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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聖女)

Bollnow 2024. 4. 18. 05:14

성녀(聖女)

G. G. Marquez

 

22년이 지난 후 나는 마르가리또 두아르떼를 다시 만났다. 그는 뜨라스떼베레의 어느 조그마한 샛길에서 갑자기 나타났는데, 나는 그의 어눌한 스페인어와 세련된 고대 라틴어의 구사로 처음 마주쳤을 때는 그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는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 있었다. 안데스 지식인의 음산한 품행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고, 처음 로마에 올 때 입었던 검은색의 상복도 입고 있지 않았으나, 대화를 나누는 중에 부실한 지난 세월들이 조금씩 되살아나면서 나는 예전의 그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비밀스러움, 예측 불허, 석공의 고집스러움, 우리들이 예전에 이용했던 바에서 두 번째 커피를 마시기 전에 나는 마음 속에서 들쑤시는 질문을 기어이 하게 되었다.

성녀는 어떻게 됐소?”

저기 저 쪽에 있습니다.” 나에게 대답했다. “여전히 기다리고 있죠.”

오직 테너 가수인 라파엘 리베로 실바와 나만이 그의 대답에 들어 있는 엄청난 인간적인 고뇌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그의 극적 사건을 많이 알게 되면서 마르가리또 두아르떼가 소설가들이 일생 동안 기다리며 찾는 인물이라고 수년 동안 생각했지만 그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교황 삐오 12세가 의사들과 마술사들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치지 못한 딸꾹질로 고통을 받았던 눈부신 그 해 봄 로마에 왔다. 그는 콜롬비아를 가로지르는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똘리마라는 가파른 비탈 마을을 처음으로 떠나 왔는데, 잠자는 모습에서까지도 그가 그곳 출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첼로를 낳는 케이스라고 생각되는 크기와 모양의, 광택을 낸 소나무로 만든 가방을 들고 우리 영사관에 출두했고, 영사에게 이 여행의 놀랄 만한 이유를 끄집어냈다. 그래서 영사는 자국민인 우리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여인숙에 방 하나를 구해주도록 테너 가수 리베로 실바를 전화로 불렀다. 이렇게 해서 나는 그를 알게 되었다.

마르가리또 두아르떼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자신이 능력껏 구한 많은 책들을 열정적으로 읽은 덕분에 그의 문학적 자질은 상당했다. 시청의 서기로 근무하던 시절에 그는 한 아름다운 소녀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열여덟 살에 첫딸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그 딸은 엄마보다 더 예뻤지만 일곱 살 되던 해에 열병으로 죽었다. 그러나 마르가리또 두아르떼의 진짜 이야기는 댐을 건설하기 위해 마을 공동묘지를 이장해야만 했을 때, 즉 그가 로마에 도착하기 여섯 달 전에 시작된다. 지역의 모든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마르가리또는 새로운 묘지로 이장하기 위해 죽은 부인과 딸의 유골을 파냈다. 부인은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있었다. 반대로 옆에 있는 딸의 무덤은 매장한 지 11년이 지났는데도 시체가 썩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관 뚜껑을 열었을 때 그는 매장할 때 같이 넣어 둔 장미가 여전히 신선한 냄새를 풍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더욱더 놀라운 것은 시체가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불가사의한 외침과 함께 모여든 많은 구경꾼들로 마을이 꽉 찼다.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시체가 부패하지 않은 것은 명백히 신성한 징후였고, 주교까지도 이와 같은 기적을 바티칸의 판결에 맡기는 것에 동의했다. 따라서, 마르가리또 두아르떼로 하여금 이미 자신의 것만도 아니고, 좁은 마을도 아닌 한 나라의 문제가 된 사건을 가지고 로마에 가서 성자 품신을 받게 하기 위해 모금 운동이 시작되었다.

빠리올리 지구에 있는 여인숙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하는 동안, 마르가리또 두아르떼는 맹꽁이 자물쇠를 열고 솜씨 있게 만든 트렁크의 뚜껑을 열었다. 이렇게 해서 테너 가수 리베로 실바와 나는 그 기적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것은 세상의 수많은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라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땅 밑에서 오랫동안 계속해서 드레스를 입고 잠이 든 소녀 같았다. 피부는 매끄러웠고 따뜻했다. 그리고 뜨고 있는 눈은 투명했는데, 죽음에서 우리들을 보고 있다는 견딜 수 없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융단과 가짜 레몬꽃으로 만든 왕관은 피부처럼 좋은 상태로 세월의 가혹함을 견뎌 내진 못했으나, 그가 손수 넣어 준 장미들은 싱싱함을 유지했다. 실제로 소나무로 만든 가방의 무게는 시체를 꺼냈는데도 차이가 없었다.

마르가리또 두아르떼는 도착한 다음 날부터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능력보다 인정이 많은 더 많은 외교관의 도움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그에게 일어나는 바티칸의 많은 장애물들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전략을 동원해 행동했다. 절차는 아주 간단했지만, 신청자는 엄청나게 많았고 점차 그것이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많은 종교 단체들과 관심은 기울여 주지만 놀라지는 않는 박애적인 단체들과 접촉했다. 그들은 즉각적인 행동을 취해 줄 것을 약속했지만 결코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사실 인심이 그렇게 좋은 시절은 아니었다. 뛰어난 모든 의학 수단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보내 온 신비스런 모든 종류의 약으로 교황의 딸꾹질이 나을 때까지 성자 품신과 관계되는 모든 일들은 뒤로 미루어졌다.

결국 7월에 교황 삐오 12세는 건강을 회복하여 가스뗄 깐돌포로 여름 휴가를 떠났다. 마르가리또는 성녀를 보여 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제1 주말 접견실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교황은 마르가리또가 잘 정돈된 그의 손톱을 볼 수 있고 라벤더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아주 낮은 발코니가 있는 안쪽 정원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마르가리또가 고대했던 것처럼 그는 자신을 보기 위해 전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 사이를 돌지 않았고, 같은 내용의 연설을 6개 국어로 하고는 일반적인 강복으로 끝냈다.

오랜 망설임 끝에 마르가리또는 일들을 개인적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거의 60쪽이나 되는 편지를 손으로 써서 비서실로 보냈으나 그것에 대한 회신은 받지 못했다. 그는 그것을 예견했다. 형식적으로 그 편지를 접수한 직원은 죽은 소녀의 시체를 사무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근처를 지나가던 직원들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이 그것을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세계 도처에서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시체의 신성화를 신청하는 편지가 800통 이상이나 몰려왔다고 한 직원이 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마르가리또는 마지막으로 시체가 무게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직원은 그것을 확인해 주었으나 용인하지는 않았다.

집단적인 암시의 경우인 것 같군요.” 직원은 말했다.

부족한 자유 시간과 무미건조한 여름의 어느 일요일에 마르가리또는 자신의 주장과 관계 있다고 생각되는 여러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매월 말경에는 자기 마을의 납세자들에게 아주 정확하고 적절한 경비를 청구하기 위해 최고 서기의 달필로 학교 노트에 자신의 세세한 지출 내역을 독창적으로 적었다. 그는 연말이 되기도 전에 로마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마치 그 곳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알게 되었고, 자신의 안데스 스페인 어에 못지않은 이탈리아 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열성식(列聖式) 과정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음산한 옷, 그리고 그 시절 로마에 고백할 수 없는 목적을 가진 비밀스런 단체에 전형적이었던 법관들이 입는 것과 비슷한 조끼와 모자를 벗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침 일찍부터 성녀의 관을 들고 나갔다가 때때로 저녁 늦게 지치고 처량하게 돌아왔지만, 항상 다음 날을 위한 새로운 원기를 충전시키는 듯한 광채를 띠었다.

성자들은 자기 자신의 시대에 삽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실험 영화 센터에서 공부를 하려고 로마에 와 있었고, 잊을 수 없을 만큼의 강도로 그의 고난을 지켜 보았다. 사실 우리들이 사는 숙소는 빌라 보르게제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현대식 아파트였는데, 그 아파트의 여주인은 방 두 개를 자기가 쓰고 외지 학생들에게 네 개를 세 주었다. 우리는 그녀를 마리아 벨랴라고 불렀다. 그녀는 친절했고 중년의 충만함은 기질적이었으며, 항상 각각의 사람들은 자기 방 안에서만큼은 절대자라는 신성한 원칙에도 충실했다. 사실 일상적인 생활을 도맡아 하는 사람은 그녀의 언니 안또니에따 숙모였다. 그녀는 낮에 일을 하는 날개 없는 천사였는데, 가능한 한 대리석 바닥에 광을 더 내려고 대걸레와 짚으로 만든 빗자루를 들고 온 집 안을 다녔다. 그녀는 전쟁 때 나쁜 습관이 몸에 밴 자신의 남편 바르똘리노가 잡은 노래하는 새끼 새들을 먹는 법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었고, 노자가 부족하여 마르가리또가 마리아 벨랴 부인집의 하숙비를 낼 수 없게 되자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살도록 했다.

규칙 없는 그 집의 생활 방식은 마르가리또의 천성에 맞지 않았다. 빌라 보르게제의 동물원에 있는 사자의 무섭게 울부짖는 소리가 우리들을 깨우는 새벽녘부터 시간마다 우리에겐 경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테너 가수 리베로 실바는 자신의 새벽 노래 연습에 대해 로마 사람들이 언짢아하지 않는다는 특권을 얻었다. 그는 아침 6시에 일어나 건강을 위해 냉수욕을 하고, 메피스토펠레스(:독일 전설에서 파우스트가 혼을 팔았던 악마)의 턱수염과 눈썹을 다듬었다. 그리고 중국산 비단 목도리와 화장수를 바르고 겨자무늬가 들어간 실내복을 입고 정신과 육신을 몰두해 노래 연습을 했다. 겨울 별들이 아직 떠 있었지만 그는 방 안 창문을 활짝 열었고, 위대한 사랑을 노래한 아리아의 진행되는 악구를 정상적인 목소리로 부를 때까지 목소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갖는 기대감은 가슴에서 나오는 소리를 냈을 때 땅이 울리는 울부짖음으로 빌라 보르게제 동물원의 사자가 대답하는 것이었다.

너는 성 마르꼬스의 화신이다, 나의 아들아.” 정말로 놀란 안또니에따 숙모가 외쳤다. “오직 그만이 사자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어느 날 아침 그에게 대답을 한 사람은 사자가 아니었다. 테너 가수는 오델로의 사랑의 이중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Gia nella notte densa s'estingue ogni clamor." 갑자기 정원 안쪽에서 아름다운 소프라노 목소리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테너 가수는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고, 억제할 수 없는 사랑의 격류로 자신의 집들을 신성하게 만들기 위해 창문을 열어 놓은 이웃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두 목소리는 완벽한 화음을 이루었다. 보이지 않는 상대역이 다름 아닌 위대한 마리아 카닐리아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테너 가수는 기절하기 직전의 상태였다.

집 안 생활에 동참하도록 마르가리또 두아르떼에게 동기를 부여한 것은 그 사건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안또니에따 숙모가 거의 매일같이 그녀의 전문 요리인 노래하는 새 스튜로 그를 달래 주는 부엌이 아니라 공동으로 사용하는 테이블에서 모든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식후에 마리아 벨랴는 이탈리아식 발음에 익숙해지도록 우리에게 일간지를 읽어 주었고, 우리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는 독단과 재치 있는 소리로 뉴스들을 완결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캐도친파 신부들을 묻는 공동묘지에서 발굴해 낸 남자들, 여자들과 아이들, 많은 주교들의 부패하지 않은 시체들을 소장하고 있는 커다란 박물관이 팔레르모라는 도시에 있다고 말했다. 그 소식은 마르가리또를 조바심 나게 만들었고, 우리들이 팔레르모에 갈 때까지 그는 한시도 평온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안도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표정하게 미라가 진열된 으스스한 통로를 스쳐 지나가며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같은 경우가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이것들은 죽어 있다고 금방 느껴져요.”

점심 식사 후 로마는 8월의 혼수 상태에 빠졌다. 정오의 태양은 하늘의 중앙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오후 2시의 침묵 속에서 로마의 자연의 목소리인 물 흐르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러나 저녁 7시경 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창문들이 갑자기 열렸다. 활기에 넘친 군중들이 오토바이의 폭발음, 수박을 파는 다른 사람들의 외침과 발코니의 꽃 사이에서 나는 사랑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의도가 없다는 듯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테너 가수와 나는 낮잠을 자지 않았다. 우리들은 그의 스쿠터를 타고 갔는데, 그가 운전을 하고 나는 뒷자석에 앉았다. 우리들은 충만한 태양으로 잠을 자지 못하는 관광객들을 찾아다니면서 빌라 보르게제의 오래된 월계수 밑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어린 창녀들에게 주려고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을 가져갔다. 그 시절 거의 대부분의 이탈리아 여인들처럼 파란 오간데와 붉은 포플린, 녹색 리노로 만든 옷을 입은 그녀들은 아름답고 불쌍하고 귀여웠는데, 햇볕을 차단하려고 최근 장마로 좀벌레가 먹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자기네 직업의 규칙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들과 함께 있는다는 것은 인간적인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퉁이에 있는 바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커피를 마시러, 혹은 빌린 호화 마차를 타고 공원의 좁은 길을 산책하러, 혹은 갈로빠또리오(:말타는 곳)에서 해거름에 말을 타는 비극적인 연인들과 왕위에서 쫓겨난 왕들을 애석해 하려고 우리들과 함께 가기 위해서 단골손님을 기꺼이 버렸다. 우리들은 길을 잃은 어떤 미국 사람의 통역을 여러 번 해주었다.

우리가 마르가리또 두아르떼를 빌라 보르게제로 데려간 것은 그녀들 때문이 아니라 사자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사자는 깊은 구덩이로 둘러싸인 무인지경의 작은 섬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사자는 반대 편에서 우리를 식별하자마자 감시원을 놀라게 할 정도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공원의 관광객들은 놀라서 달아났다. 테너 가수는 가슴에서 나오는 아침 성량의 소리로 사자들의 울음소리와 맞추려고 했으나, 사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구별하지 않고 우리들 모두에게 울부짖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감시원만은 사자가 마르가리또만을 향해 울부짖는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가 움직이는 곳을 따라 사자도 움직였고, 그가 몸을 숨기자마자 울부짖는 소리를 멈추었다. 시에나 대학 출신의 고전 문학 박사였던 감시원은 마르가리또의 몸에 밴 냄새로 보아 그가 그날 다른 사자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 외에 다른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아무튼,” 그는 말했다. “그것은 싸우려고 으르렁거리는 것이 아니라 동정의 소리입니다.”

반면 태너 가수 리베로 실바에게 인상을 준 것은 그 초자연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라, 공원에 있는 소녀들과 이야기하려고 멈추었을 때 마르가리또가 보였던 감정이었다. 그는 테이블에서 한편으로는 장난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하겠다는 투로 그것을 말했는데, 우리들은 자신의 외로움을 해결하도록 마르가리또를 도울 수 있는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우리들 마음에 감동된 연약한 마리아 벨랴는 성서적 가모장의 태도로 가짜 반지를 낀 자신의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나는 어진 사랑으로 그것을 하겠어.” 그녀는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결코 조끼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

이렇게 해서 태너 가수가 빌라 보르게제로 간 것이 오후 2시였다. 그리고 마르가리또 두아르떼에게 1시간 동안의 좋은 동반자가 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어린 창녀를 스쿠터 뒷자석에 태워 왔다. 자신의 방에서 그녀의 옷을 벗겨 냄새가 좋은 비누로 목욕을 시키고 닦은 다음 화장수를 그녀에게 뿌렸다. 그리고 면도 후에 사용하는 개녹나무 분을 몸 전체에 발라 주었다. 마지막으로 이미 지난 시간에 대한 화대와 앞으로의 2시간에 대한 몸값을 지불하고 그녀에게 앞으로 해야 될 일을 세세히 지시했다.

알몸의 아름다운 어린 창녀는 낮잠을 잘 때처럼 어두스름한 집안을 발끝으로 걸어가 안쪽에 있는 방문 앞에서 부드럽게 노크를 두 번 했다. 맨발에다 웃통을 벗은 마르가리또 두아르떼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여학생의 목소리와 억양으로 말했다. “테너 가수가 나를 보냈어요.”

마르가리또는 위엄 있는 태도로 노크 소리에 응답했고, 그녀가 들어오도록 문을 크게 열어주었다. 그리고 예의를 갖추어 그녀를 맞이하려고 급하게 신발과 옷을 입는 동안 그녀는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는 그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놀란 소녀가 서두르라고 그에게 말했다. 1시간만을 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세상에서 존재하기 어려운 가장 참을성이 있는 남자이기 때문에 어쨌든 그가 원한다면 시간에 상관하지 않고,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함께 있겠다고 그녀가 나중에 말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른 채 방 안을 눈으로 살펴보았고, 벽난로 위에 놓여 있는 나무로 된 가방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섹스폰이냐고 물었다. 마르가리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빛이 들어오도록 블라인드를 조금 열고 가방을 침대로 가져와 뚜껑을 열었다. 소녀는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나중에 우리들에게 이야기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 엉덩이가 얼어붙었어요.” 그녀는 공포에 떨며 도망쳤으나 복도에서 길을 잃어버렸고, 내 방 전등에 전구를 갈아 끼우려던 안또니에따 숙모와 마주쳤다. 그것은 두 여자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 소녀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테너 가수의 방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안또니에따 숙모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아주 놀라서 내 방에 들어왔는데, 손이 떨려서 전구를 갈아 끼우지 못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이 집에 귀신이 나타났어.” 나에게 말했다. “지금은 대낮인데도 말야.” 전쟁 동안 테너 가수가 사용하는 방에서 독일군 장교가 사랑하는 연인을 목 잘라 죽였다고 그녀는 확언하듯이 나에게 말했다. 안또니에따 숙모는 일하는 중에 복도를 걸어 다니는 아름다운 피살자인 그녀의 출현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했다.

지금도 방금 복도에서 알몸뚱이로 걸어 다니는 그녀를 보았어.” 그녀는 말했다. “아주 닮았어.”

도시는 자신의 가을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름에 꽃이 만발했던 테라스들은 첫 바람이 불자 문을 닫았다. 테너 가수와 나는 카를로 칼카그니 백작에게 사사를 받는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그리고 영화 학교에 다니는 몇몇 동료들과 가끔씩 저녁을 먹는 뜨라스떼베레 거리에 있는 낡은 주점으로 돌아왔다. 영화 공부를 같이하는 동료들 중에 가장 근면한 사람은 똑똑하고 친절한 그리스 사람인 라키스였다. 그의 유일한 단점은 사회 부정에 대한 고리타분한 성토였다. 다행히 테너 가수들과 소프라노 가수들은 거의 항상 목청껏 부르는 오페라의 단편으로 그것을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자정 이후까지도 어느 누구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밤을 새는 몇몇 지나가는 사람들은 합창에 동참했고, 옆집 사람들은 박수를 치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어느 날 밤 우리들이 노래를 하고 있는데, 마르가리또는 우리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발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들어왔다. 그는 교황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라테라노의 산 조반니의 본당신부에게 성녀를 보여주고 나서 여인숙으로 다시 가져갈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소나무 가방을 들고 있었다. 가방을 외떨어진 테이블 밑에 놓고 우리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앉아 있는 그를 곁눈으로 보았다. 항상 밤 12시 정각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은 주점이 한가해지기 시작할 무렵에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그리고 모든 친구들과 함께 여러 테이블에 모여 있었다. 그들 사이에 마르가리또 두아르떼도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그가, 조용하고 슬픈 콜롬비아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없었다. 이 궁리 저 궁리 하던 리키스는 첼로를 다룰 수 있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나는 그가 아주 잘못된 질문을 하는 것에 흠칫 놀랐다. 나처럼 아주 거북해 한 테너 가수도 상황을 정정하지 않았다. 마르가리또만이 자연스럽게 질문에 대답했다.

이것은 첼로가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이것은 성녀입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맹꽁이 자물쇠를 끌러 뚜껑을 열었다. 놀람의 섬광이 식당 안을 전율케 했다. 다른 손님들, 웨이터들, 그리고 피로 범벅이 된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불가사의를 쳐다보는 것에 아연실색했다. 부엌에서 일하는 여자 하나가 경이로움에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를 했다.

하지만 처음의 감동이 지나가자 우리 시대의 신성에 대한 불충함에 대해 우리들은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다 분규를 일으켰다. 물론 라키스가 가장 과격했다. 최종적으로 분명하게 남은 유일한 결론은 성녀를 주제로 비평적인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나는 확신해.” 그는 말했다. “늙은 세자레가 이 소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늙은 세자레란 우리들의 플롯과 시나리오 스승으로 영화 역사에 대한 위대한 스승 가운데 한 분이며, 우리들과 학교 밖에서 사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세자레 사바티니(: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영화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 인물.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 <구두닦이> 등의 대본을 썼다)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들에게 일에 대해서만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보는 다른 방법도 가르쳐 주려고 했다. 그는 플롯들을 생각하는 기계였다. 그것은 거의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반짝이듯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주 다급해서, 항상 큰 소리로 그것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영화로 만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오직 그 작업이 끝났을 때에만 원기가 빠졌다. “그것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군.” 그는 말하곤 했다. 화면에서 그는 마력적인 원작이 많이 삭제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제별로 정리되고 벽에 핀으로 꽃아 둔 카드에다 아이디어를 적었는데, 그러한 카드가 그의 집에 있는 방 하나를 가득 채웠다.

그다음 토요일 우리들은 마르가리또 두아르떼와 함께 그를 만나러 갔다. 그는 인생에 있어 탐욕적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안헬라 메리치 거리에 있는 그의 집 문 앞에서 우리가 전화로 이야기한 아이디어에 조바심이 난 그를 만났다. 그는 평소처럼 우리에게 상냥하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준비해 놓은 테이블로 마르가리또를 데려갔고, 그 스스로 가방을 열었다. 그때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예견했던 대로 목이 잠기는 대신에 그는 정신적인 마비 증상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아마사(:감탄사)!” 놀라서 소리쳤다.

그는 약 2~3분간 조용히 성녀를 보았다. 그리고는 스스로 상자를 닫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치 한 어린 소년에게 첫 번째 발자국을 떼게 하는 것처럼 마르가리또를 문 쪽으로 안내했다. 그의 등을 몇 번 두드려 주며 작별을 고했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그에게 말했다. “신께서도 자네 노력에 동반해 줄 걸세.” 그는 문을 닫고 우리들 쪽으로 돌아서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영화로 만들기엔 부적합해그는 말했다.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을 거야.”

이 놀랄 만한 그의 견해는 돌아오는 전차 안에서까지 우리의 논란거리였다. “그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면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어.” “이야기가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해.” 하지만 마리아 벨랴는 사바티니가 그날 밤에 마르가리또를 빼고 우리를 만나겠다고 쓴 전갈을 우리에게 전했다.

우리들은 그의 작업 구상 시간에 그를 만났다. 라키스는 두세 명의 같은 반 친구들을 데려갔지만, 그는 문을 열고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미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그는 소리쳤다. “마르가리또가 소녀를 부활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킨다면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칠 거야.”

영화 속에서요, 아니면 실생활에서요?” 그에게 물었다.

그는 난처함을 억누르며 나에게 멍청히 굴지 마라고 했다. 그러나 이내 우리들은 그의 눈에서 억누를 수 없는 아이디어의 섬광을 보았다. “실제 생활에서 그녀를 부활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아.” 그리고 진지하게 덧붙였다.

그것은 줄거리를 다시 만들기 전에 보여주는 즉각적인 유혹일 뿐이었다. 그는 손바닥을 치고 연기를 하면서, 또 큰 목소리로 영화 대사를 암송하면서 마치 행복한 미치광이처럼 집 안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새장에서 탈출해 집 안 전체를 미친 듯이 날아다니며 안광을 발하는 새들과도 같은 상상을 보고 있다는 느낌으로 당혹해하며 그의 말을 들었다.

어느 날 밤,” 그는 말했다. “그를 환영하지 않았던 약 20명의 교황들이 이미 죽었을 때, 늙고 지친 마르가리또가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 상자를 열고 죽은 소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한다. ‘네 아버지의 사랑으로, 어린 딸아. 일어나서 걸어라’.”

그는 우리 모두를 쳐다보며 승리의 몸짓으로 결말을 지었다.

소녀가 일어난다!”

그는 우리에게서 무엇인가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주 당혹해 있어서, 무슨 말을 해야 될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스 출신의 라키스만이 학교에서처럼 발언권을 얻기 위해 손가락을 세웠다.

나로서는 그걸 믿을 수 없는데요.” 그리고 놀랍게도 사바티니에게 직접 다가갔다. “미안합니다, 선생님. 하지만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사바티니가 놀랄 차례였다.

왜 믿을 수 없다는 거지?”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라키스가 옹색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맙소사!” 그는 그때 마을 전체에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스탈린주의자들을 싫어한다네. 현실을 믿지 않는다는 것 말야.”

15년이 지난 후, 그가 나에게 말해 준 바에 의하면, 마르가리또는 성녀를 보여 줄 기회가 있을까 하여 그녀를 가스뗄 깐돌포로 데려갔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200여 명의 순례자들이 들어찬 알현실에서 밀리고 팔꿈치에 채이며 정이 두터운 교황 후안 23세에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폭력 사태의 예방책으로 입구에 다른 순례자들의 자루와 함께 그녀를 놓아 두어야만 했기 때문에 성녀를 그에게 보여 줄 수가 없었다. 교황은 군중들 사이에서 가능한 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용기를 북돋우듯이 손으로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굉장하군, 나의 아들.” 그에게 말했다. “너의 불굴의 의지에 신께서 상을 내릴 것이다.”

진정으로 그의 꿈이 실행되기 바로 직전이라고 느낀 때는 미소 짓는 알비노 루시아니의 짧은 치세 동안이었다. 마르가리또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교황의 한 친척이 자신이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틀 후 점심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마르가리또에게 온 속달 전보를 가지고 하숙집 문을 노크했다. ‘로마에서 떠나지 마세요. 목요일 전에 바티칸에서 개인 접견을 하기 위해 부르게 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장난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마르가리또는 농담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방심하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만일 화장실에 가야만 할 때에는 큰 소리로 그것을 알렸다. “화장실에 갑니다.” 노년에 막 접어들어 항상 자비로운 마리아 벨랴는 여유 있는 여인의 큰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알고 있어요, 마르가리또.” 그녀는 소리쳤다. “교황이 당신을 부르면 이야기할게요.”

다음 주 전보에서 알려 준 목요일이 되기 이틀 전에 마르가리또는 문 밑에 넣어져 있는 신문 제목을 보고 쓰러졌다. 교황의 죽음. 실수로 배달된 지나간 신문이라는 환상이 잠시 동안 어정쩡하게 그를 지탱하게 했다. 달마다 교황이 죽는다는 것은 믿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했다. 33일 전에 교황으로 선출된 온화한 미소의 알비노 루시아니는 자신의 침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마르가리또 두아르떼를 알게 된 지 22년이 지난 후 나는 로마에 다시 돌아왔다. 어쩌면 우연히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에 대해 기억조차 못 했을 것이다. 나는 어느 누구를 생각하기 위한 시간 여유도 없이 너무 많이 억눌려 살아왔다. 미지근한 국물처럼 축축한 비가 끊임없이 내렸고, 예전의 반짝이는 불빛은 탁하게 변해 있었다. 나의 향수를 유지하게 했던 예전에 내가 살았던 지역은 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하숙집은 예전 그 모습이었으나, 아무도 마리아 벨라의 이야기를 해 주지 못했다. 몇 년 전에 나에게 보내 준 테너 가수 리베로 실바의 여섯 자리 전화번호를 돌려도 응답이 없었다. 나는 새로운 영화계 인사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던 도중에 나의 스승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누군가가 굳이 말을 할 때까지 갑작스런 침묵이 잠시 동안 테이블 위에 날개를 펄럭였다.

사바티니? 누구더라.”

그건 맞는 말이었다. 아무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빌라 보르게제의 나무들은 빗줄기 밑에서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슬픈 공주들이 있던 갈로빠또리오는 잡초로 뒤덮여 있었고, 옛날의 아름다운 여인들은 마놀라스의 복면한 양성 인간들로 대체되었다. 동물들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은 탁한 물에 둘러싸여 있는 섬에서 옴이 오르고 감기에 걸린 늙은 사자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에스빠냐 광장의 주점에서 노래하지 않았고, 사랑 때문에 죽지도 않았다. 우리들의 향수에 남아있는 로마는 시저들의 고대 로마 안에 있는 과거의 다른 로마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멀리서 들려 오는 것 같은 어떤 목소리가 뜨라스떼베레 거리의 조그마한 샛길에서 급히 나를 멈추게 했다.

안녕하십니까? 시인 선생.”

늙고 지친 그였다. 그동안 다섯 명의 교황이 죽었고, 영원할 것 같은 로마는 쇠퇴의 첫 번째 징후를 보였다. 그리고 그는 계속 기다렸던 것이다. “너무 많이 기다려왔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움으로 거의 4시간을 함께 보낸 후 작별을 고하며 나에게 말했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 일들일 겁니다.” 그는 군화와 늙은 로마 인의 색 바랜 모자를 쓰고 썩기 시작하는 빗물 웅덩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길 중앙부로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갔다. 그때, 언젠가 그런 의심도 해보았지만, 성자가 바로 그라는 데 대해 나는 어떠한 의구심도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자기 딸의 썩지 않는 육신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열성식의 진정한 대의를 얻기 위해 이미 20년이 넘게 싸워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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