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슨의 인형
목슨의 인형
Ambrose Bierce
“자네, 제정신이야? 진심으로 기계가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가?”
목슨은 대답하지 않은 채, 갈퀴로 난로 속의 석탄을 이곳저곳 열심히 쑤석거렸다. 기술이 좋았던지 불은 곧 활활 타올랐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대해 물어도 쉽게 대답을 안 하는 그의 버릇이, 몇 주 전부터 심해지는 것을 나는 눈치챘다. 그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도대체 기계라는 게 뭔가? 이 단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 가령 사전에는 ‘그것에 의해 힘이 나와 능률이 오르거나 바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도구나 합성물’이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인간도 하나의 기계가 아닐까? 그리고 인간이 사고한다-또는 사고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내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그렇다고 말하는 게 차라리 낫겠네.” 나는 애가 타서 말했다. “자네는 적당히 얼버무리려 하고 있어. 내가 말하는 ‘기계’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지배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으면서 말이야.”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만이겠지.” 그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창가로 갔다. 그러나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밤이라 창밖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미안해. 얼버무리려는 것이 아니네. 다만 사전에 나와 있는 불완전한 문장이 시사 하는 바가 크고, 토론이 필요한 많은 사항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자네의 질문에는 간단히 대답할 수 있어. 기계는 그것이 수행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네.”
과연 간단한 대답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나는 선선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연구실의 작업이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그는 불면증으로 고생했었는데 그것은 결코 가볍게 여길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마음의 병마저 걸린 것일까? 지금의 나라면 다른 해석을 할 테지만, 그 당시에 내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으로 판단할 때, 정신까지 이상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젊었다. 그리고 젊은이에게 부여된 은총중의 하나는 무지(無智)이다. 나는 곱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
“그렇다면 묻겠는데 뇌수(腦髓)가 없는데 어떻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건가?”
여느 때와 달리 즉각적인 그의 답변은 반문 형식이었다.
“식물은 뇌수가 없는데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나?”
“허, 식물도 철학자에 속한다는 건가? 그렇다면 설명을 해주게. 서론은 필요 없고 결론만 말해 보게.”
나의 시답잖은 빈정거림을 무시하며 그가 말했다.
“식물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생각한다면 자네도 이해가 갈 거네. 감각이 예민한 미모사, 곤충을 잡아먹는 몇몇 꽃들, 그리고 멀리 있는 꽃으로 꽃가루를 운반하기 위해 꿀벌이 들어오면 머리를 숙여 꽃가루를 흔들어 떨어뜨리는 수술 등 누구라도 알고 있는 이런 예例 들은 접어두기로 하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정원의 빈터에 덩굴풀을 심은 적이 있다네. 그리고 그것이 지상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1야드 정도 떨어진 곳에 말뚝을 하나 세웠지. 그러자 그 덩굴풀은 말뚝 쪽으로 쑥쑥 자라기 시작했지. 며칠이 지나 말뚝에 덩굴풀이 감기려고 할 때 그것을 뽑아 다른 곳에 박았지. 그랬더니 덩굴풀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예각(銳角)을 그리며 꺾어지더니 새로운 방향으로 자라기 시작하지 않겠나? 내가 몇 번이나 이 과정을 반복하자 결국 덩굴풀이 지쳐 단념했는지 거기서 조금 떨어진 작은 나무로 뻗어나서 그 곳에 휘감기더란 말일세. 또 유칼립투스 나무의 뿌리는 습한 곳에서 잘 자란다네. 이건 유명한 원예가의 이야기인데, 한 그루의 유칼립투스 나무의 뿌리가 오래된 하수도관에 들어가 그것이 부서진 곳까지 자랐네. 하수도관이 부서진 것은 그곳에 돌담이 생겼기 때문이었는데, 유칼립투스의 뿌리는 그 돌담의 틈을 찾아내 그곳을 통해 맞은편으로 자라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리고 나서 원래 지점으로 돌아오더니 또 한 번 돌담의 맞은쪽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자라기 시작했다고 하네.”
“그게 어쨌다는 건가?”
“자네는 이 예들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겠나? 식물에도 의식이라는 것이 있고 사고할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한들 그게 어떻다는 거지? 우리는 지금 식물에 대해서가 아니라, 기계에 관해 말하고 있지 않나. 기계도 일부분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지만 그건 생명이 없는 목재일 뿐이고 대부분의 기계는 금속으로 되어 있네. 광물에도 사고력이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자네는 결정화(決定化)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겠나?”
“무엇이라고도 설명하지 않겠네.”
“자네가 결정화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건, 결정 구성분자 사이에 지적(知的) 협동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도 사실로써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네. 군대가 대열을 짓거나 가운데가 빈 방진(方陣)을 만든다면 자네는 그것을 이성이라고 하지. 또 기러기가 v자형으로 나는 것을 보면 그것을 본능이라고 하겠지. 그런데 광물의 동질입자가 물에 용해된 후 자유롭게 활동해 수학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추거나, 습기 입자가 빙점 이하에서 균형미 있는 눈덩어리를 구성하는 것 등에 대해서는 뭐라고도 정의할 수가 없지 않은가. 이러한 불합리를 은폐할 만한 적당한 단어조차 자네는 찾아낼 수가 없을 거네.”
몹시 흥분한 상태에서 목슨이 하던 얘기를 잠시 중단했을 때였다. 그가 평소에 타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던 ‘연구실’이라고 부르는 옆방에서,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치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목슨은 걱정스러운 듯 급히 일어서더니 옆방으로 달려갔다. 옆방에 누군가 있다는 것에 대해 미심쩍게 생각한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기 힘들었지만, 열쇠구멍을 통해 엿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제하며 꼼짝 않고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자 무엇인가 움직이는 어수선한 소리가 들리며 마루가 삐걱거리더니, 누군가의 헐떡거림과 ‘제기랄’ 소리, 그리고 쥐어짜 내는 듯한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잠시 후 조용해지더니, 목슨이 미소를 지으며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자리를 비워서 미안하네. 옆방에 있는 기계가 짜증을 내면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그렇게 됐네.”
그의 오른뺨에 피가 나는 네 줄기의 긁힌 상처를 보고 내가 말했다.
“기계의 손톱을 좀 깎아주지 그랬나 왜?”
그는 비꼬는 투의 내 농담을 전혀 개의치 않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의자에 앉더니 이야기를 계속했다.
“자네는 그들--책벌레인 자네에게 그 이름을 댈 필요도 없는--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나는 그 이론을 믿고 있네. 즉, 세상의 삼라만상이 지각을 가지고, 모든 원자는 생명이 있으며 감정과 의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론 말일세. 세상 만물은 모두 살아 있으며 활력을 갖고 있지. 모든 것이 본능과 함께 실제적, 또는 잠재적으로 힘을 내포하고 있다네. 그것들은 또한 주위의 힘의 작용에 민감해서, 인간과 같은 보다 고등하고 보다 정밀하며 자유의지에 의해 진화되어 온 유기체와 접촉하게 되면 그 영향을 받는 거라네. 또한 인간의 이지(理知)와 목적을 흡수하지. 그 기능과 작용이 복잡할수록 흡수하는 정도가 커진다네. 그런데 자네는 하버드 스펜서의 생명의 정의를 기억하고 있나? 그 이론을 접한 것은 벌써 삼 십 년 전이고 스펜서가 내용을 바꿨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바꿀 필요도 새로운 문구를 첨가할 필요도 없는 유일무이한 정의라고 생각한다네. 그는 다음과 같이 역설했네. ‘생명이라는 것은 외부에 공존하는 것, 관계된 것과 교통하는 동시적이며 연속적인 각종 변화의 일정한 결합이다’라고 말이네.”
“그건 현상을 정의했을 뿐 원인에 대한 설명은 아니군.” 내가 말했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라네. 씰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들은 선행해서 일어난 것이 원인이고 후에 일어난 것이 결과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 어떤 현상은 다른 현상을 반드시 동반하며 시간적으로 선행한 것을 원인, 뒤에 일어난 것을 결과라고 하지 않는가. 개가 토끼를 쫓고 있는 것을 종종 보면서, 그 밖의 개와 토끼를 보지 못한 사람은 토끼를 개의 원인이라고 하지.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버드 스펜서의 ‘생명’의 정의에 의하면 기계의 움직임도 그 속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라네. 그 정의에 기계에 적용될 수 없는 부분은 하나도 없지. 그래서 가장 날카로운 관찰자이며 가장 심층적인 영역까지 도달한 이 철학자는, 움직이고 있는 인간이 살아 있다면 마찬가지로 움직이고 있는 기계도 살아 있는 것이라고 갈파했던 것이라네. 나는 기계를 발명하고 만들어 보기도 해서 스펜서의 이론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지.”
그렇게 말한 후, 목슨은 입을 다물더니 멍한 표정으로 난롯불을 응시했다. 밤이 깊었으므로 나는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쓸쓸한 외딴집에 그 혼자만 남겨두고 차마 돌아갈 수 없었다. 더구나 옆방에는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비우호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악의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 나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가만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옆방을 가리키면서, “목슨, 저 방에 누가 있나?”하고 물었다.
의외로 그는 가볍게 웃으며 곧바로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아무도 없네. 긴 시간 자네에게 내 생각을 설명하느라 기계 옆에 있어 주지 않고 그것이 움직이는 것을 방치했기 때문에, 자네가 그렇게 느낀 거라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의식은 리듬에서 생성된다는 것을 자네는 알고 있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나는 일어나 외투를 집었다. “난 실례하겠네. 한 가지 말해두겠는데 기계가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 두지 말고, 저렇게 난동을 부려서는 곤란하니 이제부터는 자네의 장갑이라도 끼워주게.”
이렇게 비아냥거리면서 나는 그의 반응도 살피지 않고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
밖은 비가 내려서 어두웠다. 나무요철이 깔린 보도를 지나 포장되지 않은 진흙투성이 길을 가로지르는 내 앞에는 언덕 위 마을의 흐릿한 불빛들이 반사된 밤하늘이 보였으나, 뒤편으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단지 목슨의 집 창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 빛이 나에게는 무엇인가 운명적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싶은, 그런 신비스런 것으로 느껴졌다. 그것이 커튼을 달지 않은 목슨의 ‘연구실’ 창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기계의 의식과 리듬 등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비워놓았던 연구실에 언제나처럼 틀어박혀 머리를 짜내고 있을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이론은 그 당시 나에게는 약간 괴상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했지만, 그 이론들이 어쩐지 그의 생활과 성격-이라기보다는 운명과 비극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그것들이 미친 사람의 망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의견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차치 하고 어쨌든 조리에 맞는 이론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그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의식은 리듬에서 생성된다.’ 짧고 대담한 말이긴 했지만 왠지 그 말에 마음이 끌렸다. 그 말이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점차 그것이 가진 의미의 무게가 더해가며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하나의 철학의 기초가 거기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의식이 리듬의 산물이라면 모든 사물이 운동을 하고 모든 운동에는 리듬이 있으므로 결국 모든 사물은 의식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도대체 목슨은 이 중대한 정의의 의미와 그것이 광대한 응용범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물을 애써 관찰한 결과 그러한 철학적 신념에 도달한 것일까?
처음에 나는 목슨의 신념에 수긍할 수 없었고 장황한 설명을 들어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탤서스의 사울처럼 나는 갑자기 커다란 빛과 부딪쳤다. 나는 비바람과 어둠과 고독 속에서 루이스의 말을 빌자면 ‘명상의 무한한 변환과 흥분’을 경험했던 것이다. 나는 새로운 지식을 체득했다는 사실이 기뻤고 좀 더 현명해진 것 같아 자랑스러웠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듯한, 몸이 보이지 않는 날개에 의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의식중에 내가 방향을 바꾼 것은, 지금은 나의 스승이자 지도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목슨에게 좀 더 가르침을 청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어느새 목슨의 집 문 앞에 서 있었다. 비 때문에 몸이 흠뻑 젖어 있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흥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벨을 누를 생각도 못하고 순식간에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방에 들어갔다. 방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목슨이 옆방 연구실에 있다는 것은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벽을 더듬어 옆방의 문을 찾아낸 나는 두세 번 문을 노크해 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나는 그것에 대해 밖에서 미친 듯이 날뛰며 부는 바람으로 인해 건물의 측면을 때리며 비스듬히 내리는 세찬 빗소리 때문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안에서 들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천장이 없는 방 위의 판자지붕을, 잠시도 쉬지 않고 때리는 빗소리는 정말 요란했다.
내가 연구실을 안내받은 적은 그때까지 한 번도 없었다. 그보다는 출입을 금지당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몰랐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적용되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예외가 있었다. 그 사람은 경험 많은 금속 기술자였는데,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알려진 것은 이름이 해리라는 것과 말이 없는 남자라는 정도였다. 감정이 고조되어 있었으므로 나는 평소의 조심성을 잃고 갑자기 문을 열었다. 방안에 전개된 광경을 보고 나는 그 때까지의 철학적 명상을 일시에 까맣게 잊고 말았다.
작은 탁자 위에 켜져 있는 촛불이 그 방의 유일한 빛이었다. 그 탁자의 중앙에 문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앉아 있는 사람이 목슨이었고, 그 반대편에 등을 보이고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체스 판을 사이에 두고 승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체스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체스 말이 적게 남은 것을 보아서는 승부는 막바지에 이른 것 같았다. 그런데 목슨의 주의는 체스 자체보다는 오히려 상대방 남자에게 쏠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꼼짝 않고 그는 상대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면에 있는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목슨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창백했고 눈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상대방 남자는 등을 돌리고 있어 얼굴을 볼 수도 없었지만 나는 그 남자의 얼굴에는 아무런 흥미도 없었다.
그 남자는 5피트 정도로 추측되는 키에 고릴라 같은 체격으로, 등은 엄청나게 넓었고 머리는 크고 납작했다. 둥그런 얼굴 뒤로 까만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빨간 터키모자와 빨간 블라우스에, 허리에는 벨트를 단단히 메고 소매는 의자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다리는 상자 모양의 의자에 가려 내 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왼손은 무릎에 얹고 오른손은 체스 말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팔이 몸에 걸맞지 않게 긴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움츠리고 문간에서 옆으로 붙어서면서 어둠 속으로 숨었다. 그래서 설령 목슨이 그 남자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이쪽으로 돌린다고 해도 문이 열려 있다고만 느낄 뿐 내가 보일 염려는 없었다. 나는 그 방에 별로 있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어쩐지 금방이라도 비극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친구를 보호하는 것이 내 의무처럼 느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몰래 훔쳐보는 자신의 행동에 그다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가만히 몸을 숨기고 있었다.
체스 말을 움직이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제대로 체스판을 보지도 않고 말을 움직이는 목슨의 신경질적이고도 빠른 손놀림은 정확성이 부족했고, 체스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그가 가장 가깝고 이동시키기에 편리한 말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대방 남자도 신속하게 말을 움직였지만 느리고 기계적이며 항상 똑같은 손놀림이, 어딘지 모르게 남의 이목을 의식한 연극 같아 나는 반감을 느꼈다. 그의 차림새며 행동거지 모두가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 나는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그건 내가 비에 젖어있어 추위를 느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남자는 두세 번 말을 움직인 후 고개를 갸우뚱거렸는데, 그때마다 목슨은 킹을 이동시켰다. 잠시 후 나는 그가 벙어리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다음에는 그 남자가 기계-체스를 두는 자동인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반신반의하며 들었지만, 이전에 목슨이 그런 기계를 만들었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가 장황하게 기계의 의식과 지혜 등에 대해 설명한 것은, 후에 이 작품을 선보이기 위한 예비동작이었던 것일까? 그러한 정밀한 기계적 구조를 모르는 내가 그것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때의 놀라움을 한층 더 충격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 그의 의도였을까?
나에게 하늘에라도 오를 듯한 지적 기쁨을 안겨준 정체가 이런 것일 줄이야! 이것이 ‘명상의 무한한 변환과 흥분’인가. 속이 뒤집혀서 돌아가려고 했을 때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눈에 들어왔다. 인형이 초조한 듯 커다란 어깨를 움츠렸던 것이다. 그 동작이 너무나도 현장감 있고 인간의 행동과 똑같았기 때문에, 나는 그 실체가 인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만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인형이 주먹을 쥐더니 격렬하게 탁자를 두들겼던 것이다. 이 행동에는 나 이상으로 목슨도 놀란 것 같았다. 그는 깜짝 놀라며 의자를 뒤로 약간 움직였다.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이 둘 차례가 되자 한 손을 높이 올렸다가 독수리가 하강하듯이 내려 말을 하나 쥐고 “장군!”하고 외치더니, 일어서서 자기 의자 뒤로 갔다. 자동인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람은 어느새 잠잠해지고 그것에 대신해 천둥이 점점 빈번하게 큰소리를 내며 치기 시작했다. 천둥소리 사이사이에 귀를 기울이자, 기계적인 낮은 마찰음이 천둥소리와 마찬가지로 차츰 높아지며 뚜렷이 들렸다. 그 소리는 인형의 몸에서 나는 것으로 톱니바퀴 몇 개가 회전하는 소리가 틀림없었다. 그것은 무엇인가의 이상으로 기계가 고장나, 기계의 활동을 제어하는 부분이 말을 듣지 않을 때-예를 들면 톱니바퀴의 제동 장치가 빠졌을 때 나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 소리의 성질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 주의는 자동인형의 기괴한 행동으로 쏠렸다. 기계가 미미하지만 연속적인 경련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마비되었거나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머리와 몸을 약하게 떨더니, 갑자기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펄쩍 하고 날아오르고,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잠수부가 물을 헤치고 나아가는 듯한 자세로 의자와 탁자를 뛰어넘었다. 목슨은 당황해서 뒷걸음질치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무시무시한 형상을 한 인형이 두 손으로 목슨의 목을 조르는 것을 보았다. 목슨은 인형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탁자가 뒤집어지고 초가 바닥에 떨어져서 꺼지더니 칠흑 같이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도 엎치락뒤치락 격투를 벌이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뚜렷하게 들렸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속에서도 가장 섬뜩했던 것은 목이 졸린 상태에서 목슨이 호흡을 하려고 그르렁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소리였다. 나는 어둠 속의 친구를 구하려고 그 절박한 소리에 의지해서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 순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눈이 부신 불빛이 갑자기 확 퍼졌기 때문에, 바닥에서 뒹구는 그들의 모습이 내 머리와 가슴과 기억 속에 불에 덴 듯 각인 되었다. 밑에 깔린 목슨은 강철로 만든 손가락으로 목이 졸려 눈은 크게 뜨고, 앞으로 내민 턱 위에는 있는 대로 벌어진 입에서 나온 혀가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토록 대조적일 수 있을까! 전형적인 살인자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하여 마치 체스의 다음 수를 궁리하고 있는 듯했다. 이상이 내가 목격한 전부였다. 그리고 어둠과 침묵이…….
사흘 후, 나는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았다. 지끈지끈한 머리로 차츰 공포스런 비극의 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있던 나는, 머리맡에 목슨이 신뢰하고 있던 기술자 해리가 앉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눈의 움직임을 보고 그는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미소 지었다.
“말해 주게, 하나도 빠짐없이.”
나는 꺼져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불이 난 집에서 구해냈을 때 당신은 거의 죽은 것과 마찬가지 상태였죠. 어째서 당신이 그 집에 갔는지 모두들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화재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번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슨은?”
“어제 매장했습니다. 타다 남은 유골들을.”
말이 없는 인물로 알려진 그도 필요할 때는 입을 여는 사람인가 보다. 그날 밤의 일을 나에게 얘기해 주는 그의 태도는 상당히 붙임성이 있어 보였다. 잠시 격렬한 정신적 고통이 스치고 지나간 뒤, 나는 또 물었다.
“누가 나를 구해줬나?”
“그런 게 알고 싶습니까? 접니다.”
“고맙네, 해리. 자네에게 신의 축복이 있길. 자네가 만든 자동인형, 발명자를 살해한 체스 두는 인형도 자네가 구해냈나?”
눈길을 돌리며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윽고 나를 외면한 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밤 일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네. 전부 보았지.”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지금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그렇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