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世紀)의 사냥꾼 4 - 1
78. 지리산
79. 선불 맞은 산돼지
80. 사냥의 재미
81. 젊은 곰의 순대
82. 웅담과 녹용
83. 암살자 표범
84. 맹수 사냥개들
85. 사냥꾼의 참극
86. 범 새끼 소동
87. 산양 이야기/
88. 만주 개와 곰
89. 지리산의 대호
90. 나무의 바다(슈하이, 樹海)
91. 동물들의 싸움
92. 포수 세르게이
93. 곰과 개의 사투
94. 추적
95. 대호 사냥
96. 도깨비 사냥
97. 산막(山幕)의 손님
98. 산새~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새 사로잡이
99. 윤원술 포수
100. 아이누개
101. 살인자
102. 신들린 멧돼지
103. 뱀 할아버지
104. 첫 사냥
78. 지리산
1932년 늦가을, 멀리 경상남도에서 편지가 왔다. 내용은 전보처럼 간단했다.
<범 새끼들이 있소. 황첨지.>
달필인데 대서(代書)였다. 그 간 돈푼깨나 있는 양반을 안내하여 서울 근교에서 하찮은 노루, 꿩사냥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그 편지는 시원한 청량제 같았다. 지리산은 전라도와 경상도에 걸쳐있으며 태고의 원시림이었다. 황첨지는 자칭 지리산 산지기다. 양반의 후손이요 선비라고 하지만 일자무식이다. 그러나 황첨지는 10여 년 동안 지리산의 첩첩산중에서 뭇짐승들과 살고있는 도인(道人)이다. 원래는 약초꾼이었으나 지리산에 홀려 영주했다. 나는 몇 년에 한 번씩 황첨지를 찾았다. 경남 거창에서 새벽밥을 먹고 떠나면 해거름에야 겨우 황첨지네 산막에 도착했다. 황첨지의 산막을 찾아가는 사람은 단골 짐승 털 매매상이 1년에 한두 번 쌀, 소금, 석유 그리고 성냥 등과 짐승 털을 교환하러 찾아가는 것 외에는 나뿐이다. 작년에 표범 새끼를 생포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창경원에서 표범 새끼 한 마리에 100원을 내겠다고 제의가 들어왔다. 한국산 표범을 원하는 일본의 동물원이 많아 다른 짐승과 교환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표범을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을까? 황첨지 외에는 엄두를 못 낸다. 나는 몇 번이나 소문을 듣고 전라도, 경상도와 평안도의 산골을 찾아갔으나 살쾡이, 오소리나 늑대였다. 그래서 일부러 알루미늄냄비와 재크나이프를 사 들고 황첨지를 찾아갔었던 것이다.
황첨지의 편지를 받고 즉시 지리산으로 떠났다. 여비와 비용은 창경원에서 대주었고, 지닌 물건은 12번 쌍발산탄총과 거창에서 구입한 망태와 쌀 반 말 그리고 소주와 석유 한 되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 급하게 서두른 나머지 큰일 날 오산을 했다. 11월 초를 늦가을이라고 생각하고 늘 걸치고 다녔던, 큼직한 포켓이 달린 헐렁헐렁한 골든지 윗저고리를 걸치고 나섰던 것이다. 전날의 날씨도 찌부덩했지만 그날은 좀 으스스했고 음산했다. 지리산에 깊이 들어선 후에야 비로소 아차! 하고 실수를 자인했다. 산중의 공기는 냉랭했으며 그 건 겨울 추위였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모닥불을 피워 점심을 먹으며 몸을 녹였다.
(에라 모르겠다, 갈 데로 가보는 거지.)
그건 만용이었다. 그 산허리를 넘어서면 골짜기가 나오고 그 골짜기를 따라 서쪽으로 길이 있었다. 사람이 만든 길이 아니라 뭇짐승들이 밟아 만든 길이다. 골짜기는 울창한 산림이었다. 아름드리 고목들이 하늘을 가려 대낮에도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더구나 하늘이 흐렸으므로 산속은 어두웠다. 낙엽들이 한 자나 쌓이고 서리가 허옇게 내렸다. 나무뿌리나 넝쿨에 감겨 몇 번이나 넘어졌다. 이름 모를 새들이 갑자기 나타나 놀랬다. 날씨는 점점 더 음산해졌고 추위가 한결 더 해 몸이 으스스 한기가 들었다.
(비가 올려나?)
비가 아니었다. 눈이었다. 솜을 찢어 던지는 듯한 설편(雪片)이 나르기 시작했다. <비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생각은 잠시뿐. 솜눈은 잠시 후에는 시야를 가려버렸다. 퍼붓는 눈 때문에 3~4m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두 손을 휘휘 저으며 눈벽을 뚫고 밀고 나가야 했다. 지리산의 한 중앙이었다. 암만해도 되어가는 꼴이 심상찮았다. 허나 나는 사냥꾼이다. 사냥꾼은 원래 총을 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산을 타는 사람이다. 무쇠 다리와 강인한 의지가 사냥꾼의 밑천이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시계와 지남철을 봤다. 오후 2시, 방향은 정서쪽~전라도 접경지대를 향해 정확히 걸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곧장 가면 산이 하나 나오고 그 산 너머에는 …. 나는 황첨지와 그 부근에 곰을 잡으러 온 일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눈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어도 지형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진로를 북서쪽으로 바꾸어 높은 지대로 올라갔다. 밀림 속에는 난기류가 흘러 설편이 난무를 하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지만 높은 곳은 기류가 일정하기 때문에 시야가 터진다. 나의 예상대로 높은 곳에 올라가니 시야가 터졌을 뿐만 아니라 큰 바위 밑에서 눈을 잠시 피할 수도 있었다. 바위 밑에서 눈을 피하며 담배를 물고 있으니 한시름 놓인다.
(뭘 이까짓 걸 가지고 ….)
산마루를 탔다. 산골짜기에서 몰려오는 바람이 제법 윙윙거렸으나 시야는 막히지 않았다.
(저 산봉우리를 넘으면 골짜기가 나오고, 그다음에는 잣나무숲이 있고 ….)
그러나 산을 넘기 전에 해가 떨어졌다. 눈은 좀 뜸해졌으나 바람은 송곳날처럼 예리하다. 물을 먹어 무거워진 옷과 어깨를 파고드는 망태, 왼손에 든 총마저 부담스러웠다. 기진맥진했다. 오한이 들어 열이 났다. 그래도 나는 걸었다. 대충 방향을 잡고 마구 걸었다. 돌에 채여 비틀거리고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지만 오뚜기처럼 일어나 걸었다. 오후 8시께, 이젠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황첨지의 산막 가까이 온 것 같은데 ….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허공을 향해 발사했다. 어둠 속에서 새파란 불꽃이 번쩍이고 요란한 굉음이 산중에 메아리쳤다. 그 메아리가 사라질 무렵 나는 또 한 방을 쏘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젠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천명을 기다릴 수밖에, 의식도 가물가물해졌다. 천명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총소리가 사라진 5~6분 후 희미해져 가는 내 의식 한구석에 엷은 분홍빛이 반짝였다. 머리를 흔들고 다시 보았는데 어둠 저편에 붉은빛이 보였다. 아직도 내리는 눈 때문에 가물가물했으나 점점 크고 똑똑하게 보였다. 황첨지다. 역시, 산에 사는 황첨지는 내가 쏜 총소리의 뜻을 알아차려 불을 피워 나에게 방향을 알려준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 불빛 쪽으로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발에 감기는 나무뿌리나 돌도 상관없이 마구 산막 쪽으로 불빛 쪽으로 걸었다.
‘누구고? 누가 총 쏘았노!’
황첨지의 고함이 들렸고 개 짖는 소리도 들렸다. 황첨지의 산막 온돌방은 마치 한증막 같았다. 나는 방에 들어서자 황첨지에게 씩! 웃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이튿날 황첨지가 말했다. 쯧쯧! 담뱃대를 재떨이에 털며 혀를 찼다.
‘홍포수니까 살아남았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 아! 지리산이 어떤 산이라고 그 날씨에 걸어들어와. 자, 이거 마셔요.’
황첨지가 돌아보지도 않고 죽그릇을 내밀었다. 잣죽이었다. 잣을 껍질째 찧어서 한나절 삶은 다음 걸러낸 죽이다. 고소한 그 죽에 황첨지의 인정과 지리산의 맛이 스며있었다. 한기와 피로는 뜨거운 온돌방의 열기로 사라졌고 아무 상쾌한 기분이었다.
‘그 빌어먹을 놈의 눈이 …. 아직 내리고 있소?’
황첨지가 잠자코 작은 방문을 열었다. 거기에 한 폭의 그림이 펼쳐졌다. 지리산의 설경.
‘문 닫아! 이젠 겨울이야.’
나는 오래도록 문을 닫지 않았다.
황첨지는 내 그림 감상이야 아랑곳없이 두터운 내의 위에 주섬주섬 바지저고리를 입고 새끼줄로 바짓가랑이를 묶었다. 벽에 거렸던 대나무창과 망태를 들고 일어섰다.
‘잡혔을까?’
‘밤새 눈이 왔으니 몇 마리는 걸렸을 거요.’
황첨지는 짐승들이 돌아다니는 길에 함정을 파고, 덫과 틀을 놓았다. 매일 한 번씩 이들을 둘러보는 게 일과였다. 황첨지와 내가 방을 나서자 곳간 옆에서 누렁이가 따라나섰다. 풍산개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세퍼드와 토사견의 트기 같은 늙은 개다.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올가미 덫에 노루가 걸렸다. 함정에는 토끼 두 마리가 빠졌다. 돌아오는데 빈터에 꿩 20여 마리가 놀고 있었다. 마치 페르시아 주단을 깔아놓은 듯 현란한 아름다움이었다. 나도 모르게 총을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황첨지는 자기 집 주변에서 총질을 하는 걸 싫어했다. 총소리에 짐승들이 멀리 도망쳐버린다고 금기시했다. 그래서 누렁이도 짖지 않고 하품만 했다.
‘소주를 가져왔지요? 토끼 다리를 찢어 구울까, 노루 뼈를 두들겨 지질까?’
어느 것인들 나쁘랴. 소금과 산초가루를 뿌려 노르스름하게 구운 토끼도 맛있고, 황첨지 밭에서 캔 탱자만 한 감자를 넣고 뼈따구째 두들긴 노루고기 볶은 것도 별미였다. 아쉬운 것은 양념기가 모자라 김치가 좀 감칠맛을 내지 못하는 것이지만 하는 수 없었다. 산막의 점심은, 토끼 구이, 도토리묵, 말린 버섯과 고사리무침 그리고 밤과 잣이었다. 토끼 다리를 뜯으며 황첨지의 눈치를 살폈으나 영감이 끝내 시치미를 떼고 정말 해야 할 얘기는 침묵하고 있었다. 흥정에는 급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만 할 수 없이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범 새끼는 아직 있소?’
‘범 새끼? 암, 있지.’
‘어딨소?’
‘사타구니산 바른쪽이지.’
‘잡을 수 있겠소?’
‘잡다니, 이미 잡아서 내가 가둬둔 것인데 ….’
황첨지는 대체로 마음이 넓고 대범했으나 거래를 할 때는 사람이 달라진다. 장사꾼보다 타산이 빠르다. 제안을 했다. 털모자, 털내의, 솜옷 각 한 벌씩, 메주와 누룩 각 열 덩이, 쌀과 소금 각 한 가마니, 석유와 참기름 각 한 말, 고추 상치씨가 각 한 봉지씩, 잘 드는 도끼, 톱, 칼 그리고 ….
‘아, 그걸 어떻게 여기까지 운반한단 말요?’
‘염려 마시오. 범 새끼를 잡아놓으면 그 물건을 여기에 운반해놓고 범 새끼를 갖고 갈 테니 ….’
황첨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이요?’
‘내가 언제 허툰 말 했소?’
거래는 간단히 끝났다. 사실은 창경원 당국과 상의하여 범을 잡으면 운반책임은 창경원에서 지기로 했으며 창경원이 인부 네 사람을 파견하기로 이미 계약이 되었다. 따라서 그들이 올 때 물건을 갖다주면 된다. 황첨지가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뒤벼넘기를 했다. 범 새끼 사로잡이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듯했다. 사타구니산 중턱의 동굴에 범 새끼는 있으나 장담한 대로 잡을 수 있을까? 노련한 황첨지도 밤새 잠들지 못했다. 문제는 표범의 어미였다. 표범은 그 잔인한 성품과는 달리 부부의 애정과 새끼에 대한 모정이 다른 어떤 짐승보다 강하다. 표범 새끼에게 어미가 있으면 표범 새끼사냥은 위험하고, 어미 애비가 다 있으면 목숨을 걸어야 할 모험이 된다. 황첨지가 그 애비는 작년에 자기 함정에 빠져 죽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황첨지 자신도 확신하지는 못한다. 황첨지는 15년간 지리산에서 살았으며 웬만한 짐승은 겁내지 않는다. 그런 그가 사타구니산에는 겨우 뒷산을 타고 올라가 감시를 했을 정도고 사타구니산에는 얼씬도 못 했다. 나와 황첨지는 중무장을 했다. 나는 12번 산탄총과 재크나이프를 품고, 황첨지는 대나무창, 도끼 그리고 올가미를 망태에 챙겼다. 우리는 최악의 경우 표범과 육탄전을 벌일 각오였다. 쌀자루를 찢어 덮어쓰고, 따라가겠다고 발악을 하는 누렁이를 묶어놓고 출발했다. 흰 눈에 흰옷으로 위장을 하고 크게 우회하여 사타구니산에 접근했다. 바람과 은폐물을 감안하여 뛰기도 하고 기어가기도 하였다. 사타구니산은 정말 이름을 잘 지었다. 지리산은 토산(土山)이라 나무들이 밀생했는데 어떻게 된 자연의 조화인지 그 산만은 대리석처럼 매끄러운 바위산이었으며 여인이 한쪽 넓적다리를 내던지고 다른 쪽 다리는 무릎을 세워 비스듬히 누워있는 형상이었다. 은밀한 부분은 계곡이었다. 우리는 건너편 산꼭대기에 납작 엎드려 여인의 무릎 부분의 한 지점을 보고 있었다. 구부러진 무릎 밑에 동굴이 있었다. 태양이 올라감에 따라 햇빛이 동굴속을 비추었다. 정오가 되니 빛이 동굴 속에 퍼졌다. 황첨지가 팔굽으로 나를 쳤다. 굴속에 노르스름한 물체가 꾸물거렸다. 성급하게 일어서려는 황첨지를 제지시키고 계속 동굴을 관찰했다. 해가 더 오르자 동굴 입구가 환하게 드러났다. 양지쪽으로 노란 색깔이 기어 나왔다. 밝은 햇빛에 어울리는 화사한 색깔이었다.
‘나왔다, 새끼들이야!’
새끼는 두 마리였고 햇빛 속에서 장난을 했다. 계속 지켜봤으나 어미가 있는 기색은 없었다. 동굴로 기어갔다. 도중에 어미 표범의 발자국을 발견했는데 밖으로 나가는 발자국이었고 들어온 발자국은 없었다.
(기회다!)
빠른 걸음으로 동굴에 접근했다. 황첨지는 쉰이 넘었으나 나보다 민첩했다. 동굴에 들이닥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나는 동굴 입구에 총을 들고 대기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사람들을 보고 새끼들은 으르렁거렸다. 가까이서 보니 생후 5개월은 된 것 같았으며 이미 맹수였다. 이빨을 꺼내 밀며 덤벼들 기세였다.
‘빨리 잡아요!’
온 신경을 주변에 쓰면서 독촉했다. 언제 어미가 나타날지 모른다. 새끼가 무서운 마찰음을 내며 저항했으나 황첨지는 무시했다. 올가미를 던져 목에 걸어 끌어당겼다. 안간힘을 쓰며 앞발을 뻗고 버티던 새끼가 끌려왔으며 발악을 하는 새끼를 그대로 망태에 집어넣었다. 그사이에 다른 한 마리 새끼가 동굴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걸 동굴 입구를 가로막고 총대로 밀어 넣었다. 동굴 밖은 폭 2m 정도의 외길이 있을뿐 높이 7~8m의 절벽이었고 밑은 계곡이었다. 황첨지가 나의 도움을 받아 또 한 마리를 망태에 잡아넣었다. 황첨지는 두꺼운 장갑을 끼었으나 장갑은 찢어지고 손등에 상처가 났으므로 소주를 부어 소독을 했다. 맹수의 발톱에는 짐승의 살과 피가 묻어 독균이 생기기 때문에 철저하게 소독을 해야 한다. 새끼는 잡았으나 더 어려운 일이 남아있다. 어미다. 어미를 그냥 두고 새끼를 데리고 가는 건 위험한 일이다. 어미 표범이 새끼를 잡아가는 우리를 가만둘 리 없다. 특히 표범은 모정이 무척 강하다. 새끼 냄새를 맡는 어미의 코는 상상 이상이며 새끼를 찾는 어미의 본능과 집념도 상상 이상이다. 동굴을 조사한 결과 새끼에게는 어미만 있다는 걸 알았다. 황첨지의 말대로 애비는 죽은 것 같았다. 새끼를 망태에 넣고 동굴 밖으로 나오자 우리는 내달렸다. 나무 뒤에서나 바위 밑에서 어미 표범이 덮칠 것 같은 불안감이 뒤를 따라왔다. 마치 귀신에게 쫓기는 것 같은 무서움이었다.
‘황첨지, 넓은 들판이 이 부근 어디 없소? 사방이 탁 트인 들판.’
‘건 또 왜?’
‘기다렸다가, 어미를 처치해야겠소.’
황첨지가 한참 만에 머리를 끄덕였다. 사타구니산을 넘어 골짜기로 들어섰다.
‘옛날에 내가 밭을 일구려고 봐둔 곳이 있지. 거기 감으면 표범이 아무리 빨라도 두 발을 쏠 참은 있을 거야.’
거기까지는 아직 4km가 남았다. 문제는 거기까지 무사하게 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동굴에 돌아온 표범이 우리를 따라오는 건 순식간의 일이다. 공중을 날으듯 달리는 사슴이나 노루도 맥을 못 추는 표범의 속도는, 이 또한 상상 이상이다. 새끼를 맨 황첨지를 앞세우고 나는 서너 발자국 걸을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달렸다. 4km 길이 그렇게 먼 건 처음이었다. 머리칼이 곤두서는 공포를 한 시간이나 겪었다. 오후 3시께 들판에 도착했다.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들판은 큰물이 지나간 자국 같았으며 시골 학교 운동장만 했다. 한가운데 쓰러진 나무들이 한두 그루 있을 뿐 흰 양탄자처럼 깨끗했다. 우리는 나무 뒤에 엎드렸다.
(이제 됐어.)
적어도 표범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됐다. 망태 속의 새끼들은 망태 끈을 물어뜯고 발을 내밀어 할퀴고 야단이었다. 표범이 근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초조했다.
‘황첨지, 여기서 산막까지 얼마나 되지요?’
‘8km가 넘어. 저 하천 자리를 따라가면 ….’
빨리 달려도 두 시간은 걸린다. 곧 날이 어두워질 것이다. 밤길을 표범의 배웅을 받으며 간다는 것은 바로 지옥행이다. 더구나 새끼를 탐하는 표범은 분별을 잃고 덤빌 것이다.
‘안 되겠는데 …, 일어나 갑시다.’
그때 버둥거리던 새끼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새끼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눈을 가늘게 치뜨고 침묵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아차!)
어미가 부근에 와있는 게 아닐까? 짐승은 본능으로 어미의 소리를 안다. 숨을 죽이고 침묵했던 새끼들이 또 떠들기 시작했다. 전처럼 발악을 하는 게 아니라 목청을 돋우어 울기 시작했다. <엄마, 살려줘!>라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
‘황첨지, 온 것 같아. 어미가 왔어!’
말을 입증하듯 등 뒤에서 목을 굴려 밀어내는듯한 으르르! 소리가 들렸다. 무서운 살기와 분노를 담고 있었다. 표범은 천천히 주위를 돌면서 악을 썼다. 나는 소리에 맞춰 총구를 움직이며 기다렸으나 표범은 나오지 않았다. 보통 때 사냥과 달랐다. 짜릿한 전율을 즐기며 하는 보통 때 사냥과 달랐다. 나는 짐승을 잡는 사람이며 짐승은 나의 표적이었다. 허나 지금은 입장이 바뀌었다. 짐승이 나를 노리고 있으며 나는 내 자신의 목숨을 지켜야 할 입장이다. 불안했다. 더구나 표범이 주위를 돌면서 위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초조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날이 어두워진다. 어둠이 내리면 사람은 장님이 되어 도저히 표범을 당해낼 수 없다. 영리한 표범이 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저 녀석, 빨리 덤벼야 할 텐데 ….)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황첨지가 흘끗 나를 쳐다봤다. 헛기침을 하고는 지팡이를 겸해 갖고 다니던 대나무창으로 새끼를 쿡쿡! 찔렀다. 그렇지 않아도 악을 쓰고 있던 새끼들이 고통과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숨이 끊어질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망태 속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황첨지의 기지였다. 과연, 새끼들의 비명이 터지자 어미의 으르렁거리던 소리가 뚝! 끊겼다. 위험신호다. 다음 순간 조준 안에 표범이 뛰어 들어왔다. 무서운 속도였다. 표범은 첫 도약부터 풀스피드를 내며 지상 60cm 정도의 높이로 날아왔다. 황갈색 줄이 뻗쳐있을 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산탄총이었다. 라이플 같으면 단발이라 보이지 않은 대상을 명중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표범을 향해 발사했다. 꿩을 쏘는 방법으로 어림 조준하여 발사했다. 표범의 어깨가 흔들리고 앞발이 꺾였다. 달려오는 기세로 뱅그르르 굴러떨어졌다. 총탄이 턱과 어깨에 맞았으므로 치명상은 아니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아 일어난 표범이 다시 공세를 취했다. 허지만 나는 포수다. 표범이 자기 몸을 추스르는 시간은 1~2초였으나 나에게는 충분한 사격 기회였다. 이번에는 나는 라이플을 쏘는 요령으로 표범의 머리를 겨냥하여 제2탄을 발사했다. 일어서려던 표범이 맥없이 쓰러졌다.
‘잡았다! 잡았어.’
황첨지가 온 산이 쩡쩡! 울리도록 고함을 쳤다.
나는 재장탄을 하며 표범에게 다가갔다. 표범은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무서운 동물은 아름다운 동물이었다. 비로드처럼 보드라운 털과 찬란한 무늬를 지닌 아름다운 짐승이었다.
‘꽤 큰 놈인데. 20kg은 나가겠어. 털도 별로 상하지 않았고.’
나는 수통에 조금 남은 소주를 마시고 황첨지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 갑시다. 또 다른 놈이 나오기 전에 ….’
황첨지는 망태를 메고 나는 표범을 끌면서 돌아왔다. 삼림의 왕자가 새끼줄에 묶여 끌려가는 걸 보고 새들은 울음을 멈추었으며 짐승들도 소리를 죽였다. 온 숲이 조용했다. 용감한 누렁이도 꼬리를 말았다. 우리를 만들어 새끼를 가두고 표범의 배를 갈랐는데 꿩 대가리와 발이 나왔다.
‘꿩을 잡은 모양인데 어찌 대가리와 발만 있을까?’
‘나머지 부분은 새끼들에게 주고 자기는 대가리만 먹은 거야.’
‘어허, 그것 참.’
황첨지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껍질을 벗긴 토끼를 표범 새끼들에게 던져주었다. 그러나 새끼들은 그까짓 토끼고기는 본 체도 안 하고 옆에서 감시하는 개에게 악을 썼다. 개를 내보내고 안정을 시켰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표범 새끼들은 토끼고기를 뜯고 있었다. 며칠 동안 배를 곯았는지 토끼 한 마리를 다 먹고 노루의 간도 먹었다. 표범 새끼들은 부산에서 일본의 동물원으로 갔다. 창경원은 약속한 보수를 주었고 황첨지에게도 약속을 지켰다.
79. 선불 맞은 산돼지
함경북도 장진군에 연화산이 있다. 험준한 태백산맥의 줄기였으며 봉우리들이 대체로 펑퍼짐했으며 바위와 나무가 널린 둔덕이 많아 노루가 모여들었다. 마흔이 넘어 포수로서 경험이 쌓여있는 내가 어쩌다 실수-크나큰 실수를 했다. 서울에서 정미소를 경영하는 박부성씨와 노루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엽장에 너무 늦개 도착하여 노루를 잡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두어둑한 해 질 무렵이었는데 저쪽 산등성이를 타고 가는 산돼지 두 마리를 발견했다. 200m 이상의 거리였는데 온 산을 붉게 물들이면서 해가 떨어지고 있었고 붉은 석양을 등에 지고 가는 산돼지들이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바위 더미 같은 놈들이 유유히 걸어가는 모습은 웅장하달까 처연하다고 할까? 박씨는 최근 영국에서 수입한 값비싼 신형엽총을 시사(試射)하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여보게, 홍포수! 저걸 그만 보고만 있을 건가?’
주저했다. 맞춘다는 보장도 없고 설사 맞춰도 날이 어두워 추적을 할 수 없었다. 포수사회에서는 <부상의 한 맹수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라는 엄격한 불문율이 있었다. 섣불리 상처만 입은 맹수는 위험하다. 나도 그런 규율을 지키며 살았다. 그런데 최신형 총의 유혹이 너무 강했다. 시험 발사하는 셈 치고 한 번 해볼까? 신형 총에 대한 호기심과 매력이 너무 강했다. 박씨의 총은 총신이 삼각형으로 겹쳐져 있는데 가장 위에는 산탄총이고 아래 두 개는 맹수용 라이플이었다. 신기한 총이었는데 나는 그만 그 총의 위력을 잘못 판단했다. 총은 구조가 복잡하면 고장이 잘 나고 관통력力이 약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붉은 빛 속에 뚜렷하게 부각된 표적을 겨냥하여 발사했다. 방아쇠를 당긴 순간 어깨에 오는 반동 충격으로 그 총이 굉장한 위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첫탄에 앞서가던 놈이 굴러떨어졌고, 두 번째 탄으로 또 한 놈이 쓰러져 산 너머로 굴렀다. 두 마리 다 죽었거나 중상을 입었다고 판단하고 다음 날 추적하기로 하고 하산했다. 박씨는 나의 총솜씨를 칭찬하고, 나는 총의 성능을 칭찬하면서 …. 따라서 산돼지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주막에 도착할 무렵, 산 너머 마을에서는 기가 막히는 참극이 벌어졌다. 날이 어두워졌을 무렵, 산기슭에 있는 동네 우물가에서 아낙네가 물을 긷고 있다가 저쪽 산기슭 보리밭에서 황소가 한 마리 달려오는 걸 보았다. 황소는 파릇파릇한 보리 이랑을 마구 짓밟으며 달려오다가 쓰러졌고 곧 다시 일어나 비틀거리며 달려왔다. 그래서 아낙네가 소가 이상하다고 보고 있었는데 가까이 오는 걸 보니 황소가 아니라 산돼지였다.
‘에구머니나!’
아낙네는 물동이를 내팽개치고 고함을 지르며 마을로 달아났다.
‘사람 살려라! 산돼지가 온다. 산돼지가 ….’
찢어질 듯한 고함과 동작이 산돼지를 자극했다. 산돼지는 총탄이 내장을 뚫고 들어가 고통과 분노로 미친 상태였다. 아낙네는 산돼지보다 먼저 마을에 들어서면서 <산돼지가 따라오니 도망가라!>고 외쳤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엉뚱하게 나타났다. 도망은커녕 산돼지를 잡겠다고 설친 것이다. 흉년이 계속되어 오랫동안 고기 맛을 보지 못했는데, 감자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사람들이 산돼지를 잡겠다고 괭이, 삽, 몽둥이, 식칼과 도끼를 들고나왔다. 제 발로 굴러들어온 고기를 놓칠세라 사립문을 박차고 나왔으며 덩달아 개들도 흥분하여 설쳤다. 산돼지는 마을 어귀에서 정지하여 신음했다. 미친 상태였지만 사람들이 많은 동네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20여 명의 마을 장정들이 산돼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퇴로를 막았다. 산돼지가 부상을 입었다는 걸 알고 퇴로를 막아 잡으려고 했으므로 산돼지는 마을 골목으로 돌진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의 수가 불어났고 솜뭉치에 불을 붙여 골목이 환하게 드러났다. 산돼지를 포위했다고 판단한 용감한 청년들이 와아! 하면서 산돼지에게 덤벼들었다. 산돼지가 웅크리고 있었으므로 이미 죽었거나 항거 불능상태로 보고 청년이 괭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산돼지는 주둥이를 하늘로 쳐들고 벌러덩 누워있으면 항거불능이다. 그러나 주둥이를 앞발 사이에 쳐박고 있으면 위험하다. 산돼지의 무기는 입 밖으로 튀어나온 어금니다. 그걸 그 청년은 몰랐다. 청년이 무턱대고 쳐들어갔을 때 열서너 발을 남겨놓고 산돼지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질풍처럼 돌진하여 청년을 들이받았다. 청년이 공중에 떠올라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곤두박질했다. 그제서야 모여있었던 사람들이 선불 맞은 산돼지의 살기를 느끼고 비명을 지르면서 사방으로 달아났다. 산돼지가 전속력으로 내달린 길을 흙담이 가로막았다. 흙담 옆으로 작은 골목길이 있었으나 속력을 내서 달리던 산돼지는 골목길을 살짝 돌아갈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정면으로 흙담에 부딪혔다. 흙담이 와르르! 무너지고 산돼지의 전신이 흙에 묻혔다. 마을 장정이 <됐다!>고 소리치며 몽둥이로 후려갈겼다. 그런데 그런 매질은 개 잡을 때는 유효하지만 산돼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몽둥이가 바위에 닿은 것처럼 퉁겨 나왔다. 산돼지가 온 몸에 흙을 뒤집어쓰고 일어섰다. 서른 평이나 되는 마당이 좁아 겨우 몸을 돌린 산돼지가 짖는 개를 하늘로 쳐올리고 있을 때 엉거주춤하고 있었던 박가라는 머슴이 산돼지의 이빨에 걸렸다. 머슴은 산돼지의 이빨에 꿰인 채 밀려가 담벼락에 부딪혀 내장이 흘러내렸다. 온 동네를 쑥밭으로 만들어버린 산돼지는 두 사람을 죽이고 집 한 채를 부수고는 기진맥진하여 마을 앞 시궁창에 빠졌다. 이가라는 동네 이발사가 도끼로 산돼지의 머리를 내려쳤다. 장작을 패는 것처럼 후려쳤는데 머리가 장작처럼 갈라졌다. 간 밤에 산 너머 마을에서 그런 참사가 일어난 줄도 모르고 박씨와 나는 새벽에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핏자국이 있었다. 한 놈은 마을로 한 놈은 계곡으로 가고 있었다. 계곡으로 간 놈을 추격했다. 계곡으로 간 놈은 동맥이 끊어진 듯 검붉은 핏자국이 이어졌다. 놈은 물을 마시고 바위 뒤를 돌았는데 핏자국이 뚝! 끊겼다. 두리번거리다가 의아하여 바위를 빙 둘러 돌았는데 놈은 바위를 돌아왔던 길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차!)
나는 얼핏 계곡 위로 뛰어 올라갔다. 7~8m 간격을 두고 뒤따라오던 박씨가 고함을 쳤다. 듣기에 따라서는 비명이었다. 박씨가 멍! 하니 서 있는 옆 7~8m 덜어진 잔솔밭에서 산돼지가 박씨를 향해 돌진했다. 엄청나게 큰 놈이었으며 마치 탱크처럼 소나무를 짓밟아 눕히면서 박씨에게 덮쳐들었다. 사격 위치가 고약했다. 산돼지의 어깨와 대가리 일부만 보였다. 그러나 박씨가 위험했다. 나는 겨냥할 겨를도 없이 총신을 쑥! 내밀면서 발사했다. 산돼지가 박씨의 서너 발 앞에서 주춤했으나 그대로 박씨의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박씨가 스러졌다. 정신이 아찔했으나 무의식적으로 제 2탄을 쏘았다. 선돼지가 무릎을 꿇고 나가떨어졌다. 치명타였다. 지근 거리에서 심장을 겨누었으므로 명중했다. 나는 총을 던져버리고 박씨에게 달려갔다.
‘박선생! 박선생!’
산돼지의 이빨은 박씨의 윗옷 호주머니를 면도날로 자른 것처럼 찢었으나 상처는 없었다.
‘산돼지는 죽었소! 내가 죽였소.’
‘헛, 참 그거 ….’
말은 그렇게 했으나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박씨의 얼굴에 핏기가 살아났다. 마을로 내려간 산돼지를 쫓자고 했더니 박씨는 머리를 흔들고 손사래를 쳤다. 하는 수 없이 박씨를 데리고 주막으로 내려왔는데 이웃 마을의 어젯밤 참사를 들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포수 생활 10여 년에 처음 한 실수였다. 박씨를 서울로 보내고 이웃 마을을 찾았다. 마을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꾸짖지 않고 산돼지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친 자기들의 잘못이라고 변명했다. 초상에 보태라고 나머지 산돼지도 마을에 기부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선불 맞은 산돼지는 무섭다. 뇌나 심장에 직격탄을 맞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배에 총을 맞아 창자가 터져도 창자를 끌며 몇십 리를 간다. 앞발 두 개가 몽땅 부러지면 주둥이를 땅에 대고 기어간다. 척추에 앵두만 한 탄환 두 개를 넣고도 살아가며, 아래턱이 없어도 곧잘 먹는다. 산돼지는 원시 동물처럼 생명력이 끈질기다.
나는 어느 때 다나까라는 일본인과 경북 문경군에서 노루사냥을 한 적이 있었다. 마침 싸락눈이 내렸으므로 발자국을 따라 몰이를 했다. 나는 산마루에 목을 잡고 다나까는 산중턱에 세웠다. 둘 다 노루철(鐵)을 장탄했다. 노루사냥이 한창일 때 난데없이 산돼지가 나타났다. 200kg이 넘는 거물이었다. 산돼지는 내가 있던 산마루로 올라오다가 인기척을 알고 다나까가 목을 잡은 산중턱으로 방향을 바꿨다. 다나까는 아래쪽의 노루에 정신이 팔렸는데 옆에서 우지직! 나무 부러지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불과 10여 미터의 거리에 산돼지가 나타났다. 다나까는 몸을 비틀어 피하면서 노루탄을 발사했다. 죽이지는 못해도 부상이라도 입혀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산돼지는 끄떡도 하지 않고 달려왔다. 벨기에제 6연발이었으므로 제2탄을 쏘았다. 분명히 맞았을 텐데 산돼지는 그대로 돌진했다. 노루탄은 산돼지에게는 탱크에 소총이었다. 도함 5연발-서른 개 이상의 탄환이 산돼지에게 맞았을 텐데 산돼지는 다나까를 덮쳤다. 마지막 순간 다나까가 몸을 옆으로 날렸으나 산돼지의 주둥이가 다나까의 허벅지를 스쳤다. 다나까는 크게 크게 뒤벼넘기를 하며 공중에 떠올라 아래 잔솔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 산돼지가 나타난 걸 알고 얼핏 노루철을 산돼지철로 바꿔 산마루에서 주르륵! 미끌어져 내렸는데 그게 바로 산돼지 앞이었다. 산돼지는 미련스럽지만 몸을 쉽게 돌린다. 다나까가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고 방향을 바꾸려는 순간이었다.
‘다나까, 엎드려! 엎드려!’
내가 위에서 총을 쏘면 산돼지 바로 밑에 잇는 다나까가 맞을 염려가 있었다. 산돼지에게 맞지 않으면 사람에게 맞을 게 뻔했다. 만약 그때 철이 여러 개 들어간 산탄총이었다면 쏘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단발인 산돼지탄이었으므로 발사했다. 나를 노려보는 산돼지의 두 눈 사이에 퍽! 산돼지철이 꽂히는 소리를 들었다. 산돼지는 윽! 하면서 뒹굴었다. 어찌나 큰 놈이었던지 옆에 있는 한 아름이나 되는 바위를 안고 같이 굴렀다. 간담이 서늘했으나 다행히 산돼지와 바위는 다나까의 옆으로 스치고 5~6m 아래 골짜기에 떨어졌다. 다나까의 허벅지에 응급처치를 하고 골짜기로 내려갔다. 산돼지의 몸을 조사했더니 몸은 노루철로 벌집이 되어있었으나 두꺼운 산돼지의 껍질을 뚫지 못했다. 후배들에게 노루탄으로 산돼지를 쏘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충고한다.
그러나 그 후 몇 년 뒤 또 한 번 선불 맞은 산돼지에게 봉변을 당했다. 말로는 봉변이라고 하지만 아찔한 위기였으며 내가 죽거나 병신이 되지 않은 건 기적이었다. 황해도 평산군에 있는 검둥산에 단신으로 산돼지를 잡으러갔다. 포수들의 정보로 산돼지기 우글거린다고 했다. 검둥산에는 눈이 30cm 정도 쌓였으므로 발자국꾼이나 몰이꾼도 소용없었다. 몇 분 전에 찍힌 큼지막한 산돼지를 발견하여 추적을 했다. 산중턱에서 200kg쯤 되는 놈을 발견했다. 머리통을 쏘고 싶었으나 원거리 사격이기 때문에 가슴팍을 겨냥했다. 심장에 맞지 않아도 어깨, 복부나 다리에 맞을 가능성이 컸다. 능선을 타던 산돼지가 굉음과 동시에 쓰러졌다. 치명상은 아니더라도 멀리 가지는 못했으리라고 판단했다. 왼손에는 총을 들고 있었으므로 바른 손으로 나무뿌리나 바위 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올라가는데 별안간 머리 위에서 눈사태처럼 와르르르! 소리가 나면서 하얀 눈가루가 퍼졌다. 눈가루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다만 무엇인가 거대한 물체가 덮쳐들고 있다는 걸 느끼고 눈앞의 바위 밑에 납짝 엎드렸다. 그 순간 머리 위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면서 거대한 물체가 지나갔으며 왼손에 들고 있던 총이 멀리 날아가버렸다. 선불 맞은 산돼지가 산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덮친 것이다. 한숨을 쉴 여유도 없었다. 머리를 타고넘어 아래로 굴러떨어졌으리라고 생각했던 산돼지는 불과 6~7m 거리에서 급정지를 했다. 그 우둔한 놈이 그런 재주가 있는지 미처 몰랐다. 산돼지가 밑에서 위로 쳐들어왔다. 핏발이 선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총이 없는 포수란 무력하다. 맨손으로 탱크 같은 놈을 당해낼 재주가 없다. 산돼지의 콧김 소리를 들으며 몸을 데구르르 옆으로 굴렸다. 그대로 산밑으로 굴러떨어질 심산이었다. 골짜기로 떨어지면 달아 날아볼 생각이었으나 그렇게 해서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5~6m도 못 가서 공교롭게 잔솔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그 사이에 몸을 돌린 산돼지는 위에서 밑으로 덮쳐들 준비를 했다. 선불 맞은 맹수의 집념이었으며 기어이 적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본능이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잔솔에 걸려 일어서려고 하던 손에 차디찬 쇠붙이 감각이 느껴졌다. 소나무 뿌리에 걸린 총이었다.
<아! 살았다.>할 틈도 없이 총을 잡자 말자 돌진해오는 산돼지의 두 눈 사이에 커다란 납덩이를 박아넣었다. 이번에는 선불이 아니라 진짜 불이었다. 산돼지는 맞은 충격으로 칵! 소리를 내며 몸의 중심을 잃고 벌렁! 나가떨어졌다.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코와 아가리에서 허연 연기 같은 수증기가 나오더니 붉은 피가 쏟아졌다. 하도 끈질긴 놈이라 심장에 마지막 한 방을 더 먹였다. 초식동물이고 사람을 보면 도망을 친다고 산돼지를 얕보는데 산돼지는 생사가 걸리면 호랑이도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
80. 사냥의 재미
1928년 초겨울, 경춘선 마석역에서 기묘한 소달구지 두 대가 동북쪽으로 덜커덩거리며 굴러가고 있었다. 달구지에는 모두 열네 명이 타고 있었는데 노인, 중년으로부터 아이들까지 멍석 위에 펑퍼짐하게 앉아있었다. 젊은이들은 소주를 마시고, 노인들은 화로를 끼고 잡담을 했으며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했다. 초겨울이었으나 달구지를 끄는 소의 입김이 하얗게 서렸는데 달구지를 안내하는 나는 씁쓰레한 기분이었다. 그게 모두 내 옆에 시치미를 떼고 있는 총포상 정씨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 정씨는 서울 인사동에서 꽤 큰 총포상을 차리고 있었는데 사냥 보급 겸 장사선전으로 실없는 소리를 시부렁거리고 다녔다. 사냥은 고급스포츠이며, 사냥터에서 얻을 수 있는 사슴의 뿔 녹용, 곰의 쓸개 웅담, 노루와 산돼지의 신선한 피가 세상에 다시 없는 불로장생의 영약이며 회춘의 비결이라는 등등. 좀 과장되었을망정 허튼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한 상대를 잘못 선택했다. 여덟팔자걸음으로 대문 밖에도 잘 나가지 않는 서울의 양반 노인네나 밤낮 기생집 안방이 아니면 주막 아랫목에서 노름이나 일삼는 건달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고, 사냥은 아주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허풍을쳤다. 그 결과 그들은 의논을 하여 <그렇게 쉽고, 재미있고, 또 몸에 좋은 것이라면 여럿이 함께 가볼 것이니 안내를 하라.>고 했다. 난처한 이이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중을 몇십 리씩이나 뛰어다녀야 할 사냥터에 그들을 어떻게 데리고 가겠는가? 정씨는 일을 저질러놓고 감당을 못해 나에게 통사정을 하며 매달렸다. 나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는데 울상이 된 그는 최신 모젤 라이플을 주겠다고 했다. 모젤 6연발 라이플은 보기에는 가느다란 총이었으나 조준망원경이 부착된 유효사거리 800m가 넘는 최고급 총이었으며, 당시 값으로 서울의 웬만한 기와집 한 채 값이었다. 나는 승낙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달구지가 등장하게 되었다. 달구지는 울퉁불퉁한 산길의 돌멩이를 타 넘고 개울의 얼음을 찍찍! 부수면서 천천히 굴러갔다. 3박 4일의 여정이니 서둘 건 없다. 햇볕이 머리 위에 있는 낮에는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창가(唱歌)도 불렀으나 달구지가 산모퉁이를 돌아들어가 그늘이 지고 땅거미가 기어오자 사태가 달라졌다. 우선 노인들이 화로를 꼭 껴안았고, 아이들이 입에서 노래가 끊겼으며, 젊은이들도 소주잔을 놓아버렸다.
‘어! 추워. 추워죽겠는걸.’
정씨가 고객들 입에서 되돌아가자는 말이 나올까봐 전전긍긍하며 나를 힐끔! 쳐다봤다. 염려할 건 없었다. 어둑어둑한 산모퉁이 저쪽에 주막집이 보였다. 돗자리를 깔고 장작불로 뜨근뜨근하게 덮인 주막집 방은 서울 양반들을 즐겁게 했다. 메주를 띄운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추위에 덜덜 떨다가 따끈한 방바닥에 앉았으니 전신이 노곤하게 풀릴밖에. 그러나 또 문제가 있었다. 주막집에서 내온 자갈같이 오돌오돌한 콩자반, 멸치 몇 마리가 둥둥 뜬 시레기국 따위는 본 체도 않았으며 서울에서 가져온 통조림을 땄다. 다행히 그들의 입에서 돌아가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튿날은 날씨가 더 추웠고 하늘이 흐렸다. 햇살이 오를 때를 기다려 늦게 출발했다. 차츰 지대가 높아지자 바람에 세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갑자기 돌변했다. 아무래도 하늘이 수상하다. 노인들은 자라목이 됐고, 귀가 빨개진 아이들에게 호호 입김을 불어주고 있었다. 오후 2시에 달구지가 멈췄다. 길이 너무 가파르고 벼랑이었기 때문이다. 달구지를 돌려보내고 모닥불을 피웠다. 모두 옹기종기 불가로 모였다. 서울 양반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자, 이제부터는 걸어야 합니다. 뭐 한 10리(4km)쯤 될까요,’
10리라는 말에 그들은 속았다. 산길 10리는 대로 20리가 된다는 걸 몰랐다. 휘청 다리들이 산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도 못 가서 힘이 빠져 터덕거렸는데 싸락눈까지 내렸다. 그 해 첫눈이었다. 사냥하기에는 안성맞춤이며 포수에게는 더 없는 선물이다. 그러나 서울 양반들은 불평을 했다.
‘30리나 온 것 같은데 아직도 멀었느냐?’
‘발이 부르터 콩알이 생겼다.’
‘추워 한기가 든다.’
는 사람도 나왔다. 이미 산막까지 4/5를 왔는데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아무튼 깜깜해질 때쯤 일행은 산막에 도착했다. 그 산막은 화전민에게 노루 한 마리를 주고 샀다. 돌과 흙을 두툼하게 쌓은 튼튼한 집이다. 주변 세 개의 산줄기가 합쳐진 골짜기 둔덕에 지었고 북쪽에는 바람막이 담도 쳤다. 도착하자마자 온돌아궁이에 불을 피웠다. 방구들이 따뜻해지고 호롱불을 켜자 피로와 추위에 떨던 서울 양반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흙바닥에 거적대기를 깔아 온돌이 달아오르자 구수한 흙냄새가 피어올랐다. 일행은 제멋대로 통조림을 따고 빵을 먹고는 이내 곯아떨어졌다. 평소에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인사동 영감이 제일 먼저 코를 골았다.
이튿날 새벽
‘야아! 저것 봐.’
하는 아이의 고함소리에 모두 잠이 깼다.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천지가 하얗게 변했다. 산봉우리도 나무도 바위와 골짜기와 들판도 모두 하얀 눈으로 단장을 하고 아침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서울 양반들은 넋을 놓고 그 아름다운 선경에 취했다. 아이들이 밖으로 나갔으며 젊은이들도 따라 나갔다. 방에 남은 노인들은 아주 오랜 옛날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일장 연설을 했다. <산막에서 생활은 각자 일을 분담하여 스스로 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일을 분담시켰다. 아이들은 주변 숲에서 땔감으로 마른나무를 주워오고, 젊은이들은 개울에서 물을 긷고 취사를 담당하고, 노인들은 방 청소를 한다. 그리고 나는 총을 가진 두 젊은이와 아침 찬거리를 장만하러 나갔다. 원래 곰, 산돼지와 노루 등 큰 사냥을 할 때는 작은 사냥을 안 한다. 총소리에 짐승들이 도망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꿩사냥을 했다. 꿩사냥은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산을 넘으면 화전민이 개간한 밭이 있는데 양지바른 그곳에 꿩이 모여들었다. 젊은이들은 두서너 달 동안 정씨에게 사격술을 배웠다고 우쭐대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내가 쏘라고 하기 전에는 절대로 발포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산마루에 가까워지자 엎드려 기었다.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니 20m 전방에 진홍색과 초록색이 아로새긴 꿩 서너 마리가 밭에서 놀고 있었다. 그걸 보고 흥분하여 덮어놓고 총질을 하려는 젊은이를 눈짓으로 제지하여 각자 목표를 지정해주고 지시를 따르게 주의를 주고는 좀 더 가까이 기어갔다. 이젠 됐다. 마리를 끄덕여 발사 신호를 했다. 동시에 발사하도록 했으나 1초 정도 간격이 생겼다. 1초 정도의 간격이면 상대의 목표가 움직이기 때문에 동시에 쏘라고 한 것이다. 첫 탄은 총의 반동으로 엉뚱한 곳으로 발사되었고 두 번째는 꿩이 날아오른 뒷자리를 쏘았다.
(저런, 바보들 ….)
그러나 나는 이미 그걸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날개를 퍼득거리며 날아오른 꿩을 날치기기법으로 쏘았다. 그러나 두 번째 꿩은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으므로 설맞아 개울로 도망가고 있었다.
‘달려가서 저놈부터 잡아요!’
달려가던 젊은이가 <이크!> 하며 주저앉았다. 고목 밑에서 토끼가 튀어나와 놀랐다. 내가 토끼를 노렸다. 토끼는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달려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내리막길로 달아났다. 그러나 토끼는 오르막에서는 빨라도 내리막에서는 사람보다 느리다. 내가 토끼를 잡아들고 개울로 내려가니 두 젊은이가 날개를 맞아 도망 다니는 꿩과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풋내기 포수들은 그곳에서만 다섯 발을 쏜 끝에 꿩을 잡고 산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쳤다.
‘잡았다! 우리가 꿩을 잡았어!’
꿩 두 마리에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한 젊은이들이 의기양양하게 산막에 돌아오자 일행은 개선장군처럼 마중했다. 아이들은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고. 나는 꿩과 토끼를 모두 젊은이들의 공功으로 하고 이번에는 요리사가 되었다. 꿩과 토끼의 털을 벗기고 도끼 등으로 마구 쳐서 으깬 뒤 다시 칼로 난도질을 하여 냄비에 볶았다. 아랫마을 아낙네가 커다란 가마솥을 이고와서 뜸을 들인 구수한 보리밥에 즉석 볶음요리를 반찬으로 아침밥을 모두 맛있게 먹었다. 아낙네가 병에 넣어온 탁주(막걸리)도 컬컬했고. 원래 꿩고기는 닭에 비해 잔뼈가 많고 단단하며 새큼한 냄새가 난다. 산토끼는 좀 배릿하지만 연하고 담백하며 꿩과 토끼를 넣고 푸성귀를 섞어 산초가루를 뿌리면 별미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개울로 갔다. 무릎 깊이의 개울은 살얼음으로 덮였다.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올려 개울 속의 바위를 냅다 쳤다.
‘저 얼음 속을 봐라! 뭐가 있지?’
아이들이 환성을 질렀다. 돌과 돌이 부딪힌 진동으로 바위 밑에 숨어있던 손가락 크기의 물고기들이 둥둥 떠올랐고 그보다 훨씬 큰 가재들이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아이들의 환성을 듣고 달려온 어른들도 합세했다. 몇 시간 동안에 바가지 가득하나 고기를 채웠다. 그건 점심 반찬이었다. 얼큰한 매운탕과 고소한 가재 튀김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날 오후, 내가 미리 배치한 몰이꾼이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새벽부터 나와 쌍두뱀 바위 밑으로 몰아넣었던 노루가 난데없는 총소리 때문에 도망가버렸다는 것이다. 쓴웃음이 나왔다. 꿩과 토끼 탓이다.
‘아, 그따위 노루는 놔두고 돼지를 몰아!’
‘저쪽 용두산에 중돼지가 한 마리 돌아다니던데 그놈이라도 몰아볼까?“
‘좋지. 그놈을 이리로 몰고 와.’
‘제기랄! 거기서 잡지 어떻게 여기까지 몰고 오란 말야. 집돼지인 줄 아나?’
남의 속도 모르고 몰이꾼이 <제기랄!>을 연발했다. 나는 포수가 아니라 사냥안내인이었다. 그래서 이튿날 새벽 용두산에 가서 돼지를 산막 쪽으로 몰아넣는 걸 지휘했다. 몰이꾼이 아무리 <제기랄!>이라고 해도 서울 양반들이 갈 수 있는 데까지 산돼지를 몰아와야 했다. 그건 산돼지를 잡는 것보다 어려웠다. 몰이에는 원칙이 없다. 너무 변화가 많아 경험과 지식만 통했다. 총은 누구라도 방아쇠만 당기면 발사할 수 있고 명중될 수도 있지만 몰이와 추적은 프로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다. 또 짐승에 따라 몰이 방법도 다르다. 토끼는 위에서 아래로 몰면 잡기 쉽고, 노루나 산돼지는 습성에 따라 몰아야 한다. 아무튼 우리는 산돼지를 산을 세 개 넘어 꿩을 잡았던 골짜기까지 몰고 와야 한다. 산돼지를 참나무숲에서 소나무 숲으로 몰아가고, 산을 넘어가게 하고, 잔솔이 밀집한 산중턱으로 해서, 바위틈으로 빠져나가 골짜기로 내려가면 … 또 산을 넘고. 제기랄 …. 은폐물에 숨어다니기 때문에 산돼지 모습은 볼 수 없어도 그가 남긴 발자국으로 산돼지의 행로를 알 수 있었다. 산돼지는 서서히 조여드는 몰이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방향을 탔다. 너무 조이면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므로 가끔 산돼지의 진로를 점검하여 몰이꾼을 멈췄다 풀었다 조종하면서 오후 늦게 산막이 있는 골짜기로 몰아넣었다. 이제 산돼지는 도가니 속의 쥐였다. 그 골짜기는 세 개의 산에 둘러싸였고 산에는 포수가 목을 잡아 숨어있으며 산 아래에서는 몰이꾼이 퇴로를 막았다. 손을 들어 신호를 했다. 아래쪽의 몰이꾼들이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간다. 드디어 산돼지가 튀어나왔다. 200kg이 넘는 놈이었다. 산돼지가 내가 목을 잡고 있는 곳으로 왔는데 나는 쏘지 않고 발을 굴러 위협을 했다. 산돼지가 진로를 바꾸었다. 바위틈으로 냅다 뛰다가 그만 커다란 바위 위로 나가버렸다. 아무런 은폐물이 없는 바위 위에 우뚝 선 산돼지가 도망칠 방향을 정하려고 잠시 두리번거렸다. 사격 찬스다. 맞은편 산허리에서 첫 탄을 발사했다. 바위에 맞아 튀었다. 두 번째 탄은 어림없이 빗나가 숲속으로 들어갔다. 놈이 골짜기로 뛰었다. 놓칠 염려가 있다. 그냥 둘 수 없어 목덜미를 쏘았다. 산돼지가 뒹굴었다가 일어났다. 맞은편에서 2탄이 날아와 허벅지에 맞았다. 일제사격이 시작되었다. 산돼지가 벌집이 되었다.
‘그만! 그만 쏘라니까!’
고한을 치자 총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총소리보다 더 요란한 함성이 일어났다. 나는 몰이꾼으로부터 대통을 받아 산돼지의 염통에 쑤셔 박았다. 먼저 영감님들에게 산돼지의 신선한 피를 빨게 했다. 영감은 주저했으나 오래 살 욕심에 피를 빨았다. 산돼지 피는 몸에 좋다고 한다. 사실 노루 피나 산돼지 피를 마신 사람은 추위를 타지 않는다. 산돼지 피를 마시면 몸에 열이 나고 온몸이 후끈거리는데 그게 약효일 거다. 비단 피뿐이랴? 먼지투성이 도시에 비하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을 뛰어다녔으니 약효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산돼지 몸이 굳기 전에 산막으로 운반했다. 저녁은 산돼지 불고기다. 모닥불에 얇은 구들장을 걸쳐놓고 바위가 적당히 달아오르면 물이나 눈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지지 소리를 내며 바위가 깨끗해지면 산돼지껍질의 기름을 바르고 넓적넓적하게 썬 고기를 던진다. 고기에 소금과 산초가루를 쳐서 긴 대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아직 벌건 피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연분홍색 고기를 먹는 맛은 …. 이 요리를 산중에서 벌이면 10리 밖에 있는 불청객이 모여든다. 호랑이, 늑대다. 산돼지 불고기는 네발 달린 짐승 중에서 최고다. 그건 집돼지와 달리 우선 잡내가 없고, 연하고, 기름기가 적고, 담백하며 노린내도 비린내도 없으며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서울 양반들은 잘도 먹었다. 소주를 마시면서 대여섯 근씩 먹었다. 일급 포수와 일급몰이꾼 다섯 명이 이틀간이나 공들여 몰아놓고도 이야기는 엉뚱하게 과장되었으나 나는 모른체 했다. 산돼지사냥의 금전적인 손익은 마이너스였다. 몰이꾼 품삯이 될까 말까 한 정도였다. 그러나 그 사냥에서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최신식 라이플을 얻었고, 정씨는 돈을 벌었고, 서울 양반들은 건강을 그리고 아이들은 재미를 맛보았다. 몇 젊은이와 아이들 중 몇몇은 나중에 좋은 포수가 되었다.
81. 젊은 곰의 순대
음력 3월~두만강물이 녹기 시작할 무렵이면 함경북도 무산군과 만주국경선 일대의 험악한 산악에 살고 있는 곰들이 굴속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 해마다 동짓달 굴속에 기어 들어가 발바닥만 핥고 있었던 곰들은 눈이 녹기 시작하면 어슬렁어슬렁 바깥나들이를 한다. 포수들이 곰사냥을 하는 시기다. 따라서 매년 이맘때가 되면 8도의 내노라 하는 포수들이 이 지방 산골 주막집에 모여든다. 주막에는 포수들뿐만 아니라 지방의 몰이꾼들도 모여든다. 포수와 몰이꾼은 흥정을 한다. 대상은 곰이다. 곰이 동면하는 동굴이며 안내하는 수고 값이다. 곰이 동면하는 동굴을 발견하여 팔면 몰이꾼들에게는 한밑천이 된다. 내가 처음 여기 온 건 22세 때였다. 산돼지 세 마리를 팔아 무작정 곰 사냥터로 떠난 것이다. 검의 굴을 알고 있는 몰이꾼을 만나려고 이 주막 저 주막을 찾아다녔으나 허사였다. 몰이꾼들은 이름도 낯도 모르는 그리고 애송이 나를 흥정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젖비린내 나는 포수와 곰사냥을 하다가는 찢겨 죽기 알맞다고 상대도 하지 않았다. 수렵 허가 기일은 며칠 남지 않았고 여비도 떨어져 가고 …, 나는 몹시 초조했다. 이때 마치 구세주 같은 몰이꾼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곰보와 애꾸눈이었다. 그들이 좀 말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곰이 있는 굴을 알고 있다기에 나는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다 들어주고 흥정을 했다. 그날 밤 주막에서 소주 몇 병과 도토리묵 몇 쟁반이 탕진되었다. 곤드레가 된 나는 도라지타령을 흥얼거리면서 잠이 들었는데 이튿날 잠에서 깨어 생각해보니 좀 불안했다. 어젯밤 몰이꾼들이 실토한 얘기가 생각났다. 그들은 내가 비록 어리지만 산돼지를 몇 마리 잡았고, 마음만 먹으면 호랑이에게도 덤벼들 무모한 포수라는 걸 알고는 안심하고 실토를 했다. 내가 몰이꾼들에게 천대받은 포수였다면 그들은 포수들에게 천대를 받은 몰이꾼이었다. 그들은 곰의 굴을 알고 있었으나 그 곰굴은 흥정할 가치가 없는 굴이었다. 첫째, 그 굴은 첩첩산중 만주 국경에 있고, 그 곰은 포수들이 꺼려 하는 불곰이었고, 거기다가 젊은 곰이었다. 그 자방의 불곰은 동체가 적아 값이 없는 데다 사납기로 이름났고 특히 젊은 불곰은 겁이 없는 놈들이었다. 그런 놈을 곰보, 애꾸눈 몰이꾼과 사냥한다는 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었다. 엊저녁에 맺은 동업 계약이 생각났으나 벌써 일어나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몰이꾼들에게 동업 계약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엊저녁에 오갔던 소주잔의 정감을 저버릴 수도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곰이 젊고 무모한 놈이라면 나도 젊고 무모하기는 마찬가지 아니냐?)
내가 믿는 건 영국제 최신 쌍총신 라이플뿐이었다. 나는 총과 망태를 매고, 애꾸는 누더기 이불을 돗자리에 둘둘 말아 등에 지고, 곰보는 배에 쌀자루를 감고 허리에 물통과 냄비를 주렁주렁 달고 우리는 주막을 떠났다. 총만 없다면 고향을 떠난 유랑민 꼴이었으나 표정만은 노다지를 캐러 가는 것처럼 싱글벙글이었다. 그날 우리는 산마루를 열서너 개나 넘었다. 험산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헤쳐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표면상으로는 품팔이였으나 법을 피해 살아가는 밀렵꾼이었다.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깊은 산중에 함정을 파거나 덫을 놓아 짐승을 잡는 것이 그들의 본업이었다. 요 한 달 전만 해도 산돼지 두 마리, 너구리 한 마리를 잡았다고 실토했다. 지나가는 길에 함정에 들렀으니 토끼 새끼 한 마리도 걸리지 않아 실망했으나 곧
‘괜찮아, 곧 곰을 잡을 테니. 과부주막에 새로 온 계집 엉덩이쯤 두들길 수 있을 테니 ….’
하고 껄껄 웃었다. 그들의 밀렵지를 돌아다니다가 어두워졌다. 그들은 마치 단골 여관에 가는 것처럼 어느 동굴에 나를 안내했다. 두 칸 반 정도의 굴에는 낙엽과 마른 풀이 두껍게 깔려있고 한쪽 구석에는 숯도 있었다. 돗자리로 굴 입구를 막고 숯불을 피우니 안온한 잠자리가 되었다. 그날 밤, 그는 우리가 잡으려는 곰 얘기를 했다. 곰은 생식기가 되면 암수가 만나 교미를 하고 임신을 하면 헤어진다. 암컷은 동면을 하면서 새끼를 낳아 봄이 되면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새끼가 2~3년 자라면 어미와 헤어진다. 우리가 잡으려고 하는 곰은 어미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되는 놈이다. 실상 그놈이 사는 구멍도 이들의 여관이었는데 곰이란 놈이 강탈해버렸다.
‘아, 놈은 사람이나 범이거나 발견하면 미친개처럼 덤벼들거든. 몰이를 하여 굴속에서 훌쳐낼 필요가 없어.’
그러니 사냥은 너 혼자서 하라는 말이렸다? 이튿날 11시경에 동굴에 도착했다. 곰이 사람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바람을 안고 접근했다. 나무 뒤를 돌아 바위 위로 올라간 곰보가 손짓을 했다. 약 100m 거리에 굴이 있었는데 젊은 곰이 굴 앞에 나와 있었다. 곰은 굴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네 다리로 엉금엉금 기어가기도 하고, 두 다리러 어슬렁어슬렁 걷기도 하고, 일본 스모선수처럼 두 다리를 교대로 땅을 차기도 했다. 동면을 하면서 곰은 발바닥을 핥고 살았다. 그래서 발바닥이 약해져 다지는 것이라고 곰보가 설명했다.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맹수용 최신형 2연발이었으므로 믿을 수 있었다. 굴의 정면으로 걸어갔다. 내가 굴에서 80m 정도 갔을 때 곰이 나를 발견하고는 굴속으로 달아났다. 80m, 70m …. 우욱! 우욱!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경고였으나 무시했다. 30m까지 다가가자 노호가 터졌다. 그래도 계속 전진했다. 곰이 튀어나왔다. 몸을 동그랗게 공처럼 말아 굴러왔다. 순간 당황했다. 산돼지는 돌진해도 대가리를 들기 때문에 좋은 표적이 된다. 그런데 곰은 대가리가 작을 뿐만 아니라 밑으로 숙여 달려오기 때문에 몸이 동그란 유선형이 되어 총알이 미끄러질 것 같은 착각을 했다. 첫 탄을 발사했다. 곰이 벌렁 나가떨어졌다. 이거 뭐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쩌다 실수로 형편없이 약한 선수에게 진 씨름선수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자세는 나에게 좋은 표적이 되었다. 흉장부에 2탄을 발사했다. 다시 장전을 하고 곰에게 다가갔다. 첫 탄은 이마에 2탄은 심장을 꿰똟고 있었다. 굿이나 보고 떡을 먹자는 태도로 보고 있던 몰이꾼들이 달려왔다. 애꾸가 내 등을 두드리고 곰을 걷어찼다.
‘이 새끼, 집세도 안 내고 남의 집을 빼앗았지?’
곰보는 곰의 엉덩이를 마치 술집 아가씨 다루는 것처럼 조몰락거리고 있었다. 곰보가, 날이 이렇게 따뜻하니 곰의 내장을 꺼내고 운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애꾸가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순대를 먹어야지.’
‘순대?’
‘천하일품 곰의 순대야.’
나는 애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곰의 순대를 만들려면 장에 든 똥을 빼내고 몇 번이나 말끔하게 씼어야 하는데 물도 없으니 여기서 어떻게 순대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곰보도 동의하며 말했다.
‘순대는 우리가 만들 테니 마른 나뭇가지나 주어오쇼.’
작년 가을에 곰이 도토리를 따 먹느라고 꺾어버린 참 나뭇가지가 얼마든지 있었다. 곰보는 불을 피우고 애꾸는 배를 갈라 먼저 조심스럽게 쓸개를 꺼냈다. 그리고 곰의 장을 잘라 나에게 보여주었다. 곰은 겨우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발바닥만 핥고 지냈기 때문에 노란 기름이 잘잘 흐를 뿐 깨끗했다. 애꾸는 콧노래를 부르며 곰의 허벅다리 살을 얇게 저며 장에 넣고 선지피도 넣었다.
‘산돼지나 노루 피는 생피를 마시지만 곰의 피는 순대로 먹어야 해.’
굵은 나뭇가지에 장을 둘둘 말았다. 애꾸와 곰보가 나뭇가지 양쪽 끝을 잡고 모닥불에 빙빙 돌려가며 순대를 구웠다. 순대가 노랗게 익으면서 부풀어 오르고 노란 기름이 불 위에 떨어져 파란 불꽃이 일어났다. 곰보가 수통에 담아온 소주를 따라 한 모금 마시고 칼로 순대를 잘라 먹었다. 고소한 냄새가 주변에 퍼져나갔다.
‘이렇게 순대를 구우면 주변의 불청객~호랑이나 늑대들이 냄새에 끌려 모여듭니다. 자, 젊은 포수님도 한 잔.’
곰의 순대는 정말 천하일품이었다. 장 속의 기름 때문에 튀긴 것처럼 바삭바삭하고 고소했다. 우리는 봄볕 아래서 한 잔 또 한잔하다가 노곤해져서 한숨 잤다. 내장을 뺀 곰이 우리가 하는 짓을 보고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젊은 곰에게는 봉변이었지만 젊은 포수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낭만이었다.
82. 웅담과 녹용
노련한 포수는 사슴을 쏠 때는 대가리를 피하고 곰을 겨냥할 때는 흉부를 가려 쏜다. 웅담과 녹용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곰의 배를 가를 때도 무척 긴장한다. 웅담은 그 곰 값보다 더 비싸다. 쓸개 없는 사람은 살지만 쓸개 없는 곰은 곰 취급을 받지 못한다. 곰의 쓸개가 좋은가 나쁘냐의 판별은 포수에게는 어렵지 않다. 곰의 배를 가르면 내장들이 주르르 쏟아진다. 이때 붉은 간 옆에 푸르스레한 주머니 같은 것이 하나 발딱 삐어져 나오는데 그게 바로 쓸개다. 쓸개가 발딱 일어서면 좋고 크기와 색깔도 기준이 된다. 곰의 쓸개는 얼핏 보면 푸르스름하나 햇빛에 비추면서 자세히 보면 검고, 누렇고, 파랗고, 붉은색이 섞여 있다. 고운 코발트색이다. 곰의 쓸개를 제조해서 환약으로 만들어 유리잔 속 청수(淸水)에 넣으면 검은 줄이 불빛으로 변하며 뻗는데 한약상은 그 빛깔을 보고 가치를 결정한다. 나는 직접 웅담을 제조하기도 하는데 배를 갈랐을 때 발딱 일어서는 것은 제조하면 좋은 웅담이 되고, 배를 갈라도 쓸개가 어디 있는지 한참 찾을 정도면 제조해도 신통치 않다. 쓸개의 껍질을 뜯어내고 담긴 액체를 그릇에 담아 펄펄 끓는 물에 담가놓으면 굳어져 웅담이 된다. 웅담의 약효는 잘 모른다. 그러나 젊었을 때 곰사냥에서 부상을 입어 웅담으로 고친 일이 있다.
함경도 무산에서 윤포수와 곰사냥을 했는데 나무 위에서 덮친 곰에게 어깨에 부상을 입어 어깨가 마비되었다. 그놈은 나를 덮치기 전에 총에 맞았으므로 다른 부상은 없었으나 400kg이나 되는 무게에 깔려 어깨뿐만이 아니라 온몸에서 열이 나고 꼼짝을 못 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여관방에 누워있었는데 우리가 잡은 곰을 산 한약상이 찾아왔다. 당시에는 웅담을 구하기 위해 중국의 거상들이 만주와 함경도에 드나들었는데 나를 찾아온 사람은 으뜸가는 거상으로 알려진 왕대인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왕대인이 나를 진맥하고 돌아가 약을 보냈다. 그 약에는 내가 잡은 곰의 쓸개로 만든 웅담이 좁쌀만 하게 세 개 들어있었는데 매우 썼다. 그러나 약효는 신기했다. 약을 먹고 몇 시간 후 어깨의 통증이 사라졌고, 하룻밤 땀을 빼고 나니 열이 내렸으며, 손의 마비도 풀렸다. 처음에 나를 진찰했던 서양 의사는 옥도정기(머큐롬)를 발라주면서 <심한 타박상이니 한 1주일 정도 못 일어난다>고 했다. 열이 내려 왕대인을 찾아가 인사를 했더니 <이번의 웅담은 매우 훌륭했으며, 잡은 포수가 그 첫 혜택을 보았다>고 하며 웃었다. <그 곰이 병 주고 약 준 격>이었다. 왕대인은 곰의 쓸개가 신비의 영약藥이라고 했다. 원래 쓸개는 옆에 붙어있는 간에서 만들어내는 수백 가지 생명의 요소들을 농축시켜 저장하는 보물단지이며 곰이 겨울 동면 중에 3~4개월을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끄떡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쓸개에 담긴 담즙이라고 했다. 따라서 곰뿐만 아니라 사람도 쓸개에 담긴 수백 가지 생명의 요소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병이 나는데 그때 웅담으로 보충을 해주면 병이 낫는다는 논리였다. 왕대인과 나는 그때부터 친밀해졌으며 중일전쟁이 일어나 왕대인의 소식이 끊길 때까지 왕래했다. 그는 내가 잡은 곰의 쓸개를 가장 정확하게 평가했으며 좋은 물건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잡은 곰의 쓸개를 300원(2019년 가치 3억 이상)에 구입하기도 했다. 태백산맥 줄기 중 하나가 함경남도에서 강원도 쪽으로 뻗어나가는 어느 야산에서 잡은 곰이었는데 털이 마치 옻칠이라도 한 것처럼 검었고 윤기가 번지르르했다. 금렵기가 풀려 멧돼지를 잡으려고 갔다가 우연히 곰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전날 내린 눈 위에 뚜렷하게 찍힌 발자국을 보고 놀랐다. 곰은 10월 말께에는 동면을 하는데 별난 놈이었다. 발자국을 추적하다가 이번에는 정말 기겁을 했다. 산마루를 넘어서니 바로 몇 미터 앞에 새카만 곰이 우뚝 서 있는 걸 발견했던 것이다. 나도 놀랐지만 곰도 느닷없이 나타난 나를 보고 놀랐다. 그래서 곰과 사람은 몇 초 동안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다가 동시에 그 상황에서 각자 할 일을 했다. 곰은 사람에게 한 걸음 덮쳐들었고, 사람은 총을 쏘았다. 그날은 내게 행운이 붙어 다니는 날이었다. 총탄은 곰의 양 눈 사이에 있는 하얀 반점을 뚫었으며 총탄으로 뇌신경이 마비되어 빙그르르 돌더니 털썩 나가떨어졌다. 눈 깜박할 사이에 승패가 났다. 숨진 곰의 배를 갈라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쓸개가 커다란 가지만 했다. 간과 같이 붙어있지 않았다면 쓸개로 믿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곰은 아주 건강한 놈이고 동면을 하기 위해 충분히 영양을 섭취했다. 그 산에는 밤, 도토리가 풍부했고, 개울에는 가재와 물고기가 지천이었다. 그런데 내 예상대로 말썽이 생겼다. 곰 껍질을 흥정하던 모피상이 <털을 염색했다>고 우겼으며, 쓸개를 본 한약상도 <아무래도 곰의 쓸개 같지 않다>고 빈정댔다. 그까짓 껍질이야 팔리든 안 팔리든 관심 없었으나 쓸개가 가짜로 인정받은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침 청진에 와있는 왕대인에게 달려갔는데 왕대인은 그 쓸개를 보더니 선뜻 300원을 내주었다. 보통 쓸개의 두 배가 넘는 값이었고 서울 장안에서 좋은 기와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값이었다. 왕대인은 쓸개를 제련하면서 간을 잘라내며 <다음부터는 구차스럽게 간 따위는 붙여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왕대인에게 곰의 쓸개만이 아니라 70여 쌍의 녹용도 팔았다. 사슴뿔도 쓸개처럼 영약이었다. 5~6월에 묵은 뿔이 빠지고 새 뿔이 솟아난다. 나는 왕대인의 주선으로 중국 동부에서 사슴사냥을 했으며 사슴이 모여드는 곳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슴 몰래 땅집을 파놓고 사슴을 관찰하면서 몇날 며칠을 살게 되며 사슴뿔이 덜 여문 걸 알면 땅집에서 일주일이나 보름을 기다리기도 한다. 사슴에는 늘이(만주), 토레기(한국북쪽), 청토레기(만주와 한국 국경선), 일본사슴 등 여러 종류가 있고 늘이는 당나귀만큼 큰 사슴이며 그놈이 2m가 넘는 뿔을 흔들며 달리는 건 장관이다. 녹각은 사슴의 나이가 많을수록 값이 나가고, 상각-뿔의 끝부분이 더 좋다. 나는 왜정(倭政) 소화 초년에 한 쌍의 사슴뿔을 580원을 받은 일이 있다. 당시 서울 장안의 날아갈 듯한 기와집 한 채 값이다. 그 사슴은 함경북도 북쪽 만주 땅 옥돌골에서 잡았다. 동네 감자밭을 망치는 산돼지를 잡아달라는 경찰서장의 청탁에 못이겨 산돼지를 잡으려다가 우연히 사슴을 잡았다. 산돼지는 몸에 기생하는 기생충을 털어버리려고 나무에 비비거나 진흙탕물에서 뒹군다. 이른바 흙탕인데 산돼지사냥의 지표로 삼는다. 그런데 그날 몰이꾼이 나를 안내한 곳은 산돼지 흙탕이 아니라 사슴 흙탕이었다. 때는 마침 녹용의 계절 5월이라 산돼지 따위는 잊어버리고 사슴을 추적하여 1km쯤 떨어진 계곡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사슴을 발견하여 단발로 쏘았는데 청토레기였다. 사슴의 목을 통째로 잘라 청진의 왕대인에게 가지고 갔다. 왕대인이 사슴뿔을 한참 동안 보더니 긴 한숨을 쉬며 일단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다. 왕대인이 청진의 가장 고급요정에 호화로운 주연酒宴을 베풀었다. 그는 사슴뿔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호탕하게 술을 마시며 내 사냥 얘기를 들었다. 술이 어지간해지자 기생에게 주판을 가지고 오래더니 주판알을 튀겼다. 580원이었다. 나중에 왕대인이 그 뿔은 자기가 취급한 8,000여 개의 뿔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는 뿔만 보고 사슴의 나이와 족보를 알려주었다. 그 사슴은 몇 년 전에 자기가 취급한 사슴의 일가라고 하며 제발 그 사슴 일족이 멸종되지 않기를 바랬다. 왕대인은 사슴뿔을 손수 다루었다. 특별히 마련한 방에서 단정하게 꿇어앉아 두꺼운 쇠솥에 맑은 물을 펄펄 끓여 냉수를 홱! 뿌리고 사슴뿔을 물속에 살짝 집어넣는다. 잠시 후 뿔을 꺼내어 그늘에 말렸다가 다시 뜨거운 물에 넣고. 왕대인은 무려 일주일 동안 그 일을 되풀이한 끝에 약재로 완성된 뿔을 보여주었다. 야들야들한 뿔이 단단하게 다듬어졌다. 왕대인은 그 뿔을 중국 정부의 최고 요인에게 선물하겠노라 말했는데 그 뿔을 복용한 사람이 얼마나 무병장수했는지 ….
83. 암살자 표범
사슴의 뒤를 쫓고있는 표범의 발자국은 희미했다. 사슴의 발자국이 꽉꽉 찍어누른 목도장(木圖章)이라면 사슴의 발자국은 종이에 살짝 대다 만 고무도장이었다. 얼핏 보면 무슨 발자국인지 분간이 잘 안 되었으나 바위 위에 찍힌 걸로 표범의 발자국을 구분할 수 있었다. 꽃무늬 발자국이다. 육식동물의 습성으로 그놈도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사슴을 뒤따르면서 걷고 있었다. 표범은 우리들처럼 발자국을 추적하지 않고 사슴의 향방을 보며 추적한다. 표범은 사람과 달리 날카로운 코와 귀 그리고 눈으로 추적한다. 몰이꾼이 표범의 발자국이 나타나자 사슴몰이를 포기하자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것은 반대였다. 나는 벨기에제 산탄총 5연발에 사슴용 납탄을 빼고 맹수용 철탄을 장전했다. 그리고 사슴잡이 대신 표범을 잡아야 한다고 명령했다. 암살자 표범이 이 지역에 출몰하는 한 사슴이 이 지대에 서식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사슴을 사로잡으려던 우리의 계획은 수포화 된다. 암살자를 잡는 방법은 암살자의 방법을 따르는 것이다. 등을 비수로 찌르는 자에게는 등 뒤에서 습격해야 한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추격을 하다가 부근 인가로 내려왔다. 이튿날 새벽 다시 추적했다. 몰이꾼과 발자국꾼도 도끼, 대나무창으로 무장을 했다. 오후 서너 시 경 한국과 만주 국경지대까지 표범을 따라갔는데 발자국꾼의 눈짓으로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위험신호였으며 언제 표범의 습격을 받을지 모르는 사선이었다. 산마루가 ㄱ자로 구부러졌는데 표범이 달리고 있었다.
(이놈이 여기에서 사슴을 앞지르려 하고 있어.)
발자국꾼의 예상은 적중했다. ㄱ자로 구부러진 산마루에서 사슴과 표범의 발자국이 교차 되었으며 핏자국이 있었다. 교활한 표범이 남쪽으로만 가는 사슴을 앞질러 대기하고 있다가 덮쳤다. 나무 위에서 사슴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가 사슴이 지나가자 뒤에서 덮쳐 사슴의 등에 올라탔다. 표범의 무게로 쓰러진 사슴의 동맥을 물어뜯어 버렸다. 주변이 피바다가 되었다.
(오냐, 복수는 내가 해주마!)
어금니를 물었다. 발자국 추적이 필요 없었다. 표범은 약 300m 떨어진 계곡까지 사슴을 끌고 가서 뜯어먹었다. 사슴고기를 포식한 표범은 그 자리에서 쉬다가 남은 사슴고기를 물고 옆의 잡목림으로 들어갔다. 잡목림에 들어가기 전에 경고했다. 앞서지 말고 멀리 떨어지지 말라고 경고했다. 표범은 은신술의 천재이며 언제 어디서 덮쳐들지 모른다.
‘앗!’
뒤를 따라오던 몰이꾼이 나무 위를 가리켰다. 3m 위의 나뭇가지에 사슴이 걸려있었다. 물론 사슴이 한 짓이었으나 자기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사슴을 나무 위로 끌어 올린 재주는 놀라웠다. 나무에 걸린 사슴고기를 까마귀 서너 마리가 쪼아먹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도 욕심 많은 까마귀는 개의치 않았다. 몰이꾼이 돌멩이를 던지자 까악! 까악! 악담을 하며 날아갔다. 나는 표범이 남겨둔 사슴고기를 먹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어둠 속에서 표범과 대결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요. 장님이 눈 뜬 사람과 싸우는 격이지.’
발자국꾼이 단호하게 반대했으며 몰이꾼도 지극히 무모하고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총이 있지 않은가?)
어둠이라고 하지만 하늘에는 만월에 가까운 달이 뜰 것이고.
‘괜찮아, 오늘은 달이 뜨는 날이야.’
‘우리는 달빛에 표범을 볼 수 있지만 우리가 숨어있으면 표범은 우리를 볼 수 없어.’
해는 이미 서산으로 떨어졌지만 산 위에 달이 걸려있었다. 몰이꾼이 나무 위로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나는 사슴이 걸려있는 나무에서 10m쯤 떨어진 나무 위에 올라가 사슴고기에 조준을 맞추었다. 발자국꾼을 시켜 총부리와 사슴고기 사이의 나뭇가지를 잘라버렸다. 달빛이 사슴고기를 잘 비추도록 위의 가지도 쳐냈다. 나뭇가지를 엮어 세 사람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보마를 만들어 위장을 했다. 밤이 깊어가자 추위와 긴장 속에서 자꾸 눈이 감겼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교대로 자기로 하고 떨어지지 않도록 나무에 몸을 묶었다. 몇 시간을 잤을까? 나는 부지중 눈을 떴다. 뭣인가 이상한 예감이 신경을 건드렸다. 내가 눈을 뜨자 코를 골던 몰이꾼도 눈을 떴다. 그때까지 자지 않고 보초를 섰던 발자국꾼이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뜻이다. 주위는 캄캄했으나 사슴이 매달린 부근은 달빛이 스며들어 사슴의 윤곽이 어슴프레 보였다. 나는 온 신경을 모아 사슴 주위를 살폈다. 이상한 기척이 있었다. 눈이나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코로 느끼는 기척이었다. 발자국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낙엽을 밟는 소리였다. 3~4초 후 다시 발자국소리가 났다. 비스락! 바스락! 이번에는 분명하게 들렸다. 달빛 아래 움직이는 물체가 드러났다. 방아쇠를 당기려다 일순 주저했다. 표범이 아닌 것 같았다.
(무엇일까?)
뭣인지, 두 마리가 사슴이 걸린 나무 주변을 빙빙 돌았다.
(옳지. 늑대구나!)
사슴고기 냄새를 맡고 왔으나 나무 위에 오를 재주가 없는 늑대는 주의를 빙빙! 돌다가 펄쩍! 뛰기도 했으나 사슴고기가 저절로 입에 들어올 리 없어서 안타깝게 빙빙! 돌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늑대들이 행동을 멈췄다. 늑대가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경계 태세였다. 나도 총을 들어 올렸다. 늑대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딱! 멈추더니 후다닥! 도망갔다. 늑대가 도망친 자리에 뭔가 나타났다. 소리 없이 나타난 긴 그림자, 늑대가 놀라 달아날 짐승은 표범밖에 없다. 밝은 빛을 싫어하는 표범은 어둠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캄캄한 어둠의 죽음 같은 침묵. 나무 위의 우리는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만약 나무 위 우리를 발견한다면, 표범은 어둠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고 나무를 타는 재주가 있으므로 표범이 우리를 발견하는 건 죽음을 의미했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한참 만에 떴다. 어둠을 익히기 위해서다. 사슴이 걸린 나무에 두 개의 푸른빛이 보였다. 나는 그 두 개의 빛 사이에 조준을 맞추었다. 두 개의 눈 사이에서 이마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냥 두 개의 빛 사이를 겨냥해서 발사했어야 하는데, 총을 들어올리는 순간 발사했어야 하는데, 총을 들어 올리고 표범의 이마를 찾는 그 짧은 1초도 못 되는 순간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빛이 사라졌다. 그 숨 막히는 시간이 7~8분이나 계속되었다. 드디어 표범이 나무 위로 올라가 사슴고기를 뜯었다.
‘꽝!’
총구에서 파란 불빛이 터지는 순간 픽! 하고 총탄이 부드러운 물체를 파고드는 소리를 들었다. 털썩! 사슴고기가 표범과 함께 떨어졌다. 몸서리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부상을 당한 표범이 마치 수천 개의 시계태엽이 한꺼번에 풀어지는 소리를 내며 펄쩍! 펄쩍! 뛰었다. 표범은 자기를 기습한 적을 찾고 있었으나 나무 위의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제 2탄을 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조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표범에게 우리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2~3분 후 표범의 발악하는 소리가 멀어졌다. 날이 희무끄레 밝아지자 나무에서 내려왔다. 발자국꾼이 표범은 왼쪽 어깨에 철을 맞았으나 중상이 아니라고 했다. 부상한 표범을 따라가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표범은 은신술의 천재이고 기습의 상습자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덮쳐들지 모른다. 오히려 표범의 기습을 기다려야 한다. 숨어있는 표범을 찾기 어렵고 찾다가 기습을 당하는 것보다 표범이 공격해오는 게 더 유리하다. 날아오는 표범을 날치기로 쏘는 것이다. 멧돼지탄을 빼내고 꿩탄을 장착했다. 표범이 한만(韓滿) 국경의 울창한 삼림으로 들어갔다. 다섯 시간을 추적했으나 불과 2km를 갔다. 정오께 발자국꾼이 손짓을 했다. 일직선으로 달아나던 표범이 되돌아서서 서성거린 자국이 있었다. 표범이 추격을 눈치채고 따라오는 우리를 관찰한 것이다. 표범과 대결할 시간이 다가왔다. 부상 당했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달아나기만 할 표범이 아니다. 발자국꾼이 나무토막에 흘린 피를 손가락에 묻혀 보여주었다. 피가 마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표범이 2~3분 전에 지나갔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앞장섰다. 발자국꾼이 필요 없다. 나는 표범이 숨어있는 곳을 눈치챘다. 까마귀 서너 마리가 하늘을 빙빙 돌고 있었다.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2~300평의 잡목림에는 관목, 넝쿨과 잡초가 무성해서 표범이 숨기 딱 알맞은 곳이다. 암살자에게는 알맞았으나 포수에게는 최악의 장소였다. 관목림 앞 20m 지점에서 멈췄다. 첫 탄과 두 번째탄을 쏠 시간은 있어야 한다. 몰이꾼을 시켜 잡목림에 돌멩이를 마구 던졌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표범은 시야가 트인 곳에 나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돌멩이와 으르렁거리는 싸움이 10여 분이 지났다. 지쳤다. 돌멩이가 멈추자 으르렁 소리도 멈췄다.
(도망갔나?)
좀 위험했지만 발자국꾼과 몰이꾼에게 대기하라 명령하고 바른쪽으로 돌아가 봤다. 그때 관목림에서 표범이 튀어나와 약 10m쯤 떨어진 바위 뒤로 숨었다. 워낙 빨랐고, 한 손에 총을 쥐고 다른 손으로 나무뿌리를 잡고 기어서 올라가고 있었으므로 총을 쏘지 못했다. 그러나 표범이 뛰어든 바위 주위에는 은폐물이 없었다. 좋은 기회다. 벌떡 일어나 바위로 달려갔다. 내가 바위에 20m쯤 육박했을 때 바위 그늘에서 표범이 뛰어나와 소리 없이 덮쳐들었다. 표범과 나 사이에는 허벅지 정도의 잡초들이었는데 그 잡초들 사이로 미끌어지듯 달려왔으며 나는 두 갈래의 풀과 표범의 노란 등만 보았다. 표범의 머리 앞 약 10cm 부분을 겨냥해서 쏘았다. 꿩 날치기기법이다. 꿩은 날아가는 속도가 있기 때문에 그 속도를 감안하여 머리 앞 10cm를 쏜다. 꿩이 탄환에게 날아와서 스스로 맞는다는 사냥기법이다. 표범이 곤두박질했다. 탄환을 머리에 맞아 스스로 달려온 탄력으로 꼬꾸라진 것이다. 그런데 표범이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섰다.
‘쏘아라! 쏘아.’
몰이꾼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나는 총을 들지 않았다. 표범은 다시 나에게 달려들려고 허우적거릴 뿐이다. 나는 벌써 그의 눈알이 허옇게 돌아가는 걸 보았으며, 그 화려한 껍질을 산탄총 구멍으로 망가뜨리기 싫었다.
84. 맹수 사냥개들
1939년, 황해도 봉산군 은주면에 있는 광동마을 뒷산에 이때껏 보지 못한 괴물이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리인 줄 알았다. 생김새가 개나 늑대와 비슷했지만 등치가 우람했다. 송아지만 한 몸집과 긴 털 그리고 험상궂은 상판이 이리와 비슷했다. 몰이꾼들이 그 괴물을 <이리 사냥개>라고 했다. 시베리아 혈통의 만주개였다. 제법 추운 날씨였으나 만주개들은 추위를 모르는 듯 산기슭에서 제 세상을 만난 것처럼 뛰어다녔다. 모두 세 마리, 선두에 선 것은 두목 바둑이다. 강한 바람을 안고 달려오는 바둑이는 머리와 가슴의 긴 갈기털이 마치 사자 같았다. 세 마리의 개들은 단숨에 들판을 돌파, 산기슭으로 치닫고 있었다. 산중턱에서 토끼를 발견했는데 두목의 일격에 눈 속에 나뒹굴었다. 두목은 다른 개들을 불러 토끼를 즉결처분했다. 두 다리를 잡아 찢어 먹어 치워버렸다. 내 승낙도 받지 않았으나 나는 모른 체했다. 사냥개가 그런 난폭한 짓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나는 그들에게만은 그걸 짓을 눈감아주었다. 그들은 꿩, 오리나 여우 따위를 잡는 사냥개가 아니라 목숨을 내걸고 범, 곰과 멧돼지들과 싸우는 맹수 사냥개들이었다. 일반 사냥개-포인터, 셰퍼드, 스파니엘은 만주나 한국에서는 맹수 사냥을 못한다. 그 연약한 몸으로는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강풍 속에서 덩굴에 감기고, 가시에 찔리고, 바위에 부딪히면서 맹수들과 싸울 수 없다. 그들은 범의 발자국만 봐도 오금을 펴지 못한다. 그래서 맹수 사냥을 하는 나는 언제나 시베리아견 계열의 만주개나 아이누견 등 대형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을 했는데 그날 출동한 개들은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개들이 흩어져 수색을 하는 걸 보고 천천히 산마루로 올라갔다. 주변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지점에서 개들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이다. 만주개들은 함부로 짖지 않는다. 난데없이 덮쳐든 개들을 피하기 위해 짐승들이 우왕좌왕하는 게 보였다. 한 시간쯤, 마침내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나지막하게 그리고 차츰 높아지면서 온 산에 울려 퍼졌다.
‘꽤 큰 멧돼지로구나!’
나는 담배쌈지를 호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일어섰다. 개들의 짖는 소리가 더 요란해졌으며 신경질적이었다. 뭔가 초조하고 다급했다.
(멧돼지가 아닌가?)
이상한 예감이 들어 달려갔다. 산마루를 두 개 넘어야 했는데 하나 넘을 때까지 짖고 있었다. 개가 짖는다는 건 아직 공격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고 공격을 못 한다는 것은 상대가 섣불리 덤벼들 수 없는 거물이라는 뜻이다. 특히 두목이 저토록 다급하게 짖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범일까? 설마 이런 야산에 범이 ….)
소리가 난 곳은 산 너머 관목림이었다. 나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단숨에 산마루를 넘었다. 개들의 짖는 소리가 워낙 다급했으므로 생각할 겨를없이 덮어놓고 싸움판에 뛰어든 것인데 정말 위험한 짓이었다. 산마루를 넘어서 밑으로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누런 보자기가 눈앞에 확! 펼쳐졌다.
(범이다!)
생각과 방아쇠가 동시에 작동했다. 단발 라이플로 날치기를 한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자 말자 엎드렸다. 표범은 앞발로 내 머리를 차면서 나를 타고 넘어갔다. 머리가 뜨끔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타격으로 가죽 모자가 찢어지고 머리를 네 바늘이나 꿰맸다. 나를 타고 넘어간 표범은 산마루에서 몸을 돌렸으나 그도 내가 쏜 총탄에 어깨뼈가 부서지는 관통상을 입어 비틀거렸고 나를 덮치는 동작이 약간 늦어졌다. 그 틈에 두목이 들이닥쳤다. 두목은 달려왔던 여세로 표범을 밀어붙여 목줄을 더듬었다. 워낙 큰 개라 표범에 견주어 손색이 없었으며 표범은 두목의 힘에 밀려 벌러덩 넘어졌다. 표범이 앞발로 두목의 대가리를 후려치면서 뒷발로 땅을 차고 두목과 뒹굴었다. 산마루였으므로 두목과 표범은 한 덩어리가 되어 산밑으로 굴러가고 개들이 요란하게 짖으며 뒤를 따랐다. 산마루를 넘어 아래 계곡을 보았을 때 두목과 표범의 싸움은 끝나가고 있었다. 표범은 잔솔에 걸려 배를 하늘로 누워있었고 두목은 표범의 목줄을 물고 위에서 누르고 있었다. 나는 표범의 꼬리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진 개들의 어깨너머로 표범의 아랫배에 강철탄을 한 발 더 먹였다. 예기치 않았던 사냥이었는데 멧돼지를 따라 내려온 표범을 개들이 발견했다. 만주개들은 무모한 개였는데 학자들은 옛날 시베리아 광야를 누비던 야견(野犬)이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시베리아견이 됐고, 그 시베리아견이 동남아 쪽으로 내려와 아이누견과 일본의 가라후토견이 되었고, 서남쪽으로 내려와 만주개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만주개들과 아이누견이 용감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만주개는 더 크고 더 사납다. 만주개가 사나운 것은 이유가 있다. 중국은 워낙 나라가 크기 때문에 전란이 잦았고 특히 동북 지방에서는 지방 군벌, 파벌의 사병, 마적, 비적들이 날뛰었다. 그래서 지방의 권세가나 부자는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병을 양성했는데 사병을 금지하자 개를 키웠다. 지방의 부호 집에는 의례 여남은 마리의 대형 개를 길렀고 일주일마다 소나 돼지를 잡아 먹이로 주었다. 어떤 집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던져주었다. 특히 겨울에는 땅이 1m 이상 얼어붙어 매장을 할 수 없었으므로 시체는 개들의 먹이가 되었다. 그래서 만주개들은 크고 사나운 개가 되었다.
나는 1935년 늦은 봄에 함북 무산 너머 만주 땅 유동마을에서 두목을 입수(入手)했다. 그때 나는 산돼지를 몇 마리 잡아 주머니가 제법 두둑했는데 술이나 한잔하려고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에서는 살벌한 고함소리가 들렸고 개의 사나운 울부짖음도 들렸다. 서너 명의 중국인들과 한국 사람들이 곡괭이, 몽둥이를 들고 개 한 마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그 개를 보고 놀랐다. 송아지만 한 만주개였으며 첫눈에 맹수 사냥개로 알아보았다. 사람들의 위협을 받은 개가 나지막하게 목을 굴리며 공격태세였다. 몽둥이나 곡괭이로 만주개를 상대하지 못한다. 개의 주인이 개의 목덜미를 안고
‘이 개를 죽이려면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애원했다. 한눈에 봐 아편쟁이였다. 아편쟁이는 이 마을의 부호였으며 인간관계가 좋았으나 아편으로 망해버렸다. 알거지가 된 사내는 개를 시켜 마을의 가축을 물어오게 하여 아편을 했다. 그래서 가축을 잃은 마을 사람들이 개를 죽이려 했다.
‘여러분, 저 개가 그렇게 밉다면 내가 처분해드리지요. 어설프게 덤비다가는 도리어 봉변을 당할 것이니 나에게 맡겨주시오,’
사람들이 논의한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주인에게 10원(현재 가치 10만 원)을 주고 개를 입수했다. 산돼지 한 마리 값이었으나 그 개의 가치로는 공짜로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개 주인은 손을 벌벌 떨면서 돈을 받아쥐고는
‘바둑아, 바둑아! 이젠 너까지 팔아먹는구나. 용서해다오.’
하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개를 안고 통곡을 하다가 갑자기 깔깔 웃었다.
‘잘 됐어, 아편쟁이 주인 놈보다 새 주인이 좋을 거야.’
두목을 집으로 데리고 오자 이미 기르던 세 마리의 개들이 작당하여 박대했다. 세 마리의 개들도 큼직한 만주개였으나 사흘 후에는 바둑이가 그들의 두목으로 군림했다. 예 주인 밑에서 굶주렸던 바둑이는 한 달 후에는 살이 오르기 시작하여 무시무시한 개로 변했다. 체중이 100kg나 되었다. 바둑이라고 부르지 않고 두목이라고 개칭하여 한 달 만에 사냥터에 데리고 갔다. 만주개는 덩치가 큰 만큼 느렸으나 두목은 사자처럼 달렸다. 마치 사자처럼 갈기도 있었다. 몸무게를 이용하여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무서운 속도로 달렸다. 첫 사냥에서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산마루로 올라가 담배만 태우고 있었는데 담배 한 개피를 태울 무렵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앞산 계곡 쪽이었고 한두 번 짖고는 조용해져 버렸다. 그리고 대신 꽥꽥거리는 산돼지 울음소리가 났다. 산돼지는 욱욱하고 울부짖는데 꽥꽥하는 걸 보면 승패가 이미 끝난 것이다. 내가 달려갔을 때 산돼지는 두목에게 목줄이 물려 죽어있었다. 나는 아이가 없어 개들을 쳐다보았다. 두목은 좋은 사냥개가 아니다. 맹수 사냥개는 짐승을 포수에게 몰아 포수가 잡게 하는 보조역할인데 두목은 직접 사냥을 해버린 것이다. 포수가 오히려 보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두목의 버릇을 고치지 않았다. 잘못하다가는 두목이 폐견이 되어버릴 염려가 있었다. <사람 버릇은 개도 못 준다>고 했는데 개 버릇은 누구에게 줄 것인가? 두목은 그 후 50여 마리의 산돼지를 물어 죽였다. 두목이 산돼지를 사냥하는 방법은 한결같다. 어린놈이면 대뜸 목줄을 물어 죽이고, 좀 큰 놈-송곳니가 나와 있는 놈은 정면에서 위장위협을 하다가 산돼지가 뒤로 물러서면 따라가면서 계속 위협을 한다. 견디다 못한 산돼지가 덤벼들면 슬쩍 몸을 피해 산돼지 등에 올라타 목줄을 문다. 산돼지가 큰 놈-송곳니가 창날처럼 번쩍이는 놈이면 두목도 신중하다. 절대로 정면에서 싸우지 않는다. 정면에서 도발하는 척하면서 산돼지가 돌격을 하면 역시 슬쩍 피하며 등에 올라탄다. 산돼지가 정지하면 뛰어내려 공격을 한다. 이렇게 거듭하면 산돼지가 지친다. 그때가 되면 내가 달려와 산돼지의 숨통을 거둔다. 두목은 내가 산돼지와 대결하는 걸 언짢아하는 눈치다. 두목의 전투경력은 화려하다. 몇 개의 훈장을 받아도 될만한 역전의 용사다. 두목이 이끄는 사냥팀은 만주의 산야를 누볐다. 산돼지 50여 마리, 사슴 30여 마리, 곰 세 마리, 표범 두 마리 그리고 노루 살쾡이는 부지기수다. 두목은 결코 용기와 힘만으로 사냥을 하지 않았다. 경력이 늘어가면서 스스로 지능적인 기술을 터득했다. 그는 우둔한 산돼지는 데리고 놀았으며, 약은 여우나 너구리에게도 결코 속지 않았다. 그가 부하들을 지휘하여 사슴이나 노루를 몰면서 사냥을 하는 걸 보면 손뼉을 치며 응원했다. 겁쟁이 노루는 개만 보면 <걸음아! 날 살려라>고 도망하기 때문에 개들의 속력으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다. 두목은 부하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한다. 한 놈을 보내 사슴이 도망할 퇴로를 막고 자기는 목을 잡는다. 나머지 한 마리가 사슴을 쫓으면 놀라서 <걸음아 날 살려라>고 냅다 뛴다. 그러면 목을 지키던 개가 불쑥 튀어나와 사슴의 앞길을 막는다. 도망하는 사슴이 갈 길은 일부러 터놓은 길밖에 없다. 사슴은 기진맥진하여 두목이 숨어 지키는 목으로 가는데 두목이 쏜살같이 달려 나와 사슴이 방향을 바꾸기도 전에 덮친다. 그러나 개의 사냥이 언제나 성공하지는 않는다. 나는 모두 열네 마리의 만주개를 길렀으나 그 중 일곱 마리가 사냥터에서 죽었고 두목도 무수한 상처를 입고 사냥터에서 죽었다. 두목의 상처에서 가장 위험했던 것은 곰으로부터 얻어맞은 허리의 타박상이었고, 가장 처참했던 것은 살쾡이에게 물린 목의 상처였으며 가장 보기싫은 상처는 투견에게 물려 찢겨 반쪽이 된 귀였다. 치명상은 멧돼지에게 받았다. 두목이 곰에게 반죽음을 당했던 건 따지고 보면 포수의 잘못이었다. 그때 나는 심한 독감에 걸려 청진의 여관에 누워있었다. 평소에 잘 아는 몰이꾼이 일본인 포수 나가구찌와 같이 찾아와서 한참 수선을 피우다가 개들만 빌어 데리고 갔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몸무게 300kg이 넘는 곰과 싸우는 개들을 20여 분 동안이나 방치했다. 포수와 몰이꾼은 개들을 풀어놓고 늑장을 부렸으며 도중에 점심도 먹었다. 그래서 개들과 사이가 2km나 벌어졌으며, 구나마 포수는 뒤쳐졌고 몰이꾼만 현장에 도착했다. 개와 곰이 모두 다 지쳤다. 개와 곰의 싸움은 본래 단조롭다. 곰은 털이 워낙 거세고 길어서 곰에게 개가 치명상을 입힐 수가 없다. 그래서 곰의 주의를 뱅뱅 돌면서 틈을 타 고작 털을 물고 늘어지거나 발이나 코를 물고, 곰도 재빠른 개를 잡을 수 없어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을 하는 거 뿐이다. 사람이 도착하자 곰은 힘을 내서 달아났고 개는 달아나는 곰의 앞길을 막아서며 지키려고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포수가 건너편 산마루에 나타나 개를 치우라고 고함을 쳤다. 70여 미터나 된 곳에서 총을 쏘겠다는 말인가? 개를 치우라지만 개가 물러서면 곰이 몰이꾼을 죽일 텐데 …. 화가 난 몰이꾼이 <빨리 골짜기를 건너오라!>고 고함을 치니 그제야 허겁지겁 골짜기를 건너왔다. 그 사이에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의 고함소리에 당황한 곰은 앞길을 막아선 두목을 덮쳤는데 두목이 재빨리 물러섰으나 뒷발이 고목 뿌리에 걸렸다. 발이 걸려 물러설 수 없다는 걸 간파한 두목이 땅을 박차고 올라 곰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곰의 콧등을 물었다. 곰의 콧등은 급소다. 화가 난 곰이 두목의 앞발을 잡아 휘둘러 내동댕이쳤다. 공교롭게 두목은 바위에 부딪혀 늘어져 버렸다. 주둥이에 눈깔사탕만 한 곰의 콧등을 물고 …. 느림보 포수는 그제야 도착해서 발사를 했고 요행이 총탄이 심장을 뚫어 곰은 즉사했다. 두목은 허리뼈가 뿌러져 병신이 될뻔했으나 수의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소생했다. 두목의 두 번째 상처는 봉변이었다. 하찮은 살쾡이에게 당했으니 …. 초겨울, 살쾡이가 마른 풀 위에서 낮잠을 자다가 개들에게 발견됐다. 살쾡이가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미 개들에게 포위되어 탈출구가 막혔다. 두목이 다짜고짜 살쾡이에게 달려들어 목줄을 물려고 했는데, 보통 살쾡이들은, 목줄이 물려 두목에게 서너 마리가 잡혔는데 그때 그놈은 범이라고 오인할 만큼 크고 늙은 놈이라 두목이 위에서 덮치자 아래에서 반격을 했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두목의 대가리를 할퀴면서 밑으로 파고들어 두목의 목줄을 물었다. 급소를 물린 두목이 힘으로 밀어부쳤으나 살쾡이는 목줄을 놓지 않고 두목이 목을 땅에 비벼대자 깊이 물지 못해 떨어져 나갔다. 목줄의 껍질이 벗겨진 두목은 미친 듯이 살쾡이를 물어뜯었다. 살쾡이는 걸레가 되어 죽었으나 두목의 상처도 깊었다. 두목은 그해 여름 세 번째 죽음의 고비를 넘었다. 사냥개는 여름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그래서 두목도 더위에 축 늘어져 혀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꼴이 측은해서 두목을 데리고 나갔다. 공교롭게 주인에게 이끌려 운동을 하러나온 개들이 몇 마리 있었다. 개들 중에 일본산 투견이 있었다. 가슴에 십자가형 가죽띠를 매고 쇠사슬 줄을 주인이 잡고 있었다. 보통 개의 두 배쯤 컸으므로 다른 개들은 눈치를 보며 슬슬 피했는데 주인은 그걸 즐기는 셈이었다. 그 개 주인과 투견이 두목을 봤다. 투견이 으르렁! 목을 굴렸다. 그러나 두목은 그 개를 겁내지 않았다. 관심도 없었으므로 무심코 지나갔다. 그때 주인이 일부러 쇠사슬을 슬그머니 놓았으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투견이 두목을 덮쳤다. 기습을 당한 두목이 반격을 하려고 했으나 내가 목줄을 잡고 있었으므로 움직이지 못했다. 투견이 두목의 귀를 물고 두목을 쓰러뜨렸다. 주인은 말리려는 뜻이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나도 화가 났다. 줄을 놓아주었다. 두목은 평소에는 같은 개끼리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 싸울 상대도 없었다. 투견은 몸집은 두목보다 작았으나 무게는 더 나가는 것 같아 두목을 밑에 깔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두목은 고전했으며 귀에서 피가 흘렀다. 두목이 화가 난 듯 우우! 하고 으르렁거렸다. 나는 두목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의 의미를 안다. 표범과 싸울 때, 멧돼지를 물어 죽일 때 뱃속에서 밀어내는 무서운 분노의 소리였다. 나는 이때 두목이 다칠까 하는 염려보다는 투견의 목숨을 염려했다. 투견의 주인은 두목 위에 올라타고 두목을 깔아뭉개는 모습을 보며 좋아라고 웃고 있었다. 그 바보 같은 주인은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자기 개가 투견대회에서 우승 후보였다느니, 이때껏 싸워서 진 일이 없다고 지껄이고 있었다. 내가 염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투견에게 깔려있던 두목은 투견이 문 앞발을 내버려 두고 투견의 목줄기를 더듬었다. 보통 개들이 싸우는 방법이 아닌 맹수와 싸움의 필살기다. 능글맞던 투견도 두목의 필살기를 느끼고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두목은 도망치려는 투견의 목을 놓지 않고 오히려 투견을 밑으로 깔아뭉갰다. 두목은 물고 있던 투견의 목줄을 일단 놓았다가 다시 더 깊이 물었다. 그리고 맹수를 죽일 때처럼 대가리를 흔들었다. 목줄을 끊어버리려는 것이다. 투견이 피투성이가 되고 눈알이 허옇게 돌아가는 걸 보고 주인이 놀랐다.
‘치쿠쇼! 고이쓰기와 찌까이 이누다(이 새끼, 이놈은 미친개구나!)’
중니이 게다 발로 두목을 차려고 했으나 내가 말렸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주인도 죽는다. 내가 고함을 쳤다.
‘두목! 그만둬, 두목!’
두목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제서야 상대가 산돼지나 표범이 아니라 같은 동족이라는 걸 알아차린 듯 투견의 목줄을 놓았다. 투견은 아차! 잠깐 늦었으면 목줄이 끊겨 죽었을 것이나 중상만 입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살았다. 주인이 미친 듯 날뛰었다.
‘기지까이다 기지까이(미친개다, 미친개)!’
나는 단호하게 내 개는 미친개가 아니고 사냥개라고 말했다. 표범, 산돼지를 수없이 잡았다고 덧붙였다. 일본인 주인은 그제서야 그날 싸움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듯 비실거리며 달아나는 투견의 뒤를 쫓아갔다.
지루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나무 밑 그늘에서 혀를 빼물고 헐떡거리던 개들도 낙엽이 지고 날이 쌀쌀해지면 생기를 찾는다. 짖고 뛰어다니며 예비운동을 한다. 그러나 첫 사냥은 대개 실패한다. 충분히 준비를 하지 않은 탓이다. 두목을 데리고 온 지 4년째 되던 해 초겨울, 우리는 첫눈이 내리는 걸 보고 경북 문경군 야산을 찾았으나 사냥은 실패했다. 진눈깨비가 내려 발자국이 모두 지워져 버렸다. 하루종일 헛수고를 하고 마을로 내려오다가 두목이 귀를 세우고 긴장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멧돼지 발자국이었다. 400kg이 넘는 거물이었는데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니 어떻게 하나? 돌연 두목이 짖으며 20여 미터 떨어진 바위 밑으로 돌진했다. 바위 뒤에서 요란하게 짖었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바위를 옆으로 돌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시커먼 탱크같은 그림자가 스쳤다. 주저 없이 발사했다. 멈칫! 했으나 그대로 달아났다. 쫓는 개는 두 마리였다. 두목이 보이지 않았다. 두목은 바위 밑에 누워있었다. 전지로 비추어보니 가슴과 배가 찢어져 창자가 흘러내렸다. 어둠 속에서 멧돼지의 공격을 받아 어금니에 배가 갈라진 것이다.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미쳐버렸다. 개들에게 몰려 어물거리는 멧돼지를 향해 마구 총탄을 퍼부었다. 6발을 모두 퍼부었다. 멧돼지는 벌집이 되었다. 그러나 두목은 죽었다. 만주 땅 아편쟁이로부터 사들인 뒤 4년째였다. 그는 사냥개로써 한창 왕성하게 사냥을 할 수 있는 여덟 살에 죽었다. 두목이 언제나 가지고 놀렸던 멧돼지 따위에 죽은 것은 연습 부족이었다. 예비연습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85. 사냥꾼의 참극
내가 서른세 살 때, 황해도 금천군 수륭산에 대호가 출몰한다는 사냥 정보가 들어왔다. 표범이 아니라 대호라는 말에 수렵계가 술렁였다. 그 당시에는 한국 범이 사라졌는데 다시 나타났다는 건 놀랄 일이었다. 서울의 포수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내가 가기로 결정이 되었는데 포수 김씨가 동행하겠다고 나섰다. 김씨는 본디 사냥꾼을 안내하여 꿩이나 노루를 잡는 포수였고 맹수 사냥 경험이 없는 포수였으므로 거절했는데 어찌나 사정을 해서 조수 삼아 데리고 갔다. 수륭산에 대호가 돌아다닌다는 건 지방 포수, 마을 사람들, 나무꾼들이나 화전민들이 한결같이 증언했다. 특히 수륭산 산기슭에 사는 화전민 정씨는 며칠 전에 범이 산돼지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범에게 쫓긴 산돼지가 산골짜기에 내려와 범과 싸웠다고 했다. 이튿날 정씨가 현장에 가봤는데 개울의 얼음이 산산조각 나고 핏자국이 널렸다고 했다. 정씨가 청년 두 사람과 핏자국을 따라가 보니 산중턱 바위에 허벅다리만 남은 산돼지시체가 있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산돼지고기를 얻어먹었는데 나무꾼 박씨와 일본인 순사도 범이 남긴 산돼지나 노루고기를 얻어먹었다. 그들도 뒷다리 고기를 얻어먹었는데 왜 범이 뒷다리를 남겨놓는지는 이유를 몰랐다. 나는 도착 즉시 발자국을 조사했는데 범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범의 똥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었다. 범은 짐승을 잡아먹고 살기 때문에 다른 동물의 똥과 달리 비릿한 고약한 냄새가 난다. 발자국도 수륭산 남쪽의 하름산에서 발견했다. 허나 그 발자국이 대호인지 표범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표범의 것이라기에는 엄청나게 크고 대호의 발자국이라고 보기에는 어쩐지 좀 작았다. 이튿날 범사냥을 시작했는데 진눈깨비가 내려 발자국 추적이 어려워 범을 몰아서 잡기로 했다. 우리들-나와 김포수 그리고 맹수 전문 몰이꾼 박씨, 현지 몰이꾼 세 사람이 하름산에서 몰이를 시작했다. 범의 몰이는 산돼지나 노루몰이 하고는 다르다. 산돼지나 노루는 삼 방면에서 포위하여 포수가 기다리는 목으로 짐승을 몰아오는데 범을 그렇게 몰면 큰일난다. 범은 삼 방면에서 포위되어도 포수가 기다리는 목으로 올 가능성보다는 몰이꾼을 덮칠 가능성이 더 크다. 범은 배가고프면 몰이꾼을 먹으려고 덤빌 것이다. 그래서 몰이꾼 사이에 박포수와 김포수를 배치했다. 날이 어두워지는 때 우리는 하름산과 수륭산 계곡에서 범몰이를 했다. 높은 나무들이 밀집하고 거대한 바위들이 산재하였으므로 범이 숨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나는 산중턱 바위 뒤에 숨어 기다렸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짐승의 기척을 느껴 긴장했다. 그때 갑자기 몰이꾼들이 범을 쫓는 고함소리가 뚝! 그쳤다.
‘범이다! 범.’
김포수가 외쳤다. 고함소리라기보다는 비명이었다. 이어 총소리가 났다. 한 발 또 한 발. 그리고 조용했다. 나는 견디다 못해 바위 뒤에서 나와 아래를 살폈다. 약 150m가량 떨어진 산중턱에 얼룩덜룩한 물체가 쏜살같이 달아나는 걸 봤다. 수륭산 동쪽이었다. 범이 바위 사이를 뛰어나가는 걸 보았으나 쏘지 못했다. 범이 워낙 빨랐고, 거리가 멀었으며 위치도 나빴다. 내가 선 위치에서는 범의 배와 엉덩이만 보였다. 그래서 일순간의 주저함 때문에 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호인지 표범인지도 식별하지도 못했다. 범이 달아났으며 날이 어두워져 오고 있었으므로 그날의 사냥은 중지했다. 주막에서 몰이꾼들이 은근히 김포수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범은 몰이꾼들의 전방 약 40m 지점에서 나타났는데 사람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쏘시오! 쏘아!’
몰이꾼이 다급하게 말했으나 김포수는 응응! 하고 헛대꾸를 할 뿐 자기를 보고 있는 범에게 총을 겨누지도 못했다. 범의 눈에서 발산하는 노란빛이 사람을 마비시켰다. 자기들을 보호해줄 포수의 꼬락서니를 보고 몰이꾼들이 당황하고 겁이 났다. 그들은 자꾸만 다가오는 범을 보고 겁을 먹어 대나무창을 들고 발을 굴러 시위를 했다. 그제서야 범이 돌아서더니 북쪽 산마루로 뛰기 시작했는데 김포수가 또 실수를 했다. 범이 달아나는 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내가 목을 잡고 있는 곳으로 바로 갔을 텐데 김포수는 범이 달아나는 걸 보자 비로소 용기를 내 범의 엉덩이를 보고 냅다 발사했다. 떨리는 손으로 발사한 총탄은 범에게 맞지도 않았거니와 범이 가고 있는 앞 바위에 맞아 불꽃을 튕겼다. 놀란 범이 진로를 바꾸어 수륭산 동쪽으로 달아나버렸다. 내가 범을 본 것도 그때였다. 몰이꾼들은 김포수가 자기들을 보호는 물론이고 사냥의 방해가 되었다고 투덜거렸다. 그건 좋지 않았다. 아무리 포수가 무능해도 몰이꾼들이 포수를 업신여긴다는 것은 터부다. 나는 몰이꾼들의 불평을 억누르며 그게 범인가 표범인가를 물었다. 김포수는 생김새나 크기로 봐서 틀림없는 호랑이였다고 단정했으나 나이 든 박씨는 큰 표범 같았다고 반박했다. 그 범은 호랑이보다는 작고 표범보다는 컸는데 무늬가 호랑이처럼 줄무늬가 아니라 반점이 이어진 무늬였다고 했다. 수수께끼 같은 짐승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수륭산으로 갔다. 정오께부터는 진눈깨비가 내렸다. 몰이를 하기 전에 수륭산 정상에 올라가 지형을 살폈다. 수륭산 동쪽에는 어저께 우리가 범을 몰았던 하름산이 있고 수륭산과 하름산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있었는데 큰 바위와 거목들이 밀집했다. 수륭산 북쪽에는 울창한 밀림인데 새벽부터 경기도 사냥꾼들이 사냥을 했다. 우리는 남쪽에서 범을 쫓았고 그들은 북쪽에서 노루를 쫓아 수륭산을 끼고 서로 등을 지고 있었는데 범은 사람들이 있는 북쪽으로는 가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동남쪽에서 몰이를 시작했다. 오후 1시경 몰이꾼이 전방 70여 미터에 있는 범을 발견했다. 범을 발견한 몰이꾼이 범이 부쪽으로 달아날 염려가 있으니 막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어찌된 것인지 김포수는 밑의 몰이꾼보다 더 뒤처져 있었다. 범이 위로 올라간다는 말을 듣고는 더 뒤처졌다. 범에 놀란 포수, 그 때문에 그날의 참극이 벌어졌다. 산밑을 맡았던 몰이꾼은 범이 숨어있는 바위를 지나쳐버렸다. 그래서 김포수가 범과 마주쳤다. 범은 제대로 고함도 치지 못하는 김포수를 얕잡아본 것 같았다. 범은 바위 위에 올라앉아 김포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15m 거리에서 …. 김포수는 바로 눈앞의 범을 보고 말뚝처럼 섰다. 총을 쏘기는커녕 들어 올리지도 못했으며 달아나지도 고함을 지르지도 못했다. 마치 최면술에 걸린 곳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다행히 범은 김포수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적의가 없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3~4분 후 범이 바위에서 내려와 어슬렁어슬렁 수륭산 산마루를 넘어 북쪽~노루사냥이 벌어지고 있는 사냥터로 내려갔다. 범이 내려가는 걸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그날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김포수는 또 실수를 했다. 범이 40m나 내려가는 걸 본 김포수가 범의 엉덩이를 보고 발사했다. 그리고 부근의 소나무 위로 올라가 버렸다. 총탄이 범에게 맞을 리 없었지만 다리를 스치면서 범을 놀라게 했다. 놀란 범이 총을 쏜 사람은 찾지 못하고 냅다 뛰었는데 노루 사냥터였다. 노루사냥을 하던 경기도 사냥꾼들은 3방면에 목을 잡고 최, 유, 이포수가 몰이꾼들이 몰아오는 노루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는 노루 4마리를 잡았으므로 오늘도 노루를 몇 마리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목을 지키고 있었다. 느닷없는 총소리가 나고 유포수 앞에 범이 나타났다. 놀라고 당황했으나 유포수는 용감했다. 재빨리 노루탄을 산돼지탄으로 바꾸어 장탄을 하고 20m 앞에서 노려보는 범의 이마를 겨누어 발사했다. 그러나 시야를 가리는 진눈깨비 때문에 총탄이 범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유포수의 총은 구식 무라다 단발총이었기에 재장전을 했다. 그러나 범은 그 여유를 주지 않고 유포수를 덮쳤다. 유포수는 본능적인 순발력으로 범의 앞발치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바위 밑에 엎드렸다. 범은 공격에 실패하자 떡갈나무숲에 숨어 공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총소리에 놀란 최포수가 달려왔다.
‘뭣이! 범? 어디 있어, 어디!’
최포수는 성미가 급하고 대담무쌍한 포수였다. 그는 총탄을 빗맞아 달려드는 산돼지를 총대로 후려쳐서 잡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범 사냥이 처음이었으며 범은 산돼지와 다르다는 걸 몰랐다. 최포수눈 유포수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무모하게도 떡갈나무숲으로 들어갔다. 최포수는 범이 자기를 보면 달아날 것이라고 짐작하고 달아나는 범을 쏘아 잡으려고 했다. 떡갈나무숲에 엎드려있던 범은 달아나려는 자세가 아니고 덮치려는 자세였다. 범은 이미 귀와 볼에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피를 본 범이 얼마나 사나워지는가를 노련한 포수 같으면 알아챘어야 했다. 범은 최포수가 숲에 들어오는 걸 보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교활한 범은 마른 풀 위에 납작 엎드려 최포수가 2~3m 앞까지 다가설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최포수는 앞을 가리는 진눈깨비와 범의 은신술에 속았다. 범은 최포수가 2~3m 앞에 접근하자 소리 없이 덮쳤다. 앞발로 최포수의 머리를 강타했다. 최포수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떡갈나무 둥치를 안고 기댔다. 그 일격으로 앞니 서너 개가 부러지고 턱뼈 일부가 부서졌으며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다. 최포수가 안고 있는 나무둥치 때문에 공격이 어렵게 되자 범이 어깨를 물었다. 어깨뼈가 허옇게 드러났다. 그래도 정신을 잃지 않은 최포수가 총대를 휘둘러 목줄은 보호했다. 범이 다시 왼발로 최포수의 얼굴을 쳤고 드디어 최포수는 쓰러졌다.
‘최포수! 어딨어?’
마침 그때 동료를 구하려고 유포수가 숲속에 뛰어들었다. 쓰러진 최포수의 목줄을 더듬고 있던 범은 다른 적이 뛰어드는 것을 보고 옆으로 튀었다.
(어디로 도망갔나?)
범을 찾고 있을 때 범이 유포수의 옆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유포수는 총을 쏠 여유가 없어 총대로 범의 대가리를 쳤다. 총대에 맞은 범이 벌떡 일어서 앞발로 총신을 잡았다. 유포수도 양손으로 총대를 잡고 버티고. 피차 총대를 마주 잡은 범과 유포수는 죽음의 씨름을 했다. 유포수는 범의 힘에 눌려 진눈깨비로 질퍽한 눈 위로 3~4m나 밀렸다. 범이 악착같이 유포수를 밀어 쓰러뜨리려고 했으나 유포수도 결사적이었다. 넘어지면 범에게 목줄을 물려 죽는다. 유포수가 범에게 밀려 나가다가 범이 미는 힘을 역이용하여 범을 옆으로 홱! 낚아챘다. 그리고 총을 빼앗았다. 범이 옆으로 넘어지면서도 앞발로 유포수의 얼굴을 할퀴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범의 앞발치기에 맞은 유포수는 코뼈가 드러나고 입술이 두 쪽으로 갈라져 피가 콸콸! 쏟아졌다. 유포수가 비틀거리자 범이 도약했다. 유포수가 무작정 발사했다. 총탄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지만 범이 벼락같은 굉음을 낸 이상한 쇠붙이를 쳤다. 총이 날아가 버렸다. 피 냄새에 미친 범은 악착같았다. 맨손이 된 유포수에게 달려들었다. 2~3m 거리에서 덮쳐들며 유포수의 어깨를 쳤다. 유포수는 쇠뭉치에 맞은 것처럼 주저앉아 버렸다. 유포수는 그래도 목줄을 물리지 않으려고 바른 손으로 목줄을 막고 있었는데 범이 바른팔을 물고 늘어지면서 유포수를 깔고 눌렀다. 아가리를 벌려 유포수가 목에 감았던 수건을 물었다. 유포수는 양팔이 다 마비되어 속수무책이었다. 만약 그때 이포수가 달려들지 않았더라면 유포수는 목줄이 끊겨 즉사했을 것이다. 이포수는 멧돼지사냥을 전문으로 하고 전에 표범도 잡은 경험이 있는 유능한 포수였으며 그때 노루사냥의 책임 포수였다. 그는 최, 유포수와 좀 멀리 떨어진 곳에 목을 잡고 있었는데 총소리를 듣고 좀 뭔가 심상찮은 느낌을 받아 유포수가 지키는 목에 와봤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선불 맞은 노루를 쫓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 난 발자국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직감했다. 그래서 발자국을 더듬었는데 두 번째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것이다. 사람과 범의 세 번째 싸움은 지형으로 사람이 유리했다. 아까 유포수와 범의 씨름에서 유포수가 밀려 숲속을 벗어났다. 범과 유포수가 하얀 눈이 깔린 맨땅에서 뒹굴고 있었기 때문에 이포수는 쉽게 그들을 발견했다. 이포수가 10여 미터 거리에서 고함을 쳤다.
‘불 받아라! 범아!’
고함소리는 아주 적절한 조치였다. 쓰러진 유포수의 목줄을 물려던 범이 그 소리에 놀라 주춤했고, 모든 걸 단념하고 턱을 들어 목줄을 내주었던 유포수는 동료의 고함소리에 용기를 냈다. 고함소리에 놀란 범이 유포수의 목줄을 더듬다가 고개를 쳐들고 이포수를 봤다. 무턱대고 이포수에게 덮쳤다. 그러나 이포수는 이미 조준을 끝냈다. 범의 앞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전에 발사했다. 납덩이가 범의 아가리를 뚫었다. 킥! 하고 뒹굴었던 범이 일어섰으나 덤벼들지 못하고 도망갔다. 사람 무서운 걸 안 것이다. 중상을 입은 범이 무작정 서북쪽으로 뛰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몰이꾼 7~8명이 오고 있었다. 범은 뒤돌아서 이번에는 남쪽으로 뛰었다. 그러나 수륭산 봉우리에서 우리 일행이 내려오고 있었다. 겁쟁이 김포수가 범을 놓쳐버렸다는 말을 듣고 범을 추적하고 있었는데 범은 우리를 보고는 또 되돌아섰다. 그때 <범을 놓치지 말라>고 외치는 이포수의 고함이 들렸다. 동서남북에서 포위된 범이 미친 듯 으르렁거렸으나 달아날 곳이 없었다. 아가리에 납덩이를 받은 범이 입을 벌릴 때마다 핏덩이가 쏟아졌다. 범은 다시 처음 싸움을 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빈사 상태가 되어 쓰러진 최포수를 간호하던 이포수가 사람들의 고함소리를 듣고 범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걸 알고 총을 들고 일어섰다. 피를 본 범이 사나워졌다면 동료가 빈사 상태가 된 포수도 악에 받쳤다. 이포수가 범이 뛰어오는 앞길에 우뚝 섰다. 범은 이포수가 있는 30m 지점에서 딱 멈췄다. 나는 이포수가 혼자 지키고 있는 북쪽이 가장 취약하다고 보고 범이 달아날 곳은 북쪽이라고 판단하여 이포수가 지키는 북쪽으로 달려가 이포수를 등 뒤에서 원호했다. 이포수는 내 발자국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범은 우뚝 서 있는 이포수 등 뒤에 또 한 사람이 달려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계속 북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되돌아갈 것인가 망설였던 것이다. 자기를 포위하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의 소리에 범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무튼 범의 실수였다. 2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포수의 총구 앞에 오도 가도 못 하고 멈춰선 범을 이포수가 놓칠 리 없었다. 그래도 범이 되돌아서려는 찰라 이포수가 범의 앞발 사이 흉장부를 겨냥하여 발사했다. 이미 표범사냥을 했던 이포수의 겨냥이 정확하게 범의 심장을 꿰뚫었다. 범은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공중으로 2m나 뛰어올라 떨어져서 몸부림쳤는데 이포수가 2탄을 그의 대가리에 박아넣자 축 늘어져 버렸다. 범은 그렇게 죽었으나 범에게 물린 두 사람은 빈사 상태였다. 의식불명 상태의 최포수는 숨이 끊어질락말락 했으며,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유포수도 정신은 놓지 않았으나 위독했다. 비상용 약으로 출혈을 막고 들것을 만들어 두 포수를 병원으로 운반하여 치료를 했으나 최포수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사흘 후에 숨을 거뒀다. 치명상은 뇌진탕이었으며 범의 앞발치기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하게 했다. 최포수를 구하려다 중상을 입은 유포수는 범의 발톱에 상한 상처가 심해 오래도록 고생했다. 그리고 범 때문에 고생한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 범을 앞에 두고도 총 한 방 쏘지 못했고, 범이 달아나자 함부로 총을 쏘아 그 어마어마한 참극을 불러온 김포수였다. 그는 그 사냥에서 범과 싸우지도 못했고 범에게 물리지도 않았으나 정신에 이상이 생겨 오래도록 고생했다. 범에게서 받은 공포인지 자기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잠을 자지 못했다. 잠이 들면 <범이다! 범. 쏘아라, 쏘아!>라고 헛소리를 했다고 한다. 무서운 짐승은 총으로 죽일 수 있지만 비겁하고 경망스러운 포수는 무엇으로 제지하겠는가? 죽은 범은 2m가 넘는 놈이었고, 무게도 120kg이 넘었다. 보통 표범은 커도 80kg 내외인데 그놈은 한 둘레가 더 컸다. 그리고 그놈의 무늬는 표범의 반점도 아니고 범의 줄무늬도 아니었다. 다갈색 바탕에 검은 반점이 줄무늬처럼 이어져 있었다. 몸매도 날씬한 표범이 아니었고 우람한 대호의 몸매였다. 대호는 큰놈이면 300kg, 보통은 200kg, 아무리 작아도 150kg은 나가고, 줄무늬는 선명하다. 다른 사냥꾼들은 대호와 표범의 튀기라고도 했다. 글쎄, 같은 고양이과 동물이니 교미기에 짝을 찾지 못한 대호가 표범을 덮쳐 새끼를 낳은 튀기일 거라는 말에도 일리는 있었으나 대호와 표범이 교미를 하여 생식이 되는 건지 주장을 반박할만한 지식이 없다.
86. 범 새끼 소동
놀랍게도 16명의 몰이꾼들이 나를 따랐다. 환갑이 가까운 우환이네 할아버지가 긴 담뱃대를 허리에 차고 일어섰고, 앞으로 열흘 남은 설이 되어야만 열여섯이 된다는 우환이도 끼어들었다. 경기도 양평군 지전면 옹개봉 부근 마을 사람들은 내 오랜 사냥 벗들이기 때문에 말릴 수 없었다. 어젯밤 공짜 술을 자꾸 권하면서, 포수 서방 놈이나 한 놈 있었으면 좋겠다고 눈짓을 하던 주막집 과부 아줌마마저 덩달아 소매를 걷어부치면서 따라나서는 것을 간신히 말렸다. 여기는 몰이꾼도 많았지만 노루도 많았다. 그 전 해~내가 서른일곱 되던 해 겨울 나는 여기서 하루 평균 열서너 마리의 노루를 잡았으니까 올해도 노루풍년이라고 믿고 있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갔었던 애꾸 박서방이 열대여섯 마리의 노루를 보았다고 하자 우환이 할아버지가 애꾸눈이 열서너 마리를 보았다면 성한 사람이 보면 30마리라고 익살을 부렸다. 거기다 그날은 사냥하기 딱 좋은-어제 밤 싸락눈이 서너 치가량 쌓였고 바람도 없는 쾌청한 날씨였다. 사냥대는 마치 잔칫집 분위기로 떠들썩하게 지껄이며 옹개봉 뒷산 검등산에 도착했다. 애꾸가 말한 노루 사냥터였다. 그런데 검등산에는 노루 발자국이라고는 한 점도 없었다. 모두 서른네 개의 눈이 눈을 씼고 찾아도. 그것뿐이랴. 깔아놓은 햇솜 같은 눈위에 노루 발자국이 아닌 괴상한 발자국들이 무수히 찍혀 노루 사냥터를 망쳐놓았다.
‘웬, 이게 도대체 무슨 발자국이야?’
‘살쾡이 놈들이지.’
곰보 이서방이 단언했으나 그 발자국은 살쾡이나 승냥이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 발자국은 범이라고 알렸다.
‘뭐, 범? 표범 말이요?’
왁자지껄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엄숙한 침묵이 2~3초간 지속되었는데 우환이네 할아버지가 서너 번 마른기침을 했다.
‘고약한 놈인데. 그놈이 노루를 쫓았구만.’
‘그놈을 잡아 죽여야지.’
그 범을 잡지 않고는 금년에 여기서는 노루고기 맛을 보기 어렵다고 넌지시 부채질해봤다.
‘그럼, 그놈을 잡아야지.’
총을 가진 동장 어른이 결단을 내렸다. 케케묵은 일제 무라다총이었지만 총값을 하려는 심사였다. <그래, 그래. 범을 잡자!> 분위기가 군중심리로 변했다. 모두들 주먹을 흔들며 떠들어댔는데 무리다도 무라다지만 내 총도 맹수용 라이플이 아니고 벨기에제 5연발 산탄총이었으므로 은근히 염려가 될 수밖에. <범이 고양이의 친척인 것은 분명하지만 고양이와는 아주 딴판인 짐승>이라고 설명했다. 범의 앞발에 할퀴면 깊이 2~3cm의 상처가 퍽퍽! 그어지고 아가리에 물어뜯기면 서너 근 되는 살덩어리가 뚝뚝! 떨어져 나간다고 말했다. 범은 사람 키만큼의 높이는 예사로 뛰어넘고 그 속도가 나는 새처럼 빠르다. 하지만 군중심리란 묘하다.
‘아, 그만 표범쯤이야 맞붙어 싸우기에 알맞은데 여기 장골이 몇이야?’
우환이네 할아버지가 자기도 장골 축에 들어간다는 식으로 기세를 올리자 모두 옳소! 라며 선동을 했다. 하긴 나도 이 많은 사람들에게 표범이 덤벼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군중심리였다. 범의 발자국을 추적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범은 근처 잡목림으로 들어갔다. 높이 4~5m의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있어 몰이를 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와 동장은 산봉우리에 목을 잡았다. <호랑이 나와라!> 몰이꾼들이 목이 터지라고 소리를 쳤다. 예상대로 표범은 잡목림에 있었는데 아직 젓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어린놈이라 고함소리에 놀랐다. 표범은 은폐물에 숨어 기어가는 습성으로 도토리나무 뒤에 숨어있었다. 몰이꾼들이 100m 가까이 다가오자 표범은 많은 사람들에 놀라 잡목림을 튀어나왔다. 동장이 놀랐다. 크게 놀라 무라다총탄이 닿지도 않을 거리인데도 무작정 발사했다. 무라다의 유난히 큰 소리가 쾅! 하고 터지자 어린 표범이 혼비백산했다. 표범은 다시 잡목림으로 몸을 숨겼다. 이번에는 잡목림의 몰이꾼들이 혼비백산했다. 표범이 튀어 나가자 꽝! 소리가 나서 좋아했는데 웬걸 표범이 역습을 하는 것 아닌가?
‘에구머니나!’
큰 소동이 벌어졌다. 다수의 군중심리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수가 많아 혼란이 더 컸다. 되돌아온 표범을 보고 제일 먼저 키다리 성서방이 도망을 쳤다. 그는 나중에 갑자기 배가 아파서 그랬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해명했으나 이유야 어떻든 대나무창을 팽개치고 달아난 것만은 사실이다. 성서방이 달아나자 다른 사람들도 다 아우성을 치며 뿔뿔이 달아났다. 그들 중에서 그래도 용감한 사람은 역시 우환이네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허리에 차고 있던 담뱃대를 마치 총처럼 뽑아 들고 범을 겨누면서
‘이놈아! 불 받아라!’
하고 고함을 질렀다. 할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가 고함을 치지 사람들을 잡아먹겠다고 달려들었던 범이 도망을 갔다고 했다. 그런데 잡목림 동쪽으로 도망을 갔던 사람들은 또 서쪽에서 달려드는 범을 발견했다.
‘이크! 저기도 범이 있네.’
모두들 <이젠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람 살려라!>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범을 잡겠다고 했던 사람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잡목림으로 뛰어들어 나무 위로 올라갔다. 우환이네 할아버지도 나무 위로 올라갔다. 맨 나중에 허겁지겁 나무에 오르던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가 나뭇가지에 걸려 벗겨졌다. 그래서 알몸으로 나무 위에 올랐다. 무기인 담뱃대도 어디론가 없어져 버리고. 사람들이 모두 나무 위로 피해버리자 범은 어슬렁어슬렁 잡목림으로 사라졌다. 범은 본능적으로 그 삶들이 자기를 해칠 존재가 못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무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범이 나무 위로 올라오리라고 생각하여 <사람 살려라!>고 계속 고함을 질렀다. 범 소동은 계속되었다. 노루 피를 마시려고 나를 따라온 여덟 명의 서울 부자 양반들이 또 말썽을 일으켰다. 주막집 따스한 아랫목에서 화투나 치고 있으면 산돼지나 노루를 잡아 대령하겠다고 했는데, 사냥 구경도 할 겸 한 발자국이라도 더 신선한 피가 효과가 있으리라고 욕심을 부려 두루마기 바람으로 사냥터에 나왔다. 이 양반들이 조그만 산을 넘었을 때 <사람 살려라!>는 고함을 들었다. 고함을 들은 양반들은 그래도 사람을 구하겠다고 잡목림에 들어섰다.
‘사람 살려라! 범이다, 범.’
(뭐! 범?)
잡목림에서 또다시 큰 소동이 벌어졌다. 8명의 서울 양반들이 비명을 지르며 뺑뺑돌이를 하고, 나무 위에서는 15명의 몰이꾼들이 <포수! 어디 갔느냐?>고 고함을 치고.
나는 벌벌! 떨고 있는 동장을 데리고 잡목림에 도착했다. 나무 위로 올라갔던 서울 양반 한 명은 나무에서 떨어지자 범이 숨어있는 숲속으로 달려갔다. 큰일 날 일이었다. 숲속에 숨어있던 범이 큭! 하고 독살스러운 소리를 질렀다. 주저할 때가 아니었다. 범이 서울 양반에게 덤벼들 염려가 있었다. 나는 잡목림으로 뛰어들면서 발사했다. <캬윽!> 하면서 범이 길길이 뛰어올랐다. 뛰어오른 범을 또 쏘았다. 설건드린 범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에 아예 숨통을 거둘 작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숲속에 또 한 마리 표범이 있다는 걸 몰랐다. 내가 표범에게 집중포화를 퍼붓는 사이에 다른 표범이 살살 기어 내 옆 15m까지 다가왔다. 그놈이 나를 공격하려는 걸 동장이 발견했다. 동장이 <범이다!> 라고 소리치며 무라다총을 발사했다. 동장의 총알은 범에게 맞지 않았으나 나는 그 총소리로 또 한 마리의 범을 발견했다. 내가 범을 봤을 때 범은 공중에 뛰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비틀면서 총대를 밀어내며 갈겼다. 범은 쓰러진 나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범이 멍! 하니 서있는 동장 옆을 빠져나가 쏜살같이 달아났다. 누군가 나무 위에서 말했다.
‘학봉이가 죽었어!’
내가 범에게 맞아 쓰러진 걸로 알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쳤다.
‘나무에서 내려와! 안 내려오면 쏠 테야.’
모두들 나무에서 내려왔다. 우환이네 할아버지는 하반신이 벗겨진 채로 내려오자 말자 담뱃대부터 찾았다.
‘아, 내가 요놈만 떨어뜨리지 않았어도 …,’
숲속의 범은 배에 한 방, 대가리 그리고 앞다리를 맞아 절명했다. 개보다 조금 큰 새끼였다.
‘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달아난 놈을 잡아야 해!’
모두들 말이 없었다. 나는 총에 재장탄을 하고 동장만 데리고 추적에 나섰다. 그러자 아까 나무에서 떨어진 서울 양반이 내 소매를 잡고 늘어졌다.
‘아, 이 사람아. 범이 우글거리는데 우리만 남겨두고 어딜 가?’
동장을 남겨두고 단신 범을 추격했다. 핏자국으로 봐서 큰 상처는 아니었다. 범은 바위가 많은 산봉우리로 올라갔다. 나는 발자국을 추적하지 않고 바위를 돌아가거나 높은 바위에서 주변을 살폈다. 1km쯤 추격했을까? 산봉우리를 막 넘어서려는데 약 30m 전방을 범이 지나갔다. 범이 나를 알아차린 것보다 내가 총을 쏜 게 빨랐다. 범은 내게 덤비려고 했으나 10m도 못 오고 쓰러졌다. 두 번째 납덩이가 그의 이마를 꿰뚫었다. 범은 아까 잡은 놈과 비슷했다. 남매일 것이다. 그런데 총소리가 들렸다.
(범이 또 나타났나?)
허겁지겁 잡목림으로 달려갔다.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또 나무 위에 있었다.
‘뭐야, 뭐?’
‘범이야, 범. 또 한 마리가 있어!’
동장이 범이 나타난 걸 보고 쏘았는데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분명 새끼의 어미일 것이니 예삿일이 아니다. 동장을 데리고 20여 분이나 숲속을 살폈는데 범은 없었다. 살기가 없었다.
‘정말 범을 봤나?’
동장이 한참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누군가 범이야 하기에 보니 범 같은 것이 스쳐가기에 쏘았지. 어쩌면 범이 아닌지도 모르겠어.’
숲에는 범의 그림자도 없었다. 다만 자그마한 노루 한 마리가 쓰러져있었다. 노루 새끼를 범으로 알고 무려 24명의 사람들이 무려 두 시간 동안이나 나무 위에서 벌벌! 떨며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범 새끼 두 마리와 노루 한 마리로 마을잔치가 벌어졌다. 술판에서는 범 새끼가 큰 범으로 과장되었고 서울 양반들이 서울로 돌아가서는 대호로 둔갑했다.
87. 산양 이야기
산양은 만주의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짐승이며 한국에서도 강원도 황해도를 중심으로 38선 북쪽 산악지대에 서식한다. 가파른 절벽 위 거대한 바위를 산양들은 맘대로 뛰어다녔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새처럼 날아다닌다. 멋진 뿔을 머리에 이고 절벽을 평지처럼 누비는 산양은 멋지다. 나는 그 멋진 산양을 잡으려다가 하마터면 죽을뻔했다. 강원도 속초에서 깊숙이 들어간 어느 돌산이었다. 산돼지를 쫓다가 우연히 바위에서 네 마리의 산양이 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새들도 꺼려할 높은 절벽 바위였으나 산양에게 도전했다. 그 산꼭대기의 지형으로는 일단 산양이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가기만 하면 산양 떼는 다른 데로 피할 곳이 없었다. 산꼭대기 바위는 얼어있어 미끄러지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나는 포켓나이프로 손잡이와 발을 붙일 곳을 만들어가며 한 발 한 발 올라갔다. 얼음 바위를 오르기 시작하여 몇 분 만에 나는 후회했다. 도저히 꼭대기까지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악바리라는 이름값을 하느라고 계속 올라갔다. 올라가면 오를수록 후회가 컸으나 이젠 내려갈 수도 없다. 내려가는 길이 올라가는 것보다 더 위험했다. 손이 꽁꽁 얼었고 손톱에는 피가 배었다. 오후 3시부터 올라가기 시작하여 오후 5시경에 겨우 올라가기는 갔으나 벌써 날이 어두워져 갔다.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갈 데 없는 산양 떼를 찾았다. 어렵쇼! 산양 떼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산꼭대기에서는 높이 50여 미터의 수직 암벽을 뛰어내리지 않는 한 도망갈 데가 없는데 산양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여우에게 홀린 것처럼 정신이 멍! 해졌다. 자세히 조사해보니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 산봉우리에서 약간 서편으로 수영장의 다이빙대처럼 약간 툭! 튀어나온 바위가 있었고 거기에서 5~6m 공간거리에 반대편 산봉우리가 있었다. 산양 떼들은 다이빙대로 내려가 반대편 산봉우리로 뛰었던 것이다. 5~6m쯤이야 산양에게는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재주가 없었기 때문에 되돌아 내려와야 했는데 죽음을 의미했다. 어둠 속에서 어떻게 높이 50m나 되는 수직 바위 절벽을 내려올 수 있겠는가? 나는 절망하여 고함을 질렀다. <사람 살려라!> 포수 생활 59여 년에 내가 비명을 지른 건 처음이었다. 첩첩산중에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주저할 때가 아니었다. 몸은 체온을 잃어가고 날은 어두워져 갔다. 나는 아까 올라올 때 만들어놓은 발 받침을 타고 내려가려고 했다. 그건 올라올 때보다 훨씬 위험했다. 발이 미끄러져 몇 번이나 위험했으나 두터운 얼음에 박은 포켓나이프를 움켜쥐고 매달려 목숨을 건졌다. 기진맥진, 높이 50여 미터의 절벽을 내려와 모닥불을 피우고는 그 옆에 쓰러졌다. 혼수상태에서 몸을 녹이고는 새벽녘에 주막에 도착했는데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러나 며칠 후 다시 산양잡이에 나섰다. 나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산양에 대한 앙갚음이었다. 포수 한 명을 데리고 갔다. 산양들은 여전히 산꼭대기에서 놀고 있었다. 다시 절벽을 오르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다. 포수를 대기시키고 나는 산양들이 뛰어넘었던 반대편 산으로 갔다. 나의 지시에 의해 대기하고 있었던 포수가 산양을 향해 위협발사를 했다. 산양은 예상한 대로 내가 숨어있는 산봉우리로 달아나려고 5~6m나 되는 다이빙대를 차고 공중에 도약했다. 별로 힘을 들인 것 같지도 않은데 산양의 몸이 가볍게 공중에 떠올랐다. 바위와 산양 발굽의 탄력이었다. 꿩을 쏘는 날치기요령으로 공중에서 날아오는 산양을 조준했다. 날아가는 대가리의 30cm 앞에 발사했다. 산양은 절벽 밑으로 낙하했다. 두 번째 산양이 도약했다. 산양은 중간에서 날아오른 자세로 낙하했다. 세 번째 산양을 뒤로 돌아서다가 위협발사에 놀라 도약을 했는데 내가 쏠 필요도 없이 실수로 낙하했다. 세 마리 중 한 놈은 망아지만큼 큰 수놈이었다. 12살인데 멋진 뿔을 가졌다. 뿔은 1년에 한 번씩 매듭을 만든다.
일제 말기, 나는 그런 산양을 두 마리 생포한 적이 있었다. 강원도 속초 부근 고산지대는 눈이 많았다. 우리가 사냥을 하려고 도착했을 때는 주막집 마루까지 눈이 쌓였다. 눈 쓸어내기에 지쳐 사람들은 아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길이가 30cm나 되는 설피를 만들어 신고 사냥을 나갔으나 산돼지, 노루도 모두 외출 금지 상태였다. 사냥을 포기하고 돌아서려고 했는데 몰이꾼이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산양몰이나 해봅시다.’
고 했다.
‘산양?’
몰이꾼이 따라오라고 했다. 산중 깊이 들어갈수록 발굽까지 빠지던 눈이 무릎까지 빠졌다. 설피가 아니었다면 가슴까지 빠졌을 것이다. 몰이꾼이 지형을 잘 알고 있어서 위험지대를 피해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지형을 몰라 계곡에 빠지면 구제 불능이다.
‘저기 보시오.’
몰이꾼이 가리키는 곳에 까만 점이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산양이었다. 눈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가느다란 막대기 같은 산양의 다리는 눈 속에 빠지면 걸어 나오지 못한다. 총을 들었더니 몰이꾼이 사로잡자고 했다. 우리를 보고 달아나려는 산양은 안간힘을 썼으나 우리가 다섯 발 나가는 사이에 한 발을 떼기도 어려웠다. 뿔을 잡힌 산양이 체념한 듯 쳐다보았다.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두 마리를 잡았는데 서울로 보내려고 역에 나오니 여덟 마리가 잡혀왔다. 산양의 생피는 노루나 멧돼지처럼 보약이다. 산양의 고기는 노린내나 비릿한 냄새가 없고 연하고 담백하다. 만주 길림에서 멧돼지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산양 떼를 발견하여 한꺼번에 여남은 마리를 잡은 일이 있었다. 겨우내 굶주렸던 산양이 비실비실 몰려다니다가 산탄총의 연사로 몰살을 당했다. 나는 잡은 산양을 모두 평소에 신세를 진 왕대인에게 보냈다. 이튿날 왕대인이 나를 초청했다. 왕대인의 집은 대지가 천 평이 넘는 궁궐같은 집이었는데 큰 잔치판이 열렸다. 중국인,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까지 모두 아홉 명의 손님들이 초청돼 안방에서 저녁 식사를 즐겼는데 그날의 메뉴가 징키스칸 요리였다. 내가 잡은 산양으로 한 요리인데 나는 평생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징키스칸 요리는 몽고 군대가 양을 잡아먹었던 진중 요리였다. 양고기 중에서도 산양을 최고로 쳤다. 장교는 철모를 불에 달궈서 고기를 구워 먹었고 사병들은 큰 솥에 물을 펄펄 끓여놓고 긴 대젓가락으로 얇게 썬 고기편을 끓는 물에 넣어 살짝 익혀 먹었다. 내가 왕대인 집에서 맛본 요리는 장교~아마도 장성들이 먹었던 양고기구이였다. 왕대인이 중국인 요리사를 시켜 진짜 징키스칸 요리를 했는데 철모 모양의 구이판을 숯불에 달궈놓고 구웠다. 징키스칸 요리의 재료는 까다로웠다. 양의 뒷다리, 새우 기름, 개의 기름, 간장과 중국 셀러리, 마늘, 부추 그리고 소홍주다. 새우 기름과 술과 간장으로 소스를 만드는데 그게 가장 중요한 비법이었다. 왕대인은 그 특제 소스를 얇게 썬 양고기에 발라 구웠는데, 긴 대젓가락으로 기름 덩어리를 냄비에 바른 다음 냄비가 달아오르는 것을 기다려 소스를 바른 산양고기를 구웠는데 고기를 1분 이상 굽지 않았다. 고기의 핏기가 남았을 때 얼핏 꺼내 손님에게 권했다. 특급 고량주 소홍주를 마시면서 징키스칸 요리를 먹는 맛은 천하별미였다.
88. 만주개와 곰
살인 곰을 잡았던 이듬해, 스물여덟이 되던 해 봄에 함경북도 무산군의 윤원술씨(39세)에게 초청을 받았다. 무산군 여하면 육소리 뒷산에 곰과 산돼지가 우글거린다니 같이 사냥을 하자는 초청이다. 윤포수는 총솜씨도 솜씨거니와 그가 기르는 개들 때문에도 이름난 포수다. 몰이꾼 정춘섭씨(40세)와 동행하였다. 정씨는 발자국과 몰이에 전문가다. 윤포수가 사는 마을에 들어서 윤포수 집을 물었더니 <집은 가르쳐주는데 웬만큼 급한 일이 아니면 찾아가지 말라>고 노인이 충고했다. 사나운 개 때문이다. 우편배달부도 그 집에는 안 간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윤포수 집 대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개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개가 윙윙! 짖을 때는 주인에게 상황을 알리려는 것이고, 으르렁거리는 것은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경고다. 내가 윤포수의 안내로 집에 들어서는 순간, 바른대로 말하자면 약간 겁이 났다. 네 마리의 개가 굵은 쇠사슬에 묶여있었는데 모두 송아지만큼 큰놈들이었다. 개들이 쇠사슬을 끊고 금방 덤빌것 같아 공포를 느꼈으나 신기하게 개들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적의를 풀고 꽁지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사냥개인 그들은 총을 멘 사람-사냥꾼을 알아본 것이다. 윤포수는 그 개들을 북만주에서 구입했다. 그러나 족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개들은 뭇 맹수의 습격이 빈번했던 북만주 땅에서 침입자와 싸우며 주인을 지켰고, 옛날에는 침입자를 죽이고 사람고기를 먹었다는 내력뿐이었다. 내가 도착하기 이틀 전에는 멧돼지를 몰다가 표범과 싸웠다. 표범은 개하고 싸우지 않으려고 숨어있다가 윤포수에게 들켜 덤벼들었는데 용감한 개가 공중에 뜬 표범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표범이 중심을 잃고 나자빠지자 윤포수가 발사하여 잡았다. 이튿날, 나, 윤포수, 몰이꾼이 네 마리의 개를 데리고 사냥터로 갔다. 송아지만 한 만주개들은 윤포수에게 끌려가는 게 아니라 개들이 윤포수를 끌고 갔는데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진흙탕으로 끌고갔기 때문에 개와 윤포수는 흙투성이가 되었다. 산에 도착해서야 개들의 쇠사슬을 풀었다. 산봉우리 서너 개를 넘었을 무렵 몰이꾼이 멧돼지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불과 몇 분 전의 발자국이었다. 그런데 개들은 발자국을 무시하고 엉뚱한 곳으로 달려갔다. 몰이꾼이 개들을 불러 모으려다가 지쳐서 머리를 흔들었다. <엉터리 사냥개들이군!> 혼잣말을 했다. 개들을 놔두고 발자국을 따라가자고 제의했는데 윤포수가 좀 더 살펴보자고 했다. 그때 산마루 너머에서 개들이 짖었다. 큰 덩치에 어울리는 소리였으며 네 마리가 짖는 소리에 산이 쩡쩡 울렸다. 윤포수가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달려갔다. 앞선 윤포수가 당황하며 고함쳤다.
‘곰이다! 곰.’
윤포수가 바위틈으로 달아나는 곰을 쏘았다. 곰이 폭! 꼬꾸라지더니 다시 일어나 도망갔다. 나는 곰이 달아나는 지점을 겨냥하고 가로지르기 위해 달리다가 몰이꾼의 고함에 뒤를 돌아다 보았다. 다른 곰 한 마리가 내 등 뒤 7~8m 떨어진 곳을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곰 쪽으로 총대를 쑥! 내밀면서 갈겼다. 곰이 훌떡 뒤로 뒤집어졌다. 곰이 치명상을 입었거나 적어도 달아나지는 못할 거라고 짐작하고 개들이 요란하게 짖는 곳으로 달렸다. 개 네 마리는 참나무가 서너 그루 있는 데서 요란스럽게 짖고 있었다.
(곰이 또 한 마리 있는 게 아닐까?)
개들이 짖고 있는 숲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 앗!)
개들이 나무 위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곰이 나무 위에 있었다. 아마도 129kg은 나갈 것 같은 놈이 나무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곰이 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잡아당겼다. 나뭇가지의 탄력을 이용해서 그 반동으로 뛰어내리려는 수작이다. 나는 총신을 거의 수직으로 올려 발사했다. 곰이 나무에서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 나는 옆으로 몸을 뒹굴면서 피했으나 곰의 뒷다리가 내 어깨를 쳤다. 그때 개가 총알처럼 내 머리 위를 타고넘어 곰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저앉은 자세였던 곰이 개의 발을 잡아 던졌다. 개가 3~4m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다른 개가 이어 돌격했다. 곰이 가슴으로 돌격을 막고 일어서려고 했으나 개들은 무섭게 울부짖으며 공격했다. 나는 바른 손 감각이 없었다. 그래서 왼손으로 장탄을 했다. 곰은 방법을 바꿔 개들이 잡히면 엉덩이에 깔아뭉개려고 했다. 개들도 방법을 바꿔 코, 귀, 발등을 물었다. 코를 물린 곰은 펄쩍 뛰다가 엉덩이에 깔아놓은 개를 놓쳤다. 그러나 곰이 개에게 물려죽을 것 같지 않았고 개도 곰에게 잡힐만큼 우둔하지 않아 싸움이 지루한 소모전이 되었다. 그때 나는 가까스로 장탄을 하고 나무에 기대 곰을 조준했으나 개들이 설쳤고 왼손이라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다.
(윤포수는 어디 갔나?)
‘여보! 이리 좀 와주시오!’
내가 고함을 지르자 기적이 일어났다. 무차별 공격을 하고 있던 개들이 약속이나 한 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갑자기 개들이 공격을 멈추고 흩어지자 곰이 멍!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기회였다. 왼손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곰이 벌러덩 나자빠졌다. 개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산마루로 걸었다. 윤포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는 부상을 입은 곰을 쫓아 산을 두 개나 넘었다고 투덜댔다. 그런데 몰이꾼들은 어디로 갔을까? 몰이꾼은 산돼지를 발견한 그 지점에 쓰러져있었다. 윤포수가 안아 일으켰다. 의식을 회복하고는
‘아, 그놈의 곰이 총에 맞아 힘이 없는 줄 알았더니 ….’
몰이꾼은 내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진 곰이 죽은 줄 알고 다가갔다가 곰의 일격으로 정신을 잃었다. 총탄을 맞은 곰이 비실거리자 큰 돌멩이를 주워 곰을 내리쳤다. 돌을 맞자 곰이 쓰러지기는커녕 오히려 정신을 차린 듯 몰이꾼의 가슴을 치고 도망가버렸다. 핏자국을 추적했더니 곰은 멀리 가지 못 하고 계곡에 쓰러져있었다. 윤포수가 숨통을 끊었다. 그래서 세 마리의 곰을 잡았다. 마을 사람들은 날이 어두컴컴했을 때 우리가 달구지에 세 마리의 곰을 싣고오자 놀랬다. 윤포수네 뜨끈뜨끈한 방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졌다. 곰의 뒷발에 채인 어깨가 으스러질 듯 아팠으며 열이 올랐다. 곰의 앞발에 맞은 몰이꾼은 나보다 더 열이 높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피해는 개들이었다. 모두 절룩거렸고 집에 들어서자 모두 길게 들어누오ᅟᅥᆻ다. 윤포수가 곰의 살을 베어 던져주어도 입을 대지 않았다. 특히 두목격인 놈은 고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쓰러졌을 때 내 머리를 타넘고 곰을 공격했던 놈이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일어서지도 못했으나 꼬리를 흔들었다.
89. 지리산의 대호
지리산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가장 매력 있는 사냥터다. 태백산맥을 타고 시베리아, 중국 동부에서 드나드는 대형 맹수들이 머무르는 곳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의 밀림은 대낮에도 어둡다. 수십 미터나 되는 거목들이 가지와 잎을 늘어뜨려 햇빛을 차단하여 푸르스름한 빛깔을 낸다. 바닷속처럼 어둡고 조용하다. 나는 함경도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주로 사냥을 했지만 지리산에도 가끔 갔다. 지리산에는 범, 표범과 곰이 있었다. 나는 서른두 살 때 지리산에서 대호를 봤다. 멧돼지나 곰을 잡으려고 조수와 같이 늦은 가을 낙엽이 한 자나 쌓인 지리산의 밀림을 돌아다녔다. 한국사냥은 사냥 정보를 듣고 현지 몰이꾼을 고용하여 사냥을 했으나 지리산은 언제 어디서도 사냥을 할 수 있었다. 멧돼지, 살쾡이, 노루, 꿩, 토끼, 족제비들을 잡을 수 있었고 때로는 곰이나 표범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만큼 위험했다. 곰이나 표범 그리고 뱀도 위험했다. 날씨가 추운 북쪽 사냥터에는 뱀이 없었으나 지리산에는 뱀이 많았고 무서운 독사들에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다행히 포수들이 활동하는 늦가을이나 겨울에는 뱀이 동면을 하기 때문에 사냥꾼이 희생되는 일은 거의 없었으나 눈이 내리기 전에는 조심해야 한다. 그때도 일본인 포수가 들것에 실려 가는 걸 보았으므로 낙엽을 밟을 때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뱀들 중에는 눈이 내리기 전에는 낙엽에 숨어있는 놈들도 있었다. 뱀은 없었다. 그러나 짐승도 없었다. 반나절을 돌아다녀도 그 흔한 노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뭔가, 큰 놈이 돌아다니는 것 같아.’
노련한 몰이꾼 정서방이 중얼거렸다. 나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표범이겠지.’
우리는 산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왔으므로 산 중턱에 있는 목공소로 돌아가려고 했다. 우리가 돌아섰을 때 70m 정도 앞 잡초에서 뭔가 누르스름한 물체가 어른거리는 걸 보았다. 누르스름한 물체는 잡초지에서 인근 바위 뒤로 스르르 빠져나갔다.
‘표범이다!’
순간적으로 총을 들어 올렸으나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고 불과 1~2m 거리의 공간을 지나가는 걸 쏠 틈은 없었다. 그러나 의외로 그 날쌘 표범이 1~2m 거리를 지나가는 게 느렸다. 내가 총을 들어 올려 조준을 하고 발사할 수 있을 정도로. 발포했다. 그러나 섬찟했다.
(표범이 왜 저렇게 느릴까?)
두 가지 중 하나다. 표범이 아주 천천히 지나갔을 경우와 표범이 아주 큰 놈이었을 경우다. 그런데 표범의 몸이 커 봤자 얼마나 길겠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정신이 아찔했다.
(대호다!)
표범이 아니고 대호였다. 나는 대호를 쏜 것이다.
‘홍포수, 그놈은 점무늬가 아니라 줄무늬였어.’
정서방도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쏜 총탄은 맞은 것 같기도 안 맞은 것 같기도 했다. 1~2분 심사숙고 하다가 현장을 보기로 했다. 정서방이 완강하게 반대했다. 나는 표범을 많이 잡았고 그다지 겁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가 대호라는 걸 알고는 온 신경이 곤두섰다. 머릿속이 윙! 하고 울렸고 피가 끓었다. 그건 무리가 아니다. 내가 겁쟁이여서도 아니다. 표범과 범은 같은 고양이과 동물이지만 위험도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다. 표범의 몸무게는 커야 고작 80kg이지만 대호는 작아도 160kg에서 크면 400kg 이상이다. 황소 무게다. 표범에게 기습을 당하지 않는 한 일격으로 죽지 않는다. 설사 총에 맞지 않았을 경우에는 총대나 칼로 대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호에게 일격을 받으면 즉사다. 대호는 사자의 앞발치기처럼 무서운 앞발치기를 하는데 그 앞발치기에 맞고 살아날 동물은 이 세상에 없다. 솥뚜껑만 한 발로 400kg의 몸무게를 실어 때리면 그 가공할 힘에 황소나 코끼리도 즉사하고 자동차도 날아간다. 대호와 포수가 지근거리에서 대결하여 첫 탄으로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면 포수가 죽는다. 나는 대호가 스쳐간 바위로 한 발 한 발 접근했다. 젊은 포수의 무모한 행동이었다.
(설마, 대호가 거기 머무르랴?)
대호는 없었으나 털이 있었다. 총탄이 털을 스친 것 같았다. 만약 총탄이 대호의 엉덩이에 맞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서방이 창백한 낯으로 바위 밑을 가리켰다. 쟁반만 한 발자국이 있었다. 표범 발자국만 보았던 나는 그 크기에 전율했다.
‘홍포수, 보시오. 다음 발자국은 저기 있소.’
첫발자국과 다음 발자국의 간격이 5m였다. 총소리에 뛰었는데 처음부터 5m를 뛰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발자국이 표범이었다면 나는 사냥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표적 짐승을 포기할 내가 아니다. 대호와 싸움은 반반이다. 어느 쪽이든 하나는 죽는다. 목숨을 걸고 대호와 대결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오늘은 되돌아가자.’
‘아니, 그럼 내일은 한 번 싸워보겠단 말야?’
‘그건, 오늘 밤 상의해보지.’
‘상의는 무슨 놈의 상의. 난 싫소!’
우리가 되돌아간 목공소는 지리산 중턱에 있었는데, 신도 여인과 밀통 한 파계승이 지었다. 목탁 등 불구(佛具)와 쟁반, 재떨이, 벼루집, 지팡이, 밥그릇을 만들어 팔았다. 목공소에는 늙은 주인과 중년 남자 세 삼이 있었는데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다섯 평 남짓한 흙집이었으나 따뜻했다. 마침 저녁을 먹는 중이었으므로 우리도 도토리묵과 산채 무침을 얻어먹었다. 목공소주인은 내가 대호를 쏘았다는 말에 기절할 듯 놀랐다.
‘안 돼, 안 되지. 대호하고 싸우지 말아요, 그 범은 이 산의 산지기야.’
대호는 작년에 왔으나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표범은 나무꾼을 물어 한쪽 팔을 못 쓰게 만들었으나 대호가 쫓아버렸고, 대호는 사람을 보아도 모른 척했다. 목공소 부근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대호를 가까이서 만났다는 중년 남자는, 나무뿌리를 캐다가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다 봤는데 바로 10m 거리에 대호가 있었다. 정신이 마비되어버린 남자가 꼼짝딸싹도 못 하고 서 있었는데 대호가 한참동안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어슬렁어슬렁 가버렸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지요.> 금년 여름 목공예품을 사러 온 두 스님이 밤길에 내려갔는데 호랑이는 두 눈을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밝히고 스님을 지켜보았으나 위협이나 공격을 하지 않았다. 스님들은 나무아미타불을, 살려달라고 염불을 했는데 호랑이는 헛기침을 하더니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범이 헛기침을 했다는 건 믿을 수 없었으나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건 확실했다. <허긴 이 산에는> 다른 호랑이도 있다. 모두 대호의 부하다. 겨울에 호랑이가 울면 생식기에 짝을 찾는 것인데 호응이 있었다면 한 마리 이상의 호랑이가 있다는 말이다. 대호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짐승을 공격하지 않고 더구나 사람에게는 함부로 덤벼들지 않는다. 사람은 무서운 적이라는 걸 알고 다른 먹이가 풍부하므로 구태여 사람을 공격할 필요가 없다는 걸 대호도 안다. 산지기라는 말도, 대호가 돌아다니면 표범, 늑대, 살쾡이와 족제비들이 사라진다. 목공소에서 기르는 닭, 토끼들이 안전하다. 목공소 사람들의 소망대로 대호잡이를 포기하고 곰을 찾았다. 곰을 발견하지 못하고 큼직한 산돼지를 만났다. 300kg 가까운 놈이 참나무에 등을 비비고 있었다. 스페인제 5연발 산탄총을 연사했다. 산돼지는 한두 발로 죽지 않는다. 운반할 수가 없어 내장을 뽑아내고 다리를 묶어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밀림을 돌아다니다가 오소리를 만났다. 일본인들은 오소리를 아나구마(구멍 곰)라고 한다. 꽤 큰놈이었는데 굴 앞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가 총탄을 맞았다. 사향노루도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우리를 발견하고 재빨리 도망을 쳤는데 얼마만큼 가서는 뒤를 돌아다보는 나쁜 습성 때문에 이마에 구멍이 뚫렸다. 사향은 최음강장제다. 담비는 잔인무도하다. 민첩해서 꿩 등 날짐승도 잡는데 짐승만 보면 무조건 덤벼들었다. <호랑이 잡아먹는 담비>란 말이 있을 정도로 사나운 짐승이며, 마을에 침입하여 가축을 훔쳐 가는데 그 수법이 잔인하다. 살육본능이다. 우리에 있는 닭을 모두 죽인 다음 한 마리만 가져간다. 노란담비들은 우리를 보고 도망치지 않았다. 그러나 워낙 민첩해서 총을 쏠 틈을 주지 않았다. 담비 가죽은 표범 가죽과 맞먹는 값이다. 오후에 산림에서 벗어나 나오는 길에 숯을 굽는 산막을 발견했다. 산막 주인과 함께 나무에 걸어놓은 산돼지를 운반하려고 했는데 나무를 찾지 못했다. 날이 어두워져서 산막으로 돌아오는데 정서방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산돼지를 둔 곳이 이 부근이라고 했다. 우리는 깔깔거리며 산돼지를 찾아 두리번거렸는데 그만 웃음소리가 딱! 그쳤다. 내가 휘두른 전지빛에 누런 빛깔이 스쳤다. 아주 짧은 순간 떠올랐다가 사라졌으나 우리는 감전된 것처럼 굳어졌다. 노란 빛깔에서 줄무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대호가 산돼지고기를 노리고 있었다. 전지빛을 끄고 안전장치를 풀었다. 노란 불빛은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불과 10여 미터였다. 나는 안전장치를 푼 총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 동작에 대호가 덤벼들 것 같았다. 눈 먼 사람과 눈 뜬 범의 대결은 뻔하다. 나는 반쯤 들어 올린 총을 오히려 내렸다.
‘모두 움직이면 안 돼! 움직이면 죽어. 조용히 그대로 있어!’
사람은 움직이지 못했다. 범도 그대로 있었다. 2~3분이 몇 시간으로 느껴졌다. 범이 목을 굴렸다. 헛기침 같았다. 그런데 그 소리는 부드러웠으며 살기가 없었다. 두 개의 빛이 희미해지더니 사라졌다. 범이 우리에게 덤벼들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조용해!’
2~3분이 지나도 기척이 없었다. 10여 분을 더 기다렸다. 비로소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범은 사라졌어!’
회중 전지를 켜서 여기저기를 살폈으나 범은 없었다. 우리는 산막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뒷덜미를 누군가 잡힐 듯한 감각을 느끼며 뛰다시피 돌아왔다. 이튿날 다시 현장에 가봤다. 산돼지는 그대로 있었다. 무수한 범의 발자국만 있었다. 나무에 올라가려고 애를 쓴 것 같았다. 그때 지리산에서 본 대호가 한국의 마지막 대호였을 것이다. 본래 한국에도 범이 많았다. 조선 시대 말엽까지도 대호는 함경도, 강원도와 경상도에 출몰했고 가끔은 서울에도 보였으나 일본인들이 들어오고난 뒤에 사라졌다. 산의 나무가 남벌되어 초식동물이 줄어든 것이 호랑이가 사라진 원인이다. 한국 범은 태백산맥을 타고 중국 동부으로 이동했다. 포수들이 만주에서 한국 범이 시베리아 범들과 돌아다니는 것을 증언했다. 하여튼 내가 본 지리산 범은 마지막 한국 범이었는데 그도 이듬해 사라졌다. 목공소주인의 말에 의하면 그해 겨울에도 대호가 짝을 찾아 우워엉! 우어웡! 하고 울었으나 그에 대답하는 소리가 없었다. 그래서 지리산의 마지막 한국 범은 겨우내 헛되게 또한 슬프게 울다가 봄이 되자 짝을 찾아 만주로 가버렸다. 북으로 올라가던 대호가 두륜산 근방 마을에서 황소를 잡아먹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갔는데 발자국으로 봐서 지리산의 대호였다. 그 후부터 한국의 산에는 대호가 사라졌다.
90. 나무의 바다(슈하이, 樹海)
우리는 광대한 만주(중국 동부)의 밀림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간 것 같았다. 기다니에게 몇 번이나 돌아가자고 경고했으나 기다니는 범의 발자국에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 나는 기다니를 따라온 걸 후회했다. 기다니는 직업 포수가 아니었다. 그는 잡힌 범 옆에서 또는 곰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 주제에 만주에서는 자기를 따라올 포수가 없다고 자랑했으나 아무래도 사냥 솜씨는 의심이 갔다. 기다니는 만주에서는 꽤 세력이 강한 일본인이다. 예비역 대위였으며 관동군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헌병이나 일본인 관리는 그를 <기다니 대위님>이라고 부르면서 아주 공손하게 대접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만주 길림성 어느 산중에서 사냥을 하다가 공비 토벌 작전을 벌이던 일본군의 작전구역에 들어가 공비로 오인되어 연행되었을 때다. 산중에서 홀로 다니는 나를 일본군은 공비의 간첩으로 오해하여 아주 거칠게 다루었으며 <귀찮으니 즉결처분해버리자>고 의논을 했다. 그때 기다니가 있었는데 내가 조선인 직업 포수라고 하자 꼬치꼬치 캐물었다. 사냥에 관한 얘기였는데 사냥을 잘 알고 있는 듯 기다니는 일본 장교에게 <포수가 틀림없으니 석방하라>고 말한 뒤 나를 데리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로부터 친해졌으며 만주에서 사냥을 할 때 많은 편의를 봐주었다. 그래서 그의 범 사냥 제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나도 대호를 한 마리 잡는 게 평생소원이었으므로 같이 대호 사냥에 나섰다. 우리는 길림성 북쪽 삼림으로 들어갔다. 만주의 삼림은 광대하다. 도끼를 모르는 원시림이 한국의 도(자치단체)처럼 넓다. 이를 만주 사람들은 슈하이(수해, 水海)-나무의 바다라고 부른다. 나는 그 슈하이를 보고 놀랐다. 한국의 산이야 손바닥 보는 것처럼 알고 설사 길을 잃는다고 해도 뻔한 것이기 때문에 방향만 잡고 나가면 하루 이틀 만에 빠져나올 수 있으나 만주의 슈하이는 가볍게 볼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기다니는 그 지역은 자기가 군 장교로 근무할 때 관할이었으며 지리를 잘 안다고 큰소리쳤다. 그리고 일본군은 시베리아 벌판에 던져놓아도 찾아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자랑했다. 기다니는 자신 있게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10월 중순이라고 하지만 여름과 가을이 짧은 곳이라 늦가을과 겨울 사이였다. 나무들은 옷을 벗었고 낙엽이 한 자씩 쌓였다. 기다니는 사냥의 복장과 장비부터 실수를 했다. 우리는 둘 다 가을 차림이었다. 메리야스 내의 위에 엷은 털내의를 겹쳐 입고 골덴지로 된 상의를 걸쳤을 뿐이다. 그래서 영하로 내려간 삼림의 냉기가 으스스! 스며들었다. 그래도 오후에 웅덩이에서 대호의 발자국을 발견, 흥분하여 추위를 잊었다. 대호는 300kg이 넘는 시베리아 범이었다. 기다니는 이미 잡은 거나 다름없이 말하고 있었으나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발자국은 24시간이 지났으며 추적에 며칠이 걸릴 것이었다. 대호의 행동반경은 하루에 30km쯤 되며 사람이 대호를 쫓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호를 쫓았다. 내 예상대로 대호는 북쪽 삼림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대호를 따라 자꾸 더 깊이 삼림으로 들어갔다. 기다니가 대호를 따라가면 포수산막이 있다고 했다. 대호는 정확하게 북쪽으로 갔는데 도중에 산돼지를 잡아먹고 쉰 흔적이 발견되었다. 나는 대호의 발자국을 보고 대호가 단순히 영역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북쪽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추격하기가 힘들었으나 기다니는 내 의견을 무시했다. 시베리아 범은 원래 행동반경이 넓으며 북쪽으로 가다가도 다시 남쪽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저러나 날이 어두워졌으므로 기다니가 말한 산막을 찾아야 했다. 여기저기를 배회했으나 산막이 없었다.
‘이상한데 …. 분명히 이 근처에 있었는데 ….’
기다니가 당황하여 중얼거렸으나 이미 그의 사냥 솜씨를 의심하고 있었던 나는 산막이 아니더라도 야숙(野宿)을 할 수 있는 동굴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서둘러서 동굴을 찾았다. 좀 좁기는 했으나 두 사람이 새우잠을 잘 수는 있었다. 동굴 앞에 모닥불을 피워 항고(일본군 야전 냄비)에 밥을 지어 먹고 나니 한결 편안해졌다. 삼림 속 야기(夜氣)는 차가웠다. 나뭇가지를 잘라 동굴 입구를 막고 숯불을 피워 냉기를 쫓았다. 기다니는 이튿날 날도 밝기 전에 빨리 출발하자고 성화였다. 추적이란 마라톤 경기와 같다. 어느 쪽이 더 끈기가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판난다. 그래서 추격하는 포수는 체력의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충분한 휴식을 해야 한다. 기다니는 사냥의 기본상식도 몰랐다. 하여튼 추적을 계속했고 범의 발자국이 좀 더 선명해졌으나 아직도 우리보다 반나절은 앞서갔다. 빨리 서두르는 쪽이 먼저 지친다는 상식에 따라 오후부터 기다니는 피로가 나타났다. 일본군 장교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그는 피로한 기색을 감추려고 했으나 걸음걸이가 난조를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들돼지를 쏘는 실수를 저질렀다. 저녁 반찬으로 하겠다는 말이었으나 범을 추적하고 있는 포수가 반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총질을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었다. 총소리는 도망가는 범에게 <우리가 너를 쫓고 있으니 빨라 도망쳐라!>고 알려주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날의 추적은 거기서 끝났다. 그는 들돼지 껍질을 벗기고 통째로 바비큐를 했는데 그 냄새가 또 산중이 퍼져나갔다.
‘사냥이란 이런 맛으로 하는 거야!’
기다니는 수통의 화주를 마시면서 호탕스럽게 웃었지만 그때 어둑어둑한 잣나무 그늘에 뭣인가 불빛을 발견하고 불길한 생각을 느꼈다. 불빛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날이 어두워감에 따라 불빛이 늘었다. 승냥이였다. 만주에 사는 붉은 승냥이였으며 죽음의 사신으로 불리운다. 체구는 늑대나 이리 보다 작으나 성질은 더 사납다. 떼를 지어 삼림을 돌아다니며 멧돼지, 사슴과 산양을 잡아먹는다. 배가 고프면 곰이나 대호에게도 덤비고 사람도 마다하지 않는다. 기다니가 냄새를 피우면 구은 바비큐가 야수를 불러들였다.
‘무슨 소리요? 홍포수답지 않게. 저따위 개보다 작은놈들이 뭘 한다고. 내버려 두시오!’
기다니는 내 충고를 일소에 붙였으나 식사를 끝내고는 신경질을 부렸다. 붉은 승냥이들 20여 마리가 슬금슬금 다가와 15m에 이르자
‘이 새끼들이!’
하고 일어나 총질을 했다. 연사를 해서 두 마리를 죽였고 나머지는 도망쳤다. 붉은 승냥이는 총소리에 놀라 도망쳤으나 다시 모여들었다. 피냄 새를 맡은 그들의 눈은 새파란 독기를 품고 있었으며 우리 주위를 빙빙 돌았다. 멧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동굴을 찾아 쉬려고 했던 계획을 포기하고 여기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불을 떠난다는 건 위험했으며 승냥이의 마중을 받으면 밤길을 걸어갈 수는 없었다. 교대로 잠을 자기로 하고 기다니가 먼저 잤다. 사람은 잠을 잤으나 승냥이는 자지 않았다.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었다. 뼈를 깨무는 오도독! 오도독! 소리가 거슬렸는지 기다니가 또 총을 들었다.
‘그만두시오. 어둠 속에서 총을 쏜들 몇 마리를 죽이겠소. 내버려 두고 잠이나 주무시오.’
기다니가 잠이 안 오니 나부터 자라고 했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몸에 스미는 한기에 눈을 떴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새벽이었는데 불과 몇 미터 앞에 승냥이들이 다가와 있었다. 기다니는 베낭에 기대 잠들었다. 황급히 총을 들자 승냥이들이 후다닥! 물러섰다. 기다니는 해가 나무 위로 오를 때까지 잤다. 하룻밤 사이에 꺼칠해졌다. 눈자위가 푹 꺼지고 얼굴빛도 창백했다. 그러나 그 일본군 장교의 위세만은 죽지 않았다. 추적을 하겠다고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내가 조용히 말렸다. 승냥이들이 우리를 사냥하려고 하는 판에 대호 사냥이 문제가 아니었다. 승냥이는 날이 밝자 멀찌감치 물러섰으나 결코 먹이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기다니는 막무가내였다. 일본군의 악착같은 근성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우리는 대호의 발자국을 따라가고 승냥이는 우리를 따라왔다. 굶주린 그놈들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기다니는 극도의 피로에 발걸음이 터덕거렸다. 오후에는 날이 흐려지더니 바람이 불었다. 아무말 없이 기다니가 맨 배낭을 뺏어 맸다. 승냥이들은 사격권 밖에서 줄기차게 따라왔다. 그날 오후 대호의 추적은 포기했다. 바람 때문에 낙엽이 날렸고 싸락눈이 내려 발자국이 사라져버렸다. 10월 중순인데 벌써 첫눈이 내렸다. 고집불통의 기다니도 호랑이사냥 포기에 동의했다. 그러나 우리는 호랑이사냥을 포기했지만 승냥이는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승냥이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 삼림을 잘 알고 있다고 큰소리쳤던 기다니는 현재 우리들이 서 있는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우리들은 그간 북쪽으로만 걸어왔으므로 북쪽으로 간다면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으로 갈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때쯤 기다니는 스스로 지휘권을 포기하고 내가 단독으로 모든 일을 결정했다. 바람과 눈이 점점 심해져서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기다니는 추위에 떨면서 거의 절망적인 표정이었으나 나는 그를 격려하며 걸었다. 우선 당장 필요한 것은 휴식처였다. 동굴이나 바위라도 발견해야 했다. 그러나 삼림은 가도 가도 나무들뿐이었으며 바위 하나도 없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승냥이들은 끈질기게 따라왔다. 물이 없는 하상(河床)이 나왔다. 홍수가 지나간 자리인데 자갈과 바위, 모래가 깔렸다. 큰 바위 틈에 나뭇가지를 잘라 네모 틀을 만들어 박고 담요로 벽을 쳐 겨우 바람과 눈만은 피할 수 있는 은신처隱身處를 만들었다. 불을 피워놓으니 제법 따스웠다. 기다니는 밥도 먹지 않고 쓰러져버렸다. 그러나 나는 잘 수가 없엇다. 승냥이들이 코앞까지 왔으며 어떤 놈은 담요를 뜯기도 했다. 기다니는 밤새 헛소리를 하고 고열이 났다. 신경쇠약증세였다. 날이 밝아지자 기다니는 눈을 떴으나 신경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농담을 했다.
‘어떻소, 이 집? 두 시간 만에 만든 속성 집인데 ….’
기다니도 억지로 웃었다.
‘물론이지, 우선 집을 좀 수리해야 하지 않을까?’
담요를 들치니 밤새 놀랄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바람과 눈은 멎었으나 삼림이 온통 눈으로 뒤덮였다. 두려운 일이었다. 우리는 방향도 알 수 없는 밀림에서 동장군의 기습을 받은 것이다. 붉은 승냥이도 여전히 우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놈들은 나를 보더니 슬슬 뒤로 물러나 나무 뒤에 숨었다. 나는 그놈들을 무시했다. 자갈과 진흙으로 흙벽을 쌓아 올리고 나뭇가지와 잡초, 낙엽으로 지붕을 덮어 한 평 정도의 움막집을 만들었다. 방안에 화덕을 놓고 연통도 지붕 위로 뽑아냈다. 습기를 막기 위해 통나무로 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낙엽과 담요를 깔아 다시 혼수상태인 기다니를 눕혔다. 작업은 하루 종일 걸렸다. 고열에 시달리는 기다니를 데리고 광야를 걸어갈 수가 없어 당분간 여기서 머물기로 한 것이다. 이제 얼어 죽을 염려는 면했다. 두껍게 친 흙벽으로 외풍을 막았고 활활 타는 화덕으로 방안은 한증막처럼 더웠다. 건빵과 엽차로 저녁을 먹고 잠에 떨어졌다. 꽤 오래 잔 것 같았다. 잠결에 사람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깼다. 기다니가 없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총을 들고 뛰어나갔다. 무서운 광경이었다. 승냥이들이 기다니를 습격하고 있었다. 기다니는 엎어져 있었으며 한 놈은 기다니의 발목을 물고, 한 마리는 손목을 물었고, 다른 놈들은 등위에 올라가 있었다. 권총이 떨어져 있었고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우선 공포를 쏘아 승냥이들이 기다니에게서 떨어지게 만들고 흩어지는 틈에 세 발을 쏴 세 놈을 죽였다. 기다니는 피를 흘리고있었으나 급소를 물리지 않아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기다니는 목이 말라 새벽에 깨어 물을 구하러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만약 구조가 1~2분만 늦었더라면 승냥이들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발목의 상처는 가벼웠으나 팔목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었다. 상비약품이 있었으므로 응급처치를 했으나 사태가 더 어려워졌다. 기다니는 적어도 3~4일간은 움직이지 못할 것이고, 식량은 다 떨어졌고, 날씨는 점점 더 추워져 갔다. 게다가 승냥이들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직업 포수다. 내게 총이 있고 탄환이 있는 한 굶어 죽거나 얼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평생을 산림에서 살아온 프로가 아닌가? 프로는 짐승을 사냥하는 프로지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데서도 프로다. 원시림의 주어진 모든 여건을 이용해야 한다. 맨처음 이용한 것은 역설적으로 승냥이였다. 승냥이는 고기와 껍질도 제공할 것이다. 승냥이는 동료의 시체도 먹는다. 그래서 아까 내가 쏜 동료의 시체를 먹으려고 시체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으나 내가 나가자 슬슬 뒤로 물러섰다. 시체를 흙집으로 끌어들여 껍질을 벗겨 말렸고 고기를 엷게 저미어 불에 구웠다. 승냥이 보신탕인데 기다니는 한사코 거절하다가 내가 먹는 걸 보고는 먹었다. 죽지 않으려면 별수 있겠는가?
‘이젠 염려할 거 없소. 승냥이들이 제 발로 걸어와 고기와 껍질을 제공하고 있으니 ….’
하기야 승냥이는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승냥이를 먹을 것이니 식량 걱정은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눈벌판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 이튿날에도 네 마리를 쏘아 껍질을 말렸는데 방안의 열기로 빨리 말랐다. 껍질을 칼로 자르고 바늘로 꿰매 외투를 두 벌 만들었다. 에스키모들이 입는 외투처럼 눈구멍만 뚫어놓은 외투인데 만주도시에 있는 거지 같았으나 아주 따스웠다. 사흘 후에는 기다니의 열이 내리고 발목의 상처가 아물어 걸을 수 있었으므로 나흘 동안 정들었던 흙집을 버리고 떠났다. 기다니는 팔을 다쳐 내가 지게를 만들어 짐을 모두 졌다. 또 승냥이들이 우리를 따라왔다. 총의 사정거리 밖에서 슬슬 따라왔다. 기회가 되면 덮칠 기세였으나 별일은 없었다. 도중에 꿩 두 마리와 토끼 한 마리를 잡았다. 오후 늦게 곰이 만들어놓은 굴을 발견하였다. 좀 더럽기는 했으나 태고의 밀림에서 해매는 우리에게는 도시의 고급호텔보다 더 반가웠다. 만약 그 호텔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죽었을 것이다. 그날 밤에 무서운 눈바람이 몰아쳤다. 눈발이 날리고 나무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처럼 사방이 요란했다. 우리는 꿩고기를 뜯으면서 곰에게 감사했다. 동굴에서 눈바람이 그칠 때까지 사흘을 지냈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가 동굴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을 때 우리를 구조하려고 산림을 수색하고 있던 구조대가 눈바람에 조난을 당해 겨우 목숨을 건져 철수했다. 호랑이를 잡으려고 삼림에 들어간 우리가 일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안 일본군대와 경찰은 우리가 조난을 당했거나 산적의 습격을 당했으리라 예상하고 수색했다. 구조대는 이틀 만에 철수했고 우리가 죽은 것으로 간주했다. 비록 머리칼과 수염이 덥수룩이 자라 산적 꼴이었으나 생존을 포기하지 않았다. 원시림의 대자연도 우리가 죽게 버리지 않았다. 눈에 갇혀 꼼짝 못 하고 있었을 때 방문객이 있었다. 사슴이 동굴 입구의 나뭇가지를 발로 차고 있었다. 붉은 승냥이의 습격을 받고 쫓기다가 승냥이들이 접근을 못 하는 장소를 발견하여 숨으려고 한 것이다. 모진 마음으로 사살했다. 사슴은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나흘 동안 버티다가 눈이 멈추자 출발했다. 설피를 만들어 신었으나 걸음은 더디었다. 붉은 승냥이들도 우리를 따라왔다. 세찬 눈바람을 어떻게 견뎠을까? 계속 굶주리면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인가? 모진 짐승이다. 나는 그들의 거동을 주시하면서 걸었는데, 갑자기 그들의 행동이 이상했다. 한두 마리씩 흩어져 따라오던 그들이 한군데로 집결하더니 어디론가 뛰어갔다. 300m쯤 떨어진 잡목림에서 짧게 외치는 소리가 났다. 비적일까? 사냥꾼일까? 승냥이의 공격을 받고도 총소리가 나지 않은 걸 보면 무장하지 않았다. 매우 지치고 피곤해서 움직이기조차 어려웠으나 동족이 위험에 처했는데 방관할 수 없었다. 현장 가까이에서 다급한 고함이 들려왔다. 중국말이었다. 지게를 벗어 던지고 달려갔다. 십여 마리의 승냥이가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창을 든 중국 노인이 쓰러져 있고 창에 찔린 승냥이가 죽어있었다. 연사를 해서 승냥이 세 마리가 쓰러지자 승냥이는 도망갔다. 쓰러진 노인이 의아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살았다는 안심이 아니라 의문의 눈이었다. 당시는 비적들이 횡행하여 산림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맹수를 만나는 것보다 더 위험했다. 더구나 우리 몰골은 비적과 다름없었다. 노인은 우리가 사냥꾼이라는 걸 확인하고야 <고맙다>라고 인사하고는 멀지 않은 곳의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노인은 산삼을 캐는 심마니였다. 산삼을 캐지 못하는 계절에는 부업으로 덫을 놓아 짐승을 잡았다. 노인은 덫을 보러 가다가 승냥이의 습격을 받아 목숨이 위태로웠는데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도 구원을 받았다. 리삼이라는 노인은 1km쯤 떨어진 계곡의 집으로 안내했다. 통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은 따뜻하고 안온했다. 꿩고기 만두와 향기 높은 중국차를 대접받았다. 노인은 삼림에서 15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광대한 지역의 지리를 모른다고 했다. 노인이 지름길을 가르쳐주며 하루만 가면 철길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나무둥치에 그려진 기호를 보면서 길을 찾으라고 했다. 밀림에는 나무꾼, 심마니들이 표시한 기호가 있다.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동그라미 두 개로 표시한 철도, 계곡, 산막들이 간단한 기호로 나무둥치에 새겨져 있다. 우리는 이튿날 그 기호를 보며 걸었다. 도끼로 찍은 그 기호는 정확했다. 서남쪽으로 걸었는데 어쩌다 방향이 바뀔 때는 앞길에 높은 절벽이나 개울이 있어 돌아가라는 표시가 되어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지남철에 의해 방향을 잡았던 우리가 그대로 갔더라면 습지로 나가 곤경을 치를 뻔했다. 승냥이는 1주일이나 우리를 따라왔다. 우리가 버린 뼈나 우리가 쏜 동료의 시체를 먹고 1주일을 따라왔다. 지독하고 모진 짐승이다. 반면,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강한 생명력을 가진 짐승이다. 영리한 그들은 총이 무엇인지를 알고 낮에는 사격권 밖에 있다가 어두워지면 바짝 접근하여 기회를 노렸다. 노인의 말대로 우리는 삼림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무들이 성기고 도끼로 자른 흔적이 나타났다. 그날 오후 늦게 나무가 없는 광대한 벌판으로 나왔다. 그 벌판은 끝없는 밭이었으며 그 너머에는 마을이 있을 것이다.
‘됐어! 이젠 살았어!’
자신 과잉의 신경 상태와 자신 상실의 우울증으로 묵묵히 따라오던 기다니의 입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나도 살았다는 안도감이 겹치며 기뻤다. 그러나 그때 나는 중대한 실수를 했다. 만주의 광대한 벌판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는데도 계속 걸어갔던 것이다. 나는 한두 시간이면 광야를 지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으나 만주의 광야는 끝이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승냥이들이 설쳤다. 그들도 마을이 가까워졌다는 걸 알고 마지막 발악을 했다. 달도 별도 없는 깜깜한 밤에 승냥이와 싸우게 됐다. 나는 기다니에게 서로 붙어 걸어야 한다고 경고하고 총탄을 사슴탄과 꿩탄으로 바꿨다. 어둠 속에서는 철이 많이 나가는 게 유리하다. 총을 쏘면 승냥이들이 도망가거나 마을에서 총소리를 듣고 구조대가 올 것을 기대했다. 승냥이는 암흑 속에서 발사되는 총의 섬광과 폭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의 맹렬한 사격에 몇 마리가 쓰러졌으나 게속 우리 주변을 돌면서 덮쳐들었다. 나는 지게를 벗어 던지고, 기다니에게 빠른 걸음으로 마을 쪽으로 걷게 하고 덮어놓고 어둠 속으로 난사를 했다. 한쪽 팔을 못 쓰는 기다니도 권총을 뽑아 쏘았다. 어둠 속에서는 장총 보다 권총이 더 유효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덮쳐오는 순간 승냥이를 쏘기 때문에 기다니의 권총은 서너 마리를 쓰러뜨렸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등 뒤에서 덮쳐든 놈에게 옷자락을 물려 비틀거렸고 그사이에 다른 놈이 팔목을 물었으므로 총신으로 내리쳐서 피했다. 피를 본 승냥이들이 악귀처럼 변해서 으르렁거리며 덤벼들었다. 승냥이는 민첩하게 우리의 어깨 위로 뛰어올라 목줄을 노렸다. 30분 동안이나 육탄전을 방불하게 싸웠으나 구조대는 오지 않았다. 마을의 불빛이 수백 미터 앞에 있었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모른 척 했다. 군벌과 비적이 날뛴 그 당시 만주 사람들은 총소리가 나면 겁부터 먹고 자신을 비호하기에만 급급했다. 우리는 지쳤다. 총탄도 몇 발 남지 않았다.
‘이젠 틀렸군!’
기다니가 비통하게 말했다. 나도 총탄이 없어 마지막을 각오했는데 승냥이들이 공격을 중지하고 주위가 조용해졌다. 승냥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멀어져갔다. 우리가 지친만큼 그들도 지쳐서 죽은 동료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살았구나!)
우리가 털털거리며 마을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이었다. 마을은 문을 걸어 잠그고 죽은 듯 조용했으며 열흘 동안 사경을 헤맨 우리를 아무도 마중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마을을 지나 1km를 더 걸어 철도역에 도착했다. 역사 스토브 옆에서 졸고 있던 일본인 직원이 우리를 보고는 크게 놀라 고함을 지르면서 비상전화를 돌렸다. 그는 우리를 비적으로 오해했는데 수염이 제멋대로 자라 텁수룩하고 늑대껍질을 걸친 우리 몰골은 비적이었다. 비상전화를 받은 철도경비원들이 달려오면서 고함을 쳤다.
‘총을 버리고 항복하라!’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기다니가 버럭 소리쳤다.
‘바가야로(바보 자식)!’
잠시 후 우리는 안내된 역장관사에 쓰러졌다.
(이젠 정말 살았다!)
는 안도감에 깊은 잠이 들었다. 이튿날 깨어났을 때 의사가 진찰을 하고 치료했으며, 마을 촌장과 파출소장 그리고 역장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옆방에는 지게를, 마당에는 승냥이 시체 일곱 마리가 널렸는데 동료들이 뜯어먹어 내장과 허벅다리가 없는 추악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대위님!’
파출소장이 정중하게 물었다.
‘어떻게 됐느냐고?’
그 건 정말 악몽이었다. 바다처럼 광대한 만주의 수해(樹海)에 함부로 들어갔던 포수들이 겪은 수난기였으며 대호를 잡는 포수가 승냥이에게 먹힐뻔한 처참한 사냥 얘기다.
91. 동물들의 싸움
사냥을 오래 하다 보면 동물의 생태를 알게 된다. 동물을 잡기 위해서 동물의 습성과 행동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프로 포수는 박사학위를 받아도 손색이 없는, 아니 책상물림 학자보다도 더 생태계를 잘 아는 동물생태학자다. 나는 사냥을 하기 위해 동물의 생태를 살피다가 흥미를 갖게 되었고 특히 투쟁-강자생존의 원리原理에 흥미가 있었다. 생물학계에는 적자생존이라는 본질적 질서가 있었는데 사냥에서 겪은 바로는 적자생존이 아니라 강자생존이었다. 뭇짐승들은 그들이 가진 온갖 지혜와 힘으로 처절한 싸움을 하며 살아갔다. 사냥을 하다가 짐승들의 싸움을 관찰했다. 듣기도 했다. 나의 오랜 사냥 친구 백계(白系) 러시아인 세르게이는 소만(蘇滿) 국경에 배치된 군인이었으며, 제대 후 만주에 머물러 사냥을 했다.그는 아예 한만(韓滿) 국경에 집을 지어 살았는데 가끔 세르게이 집을 방문하여 동물 생태 얘기를 들었다. 세르게이는 만년에는 사냥꾼이 아니라 동물생태연구가였다. 그는 범, 표범의 껍질과 녹용으로 돈을 벌었으며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부유했는데도 산림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동물학자였고 대학교수보다도 더 동물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책상물림이 아니라 필드(Field, 현장) 학자였다. 그는 동물을 사랑했으며 사냥보다는 보호를 했다.
세르게이는 1939년 늦은 가을, 백두산 북쪽 란치오산에서 곰과 표범이 싸우는 걸 목격했다. 처음에 그는 매우 절박한 울음소리에 끌려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다가갔다. 거친 숨소리도 들렸다. 표범이 불곰과 싸우고 있었다. 불곰은 150kg 정도였는데 흑곰과 달리 성질이 포악하고 육식을 한다. 노루, 사슴과 멧돼지를 습격한다. 그런데 이번에 공격자는 표범이었다. 표범은 배를 땅에 깔고 표범 주위를 돌면서 공격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곰은 벌떡 일어서서 마치 레슬러처럼 앞발을 휘두르며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지형은 표범에게 불리했다. 빽빽한 밀림은 날쌔게 움직이는 표범에게는 방해가 되었다. 표범은 빙빙 돌면서 공격 범위를 좁혀가고 있었다. 표범이 1m 앞까지 다가왔으나 곰은
(덤비기만 해봐라!)
라는 태도였으며 당당했다. 빙빙 곰 주위를 돌던 표범이 공격거리에 닿자 곰에게 덮쳤다. 홱! 뛰어오르면서 앞발로 곰의 대가리를 치고 목덜미를 물려고 했다. 곰은 대가리에 타박상을 입었으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곰이 목을 물려고 품 안으로 뛰어든 표범의 앞발을 잡아 휘둘러 뿌리쳤다. 표범이 2~3m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벌떡 일어선 표범이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도 목줄을 물려고 했으나 곰이 앞발을 쑥! 내밀고있어서 실패했다. 표범은 초조해졌다. 더 빨리 곰의 주위를 돌다가 홱! 덮치기도 하고 시계태엽이 풀어지는 소리를 하며 팽이처럼 곰의 주위를 돌았다. 곰도 표범이 도는 쪽으로 돌고 있었는데 당황한 것 같았다. 표범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표범은 왼쪽에서 덮쳐들 것처럼 위장하고 바른쪽에서 덮쳤다. 표범은 왼쪽을 방어하는 곰의 앞발을 피하여 바른쪽으로 파고들었으므로 곰의 옆 목덜미를 물었다. 그리고 잡아당기면서 늘어졌다. 곰이 비슬거렸다. 표범이 물고 늘어져 곰이 중심을 잃어 주저앉았다. 표범이 땅을 박차면서 곰을 눕혔다. 그 틈에 곰이 표범의 앞발을 잡아 낙아챘다. 곰이 표범의 배 위에 올라타고 표범의 목을 졸랐다. <기~기칙!> 표범이 질겁을 했다. 표범은 뒷발로 곰의 배를 차고 앞발로 곰의 대가리를 할퀴면서 곰에게서 빠져나왔다. 표범은 접근전을 피했다. 아웃복싱을 하는 권투선수처럼 곰의 주위를 빙빙 돌다가 휙 달려들어 곰의 대가리를 치거나 귀를 물고 얼핏 떨어졌다. 표범의 동작이 워낙 빨라 곰에게 잡히지 않았다. 표범과 곰의 사투는 10여 분간이나 계속되었으나 승패가 나지 않았다. 표범은 집요하게 공격을 계속하고 곰은 미련스럽게 응수하고. 그런데 갑자기 곰이 달아났다. 곰을 따라가는 표범이 두 마리였다. 어느새 표범이 두 마리가 되었는데 뒤에 나타난 놈은 훨씬 컸다. 수컷이다. 달아나는 건 자살행위다. 서 발도 가기 전에 잡혔다. 곰이 나무에 올라가려고 했으나 표범이 등 뒤에서 덮쳤다. 수컷이 곰의 목덜미를 물었다. 암컷은 뒷다리를 물었다. 날카로운 이빨에 살점이 뭉툭하게 떨어져 나갔으나 곰은 저항도 못 하고 나무둥치를 붙들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보고 있던 세르게이가 싸움~아니 살육을 중지시키려고 했다.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한 마리의 곰에게 두 마리가 덤비는 것은 불합리하다. 두 번째는 투지를 잃은 곰이 죽어가는 게 안타까웠다. 첫 번째 총탄이 수놈을 겨냥하여 수놈은 뒤벼넘기를 하며 곰에게서 떨어졌다. 놀란 암놈이 휙! 돌아보더니 으으으! 하며 세르게이에게 덤벼들었다. 네 다리를 오므려 도약 직전의 암컷도 축! 늘어졌다. 세르게이가 5연발 총에 천천히 장탄을 했다. 수놈은 흉장부에 암컷은 이마를 뚫었다. 세르게이가 아직도 나무둥치를 안고있는 곰에게 갔다. 곰은 꿈틀거렸으나 눈동자가 허옇게 돌아가 버렸다. 측은해서 살릴 수 있으면 살리려고 했으나 늦었다. 그래서 고통을 줄이려고 세 번째 발사를 했다. 총탄 세 개로 표범 두 마리와 곰을 잡았다.
‘그 당시에 나는 싸움을 구경만 하려고 했어. 그러나 나 자신도 모르는 잠재의식이 있는 것 같아. 처음에 표범과 곰이 일대일로 싸울 때는 싸움의 결과를 봐서 승자를 쏘면 일거양득이라는 교활한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 표범 두 마리가 곰을 죽일 때도 나는 천천히 움직였는데 그것 역시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심산이었겠지. 밀림 속에서 살면서 생존투쟁이란 동물계의 룰(Rule)에 얽매어있었을 거야.’
세르게이의 말은 자기 자신도 동물화되었다는 말이다.
어느 날, 세르게이와 나는 산돼지를 잡으려고 밀림 깊숙이 들어갔다. 산돼지의 발자국을 추적했다. 바닷속처럼 조용한 밀림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다가 세르게이가 멈췄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퍼드득!> 날개 치는 소리였다. 거대한 만주 독수리였다. 독수리가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는데 날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자세히 보니 독수리에게 알록달록한 것이 붙어있었다. 살쾡이가 독수리를 덮친 것 같았다. 살쾡이가 독수리 다리를 물고 늘어지고 독수리는 도망가려고 푸드득거렸다. 올라갔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으므로 살쾡이도 부상을 입었으나 악착같은 밀림의 소악당은 독수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마도 독수리가 들쥐나 토끼를 잡아채려고 했을 때 습격을 했거나 살쾡이가 잡은 노획물을 독수리가 가로채려다가 물린 것 같았다. 독수리는 하늘의 왕자다. 거대한 날개바람은 다른 새들의 움직임을 봉쇄했으며 굵은 발의 갈구리 발톱에 찍히면 개도 꼼짝 못 했다. 독수리는 토끼 등 작은 동물뿐만 아니라 노루, 표범, 산돼지를 잡아먹는다. 독수리가 살쾡이를 선제 공격했다면 승패는 간단히 끝났을 것이다. 날카롭고 큰 발톱으로 찍어 공중 높이 올라가 바위에 떨어뜨리면 끝이다. 그러나 기습을 당한 독수리는 무력했다. 덮어놓고 날으려고 하다가 기진맥진했다. 다시 날다가 나뭇가지에 머리를 부딪혀 떨어졌다. 잠시 정신을 잃었는데 살쾡이가 물고 있었던 다리를 놓고 목덜미를 물었다. 그것으로 싸움이 끝났다.
그러면 총이 없는 사람과 표범의 싸움은 어떨까? 총도 없이 표범과 결투를 한 사람은 세르게이의 중국인 조수 평씨다. 평씨가 식탁을 만들 재료를 구하려고 밀림 깊이 들어갔다. 무기 없이는 위험지대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으나 식탁을 만들려면 적어도 70cm 되는 통판이 필요했기 때문에 위험지대에 들어갔다. 적당한 나무를 발견하여 도끼질을 하다가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 한 20m 떨어진 곳은 큰 숲이었는데 거기가 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바람도 없는데 풀이 움직였다. 평시가 확인을 하려고 숲으로 들어가려는데 뭔가 스쳐 지나갔다. 눈빛이 번쩍거렸다.
(표범?)
평씨는 기겁을 했다. 급하게 나무로 올라갔다. 동시에 숲에서 표범이 튀어나왔다. 나무에 오르는 평씨를 물었는데 구두를 물었다. 6~7m쯤 올라가 내려다보니 표범도 나무로 오르고 있었다. 급한 나머지 나뭇가지를 휘어잡아 탁! 튕겼다. 튕긴 나뭇가지가 표범의 대가리를 쳤다. 표범이 그 충격으로 나무에서 덜어졌다. 표범이 다시 기어 올라왔다. 나뭇가지를 튕겼으나 이번에는 표범이 피해버렸다. 평씨와 표범의 거리는 1m 정도. 평씨가 허리에 찬 도끼로 표범을 내리찍었다. 표범의 앞다리가 잘려 나갔다. 표범이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 평씨도 내리치는 반동으로 중심을 잃어 나무에서 떨어졌다. 표범은 고통과 분노로 길길이 뛰어올랐다. 아무래도 달아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도끼는 나무에 박혀 맨손이었다.
(에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야.)
표범이 평씨를 봤다. 다리를 절단해버린 적을 본 것이다. 큭! 독기 서린 소리를 내면서 덮쳤다. 표범이 덮치는 순간 평씨도 표범을 향해 돌진했다. 한 발뿐인 표범이 남은 앞발로 평씨의 가슴을 쳤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으나 돌진한 기세로 넘어지지 않았다. 사람과 표범은 씨름하는 자세로 마주 섰다. 평씨가 표범의 앞발을 잡아 옆으로 낚아챘다. 날카로운 이빨을 내밀고 평씨의 목줄을 노리던 표범이 맥없이 쓰러졌다. 평씨가 쓰러진 표범의 배 위에 걸터앉았다. 두 손으로 목을 조였다. 표범이 뒷발로 땅을 차며 일어서려고 했으나 허공을 쳤을뿐이다. 표범은 하나 남은 앞발로 평씨의 가슴을 할켰다. 두터운 상의가 찢기고 피가 흘렀다. 그러나 표범의 앞발은 사람의 팔보다 짧았다. 짧은 앞발은 고작 가슴과 팔을 할퀴었을 뿐 머리와 얼굴에는 닿지 못했다. 평씨는 팔에서 피가 줄줄 흘렀으나 목을 쥔 손을 풀지 않았다. 목을 푸는 순간 표범의 아가리가 평씨의 목줄을 물어뜯을 것이다. 사람의 출혈도 심했지만 표범의 잘린 앞다리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뒷발로 차는 빈도가 적어지고 차는 힘이 없어지는 걸 느꼈다. 앞발은 고작 허공에서 돌았다. 평씨도 젖 먹던 힘을 다 쏟았다.
‘이 자식아! 죽어라! 죽어!’
큰 소리로 악을 쓰면서 목이 땅속을 파고들 정도로 눌렀다. 입이 점점 벌어지고 혓바닥이 나왔다. 후후거리던 숨소리도 잦아졌다. 곧 표범의 몸이 축! 늘어졌다. 눈알이 허옇게 돌아갔다.
92. 포수 세르게이
함경북도 무산 북면 만주 땅 라우뚱에 머무르고 있을 때 백인과 중국인이 찾아왔다. 백인은 포수 세르게이이며 중국 사람은 통역이었다. 세르게이는 녹용 제조법을 배우려고 했다. 마침 그때 산돼지사냥을 하려고 막 출발 준비를 했는데 세르게이가 동반하겠다고 나섰다. 세르게이는 나 보다 열 살가량 연장-마흔서넛 되어 보이는 거인이었다. 키가 2m가 넘었으며 늠름한 체구에 백계 러시아인 특유의 귀족 풍모였다. 세르게이는 다갈색 골덴 상의를 걸치고 구경이 아주 넓은 영국제 쌍발 맹수용 총을 갖고 있었다. 그날은 몰이꾼을 일곱 명이나 동원하여 큰사냥을 준비했다. 나는 산마루에 목을 잡고 세루게이에게는 산중턱을 부탁했다. 몰이꾼들은 남서쪽에서 동북쪽으로 내가 목을 잡고 있는 산마루로 몰아올 것이나 혹 동쪽으로 빠져나가면 세르게이가 처치하기로 했다. 늦가을 산에는 짐승들이 몰려있어 여기저기에서 뛰어나왔다. 산이 커야 짐승도 크다는 말처럼 거물급이었다. 바위 뒤에 숨어있었던 나는 세 마리의 산돼지가 몰려오는 걸 봤는데 웬일인지 한 마리가 산중턱에서 방향을 바꿔 옆으로 달아났다. 세르게이가 있는 동쪽이 아니라 서남쪽이라 단념하고 두 마리만 잡기로 했는데 총소리가 울렸다. 서남쪽으로 달아나던 산돼지가 푹! 꼬꾸라졌다. 세르게이가 쏜 것이다. 150m 거리에서 쏘았는데 장거리용 총도 총이지만 솜씨가 비상했다. 나머지 두 마리는 예상했던 대로 내가 숨어있는 곳으로 왔다. 산돼지가 30m 정도 접근했을 때 바위 뒤에서 나왔다. 정면에서 쏘는 것보다 측면에서 쏘려고 살짝 진로를 돌렸다. 그러나 만주의 산돼지는 미련한 놈들이었다. 포수가 총을 들고 앞길에 서 있는데도 진로를 바꾸지 않고 돌진했다. 첫 탄을 쏘았다. 앞선 놈이 무릎을 꿇었다가 다시 돌진했다. 부득히 2탄을 쏘았다. 300kg 가까운 그놈은 그제야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못했다. 그사이에 또 한 놈이 동쪽으로 달아났다. 한 손으로 총을 쥐고 있는 세르게이가 바위 뒤에서 산돼지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아까는 150m 거리에서 쏘았는데 이번에는 30m 이내로 다가왔는데 총을 세우지도 않았다. 돌진하는 산돼지가 20m 이내로 다가왔을 때 비로소 세르게이가 바위 뒤에서 나왔다. 그리고 총을 올리자마자 발사했다. 겨냥을 한 것 같지도 아니었다. 산돼지는 순간적으로 공중에 폴짝 뜨는 것 같았다. 구경이 넓은 총을 이마에 맞은 위력이었다. 그러나 산돼지는 쓰러지지도 넘어지지도 않고 내달았다. 지형의 위치상 산돼지가 위고 세르게이가 아래였다. 산돼지는 바위가 구르 듯 세르게이를 덮쳤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세르게이의 빠른 솜씨로 봐서는 충분히 2탄을 발사할 수 있었는데 2탄을 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산돼지의 진로에 우뚝 서서 피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앗!’
산돼지의 거구가 세르게이에게 덮쳤을 때 나는 정신이 아찔했다. 그러나 사정거리가 짧은 내 총으로는 속수무책이었다. 무슨 사고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산돼지는 그대로 세르게이에게 부딪쳤다. 아니, 부딪친 것으로 보였을 뿐 세르게이의 발밑에 쓰러졌다. 세르게이가 총대로 선돼지의 머리를 두드려보고는 나에게로 걸어왔다. 세르게이는 산돼지가 첫 탄에 치명상을 입어 자기가 있는 곳까지 오지 못하리라고 판단하여 2탄을 낭비하지 않았다. 빅 게임(Big Game, 맹수 전문)을 전문으로 하는 포수가 보여준 놀랄만한 담력이었다. 그날 밤 마을 주막에서 호화로운 잔치판이 벌어졌다. 내가 사냥의 대가로 준 산돼지를 세르게이가 잔치용으로 기증했다. 세르게이는 손수 산돼지 바베큐를 해서 뒷다리 하나를 통째 뜯어먹었다. 독한 화주를 물 마시듯 마시면서. 술이 얼큰해지자 세르게이는 원시 시베리아삼림의 사냥 얘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러시아와 만주 국경에는 많은 러시아 포수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세르게이는 군대에서 제대한 스물아홉 살 때부터 삼림으로 들어갔다. 부친의 유산인 값비싼 장식용 총을 팔아 벨기에제 5연발을 구입했다. 만주 동북 일대를 유랑하면서 사냥을 했다. 유명한 양코프스키나 바이코프 등 백계 러시아 포수들과 비슷한 활동을 했다. 양코프스키는 한국 사람과 친해서 알려졌고 바이코프는 저서로 유명했는데 세르게이도 두 포수 못지않았다. 당시 만주의 포수들은 양코프스키의 이름은 몰라도 세르게이의 이름은 알았다. 세르게이가 백호를 잡은 일화는 전설처럼 전해졌다.
세르게이는 만주 동북 러시아국경지대 산속 마을에서 살았다. 처음에는 마을에서 살면서 꿩, 노루와 토끼 등을 잡아 교역으로 생활용품을 얻었다. 그러다가 마을의 집과 산속을 오르내리는 것이 귀찮아 아예 집을 산속으로 옮겼다. 실은 산속 생활이 좋아서였다. 구수한 흙냄새, 싱싱한 풀잎과 나무, 뭇 동물의 소리와 빛나는 밤하늘의 별이 좋았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원시 자연이 그리웠다. 외롭지도 않았다. 서너 명의 중국인 조수와 대여섯 마리 개들을 길렀다. 방문객도 있었다. 물물교환을 하려는 마을 사람들과 도시의 상인들이 찾아왔다. 세르게이가 산림 생활을 시작한 지 꼭 1년이 되던 해 어느 날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첫눈이 내린 10월이었는데 날이 어두워질 무렵 노호가 들려왔다. 우우웡! 우우웡! 하는 소리는 온 산에 울려 퍼지고 등골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범의 울음소리를 처음 듣는 건 아니었기에 놀란 조수를 진정시켰으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범의 울음소리가 예전에는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왔으나 그날은 숨소리까지 들렸다. 밤 12시 쯤 일을 마치고 자리에 누우려는데 요란한 세 마리의 개가 한꺼번에 짓는 소리가 났다. 짖는다기보다는 공포에 떠는 비명 소리였다. 반작으로 총을 들고 나가려는데 조수가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그렇다. 이 밤중에 밖에 나간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멍! 하니 서 있는데 우웍! 하는 폭발음이 들리고 깨깽! 소리가 났다. 비명이나 단말마였다. 1~2분 뒤 밖에서 문을 할퀴었다. 총의 안전장치를 풀어 밖을 겨냥하며 문을 열어주라고 했다. 두 마리의 개들이 뛰어 들어왔다. 오들오들 떨었다. 2~3분을 더 기다려도 개 한 마리는 들어오지 않았다. 개를 도살한 범도 들어오지 않았고. 날이 밝아지자 참극의 진상이 밝혀졌다. 범도 범 나름이지 엄청난 대호였다. 범은 일격으로 개를 죽여서 물고 숲으로 사라졌다. 세르게이가 격분했다. 가장 사랑하는, 새끼를 밴 암캐다. 만류하는 조수를 뿌리치고 대호를 추적했다. 5연발 산탄총이라 사정거리가 100m도 못 되었으나 산돼지철을 장탄했다. 첫눈이 내렸으므로 범을 추적하기는 쉬웠으나 범이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몇십 리를 걸었는데 오후에 범이 쉬었다 간 자리를 발견했다. 개를 먹은 자리였다. 새끼를 밴 개 한 마리를 먹은 범은 천천히 걸었다. 나무들이 점점 더 밀생하고 높아졌다. 빠져나가기도 힘들었다. 오후 범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거의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아마도 추적을 눈치챈 듯하다. 산돼지도 추적을 하면 계속 달아나지만은 않는다. 달아나다가 추적자가 계속 쫓아오면 반드시 돌아서 추격자를 공격한다. 하물며 범이랴. 울창한 삼림을 빠져나와 바위투성이 산봉우리를 넘으려는데 약 20m 지점에 큰 바위가 있었다.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이때까지 직선으로 가던 범이 바위를 돌았다. 바위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프로 포수만이 느끼는 제6감이다. 바위 너머도 눈이 내렸으나 발자국이 없었다.
(아!)
감전이 된 것처럼 정신이 아뜩해졌다. 너무 가깝게 접근한 것이다. 불과 20m, 범은 한두 발 도약으로 덮쳐올 것이다. 물러설 수도 물러서서도 안 된다. 기회는 딱 한 방. 그 한 방이 공중을 나는 범의 급소에 명중하지 않으면 포수가 죽는다. 전진할 수도 없다. 하얀 눈이 덮인 넓고 넓은 광야의 바위산 정상에서 바위 하나를 가운데 두고 세르게이와 대호가 대결했다. 세르게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대호가 나지막하게 목을 굴렸다. 골골골 하는 소리였다. 낮은 소리지만 살기를 품고 있었다.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죽는다는 경고였지만 세르게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에는 노호였다. 뱃속까지 뒤집어내며 지르는 고함이었다. 온 산이 울리고 뭇짐승들이 침묵하는 굉음이었다. 범은 오래 참지 못한다. 광야가 진동하는 고함에도 반응이 없자 범이 뛰어나왔다. 예상대로 바위 뒤에서 뛰어나온 게 아니라 바위 위에서 뛰어내렸다. 세르게이가 본 것은 범이 아니라 유령이었다. 범은 백호였다. 하얀 눈 배경에 몇 줄의 검은 줄이 아롱거렸지만 범의 하얀 동체가 보이지 않았다. 세르게이는 발사하지 못했다. 총구를 겨냥했을 때 눈앞에 어른거린 검은 줄이 공중을 날아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백호는 급행열차처럼 바람이 불며 세르게이를 덮쳤다. 본능적으로 엎드렸다. 그 순간 급행열차가 세찬 바람 줄기처럼 머리 위로 지나갔다. 머리를 치고. 그 일격으로 세르게이는 몸이 빙글 돌았다. 머리를 타 넘은 급행열차가 7~8m 거리에서 딱! 멈추었다. 멈추었을 뿐만 아니라 홱! 되돌아서 도약했다. 불과 1~2초의 순간에 총대를 쑥 내밀면서 발사했다. 탈선한 급행열차가 구르는 것처럼 땅이 울렸다.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땅 울림을 느끼며 정신이 아뜩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세르게이는 꿈에서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목이 타는 것 같더니 몸이 훈훈해졌다. 중국인 조수가 눈앞에 서 있었다. 그는 기절한 주인의 입에 화주를 몇 모금 부었다. 세르게이가 혼자 떠난 뒤 중국인 조수가 개를 데리고 세르게이를 따라왔던 것이다. 주인의 시체라도 찾으려고 …. 세르게이는 화주를 몇 모금 더 마셨다.
(됐다, 됐어! 이젠 살았다.)
세루게이는 범이 공중에 뛰어올랐다가 내려오면서 친 앞발에 가슴을 맞아 기절했던 것이다.
(범은?)
바로 옆에 누워있었다. 길이가 120cm가 넘고 무게는 400kg이 넘는 대호였다. 온몸이 하얀 갈기 털로 덮이고 검은 줄무늬가 있는 웅장한 백호였다. 밤새 들것에 백호를 들고 이튿날 새벽에야 산막에 도착했다. 산막에 불이 활활타고 있었다. 그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단골 모피상 장대인이 와있었다. 장대인은 들것에 운반된 백호를 보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호랑이에게 손을 대지 말고 하루만 기다려달라!’
거듭 거듭 부탁을 해놓고 황황히 떠났다. 이튿날 새벽에 쿠리 두 사람에게 짐을 지워 다시 돌아왔다. 번쩍이는 최신식 영국제 쌍발총 한 자루, 미국제 맹수용 2연발 한 자루, 탄약 1년분, 가죽 탄대, 안감으로 털이 달린 가죽점퍼 한 벌, 방한모, 방한 구두와 밀가루 등 식료품이 방안 한가득 쌓였다. 백호와 교환품이었다. 세르게이도 자기가 잡은 백호의 가치는 가늠했다. 본디 시베리아 호랑이는 인디아의 뱅골 호랑이나 한국 호랑이보다 털 색깔이 연하고 길이도 길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껍질을 남긴다는 속담처럼 호랑이의 가치는 털에 달려있는데 추위에서 사는 시베리아 호랑이는 털이 하얗고 길고 풍부하여 최고다. 그러나 세르게이가 잡은 호랑이는 특이한 놈이었다. 표범은 눈표범이 있어 히말라야산맥이나 중국 서북부에는 가끔 출몰했으나 호랑이가 흰 것은 드문 일이다. 게다가 그 호랑이에게는 마치 사자처럼 목덜미에 갈기가 있었다. 시베리아 호랑이에게는 갈기가 있을 수 있으나 그 백호는 길고 웅장한 갈기가 있었다. 백호의 가치를 알고 있었으므로 교환품에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중에 딱 한 가지 그의 눈길에 잡히는 게 있었다. 영국제 쌍발총. 총신에 화려한 조각이 되었고 예술품처럼 아름다웠다. 영국 황실 문양이 그려져 있고, 런던의 젬스퍼디 회사 제품이었다. 세계 최고의 총포회사고 가장 정교하고 값비싼 총이다. 영국 왕실 전용 제작회사다. 세르게이가 총을 살피는 걸 보며 장대인이, 그 총은 중국의 최고 권력자가 영국 왕실로부터 선물 받은 총이라고 설명했다. 백호와 퍼디이 쌍발총-그건 서로 교환에 알맞은 물건이다. 세르게이가 웃었다. 만족한 웃음이다. 그리고 승낙의 표시로 장대인과 술잔을 나누었다. 세르게이는 이때부터 빅 헌터(Big Hunter, 맹수 전문사냥꾼)가 되었다. 장대인이 가져간 백호는 모피장의 손으로 마름하여 최고품의 호피로 가공되었으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으며 따라서 세르게이의 이름도 명성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