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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사는 법

Bollnow 2024. 4. 18. 05:15

숨어 사는 법

Gabriel Garcia Marquez

 

119, 일요일, 로스 카라카스 해안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그곳에 파트리시오 케리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파트리시오 케리는 아르헨티나 혁명 동맹의 지도자인데, 지난해 9, 여장을 하고서 칠레 교도소에서 탈옥한 인물이다. 해수욕을 즐긴 다음에 케리는 사람의 눈을 피하는 데는 아무래도 부적합할 정도로 고급스럽고, 나무랄 데 없는 검정 알파카 양복을 입고서, 그날 온종일 동반하고 있던 여성과 3시간에 걸쳐서 춤에 열중했다. 댄스 홀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로부터 72시간 이내에 그의 사진을 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한 사람 그것이 바로 케리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저녁때가 되자 파트리시오 케리와 그 수수께끼의 동반자는,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을, 나무랄 데 없는 스카이블루의 시보레를 타고서 카라카스 시가지로 돌아갔다.

운전대는 케리가 잡았다. 일요일의 정체 속을 그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일종의 강한 의지를 숨긴 운전으로 교묘히 빠져나갔다. 카라카스 거리를 구석구석까지 다 알고 있는 듯한 운전태도였다.

그날 밤 케리는 사반나 그랑데의 그랑 카페에서 아페리티프를 마셨다. 웨이터는 그를 그의 이름으로 '세뇨르 케리'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웨이터는 상대방이 저 파트리시오 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웨이터에게는 석양 속에서 위스키 소다를 마시고 있는 인심 좋아보이는 손님, 붙임성 있고 개방적인 세뇨르 케리와, 4개월 전에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신문을 대문짝만한 표제와 사진으로 충격적으로 장식했던 저, 마치 영화 같은 탈옥극의 주인공과는 전혀 연결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파트리시오 케리는 카라카스에 오고 나서도 가짜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본명 그대로 사용했다. 숨거나 위장하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전에 두 번 방문한 적이 있어서 거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극히 보통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극장에도 갔었다.

많은 손님이 붐비는 인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자주 갈 때는 일주일에 세 번이나 영화관에 가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바아에 가는 생활을 했다. 그 바아에서 텔레비전의 프로에도 능통하게 되었다.

지난주에는 토요일 오후 5시 반, 아파트에 필요한 것을 사러 상점가에 나가 군중 속에 몸을 드러냈다.

여러 기회에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람들중 적어도 몇 사람은, 적어도 한 번쯤은 그의 사진을 신문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 정체를 간파하는 일은 없었다.

여러 정부로부터 추적당하고 있는 인물, 13회나 탈옥을 하고, 자기 나라에서는 페론 대통령이 실각한 후, 죽을 위험에 처해 있던 인물,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필사적으로 쫓아다니고 있는 인물이 타마나코 호텔의 댄스 홀로 토요일 밤에 일부러 춤을 추러 오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케리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은 채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 몸을 숨겼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것은 자만에서 오는 대담한 행동도 아니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파트리시오 케리 방식의 작전이었다. 일상생활의 심리에 관한 그의 깊은 인식을,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까지 철저하게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경찰이 그의 신병을 추적하여 3천만개의 집을 가택 수색하고 있는 동안, 케리는 3일 밤이나 계속해서 유니온 크럽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그 중 한번은 경찰 서장으로부터 불과 몇미터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한번도 숨은 적이 없었다. 또한 얼어버릴 것만 같은 남위 42도에 있는 리오 가제고스 교도소를 탈출하고나서부터 카라카스에 도착할때까지 사용한 7종류의 변장은 결코 일시적인 기분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것이나 모두 상황을 매우 명철하게, 그리고 의식적이고 과학적으로 판단한 결과였다.

모험 활극과 같은 정도로 어려운 탈옥이지만 실제로 모험 활극과 같은 점은 털끝만티도 없었다. 케리는 단번에 자물쇠를 부순 일도 없지만, 폭력에 의해서 교도관을 쓰러뜨린 적도 없다.

작년 9, 여자로 변장하고 칠레의 교도소를 탈출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폭풍과도 같은 데모를 조직하는 기술이 뛰어난 케리가 그 경험을 탈옥에 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도망은 교도관들의 습관을 여러 날 동안 관찰하고, 지적인 분석을 냉정히 해낸 결과였던 것이다.

우선 1개월 동안 한 여자가 매일 면회를 하러 왔다. 직무에 충실한 교도관들은, 시간이 정확한 그 여자의 방문 습관에 곧 익숙해졌다. 그녀는 언제나 시계처럼 정확히 730부에 면회 왔다가 825분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 파트리시오 케리는, 여자처럼 행동하는 길고 어려운 훈련을 시작했다. 우선 하이힐을 신고 걸어가는 법을 익히고, 그리고나서 여자가 교태부릴때의 극히 미묘한 몸짓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될때까지 연습했다. 그리고 여성다운 매력적인 목소리를 내는 방법도 배웠다.

탈옥하기 1주일 전에 해당하는 920, 신병 인수 수속을 추진하고 있는 산티아고 주재 아르헨티나 대사로부터 칠레 정부에 대하여, 파트리시오 케리가 탈옥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연락이 있었다. 교도소 측은 이 경고를 받고서, 교도소 내에서 가장 불길한, 통칭 파티오 시베리아, 즉 총살용 벽앞의 한쪽 구석으로 케리의 신병을 옮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730분의 여자 -케리가 면회의 상대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는 또 한 여자를 데리고 왔다. 교도관들에게 교태를 부려 정신을 빼앗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하루 대부분을 독서로 보내고, 참을성 없이 거칠게 구는 일이 한 번도 없는 평화적이고 마음씨 고운 수형자를 감시하는 직무를 맡고 있는 남자 두 사람, 그들은 여자들과 잠시 즐기기 위하여 30분 정도라면 자리를 뜰 것이라고 분석한 파트리시오 케리의 예측은 틀림없었다.

928730, 예의 여자 두 사람이 교도소에 들어왔다. 이 순간 이후, 일 분 일 분은 모두 정확히 계산되어 있었다. 이전부터 왔던쪽 여자 -그녀는 30회나 되는 방문으로, 복장이나 머리칼 색깔로부터 시간의 정확성이나 걸음걸이에 이르기까지 경비원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는 서둘러 잘 알려져 있는 복장과 가발을 벗었다. 또 한 여자는 교도관들에게 저녁 식사 약속을 하느라 바빴다. 탈옥 계획에서는 8분 이내에 케리의 화장을 끝내야 한다고 계산되어 있었다. 여자라면 좀 더 짧은 시간에라도 끝낼 수가 있겠지만, 케리는 남자로 머리칼이 짙은 색깔이기 때문에, 무대 배우의 나이를 젊게 보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전용 크림으로 숨겨야 하는 것이다. 그 화장은 7분에 끝났다. 여기까지 걸린 합계 시간은 18분이었다.

두 여자는 여느 때처럼 825분에 교도소를 나갔다. 최근에 와서 면회 오는 여자 쪽은, 그날 밤 교도관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또 한 여자는 길모퉁이에서 세 사람과 헤어져, 거기에서 정확하게 34미터를 걸어서 정차해 있던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것이 파트리시오 케리였다. 그가 입은 옷의 본래 소유자는 그들이 나간 뒤 2분 후, 경비가 없는 입구로 교도소를 나왔다. 교도소장이 캐리를 사형수로 독방으로 옮기려고 찾아간 것은 그로부터 30분 후였다.

네 대의 자동차를 갈아타고 가장 안전한 아지트에서 일상생활로

그날 밤에는 칠레의 모든 국경 경비소에 경계경보가 내려지고, 300채의 집이 가택 수색을 당하고, 전국에는 모든 방송을 통하여 케리의 인상착의가 상세하게 전해졌으며, 탈옥 공모 용의자로 18명이 체포되었다. 케리가 사용한 가발과 화장 도구는 우루과이인 시인 블랑카 루스의 집에서 발견되어, 그녀는 체포되었다. 그녀가 여자 감화원에 연행되고 있던 바로 그때, 산티아고 전역에서 추적당하고 있는 이 사나이는 시의 중심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변장하지 않은 채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달걀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실제로 케리는 블랑카 루스의 집에는 한 번도 들르지 않았다.

교도소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탄 자동차는 도망에 사용한 네 대 중 한 대에 불과했다. 각 자동차의 운전사는 자신이 달려야 할 루트는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다음 자동차가 도달할 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첫 번째 자동차 안에서 케리는 가발을 벗어 버렸다. 두 대째에는 화장을 지우는 도구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자동차 속에는 남자용 옷과 위조 서류와 돈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 마지막 자동차를 직접,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바아로 끌고 가서, 거기서 케리는 자신의 탈옥을 전하는 최초의 임시 라디오 뉴스를 들었던 것이다.

산티아고의 일반 시민 생활 속에 숨고 나자 잠잘 곳을 선택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케리는 이 도시에, 뒷문이 있는 아파트를 세 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경찰은 그가 자고 있는 방문을 부수고 들어왔지만, 케리는 1분 전에 모습을 감추었던 것이다. 그러한 일도 있을 거라고 경계하여, 도망자 케리는 침대를 사용하지 않고 살았다. 그 때문에 경찰이 발견한 것은 깨끗이 정돈된 채 사용된 흔적이 없는 차가운 침대뿐이었다.

탈옥한 뒤 6일째, 산티아고 당국은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했다. 그날 오후에 출항한 '바다의 여왕', 1등 침대 25호실에 세 명의 여자가 승선하고 있는데 정보에 의하면, 그중 한 여자가 사실은 케리라는 것이었다.

헬리콥터 부대가 출동하여, 해상에 있는 배에 쫓아가서 산티아고로 회항하라고 명령했다. '바다의 여왕'호는 그날 밤중에 헬기콥터 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항구로 되돌아왔지만, 그때 케리는 영화 '라 프라타 강의 전투'에 실망하며 영화관을 나오는 참이었다. 그리고 이내 새로운 침실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고, 달빛 아래 거대한 버드나무가 슬픈 듯이 가지를 내려뜨리고 있었다. 이 새로운 은둔처란 묘지였던 것이다.

"저 가엾은 케리 씨를 만나면......"

여행을 떠나기 위한 준비로 케리는, 자신의 국외 추방을 결정한 올티스 산도발 판사의 관리 하에 놓여 있는 자기 물건을 몇 가지 되찾기로 결심했다.

"특별히 심한 짓을 해줄 생각은 아니다. 사람은 행위의 중요도에 따라 리스크를 각오하는 존재니까."하고 케리는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병을 아르헨티나 정부에 인도하는 책임자인 공복의 사택에 잠입하는 행위는 그에게 있어서 어떠한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감행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목적은 자녀 두 아이, 즉 아들과 딸의 사진을 되찾는 일이었다. 그것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처음으로 가장 무도회 파티에 갔을 때 촬영한 사진으로, 아들이 카우보이, 딸이 요정으로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

굴뚝 청소부로 가장한 케리가 올티스 산도발 판사 집에 잠입한 것은 어느 목요일 오후 330, 하인들의 허락을 얻고서였다. 나중에 기소당하게 된 하인들은 그때까지 겨울 내내 사용하던 굴뚝이기 때문에 10월이 되어 굴뚝 청소를 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케리는 아이들의 사진, 즉 구리액자가 붙은 컬러 사진 2장을 되찾았지만, 내친김에 자신을 추적하고 있는 판사를 위해 봉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굴뚝을 청소해 주었던 것이다.

산티아고시를 브레이크가 고장 난 시보레 트럭을 타고서- 떠나기 전에, 케리는 신사의 의무를 완수하고 가기로 했다. 시인 블랑카 루스에게 감사의 말을 하기 위하여 신부로 가장하고 여자 감화원을 방문했던 것이다. 면회는 교도관 두 명이 지켜보고 있는 속에서 56분 동안이나 지속됐다. 그날 밤, 남쪽 나라의 봄의 시작을 알리는 선선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속에서 케리는 산티아고를 떠났던 것이다. 여러 시간에 걸쳐서 파트리시오 케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스스로의 모험을 열렬히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그의 인격을 이해하는 열쇠는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초조해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는 데 있는 것 같았다. 칠레 북부에서 대담하고 행운에 넘친 자유에로의 여행 이야기는 거의 밀리미터 단위의 치밀한 계산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웅변, 이쪽이 당황해 버릴 정도의 예의 바름, 개방적인 몸짓, 손짓에도 불구하고 비할 데 없는 엄격한 자기 감시를 끊임없이 행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간파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칠레 북부를 불확실한, 그리고 머나먼 자유로 향하여 여행을 계속한 59일 동안, 그 자기 감시의 힘 없이는 추적자를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행운에 혜택받은 적도 있었다. 볼리비아 쪽의 국경에서 그의 국회 탈출을 저지하러 왔던 원정 부대가 푸나의 고원에서 길을 잃어 헤맸던 데 반하여, 케리는 단 한 번도 계획한 도정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잠시 쉬어 갔던 농가의 부인은, 되풀이되는 라디오 뉴스에 깊은 감명을 받고, 케리 본인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두들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저 가엾는 케리 씨를, 저라면 우리 집에 숨겨 주고 싶어요."

그 말을 듣고 케리는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이 행운스런 만남에 의해서 자유에로의 여행이 훨씬 쉬워진 것은 확실했다.

카라카스에 오기 전에 케리는 잠시 파나마에 체류했다. 거기까지와서도 교도소에 되돌아가지 않도록 케리는 그 특유의 이상하기까지 한 계산 감각을 발휘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해군의 함장 마리오 바스케스라는 이름을 사칭함으로써 의혹을 물리쳤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파나마에서 보통의 정기편에 승선하여 카라카스로 왔다.

좋고, 끈기가 있으며, 빈틈이 없어서, 정치적 책략 때문이든, 밀회를 위해서든, 포커 게임이나 매스컴의 인터뷰를 하는 곳에서든, 자신의 단점과 장점 모두를 가장 심각한 상황 하의 일순간에 응축시켜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어려웠던 옥중의 몇 개월도, 조숙하여 노련하게 이끌었던 생활도, 눈에 보이는 형태로는 그의 얼굴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있다. 바로 보이는 그대로 나이는 38세이다. 험프리 보가트와 같이 여자들로부터 숭배받고 있는 이유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 바로 파트리시오 케리라는 남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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