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잘 아셔
어머니는 잘 아셔
제임스 야메
전문가가 되라는 것이 어머니의 희망이었다. 어떤 직업이라도 상관없다. 그러나 적어도 '지적인 직업'이며, 그리고 절대로 '장사'가 아니어야 한다.
"너희 백부님도 장사를 했고, 너희 사촌 형도 그랬고, 아버지도 그랬고, 그것도 한결같이 단 한 푼도 못 벌었잖니."하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막스 백부님이야 별문제지. 그 백부님이나 백모님처럼 몸도 마음도 엉망이 되어버려선 끝장이니 말이다."
그래서 브롱크스에서 보낸 나의 유년 시절부터 어머니는 그 전문교육의 기초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생일선물로 화학실험기구를 준비하는가 하면 바이올린을 배우러 다니게도 했다. 또한 변호사였던 먼 친척 형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나의 궁둥이를 때리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머니의 염원은 이루어졌다. 오늘날 나는 전문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 전문직은 어머니를 도무지 만족시키지 않는 걸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내가 경찰관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어머니는 애당초부터 반대했다. 나는 생각해 낼 수 있는 한 이의를 늘어놓았다. 날마다 새로운 이의를 생각해 냈다. 그러나 그 태반은 뚱딴지같은 것이었다. 경찰관 생활에 대한 어머니의 반대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위험한 일이라는 점이다.
"강도니, 마약 환자니, 경마꾼이니, 살인자니 그런 건달들을 상대하는 거니까. 언젠가 필시 부상을 입고 말 거야."하고 어머니는 걱정한다.
둘째 이유로, 이 일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너는, 뭐든지 좋으니까 지성과 두뇌를 필요로 하는 일을 선택해주었으면 한다."하고 어머니는 말한다.
"탐정이란 일은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를 알아내는 일 따위에 불과하지. 공원의 아이들이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암만 봐도 어엿한 어른이 할 짓은 아닌 걸. 그야 조금만 머리를 쓸지도 모르지만,그 정도라면 백부님네 장사나 피장파장이지."
어머니의 이 의견을 바꿔놓을 방법이나, 또 나의 직업의 존중성과 엄정성을 인식시킬 방법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나는 어느 정도 좋은 직책을 맡아 사복형사 일을 하고 있으며, 슬러터리 경감의 심복으로 간주되고 있건만, 어머니는 내게 불만을 표시하곤 한다. 그야 놀려대는 것이려니 생각하지만 말이다. 실인즉,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이 형사 근무란 아이들의 놀이와 같이 쉬운 일이다.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알아내는 따위는,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누워서 떡 먹기와 같으니까. 평범한 상식과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천부의 재질, 어느 것에도 결코 속지 않는 재능을 가지고 (이 재능은 협잡을 잘하는 푸줏간이나 식료품점의 점원을 상대해 온 여러 해 동안의 경험의 산물이다) 어머니는 경찰이 몇 주일 동안이나 골탕 먹고 있는 사건을 저녁 식탁에서 유감없이 해결해 버리는 실력자다. 사실 강력계에서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수사나 범인 추적이나 심문 등의 일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강력계에서 나의 존재가치는 매주 금요일 저녁 브롱크스에 있는 어머니 집에서 식사를 함께 하면서, 어머니로부터 사건의 정보를 제공받아 사건 해결을 단축시키는데 있는 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정도다.
지난 주 금요일을 예로 들어보자. 나와 셜리는 여섯시에 어머니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먼저 포도주가 나왔다. 그리고 정해진 통닭구이 저녁식사(유별난 저녁식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뛰어난 어머니의 통닭구이 솜씨는 당할 사람이 없으니까)를 들기 위해 식당에 둘러 앉았다.
잠시 일상의 얘기가 오고 갔다. 어머니가 이웃의 소문들을 닥치는 대로 늘어놓는다. 그리고 셜리에게 식료품점에서 쇼핑하는 비결을 일러준다. 셜리는 웰즈레이 여자대학의 심리학과 출신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식생활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해서는 까막눈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런 다음 나에게 이런 음산한 날씨에는 두껍게 입는 편이 좋다고 타이른다. 그리하여 누들수프가 나올 무렵 어머니는 드디어 이렇게 묻는다.
"그래, 직무 쪽은 어떠냐, 데이비?"
"별로 재미도 없는 사건이에요, 어머니."하고 나는 말한다.
"흔해빠진 살인사건이니까요. 용의자가 세 사람 있어요. 그중의 하나가 유죄가 될 것은 확실하지요. 범인이 자백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줄 참이랍니다."
"그래서 아직 아무도 자백하지 않는단 말이지?"
"네, 그래요, 어머니. 그러나 염려 없어요. 족쳐서 자백시켜 보일 테니까요."
"너희들의 머리도 좀 족쳐야지." 하고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 고문 문제만 하더라도, 악당을 족치느니보다 경찰을 족치는 게 더 시급한 일이지. 당장 너희들이 일 분이라도 멈춰 서서 머리를 쓰고, 주변에 있는 단서를 다시 한번 잘 살펴보려무나. 말이지 너희 동료들로 말하면, 보살펴 줄 어머니가 필요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구나."
"머리를 쓰고 안 쓰는 문제가 아닌 걸요, 어머니. 참는 거죠. 모름지기 참을 인 자 하나에요. 사건의 내용을 얘기할 테니, 직접 판단해 보세요. 아가씨가 유흥가의 호텔에서 살해당했어요. 하류 중에서는 괜찮은 편에 속하는 호텔이죠. 아시겠어요? 사치스럽고, 돈의 씀씀이가 많은 자들이 모이는 데죠. 연예인, 도박사, 라디오, TV 관계자 등이 모이는 꽤 화려한 집결지에요. 그리고 브루넷, 플래티나 블론드가 모이는 데죠. 어떻게 먹고 사는지 알 수 없는 여자들이에요. 자칭 댄서라는 따위지만, 무대에는 몇 해 동안 올라간 적이 없는 애들이거든요. 모델입네 하는 애도 있지만, 이 역시 잡지 표지에는 독자보다 접근해본 적이 없는 축이지요. 죽은 아가씨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진짜 플래티나 블론드인, 빌마더글라스라는 이름이었답니다. 흔한 경력이지요 - 열여섯에 고교를 중퇴하고, 합창단원이 됐어요. 5년 전에 합창단원 생활을 그만두고 그 호텔로 옮겨왔어요. 호텔에서는 5층의 두 방이 터진 큰 방을 쓰고 있었답니다. 아가씨와 아가씨를 둘러싼 찬미자의 무리, 명색이 금력과 지위가 있다고 자칭하는 자들이면..."
"얘기의 줄거리만 말하면요." 셜리가 참견했다.
"어젯밤에, 그 남자들 중의 하나가 아가씨를 죽였대요."
셜리는 언제나 긴 이야기를 요약하는 구실을 떠맡고 나선다. 나는 별로 이런 행동에 신경을 쓰지 않지만 셜리와 결혼하자마자, 내가 여장부를 아내로 삼았음을 직감했기 때문에 - 어머니는 투지를 느꼈던 모양이다.
지금도 어머니는 그 투지가 발동하였다.
"원, 모르는 게 없구나." 하며 부드러운 미소를 셜리에게 던졌다.
"그래서 너도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게로구나, 셜리?"
셜리도 지지 않고, 악의 없는 웃음을 띄우며 대꾸했다.
"천만에요, 어머님. 저는 다만 데이빗의 나쁜 버릇을 고쳐주려고 하는 거에요. 저이 얘기는 끝이 없어서요. 좀처럼 요점으로 들어가지 않는걸요. 어려서 생긴 버릇은 고치지 어렵지 뭐예요. 누구의 유전인지, 도무지 짐작이 안 가네요."
"그래, 여기 세 사람의 용의자가 있단 말예요."
나는 부리나케 끼어들었다. 어머니의 눈이 반짝 빛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젯밤 열 시에 아가씨는 어떤 신사의 배웅을 받으며 호텔의 로비에 돌아왔어요. 신사는 시내의 중년 은행가 그리스 월드라고 하는데요. 그의 이름이 신문에 발표된 것은 매우 불행했지요. 두 사람을 프론트에 있던 고용인과 엘리베이터 걸이 봤거든요. 고용인은 반백 머리의 빈상으로 생긴 노인으로 바질로라고 해요. 무뚝뚝한 사내지요. 오늘 그 사람을 심문했는데, 그는 10분이나 불평을 늘어놓는 거예요. 꼬박 네 시간이나 프론트에 서 있었느니, 심심풀이로 라디오라도 놓고 싶지만 지배인이 허락해주지 않는다느니, 부지배인은 탁자 밑에다 신문이나 잡지를 숨기고 있지 않나 하고 감시하느니, 불평이 그치지 않는 거예요. 내내 이쪽 얼굴에다 맥주 냄새를 풍기면서 말예요. 불쾌한 녀석이지만 지껄이는 소리는 사실이겠죠. 거짓말을 할 이유가 별로 없으니까요. 엘리베이터 걸은 새디 델라니라고 하는, 잘 지껄이는, 머리가 검은 아일랜드 계통의 아가씨지요. 아직 미혼인데, 몸집이 큰 여자지만 무척 명랑하고 싹싹한 아가씨로서 호텔의 손님 접대도 잘하는 편이죠.게다가 증인으로서도 우수하구요. 협력적이고 이해도 빨라요. 새디는 더글라스와 그리스 월드를 5층으로 데려다주고,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 밑으로 내려왔어요. 프론트의 바질로와 10분쯤 지껄이고 있는데, 5층의 벨이 울리더랍니다. 올라가보니 그리스 월드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더래요. 어쩐지 몹시 흥분되어 있는 기색이었답니다. 1층에 내려주고 인사를 또 했는데, 대꾸도 않더래요. 거친 발소리를 내며 나갔겠죠-"
이때 누들 수프를 먹고 난 셜리가 말했다.
"참 맛있게 먹었어요. 어머님이 손수 만든 음식을 먹는 건 정말이지 즐거워요. 어머님의 솜씨는 천하일품이라고 할 만 해요."
"고맙다.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구나, 셜리."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 처녀 시절엔 모두 이랬으니까 유별나게 칭찬해 줄 정도는 아니란다. 집이 가난해서 대학엔 못 갔지만 실생활에 필요한 건 착실히 익혀왔거든. 아무런 쓸모도 없는 허튼 수작만 머리에다 처박는 따위는 하지 않았으니까 - 요즘 젊은이들처럼."
셜리가 반격 태세를 갖춘 걸 알아챈 나는 깊은 호흡을 하고 얘기를 서둘러 이어갔다.
"그 1분 후에, 용의자 제2호가 들어왔어요. 톰 모나한이라는 호텔잡역부지요. 어제는 비번이었는데, 더글라스 양에게서 낮에 전화가 걸려왔는데 욕조가 새니까 고쳐달라고 했대요. 자기 전에 고쳐주지 않으면 또 귀찮아지니 왔노라고 새디에게 말하더래요. 그래서 새디는 그를 5층으로 올려주고, 또 내려왔어요. 내려오니 이내 또 5층의 벨이 울리더랍니다. 올라가보니 톰이었어요. 더글라스 양 방의 도어를 두드렸으나 대꾸가 없었던 모양이에요. '아마 잠들었나보다, 내일 다시 와야겠다.'고 하며 그는 새디와 함께 밑으로 내려와서 그냥 곧장 집으로 돌아갔대요. 그리고는 새디는 20분쯤 로비에서 바질로와 잡담을 했답니다. 화제는 어젯밤에 있었던 권투 타이틀 매치 얘기였는데, 어떻게나 참혹한 시합이었던지 챔피언은 비참한 꼴로 졌잖아요. 두 사람의 대화는 용의자 3호에 의해서 중단됐지요. 그로 말하면 아티 펠로우즈라는 시내에서 소문난 플레이보이요, 연예인의 패트론으로, 말하자면 건달이지요. 이 한달 사이에 더글라스를 자주 찾아오곤 했답니다. 그는 화려하다고 느낄 정도로 흰 야회복을 입고 있었어요. 6월에 결혼하기로 된 약혼녀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돌아오는 길이었거든요. 새디는 그를 5층으로 데려다주었어요. 5분 후에 벨이 야단스럽게 울리더랍니다. 올라가보니 펠로우즈가 새파란 얼굴을 하고 서 있었어요. '지금 그 여자의 방 열쇠를 열고 - 열쇠는 아가씨가 준 거예요. - 들어가 보니 그 여자는 침대 위에 죽어 있더라'고 그는 말했어요. 호텔 단골인 사립 탐정이 불려오고, 의사와 경찰이 불려왔어요. 그 결과 누군가가 아가씨의 소지품이었던 청동 촛대로 아가씨의 뒤통수를 쳐서 실신시키고, 게다가 베개를 얼굴에다 밀어붙여서 질식사시켰다는 결론이 나왔지요. 베개는 시체 옆에 뒹굴고 있더군요. 뒤엉킨 잇자국이며 침의 얼룩이 묻어있어서 진상을 일깨워주고 있었어요."
"어떻든 간에."하고 셜리가 말했다.
"그런 천한 여자에겐, 그다지 동정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이란 반드시 업보를 받는 거 아녜요?"
"반드시라곤 할 수 없지."하고 어머니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자신에게 타이르기라도 하는 듯.
"세상에는 베개를 밀어붙이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잔뜩 있잖니. 하지만, 죽여 버릴 만큼 세게 밀어붙여선 안 되지. 그가 잘못을 스스로 알고 뉘우치게 하기 위해서 조금만 밀어붙여 줘야지."
셜리가 참견할 겨를을 주지 않고, 어머니는 가만히 내 쪽으로 돌아앉았다.
"자, 사건 얘기를 계속해다오."
"그래서, 우리가 맨 먼저 한 일은 물론 이 세 사람을 각각 심문하는 노릇이었죠. 세 사람의 진술을 말씀드리면, 먼저 그리스 월드는 이래요. 그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자백하지 않았으나, 나중에 블론드 아가씨와 방에 들어가서 말다툼한 일을 자백했어요. '당신과는 이제 끝장이야, 더 젊고 부자인 나으리 - 펠로우즈를 가리키는 말일 테죠 - 를 만났으니까' 하고 아가씨가 말했다나요. 그리스 월드는 노여워하며 방을 나왔으나, 아가씨를 죽이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가 방에서 나올 때는 아가씨는 쾌활했으며, TV의 스위치를 돌려 권투중계를 보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녀는 스포츠팬으로서, 특히 피가 많이 나오는 걸 좋아했대요. 그리스 월드의 진술은 이 정도였지요. 한동안, 톰 모나한이 범인으로 보였어요. 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죠. 더글라스의 방 목욕탕은 아무 데도 고장나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모나한은 마침내 고백했어요. 그와 블론드 아가씨는 연애감정에 빠져 있었던 거예요. 그는 근육이 늠름한 풍채고, 그녀는 싹싹한 편이었으니까요. 욕조 얘기는 아가씨한테 숨어들어 갈 구실이었거든요. 그런데 아가씨 방의 도어를 두드렸으나 대꾸가 없었다는 진술은 끝내 뒤집지 않았어요. 심문할 때 우리는 잊지 않고 물어보았죠. 혹시 방안에서 텔레비젼 소리는 들리지 않더냐고 물었더니, 그는 듣지 못했다고 대꾸하더군요. 아티 펠로우즈의 진술 - 그는 방에 들어가 보니 그녀의 시체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는 텔레비젼에 관한 한 그리스 월드의 진술을 뒷받침하고 있거든요. 그가 방에 들어갔을 때는 텔레비젼은 큰 소리를 내고 있더라는 거예요. 실상 블론드 아가씨가 침대 위에 죽어 있었으니, 그게 소름이 끼칠 만큼 섬뜩한 효과를 내고 있었던가 봐요. 자, 이만하면 설명은 충분히 됐겠죠, 어머니. 범인이 이 세 사람 가운데 있는 건 확실해요. 호텔 내부에 있는 사람은 아녜요. 사는 사람을 모조리 훑어봤으니까. 조그마한 호텔이라서 손님도 많지 않으며, 모두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었어요. 외부 사람도 아녜요. 고용인과 엘리베이터 걸은 그 세 사람 이외에 출입한 사람을 보지 못했거든요. 즉, 이것은 극히 흔한 사건인 셈이죠. 그리스 월드냐, 모나한이냐, 펠로우즈냐, 좋으실 대로 골라잡아 보세요. 자, 하나...둘...셋!"
"넷을 잊고 있단 말이다."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이 말은 다소 몰상식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지만 아무튼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몰상식하게 여겨지는 말은 이따금 예상 밖의 상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무슨 뜻이죠?"
"염려 말아라."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자, 이번엔 닭고기야."
어머니가 닭고기를 식탁에 얹어놓는 동안 나는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누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머니가 자리에 앉자마자, 어디에서 대화가 중단되었는지 상기시켜 드렸다.
"그래서, 경찰서에는 그 세 사람의 남자가 잡혀 있단 말이지?"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래서 너희들은 그 세 사람을 고무호스로 치고 있다는 거지?"
"어머니, 몇 번 말하면 아시겠어요. 저희들은 고무호스 따위는 쓰지 않아요. 현대 경찰이 하는 방식은..."
"알았다, 알았다. 심리적인 방법으로 골려준단 말이지. 어떻든, 어리석은 짓이야. 너희들이 하는 식이란, 그 플라토닉 블론드의..."
"플래티나 블론드예요, 어머님."하고 셜리가 말했다.
"그렇게 말했잖니." 어머니는 셜리를 흘낏 보고 나서, 다시 내 쪽을 향했다.
"뭘 뭉기적거리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어째서 고문 따위의 부질없는 짓을 하지? 그야말로 폐물들의 집합이로구나. 왜 아가씨를 죽인 범인을 잡지 않는 거지?"
"죽인 놈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지 뭐예요! 앞으로 몇 시간 지나면..."
"몇 시간이라니, 흥! 그런 방법이라면, 앞으로 몇 해는 걸릴 걸. 그래서 주먹이나 고함을 쓸 게 아니라 머리를 쓰라는 거야. 요즘은 주먹이나 고함뿐으로, 머리를 전혀 안 쓰는 게 탈이거든. 네 머리에이 무척 중대한 네 가지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나는 놀라지는 않는다만..."
"질문이란 뭐죠, 어머니? 질문이라면 실컷 했지만요."
"그 완두콩을 먹으려무나, 그럼 가르쳐주마. 잡담도 좋지만 젊은이는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한단다."
나는 저으기 볼을 붉혔다. 셜리 앞에서 어머니가 나를 어린애처럼 다루면 그만 얼굴이 붉어진다. 그러나 나는 순순히 완두콩을 먹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도 '무척 중대한 네 가지 질문'을 시작했다.
"첫째 질문. 그 톰 모나한이라는 잡역부는 가정을 가졌니?"
"어머니, 그게 중대한 질문인가요? 그런 것쯤이야 맨 먼저 조사했지요. 아내가 없어요. 그러니까 만일 질투의 꼬투리를 찾으신다면, 그건 좀..."
"완두콩!"하고 어머니는 손가락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내가 생각할 차례니까. 좋다면, 두 번째 질문. 어째서 그 플라토닉 블론드는..."
"플래티나라니까요, 어머님."하고 셜리가 냉큼 말했다.
"그렇지, 그렇지."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이렇게 훌륭한 영어를 지껄이고, 그걸 천하에 뽐내고 싶어 하는 며느리가 있으니 요긴하구나. 그런데 데이비, 질문을 다시 하겠는데 그 플라토닉 블론드는 어째서 살해당했을 때 루즈를 바르지 않고 있었지?"
이 질문은 나를 약간 당황하게 만들었다.
"어머니, 어떻게 그녀가 루즈를 바르지 않고 있었다는 걸 아시죠? 저는 말하지 않았는데..."
"베개에 잇자국과 침의 얼룩이 묻어있었지만, 루즈 자국이 묻어있더라고는 말하지 않았잖니. 여인네의 얼굴에다 베개를 밀어붙이면, 루즈 자국이 묻을 건 당연하지. 루즈를 바르지 않았다면 얘기는 달라요. 그래, 어째서 바르지 않았지?"
"글쎄요, 어째서일까요? 자기 전에 씻어버린 게 아닐런지, 그게 중요한 일일까요?"
"앞을 내다보는 사람에겐 그렇지."
어머니는 상냥하게 웃고, 내 손을 톡톡 두드렸다.
"세 번째 질문. 그 아티 펠로우즈라는 청년이 아가씨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텔레비젼을 켜놓은 채 있었지, 그렇지? 그럼 묻겠는데, 그때 프로는 뭐였지?"
"어머니, 머리가 이상해지셨나요? 텔레비젼에서 뭘 하고 있었든 상관없잖아요. 우리가 조사하고 있는 건 살인사건이지 텔레비젼 프로가 아니니까요."
"즉, 너는 그때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구나?"
"알고 있긴 하지요. 펠로우즈가 우연히 일러주던걸요. 음악 프로예요. 어딘가의 관현악단이 클래식을 연주하고 있더래요. 왜 주의가 미쳤는고 하니, 그게 무척 서글픈 곡이었대요. 빌마 더글라스의 장송곡인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고 그는 말했어요. 꽤나 낭만적이죠, 어머니. 하지만 그까짓 건 눈꼽만큼도 쓸모가 없어요."
"망칙해라!"하고 어머니는 온화하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험악한 말투는 경찰 동료끼리라면 괜찮겠지만, 내 집에선 신사다운 말투를 쓰려무나."
"죄송합니다, 어머니." 나는 중얼거리고 셜리의 눈을 피했다.
"네 번째 질문, 마지막 질문이야."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아가씨가 살해당한 호텔은 유흥가에 있단 말이지?"
"그게 어떻다는 거죠?"
"대답해 주겠니, 안 해주겠니?"
"번잡한 곳이에요. 호텔이 있는 거리는 겉치레만은 현대적이죠. 하지만 모퉁이를 돌아서면 거렁뱅이들이 모여 있으며, 여인숙이나 지저분한 술집이 늘어서 있지요. 자 어때요, 셜록 흠즈 부인, 도움이 되셨나요? 이게 퍼즐을 완성하는 마지막 한 조각이란 말씀이죠?"
어머니는 나의 빈정거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 대답이 알고 싶다면 말해주마. 암, 말해주지!"
여태까지의 경험 덕분에, 나는 그다지 동요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준 사소한 정황증거로써 어떻게 이 사건을 풀 수 있을지 궁금했지만 나는 전혀 동요되지 않는 척 했다.
"그럼, 가르쳐 주세요. 세 사람 중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그 대답은..."
어머니는 나를 약 올리기라도 하는 듯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지었다.
"곧 알 거다."
"그럼, 어머니는 벌써 알고 계신다는..."
"내가 모를 리 있냐? 사람이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인지 내겐 훤히 보이니까. 살인사건이라고 해서 사람이 갑자기 사람답게 행동하기를 그만두는 건 아니지. 그 플라토닉 블론드 같은 아가씨는..."
"플래티나." 셜리는 입 안에서 불쑥 중얼거렸다. 그것은 어느덧 어머니와 셜리 사이의 신뢰 문제로 비약해 있는 듯 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평소 그녀를 도무지 무시하고 있었으니까.
"... 생활의 전부를 사내에게 업혀서 사는 따위의 아가씨, 그런 아가씨는 사내가 집에 왔을 때는 화장에 신경을 쓰는 법이야. 그러니까 아가씨가 죽을 때 루즈를 바르지 않았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용의자 1호인 은행가, 그리즐리 씨는..."
"아, 그리스 월드! 내가 생각한 대로야!"하고 나는 외쳤다. 허나 어머니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그가 아가씨를 배웅해 주었을 때 아가씨는 루즈를 바르고 있었거든. 방에 들어오자 아가씨는 이제 당신과는 손을 끊겠다고 선언했지, 사내를 비웃으며 내보냈어. 그런 판국에 그 아가씨가 사내가 돌아가기 전에 루즈를 지울 것 같애?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테지. 여자가 남자를 뿌리칠 때는, 가장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법이거든. 그러니까 용의자 1호가 돌아갔을 때는 아가씨는 아직 살아 있었지...루즈를 바른 채로."
"과연...필시 그랬을 테죠. 그럼 용의자 2호로군. 톰 모나한! 나도 그런 육감이..."
"희한한 육감이로구나."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사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게 섭섭하지만. 톰 모나한은 도어를 노크하며, 들어가도 좋을지 어떨지를 물었겠지. 그녀의 연애 감정의 상대인 핸섬한 청년인 그를 방으로 들여놓았다면 설사 지웠던 루즈라도 다시 바르고 나서 문을 여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그녀는 루즈를 다시 바르지 않았거든. 그것은 곧 그를 방으로 들여놓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니.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는 노크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 필시 텔레비젼 소리가 너무 컸을 테지. 아무튼 그가 아가씨를 죽이지는 않았어."
"그럼 용의자 3호로군요."하고 나는 말했다.
"아티 펠로우즈였군. 처음부터 그가 수상하다는 예감은 있었지요. 하지만 어머니의 루즈 추리는 그에겐 해당 안 되죠. 그는 방 열쇠를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루즈를 지우고 이미 잠들어 있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때 그가 도어를 열고 들어갔겠죠."
"그렇지."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려면 머리를 쥐어짜야 해. 얘야, 내가 아까 용의자 3호가 시체를 발견했을 때, 텔레비젼에서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지? 용의자 1호가 돌아갔을 때 아가씨는 권투 중계를 보고 있었지. 허나 그것은 용의자 3호가 나타나기 한 시간 전이었어. 3호가 나타났을 때는 경기는 끝나 있었을 테지 - 더구나 그건 짝이 기우는 경기였으니. 고용인과 엘리베이터 걸의 말로는 챔피언은 줄곧 얻어만 맞고 있었다지 않았니. 그래도 용의자 3호가 시체를 발견했을 때는 텔레비젼은 아직 켜져 있었거든. 웬일이었을까?"
"하찮은 질문이로군요, 어머니. 아마 경기 다음의 프로를 보고 싶었을 테죠."
"글쎄, 그럴까? 그래, 그녀는 뭘 보고 있었지? 관현악단의 클래식이었겠다. 자, 너에게 묻겠는데, 알다시피 그 아가씨가 - 고교도 졸업하지 않은 합창단 아가씨가 말이다, 클래식을 좋아할 거라고 넌 생각하니? 내겐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럼 왜 아가씨는 텔레비젼을 켜둔 채 있었던가? 대답은 단 한 가지, 왜냐하면 권투 경기 도중에 살해당했기 때문이야. 죽어버리면 텔레비젼을 끌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범인은 용의자 3호가 아니야. 그는 살인하기엔 늦게 당도했어."
"잠깐, 지금 어머니는 자신의 말귀를 알고 계시나요? 세 사람의 용의자는 범인이 아니라고, 금방 증명해 주셨잖아요. 그리고 외부 사람의 소행도 아니고, 고용인과 엘리베이터 걸이 로비에 있었으니까 호텔 내부 사람의 짓도 아니고, 모두 알리바이를 가졌으니까. 그리고 보면 아무도 범인이 아니라는 거지 뭡니까!"
"알리바이!"
어머니는 코웃음을 치면서 어깨를 약간 움츠렸다.
"얘야, 데이비. 너도 내 나이 또래가 되면 세상엔 알리바이 제공자가 득실거리고 있다는 걸 잘 알게 될 거다. 사람이란 부탁을 받지 않더라도 남을 도와주게 마련인걸. 이를테면 셀마 백모님네 여자 요리사가 그 좋은 예지."
"아니, 아니, 어머니. 셀마 백모님네 여자 요리사가 왜 이 마당에 끼어들죠?"
"셀마 백모님네 여자 요리사는 말이다, 꼬박 6개월 동안이나 밤마다 집을 빠져나가서 식료품점 점원하고 만났었단다. 침모 노파는 그걸 알고 있었지만 백모님한테 일러 바쳤는 줄 아니? 한 마디도 안 했어요. 백모님이 여자 요리사를 부를 적마다 그녀가 대신 나섰던 거야. 지금 케익을 굽고 있어서 손을 뗄 수 없다느니, 몹시 두통을 앓는다느니, 한창 전화로 고깃값을 깎고 있는 참이라는 둥 오만 가지 핑계를 대서 말이다. 데이비, 너는 나처럼 고용인이라는 걸 모르고 있어.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아니라면, 고용인끼리는 서로 감싸주는 법이란다. 더구나 주인을 속이려고 할 때는 말이다."
어렴풋한 광명이 비치기 시작했다.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예요?"
"아직도 모르겠니? 이다지도 아둔한 자식을 두었다니!"
"혹시 제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어머니는 그 두 사람 얘기를 하고 계시는 거죠? 고용인 바질로와 엘리베이터 걸인 새디 말예요."
"천재로군! 이야말로 아인슈타인 박사야! 물론 그 두 사람이지. 너 자신이 말하지 않았니, 엘리베이터 걸이 무척 친절하고 싹싹하며, 손님들의 시중을 잘 든다고. 그런데 용의자 2호가 돌아가고, 용의자 3호가 엘리베이터로 5층을 올라가기까지의 사이에, 20분이라는 시간이 있잖니. 그 20분 동안 고용인과 엘리베이터 걸은 텔레비젼의 권투경기 얘기를 하고 있었지. 몹시 참혹하고, 챔피언이 비참한 패배를 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알고 싶은..."
나는 뜻하지 않게 큰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바질로가 하룻밤 내내 프론트에 있었다면 경기가 참혹했는지 알 턱이 없지 - 로비에는 텔레비젼도 라디오도 없었다면서. 어머니는 그 말씀을 하시는 거죠? 톰 모나한이 돌아가고, 아티 펠로우즈가 올 때까지의 사이에 바질로는 프론트에서 벗어나 엘리베이터로 5층에 가서 더글라스 양을 죽였다 - 죽이면서 방의 텔레비젼 경기를 봤다! 그동안에 새디는 아래층에서 프론트를 지키고 있었다, 그를 거들어준 셈이다, 워낙 그녀는 상냥하니까!"
나는 자신의 깨달음이 빠른 데 유쾌해졌으나, 어머니가 신음소리를 내며 한숨을 쉬는 바람에 놀랐다.
"상냥하다니 -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사람이 얼마만큼이나 상냥해질 수 있는 것인지 몰라? 살인자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줄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 있을까? 하기야 다른 이유로 프론트를 벗어났다면 기꺼이 거들어주겠지만 말이다. 살인을 거들어주는 것만은 제아무리 상냥한 사람이라도 거절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말투였잖아요. 다른 이유라니, 뭔가요?"
"그 이유는 네가 아까 가르쳐주지 않았니. 자신의 말까지 건성으로 지껄이고 있다니. 오늘 고용인을 심문했을 때 얘기를 했잖니. 네 시간이나 프론트에 서 있었다고, 10분 동안이나 불평을 이죽거리고 있었느니, 그리고 맥주 냄새를 풍기고 있었느니. 네 시간이나 프론트에 서 있었던 사람이, 부지배인이 줄창 순시하러 온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 맥주를 마시고 왔을까?"
이 질문은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한마디도 못 했다.
"그래서 아까 호텔의 환경을 물었던 거야."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내 짐작대로였지만 말이다. 모퉁이를 돌아선 데가 유흥가라고 했겠다, 그 양쪽에 나란히 술집이 늘어서 있잖니. 고용인은 거기로 맥주를 마시러 간 거야. 프론트를 벗어나 모퉁이를 돌아서 술집으로 달려갈 기회만 있으면 날마다 하는 짓이야. 어젯밤에도 그는 기회를 찾아냈지, 엘리베이터 걸과 지껄이고 있었다고 간주되는 시간에. 그녀가 그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준 것은 그가 해고당하면 가엾기 때문이지."
"매우 훌륭한 추리로군요, 어머님."하고 셜리가 말했다.
"하지만 그게 데이빗에게 도움이 될까요? 근무 중에 술을 마셨다고 해서 체포할 순 없잖아요."
"거, 친절하게 가르쳐줘서 고맙구나." 어머니는 셜리에게 얌전한 미소를 보냈다.
"하지만 그를 체포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데이비, 네 머리는 여태 생각나지 않는 거냐? 고용인이 술집으로 맥주를 마시러 가 있었다면, 그 사이에 엘리베이터 걸이 어디 있었는지 증언할 사람이 있어?"
"새디 말이죠? 그야 그녀는 로비에서 지껄이고..." 나는 뜻하지 않게 말을 끊었다. 드디어 진상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그렇지, 그렇지! 그녀가 바질로하고 주고받은 권투 경기 얘기! 대화란 둘이서 하는 것인데, 바질로에게 했던 질문이 그냥 새디에게 해당되는군. 그녀는 어떻게 그 시합이 참혹했고 챔피언이 참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텔레비젼에서 봤을 테지 - 블론드 아가씨의 방에서!"
"너도 이제야 인텔리다운 말투를 쓰게 됐구나."
어머니는 빈정거린 셈이었으나, 그 얼굴에는 어머니로서의 사랑이 떠올라 있었다.
"고용인이 술집에 가 있는 틈에 엘리베이터 걸은 5층으로 가서, 블론드네 방문을 두드려서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죽였던 거야. 자, 이제야 알겠구나, 블론드가 왜 루즈를 바르지 않았는지. 상대자가 엘리베이터 걸이면 어떤 몰골이던 상관없지 뭐냐."
"하지만, 동기는 뭘까요, 어머니? 새디의 동기는?"
"동기? 그거야 극히 간단하지. 아까 내가 잡역부 톰 모나한이 결혼을 했느냐고 물은 건 왜라고 생각하니? 잘생긴 독신 아일랜드계 청년과, 싹싹한 미혼 아일랜드계 아가씨와 - 그 두 사람 사이에 블론드 아가씨가 비집고 들어왔어. 내 생각으로는 이런 삼각관계가 살인이라는 결말을 낳은 것 같은데, 어떠냐?"
이리하여 나는 자신의 무능함에 관해서 몇 분 동안 개탄해야만 했다. 그동안 셜리는 그런 일에는 무관한 기색으로, 어머니의 승리에는 전혀 동요되지 않고, 질투도 느끼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수긍이 안 되는 점이 있기에, 나는 생각다 못해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바질로에 관해서 아리송한 점이 있어요. 그와 새디는 함께 그 경기를 텔레비젼에서 본 것처럼 지껄이고 있거든요. 새디는 어디서 봤는지 알았지요, 블론드네 방이죠. 헌데, 바질로는 어디서 봤을까요 - 블론드네 방에 가지 않았다면?"
"데이비, 데이비, 내 귀여운 아가야!" 어머니는 애처로운 듯한 미소를 떠올렸다.
"어느새 잊어버렸구나. 바질로가 그 20분 동안 어디에 가 있었는지.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잖니. 소문에 들으니 요즘 술집은 - 나도 그런 데는 질색이다만 - 맥주 한잔 마시는 데도 그걸 감내해야 한다더구나."
"텔레비젼 말이죠!"하고 나는 외쳤다. 그리고 뛰어오르듯 일어섰다.
"어머니, 어머니는 훌륭해요! 당장 수사본부로 전화해서 경감에게 말해야지!"
그러나 어머니의 단호한 음성이 나를 도로 의자에다 주저앉혔다.
"어디에 전화를 하건, 누구에게 말을 하건 간에 완두콩을 다 먹기 전엔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