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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 샛강 철교에서 생긴 일(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

Bollnow 2024. 4. 15. 07:05

아울 샛강 철교에서 생긴 일(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

Ambrose Guinnett Bierce

 

 사나이 하나가 북부 앨라배마의 한 철교 위에 서서 20피트 아래의 급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목은 노끈으로 묶인 채 팔이 등 뒤로 꺾여져 있었다. 목에는 밧줄이 걸려 있었다. 밧줄은 바로 그의 머리 위에 있는 가로목에 걸려 있었고, 남은 줄은 그의 무릎에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그와 집행자들은 철도를 지탱하는 침목 위에 깔린 판자 조각 위에 서 있었다. 집행자들이란 북부군 사병 두 명과 전쟁 전에는 부보안관 정도를 지냈을 법한 하사 한 명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정복을 차려입고 무장까지 한 장교 한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계급장은 그가 대위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다리 양쪽에는 집총자세를 한 두 명의 보초가 있었다. 집총자세란 총이 왼쪽 어깨에 수직으로 되어 있어야 하고 개머리판은 가슴을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내민 팔뚝 위에 놓이게 하는 것인데, 매우 형식적이면서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자세였다. 몸도 반듯하게 차려자세를 해야 했다. 다리 가운데에서 바야흐로 벌어질 일은 두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단지 두 사람은 다리를 가로질러 놓은 발판의 야 끝만 지키고 있으면 임무를 다하는 셈이었다.

 두 사람의 보초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철도는 백 야드쯤 되는 숲속으로 곧장 뻗어 있고 그 뒤로 구부러져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훨씬 더 먼 곳에 또 다른 초소가 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건너편 둑은 공지처럼 생긴 완만한 경사지였다. 이곳에는 통나무를 수직으로 세워 방책을 만들어 놓았는데, 방책에는 총을 걸어 놓을 수 있는 총안과, 다리를 향해 포문을 겨누고 있는 대포를 위한 포안이 나 있었다. 다리와 방책 사이에는 개머리판을 땅 쪽으로 하고, 몸체는 오른쪽 어깨에 걸친 채 총열은 위쪽으로 비스듬히 젖혀진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보병 일개 중대의 사병들이 보였다. 사병들의 열 중 오른쪽 끝에는 칼을 땅 쪽으로 향하게 차고, 왼손을 오른손 위에 가볍게 올려놓은 중위가 한 사람 있었다. 다리 한가운데 있는 네 사람을 빼고, 주위에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대 병력은 다리 쪽을 주시한 채 움직일 줄 몰랐다. 다리 양쪽에 있는 보초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마치 다리를 꾸미기 위해서 세워놓은 동상 같았다. 대위는 팔짱을 끼고 아무 말 없이 부하들이 하는 동작만 쳐다볼 뿐, 아무런 신호도 내리지 않았다. 죽음의 선고를 받을 때라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엄숙하고 형식적인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군대 예절의 규정을 찾아보면 부동자세와 침묵이 최고 경의 표시인 것이다.

 교수형 당할 사나이는 분명 35세쯤 되어 보였다. 농장주 차림을 한 그 남자는 민간인이었다. 오뚝한 콧날, 굳게 다문 입, 넓은 이마, 거기에서 뒤로 빗어 넘겨 그의 귀를 덮어내려, 잘 어울리는 프록코트의 깃에까지 닿은 길고 검은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나 구렛나루는 없었다. 눈은 크고 짙은 회색이었으며 그 친절한 눈빛을 볼 때, 곧 교수형을 당하기 위해 밧줄을 목에 건 사람 같지 않았다. 분명히 속된 살인자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유주의 군법은 교수형에 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방대하게 규정해 놓고 있어서 귀족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두 명의 사병은 각자 옆으로 비켜서서 자신들이 서 있던 판자를 치워버렸다. 하사는 몸을 돌려 대위에게 경례를 붙이고, 즉시 그의 뒤로 물러섰다. 장교도 한 걸음 물러섰다. 이렇게 되자 사형수와 하사는 같은 판자의 양 끝에 서게 되었다. 판자는 다리의 침목 세 개에 걸쳐 놓여 있었다. 사형수가 서 있는 판자의 한쪽 끝은 네 번째 침목 가까이 위치 해 있었다. 이 판자는 반대편에 대위가 서있기 때문에 그의 몸무게로 균형이 잡혀 있었다. 이번에는 대위가 아니라 하사가 대신 몸무게로 판자의 균형을 잡은 모양이었다. 이제 대위가 신호만 내리면 하사는 밟고 있던 판자에서 발을 떼게 되고, 그렇게 되면 판자가 기울어져 사형수가 두 개의 침목 사이에 매달리게 되어 있었다. 사형수가 생각해 보기에도 이 장치는 매우 간단하고 효과적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보자기가 씌어져 있지도 않았고, 눈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는 잠시 자신이 서 있던 불안한 판자를 내려다본 뒤, 발밑에서 미친 듯이 흘러가는 강물의 소용돌이 속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눈에는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는 나무 조각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그 나무 조각이 흘러가는 모양이 너무 느리게 보였다. 매우 느린 물살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눈을 감고 마지막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른 아침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물결, 물길을 따라 조금 내려간 곳에 위치한 제방에 깔려 있는 안개, 방책, 병사들, 떠내려가는 물건들…… 이 모든 것이 그의 마음을 산란케 했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이 그의 마음을 흩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처자식을 생각해 보다가 그의 생각에 떠오른 것은 무시해 버릴 수도, 그렇다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소리였다. 울리는 것도 해머 소리와 똑같았다. 그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또 먼 곳에서 들리는지, 아니면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았다. 어느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소리는 규칙적으로 반복되었으나 마치 장례식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천천히 반복되는 것이었다. 그 규칙적인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초조하고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각 타종 사이의 간격이 더욱 길어졌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소리는 신경질이 날 정도로 사람을 미치게 했다. 마치 칼에 살을 베이는 것처럼 그 소리는 그의 귀를 아프게 했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사실상 손목시계의 재깍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그는 다시 눈을 뜨고 발아래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만일 손을 묶은 줄만 풀 수 있다면……’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올가미를 벗어던지고 물길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 텐데. 다이빙하면 총탄을 피할 수 있을 테고, 헤엄을 쳐서 강둑으로 올라가 숲속으로 몸을 숨긴 다음 집으로 달아날 수 있을 텐데…… 아직도 우리 집은 이 녀석들의 작전 지역 밖에 있지. 그러니 내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곳까지 이자들의 손이 미치지는 않았을 거야……’

 이처럼 말로 해야 할 생각들이 이 불운한 남자의 머릿속에 전개되는 순간보다 대위가 하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먼저였다. 하사는 발을 들어 옆으로 비켜섰다.

 페이톤 파쿠아는 앨라배마의 대단한 명문가 출신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농장주였다. 그는 노예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당시 노예를 거느리던 다른 사람들처럼 정치가이기도 했던 그는 처음부터 당연히 남북 분리론을 지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부가 내세운 이념을 따르고 있었다. 명문가에서 태어난 탓에 군주와도 같은 태도가 몸에 배었던 그는 코린드가 함락될 때 기구한 패전의 운명을 맞았던 남부군에 들어가 함께 싸우지를 못했다. 명예롭지 못한 제한된 환경 속에서 안달이 난 그는 군인이라는 보다 호방한 생활을 통해 명성을 얻게 되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꿈만 꾸고 있었다. 왜냐하면 전쟁 중에는 명성을 얻게 되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법이었으니까. 그러는 동안 그는 우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남부를 돕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않았다. 그 어떤 위험한 모험이라도 그를 주춤거리게 하지 못했다. 그는 본래 군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며 사랑과 전쟁에는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솔직하면서도 무자비한 듯한 속담을 아무 거리낌 없이 인정하는 성격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아내와 함께 뜰 입구에 놓인 통나무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잿빛 복장을 한 군인이 말을 타고 정문으로 달려와 마실 물 한 모금을 청했다. 파쿠아의 아내는 자신의 하얀 손으로 그 군인에게 물 한잔 떠주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아내가 물을 뜨러 간 사이, 파쿠아는 먼지를 뒤집어쓴 군인에게 다가가 전선의 전황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았다.

 “북부놈들이 철도를 수리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공세를 취할 모양입니다. 이미 놈들은 아울 샛강의 철교에까지 이르러 다리를 고치고, 북쪽에다가 방책까지 세웠습니다. 놈들의 지휘관은 철도나 철교, 열차나 터널에 손을 대다가 체포되는 민간인은 누구든 즉결로 교수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내가 직접 그 명령서를 보았습니다.”

 “아울 샛강 철교까지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파쿠아가 물어봤다.

 “약 30마일쯤 됩니다.”

 “샛강 이쪽에는 북부군 병력이 없습니까?”

 “철도를 따라 반 마일 나온 곳에 전초부대가 하나 있습니다. 철교의 이쪽 끝에는 보초 한 명뿐이구요.”

 “만일 교수형을 무릅쓰고 민간이 복장을 한 채 전초부대의 눈을 피하고 보초병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뜻을 이룰 가능성은 있습니까?” 파쿠아는 미소를 띠며 이렇게 물어봤다.

 병사는 잠시 생각해 본 다음 입을 열었다.

 “바로 한 달 전에 내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지난겨울 홍수가 났었는데, 그 물살이 만은 표류목을 다리 이쪽의 나무 교각 밑에 쌓아 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이 나무토막들이 다 마른 터라 불만 붙이면 삼 부스러기처럼 타오를 겁니다.”

 파쿠아의 아내가 물을 떠 왔다. 병사는 물을 마신 뒤 그녀에게 정중하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파쿠아에게도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말을 몰아 사라져 갔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해가 떨어지고 난 다음, 병사는 다시 농장에 나타나서는 먼저 자신이 왔던 북쪽으로 말을 몰았다. 그는 바로 북군의 척후병이었다.

 페이톤 파쿠아의 몸이 다리의 침목 사이로 곧장 밑으로 떨어질 때, 그는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다. 이미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숨이 막힐 듯한 느낌과 함께 무엇인가 자신의 목을 세차게 죄어오는 아픔 때문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마치 몇 년이 흘러가 버린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예리하고 참기 어려운 통층이 목에서부터 몸통과 사지의 모든 조직 사이로 훑어내리는 것 같았다. 고통은 명확하게 갈라진 선을 따라 순간적이고 헤아릴 수 없이 빠른 주기를 갖고 반복해서 그의 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 마치 참을 수 없이 뜨거운 불덩이 속으로 그의 몸을 밀어 넣는 불길의 연속 같은 고통이었다. 머리는 터질 듯이 어떤 것으로 꽉 차 있다는 느낌뿐이었다. 이러한 감각으로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의 지적인 부분은 이미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오로지 느낌밖에 없었으며, 그 느낌은 바로 고통이었다. 그는 움직임을 의식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실체 없이 불타는 심장만 남은 그의 몸은 빛을 내는 구름 사이로 마치 엄청난 추가 움직이듯 커다란 호형을 그리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주위에 어리던 빛이 첨벙 하고 물이 튀기는 큰 소리와 함께 위쪽으로 밀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귀에 섬뜩한 소리만 크게 들렸을 뿐 모든 주위가 갑자기 차가운 암흑으로 변하고 말았다. 문득 사고의 기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줄이 끊어져 몸통이 물길 속으로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의 압박감은 없었다. 목에 감긴 올가미가 이미 그의 숨을 조이고 있어서 물이 그의 허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 주었다. 강바닥에서 교수형으로 죽는다는 생각이 그에게는 우습게 여겨졌다.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위쪽을 바라보니 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빛은 무척 먼 곳에 있어 다다르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빛이 점차 희미해져서 마침내 가물거리는 그 무엇이 있구나 할 정도가 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자신의 몸이 계속해서 가라앉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이제 그 빛이 점차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면 쪽으로 몸이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반갑지가 않았다. 이제 그의 몸은 매우 편안해졌다. ‘목이 졸린 채 익사했다는 것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총에 맞아 죽고 싶지는 않다. 안돼, 총에 맞아 죽을 수는 없어. 그럴 수는 없지.’

 그는 자신이 애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갑자기 팔목에 심한 통층을 느낀 그는 자신이 손목을 묶은 줄을 풀어내려고 애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게으름쟁이가 요술쟁이의 손놀림에만 신경 쓰고 결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노력에만 신경을 썼다. 얼마나 장한 노력인가! 얼마나 엄청나고 초인적인 힘이던가! 멋진 노력의 결과였다. 브라보! 마침내 끈이 떨어져 나갔다. 드디어 그의 두 팔은 자유롭게 되었고, 부력을 받아 위쪽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점차 밝아오는 빛 속에서 양손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한 손이, 그리고 다른 손이 목을 졸라매고 있던 밧줄을 움켜잡는 동작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두 손이 목에 걸린 밧줄을 풀어 옆으로 세차게 뿌리쳐 벗겼다. 밧줄이 풀려나가는 모습은 흡사 물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밧줄을 다시 목에 걸어라, 다시 목에 걸어라.’ 그는 자기 손에게 이렇게 외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밧줄을 풀면서 그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목이 심하게 아팠다. 머리는 불같이 뜨거웠다. 가녀리게 팔딱이던 그의 심장이 크게 고동치면서 입 밖을 터져 나오려는 것 같았다. 온몸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마디마디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러나 그의 손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두 손은 물속에서 세차게 움직이며 빠른 속도로 아래쪽으로 스트로크하여 그의 몸을 수면으로 밀어 올렸다. 머리가 떠오르고 있다고 느꼈다. 두 눈은 햇빛에 자극을 받아 잠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가슴은 갑자기 발작하듯 커졌고, 극히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무릅쓰고 허파는 엄청난 양의 공기를 빨아들인 뒤 즉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내뱉었다.

 이제 그는 육체적인 감각들을 모두 되찾았다. 모든 감각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져 최상의 상태로 돌아왔다. 그의 신체의 각 부분이 엄청난 혼란에 빠져 있을 동안에도, 무엇인가가 그의 감각만큼은 강렬하고 더욱 섬세한 것으로 보호해 주었음인지, 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까지 느끼게 되었다. 물살이 얼굴을 때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물살이 얼굴을 때리면서 내는 소리도 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강둑에 펼쳐진 숲을 보았다. 숲뿐만이 아니었다. 나무들도 하나하나 뚜렷하게 보였으며 나뭇잎, 그리고 잎새의 가지들뿐만 아니라 곤충들까지도 눈에 띄었다. 곤충들이 무엇인지도 구별해 냈다. 매미, 화려한 색깔을 띤 파리, 가지와 가지 사이에 집을 짓고 있는 거미 등…… 수많은 풀잎 위에 맺힌 이슬방울 속에서 무지개 색깔까지 보았던 것이다. 물 표면에서 춤추는 각다귀의 노랫소리, 잠자리의 날개짓소리, 몸을 물 위에 띄우기 위해 다리를 마치 보트의 노처럼 사용하는 물거미의 스트로크 소리 등…… 이 모든 것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물고기 한 마리가 바로 그의 눈 아래를 지나쳐갔다. 물고기가 헤엄치며 물을 가르는 소리도 들려오는 듯하였다.

 그는 하류 쪽을 향한 채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잠시나마 그의 눈앞에 전개되는 모든 세상이 자신을 회전축으로 하여 천천히 회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리와 요새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대위와 하사, 교수형 집행을 위한 두 명의 사병 등 다리 위의 군인들 모습도 눈에 띄었다. 푸른 하늘을 등 뒤에 둔 그들의 모습은 실루엣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은 그를 가리키면서 소리를 지르고 손짓으로 무엇인가 의사표시를 하고 있었다. 대위가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았다. 나머지 군인들에게는 무기가 들려있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이 무척 커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동작도 기괴하고 무시무시했다.

 갑자기 날카로운 총소리가 들리는가 했더니 무엇인가 그의 얼굴 바로 몇 인치 앞에서 수면을 때리며 얼굴에 물보라를 끼얹었다. 두 번째 총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한 보초병이 어깨에 총을 걸고 그를 겨누고 있음을 보았다. 총구에는 파란 연기가 조그마한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속에 있는 그는 가늠쇠를 통해 자신의 눈을 노려보고 있는 다리 위의 사나이 눈을 보았다. 병사의 눈은 잿빛을 보였는데, 잿빛 눈은 날카로우며 또한 모든 명사수는 대부분이 잿빛 눈을 가졌다는 것을 읽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 한 방은 그를 비켜 갔다.

 역소용돌이에 빨려든 파쿠아는 몸이 반쯤 돌려진 상태에서 요새 건너편 숲을 다시 보았다. 단조로운 곡조에 맞춰 크고 분명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바로 귀 앞에서 부서지는 물결소리보다 더 크게, 그리고 다른 모든 소리도 잠잠하게 할 정도로 뚜렷하게 들려왔다. 비록 군인은 아니었지만, 병영에 여러 차례 출입했던 그는 강변에서 아침 근무를 수행하는 중위의 침착하고 남부의 악센트가 섞인, 그리고 기합이 들어있는 목소리의 무서움을 똑똑히 알았다. 참으로 냉정하고 무자비한 말이었다. 정확하고 미리 훈련된 그의 말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었으며 억양은 변화도 없고 신중했을 뿐만 아니라 사병들에게 침착함을 강요하는 그의 말은 참으로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중대 차렷! …… 어깨 총!…… 거총!…… 겨눠 총!…… 발사!”

 파쿠아는 모든 힘을 다해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며 내는 듯한 노호가 귓전을 때렸다. 무뎌진 뇌성 같은 일제 사격의 총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파쿠아는 햇빛에 반사된 쇳조각을 보았다. 한쪽으로 납작해진 이 쇳조각들은 천천히 몸부림치며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중 몇 개가 얼굴과 손에 닿았으나 곧 미끄러져서 계속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중 하나가 옷의 깃과 목 사이에 끼었다. 따뜻한 감촉이 불쾌해진 그는 손으로 그것을 잡아채 물속으로 내동댕이쳤다.

 물 위로 떠올라 숨을 고른 그는 물속에 오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의 안전하다고 할 정도로 그의 몸은 상당히 먼 곳까지 떠내려온 것이다. 병사들은 재장전을 거의 끝낸 듯 보였다. 총구 꼬질대가 총구를 벗어나 허공에서 한 바퀴 돌고 제자리에 놓일 때 햇빛을 받아 한순간 빛을 냈다. 보초 둘이 다시 총을 쏘았으나 서로 시간이 틀렸으며, 그를 맞히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어깨너머로 이러한 모습을 본 도망자는 물결에 따라 열심히 헤엄쳐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다 팔과 다리뿐만이 아니라 머리도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번개 속도와 맞먹을 만큼 빠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저 장교는 두 번 다시 똑같은 실수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제 사격을 피하는 것은 한 방을 피하는 것만큼 쉬운 것, 이미 그는 사병들에게 임의로 사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신이여 저를 도우소서. 그들을 모두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몸에서 반경 2야드 되는 곳에서 갑자기 섬뜩한 물보라가 이는가 싶더니 곧이어 커다랗고 무엇인가 날아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허공을 뚫고 날아온 궤도를 따라 다시 요새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였고, 강바닥까지 휘저어 놓은 폭발음 속에 사라져 갔다. 두꺼운 물담요가 치솟아 오르더니 그를 위에서부터 덮쳐왔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이 막혔다. 마침내 대포가 이 게임 속으로 끼어든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어 뒤집어쓴 물담요에서 헤쳐나오려고 했다. 그때 머리 위의 허공을 뚫고 콧소리를 내며 비껴가는 포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건너편 강둑에 있는 숲속의 나뭇가지들이 찢기고 부서져 허공으로 튀어오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들이 다시 대포를 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포도탄을 쓰겠지. 저 대포에서 눈을 떼서는 안되겠어. 포연을 보면 알 수 있겠지. 포성을 듣고 나면 이미 늦을 테니까. 포성은 나는 포탄보다 속도가 늦으니까. 성능은 좋은 대포로군.’

 순간 그는 자신의 몸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물이며 강둑, 숲,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다리, 요새, 그리고 병사들─╴이 모든 것들이 뒤섞인 채 희미하게 보였다. 실체는 뚜렷이 보이지 않고 색깔로 구별하는 수밖에 없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수평의 색 줄무늬들─╴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그는 소용돌이에 빠져든 것이다. 어지럽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소용돌이를 따라 그의 몸은 빙빙 돌면서 앞으로 나갔다. 몇 분 뒤, 그는 샛강 왼쪽, 남쪽 강둑의 발치에 있는 자갈밭에 밀려 던져졌다. 이곳은 적들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이었다. 갑자기 몸의 움직임이 정지되고 자갈에 긁혀 한 손이 벗겨지자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기쁨의 눈물이 솟구쳤다. 손가락을 모래 속에 집어넣어 한 움큼 집어 들고 머리 위로 던져올리며 소리 내어 자신을 축복했다. 모래는 다이아몬드, 아니 루비, 혹은 에메랄드처럼 보였다. 그는 그 밖의 아름다운 것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강둑에 심어진 나무들은 커다란 정원수들이었다. 그는 그 나무들이 일정한 배열에 따라 심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꽃의 향내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나무들 사이의 공간을 통해 처음 보는 행복의 빛이 빛나는 것이 보였다. 가지 사이에 일어나는 바람 소리는 이올리언 하프1)의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이제 더이상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시 붙잡힐 때까지 그 매혹적인 장소에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머리 위의 나뭇가지 너머로 날아다니는 포도탄의 윙윙거리는 소리에 그는 꿈속에서 깨어났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당황한 포수는 그를 찾아 닥치는 대로 작별인사를 쏘고 있었다. 자세를 바로 고친 그는 경사진 강둑을 뛰어올라 숲속으로 몸을 피했다.

 태양을 길잡이 삼아 그는 하루종일 걸었다. 숲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숲속을 열심히 헤매도 끝은 보이지 않았고, 나무꾼이 다니는 길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인적이 드문 지역에 살아 있으리라는 생각을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러한 뜻밖의 사실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그는 피곤함을 느꼈다. 발을 쓰라렸고 배도 고팠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 생각에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길을 발견해냈다. 집을 향해 올바른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읍내의 길거리처럼 그 길은 넓고 곧게 뻗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길옆에는 들판도 없었고, 어느 곳에도 사람이 사는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사람이 사는 곳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어둠 속에 검게 보이는 나무들은 길 양쪽으로 곧게 뻗은 벽을 만들고 있었다. 그 나무벽 끝은 하나의 점으로 닿아 있었는데, 마치 원근화법을 그릴 때 끝을 하나의 점으로 표시하는 것과 같았다. 머리 위로, 그리고 나무 끝 위의 하늘에는 커다란 금빛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별들이 모여 만든 별자리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별들이 무엇인가 은밀하고 불길한 배열에 따라 별자리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길 양옆에 늘어선 숲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씩이나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 소리도 들었다.

 갑자기 그는 목이 몹시 아프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손을 들어 만져 보니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목에 걸린 밧줄에 문질려져 입은 상처 위에 검은 원이 그려져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눈이 충혈되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 눈을 감을 수도 없게 되었다. 혀도 갈증을 못 이겨 부풀어 있었다. 그는 두 이빨 사이로 혀를 내밀어 차가운 공기로 열을 식히려고 했다. 다행히 길은 부드러운 잔지로 덮여 있었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은 탓이기도 했다. 그는 길바닥이 딱딱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길을 걸으면서 잠을 잔 것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눈엔 새로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허상에서 실상을 보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바로 자기 집 정문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모든 것은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였다.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다. 밤새 걸어 이제야 집에 도착한 것이 분명했다. 대문을 밀어젖히고 넓고 하얀 보도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서 여자 옷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았다. 신선하고 시원하며 다정해 보이는 아내가 베란다를 내려와 그를 맞으려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계단의 발치에 내려선 그의 아내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의 미소를 머금고 비할 데 없이 멋진 기품 어린 태도로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아름다운 내 아내여! 그는 팔을 벌려 앞을 나아갔다. 그가 막 아내를 포옹하려는 순간 무엇인가 목 뒤를 세차게 내려치는 것을 느꼈다. 눈이 부실듯한 하얀 광채만이 그를 감싼 채 대포소리와도 같은 고음이 귓전을 때렸다. 그리고 암흑과 침묵이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페이톤 파쿠아의 숨은 끊어졌다. 목이 부러진 그의 시체는 아울 샛강 철교의 침목 밑에서 밧줄에 묶인 채 옆으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1) Aeolian Harp 바람이 불면 저절로 울리는 자명풍금을 뜻하며 바람의 신인 Aeolus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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