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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소녀

Bollnow 2024. 4. 19. 07:00

사악한 소녀

Isabel Allende

 

11살 적의 엘레나 메히아스는 말라깽이 소녀에 불과했다. 고독한 아이들처럼 피부가 거칠고, 벌어진 입에는 아직 영구치가 보이지 않았다. 회색 머리카락에다가 뼈대가 특히 두드러져서 팔꿈치와 무릎이 툭 튀어나왔다. 격류와 같은 꿈이나 미래의 관능적인 모습을 눈치채게 하는 점은 전혀 없었다.

어머니가 경영하는 하숙집의 자질구레한 가구들과 물이 빠져 낡은 옷감들 사이에서 엘레나는 아무의 시선도 끌지 못했다. 그저 우울한 떠돌이 소녀로서 안뜰의 먼지 낀 제라늄과 양치류 속에서 놀거나, 부엌과 거실의 식탁 사이로 오가면서 저녁 식사 시중을 드는 정도였다. 어쩌다가 손님이 엘레나를 주목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바퀴벌레를 잡는 약을 뿌리라고 하거나, 낡은 펌프가 2충까지 물을 올려보내지 못할 때 목욕탕의 물통에 물을 채우라고 지시하는 경우에만 그랬다.

지독한 더위와 여관 운영에 지쳐 버린 어머니는 딸을 돌볼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엘레나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엘레나는 언제나 조용하고 수줍음을 타는 소녀였고, 괴상한 놀이나 구석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엄지손가락을 빠는 일에 몰두했다. 학교에 갈 때나 시장에 갈 때만 집을 나섰다. 길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노는 같은 또래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엘레나 메히아스의 변신은 스스로 나이팅게일이라고 자처하는 후안 호세 베르날의 출현과 동시에 일어났다. 베르날이 자기 방에 붙인 포스터는 베르날을 나이팅게일이라고 당당히 선언했다.

손님은 대개 학생이 아니면 시정부의 말단 직원들이었다. 엘레나의 어머니는 그 손님들이 품위 있는 신사와 숙녀들이라고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했다. 왜냐하면 아무나 자기 집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수입이 있고, 예의 바르고, 한 달 치 숙박비를 선불할 수 있고, 호텔보다는 신학교에서나 더 알맞을 그 하숙집의 규칙을 잘 지키는 그런 점잖은 사람만 손님으로 받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엘레나의 어머니는 과부로서 자기 평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남의 존경을 받아야만 했다." 난 우리 집을 부랑자나 방탕아들의 소굴로 전락시킬 순 없어."라고 어머니가 자주 말했기 때문에, 누구나, 특히 엘레나는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엘레나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손님들을 감시하고,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면 어머니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소녀는 늘 남을 엿보는 버릇 때문에 더욱더 유령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말없이 움직이면서 방의 그늘 속으로 사라지는가 하면, 느닷없이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되돌아오는 것처럼 다시 나타났다.

딸과 어머니는 하숙집의 허드렛일을 나누어서 했지만, 둘다 말이 없이 일했고, 서로 대화의 필요를 느끼지도 않았다. 사실 둘은 말수가 매우 적은 편이었다 낮잠을 자는 짧은 자유 시간에 말을 한다고 해도 주로 손님들에 관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아무런 추억도 남기지 않은 채 잠시 하숙집을 거쳐서 가 버리는 남녀의 단조로운 생활에 대해서 엘레나는 가끔 과장하려고 했다. 특이한 사건을 갖다 붙인다거나, 비밀스러운 연애나 비극 등을 통해서 채색하거나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의 공상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능력을 발휘하고는 했다. 게다가 딸이 뭔가를 숨길 때는 어김없이 눈치챘다.

자기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 밤이건 낮이건 손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언제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찬장에 설탕이 얼마나 남았는지, 전화벨이 울리면 누구한테 온 전화인지, 가위를 마지막으로 쓴 사람이 그 가위를 어디에 놓았는지도 알았다.

한때는 쾌활하고, 미모를 자랑할 만한 젊은 여자였다. 너절한 옷차림을 통해서도 아직 젊은 육체의 초조감이 엿보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겨우겨우 생계를 꾸려나가다 보니, 서서히 마음이 지치고 삶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후안 호세 베르날이 빈방을 찾으러 오자, 어머니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다. 엘레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이팅게일의 거드름 피우는 말투와 포스터가 암시하는 그 명성에 홀려서 어머니는 자기 자신의 원칙을 무시한 채, 사내가 결코 자신의 이상적인 손님이 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손님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베르날은 밤에 노래 부르는 일을 하기 때문에 낮에는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계약을 새로 맺었기 때문에 그달 치 숙박비를 미리 지불할 수가 없다고도 했다. 음식과 위생에 아주 까다로워서, 자기가 채식주의자이고 하루에 두 번 샤워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엘레나는 한마디 질문도 던지지 못하고, 그저 놀란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다보기만 했다. 어머니는 손님의 이름을 장부에 적어 넣고는 방으로 인도했다. 사내가 케이스에 든 기타와 포스터 통을 들고 있는 반면, 어머니는 무거운 가방을 들었다. 벽에 몸을 붙이고 엘레나가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층계를 올라가면서 살펴보니, 사내는 어머니의 땀이 밴 엉덩이에 찰싹 달라붙은 면포 스커트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방으로 들어서자 엘레나가 스위치를 올렸다. 천정에 달린 거대한 선풍기 날개가 녹슨 쇠붙이의 기분 나쁜 소리를 끼익끼익 내면서 돌기 시작했다.

베르날의 도착으로 하숙집의 하루 일과가 즉시 변하고 말았다. 다른 손님들이 각각 직장으로 다 떠날 때까지도 베르날이 잠을 잤기 때문에 일이 더 많아졌다. 베르날은 또 목욕탕을 오랫동안 치우지 못하게 했다. 토끼나 먹을 음식을 엄청나게 많이 먹어치워서 그 음식을 특별히 준비해야 했다. 언제나 전화통에 매달렸다. 자기 마음대로 다리미를 써서 셔츠를 다렸는데도, 그 유별난 특권에 대해서 한푼도 지불하지 않았다.

햇및이 너무 뜨겁고 그 무시무시한 흰색 광채 아래 하루가 시들어가고 있을 때 엘레나는 낮잠을 자러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까지도 베르날은 여전히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엘레나는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집 안의 고요를 깨지 않기 위해서 구두를 벗고는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날이 갈수록 달라지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손님들이 어머니 등뒤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하기 훨씬 전에 이미 엘레나가 처음부터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우선은 향수였다. 어머니 몸에서 풍기는 향수 냄새가 가는 곳마다 떠돌았다. 엘레나는 구석구석을 모르는 곳이 없었고, 또 몰래 엿보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창고 선반의 쌀통과 양철통 사이에 숨은 향수병을 드디어 찾아내고 말았다. 그 다음에 눈에 띈 것은 어머니의 눈썹을 그리는 검은 연필이었고, 그 다음에는 입술을 붉게 칠하는 연지, 새 속옷, 베르날이 저녁식사하러 내려오자마자 띄우는 미소였다.

베르날은 목욕 후라서 아직 머리카락이 젖었고, 부엌에서 유목 민족에게나 알맞을 괴상한 음식을 먹어치우고는 했다. 어머니는 베르날과 마주앉아서 예술가로서 베르날이 겪은 체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는 했다. 베르날은 모험담을 빠짐없이 자세히 들려주면서 허리를 잡고 웃었다.

집 안의 구석구석과 어머니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해 버린 그 남자를 엘레나는 여러 주일 동안 미워했다. 윤기 나는 머리카락, 다듬은 손톱, 너무나도 열심히 쑤셔대는 이쑤시개 짓, 과도한 접대 등이 모두 역겨웠다. 어머니는 그 사내의 어디가 좋다고 높이 평가하는지 의문이었다. 사내는 잠시 스쳐 가는 모험가, 아무도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술집 악사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면, 거기 가장 오래 묵은 손님인 소피아 부인이 소곤거린 대로 뱃속이 시커먼 악당인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무더운 일요일 저녁이었다. 할 일이 전혀 없고 시간마저 그 집 안에서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후안 호세 베르날이 기타를 들고 안뜰에 나타나 무화과나무 아래 벤치에 자리 잡고는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그 기타 소리에 모든 손님이 반응을 보였다. 생각지도 않은 풍경에 웬일인가 해서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하나씩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다가 점점 호응이 열을 띄었다.

이윽고 모두 식당의 의자를 모조리 끌어내서 나이팅게일을 빙 둘러싸고 앉았다. 사내는 평범한 목소리였지만, 그 노래에 어딘가 매력을 풍겼다. 인기 높은 볼레로와 시골의 민요에 아주 정통했고, 부인네들이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종교 모독과 음담패설이 섞인 혁명가도 몇 가지 불렀다. 그 집이 축제 분위기에 싸인 적이라고는 엘레나의 기억에 한 번도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사람들이 석유램프 둘을 켜서 나무에 매달았다. 그리고 맥주에다가 감기 치료로 보관해 둔 럼주를 내왔다. 손님들의 잔을 채울 때 엘레나의 손이 떨렸다. 가슴을 저며내는 노래 가사와 기타의 탄식이 엘레나의 온몸에 구석구석 열병처럼 파고들었다. 어머니가 발끝으로 박자를 맞추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머니가 일어나 엘레나의 손을 잡고 춤추기 시작했다. 소피아 부인을 비롯한 다른 모든 사람이 즉시 뒤따랐고, 신경질적으로 킬킬거리면서 법석을 피웠다.

베르날의 노랫가락에 맞추어 엘레나는 끝도 없이 춤추었다. 어머니의 몸에 착 달라붙은 채 새로운 꽃향내를 맡으면서 황홀한 행복에 젖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자기를 살며시 밀쳐내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 혼자서 춤을 추려고 떨어진 것이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미풍에 건조되고 있는 빨랫감처럼 흔들거렸다. 엘레나가 물러서고, 다른 사람도 모두 의자에 앉아서, 하숙집 여주인 흘로 안뜰 한가운데서 춤에 몰두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날 밤부터 엘레나는 베르날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내의 머릿기름, 이쑤시개, 그리고 그 오만을 미워하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베르날을 보거나 그 음성을 들을 때마다, 엘레나는 즉흥 파티에서 사내가 부른 그 노래들을 회상하고는 새삼스럽게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에 혼란이 깃들고는 했다. 또한 이유를 알 수가 없는 열에 온몸이 들떴다.

사내의 시선을 피해서 엘레나는 계속 관찰했다. 그러다가 처음에는 물랐던 여러 가지를 차츰 눈에 익히게 되었다. 베르날의 어깨, 근육이 발달되고 탄탄한 목, 두툼한 입술의 육감적인 곡선, 고른 치아, 길고 섬세한 손의 우아함 등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그 검은 피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싶다는, 그 허파를 드나드는 공기소리와 심장의 박동소리를 듣고 싶다는, 그 몸에서 나는 냄새, 최고급 가죽이나 담배처럼 강렬하게 침투하는 그런 냄새를 맡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베르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그 등과 다리의 근육을 살펴보고, 발의 모양을 알아내고, 자기가 담배 연기에 녹아서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 그 몸 안에 머물게 되는 모습을 혼자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베르날이 눈을 들어 시선이 부딪치는 경우에는 엘레나는 온몸을 떨면서 안뜰의 가장 먼 구석으로 달려가 숨고는 했다. 엘레나의 머리 속은 온통 베르날로 가득 찼다. 베르날에게서 떨어져 있을 때는 정지된 시간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엘레나는 눈이 멀고 귀가 먹은 듯, 오로지 자기 머리 속의 생각에만 몰두하여 마치 악몽을 꾸듯이 행동했다. 그 생각 속에는 베르날 이외의 것이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 때 베르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침대에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다. 덧문을 닫아서 방은 캄캄하고, 선풍기 날개들이 뜨거운 공기를 휘젓고, 등에서는 땀이 흐르고, 얼굴은 베개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수업이 끝났다고 알리는 종소리가 나자마자, 엘레나는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베르날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기를 기도했다. 그래야만 자기가 세수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어머니가 집안일을 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숙제를 하는 척하면서 부엌에 앉아서 베르날을 기다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윽고 베르날이 휘파람을 불면서 목욕탕을 나서는 소리가 들리면, 초조와 두려움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베르날이 자기 몸에 손을 대거나, 심지어는 말을 걸어주기만 해도, 기쁨에 넘쳐서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기쁨에 넘쳐 죽을 뿐 아니라, 동시에 자기는 가구로 변해도 좋다고 믿었다. 베르날이 없으면 자기가 살 수가 없고, 또 함께 있으면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엘레나는 베르날을 몰래 어디든지 따라다녔고, 시중들 채비를 언제나 했고, 베르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알아내려고 애썼고,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요청하기 전에 바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유령처럼 움직이고,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밤에는 베르날이 집에 붙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엘레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해모크를 빠져 나와 1층을 유령처럼 어슬렁거리고는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용기를 가다듬어 살금살금 베르날의 방으로 침입했다. 등뒤로 문을 닫고는 덧문을 약간만 열어두어 가로등 불빛이 새어들어 오게 했다. 그래야만 그곳의 소지품에 깃든 사내의 영혼을 약간이나마 차지하려고 자기가 고안해 낸 예식이 조명 받을 수가 있었다.

검은 진흙탕 연못처럼 검게 빛나는 둥근 거울 앞에 서서 엘레나가 자기 모습을 응시했다. 베르날이 그 거울을 들여다보았을 테니까, 두 사람의 영상이 포옹하면 하나로 합치게 될 것이다. 눈을 똑바로 뜬 채 자기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거울로 다가갔다. 자기 입술에 싸늘하고 힘찬 키스를 하면서 거을 속의 입술이 베르날의 입술처럼 뜨겁다고 상상했다 젖가슴에 닿은 거울 표면의 감촉을 느끼자, 조그마한 젖꼭지들이 단단해졌다. 거기서부터 둔한 통증이 흘러내려 허벅지 사이의 바로 그 지점에 이르렀다. 그 아픔을 거듭거듭 맛보았다.

베르날의 옷장에서 셔츠를 꺼내 입고 구두를 신었다. 소리를 내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면서 이리저리 거닐어 보았다. 그 옷차림으로 서랍을 뒤졌다. 그리고 베르날의 빗으로 머리를 빗고, 그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고, 면도크림을 핥고, 더러운 옷들을 애무했다. 이윽고 자기도 모르게 잠옷과 베르날의 셔츠와 구두를 모조리 벗어 버린 뒤, 발가벗은 몸으로 베르날의 침대에 누웠다. 사내의 체취를 게걸스럽게 들이마시고, 사내의 뜨거운 체온이 자기 몸을 휘감기를 열망했다.

자기 몸의 구석구석을 더듬어가며 만져댔다. 이상하게 생긴 두개골에서 시작하여 반투명의 귀연골, 눈두덩이, 입에 이르고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 모든 뼈마디, 들어가고 튀어나온 모든 곳, 구석구석의 곡선을 빠짐없이 쓰다듬으면서, 자기 자신이 고래처럼 거대하고 무거운 몸이라고 상상했다. 자기 몸이 꿀처럼 달고 끈적끈적한 액체로 가득 차고, 맘모스 인형의 크기만큼 엄청나게 부풀어서, 침대와 그 방을 홍수지게 하고, 자신의 성적인 흥분 상태가 온 집 안을 가득 채운다고 상상했다. 온몸에 기운이 쭉 빠져 흐느끼면서 잠시 선잠이 들었다.

어느 토요일 아침, 엘레나가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빨래통 위로 몸을 구부린 채 빨래를 비벼 빨고 있는 어머니 쪽으로 베르날이 다가가는 것이었다. 베르날이 허리에 손을 댔는데도 어머니는 가만히 있었다. 그 손의 무게가 마치 자기 몸의 일부인 것처럼 말이다.

멀리서 보더라도 엘레나는 베르날의 몸짓이 소유를 의미한다고 알아챘다. 복종하는 어머니의 태도, 두 사람의 밀착 관계, 엄청난 비밀 속에 두 사람을 결합하는 전류도 알아챘다. 그래서 엘레나는 땀을 뻘뻘 홀리고,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심장은 새장에 갇힌 놀란 새였고, 손과 다리가 저렸고, 손가락들마다 핏줄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 때부터 어머니의 뒤를 몰래 밟기 시작했다.

단서를 하나씩 찾아냈다. 우선은 단순한 시선, 공연히 오래 끄는 인사, 음모를 꾸미는 미소, 테이블 아래에서 두 사람의 다리가 서로 비벼대고, 둘만 따로 있으려고 꾸며대는 핑계에 대한 의심이었다.

드디어 어느 날 밤, 엘레나가 베르날의 방에서 애인의 의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지하수가 흘러가는 듯 어머니의 방에서 나는 속삭임을 들었다. 그제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베르날이 돈벌이를 위해 노래하러 외출했다고 자기가 믿었던 그 밤마다 사내는 바로 복도 맞은편 어머니 방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거을 속에서 사내의 기억을 더듬어 키스하고 그 옷에서 사내의 자취를 그리며 냄새 맡고 있는 동안, 사내는 어머니와 같이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엿보는 기술을 익힌 엘레나는 몰래 방안으로 스며들어가 쾌락으로 결합한 두 사람의 알몸을 보았다. 술장식이 달린 램프가 따뜻한 빛을 뿌려 주어 침대 위에 뒤엉킨 두 남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어머니는 통통하고 장밋빛에다가 신음소리를 내는 풍만한 육체의 여신, 춤추는 바다의 아네모네 꽃으로 변신하였고, 모든 촉수와 흡입판, 입과 손과 다리와 구멍이 모조리 아래위로 그리고 옆으로 움직이면서 베르날의 거대한 육체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어머니와 대조적으로 베르날은 딱딱하고 어색하고, 엄청난 속도로 부는 바람에 까불리는 막대기처럼 경련을 일으키며 움직이는 것 같이 보였다.

그 순간까지 엘레나는 벌거벗은 사내를 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 차이가 커서 입을 딱 벌렸다. 베르날의 물건은 난폭하게 보였다. 엘레나는 곧 두려움에서 벗어나 간신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즉시 매혹되고 말았다. 주의력을 총집중해서 응시했다. 자기에게서 베르날을 어머니가 뺏아가는 그 비법, 자기의 모든 사람, 모든 기도, , 무언의 소환, 베르날을 잡아 당기려고 행사한 모든 예식과 마술, 이런 모든 것보다도 더 강력한 비법을 배웠다.

어머니의 애무와 신음소리가 비밀의 열쇠라는 확신이 섰다. 그것만 배우고 나면, 후안 호세 베르날이 옷장의 커다란 고리 두 개 사이에 걸쳐진 해모크에서 자기와 매일 밤 같이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음날 엘레나는 멍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것에, 심지어는 베르날에 대해서도 흥미를 잃었다. 베르날을 자기 마음의 한쪽 빈 방에 넣어둔 채, 현실 세계를 완전히 대체하는 공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집안일을 습관적으로 했다. 그러나 마음은 딴 세계에 가 있었다.

식욕을 완전히 잃어 버린 딸의 태도를 본 어머니는 엘레나가 아직 너무 어리기는 하지만 사춘기 탓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 엘레나와 단 둘이 앉아서 여자로 태어난 것에 관한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성경에 나오는 저주들과 월경을 비꼬는 농담에 뚱한 표정으로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그런 것이 자기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말이다.

수요일에 엘레나는 거의 일 주일 만에 배가 고픈 느낌을 받았다. 깡통 따개와 숟가락을 들고 식품 창고로 내려가 콩이 든 통조림을 세 개나 비웠고, 이어서 네덜란드 치즈의 붉은 밀랍을 벗겨서는 사과를 먹듯 먹어치웠다. 그러자 곧 안뜰로 달려가서 허리를 굽힌 뒤, 제라늄 화분에다가 푸르스름하고 더러운 국물을 토했다. 뱃속의 통증과 입에 남은 쓰디쓴 뒷맛이 현실감을 회복시켰다.

그날 밤, 해모크에서 몸을 뒤척이며, 아기 침대에서 했듯이 엄지손가락을 빨면서 편안하게 잤다. 목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 행복감이 밀려왔다. 어머니를 도와서 손님들 커피를 마련했고, 같이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들었다. 그러나 학교에 가자마자 배가 아프다고 투덜댔고, 너무 심하게 몸을 뒤트는 데다가 자주 변소에 가겠다고 해서, 정오가 되기도 전에 선생이 귀가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엘레나는 늘 다니던 길을 일부러 피해 멀리 돌아서 갔다. 그리고 골짜기로 향한 뒷담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다. 담을 기어올라 안뜰로 뛰어내렸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 시간에 어머니는 시장에 가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싱싱한 생선이 나오는 날이니까 어머니가 돌아오려면 왜 일렀다. 집 안에는 후안 호세 베르날과 소피아 부인밖에 없을 것이다. 부인은 관절염으로 일주일 전부터 직장을 쉬고 있었다.

엘레나는 책과 구두를 덤불 속에 숨겨 두고는 안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벽을 더듬으며 숨을 죽인 채 계단을 올라갔다. 소피아 부인의 방에서 라디오 소리가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한층 안심이 되었다. 베르날의 방문은 슬쩍 밀자 열렸다. 안은 캄캄했다.

눈부신 한낮의 바깥에서 막 들어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방은 훤하게 암기했다. 구석구석을 수없이 측정했고 물건마다 어느 자리에 있는지 기억했다.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곳도 알고, 문에서 침대까지 몇 걸음인지도 알았다. 그러면서도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가구의 윤곽이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늘 상상했듯이 엎드린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팬티만 입은 채 침대보 위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한 팔은 죽 펴고 다른 팔은 가슴에 올려져 있었다. 머리카락이 조금 눈을 가렸다. 여러 날 동안 쌓이고 쌓였던 두려움과 초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기가 할 일을 확실히 아는 사람의 평온에 이르러 엘레나는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런 순간을 여러 번 체험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전에 반복한 예식과 약간 차이가 날 뿐, 예식은 예식이라고 달랬다.

천천히 교복을 벗었다. 그리고 전에는 감히 벗으려고 하지 않았던 면직 팬티도 벗어 버렸다. 그리고 침대로 다가갔다. 베르날이 한층 명확하게 보였다. 조심스럽게 베르날의 손 근처에서 침대에 걸터앉으면서도, 침대보에 주름살을 하나도 내지 않도록 애썼다. 천천히 몸을 앞으로 굽히자, 이윽고 얼굴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고, 뜨거운 입김과 달콤한 체취를 느꼈다. 드디어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여 나란히 눕고는 두 다리를 조심스럽게 뻗었다. 하도 조심스러워서 베르날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다렸다. 침묵에 귀를 기울이면서 기다렸다. 그러다가 결심을 하고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애무하면서 베르날의 배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렇게 쓰다듬을 때 엘레나는 거대한 파도가 온몸을 뒤덮어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자기 심장의 고동소리가 온 집 안을 뒤흔들어 베르날을 깨울까 겁이 났다.

5분쯤 지나서야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베르날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심했다. 팔을 힘없이 걸쳤다. 그 무게가 너무 가벼워서 베르날의 잠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어머니의 동작을 회상해 내면서 엘레나는 손가락들을 베르날의 팬티 속으로 슬며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베르날의 입술을 찾아서, 전에 거울에 그토록 자주 키스했듯이 그 입술에 키스했다.

여전히 잠든 채 베르날이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한 팔로 엘레나의 허리를 감고, 다른 손으로는 엘레나의 손을 잡아 인도하고, 자기 애인의 이름을 속삭이면서 키스에 응답하려고 입을 벌렸다. 베르날이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도 엘레나는 뒤로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찰싹 달라붙었다.

베르날이 엘레나의 허리를 잡아 자기 몸 위로 걸터앉게 하고는 성교의 최초 동작을 시작했다. 그러자 자기 가슴에 얹혀진 작은 새 같은 골격이 너무나 연약함을 느끼고는, 짙은 안개 같은 잠결에서도 뭔가 섬광 같은 의식이 스쳐지나갔다. 눈을 떴다. 엘레나는 베르날의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옆구리에 손이 닿으면서 하도 세차게 밀쳐내는 바람에 마룻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발딱 일어나서 침대로 달려들어가 다시 포옹하려고 했다. 베르날이 엘레나의 따귀를 힘껏 갈기고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대의 금기와 악몽 때문에 겁에 질린 것이다.

베르날이 고함쳤다.

"사악한, 이 사악한 년!"

문이 활짝 열렸다. 소피아 부인이 문간에 서 있었다.

그 후 엘레나는 7년간 수녀들과 함께 지냈고, 3년을 또 수도에 있는 대학에 다니느라고 보냈고, 그 다음에 은행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머니는 애인과 결혼했고, 둘은 여전히 하숙을 운영해서 시골의 작은 집을 살 만큼 저축한 뒤 은퇴했다. 그리고 거기서 카네이션과 국화를 재배해서 도시에 내다 팔았다. 나이팅게일은 자기 재주를 선전하는 포스터를 금테 액자에 넣어 걸었지만, 다시는 나이트클럽에서 노래하지 않았다. 아무도 애석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아내가 자기 의붓딸을 면회갈 때 한 번도 따라가지 않았다. 자기 마음 속에서 의혹을 들쑤시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항상 엘레나를 생각했다. 소녀의 이미지는 세월에 바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았다. 엘레나는 자기가 거절한 격정적인 소녀로 여전히 남아 있었다.

사실,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 가벼운 몸집, 자기 배를 더듬던 어린 손, 자기 입 속으로 파고들었던 어린 혓바닥의 추억은 강박관념으로 변했다. 아내의 육중한 몸을 껴안을 때마다, 날이 갈수륵 산만해지는 쾌락의 충동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엘레나의 이미지를 끈질기게 되살리고, 그 추억에 집중해야만 했다

중년에 접어든 베르날은 아동복 상점에 들어가 면직 팬티를 샀다. 그리고 그 팬티와 자기 몸을 애무하면서 쾌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그런 음탕한 짓이 스스로 부끄러워져서, 팬티를 태워 버리거나 안뜰에 구덩이를 깊이 파고 묻고는 했다. 깡그리 잊어버리려고 그렇게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학교와 공원 근처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런 장소에서는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잊지 못할 그 목요일의 심연을 회상시켜 주는 사춘기 이전의 소녀들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엘레나가 처음으로 어머니를 집으로 찾아간 것은 26세 때였다. 육군 대위로 여러 해 동안 결혼을 졸라대는 남자 친구를 데리고 찾아갔다. 거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대위는 신사복 차림을 했고, 엘레나는 선물을 한 보따리 들고 갔다. 쌀쌀한 11월의 어느 날 오후에 두 젊은이가 방문했다.

베르날은 그 방문을 설레이는 십대 소년처럼 기다렸다. 기회 있을 때마다 거울을 보고 자기 모습을 검사했다. 엘레나는 자기가 변화했다고 여길 것인지, 아니면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 여전히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여길 것인지 궁금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연습하고 가능한 대답을 모조리 상상해 보면서 그 방문을 대비했다.

베르날이 고려하지 못한 유일한 가능성은 자기를 고뇌의 삶으로 몰아넣은 그 우울한 소녀 대신에 어리석고 매우 수줍어하는 젊은 여자를 만날 것이라는 점이었다. 베르날은 배신감을 느꼈다 도착 순간의 흥분도 가라앉고, 어머니와 딸이 최근의 소식을 서로 교환하고 나서 날이 어두워지자, 시원한 밤바람을 즐기려고 모두 의자를 가지고 안뜰로 나갔다. 공중에 카네이션 향기가 짙게 떠돌았다.

베르날이 포도주를 마시자고 제의했고, 엘레나가 베르날을 뒤따라서 잔을 가지러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부엌에는 두 사람밖에 없게 되었다. 거기서 잠시 마주친 것이다. 베르날은 엘레나를 두 팔로 껴안은 채, 그 날의 모든 것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설명했다. 그날 아침에 자기는 잠이 덜 깬 상태였고,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으며, 엘레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거나 욕할 의향은 조금도 없었다. 제발 자기를 동정해서 용서해 주면, 자기가 제정신이 들고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한평생처럼 보이는 오랜 세월 동안, 자기의 피에 불을 지르고 정신을 중독시킨 엘레나에 대한 욕정의 불길이 끊임없이 자기를 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명을 한 것이다.

엘레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입을 딱 벌린 채 쳐다보기만 했다. 사악한 소녀라니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가? 엘레나에게 어린 시절은 아득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절당한 첫사랑의 고통은 기억 한구석에 밀폐되어 있었다. 과거의 어느 특정한 목요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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