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함정
A. P. Chekhov
1
흰 여름 제복을 입은 젊은 장교 한 사람이 안장 위에서 몸을 재치 있게 흔들면서 로트슈타인의 유산인 보드카 양조장의 넓은 뜰 안으로 말을 몰고 들어섰다. 따스한 햇볕이 이 육군 중위의 별 달린 계급장이며, 백양나무의 흰 줄거리며, 뜰 안에 흩어진 유리 조각 위에 비치고 있었다. 삼라만상이 한여름의 밝고 싱싱한 생기를 띄고, 푸른 나무 잎사귀들은 맑은 하늘을 향해 즐거운 듯이 설레이고 있었다. 연기에 그을린 지저분한 창고도, 코를 찌르는 보드카의 냄새도 이처럼 상쾌한 기분을 해치지는 못하였다. 중위는 안장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달려온 하인에게 말고삐를 넘겨주고, 가느다란 검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현관에 들어섰다. 여러 해 동안 사람의 발길에 낡기는 했으나, 아직도 반들거리는 깨끗한 층계를 오르자, 좀 무뚝뚝하고 나이가 지긋한 하녀가 맞아 주었다. 중위는 잠자코 명함을 내주었다. 하녀는 명함을 받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명함에는 <알렉사드르 그리고리예비치 소콜리스키>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곧 도로 나와 아주머니께서 몸이 편찮아 만나실 수 없다고 전하였다. 중위는 아랫입술을 비쭉 내밀면서, 잠시 천장을 쳐다보고 나서 말하였다.
"야단났군! 이봐요, 내 청을 좀 들어줘요."
그는 시원스러운 어투로 말하였다.
"가서 수산나 모아세에브나 아줌마에게 꼭 좀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전해요. 2, 3분이면 충분해요. 꼭 만나 뵈어야겠으니 좀 만나게 해 줘요."
하녀는 한쪽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 오시래요!"
잠시 후에 돌아온 하녀는 한숨을 몰아쉬면서 말하였다.
"올라오세요!"
중위는 하녀의 뒤를 따라, 화려하게 꾸민 넓은 방을 대여섯이나 지나고 복도를 거쳐서, 네모가 반듯한 커다란 방에 들어섰다. 발을 들여놓자 방 안에 가득 가꿔 놓은 여러 가지 화초가 그를 놀라게 하였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듯한 쟈스민의 짙은 달콤한 향기에 취하였다. 어떤 꽃나무는 너울이 벽을 따라 들창을 가리려는 듯이 천장에까지 두 줄기로 뻗어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늘어지기도 하고 어떤 꽃은 방구석마다 둥그렇게 환히 빛나고 있었다. 거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온실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초 속에서는 곤줄매기, 방울새, 카나리아와 같은 새들이 지저귀며 법석대고, 때로는 들창 유리에 부딪히기도 하였다.
"여기서 만나 뵙는 것을 양해하세요."
요염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a>소리가 분명치 않으나 귀에 별로 거슬리지는 않았다.
"어제 편도선을 앓았어요. 그래서 다시 다칠까 봐 오늘은 꼼짝 않고 있어요, 그런데 무슨 말씀인지……"
바로 방문 맞은 편에 갑진 중국식 잠옷을 걸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싸맨 여자가 뒤로 젖힌 머릿밑으로 베개를 고이고, 늙은이들이나 사용하는 커다란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털실로 뜬 머릿수건 사이로 핏기없고, 길다란 코가 뾰족하게 도드라지고, 크고 검은 한쪽 눈만이 보일 뿐이다. 폭이 넓은 중국식 옷은 그녀의 키와 몸매를 완전히 가리었지만, 예쁘장한 흰 손하며, 그 목소리, 그리고 코와 한쪽 눈만으로도 나이는 스물여섯이나 기껏해야 스물여덟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너무 고집을 부려서 죄송합니다."
중위는 발뒤꿈치에 달린 박차를 잘각거리며 말하였다.
"제 이름은 소콜리스키라고 하며, 사촌 형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쿠류코프의 위임을 받고 왔습니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그 형은……"
"아 알겠습니다."하고 수산나 모이예세브나는 중위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하였다.
"저 쿠류코프라는 이를 알고 있어요. 그리 좀 앉으세요. 저는 사람이 눈앞에 서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제 사촌 형을 대신하여 당신에게 한가지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중위는 다시 한번 박차를 잘그락거리며 자리에 앉아서 말을 이었다.
"돌아가신 당신의 부친께서 지난겨울에 제 사촌 형의 보리를 사가신 일이 있는데 아직 청산이 덜 되었습니다. 수표의 날짜는 앞으로 한 주일 남아있습니다만 많은 돈은 아니니까 그 돈을 오늘 주실 수 없을까요?"
중위는 이렇게 말하면서 좌우를 힐끗힐끗 살펴보았다.
<나는 이 여자의 침실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하였다.
방 한쪽 모퉁이에 무성하게 자란 장미꽃 넝쿨이 한층 높이 뻗어 올라가 지붕을 이루고 있는 그 아래로 아직도 잠자리가 구겨진 침대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앞에 놓인 두 개의 안락의자에는 여자의 옷가지가 걸려 주름진 레스가 달린 옷자락과 팔소매가 양탄자 위로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방바닥엔 허리끈이며, 두서너 개의 담배꽁초, 캬라멜 껍질 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침대 밑에는 코끝이 둥글거나 뾰족한 갖가지 슬리퍼가 줄을 지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달콤한 쟈스민 향기는 꽃에서 풍겨오는 것이 아니라, 침대와 슬리퍼에서 풍기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 수표의 액수는 얼마나 되죠?"
하고 그녀는 물었다.
"이천삼백 루블입니다."
<아유!> 이 여자는 나머지 한쪽 눈을 마저 드러내 보이며 말하였다.
"많은 돈이 아니라고 하시더니! 하긴 오늘 갚거나 한 달 후에 갚거나 일반이지요. 그렇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두 달 동안 여기저기서 독촉하는 돈이 어떻게 많은지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외국으로 길을 떠나야 할 텐데, 이런 시끄러운 일들이 저를 붙잡고 늘어지는군요."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종알거렸다.
"보리다, 수표다, 이자다……진저리가 날 지경이에요. 어제는 세무서원이 왔길래, 입도 못 벌리게 하고 쫓아 버렸지요. 고지서를 갖고 치근치근 달라붙길래 한마디 쏘아붙였어요.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은 꼴도 보기 싫어니 그 고지서 갖고 귀신한테나 가보라>고 말예요. 그랬더니 그 작자는 제 손에 키스하고 나서 끽소리도 못하고 가버리더군요.…… 그런데 그 돈, 당신 형님께서 2, 3개월만 기다려 주실 수 없을까요……"
"그건 곤란한데요……"
중위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형님이야 1년이라도 기다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제 사정이 그렇지 못합니다. 그레서 저는 이렇게 몸이 달아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지금 저한테는 돈이 꼭 필요한데, 형님 손에는 단돈 한 푼 없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나서서 돈을 걷으러 다니는 거랍니다. 방금 소작인한테도 들려 오는 길입니다만, 또 딴 데도 가 봐야겠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도저히 5천 루블을 마련하기가 어렵겠어요. 돈이 안 되면 큰일인데……"
"아니 뭣 때문에 젊은 양반이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세요? 욕심도 많으시네요. 방탕을 해서 빚을 졌나요, 노름을 해서 돈을 잃었나요? 아니면 장가를 드시나요?"
"잘 알아맞추셨습니다!"
중위는 빙그레 웃으며 엉덩이를 들썩하더니 다시 박차를 잘그락거렸다.
"실은 결혼 비용 때문에 그럽니다."
그녀는 손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 때문에 남자들은 장가들기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녀는 손수건을 찾으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말하였다.
"인생이란 한없이 짧고 부자유스러운 것인데, 사람들은 애써 자기 자신을 묶어 두려고 한단 말예요."
"각자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까요……"
"그렇죠. 사람은 각기 생각이 다른지만……당신은 아마도 가난뱅이한테 장가를 드시나 보군요. 열렬한 사랑 끝에 결혼을 하시게 되나요? 무엇 때문에 5천 루블씩이나 필요해요? 3천이나 4천 루블을 가지고는 안 되나요?"
<꽤 수다스러운 여자로군!> 중위는 이렇게 생각하며 대답하였다.
"군대의 규칙상, 28세 미만의 장교가 결혼하려면, 제대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5천 루블의 보증금을 내야 합니다."
"아하, 알겠어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당신은 방금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고 하셨죠?……당신의 약혼자는 매우 훌륭한 분이라서 예외가 될지 모르지만……제가 보기에는 교양있는 훌륭한 남자들이 어떻게 여자들과 함께 살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얼른 납득이 가지 않아요. 저도 이제 나이가 스물일곱이나 됐지만 지금까지 얌전하게 참아나가는 여자를 보지 못했어요. 모두들 겉으로만 얌전을 빼지만 뒷구멍으로는 딴판이에요.……차라리 식모나 부엌데기가 낫지요. 그래 저는 좀 안다는 여자들하고는 아예 상종도 하지 않고 있어요. 물론 그들 자신도 속을 주지 않고 저를 멀리하고 있지만 말예요. 저로서는 오히려 그게 다행이에요. 그녀들은 돈이 필요하면 남편에게 바가지나 긁을 줄 알았지, 자기가 팔을 걷고 나서는 일은 절대로 없지요. 자존심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없고 겁이 나니까 그럴 밖에요. 그리고 제가 그들의 아픈 곳을 찌를까 봐 벌벌 떨고 있지 뭐예요……그들이 저를 미워하는 줄 저도 잘 알고 있어요. 하기는 그럴 만도 해요, 저는 그녀들이 애써 하나님과 인간에게 숨기려고 하는 것을 파내어 백일하에 폭로하니까요. 그러니 어찌 저를 곱다고 하겠어요? 아마 당신도 제 흉을 많이 들었을 거예요."
"저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거짓말 마세요……눈에 빤히 나타나 있는걸요. 그런데 당신의 형수는 잠자코 있었어요? 아무 감시도 하지 않고 젊은 남자가 그렇게 예쁜 여자와 가까이하는 것을 방임해 둘 수는 없을 텐데요. 호, 호……그건 그렇고, 당신의 형님은 어떠세요? 상당히 미남자시더군요. 연회석에서 몇 번 뵌 일이 있지요. 교양있는 사람에겐 외모는 그다지 소중한 것이 못되지요. 속이 충실해야지……안 그래요?"
"그야 그럴 테지요."
중위는 웃으면서 대꾸하였다.
"속에 들어있는 게 문제예요. 그런데 당신은 형님을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군요. 하긴 당신도 잘 생겼지만 형님은 훨씬 미남이시더군요."
"우리는 사촌 간이니까 그렇지요."
"참, 사촌 형님이라고 하셨죠? 그래, 돈은 꼭 받으셔야 해요? 왜 오늘이라야 하죠?"
"2, 3일이면 휴가가 끝나서요."
"그러나 어떡하지?"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나중에 절 원망할 테지만, 돈을 드리겠어요. 결혼하고 나서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그 망할 유대 년이 그때 돈 준 것이 탈이야. 그 돈만 주지 않았던들 나는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자유로울 텐데>하고 말예요. 약혼한 여자 예뻐요?"
"뭐 그저 그렇지요……"
"그런 말 어디 있어요. 얼굴이 이러저러하게 생기고, 어디가 좋다거니 하고 말해야지요. 하긴 여자란 값없는 삶의 대가로 아름다운 얼굴을 남편에게 바치지는 않지요."
"거, 별말씀 다 합니다그려!"
하고 중위는 웃으며 말하였다.
"아니 당신 자신이 여자이면서 그런 말씀 하세요?"
"여자란……" 그녀는 영문 모를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몸에 달고 나올 것을 달지 못한 게 저의 죄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게 저의 탓이라면, 당신이 수염을 달고 있는 것도 죄가 되게요! 저는 자존심이 강한 여자지만, 남들이 제가 여자임을 상기시킬 땐, 저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해요. 인제 당신은 좀 나가 계셔요. 저 옷 좀 갈아입어야겠어요.……응접실에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중위는 그녀의 침실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는 우선 그 지독한 쟈스민 냄새를 털어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목구멍까지 싸아해지는 것 같았다.
<세상에 별 여자가 다 있군!>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야기는 꽤 재미있게 지껄이는데……지나치게 수다스럽고 말이 많고 노골적이야. 좀 돈 여자인지도 모르지>
응접실은 온갖 사치와 유행을 따라 화려하게 꾸며있었다. 탁자 위에는 검푸른 색깔로 라인강의 풍경을 그린 접시며, 옛날 촛대며, 일본인의 골동품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와같이 화려한 장식품들은 오히려 그 주인의 취미가 고상하지 못함을 말해 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금박을 칠한 커튼 고리하며, 울긋불긋한 도배지, 색깔이 짙은 책상 보자기, 두툼한 액자 속에 들어있는 서투른 서양화 - 이 모든 것들은 그의 저속한 취미를 더욱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서로 조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물건들이 방안을 가득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꼭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 같고, 또 그중에서 많은 물건을 집어내 버려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장식품들을 일시에 장만한 것이 아니라, 경매 같은 때 싸구려로 조금씩 사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위는 이런 방면에 아무런 조예도 없었지만 방 안을 장식한 모든 것들이 하나의 공통된 특징, 즉 사치나 유행으로는 씻어 버릴 수 없는 결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을 아늑하게 꾸며보려는 의도나, 정신적인 뉘앙스를 살리려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응접실은 마치 정거장의 대합실이나 클럽이나 극장의 복도처럼 살풍경해 보였다.
방안에서 유대인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고작해야 야곱과 이삭이 만나는 장면을 그린 커다란 한 폭의 그림밖에 없었다. 중위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어깨를 한번 치켜올리고 오늘 처음 알게 된 이 집 안주인의 뻔뻔스럽고 대담한 언행을 다시 되새겨보는 것이었다.
이윽고 방문이 열리며 그녀가 나타났다. 아치 허리를 깎아낸 것 같은 날씬한 몸매에 검고 길다란 원피스를 걸치고 있었다. 중위는 그녀의 코와 눈, 그리고 희고 여윈 얼굴과 양털 같은 새까만 곱슬머리를 한 그녀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결코 미운 얼굴은 아니었다. 그가 이방인에게 어떤 편견을 갖고 있는 탓인지, 그녀의 검은 곱슬머리와 짙은 눈썹이 그 창백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코와 귀가 흡사 양초로 녹여 만든 것처럼 하얗게 보이는 것은 그 독한 쟈스민의 향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 여자는 이빨을 드러내며 생긋이 웃어 보였다. 중위는 그 히멀건 잇몸이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여자는 혹시 황달병 환자가 아닌가……>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아마도 이 여자는 칠면조처럼 신경질이 대단할 거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그럼 가시지요!"
하고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앞장을 서다가 화분에 핀 노란꽃 잎사귀를 뜯으며 말하였다.
"돈은 곧 드릴게요. 그리고 점심도 대접하겠어요……이천삼백 루블이라고 하셨죠? 돈을 다 세고 난후에 많이 드세요. 어떠세요, 우리 집 방들이 마음에 드세요? 이 고장 여자들은 글쎄 저한테서 노린내가 난다고 흉을 보지 않아요. 터무니없는 트집이에요. 술통에 빠졌다가 맡아보세요. 저한테 무슨 냄새가 나나……당신은 아마 제 말을 믿으시겠지요. 한 번은 우리 집에 노린내를 피우는 의사가 왕진을 온 일이 있었어요. 그래 나는 의사더러 어서 모자를 집어쓰고 딴 데나 가서 냄새를 피우라고 쫓아 버렸죠. 제 몸에서는 노린내가 아니라 약 냄새가 나는 거예요. 아버지가 중풍으로 1년 반이나 누워 계셨거든요. 가엾긴 하지만 돌아가시길 잘했지요. 아직도 생존해 계시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녀는 응접실과 비슷하게 꾸민 방 둘과 넓은 홀을 지나서 자기 서재로 장교를 안내하였다. 역시 장식품을 가득 늘어놓은 부인용 책상 옆 방바닥에 몇 권의 책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옆방으로 문이 열려 있어 점심을 차려놓은 식탁이 내다보였다.
그녀는 쉴새 없이 지껄이며 호주머니에서 열쇠 뭉치를 꺼내어 둥그스럼한 뚜껑이 비스듬히 달린 궤짝을 열었다. 뚜껑이 열리면서 궤짝에서는 아에오로스의 하프를 연상케 하는 애달픈 멜로디가 울려 나왔다. 그녀는 다시 열쇠 하나를 골라 또 하나의 뚜껑을 열었다.
"여기 지하로 통하는 비밀통로와 출입구가 있어요."
그녀는 양가죽으로 만든 조그마한 손가방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별 괴상한 궤짝도 다 있지요? 그리고 이 가방 속에는 제 재산의 4분의 1이 들어있어요. 자 보세요. 배가 불룩하지 않아요? 어디 한번 제목을 졸라보시죠?"
그녀는 중위를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중위도 따라 웃었다.
<알고 보니 꽤 멋진 여자군!> 그는 여자의 손가락 사이에서 뒹구는 열쇠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 요것이로군!> 그녀는 가죽 가방의 열쇠를 찾아내었다.
"그럼 이 빚쟁이 양반아 수표를 주세요. 돈이란 사실 언제나 무의미한 거예요. 그래도 여자들은 돈이라면 혹하지 않아요! 저는 아시다시피 진짜 유대인이기 때문에 슈물리나 양켈리(고골리의 작품에 나오는 구두쇠 유대인의 이름으로 유대인을 비꼬아 부르는 말 - 譯·註)를 좋아는 하지만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 우리네 셈족의 피가 싫어요. 돈을 벌어서는 꽁꽁 뭉쳐 두면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지 자기 자신도 잘 모르고 있거든요.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할 텐데, 그들은 단돈 한 푼에 벌벌 떨고 있지요. 그런 점으로 보면 저는 슈물리보다는 기병(騎兵)을 더 닮았다고 할까요. 저는 돈을 꼭 움켜쥐고 있는 것을 싫어해요. 아무튼 저한테는 유대인답지 않은 면이 많아요. 어때요, 제가 말할 때 <a> 소리의 액센트가 너무 강하게 들리지 않아요?"
<글쎄요……>중위는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이었다.
"말소리가 매우 유창하게 들립니다. 다만 <a> 소리가 좀 분명치 않은 것 같군요."
그녀는 히죽히 웃어보이며 가방에 달린 자물쇠를 열었다. 그리고 중위는 호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어 책상 위에 놓았다.
"액센트 하나로 유대인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지요."
그녀는 명랑하고 상냥스러운 눈웃음을 치며 중위에게 말하였다.
"아무리 러시아 사람이나 프랑스 사람인 체해 보아도 소용없지요. 뿌흐 <솜틀>이라는 말을 한번 시켜보세요. 영락없이 뻬흐흐흐라고 발음할 거예요. 그러나 저는 정확히 발음할 수 있어요. 뿌흐, 뿌흐, 뿌흐!"
두 사람은 큰 소리로 함께 웃었다.
<확실히 매력이 있는 여자야!> 중위는 마음속으로 감탄하였다.
그녀는 가방을 의자 위에 올려놓고, 중위에게 한 걸음 다가서서 남자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하였다.
"저는 유대인 다음으로 러시아인과 프랑스인을 좋아해요. 여학교 때 역사 공부를 잘 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제 생각으로는 이 두 민족의 손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아왔어요.……마드리드 같은 곳에서도 반년쯤 살았지요. 저는 여러 나라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살펴보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러시아와 프랑스 이외에는 민족다운 민족이 없는 것 같아요. 여러 나라 말을 실례로 들어볼까요. 독일 말은 망아지 소리를 내고, 영어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어요. <회이치, 휘이치, 휴이치> 이태리 말은 발음을 천천히 하면 괜찮게 들리지만 이태리 여자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면, 유대인의 사투리가 그냥 튀어나와요. 그리고 폴란드 말은 말씀이 아네요. 세상에 그보다 더 듣기 싫은 말은 없을 거예요. <네 뻬프시·뻬프쉐·뻬프셈·뻬프샤·보 모제시 프쉐뻬프시씨 뻬프샤 뻬프셈> 이건 ‘뾰뜨르야, 후추가루를 돼지고기에 너무 치지 말아라. 그러다간 매워서 못 먹을라’라는 뜻이에요. 호호호!"
그녀가 크게 웃어대는 바람에 중위도 덩달아 그녀를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쳤다. 그녀는 사나이의 단추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다시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당신은 물론 유대인을 싫어하실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겠어요. 어느 민족이나 흠이 있듯이 우리도 결점이 많아요. 그런데 그것은 과연 유대인의 탓일까요? 아네요. 유대인인 다 나쁜 것은 아니지요. 나쁜 건 유대 여자들예요. 그들은 영리하지 못한데다가 욕심이 굉장하지요. 게다가 아무런 취미도 없고, 정서도 모르구요. 따분하기 짝이 없는 족속들이지요.……당신은 유대 여자와 함께 살아본 일이 없을 테니까 잘 모르실 거예요.……그녀들에게서는 아무런 매력도 찾아볼 수 없을 거예요……"
그녀는 말꼬리를 얼버무렸으나, 거기에는 지금까지 느껴온 재미도, 웃음도,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여기까지 지껄이고 나서, 너무나 지나친 자기 말에 스스로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시선은 중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벙긋이 벌어진 두 입술 사이로 악물고 있는 이빨이 내다보이고, 얼굴은 물론 목덜미와 가슴팍에 이르기까지 고양이처럼 표독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중위에게서 여전히 눈을 떼지 않고, 재빨리 허리를 굽혀 책상 위에서 무엇인가 움켜쥐었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수표가 바삭바삭 소리를 내었다. 그는 그토록 상냥스럽던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비열한 행위로 돌변한 것을 보자, 어안이 벙벙하여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앙칼진 눈으로 중위의 눈치를 살피며 움켜진 주먹을 허리께로 가져가더니 호주머니를 더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주먹은 마침 물에서 나온 물고기처럼 호주머니 언저리를 맴돌 뿐 좀체로 제 구멍을 찾아들지 못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표를 옷깃 사이로 집어넣으려고 하였다. 순간 중위는 가벼운 비명을 올리며 거의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덤벼들어 수표를 움켜진 팔목을 꽉 붙잡았다. 그녀는 더욱 이를 악물고 힘껏 사내를 뿌리치며 손을 빼내었다. 그러자 중위는 두 팔로 여자의 허리와 어깻죽지를 힘차게 부둥켜안았다. 두 남녀 사이에는 격투가 벌어진 것이다. 그는 여자에게 욕을 보이게 될 것이 두려워 수표를 움켜진 주먹만 꼼짝 못 하게 잡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의 품 안에서 몸을 뱀장어처럼 비비 꼬며 팔꿈치로 상대방의 가슴을 떠밀고 움켜쥔 주먹을 이리저리 빼돌렸다. 그러자 중위의 손은 그 주먹을 쫓아 그녀의 몸뚱아리에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거 참 일이 우습게 되어가는걸!>그는 마치 쟈스민의 향기에 정신을 빼앗기기나 한 것처럼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느 편에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만 숨결만 더욱 거칠어갔을 뿐이었다. 두 남녀는 서로 부둥켜안은 채 가구에 부딪히며, 이 구석에서 저 구석으로 밀었다 밀쳤다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그녀는 제정신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고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다. 이윽고 중위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맞대고 정신없이 비벼대기까지 하였다. 그녀의 입술이 달콤한 향기를 뿜으며 사나이의 입술을 스쳐 갔다. 마침내 그는 여자의 주먹을 붙잡았다. 손을 펴보았으나 수표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중위는 그녀에게서 물러섰다. 그들은 머리칼이 흩어지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숨을 헐떡이며 마주 바라보았다.
그토록 표독스럽고 매섭던 그녀의 표정이 차차 사그러지면서, 상냥스러운 눈웃음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한참 깔깔거리고 웃더니, 점심이 준비된 옆방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중위는 그녀의 뒤를 어슬렁어슬렁 따라갔다. 그녀는 아직도 불그스레한 얼굴을 하고 숨을 몰아쉬며 식탁에 앉더니 포도주를 한 컵 들이켰다.
"나는 당신이 저에게 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중위가 먼저 말하였다.
"천만에요."
그녀는 빵조각을 입속에 넣으면서 대답하였다.
"그럼 어떻게 된 거요?"
"좋도록 해석하세요. 우리 앉아서 점심이나 먹고 봅시다."
"그런데……그런 속임수를 쓰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저한테 설교를 할 생각은 아예 마세요. 저는 생각이 따로 있으니까요."
"그럼 돈을 주시지 않겠다는 말씀인가요?"
"물론이죠. 당신 같은 가난뱅이가 장가는 무슨 장가예요?"
"그렇지만 그 돈은 형님의 겁니다."
"그럼 당신의 형님은 나중에 그 돈을 무엇에 쓸까? 부인 옷감에? 하긴 그런 건 나한테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말예요."
중위는 처음 찾아온 이 여자의 집에서 어떻게 되어 자기가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고 방안을 거닐면서 애꿎은 조끼 깃만 잡아당기고 있었다. 하기는 자기가 그렇게 대담한 짓을 한 것은 이 유대 여자가 먼저 꼴사나운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참 어처구니가 없군요!"
하고 그는 투덜거렸다.
"저는 당신의 그 수표를 도로 받기 전에는 이 집에서 떠나지 않을 테니 그런 줄 아세요."
"아 그렇게 하심 저는 더욱 좋아요!"
그녀는 웃으며 말하였다.
"이왕이면 아주 우리 집에서 사시죠.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격투 끝에 흥분된 중위는 그녀의 웃음 섞인 얌체 없는 얼굴이며, 나불거리는 입술, 그리고 할딱이는 가슴팍을 바라보며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그리하여 수표의 행방 따위는 염두에 없었다. 웬일인지 이 판국에 그는 북받치는 정욕을 느끼는 동시에 이 유대 여자의 난잡한 생활 태도에 대하여 언젠가 자기 형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그의 마음을 더욱 대담하게 할 뿐이었다. 그는 여자 곁에 털썩 주저앉아 수표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점심을 먹기 시작하였다.
"뭐 드시겠어요? 보드카? 포도주?"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그래 수표를 도로 받을 때까지 우리 집에서 기다리시죠? 며칠 동안이나 기다리시나 어디 두고 봅시다. 당신의 약혼자가 화를 내지 않을까요?"
오후 다섯 시가 지났다. 중위의 형 알렉세이·이바노비치·크류코프는 잠옷 바람으로 슬리퍼를 끌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연신 창밖을 내다보곤 하였다.
그는 이미 허벅다리에 살이 찌고 머리가 벗어져 집안에서 잔소리깨나 할 그런 나이가 되었지만, 키가 후리후리하고 검은 구렛나루가 무성한 사나이다운 얼굴을 하며, 유대 여자의 말대로 상당히 미남자였다. 그리고 어엿한 인테리로, 성실하고 원만한 인품을 지녔으며, 교양이 풍부하고, 과학, 예술, 종교에 대해 일가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명예를 존중하는 기사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어느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일이 없는 게으름뱅이기도 하였다. 또한 호식가요, 애주가이기도 하며, 트럼프 놀이 같은 것을 썩 잘하였다. 무슨 일에 그를 끌어들이려면, 마음을 움직일 만한 어떤 자극적이고 비범한 일이라야 했다. 그 대신 일단 손 걷고 나서기만 하면 침식을 잃어버리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는 격투에 대하여 핏대를 울리며 자기 견해를 토로하는가 하면, 장관에게 긴 진정서도 써 보내며, 온 군대를 분주히 돌아다니기도 하고, 수틀리면 남을 비열한 놈이라고 공공연히 공격하기도 하였으며, 재판을 걸어 남과 다투기도 하였다.
"그런데 왜 사샤는 여태 돌아오지 않는 거야?"
하고 그는 창밖을 내다보며 아내에게 말하였다.
"저녁을 먹을 때가 다 되었는데……"
크류코프네 식구들은 중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여섯 시가 되어서야 저녁 식사를 하였다. 밤이 깊어지고 밤참을 먹을 때가 되었다.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문밖에서, 무슨 발자국 소리나 인기척이 들리지 않아 해서 귀를 기울이다가도, 이상한 일이라는 듯이 어깨를 치켜올리곤 하였다.
<웬일일까?>하고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 녀석이 아마 소작인 집에 눌러앉아 있는 모양이군>
크류포프는 밤참을 먹고 나서, 잠자리에 들며, 동생이 소작인 집에서 한잔 톡톡이 얻어먹고 자고 오는 줄 생각하였다.
소콜리스키는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는 풀이 죽고 낙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용히 할 이야기가 있어요……"
그는 형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형제는 서재로 들어갔다. 중위는 문을 닫고 말을 꺼내기 전에 한동안 방안을 왔다 갔다 하였다.
"형님, 원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어요."
하고 그는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아마 내 이야기를 좀처럼 믿기 어려울 테지만……"
그는 형을 외면한 채 얼굴을 붉히고 어제 당한 일을 더듬거리며 이야기하였다.
크류코프는 두 다리를 버티고 서서, 고개를 숙이고 동생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아니 그게 정말이냐, 농담이냐?"
"농담이라뇨? 지금 농담할 처지가 됐어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구나!"
크류코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팔을 벌리며, 흥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잘못은 네게 있는 거야. 그래 그년이 그따위 짓을 하는 것을 보고도 너는 그년의 입술을 핥고 있었단 말이냐?"
"그러나 나도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없어요!"
중위는 죄송하다는 듯이 눈을 두리번거리며 말하였다.
"정말 알고도 모를 일이에요. 나는 생전 처음으로 그런 요물한테 걸렸거든요. 멀쩡한 정신을 갖고 그년에게 반해서 그런 건 결코 아녜요. 하도 몰염치하게 덤벼들기에……"
"몰염치하게 덤벼들었다고 해서 너한테 책임이 없단 말이냐? 그런 뻔뻔스럽고 치사한 짓을 하다니, 차라리 똥통에서 돼지 새끼라도 꺼내어 날로 먹을 일이지…… 이천삼백 루블 돈이 아깝다!"
"형님 너무 하세요!"
중의는 이마를 찌푸리며 대꾸하였다.
"내 그 이천삼백 루블 갚아 드릴게요!"
"돈만 갚으면 그만이냐?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까짓 돈, 돈은 없어도 살어! 네 얼빠진 그 어리석은 행동이 한심스럽단 말이다. 그래 약혼까지 한 녀석이 약혼자를 두고……"
"형님, 진정하세요……"
중위는 얼굴을 붉히며 말하였다.
"저도 얼마나 자기 자신이 원망스러운지 모르겠어요. 정말이지 땅속으로라도 기어들어 가고 싶어요……큰어머니한테 가서 돈 오천 루블을 해내라고 졸라야 할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는 군요……" 크류코프는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는지 한참 뭐라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마음이 좀 진정되자 그는 소파에 주저앉아 동생을 바라보고 혼자서 입을 실룩거리며 웃고 있었다. <육군 중위가……> 그는 경멸에 찬 어조로 비꼬았다. <약혼까지 한 녀석이!>
그는 별안간 무엇에 찔린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발을 쾅쾅 구르며 방안을 성급히 왔다 갔다 하였다.
"안 될 말이야. 그냥 둘 수는 없어!"
그는 두 주먹을 휘두르며 떠들어대었다.
"내가 가서 수표를 찾아와야겠다. 내가 가서 그년을 족쳐야지. 여자에게 손을 대서는 못 쓰지만 그런 년은 아주 병신을 만들어 놔야 해. 나는 육군 중위와는 달라! 아무리 뻔뻔스럽게 덤벼들어도 나한테는 어림도 없지! 암 나한테는 안 되고 말고. 나한테야 백을 못 쓰지! 그런 계집년은 그냥 능지처참을 해야 돼!"
하고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거기 누가 없느냐! 빨리 마차를 준비하라고 일러라!"
크류코프는 중위가 한사코 만류하는 것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급히 옷을 갈아입고는 마차에 올랐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산나·모이세예브나의 집으로 달려갔다. 중위는 우두커니 서서 창문을 통하여 달려가는 마차 뒤에서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하고 나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15분 후에는 벌써 깊이 잠들어버렸다.
여섯 시가 되자 저녁을 먹으라고 그를 깨워 일으켰다.
"그이는 아무튼 친절도 하지!"
식당에서 형수는 시동생을 보고 이렇게 남편의 불평을 늘어놓았다.
"저녁상을 차려놓고 이렇게 기다리게 한담!"
"그래 형님은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았어요?"
중위는 하품을 하며 말하였다.
"아마 소작인 집에 들리신 모양이죠."
그러나 크류코프는 밤참 때가 다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아내와 소클리스키는 그가 트럼프에 미쳐서 소작인 집에서 자고 오나보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런 추측과는 전혀 동떨어진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크류코프는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으나, 아무 말 없이 서재에 들어가 버렸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에요?"
중위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형에게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크류코프는 코웃음만 치며 손을 내저었다.
"대체 어떻게 되었길래 웃기만 하십니까?"
크류코프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얼굴을 틀어박고 웃음을 참느라고 어깨만 들먹거렸다.
그는 한참 후에 얼굴을 들었다. 눈에는 눈물까지 어려 있었다. 그는 어리둥절하여 옆에 서 있는 중위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거 문 좀 닫아라. 내 너한태 그 계집 이야기를 할게……"
"수표는 어떻게 되었어요?"
크류코프는 손을 내저으며 다시 너털웃음을 쳤다.
"글쎄 이야기를 들으라니까. 그 이만저만한 년이 아니더라!"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하여튼 고맙구나. 네 덕분에 그런 계집을 알게 됐으니……그건 치마를 두른 악마야. 그년 집에 들어서자 내 딴에는 마음의 무장을 든든히 하고 양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무슨 큰일이라도 치르려는 듯이 주먹을 불끈 귀고 말이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나하고는 농을 걸 생각은 아예 마시오!> - 이런 식으로 나가며 땅을 울려댔더니, 그년 처음에는 눈물을 짜며 말하는 거야. 너에겐 정말 농으로 그랬노라고……그러면서 돈을 내주겠다는 거야. 그리고는 그 이상한 궤짝 있는 데로 나를 데려가더니 너도 들었을 테지만 유럽의 운명은 러시아인과 프랑스인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부터 시작하여, 여자들에 대한 공격을 퍼붓는 거야.……그년이 나더러 아주 미남이라고 한참 치켜세우더니, 얼마나 기운이 센가 보자고 하면서 팔뚝을 꼬집어 뜯기도 하고……, 그리고는…… , 또……, 그다음에는 너도 잘 알 테지. 그리하여 겨우 이제 이렇게 빠져나왔다. 하하하……너한테 흠뻑 반한 모양이더라!"
"참 잘도 하십니다!"
중위도 따라 웃으며 형을 비꼬아 주었다.
"버젓이 아내를 가진 분이……남의 존경을 받는 명사가……그래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런데 말예요. 이건 농담이 아녜요. 그러니까 이 고장에는 타마라 여왕님이 새로 한 분 생긴 셈이군요……"
"뭐가 생겼다고? 그런 카멜레온 같은 년은 아마 러시아 전국을 뒤져보아도 찾아내지 못할 게다. 그 방면에는 나도 풋내기가 아닌데, 그런 여자는 생전 처음 보았다. 아마도 귀신도 그 여자를 당하지 못할 게다. 네 말마따나 그야말로 염치불구하고 덤벼드는 데는 안 넘어갈 재간이 없더라. 그년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야단스러운지 그냥 녹아떨어질 수밖에 없더구나……. 이이고……, 수표를 어떻게 했냐고?……휘이치, 페프시(깨끗이 날아가 버렸지). 네나 내나 둘 다 죄짓기는 매일반이었으니 손해는 반반씩 나누기로 하자. 너는 1150루블만 변상하면 돼. 그리고 아주머니에게는 절대로 비밀로 해. 소작인 집에 갔었다고 말할 테니까……"
크류코프와 중위는 얼굴을 소파에 틀어박고 한참 배꼽을 빼었다. 고개를 들고 서로 바라보다가는 다시 웃음보가 터져 나와 다시 얼굴을 파묻곤 하였다.
<약혼까지 한 녀석이!> 크류코프가 먼저 중위를 놀려대었다. <육군 중위가!>
<아내를 가진 사람이!> 소콜리스키도 지지 않았다. <남의 존경을 받는 명사가! 한 집안의 가장이!> 그들은 점심상을 받고서도, 연방 서로 눈짓을 하며, 암시에 찬 말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연달아 웃음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내프킨에 음식이 떨어져 곁에 섰는 하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점심이 끝나자, 그들은 명랑한 기분으로 엽총을 가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어린 애들에게 전쟁놀이를 구경시켜 주었다. 저녁때 두 형제는 오랫동안 논쟁을 하였다. 중위는 주장하기를 결혼할 때 여자는 지참금을 되도록 적게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설사 열렬한 연애 결혼이라 할지라도 여자가 많은 돈이나 재산을 갖고 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크류코프는 책상을 주먹으로 치며 그런 당치않은 말이 어디 있느냐고 중위의 견해를 반박하였다. 즉 아내가 자기 몫으로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꺼리는 남편은 이기주의자로, 전제군주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었다. 형제가 다 흥분하여 체면도 잊어버리고 고함을 지르며 야단법석을 쳤다. 이윽고 그들은 잠옷을 들고 자기 침실로 가서 금새 깊이 잠들어버렸다. 다시금 태평스러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대지 위에는 짙은 그림자가 덮여 있었다. 구름 속에서 천둥소리가 울려오고 때때로 바람이 무슨 호소라고 하는 것처럼 윙윙거리며 스쳐 갔다. 그것은 마치 자연도 소리를 내어 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안일한 생활에 젖어버린 이들에게는 아무리 험상궂은 자연현상도 불안을 안겨 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수산나나 수표에 대해서도 다시 입 밖에 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것은 웬일인지 창피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들은 수산나와 저지른 일을 각각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회상해 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생애에서 우연히 당한 한 토막 커다란 웃음거리로서, 두고두고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주일쯤 지난 어느 날 아침에 크류코프는 서재에 앉아서 큰어머니에게 문안 편지를 쓰고 있었다. 책상머리에서는 소콜리스키가 말없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는 지난밤에 잠을 잘못 자서 기분이 개이지 못하고 마음이 우울하였던 것이다. 그는 방안을 서성거리며 휴가의 기한이 인제 끝나간다는 생각이며,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약혼자의 생각, 그리고 이 시골 사람들은 쓸쓸하고 따분해서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하고 있었다. 그는 들창가에 가서 밖의 나무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담배를 세 대씩이나 연거푸 피웠다. 그는 별안간 형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형님, 청이 하나 있어요. 형 오늘 형의 말을 좀 빌려주세요."
크류코프는 동생의 눈치를 살피려는 듯 힐끔 쳐다보고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계속해서 편지만 쓰고 있었다.
"빌려주시죠?"
그는 거듭 물었다.
크류코프는 다시 한번 그를 쳐다보더니 책상 서랍을 열고 두툼한 돈뭉치를 동생에게 주었다.
"자, 5천 루블이야……"하고 그는 말하였다.
"이건 내 돈이 아니지만 네 마음대로 쓰도록 해. 누구 돈이건 결국 마찬가지니까. 역마차가 집에 들려 가도록 곧 연락하고, 오늘 중으로 떠나도록 하여라. 부탁이야. 알겠지?"
이번에는 중위가 형의 눈치를 살피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형님,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았구려!"
하고 그는 얼굴을 붉히며 말하였다.
"실은 그 여자한테 가고 싶었어요. 내가 저번에 그 집에 입고 갔던 그 여름 제복을 어제저녁에 세탁해 왔는데, 아직도 쟈스민 냄새가 풍기더군요. 그 냄새를 맡고 나니 그만 마음이 또 그리로 끌리는군요!"
"떠나도록 하여라!"
"네, 떠나야겠어요. 휴가도 이제 끝났으니까요. 오늘 중으로 떠나도록 하겠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곡 떠나겠어요."
점심 전에 역마차가 도착하였다. 중위는 형의 집안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전송을 받으며 떠났다.
다시 한 주일이 지났다. 숨이 막힐 듯이 음산하고 무더운 날이었다. 크류코프는 이른 아침부터 괜히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돌아다니며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이미 거들떠보기도 싫은 사진첩을 뒤적거리기도 하였다. 마누라와 아이들을 보기가 무섭게 마구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날은 웬일인지 아이들도 자기를 슬슬 피하는 눈치 같고, 마누라가 하녀들에게 지출이 많다고 짜증을 내는 것도 일부러 자기더러 들으라는 소리처럼 생각되었다. 이것은 가장인 그가 마음이 들떠 있는 징조였다.
그는 점심을 먹었으나, 수프도 군고기도 구미에 당기지 않았다. 그는 마차를 타고 천천히 문밖에 나가 한 마장쯤 가서 멈추었다.
<대체 어디로 가면 좋을까?>하고 그는 찌푸린 하늘을 쳐다보며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온종일 가지가 생각하고 바라던 것이 무엇인가를 이제야 분명히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리하여 얼굴에 웃음까지 빙그레 떠올랐다. 그의 가슴은 한결 후련해지고 게슴츠레하던 눈은 기쁨으로 반짝였다. 그는 말에 채찍질을 하였다. 그는 마차에 흔들리면서 줄곧 공상에 잠겨 있었다. - <그 유대 여자는 내가 찾아간 것을 얼마나 놀랄까. 그녀와 흥겹게 놀다가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야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쯤은 무슨 방법으로든지 기분을 전환시킬 필요가 있어……, 좀 색다른 것으로……> 그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침체된 몸과 마음에 청신한 자극이 필요하단 말이야……가령 술을 마신다든지 아니면 수산나라도 만나본다든지……어쨌든 그런 자극적인 게 있어야 해……>
그가 양조장 뜰 안에 들어섰을 때는 날이 벌써 어두워가고 있었다. 열어젖힌 창문으로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새어 나왔다.
<번개보다 더 밝고, 불길보다 더 뜨겁게……>
누가 굵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쳇, 손님들이 와 있군 그래!>
크류코프에겐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집으로 되돌아갈까?>
그는 초인종에 손을 대고 잠시 망설였으나, 역시 종은 울리고 낯익은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는 현관에서 발을 멈추고 홀을 들여다보았다. 남자들이 대여섯 명 손님으로 와 있었다. 그가 잘 아는 이 고장의 유지인 관리와 지주들이었다. 깡마른 키다리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키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 사람들은 사뭇 흥겨운 듯이 이죽히 입을 벌린 채 듣고 있었다. 크류코프는 한동안 거울 앞에 섰다가 홀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수산나·모이세예브가 즐거운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몸에는 전날에 입은 그 검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크류코프를 보자 놀란 듯이 멈칫하고 섰다가 매우 반가운 듯이 앞으로 달려왔다.
"어머, 전 또 누구시라구……"
그녀는 남자의 손을 잡으면서 말하였다.
"정말 뜻밖이에요……"
"당신이 보고 싶어서……"
크류코프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 구라파의 운명이 러시아인과 프랑스인의 손아귀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를 더 들으려구요."
"정말 반가와요!"
그녀는 남자의 팔에서 살그머니 몸을 빼면서 샐쭉 웃으며 말하였다.
"그럼, 홀에 들어가세요. 다들 아시는 분이니까……전 가서 차를 가져오라 할게요. 참, 알렉세이라 하셨죠? 어서 들어가세요, 곧 나오겠어요……."
그녀는 달콤한 쟈스민 향기를 풍기고 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크류코프는 얼굴을 쳐들고 홀에 들어섰다. 동석한 사람들은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었지만, 그는 머리만 끄떡여 보였을 뿐이다. 그들도 마지못해 아는 체를 하였다. 마치 그 자리가 매우 불결하기나 한 것처럼, 아니면 피차에 모른 체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묵계라도 있었던 것처럼.
크류코프는 홀을 지나 응접실을 거쳐서, 또 다른 객실로 가는 길에 역시 2, 3명의 안면 있는 친구들과 지나쳤다. 그러나 그들은 크류코프를 잘 알아보는 것 같지 않았으며, 얼굴은 술에 취해 흥겨워 보였다. 그는 그들을 곁눈질하여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엇 하러, 처자가 있고, 인생 체험이 풍부한 사회의 명사들이 이런 천하고 더러운 곳에서 즐거울 수 있는지 의아스럽기도 하였다. 그는 어깨를 한번 으쓱 치켜올리고, 코웃음을 치면서 다른 방으로 갔다.<정신이 멀쩡한 사람에게 구역질이 나도, 술이 거나한 자들에게는 즐거운 장소가 될 수 있을테지. 하긴 나도 저속한 오페레타나 집시 여자한테 갈 때에는 으레 술을 마시고 가지 않았는가……>
그는 수산나의 서재 앞에까지 와서 갑자기 못에 박힌 듯이 문틀을 붙잡고 우뚝 멈춰 섰다.
그녀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동생이 아닌가! 그는 몸집이 뚱뚱하고 주름살투성이인 어떤 유대인과 무엇인가 수근거리고 있었다. 자기 형이 거기 서 있는 것을 보자 별안간 얼굴이 홍당무가 되며 앞에 놓인 사진첩으로 눈을 돌렸다. 순간 크류코프는 양식(良識)을 되찾아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렸다. 그는 놀라움과 수치와 분노로 하여, 얼빠진 사람처럼 말없이 책상 옆으로 다가갔다. 소콜리스키는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말할 수 없는 수치심 때문에 그의 얼굴은 일그러져 보였다.
"아, 형님이세요!"
그는 눈을 들어 애써 미소를 지으려고 하면서 입을 열었다.
"마지막 인사라도 하려고 왔어요. 내일은 꼭 떠나겠어요."
<그렇지만 이제 와서 내가 동생에게 뭐라고 할 수 있나?>
하고 크류코프는 생각하였다. <나 자신도 여기 발을 들여놓은 이상 내 입으로 동생을 어떻게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는 잠자코 마른침만 꿀떡 삼키고 나서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누가 그대를 천사라 부르느냐……땅 위에서 그대를 놓아주지 않으니……>
홀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에 크류코프의 마차는 먼지투성이의 한길을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