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내기한다
어머니는 내기한다
제임스 야메
뉴욕 시경 강력계에 배속된 지 햇수로 5년이다. 늘상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언제 누군가 내 비밀을 알아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내가 해결한 어려운 사건들의 태반은 실인즉 나의 어머니가 식탁에 앉아서 풀이했다는 비밀을 - 사실상 그것은 어머니가 나에게 쓰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어머니 집의 냉장고를 한나절 걸려서 수리해야 해서 사람이 필요한 때라던지, 혼기에 있는 어머니의 질녀에게 젊은 경관을 소개시키라고 조를 때라던지, 아내 셜리와 언쟁하다 나에게 어머니의 편을 들게 하려고 할 때 같은 경우 어머니는 위협하는 말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마 모두들 너털웃음을 칠거야, 데이비. 강력계에서, 저번 시내 호텔에 세탁물을 넣는 통 속으로 떨어진 할머니의 신변에 생긴 사건을 네가 어떻게 풀어냈는지 누군가 알아낸다면 말이다 - "
지난 5년간, 나는 몇백 번이나 다시는 사건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하지 않으리라고 작심했었다. 그리고는 몇백 번이나 어머니가 구운 향기로운 통닭구이와 개구장이 시절로 끌어내리는 어머니의 눈길 앞에서, 별수 없이 나는 그 작심을 깨뜨려 오곤 했다.
"어디 그뿐이겠니?"하고 어머니는 내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채자, 재빨리 이렇게 덧붙이기를 잊지 않는다.
"넌들 슬러터리 경감님이 등이라도 쳐주며, '자넨 셜록 홈즈의 달걀일세그려' 해주면 노상 언짢은 기분은 안 들겠지, 그렇지?"
이것이 어머니의 놀라운 점이다. 상대편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가를 얄미울 정도로 훤히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다소 정도가 지나치는 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지난주 금요일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셜리와 나는 통례대로 브롱크스의 어머니 집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받았다. 어머니는 우리가 레버 크로킷을 들기 시작하자, 드디어 언제나처럼 질문을 내놓았다.
"얘, 데이비, 요즘 직무는 어떠냐?"
"별로 재미있는 사건은 없어요, 어머니. 현재의 사건은 극히 간단한 게 돼서요. 살인범은 알고 있으니, 유죄판결이 난 거나 같아요."
"그런데 너는 왜 그런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니?"
"글쎄요, 바른대로 말하자면, 어머니, 이번 사건은 좀 마음에 걸려요. 뒷맛이 개운치가 않구요. 다시 말하자면, 살인범을 체포했을 때는 기분이 좋은 법이거든요. 시궁창의 쥐를 한마리 처치했다는 기분이죠. 그런데 어제 체포한 살인범은 무척 점잖은 신사여서..."
"감상주의예요, 순전히 감상주의예요." 하고 셜리가 참견을 하며 언제나처럼 애처로운 듯한 한숨을 쉬었다. 셜리는 밧서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재원이니까 나는 그녀의 연민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몇 번 말하면 알아들으세요, 데이빗. 슬러터리 경감이 만족하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단지 마음에 걸린다는 감상주의 때문에 사소한 일에 코를 처박아선 안 된다니까요. 이 세상에서 출세하려면 그렇게 마음이 약해선 안 되거든요."
"그렇고 말고."하고 어머니는 셜리에게 부드러운 웃음을 보냈다.
"사람이 코를 처박아서야 되나. 그건, 이 어미가 하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가르쳐온 것이지."
"사건 얘기를 할께요, 어머니." 하고 나는 황급히 말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레버 크로킷은 평화와 우호의 분위기 속에서 맛봐야 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 사건에 대한 어머니의 호기심은 며느리의 비난으로부터 나를 옹호하려는 생각보다 강렬했다. 그래서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유흥가의 식당에서..."하고 나는 얘기하기 시작했다.
"클룸홀츠 그롯토라는 유명한 집인데요, 저명인사나 연예인이나 스포츠 관계자들이 뻔질나게 다니죠. 밤에는 언제나 만원이지만, 낮엔 비교적 한가해요. 헌데 어제 점심때였어요. 연극 연출가인 드위트 글래디가 장인인 버틀렛 박사를 동반하고 이 클룸홀츠 그롯토를 찾아왔어요. 버틀렛 박사는 유명한 외과 의사인데 지금은 은거하고 있지요. 글래디는 그롯토의 단골손님 중 하나였어요. 한 주일에 서너 번은 다니고 있으니까 가게 사람들과는 낯익은 터였는데 다들 꺼리고 있었어요. 온갖 보고를 종합해 보면 몹시 방자하고 심술궂고 당돌한 사내였나 봐요. 올 적마다 잔소리를 하고 거들먹거려서 주체하기 곤란한 손님이었대요."
"그건 연예인의 일반적인 성격이에요." 하고 셜리가 말했다.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면 대체로 연예인은..."
"얘야, 좀 가르쳐 주려무나." 하고 어머니가 셜리에게 말했다.
"여태까지 누군지 탁상공론, 인간의 탁상공론에 대해 연구를 한 사람 없니?"
"그게 무슨 뜻이죠, 어머님?"하고 셜리가 말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거예요?"
"글래디가 유난히 희롱하는 사람은..."하고 나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그롯토의 웨이터인 어빙이라는 작달막한 노인이었어요. 그 어빙은 클룸홀츠에선 30년이나 되는 고참인만큼 누구나 알고 있으며, 다들 그를 친밀하게 대했어요. 싹싹한 노인으로 손님에게 다정하게 병의 차도나 어린애의 건강을 묻기도 하고, 손님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도 일일이 외우고 있었대요. 글래디가 사사건건 어빙을 희롱한 까닭이 그런데 있나 봐요. 어떻든 글래디는 그롯토에 올 적마다 어빙을 비참하게 만들었지요. 마구 큰소리로 주문을 하고, 욕설을 퍼붓고, 비꼬는 농담을 던지구요. 노인을 비웃고 모욕하고, 때로는 팁을 안 주고 가는 일까지 있었대요. 어제 오후에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글래디는 장인인 버틀렛 박사를 데리고 와서 어빙이 담당한 테이블에 앉자, 재빨리 시작했겠죠. '영감, 그 발로 이렇게 멀리까지 올 수 있겠소?' 하고 이죽거리며 어빙을 불렀어요. 그리고는 먼저 생굴을 주문하고 겨자를 가지고 인색 떨지 말라고 짓궂은 수작을 하더래요. 클룸홀츠 그롯토는 겨자가 명물이거든요. '최고로 매운 겨자'라는 게 가게 간판의 하나일 정도죠. 그래서 글래디는 간판거리 겨자로 인색을 떨어 손님을 속이지 말라고 어빙에게 짓궂게 수작을 거는 게 즐거움의 하나였어요. 굴이 나오자, 이번에는 버틀렛 박사와 자기 앞으로 누들수프를 주문했어요. 그는 자기 것에는 절대로 소금을 넣지 말라고 어빙에게 엄중히 당부하더랍니다. '지난주에 의사한테 갔더니, 염분을 섭취하면 속이 몹시 쓰려온다더군.' 하면서 잔소리처럼 어빙에게 다짐하더래요. 어빙은 손님의 수프에는 절대로 소금을 넣지 않겠다고 했으나, 글래디는 '당신은 신용할 수가 없어. 필시 요리사한테 잊어먹고 말을 안 할 테지. 기억력이 아둔해졌어, 영감은.' 하더니 가게 주인인 클룸홀츠를 일부러 불러 어빙이 내오는 수프를 잘 조사해서 정말로 소금이 들어있지 않은지 확인하라고 당부하더래요. 이게 저 가엾은 어빙 노인에게 얼마나 모욕인지 아시겠지요. 그러나 말없이 어빙은 주방으로 누들 수프를 가지러 갔겠죠. 그의 등에다 글래디가 퍼부었어요. '여보 영감, 명심하라구. 수프 속에다 엄지손가락을 처넣으면 안돼!' 하구요."
"그 글래디라는 사내는..."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너희 아버지의 사촌하고 영락없이 닮았구나."
그걸 듣자, 셜리는 소리내어 웃었다.
"정말이지 어머님, 세상 사람들이 온통 어머님이 아시는 누군가와 닮았다는 건 재미있네요."
"그만큼 여러 사람을 알고 있는 셈이지." 하고 어머니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꾸했다.
"내 인간에 관한 지식은 말이다, 책 따위를 읽는 것과는 좀 다르니까. 실제로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과 곁에서 쓸데없이 참견을 하는 사람과의 차이와 같지."
"마저 얘기하겠는데요..." 하고 나는 말했다.
"어빙은 주방에 가서 요리사인 루이에게 누들 수프를 2인분 시켰는데 하나는 소금을 절대로 넣지 말도록 몇 번이나 다짐을 주었겠죠. 그래서 루이는 한 수프 접시에는 큰 냄비에서 소금기가 있는, 담기만 하면 되는 수프를 따랐어요. 그리고 또 한 접시에는 소금기 없이 특별히 조리한 수프를 따랐구요. 그리하여 두 수프 접시는 어빙의 쟁반에 얹혀졌어요. 어빙은 그걸 가지고 주방을 나왔지요. 주방에서 식당으로 통하는 여닫이 문 앞에 클룸홀츠가 서 있더래요. 글래디는 큰 단골이었기 때문에 그의 당부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클룸홀츠는 어빙을 불러 세운 다음 글래디의 수프를 한 숟가락 떠서 맛봤어요. 소금기가 들어있지 않은지 살펴보기 위해서였죠. 이건 중요한 대목이니까, 어머니, 잘 기억해 두세요. 클룸홀츠는 글래디의 수프를 실제로 마셨거든요. 수프의 맛은 최고인 데다, 소금기는 전혀 없더랍니다. 그래서 클룸홀츠는 어빙더러 가져가라고 일렀어요. 어빙은 시키는 대로 했지요. 식당을 가로질러, 곧장 글래디의 탁자로 음식을 날랐어요. 쟁반 위에는 다른 손님이 주문한 음식도 얹혀 있었답니다. 맥주 두 병과 크림을 수북히 얹은 클룸홀츠 특제인 복숭아 샌디와 과일 파이. 하지만 그는 맨 먼저 글래디의 탁자로 갔어요. 가엾은 어빙은 그만큼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는 떨면서 수프 접시를 글래디와 버틀렛 박사 앞에다 놓았죠. 글래디는 한 숟가락 떠서 마셔보고, 약간 혀를 차더니, '그저 그렇군' 하더래요. 허나 그 이상 먹을 수는 없었지요. 느닷없이 무서운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덜컹 바닥에 쓰러졌으니까요. 다들 뛰어들었을 때는 이미 끝장이 나 있었어요. 검시관은 그의 위 속에서 청산가리를 검출했지요. 누들 수프 속에는 앞으로도 연극연출가를 스무 명은 더 죽일만한 분량이 들어 있었어요. 아시겠어요, 어머니. 주방에는 청산가리 병이 있었어요. 요리사인 루이가 쥐를 잡으려고 사놓았던 거예요. 선반의 자물쇠는 채워져 있었지만, 열쇠는 가게종업원이면 누구나 손이 닿는 데 있었지요. 그러니까 보통 때라면, 용의자는 수없이 많을 테니, 사건이 미궁에 빠질 뻔 했지요. 헌데, 약간의행운이 베풀어진 거죠. 글래디의 수프가 운반되기 직전에 클룸홀츠가 맛을 봤다는 사실 말예요. 한 숟가락 떠서 마셨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독은 수프가 주방에서 나온 다음에, 그리고 글래디에게 운반되기 전에 넣어진 셈이지요. 그동안에 수프에다 독을 넣을 기회가 있었던 사람은 단지 한 사람 - 웨이터인 어빙밖에."
얘기가 일단락되자, 나는 제풀에 잔 한숨을 쉬었다.
"너 혼자만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없는 셈이로구나."하고 어머니는 유별나게 상냥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동기에 관해서 마음에 걸리거든요, 어머니. 수프 속에다 엄지손가락을 넣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다고 해서, 살인을 할 생각이 들까요? 직업상의 체면 문제라 할지라도 살인까지 한다는 건 지나친 짓 같아요. 게다가 그 어빙은 복수를 할 만한 타입이 아니에요. 그렇게 온화한 호인은 본 적이 없으니까요. 서에서 그의 지문을 뜨는데 고역을 치렀어요. 잉크 속에다 손가락을 넣는 건 괜찮지만, 주임의 와이셔츠 소매를 더럽히지나 않나 하고 신경을 쓰더라니까요."
나는 입을 다물고 머리를 저었다. 나 자신이 노여웠기 때문이요, 셜리의 얼굴에 떠올랐던 표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게 도대체 어떻다는 거냐 - 사람을 죽였으니 벌을 받으려는 것인데. 그저 그 뿐이지 뭐!"
어머니는 애정과 야유와의 중간쯤 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한숨을 쉬었다.
"데이비, 데이비, 너는 어쩜 그리 마음이 양순하고 동정심이 많으냐. 그렇지만, 넌 모르겠니? 가엾다는 생각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가엾다는 생각만으로는 그 노인을 전기의자에서 구해낼 수가 없단 말이야. 가엾다는 것만으로는, 누가 수프에다 탄산가리를 넣었는지 알 수가 없지."
"청산가리예요, 어머님."하고 셜리가 말했다. 어머니가 이따금 저지르는 영어의 오용을 지적하는 것이 셜리의 삶의 보람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렸다. 나 자신은 전혀 느끼지 못하게 돼버렸지만, 33년 동안 어머니와 접촉하고 있는 사이에 나의 머리는 자동적으로 '탄산'을 '청산'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그러나 셜리는 그렇게는 안 된다.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밧서의 교육이란 이런 일밖에 쓸모가 없는 것일까?
"청산이란 말예요." 하고 그녀는 되풀이했다.
"푸를 청자 청산 - "
"알았다, 알았다. 셜리!"하고 어머니는 닭뼈를 짐짓 느릿느릿 휘저었다.
"너는 받아쓰기 대회에 나가면 충분히 일등할 수 있을 거야." 하고는 내 쪽으로 다시 향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어떤 경우든지 친절한 마음보다는 머리야. 네 머리는 어떠냐, 데이비. 강력계에선 총이나 뱃지와 함께 판단력도 주는 거 아니냐?"
"어빙 노인에겐 판단력도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머니. 워낙 흑백이 분명해서..."
"그럼, 더 분명하게 하는 게 어떠냐? 이를테면 더 중요한 점을 얘기하는 걸 잊고 있잖니. 필시 어리둥절했던가 보지, 이야긴 하려고 했지만 - "
"중요한 점이란 뭐예요, 어머니. 중요한 사실은 모두 얘기했을 텐데요."
"동기에 관해서 얘기했던가. 안됐지만, 듣지 못했단다. 요즘 나이 탓으로 귀가 어두워졌는지 - "
"저, 어빙의 동기에 관해서 납득할 수 없다고 했어요, 어머니."
"어빙의 동기? 다른 사람들의 동기는 어때? 글래디를 죽이면 장인한테 돈이 생기는 거 아니냐? 요리사 루이는 어떻구? 글래디가 그가 만든 요리를 트집 잡았기 때문에 원망하고 있다던지 그런 점은 어떠냐?"
어머니를 공격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 더할 수 없는 기쁨이다. 그러나 기회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찾아온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아니, 아니, 어머니, 저희들 우매한 경찰관도 그 점에 있어서는 어머니보다 좀 앞선 모양인데요."
나는 가슴을 펴고 가장 직업적인 승리의 미소를 띄운다.
"버틀렛 박사가 돈이 욕심나서 글래디를 죽이는 따위의 일은 있을 수 없지요. 글래디에게 돈 따위는 없었으니까요. 그는 파산 직전이었어요. 최근에 제작한 쇼가 셋 다 실패해서, 말짱 겉치레뿐인 생활을 하고 있었던 셈이죠. 그에 반해서 버틀렛 박사는 큰 부자로서 파크 애비뉴에 옥상 저택을 갖고 있을 정도지요. 그리고 루이가 요리 트집을 잡혀서 글래디를 죽이는 일은 있을 수 없어요. 그 식당에서 글래디가 욕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루이니까요. 루이는 그의 단골로서 매달 많은 팁을 받고 있었으며, 파티를 열 때는 요리를 맡았지요. 그러니까 어머니의 추리는 이번엔 약간 빗나갔군요."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통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크게 끄덕거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렇구나, 바로 내가 생각한 대로야. 또 한 가지, 잘 들어봐라. 그날 글래디가 - 이건 중요한 일이니까 신중하게 생각해다오. 글래디가 말이다. 잘 들어보렴, 누들수프 다음으로 주문한 건 뭐였지?"
"그게 어떻다는 거예요, 어머니?"
"누들수프 다음으로, 뭘 주문했어? 이렇게 간단한 영어를 모르겠니?"
"수프 다음으로 주문한 것이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가르쳐 주셨으면 해요, 어머니. 어떻거나 그는 먹지 못했으니까. 독이 들어있던 것은 누들수프로써..."
어머니는 넌지시 미소를 머금었다.
"흥미가 있다. 어떤 관계가 있는지. 머리가 모자라는 늙은이를 동정해서 제발 대답해 주려무나."
"알았어요, 알았어요, 어머니." 하면서도 나는 내심 이렇게 생각했다.
여자란 누구나 매일반이야. 살인사건의 북새통에도 요리나 가사에 관한 부질없는 일에 신경을 쓰다니 -
"으음,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빙의 주문 전표에는 분명히 클룸홀츠 특제인 3중 피너클 샌드위치라고 적혀 있었어요."
"거, 각별히 중요한 단서로구나."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셜리는 한숨을 쉬고, 다시금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어머니는 그에 대해서 빙그레 웃을 뿐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점인데 말이다. 어빙은 상당한 나이잖니. 그 중노동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었을까? 때로는, 가령 주문을 뒤바꾸는 일은 없었을까? 음식들을 들고 다니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자, 대답해 주렴."
"그게 중요한 문제인가요, 어머니?"
"경찰관이나 궤변가에겐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머니는 씩 웃었다.
"그렇지만 세상의 일반 상식을 갖춘 사람에게는 무척 중요하지."
"분부대로 대답해 드리겠어요, 어머니. 과연 어머니의 추측대로예요. 어빙에게는 그 일이 벅찼어요. 그게 이 사건에서 가장 동정할 점이죠. 그 가엾은 노인은 웨이터 노릇을 하기에는 나이를 너무 먹었었죠. 그는 한손으로 무거운 쟁반을 머리 위로 치켜드는 따위의 재간은 부릴 수 없었어요. 따라서 붐빌 때 사람 사이를 비집고 쟁반을 운반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거예요. 그래서 가게 주인 클룸홀츠는 이달 말에 그를 놀라게 할 제안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많은 퇴직금과 연금을 붙여서 노인을 퇴직시킬 작정이었죠. 그러니까 어머니, 만일 가엾은 어빙이 앞으로 2, 3주 동안만 견디었던들 그는 다시금 글래디의 모욕을 받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머리를 저었다.
"가엾은 사건이지 뭐예요, 어머니. 정말이지 가엾은 사건이예요."
어머니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래, 가엾은 사건이지. 가엾디 가여운 사건이야."
어머니가 나를 놀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윽고 어머니는 머리를 우뚝 젖히고 경멸에 찬 신음소리를 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가 승리자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 중의 하나다.
"가엾다고? 비극이로구나. 장례식이라도 치르고 싶을 정도야. 어빙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 코끝도 못 보는 강력계를 위해서. 나는 어빙의 일은 걱정 안 한다. 내일이라도 유치장에서 나올 수 있을 테니까 - "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어빙을 위해서는 아무도, 무슨 일도 해줄 수 없어요. 어떻든 그는..."
"나라면 어떻게 해줄 수 있단다. 그가 살인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면 되지 않니. 진범이 누군지 너에게 가르쳐주면 - "
"설마하니, 그럴 수가..."
어머니는 턱을 번쩍 들고, 엄한 얼굴을 했다.
"그럼, 너 무슨 내기를 할 테냐? 내 침실의 벽지를 새로 도배하고 싶은데, 만일 내가 가르쳐 준다면 너, 일요일에 와서 도배해줄 테냐?"
"하지만 어머니, 일요일에는 셜리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기로 약속되어 있어요. 일요일은 셜리가 나를 문화에 접하도록 해주는 날이니까요."
"문화는 기다려준다. 만일 진범을 가르쳐주면, 내 벽지를 갈아줄 테냐?"
내가 잠깐 망설이고 있을 때, 셜리가 참견했다.
"내기를 해요, 데이빗. 설마 지진 않겠죠."
나는 풀이 죽어 고개만 끄덕거렸다.
"네, 좋아요, 어머니. 내기를 하겠어요."
어머니는 테이블 너머로 손을 내밀어 나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의자 등에 기대어 앉아, 회심의 웃음을 비쳤다.
"그럼, 수수께끼를 풀자꾸나. 맨 먼저 어빙이 독살자일 수 없는 증거를 보여주마. 이건 말이다, 아까 얘기한 세 번째 중요한 점인데, 어빙은 늙은이라고, 너 말했겠다. 웨이터 노릇을 만족하게 못했다고 했겠다. 더구나 무거운 쟁반을 한손으로는 들지 못하고, 양손을 써야 한다고, 분명히 그렇게 말했겠다. 좋아, 그럼 어제 낮에, 누들수프를 글래디에게 운반했을 때, 그가 들고 있던 쟁반은 무거웠었나, 가벼웠었나? 무거웠다고 너 자신 말했잖니. 누들수프를 두 접시 얹은 데다가, 맥주 두 병과 클룸홀츠 특제인 복숭아 샌디와 과일파이가 얹혀 있었다고. 무거울 뿐만 아니라, 병이니 수프 접시니 엎지르거나 자빠질 물건이 얹혀 있었겠다, 어빙 같은 사람은, 글래디에게 조롱당할만한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애썼을 테지. 그러했으니 어빙은 그 쟁반을 어차피 양손으로 들어야 했을 테지. 그리고 만일 양손으로 쟁반을 들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그가 수프에다 독약을 넣기는 불가능하지!"
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렴. 난 행복하구나, 머리 좋은 아들을 둬서 - 생각하는 건 어머니 쪽이지만."
나는 눈썹을 모으고, 어머니의 말을 검토했다. 그리고 머리를 젖혔다.
"그렇지만 어머니, 그건 이상해요. 어빙이 독약을 넣지 않았으면, 누가 넣었죠? 어빙이 쟁반을 테이블로 운반하는 사이에 수프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글래디 앞에다 놓은 다음에도 물론 아무도 독을 넣을 겨를이라고는 없었지요. 글래디는 곧 손을 댔으니까요."
"그럼, 수프가 주방을 나서기 전엔?"
"그건 더욱 불가능해요, 어머니. 왜냐하면 클룸홀츠가 주방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맛을 보았으니까 - "
"그랬었지." 하고 어머니는 손가락 하나를 의미 있는 태도로 올렸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는지도 몰라."
어머니는 웃음을 흘깃 우리에게 던졌는데, 혼자서 희열에 잠겨있는 듯했다.
"이것이 또 중요한 점인데, 글래디가 누들수프 다음으로 주문한 건 뭐였지? 아까 물었었지. 클룸홀츠 특제인 3중 피너클 샌드위치였다고 네가 그랬겠다. 그래서 좀 묻겠는데, 데이비, 이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니?"
"그렇군요. 그런 걸 먹는 녀석은 괴짜라고 생각해요. 놀랄 일은 아니지만 - "
"데이비, 데이비. 글래디는 염분을 섭취하면 몹시 속이 쓰려온다고 의사가 일러줬으니, 수프에는 절대로 소금을 넣지 말라고 어빙에게 일렀잖니. 그랬는데 다음으로는 3중 피너클 샌드위치를 주문하다니 - 유별나게 짠 것만 들어있는데 말이야. 그런 샌드위치는 소금덩어리나 같아!"
"아, 어머니가 말하려는 뜻은 알겠어요. 정말 이상하군요. 헌데 왜..."
"그 대답은 단 하나, 글래디는 거짓말을 했던 거야. 속이 쓰리니까 소금을 치지 말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지. 사실은 요리사인 루이가 그의 몫으로 별난 특제 수프를 만들어줬는지 어떤지, 버틀렛 박사 몫으로 다른 수프를 만들어줬는지 어떤지, 어빙이 수프를 섞어 바꿔, 버틀렛 박사의 수프를 자기에게 주고, 자기의 수프를 버틀렛 박사에게 주거나 하진 않을는지 확인하기 위한 핑계였던 거야. 절대로 착오가 생기지 않도록 확인하기 위하여, 소금기 뺀 수프를 달라고 거짓말한 거야."
"헌데, 왜 그랬을까요, 어머니. 어째서 글래디는 어느 쪽 수프가 누구에게 주어지느냐 따위에 신경을 써야 했을까요?"
"왜냐하면 말이다, 데이비. 요리사 루이가 '탄산가리'를 넣은 수프를, 잘못 알고 마시거나 하지 않으려고 그랬던 거야."
이 순간 나의 당황함은 대단했다. 나는 다만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냥 오랫동안 어머니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었나보다. 잠시 있다가 가까스로 정신이 들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려는 거예요? 글래디와 루이가 - "
" - 버틀렛 박사의 독살을 기도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가 뒤를 가로채어 말했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니야.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지. 버틀렛 박사에겐 글래디를 죽일 동기는 없어. 하지만 글래디가 버틀렛 박사를 죽일 동기는 있었던 거야! 글래디는 파산 직전의 곤경에 처해 있었고, 버틀렛 박사는 파크애비뉴에다 저택을 지니고 있는 부자거든. 버틀렛 박사가 죽으면, 딸인 글래디 부인은 마땅히 파크애비뉴의 저택을 포함한 전 재산을 상속받게 되지. 그렇게 되면, 글래디는 더욱 더 그의 파산을 면할 수 있지 않겠니. 이건 영락없는 동기지 뭐냐. 그리고 또 하나, 이 살인의 공범은 누굴까? 먼저 그 수프를 만든 건 누구며, 독약이 목적한 수프에 들어갈 것을 완전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 누구야? 글래디에게 팁을 두둑이 받고, 파티 때 불려가 요리를 맡아서 한 사람은 누구지? 쥐를 잡는 약을 쉽사리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니? 요리사 루이지 - 그밖에 또 누가 있어?"
"그래요, 어머니, 그대로예요. 그 사람만이..." 하다가 나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어머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루이를 유죄로 만들 수는 없지요. 먼저 첫째로, 독이 들어있었던 것은 버틀렛 박사의 수프 - 즉 소금이 든 쪽의 수프가 아니라, 글래디의 수프 - 즉, 소금이 안 든 수프였잖아요. 둘째로, 클룸홀츠 자신이 그 수프의 맛을 봤거든요."
"그 문제의 답은 하나야."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뭔가요, 어머니. 저는 짐작이 안 가는데요."
"그래, 뭐더라? 아까 말했잖니. 글래디란 사내는 아버지의 사촌누이와 꼭 닮았다고. 자세히 얘기하면 사촌누나 새디 슈왈츠란다."
"그녀에게 누가 독을 먹였나요, 어머니?"
"아니다, 독이야 먹이지 않았지. 두 사람의 유사점은 엄밀히 말하면 인격적인 문제야. 살인사건은 인생에 있어서의 특수한 부분인지도 몰라. 아니, 다른 일상의 다반사와 같은 문제야. 근본은 사람의 성격, 뭐든지 근본은 그것이란다. 아버지의 사촌누나인 새디 슈왈츠라는 사람만큼 남을 약 오르게 하는 사람은 없었단다. 몹시 비틀린 사람이었지. 그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란 없었어. 허구 헌 날 투덜대는 거야. 집안사람들은 참다 못하면 맞받아치곤 했지. 바로 나만 하더라도 - 평소에는 완전한 숙녀인 나만 하더라도. 한 번은 ...아니, 그런 건 상관없는 얘기지. 문제는 말이다, 그녀에게 맞받아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가엾은 희생자들이야, 그녀에게 얹혀 지내는 사람이나, 돈은 지불받아야 할 사람이나, 물건을 팔아야 하는 사람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런 사람들은 새디에게 어떤 복수를 했는지 아니? 얘야, 데이비, 이게 인생의 실체라는 거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지 않니. 하지만 지렁이는 지렁이다운 짓밖에 못하는 법이거든. 사람이 하는 짓 따위는 못 해요. 땅바닥 밑에서 아주 조그마한 저항을 하니까, 겉으로만 보면 여간해선 눈에 안 띄지. 지렁이가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는 그녀석의 머리를 꿰뚫을만한 대단한 짓은 못 해. 더 은밀한 그늘에서 숨은 앙갚음을 하는 거야. 때에 따라서는, 머리를 꿰뚫는 것보다 질이 나쁜 것도 나오지. 사촌 새디 모양으로..."
"어머니, 어서 요점을 말해주세요!"
"사촌누나 새디와 배관공 모양으로..." 하고 어머니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되풀이했다.
"새디로 말하면, 오랫동안 배관공의 신경을 괴롭혀 왔던 거야. 그 사람 같은 음성으로 소리치면, 신부 같은 사람이라도 신경이 뒤틀리지. 새디가 배관공에게 하수관의 수리를 잘못했다고 소리쳤을 때, 배관공은 어떻게 했을 것 같니? 망치로 그녀의 머리를 때려 부쉈을 것 같아? 그런 짓은 안 했단다. 그는 은밀한 복수를 한 거야. 웃는 낯으로 굽신거리며, 이렇게 말했겠지. '네, 네, 아주머니, 그럼 다시 수리시켜 주십쇼.' 그리고 그는 수리하지 않았겠니. 어떻든 그 이후로, 하수관은 밤 12시가 되면 덜컹덜컹 울려대기 시작하는 거야. 꼬박 한 시간은 울려대는 거야. 하지만 아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어. 두 달 동안 새디는 한시가 넘도록 잠을 못잤어요."
"어머니!" 하는 내 음성을 다소 거칠었다.
"그게 살인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죠?"
"그 글래디라는 사내는..."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사촌누이 새디와 비슷하거든. 그리고 어빙은 그 배관공. 어빙 영감은 글래디의 모욕을 참지 못하겠다고 해서 화려한 복수를 할까? 아니, 못해요. 은밀한 앙갚음을 할 테지. 확실히 처량한 영감이지만, 앙갚음도 못 할 정도로 노망들진 않았거든. 글래디가 어빙에게 자기 수프에는 소금을 넣지 말라고 했고, 소금기를 먹으면 몹시 속이 쓰리다고 했어. 그래, 어빙은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과연, 희한한 소리를 들었는걸. 너는 나에게 수프에 엄지손가락을 넣지 말라고 이죽거렸지? 그럼 나는 네 속이 뒤틀리게 해 주겠다 - "
"알았어, 어머니, 알았어요!" 하고 나는 외쳤다.
"요리사 루이는 큰 냄비에서 따른 버틀렛 박사의 수프에다 독약을 친 거죠. 클룸홀츠가 주방 어귀에서 맛본 수프는 버틀렛 박사의 수프가 아니라 루이가 특별히 만든 수프, 즉 글래디의 수프였죠. 그래서 당연히 클룸홀츠는 무사했구요. 그러나 어빙이 수프를 두 사람 앞에 놓을 때 바뀌어버린 거죠. 글래디에게 갈 수프를 버틀렛 박사 앞으로, 버틀렛 박사에게 갈 수프를 글래디 앞으로. 독이 들어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글래디에게 복통을 일으켜줄 생각으로, 그래서 모르는 새에 그를 죽여 버린 거죠!"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됐다, 됐어, 데이비. 나라도 그렇게 유창하게는 지껄이지 못할 걸. 그래, 잊어선 안 된다, 일요일엔 반드시 벽지를 바르러 와야지."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어머님."하고 셜리가 말했다.
"납득할 수 없는 점이 있어요. 어머님의 추리를 깡그리 무너뜨릴 만한 조그만 구멍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아, 그래?"
어머니는 머리를 내밀어 여유 있는 호기심을 나타냈다.
"어머님의 추리는 온통 그 영감이 - 어빙이라던가요? 두 개의 수프 접시를 뒤바꿨기 때문에, 살인을 꾀한 쪽이 독이 든 수프를 마셔 버렸다는 가설에 의한 것 같은데요. 그렇죠?"
어머니는 끄덕거렸다.
"그렇지만, 어머님." 하는 셜리의 깍듯이 공손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그 눈이 기대에 반짝이고 있는 것을 나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빙은 그 계획을 어떻게 해낼 작정이었을까요? 그는 사전에 몰랐을까요? 몰랐다면 오히려 이상하지만. 희생자는 수프를 한 모금 먹어보고 소금기가 있다고 깨달으면, 두 번째는 안 먹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속앓이 따위는 일어날 리 없고, 어빙은 자기 신상에 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겠어요? 자, 어머님, 이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어머니는 양팔을 끼고, 자신만만한 웃음을 셜리에게 보냈다.
"설명해 주마, 셜리, 단 한마디로. 겨자, 글래디는 수프에 앞서 겨자가 든 생굴을 금방 먹은 참이었잖니. 클룸홀츠의 명물인 겨자, 간판에 어긋남이 없는 뉴욕에서 가장 매운 겨자야. 그래서 어빙은, 글래디가 수프에 소금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 턱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거야. 뉴욕에서 제일 매운 겨자를 먹은 다음이니, 맛을 알 까닭이 없는 거야."
셜리는 쓰디쓴 얼굴을 하고 물러앉았고, 어머니는 의젓하게 내 쪽으로 돌아앉았다.
"일요일 아침이야, 데이비, 잊지 말려무나."
"그런 우스꽝스러운 내기를, 설마 진정으로 그러시는 건 아니겠죠, 어머님."
셜리는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얼버무리려 했다.
"데이빗의 교양을 높일 기회를 방해하실 생각이야 아니실 테죠."
"일찍 오려무나."
어머니는 셜리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마음이 놓인 터였다. 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말하면, 발에 물집을 만들기에 고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