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뚱뚱이와 홀쭉이

Bollnow 2024. 4. 16. 05:08

뚱뚱이와 홀쭉이

A. P. Chekhov

 

니콜라예프스카야 역에서 두 소꿉친구가 우연히 만났다. 한 사나이는 뚱뚱보고 한 사나이는 홀쭉이었다. 뚱뚱이는 방금 역에서 식사를 마친 뒤라, 입술은 무르익은 비계처럼 윤기가 돌고 기름기가 흘렀다. 그리하여 그에게서는 헤례스주()와 오렌지의 향기가 풍겨왔다. 한편 홀쭉이는 차에서 막 내린 뒤라 등에는 트렁크와 보따리, 마분지 통 등을 잔뜩 얹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는 햄과 커치 찌꺼기 냄새가 풍겨왔다. 빼빼 마른 체구에 턱이 길다란 그의 아내는 그의 등 뒤에서 사방을 기웃거리고, 키가 훤칠한 중학생 아들은 한쪽 눈을 가늘게 치뜨고서 있었다.

"헤이 푸르피리……"

뚱뚱이는 홀쭉이를 보자 이렇게 외쳤다.

"아니, 자네 웬일인가? 야아, 이거 대체 몇 해만인가!"

"야아!" 홀쭉이는 깜짝 놀라며 외쳤다.

"이거, 미이샤가 아닌가! 여기서 자네를 만나다니, 대관절 어디서 오는 길인가?"

두 친구는 서로 부둥켜안고 세 번이나 키스를 하고 나서, 눈물이 글썽하여 서로 상대방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두 사람은 어떻게 반가웠던지 어쩔 줄을 몰랐다.

"아니, 이거!" 훌쪽이는 키스를 하고 나서 말하였다.

"정말 뜻밖이네! 깜짝 놀랐어! 그래 내 꼬락서니가 어떤가? 자넨 여전히 미남이로군! 그리고 역시 멋쟁이야! 그래 재미 어떤가? 돈 좀 벌었나? 결혼도 하고? 자네가 보다시피 난 벌써 결혼했네……자 인사를 하게, 바로 집사람일세. 루이쟈 반체바흐가() 출신으로……루터교() 신자야……그리고 이 애는 아들이야. 나파나일이라고 하네. 올해 중학교 3학년이야. 얘 인사드려. 이분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 소꿉친구란다."

나파나일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모자를 벗었다.

"중학도 동기하고"하고 훌쭉이는 말을 계속하였다.

"자네 놀림 받던 일 생각나? 자네는 담배로 정부 기관의 도서를 태웠다고 해서 <헤로스트라토스>라고 놀림을 받았었지. 그리고 나는 고자질을 잘한다고 해서 <에피알리트>라고 놀림을 받고 핫 핫 핫……. 그땐 정말 맹숭이었어! 애 나파나일아. 머뭇거릴 것 없어. 아저씨 한테로 좀 더 가까이 오너라."

그러자 나파나일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아버지 등 뒤에 숨어 버렸다.

"그래 자네는 요새 무얼하고 있나?"

하고 뚱뚱이는 실글벙글하며 친구에게 물었다.

"어디 근무하나? 꽤 출세했겠군!"

"관청엘 다니네. 2년 전에 팔등관으로 승급했네. 그리고 스타니슬라프 훈장을 받았지. 봉급은 얼마 안 돼.……그러나 그까짓 것이 뭐 관계있나! 아내는 음악을 가르치고 나는 부업으로 나무 담배 상자를 만들고 있네. 멋진 담배 케이스야! 하나에 1루블씩 팔고 있는데. 열 개 이상 사는 사람에게는 할인도 해 주네. 이렇게 해서 그럭저럭 살아가네. 지금까지는 본청에 나가고 있었지만, 이번에 같은 소속기관의 과장으로 영전해 오는 길일세. 그래 앞으로 이곳에서 근무하게 되었네. 그거 그렇고 - 그래 자넨 어떤가? 아마 오등관쯤은 됐을 테지? 안 그래?"

"그보다는 좀 더 올라갔지."

하고 뚱뚱이는 말하였다.

"나는 3등관이라네. 훈장도 두어 개 되지."

훌쭉이는 갑자기 새파랗게 질려서 돌처럼 굳어 버렸으나, 곧 싱글벙글 웃기 시작하였다. 그 얼굴과 두 눈에서는 불꽃을 튀기는 것 같았다. 그는 몸을 움츠리고 등을 굽혔다. 그의 몸은 점점 조그맣게 오그라들었다.……그리고 아내의 길다란 턱은 더욱 길어지고, 나파나일은 부동의 자세로 꼿꼿이 서서 교복의 단추를 재빨리 다 채워 버렸다…….

"각하! 축하합니다!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는 당신이 어느새 그렇게 출세하게 되셨으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 , !"

"아니 그러지 말게!"

뚱뚱이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우리는 서로 소꿉친구가 아닌가, 나한테 공대를 하다니."

"제발……그런 말씀을……"

홀쭉이는 더욱 오그라들면서 아첨을 하였다.

"각하의 자비로우신 배려……생명선과도 같사옵니다.……각하 이 애는 나피나일이라고 하는 제 자식놈이고……제 처 루이쟈는 루터교 신도로서……"

뚱뚱이는 무어라고 대꾸하려고 하였지만, 훌쭉이 얼굴에 너무나 아첨하는 감미로운 존경의 빛이 서려 있어, 구역질이 날 정도로 기분이 언짢았다. 그리하여 홀쭉이에게 외면을 한 채 작별의 악수를 청하였다.

홀쭉이는 3등관의 손에서 세 손가락만 잡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혀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중국인처럼 <, , > 웃어 보였다. 그의 아내도 빙긋이 눈웃음을 쳤다. 나파나일은 한쪽 발을 비비다가 모자를 땅에 떨어뜨렸다. 세 사람이 모두 황송하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