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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빵(Witches’ Loaves)

Bollnow 2024. 4. 21. 16:30

마녀의 빵(Witches’ Loaves)

O Henry

 

미스 마더 미첨은 길모퉁이에서 조그마한 빵 가게를 하고 있었다(층계를 셋 올라가서 문을 열면, 벨이 찌르릉 찌르릉 울리는 그런 가게이다).

미스 마더는 올해 마흔 살, 은행 통장에는 2천 달러의 예금이 있고 두 개의 의치와 인정 많은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결혼할 기회가 미스 마더보다 훨씬 적은 사람도 결혼해서 사는 여자가 많이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 하나가 있었는데, 그녀는 이 손님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년 남자로 안경을 끼고 갈색 턱수염은 가지런히 깎아서 끝이 뾰족했다.

그는 강한 독일 악센트가 섞인 영어를 했다. 옷은 여기저기 낡았거나 기웠고, 그 나머지 부분은 구겨졌거나 헐렁헐렁했다. 그러나 언제 봐도 말쑥하고 매우 예의 발랐다.

그는 언제나 딴딴해진 묵은 식빵을 두 덩어리 사갔다. 새 식빵은 한 개에 5센트였지만 굳은 것은 두 개에 5센트였다. 이 손님은 언제나 굳은 식빵밖에 찾지 않았다.

언젠가 미스 마더는 그의 손가락에 빨강과 고동색 얼룩이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녀는 그가 화가이고 매우 가난한가 보다고 생각했다. 틀림없이 어느 다락방에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굳은 식빵을 먹으면서 미스 마더 가게의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고 있겠지.

미스 마더는 두툼한 고깃점과 가벼운 롤빵과 잼과 찻잔을 앞에 놓고 앉으면 한숨을 쉬면서 그 점잖은 화가가 찬바람이 휙휙 불어 들어오는 다락방에서 딴딴해진 묵은 빵 같은 것을 먹고 있지 말고 자기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미스 마더는 매우 인정 많은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직업에 대한 자기의 짐작이 맞았는지 확인해보려고 어느 날 그녀는 경매에서 사 온 그림 한쪽을 자기 방에서 들고나와 카운터 뒤의 선반에 세워 놓았다.

그것은 베니스의 풍경화였다. 장려한 대리석 궁전(그림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이 전경에, 아니 오히려 전수에 서 있었다. 그 밖에 곤돌라(손을 물에 담근 귀부인이 타고 있었다)와 구름과 하늘이 그려져 있고, 명암의 수법이 많이 적용되어 있었다.

화가라면 이것이 눈에 안 띌 까닭이 없다.

이틀쯤 지나서 그 손님이 들어왔다.

"미안하지만 묵은 빵을 두 개 주십시오. 훌륭한 그림이 있네요." 그녀가 빵을 싸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그래요?" 미스 마더는 자기의 계교가 맞아 들어가는 것을 속으로 기뻐하면서 말했다. "저는 미술과 그리고..."(아니 이렇게 빨리<화가>라는 말을 해 버리면 안 되지) "그리고 그림을 무척 좋아해요."하고 다른 말로 바꾸었다. "이거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하세요?"

"궁전은... 그리 잘 그려져 있지 않군요. 원근법도 잘못되어 있구요. 안녕히 계십시오, 부인." 그는 빵을 받아들고 꾸벅 인사하고는 바쁘게 나가 버렸다.

그렇다, 저이는 미술가가 틀림없어. 미스 마더는 그림을 다시 자기 방에 갖다 놓았다.

그이의 눈은 어쩌면 그렇게도 부드럽고 상냥하게 안경 속에서 빛날까! 그이의 이마는 어쩌면 그렇게도 넓을까! 첫눈에 어김없이 원근법을 판단할 수 있다니 그런데도 굳은 빵을 먹고 살고 있다니! 하지만, 천재란 인정을 받을 때까지는 흔히 고생을 해야 하는 거야.

만일 그 천재를 2천 달러의 은행예금과 빵 가게와 인정 많은 마음씨로 후원해 준다면 미술을 위해서나 원근법을 위해서 얼마나 좋은 일일까? 하지만 그것은 백일몽이었다, 미스 마더여. 요즈음, 이제 그는 가게에 오면 진열장을 사이에 두고 잠시 잡담을 나누다가 돌아가는 일이 잦았다. 그는 미스 마더의 명랑한 수다를 아주 반가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여전히 묵은 빵을 사 갔다. 케이크도, 파이도, 그녀가 자랑하는 맛있는 샐리런(구워서 금방 먹는 빵. 이것을 만들어 팔러 다니던 소녀의 이름에서 딴 것)은 하나도 사 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차츰 수척해지고 힘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의 초라한 장흥정에 무언가 맛있는 것을 보태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러나 막상 그 단계가 되면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에게 창피를 주고 싶지가 않았다. 예술가는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미스 마더는 가게에 나올 때 물방을 무늬와 명주 블라우스를 입게 되었다. 안방에서는 마르멜로 씨와 붕사로 이상한 혼합물을 만들었다. 얼굴의 혈색이 좋아진다고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느 날, 그 손님이 여느 때처럼 가게에 나타나서 진열창 위에 5센트짜리 백동전을 놓고 굳은 빵을 찾았다. 미스 마더가 굳은 빵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뚜우뚜우 딸가당딸가당하고 요란스레 소방차가 지나갔다.

손님은 누구나가 그렇게 하듯이 얼른 문간으로 다가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 순간 묘안이 떠올라 미스 마더는 그 기회를 잡았다.

카운터 안의 제일 아래 선반에는 10분 전에 우유 장수가 놓고 간 신선한 버터 1파운드가 있었다. 미스 마더는 빵 자르는 칼로 두 개의 굳은 빵을 깊숙하게 자르고는 그 속에 버터를 듬뿍 밀어 넣고 빵을 다시 꼭 아물려 놓았다.

손님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빵을 종이에 싸고 있었다.

손님이 여느 때 없이 명랑하게 잡담을 하고 돌아간 뒤, 미스 마더는 혼자서 빙긋이 웃었지만, 얼마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너무 대담했을까? 그이는 노여워할까? 결코 그렇지는 않을 거야. <꽃말>이라는 것은 있지만 <음식 말>이라는 것은 없는걸. 버터가 여자답지 않게 주제넘다는 상징은 아니잖아.

그날은 언제까지나 그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자기의 이 조그만 기만을 발견할 때의 광경을 상상했다.

그는 화필과 팔레트를 밑에 내려놓을 것이다. 거기에는 나무랄 데 없는 원근법으로 그리고 있는 그림을 얹은 이젤이 서 있을 것이다.

그는 퍼석퍼석한 묵은 빵과 물로 점심 준비를 할 것이다. 그리고 빵을 얇게 썰 것이다. !

미스 마더는 얼굴을 붉혔다. 그분은 빵을 먹으면서 그 속에 버터를 넣은 손을 생각해 줄까? 그분은......

입구의 문에 달린 벨이 거칠게 울렸다. 누군가가 요란스레 소리를 내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미스 마더는 부랴부랴 가게로 나갔다. 두 사람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한 사람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 남자였는데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그녀의 화가였다.

화가가 시뻘게진 얼굴에 모자를 뒤로 젖혔으며 머리는 텁수룩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그는 꽉 움켜쥔 두 주먹을 미스 마더에게 맹렬히 흔들어댔다. 하필이면 미스 마더에게......

"이 바보!"하고 그는 엄청나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이어 멍청이!니 뭐니 하고 독일말로 외쳐 댔다.

젊은 남자가 그를 데리고 나가려 했다

"그냥은 나갈 수 없어!" 그는 잔뜩 화가 나서 말했다. "이 여자한테 한마디 해 주기 전에는!" 그는 미스 마더의 카운터를 쾅 내리쳤다.

"당신은 날 망쳐 놓았단 말야!" 그는 안경 속에서 푸른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쳤다. "알겠어! 이 주제넘은 고약한 여자야!"

미스 마더는 진열장에 비실비실 기대어 한 손을 물방울무늬의 명주 블라우스에 댔다. 젊은 남자가 친구의 옷깃을 잡았다.

", 가자구. 이제 할 만큼 말했잖아." 그는 성난 화가를 문간으로 해서 보도에 끌어내 놓고 다시 돌아왔다.

"역시 이 말은 해두는 편이 좋겠군요, 아주머니. 어째서 이런 소란이 일어났는질 말입니다. 저 사람은 블럼버거라고 합니다. 건축 제도사지요. 나도 저 사람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지난 석 달 동안 새 시청의 설계도를 그리는데 몰두해 왔습니다. 현상에 응모할 작정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어제 간신히 선을 잉크로 그리는 단계까지 완성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도사는 언제나 먼저 연필로 초안을 그립니다. 그것이 완성되면, 한 주먹의 굳은 식빵 부스러기로 연필 자국을 지워나가지요. 그편이 고무지우개보다 훨씬 잘 지워지거든요. 블럼버거는 그 빵을 댁에서 사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젠 아시겠지만 아주머니, 그 버터로는 ...... 그 때문에 블럼버거의 설계도는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젠 정거장에서 파는 도시락 샌드위치처럼 잘게나 썰어 버리는 수밖에 아무 쓸모가 없어졌지요."

미스 마더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물방울무늬의 명주 블라우스를 벗고, 언제나 입고 있던 낡은 갈색 서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마르멜로 씨와 붕사의 혼합을 창밖의 쓰레기통에 쏟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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