이 있었다. 번즈가 집에 들어갔다.

안녕하시오? 아직 떠나지 않았네요.’

그 집 안주인이 유창하게 자기네 말을 하는 이방인을 보고 놀랐다.

당신은 라이카양의 어머니지요?’

여인은 이방인이 자기 딸의 이름을 부르자 펄쩍 뛰었다. 눈이 큰 얼굴이 닮았다.

니제르의 가족들은 뗏목을 타고 유랑을 떠날 때 가족을 두 조로 나누어 각각 다른 날 떠났다. 만약 사고를 당하면 집안의 씨가 마르지 않기 위한 대책이다. 유랑이 위험했다. 라이카양의 가족도 어머니, 장남과 조카들이 남아있었다. 여인이 이방인에게 점심을 대접했는데 놀랍게도 하얀 쌀밥이다. 니제르에서는 고급호텔에서나 먹을 수 있는 고급 요리다.

쌀농사를 지었느냐고요?’

여인이 머리를 저었다. 농사를 지은 쌀이 아니라 자연산 벼에서 채취한 쌀이다. 니제르강에는 늪지가 있고 거기에서 벼가 자랐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언제 물이 들어차고 넘칠지 모르기 때문에 늪지에서는 농사를 짓지 못했는데 자연산 벼가 자라면 베어왔다. 하얀 밥 위에 간장에 조린 고기가 얹어있었는데 일본에서 그런 요리를 먹은 적이 있었다. <두나기 돈부리(장어덮밥)>이다. 일본에서도 고급 요리였고 아주 맛이 좋았다. 뜻밖의 진미에 번즈가 감탄했다.

번즈는 여인이 가져온 뱀장어 양념 조림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냄비 안에는 분명히 양념에 절인 뱀장어가 있었다. 매기와 이름 모를 잡어들과 함께 꽤 굵은 뱀장어토막과 대가리가 있었는데 냄비에는 또 다른 고기도 있었다. 좀 이상한 고기다. 뱀장어와 대가리는 같았으나 뱀장어가 아니다. 얼룩이 있었고 눈동자가 멀뚱했다. 뱀 같았는데 뱀이 고기 있을 리가 없다. 니제르사람들은 생선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썩을 염려가 있는 먹을거리는 모두 양념단지나 냄비에 집어넣었다. 그걸 쌀밥이나 조, 감자밥에 얹어 먹었다. 번즈는 여인에게 뱀이 뱀장어 양념 조리에 들어가는가 하고 물었으나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여인은 그들이 식량을 구하는 사냥터로 안내했다. 사냥터에는 여인의 아들과 뜻밖의 사람이 있었다. 피부가 새카맣게 그을린 여인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누구인지 몰랐다. 다니엘 교수다. 다니엘 교수가 인사를 하기까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반년 동안이나 원주민 함께 생활한 다니엘은 원주민을 닮아버렸다.

선생님, 선생님이 어떻게 .’

다니엘은 실종 자기를 찾으려고 학교 당국이 온통 뒤집어지고 있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다니엘은 반년 만에 지도교수를 만났는데도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반년 동안 했던 일이 마무리되고 있다고 했다. 니제르는 강우기에 물이 불어나면 무수한 세류(細流)를 주변으로 내보냈는데 그 세류들은 건기가 되면 또 모두 본류로 돌아왔다. 그렇게 되면 니제르강변의 광대한 늪, 습지, 농경지, 목초지와 사바나들이 사라진다. 먼지가 날리는 마른 땅이 된다. 강우기에 니제르의 세류들이 주변 땅으로 흘러 들어가면 볍씨를 비롯한 여러 가지 씨앗들이 습지나 늪에 흘러들어 자연산 논밭이 생기고 가축들이 먹을 풀이 자라는 광대한 목초지가 되었는데 건기가 되면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건기에는 사람도 동물도 굶주렸다.

선생님, 여기를 보세요.’

다니엘이 말라붙은 상태로 본류로 흘러 들어가는 세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세류는 흙탕물이 버글거렸는데 거대한 뱀장어와 물뱀이 싸우고 있었다. 뱀이 본류로 들어가려는 뱀장어의 앞을 막았고 뱀장어가 뱀의 대가리를 물어 삼키고 있었다. 뱀장어의 승리 같았으나 뱀장어는 이미 뱀에게 물려 몸이 마비되어갔다. 싸움은 무승부였다. 상반신이 뱀장어의 입으로 들어간 뱀도 죽었다.

됐어.’

소년이 신이 났다. 소년은 뱀장어와 뱀을 항아리에 넣었다.

(아차!)

번즈는 그제서야 양념 냄비에 뱀장어와 뱀의 대가리가 함께 있는 이유를 알았다. 번즈가 먹은 뱀장어 덮밥요리는 일본의 가바야기 덮밥보다도 맛이 좋았는데 그건 거기에 뱀고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요리천 국인 중국인들도 뱀고기야말로 천하의 일미라고 말하지 않는가? 다니엘도 웃었다. 자기도 뱀고기 요리를 먹은 적이 있다고 했다. 물이 빠져나간 세류에는 메기, 가물치, 페어 등과 많은 고기들이 흙탕물에서 버둥거렸다. 니제르강 원주민들은 통발로 고기를 잡았는데 고기들이 많아 식량의 절반을 고기로 충당했다. 말려서 수출도 했다. 번즈와 다니엘은 다음날 소년 가족의 뗏목을 따라갔다. 이틀 후에 강변에서 멈췄는데 먼저 도착한 소 떼를 돌봐야 한다고 했다. 그곳은 사바나였고 풀이 남아있었다.

뗏목을 타고 갔던 원주민 가족이 사바나에 내렸으나 무엇인가 두렵고 불안했다. 창과 손도끼를 가지고 있었으나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두려워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곳은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적선(赤線) 지대였다.

표범이 사람을 노리고 돌아다닙니다. 사흘 전에도 소 한 마리와 사람이 죽었습니다.’

낮 기온이 40도가 넘는 사바나에는 사자, 치타는 물론 하이에나도 들어가지 않았으나 표범은 소 떼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당신들은 왜 여기에 상륙했소?’

소들을 지켜야 합니다.’

목초지가 가뭄으로 말라버리자 서른 마리의 마을의 소가 굶주렸다. 소들이 죽으면 가족도 죽는다. 소는 그들의 전 재산이고 목숨이다. 그래서 그들은 소를 뗏목에 싣고 사바나로 옮겨왔으나 소들이 불안에 떨며 비명을 질렀다. 어딘가에 숨어있는 표범의 냄새를 맡았다.

좋아요. 우리가 도와주겠소.’

번즈가 사바나의 안으로 들어가 불을 피웠다. 마른 나뭇가지와 소똥으로 불을 피우자 소들이 모여들었다. 주위를 살폈으나 표범은 보이지 않았다. 표범은 은신술의 명수며 사람의 눈으로는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살기가 떠돌았다. 어두워지자 소들이 모닥불 주위에 몰려들어 빙빙 돌았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표범이 돌고 있는데 맞추어 소들이 돌았다. 표범과 사이에 사람과 모닥불을 방패 삼아 돌고 있었다. 번즈는 두목 소의 움직임에 주의했다. 두목 소는 다른 소들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경계를 했다. 무리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머리를 숙여 표범과 대결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번즈는 두목 소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살피고 있었다.

어둠이 짙어졌다. 표범은 소를 노렸으나 두목 소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했다. 밤중이 되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표범이 으르렁거렸다. 점점 더 소리가 높아지더니 고함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번즈는 그런 표범의 작전을 알고 있다. 표범뿐만 아니라 사자나 범들 육식동물은 먹이를 잡기 위해 겁을 주려고 했다. 겁에 질린 초식동물이 맹목적으로 도망을 가게 하여 안전한 무리에서 탈출하도록 유인했다. 초식동물은 겁에 질려 스스로 무리에서 탈출하여 먹이가 되었다. 그때도 새끼를 밴 암소가 겁에 질려 그런 바보짓을 했다. 암소는 모닥불을 뛰어넘어 도망갔다. 자기 딴에는 표범을 피해 반대편으로 도망쳤으나 표범은 이미 암소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다. 표범이 암소의 뒤를 쫓았다. 아주 멀리 떼어놓을 작정이다.

아이고, 소가 죽는다!’

모닥불 옆에 앉아있던 소 주인이 고함을 쳤다. 소 대신 비명을 질렀다. 번즈가 총을 들고 뛰어나갔고 다니엘도 단총을 들고 번즈를 따라갔다. 도무지 겁을 모르는 여인이다. 물소리가 철벙거렸다. 다급한 소가 물에 뛰어들었는데 그건 다행이다. 번즈를 뒤쫓아가던 다니엘이 전지를 켰다. 동그란 전지 불빛에 표범의 대가리가 떠올랐다. 물을 싫어하는 표범은 물에 뛰어들지 못하고 뒤에서 다가오는 적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위협을 했다. 그 순간 번즈가 발포했다. 20m 쯤 되었으나 정확하게 표범의 대가리를 뚫고 들어갔다. 번즈가 표범을 잡은 소문은 니제르에 빨리 퍼졌다. 원주민들이 환호했다. 원주민들은 사바나에 가축을 방목할 수 있게 되었다.

니제르강의 뗏목 배 주민들은 강의 어느 지점에서 뭍으로 상륙했다. 강 하류에 사는 부유한 부족이 강을 지배하고 있어서 더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다. 그들 부유한 부족은 프랑스를 비롯한 외세와 결탁하여 자본을 얻고 총을 가지고 있었다. 뗏목 주민들은 약 500명 정도의 각 마을별 가족별로 넓은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뗏목을 뜯어 엮은 비바람을 막을 정도의 천막이다. , 감자와 옥수수는 바닥이 났고 민물고기 양념 젓갈도 떨어졌다. 니제르강 유랑민은 모두 굶주리고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유랑인들은 부자 부족들에게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다. 지난해 꾸어 먹은 빚을 아직도 갚지 못했다. 자연산 벼들이 잘 자랐으면 수확을 해서 빚을 갚을 수 있었는데 건기가 빨리 와 벼들이 여물지 못했다. 유랑민의 천막촌에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검은 안경을 쓴 원주민들이 돌아다녔다. 빚을 독촉하는 부자 부족의 앞잡이인데 총을 가진 자도 있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뗏목 배를 가져갔다. 젊은 여인을 빚 대신에 데려가기도 했다. 번즈는 다니엘을 거기에 내려주고 프랑스 관리가 주둔하는 정부청사로 갔다. 당시 프랑스는 니제르를 점령하여 지배했다. 번즈는 관리들에게 유랑민의 참상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관리들은 냉담했다. 마지못해 약간의 식량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번즈는 이틀 후 유랑촌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니엘이 많은 유랑민을 만나 뭔가 중요한 일을 의논했다. 무슨 일일까? 다니엘은 놀라운 일을 계획했다. 니제르강을 아예 그물로 막아 고기를 몽땅 잡겠다고 했다. 하긴 그곳에서는 강폭이 100m 정도로 좁고 물 깊이도 2m 이하였다. 500명의 유랑민이 단합하면 그물로 강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랑민들은 백 년 전부터 통발과 뜨네기 그물로 고기를 잡았다. 통발은 아가리가 넓고 통이 좁은 대나무로 만든 통으로 산란을 하러 상류로 올라오는 고기들이 잡혔다. 뜨네기 그물은 높이 2m, 갈이 10m쯤 되는 그물을 두 개를 대나무막대기에 연결하여 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고기를 잡았다. 그런데 조상 대대로 전래된 수렵 방법이다. 다니엘은 유랑민이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뜨네기 그물에 주목했다. 그물은 높이가 2m였으므로 물 깊이 보다 높았다. 길이는 10여 미터였으므로 그 그물을 스무 개만 연결하면 100m로 좁아진 강폭을 가로막을 수 있었다. 가뭄으로 강물이 얕아지고 강폭이 좁아진 니제르강의 물고기를 몽땅 잡아버리겠다는 야심찬 포부다. 유랑민들이 나무줄기로 그물 20여 개를 연결했다. 그물을 니제르강에 가로로 세워 강을 막았다. 모두 300여 명의 유랑민이 동원되었다. 그물을 쳐놓고 주민을 동원하여 고함을 지르며 기다란 장대로 강물을 때려 고기를 그물로 몰았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유랑민뿐만 아니라 부자촌 주민들과 프랑스 관리들이 구경을 했다. 몰이꾼들이 그물 10m 가까이 몰았는데도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고기가 없는 것일까? 도망을 쳤을까? 니제르강에는 잉어부터 메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고기가 서식했다. 그물 5m 앞에까지 오자 그물이 쓰러질 것처럼 흔들렸다.

꽉 잡아! 그물이 쓰러진다!’

몰이꾼들에게 몰려 그물에 돌진하는 고기들이 그물에 부딪혀 그물이 휘청거렸으나 몰이꾼들이 그물을 휘어잡았으므로 쓰러지지 않았다. 300여 명의 몰이꾼들이 그물을 간신히 세웠다. 사람 팔뚝만 한 고기들이 그물을 타 넘으려고 물을 차고 튀어 올랐다. 그 고기들은 그럴 줄 예상하고 쳐놓은 제2진의 그물에 모두 걸려 빠져나가지 못했다. 팔뚝만 한 고기를 원주민은 카우사라고 했는데 수백 마리가 잡혔다. 카우사는 바다의 참치 맛과 비슷하여 외국인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리는 고기다. 1m 내외의 메기들이 그물 밑바닥에 우글거렸는데 몰이꾼들이 통발로 퍼냈다. 놀라웠다. 니제르강에 그렇게 많은 물고기가 있을 줄 몰랐다. 강변에 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고기들은 현장에서 모두 팔렸다. 외국인과 부자 부족이 고기를 사 갔다. 고기로 빚을 탕감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니제르의 유랑민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유랑민들이 그런 기적을 연출해낸 다니엘에게 몰려갔다. 다니엘은 감사의 찬사를 막고 말했다.

여러분,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잘살기 위해, 굶주리지 않기 위해 더 많은 계획을 세우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니제르강은 정말 좋은 강이며 여러분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입니다. 이제 굶주리지 않아도 됩니다.’

다니엘은 마을 장로들과 협의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니제르강은 그 지점에서 유랑민들에게 통행을 금지했다. 하류의 기름진 평야에 사는 부자 부족이 니제르를 점령한 프랑스 관리들과 협잡하여 하류 통행을 막았다. 야만스러운 유랑민들이 평야에 들어오면 시설을 파괴하고 도둑질을 하여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주장이다. 다니엘의 요청을 받고 번즈가 프랑스 행정관을 만났다. 단호하게 부자 부족의 탐욕을 질타했다. 니제르강은 수백 수천 년 전부터 강 연안에서 살고 있는 유랑민들의 소유이며 하류의 부자 부족의 소유가 될 수 없다. 번즈와 프랑스 행정관은 호텔에서 만났다. 마담 로셔가 경영하는 호텔이다. 로셔는 행정관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호텔의 회의장에 왔다. 니제르는 프랑스에 점령되어 프랑스가 통치했지만 형식상으로는 자치국으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20명 가량의 장로들이 회의에 참석했다. 장로의 대부분은 평야 지대 부족이며 유랑인 대표는 없었다. 부족대표들은 유랑인들에게 강 하류 통행권을 주자는 행정관의 제안을 반대했다. 무식한 천민들에게 그런 권리를 주면 평화가 어지렵혀진다는 주장이었다. 번즈가 연설했다.

최초에 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에 따라 도로가 만들어졌지요. 사람들은 그 후 지리에 따라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강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건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번즈는 니제르강을 찬양했다.

니제르강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훌륭하고 멋진 강입니다. 나이르강이나 콩고강보다 훨씬 멋지지요.’

사실 니제르강은 이상한 강이다. 니제르강은 기니의 서해안에서 200km쯤 떨어진 바위산이 수원지인데 처음에는 바다와 반대쪽인 북쪽으로 흐르다가 나중에는 크게 남쪽으로 돌아서 나이지리아에서 대서양으로 흘렀다. 그 니제르강이 돌고 있는 품 안에 니제르가 안겨있다. 길이는 나이르강보다 짧았으나 수량은 더 많다. 니제를 그 풍부한 수량으로 사막 또는 반사막 지역에 물을 공급했다. 한도 없이 물을 빨아들이는 반사막지대를 지나면서도 물이 고갈되지 않았다. 니제르강은 니제르 주민의 젖줄이다.

누가 그 강의 흐름을 막으려고 하나? 강 연변의 유랑민들이야말로 강의 주인이며 주인이 강을 통행할 수 없도록 만들 수는 없습니다.’

몇백 년 동안 여러 세력에 의해 압박과 착취를 당한 불쌍한 유랑민들을 도와주려는 영국 교수의 주장이다. 로셔를 비롯한 프랑스계 주민들이 열렬한 박수를 쳤다. 그들 중에는 강 하류 평야 지역에서 다원(茶園)이나 목장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로셔는 술잔을 들고 프랑스군 사령관이나 고등판무관들에게 부지런히 술을 권했다.

유랑민들에게 내린 통행금지를 해제시키시오.’

그날 밤, 니제르강 연변 유랑인들의 야영소에서 큰 잔치가 벌어졌다. 하늘에는 밝은 달이 걸려있고 땅에는 모닥불이 훨훨 타올랐는데 수백 명의 주민들이 춤을 췄다. 여인들은 축제 때 입으려고 장롱 깊이 보관한 옷을 꺼내입었다. 악기는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불고 냄비, 밥그릇을 두드렸을 뿐인데 마구 두들기는 소리가 피리에 맞춰 이상한 음조를 만들었다. 노래와 춤은 자유분방했다. 주민들의 기쁨이 폭발했다. 때마침 유랑인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온 프랑스 관리와 부족 장로들은 잔치판을 보고 놀랐다. 번즈와 함께 온 로셔는 그 잔치의 중심이 되어 춤을 추고 있는 젊은 백인 여인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영국의 대학교수 다니엘양이다. 마담 로셔가 흥분했다. 그녀와 함께 온 프랑스계 주민들이 로셔와 함께 춤판에 뛰어들었다. 마담 로셔는 집시 춤을 추고 그 일행들이 집시 노래를 불렀다. 유랑인들이 손님을 환영하는 음식을 대접했다. 모닥불에 강에서 잡은 손바닥만 한 자라를 굽고 팔뚝만 한 메기와 잉어를 꼬치에 구웠다. 프랑스 관리들이 양념을 발라 구운 뱀장어를 하얀 쌀밥 위에 얹어놓은 요리를 칭찬했다. 일본의 가바야끼보다도 맛이 있다고 했다.

다음날 프랑스 고등판무관이 유랑민들에게 내려진 니제르강 통행금지령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평야 지대의 부자족이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평야 지대에서 다원과 목장을 하는 프랑스인들이 환영했다. 다원은 시기에 따라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수확기에는 일손이 모자라 수확을 늦추는 때도 있었는데 이제 유랑민을 고용할 수 있다. 유랑민이 건기에 뗏목을 타고 내려와 돈벌이를 했다. 목장 주인들도 유랑민이 몰고 온 가축의 방목을 도왔다. 포수들을 고용해서 숨어있는 표범을 쫓아버렸다. 목장주들은 유랑민이 몰고 온 소를 구입했다. 건기에 살이 빠진 소를 구입해서 초원에서 살찌웠고 그 대신 송아지를 유랑민에게 주었다. 먹이가 풍부한 초원에서 키워 다시 구입할 계획이다. 그해, 건기가 지나고 비가 내리자 강 하류 평야에 머물던 유랑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뱃머리를 돌릴 필요가 없었다. 니제르강이 방향을 바꿔 북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129. 인디오의 마지막 성지

남미 페루 남동부 안데스산맥 동쪽 기슭에는 길이 2,700km의 우가야리강이 5,000km를 흘러가 브라질의 아마존 본류와 합류한다. 우가리야강은 아마존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지류다. 강의 중류에는 원시림에 덮인 광대한 구릉지대가 있는데 페루, 브라질과 볼리비아 국경이다. 구릉지대는 대부분이 페루의 영토인데 아마존 사람들은 그곳을 <아마존의 비경>이라고 말했다. 문명에 쫓긴 인디오의 최후의 성역이다.

1928년 그곳 교회 마을에 작은 일이 벌어졌다. 교회가 있어 교회 마을로 불렸는데 100가구쯤 백인, 혼혈인과 원주민들이 살았다.

신부님, 좋은 카누가 경매에 나왔습니다.’

젊은 아테락 신부가 주임 신부에게 전했다.

그것 잘 되었구만. 사도록 하십시오.’

그런데 너무 비쌉니다. 보통 카누의 세 배를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임신부와 아테락 신부가 경매장으로 갔다. 선주 파키타 추장, 큰 배로 장사를 하는 스페인개척단의 산체스 영감을 비롯하여 10여 명이 경매에 참가했다.

카누는 훌륭했다. 전문적으로 배를 만드는 혼혈어부가 가져왔는데 길이 15m, 너비 2m였다. 단단한 나무로 튼튼하게 짜여져 그만하면 여하한 격류에도 끄떡없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꼭 필요한 배다. 우가리야강의 무수한 세류가 거미줄처럼 뻗어있었고 세류에는 카누를 부숴버리는 격류도 흘렀다. 값이 올라갔다. 아테락 신부가 꽤 높은 값을 불렀으나 추장이 더 높게 올렸고 산체스 영감이 더 올렸다. 카누가 산체스 영감 소유가 되는 것 같았으나 엉뚱한 사람이 나타났다. 이틀 전에 온 페루의 대학원생이라는 두 학생이 터무니없는 값으로 카누를 낙찰했다.

신부님, 죄송합니다. 우리가 타고 온 카누가 바위에 부딪혀 망가졌기 때문에 이런 짓을 했습니다.’

괜찮아요. 그보다도 빨리 그곳 천막에서 빠져나와요. 엊저녁에 재규어들이 포효했어요. 그리고 또 좋지 않은 소식도 있어요.’

대학원생은 급류의 연변에 천막을 쳤는데 며칠 전부터 소속을 알 수 없는 원주민사냥꾼들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테락 신부는 두 사람의 대학원생들이 염려가 되었다. 그들이 왜 그런 오지에 온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예사 젊은이는 아니다. 여러 가지 공부를 한 것 같았으며 교양이 있고 건강하고 행동이 민첩했다. 값비싼 미국제 5연발 반자동 라이플과 브라질제 대구경 산탄총을 갖고 있었다. 아테락 신부도 총을 가지고 있다. 신부에 어울리지 않았으나 사제 신부도 묵인했다. 아테락 신부의 총은 성당의 신부들과 수녀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호신용 무기다. 아테락 신부는 훌륭한 사격수다. 몇 년 전에 마을에 나타난 재규어를 사살했다. 가축에게 덤비는 재규어를 침착하게 겨냥하여 단 한 발로 심장에 명중시켰다.

다른 소문도 있었다. 우가야리강의 지류가 흐르는 세파와의 늪지에서 원시생활을 하고 있는 식인족 사카쿤족이 세 사람을 죽였다고 했으나 신부는 믿지 않았다. 사카쿤족은 세파와 습지와 그 남서쪽 원시림을 떠돌아다녔는데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말이 있었다. 천연고무나무를 찾아 산림에 들어간 스페인계 브라질개척단이 사카쿤족의 기습을 받아 죽었고, 5~6년 전에 선교를 하려고 들어간 신부와 수녀들도 그들에게 잡아먹혔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사카쿤족은 흉악했으나 많은 백인들을 죽일 힘이 없다는 말도 있었다. 세파와 늪지와 주변의 원시림은 <죽음의 나라>. 한국의 국토만 한 넓이의 광대한 지역이었는데 무수한 세류가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대낮에도 몇 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들이 밀생했다. 늘 재규어의 포효가 울려 퍼지고 독사에게 물려 죽은 시체가 여기저기에서 썩고 있었다. 그래서 페루 정부는 반란이나 혁명을 하려는 정치범, 흉악범을 배로 싣고 와 거기에 버리고 갔다. 비공식 유형지였는데 버려진 죄수들은 살아나오지 못했다. 살아나올 방법이 없다.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 죽었다. 홍수가 지면 시체들이 우가야리강으로 떠내려왔다. 총탄에 맞은 시체, 재규어에 뜯긴 시체였으나 돌창이나 돌도끼에 찍힌 시체가 가장 많았다.

아테락 신부는 그 <죽음의 땅>에 몇몇 강력한 부족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사카쿤족은 떠돌아다니는 식인종이었으나 일정한 곳에 정착한 부족들도 있다. 일부 학자들은 그 부족이 아마존 최초의 조상이며 마지막 부족이라고 했다. 학자들은 아마존 오지에 사는 원주민부족이 안데스산맥 너머 잉카 문화권에 속했던 부족들 자손이라는 주장을 부인했다. 그들의 생활에는 잉카문명의 흔적이 없었다. 일부 미국학자는 약 5만 년 전에 아마존강 중류 연안 일대 강대한 부족이 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아마존강에서 고기를 잡고 산림에서 짐승사냥을 했으며 농업을 했다고 주장했는데 근거가 있었다. 아마존강 연안은 인간이 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존의 지류를 따라 퍼져나갔다. 몇백 명 정도였으나 단결심이 강하고 용감한 부족이었다. 그러나 그 부족은 멸망했다. 2~300년 전부터 백인들이 들어와 참혹한 집단학살이 벌어졌다. 백인은 금을 찾으려고 했으나 나중에는 고무를 찾으러 밀림에 들어왔다. 고무나무는 금 못지않은 보물이었으며 세계 각지에서 백인들이 몰려 들엇다. 밀림에 들어온 백인들은 인디오를 발견하며 짐승 사냥하듯 무조건 쏘아죽였다. 인디오는 흉악한 종족이며 살려놓으면 화근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디오는 백인을 피해 오지로 들어갔다. 원시림이나 습지로 들어가 목숨을 부지했다. 아마존 상류의 우가야리강이 무수한 세류를 친 광대한 늪지와 원시림에 그런 부족들이 살았다. 인디오의 마지막 부족이다. 그들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곳에 사는 부족들이 반문명적 반백인적이라는 건 당연하다. 아마존에 들어온 백인들이 인디오만 보면 무조건 죽였으므로 그들도 백인을 보면 무조건 죽였다.

아테락 신부는 리마에서 온 대학원생들이 염려되어 그들이 구입한 카누에 동승했다. 카누는 우가야리강 본류에서 지류인 세파와강으로 빠져나가 습지로 들어갔다. 거기서부터가 위험지대다. 무수한 세류가 거미줄처럼 쳐졌으며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지역이다. 대학원생들이 전날 야영했던 곳을 찾아냈다. 세류가 흐르는 언덕에 천막이 있었다. 천막은 찢어졌고 야영기구는 파괴되었다. 서너 명의 커다란 맨발 발자국이 있었다. 카누레 부착된 발동기가 그대로 남았다.

식인종입니다. 그들은 문명인의 기계에는 손을 대지 않아요.’

두려움 때문에 문명인의 기구에 손을 대지 못했다. 아테락 신부가 주변을 조사하고 5~6명의 식인종들이 며칠 전부터 미행을 하면서 기습을 하려고 했으나 기회를 잡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식인종은 흉악하나 겁이 많습니다. 총이 무서워서 감시만 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이 부근에 숨어 감시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테락 신부가 보자기에 싼 총을 풀었다. 신부가 주변을 감시하는 사이에 대학원생들이 카누에 발동기를 달았다. 미국제의 강력한 발동기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대학원생들이 신부의 충고대로 떠나기로 했다. 아테락 신부와 대학원생들은 날이 어두워졌을 때 성당마을에 도착하여 불이 켜져 있는 주막에 들어갔다. 인디오 아줌마에게 유카(고구마)로 만든 술을 주문했다. 고구마를 입으로 씹어서 발효시킨 음료수인데 알코올 성분이 꽤 높았다.

대학원생들은 비로소 신분을 밝혔다. 남미 최고의 명문 상마르코스대학 대학원생이었으며 벨튼은 화학, 사시리는 생물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생들은 자기들이 온 이유를 말하지 않았으나 신부는 짐작했다. 2년 전에 페루의 군인들이 상마르코스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 10여 명을 세파와강 습지에 버리고 간 적이 있었다. 페루의 관리들은 쉬쉬했지만 1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나와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특무상사가 술에 취해 그 일을 발설했다. 반정부 성향의 성향이었으며 혁명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늪지에 버려진 교수와 학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들 중 몇몇이 도주하였다가 다시 잡혔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교회가 예배를 마치는 종이 울렸을 때 원주민이 주막에 들어와 아테락 신부에게 귓속말을 했다. 바깥에 세리 수녀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신부의 신변을 염려한 수녀가 신부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신부는 대학원생들을 교회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교회에 가면 신고를 해야 하고 교회는 군 당국의 감시를 받았다. 대학원생들은 그날 밤 주막 아줌마의 소개로 원주민 파카타 추장의 집으로 갔다. 땅 위 2m쯤에 지은 고상(高床) 나무집이었으며 80평쯤 되었다. 추장은 대학원생을 환영했다. 원주민들은 누구든지 손님을 대접했다.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했다.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손님은 어제까지라도 그 집에 묵을 수 있었다. 손님은 그 집 식구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으면 잠자리를 했고 합의가 되면 동거도 했다.

파키타 추장은 대식구다. 대여섯 명의 자녀가 모두 결혼을 했으므로 모두 서른 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살고 있었다.

아마존 원주민의 식생활은 단순했다. 고구마의 일종인 만조카를 가루로 만들어 얇게 빚어 구운 게 주식이다. 부식으로는 천렵으로 잡은 물고기나 짐승고기를 먹었다. 그날 밤, 파키타 추장은 만조카 외에 메기 찌개를 내놓았다. 모닥불 위에 걸린 커다란 냄비에서 기름진 메기요리가 부글부글 끓었다. 추장이 야자 껍질에 덜어주었다. 모닥불에서는 아구티가 구워지고 있었다. 토끼보다 조금 큰 설치류인데 고소한 맛이 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해먹(그물침대)을 걸고 자는데 추장은 나그네들의 잠자리를 여자들의 해먹 바로 옆에 만들었다. 여자들의 몸에서 역한 냄새가 나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새벽 무렵에야 잠이 들었는데 여자들이 해먹 위로 기어 올라왔다. 육중한 여인에게 깔린 사시리가 고함을 쳤다. 벨튼은 여자를 피하려고 몸부림을 치다 해먹에서 떨어졌다. 여자들의 기습은 실패했다. 추장이 기침을 했다. 경고 같았으며 여자들이 물러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학생들을 기습한 여자는 추장의 둘째 며느리와 딸이었다. 막내딸은 외지에서 온 사내와 결혼을 했는데 그가 온다간다는 말도 없이 떠나버렸다. 20대인 딸에게 짝을 지어주려고 노력했다. 둘째 며느리는 홍수 때 물에 빠져 죽은 남편에 이어 개가를 했으나 병에 걸려 죽었다. 둘째 며느리는 아들 두 명, 딸 하나가 있었는데 골칫거리여서 어떻게든 짝을 찾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서둘지는 않았다. 남녀 사이란 인위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전생의 인연에 의해 맺어진다고 믿었다. 추장은 대학원생들이 가지고 있는 카누를 빌려 세파와 강변의 동족 마을을 방문하려고 했다.

파키타 추장의 세만족은 오랜 전통의 아마존 원주민이었으나 핏줄이 끊어지고 있었다. 백인의 박해를 피해 아마존의 오지로 들어왔는데 가계(家系)는 파키타 추장 일가와 세파와강 하류의 세만족 마을 뿐이다. 파키타 추장은 몇 년에 한 번 세만족을 방문하여 마지막 남은 세만족의 핏줄을 확인했으나 그 마을이 늪지와 산림 사이에 있어 큰비가 내리면 세류의 물줄기들이 바뀌어 지형이 바뀌기 때문에 찾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식인종이나 다른 부족들의 공격을 두렵지 않아. 세만족은 용감하기 때문에 그들을 물리칠 수 있어.’

파티카 추장이 큰소리를 쳤으나 문제는 지형이 바뀐 세만족의 거주지를 찾는 일이다. 세류는 꼬불꼬불 사행을 했고 어떤 곳은 강폭이 5~6m였고 물 깊이도 1m도 안 된다. 또 어떤 곳은 물흐름이 거세서 카누가 올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추장은 대학원생들이 갖고 있는 강력한 모터를 장착한 카누에 눈독을 들였다.

카누가 수로를 뚫어주면 우리 카누는 뒤를 따라갈 테니까 앞서가면서 세만족 마을을 찾아주게.’

파티카 추장은 젊은이 여섯 명과 함께 카누를 탔는데 창과 마제토(만도, 蠻刀)로 무장을 했다. 대학원생과 추장 일행은 늦게 우가야리강 본류에서 세파와강 지류에 들어섰다. 세파와강의 본류인 우가야리강과 합류한 지점은 강폭이 200m, 물 깊이가 20m나 되는 강이었으나 올라가면서 폭이 줄고 깊이도 낮아졌다. 그날밤 늦게는 강폭이 50m였다. 그때 페루군 경비정이 다가왔다. 기관총이 설치된 최신형 경비정인데 그런 경비정이 왜 세파와강에 배치되었을까? 페루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범을 세파와강에 버렸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추장은 강 상류의 세만족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대학원생들이 세만족 복장을 하였기 때문에 검문을 통과했다. 경비정은 담뱃값을 받고 검문을 빨리 끝냈다. 거기서부터 세파와강이 없어졌다. 강이 두 줄기로 갈라지더니 다시 서너 줄기로 갈라지고 나중에는 어느 것이 본류인지 지류인지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일행은 가장 큰 물줄기를 탔는데 꼬불꼬불 돌아가던 물줄기는 처음으로 돌아와 버렸다. 이번에는 큰 물줄기를 버리고 바닥의 돌이나 수초를 보고 오래된 물줄기를 선택했다. 이번에는 돌아오지는 않았으나 급류가 나왔다. 세류 중에서 그 세류만 수량이 불어나고 급류가 된 이유는 그 세류의 상류에 소나기가 내렸기 때문이다. 미로찾기다. 다시 선택한 세류는 강폭이 좁아지더니 물이 없어져 버려 되돌아왔다. 미로찾기 게임이 계속되었다. 적도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벌어지는 지옥게임이다. 대낮인데도 진드기와 쇠파리 떼가 덮쳐들고 거머리가 몸에서 기어 다녔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는 젊은이들도 모두 지쳐 쓰러졌다. 일행은 강둑에 올라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야영을 했는데 모기와 개미들이 몰려들었다. 엄청나게 큰 개미들인데 물리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모기떼들이 파상공격을 했는데 덤벼들 때는 마치 폭격기 편대와 같은 소리가 났다. 일행이 모닥불 곁에서 밤새 버둥거리다가 다음날 해가 떠오를 무렵에야 잠이 들었다. 인사불성 상태에 빠진 그들은 뙤약볕 아래서 죽은 듯이 잠들었다. 어딘지도 몰랐다. 방향감각을 잃었다. 추장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기어코 핏줄을 확인해야 한다. 지옥과 같은 여행이 사흘이나 되었으나 마을은 나타나지 않았다. 닷새째 되는 날 세류 부근에서 기분 나쁜 기호를 발견했다. 숲에 있는 바위에 X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X표시는 영토표시다. 여기는 우리 땅이니 들어오면 죽이겠다는 경고다. 추장이 당황하여 왔던 길로 되돌아섰다. X 표시가 된 지역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날 밤에는 모닥불을 피우지 못했다. 교대로 불침번을 섰다. 벨튼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초저녁에는 재규어가 으르렁거렸는데 밤이 깊어지며 더 무서운 살육자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재규어가 으르렁거렸던 숲에서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나 무서운 살기를 띠었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열서너 명인데 무엇인가를 쫓고있었다. 밤중에 짐승사냥을 할 리가 없고 사람사냥을 하고 있었다. 비명이 들렸다. 추장 일행은 그 사냥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하고 죽은 듯이 숲에 엎드렸다. 아무튼 무사했다. 산림은 조용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했는데 까마귀들이 몰려들었다. 대학원생들이 숲으로 가봤다. 비린내가 나는 곳에 시체가 있었다. 목이 없었다. 시체 옆에는 돌창이 있었다. 석기시대에 사는 원시족이다. 죽인 사람은 누굴까? 희생자의 목을 자른 기구는 예리한 칼이다. 철기를 사용하는 부족이다. 파키타 추장 일행은 계속 상류로 올라갔다. 10여 미터, 깊이 1m의 세류는 꼬불꼬불 사행(蛇行)을 하면서 다른 세류와 엉키기도 하고 카누가 가지 못할 정도로 좁아졌는데 그래도 끊기지는 않았다. 세파와강에서 세류로 들어온 지 5~6일쯤 되었을 무렵 지형이 바뀌었다. 진흙투성이 습지에 초록색 풀밭이 니왔다. 키가 작은 나무도 보였다. 사바나다. 세류 양쪽에도 나뭇가지가 늘어 뻗어 칼로 치면서 갔다. 나뭇가지에는 독사들도 있었다. 물고기를 노리는 놈들이었으나 사람도 위험하다. 추장 일행은 무진장 고생을 했으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영양분 많은 음식 덕분이다. 세류에는 메기, 가물치들이 많았고 자라가 산란을 했다. 뭇 짐승들이 모여들었다. 사람 손이 닿지 않아 사람 무서운 줄 몰랐으므로 영양이나 토끼를 창으로 쉽게 잡았다. 파키타 추장은 한 무리의 페카리(들돼지)를 보고 정지했다. 100여 마리가 넘는 페카리들이 사람을 위협했다. 창으로 잡겠다는 젊은이를 만류했다.

안 돼, 저놈들은 그냥 놔둬!’

파키타 추장이 2년 전 세만족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 페카리 무리를 본 적이 있다. 세만족 영토에 페카리가 살고 있었고 세만족의 사냥감이다. 페카리는 깊은 산림에 살았는데 서식지가 넓지 않았으므로 페카리가 있는 곳에 세만족 마을이 있을 수 있다. 일행이 카누에서 내려 초원으로 올라갔다. 일행은 카누를 끌어 올려놓고 페카리를 따라갔다. 페카리는 사바나를 가로지르고 산림으로 들어갔다. 일행이 계속 페카리의 뒤를 따라갔다. 산림이 울창한 원시림으로 바뀌었다. 페루와 브라질에 걸쳐있는 거대한 원시림이다. 원시림을 지그재그로 걸어가며 세만족을 찾았다.

원시림에는 바람이 없고 찌는 듯이 더웠다. 열대다우림(熱帶多雨林)의 특징인데 비가 내릴 징조다. 추장은 아주 조심스러웠다. 일행의 앞에 서서 전후좌우를 살피며 걸어갔다. 일행은 하오에 물이 말라붙은 강을 발견하여 야영을 하기로 했다. 모닥불을 피우고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 깨어나 보니 몸이 으스스 추웠다. 추장의 낯빛이 변했다.

홍수가 오고 있어! 몇십 년만의 대홍수야!’

세루의 상류에서 폭우가 쏟아지기 때문에 하상(河床)에서 물이 솟아오른다는 말이었다. 잠시 후 비가 내렸다.

좋지 않아. 땅속에서 물이 스며 나오면 홍수가 진다는 옛말이 있어.’

일행이 구릉으로 올라갔다. 이슬비가 폭우로 바뀌었다. 구릉 위에서 보니 습지와 저습지는 물론이고 사바나가 온통 물에 잠기고 있었다. 흙탕물은 구릉으로 몰려왔다. 아마존에 폭우가 내리면 온통 물의 세상이 된다. 아마존의 탁류를 막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삼림도 산도 마을도 탁류에 잠긴다. 구릉이 물에 잠기면 어떻게 할까? 멀리 안데스산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보였다.

저 산으로 가야 됩니다.’

대학원생이 말했다. 그들은 아마존에 오기 전에 아마존의 지형을 연구했기 때문에 위기 판단을 했다. 일행은 뛰다시피 산을 향해 출발했다. 폭우는 계속 내렸고 구릉도 물에 잠겼다. 수백 수천 마리의 짐승들이 도망을 갔다. 그들도 산이 있는 방향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안전지대를 알고 있었다.

저것 보세요!’

대학원생이 파키타 추장에게 망원경을 보여주었다.

그 일대에 사는 부족들이 홍수를 피해 모두 산기슭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수십 명씩 마을 단위로 피난을 했으나 노약자들은 부족의 한계 없이 수백 명이 어울려 피난을 했다. 쓰러져있는 노약자들을 젊은이들이 들것에 싣거나 업었는데 부족에 관계 없이 다른 마을 노약자들에게 물과 약을 주며 돌보고 있었다. 그들은 평소에는 영토와 마을이나 부족의 이익을 가지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는데 물 난리를 겪자 모두 합심했다. 아마존의 오지에 사는 부족들이 싸움만 한다는 소문은 잘못된 것이며 자연의 재난이나 외적의 침략에는 단결하여 협조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들은 인간이 아닌가? 대학원생들은 흐뭇했다. 어두워질 무렵에는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빨리 산기슭에 도착하지 못하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물에 빠져 죽는다. 한밤중에는 깜깜하여 앞이 보이지 않고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불을 피워놓고 사람들을 맞았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불은 활활 타올랐다. 불빛은 산에 도착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짐승에게 등대 역할을 했다. 물이 점점 불어 사람들의 가슴에까지 차올랐다.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은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파키타 추장 일행은 먼저 산기슭에 도착했으나 쉬지 않았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대피소를 짓고 대학원생은 줄을 허리에 감고 물속에 뛰어들었다. 노약자들이 그 줄을 잡고 구조되었다. 다행히 날이 밝아왔는데 약 500명쯤 되는 사람들이 대피소에 모여있었다. 평소에 원수처럼 지내던 부족들도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피부색이 다른 대학원생들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피난민들 가운데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60여 명쯤 되는 사람들이 파키타 추장을 보고는 환성을 터뜨렸다.

세만족 사람들이다. 파키타 추장이 찾고 있었던 동족이다. 그날 정오께 비가 그쳤으나 그 일대는 흙탕물의 바다였다. 물이 빠지려면 한 달은 걸릴 텐데 피난민들은 그동안 굶지 않아야 한다. 대학원생이 세만족을 지휘하여 물을 끓였다. 홍수 후 가장 위험한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끓인 물을 나눠주었다. 피난민들은 비상식량을 부족 구분 없이 나눠 먹었는데 고작 3~4일분이다. 그러나 아마존은 사람들에게 두려운 피해를 주지만 이변을 일으켜 뜻하지 않은 혜택을 주었다. 물고기들이다. 사람의 손바닥만 한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홍수에 떠밀려 산기슭으로 올라왔다. 수백 수천 마리의 물고기가 산기슭으로 튀어 올라왔다. 피난민들은 손으로 끌어모으기만 했는데 산더미처럼 쌓였다. 피난민들은 산 위쪽에서 동굴을 찾았다. 마을별 부족 별로 동굴에 자리를 잡았다. 젊은이들은 풀밭에 불을 피우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파키타 추장은 세만족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갔는데 그 도끼, , 냄비와 성냥이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수해를 입어 재산을 다 잃었다고 하지만 아마존 오지의 부족들에게는 별로 잃을 재산이란 없다. 집은 통나무 고상집이라 가족들이 이틀이면 지었다. 그 밖의 재산이란 3~4일 먹을 식량과 냄비 등 철제기구가 고작이다.

피난민들이 산 위에서 지낸 지 사흘 만에 산림 어귀에 머물고 있던 피난지에 재규어가 나타났다. 굶주린 재규어가 동굴 안에까지 들어왔다. 재규어는 아이를 노렸으나 잠에서 깬 어른들이 소리를 지르자 도망갔으나 산림을 돌아다니는 재규어를 그냥 두고 있을 수는 없다. 대학원생들이 총을 들고 산림으로 들어갔다. 추적 끝에 재규어 새끼를 발견했다. 한 마리뿐이었는데 그 홍수 속에서 새끼를 물고 피난했던 것 같았다. 대학원생들이 숲에 잠복하였다. 재규어의 어미는 밤중에 나타났다. 어미는 조심스럽게 끙끙거리는 새끼에게 다가갔는데 뒤에서 전짓불이 켜지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았으나 눈부신 빛에 일순 움직이지 못했다. 사시리가 발포했다. 대학원생이 재규어를 잡았다는 소문이 퍼졌다. 아마존 오지에서 가장 무서운 맹수는 재규어였으므로 재규어를 잡은 사냥꾼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 원주민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으며 각 부족을 방문하며 페루군대에서 추방된 상마르코스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대학원생들이 그곳에 온 이유다. 추방된 교수와 학생들의 행방을 알려고 했다. 생사만이라도 알려고 했다.

많은 정보가 있었으나 불확실했다. 대체로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외부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말인데 과장되거나 불확실했다. 원시림에서 살고 있는 백인 학자나 학생들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었으나 캐물으면 전문이거나 추측이다. 상류에서 백인시체가 떠내려왔다고 했으나 뼈만 남은 시체를 어떻게 백인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밀림에서 총에 맞아 식인종이 죽었다고 했는데 총을 쏜 사람이 학자라고 단정할 수 없다. 열심히 정보를 수집한 결론은 적어도 1년 전까지는 학자들이 살아있었다고 보았다. 학자는 서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그쪽은 브라질이다. 가장 확실한 정보는 서쪽 원시림에 살고 있는 사냥꾼이었다. 사냥꾼들은 여러 사람을 접촉했고 접촉한 원주민들이 자기 마을에 백인이 살고 있다고 했다. 백인은 자기 눈알을 뽑아 불을 일으킨다고 했다. 안경으로 불을 일으켰을 것이다. 대학원생들은 비가 그친지 열흘 후에 모험을 감행했다. 우선 뗏목을 타고 내려가 카누를 찾기로 했다. 뗏목은 악어와 피라니아가 사는 물길로 내려갔다. 악어는 기회를 엿보며 뗏목 주변을 맴돌았다. 피라니아에 걸리면 사람은 5분 안에 뼈만 남는다.

그러나 기분 나쁜 동반자들만 있는 게 아니라 유쾌한 동반자들이 있었다. 돌고래들이 뗏목을 발견하고 몰려왔다. 악어들이 있어서 돌고래를 염려했으나 오히려 돌고래는 악어를 농락했다. 빠르게 헤엄치면서 뾰쪽한 주둥이로 악어를 공격했다. 몸놀림이 느린 악어는 돌고래에 쫓겨 도망쳤다. 돌고래는 식인 피라니아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피라니아가 몰려오면 꼬리로 파문을 일으켰다. 강한 꼬리치기의 파문에 피라니아는 배가 뒤집어졌다. 돌고래는 느릿느릿 떠내려가는 뗏목이 안타까운 듯 뗏목을 주둥이로 밀었다. 아마존 원주민들은 돌고래를 보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했는데 대학원생들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모터가 달린 카누를 발견했다. 세류에서 상륙했을 때 높은 바위 위에 끌어 올려놓은 카누가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카누가 펑펑거리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을 때 돌고래들이 또 나타났다. 그러나 그때는 느릿느릿 움직이는 뗏목이 아니다. 앞서거니 뒤따르며 경쟁으로 하자는 것 같았다.

(오냐, 이놈들!)

카누를 돌려 강 하류로 돌진했다. 상류로 올라가는 건 돌고래를 당하지 못했으나 하류로 내려가는 경주에서는 카누가 빨랐다. 돌고래는 약이 오른 듯 공중으로 튀어 올랐으나 그래도 카누가 빨랐다. 카누를 다시 상류로 돌려 사이좋게 상류로 올라갔다.

대학원생들이 카누를 찾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환영했다. 파키타 추장과 세만족 뿐만 아니라 모든 부족이 환영했다. 함께 피난살이를 하며 정이 들었다. 원주민들이 원시림 안쪽 브라질국경지대로 가겠다는 학생을 말렸다. 강력한 모터를 부착한 카누가 있었으나 뱃길이 트였을지 모른다. 뱃길이 막히면 걸어서 가야 하는데 그건 죽음의 길이다. 브라질국경에도 사람들이 살았으나 위험한 부족이다. 그 일대는 천연고무나무가 있는데 채집을 하려고 들어간 백인은 한 명도 살아나오지 못했다. 식인종과 목베기족이 살았다. 마을 여기저기에 해골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학생들은 말리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세류로 둘어갔다. 강폭이 좁아지고 깊이도 2m가 넘지 않았다. 오후에 강둑에 통나무집이 보였다. 홍수를 피해 피난을 하여 마을이 텅텅! 비었다.

학생들은 지쳤는데 주위에는 야영할 곳이 없었다. 모기떼와 개미가 우글거리는 풀밭에서는 잘 수 없다. 학생들이 마을로 들어갔다. 사람도 불기도 없다. 빈집인 것 같았으나 온기가 있었다. 원주민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났다. 전지를 켰다. 대여섯 명의 여자들이 있었다. 잠을 자다가 불빛을 받아 어리둥절하는 표정이었으나 적의는 없다. 학생들도 놀랐으나 순간적인 기지로 <뭐라야 뭐라!> 라고 말했다. 세만족의 말로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다. 여인들이 같은 말로 대답했다. 찾아온 손님을 환대하는 것이 원주민의 습관인데 여인들도 환영했다. 주인인듯싶은 여인이 손짓으로 화덕 가까이 오라고 했다. 여인들이 학생에게 술을 권했다. 유카를 발효시켜 만든 술은 원주민에게는 귀중품이었으나 아낌없이 내놓고 자기들도 마셨다. 여인들은 기분이 좋았고 학생들도 기분이 좋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모두 쓰러졌다. 새벽에 벨튼은 무엇엔가 눌리는 압력에 잠에서 깨었는데 연인이 하반신을 몸에 겹쳐놓고 누르고 있었다. 여주인이다. 여인의 몸을 밀어내려고 하다가 벨튼은 신부의 말을 상기했다.

아테락 신부는 성직자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이곳에서는 선교활동을 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특히 교육 정도가 낮고 지능이 개발되지 않은 여인들에게 선교를 하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일부 성직자들은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인디오 여인과 성관계를 맺었다. 백 마디 말보다 여인과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 아테락 신부는 당신도 그렇게 선교활동을 했는가 하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웃었다.

그러나 이건 알아두시오. 문명사회의 성도덕이나 성문화가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문명사회에서는 성이니 정조 등을 심각하게 여겨 남녀의 성관계는 함부로 하지 않지만 인디오 사회에서는 남녀가 성관계를 갖는 것은 일종의 사교 행위고 인사치레입니다. 꼭 결혼을 할 필요도 없고 그저 웃으면서 즐기고 사귄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인디오의 성문화를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명인에게는 문명인의 성문화가 있고 인디오에게는 인디오의 성문화가 있지요.’

그래서 인디오 마을에 들어간 성직자는 인디오의 성문화를 개선시키려는 의도는 하지 않았다. 인디오는 자유로운 성문화를 통해서 서로 화목하며 삶을 풍요롭게 즐겼다. 벨튼은 몸 위에 올라온 여인을 뿌리치는 몰인정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 여인은 얼마나 다정했는가? 굶주림과 피로에 지친 자기를 웃음으로 맞아주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제공했으며, 따뜻한 잠자리까지 마련해주지 않았던가?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한다. 벨튼은 자는 척하면서 계속 여인에게 몸을 맡겼다. 미인도 아니고 냄새가 심했으나 벨튼의 몸은 여인을 거부하지 않았다. 여인은 소중하게 벨튼의 몸을 다루었고 결국 목적을 달성했고 벨튼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여인이 신선한 과일즙을 들고 왔는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벨튼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저 인디오 친구를 하나 만들었을 뿐이다, 아주 깊이 사귈 수 있는. 오전에 그 집 주인 남자들이 사냥에서 돌아왔다. 이방인 남자들이 자기들이 없는 사이에 마누라들과 정답게 아침을 먹고 있는 걸 보고 웃었다.

집을 비웠던 남자들이 다 돌아오자 마을 회의가 열렸다. 모두 긴장한 표정이다. 인근의 다른 마을 대표들도 드나들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백인 성직자들이 선교활동을 했다. 2년 전에 교회기 있었으나 일부 부족들이 교회를 불살라버렸다. 성직자들은 목숨만 살아 도망쳤으나 다시 교회를 재건하려는 노력은 버리지 않았다. 인디오 부족들 사이에 의견이 대립하였다. 일부 부족들이 백인들은 무조건 쫓아내거나 죽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부족이 성직자는 병든 사람을 치료해주고 모르는 일을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어느 사회에서든지 강경론자와 온건론자가 다투면 강경론자가 이긴다. 교회를 불살랐던 라오족과 그 이웃 부족들이 신부를 쫓아낼 싸움 준비를 했다. 라오족은 목베기족이고 식인 습관도 있다. 습지와 산림의 홍수 때 세만족과 함께온 대학생들이 수재민을 구제했다는 소식이 널리 퍼져있었다. 신문도 전화도 없는 사회였으나 인디오 오지에서도 정보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마을 회의가 열리고 대학생들이 신부와 성직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특히 하룻밤을 지낸 부인이 강력하게 학생들의 주장을 밀어 부쳤다. 마을의 일꾼 여나문 명이 도끼와 괭이를 들고 교회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날밤 성직자들이 있는 곳에 돌아와 보니 강경파들이 성직자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약 서른 명의 목베기족이 성직자들을 포위하여 공격했다.

포위를 당한 성직자들이 총을 쏘았다. 위협용이다. 대학생들도 총을 쏘았다. 공포였다. 목베기족을 위협하려는 뜻이다. 날이 밝아오자 목베게족은 도망쳤다. 인디오 부족들이 백인 편을 들어 자기들에게 덤벼드는 걸 보고 겁을 먹었다. 세 사람의 신부, 두 사람의 수녀와 그리고 원주민 성직자 세 사람이 불탄 교회 자리에 있었다. 아테락 신부와 늘 따라다니는 젊은 수녀도 있었다. 아테락 신부는 교회를 재건하는 일 외에 산림으로 추방된 상마르코스대학 교수와 학생의 소재를 알아내고 구조하는 일이다. 모두 10여 명이었는데 그중 여섯 명이 아직 살아 있었다. 그들은 산림 주변의 교회와 연락이 되어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국경 너머의 교회가 적극적으로 구조활동을 벌였다. 브라질의 교회는 교수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그들을 구출할 강력한 구조대를 이미 파견했다. 산림의 지리를 잘 아는 군인과 고무 채집 회사 직원 30명이 무장을 하고 수색을 했다. 대학원생들은 그들의 목적이 달성되었으므로 할 일이 없었다. 성직자들은 교회를 짓기 위해 이미 교회를 짓고 있었다. 원주민부족들이 나무를 자르고 벽을 치고 호전적인 부족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경비를 했다. 본디 원주민사회에서는 그런 일에 여인들은 나서지 않았으나 현장에는 대여섯 명의 인디오 여인들이 나와 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특히 대학생과 잠자리를 한 여인은 진두지휘를 하며 헌신적으로 도왔다. 아테락 신부의 선교활동에 대한 충고가 증명되는 셈이다. 며칠 후 페루혁명동지회로부터 대학원생들에게 지시가 내려왔다. 죽음의 산림에 추방되었던 교수와 학생들이 모두 구조되었으니 복귀하라는 지시였다.

 

130. 멜빌 반도의 에스키모

캐나다의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밀튼은 캐나다 북부권에 사는 에스키모 마을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 생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에스키모에 대한 조사연구는 이미 많았다. 북극권에 사는 에스키모는 6만여 명이고 캐나다 북극권에는 1만 명쯤 되며, 그들이 바다에서 고래, 바다표범을 잡고 툰드라에서 캐리부 등을 사냥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보고되어있었다. 또한 에스키모는 생식을 한다는 둥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정조 관념이 희박하여 마누라나 딸을 외부손님 접대에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밀튼은 그런 보고서를 피상적이라고 간주했다. 생태를 알려면 그들과 같이 살면서 조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모험이 위험하다고 만류했으나 밀튼은 계획을 감행했다. 그는 본디 모험심이 강하고 의지가 굳은 젊은이다. 만류와 충고에도 귀담아들을 정보가 있었다. 밀튼이 탄 화물선의 기관장이 충고했다.

이봐, 젊은이. 내 말을 들어.’

기관장이 선실에서 술을 권하며 말했다.

‘2년 전 이맘때야. 세 명의 이탈리아 선원들이 자네가 지금 가려는 멜빌 반도로 갔지. 별로 질이 좋지 않은 선원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에스키모에게 살해되어도 된다는 법은 없어.’

그들이 에스키모에게 살해되었습니까?’

그렇다는 증거는 없어. 에스키모 사회에는 법관도 경찰도 없으니까. 그들이 왜 죽었는지도 몰라. 하긴, 에스키모가, 그들은 썰매를 잘못 몰아 바다에 빠져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고, 모두들 그렇게 믿고 있지. 자네가 꼭 가야 한다니까 더 이상 말리지는 않겠는데 에스키모 사회에서는 잘못하면 살해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두게.’

밀튼은 19616월에 캐나다 북극권 멜빌 반도 홀비치로 떠났다. 홀비치는 멜빌 반도 북쪽에 해안에 있는 항구인데 여름 해빙기가 되면 서방의 포경선이나 화물선이 드나들었다. 그래서 멜빌 반도나 베판 섬 등에서 사는 에스키모들도 드나들었다. 에스키모는 흰곰, 캐리부와 바다표범의 껍질을 팔고 생필품을 구했다. 밀튼은 생필품 판매점의 식당에서 부리라는 에스키모 사냥꾼을 만났다.

부리는 40대의 에스키모인데 대부분의 에스키모가 그렇듯 웃는 낯의 호인이고 낙천가였다. 부리가 한 달쯤 자기 집에서 기숙할 수 있느냐는 밀튼의 제안을 선뜻 승낙했다. 마침 썰매를 몰고 왔으니 당장 가자고 했다. 생전 처음으로, 에스키모의 집에서 기숙하겠다는 학생도 학생이었지만 당장 가자는 에스키모도 에스키모였다. 그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던 지배인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러나 그 미국인 지배인은 밀튼의 배낭을 보고 그 학생이 엉뚱한 짓을 일삼는 허풍선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천막은 직업등산가들이 사용하는 아주 가볍고 튼튼한 고급천막이다. 반자동 윈체스터 라이플도 손질이 잘 되어 번들거렸다. 휴대용 곤로와 석유램프, 간편한 취사도구와 응급치료 상자 등 빈틈이 없었다. 지배인은 그 학생을 말리지 않기로 했다.

밀튼과 에스키모 부리가 출발했다. 오후 1시가 아니라 새벽 1시다. 한밤중이었는데 바다도 육지도 대낮처럼 밝았다. 태양이 지지 않는 북극권이다. 생필품 가게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 밤은 밤이다. 열두 마리의 개가 끄는 썰매가 달렸다. 얼음과 눈에 덮여있는 광야는 바다와 육지를 분간할 수 없다. 낮과 밤을 구분할 수가 없으니 썰매가 얼마를 달렸는지 알 수 없었으나 부리가 썰매를 멈췄다.

바다표범이야. 바다표범이 구멍에서 나오고 있어. 한 마리 잡아서 개들에게 먹이로 줘야지.’

밀튼이 아무리 봐도 바다표범도 구멍도 없다. 망원경으로도 발견할 수 없다. 에스키모는 눈이 밝다. 얼음벌판에서 사냥감을 찾는 그들은 서구인보다 눈이 몇 배나 밝다. 부리가 썰매를 내려 100m쯤 가더니 눈 위에 엎드려 기어갔다. 부리가 하얀 옷을 입고 있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밀튼도 기어갔다. 부리가 누운 자세로 총을 겨냥했다.

밀튼의 망원경에도 바다표범이 잡혔다. 총소리와 같이 바다표범이 쓰러졌다. 밀튼이 감탄했다. 부리의 총은 케나다 제품으로 에스키모가 아니면 사지 않는 조악품(粗惡品)이었는데 부리는 그 고철로 바다표범을 쏘았는데 총탄이 표범의 두개골을 뚫고 뇌에 명중했다. 명중되지 않으면 표범이 얼음구멍으로 도망가버린다. 사실 바다표범은 작살로 잡는다. 바다표범이 물밑에서 숨을 쉬기 위해 얼음구멍을 뚫어놓고 가끔 물 밖으로 나오는 걸 구멍 밖에서 기다리다가 작살로 찍어야 도망을 가지 못한다. 그때는 부리가 생필품을 구하러 나왔기 때문에 작살이 없어 고철 덩어리 같은 총을 표범을 쏘았는데 기가 막히는 솜씨다. 부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잡은 바다표범을 그 자리에서 해체했다. 사냥꾼에게는 잡은 사냥감을 처분할 때가 가장 즐거운 때이지만 에스키모처럼 즐기는 사냥꾼은 없다. 먼저 칼로 표범의 껍질을 벗겼다. 고무처럼 매끄러운 껍질을 벗겨내자 부드럽고 하얀 지방층이 나왔는데 부리는 두부 같은 그 지방층을 조금 잘라 먹었다.

마마구도(맛있다)! 마마구도!’

날것을 먹으면서 연방 <마마구도>를 외쳤다. 에스키모는 미국 인디언의 말인데 <날것을 먹는다>는 말이다. 에스키모는 무엇이든 날것으로 먹는다. 신선한 야채를 구할 수 없어 비타민이 부족한 그들은 짐승의 생고기에서 비타민을 섭취했다. 그들은 자그마한 칼을 가지고 다녔는데 고기를 잘라 먹고 칼에 묻은 피도 핥아먹었다. 다음에는 위를 잘랐는데 안에서 조개가 나왔다. 에스키모는 위에서 나온 조개나 해산물을 최고의 음식으로 쳤다. 그러나 밀튼에게는 아무 맛도 없었다. 비린내는 좀 덜했으나 도저히 마마구도가 아니다. 부리는 먹는 데 열중했다. 표범의 혓바닥, 간과 허파를 조금씩 잘라 먹고 마마구도를 연발하더니 나중에는 도저히 눈으로 볼 수 없는 고약한 짓을 했다. 표범의 내장을 잘라 국수처럼 빨아먹었다.

내장을 거의 1m나 먹었다. 내장 안에는 소화가 된 똥이 기득 차 있었는데 똥까지도 마마구도였다. 자기 배가 어느 정도 차자 표범을 토막 내어 개들에게 던져주었다. 개들은 먹이 쟁탈전을 벌였다. 개들도 오랜만에 맛있는 바다표범고기를 포식했다. 에스키모개들은 늘 굶주렸는데 이틀에 한 번 쇳덩어리처럼 얼어붙은 가자미고기를 얻어먹었으며 얼지 않은 바다표범고기를 먹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부리의 썰매는 홀비치를 떠난 지 이틀 만에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서는 100마리가 넘는 개들이 짖어댔다. 마을에는 네 가족 54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개는 120마리였다. 개들 다음에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열서너 명의 아이들이 썰매에서 장난을 했는데 어른들은 웃었다. 눈과 얼음에 덮여있는 곳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에스키모에게 외부손님은 반가운 사람이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밀튼을 자기 집에 모시려고 쟁탈전을 벌였다. 여인들은 짙은 화장을 하고 눈웃음을 쳤으며 아이들은 밀튼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손님을 모실 우선권은 부리에게 있었다. 부리가 밀튼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에스키모의 집은 눈에 덮인 움막이었는데 입구는 눈을 파내고 만든 터널이다. 강아지가 끙끙거렸다. 에스키모는 개를 방안에 들이지 않았으나 2개월 미만은 방에서 길렀다. 내부가 어두워서 벨튼이 무엇엔가 걸려 얼굴이 진득거렸다. 바다표범의 피다. 오래되었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다. 에스키모는 바다표범이나 캐리부를 집 안에 걸어 놓고 배가 고프면 수시로 잘라먹었다. 요리할 필요가 없으면 아이들도 잘라먹었다. 화장실은 석유 깡통을 잘라 만들었다.

에스키모는 밤에는 밖에 나갈 수가 없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하 50도의 추위다. 그래도 밀튼은 방 안에서 용변을 할 수가 없어 밖으로 나가 집에서 머리 떨어진 얼음 위에 쪼그려 앉았다.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았으나 오산이다. 밀튼이 바지를 내리자 말자 개들이 나타났다. 대여섯 마리의 개들이 덤벼들었으나 물지는 않았고 밀튼의 엉덩이를 다정하게 핥았다. 빨리 용변을 하라는 독촉이다. 부리의 집은 침실, 거실, 부엌과 작업실을 겸한 공간이다. 열 평쯤 되었는데 바닥에는 판자를 깔았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방 한가운데 난로가 있고 고래기름을 태웠는데 가장 심한 냄새는 난로에서 나왔다. 다음에는 몇 개의 통조림 깡통이 있는데 그것이 어디에 쓰이는지 주부가 보여줬다. 부리의 마누라가 엄청난 엉덩이 밑에 깡통을 깔고 있었고 물소리를 냈다. 대변은 석유 깡통에 소변은 통조림 깡통으로 해결했는데 거기서도 냄새가 지독했다. 또 다른 냄새는 사람들의 몸에서 났다. 방에는 모두 8명의 가족이 있었는데 1년 내내 목욕을 하지 않는 몸에는 때가 덕지덕지 눌어붙어 있다. 부리가 자기 옆에 밀튼의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는데 밀튼의 옆자리는 과부 부리의 여동생의 자리다. 에스키모는 캐리부의 껍질로 만든 옷을 입었는데 모자와 상의, 하의가 통째로 붙어있다. 속옷을 입지 않았고 덧옷도 없다. 그 옷 하나로 50도의 추위를 견뎠다. 옷의 가슴 부위가 갈라져서 목을 내밀고 입은 다음 목 부위를 끈으로 묶었다. 그런데 그때 과부는 그 옷을 반쯤 벗고 잤다. 케리부의 털가죽 밑에 하얀 여인의 피부가 노출되었다. 냄새는 거기서도 풍겨 나왔다. 과부 여인이 잠을 깨서 젊은 이방인에게 눈짓을 했으나 창 하나 없는 집 방안이라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밀튼은 에스키모와 한집에서 사는 걸 연기했다.

밀튼은 부리의 집에서 탈출했다. 부리 가족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웃으면서 기어 나왔고 화장실에 가는 줄로 알았다. 부리의 집에서 100m쯤 되는 들판에 천막을 쳤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온 기분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아이들이 천막에 들어와 물건을 만지고 있었다. 빵과 치즈가 없어졌다. 불청객들이 계속 들어왔다. 50대의 늙은이가 들어와 손짓발짓으로 이웃에 살고 있다고 하며 밀튼의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 뽑아 한 모금 빨더니 담배 맛이 좋다고 하며 아내에게 주겠다면서 담뱃갑을 통째로 가져갔다. 영감뿐만이 아니라 부리와 그의 친구 두 명이 들어오더니 아직 풀지도 않은 짐꾸러미에서 위스키를 꺼내 마셨다. 밀튼은 에스키모가 소유 관념이 없는 공산사회에 산다는 걸 깜박 잊을 뻔했다. 그들은 내것 네것을 가리지 않았다. 밀튼은 가지고 온 물건을 모두 풀어내 줬다. 대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걸 얻어먹으면 된다. 방문객이 계속되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지나가자 여인들이 들이닥쳤다. 맨처음 온 건 부리의 여동생 과부다. 과부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넷이며 각기 성()이 달랐다. 동서(同壻) 생활을 한 남자는 네 명이었고 동서 생활까지는 아니고 그냥 산 남자는 20명도 넘었다.

이방인을 접대할 선취득권(先取得權)이라도 가진 듯 밀튼을 독점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요란스러운 음악 소리가 나더니 네 명의 여인들이 천막으로 들이닥쳤다. 한 여인이 축음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난한 에스키모로서는 대단한 재산이다. 축음기에서 요란한 재즈가 울려 퍼지자 여인들이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세 명의 남자들이 들어왔고 천막은 춤꾼들이 바글거렸다. 밀튼도 여인들에게 붙잡혀 춤을 추었다. 축음기 주인인데 젊고 예뻤다. 네 살 되는 아들이 하나 있었으나 법적으로는 처녀라고 말했다. 춤판이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밤낮을 알 수 없었으나 이틀쯤 지난 것 같았으며 밀튼은 잠에 취해 쓰러질 것 같았다.

안 돼, 안 돼. 여기서 잠들면 밟혀 죽어!’

부리의 마누라가 밀튼을 끌고 나가려고 했다.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려는 것 같아서 밀튼은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그 여인을 만족시킬 힘도 없었거니와 있다고 해도 그 여자에게 아이 하나를 더 낳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을에는 피부가 하얀 아이가 있었는데 아이가 한 명 더 추가되면 안 된다. 다행히 그때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썰매 석 대가 닿았다.

미셀이다, 미셀이 와!’

춤판이 중단되고 모두들 밖으로 뛰어나갔다. 미셀이라는 자가 꽤 인기가 있는 것 같았다. 미셀은 여섯 명의 사냥꾼 두목이었는데 날렵한 몸매에 에스키모치고는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이 좋은 날 무엇들 하고 있어!’

미셀이 고함을 질렀다. 바다코끼리가 몰려왔다고 했다.

몇 마리나 될 것 같아?’

스무 마리는 될 거야. 우리가 잡고도 너희들도 얼마든지 잡을 수 있어.’

미셀이 밀튼을 보았다. 웃음이 없는 무표정한 모습이다. 미셀은 일정한 주거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는 떠돌이 사냥꾼이다. 계절에 따라 바다코끼리, 바다표범과 캐리부를 쫓아다니며 이글루를 만들어 살았다. 그들은 우수한 사냥꾼이며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부리마을 사냥꾼들이 그들과 같이 사냥을 하기로 했다.

열 명의 사냥꾼들이 미셀을 따라 바다 사냥에 나섰다. 무두 열여섯 명의 사냥꾼들이 설원을 질주했다. 밀튼이 사냥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미셀은 밀튼을 초청하지 않았다. 마을에 남았는데 몇 시간 뒤에 부리가 혼자 되돌아왔다. 그는 친구를 혼자 마을에 남겨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리가 되돌아온 이유는 또 있다. 마을 여인 세 사람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축음기를 갖고 있는 여인과 친구들이다. 미셀이 그걸 원했다. 미셀과 동료 다섯 명은 일정한 주거 없이 마누라와 애인을 사냥터에 데리고 가기도 하고 다른 마을에 맡겨두기도 했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에는 마을에서 예쁜 여인을 꾸어오기도 했다. 부리마을 여인을 데리고 가기로 했고 여인들은 좋아라고 기뻐했다. 여인들은 미셀과 그 일당을 좋아했다. 밀튼이 탄 썰매는 다음날 사냥터에 도착했다. 사냥터에는 넓고 큰 이글루가 세워졌다. 넓이가 열 평 정도고 천정에 환기구멍을 뚫어 안이 밝았다. 바깥은 체감온도가 영하 10도쯤이었는데 이글루는 영상 1도였다. 부리마을 여인들이 도착하자 또 춤판이 벌어졌다. 부리가 미셀의 이글루로 가서 미셀 일당을 초청했으나 오지 않았다. 바다코끼리사냥을 한 다음에 오겠다고 했다. 부리마을 사냥꾼들도 춤판을 중지하고 바다코끼리사냥에 나섰다. 미셀의 말대로 많은 바다코끼리들이 얼음 사이로 떠올랐다.

얼음덩어리 위로 올라와 일광욕을 하는 바다코끼리를 사냥꾼이 노렸다. 작살로 찍거나 총을 쏘아 잡았다. 우마아크라는 가죽 보트를 타고 가까이 접근해서 총으로 잡았다. 부리와 밀튼이 사냥터에 도착했을 때 미셀 일당이 이미 바다사냥을 시작했다. 미셀이 우마아크를 타고 총으로 세 마리를 잡았다. 바다코끼리는 무게가 1t이 넘는 놈도 있다. 부리마을 사냥꾼들도 우마아크를 타고 사냥을 했으나 부리가 겨우 한 마리를 잡았다. 그동안에 미셀은 두 마리를 더 잡았다.

멜빌 반도에서 으뜸 사냥꾼이라는 말은 헛소문인가?’

총솜씨는 내가 으뜸이지만 미셀은 총이 우수해!’

부리의 총은 형편없는 캐나다제였으나 미셀은 미국제 최신형 연발 라이플이다. 우마아크도 달랐다. 튼튼하고 빨랐다. 사냥성과는 미셀이 7마리를 잡은 데 비해 부리는 겨우 세 마리다. 그나마 한 마리는 사냥꾼에게 쫓겨오는 걸 밀튼이 쏘았다. 300m의 원거리였으나 윈체스터 반자동 5연발 라이플이 불을 뿜었다. 에스키모 사냥꾼들이 놀랐다. 미셀의 사냥꾼들도 밀튼의 사격을 유심히 보았다. 부리는 만족했다. 세 마리를 잡은 건 처음이다. 또 춤판이 벌어졌다. 미셀은 일부러 사람을 보내 초청을 했는데도 오지 않았다. 밀튼은 미셀을 주목했다. 다른 에스키모처럼 헤프게 웃지 않았고 경솔하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차가울 정도로 침착하고 특히 밀튼을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밀튼은 화물선 기관장이 한 말을 생각했다. 2년 전에 세 명의 이탈리아인이 멜빌 반도에 들어갔다가 행방불명되었는데 에스키모가 그들을 살해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에스키모를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부리마을 사람들에게 이탈리아 사냥꾼들의 얘기를 물었으나 모른다고 했다. 미셀은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느낌이 그랬다. 부리가 미셀이 오지 않자 세 명의 여인을 데리고 미셀의 이글루로 갔다. 미셀의 요청으로 여인들을 며칠 동안 빌려주기로 했다. 밀튼이 미셀을 만나려고 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부리마을 사냥꾼들은 세 마리의 바다코끼리를 끌고 마을로 돌아왔다.

6월은 멜빌 반도에서는 바쁜 계절이다. 바다코끼리나 바다표범이 얼음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사냥을 해야 하고 캐리부도 잡아야 한다. 멜빌 반도에는 캐리부가 많은데 가장 소중한 사냥감이다. 껍질이 좋고 육질도 좋았으며 고기 맛도 좋아 고기를 외항선원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았다. 캐리부 사냥은 5~6월 동안에만 할 수 있다. 6월이 지나면 눈이 녹아 캐리부의 서식지인 산으로 개 썰매를 몰 수가 없다. 개 썰매 없이는 캐리부 사냥을 못 한다. 그래서 부리마을 인근의 마을들이 합동 사냥을 하기로 했다. 네 마을의 100명이 넘는 사냥꾼들이 출동하여 캐리부 사냥에 나섰다. 협동하여 되도록 많은 캐리부를 잡아 겨울에 대비하려고 했다. 열두 대의 썰매가 캐리부의 서식지로 출발했다. 좋은 날씨다. 영하 7도였으나 바람도 없고 눈도 내리지 않았다. 부리는 사냥터가 별로 멀지 않다고 했으나 광활한 얼음 나라에서 사는 에스키모의 거리는 몇백 리다. 썰매가 사냥터 부근에 닿았을 때 미셀이 지휘하는 한 무리의 사냥대가 앞질러 갔다.

툰드라다. 캐리부의 서식지는 얼음과 눈에 덮힌 광활한 한냉지다. 완만한 경사의 구릉에서 썰매가 멈췄다.

저기를 봐!’

망원경을 조작했으나 밀튼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있어 봐.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 거야.’

먼 지평선에 안개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 우윳빛 안갯발 속에 뭔가 움직였다. 캐리부다. 수백 마리의 케리부가 모여있었다. 6월이 되면 툰드라에도 풀이 돋는다. 꽃이 핀다. 캐리부는 풀과 꽃을 뜯으려고 모여든다.

모두 엎드려. 개가 짖지 못하게 입마개를 씌워!’

미셀이 지시했고 사냥꾼들이 네 그룹으로 나뉘어 캐리부를 포위했다. 이글루를 지어 미셀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부리와 밀튼은 다른 마을 사람들과 한 이글루에서 지내기로 했는데 그들 중에 영어를 꽤 잘하는 영감이 있었다. 영감은 술이 과했으나 밀튼과 친해졌다.

세 사람의 이탈리아인이라고?’

술에 취한 영감이 주위의 눈치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쁜 백인들이었어. 장사를 한다고 세 대의 썰매를 타고 에스키모 마을을 돌아다녔는데 장사가 아니라 사기를 쳤어.’

이탈리아인들은 영어를 할줄 아는 에스키모를 고용하여 마을을 돌아다니며 흰곰, 캐리부와 바다표범껍질은 헐값으로 사들이고 술, 담배와 마약을 비싼 값으로 팔았다. 아주 질이 나쁜 화학주(化學酒)를 팔았다. 조금만 마셔도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에스키모들은 거래를 끊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지요?’

그건 모르겠어. 어느 마을로 간다고 썰매를 몰았으나 폭풍과 폭설이 내렸어. 9월 말이었으니까 벌써 겨울이었는데 .’

이탈리아인들은 그 후 소식이 끊겼다. 수색을 했으나 찾지 못했다.

누가 수색을 했습니까?’

미셀이야. 미셀과 그 무리들이 이틀 동안 수색을 했으나 찾아내지 못했어.’

미셀이라? 미셀이 관련이 있군. 밀튼의 의혹은 구체적이 되었다. 의심은 갔으나 증거가 없다. 밀튼은 미셀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캐리부 사냥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날도 미셀이 지휘를 했는데, 그해에는 봄이 빨리 와서 사냥터 툰드라의 눈이 여기저기 녹아 흙이 드러나서 개들이 썰매를 끌지 못했다. 미셀은 캐리부를 눈이 두껍게 쌓여있는 구릉 아래로 몰았다. 100마리의 캐리부가 도망을 가고 있었는데 캐리부 앞에 썰매가 버티고 섰다. 미셀이 캐리부의 도주로를 막았다. 질주를 하는 캐리부의 무리 앞에 썰매를 가로막는 것은 위험하다. 질주를 하는 캐리부는 앞에 흰곰이 있어도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방향을 바꾸는 건 흰곰이다. 흰곰도 밟혀 죽는다. 그때도 캐리부는 썰매를 보고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썰매가 위험하다. 그 순간 썰매에서 미셀이 뛰어나왔다. 돌진하는 캐리부에게 발사했다. 캐리부는 동료가 쓰러져도 질주를 멈추지 않고 동료를 짓밟고 넘어간다. 미셀이 발포하자 맨 앞의 수컷이 나가떨어졌다. 두목이다. 두목은 다른 캐리부를 지휘하였으며 두목이 쓰러지면 지휘계통이 허물어져 캐리부는 방향을 잃는다. 그때 두목을 보좌하는 수컷들이 또 쓰러졌다. 두목과 보좌하던 수컷 세 마리가 연달이 미셀의 총탄에 쓰러지자 캐리부 무리의 앞이 트였다. 캐리부가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졌다. 캐리부는 혼란에 빠져 제멋대로 도망쳤다. 미셀이 캐리부의 혼란을 조장하고 공포를 쏘았으므로 흩어진 캐리부들이 부리마을 사냥대가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계곡에 몰린 캐리부가 구릉 위로 올라왔다. 그들을 막지 않으면 캐리부 사냥은 실패한다. 밀튼이 발사했다. 윈체스터 반자동총이 위력을 발휘했다. 유효사거리가 500m나 되고 조준도 정확했다. 캐리부 무리를 앞에서 인도하던 수컷 세 마리가 쓰러지자 방향을 바꿔 계곡으로 도망쳤다. 캐리부가 계곡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에스키모 사냥대가 도착했다.

쏘아! 쏘아!’

미셀이 고함을 쳤다. 그 지시에 사냥대가 마구 총을 난사했다. 난사는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준족(俊足)을 자랑하는 캐리부는 계곡에 갇혀 집중사격을 받고 몰살했다. 100마리가 넘는 캐리부가 몰살당했다. 몇 마리 남은 캐리부들이 있었으나 미셀이 사냥을 중지시켰다. 에스키모는 필요한 만큼 이상의 사냥은 하지 않는다. 그날의 사냥으로 에스키모는 겨울을 지낼 식량을 충분히 확보했다. 마을마다 30마리 이상의 캐리부가 배당된다. 마을의 겨울 식량으로 충분하다. 껍질도 최상의 옷감인데 이 정도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사냥이 끝나자 구릉에서 잔치판이 벌어졌다. 모닥불이 타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에스키모 여인들이 우르르! 춤판에 나타났다. 기회가 없어 몸이 근질근질했던 여인들은 몸부터 움직였다. 부리마을 여인들이 앞장서고 축음기 여인을 비롯하여 열대여섯 명의 여인들이 썰매를 타고 왔고 다른 마을 여인들 30여 명이 뒤따라왔다. 하오 12시 경이었으나 태양이 찬란하고 들판에는 꽃들이 만발했다. 북극에서 가장 좋은 시기다. 북극의 봄과 여름은 두 달 정도고 나머지 열 달은 암흑과 혹한의 겨울이 지배했다. 에스키모는 그 짧은 기간을 온몸으로 즐겼다. 눈 덮인 설원에서 몇백 리씩 떨어져 사는 에스키모들이 100명 가까이 모여 춤판을 벌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미셀이 온다!’

여인들이 환성을 질렀다. 미셀과 일당이 춤판에 나타났다. 평소에는 잘 나오지 않은 미셀 일당의 여인 다섯 명도 춤판에 참가했는데 피부가 흰 여인이 있었다. 혼혈인데 아주 예뻤다.

미셀의 마누라야.’

부리가 웃었다. 남의 마누라를 예쁘다고 칭찬할 때의 에스키모는 묘한 웃음을 띠는 법이다. 다른 사람의 마누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잠자리를 한 여인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부리도 그 여인과 두서너 번 잠자리를 했는데 정말 남자를 죽여주는 여자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미셀의 마누라가 밀튼을 보고 다가왔다. 가볍게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춤을 추자는 거야.’

미셀이 화를 내지 않을까?’

괜찮아, 에스키모는 질투를 하지 않아. 질투를 하면 못난이 취급을 받아.’

미셀은 밀튼에게 다가서는 마누라를 말리지 않았고 춤을 추자고 덤벼드는 여자들을 피해 밀튼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당신, 캐나다의 대학원생이라면서 .’

뜻밖에 여인이 영어로 물었다. 알아들을 만했다. 밀튼은 그 여인과 춤을 추었다. 몸에서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목욕을 하지 않은 에스키모에게서는 고약한 노린내가 나는데 여인에게서는 우유 냄새가 났다. 여인이 한참 동안 춤을 추고는 다른 여인에게 밀튼을 넘겨주며 속삭였다.

내일 부리마을에 있어, 내가 몰래 갈 테니 .’

축연(祝宴)에서는 미셀과 그 마누라가 스타였다. 에스키모에게 추장, 촌장 또는 두령 등의 말은 의미가 없다. 그런 명칭의 사람들이 없는 마을도 있고 별로 권한도 없다. 에스키모는 다른 사람의 명령이나 지시를 받는 걸 싫어했다. 에스키모 사회는 어느 의미에서는 민주주의 사회다. 그러나 미셀은 예외다. 그는 추장이나 촌장이 아니었으나 필요할 경우에는 지시를 했고 사람들이 그의 지시에 따랐다. 멜빌 반도 에스키모의 지도자다. 존경을 받았다. 미셀의 마누라도 미모고 똑똑했다. 부리마을의 축음기 여인이 잘난 체했으나 미셀의 마누라에게 눌려 기를 펴지 못했다. 축제는 다음 날 하오에 끝났다. 이틀 동안이나 계속되었기 때문에 정열적인 에스키모도 지쳤다. 잡은 캐리부를 끌고 자기 마을로 돌아갔다. 밀튼도 천막으로 돌아와 푹 잤다. 하루 종일 잤는데 인기척에 잠을 깼다. 소리 없이 들어온 여인이 밀튼 곁에 누웠다. 밀튼은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았다. 몸에서 우유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여인은 엷은 웃음을 지으며 캐리부 껍질로 만든 옷을 벗었다. 몇 군데 줄 매듭을 풀면 하얀 알몸이 드러났다. 관능적이다. 남자 죽여주는 여자다.

여기서 오늘 밤 자고 갈 거예요. 남편에게도 말했어요.’

남편은 볼비치에 갔기 때문에 2~3일 동안에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여인은 알몸으로 밀튼의 허리를 감고 잤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

여인이 먼저 질문을 했다.

당신이 이 마을의 푸리트 영감을 캐나다의 병원에 입원시켰다는데 맞습니까?’

푸리트 영감은 결핵에 걸렸다. 마을에는 네 사람의 결핵환자가 있었는데 푸리트 영감이 가장 위독했다. 결핵은 에스키모 사회의 문제다. 영하 40도가 넘는 추위를 막기 위해 환기창이 없는 밀폐된 이글루에서 담배 연기와 난방 난로의 매연이 가득 찬 공기 속에서 살았다. 결핵의 온상이다. 밀튼이 상황을 파악하고 먼저 가장 중증인 푸리트 영감을 캐나다에 있는 공립병원으로 보냈다. 원장이 밀튼의 삼촌이다.

당신에게 부탁하면 또 다른 환자를 병원에 보낼 수 있을까요?’

그제서야 여인이 접근한 이유를 알았다.

당신의 부탁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어디 사는 누구지요?’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천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결핵은 고칠 수 있는 병입니까?’

잘 치료하면 초기 환자는 고칠 수 있습니다.’

여인은 한참 후에 자기 남편이 결핵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겉보기에는 건강했으나 마른기침을 하고 잘 먹지 않아 몸이 마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미셀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활발하게 뛰어다니면서 사냥을 했으나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말이 없었다. 여인은 다소 안심한 듯 밀튼의 품을 파고들었다. 한참 후에 밀튼이 이탈리아인들의 얘기를 꺼냈다.

세 사람의 이탈리아인 말입니까?’

여인의 표정에 증오와 경멸의 빛이 나타났다.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은 나쁜 놈들입니다.’

이탈리아 장사꾼은 마을에 도착하자 먼저 아픈 사람에게 약을 주었다. 말기 암 환자를 고친다면서 하얀 가루약을 무료로 줬다. 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환자가 조용히 잠들었다. 모르핀이다. 모르핀의 효력은 컸다. 일시적인 진정 효과였으나 환자들은 고통을 견디기 위해 걔속 약을 복용했는데 그때부터는 약값을 받았고 약값을 점점 비싸게 올렸다. 이탈리아인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술을 팔았다. 비싼 값으로 나쁜 화학주를 마셨다. 에스키모는 저축을 몰랐다. 그래서 흰곰, 캐리부와 여우 껍질을 터무니없는 헐값으로 이탈리아인들에게 넘겼다. 미셀이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탈리아인들과 거래를 하지 말라고 막았다. 이탈리아인들은 나쁜 성병도 퍼뜨렸다. 미셀이 성병에 걸린 사람을 격리시키고 이탈리아인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라고 지시했다. 미셀의 지시에 따라 마을에서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식량을 팔지 않았다. 썰매 개들에게 주는 넙치도 감추어버렸다. 이탈리아인과 그들의 썰매 개가 굶주렸다. 그렇게 되자 이탈리아인들이 총으로 식량을 약탈했다. 미셀이 이탈리아인들이 있는 마을을 고립시켰다. 인근 마을도 멀리 소개(疏開)시켜버리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이탈리아인들은 마을에서 물러나기로 했으나 때가 늦었다.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오고 있었다. 낮아 짧아지고 어둠의 시간이 길어졌다. 영하 20도로 내려가고 바람이 거세졌으며 눈이 내렸다. 이탈리아인들은 에스키모 마을에서 탈출하려고 썰매를 몰았으나 사흘이 되어도 홀비치항에 도착하지 않았다.

미셀의 마누라 제핀시도 그 이후 이탈리아인들의 행방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뭔가 더 알고 있는 것 같았으나 더 이상은 입을 다물었다. 제핀시는 밀튼의 천막에서 하룻밤을 더 지냈다. 그녀는 끈질긴 정열을 갖고 있었으며 밤새 밀튼의 몸을 놓아주지 않았다. 하얀 피부와 우유 냄새가 나는 그녀의 몸은 빨리 뜨거워지고 오래도록 식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미셀의 얘기를 했다. 미셀은 에스키모를 사랑하고 멜빌 반도에서 으뜸가는 사냥꾼이며 가장 용감하다고 했다. 미셀이 병에 걸린 것은 과로 때문이라고 했다. 미셀은 몸이 나빠지고 있다는 마누라의 충고를 무시했다. 제핀시가 미셀을 캐나다의 병원이 입원시켜 병을 고쳐달라고 호소했다. 제핀시는 남편이 아닌 외간 남자와 자면서 남편을 살려달라고 호소했으니 에스키모 사회에서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에스키모 사회에서는 정조관념은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밀튼이 미셀을 병원에 입원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밀튼은 이튿날 완사타 마을에 갔다. 멜빌 반도의 남쪽에 있는 작은 해안마을인데 이탈리아인들이 그 마을에서 행방불명되었다. 마을의 장로와 술을 마셨다. 꽤나 술을 좋아했으며 술이 들어가자 쉽게 입이 열렸다.

그날 밤 총소리가 들린 건 사실이야. 미셀과 그 일당이 마을 앞에 나가 이탈리아인들의 썰매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어.’

이탈리아인들에게 붙어있던 에스키모는 다 달아나버렸다. 썰매도 한 대뿐이다. 개 여덟 마리가 끄는 한 대의 썰매에 네 사람이 탄다는 것은 무리다. 날이 어두워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각에 미셀 일당과 이탈리아인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총격전은 약 10분간 계속되다가 조용해졌다. 미셀과 그 일당이 마을에 들어왔다. 부상 당한 사람이 있었다.

놈들은 모두 도망갔어. 마을에 오지 않겠지만 오더라도 마을에 들여보내면 안 돼. 악마 같은 놈들이니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아탈리아인들은 마을에 나타나지 않고 행방불명되었다. 사흘 후 홀비치의 행정관이 행방을 조사했으나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상황으로 봐서 무리하게 썰매를 몰다가 갈라진 얼음판의 균열에 빠져 죽었으리라 추정했다. 그 시기에 썰매 열 대도 들어는 균열들이 도처에 생겼고 바다에 빠지면 순식간에 얼어 죽는다. 밀튼은 미셀과 이탈리아인들이 총격전을 벌였다는 곳에 갔다.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지났으므로 증거가 남아있을 리 없었으나 천막을 치고 조사본부를 설치했다. 증거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은 동토(凍土). 눈과 얼음에 덮여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판에 냉동된 증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얼음을 파헤쳐보면 증거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밀튼이 캐나다의 행정청에 연락하여 얼음을 파헤치는 기계를 요구했다. 밀튼이 천막에 있는데 술로 친해졌던 영감이 왔다.

돌아가시오. 미셀이 마을에 왔습니다. 총을 갖고 있어요. 미셀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밀튼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날 정오께 미셀이 찾아왔다. 혼자였으며 무장을 하지 않았다. 조용했으나 살기가 느껴졌다.

당신이 나의 뒷조사를 한다고?’

그렇소.’

뭘 의심하는 거요?’

세 사람의 이탈리아인 살해혐의요. 증거는 없지만 곧 찾아낼 거요. 캐나다에서 착암기(鑿巖機)가 도착하면 저 얼음판에서 증거들이 나올 거요.’

미셀이 냉소했다.

그 이탈리아인들은 내가 죽인 것이 아니고 하늘이 죽인 거요. 에스키모에게 몹쓸 짓을 해서 벌을 받은 거요. 백인 놈들은 다 그래. 당신도 같아.’

미셀은 이탈리아인들이 저지른 비행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그들이 한 짓을 에스키모는 잘 알아. 성병이 옮은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은 마을에 격리되어있는데 곧 죽일 거요. 그들이 걸린 성병은 고칠 수가 없어. 그대로 두면 마을 전체가 환자가 돼. 그래서 의논한 결과 죽이기로 했어.’

미셀이 병에 걸린 사람들을 처형하기 전에 멜빌 반도에서 떠나라고 했다. 밀튼까지 죽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밀튼도 백인이며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죽이기로 했다고 경고했다. 밀튼은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곧 캐나다에서 경찰이 착암기를 가지고 올 것이니 떠날 수 없다고 했다. 미셀이 웃었다. 살기가 있는 웃음이었다. 미셀은 하루만 여유를 주겠다면서 천막을 나갔다. 밀튼은 미셀이 간 뒤 얼음 벽돌을 만들어 천막 주위에 바리케이트를 쌓았다. 다음날 새벽에 제핀시가 찾아왔다. 여인이 진지하게 호소했다. 자기 남편에게도 호소했다고 했다.

밀튼, 나는 당신이 내 호소를 들어주지 전에는 여기서 나가지 않아. 내일 남편이 쳐들어오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겠어. 당신이 내 남편을 죽이면 나도 죽을 거야.’

제핀시의 묘한 논리였으나 옷을 벗고 밀튼의 잠자리에 들어왔다. 남편과 싸워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 여인은 알몸으로 밀튼의 목을 감았다. 밀튼은 여인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한 시간쯤, 밀튼이 기진맥진하여 겨우 여인의 포옹에서 몸을 빼냈을 때 밖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밀튼, 남편과 일당들이 왔어!’

또 총소리가 났으나 총탄은 날아오지 않았다. 겁을 주기 위한 공포탄이었으나 어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른다.

도망가요! 당신을 죽일 거야. 썰매를 준비해줄 테니 빨리 도망쳐요.’

제핀시가 밖으로 나가더니 이내 돌아왔다. 썰매 개 두 마리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제핀시가 분격했다. 고함을 쳤다.

, 개를 죽였어!’

개만 죽일 줄 아냐? 백인도 죽일 거다!’

좋아, 백인을 죽여. 나도 죽여. 그 사람 옆에 붙어있을 테니까 함께 죽여!’

제핀시는 밀튼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총탄이 천막 주변을 날아다니는데도 밀튼 곁을 지켰다.

정말 나하고 같이 죽을 셈이요?’

그럼요. 난 당신 없인 살지 못해!’

여인의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정말 함께 죽을 생각이다. 제핀시가 밀튼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밀튼이 총을 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밀튼의 총은 미셀 일당의 총과 다르다. 사정거리가 500m나 된다. 정확도가 확실한 미국제 최신형 라이플이다. 그때 마을 촌장이 술꾼 영감과 함께 천막으로 들어왔다. 홀비치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고 했다.

캐나다에서 경찰관 두 사람이 홀비치에 도착했어. 곧 마을에 올 거요.’

캐나다 경찰이 멜빌 반도에 올 이유가 없다. 에스키모 사회에는 범죄가 없다. 지난해 경찰이 온 것은 자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다. 에스키모 사냥꾼이 자살을 했다.

바다표범 사냥을 하다가 오발로 동료가 죽었다. 두 사람은 마누라를 공유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친구를 잃은 사냥꾼이 자책과 슬픔에 못이겨 자살했다. 자살 사건을 조사한 경찰이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캐나다 경찰이 온다는 말에 미셀 일당이 총질을 중단했다. 썰매를 타고 마을을 떠났다. 촌장은 그들이 캐리부 사냥을 할 것이라고 했으나 제핀시는 고개를 저었다. 캐리부는 이미 충분히 잡았으므로 더 잡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제핀시는 말이 없었다. 아주 어두운 표정이다.

나는 그가 이탈리아인을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는 확실하게는 몰라요. 그러나 이탈리아인들이 실종된 뒤부터 미셀이 달라졌어요. 우울한 표정이고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폐결핵에 걸린 것도 그 때문이지요. 술을 많이 마셨고 담배도 자주 피웠습니다. 마치 뭔가를 잊어버리려고 하듯 술을 마셨고 주정을 부렸어요.’

제핀시는 썰매를 타고 떠나기 전 말했다.

미셀이 자살할지도 몰라요. 내가 찾아 말려야 해요.’

미셀이 어디로 간지도 모르고 빙판을 돌아다닌다는 건 위험하다. 설원에는 크레바스가 많고 흰곰이 돌아다닌다는 정보도 있었다. 제핀시가 떠난 한 시간쯤 뒤에 밀튼은 술꾼 영감을 데리고 마을을 떠났다. 썰매에 개를 여섯 마리 보충하고 제핀시의 썰매 자국을 따라갔다. 왜 제핀시를 찾아가는지 마음을 몰랐으나 그냥 놔둘 수는 없다. 제핀시가 위험하다. 썰매를 달리면서 밀튼은 뭔가 가슴에서 느끼는 게 있었다. 사랑일까? 열서너 번 잠자리를 했을 뿐인데. 밀튼은 그런 감정을 애써 부인하려고 했다. 유부녀고 바람둥이 에스키모 여인을 사랑할 수는 없다. 머리에서는 그런 판단을 했으나 가슴은 그렇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8월이었으므로 북극에는 벌써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없었던 밤과 어둠이 나타나고 있었다. 오전 4시부터 7시까지 하루에 3시간 동안 날이 어두웠다. 날이 어두워지자 썰매를 몰던 술꾼 영감이 속도를 늦추었다. 영감은 썰매의 앞머리에 석유 칸데라를 달고 천천히 몰았으나 눈길이 순탄치 않았다. 바위나 균열이 앞길을 막았다. 영감이 썰매를 세웠다. 썰매는 제핀시의 썰매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눈 위에 커다란 발자국들이 찍혔는데 흰곰이었고 새끼를 데리고 있었다. 개들이 곰의 냄새를 맡고 날뛰었다. 밀튼이 개들을 풀어주지 말라고 했다. 곰과 싸울 때가 아니다. 날이 새자 곰들이 도망쳤다. 술꾼 영감이 머리를 저었다.

제핀시의 썰매가 바다로 가고 있어. 미셀의 썰매를 따라가고 있는데 나는 그들이 바다로 가는 이유를 모르겠어.’

그때는 바다코끼리나 바다표범을 사냥하는 시기가 아니다. 추워서 얼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밀튼의 썰매가 계속 달렸다. 오후 다섯 시쯤 되었을 때 빙원(氷原)에 이글루가 보였다. 밀튼의 망원경에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제핀시도 있었다. 제핀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그녀는 바깥에서 썰매를 손질하고 있었는데 썰매에 포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한데 .’

술꾼 영감이 중얼거렸다. 포장 썰매는 날씨가 아주 추울 때 사용했으며 8월 초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픈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

밀튼의 추측이 옳았다. 환자가 있었다. 미셀이다. 미셀은 고열로 정신을 잃었다. 폐렴이다. 에스키모는 폐렴을 몰랐으나 백인들이 감염시켰다. 저항력이 약해서 걸리면 죽었다. 제핀시는 미셀을 병원으로 이송하려고 포장 썰매를 만들었다.

포장 썰매는 만들어졌으나 미셀이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병원이 있는 홀비치까지 가려면 썰매를 전속력으로 달려도 꼬박 사흘이 걸리는데 그동안 미셀의 목숨이 붙어있을지 의문이다. 밀튼이 환자에게 아스피린을 먹였는데 그 약은 해열에 효과가 있을 뿐 폐렴에 직접 효과는 없다. 포장 썰매가 출발했다. 부하가 몰고 제핀시가 동승하여 간호했다.

그를 살려야 해! 그를 죽이면 안 돼!’

제핀시가 에스키모에게 호소했다. 석 대의 썰매가 포장 썰매를 따랐다. 썰매는 해안의 얼음을 타고 북쪽으로 직행했다. 멜빌 반도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가야 한다. 날이 어두워져서도 칸데라를 밝히고 돌진했다. 해안선의 빙원에는 크고 작은 크레바스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는데 썰매 개들이 본능적으로 균열을 피했다. 썰매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으므로 한 발 잘못 디디면 바다에 빠진다. 빠지면 사람이나 개들은 순식간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는다. 제핀시는 그런 위험을 알고도 썰매를 전속력으로 몰았는데 상황은 절망적이다. 앞에서 불빛이 다가왔다. 인근에 사는 에스키모들이 마중을 나왔다. 기진맥진하던 개들이 교체됐다. 미셀은 인사불성이었으나 숨은 붙어있었다. 이튿날에도 에스키모가 마중 나와 개를 교체했다. 에스키모들은 미셀을 살리기 위해 릴레이식으로 마중을 나왔다. 다음날에는 폭설과 폭풍이 몰아쳤으나 멜빌 반도의 해안에서는 모든 에스키모들이 연동하여 미셀 구조작업을 벌였다.

미셀, 미셀을 살려야해!’

밀튼은 눈물을 흘렸다.

포장 썰매는 꼭 사흘 만에 멜빌 반도의 북쪽 끝 홀비치항에 닿았다. 얼마나 빨리 달렸든지 썰매 개 두 마리가 죽었다. 홀비치에는 멜빌 반도에 단 하나 있는 병원이 있었다. 캐나다 정부에서 파견한 의사 한 명과 간호사 두 명이 있었는데 의사가 미셀은 폐렴으로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폐결핵은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밀튼이 행정청으로 갔다. 행정청에는 캐나다 정부에서 파견한 경찰관이 밀튼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음을 깨는 착암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얼음이 얼마나 두꺼운지는 모르나 1m 정도는 뚫습니다.’

미셀이 이탈리아인을 죽였다면 1m만 뚫으면 증거품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밀튼은 착암기를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조사 결과 이탈리아인들은 얼음판의 크레바스(균열)에 빠져 죽었다고 판명되었다고 결론내렸다. 홀비치에는 많은 에스키모가 모여들었다. 이제 여름이 가고 곧 겨울이 올 것이므로 겨울 준비를 해야 한다. 에스키모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짐승껍질을 팔아 생필품을 구입했다. 밀튼은 그 에스키모들을 대부분 알았다. 며칠 안 되었지만 친구가 된 사람도 있고 잠자리를 한 여인들도 있다. 밀튼이 홀비치 생필품 판매장의 식당에 에스키모를 초청하여 이별 파티를 열었다. 갖고 있는 돈을 몽땅 털어 호화로운 파티를 열었고 밤새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에스키모와 노는 일은 즐겁다. 에스키모는 낙천가고 그들과 어울리면 다 낙천가가 되었다. 밀튼이 나흘 후 병원에 갔다. 미셀이 일어나 침대에 앉아있었고 옆에 제핀시가 붙어있었다. 몇 날 며칠 간호를 하느라고 초췌했으나 엷게 웃었다.

미셀은 곧 캐나다의 큰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내가 입원 수속을 했으니 걱정 말고 보내시오. 그리고 성병에 걸린 남녀 다섯 명도 그 병원에서 치료받도록 조치했으니 그들도 보내시오.’

미셀도 제핀시도 고맙다는 인사는 하지 않았으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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