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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과 결혼식 손님(The Count and the Wedding Guest)

Bollnow 2024. 4. 22. 05:24

백작과 결혼식 손님(The Count and the Wedding Guest)

O Henry

 

어느 날 밤, 앤디 도노밴이 2번가에 있는 하숙집에서 저녁을 먹으러 내려가니, 안주인 스카트 부인이 새로 든 하숙인을 소개했다.

콘웨이 양이라는 젊은 여자다. 콘웨이 양은 몸집이 작고 소박한 처녀였다.

수수한 암갈색 드레스를 입고, 별로 흥미도 없는 듯이 나른하게 쟁반에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망설이듯 눈을 치켜들어 맑고 영리해 보이는 일별을 도노밴 군에게 던지며 얌전하게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다시 양고기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도노밴 군은, 사교에서나 사업에서나 정치에 있어서나 급속히 그의 인기를 올려주고 있는 그 정중한 태도와 환한 웃음으로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리고는 암갈색 드레스의 이 처녀를 마음의 수첩에서 지워 버렸다.

2주일 뒤, 앤디는 홀의 층계에 걸터앉아 엽궐련을 피우고 있었다. 등 뒤 위쪽에서 부드럽게 치맛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앤디는 뒤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문에서 나온 것은 콘웨이 양이었다. 그녀는 밤처럼 새까만 크레프드...크레프드...아무튼 그 검고 얇은 천... 그것을 입고 있었다.

모자도 새까맸으며, 그 모자에서 거미줄처럼 얇은 막 같은 새까만 베일이 쳐져서 한들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층계창에 섰다.

새까만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 의상에는 한 점의 흰색은 물론 어떤 다른 색도 없었다.

풍부한 금빛 머리털은 연하게 파도치며 목덜미에 처지고 아래쪽에 품위 있게 묶어서 반지르르 윤이 났다.

얼굴은 아름답다기보다 오히려 평범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큼직한 잿빛 눈이 그녀를 아름답게 돋보이고 있었다. 그 눈은 사람의 마음에 강하게 호소하는 슬픔과 우수의 표정을 띤 채, 지붕들을 넘고 길을 넘어 멀리 하늘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 아가씨들이여, 당신들도 취향을 좀 바꿔 보면 어떠실까?

위에서 아래까지 온통 새까만 빛깔, 그것도 천은 크레프드... 맞았어 크레프드 신... 이 크레프드 신을 선택할 것.

이렇게 온통 새까맣기만 한 의상을 입고 슬픈 듯 방심한 표정으로, 검은 베일 아래 반지르르한 머리털(물론 머리는 불론드라야 한다)에 윤을 자르르 흘리면서, 마치 이제 자기의 생명은 시들고, 지금부터 3단 도로 인생의 문턱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일 것.

그러나 같이 공원이라도 산책하면 퍽 즐겁겠구나 하는 기분을 살짝 비칠 것.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문간에서 모습을 나타낼 것-그러면 언제라도 반드시 남자의 마음을 휘어잡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필자가 비꼬기를 잘한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을까- 상복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도노밴 군은 부랴부랴 마음의 수첩에 다시 콘웨이 양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1인치 4분의 1쯤 남아 있는 엽궐련을 던졌다.

여느 때 같으면, 앞으로 8분은 충분히 피울 수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는 얼른 몸의 중심을 고급 가죽 단화로 옮겼다.

"참으로 기분 좋게 갠 저녁입니다. 콘웨이 양."하고 그는 말했다.

만일 관상대가 들었더라면, 틀림없이 네모난 흰 기상 신호판을 지고 올라가 높다란 기둥에 걸어 놓을 자신만만한 말투였다.

"좋은 날씨를 즐길 수 있는 심경을 가진 분에게는 그러네요. 도노밴 씨." 한숨과 더불어 콘웨이 양은 말했다.

도노밴 군은 속으로 갠 하늘을 저주했다. 이 얼마나 무정한 하늘인가?

콘웨이 양의 마음에 맞추어 진눈깨비가 내리고, 찬 바람이 휘몰아치고, 눈이 펑펑 쏟아져야 할 것이 아닌가.

"혹시 가족 중에... 불행한 일이라도 계신 것이 아닙니까?" 도노밴 군은 큰맘 먹고 물어보았다.

"돌아가신 분은."하고 콘웨이 양은 약간 망설이면서 대답했다. "가족이 아니구, ... 하지만, 제 슬픔을 선생님께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도노밴 씨."

"강요라뇨?" 도노밴 군은 이의를 제기했다.

"천만에, 무슨 말씀이십니까, 콘웨이 양을 위로해 드릴 수만 있다면 저는 기쁘겠습니다.

저 이상 진정으로 콘웨이 양을 동정해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콘웨이 양은 가냘프게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그녀를 가만히 앉아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슬퍼 보이게 했다.

"...웃어라 그러면 세상은 그대와 더불어 웃으리라. 울어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대에게 웃음을 주리라..." 콘웨이 양은 어디선가 인용한 말을 중얼거렸다.

"이 말을 이제야 절실히 알 수 있겠어요, 도노밴 씨. 저는 이곳에 친구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요. 선생님은 제게 아주 친절하게 해 주셨어요.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는 식사 때 두 번인가 그녀에게 후춧가루를 집어 준 적이 있었다.

"뉴욕에서 혼자 산다는 건 잔인한 일입니다... 정말 잔인합니다. 그렇지만- 이 조그만 해묵은 도시가 터놓고 친근함을 보여준다면 쓰라린 일도 없어질 것입니다. 공원이라도 거닐어 보시면 어떻습니까, 콘웨이 양?... 그러면 얼마간 울적함을 떨어 버릴 수도 있을 텐데요. 상관없으시다면, 제가..."

"고마워요 도노밴 씨. 가슴속이 슬픔에 차 있는 여자라도 상관없으시다면, 기꺼이 따라가겠어요."

일찍이 선택된 사람들이 거닌, 철책을 둘러친 해묵은 번화가의 공원으로, 열려 있는 문으로 두 사람은 걸어 들어가서 조용한 벤치를 발견했다.

젊은이의 슬픔과 늙은이의 슬픔은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젊은이의 무거운 짐은 남이 나누어짐으로써 그만큼 가벼워지지만, 늙은이는 아무리 그 슬픔을 남에게 나누어 주어도 여전히 같은 슬픔이 남는다.

"돌아가신 분은 제 약혼자예요." 한 시간쯤 뒤에 콘웨이 양은 실토했다.

"내년 봄에 결혼할 예정이었죠. 공연한 소리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하지만, 그이는 틀림없는 백작이었어요. 이탈리아에 영지와 성이 있죠. 페르난도 마티니 백작이라는 이름이에요. 고상하기로는 그이보다 더한 분을 본 적이 없어요. 물론 아버지는 반대하셨습니다. 한 번은 둘이서 도망치기까지 했지만, 아버지가 뒤쫓아 오셔서 저는 다시 끌려와 버렸죠. 아버지와 페르난도는 틀림없이 격투라도 벌일 것 같았어요. 아버지는 말을 빌려주는 사업을 하고 계세요... 그러시다가 아버지는 결국 고집을 꺾으시고 우리의 결혼을 허락하시면서, 내년 봄에는 식을 올려도 좋다고 말씀해 주신 거예요. 페르난도는 아버지에게 작위와 재산을 증명하는 서류를 보여드리고는 우리의 신혼 생활에 대비해서 성을 손질하러 이탈리아로 돌아갔죠. 아버지는 아주 긍지가 높으셔서 페르난도가 내 결혼 준비금으로 몇천 달런가 증정하겠다고 했을 때도, 무서운 얼굴로 거절하셨어요. 반지 한 개, 선물 하나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페르난도가 배를 타고 떠났을 때 저는 이 도시에 왔죠. 그리고 캔디 스토어의 경리직을 구한 거예요. 사흘 전에 이탈리아에서 온 편지가, 피키프 시에서 전송되어왔습니다. 페르난도가 곤돌라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었어요. 제가 상복을 입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죠. 제 심장은 영원히 그이 무덤 속에 있어요. 도노밴 씨, 어쩌면 저를 음침한 여자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이제 어떤 사람에게도 흥미를 느낄 수가 없어요. 명랑한 기분으로, 그리고 웃는 얼굴로 선생님을 즐겁게 해 드릴 친구한테서 언제까지나 선생님을 붙들어 놓아서는 안 되겠죠? 아마 선생님은 이제 슬슬 하숙으로 돌아가시고 싶으실 거예요. 그렇죠?"

, 세상 아가씨들, 젊은 남자가 당신을 구슬리려고 기를 쓰는 것이 보고 싶거든 자기의 심장은 다른 남자의 무덤 속에 있다고 고백하시라.

젊은 남자란 원래가 묘 도둑이다. 어느 미망인에게나 물어보시라.

크레프 드 신을 입고 우는 천사들의 잃어버린 기능을 회복시키려고, 별의별 노력이 다 시도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으니까.

죽은 사람이란 암만해도 짓밟히고 걷어차이는 변을 당하기 마련인가 보다.

"정말 안됐습니다."하고 앤디는 정답게 말했다. "아니, 아직 하숙에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진심으로 콘웨이 양을 동정합니다. 내가 콘웨이 양의 친구라는 것, 그리고 진심으로 콘웨이 양을 동정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주십시오."

"이 로켓 속에 그이 사진이 들어 있어요." 콘웨이 양은 손수건으로 눈을 닦고 나서 말했다.

"여태까지 아무한테도 보이지 않았지만 선생님에겐 보여드리겠어요. 도노밴 씨. 선생님을 정말로 친구로 믿고 있으니까요."

콘웨이 양이 옆에서 보여 준 로켓 속의 사진을 도노밴 군은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았다. 마티니 백작의 얼굴은 참으로 그의 관심을 끌 만했다.

수염도 없고, 지적이고, 밝은 미남자라고 해도 좋을 용모, 친구들의 지도자로 추대될 만큼 굳세고 늠름하고 싱싱한 모습이었다.

"제 방에는 더 큰 사진을 틀에 넣어서 걸어 놓았죠. 하숙에 돌아가면 보여드리겠어요. 제가 페르난도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에요. 하지만 그이는 언제까지나 제 마음속에 살아있어요. 이것만은 확실해요."

참으로 미묘한 작업에 도노밴 군은 직면했다.-불운한 백작을 콘웨이 양의 마음속에서 쫓아내는 작업이다. 그녀를 찬미하는 마음이 이 작업을 해낼 결심을 굳혀주었다. 그러나 이 작업의 무게가 그의 정신을 억누른 것 같지는 않다. 다정하고 쾌활한 친구라는 것이 그가 시도한 역할이었다. 그는 이 역할을 보기 좋게 해냈다.

그래서 그로부터 30분 뒤에는 콘웨이 양의 큼직한 잿빛 눈은 여전히 슬픔을 간직하고 있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두 개의 아이스크림 접시를 사이에 두고 정답게 말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홀에서 헤어지기 전에 그녀는 2층에 달려 올라가서, 소중하게 하얀 비단 천에 싼 사진들을 들고 내려왔다. 도노밴 군은 매우 착잡한 수수께끼 같은 눈으로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이가 이탈리아로 떠난 날 밤, 이걸 주었어요."하고 콘웨이 양이 설명했다. "로켓의 사진은 이걸로 만들었죠."

"참으로 훌륭한 풍채를 가진 분이군요."하고 도노밴 군은 말했다.

"그런데 오는 일요일 오호 코니 아일랜드에 모시고 갈 수 있으면 영광이겠는데요, 어떻습니까, 콘웨이 양?"

그리고 한 달 뒤, 두 사람은 스카트 부인과 다른 하숙인들에게 약혼을 발표했다. 콘웨이 양은 여전히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 발표가 있은 지 1주일 뒤, 두 사람은 번화가에 있는 공원의 언젠가의 그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잎들이 달빛 속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초기 영화의 화면처럼 흐릿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도노밴 군은 이날따라 온종일 얼이 빠진 듯이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늘 밤의 그가 너무나 말이 없으므로 ,

사랑하는 입술은 사랑하는 마음이 제기하는 의문을 더는 밀어젖힐 수가 없었다.

"왜 그러세요, 앤디? 오늘 밤엔 몹시 기분이 언짢아 보여요."

"아무것도 아니야, 매기."

"그렇지 않아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태까진 결코 그러진 않으셨어요. 정말 왜 그러세요?"

"별거 아냐, 매기."

"아니, 안 그래요, 전 이유가 알고 싶어요. 아마 다른 아가씨를 생각하고 계신가 보죠. 만일 그 아가씨를 사랑하신다면 망설일 것 없이 그 사람을 쫓아가시면 되잖아요? 제발 이 팔 좀 놓으세요."

"그럼 말하지." 도노밴 군은 사려 깊게 말했다. "어차피 정확히는 알아주지 못할 줄은 알지만, 매기는 마이크 설리번이라는 사람 얘기를 들은 적 있어요?

모두가 대() 마이크 설리번이라고 부르는 인물인데?"

"아뇨, 몰라요.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 앤디가 지금처럼 되신다면, 그런 사람 얘긴 더더욱 듣고 싶지 않아요. 어떤 사람이에요?"

"뉴욕에서 제일가는 거물이야." 도노밴 군은 거의 숭배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태머니 홀이거나 다른 어떤 정치 집회거나,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구. 키는 1마일이나 되고, 몸의 넓이는 이스트리버만큼 클걸. 뭐든지 대 마이크의 기분에 거슬리는 말이라도 하는 날엔 2초도 안 돼서 그 사람의 빗장뼈 위에 백만 명은 덮칠 거야. 그 사람이 잠시 옛집에 들르면, 다른 거물이라는 인간들은 모두 토끼처럼 슬금슬금 구멍으로 들어가 버린다구. 그 대마이크와 나는 잘 아는 사이야. 하기야 그 사람의 세력범위 안에 들어가면 나 같은 건 문제도 되지 않지만 말이야. 오늘 바워리에서 그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아? 내 앞에 다가오더니 악수를 청하면서 말하지 않겠어, <엔디, 나는 줄곧 주의 깊게 자네를 지켜보고 있는데 자네의 영역에선 썩 잘하고 있는 것 같더군. 나는 자네를 자랑으로 생각하네. 어때, 한잔하지 않겠나?>하고 말이야. 그 사람은 엽궐련을 피우고 나는 하이볼을 마셨지. 그때 나는 앞으로 2주일이면 결혼한다는 얘기를 했지. 그랬더니 <나한테도 청첩장을 보내 주게나, 그러면 잊지 않고 결혼식에 나갈 테니까,>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런데 그 사람은 한 말을 꼭 실행하는 사람이라구.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겠지, 매기? 나는 우리 결혼식에 대 마이크를 참석시키기 위해서라면 팔 하나쯤 떨어져 나가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야. 아마 그날은 내 평생에 자랑스러운 날이 될 거야. 그 사람이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것은, 그 신랑으로 봐서는 한평생 운이 트이는 결혼을 한 것이 되거든. 그래서 오늘 밤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렇게 고마운 분이라면 초청하시면 되잖아요?" 매기는 밝게 말했다.

"초청 못 할 까닭이 있으니까."하고 앤디는 슬픈 듯이 말했다. "그 사람이 참석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단 말야. 그 이유는 묻지 말아 줘.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으니까."

"전 조금도 상관없어요. 물론 뭔가 정치적인 일인가 보죠? 그렇다고 그것이 앤디가 웃는 얼굴을 보여 주지 못할 이유는 안 돼요."

"매기." 이윽고 앤디가 말했다. "나를 사랑하고 있소? 전에 매기가 그 사람을.... 그 마티니 백작을 사랑한 것만큼 말야."

그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매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별안간 그녀는 앤디의 어깨에 얼굴을 문지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팔을 꽉 움켜쥐고 크레프 드 신을 눈물에 적시면서 부들부들 떨며 흑흑 흐느껴 울었다.

"아니 매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앤디는 자신의 걱정거리를 제쳐놓고 그녀를 달랬다.

"앤디." 그녀는 훌쩍였다. "전 거짓말을 했어요. 이제 앤디는 저와 결혼도 안 해 주실 거고 사랑도 안 해 줄 거야. 하지만 이젠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앤디, 백작이니 뭐니 했지만, 그런 사람은 실제로는 없었어요. 저는 여태까지 연인이라곤 한 사람도 없었어요. 다른 애들은 모두 연인이 있었고, 모두 연인 이야기를 하지 않겠어요? 남자들은 그런 여자가 더 좋아지나 봐요. 그리고, 앤디, 전 검은 드레스가 아주 썩 잘 어울려요. 앤디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래서 사진관에 가서 그 사진을 사서 로켓에 넣으려고 축소도 시킨 거예요. 그리곤 백작이니, 백작이 죽었느니 하는 얘기를 꾸며서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을 수 있게 한 거예요. 하지만 아무도 거짓말쟁이 여자를 사랑할 까닭이 없어요. 앤디도 이젠 저를 버리시겠죠. 부끄러워서 죽고만 싶어요. 전 앤디 이외엔 아무도 좋아할 수 없어요. 이게 전부예요."

그녀는 밀려날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앤디의 팔이 힘껏 자기를 껴안는 것을 느꼈다. 눈을 들어보니, 그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져서 미를 띄우고 있었다.

"... 절 용서해 주시는 거예요, 앤디?"

". 까짓 거 하등 상관없어. 백작 따윈 무덤으로 쫓아 보내라고. 매기 덕분에 만사가 다 해결됐어. 실은 매기가 결혼식 날까지는 그 얘기를 실토해 주길 바라고 있었지. 매기는 정말 근사해!"

"앤디." 그가 용서해 준 것을 확인하자, 매기는 약간 겸연쩍은 미소를 띠우고 말했다. "백작에 대한 얘기 모두 정말인 줄 아셨어요?"

"아니, 별로 곧이듣진 않았지." 담배 케이스에 손을 뻗으면서 앤디는 말했다.

"그럴 수밖에. 매기가 로켓에 넣어 다니는 사진은 대 마이크 설리번의 사진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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