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침(唾液, Las babas del diablo)
악마의 침(唾液, Las babas del diablo)
Julio Cortázar
이런 일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1인칭이나 2인칭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3인칭 복수를 사용해야 할지,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형식을 계속 만들어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떨까. “나는 달이 뜨는 것을 그들이 보았다”라든가 “나는 우리 눈알이 아프다”라고 말이다. 또 이런 얘기는 어떨까. “너 금발의 여자는 나의 너의 그의 우리들의 너희들의 그들의 얼굴 앞으로 지나가는 구름이었다.” 이런 제기랄.
이야기를 쓸 준비를 해놓고 흑맥주나 한잔하러 나가버린다면, 그래서 기계 혼자 쓴다면(나는 타자기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완벽할 것이다. 말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완벽한 것은 틀림없다. 이처럼 여기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구멍 역시 기계인데(종류는 다르다. 콘탁스 카메라 1.1.2.이다) 어쩌면 나, 너, 그 여자 ―금발의 여자―, 구름보다는 기계가 기계에 대해서 더 잘 알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내가 밖으로 나간다면 이 레밍턴 타자기는, 작동하던 물건이 움직이지 않을 때 그렇듯이, 지극한 정적을 머금고 책상 위에 우두커니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글을 써야 한다. 이런 일을 이야기하려면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는 글을 써야만 한다. 차라리 내가 죽었다고, 다른 사람이나 사물보다 이야기에 덜 간여한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는 구름밖에 본 것이 없으며, 무심하게 생각할 수 있고, 무심하게 글을 쓸 수가 있고(저기, 잿빛 테두리의 구름이 지나간다), 또 무심하게 회상할 수 있으니, 사실 나는 죽어 있다(그리고 나는 살아 있다. 때가 되면 알겠지만, 이는 누구를 속이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즉 과거로 돌아가 출발점에서 시작했다. 아무튼, 이 지점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할 때 가장 바람직한 곳이기도 하다).
문득 내가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언지 되물어본다. 그런데 모든 일에 이유를 되묻는다고 해보자. 단순한 예로, 저녁 초대를 받아들인 이유라든가(지금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가는데, 내게는 참새처럼 보인다) 혹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입이 근질근질하고, 그래서 옆 사무실에 들어가 그 이야기를 털어놓아야만 속이 후련해지고 일이 손에 잡히게 되는 이유를 되묻는다고 하자. 내가 아는 한, 이런 일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이것저것 따질 필요 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아무튼 숨쉬는 일이나 신발 신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없는데, 이런 일은 항상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그러니까 신발 속에 거미가 들어 있다거나 숨을 쉴 때 깨진 유리조각 같은 통증을 느낀다면, 그때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사무실 사환이나 의사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저, 의사 선생님. 숨을 쉴 때마다……. 이야기를 하면 입이 가려운 증상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왕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으니, 우리 조금 순서를 지키도록 하자. 그러니까 지금부터 꼭 한 달 전인 11월 7일 일요일로 거슬러 올라가 이 집 계단을 내려가 보도록 하자. 어떤 사람이 6층에서 내려온다. 때는 일요일이고, 11월의 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날씨가 화창하다. 그 사람은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왜냐하면 우리들은 사진사였으며, 현재 나는 사진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방법이 묘연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진정한 주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일이 어렵다. 그 주체가 나인지, 발생한 사건인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구름과 이따금씩 보이는 비둘기 한 마리)인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그저 나에게만 진실일 뿐인 어떤 진실, 그러니까 근질근질한 내 입과 어떻게든 이 일을 끝내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에서만 진실일 뿐인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차근차근 이야기하도록 하자. 내가 글을 써나가면 무슨 일인지 밝혀질 것이다. 만일 무언가 나를 대신한다면, 만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른다면, 만일 구름이 걷히고 다른 일이 시작된다면(이 일이 지나가는 구름이나 가끔씩 눈에 띄는 비둘기를 쳐다보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이……. 그런데 ‘만일’이라고 말을 꺼낸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하지? 그 문장을 어떻게 끝내지? 그러나 내가 이런 질문을 꺼내면 아무런 이야기도 못할 것이므로 차라리 이야기를 하겠다. 어쩌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대답이 될 것이다.
프랑스에 사는 칠레인으로 번역가이자 아마추어 사진사인 로베르토 미첼은 금년 11월 7일 일요일 무슈 르프랭스 가(街) 11번지를 나섰다(이제 은빛 테두리의 작은 구름 두 송이가 지나간다). 미첼은 지난 3주 동안 칠레 산티아고대학교의 호세 노르베르토 아옌데 교수가 저술한 항고와 기각에 관한 저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있었다. 파리에 바람이 부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낡은 목재 블라인드를 뒤흔들고, 이에 놀란 아주머니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블라인드 뒤에서 쑥덕거릴 정도의 바람이 부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하지만 저기 태양이 있었다. 바람을 등에 태우고 고양이와 장난치는 햇빛이 있었다. 따라서 내가 센 강 선창가를 돌아보고 콩시에르주리와 생트샤펠1) 사진을 몇 장 찍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10시쯤 되었다. 나는 11시쯤이면 화창한 가을 햇빛이 비추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생루이 섬까지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케당주 거리를 지날 때는 잠시 로쟁관을2) 쳐다보았고, 그 앞을 지날 때면 언제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폴리네르의 시구를 읊조렸다(사실 나는 다른 시인이 떠올랐지만 미첼은 고집쟁이다). 갑자기 바람이 멈추고 태양이 두 배 가까이 커졌을 때(내 말은 더 따뜻해졌다는 얘기다. 사실 태양의 크기는 동일하다) 나는 강변 제방에 앉아서 일요일 아침의 짜릿한 행복을 만끽했다.
허무와 싸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최선의 방법은 사진을 찍는 것이다. 사진술은 훈련이 필요하다. 더구나 미적 감각과 훌륭한 안목과 정확한 손놀림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이 말은 어떤 기자들처럼 잠입하여 거짓말하는 현장을 포착하라거나 다우닝가(街) 10번지에서 나오는 거물급 인사의 우중충한 뒷모습을 잡으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무튼 사진기를 들고 다닐 때는 바짝 긴장해야 한다. 오래된 바위에서 섬광처럼 튀어 오르는 미묘한 햇살이나 우유나 빵을 들고 돌아서는 소녀의 댕기머리가 찰랑거리는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미첼은 사진사의 작업이란 주관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사진기가 은근히 요구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보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지금 거무스름한 구름 하나가 지나간다). 그렇다고 신뢰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채로운 색깔이나 뷰파인더 없는 경치나 1/250 셔터나 조리개 없는 광선을 다시 느끼려면 콘탁스 없이 외출하면 된다. 이제(‘이제’라니, 이 얼마나 바보 같은 거짓말인가) 나는 제방에 앉아 빨갛고 검은 보트들이 지나가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사진에 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흘러가는 사물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바람은 불지 않았다.
그 뒤, 나는 케드부르봉 거리를 따라 섬 끝에 당도했다. 오붓한 공간이 나타났는데(후미진 곳이 아니라 작기 때문에 오붓하다. 사실 강과 하늘이 다 보이는 곳이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곳에는 남녀 한 쌍밖에 없었다. 물론, 비둘기도 있었다. 아마도 그 비둘기들 가운데 몇 마리는 지금 내가 쳐다보고 있는 곳을 지나갈 것이다. 나는 단번에 제방 위로 올라가 햇빛에 몸을 맡겼다. 햇빛이 내 몸을 휘감도록 얼굴과 귀와 두 손을 내밀었다(장갑은 호주머니에 넣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도 없고 또 무료해서 담배를 꺼냈다. 담뱃불을 붙이려던 순간 처음으로 그 소년을 보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연인으로 여기고 말았는데, 다시 보니 어머니와 함께 온 어린이 같았다. 동시에, 어머니를 대동한 어린이가 아니며, 광장 벤치에서 껴안고 있거나 제방에 기대고 있는 남녀를 보았을 때, 통념상 연인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연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특별히 할 일도 없었으므로, 소년이 무엇 때문에 망아지나 토끼처럼 그렇게 초조해하며 양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가 빼내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고,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는지 궁금했다. 특히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소년의 행동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만 내심으로는 두려워서 몸을 뒤로 내빼고 있었다. 어쭙잖은 폼을 잡고 있으나 금세 도망이라도 칠 듯한 태도였다.
모든 게 너무나 명확했다. 저기, 5미터 앞에서 -섬 끝에서 제방에 몸을 기대고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일어난 일이었다. 처음에는 소년의 두려움에 관심이 쏠려 금발의 여자를 자세히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 여자의 얼굴을 확실하게 본 것은 처음 본 순간이었다(여자는 풍향계처럼 갑자기 얼굴을 돌려버려 두 눈만이 거기에 남아 있었다). 나는 막연하게나마 소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중얼거렸다(바람이 내 말을 실어가 버려 흡사 웅얼거림 같았다). 나는 보는 것이 무언지 안다. 내가 무언가를 안다면 말이다. 보는 것은 거짓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는 것은 우리를 우리 바깥으로 무작정 내던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냄새라든가(그런데 미첼은 걸핏하면 옆길로 빠지므로 마음대로 말하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 아무튼, 거짓이라는 예감이 들면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아마도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중에서 잘 선택해서 사물의 외피(外皮)를 벗기면 충분할 것이다. 물론, 아주 어려운 일이다.
나는 소년의 진짜 육신보다는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으며(무슨 말인지 나중에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자의 경우는, 이제 확신하지만, 이미지보다는 육신을 더욱 또렷하게 기억한다. 여자는 마르고 날씬했으며 -이 두 단어는 그 여자의 사람됨을 말하기에는 공정하지 않다- 검고, 길고, 조금은 아름다운 모피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날 아침 바람은(이제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고, 춥지도 않았다) 여자의 금발을 흩날리며 희고 그늘진 -이 두 단어는 공정하지 않다- 얼굴을 뚜렷하게 드러냈고, 세상을 여자의 발밑에, 섬뜩한 일이지만 세상을 여자의 검은 두 눈앞에 부려놓았다. 여자의 눈은 두 마리 독수리처럼, 두 가닥 섬광처럼, 두 줄기 초록색 흙탕물처럼 사물을 덮치고 있었다.3) 나는 지금 묘사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서 두 줄기 초록색 흙탕물이라고 표현했다.
공정하게 말하면, 소년의 차림새는 아주 말쑥했다. 노란 장갑을 가지고 있었는데, 틀림없이 법학이나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큰형의 장갑일 것이다. 재킷 호주머니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장갑은 정말 멋있었다. 나는 한동안 소년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고작해야 제법 똑똑하게 생긴 옆모습―공포에 질린 새나 프라 필립포 그림의 천사나4) 허연 쌀밥과 같은 옆모습―과 유도를 할 만하고 또 누이동생이나 어떤 이념 때문에 두어 번은 싸웠을 법한 듬직한 어깨뿐이었다. 나이는 열네 살이나 열다섯 살 정도였다. 부모가 입혀주고 먹여주지만 호주머니에는 돈 한 푼 없고, 담배 한 갑, 코냑 한 잔, 커피 한 잔을 마실 때에도 친구들과 상의할 것이다.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여학생을 생각하고, 극장에 가서 최신 영화를 보든지 아니면 파랗고 하얀 라벨이 붙은 술이나 넥타이나 소설을 사보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집에서는(존경받는 집안일 것이다. 점심은 12시에 먹고, 벽에는 낭만적인 풍경화가 걸려 있고, 응접실은 어두컴컴하고, 현관에는 마호가니제 우산꽂이가 있을 것이다) 공부하는 시간도, 아비뇽 숙모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도 지겹도록 느리게 흘러갈 것이다. 어서 어른이 되어 엄마의 희망이 되고,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으나 시간은 고여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소년은(그러나 돈 한 푼 없다) 강물처럼 보이는 시내 길거리를 쏘다닐 것이다. 수많은 간판, 진저리치는 고양이, 30프랑짜리 프렌치프라이 한 봉지, 접고 또 접은 포르노 잡지, 텅 빈 호주머니 같은 고독, 반가운 만남, 그리고 이해할 수는 없으나 너무 갈망하기 때문에, 또 바람이나 길거리처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은 알 것도 같은 대상이 널려있는 도시는 15살 소년에게는 신비로울 것이다.
이런 전기(傳記)는 이 소년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소년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제 소년은 달라 보였다. 소년에게 계속 말을 건네는 금발 여자 때문이었다(반복하기도 지겹지만 방금 기다란 비늘구름 두 송이가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 아침 나는 한 번도 하늘을 쳐다보지 않은 것 같다. 소년과 여자 사이에 진행되는 일을 목격한 다음부터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기다리고, 쳐다보고 또……). 요컨대, 소년은 안절부절못했다. 따라서 방금 전의 일, 기껏해야 30분 전의 일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소년은 섬 끝에 도착해서 여자를 보고 감탄했을 것이다. 여자로서는 예상한 일이었다. 그런 일을 기대하고 그곳에 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년이 먼저 도착했을 것이다. 여자는 발코니나 자동차 안에서 소년을 보고 만나러왔을 것이다. 그리고 얘기를 건넸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처음부터 확신하고 있었다. 소년이 내심으로는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겉으로는 베테랑인 체, 그런 모험이 즐겁다는 듯이 거만하고 무뚝뚝하게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머지는 쉬웠다. 왜냐하면 5미터 전방에서 벌어지는 일이었고, 누구라도 그 게임의 절차, 우스운 실랑이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의 묘미는 현재의 일보다는 결말을 예측하는 데 있었다. 소년은 결국 약속이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핑계를 댈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야 의젓하게 걸어가고 싶겠지만 비실비실 자리를 뜰 것이고, 여자는 속이 보인다는 듯이 비아냥거리며 소년의 뒤통수를 뚫어지게 쳐다볼 것이다. 어쩌면 소년은 황홀감에 취해서 혹은 주도권을 잡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 남을 수도 있다. 그러면 여자는 소리 없는 말을 건네며 소년의 얼굴을 만지고 머리칼을 쓰다듬을 것이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어디론가 데려갈 것이다. 처음에 멋쩍어하던 소년이 욕망에 물들어 용감하게 여자의 허리를 껴안고 키스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짓궂은 미첼은 제방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연인들이 섬 귀퉁이에서 서로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그림 같은 장면을 촬영하려고 서둘러 사진기를 준비했다.
기묘하게도 그 장면은(나이 차이가 있는 그 젊은 남녀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불안정한 숨결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사진을 찍으면 사물은 바보처럼 진실을 드러낼 것이라고 여겼다. 나는 부두에 세워둔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있는 회색 모자의 사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혹시 신문을 보고 있거나 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방금 전에 사내를 발견했는데, 주차한 자동차 안에 있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은데다 그 사내는 기동력과 위험을 수반한 저 아름답고 비천하고 개인적인 우리 안에 몸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동차는 섬의 일부로서(또는 섬을 변형시키면서) 내내 그곳에 있었다. 이 때 자동차라는 말은 불을 밝힌 등대나 광장의 벤치와 같은 성격의 사물이라는 뜻이다. 바람과 햇살은 그렇지 않았다. 피부로 느끼는 바람이나 눈으로 보는 햇살은 항상 새로웠다. 소년과 여자도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저기에 있기 때문에 섬의 풍경이 바뀌었고, 나는 그 섬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무튼 사내 역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나처럼 음흉한 마음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여자는 가볍게 돌아섰고, 소년은 여자와 제방 사이에 위치했기 때문에 옆모습밖에 볼 수가 없었다. 소년의 키가 여자보다 살짝 컸다. 그러나 여자의 몸이 소년을 가리고 있어서 마치 소년을 감시하는 것 같았다(느닷없는 여자의 웃음은 깃털로 만든 채찍 같았다). 여자는 단지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웃음만으로, 팔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소년을 압도했다.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조리개를 16에 놓고, 흉측한 검은색 자동차는 뷰파인더에 들어오지 않게 하고, 하지만 잿빛 일색의 공간에 변화를 주기 위해 나무는 집어넣고…….
나는 사진기를 들고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는 척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드러내는 몸짓을 포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연속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시간을 분절하면 고착된 이미지로 나타나는 삶을 포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리가 지각 불가능한 삶의 핵심적인 순간을 포착하겠다는 생각만 버린다면 말이다. 나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여자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소년을 부드럽게 옭아매고, 아주 느릿하고 감미로운 고문을 가하면서 소년의 자유를 한 올 한 올 송두리째 빼앗고 있었다. 나는 결말을 상상해보았다(이제 조그마한 뭉게구름이 보인다. 하늘에는 그 구름뿐이다). 그들이 집에 도착한 광경을 그려보았다(아마도 1층일 것이고, 여자는 쿠션과 고양이를 들여놓았을 것이다). 소년은 불안한 심정을 감추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며,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라는 듯이 여자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라고 짐작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장면을 차근차근 상상해보았다. 놀리는 듯한 키스, 소설 장면처럼 옷을 벗기려는 소년의 손을 부드럽게 밀어내는 여자, 보라색 침구가 깔린 침대, 소년은 여자 혼자 옷을 벗게 할 수밖에 없고, 은은한 스탠드 불빛 아래서 꼭 어머니와 아들처럼, 그리고 모든 일은 언제나처럼 그렇게 끝나겠지. 어쩌면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소년은 통과의례를 치르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길고 긴 전희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다. 서툰 행동, 성급한 애무, 어디쯤에서 손길이 멈출는지 누가 알겠는가마는 고적하고 쓸쓸한 쾌락을 맛볼 것이다. 여자는 솜씨를 부려서 한심할 정도로 순진한 소년을 난감하고 피곤하게 만들어 놓고도 결정적인 행위만큼은 단호하게 거부할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럴 공산이 컸다. 아마도 여자는 소년을 애인으로 삼으려는 게 아니라 잔인한 게임이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는 그 어떤 목적을 노리고 소년을 소유하려 했으리라. 자기의 만족을 위한 욕망이 아니라 타인을 ―결코 소년은 아니다― 흥분시키기 위한 욕망이었으리라.
미첼의 병은 문학이다. 다시 말해서,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꾸며낸다는 것이다. 미첼은 예외적인 존재, 탈인간인적인 존재, 항상 혐오스럽지만은 않은 괴물을 즐겨 상상한다. 그런데 저 여자는 미첼을 창작의 세계로 인도했으며, 어쩌면 진실을 파악하기에 충분한 실마리도 제공하고 있었다. 여자가 떠나기 전에, 그리고 오랫동안 내 기억을 떠나지 않고 있는 지금 -나는 곰곰이 되씹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었다. 나는 뷰파인더에 모두(나무, 제방, 11시의 태양) 집어넣고 사진을 찍었다. 바로 그때,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소년은 깜짝 놀라 물음표처럼 서 있었으나 화가 치민 여자는 누군가 훔쳐보고 있으며, 치욕스럽게도 조그마한 화학적 이미지에 붙잡혔다는 사실 때문에 얼굴과 몸짓으로 결연한 적의를 드러냈다.
아주 상세하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그럴 필요는 없다. 여자는 어떤 사람도 허락 없이는 사진을 촬영할 권리가 없다면서 필름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전형적인 파리 억양에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말을 할수록 어조는 격앙되고 안색은 붉어졌다. 필름을 건네주고 안 건네주고는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내 성격상 그런 일은 공손하게 부탁해야 될 일이다. 마침내 나는 공공장소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된 것은 아니며,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가장 선호하는 활동이라는 견해만 피력했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소년이 꽁무니를 빼고 있다는 사실에 은근히 쾌재를 불렀다. 소년은 뒤에 있다가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자기(믿을 수 없는 일처럼 보였다) 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걸어간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서둘러 도망치고 있었다. 자동차를 지나서 아침 공기 속으로 ‘성모 마리아의 실’처럼5) 사라졌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의 실’은 ‘악마의 침(唾液)’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첼은 갖가지 욕설을 감내해야 했다. 주책바가지처럼 남의 일에 참견한다는 소리도 들었으나 억지웃음을 짓고 고개만 까닥거리며 건성으로 응대했다. 조금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자동차 문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회색 모자를 쓴 사내가 저기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사내가 그 희극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는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 신문을 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읽는 체 들고 있던 신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잔뜩 찌푸린 얼굴이 기억에 생생하다. 사내는 입을 씰룩거렸고, 얼굴에는 온통 주름이 생겼다. 생김새가 조금씩 달라졌다. 턱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인상을 쓸 때마다 입술이 이쪽저쪽으로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입술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머지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분칠한 광대나 핏기 없는 인간 같았다. 피부는 까칠하고 생기가 없었다. 눈은 움푹 들어갔고, 훤히 들여다보이는 콧구멍은 검은 색이었다. 검은색 눈썹이나 검은색 머리칼이나 검은색 넥타이보다 훨씬 더 검은색이었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마치 돌로 포장한 길이 걷기에 불편한 듯싶었다. 사내는 에나멜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밑창이 너무 얇아서 울퉁불퉁한 길바닥이 그대로 느껴졌을 것이다. 내가 왜 제방에서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왜 필름을 주지 않으려고 작정했는지, 두려움과 비겁함이 묻어나는 여자의 요구를 왜 묵살했는지 잘 모르겠다. 광대와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었고, 우리들은 팽팽한 정삼각형을 형성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이런 분위기를 깨뜨려야 했다. 나는 그들에게 웃음을 보이고 걷기 시작했다. 소년보다는 조금 천천히 걸은 것 같다. 나는 철제 난간 옆에 늘어선 주택가에 이르렀을 때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내는 신문을 떨어뜨렸다. 내가 보기에, 제방에 기댄 여자는 돌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고전적이면서도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콘탁스 카메라다음 일은 지금, 여기, 6층 방에서 일어났다. 며칠 뒤, 미첼은 일요일에 찍은 사진을 현상했다. 콩시에르주리와 생트사펠 사진은 예상한 바와 다르지 않았다. 미첼은 시험 삼아 찍은 사진 두어 장을 찾아냈다. 그동안 까맣게 망각한 사진이었다. 한 장은 공중변소 지붕 위에 아슬아슬하게 쭈그리고 앉은 고양이 사진으로 의도만큼 좋은 사진은 아니었다. 또 한 장은 금발 여자와 소년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음화 상태가 좋아서 확대를 했다. 확대사진도 쓸만해서 훨씬 더 크게, 포스터 크기로 다시 확대했다. 콩시에르주리에서 찍은 사진만이 이런 작업을 할 만하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이제야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튼 흥미를 끈 사진은 섬 끝에서 찍은 스냅 사진뿐이었다. 그래서 미첼은 확대 사진을 벽에 붙여놓았다. 첫 날, 미첼은 잠시 사진을 쳐다보며 회상에 잠겼다. 현실은 이미 사라지고 추억만이 남았다는 씁쓸한 생각이었다. 이러한 추억은, 모든 사진이 그러하듯이, 화석화된 추억으로, 그 장면의 진정한 고착제인 허무마저도 필요하지 않았다. 여자가 있었고, 소년이 있었고, 그들 머리 위로 완고하게 자리 잡은 나무가 있었고, 제방 옆의 돌만큼이나 확실하게 고정된 하늘이 있었고, 분간할 수 없이 뒤섞여버린 돌과 구름이 있었다(이제 산발한 구름 하나가 지나간다. 폭풍우가 몰려오는 모양이다). 처음 이틀 동안, 나는 사진을 확대하고 벽에 걸기까지 내 자신이 한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호세 노르베르토 아옌데의 저술을 번역하는 동안 얼룩이 묻은 제방과 여자의 얼굴을 틈틈이 쳐다보면서도 왜 쳐다보는지 그 이유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우선 내가 놀란 사실은, 어리석은 것이지만, 사진을 정면으로 쳐다볼 때 눈은 렌즈의 시각과 위치를 정확하게 반복한다는 사실을 전혀 상상조차 못 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런 일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인식조차 못 한다. 나는 타자기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은 채로 3미터쯤 물러나서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때서야 나는 렌즈의 시점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적절한 위치였다. 사진을 감상하는 데는 더없이 완벽한 위치임을 의심치 않았다. 물론 대각선에서 바라보아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짬이 나는 대로, 이를테면 호세 알베르토 아옌데의 멋진 스페인어에 적합한 불어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 눈을 들어 사진을 바라보았다. 때로는 여자가, 때로는 소년이 내 시선을 끌었다. 때로는 측면의 빈 공간을 살려주는 낙엽 하나가 뒹구는 포장도로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나는 잠시 일손을 놓았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진을 촬영하던 그날 아침 일을 돌이켜보았다. 필름을 달라고 요구하던 여자의 성난 표정과 측은하고 우스운 모습으로 줄행랑을 놓던 소년과 허연 얼굴의 사내가 끼어들던 일을 아이러니컬한 심정으로 회상했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취한 태도가 만족스러웠다. 내가 그 자리를 뜬 행동이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인들은 천성적으로 말대답을 잘한다. 특권이나 특전이나 시민의 권리를 들먹이지도 않았는데, 왜 내가 그 자리를 떴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중요한 사실은, 정말 중요한 사실은 때마침 소년이 도망가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이다(물론 내 짐작이 정확하다는 가정 아래서만 그렇다는 얘기이다. 완벽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소년이 도망친 사실로 보아 내 짐작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내가 멋모르고 끼어드는 바람에 겁에 질린 소년은 두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지금은 비록 그 일을 창피하게 여기고, 사내답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눈길의 여자와 어울리는 것보다는 도망치는 편이 더 훌륭한 처신이다. 미첼은 때때로 청교도적이어서 사람을 강제로 타락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진을 찍은 일은 아주 바람직한 행동이었다.
바람직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내가 번역을 하면서 그렇게 자주 사진을 쳐다본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확대사진을 벽에 붙여둔 이유나 사진을 쳐다본 이유를 잘 몰랐다. 아마도 모든 운명적인 행동이 그러하듯 영문도 모르고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운명적인 일이 발생하기 위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나는 나뭇잎이 살짝 떨리는 것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고 번역하던 문장을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한다. 습관이란 커다란 식물 표본집과 같은 것이니, 80X60 확대 사진은 기껏해야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처럼 보일 뿐이다. 이 스크린에서 어떤 여자는 섬 끝에서 어떤 소년과 이야기를 하고, 그들 머리 위로 마른 잎이 흔들린다.
그런데 손이 너무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다음 문장을 번역했다. “Donc, la seconde clé réside dans la nature intrinsèque des difficultés que les sociétés...”[그러므로 두 번째 열쇠는 그 문제의 본질적인 속성에 있는데, 사회는…….] 그리고 여자의 손을 보았다. 여자는 손가락을 하나씩 천천히 오므리고 있었다. 내 수중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결코 끝나지 않을 프랑스어 문장과 바닥으로 떨어지는 타자기와 삐걱삐걱 흔들리는 의자와 안개뿐이었다. 소년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결정타가 날아와도 어쩔 도리가 없는 권투선수 같았다. 외투 깃을 세우고 있었는데, 영락없이 포로나 비극적 결말에 꼭 필요한 희생자처럼 보였다. 이제 여자는 소년의 귀에 대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시 손을 뻗어 소년의 볼을 천천히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소년은 한두 번 여자의 어깨 너머로 주위를 살폈는데, 난처한 표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여자는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여자가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지, 소년은 매번 저쪽을 쳐다보았다. 미첼이 잘 알고 있듯이, 회색 모자 사내가 탄 자동차가 있는 곳이었다. 촬영을 할 때 주의를 했기 때문에 사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소년의 눈동자에, 여자의 말속에(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여자의 손길 속에, 사내를 대신한 여자의 현존 속에 드러나 있었다. 나는 근처로 다가온 사내가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내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우두커니 서서, 마치 해변에서 뛰노는 개를 휘파람으로 부르는 주인처럼, 약간은 짜증스럽고 약간은 끈덕진 태도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들 사이에 일어나야만 하는 일과 일어났어야만 하는 일과 그 순간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이런 것을 이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내가 멋모르고 끼어들어 질서를 헝클어뜨렸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이제 일어나려고 하며, 완결되려고 하고 있었다. 현실은 당시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여자는 자신을 위해 그곳에 나타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소년을 애무하고 유혹하고 자극한 것이 아니었다. 머리가 헝클어진 천사 같은 소년을 데려가서 장난삼아 두려움과 갈망을 희롱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진짜 주인은 저기서 다 된 일이라고 흐뭇한 미소를 띄우며 기다리고 있었다. 꽃 같은 여자를 앞세워 코가 꿰인 포로들을 데려오는 것도 처음은 아니었다. 그 뒤의 일은 훤하다. 자동차, 어떤 집, 술과 음료수, 선정적인 사진들, 때늦은 눈물, 그리고 지옥에서 깨어난 것만 같은 몸서리. 그렇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전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진 힘이라고는 사진을 찍는 것뿐인데, 지금 저기에 걸려 있는 사진 속에서 그들은 노골적으로 마음먹은 일을 함으로써 내게 복수를 하고 있었다. 사진은 이미 찍었고, 시간은 이미 지나갔으며, 우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유혹도 이미 종결되었고, 눈물도 이미 쏟아졌다. 여러 갈래의 추측과 슬픔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별안간 질서가 전도되어 그들이 살아나고, 움직이고, 결심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나는 다른 시간에 갇혀 있는 포로이고, 6층 방안에 있는 포로이며, 저 사내와 여자와 소년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포로이다. 다소 까다롭고 참견할 능력도 없는 내 사진기 렌즈의 포로이다. 그들은 내 면전에서 독살스럽게 비웃고 있었다. 내 면전에서 얼마든지 마음먹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비웃고 있었다. 소년이 다시 한번 분칠한 광대를 쳐다보고 돈이나 속임수에 넘어가서 제의를 받아들일 때에도 내가 무기력하기 때문에 도망치라고 고함을 지르지도 못할 것이며, 사진을 다시 한번 찍음으로써, 즉 타액과 향기로 된 발판을 망가뜨리는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간섭으로써, 소년이 도망치도록 도와줄 수도 없을 것이라고 비웃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그 순간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물리적인 침묵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모종의 거대한 침묵 속에서 그런 일이 전개되고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고, 떠나갈듯이 고함을 질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10센티 정도의 보폭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전면의 나뭇가지는 움찔움찔 클로즈업되었으며, 제방의 얼룩은 뷰파인더에서 벗어났고, 깜짝 놀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여자의 얼굴은 확대되었다. 그 순간 나는 방향을 조금 틀어, 다시 말해서 사진기는 방향을 조금 틀어 여자가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휑한 눈구멍으로 재수 없다는 듯이 나를 위아래 훑어보고 있는 사내 쪽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렌즈 앞으로 휙 지나가는 커다란 새 같은 것을 보았다. 나는 벽을 짚었다. 다행이라고 여겼다. 소년이 방금 도망쳤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한번 렌즈 속에서 소년이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며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섬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 시내로 되돌아가는 소년을 보고 있었다. 소년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서 벗어났으며, 나는 다시 한번 소년이 도망치도록 도와주었으며, 위험천만한 낙원으로 소년을 돌려보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서 있었다. 더 이상 다가갈 필요가 없었다. 게임은 이미 끝났다. 뷰파인더에서 느닷없이 잘려나간 여자는 어깨와 머리칼만 조금 남았다. 그러나 정면에는 사내가 있었다. 반쯤 벌어진 입 속에서 떨고 있는 검은 혀가 보였다. 사내는 천천히 손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고, 초점이 완벽하게 맞춰진 순간인데, 사내의 모습이 섬과 나무를 지워버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얼굴을 가리고 바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커다란 흰 구름 하나가 떠간다. 요즈음의 나날처럼, 헤아릴 수 없는 요즈음의 시간처럼.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한 송이 구름이거나 두 송이 구름이거나 혹은 내 방에 압핀으로 붙여놓은 지극히 순수한 사각형, 그러니까 완전무결하게 깨끗한 하늘의 긴 시간들이다. 이것이 내가 눈을 뜨고 손으로 눈시울을 훔쳤을 때 본 것이다. 깨끗한 하늘, 그 왼편에서 나타난 구름 한 송이가 자태를 뽐내며 천천히 배회하다가 오른쪽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또 다른 구름이……. 때때로 아주 거대한 회색 구름이 들어오고 갑자기 요란스럽게 비가 내린다. 오랫동안 사진 위로 비가 내리는 것이 보인다. 거꾸로 흐르는 눈물처럼. 점차 뷰파인더가 밝아진다. 아마도 태양이 나왔을 것이다. 다시 구름이 둘씩, 셋씩 들어온다. 그리고 가끔씩 비둘기와 몇 마리 참새도 들어온다.
1) 생트사펠은 시테 섬에 위치한 최고재판소 건물. 콩시에르주리는 프랑스혁명 당시 감옥으로 사용한 곳이다.
2) 로쟁관: 보들레르가 거주한 곳. 보들레르와 고티에는 이곳 살롱에서 ‘해시시 클럽’을 운영했다.
3) 초록색은 스페인어권에서 호색, 음란을 뜻한다.
4) 프라 필리포 리피 (Fra Filippo Lippi 1406경-1469): 르네상스 시기의 피렌체의 화가. 원래는 화가이자 사제였으나 1456년 프라토의 산타 마르게리타 수녀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 이 수녀원의 젊은 수녀 루크레치아 부티와 함께 도망친 것이다. 교황은 나중에 리피와 수녀의 결혼을 허락하였다. 위 그림은《천사와 함께 있는 성모자》(1465).
5) 성모마리아의 실: 가을철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거미줄을 가리킨다. 흔히 ‘악마의 침’이라고 일컫는다. 이 거미줄에 걸리면 재수가 없다는 속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