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기다림
하루의 기다림
E. Hemingway
아이는 우리가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창문을 닫으러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몸이 괴로워 보였다. 전신을 달달 떨며 얼굴이 창백하였으므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파서 천천히 걷는 것이었다.
"샘스야, 웬일이냐?"
"머리가 아파요."
"그럼 자리에 누워있어야지."
"괜찮아요. 이까짓 것쯤이야 뭐."
"그러지 말고 어서 가서 누워있어라. 내 옷 입고 가볼게."
그런데 내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에도 아이는 여전히 옷을 입은 채, 난롯불 가에 앉아 있었다. 아이는 올해 아홉 살 난 소년이다. 나는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대어 보았다. 열이 있다는 것을 대뜸 알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어라."
하고 나는 말하였다.
"괜찮아요."
의사가 다시 체온을 재어 보았다.
"102도인데요."
의사는 아래층에 내려가서 색깔이 각각 다른 캡슐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약과 처방 지시서를 남겨 두고 갔다. 하나는 열이 내리는 약, 하나는 설사약, 또 하나는 위가 쓰리고 산(酸)이 많아지는 것을 억제하는 약이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유행성 감기의 세균은 속이 쓰리고 산이 많을 때에만 일어난다고 한다. 그는 유행성 감기에 대해서는 깊은 학술적인 지식을 지닌 듯이 보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열이 104도만 넘지 않으면 적정할 것은 없다고 했다. 이번 경우는 유행성 감기로는 증세가 가벼워 폐염으로 번지지 않으면 괜찮다는 것이었다.
나는 방에 돌아가서 아이의 체온을 기록하고 약을 먹일 시간표를 만들었다.
"책이라도 읽어 줄까?"
"괜찮아요."
얼굴은 무척 창백하였으며, 눈 아래 검은 자죽이 보였다. 아이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아무 일에도 마음을 팔지 않았다.
나는 호워드 파일이 쓴 <해적> 이야기책을 소리높여 읽어 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듣고 있지 않았다.
"샘스야, 좀 어떠냐?" 나는 물었다.
"이직 그래요."
나는 침대 옆에 앉아 혼자서 책을 읽으면서 약 줄 시간을 기다렸다. 아픈 몸이라 잠이라도 둘 것 같은데, 돌아보니 이상한 눈초리로 침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좀 자려므나. 약 먹을 시간이 되면 내가 깨울게."
"오히려 자지 않는 게 편해요."
아이는 얼마 후에 말하였다.
"아빠, 성가시면 여기 있지 않아도 돼요."
"아냐, 성가시다니. 난 괜찮아."
"성가시면 가도 좋단 말이야."
나는 아이의 정신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 나는 열한 시에 다음 번 약을 먹이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맑고도 싸늘하였다. 땅은 진눈깨비가 얼어붙어, 벌거벗은 나무라든지 덤불이나, 토막난 관목(灌木)과 잡초와 마른 땅은 마치 얼음으로 겉치장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길가와 개울을 따라 산책이라도 하려고 아일랜드 쇄다(개)를 데리고 나갔으나, 개는 빙판을 걷거나 서 있기가 힘들어 자주 비틀거리면서 미끄러졌으며, 나도 두 번씩이나 자빠지는 통에 사냥 총이 빙판을 미끄러져 도망가곤 하였다.
우리는 관목이 늘어선 높다란 찰흙 뚝 아래 있는 메추리 떼를 날려서 둑 위로 날아갈 때 두 마리를 쏘아 떨어뜨렸다. 메추리 몇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에 앉아 있을 뿐 거의가 잡초 속으로 흩어져 날아 갔다. 그래 우리는 메추리 떼가 날아갈 때까지 몇 번이나 얼음이 덮인 잡초 언덕을 뛰어다녔다. 나는 이렇게 빙판이나 잡초 언덕을 애써 사냥을 하였대야 두 마리를 쏘아 잡고 다섯 마리는 놓쳤다. 그러나 나는 집 부근에서 메추리 떼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내일도 발견할 수 있는 메추리 떼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흡족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 보니 아이는 아무도 자기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들어오지 말아요."
하고 아이는 말하였다.
"날 건드리지도 말아요."
나는 아이 곁으로 갔다. 앞서와 똑깥은 자세로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뺨은 열로 말미암아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침대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체온을 재어 보았다.
"100도즘 되는구나." 나는 말하였다. 체온은 102도 4분이었다.
"아까는 102도였어요." 하고 아이는 말하였다.
"누가 그러든?"
"의사요."
"네 체온은 괜찮다. 걱정 말아." 하고 나는 말하였다.
"난 걱정 안해요." 아이가 말하였다.
"그렇지만 어쩐지 염려는 돼요."
"염려할 것 없어." 하고 나는 말하였다.
"마음을 편안히 먹으면 돼."
"난 마음을 편안히 먹고 있어."
아이는 이렇게 말하면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무슨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었다.
"이 약 물로 먹어라."
"아빠, 그걸 먹으면 낫나?"
"암 낫구 말구."
나는 앉아서 <해적>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역시 듣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읽기를 중단하였다.
"아빠, 나 몇 시쯤에 죽을 것 같아?" 하고 아이가 물었다.
"뭐야?"
"앞으로 얼마나 더 살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냐?"
"아냐, 난 죽어. 의사가 그러는데 102도라잖아."
"102도에 누가 죽어? 바보 같은 소리 마."
"난 다 알아. 프랑스인 학교에서 애들이 44도엔 죽는댔어. 난 지금 102도야."
아이는 아침 아홉 시부터 지금까지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잇 못난 자식아!" 나는 말했다.
"못난 놈 같으니, 그건 마일하고 킬로미터와 같다는 얘기로구나. 넌 죽지 않아. 네가 말한 건 다른 체온이야. 그 체온계는 37도가 정상이야. 그리고 너를 잰 체온계는 98도가 정상이구나."
"아빠, 정말?"
"그럼!" 나는 말하였다.
"그건 마일과 킬로미터가 같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야. 너도 차를 타고 70마일 달리면 몇 킬로미터가 된다는 것을 알지?"
"응!"아이가 대답하였다.
침대 아래를 빤히 내려다보던 아이의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지더니, 몸의 긴장이 풀렸다. 이튿날에는 완전히 긴장을 풀고 아무렇지 않은 사사로운 일도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