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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기도한다

Bollnow 2024. 4. 19. 07:45

어머니는 기도한다

제임스 야메

 

일 년에 한 번은 금요일 외에도 어머니 집에 가게 되어 있다. 1218일이 어머니의 생일인 것이다.

이날 저녁은, 또 한 가지 굳게 지켜지고 있는 습관이 있다. 어머니는 저녁 식사 준비를 일체 안 하는 것이다. 셜리가 요리를 만들고 내가 접시를 닦는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전화로 새로운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어머니는 안락의자에서 쉬기는 했지만 셜리에 대해 마땅치 않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너 어디서 요리를 배웠니? 요즘 젊은 아가씨들이 받은 교육으로 말하자면, 달걀 찌는 법만 알아도 스스로 일류 요리사라는 생각을 한단 말이야."

그리고 셜리가 웰즈레이 여자대학에서 공부한 가정학 이야기를 꺼내면, 어머니는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또 웰즈레이 얘기로구나! 그럼 묻겠는데, 웰즈레이에선 생선조림을 어떤 식으로 만들도록 배웠지?"

나의 접시 닦는 솜씨에 관해서도, 어머니의 의견은 마찬가지로 엄격했다. 그러나 셜리와 나는 고집으로라도 남에게 지지 않으므로, 마지막에는 어머니의 항의를 퇴각시킨다. 그리하여 마침내 즐거운 생일파티가 시작되는 것이다. 금년 축하에는 한 사람의 손님이 참석했다. 밀너 경감을 데리고 갔던 것이다. 밀너 경감은 나의 상사로서, 강력계 내에서는 가장 어머니의 파트너로서 알맞은 독신자다. 오십 대로 몸집이 작고 다부진 체격이며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네모진 하관, 그리고 미묘하리만큼 애수를 띈 눈매는 특히 그와 같은 연령의 모성적인 부인에게는 견딜 수 없는, 감동적인 매력을 느끼게 한다. 현재 셜리와 나는 밀너 경감과 어머니 사이를 넌지시 접근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터이다.

어머니는 그를 환영했다. 등을 두드리며, 경찰관에 관한 온갖 농담을 시작했다. 경감은 수줍은 웃음을 짓고, 자신의 쑥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즐거워했다. 그리하여 식사가 중반전으로 접어들 무렵, 어머니는 갑자기 날카로운 눈길을 흘깃 그에게 보냈다.

"왜 영계의 허벅지를 잡숴 버리지 않으세요? 맛있는 닭이어요 - 음식 만드는 솜씨로가 아니라, 가정학의 이론으로 만든 요리치고는 말예요.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세요?"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밀너 경감은 웃음을 띄웠다.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시는군요, 언제나 한결같이." 하고 그는 말했다.

"하긴 그렇답니다. 데이빗에게 얘기를 하도록 하죠."

"지금 다루고 있는 새로운 사건이에요, 어머니."하고 나는 말했다.

"어쩐지 기분이 울적한 일이라서."

"미궁에 빠졌니?" 하고, 어머니는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는 내가 맡은 사건엔 흥미진진하다. 그것은 한결같이 어머니가 그 신통한 재능으로, 나보다 먼저 사건을 해결해 버리기 때문이다.

"미궁에 빠진 게 아녜요." 하고 나는 말했다.

"살인사건이지만 범인은 알고 있어요. 이번 주말에는 체포할 수 있을 거예요." 하며 밀너 경감은 슬픈 듯한 긴 한숨을 쉬었다.

", 얘기하렴, 얘기하렴." 하고 어머니는 더욱 즐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죄다 얘기해서 가슴 속의 것을 시원하게 토해내려무나!"

나는 숨을 들이키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이 사건의 등장인물인 대학교수에 관해서 알아둬야 해요. 소위 전직 교수지만. 그의 이름은 푸트남 교수. 이미 오십을 넘었으며, 워싱턴 스퀘어 근방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방 세 칸 짜리 아파트에서 딸 조앤과 살고 있어요. 십 년 전에 푸트남은 시내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어요. 대단한 실력가로 여겨지고 있었대요. 그런데 부인이 죽자, 온통 풀이 죽었나 봐요. 날이면 날마다 방에 틀어박혀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뿐 강의에도 늦게 나오고 어느덧 전혀 나오지 않 게 됐어요. 학생의 논문도 읽지 않게 되고, 대학원 학생의 세미나에도 빠지게 되는 형편이었죠. 그래서 학장에게서 재삼 주의를 받고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훌륭한 업적이나, 불행을 당한 점 등을 참작해서 너그럽게 간주되고 있는 셈이었죠. 그렇지만 이런 상태가 2년이나 계속됐기 때문에, 대학 측에서는 내버려둘 수 없게 됐어요. 그래서 학장은 면직을 통고했지요."

"그런데, 아까 말한 딸은?"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때 몇 살이었지?"

"열일곱 살이었어요. 대학에 막 들어간 참이었죠. 아버지가 직업을 잃었기 때 문에, 그녀도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그 이래로 아버지는 일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두 사람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지요. 타이프와 속기를 배워, 법률사무소의 비서 일을 맡아,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지내왔어요. 그야 사치스런 생활은 아니지만."

"그래, 그 아버지는..."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다시금 활기를 돌이키지 못했나?"

다시금 긴 한숨을 쉬고, 밀너 경감이 내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글쎄, 갈수록 나빠져 갔어요. 실직하자 곧 술을 마시기 시작했지요.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 밤이면 저녁식사 후 집을 나서서, 돌아오는 건 12시를 넘어서였고, 위스키 냄새를 물씬거리며 곤드레가 되어, 걷지조차 제대로 못했죠. 딸 조앤 푸트남은 언제나 자지 않고 기다렸다가 침대에 눕혀주는 것이 일이었지요. 최근 십 년간, 몇 번이나 그 습관을 고쳐주려고 한 모양인데 잘되지 않았다더군요. 한 주일에 두 번씩 나들이를 하는 데도 위스키를 몇 병이나 집의 어딘가에 감춰뒀기 때문이죠. 값싼 술, 아직 가득 들어있는 큰 술병을 찾아낼 적마다 딸은 내버렸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또 새로운 은닉처를 생각해 내는 거예요."

"그래도 그건 약과죠." 하고 나는 참견했다.

"푸트남 교수는 실직했을 때 학장을 원망하고 있었어요. 학장 다크워스는 그와 동기로서, 둘다 젊은 강사직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오랜 친구였죠. 다크워스 학장이 해직을 선언했을 때, 푸트남 교수는 추태를 부려 지금도 학교 내에서는 얘깃거리가 되어 있어요. 나를 파면한 건 질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진급을 망가뜨려 놓은 것도, 아내를 죽게 한 것도... 뭐든지 학장 탓이라고 뒤집어씌웠어요. 언젠가는 이 앙갚음을 하겠다고 협박도 했죠. 그 이래로 푸트남 교수는 다크워스 학장을 미워해 왔어요. 십년 전에 욕지거리를 내뱉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내놓고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와서 사태는 위기로..."

"그 위기라는 걸 짐작할 것 같기도 하구나."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학장 다크스프(워스)에겐 미혼인 젊은 아들이 있어, 그렇지 않니?"

"놀랐소이다." 하고 밀너 경감은 신음소리와 같은 조그마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강력계 사람들도 머리를 이렇게 써야 하는데."

"이미 쓰시고 있는 거 아녜요?"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아무튼, 얘기를 진행하죠." 하고 나는 서둘러 말했다. 아직은 밀너 경감이 뒤엉킨 어려운 사건을 풀 때 어머니가 얼마나 나를 도와줬는지, 확실하게는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진짜 어머니 말씀대로예요. 다크워스 학장에겐 테드라는 아들이 있는데, 대학 강사죠. 삼십이 다 됐는데,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몇 달 전에 그는 조앤 푸트남과 약혼하기로 했어요. 이 약혼은 다크워스 학장 쪽에선 아무런 이의도 없었죠. 그런데 푸트남은 크게 노했어요. 자기의 일생을 엉망으로 만든 녀석의 아들 따위와 결혼하는 건 당치도 않다는 거죠. 아들이 문안을 와도, 집안에는 한 걸음도 들여놓지 못하게 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밤, 일주일 전이었는데, 다크워스 학장 집에 쳐들어갔어요. 학장네 집은 워싱턴 스퀘어 변두리의 이층집이었죠. 그리하여, 손님이 가득 있는 방 앞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였지요. 다크워스 학장은 나에게서 직업을 빼앗고, 아내를 빼앗고, 자존심을 빼앗고, 그리고 또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 딸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다고 외쳤어요. 그는 학장을 죽여버리겠다고 했어요. '이건 살인이 아니야, 형집행이야.' 그래서 딸 조앤은, 지금 당장은 도저히 결혼할 수 없다고 테드 다크워스에게 말했어요. 결혼을 연기하자고 주장했죠. 아버지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하고 셜리가 참견했다. "이건 지극히 흔해 빠진 케이스예요. 그는 자신의 죄책감을 제 삼자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딸에 대한 신경증적 의존을 정당화하고..."

"지극히 흔해 빠진 노릇이..."하고 어머니가 참견했다. 셜리가 웰즈레이 여자대학에서 배운 심리학을 휘두를 때마다 어머니는 초조한 어조가 된다.

"이 사건에 말려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이건 그저 흔해빠진 케이스입네' 한다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런지 궁금하구나."하고 어머니는 빈정대는 어조로 말했다.

"어떻든 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겠죠, 어머니." 하고 나는 계속했다.

"지난주 월요일 밤, 푸트남 교수는 저녁식사 후, 언제나처럼 한잔하러 나갔어요. 조앤도 언제나처럼 일어나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교수는 12시가 한참 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돌아온 것은 130. 물론 곤드레가 되어, 위스키 냄새를 물씬거리고 있었죠. 같은 무렵, 워싱턴 스퀘어의 경관이 다크워스 학장의 시체를 발견했어요. 자택에서 한 블럭 가량 떨어진 노상에 넘어져 있었지요. 엉망으로 구타를 당했는데, 흉기는 시체 바로 옆에 있었어요. 깨진 위스키 병이죠. 그래서 저희들은 새벽까지 걸려서 조사하러 쏘다녔어요. 아들과 부인의 진술에 의하면, 1230분에 집을 나갔는데, 지하철역으로 밤에 나오는 신문을 사러 갔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는 신문을 갖고 있지 않았고, 신문팔이 아이도 그를 본 적이 없다니까, 도중에 범인을 만난 게 틀림없지요. 다크워스 부인과 테드는 마침 그날 밤 줄곧 함께 교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두 사람의 알리바이는 성립되지요. 그리고 학장과 푸트남 교수 사이의 반목도 곧 알아냈지요. 아침 6시에 푸트남 교수네 집에 가서, 어젯밤에 어디 있었는지 심문을 했죠."

"딱한 사람이죠." 하고 밀너 경감은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눈은 퀭하고, 마치 휘청거리는 것 같더군요. 딸이 간신히 일으켰답니다. 다크워스 학장 얘기를 했더니 한동안 눈을 껌뻑거리며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어요. 그러다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더군요. 옛날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다크워스와 그가 함께 이상에 불타는 청년으로 교직에 임할 무렵 얘기를 시작하는 거죠. 그 사이에 딸은 가엾게도 눈에 공포를 띄고 우리들과 아버지를 번갈아 보고 있었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를 깨닫고 말예요."

"진땀 뺐어요, 어머니." 하고 나는 그때를 생각하고 오싹 몸서리를 쳤다.

"간신히 그의 얘기를 가로막고, 그날 밤의 행동을 설명하도록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죠. 헌데, 그는 거부했어요."

어머니는 눈을 가늘게 떴다.

"거부했니, 아니면 과음으로 생각해 내지 못했니?"

"거부했어요. 생각이 안 난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다만,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면 죄를 인정하는 거나 같다고 이쪽에서 경고했고, 딸도 간청했지요. 어딘가의 술집에 있었다면, 그런 습관은 모두 알고 있는 거니까, 부끄러워 할 건 없다고 말예요. 그래도 그는 말하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요, 어머니? 아직 살인죄로 고발한 건 아니지만, 심문하기 위해 본서로 연행했어요."

어머니는 득의양양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문이로구나?"

"고문 아녜요." 하고 나는 다소 불쾌하게 대꾸했다. 어머니는 잘 알면서도, 경찰은 아직 십 년 전의 수단을 쓰고 있다고 믿고 있는 척하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언제나 나를 놀려주곤 했다.

"아무도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아요. 다만 수단을 바꿔가면서 12시간 동안 계속해서 심문했지요."

"그렇게 안 할 수 없답니다." 하고 밀너 경감이 변명했다.

"범인이란 건 범행 직후에는 꽤 신경이 흥분해 있으니까요, 체포해서 심문하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자백시킬 기회를 잡는 셈이죠. 즐거워서 그런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하고 경감은 서둘러 덧붙였다.

"그 딱한 사내는 워낙 늙어버려서요, 저와 같은 나이인데도 말입니다. 즐거워 할 기분이 거의 나지 않는답니다."

어머니의 음성과 표정도 금방 너그러워졌다.

"그야 그렇겠죠." 하고 어머니는 밀너 경감을 향해 말했다.

"댁에서 즐겨 그 노인을 고문하셨다는 - 만일 제가 그런 뜻을 비쳐서 말했다면, 저야말로 멍텅구리죠."

"요컨대." 하고 나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푸트남 교수는 자백하지 않았어요. 자기는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도, 범행 시간에 어디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꾸하려 하질 않아요. 구류할만한 증거도 없으니까, 딸에게 돌려보냈지요."

밀너 경감은 다소 얼굴을 붉혔다. "상당히 심한 소리를 딸에게서 들었답니다."

하고 한숨을 쉬면서, "하긴 그런 일엔 익숙해져 있지만요."

"푸트남 교수가 유죄라는 건, 거의 확신하고 있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니까 남아있는 일은, 그가 현장 부근에 있었다는 걸 입증하는 목격자를 찾는 일이죠. 그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한잔하러 나섰다면, 설사 푸트남처럼 술친구가 없어서 혼자 마시려는 사내일지라도, 반드시 누군가는 봤을 테지요. 집 근방의 술집을 샅샅이 뒤져, 푸트남의 사진을 보이며 다녔어요. 다크워스네 집에서 3블록 쯤 떨어진 한 술집에서, 마침내 단서를 잡았지요. 그 가게의 주인이자 지배인인 해리 슬론이 푸트남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이 몇 해 동안, 그의 모습을 가게에서 종종 보는 터였대요. 살인이 있던 날 밤에도 푸트남을 봤다더군요. 오전 115분 전쯤. 마침 해리와 그의 아내가 가게를 잠그려고 하는 참이었대요. 대개 대학생 상대인데, 지금은 대학이 학기말 방학이니까, 한밤중이 지나서는 가게를 잠그고 일찍 자기로 한 터였대요. 그런데 푸트남이 찾아와서, 문을 두들겨대며 난리를 치더래요. 하는 수 없이 문을 열고 그만 폐점했노라고 해도, 그는 돈을 보이며 기어이 마시겠다고 했어요. 이건 마시게 하고 돌려보내는 편이 빠르겠다고 해리는 생각했어요. 그래서 푸트남을 들여놨는데, 해리와 마나님의 진술에 의하면, 버번 병을 절반 가까이나 마신 다음에야 겨우 115분 경에 내보냈다는 거예요. 마시기를 즐기고 있는 기색이 아니더래요. 뭔지 마음에 근심이 있어 보였대요. 어쩐지 무서운 기색이 들더라고 해리의 아내가 말하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그게 사람을 죽였다는 결정적인 단서는 안 되지."

", 그렇지만 다른 점도 아울러 생각해 보면 꽤 강력한 증거가 되죠. 먼저 첫째로 동기가 있겠다, 둘째로 기회가 있었거든요. 시간표는 완전히 부합이 돼요. 다크워스는 신문을 사러 1230분에 집을 나갔다. 도중에 우연인지 고의인지 푸트남을 만났다. 푸트남은 술병을 쥐고 있다가 그것으로 다크워스를 쳤다. 이게 115분 전쯤. 푸트남은 몹시 착란되고, 자기의 소행이 두려워져서, 마시지 않고는 못 배겨서 제일 가까운 술집으로 뛰어들었다. 115분이 지나서 술집을 나와 - 딸의 증언에 의하면 130분에 집에 당도했다. 셋째로, 그의 언동은 이 가설과 완전히 부합되지요. 슬론의 술집에서 기어이 마시지 않고는 못 배겼던 점이라던지, 그날 밤에 뭘하고 있었는지 얘기하기를 거부한 점 따위죠. 이건 명명백백한 사건이에요, 어머니."

밀너 경감도 서글픈 투로 덧붙였다.

"명명백백하지요. 증거는 이 이상은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으니까요."

오랜 침묵이 흐른 후 이윽고 어머니가 약간 코웃음을 쳤다.

"단 한 가지, 다른 해석이 있어요."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다른 해석이 - "

우리들은 일제히 얼굴을 들어, 어머니를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런 타격을 나에게 주었었다. 그런데도 그럴 적마다 나는 놀라게 되곤 한다.

"에그머니나, 어머님."하고 셜리가 맨 먼저 반응을 나타냈다. "설마 다른 해답이 있다는 건 아니시겠죠."

"놀리지 마세요, 어머니."하고 나도 말했다.

"설마하니 설마하니!"하고 밀너 경감까지도 머리를 저으며 덧붙였다. "그래 줬으면 좋겠지만...그 딱한 사내가...허나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있을 수 없는지 어떤지 검토해봅시다요."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자면 먼저 세 가지쯤 간단한 질문을 해야겠어요."

나는 약간 몸을 사렸다. 어머니의 '간단한 질문'이란 건 언제나 사태를 엉망으로 혼란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적어도 어머니 자신이 참으로 간단하고 적절하다는 것을 나타내 주기까지는.

", 어서 질문해 주세요." 하고 나는 조심조심 말했다.

"첫째 질문, 그 다크워스 학장님에 관해서 좀 알고 싶구나. 푸트남 교수가 그런 주정뱅이가 되어버린 것을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주정뱅이 짓을 그는 긍정하고 있었는지 비난하고 있었는지?"

이 질문은 언제나처럼 의도를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참을성 있게 대답했다.

"긍정하고 있진 않았어요."하고 나는 말했다. "다크워스 학장은 엄격한 금주주의자였는걸요. 학생의 음주에도 반대하여 금주 규칙을 만들려고 한 정도였어요. 푸트남의 음주는 정신적인 취약성의 발로라고 부인이나 아들에게 늘 말하더래요. 십년 전에 면직시킨 것은 적절한 처사였다고 하면서 - "

어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훌륭한 대답이야."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둘째 질문. 본서에서 푸트남 교수를 고문하고 나서 딸에게 돌려보냈는데 그 후로 그는 뭘 했지?"

"뭘 했을까요, 어머니?"

"묻고 있는 건, 나야."

다시금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이쪽도 참을성이 강했다.

"그가 뭘 했는지 사실만이라면 알고 있지요, 어머니. 푸트남이 도망치지 않도록 감시를 집에 뒀으니까요. 딸과 저희 경관의 눈앞에서 긴 의자에 나자빠지자 잠들어버렸어요. 이튿날 아침 일어나서 식사를 했어요. 오렌지 주스와 토스트와 커피, 각설탕 두개. 이게 무슨 유력한 단서라도 되나요?"

어머니는 나의 빈정거림을 무시하고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계속했다.

"네가 만일 보는 눈을 가졌다면 단서가 되지. 마지막 질문. 그 근방의 극장에서 살인이 있던 날 밤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한 데가 있었는지?"

이건 너무한 질문이었다.

"아세요, 어머니? 이건 살인사건 수사지 농담 따먹기가 아니란 말예요."

셜리도 밀너 경감도 당혹한 얼굴이었다.

"누가 농을 해?" 어머니는 여전히 침착했다.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경의를 나타내는 목소리로 밀너 경감이 대답했다.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실인즉 근처의 로즈 씨어터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하고 있더군요. 최근에 푸트남 교수를 심문하러 가는 도중에 그 앞을 지났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데요."

"내 생각대로야."하고 어머니는 의기양양했다. "이 사건은 완전히 풀렸어."

"그건 퍽 재미있는 일인데요." 하고 셜리가 고양이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데이빗과 밀너 경감님이 일찌감치 사건의 해결, 즉 결말은 짓고 있어요. 범인은 알고 있고, 체포만 하면 되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좋던 싫던 간에..."하고 밀너 경감이 중얼거렸다.

허나, 어머니의 득의양양한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얼굴을 밀너 경감에게 향할 때, 다소 유순해지는 기미였지만.

"싫지 않으셔도 돼요."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푸트남 교수는 살인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다시금 다들 어머니를 지켜보았다.

밀너 경감은 어리둥절하여 눈을 껌뻑거렸다. 반은 안심하고, 반은 안심한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그렇다면...그렇다면, 그 증거가 있단 말씀인가요?"

"아주 간단한 증거죠." 하고 어머니는 양손을 벌렸다.

"불평장이인 내 사촌 밀리하고 마찬가지죠."

"사촌 되시는 밀리라니?"

밀너 경감의 안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불평장이가 돼서요..." 하고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사람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어요. 언제나 몸에 관해서였죠. '심장이 나쁘다, 다리를 못쓰겠다, 등이 아프다, 소화가 안 된다, 머리가 아프다'는 등으로요. 그 사람의 몸은 망가져 있었어요. 해마다 다른 데가 망가지는 거예요.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남동생 모리스가 함께 살면서 보살펴주고 있었죠. 남동생 쪽도 이럭저럭 결혼을 못 하고 말았지요. 남동생이 젊은 여자애를 물끄러미 지켜보기라도 하면 밀리의 몸의 여기저기가 일제히 아프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심하게 아파 오는 거예요. 어느 날, 밀리는 죽었어요. 부엌의 선반 위에서 치즈케익을 꺼내려고 의자에 올라갔는데 발을 헛디뎌서 마루에다 머리를 찧어, 그 쇼크로 죽은 거예요. 의사가 검시한 결과는 머리의 타박상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본 어느 시체보다도 건강체였대요. 그런데 가엾은 모리스는 그때 이미 57세의 대머리에다 배불뚝이가 되어 있었으니, 여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죠."

어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들은 골똘히 생각했다.

마침내 내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 그거하고 이거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아무래도 모르겠는데요."

"관계라면..."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네 코끝에 매달려 있어. 그걸 나에게 일깨워준 건 그 시간표야."

"시간표라뇨, 어머니?"

"푸트남 교수의 시간표. 네 말인즉 그는 주정뱅이로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밤에 마시러 가며, 그것도 언제나 저녁식사 후의 같은 시간, 그리고 돌아오는 것도 같은 시간, 한밤중 가까이 되어야 위스키 냄새를 물씬거리며 비틀대면서 돌아온다고 했겠다. '이건 이상한 증거로구나' 하고 생각된 거야. 마치 월급쟁이처럼 시간표대로 시간을 지키는 주정뱅이가 있을까. 술을 마시고 취하면 푸트남 교수처럼 심한 주정뱅이는 시계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가 없어. 대개는 시계를 꺼내더라도 보지 않지 뭐냐. 게다가 그 시간표 -월요일과 목요일의 저녁 식사 후부터 한밤중까지라는걸 듣고 어떤 일이 생각났어. 월요일과 목요일엔 프로가 바뀌거든. 그리고 두편 동시상영이면, 마침 저녁식사 후부터 시작해서 한밤중에 끝나지."

"어머니."하고 나는 참견했다.

"그렇다면...?"

"가만있어."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네가 애초에 알아내지 못했으니, 마지막에 내게 지껄이는 재미를 줘야지. 시간표가 의혹을 자아냈기 때문에 너에게 질문했지. 경찰에서 12시간 동안 심문을 받고 나서 푸트남 교수는 뭘 했느냐고. 그랬더니 너 이렇게 말했지. '교수는 집에 돌아와 누워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했다'.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어! 마시게 해달라고도 하지 않았어! 이름난 주정뱅이라고 알려진 사내가 12시간이나 고문을 받고, 그 후에 한잔하려고 들지 않는다니 생각할 수 있니? 너에겐 안됐지만, 이건 납득이 안 되지. 그래서 내 그 의문은 풀린 거야."

"그가 주정뱅이가 아니었단 말이죠?" 하고 밀너 경감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고 말구요."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아마 술 따위는 좋아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해요. 술꾼인 척하고 있었을 따름이죠. 최근 10년간, 월요일과 목요일 밤은, 근처의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갔던 거죠. 영화가 끝날 때까지 거기 있다가, 그리고 나서 위스키를 사서 옷깃이며 손에다 뿌리고, 딸이 보는 데서는 비틀거리며 들어갔겠죠. 또 한 가지 덧붙이면, 위스키병을 집안에다 감춰두고 있었던 모양인데, 언제나 그 병은 위스키가 가득 들어있었지요. 따님은 절반으로 줄어든 병을 발견한 적은 없었다면서요? 더욱 중요한 증거는, 그는 언제나 혼자 마시기 때문에 술친구는 없었다고 설명하지 않았던가요."

"그렇지만, 어째서..." 하고 나는 물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해서, 딸을 줄곧 속여 왔을까요?"

"불평장이 밀리라니까." 하고 어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푸트남 교수는 직업을 잃고, 남성미도 잃고, 생활력을 잃고 있었죠. 그래서 따님이 보살펴주게 됐어요. 딸의 시중을 받자, 그는 행복했어요. 그러나 언젠가는 딸이 결혼해서 떠나버리고 마는게 아닐까 두려워하고 있었지요. 딸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자기의 마음이 약한 점만으로는 모자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신을 주정뱅이로 꾸민 거예요. 인정 많고 양순한 딸이, 그런 주정뱅이 아버지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있을까. 그 연극은 잘 됐죠. 내 사촌 모리스에게 효과가 있었던 것처럼, 조앤에게도 효력이 있었던 거죠. 다만 이번 경우에는, 모리스처럼 때를 놓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우리들은 잠시 잠자코 있었다. 저마다 마음속에, 딸을 붙잡아둘 만한 못된 꾀는 아직 남아있는 처량한 패배자인 노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런 자기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군."하고 밀너 경감이 말했다. "그래서 월요일 밤에 마시러 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자인하느니, 살인죄를 뒤집어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나 보죠."

"잠깐 - "하고 셜리가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월요일 밤엔 극장에 갔다고 하셨죠, 어머님. 그래서 언제나 12시가 거의 다 되어 돌아왔으며, 꼭 두 편 동시상영 영화를 보고 온다고. 그렇지만 살인이 있던 날 밤은, 130분까지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런 점은 결국 그가 살인을 했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

어머니는 웃었다.

"내 마지막 질문, 벌써 잊고 있구나. 그건, 내 생각을 입증해 주었지. 근처의 극장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하고 있었다. 그 영화는 보통 두 편보다 한 시간은 충분히 오래 걸리니까."

셜리는 항복했다는 양으로 물러앉았다.

", 그럼..."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요리도 어지간히 들었구나. 누가 디저트를 날라다 주지 않으련? 오늘은 나더러 아무 일도 안 해도 좋다니까 - "

"제가 하죠, 어머니."하고 나는 일어서서 부엌의 도어 쪽으로 가려고 했다. 허나, 셜리의 음성에 제지되었다.

"기다려줘요!"

셜리는 의기양양하게 어머니 쪽을 향했다.

"아직 사건 해결은 되지 않았어요. 푸트남 교수가 사실은 술꾼이 아니라는 건 알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범인이 누구라는 건 모르잖아요."

"몰라?"

어머니는 조롱하듯 웃었다.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잖니. 푸트남 교수는 술꾼이 아니었다. 이건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말이다, 좋아, 해리 슬론네 술집에 폐문 후에 찾아가서, 버번위스키 병을 절반이나 마실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말이다, 좋아, 해리 슬론 부부는 이 몇년 동안 교수가 종종 가게에 출입하는 걸 볼 수가 있었을까?"

이 말을 듣고, 밀너 경감과 나는 순간 얼굴을 들었다. 경감의 얼굴에 단호하고 엄한 표정이 떠올랐다.

"슬론 부부가 거짓말을 했나요?" 하고 경감이 물었다.

"제 생각이 틀렸나요? 그 슬론이란 녀석이 다크워스 학장을 죽였어요. 동기는 아까 얘기해주지 않았어요? 학장은 금주운동의 선봉자였다고. 대학생은 음주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통과시키려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학장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학교에서 훨씬 떨어진 술집으로 마시러 가게 되지요. 아까 들은 얘기지만, 슬론은 대학생 상대로 장사하고 있었겠다. 그렇다면, 학장은 그의 영업을 망치려고 하는 셈이 되지요. 이건 사람을 죽일 동기로선 충분하지 뭐예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미리 꾸며진 범행은 아니잖아요. 슬론이 월요일 밤 공교롭게도 거리에 서 있을 때, 학장이 신문을 사러 지나갔다. 그런데 슬론은 아마도 다소 취해 있었고, 술병을 손에 들고 있었겠죠. 학장을 불러 세워 금주운동을 중지시키려고 들다가 언쟁 끝에 흥분해서 죽이게 됐죠. 그리고는 가게로 돌아와서, 아내한테 얘기해서..."

"그리고 이튿날 밤."하고 나는 신음하듯 말했다. "우리들이 가서, 다시없이 좋은 도망길을 제공해준 거죠. 놈에게 푸트남의 사진을 보이고 범행 시간에 푸트남의 알리바이가 없다는 걸 얘기했으니까. 그래서 슬론 부부는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면, 자기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했군."

"그리하여 성공했을지도 몰라." 하고 밀너 경감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만일 부인께서..." 말을 꺼내려다 말고, 곤혹과 감탄에 겨운 듯한 표정으로 잠깐 머뭇거리다 만다. 셜리와 나는 의미심장한 눈길을 나누었다. 그리고는 케이크를 조심스레 들고 와서, 다들 '해피 버스데이' 노래를 불렀다. 어머니는 수줍은 듯 볼을 붉혔다.

"먼저 기도하고, 그리고 나서 불어 끈다."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어머니는 질끈 눈을 감았다. 순간, 입술이 소리도 없이 움직였다. 그리고는 눈을 뜨고, 케이크 쪽으로 몸을 내밀어, 촛불을 불어 껐다.

무엇을 기도했는지, 어머니는 말하려 하지 않았다. 왠지 그날 밤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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