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하리에트
미스 하리에트
Guy de Maupassant
사륜마차에는 네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 이렇게 우리 일곱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중의 한 남자는 마부 옆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말의 보통 걸음으로 길이 꾸불꾸불한 큰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탕카르빌르의 폐허를 방문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에트르타를 출발한 우리들은 신선한 아침 공기 속에서 몽롱한 채 아직도 졸고 있었다. 특히 이런 사냥꾼들의 가상에 별로 익숙하지 못한 여자들은 날이 새는 감동에 무관심하여 줄곧 눈꺼풀을 내리뜨고 있거나, 고개를 기울이고 하품을 하거나 하였다. 가을이었다. 길 양쪽에는 벌거벗은 밭들이 펼쳐져 있었고, 서투르게 면도한 수염처럼 땅을 덮고 있는, 낫으로 벤 소맥과 귀리의 짧은 밑동으로 해서 노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안개 낀 대지는 연기를 내뿜는 것 같았다. 종달새들은 공중에서 노래하고, 다른 새들은 덤불 속에서 지저귀었다.
마침내 지평선 가장자리에서 새빨간 태양이 우리 앞에 솟아올랐다. 태양이 올라옴에 따라 점점 더 밝아졌고, 들판은 잠에서 깨어나고, 미소짓고, 몸을 흔드는 것 같았고, 또 침대에서 빠져나온 소녀처럼 하얀 잠옷 같은 안개를 벗어버리는 듯했다. 마부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에트라이유 백작이 소리쳤다. "아아니, 산토끼로군." 왼쪽으로 팔을 뻗쳐 토끼풀밭을 가리켰다. 그 짐승은 달아나 밭에 거의 몸을 숨겨버려서 커다란 귀만이 보였다. 그러다가 토끼는 경작지를 가로질러 도망을 치다가는 멈추고, 다시 미친 듯이 달리다가 방향을 바꾸고 또 걸음을 멈추고 하면서 불안하여 모든 위험을 살피고, 가야할 길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엉덩이 부분을 껑충거려 다시 달리기 시작하더니, 넓고 네모진 무밭 속으로 사라졌다. 남자들은 모두 잠이 깨어, 짐승이 달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르네 르마누아르가 말했다. "오늘 아침은 우리가 품위가 없군요." 그러고는 졸음과 싸우고 있는, 곁에 있는 자그마한 세렌느 남작 부인을 바라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 생각을 하고 계시군요, 남작 부인, 안심하세요. 토요일에나 돌아오실 겁니다. 아직 나흘 남았어요." 그녀는 졸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참 어리석기도 하셔라." 그러고는 혼수상태에서 벗어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보세요, 우리를 웃길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슈날씨, 당신에게 일어났던 사랑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세요, 당신이 하고 싶은 것으로." 아주 미남인 데다가 건장하고, 자기 체격에 매우 자부심이 강하면서 또한 사랑을 많이 받은 노화가 레옹 슈날은 길고 하얀 수염을 손에 쥐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잠시 깊이 생각을 해본 후에 갑작 엄숙해졌다. "즐거운 이야기는 못 됩니다, 부인들. 내 생애에서 가장 애통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나는 내 친구들은 이와 비슷한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때 스물다섯 살이었고, 노르망디 해안을 따라서 서투른 그림장이 흉내를 내고 있었습니다. "서투른 그림장이 흉내를 낸다."고 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풍경화나 습작을 한다는 구실 아래, 이 여인숙에서 저 여인숙으로 등에 배낭을 메고 떠돌아다니는 그런 유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유랑하는 생활보다 더 좋은 것을 나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어떠한 구속도 없고 근심도 없으며, 걱정도 없고 내일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유롭지요. 환상 이외에는 어떤 안내자도 없이, 눈을 즐겁게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조언자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시냇물이 마음을 끌면, 여인숙 주인의 문 앞에서 맛있는 감자 튀김 냄새가 나면 걸음을 멈춥니다. 때로는 참으아리 향기로 해서 선택이 정해지기도 하고 혹은 여인숙 딸의 순진한 눈짓으로 해서도 그리됩니다. 이런 시골풍의 애정을 조금도 업신여기지 마세요. 그 소녀들 역시 영혼이 있고 감각이 있으며 또한 통통한 뺨과 싱그러운 입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격렬한 키스는 힘차 값진 것입니다. 당신이 나타날 때 뛰는 가슴, 당신이 떠날 때 눈물짓는 눈, 그것은 너무도 흔하지 않은 것이고, 너무도 다정하고 값진 것이므로 그런 것들을 경멸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앵초가 가득한 도랑 속에서, 암소들이 자고 있는 외양간 뒤에서, 그리고 한낮의 열기로 아직도 미지근한 곳간의 짚덤불 위에서 데이트를 가졌었습니다. 탄력이 있으면서도 거친 몸에 걸쳤던 잿빛 나는 투박스러운 삼베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진하고 솔직한 애무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력적이고 품위 있는 여자들에게서 얻는 민감한 즐거움보다 그들의 솔직한 야만성에서 더욱 미묘한 것을 느끼게 되지요. 그러나 무턱대고 걷는 그런 걸으면서 특히 좋은 것은 들판, 숲, 일출, 황혼, 달빛 같은 것들이지요. 화가들로서는 그것은 대지와 같이하는 신혼여행입니다. 그 조용한 긴 데이트에서 대지 가까이에 홀로 있는 것입니다. 데이지와 개양귀비가 가득한 한가운데, 풀밭에서 잡니다. 그리고 눈을 뜨면, 태양에서 떨어지는 빛 아래로 정오를 알리는 뾰족한 종탑이 있는 작은 마을이 멀리 보입니다. 떡갈나무 밑둥에서 나와서 여리고 키가 크고 생명으로 반짝이는 풀잎 한가운데로 흐르는 샘물가에 앉습니다. 무릎을 꿇고 몸을 숙여 수염과 코를 적시는 차고 투명한 물을 마십니다. 마치 샘과 입술을 마주 대고 키스를 하는 것처럼 성적인 쾌락을 느끼면서 그것을 미시지요. 이따금 그 가느다란 물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구덩이라도 만나면 발가벗고 거기서 몸을 담급니다. 그리고 차고 감미로운 애무처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산뜻하면서도 경쾌하게 흐르는 물의 떨림을 살갗에 느끼지요.
언덕 위에 있으면 즐겁고, 연못가에 있으면 서글퍼집니다. 태양이 핏빛 구름의 대양 속에 잠길 때나 강에 붉은 그림자를 던질 때에는 흥분이 됩니다. 그리고 저녁때, 하늘 밑바닥을 지나는 달 아래에서, 대낮의 강렬한 빛 아래에서는 생각나지 않았던 갖가지 이상한 생각들을 하게 되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금년에 있는 바로 이 고장을 그렇게 방랑하다가, 나는 어느 날 저녁, 이포르와 에트르타 사이의 절벽 위에 있는 베누빌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해안을 따라 페캉으로부터 왔습니다. 그 해안의 백악질의 바위들이 불쑥 나온 부분이 바닷속으로 깎아질러 마치 성벽처럼 높고 똑바른 해안이지요. 나는 난바다의 짭짤한 바람속에서 낭떠러지의 가장자리에 돋아나는, 양탄자처럼 부드럽고 섬세한, 그 짧은 잔디밭 위를 아침서부터 걸어왔었습니다.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성큼성큼 걸으면서, 때로는 푸른 하늘에 날개로 흰 곡선을 그리는 갈매기의 둥글고 느린 도주를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녹색 바다 위에 떠 있는 고기잡이배의 갈색 돛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태평하고 자유로운, 행복한 하루를 보내곤 하였습니다.
여행객들을 재워주는 한 작은 농가를 알려주더군요. 시골 여자가 경영하는 여인숙 같은 것이었는데, 두 줄의 너도밤나무에 둘러싸인 노르망디식 마당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절벽을 떠나, 나는 커다란 나무들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이르렀고, 르카쉐르 할멈네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주름살이 많고 엄격해 보이는 늙은 시골 여자였는데, 언제나 경계심 같은 것을 가지고 마지못해 손님들을 받는 듯했습니다. 때는 5월이었습니다. 꽃이 핀 사과나무들은 향기로운 꽃들로 지붕을 이루어 마당을 덮고 있었고 사람 위로, 풀밭 위로 끝없이 덜어지는 장밋빛 작은 꽃잎들이 뱅글뱅글 돌면서 쉴 새 없이 비처럼 뿌려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물었지요. "저, 르카쉐르 부인, 방이 있나요." 자기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놀라 그녀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글쎄요, 모두 예약이 되어 있어요. 하여간 봅시다." 5분 후에 우리는 타협이 되었고, 나는 침대 하나, 의자 두 개, 테이블이 하나, 대야가 하나 있는 시골 방이 흙바닥에 배낭을 내려놓았지요. 그 방은 크고 연기로 가득한 부엌으로 통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유숙하는 사람들은 농가의 하인들과 과부인 주인 여자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손을 씻고 다시 나갔지요. 노파는 연기로 새카매진 냄비걸이가 걸려 있는 커다란 벽난로에서 저녁 식사를 위해 영계를 졸이고 있었습니다. "지금 여행객들이 있습니까."하고 그녀에게 물었지요.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나이 드신 영국 부인이 한 분 계세요. 그분은 다른 방에 묵고 계세요." 나는 하루에 5수를 더 낸다는 조건으로 날씨가 좋을 때에는 마당에서 혼자 식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 식탁은 문앞에 차려졌고, 나는 맑은 능금주를 마시면서, 나흘 전의 것이기는 하나 맛은 좋은 두꺼운 흰 빵을 씹으며, 노르망디 암탉의 기름기 없는 다리를 이로 잘게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길로 향한 숲의 울타리가 열리더니, 이상한 여자 한 사람이 집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무척 마르고 매우 키가 컸으며, 붉은 체크무늬의 스코틀랜드 숄로 몸을 너무 단단히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나들이용의 작은, 흰 양산을 든 기다란 손이 허리께어서 나타나 보이지 않았으면 팔이 없는 여자라고 생각되었을 겁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썩거리는, 둥글게 만 회색 머리단으로 둘린 미라 같은 그녀의 얼굴은,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컬 페이퍼를 하고 있는 훈제 청어를 연상하게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눈을 내리뜨고 재빨리 내 앞을 지나 초가집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이상한 출현이 내 그분을 돋우어주더군요. 그 사람은 바로 주인 여자가 말하던, 내 옆방에 있는 나이 든 영국 여자임에 틀림없었어요. 그날은 그 여자를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에트르타까지 내려가는 그 매혹적인 골짜기 속에 자리 잡고 있었을 때, 나는 갑자기 눈을 들면서 비탈의 꼭대기에 서 있는 어떤 이상한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마치 작은 깃발로 장식한 깃대 같았습니다. 그 여자였습니다. 나를 보자 그녀는 사라졌습니다. 나는 점심을 들기 위해 정오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괴팍한 늙은 여자와 사귀기 위해서 공동 식탁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인사에 대답도 하지 않았고, 내 자잘한 마음씀에조차도 무관심했습니다. 나는 끈덕지게 그녀에게 물을 따라주고, 열심히 요리 접시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고,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한마디의 영어가 그녀의 유일한 감사의 말이었지요. 그녀가 내 생각을 불안하게는 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상관하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사흘 후에 나는 르카쉐르 부인만큼이나 그녀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미스 하리에트였습니다. 여름을 지내기 위해 한촌을 찾아다니다가 6주일 전에 비누빌르에서 발걸음이 멎었는데,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식탁에서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고, 신교 포교의 작은 책을 내내 읽으면서 발리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녀는 그 책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사제 자신도 어린아이가 2수의 심부름값을 받는 조건으로 가져다준 네 권의 책을 받았답니다. 그녀는 이따금 갑자기 이런 말을 불쑥 주인 여자에게 하곤 하였지요. "나는 그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해요. 그분의 창조 속에서 그분을 찬미합니다. 그분의 모든 자연 속에서 그분을 경배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내 마음속에 그분을 지니고 있어요." 그러고는 어리둥절해 있는 그 시골 여자에게 전 세계의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준비해 둔 팜플렛을 하나 다시 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을에서는 그녀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그 여자는 무신론자입니다."하고 말했기 때문에 일종의 비난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사제는 르카쉐르 부인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단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죄인의 죽음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자를 완전한 관념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신론자, 이단자"라는 이 말은, 그 말의 분명한 의미를 몰라서 마음속에 의혹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런데다가 그 영국 여자는 부자고 집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일생을 보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왜 가족이 그녀를 쫓아냈을까요. 물론 그녀의 배교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상 그녀는 교리에 열광하는 그런 광신자들의 한 사람이었고, 영국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완고한 청교도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또한 늘고 착했으나 견디기 힘든 노처녀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여자들은 유럽의 모든 여인숙 주인의 식탁을 자주 방문하고, 이탈리아를 망치고, 스위스를 독살하고, 지중해의 매력적인 도시들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듭니다. 또한 그들의 이상한 괴벽, 화석처럼 굳어진 처녀의 품행, 그들의 표현할 수 없는 몸단장 그리고 밤에 상자 속에 그들을 미끄러뜨린다고 생각할 만한 어떤 고무 냄새 등을 어디에나 가지고 다니지요.
내가 여인숙에서 그런 여자 중의 한 사람을 알아보았을 때, 나는 밭에서 허수아비를 본 새들처럼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조금도 내게 혐오감을 주지 않을 만큼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시골 사람이 아니면 모든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적의를 품는 르카쉐르 부인은 이 노처녀의 넋잃은 태도에 대해서 일종의 증오 같은 것을 그의 편협한 머릿속에 느끼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이 여자를 지칭하는 말을 찾아냈는데, 그것은 확실히 경멸적인 말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녀의 입술에 오르게 되었는지, 또 어떤 확실치 않은 신비로운 정신 작용에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여자가 이렇게 말했던 겁니다. "저 여자는 신들린 여자예요." 그런 엄숙하고 감상적인 사람에게 꼭 맞는 그 말은 참을 수 없이 희극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나 자신조차도 그 여자를 "신들린 여자"라고 불렀고, 그녀를 보면서 이 음절을 아주 높은 소리로 말할 때에는 이상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나는 르카쉐르 할멈에게 묻곤 했습니다. "그래, 우리의 신들린 여자는 오늘 무엇을 하시나요." 그러면 시골 여자는 얼굴을 찡그린 채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리가 부러진 두꺼비 한 마리를 주워서 자기 방으로 가지고 가서는, 대야 속에다 넣고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붕대를 감아주는 것을 상상해 보시구려. 그것이야말로 신을 모독하는 일이지 뭡니까." 또 한 번은 벼랑 밑을 산책하다가, 방금 낚아올린 커다란 물고기를 도로 바다에 놓아주기 위해 그것을 샀던 일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뱃사람은 마치 그녀가 자기 주머니 속의 돈을 빼앗아간 것보다 더 화를 내면서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는 것입니다. 한 달이 지났어요, 그는 그 이야기를 하면 미칠 듯이 화를 내거나 심한 모욕감으로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었습니다. 오, 그래요. 미스 하리에트는 정말로 신들린 여자였습니다. 르카쉐르 할멈이 그런 별명을 붙인 것은 천재적인 착상을 한 것이지요. 젊었을 때 아프리카에서 군 복무를 했기 때문에 "사푀르"라고 불리는 외양간지기는 다른 의견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살 만큼 산 노인이지요." 만일 그 가엾은 노처녀가 알았더라면. 하녀인 셀레스트도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시중을 잘 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외국인이고 다른 종족이고, 다른 언어에다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요컨대 그녀는 신들린 여자였던 것이지요.
그녀는 자연 속에서 신을 찾고 신을 찬미하면서 들판을 헤매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덤불 속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나뭇잎들 사이로 뭔가 붉은 것이 보였기 때문에 나뭇가지들을 헤치니, 미스 하리에트가 그런 모습을 보인 것에 당황하여 몸을 일으키더군요. 마치 대낮에 뜻하지 않게 기습을 당한 부엉이처럼 질겁을 한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예요. 이따금 내가 바위 틈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면, 신호등처럼 벼랑가에 서 있는 그녀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햇빛으로 반짝이는 넓은 바다와 불처럼 붉게 물든 커다란 하늘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계곡 밑에서 유연한 걸음걸이로 빨리 걷고 있는 그녀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무언가 알지 못하는 것에 이끌려, 단지 내적인 심오한 기쁨에 만족하고 있는 그녀의 설명할 수 없는 수척한 얼굴, 계시를 받아 빛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녀에게로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또 종종 농가의 한구석에서, 사과나무 그늘이 진 풀밭에 앉아 무릎 위에는 작은 성경책을 펼쳐놓고 시선을 멀리 띄우고 있는 그녀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나는 넓고 부드러운 경치가 너무 좋아서 이 고요한 지방에 묶여 이제는 떠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무명의 농가에,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언젠가는 우리 자신의 육체로 비옥하게 될 좋고 건강하고 아름답고 푸른 대지 곁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만, 어쩌면 약간의 호기심이 또한 나를 르카쉐르 할멈 집에 붙잡아두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약간 이상한 이 미스 하리에트와 사귀고 싶었고 또 방황하는 늙은 영국 여자의 고독한 영혼 속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이상하게 사귀게 되었습니다. 나는 막 습작 하나를 끝마쳤는데, 그것은 내게 썩 괜찮아 보였고 또 사실 그렇기도 했습니다. 15년 후에 1만 프랑에 팔렸으니까요. 그것은 게다가 2 곱하기 2는 4라는 것보다 더 간단한 것이었고, 관학풍의 방식 밖의 것이었지요. 캔버스의 우측 전면에는 하나의 바위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무사마귀처럼 울퉁불퉁한 데다가 노랗고 붉은 갈색 해초로 뒤덮인 거대한 바위로, 그 위로는 햇빛이 기름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내 뒤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는 태양은 그 햇빛을 바위 위로 내리쬐면서 그것을 불같이 누렇게 태우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랬어요. 전경은 빛으로 현기증이 일 정도였고 불꽃이 타는 듯했으며 눈부시게 아름다웠지요.
왼쪽에는 바다가 있었는데, 푸른 바다도 아니었고 거무스름한 바다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초록빛이 돌면서고 젖빛이 나고 또한 짙은 하늘 아래에서 단단해 보이기도 하는 경옥 같은 바다였습니다. 나는 여인숙으로 그것을 가져가면서 춤이라도 출 만큼 그렇게 내 작품에 흡족해 있었습니다. 당장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오솔길 가장자리에 있던 암소에게 그것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소리 지르던 것이 생각나는군요. "여보게, 이것 좀 보라구. 이런 것은 흔히 보지 못했을걸." 집 앞에 다다르자마자, 목청껏 소리를 지르면서 나는 르카쉐르 할멈을 불렀습니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주인 할멈, 이리 와서 날 좀 봐요." 그 시골 할멈이 화서 멍청한 눈으로 내 작품을 바라보았으나 아무것도 알아보지를 못했고, 그것이 소를 그린 것인지 집을 그린 것인지조차 볼 줄 몰랐습니다. 미스 하리에트가 돌아와, 내가 여인숙 주인에게 그림을 보여주느라고 팔 끝에 캔버스를 들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내 뒤로 지나갔습니다. 그 신들린 여자는 그것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유의해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녀가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녀는 깜짝 놀라 갑자기 서더군요. 그것은 아마 그녀가 마음대로 공상하기 위해서 기어오르곤 했던 그 바위였던 모양이에요.
그녀가 너무도 악센트가 있고 기분 좋은 영국인의 "오오." 하는 말을 중얼거리는 바람에,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에게로 몸을 돌려 말했어요. "제 최근의 습작입니다." 넋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또 감동을 한 것 같기도 한 그녀가 중얼거렸습니다. "오, 선생님, 당신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방법으로 자연을 이해하시는군요." 맹세코 나는 여왕에게서 듣는 찬사보다도 더 감동이 되어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매혹당하고, 정복당하고, 패배했습니다. 명예를 걸고 말씀드립니다만, 나는 그녀를 껴안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여는 때처럼 나는 식탁에서 그녀 곁에 앉았습니다. 처음으로 그녀가 이야기를 했고, 높은 목소리로 자기 생각을 계속 들려주었습니다. "오, 나는 자연을 너무도 사랑한답니다." 나는 그녀에게 빵과 물과 포도주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녀가 이제는 미라 같은 미소를 살며시 지으면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식사 후에, 우리는 함께 일어나서 안뜰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아마 석양이 바다 위에 불을 붙이는 그 기가 막힌 저녁놀에 이끌렸던지, 나는 절벽 쪽으로 나 있는 울타리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방금 서로를 이해하고 결합한 두 사람처럼 만족하여 나란히 떠났습니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저녁이었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그런 저녁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즐거움이었고, 모든 것이 매혹적이었습니다. 풀 냄새와 해초 냄새로 가득한 훈훈하고 향기로운 공기는 그 야생의 향기로는 후각을, 바다의 짭짜름한 맛으로는 미각을, 파고드는 감미로움으로는 정신을 애무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아래로 1백 미터 되는 곳에서는 잔물결이 이는, 넓은 바다 위의 낭떠러지 가장자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입을 벌리고 가슴을 부풀려서 대서양을 지나온 그리고 우리 피부에 가볍게 스치는, 파도와의 긴 키스로 해서 소금기가 있는 이 시원하고 느린 바람을 들이마셨습니다.
체크무늬 숄로 몸을 감싸고 영감을 받은 것 같은 표정으로 바람에 이를 드러내고, 영국 여자는 바다로 가라앉는 거대한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앞에는 저 멀리 수평선에, 돛에 덮인 세 개의 돛대가 불타는 하늘에 그 윤곽을 그리고 있었고, 그보다 가까이에는 한 척의 증기선이 연기를 뿜으면서 지나갔는데, 그 증기선 뒤로는 수평선을 가로지르는 끝없는 구름이 남겨졌습니다. 공 같은 붉은 태양은 여전히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그것이 물에 닿자 뒤이어서 빛나는 태양 한가운데에, 마치 불의 창틀 속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배가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태양은 점점 깊이 가라앉아 대서양에 먹혀 들어갔습니다. 그것이 잠기고, 작아지고, 사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다만 그 작은 배만이 아득한 하늘의 황금빛 배경에 윤곽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미스 하리에트는 타는 듯한 낮은 종말을 열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확실히 하늘, 바다, 온 수평선을 포옹하고 싶은 터무니없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녀가 중얼거렸습니다. "오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다시 말했습니다. "한마리 작은 새가 되어 창공을 날아가고 싶습니다." 그녀는 자줏빛 숄 속에서 또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내가 종종 보았던 것처럼 절벽 위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습니다. 나는 내 그림책에 그녀를 스케치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넋을 잃은 상태의 풍자적 인물화 같았거든요. 나는 미소를 보이지 않으려고 몸을 돌렸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친구에게 말하듯이, 색조, 색가, 힘찬 맛 등을 직업적인 용어로 평가하면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주의 깊게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해하려고 애썼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의 의미를 알아맞히려고 애썼으며, 내 생각을 간파하려고 애썼습니다. 이따금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오, 알겠어요. 그것은 매우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이군요." 우리는 돌아왔습니다. 다음날은 그녀가 나를 알아보자 얼른 와서 손을 내밀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곧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종교적 열광 속으로 껑충 뛰어들어가는, 일종의 스프링이 달린 영혼을 지닌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50세가 되도록 처녀인 채로 있는 모든 여자들처럼 균형을 잃고 있었습니다. 시큼해진 순진 속에 젖어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속에 아주 젊고 불타는 그 무엇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너무 오래된 술처럼 발효된 열렬한 사랑으로, 인간들에게는 조금도 주어본 적이 없는 관능적인 사랑으로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였습니다. 젖을 먹이는 암캐를 보았을 때, 다리 속에 망아지를 거느리고 작은 목장 안을 달리는 암말을 보았을 때, 커다란 머리에 몸을 완전히 벌거숭이인 채 부리를 벌리고 삐약거리는 울고 있는 새끼들로 가득한 새의 보금자리를 보았을 때 격심한 감동으로 그녀의 가슴이 설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공동 식탁을 떠도는 쓸쓸하고 고독하고 불쌍한 자들이여,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애처롭고 불쌍한 자들이여, 그녀를 알고 나서부터 나는 그대들을 사랑하노라.
얼마 안 있어 그녀가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는 감히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수줍음을 조소하고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그림 도구 상자를 짊어지고 떠날 때면, 그녀는 마을 끝까지 나를 따라오곤 하였습니다. 말없이, 분명히 근심스러운 태도로 시작할 말을 찾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곁을 떠나 깡충깡충 뛰는 걸음걸이로 빨리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그녀는 용기를 냈습니다. "선생님이 그림을 어떻게 그리시는지 보고 싶군요. 그럴 수 있을까요. 저는 매우 호기심이 많거든요." 그러고는 마치 극히 대담한 말이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프티 발의 밑바닥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에는 커다란 습작을 시작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녀는 내 뒤에 서서 주의를 집중하여 내 몸짓 하나하나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마 나를 방해할까 봐 두려워서 그랬는지 "고맙습니다."하고는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그녀는 더욱 친숙해졌으며, 눈에 띌 정도로 기뻐하면서 매일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접는 의자를 팔에 끼고 가져왔는데, 내가 그것을 들고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그녀는 내 곁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꼼짝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거기에 앉아, 내 붓끝이 움직이는 순간순간을 눈으로 좇고 있었습니다. 칼로 불쑥 칠한 어떤 커다란 물감의 반점으로 뜻하지 않았던 정확한 효과를 얻을 때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놀라움과 기쁨과 감탄으로 짤막하게 "오오"하는 소리를 내곤 하였지요.
그녀는 내 그림에 대해서 감동적인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의 작품의 한 작은 부분을 인간이 재현하는 데 거의 종교적인 경의를 품고 있었던 것이지요. 나의 습작들이 그녀에게는 성화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이따금 그녀는 나를 개종시키려고 애쓰면서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오, 그녀의 선량한 하느님이란, 큰 재주도 없고 큰 능력도 없는 일종의 마을의 철학자 같은 묘한 호인이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눈앞에서 저질러지는 불의에 슬퍼하는 신을 상상하기 때문이지요. 마치 그가 그것을 막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하느님과 훌륭한 관계를 맺고 나서는, 그의 비밀과 그의 모순에 대한 속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는 마치 하사가 신병에게 "연대장님의 명령이다."하고 알리는 것처럼 "하느님이 원하신다." 라든지 "하느님이 원하시지 않으신다." 하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녀가 내게 일깨워주려고 애쓰는 신의 뜻을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그녀는 마음속으로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매일같이 주머니 속에서, 땅에 내려놓았을 때의 모자 속에서, 그림물감 상자 속에서, 아침에 방문 앞에 놓아둔 약칠한 구두 속에서 그녀가 아침에 천국에서 직접 받았을 작은 신앙 팜플렛을 찾아내곤 했습니다. 나는 마음으로부터 진실하게 그녀를 옛친구로 대우하였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녀의 태도가 약간 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을 경계하지 않았어요. 내가 골짜기 속에서나 어떤 움푹 팬 길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면, 그녀가 갑자기 나타나 빠르고 박자를 맞추는 듯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마치 그녀는 뛰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어떤 깊은 감동이 그녀를 뒤흔들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털썩 주저앉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너무도 얼굴이 빨갛게 닳아 올라 있었는데, 그것은 어떤 다른 민족도 가지지 못하는, 영국적인 붉은 빛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이유도 없이 창백해지고, 흙빛이 되어, 거의 기절할 듯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다시 본래의 얼굴 모습을 되찾고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말하는 도중에 일어나 달아나 버리는데, 그것이 너무도 급작스럽고 이상스러워서 내가 그녀의 기분을 거슬리게 했나, 혹은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볼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나는 그것이 그녀의 정상적인 태도며, 우리들이 사귀게 된 처음에는 아마 내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약간 달라진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바람을 맞으면서 해안을 몇 시간 거닐다가 농가로 돌아올 때면, 나선형으로 꼬인 긴 머리카락은 풀어져서 용수철이 부러진 것처럼 매달려 있을 적이 많았습니다. 전에는 그런 것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녀의 자매 같은 미풍에 그렇게 머리칼이 흐트러진 것에 거의 개의치 않고 스스럼없이 식사를 하러 오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남포 등피라고 부르는 머리의 매무새를 고치기 위해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언제나 그녀를 화나게 만드는 친숙하고 달콤한 말로 "오늘은 별처럼 아름답습니다, 미스 하리에트"하고 말하자, 그녀의 뺨에는 약간의 홍조가 올랐는데, 그것은 소녀의, 열다섯 살 난 소녀의 발그레한 빛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거칠어져서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러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지요. "이것은 발작이다.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면, 그녀는 일부러 꾸민 냉담한 태도로, 은근히 화가 난 태도로 내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퉁명스럽고 초조해하였으며, 신경질적이 되었습니다. 나는 식사 때밖에는 그녀를 볼 수 없었고, 우리는 이제 거의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무엇인가 그녀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이라고 정말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에 그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미스 하리에트, 어째서 예전처럼 나와 함께 있지 않는 겁니까. 내가 당신을 불쾌하게 해드린 일이라도 있습니까. 당신 때문에 많이 괴롭군요." 그녀는 아주 우습게 화난 억양으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예전과 똑같이 당신과 함께 있어요. 정말 그렇지 않아요, 정말 안 그래요." 그러고는 자기 방으로 달려가 그 안에 틀어박히는 거예요.
그녀는 이따금 나를 이상한 태도로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종종, 사형수가 최후의 날을 통고받았을 때 그렇게 쳐다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의 눈에는 어떤 신비하고도 격렬할 광기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이, 어떤 열과, 실현되지 않는 그리고 실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초조해하고 무력해하고 흥분하는 욕망이 깃들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그녀의 마음이 억누르려고 하는 어떤 알 수 없는 힘과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또 다른 것이. 내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무엇을 내가 알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정말로 이상한 새 사실이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나는 매일 아침 새벽부터 다음과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찔레와 나무들이 무성한 두 경사지에서 굽어다 보이는, 험하게 깎아지른 깊숙한 협곡은 길게 뻗어 나가다가 동이 틀 무렵에 우윳빛 안개 속에, 이따금 골짜기 위로 떠도는 솜 같은 것 속에 잠겨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짙고 투명한 안개 깊숙이에서 한 쌍의 인간, 한 젊은이와 처녀가 얼싸안고 입을 맞추면서 오는 것이 보입니다. 아니, 차라리 그럴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여자는 남자 쪽으로 머리를 쳐들고, 남자는 여자 쪽으로 몸을 숙이고 입술과 입술을 마주 대고 있는 것입니다. 첫 햇살이 나뭇가지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새벽의 안개를 꿰뚫고, 시골의 연인들 뒤에서 장밋빛으로 반사되어 비치면서, 그들의 어렴풋한 그림자를 은빛의 밝음 속으로 지나가게 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정말 근사했습니다. 나는 에트르타의 작은 기로 이르는 내리막길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은 다행하게도 나에게 필요한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 무엇이 유령처럼 내 앞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미스 하리에트였습니다. 나를 보자 그녀는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소리쳐 불렀습니다. "오세요, 이리 오세요. 당신에게 보여드릴 작은 그림이 있습니다."
그녀는 마지못한 듯 다가왔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스케치를 내밀었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꼼짝 않고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눈물과 많은 씨름을 벌이다가,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서, 지금껏 견디어내던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신경질적인 경련을 일으키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그 슬픔에 내 자신이 감동이 되어 나는 발작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는 갑작스러운 감정의 동작으로 그녀의 두 손을 잡았습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이 더 바른 프랑스인의 순수한 동작이었지요. 그녀는 잠깐 동안 내게 손이 잡힌 채로 있었습니다. 그녀의 모든 신경이 비틀리는 것처럼 손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손을 빼냈습니다. 아니, 차라리 뽑아냈다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느껴보았기 때문에 그 떨림을 알아보았습니다. 내 생각은 전혀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 여자가 열다섯 살이든 쉰 살이든, 서민층의 여자든 사교계의 여자든, 여자의 사랑의 떨림은 곧장 내 마음으로 오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이해하는 데 주저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의 가엾은 온 존재는 흔들리고 떨리고 질려버렸습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기적 앞에서 놀라고,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비탄에 잠겨 있는 나를 남겨두고, 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렸습니다.
나는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웃고 싶은 만큼 울고 싶기도 해서, 벼랑가를 산책하러 갔습니다. 그 뜻밖의 일은 우습기도 하고 가련하게도 생각되었는데, 내게는 우습게 느껴졌으나 그녀는 미칠 정도로 불행하게 생각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자문해 보았습니다. 떠나는 수밖에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장에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약간 침울하고, 약간 생각에 잠겨 저녁 식사 때까지 떠돌아다니다가 식사 시간에 들어갔습니다. 모두들 습관대로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미스 하리에트도 거기에 있었는데,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눈도 들지 않은 채 엄숙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보통 때의 얼굴과 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고는 주인 여자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저, 르카쉐르 부인, 곧 여기를 떠날까 합니다." 그 마음 좋은 여자는 놀라고 또 섭섭해서 느릿느릿한 단조로운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 여기를 떠나신다구요. 선생님과 친해졌는데요." 나는 힐끗 미스 하리에트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린 하녀 셀레스트는 방금 내 쪽으로 눈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얼굴빛이 붉고, 생기가 돌고, 말처럼 튼튼했으며, 또한 드물게 깔끔한 열다섯 살의 뚱뚱한 처녀였습니다. 나는 몇 번 구석진 곳에서 키스를 하였지만, 그것은 여인숙을 찾아다니는 사람의 습관에서 그런 것이지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났습니다. 나는 사과나무 밑으로 담배를 피우러 가서는, 안뜰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이리저리 거닐었습니다. 낮에 했던 그 모든 생각들, 아침의 이상한 발견, 나에게 집착하는 기괴하고도 열정적인 사랑, 그 뜻밖의 사실에 뒤이어 오는 추억들, 즐겁고도 마음을 어지럽히는 추억들, 또한 내가 떠난다는 것을 알렸을 때 내게로 던져진 하녀의 시선, 이 모든 것이 섞이고 결합되어 내 육체에는 활기찬 기운을 돌게 하고, 입술에는 콕콕 찌르는 듯한 키스의 느낌을 주었으며, 혈맥 속에서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어리석은 짓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었습니다. 나무 아래로 그늘을 스며들게 하면서 밤이 왔습니다. 나는 울타리의 다른 쪽에 있는 닭장을 닫으러 가는 셀레스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녀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갔습니다. 암탉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작은 뚜껑 문을 내리고 그녀가 몸을 일으켰을 때, 나는 그녀를 품안에 가득히 안고 그녀의 크고 살찐 얼굴에 우박 같은 애무를 퍼부었습니다. 그녀는 몸부림을 쳤으나, 그래도 웃으면서 그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왜 나는 그녀를 격렬하게 놓아버렸을까요. 왜 나는 어떤 충격으로 돌아보았을까요. 어떻게 나는 내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까요. 그것은 여인숙으로 들어가고 있던 미스 하리에트였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보고, 마치 유령을 본 것처럼 꼼짝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나는 수치스럽고 당황했으며, 그녀가 마치 어떤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나를 발견한 것보다 더욱 절망적으로 느껴져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비참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기 않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마 잘못 생각한 것이겠지요. 또한 몇 번이고 누가 집안을 걸어 다니고 있는 것같이 생각되었고, 또 밖으로 나 있는 문을 여는 것같이도 생각되었습니다. 아침 무렵에 피곤이 나를 짓눌러, 마침내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느지막이 잠에서 깼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아직도 창피스러웠고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몰랐습니다.
미스 하리에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르카쉐르 할멈이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보았으나, 그 영국 여자는 나가고 없었습니다. 그녀는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기 위해서 종종 그랬듯이 새벽부터 나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말없이 식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날씨는 더웠습니다. 매우 더웠습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 그런 몹시 뜨겁고 무더운 날이었습니다. 식탁을 밖으로, 사과나무 밑으로 끌어다 놓았습니다. 이따금 사푀르가 능금주의 단지를 가득 채우려고 지하 저장실로 갔습니다. 그만큼 마셔댔던 것이지요. 셀레스트는 부엌에서 요리 접시를 가져왔습니다. 요리는 감자가 들어있는 양고기 스튜와 기름에 튀긴 토끼고기와 샐러드였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우리 앞에다 계절의 첫물인 버찌 접시를 놓았습니다. 그것들을 씻어 차게 하려고, 나는 하녀에게 아주 찬 물을 한 양동이 길어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5분 후에 우물이 말랐더라고 하면서 돌아왔습니다. 두레박 줄을 전부 내려보냈더니 들통은 바닥에 닿았지만 빈 것으로 다시 올라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르카쉐르 할멈은 자기가 확인하고 싶어서, 우물을 들여다보려고 갔습니다. 그녀는 돌아와 우물 속에 무엇인가가, 예사로운 것이 아닌 무엇인가가 보인다고 알렸습니다. 이웃 사람이 앙갚음으로 짚단을 던져넣은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보다 잘 분간해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나 또한 들여다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물가에서 몸을 구부렸습니다. 나는 어렴풋이 하얀 물체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일까. 줄 끝에 칸델라를 달아 내려보낼 생각을 했습니다. 노란 불빛이 돌 안쪽 벽에서 춤을 추면서 조금씩 깁이 들어갔습니다. 우물에서 네 사람이 몸을 굽히고 있었고, 사푀르와 세레스트도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칸델라는 희기고 하고 검기도 한, 이상하고 분간하기 어려운 어떤 알 수 없는 덩어리 위에서 멎었습니다. 사푀르가 소리쳤습니다. "말이에요, 말굽이 보여요. 지난밤에 목장에서 도망쳐 나와 여기에 빠졌을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나는 뼛속까지 소름이 끼쳤습니다. 방금 사람의 발을, 이어서 쳐들려 있는 다리를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몸 전체와 다른 다리는 물속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아주 낮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칸델라 불빛이 그 구두 위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출 정도로 그렇게 심하게 떨고 있었습니다. "여자예요. 그는 그는. 저 안에 있는 사람은. 미스 하리에트예요." 사푀르만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이런 것을 많이 보았거든요.
르카쉐르 할멈과 셀레스트는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뛰어 달아났습니다. 죽은 사람의 인양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나는 하인의 허리를 단단히 묶고, 이어서 도르래의 방식으로 아주 천천히 그를 내려보냈으며, 그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한 손에는 칸델라를 또다른 손에는 밧줄을 쥐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땅의 한복판에서 나오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멈추세요."하고 소리쳤습니다. 나는 그가 물속에서 무엇인가를 건져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쪽 다리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두 발을 함께 동여매고는 다시 소리 질렀습니다. "잡아당기세요." 나는 그를 끌어올렸습니다. 그러나 내 팔이 부러진 것 같았고, 근육에는 힘이 빠진 것같이 여겨졌습니다. 나는 끈을 놓쳐 그를 떨어뜨릴까 봐 겁이 났습니다. 그의 머리가 우물 가장자리 돌에 나타나자, "그래, 어때" 하고 물었습니다. 마치 그가 거기, 밑바닥에 있는 여자에 대한 소식을 전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우물 가장자리 돌 위에 올라서서 마주 본 채 우물 입구에 몸을 수그리고, 시체를 끌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르카쉐르 할멈과 셀레스트는 집 벽 뒤에 숨어, 멀찍이서 우리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의 검정 구두와 흰 양말이 우물 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자, 그녀들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사푀르가 두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고는 가장 불손한 자세로 그 가엾고 순결한 처녀를 발목부터 끌어올렸습니다. 얼굴은 까매지고 찢겨져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긴 회색 머리는 완전히 매듭이 풀어져 있었으며, 물에 흥건히 젖어 진흙투성이가 된 채 늘어져 있었습니다. 사푀르가 경멸하는 투로 말했습니다. "제기랄, 지독히도 말랐군." 우리는 시체를 그녀의 방으로 옮겼습니다. 두 여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외양간지기와 함께 죽은 사람을 위한 화장을 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일그러진 슬픈 얼굴을 씻겨주었습니다. 손가락이 스치는 바람에 한쪽 눈이 조금 벌어졌는데, 그 눈은 창백한 시선으로, 차디찬 시선으로, 시체의 그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그 눈은 생명 뒤에서 오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할 수 있는 한 정성들여 손질하였고 또 서투른 솜씨로 그녀의 이마 위에다 새롭고도 이상한 머리 모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물에 젖은 옷을 벗겼는데, 마치 내가 신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치심을 느끼면서 그녀의 어깨, 가슴 그리고 나뭇가지만큼이나 가느다란 긴 팔을 조금씩 드러내게 하였습니다. 그다음에는 개양귀비, 수레국화, 데이지 같은 꽃들과 싱싱하고 향기로운 풀을 찾으러 갔고, 그것을 그녀의 장례의 잠자리에 덮어주었습니다. 그녀 곁에는 나 혼자뿐이라서 내가 관례의 격식을 수행해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주머니 속에서 마지막 순간에 쓴 편지가 한 장 발견되었는데, 그 유서는 그녀가 마지막 나날을 보냈던 이 마을에 매장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어떤 무서운 생각이 내 가슴에 죄어들었습니다. 그녀가 이곳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닐까. 그날 저녁 무렵에는 이웃의 수다스러운 여자들이 고인을 보러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방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녀 곁에 나 혼자 있고 싶어서였습니다. 나는 온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나는 촛불 밑에서, 모든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 불쌍한 여자, 이렇게 먼 곳에서, 이렇게 애처롭게 죽은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어느 곳에 친구들을, 친척들을 남겨두었을까. 그녀의 어린 시절, 그녀의 일생은 어떠했을까. 마치 집에서 쫓겨난 개처럼 길을 잃고 헤매면서 그렇게 혼자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볼품없는 육체 속에는, 모든 감정과 사랑을 그녀에게서 멀리 쫓아내었던 우스꽝스러운 외양인 이 육체 속에는 어떤 고통과 절망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이 많습니까. 나는 가혹한 자연의 영원한 부당함이 이 인간이라는 피조물을 짓누르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장 불우한 자들을 지탱케 해주는 것, 한 번은 사랑받는다는 희망도 어쩌면 가져본 적이 없이 그녀로서는 끝이 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그녀는 그렇게 숨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피했겠습니까. 왜 그녀가 모든 사물들과, 인간이 아닌 모든 생물들을 그렇게 정열적인 애정으로 사랑했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그녀가 신을 믿고 있었다는 것과 자기의 비참함의 보상을 다른 곳에서 바랐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녀는 이제 부패되어 갈 것이고 또한 이번에는 식물이 될 것입니다. 그녀는 햇빛을 받아 꽃을 피울 것이고, 암소들에 의해 뜯어먹힐 것이며, 새들에 의해 씨앗으로 실려가고, 그리고 짐승의 살이 되어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두운 우물 밑바닥에서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괴롭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생명을, 그녀가 돋아나게 할 다른 생명들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이 불길한 무언의 대담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희미한 빛이 새벽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더니 한 줄기 붉은 햇살이 침대에까지 미끄러지듯 스며들어와, 시트와 두 손 위에 빛의 줄무늬를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잠이 깬 새들이 나무에서 노래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온 하늘이 우리를 볼 수 있도록 커튼을 열어젖혔습니다. 그러고는 차디찬 시체 위로 몸을 굽혀, 모습이 흉해진 얼굴을 두 손으로 붙들고, 천천히, 무서움도 불쾌함도 없이,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그 입술에 키스를. 긴 키스를 했습니다.
레옹 슈날은 입을 다물었다. 여자들은 울고 있었다. 마부석에서는 에트라이유 백작이 연방 코를 풀었다. 마부만이 졸고 있었다. 그리고 말들은 이제 채찍을 느끼지 않게 되어서, 걸음을 늦추고 무기력하게 마차를 끌고 있었다. 그래서 대형 사륜마차는 마치 슬픔을 실은 듯이 갑자기 무거워져, 이제는 간신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