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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여인

Bollnow 2024. 4. 16. 05:07

귀여운 여인

Anton Pavlovich Chekhov

 

퇴직한 팔등관 쁠레얀니꼬프의 딸 올렌까는 자기 집 뜰로 내려서는 작은 계단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기어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파리마저 귀찮게 굴었으므로, 곧 저녁이 되리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좀 후련해진다. 동쪽으로부터는 검은 비구름이 몰려들어 거기에서 습기 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뜰 한가운데서는 이 집 건넌방을 빌려 쓰고 있는 꾸우낀이란 사나이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사나이는 야외극장 '찌볼리'의 경영자이자 연출자였다.

"또로군!"

꾸우낀은 절망적으로 말했다.

"또 비야! 매일같이 비, , 마치 누군가가 장난을 치는 것 같군! 그렇다면 사형선고가 아닌가! 파멸이 아닌가! 매일같이 늘어만 가는 엄청난 이 손해, 정말 어떻게 하란 말인가!"

꾸우낀은 올렌까 쪽을 향해 두 손을 쳐들어 보이며 불평을 계속했다.

"올리가 세묘노브나, 이것이 우리들의 생활이란 거요. 정말 울고 싶어! 밤잠도 자지 않고 일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잘 살려고 애쓴 보람이 이게 뭐란 말입니까. 동료나 관객들은 교양이 없고 야만적이지. 나는 최고의 오페라타나 환상극, 일류 풍자 탤런트를 내보내고 있으나 과연 그것이 관객들에게 필요한지, 어떤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광대예요! 게다가 날씨조차 이 모양이니. 거의 매일 밤비가 아닙니까. 오월 십일에 시작해서 오월, 유월 줄곧 이렇게 계속되지 않아요? 정말이지 이런 일이 또 어디 있담! 관객이 모여들지 않아도 나는 텃세를 물어야 해요. 배우들에게 급료도 지불해야 하지 않아요?"

이튿날도 저녁때가 되자 비구름이 몰려왔다. 꾸우낀은 히스테릭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재미있는데, 어서 또 퍼부어라. 야외극장이 물에 잠겨 내가 빠져 죽었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어차피 이승에서나 저승에서 잘 살긴 글러먹었으니 말이야! 배우들이 고소하겠다면 하라지! 재판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시베리아로 유형이라도 갔으면 속 시원하겠다! 단두대에라도 올랐으면! , , !"

그 다음 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올렌까는 아무 말도 없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꾸우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그 눈에는 가끔 눈물이 방울지는 것이었다. 결국 올렌까는 꾸우낀의 불행에 마음이 움직여 이 사나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꾸우낀은 작은 키에 마르고 누런 얼굴을 한 사람으로서 고수머리를 곱게 기르고 있었다. 목소리는 가는 테너로서 말을 할 때마다 입을 실룩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언제나 긴장의 빛이 돌고 있었으나, 그래도 이 사나이는 처녀의 마음에 깊은 참사랑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것이다. 올렌까는 항상 누구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여자였다. 전에는 자기 아버지를 사랑했었는데, 그 아버지는 지금 병중이어서 어두운 방안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언젠가는 숙모를 사랑한 적도 있었다. 그녀는 브란스끄에서 1년에 두 번 정도 찾아올 뿐이었다. 그보다 훨씬 전인 단기여학교 시절에는 프랑스어 선생을 사랑하기도 했다. 올렌까는 점잖고 기품이 있으며 정이 많은 여자로서 온화하고 부드러운 눈동자를 가졌고 몸은 아주 건강했다. 그 통통한 장alt빛 뺨이나 검은 점이 하나 있는 부드러운 목덜미, 무언가 즐거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그 얼굴에 떠오르는 티 없는 미소를 보게 되면 사내들은, ", 거 괜찮게 생겼는걸!" 이런 생각을 하며 웃음을 띠게 되고, 여자들은 참을 수 없어 이야기 도중에 올렌까의 손을 잡고 흡족한 나머지 저절로 입을 벌리는 것이었다.

"귀여운 아이야!" 하고.

올렌까가 태어나면서부터 살고 있는 이 집은 아버지의 유언장에 그녀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그녀의 집은 도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집시촌에 있었고 거기에서 찌볼리 야외극장도 멀지 않았다. 저녁때부터 밤중까지 야외극장에서 연주되는 음악소리와 펑펑 터지는 불꽃 소리가 언제나 들려왔다. 올렌까에게는 그것이 꾸우낀이 자기 운명과 싸워 최대의 적- 즉 무관심한 관객에게 돌격해 들어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올렌까의 마음은 달콤한 고민으로 가득 찼다. 졸음은 어느덧 달아나고 날이 밝아 꾸우낀이 돌아오게 되면 침실 창문을 똑똑 두드리며 커튼 사이로 얼굴과 한쪽 어깨만을 내밀며 상냥한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꾸우낀의 청혼으로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올렌까의 목덜미나 살이 통통하고 건강한 어깨를 가까이서 보았을 때, 꾸우낀은 손뼉을 치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귀여운 여자야!"

꾸우낀은 행복했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릴 때에도, 그날 밤에도 비가 내렸기 때문에 그 얼굴에서는 절망의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즐겁게 살았다. 올렌까는 입장권을 팔거나 야외극장 전체를 보살피기도 하며 장부를 기입하고 급료를 지불하기도 했다. 그녀의 장밋빛 뺨과 사랑스럽고 티 없는, 마치 후광과도 같은 미소는 매표구의 창이나 무대 뒤, 매점 등 여러 곳에서 보이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렌까는 어느덧 친구와 친지들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것, 제일 중요한 것은 연극이고, 참된 즐거움을 맛보고 교양이나 휴머니즘을 몸에 배게 하기 위해선 연극을 보아야 한다고 역설하게 되었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것을 이해할지 모르겠어."

하고 올렌까는 말했다.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광대야, 어제 우리가 개작(改作) <파우스트>를 공연했더니 관람석이 거의 비었어. 그러나 바니치까와 내가 어떤 저속한 것을 공연했더라면 틀림없이 초만원이었을 거야. 내일 바니치까와 나는 <지옥에서의 오르페우스>를 공연하겠어. 꼭 보러 와요."

그리고 꾸우낀이 연극이나 배우에 대해 하는 말을 올렌까는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관객이 예술에 무관심하고 교양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남편과 함께 경멸했다. 무대 연습에 끼어들어 배우의 연기를 고쳐주고 악사들의 행동을 감독했으며, 지방신문에 연극의 악평이 실리기라도 하면, 눈물을 흘리며 억울해 했으며 신문사에 직접 해명하러도 다녔다.

배우들은 올렌까를 좋아하여, '바니치까와나'라거나 '귀여운 여신'이라 불렀다. 올렌까도 배우들을 좋아하여 약간이라면 돈도 빌려주고, 때로는 속기도 했으나 몰래 눈물만 흘릴 뿐 남편에게 일러바치지 않았다.

그 겨울도 즐거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두 사람은 겨울 동안 마을의 극장을 빌려 그것을 잠깐 동안씩 우끄라이나의 극단이나 마술단, 그곳 아마튜어 극단에 제공했다. 올렌까는 점점 몸이 나기 시작하고 만족한 생활에 얼굴이 환해져 갔으나 꾸우낀은 마르고 핏기가 없어졌다. 겨울 동안에도 사업은 잘 되어 갔으나 그는 대단한 손해를 보았다고 엄살을 부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마다 기침을 하기 때문에 올렌까는 나무딸기나 보리수 꽃을 달여 먹이거나 오드콜로뉴을 발라주기도 하고 자기의 따뜻한 숄로 덮어주기도 했다.

"정말 당신은 훌륭한 분이셔요!"

하고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올렌까는 다정하게 말했다.

"당신은! 아주 좋은 분이셔요."

사순제의 꾸우낀은 극단 출연 교섭을 위해 모스크바로 떠났다. 올렌까는 남편이 떠난 뒤 밤에 잠도 못 이루고 창가에 앉아 별을 바라보며 지냈다. 그리고 자신을 암탉에 견주어 보는 것이었다. 닭장에 수탉이 없으면 암탉들이 불안을 느껴 밤에 잠도 못 자는 것이 아닌가. 꾸우낀의 모스크바 체재는 의외로 길어졌다. 부활제까지는 돌아오겠다고 한 편지에는 찌볼리 극장 일에 대해 여러 가지 지시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부활제 1주일 전인 월요일 밤늦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불길한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가 나무로 된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그것도 나무통으로 두드리는지 텅텅텅 하고 울리는 것이다. 잠이 덜 깬 식모인 마브라가 맨발로 물이 질퍽하게 괸 뜰을 거쳐 문을 열러 달려갔다.

"문 좀 열어주세요!"

하고 누군가가 문밖에서 굵직하고 거친 목소리로 불렀다.

"전보예요!"

올렌까는 전에도 몇 번 남편의 전보를 받은 적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웬일인지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졌다. 떨리는 손으로 전보를 받아보니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이반 뻬뜨로비치 오늘 급사, 지시 바람, 화요일 장례.'

서명은 오페레타 연출가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여보!"

하며 올렌까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가엾은 바니치까, 그리운 사람! 왜 나는 당신과 만나게 되었나요. 어째서 당신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된 것인가요! 당신은 먼저 보내고 이젠 누구를 의지하란 말입니까. 올렌까는 너무나 비참해요. 불행해요......"

꾸우낀은 화요일에 모스크바의 바가니고보 묘지에 묻혔다. 올렌까는 이튿날 돌아와 자기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이웃과 통행인이 들을 정도로 통곡하기 시작했다.

"저 불쌍한 사람이!"

하고 이웃 사는 여자들은 성호를 그으면서 말했다.

"불쌍한 올렌까가 저렇게 비탄에 젖어 있군요!"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올렌까는 아직도 상복을 입은 채 낮미사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연히 함께 걷게 된 것은 역시 교회에서 돌아오는 중이던 바실리 안드레이치 뿌스또발로프라는 이웃 사람이었다. 이 사나이는 바바카예프라는 목재상의 주인이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흰 조끼에 금시계줄을 드리운 그 모습은 상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골 지주에 가까웠다.

"세상일은 다 미리 정해진 것입니다. 올리가 세묘노브나!"

하며 심각하고 동정어린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그러므로 가족의 어느 누가 세상을 떠났다 하더라도 그것은 신의 섭리일 것이니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순종하고 참으며 살아야 합니다."

올렌까를 문 앞까지 바래다 준 다음 그는 작별의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이런 일이 있는 후 올렌까에게는 그 사나이의 진실어린 목소리가 들렸고 눈을 감으면 그의 검은 수염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 사나이가 그녀의 마음에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올렌까도 분명히 그 사나이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모양이었다. 그것은 며칠이 지난 뒤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중년 여인이 커피를 마시러 와서는, 테이블에 앉기가 무섭게 뿌스또발로프에 관한 이야기를 지껄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분은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이라는 둥, 그 사람에게라면 어떤 여자라도 기꺼이 시집을 갈 것이라는 둥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사흘 뒤 이번에는 뿌스또발로프 자신이 찾아왔다. 그는 잠시 동안, 10분 가량 앉아 있었을 뿐 별로 말도 하지 않았으나 올렌까는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얼마나 그에게 반했는지 밤새 잠도 자지 못하고, 마치 열병에라도 걸린 듯이 몸을 뒤척이다가 아침이 되자 그는 중년 부인에게 사람을 보냈다. 얼마 되지 않아 약혼이 성립되고, 그리고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결혼한 뿌스또발로프와 올렌까는 사이좋게 지냈다. 남편은 대개 점심때까지 재목 하치장에 있다가 일을 보러 외출하는 것이었는데, 그 뒤는 올렌까가 맡아 저녁때까지 사무실에 앉아서 계산서를 떼거나 물건을 발송하거나 했다.

"재목 값이 해마다 이십 퍼센트씩이나 오르고 있어요."

올렌까는 사러 오는 사람이나 친지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태까지 이 지방 목재만 가지고 장사를 했는데, 지금은 바시치까가 해마다 모길레프 현까지 재목을 구입하러 가곤 해요. 그 운임이 어찌나 비싼지!"

하며 무섭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거듭 말했다.

"운임이 아주 엄청나요!"

올렌까는 벌써 오래 전부터 목재상을 경영해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은 재목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각재, 통나무, 판자, 기둥, 톱밥...... 등의 말을 들으면 어쩐지 다정스럽고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밤마다 꿈속에서는 산더미같이 쌓인 판자나 나무토막, 어딘가 마을 저쪽으로 재목을 운반하는 짐마차의 행렬이 나타나곤 했다. 또는 직경 25센티, 길이 8미터나 되는 통나무의 연대가 당당하게 재목 하치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이나, 통나무의 각재와 판자가 서로 부딪쳐 투명하고 마른 나무소리를 내면서 넘어지고 일어서고 서로 쌓이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올렌까가 놀라 소리를 지르고 깨어나면 뿌스또발로프가 다정하게 말을 했다.

"올렌까, 왜 그래 여보? 어서 성호를 그어요!"

남편이 생각하는 것은 곧 올렌까가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이 방은 덥다거나, 이 무렵엔 장사가 한가해졌다고 하면 올렌까도 그렇게 생각했다. 남편은 도시 오락이란 것을 싫어하며 축제일에도 외출을 하지 않았는데, 올렌까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집이 아니면 사무실에서 일만 하는군."

하고 친구들은 흔히 말하는 것이었다.

"가끔 연극이나 서커스 구경이라도 다녀오지."

"바시치까와 저는 연극 구경을 갈 틈이 없어요."

하고 올렌까는 대답하는 것이었다.

"일이 바빠서 여가를 가질 여유가 없어요. 그런 연극이 어디가 좋다는 것인가요."

토요일마다 뿌스또발로프와 올렌까는 저녁 기도에 나갔고, 축제일에는 아침 미사에 나갔다. 교회에서 돌아올 때는 언제나 사이좋게 감동의 빛을 띠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걷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향기로운 마음을 발산하고, 올렌까의 명주옷은 살랑살랑 상쾌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버터 바른 빵이나 여러 종류의 잼을 먹으면서 차를 마시고 다시 피일로그를 먹었다. 점심식사 때가 되면 보르시치나 양, 또는 오리 고기를 굽는 냄새가 뜰과 문앞에까지 풍겼으며, 사순제에는 그것이 생선 요리 냄새로 바뀌어 군침을 삼키지 않고는 그 집 앞을 지나지 못할 정도였다. 사무실에서도 언제나 사모바아르가 끓고, 손님들은 차와 둥근 빵을 대접받았다. 1주일에 한 번씩 이 부부는 목욕탕에 갔다가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불그스레 상기되어 함께 돌아오곤 했다.

"그저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요."

하고 올렌까는 친지들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모두 바시치까와 저같이 지낸다면 세상은 평화스러울 것이에요."

뿌스또발로프가 모길레프 현으로 재목을 구입하러 가게 되면, 올렌까는 몹시 적적해서 밤잠도 자지 않고 울고만 있는 것이었다. 가끔 저녁에는 이 집 건넌방에 세 들어 있는 군수의(軍獸醫) 스미르닌이란 젊은 사내가 놀러오곤 했다. 그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해주고 트럼프 상대도 해주어 올렌까도 기분전환이 되는 것이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이 군수의의 가정 사정이었다. 스미르닌은 이미 결혼을 하여 자식이 하나 있었으나 부인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이혼을 하였다. 지금은 그 부인을 미워하면서도 매달 40루블리의 돈을 자식 양육비로 보내준다고 하였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올렌까는 몇 번이나 한숨을 쉬고 머리를 흔들며 가엾어 했다.

"그럼, 조심하세요."

올렌까는 촛불을 켜들고 수의를 층계까지 바래다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대단히 고마워요, 지루하셨지요.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을 가호하시기를......"

남편의 말투를 닮아 올렌까는 최근 침착하고 분별 있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의의 모습이 아래층 문에서 사라지려는 순간, 일부러 다시 불러 이렇게 말했다.

"블라지미르 쁠라또니치, 부인과 화해하세요. 아드님을 위해서라도 부인을 용서해야 해요! 아드님도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거예요."

뿌스또발로프가 돌아오자 올렌까는 목소리를 죽여 가며 수의와 그 가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으면서, 그 어린애는 얼마나 아버지가 보고 싶겠느냐고 남의 일 같지 않게 동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상한 일이 연상되어 부부는 성상(聖像)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에게도 자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뿌스또발로프 내외는 아기자기하고 서로 사랑하며 사이좋게 6년간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바실리 안드레이치는 사무실에서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고, 재목이 발송되는 것을 살피러 모자도 쓰지 않고 나갔다가 그만 감기가 들어 자리에 눕고 말았다. 훌륭한 의사들로부터 진찰을 받았지만, 병은 좀처럼 낫지 않고 넉달이나 신음하다가 결국 뿌스또발로프는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올렌까는 또다시 미망인이 되었다.

"그리운 당신을 먼저 보내고, 나는 누구를 믿고 살란 말이에요."

하며 남편의 장례를 끝내고 나서 그녀는 통곡을 했다.

"당신이 없으니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 너무나 슬프고 불행해요. 친절한 여러분,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의지할 데라곤 아무도 없는 저를......"

모자나 장갑과는 인연을 끊고, 올렌까는 언제나 검은 상복에 흰 상장을 달고 있었다. 교회나 남편의 묘지를 찾아가는 외엔 거의 집을 나가지 않고 수녀와 같은 생활을 했다. 6개월이 지나자 겨우 상장을 떼고 덧문을 열어 놓게 되었다. 낮에는 가끔 식모를 데리고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는 모습이 보였으나, 올렌까의 요즈음 생활이나 집안 사정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추측을 할 뿐이었다. 그녀가 뜰 안에 앉아서 수의관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느니, 수의관이 그녀에게 신문을 읽어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느니, 또 우체국에서 어떤 친구를 만난 올렌까가 이런 말을 하더라는 것이 그 추측의 재료가 되었다.

'이 고장에서는 가축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질병이 많은 것이에요. 우유를 마시고 속이 언짢아졌다거나, 말이나 소에게 병을 옮았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지 않아요? 원래 가축의 건강도 인간의 건강과 마찬가지로 주의를 해야 해요.'

올렌까는 수의의 이야기를 되풀이했고, 이제와서는 어떤 일에나 수의와 의견이 같았다. 애정 없이는 1년도 살지 못하는 올렌까가 자기 집 건넌방에서 새로운 행복을 발견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다른 여자라면 세상의 비난을 받을 것이 틀림없지만, 올렌까의 경우엔 누구 하나 이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었었다. 올렌까와 수의는 자기들 사이에 생긴 변화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기려 했으나 그것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올렌까는 원래 비밀을 가질 수 없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군대 동료들이 수의를 찾아오면 올렌까는 차와 저녁을 대접하면서, 가축의 홍역이라거나 결핵이라거나 시장의 도살장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입이 딱 벌어진 수의는 손님이 돌아가자 올렌까의 손을 붙잡고 화를 내며 불평을 말하는 것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그런 소릴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소! 우리 수의사끼리 말할 때는 제발 입을 열지 말아요. 지루할 뿐이니까!"

올렌까는 놀라고 불안스런 눈초리를 하며 되묻는 것이었다.

"볼로치까, 그럼 나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요?"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나이를 껴안으며 화내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행복했다. 그러나 이 행복도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군대가 시베리아와 같은 먼 곳은 아니지만 꽤 먼 어느 벽촌으로 이동하게 되어 수의도 이 군대와 함께 영원히 떠나버린 것이다. 올렌까는 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올렌까는 완전한 외돌토리였다. 아버지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 안락의자는 다리가 하나 부러진 채 먼지투성이가 되어 다락방에 틀어박혔다. 올렌까는 조금 야위고 볼품도 없어져, 길에서 만나는 사람도 전과 같이 좋아하거나 미소를 던지거나 하지 않았다. 분명히 인생의 황금시절은 지나고, 어떤 알지 못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저녁이 되면 뜰로 내려가는 층계에 앉아, 그녀는 찌볼리 야외극장의 음악이나 불꽃 소리를 듣곤 했지만 그것은 이미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게 했다. 낮에는 아무 생각도, 아무 희망도 없이 뜰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밤이 깊으면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으나, 꿈속에서도 텅 빈 뜰을 바라보았다. 먹고 마시는 것조차 싫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불행은 자기 의견이란 것이 전혀 없어진 것이었다. 눈으로는 주위의 여러 가지 대상을 바라보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었으나,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정리하지 못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의견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가령 병이 하나 세워져 있는 것을, 또는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을, 그리고 농부가 달구지를 타고 가는 것을 분명히 보고는 있으면서도, 그 병이나 비나 농부가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비록 1천 루블리를 준다 해도 말을 못하는 것이다. 꾸우낀이나 뿌스또발로프가 살아 있을 때라면, 혹은 수의와 함께 있을 때라면 올렌까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고, 어떤 것에 대해서도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머리 속도 마음도 자기 집 뜰과 같이 텅 비어 있다. 쑥이라도 먹은 것같이 쓰고 기분 나쁜 것이었다.

시가지는 점점 사방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집시 마을은 이미 집시 가로 이름이 바뀌고, 찌볼리 야외극장과 재목 하치장이 있던 장소에는 건물이 즐비하고 많은 사잇길도 생겼다. 시간의 흐름이란 얼마나 빠른 것인가! 올렌까의 집은 이미 낡아 지붕은 녹슬고 창고는 기울어졌으며, 뜰에는 잡초와 가시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 올렌까 자신도 늙고 추하게 되었다. 여름에는 뜰로 내려가는 층계에 앉아, 그리고 겨울에는 창가에 앉아 눈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역시 공허하고 적적했다. 그럴 때 문득 봄의 기척을 느낀다거나 바람이 교회의 종을 건드려 소리가 나게 하면 불현듯 과거의 생각이 떠올라 가슴이 뿌듯해지고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일로서, 그것이 지나면 다시 공허가 깃들어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검은 고양이 브리스까지 다가와서 야웅거리고 재롱을 부렸으나 그런 고양이의 재롱쯤은 올렌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올렌까에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일까! 아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의 전 존재를, 마음과 이성의 모든 것을 붙들고, 자기의 사상과 생활에 방향을 찾아주고 식어가는 피를 덥혀 줄 하나의 애정인 것이다. 그녀는 옷깃에 매달리는 고양이를 쫓아버리며 싫은 소리를 했다.

"저리 가, 저리로...... 귀찮아."

이렇게 해서 날이 가고 해가 거듭되었으나 아무런 기쁨도 없고 아무 의견도 없다. 생활은 식모인 마브라가 하는 대로 맡겨 버렸다.

무더운 7월의 어느 날, 시외로 나갔던 가축들이 집안에 온통 먼지를 씌우며 지나갈 저녁 무렵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올렌까는 자신이 문을 열어 주러 나가 상대를 보는 순간 기절을 할 뻔했다. 문 밖에 서 있는 것은 이미 머리가 희끗한 평복을 입은 수의인 스미르닌이었다. 순간 그녀는 잊어버렸던 모든 과거를 되찾았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엉엉 울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집안에 들어오고, 어떻게 차를 마시러 식탁에 마주앉게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당신이군요!"

기쁨에 떨면서 올렌까가 속삭였다.

"블라지미르 쁠라또니치!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거예요?"

"여기 정착하려고."

하며 수의가 말했다.

"군대를 그만두고 왔죠. 자유의 몸이 되어 정착된 생활을 하면서 내 운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자식 놈도 이젠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이고. 다 자랐어요. 실은 나는 마누라와 다시 결합했어요."

"그럼, 부인은 어디에?"

하고 올렌까가 물었다.

"아들과 함께 호텔에 있지요. 나는 집을 빌리러 다니는 중이고요."

"어머, 그렇다면 이 집에서 사세요! 여기가 마음에 안 드세요? 그렇게 하세요. 집세 같은 건 한 푼도 필요 없으니까요."

올렌까는 흥분하여 다시 울기 시작했다.

"여기서 사세요. 나는 저 건넌방 하나로도 충분해요. 아아, 정말 기뻐요!"

이튿날 지붕에는 페인트칠이 시작되고 벽에는 회를 바르기 시작했다. 올렌까는 손을 허리에 얹고 뜰을 거닐며 이를 지켜보았다. 그 얼굴에는 전처럼 미소가 되살아나고 전신에는 활기가 넘쳤다.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수의의 아내는 마르고 못생긴 여자로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어딘지 모르게 고집이 센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함께 온 사샤라는 사내아이는 나이에 비해서는 작았으나(벌써 열 살이다) 살이 찌고 서늘한 푸른 눈을 가졌으며 볼에는 보조개가 패였다. 소년은 뜰 안에 들어서자마자 고양이를 쫓아 무섭게 달려가더니 곧 이어서 기쁨에 넘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 이거 아줌마네 고양이예요?"

하고 소년은 올렌까에게 물었다.

"이게 새끼를 낳으면 우리에게도 한 마리 주세요. 우리 엄마는 쥐를 제일 싫어하거든요."

올렌까는 잠시 소년과 이야기하고 차를 마시게 됐는데, 마치 그 소년이 자기 자식인 것처럼 갑자기 가슴이 뭉클 하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소년이 식당에 앉아 복습하는 것을 올렌까는 감동과 사랑의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얼마나 귀엽고 상냥한 아이인가...... 어쩜 저렇게도 영리하고 잘 생겼을까!"

"섬이란."

하며 소년은 읽어 갔다.

"육지의 일부로서 사방이 바다에 둘러싸인 것을 말한다."

"섬이란 육지의 일부로서......"

하고 올렌까는 반복했다. 그것은 침묵과 공허로 그 많은 세월을 보낸 뒤, 처음으로 확신을 갖고 말하는 의견이었다.

이렇게 해서 자기 의견을 가진 올렌까는 저녁을 먹으면서 사샤의 부모를 상대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 최근의 아이들은 중학교 공부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도 고전교육이 실업교육보다는 좋다. 왜냐하면 중학 졸업생은 앞길이 창창하여 희망에 따라 기술자도 되고 의사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사샤는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소년의 모친은 하르꼬프에 있는 자기 언니네 집에 가서 거기 눌러앉아 있었다. 부친은 매일같이 어디론가 가축검사를 하러 가는데 어떤 때는 2, 3일씩 묵는 수도 있었다. 올렌까는 사샤가 자기 가정에서 거추장스런 존재가 되었고, 따라서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굶어죽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소년을 데려다 건넌방에 붙은 작은 방 하나를 비워주었다.

이렇게 사샤가 올렌까에게 와서 살게 된 지도 벌써 반 년이 지났다. 올렌까는 매일 아침 소년의 방에 갔다. 소년은 한 손을 얼굴에 대고 숨소리 하나 없이 잠들어 있었다. 올렌까는 깨우기가 가엾었다.

", 사센까."

하고 올렌까은 애처로운 듯이 아이를 불렀다.

"착한 아이지, 일어나요! 학교 갈 시간이 됐어!"

소년은 일어나 옷을 입고 기도를 하고 나서 테이블에 앉았다. 큰 컵으로 석 잔이나 차를 마시고 둥근 도넛 두 개와 버터가 발린 빵 절반을 먹었다. 아직 잠이 덜 깨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사샤, 아직 우화를 암송하지 못했지?"

하고 올렌까는 말하면서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바라보듯 소년을 살펴보았다.

"정말 걱정이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돼요......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내버려 두세요. 제발."

하고 사샤는 말했다.

그리고는 작은 몸에 큰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메고는 한길에 나가 학교로 걸어갔다. 그 뒤를 올렌까가 가만히 따라갔다.

"사센까야!"

하며 올렌까가 불러 세웠다.

소년이 돌아보면 올렌까는 대추나 캐러멜을 소년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학교가 보이는 골목길까지 접어들면, 소년은 자기 뒤에서 키가 크고 뚱뚱한 여자가 따라오는 것이 부끄러워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주머니, 돌아가세요. 나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올렌까는 멈추어 서서 소년이 학교 정문 저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곁눈질도 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아아, 얼마나 이 소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 이토록 깊은 사랑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기 마음속에서 모성적인 감정이 점점 더 강하게 불타고 있는 지금처럼 타산이 없고 욕심도 없고, 더구나 이처럼 기쁘고 마음이 뿌듯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핏줄은 닿지 않지만, 이 소년을 위해서라면, 그 볼의 보조개와 제모를 위해서라면, 올렌까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기꺼이 자기 생명을 버릴 것이다. 웬일일까. 이 이유를 누가 대답할 수 있을까!

사샤를 학교에 바래다주고 나면 올렌까는 흡족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가슴 가득히 애정을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 반 년 동안에 젊어진 얼굴은 미소로 빛나고 있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런 올렌까를 보고 친밀감을 느끼며 말을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올리가 세묘노브나! 요즘 어떠세요?"

"요즘은 중학교 공부도 어려워졌어요."

하며 올렌까는 시장에서 이런 말을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농담이 아니에요. 어제 일 학년 숙제를 보았더니 우화 암송과 라틴어 번역, 그리고 문제가 또 하나...... 사실이지, 어린 학생에게 너무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선생 이야기나 수업에 대한 이야기, 교과서 이야기를 끄집어내었다. 사샤가 말하는 그대로.

두 시가 넘어서야 두 사람은 함께 점심을 먹고 밤에는 함께 예습을 하며 같이 울기도 했다. 소년을 잠재우고 나서 올렌까는 오래도록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는 자기도 침실에 들어가 먼 미래를 꿈꾸었다. 사샤는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나 기술자가 되어 자기의 큰 저택을 갖고 자가용 마차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겠지...... 올렌까는 눈을 감고 언제까지나 그런 생각만 했다.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검은 고양이는 올렌까 곁에서 야옹거리고 있었다.

"...... ...... ......"

갑자기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에 올렌까는 눈을 뜨고 겁에 질려 숨을 죽였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30초 가량 지나서 다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르꼬프에서 전보가 왔구나!'

올렌까는 이렇게 생각하며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사샤의 어머니가 사샤를 하르꼬프로 부른다...... 아아, 어쩔 것인가!'

올렌까는 절망을 느꼈다. 머리와 수족이 싸늘해졌다. 나처럼 불행한 사람은 이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분가량 지나자 목소리가 들렸다. 수의가 클럽에서 돌아온 것이다.

'아아, 잘됐어!'

올렌까는 이렇게 생각했다.

심장의 고동이 점점 가라앉으면서 기분이 다시 가벼워졌다. 올렌까는 다시 드러누워 사샤의 일을 생각했다. 사샤는 옆방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가끔 잠꼬대가 들려왔다.

"이 자식, 저리 가! 해볼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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