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터(Jerusalem's Lot)
예루살렘의 터(Jerusalem's Lot)
Stephen King
1850년 10월 2일
본즈에게
여기 찬 기운이 감도는 채플웨이트의 홀에 들어섰을 땐 정말 기뻤네. 지긋지긋한 마차여행으로 온몸이 쑤셨을 뿐만 아니라, 팽창된 방광의 문제도 급히 해결해야 했거든. 게다가, 문 옆의 작고 조잡한 벚나무 탁자위에 놓은, 자네만의 독특한 필체로 주소가 적힌 편지를 발견했을 때의 감격스러움이라니! 신체적 욕구를 해결하자마자-싸늘한 분위기의 장식이 화려한 아래층의 욕실에서였는데, 하얗게 김이 서린 내 숨결이 올라가는 것이 보일 정도로 추웠지-자네의 그 휘갈겨 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네.
자네의 폐를 그토록 오랫동안 괴롭혔던 그 독기를 치료했다니 다행이네. 비록 그 치료 방법이 자네에게 남긴 도덕적 딜레마는 동정해 마지않는 바이지만 말일세. 한 병든 노예주의 폐지론자가, 노예 학대로 악명높은 플로리다의 따뜻한 풍토에 의해 치유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즈, 자네와 마찬가지로 고난의 골짜기를 걸었던 경험이 있는 친구로서 부탁하는 건데, 제발 몸조심하고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는 절대로 매사추세츠로 돌아가지 말게. 자네가 죽어 흙이 된다면, 자네의 예리한 지성과 통렬한 필력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고 그 남쪽 지방에 가 있음으로 해서 치료가 된다면, 거기에서 어떤 시적인 정당성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집이 훌륭하냐는 자네 질문에 대한 대답은 'Yes'일세. 내 사촌 유언집행자의 말을 듣고 상상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하지만 좀 불길한 조짐도 있다네. 집은 대지의 거대하게 돌출된 부분 위에 세워져 있는데 팔마우스로부터는 북쪽으로 약 3마일 떨어져 있고, 포틀랜드부터는 북쪽으로 9마일 정도의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네. 집 뒤쪽으로는 4에이커 가량 되는 땅이 있는데, 상상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가공할만한 모습의 야생상태로 돌아가 버린 듯하네. 노간주나무와 덩굴 포도나무 관목들이 뒤엉켜 자라고, 여러 종류의 담쟁이 식물들은 이 집과 마을의 경계인 그림 같은 돌벽 위로 사납게 기어오르고 있었네. 그리스 조각의 형편없는 모방품들은 작은 언덕들로부터 굴러떨어진 바위의 조각들 사이를 맹목적으로 응시하였는데, 그것들 대부분은 지나가는 행인을 금방이라도 찌를 것 처럼 보였지. 내 사촌 스티븐의 취향은 그저 마음에 안 드는 것으로부터 노골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 모두를 포함하는 것 같네. 한때는 분명히 정원이었을 곳의 한 가운데에는, 핏빛 옻나무와 괴상한 해시계에 의해 가려진 작고 기묘한 장치가 있었다.
그러나 거실에서 보이는 경치는 이 모든 불길한 기분을 깨끗이 씻어주고도 남는 것이었어. 채플웨이트의 별 아래로 바위 무덤과 대서양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데 정말 아찔한 광경이었네. 앞으로 둥그렇게 불거진 커다란 퇴창이 그쪽으로 나 있고, 또 두꺼비처럼 생긴 전망대도 그 옆에 마련되어 있으니, 이제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들어주는 사람이 지겹게 느꼈을 정도로-이야기해왔던 그 소설을 멋지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간혹 비가 흩뿌리는 흐린 날씨이네.
밖을 내다보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청회색 빛의 풍경화를 연상시키는데, 바위들은 세월의 나이만큼 늙고 닳았으며, 하늘은 어두웠고, 풍경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바다는 화강암 돌기의 밑부분에 부딪혀 부서지며 어떤 소리라기보다는 일종의 진동을 발생시켰는데,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내 발밑으로 그 파동을 느끼고 있다네. 하지만, 그 느낌이 꼭 불쾌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내 친구 본즈.
나는 자네가, 혼자 있기를 즐기는 나의 습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네만,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건강하고 유쾌하게 잘 지내고 있어. 언제나 조용하고 경험이 풍부하여 의지가 되는 칼빈이 나와 함께 있지 않은가. 다음 주 중반까지는 우리 둘 사이의 일들을 처리하고, 마을에서 정기적인 배달처도 찾을 수 있겠지. 참, 이곳의 묵은 먼지들을 떨어낼 청소부도 구해야 되겠군!
이만 줄이겠네. 탐험해봐야 할 많은 방들과 이 예리한 눈에 의해 감상될 천여 점의 가구 등, 아직도 못 본 것들이 너무 많거든, 자네의 다정한 편지와 변함없는 호의에 다시 한번 감사하네.
자네의 부인에게도 잊지 말고 내 안부를 전해주게나.
찰스.
1850년 10월 6일
본즈에게!
이곳은 정말 놀라운 곳이야!
이 집과 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여기서 살기로 작정한 나를 대하는 태도는 계속해서 날 아연케 하고 있네. 그 작고 기묘한 마을은 '프리처스 코너-설교자의 땅-'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불리우는데, 칼빈이 주 단위의 식량 배달을 계약하러 갔었지. 다가올 겨울에 대비해 충분한 양의 땔감을 비축해두는 문제 역시 그곳에서 해결할 예정이었었지. 그런데 칼이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왔길래.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더니만,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이렇게 대꾸하는 거야.
"분씨, 사람들은 당신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웃으면서, 사람들이 아마 아내 새라가 죽은 뒤에 내가 뇌막염을 앓았다는 걸 들은 모양이라고 말했지-자네도 알다시피, 그때 내가 열에 들떠 미친 듯이 헛소리를 해대지 않았나.
하지만 칼은,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나에 대해 알지 못하며, 나처럼 땔감 배달계약을 맺었던 나의 사촌 스티븐을 통해서 몇 마디 들은 게 전부일 거라고 반박했어.
"그 사람들 말이, 채플웨이트에 살려는 사람은 누구든 이미 미쳐있거나, 아니면 앞으로 미칠 위험을 무릅쓰는 거라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는 자네도 상상이 되겠지. 그런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도대체 누구에게서 들었는지를 물어보았더니, 무뚝뚝하고 좀 술에 취한 듯한, 톰슨이라는 벌목꾼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거야. 그는, 소나무, 자작나무, 전나무 등이 자라는 4백 에이커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데, 다섯 명의 아들들과 함께 나무를 벌채해서 포틀랜드에 있는 공장이나 근처의 민가에 판다더군.
칼이 그 벌목꾼의 괴상한 편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나무가 배달되어야 할 집의 주소를 불러주자, 그 톰슨이라는 사람은 놀라서 입을 딱 벌리며 칼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자기의 아들들이 환한 낮시간 동안에 해로로 배달해줄 거라고 말했다고 하네.
칼빈은, 내가 생각에 잠기는 걸 보자 아마 내가 그 말 때문에 화가난 게 틀림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야. 그 사람은 싸구려 위스키 냄새를 풍기며 내 사촌 스티븐과 한 버려진 마을의 관계에 대해서, 또 벌레들에 대해서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더라고 급하게 말했어. 결국 그의 아들 중의 한 명과 계약을 체결한 모양인데, 그 사람 역시 술이 완전히 깬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아. '프리처스 코너'에 사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해서, 어느 상점의 점원은 칼빈에게 벌목꾼의 주정보다 더 터무니없는 소문들에 대해 떠들어댔나 보더군.
칼빈이 해준 애기들이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어. 시골 사람들은 근거 없는 소문이나 만들어내며 권태로운 생활의 오락거리로 삼는다는 거야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게다가 가엾은 스티븐이나 그의 조상들의 경우에는 뭐 그렇게 억울한 일도 아니지. 칼에게도 말했지만, 자기 집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이 추문에 휩싸이는 거야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이 집이야말로 지속적인 놀라움의 원천이야. 본즈, 방이 23개나 된다네! 위층 바닥과 초상화 전시실엔 곰팡이가 좀 슬었지만 여전히 견고하였지. 내가 위층에 있는 죽은 사촌의 침실에 서 있는 동안 쥐들이 움직이는 걸 들었는데 그 소리로 판단하건대, 큰 놈들이 틀림없다네. 꼭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니까. 한밤중에 그놈들 중의 하나와 마주친다는 건 정말 생각도 하기 싫어. 아니, 쥐라면 대낮이라도 끔찍스러울 것 같아.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아직까지도 구멍이라든가, 물이 새는 부분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니.
위층의 전시실에는 액자에 끼워진 초상화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는데, 만약 경매에 부친다면 한 재산 모을 수 있을 정도로 가치 있는 그림들임이 틀림없었다네. 내가 상상하는 그대로의 스티븐을 닮은 작품도 있었고, 헨리 분 삼촌과 그의 아내 주디스도 구별해내었지만, 그 외의 얼굴들은 모두 낯설었지. 아마 그중의 하나는 나의 악명높은 할아버지 로버트의 초상이었겠지. 스티븐의 가계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는 사실이 매우 유감스러웠네. 스티븐이 나와 새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반짝이던 그 재치와 고결한 지성의 빛이 모든 초상화 속에도 나타나 있었어. 참 안타까운 일 아닌가. 도대체 어떤 어리석은 이유로 가족끼리 서로 반목하게 되었단 말인가! 접이식 책상 하나를 뒤졌다는 이유 때문에, 3세대 전의 형제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 죄 없는 후손들이 서로 멀어지게 됐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내가 새라의 뒤를 따라 죽음의 문에 들어섰을지도 모를 때에, 자네와 존 페티가 스티븐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또 내가 스티븐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눠볼 수 없었다는 것이 얼마나 불운한 일이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군. 그가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조각품과 가구들을 옹호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내가 이 집을 너무 혹평해서는 안 되겠지. 스티븐의 취향이 나의 취향과 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가 둘러놓은 휘장 밑에는-위층에 있는 가구들은 먼지가 앉는 것을 막기 위해 천으로 덮여 있었네-진정한 걸작품들도 있었으니까. 티크나 마호가니로 만들어진 침대와 탁자들은 어둡고 무거운 소용돌이무늬로 장식되어져 있었고, 대부분의 침실과 손님방, 위층 서재와 작은 거실 등은 수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네. 바닥재는 질 좋은 소나무였는데, 내부로부터 발산되는 비밀스러운 빛으로 반짝거렸지. 이곳에는 기품이 있어. 아니, 기품과 시간의 무게라고 해야 되겠지. 나는 아직도 이곳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곳이 지닌 위엄은 정말로 존중하네. 이 북쪽 지방의 기후가 변화함에 따라 이곳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지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야.
맙소사! 내가 너무 많이 지껄이고 있었군. 본즈, 빠른 답장 바라네. 건강은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려주고, 페티나 다른 친구들의 소실도 좀 전해주게. 그리고 새로 사귄 남부의 친구들에게 자네의 생각을 강제적으로 납득시키려 애쓰는 따위의 실수는 범하지 말게. 단지 입으로 자네 의견에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라네. 자기주장이 강한 우리의 친구(?) 칼혼이 그 대표적인 예 아닌가.
친애하는 자네의 친구.
찰스.
1850년 10월 16일
리처드에게
잘 지냈나? 나는 여기 채플웨이트에서 살게 된 후로 자네에 대해 자주 생각했었네. 그리고 혹시 자네로부터 편지가 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보기도 했었지. 그런데 내가 깜빡 잊고 클럽에 새 주소를 알리지 않았다는 걸 본즈의 편지를 받고서야 알았지 뭔가. 다른 친구들은 내가 결국 편지를 써서 새 주소를 알릴 거라고 믿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 세상에서 내게 남겨진 것 중 신뢰할 수 있고 또 완전히 정상적인 것은 나의 진정한 친구들 뿐이라고 느꼈다네. 맙소사, 우리들이 서로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있게 되다니!
자네는 보스톤에서 '해방지(誌)'-나는 우연히 그쪽으로도 내 주소를 보냈지-에 충실히 기고하고 있고, 한슨은 영국으로 또 그 별난 여행을 떠났다지. 그리고 불쌍한 친구 본즈는 사자 굴에 들어가서 폐병을 고치고 있으니…….
딕, 이곳은 모든 일이 잘되어가고 있어. 당면한 문제들만 해결하여, 정신적으로 좀 여유가 생기면 그간의 일들을 자세히 알려주겠네. 내 생각에 자네의 합리적 지성은, 이곳 채플웨이트와 그 주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일에 대해 상당히 흥미로워 할 것 같군.
그건 그렇고, 자네만 괜찮다면 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클래리가 우리 클럽의 기금 조달을 위해 마련한 만찬 파티에서 자네가 내게 소개해 주었던 그 역사학자를 기억하나? 이름이 비글로우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는 자신의 취미에 관해 언급하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민간에 의해 전승된 이야기를 수집하여 연구한다고 했었거든. 내 부탁은 다름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연락하여, '예루살렘의 터'라고 불리는 버려진 작은 마을에 대해, 사실이나 전설이나, 아니면 그저 떠도는 소문이라도 좋으니 뭐든 아는 게 있는지 좀 물어봐 달라는 걸세. 그 마을은 '프리처스 코너'라고 불리는 지역 근처의 로얄 강가에 위치 해있네. 그 강 자체는 안드로스코긴의 지류인데, 그 본류가 채플웨이트 근처의 바다로 유입되는 지역에서 약 11마일 정도 위쪽에서 본류와 합쳐지게 되지.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정말 기쁘겠네. 무엇보다도, 그것이 당분간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 같으니까.
지금까지 쓴 내용을 다시 훑어보니, 자네에게 설명이 너무 부족한 것 같군. 그 점 정말 미안하네. 딕, 하지만 머지않아 자네에게 모든 설명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럼, 그때까지 자네의 아내와 훌륭한 두 아들에게 그리고 물론, 자네에게도 내 안부를 전하네.
자네의 친애하는 친구,
찰스.
1850년 10월 16일
본즈에게
나와 칼에게 좀 기묘하게 느껴지고, 심지어 걱정스럽기까지 한 일을 얘기해야 되겠네.
한번 읽어보게.
적어도 모기를 쫓는 동안 오락거리는 될 수 있을 걸세!
자네에게 지난번 편지를 부친 날로부터 이틀 뒤에, '프리처스 코너'로부터, 위풍당당한 모습의 클로리스 부인의 지휘 아래 4명의 여자들이 이곳에 와서 청소를 하며, 내가 한발자국 옮길 때마다 재채기를 하게 만들었던 먼지들을 털어내었네. 집안일을 하는 동안, 그들은 모두 불안해하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내가 위층 거실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한 경솔한 아가씨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기까지 하였어.
나는 클로리스 부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지. - 그녀는 아래층 복도에서, 자네가 보았다면 참 감탄했을 그런 굳은 의지로, 묵은 먼지들을 쓸어내고 있었는데, 머리를 빛바랜 대형 스카프로 감싸 올린 모습이었지. 그녀는 나를 돌아보면서 다부진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그녀들은 이 집을 좋아하지 않아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왜냐하면 이 집은 항상 '나쁜'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이 뜻밖의 말에 놀라서 입이 딱 벌어지더군. 그녀는 다소 누그러진 어조로 이야기를 계속했어.
"스티븐 분씨가 훌륭한 어른이 아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분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저는 그분이 여기 머무시는 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와서 청소를 했지요. 그분의 아버지 랜돌프 분씨를 위해서도 청소를 했었구요. 그분과 그분의 아내가 각각 18년과 16년에 실종될 때까지였지만. 스티븐씨는 선량하고 친절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그렇게 보이는군요. - 나의 이 꾸밈없는 솔직함을 용서해주게, 달리 어떻게 돌려서 표현해야 할지 모를 뿐이네.-하지만 이 집은 '나쁘고' 지금까지 쭉 그래왔어요. 당신의 할아버지 로버트씨가 그의 형 필립씨와 도둑맞은-그녀는 이 대목에서, 마치 죄의식을 느끼는 것처럼 말을 중단했다.-물건을 놓고 다투고 헤어진 1789년 이래로, 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누구도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지 못했답니다."
본즈, 이곳 사람들의 기억력이 참 놀랍지 않은가!
클로리스 부인의 얘기는 계속되었지.
"이 집은 불행의 토대 위에 지어졌고 계속 불행한 일들만 일어났지요. 그 바닥에는 피가 뿌려진 적도 있었으며-본즈, 자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만, 나의 삼촌 랜돌프는, 그의 딸 마르셀라의 생명을 앗아간 지하실 계단 위에서의 사고와 관련이 있었지. 그 뒤 그는 엄청난 자책감에 빠진 채 헤어나질 못했다더군. 그 사건은, 스티븐이 그의 죽은 여동생의 생일에 보낸 편지에 설명되어져 있네-실종과 사고가 잇따랐다구요."
"분씨, 저는 이곳에서 일해왔습니다. 장님도 아니고 귀머거리도 아니죠. 벽에서 괴상한 소리가 나는 걸 여러 번 들었어요. 쿵쿵거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대부분이었지만, 한번은, 거의 웃음소리처럼 들리는 묘한 흐느낌도 들었지요. 그 순간 온몸의 피가 공포로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이곳은 불길한 장소에요."
그리고는 말을 멈췄지. 아마 자신이 너무 말을 많이 했다는 생각에 두려워진 모양이야.
나로 말하자면, 도대체 화를 내야 할지 재미있어해야할지, 아니면 그녀의 얘기를 흥미로워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군. 부끄럽지만, 그날은 '흥미' 쪽이 우세했네.
"클로리스 부인, 그럼 그게 뭐였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사슬을 드르륵거리며 끌고 다니는 유령이라도 있다는 얘긴가요?"
하지만 그녀는 나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볼 뿐이었어.
"이 세상에 유령들이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벽 속에 있는 것은 유령들이 아니에요. 저주받은 자들처럼 흐느껴 울며, 어둠 속을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고 또 여기저기 부딪치는 그건, 그건 유령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클로리스 부인, 그게 뭐죠?"
내가 독촉했어.
"벌써 많은 애기를 하셨잖습니까, 이제 시작하신 얘기의 끝을 말씀해 주셔야지요."
공포와 불쾌감, 그리고-내가 장담하건대-종교적인 경외심이 뒤섞인 묘한 표정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어.
"어떤 사람들은 죽지 않아요."
그녀가 작은 소리로 말했어.
"어떤 사람들은 황혼의 그림자 사이에 살면서 '그'를 섬긴다구요!"
그게 전부라네. 잠시동안 그녀를 다그쳐보기도 했지만, 점점 더 완강해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하더군. 결국, 더 캐어물으면 그녀가 가방을 챙겨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단념하고 말았지.
첫 번째 사건은 그렇게 끝났네. 하지만 두 번째는 바로 그날 밤에 일어났지. 나는 칼빈이 불을 피워준 거실에 앉아 퇴창에서 들리는 비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정보 제공자(The Intelligencer)를 읽고 있었는데, 아마 어느새 잠이 들었나 봐. 바깥 날씨가 춥고 구질구질할 때 따뜻하고 안락한 실내에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편안함에 빠져들었지. 그런데 바로 그때 칼이 흥분되고 좀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문가에 나타난 거야.
"주무시나요?"
그가 물었지.
"아니, 무슨 일이지?"
"위층에서 뭔가 발견했는데, 아무래도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가 흥분을 억누르며 대답했어.
나는 일어서서 그를 따라갔네, 우리가 폭이 넓은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칼이 말했어.
"저는 위층 서재에서 좀 별난 책을 읽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벽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요."
"쥐들이지. 그래, 겨우 그 얘기였나?"
그는 층계참에 멈춰서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어. 그가 들고 있던 램프의 그림자가 어두운 커튼 위에서 괴상하게, 마치 몰래 숨어버릴 것처럼 흔들거렸고, 절반쯤만 보이는 초상화들은 이제 미소 짓는 게 아니라 험상궂게 노려보는 것처럼 보였다네. 밖에서는 바람이 비명 소리를 내며 불다가, 마지못해 잠잠해졌어.
"쥐가 아니에요."
칼이 말했어.
"책장 뒤에서 무엇인가가 비틀거리며 툭툭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러더니 그르륵거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정말 무시무시했다구요. 조금 후에는 마구 긁어대었어요. 마치 밖으로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처럼…… 절 붙잡으려고요!"
본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이해하겠지. 칼빈은 말도 안 되는 공상 따위로 경솔하게 행동할 사람은 아니라네. 결국, 이 집에 뭔가 불가사의한, 어쩌면 정말로 흉칙스러운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쥐가 아니면 뭐라는 거야?"
내가 그에게 물었지. 우리는 복도를 따라서 다시 걷기 시작했고, 서재로부터 초상화들이 걸려 있는 복도 쪽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걸 보았네. 나는 그것을 보며 어떤 전율 같은 것을 느꼈어. 그 밤은 더 이상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그 긁어대는 소리가 멈추자 잠시 후에 다시 툭툭 부딪치며 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시작되었어요. 이번에는 그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것이 한번 잠깐 멈췄었는데, 그때, 정말 맹세하건대, 아주 작고 묘한 웃음소리를 들었어요! 책장 쪽으로 다가가, 혹시 격벽이나 비밀문 같은 게 없을까 하고 앞뒤로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찾았나?"
칼은 서재의 문 앞에서 멈춰 섰어.
"아니요. 하지만 대신 이걸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왼쪽 책장에 난 정사각형 모양의 검은 구멍이 눈에 띄었네. 그 자리에 있던 책들은 조그마한, 물건을 숨기는 장소였어. 그 안을 보기 위해 램프를 들이댔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몇십 년은 되었을, 두껍게 쌓인 먼지뿐이었다네.
"그 안에는 이것뿐이었어요."
칼이 조용히 말하며 나에게 누렇게 변한 종이를 건네주었지. 그것은 검은 잉크로 거미줄만큼이나 가늘게 그려진 어느 마을의 지도였어. 대략 일곱 개 정도의 건물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에는 교회의 첨탑이 뚜렷이 그려져 있었고 그 밑에는 '인간을 타락시키는 벌레'라고 문구가 적혀있었어.
그 작은 마을의 북서쪽쯤 될 듯한 왼쪽 꼭대기에는 화살표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그 밑에 '채플웨이트'라고 새겨 좋았더군.
칼빈이 말했지.
"제가 마을에 갔을 때, 미신에 사로잡힌 듯이 보이는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의 터'라고 불리는 버려진 마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어요. 마을 사람들은 그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던데요."
"그럼 이건 무슨 뜻이지?"
내가 손가락으로, 첨탑 밑에 쓰여진 문구를 가리켰지.
"모르겠는데요."
강직하면서도 소심했던 클로리스 부인의 모습이 떠올랐어.
"벌레……"
"분씨,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글쎄, 내일 이 지도 속의 마을을 찾아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칼, 자네 생각은 어때?"
그가 눈을 반짝이며 끄덕거렸지. 우리는 그러한 논의 후로도 한 시간 동안이나 그 비좁은 구멍 뒤쪽으로 어떤 틈 같은 것을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네. 칼이 묘사했던 소리들도 다시 들리지 않았고.
그날 밤엔 더 이상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
다음 날 아침, 칼빈과 나는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떠났어. 그 전날 밤에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음울하였지. 칼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길래, 지치거나 마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바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재빨리 말해서 그를 안심시켰네. 우리는 그 여행을 위해 도시락과 나침반을 준비했고, 물론, '예루살렘의 터'로 인도하는 그 이상한 옛날 지도도 잊지 않고 챙겼지.
참 기묘한 기분이었네. 우리가 음울하게 서 있는 소나무들을 지나치며 남동쪽으로 가는 동안 새 한 마리 노래하지 않았고, 어떤 짐승도 찾아볼 수가 없었어. 우리의 발걸음 소리와 벼랑으로 밀려와 부딪쳐대는 대서양의 파도 소리 외에는 죽은 듯이 고요하였고 불가사의할 정도로 짙은 바다 냄새가 계속 우리 뒤를 따라왔지.
한 2마일쯤 더 걸어가자, 한때는 '통나무길'로 불렸을 게 분명한, 관목으로 뒤덮인 통로가 나타났어. 마침 그 길이 우리가 가는 방향 쪽으로나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좀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지. 둘이서 말은 별로 하지 않았어. 몹시 조용하고, 불길하게 느껴지는 날씨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거든.
약 11시경에 힘찬 물소리가 들렸어. 길은 왼쪽으로 급하게 꺾여졌고, 사납게 흐르는 청회색 빛의 강 너머로 마치 무슨 신기루처럼 서 있는 '예루살렘의 터'가 나타났네.
강의 폭은 한 8피트쯤 될 것 같았는데 이끼 낀 인도교가 걸려 있었다네. 본즈, 그 너머로 자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완벽한 모습의 마을이 서 있었지. 어느 정도 비바람에 깎이기는 했어도 놀랄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더군. 수수하면서도 위엄있는 청교도들의 건축방식으로 지어진 대 여섯 채의 집들이 가파른 강기슭에 모여 서 있었고, 그 훨씬 뒤로는 잡초가 자라난 통로를 따라 자리 잡은 원시적인 상점이 서너 개 보였어. 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그 첨탑은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 있었는데 페인트칠은 벗겨지고, 십자는 녹슨 채 기울어져서,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험상스러운 모습이었네.
"마을 이름 하나는 제대로 지었군요."
칼이 내 옆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지.
우리는 다리를 건너가 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네.-자, 지금부터 내 얘기가 좀 놀라워질 걸세. 본즈,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두게.
우리가 그 건물들 사이를 걸어 다니는 동안 대기는 한층 더 무거워진 것 같았네. 그 건물들은 낡아 부식해가는 과정에 있었는데, 덧문은 떨어져 나가고, 지붕은 이제까지 내렸던 눈의 무게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며 먼지 낀 유리창들은 마치 누군가가 그 안에 숨어 우리를 엿보는 것처럼 으시시하였지. 이상야릇하게 뒤틀린 집 모퉁이의 그림자들도 그 불길한 분위기에 한몫을 하고 있는 듯했고.
우리가 맨 처음 들어간 곳은 오래되어 무너져 내릴 듯한 여인숙이었네. 사람들이 일을 끝내고 사(私)적인 자유를 즐기며 쉬었던 곳을 침입한다는 건 왠지 옳은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았거든. 부서진 문 위의, 비바람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분명한 낡은 간판에는 '멧돼지의 대가리 여인숙'이라고 적혀있었어. 문을 열자 단 한개 남아있던 경첩이 섬뜩하게 삐거덕거렸고 우리는 어두운 실내로 발을 들여놓았지. 곰팡내와 부패의 냄새가 안개처럼 자욱이 깔려 숨을 쉬기가 곤란할 정도였는데, 바닥 쪽의 공기는 한층 더 지독한 냄새를 풍겼어. 그 냄새는 아주 고약하고 유독했는데, 세월의 냄새이자, 그 세월 동안 지속된 부패의 냄새이기도 했다네. 썩어가는 관이나 파헤쳐진 무덤 속에서나 날 법한 악취였지. 나는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고, 칼도 곧 그렇게 했어.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았지.
"하나님 맙소사, 이곳은……."
칼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어.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았었군."
내가 그를 대신해 말을 마쳤지.
그 말은 사실이었어. 탁자와 의자들은 마치 그곳을 지키는 영적인 수호자라도 되는 것처럼 늘어서 있었는데, 뉴 잉글랜드의 독특한 기후 현상인 급격한 기온 변화로 인해 비틀려진 채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지만, 그 점을 제외한다면 거의 완전한 상태였다네. 마치 그 긴 침묵의 세월 동안, 가버린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 맥주를 주문하며 카드놀이를 하거나 사기 담뱃대에 불을 붙이기를 기다려 온 것처럼 보였네. 작은 사각형 거울이 여인숙의 규칙을 적은 종이 아래 깨지지 않은 채 걸려 있었어. 본즈, 그게 뭘 뜻하는 건지 알겠나? 어린아이들은 호기심 많고 난폭한 법이지. 그래서 어떤 무시무시한 소문이 떠돌던 간에 '귀신 들린'집의 유리창은 온전히 남아있을 수가 없고, 어느 묘지에 가보든지 간에, 어린 개구쟁이들에 의해 뒤집혀진 비석이 한둘은 있게 마련이지. 이 '예루살렘의 터'에서 불과 2마일밖에 안 떨어진 '프리처스 코너'에도 그런 개구쟁이들이 적어도 20명 정도는 있을 텐데, 그 여인숙 주인의 거울-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비쌌을-은 온전하였단 말일세. 거울뿐만 아니라, 우리가 돌아다니는 동안에 발견한 다른 깨지기 쉬운 물건들도 모두 흠 하나 없는 상태였단 말이네. '예루살렘의 터'에서 손상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외적인 힘에 의해 이루어진 것뿐이었네. 그것이 암시하는 바는 분명하지 않은가. '예루살렘의 터'는 누구나 접근하기를 기피해 온 마을이라는 거지. 하지만 왜? 짐작되는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감히 그것을 언급하기 전에, 우리의 여행이 어떻게 끝났는지 먼저 이야기해야 될 것 같군.
객실에 올라가 보니 침대가 정리되어져 있었고 그 옆에는 사기 주전자가 얌전히 놓여 있었네. 부엌도 깔끔하게 정돈되어진 채, 먼지와 지독한 악취를 제외한다면, 모든 것이 본래의 모습 그대로였지. 그 여인숙 하나만으로도 골동품 수집가의 천국이 되고도 남을 거야. 놀랄 만큼 독특한 부엌 난로 하나가 보스톤 경매중개소에서는 엄청난 가격에 팔릴 테니까.
"칼, 어떻게 생각하나?"
변덕스러운 햇빛 속으로 걸어 나오며 내가 물었지.
"이곳에는 꺼림직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칼이 대답했어.
"좀 더 돌아보며 자세히 알아봐야겠어요."
우리는 다른 상점들도 대강 훑어보았네. 녹슨 못에 곰팡이 핀 가죽옷들이 그대로 걸려 있는 여관과 잡화점, 참나무와 소나무 목재들이 여전히 쌓여있는 창고와 대장간 등이었지.
마을의 중심을 향해 가는 도중, 두 채의 가옥에도 들러보았지. 모두 완벽하게 청교도 양식에 따라 지어졌더군. 둘 다 황폐하고 썩어가는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수집가가 두 팔을 벌려 환영할 물건들로 가득했다네.
그 마을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곤 우리 둘뿐이었네. 벌레도 새도 보지 못했고, 창문 구석을 장식했을 거미줄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어. 그저 먼지뿐이었지.
마침내 교회에 도착했다네. 그것은 우리의 머리 위로 우뚝 솟아 있었는데, 그 흉칙한 모습이 우리를 오싹하게 했네. 창문들은 모두 실내의 어두움으로 인해 검게 보였고 어떤 신성함이나 거룩함도 찾아볼 수가 없었지. 그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장담할 수 있다네. 계단을 올라간 뒤, 내가 손을 문고리에 얹었어. 그때 칼빈과 나는 마음을 굳게 먹은, 하지만 여전히 불안함은 숨기지 못한 표정을 교환하였지. 마침내 그 우람한 문을 열었다네. 도대체 그 문은 얼마 만에 다시 열린 것이었을까? 50년 아니면 그 이상이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네. 문이 열리면서 녹슨 경첩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어. 문을 열자마자 우리를 강타한 부패의 악취는 거의 손으로 만져질 수 있을 정도였어. 칼은 구역질을 하며, 무의식중에 냄새가 덜 지독한 곳을 찾아 고개를 틀었을 정도였으니까.
"정말 괜찮으신가요?"
"난 아무렇지도 않네."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 아직까지도 계속 마음의 동요를 느끼고 있다네. 본즈, 내가 모세와 제레봄, 인크리스 메이서 그리고 심지어는 우리 친구, 한스-그가 철학적 기질을 보여줄 때-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네만, 그곳은 악령의 장소였어. 천지만물이 부패하여 지독한 악취를 풍기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구. 난 정말 장담할 수 있어.
우리는 연결복도 쪽으로 들어섰어. 먼지 쌓인 코트 걸이와 선반 위에 얹혀진 찬송가집들이 보였네. 창문은 하나도 없었고 오일 램프가 장식 선반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어. 뭐라고 한마디로 평할 수 없는 방이었지. 그때 칼빈이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가 보고 있던 물체 쪽으로 시선을 돌렸어.
그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추잡한 그림이었네.
그 정교한 액자 속의 그림을 도대체 어떻게 묘사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그것은 루벤스의 스타일을 흉내 내어, 살찐 육체가 두드러져 보이게 그려졌는데, 어린 그리스도를 안은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담은 기괴하고 졸렬한 모조품이었다네. 뒷배경에는, 뭔지 알 수 없는 희미하게 그려진 동물이 장난을 치며 기어가고 있었네.
"하나님 맙소사."
내가 탄식하였지.
"이곳에 하나님은 없어요."
칼빈의 그 말은 사라지지 않고 공중을 맴도는 것 같았어. 내가 교회의 본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 악취는 더 지독해졌고 독기마저 뿜어내고 있었네.
오후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신도석들이 마치 유령 같은 모습으로 제단 앞까지 늘어서 있었고 그 위로 참나무로 만들어진 높은 설교단이 보였어. 그리고 그 그림자에 가려져 어두운, 참회자를 위한 단 쪽에서 무엇인가가 금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네.
갑자기 기독교 신자인 칼빈이 반쯤 흐느끼며 성호를 그었고 나도 그를 따라 했어. 그 금빛 물체는 아름답게 장식된 십자가였지만, 보통 십자가가 아니라 위와 아래가 뒤바뀌어 거꾸로 매달린, 사탄의 상징이었기 때문이었네.
"침착해, 칼빈."
사실 그것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지.
"우리는 정말 침착해야 해."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네. 정말이지 그때보다 더 겁이 났던 적은 없었다구. 뇌막염으로 고통을 받으며 죽음의 우산 아래를 걷는 동안에는 그곳보다 더 짙은 어둠은 없을 거라고 믿었었지. 하지만 이젠 아닐세.
신도석 사이의 통로를 따라 걸어가는 동안, 우리의 발걸음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고, 바닥에 깔린 먼지 위로 발자국이 남겨졌지. 제단 위에는 또다른 불길한 예술품들이 놓여 있었지만, 그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기억할 수도 없고, 사실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네.
내가 설교단 위로 올라가려 할 때였어.
"분씨, 안 돼요!"
칼이 소리를 질렀지.
"만약에 잘못되면……"
하지만 나는 그곳에 올라섰지. 커다란 책이 받침대 위에 펼쳐져 있었는데 라틴어와 내 미숙한 눈에는 드루이드어나 원시 켈트어 중의 하나로 보이는 알아보기 힘든 기호로 쓰여져 있었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기호 중의 몇 자를 적은 카드를 첨부하네.
나는 책을 덮은 뒤, 가죽 표지에 새겨진 글자들을 보았네.
'De Vermis Mysteriis'
라틴어 실력이 많이 녹슬기는 했지만, 그 말을 번역할 정도는 되었지.
'벌레의 신비'
내가 그 책을 만졌을 때, 그 저주받은 교회와 칼빈의 백지장 같은 얼굴이 나의 눈앞에서 빙빙 도는 것처럼 느껴지더군. 어떤 낮고 단조로운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고 섬뜩한 공포감이 나를 엄습했다네. 그 소리와 함께, 땅 밑을 가득 채울 것 같은 또 다른 소리도 들려왔네. 환각이었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동시에 교회를 가득 채울듯한 보다 분명한 소리가 들렸다네. 어떤 거대하고 섬뜩한 것이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은 그런 진동음이었다고 밖에는, 달리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나는 손가락으로, 설교단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네. 그 신성이 모독된 십자가도 벽에 걸린 채 떨리고 있었지.
순간적으로 칼과 나는, 그곳을 어둠 속에 버려둔 채 도망치기 시작했네. 강 위에 두꺼운 판자로 걸쳐진 그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 나는 우리가 겁에 질려 도망함으로써, 인류가 미신에 사로잡힌 야만인으로부터 진보를 거듭해온 1900년의 시간을 모독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네. 하지만, 우리가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어서 돌아왔다고 말한다면, 나는 거짓말쟁이가 될걸세.
이게 내 이야기라네. 혹시 내가 다시 뇌막염에 걸려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지 말게. 여기 적은 모든 이야기를, 교회에서 들은 그 섬뜩한 소리까지 포함해서 칼이 증명해 줄 수 있으니까.
이만 줄이겠네. 자네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네를 보자마자 이 모든 당혹감이 즉시 사라져 버릴 텐데.
자네의 친구이자 찬미자인 찰스로부터.
1850년 10월 17일
판매 담당자분께,
귀사의 최신 상품 카탈로그(1850년 여름호)에서, '쥐를 죽이는 독'이라는 이름의 물품 견본을 보았습니다. 5파운드짜리 깡통 1개를 귀사의 판매가인 30센트에 구입하고 싶습니다. 반신용 우편요금을 동봉하니 아래의 주소로 부쳐 주시기 바랍니다.
칼빈 맥칸, 채플웨이트, 프리처스 코너, 킴버랜드, 메인.
감사합니다.
칼빈 맥칸.
1850년 10월 19일
본즈에게
불안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네.
집안의 소음은 더욱 심해졌고, 나는 벽 안쪽에서 움직이는 것이 쥐만은 아니라고 믿게 되었지. 칼빈과 내가 다시 갈라진 틈이나 숨겨진 통로 같은 것을 찾아 집안 곳곳을 뒤졌지만 허사였네. 래드클리프 부인의 연애소설이나 나올 법한 장면 아닌가! 칼은 소리가 지하에서 들리는 것 같다고 주장했고, 그래서 내일은 그곳을 조사해볼 생각이야. 스티븐의 여동생이 그녀의 불운한 죽음과 만난 곳이 바로 지하실이라는 것 때문에 마음이 더욱 편치 않다네.
말이 난 김에 하는 얘긴데, 위층 복도에 걸려 있는 그녀의 초상화 말이야, 화가가 제대로 그린 거라면, 마르셀라 분은 애처로울 정도로 예쁜 모습인데, 결국 결혼도 못 한 채 그렇게 죽다니. 가끔씩 나는, 이 집이 '나쁜' 곳이라는 클로리스 부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슬픔밖에는 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하려는 얘기는 위협적으로 보일 만큼 클로리스 부인에 대한 것이야. 오늘 그녀와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거든. 지금까지 이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분별 있어 보이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에, 오후에 그녀를 찾아 나섰지. 하지만 그전에 내가 경험한 불유쾌한 일에 대해 먼저 얘기해야 될 것 같군.
오늘 아침에 배달되기로 되어 있던 그 땔나무들은 점심때가 지나서도 도착하지 않았어. 그래서 프리처스 코너까지 찾아가 보기로 결심한 거야. 물론, 칼이 계약을 맺은 그 톰슨이라는 사람을 만날 생각에서였지.
발밑으로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밟히는 화창한 가을날이었네. 그리고 톰슨의 농장-스티븐의 서재를 조사하기 위해 집에 남은 칼이 방향을 일러주었어-에 다다를 때쯤 되어서는, 오랜만에 마음이 아주 즐거워졌고, 땔나무의 배달이 지체된 점에 대해서도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
그곳은 잡초와 페인트칠이 벗겨진 채 무너져가는 건물들이 뒤엉킨 혼잡스러운 농가였어. 헛간 왼쪽으로는 진흙투성이의 돼지우리 속에서 11월경에는 도살할 수 있을 정도로 살이 찐 커다란 암돼지가 꿀꿀거리며 뒹굴고 있었고, 안채와 바깥 건물들 사이의 지저분한 뜰에서는 다해진 무명 치마를 입은 여인이, 앞치마에 담아온 모이를 닭들에게 던져주고 있었어. 내가 큰 소리로 부르자, 그 여인은 창백하고 활기 없는 얼굴을 내게로 돌렸네.
바보스러운 무표정이 격앙된 공포의 얼굴로 갑작스럽게 바뀌었지. 나는 그녀가 나를 스티븐으로 오인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네. 그녀는 손을 들어 성호를 그으며 적의에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비명을 질러댔어. 닭 모이는 땅바닥에 뿌려지고 닭들은 꽥꽥거리며 날갯짓을 해댔지.
내가 뭐라고 해명을 하기도 전에, 긴 소매의 속옷 하나만을 달랑 걸친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쿵쿵거리며 집 밖으로 달려 나왔는데 한 손에는 22구경의 소총을 또 다른 손에는 위스키병을 들고 있었어. 그의 붉게 핏발선 눈과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보아 그가 벌목꾼 톰슨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분가(家)의 사람이다!"
그가 소리를 질렀어.
"저, 저 눈!"
그 역시 위스키병을 떨어뜨리며, 성호를 그었네.
"나무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왔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한껏 침착하게 얘기하려고 애썼지.
"당신이 제 친구와 체결한 계약에 따르자면……."
"맙소사, 친구까지!"
처음으로, 나는 그가 그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허세를 부리며 호통을 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 그가 어쩌면 흥분해서 나를 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어.
"좀 정중하게 대해주실수……."
"저, 저 정중함이라고!"
"할 수 없군요."
내가 할 수 있는 한 위엄을 갖추며 말했네.
"당신이 흥분을 가라앉힐 때까지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으니 이만 가겠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 마을 쪽으로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어.
"다시는 나타나지 마!"
그가 내 등에 대고 소리쳤어.
"저 꼭대기에서 네 악마와 함께 있으라구! 제기랄, 저주받아라! 저주받아!"
그가 내 쪽으로 돌을 던졌고, 정확히 내 어깨를 맞췄어. 나는 몸을 피하며 그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네.
톰슨이 날 증오하는 이유라도 알아내려는 생각으로 클로리스 부인을 찾아갔지. 그녀는 과부이고-하지만 자네의 엉터리 결혼 중매의 대상은 아니야. 그녀는 적어도 나보다 열다섯 살 정도는 연상인데, 내가 다시 마흔 살로 되돌아가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을 테니까 말일세-바닷가의 아름다운 오두막집에서 혼자 살고 있지. 내가 찾아갔을 때 그녀는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나를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것 같았어. 그것이 날 얼마나 안심시켰는지 아나? 이유 없이 추방자 취급을 당하는 것처럼 괴롭고 속상한 일은 없는 법이지.
"분씨."
그녀가 무릎을 굽혀 인사하며 말했네.
"세탁을 부탁하러 오신 거라면, 헛걸음질을 하셨네요. 신경통 때문에 제 빨래하기도 이렇게 힘이 든답니다."
"세탁 문제로 찾아온 거라면 저도 좋겠습니다. 클로리스 부인,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당신이 채플웨이트와 예루살렘의 터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모두 말씀해 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하고 의심쩍어하는 이유에 대해서도요."
"예루살렘의 터! 그럼 벌써 그곳에 대해 알고있다는 말씀인가요?"
"예."
내가 대답했지.
"일주일 전쯤 내 친구와 함께 그곳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런 일이!"
그녀의 얼굴은 우윳빛처럼 창백해졌고, 나는 손을 내밀어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그녀를 부축했네. 그녀의 눈은 희번덕거렸고, 잠시동안이긴 하지만 그녀가 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클로리스 부인, 혹시 제가 무슨 말을 잘못해서 놀라셨다면 정말 죄송……"
"안으로 들어와요."
그녀가 말했지.
"당신이 꼭 알아야만 해요. 오, 하나님, 악마의 시간이 다시 닥치다니!"
그녀는 단정하게 정리된 깨끗한 부엌에서 차를 진하게 우려내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우리가 찻잔을 앞에 놓고 앉자, 그녀는 한참동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았지. 공교롭게도 그녀의 눈과 나의 눈은 동시에 채플웨이트의 벼랑 쪽을 향했는데, 그 돌출된 부분 위에 내가 머물고 있는 집이 바다를 보고 서 있더군. 그 커다란 퇴창은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햇빛을 받아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렸네. 그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왠지 불길한 여운을 남기더구만. 그녀가 갑자기 나를 돌아보더니 힘 있는 목소리로 잘라 말했지.
"분씨, 당신은 당장 채플웨이트를 떠나야 해요!"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네.
"당신이 지난주 그곳에 거처를 정한 뒤로 대기 중에 악의 숨결이 느껴지고 있어요. 당신이 그 저주받은 집에 살게 된 뒤로 불길한 징조들이 나타났다구요. 달의 표면에는 기이한 막이 덮이고, 쏙독새무리가 공동묘지로 날아들었으며, 부자연스런 탄생마저도 있었어요. 당신은 떠나야만 해요!"
나는 겨우 입을 열어, 가능한 한 부드럽게 말했다네.
"클로리스 부인, 그런 것들은 모두 환상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바바라 브라운이 눈이 없는 아이를 낳은 것도 환상인가요? 또, 클리프톤 브로켈이, 채플웨이트 너머에 있는 '모든 것이 시들고 생기를 잃는' 그 숲에서 어떤 짐승의 것인지 모를, 폭이 5피트나 되는 흔적을 발견한 것도 환상이라고 하실 건가요? 당신이 예루살렘의 터에 가보셨다니 묻겠습니다. 그곳에 뭔가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나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네. 그 끔찍스러운 교회 안에서 경험했던 일들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지.
그녀는 자신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마디 투성이의 두 손을 꼭 쥐었어.
"저는 그러한 일들을 제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어요. 제 어머니는 또 그녀의 어머니, 즉 제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거구요. 당신은 채플웨이트와 관련된 당신 가문의 이야기들을 알고 있나요?"
"약간요."
내가 답했어.
"그곳은 1780년대부터 필립 분과 그의 후손들의 집이었지요. 필립 분의 동생이자 저의 할아버지 되시는 로버트 분은 도둑맞은 문서 때문에 형과 크게 다툰 뒤 매사추세츠로 떠나버렸죠. 필립의 직계 자손들에 관한 얘기는 거의 몰라요. 단지, 불행의 그림자가 대대로 이어져 왔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마르셀라는 비극적인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스티븐도 추락사하였죠. 채플웨이트에 나와 나의 자손들이 뿌리내리고 살면서 오래전에 시작됐던 가족 간의 반목과 불화가 개선되고 결국 끝나버리기를, 스티븐이 얼마나 희망했는지 모릅니다."
"개선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지.
"당신은 가족이 서로 반목하게 된 이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그렇죠?"
"로버트 분이 그의 형의 책상을 뒤지다가 발각되었다면서요."
"필립 분은 미쳤었지요."
그녀가 말했어.
"악마와 영적으로 교신하는 사이였다고 할까요. 로버트 분이 찾아내려고 하였던 것은, 라틴어나 드루이드어 같은 고어로 적혀진 이교도의 성서였어요. 악마의 책이지요."
"De Vermis Mysteriis."
그녀가 깜짝 놀라 주춤하였다.
"어떻게 아나요?"
"본 적이 있어요…… 만지기까지 했죠."
그녀는 다시, 기절할 것 같은 모습이 되었네. 비명을 억누르기 위해서인 듯,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네.
"맞아요. 예루살렘의 터에 갔을 때에요. 썩어가는 저주받은 교회의 설교단 위에 놓여 있더군요."
"아직도 거기에 있다니!"
그녀가 의자 위에서 몸을 비틀었다네.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그것을 지옥의 구덩이 속으로 던져버리기만을 바랬었는데……"
"필립 분과 예루살렘의 터는 어떤 관계지요?"
"피로 맺어진 관계랍니다."
그 말은 너무도 음울하게 들렸네.
"비록 필립 분이 양의 탈을 쓰고 다니기는 했어도 그에게는 악마의 표시가 있었지요. 1789년 10월 31일 밤에 그는 실종되었어요…… 그리고 그 저주받은 마을에 살던 모든 사람들도 그와 함께 사라져버렸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얘기하려 하지 않았네. 사실, 그 이상 더 알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저 떠나라는 말만을 반복하더군. '피를 부르는 피' 때문이라고도 했고 '감시하는 사람들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중얼거렸어. 땅거미가 질 무렵이 되자, 그녀는 점점 더 흥분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녀를 달래기 위해 채플웨이트를 떠나라는 그녀의 말을 고려해보겠다고 약속했네.
나는, 훨씬 더 길어진 우울한 그림자들 사이를 걸어서 돌아왔어. 즐거웠던 기분은 사라져 버린지 오래고,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의문들로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었네. 칼은 벽 속의 소음이 더욱 심해졌다는 소식을 알리며 나를 맞더군. 나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느끼고 있다네. 단지 쥐들이 내는 소리일 거라고 나 자신을 설득시키려 애쓰다가도, 겁에 질린, 그러나 정직한 클로리스 부인의 얼굴이 떠오르면…….
바다 위로 달이 솟아올랐네. 핏빛 달이 바다 위에 그 불길한 그림자를 던지고 있어. 다시 그 교회의 모습이 생각나고.
(이 부분에서 한 줄이 삭제되었음)
하지만 본즈, 자네가 그것을 봐서는 안 되네. 그건 너무도 무모한 짓이야. 그만 잠잘 시간인 것 같아. 이제 내 마음은 자네에게로 가겠군.
잘있게.
찰스.
(아랫 부문은 칼빈 맥칸의 소형 일지에서 발췌한 것임)
50년 10월 20일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의 자물쇠를 억지로 열었다. 분씨가 깨기 전에 끝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모두 암호로 적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암호체계는 단순해 보였다. 어쩌면 그 자물쇠를 연 것처럼 쉽게 해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일기장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필체가 분씨의 것과 비슷했다. 누구의 책이길래 도서관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꽂혀있었던 걸까? 매우 오래된 것 같은데 정확히 언제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종이 썩는 내가 책상 속에서 퍼져 나왔다.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다시 봐야 되겠다. 분씨가 지하층을 보러 내려갈 준비를 끝낸 것 같다. 여기서 벌어지는 끔찍스러운 일들이 그의 불안정한 건강을 악화시킬까 봐 걱정이다.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서…….
그가 오고 있다.
1850년 10월 20일
본즈에게
나는 쓸 수 없어. 아직은 차마 못쓰겠군. 나는, 나는, 나는……
(칼빈 맥칸의 소형 일지에서)
50년 10월 20일
걱정했던 대로 그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오 하느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조차 참을 수 없지만 그것은 마치 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심어졌다. 지하실에서의 공포!
지금은 혼자다. 8시 30분. 집안은 고요하지만-.
그가 책상 위에 기절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아직 잠들어있다. 하지만 내가 압도당하고 마비되어 서있는 동안 그는 얼마나 고결하게 처신하였었는가!
그의 피부는 밀랍같이 창백하고 싸늘하지만 하나님도 무심치 않으신지 뇌막염 증세는 보이지 않는다. 그를 다른 장소로 옮길 수도 없었고 그를 남겨둔 채 마을로 갈 수도 없었다. 설령 갔었다 한들 누가 나를 따라 그를 도우러 와주었을 것인가? 누가 이 저주받은 집으로 오려고 했겠는가?
아, 그 지하실! 벽속을 돌아다녔던, 지하실의 그것들!
1850년 10월 22일
본즈에게
나는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왔네. 36시간 동안의 무의식 상태에서 깨어났기에 좀 기운이 빠져있기는 하지만, 나 자신으로 돌아오다니……. 그 말이 왜 이렇게 무섭고 쓰린 풍자로 들릴까! 나는 다시는, 이전의 내 자신으로 돌아올 수 없을 걸세. 나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광기의 공포에 직면했었지. 그리고 그것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네.
칼만 아니라면, 나는 바로 지금이라도 목숨을 끊고 싶네. 그는 이 광기의 바다에 떠 있는 섬 같은 존재지. 온전한 정신의 섬.
자네에게 전부 알려주겠네.
지하실을 조사하러 가기 위해, 우리는 초를 몇 개 준비하였고, 그것들은 충분히 밝은 빛을 발했지.-섬뜩하리만큼 적절한 빛이었네!-칼빈은 최근에 내가 앓았던 병에 대해 언급하며 나를 단념시키려 애썼다네. 지하실에 내려가 봐야, 나중에 놓을 쥐약의 표적이 될 살찐 쥐들이나 발견하게 될 게 뻔하다고 하더군.
하지만 내 결심은 단호했고 칼빈은 결국 한숨을 쉬며 승복하고 말았지.
"분씨. 그럼 필요한 만큼 초를 들으시죠."
지하층으로의 입구는 부엌 바닥의 통풍문이었는데, 칼이 그 위에 판자를 덧대어 막아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당겨 들어 올린 후에야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네.
코를 찌르는 냄새가 어둠 속으로부터 올라왔는데, 로얄 강 너머의 그 버려진 마을에 가득했던 악취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 촛불을 들이대자, 날카롭게 경사진 계단의 발판들이 한참 아래의 어둠 속까지 이어져 있는 게 보이더군. 계단 상태는 형편없었네-발판 하나는 완전히 떨어져 나가 검은 구멍만을 남겨놓고 있었어. 마르셀라가 어떤 식으로 그녀의 죽음을 맞았는지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네.
"분씨, 조심하세요!"
칼이 걱정하길래, 결코 떨어지지 않을 테니 마음을 놓으라고 말해주었지. 그런 뒤 우리는 아래로 내려갔다네.
발밑은 흙바닥이었고 벽은 견고한 화강암이었는데 아주 건조한 상태였지. 그곳은 아무리 둘러봐도 쥐의 천국으로는 보이지 않았어. 낡은 상자라든가 버려진 가구, 종이 뭉치 같은, 쥐들이 보금자리로 삼고 싶어 할만한 것들이 전혀 없었거든. 우리는 촛불을 들어 올렸지. 불빛은 아주 멀리까지는 나가지 않았지만 가까운 주변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의 밝기는 되었어. 지하실 바닥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1층 거실과 식당 밑으로, 즉 서쪽 방향으로 뻗어있었고, 우리는 그쪽으로 걸어갔지. 그저 정적이 감돌 뿐이었네. 악취는 조금씩 강해졌고, 어둠은 마치 담요처럼 무겁게 우리를 내리누르는 것 같았는데, 오랜 시간 동안 이 지하실을 지배해온 자신을 밀어내고 있는 빛에 대해 화가 나 있는 듯했어.
멀리, 화강암 벽이 끝나고, 검고 광택이 없는 나무판자가 보였는데 그게 지하실의 막다른 벽이었지. 그 구석 쪽으로 작은 골방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위치한 각도 때문에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서 조사하는 게 불가능하였다네.
그래서 칼빈과 나는 틈을 비집고 들어갔지.
이 집의 불행한 과거가, 썩어가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 같았네. 골방 한가운데에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로는 부패한 올가미가 천정의 들보에 매어져 있었어.
"그렇다면 여기서 그가 자살을 한 거군요."
칼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세상에!"
"맞아…… 딸의 시체를 자기 옆에 눕히고는."
칼이 무슨 말을 하려다 내 뒤쪽을 갑자기 쳐다보곤 하려던 말을 멈추고 비명을 질러 대었다네.
본즈, 나는 내 눈에 비쳤던 그 장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벽 속에 살고 있었던 그 소름 끼치는 것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 얘기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
뒷벽이 홱 당겨지더니, 어둠 속에서 우리를 엿보는 얼굴이 나타났네. 눈은 지옥의 강처럼 검고, 이빨이 없는 입은 벌려진 채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 우리를 향해 내민 손은 누렇게 부패 되어 있었고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같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우리 쪽으로 비틀비틀 다가오고 있었어. 촛불을 들어 그쪽을 비추었는데…….
그의 목에는 검푸르게 멍든 밧줄 자국이 있었어!
그 뒤로 또 다른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어. 나는 죽는 날까지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거야. 창백한, 썩어가는 송장의 얼굴을 한 소녀였는데, 목이 괴상한 각도로 꺾여져 머리가 축 늘어져 있었어.
그들은 우리를 원했어. 나는 확신할 수 있네. 그들은 우리를 그들의 어둠의 세계로 끌고 가 거기에 붙들어 두고 싶어 했어. 내가 그 격벽 속의 것들에게 촛불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그 올가미 아래에 있던 의자로 그들을 내리치지 않았더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 뒤 나는 의식을 잃었어. 나의 마음은 두꺼운 커튼 속으로 숨어버렸지. 눈을 떠보니 내 방에 누워있었고 칼이 내 옆에 앉아 지키고 있었네.
떠날 수만 있다면, 나는 잠옷 자락을 펄럭이며, 이 공포의 집으로부터, 날아서라도 도망을 치겠네. 그러나 난 그럴 수 없어. 나는 음울한 어둠의 드라마의 볼모가 되어버렸다네.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는 묻지 말게. 나는 그저, 그렇게 느낄 따름이니까. 피가 피를 부른다는 클로리스 부인의 말은 사실이었어. 그녀의, 지키는 자와 감시하는 자의 얘기는 또 얼마나 소름 끼칠 만큼 정확한가. 내가, '예루살렘의 터'라는 음침한 마을에서 반세기 동안 잠들어있던 '힘'을 깨운 것이 아닐까 두렵네. 나의 선조들을 살해하여, nosferatu -'죽지 못하는 자들' 같은, 악령의 노예로 삼아버린 그 '힘' 말일세.
본즈, 하지만 그것이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야. 나는 아직도 그 일부분만을 알고 있을 뿐이라서……. 만약 내가 전부 알기만 한다면!
찰스.
추신 : 물론, 나는 이 편지를 단지 나 자신을 위해서 쓰고 있네. 우리는 프리처스 코너로부터 격리되어 있고, 이것을 부치기 위해, 나를 더럽힌 이 병독을 그곳에 옮길 수는 없지 않은가. 칼빈 역시 나를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신이 자애로우시다면, 언젠가 어떤 방법으로든 이 편지가 자네에게 배달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C.
(칼빈 맥칸의 소형 일지에서)
50년 10월 23일
그는 오늘, 전보다 건강해 보인다. 지하실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에 대해 잠깐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것이 환영이나 심령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분씨도 나처럼 그들이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하는 걸까? 모를 일이다. 소음은 멈췄지만, 어둠의 장막에 덮인 것처럼 불길하게만 느껴진다. 마치 현혹스러운 태풍의 눈 속에서 앞으로 닥칠 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위층 침실에서 종이 뭉치를 발견하였는데, 접이식의 뚜껑이 달린 낡은 책상의 맨 밑 서랍에 들어있었다. 약간의 서신과 청구서들을 본 후에 그 방이 로버트 분씨의 것이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것은 신사용 실크 모자 광고지의 뒷면에 적혀진 몇 줄 안 되는 메모였다. 제일 윗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Blessed are the meek(마음이 온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 아랫줄에는, 외견상으로는 아무 뜻도 없는 문구가 있었다.
bkedshdermtheseak
elmsoerareshamded
나는 순간적으로, 이것이 서재에 있던 그 자물쇠가 채워진 책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열쇠임을 알았다. 윗줄에 적혀져 있는 것은 독립전쟁 중에 쓰였던 '장애물의 난간'이라고 불리는 단순한 암호임에 틀림없었다. 한 자씩 건너뛰어 아무 의미도 없는 글자들을 지워버리면 아래의 글자들만이 남는다.
besdrteek
lseaehme
수평이 아니라 수직 방향으로 읽게 되면, 원래의 마태복음에서 인용된 문구가 되는 것이다.
분씨에게 보여드리기 전에, 책의 내용을 좀 살펴봐야 되겠다.
1850년 10월 24일
본즈에게
참 놀라운 일이야. 확신을 갖기 전에는 함부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매우 희귀하고도 감탄할 만한 특성이지-칼이, 나의 조부인 로버트의 일기장을 찾아내었네. 그것은 칼이 이미 해독한 암호로 적혀있었어. 칼은 그 발견이 우연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인내와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네.
아무튼, 그 일기장은 우리가 이곳에서 경험하고 있는 그 불가사의한 일에 또 다른 암울한 빛을 던져주었어.
첫 일기가 적힌 날짜는 1789년 9월 1일이었고, 마지막은 클로리스 부인이 언급한 그 지각변동과도 같은 대규모의 실종이 발생하기 4일 전인, 1789년 10월 27일이었어. 그것은 깊어가는 망상, 아니, 광기에 대한 기록이었으며, 나의 종조부인 필립과 예루살렘과의 관계에 대해서, 또 그 신성이 모독된 교회에 놓여져 있던 책에 대해서도 소름 끼칠 만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었네.
로버트 분에 따르면, 그 마을은 1782년에 지어진 채플웨이트나, 당시에는 프리처스 레스트라고 불렸던, 1741년에 세워진 프리처스 코너보다 먼저인 1710년에 세워졌더군. 제임스 분이라는 이름의 완고한 광신자에 의해 이끌어지는, 청교도의 한 교파의 주거지였어.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그가 우리 가족과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인 것 같았네. 혈통이 가장 큰 중요성을 띠고 있다는, 클로리스 부인의 근거 없는 믿음이 사실로 확인되다니, 나는 필립과 예루살렘의 터에 대한 나의 질문에 '피로 맺어진 관계'라고 대답했던 부인의 모습을 떠올렸지.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다니…….
분이 설교를 하고, 또 재판도 하였던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은 자리잡혀 갔네. 나의 할아버지가 일기장에 넌지시 비춘 말들에 의하면, 그 마을의 처녀들과 관계를 가졌었던 것 같아. 물론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그들을 달래면서 말이야. 아무튼 그 마을은, 마녀와 성모마리아의 처녀 수태에 대한 믿음이 공존하였던 그런 시대에나 있을 법한 아주 이례적인 곳이 되어버렸지. 근친상간에 의해 이루어진, 좀 변질된 종교집단 마을이었다네. 그 마을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경과 드 구찌(de Goudge)의 불길한 책, '악마의 거주지(Demon Dwelligs)'를 동시에 복음서로 사용하는 반 미치광이 설교자였고, 귀신을 물리치는 의식이 정기적으로 거행되었으며, 근친상간의 대가로, 광기와 신체적 결함을 지닌 주민들이 늘어만 갔지. 내 생각에, 분의 서자 중의 한 명이 예루살렘의 터를 떠나 남쪽으로 가서 재산을 모은 뒤 그 자신의 가계를 세울 수 있었을 것 같아. (로버트 분에게도 그런 서자들이 있었을지 몰라) 우리 가문은, 최근 들어서야 메인이라는 독립 주가 된 매사추세츠의 어느 한 곳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되어왔지. 나의 증조부인 케네스 분은 당시에 번성하였던 모피 장사로 큰 부자가 되었어. 시간과 현명한 투자에 의해 불어난 그의 돈이 그가 1763년에 죽은 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 선조들의 집을 짓는데 쓰여진 셈이야. 그의 아들들인 필립과 로버트가 채플웨이트를 세웠지. 클로리스 부인이 '피가 피를 부른다'고 말했었던가. 이런 추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즉, 제임스 분의 피를 받고 태어난 케네스 분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마을의 광기를 피해 도망쳤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두 아들이 분가의 기원이 되는 곳에서 2마일도 안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만약 그 추정이 사실이라면 어떤 거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인도하여 왔단 말일까?
로버트 분의 일기에 따르면, 1789년에 제임스 분은 굉장히 고령이었다는군. 아마 그랬을 거야, 마을을 설립하던 해에 그가 25세 정도였다고 가정한다면 104살은 되었었을 테니까. 엄청난 나이지. 아랫부분은 로버트 분의 일기에서 직접 인용한 것이네.
1789년 8월 4일
오늘 처음으로, 형을 매우 불건전하게 사로잡은 그 사람을 만났다. 분은 이상한 자력 같은 것으로 마음을 끄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 점이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하였다. 그는 틀림없이 노령이었는데 흰 수염을 길렀고, 어쩐지 역겹게 느껴지는 검은 성직자 옷을 입고 있었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마치 이슬람교의 술탄이 그의 후궁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듯이, 그가 여자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P는 그가 적어도 80은 되었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활동적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마을은 전에 딱 한 번 찾아갔었고 앞으로 다시는 가지 않을 것이다. 거리는 조용했으며 그 노인이 설교단에 서서 불어놓고 있는 공포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근친상간의 결과 태어난 후손들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들의 얼굴이 서로 너무나 닮았었기 때문이다. 어느 길로 들어서건 그 노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병약해 보였다. 그들은 마치 그들의 모든 생명력을 누군가에게 빨린 것처럼 그렇게 활기가 없었다. 눈이 없거나 코가 없는 아이들도 보았으며, 울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지껄이거나 아무 이유 없이 하늘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는 여자들도 목격하였다. 성서의 구절과 악마의 언어가 서로 혼동되어 사용되어지기도 했다…… P는 내가 예배에 참석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근친상간의 후손들 앞에서 설교를 할 그 기분 나쁜 노인의 모습을 생각해보니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핑계를 둘러대며…….
이 이야기의 앞뒤로, 필립이 제임스 분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 모습들이 나타나 있었네. 1789년 9월 1일 필립은 세례를 받고 분 교파의 교인이 되었지. 그의 동생은 이렇게 적고 있다네.
"너무나 놀랍고도 무섭다. 나의 형이 내 눈앞에서 그렇게 변해버리다니, 심지어는 그 불쾌한 노인의 얼굴 모습까지 닮아가는 것 같다."
그 책에 대해서는 7월 23일에 처음 언급되네. 로버트는 아주 간략하게 기록했지.
"P가 그 작은 마을에서 한밤중에 돌아왔는데 좀 흥분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자리에 들 시간까지 아무 말을 안 하다가, 분이 '벌레의 신비'라는 제목의 책을 구한다고 얘기하길래, P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보스톤에 있는 존스와 굿펠로우의 회사에 문의 편지를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P는 굉장히 고마와했다."
8월 12일자 일기의 내용이야.
"오늘 우편함에서 두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그중 하나는 존스와 굿펠로우의 회사에서 온 것이었다. P가 관심을 보이는 그 학술서적에 관한 짧은 편지였다. 우리나라에는 모두 합쳐 5권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편지의 어투는 좀 차고 사무적이었다. 참 이상하다. 헨리 굿펠로우와는 여러 해 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8월 13일
P는 굿펠로우의 편지를 보는 즉시 뛸 듯이 기뻐하였는데 그 이유는 말해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분이 그 책을 너무나 구하고 싶어 한다고만 했다. 도대체 까닭을 모르겠다. 제목으로 봐서는 고작해야 무슨 원예 논문 정도인 것 같은데…….
필립이 정말 걱정이다. 날마다 점점 더 모르는 사람처럼 변해간다. 채플웨이트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여름은 숨 막힐 듯이 덥고 불길한 전조로 가득 차 있다.
그 증오스러운 책에 대해서는 두 번 더 언급했을 뿐이다. (그는 끝까지 그 책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듯 하다.) - 9월 4일의 일기에서,
나는 굿펠로우에게 P를 대신해서 그 책을 좀 구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반대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가 자기 돈으로 사는 게 아니었더라면 내가 거절할 수 있었을까? 아무튼 그 대가로, 필립으로부터 그 불쾌한 세례를 취소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 …… 하지만 그는 너무나 흥분해 있어서 마치 열병에 걸린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의 약속을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정말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9월 16일
오늘, 그 책이 도착하였다. 나와의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굿펠로우의 편지와 함께……P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흥분해선 그 책을 내 손으로부터 잡아채 갔을 뿐이다. 그 책은 밉살스러운 라틴어와 알아볼 수 없는 문자로 적혀져 있었기 때문에 한 글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책은 내가 손을 댔을 때 따뜻하게 느껴졌고 내 손안에서 떨리는 것 같았다. 마치 그 안에 무슨 거대한 힘이 숨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P에게 그의 약속을 상기시키자 그는 미친 듯이 웃어대며 그 책을 내 얼굴 앞에서 흔들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가 가졌어! 우리가 그것을 가졌다구! 그 벌레! 그 벌레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시 사라져버렸다. 아마 그 미친 후견인에게로 갔겠지. 요즈음엔 그를 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 책과 관련된 일기장 안의 내용은 그것이 전부였지만 나는 몇 가지 추론을 해볼 수 있었네. 첫째, 그 책은 클로리스 부인의 말대로 로버트와 필립의 불화의 원인이 되었고, 둘째, 그 책의 내용은 드루이드교에서 유래되었을 악령의 주문이었다는 거지. 드루이드교도들의 피의 의식은 영국을 점령한 로마인들에 의해 학술적인 목적으로 기록되었고 그 악마의 해설서 들은 금서로 지정되어 대부분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네. 셋째, 필립 분과 제임스 분은 그들 나름의 목적을 위해 그 책을 이용하려고 하였지. 어쩌면, 좀 비정상적인 방법이긴 했어도, 선한 목적이었을 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는 믿겨지지 않는군. 그들은 그 훨씬 전부터, 우주의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정체 모를 힘, 시간의 틀을 벗어난 곳에 존재할 그 힘에 자신들을 얽매어 버린 것 같아. 로버트 분의 마지막 일기를 보면 나의 추정들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걸세.
1789년 10월 26일
오늘 프리처스 코너에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대장장이 프롤리가 내 팔을 붙잡더니
"당신의 형과 그 미친 이교도 녀석이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요?"
라고 캐물었다. 구디 랜달은 하늘에 '곧 닥칠 엄청난 재앙'의 징조가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머리가 둘 달린 소가 태어났다고도 했다.
솔직히 나도 무슨 일이 닥칠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의 형이 완전히 돌아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머리카락은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되어버렸고,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예전의 그 건강하던 눈빛은 떠나버린 지 오래인 것 같았다. 그는 아무 이유 없이 실실 웃거나 중얼거리고 예루살렘의 터로 가지 않을 경우에는, 무슨 목적에서인지 지하실 속을 헤매고 다닌다.
쏙독새들이 집과 뜰에 모여들고 있다. 안개 속에서 들리는 그것들의 울음소리는 파도 소리와 섞여져 모든 잠을 쫓아버릴 것 같은 섬뜩한 비명소리가 되었다.
1789년 10월 27일
오늘 밤에 P가 예루살렘의 터로 갈 때 그 뒤를 쫓아가 보았다. 들키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다. 저주받은 쏙독새들이 퍼덕거리며 온 숲속을 죽음의 성가로 채우고 있었다. 나는 강을 건너갈 수가 없었다. 마을 전체는 칠흑처럼 캄캄하였다. 단지 교회 안쪽에서 비치는 희미한 불빛이 우뚝 솟은 창문들을 연옥의 눈처럼 보이게 할 뿐이었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며 악마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들렸는데 잠시동안은 웃고 또 잠시동안은 흐느끼는 것도 같았다. 대지는 뭔가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바로 나의 발밑에서, 부풀어 오르며 신음하는 것 같았고 나는 겁에 질려 도망쳤다. 내가 그 그림자가 뜯겨져 나간 숲속을 뛰어 돌아오는 동안, 지옥에서 들리는 비명소리 같은 쏙독새의 울음소리로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모든 것이 어떤 절정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도 그게 뭔지는 알 수가 없다. 잠을 청하자니 악몽이 두렵고, 그렇다고 깨어 있자니 나를 덮칠 그 공포감이 너무나 두렵다. 이 밤은 무시무시한 소리들로 가득 채워져 버렸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곳에 다시 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지켜보기 위해서, 그리고 알기 위해서, 마치 필립과 그 노인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저 새들.
저주받아라, 저주받아라, 저주받아라.
여기서 로버트 분의 일기는 끝나고 있어.
본즈, 자네도 읽었겠지만, 일기의 끝부분에서 그는 필립이 자기를 부르는 것 같다고 주장했네. 나는 그 구절과 클로리스 부인의 이야기와 지하실에서 보았던 죽었으면서도 죽지 못한 그 끔찍한 모습들을 종합하여 내 마지막 결론을 내렸네. 본즈, 우리 혈통은 정말 불운한 것 같아. 우리에게는 땅속에 묻혀버릴 수 없는 저주가 내렸어. 그것은 이 집과 또 저 마을에서 그림자 같은 삶을 살고 있지. 그 순환의 정점이 다시 가까워지고 있어. 나는 분가의 마지막 후손이야. 무엇인가가 그것을 아는 것 같아. 내가, 모든 이성적 사고를 초월하는 그 악마의 시도에 걸려들어 버린 것 같단 말일세. '모든 성인의 달'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어.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네가 여기 있어서 날 도와준다면, 자네가 여기 있기만 한다면!
나는 모든 것에 대해 알아야만 해. 다시 그 버려진 마을에 가보아야만 하지. 신이 나를 보살펴 주시기를!
찰스.
(칼빈 맥칸의 소형 일지에서)
분씨는 하루종일 잠들어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훨씬 더 여위어 보인다. 그는 다시 뇌막염에 걸릴 게 분명하다.
그의 침대 옆에 있는 물병에 물을 채우다가, 플로리다의 그랜슨씨 앞으로 쓰여진 두 통의 편지를 슬쩍 보았다. 그는 다시 예루살렘의 터에 가볼 계획인 것 같다. 그렇게 놔두었다가는, 그가 죽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살짝 빠져나가 프리처스 코너에 가서 마차를 빌려올까? 하지만 그가 깨어나면 어떻게 하지? 돌아와서 그가 마을로 가버린 걸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하지?
벽 속의 소음이 다시 시작되었다. 고맙게도 그는 아직도 자고 있다. 내 마음은 이 문제의 중요성으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잠시후)
그에게 저녁을 날라다 주었다. 그는 조금 후에 일어날 생각이라고 했다. 그의 얼버무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뭘 계획하는지 알고있다. 어서 프리처스 코너에 다녀와야 할 텐데. 그가 뇌막염 증세를 보일 때 복용하였던 수면제 종류를 아직도 갖고 있다. 차 속에 타서 주었더니, 아무것도 모르는 채 마시고는 다시 잠들었다.
저 벽 속에서 비틀거리며 걷는 것들과 함께 그를 남겨둔다는 게 너무 걱정스럽다. 하지만 그 벽들에 둘러싸인 채 그를 이곳에서 하루 더 지내게 한다는 것이 훨씬 더 두렵다. 나는 그의 침실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이곳으로 마차를 갖고 돌아올 때까지, 그가 안전하게 잠잘 수 있도록 신이여 보살펴 주소서!
(훨씬 후에)
나에게 돌을 던졌다! 마치 미친개들처럼 나에게 돌을 던져댔다! 괴물 같은 것들! 그렇게 잔인한 것들이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가! 우리는 이곳에 갇혀버린 신세다.
그 새들, 쏙독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850년 10월 26일
본즈에게
밖은 어둑어둑하고 나는 막 깨어났네. 지난 24시간 동안 계속 잠을 잤나 봐. 칼은 아무 말 안 하지만 그가 내 계획을 짐작하고 차에 수면제를 탄 것 같아. 그는 나의 충실한 친구이고, 나를 위해서 그랬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아무 말 하지 않을 생각이야.
하지만 나는 결심했네. 내일이 바로 내 계획을 실행에 옮길 날이 될걸세. 내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고 또 단호하지만, 한편으로는 뇌막염의 징후를 느끼고 있어. 그렇다면 더더욱, 내일 당장 그곳에 가야만 하네. 어쩌면 오늘 밤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만, 지옥의 불길이 나를 아무리 유혹한다 해도 밤중에 그 마을에 들어가지는 않을 거야.
이것이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겠군. 본즈, 신의 가호가 자네와 함께 하기를.
찰스.
추신 : 새들이 음산하게 울어대기 시작했고, 그 지척거리며 돌아다니는 소름 끼치는 소리도 벽 속에서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네. 칼은 내가 그 소리를 듣는 줄은 모르고 있어.
C.
(칼빈 맥칸의 소형 일지에서)
50년 10월 27시
새벽 다섯 시.
그를 설득하는 걸 포기했다.
하는 수 없지. 나는 그와 함께 간다.
1850년 11월 4일
본즈에게
지쳤지만 의식은 또렷하군. 오늘이 며칠인지 잘 모르겠지만, 조수와 해가 지는 시간으로 판단하건대, 위에 적힌 날짜가 틀림없을 걸세. 나는 지금 내 책상 앞에 앉아 있네. 자네에게, 이곳에 온 뒤 처음으로 편지를 썼던 바로 그 자리이지. 마지막 남은 햇빛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는 걸 보고 있어. 다시는 볼 수 없겠지. 이 밤은 나의 밤이네. 나는 그것을 어둠의 품에 남겨두려 하네.
바다가 바위 위로 들려지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야! 물거품을 어두운 하늘 위로 마치 깃발처럼 높이 던져올리고 있네. 그 진동으로 집이 흔들릴 정도야. 유리창 위로 내 모습이 보이는군. 흡혈귀처럼 창백해. 나는 10월 27일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칼빈이 침대 옆에 놓아둔 물병이 아니었더라면 물조차 마시지 못할 뻔했지.
아, 칼! 그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네. 그는 내 집에서 사라져 버렸지. 어두워진 창에 비쳐진 모습을 내가 바라보고 있는, 말라서 가느다란 팔에 해골 같은 얼굴을 한 이 비열한 인간의 집에서 말이야. 하지만 오히려 그가 나보다 행복한 건지도 몰라. 나를 괴롭히고 있는 그 악몽들이 그를 괴롭힐 수는 없을 테니까. 망상으로 이어지는 그 악몽의 길 속에 숨어 있는 그 이그러진 모습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손은 떨리고 있어. 또 한 페이지를 잉크로 얼룩지게 해버렸군.
칼빈은 내가 살짝 빠져나가며 내 자신의 교활함에 감탄하고 있는 순간에 나를 막아섰지. 나는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그에게 말한 뒤, 여기서 10마일쯤 떨어진 텐드렐에 가서 2륜 마차를 세내어 와달라고 부탁했어. 그곳까지 우리에 대한 소문이 퍼져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는 내 부탁을 받아들였고 나는 그가 해로를 따라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어.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나도 나갈 준비를 시작했어. 날씨가 싸늘해졌고 살을 에는 듯이 차가운 아침 바람에서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었네. 그래서 코트와 목도리를 찾아 입었지. 잠깐 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리고는 허탈하게 웃어버렸지. 총이 있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나는 식료품 저장실 쪽으로 빠져나가며 하늘과 바다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멈춰 섰어. 그 지독한 부패의 냄새로 숨이 막히기 전에 신선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들이마시고 싶었지. 그리고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구름 밑을 날아다니는 갈매기들도 아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돌아섰는데, 거기에 칼빈 맥칸이 서 있는거야.
"혼자 가실 수는 없습니다."
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완강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
"하지만, 칼빈……."
내가 입을 열었어.
"아니요. 아무 말도 하실 필요 없습니다. 함께 가서 당신이 꼭 하려는 일을 하십시오. 만약 그게 싫다면 집안으로 억지로라도 모시고 들어가야겠습니다. 지금 몸도 좋지 않으신데, 정말로 혼자 가시게는 할 수 없어요."
그때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던 그 상반되는 감정들을 설명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아. 당혹감과 불쾌감과 감사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이었지.
우리는 정자와 해시계를 지나고 잡초로 뒤인 화단을 너머 숲 쪽으로 아무 말 없이 나아갔네. 모든 것이 죽은 듯이 고요하였지. 새소리도, 나무에 사는 곤충들의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어. 온 세상이 침묵의 관 속에 갇힌 것만 같았지.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영속적일 것 같은 소금 냄새와 희미한 나무 훈연의 냄새뿐이었어. 숲은 다채로운 색깔을 띠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진홍색이 가장 두드러진 것처럼 보였어.
곧 소금의 냄새는 사라져 버리고, 훨씬 고약한 냄새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네. 내가 이미 언급했던 그 부패한 냄새였지. 우리가 로얄강 위로 걸쳐진 그 기울어진 다리에 도착했을 때, 나는 칼이 나를 다시 말릴 거라고 예상했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푸른 하늘을 조롱하듯이 솟아 있는 그 음울한 첨탑을 바라본 뒤에 나를 한번 쳐다볼 뿐이었다네. 우리는 계속 걸었지.
우리는 빠른 걸음걸이로, 하지만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며 제임스 분의 교회에 다다랐어. 문은 지난번 우리가 급하게 빠져나올 때 열어둔 그대로였는데, 그 안쪽의 어둠이 우리를 엿보는 것만 같았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내 마음은 요란한 소리로 가득 찼고, 문고리를 당기는 내 손도 떨리고 있었어.
우리는 어두운 대기실을 지나 곧장 본당으로 들어갔어.
그 안은 아수라장이었네.
거대한 무엇인가가 그곳을 찾아왔던 게 분명했어. 모든 것이 엄청난 힘에 의해 파괴되어 있었거든. 신도석들은 뒤집힌 채 한쪽 구석에 쌓여있었고, 그 불경스런 십자가는 오른쪽 벽 아래 떨어져 있었는데 그 위의 회벽에 뚫어진 구멍이, 십자가를 던져버린 그 힘을 증명하고 있는 듯했어. 높이 걸려 있던 오일 램프들도 바닥에서 뒹굴었고 고래기름의 악취가 마을 전체에 퍼져있는 썩은 내와 섞어져 버렸어. 그리고 신부의 입장석 같은 중앙 통로 아래쪽에는 피가 섞인 검은 액체의 흔적이 있었어. 우리의 눈은 그것을 따라 설교단까지 갔지. 설교단은 이 본당 안에서 망가지지 않은 유일한 것인 듯했어. 그 위로, 그 불경한 책 너머에서 생기 없는 눈으로 우리를 응시하는 것이 있었어. 도살된 양이었지.
"하나님 맙소사."
칼빈이 탄식했지.
우리는 바닥의 그 끈적끈적한 물질을 밟지 않으려 애쓰며 가까이 다가가 보았어. 우리의 발자국 소리의 반향음이 들렸는데 요란한 웃음소리로 변질되어 버린 것 같았지. 우리는 참회자를 위한 단을 함께 올라갔어. 그 양은 먹혔다거나 찢겨졌다기보다는 그것의 모든 핏줄이 터질 때까지 뒤틀려 짜진 것처럼 보였네. 성서대 위에 걸쭉하고 역겨운 피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 밑으로……. 하지만 그것은 투명하였기 때문에 마치 색유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책 속의 룬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네!
"이제 그 책을 집어 들어야 되겠지요?"
칼이 물었어.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지.
"음, 난 이 책이 필요해."
"어떻게 하실 건가요?"
"60년 전에 누군가 했어야만 할 일이지. 난 그것을 파괴해 버릴거야."
우리는 책 위에 놓여져 있던 양을 밀어버렸어. 그것은 굴러떨어지며 쿵 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었어. 피가 묻은 페이지들은 붉게 달아올라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네.
내 귓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 그 낮은 소리는 본당의 벽에서 시작된 듯 했네. 칼의 찡그린 얼굴을 보고 그도 역시 같은 소리를 듣고 있음을 알았지. 우리 발밑의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어. 이 교회를 떠나지 않고 있었던 무엇인가가 자신의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 우리 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았네. 정상적인 시ㆍ공의 틀이 뒤틀리고 금이 가버린 듯했고, 교회는 지옥의 차가운 불길로 빛을 발하며, 유령들로 가득 차 버린 것 같았어. 나는 누워있는 여인의 주위를 날뛰는 흉칙하게 일그러진 제임스 분과, 그 뒤로, 검은 성적자의 옷을 입고 칼과 우묵한 그릇을 들고 있는 교주의 복사(服事)이자 나의 종조부인 필립을 본 것 같았어.
"Deum vobiscum magna vermis-."
내 눈앞에서, 우주의 경계 너머를 방황하는 그 생명체의 노획물에서 뿜어져 나온, 그 희생의 피에 젖었던 페이지의 글자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어.
근친상간의 결과로 세상에 나온 눈먼 그 신도들이 몸을 흔들며 악마를 찬양하였네. 그 뒤틀린 얼굴들은 간절한 어떤 기대감에 차 있는 듯 했어.
그리고 그 라틴어는, 이집트라는 국가도, 피라미드도 없었을 때의, 아니, 지구가 아직도 뒤끓는 천계 속에서, 완성되지도 않았을 때의 고대어로 바뀌어졌어.
"Gyyagin vardar Yogsoggoth! Vermis! Gyyagin! Gyyagin! Gyyagin!"
그 설교단이, 마치 무엇인가가 위로 솟아오르려 하고 있는 것처럼, 뜯기며 갈라졌어-.
칼빈이 비명을 지르고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지. 참회자의 단이 마치 폭풍을 만난 배처럼, 엄청나게 흔들렸어. 나는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것은 태양의 열로 가득 찬 것 같았고 내 눈을 멀게 하거나 내 몸을 새카맣게 태워버릴 거라고 느꼈네.
"도망가요!"
칼빈이 비명을 질렀어.
"어서 도망가세요!"
하지만 나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 서버렸어. 어떤 이질적인 존재가 나를 채웠어. 오랫동안, 아니, 여러 세대에 걸쳐서 날 기다려온 고대의 유령이었는지도 몰라.!!
"Gyyagin vardar!"
내가 소리쳤어.
"Yogsoggoth의 종복이신 이름 없는 분이시여! 우주의 경계밖에서 온 벌레, 별을 멸하고 시간을 눈멀게 하는 분이시여! 이제 충전의 시간이 왔습니다. 파괴의 시간이 도래하였습니다!
Alyah! Alyah! Gyyagin!"
칼빈이 나를 밀었고 나는 비틀거리다 바닥으로 떨어졌네. 교회 전체가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넘어지면서 머리를 뒤집어진 의자 모서리에 부딪혔는데 잠깐 눈앞에서 불이 번쩍하는 것 같긴 했지만, 머릿속은 더 맑아진 것 같았네.
나는 내가 가져온 성냥을 찾아 주머니 속을 더듬었지.
지하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가 교회 안을 채웠고 회벽이 무너져 내렸네. 첨탑 안의 녹슨 종은 큰소리로 공명하여 악마의 찬가를 부르기 시작했어.
성냥불이 켜졌고, 나는 설교단이 나무 조각을 파편처럼 튀기며 폭파하기 직전에 그 책에 갖다 대었지. 그 밑으로 보이는 건 거대한, 검은 목구멍이었어. 칼은 손을 내민 채 그 구멍 옆에서 비틀거리며 내가 영원히 잊지 못할 비명소리를 내었다네.
그때 거대한 회색 몸체가 파도처럼 꿈틀거렸는데, 악취가 악몽처럼 밀려왔지. 그것은 끈끈하고 우둘두둘한 젤리 같은 것이었는데, 땅끝에서 솟아오른 것 같은 거대하고 끔찍스러운 모습이었네. 하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그것이 이 혐오스러운 교회 밑의 어둠 속에 오랜 시간을 갇혀있었던 괴물의 몸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
그 책은 내 손안에서 타고 있었고 그 괴물 같은 벌레는 내 머리 위에서 소리 없이 울부짖는 것 같았지. 칼빈은 그 괴물의 몸에 맞아 마치 목이 부러진 인형처럼 교회의 끝까지 날아갔지.
그것이 가라앉았다네 - 검은 액체로 둘러싸인 커다란 구멍을 남긴 채 그 괴물이 아래로 사라져버렸지. 그리고 요란한 울음소리도 그와 함께 점점 희미해져 가더니 더 이상 들리지 않았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그 책은 이미 재로 변해있었지.
나는 웃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짐승의 울부짖음으로 변해버렸다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네. 내 관자놀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그 저주받은 유령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지껄여대기도 했지. 칼빈은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교회의 구석에서 버둥거리며 공포로 넋이 나간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런 상태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정신이 들었을 땐, 주위는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참회자의 단위에 난 그 거대한 구멍 쪽에서 움직이는 뭔가가 내 시선을 끌었지.
누군가의 손이, 뜯겨진 바닥 위로 솟아 나와 더듬거리고 있었어.
나의 광기 어린 웃음은 목구멍 속에 갇혀버렸고 모든 병적 흥분들도 차갑게 마비되어 버렸네.
잔인할 정도로 천천히, 일그러진 형상 하나가 어둠 속으로부터 올라와선, 해골과 다름없는 얼굴로 나를 응시하였어. 딱정벌레들이 살점 하나 없는 이마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고 썩어 버린 성직자의 옷이 비스듬한 쇄골에 걸쳐져 있더군.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두 눈뿐이었지. 붉게 충혈되어 광기 어린 두 눈이 우주 밖의, 그 출구 없는 광막한 곳의 텅 빈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그것은 나를 어둠 속으로 데려가기 위해 온 거였네.
내가 도망을 친 건 바로 그때였어. 비명을 질러대며 나와 전 생애를 함께 보내다시피 한 친구의 시신을 그 끔찍한 곳에 버려둔 채, 내 허파와 머릿속에서 공기가 마그마처럼 폭발할 때까지 달렸네. 이 저주받은 집에서 내 방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달렸지. 그곳에서 나는 기절했고, 오늘 깨어날 때까지 시체처럼 누워있었던 거야. 내가 도망을 쳤던 건, 그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그리고 거의 다 썩어 버린, 죽었지만 죽지 못한 것의 모습 속에서 우리 혈통의 특징을 보았기 때문이네. 필립도 아니었고 로버트도 아니었어. 그들의 얼굴은 위층에 걸린 초상화 속에서 익히 보아왔으니까. 그 썩어가는 얼굴은 제임스 분의 것이었네. 그 벌레를 지키는 파수꾼의 것이었단 말일세!
그는 아직도 예루살렘의 터나 채플웨이트 밑의 어딘가에 살면서 그 암흑 속을 헤매고 있겠지. 그는 '아직도' 살아있다네. 책을 태움으로써 그의 계획을 방해했지만, 책을 다른 곳에서 구해올 수도 있는 일 아닌가.
하지만 내가 그들의 통로, 다시말해 살아남은 분가의 마지막 후손이니…….온 인류를 위해 나는 죽어야만 해. 그리고 이 악의 사슬을 영원히 끊어버려야만 하네.
본즈, 나는 지금 바다로 가네. 나의 일생도, 나의 이야기와 함께 종말을 맞이하겠지. 신의 가호가 자네와 함께하기를 빌겠네.
찰스.
위에 적힌, 일련의 기괴한 편지들은 결국, 찰스 분이 의도했던 대로 에버레트 그랜슨에게 전해졌다. 1848년 그의 아내가 죽은 이후 심하게 앓았던 뇌막염이 재발하여 찰스 분은 이성을 잃고 그의 친구의 칼빈 맥칸을 살해하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맥칸의 소형 일지에서 발췌한 부분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찰스 분이 자신의 과대망상을 보강하기 위해 교묘하게 위조한 것이다.
두 가지 점에서, 찰스 분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첫째, 예루살렘의 터가 재발견 되었을 때, 그 참회자의 단은 부패해있기는 했어도 폭발의 흔적이나 크게 손상된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비록 오래된 신도석들이 뒤집혀져 있었고 대여섯 개의 유리창들이 깨져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이웃 마을 사람들의 파괴행위의 결과일 수도 있는 것이다. 프리처스 코너와 텐드렐의 나이 든 주민들은 예루살렘의 터에 대해 아직도 헛된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 아마 찰스 분이 살았던 시대에, 그의 마음을 혼란시키기 시작한 것이 이런 종류의 악의 없는 전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별로 큰 의미를 부여할 정도는 못 된다.
둘째, 찰스 분은 그의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 아니었다. 그의 할아버지 로버트 분은 적어도 두 명의 서자를 두었는데 그중 한 명은 어려서 죽었다. 두 번째 아이는 그의 성을 물려받아, 로드 아일랜드에 있는 센트럴 폴스라는 마을에 정착했으며 내가 그 분가 분파의 후손인 것이다. 찰스 분과는 3대 떨어진 6촌 간이다. 이 편지들은 10년 동안 내 위임 아래 있다가, 내가 분가의 저택인 채플웨이트에 살게 되면서, 세상에 발표된 것이다. 독자들이 찰스 분의 미혹된, 가련한 영혼에 동정을 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다.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 그는 단 한 가지 점에서 만큼은 옳았다. 이집은 해수(害獸) 구제자의 손길이 당장 필요하다.
그 소리로 판단하건대, 벽 속에 커다란 쥐들이 있는 것 같다.
제임스 로버트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