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4. 15. 06:43

손님

Albert Camus

 

 

교사(敎師) 다류는 이쪽으로 향해 올라오는 두 사나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말을 타고 한 사람은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직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학교로 통하는 험한 길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들은 쓸쓸한 고원의 넓은 벌판에 깔린 돌부리를 피해 눈 내리는 길을 천천히 걸어오는 길이었다. 말은 가끔 휘청거렸다. 코에서 내뿜는 입김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눈으로 볼 수는 있었다.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그 지방 지리를 잘 아는 성싶었다. 그들은 며칠 전부터 흰 눈더미에 덮인 지름길을 더듬어 온 것이었다. 다류는 그들이 30분 이내로 언덕 위에 올라오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였다. 날씨는 쌀쌀하였다. 그는 털 쟈켓을 입으려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교실은 텅 비고 찬 바람이 돌았다. 흑판 위에는 사흘 전부터 여러 가지 색깔이 분필로 그려진 프랑스의 네 개의 강이 항구로 흐르고 있었다. 8개월 동안이나 가뭄이 계속되더니 비가 올 겨를도 없이 10월 중순에 이르러 눈이 마구 퍼부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원지대에 산재해 있는 마을에 사는 20여 명의 학생들은 학교에 오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들은 날씨가 개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류는 교실 곁에 있는 자기 방에만 불을 지피고 있었다. 동쪽 언덕을 향한 이 방엔 창문 하나가 남쪽을 향해 있었다. 이 창문에서 내다보면 학교는 고원의 남쪽으로 내뻗기 시작한 기슭에서 몇 킬로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맑은 날이면 이 창문을 통하여 황무지를 거느리고 여러 골짜기를 이룬 보랏빛 산봉우리들이 내다보였다.

몸을 좀 녹인 다류는 조금 전에 두 사나이를 발견한 창문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필경 그들은 함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늘은 훤히 트이고 밤사이에 눈이 그쳤다. 희미한 햇살이 비쳐오며 날이 밝았다. 그러나 방안은 좀체로 훤해지지 않았다. 오후 두 시나 되어야 겨우 낮이 된 듯싶었다. 그러나 2중으로 된 교실 출입문을 마구 흔들어대던 눈보라 속에서 보내온 지난 사흘 동안 그는 암탉들을 돌보거나 석탄을 가지러 갈 때 외에는 밖에 나간 일이 없었다. 그는 자기 방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다행히 눈보라가 몰아치기 이틀 전에 가까운 북쪽 마을의 화물자동차가 식량을 운반해 왔다. 그 화물자동차는 48시간 후에나 다시 오게 될 것이다. 그 밖에 그의 조그마한 방에는 당국에서 한재로 피해를 입은 학생들의 가족에게 분배해 주라고 보내온 밀 포대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가난하였으므로 불행은 모든 사람에게 닥쳐왔다. 다류는 날마다 하루 치의 식량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요새 사나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람에 그들에게는 식량이 더욱 부족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그날 저녁엔 학생들의 부형이 몇 됫박의 밀 배급을 타러 학교에 찾아올 것이다. 그들은 돌아오는 수확기까지 연명해 가야만 할 처지에 있었다. 프랑스로부터 곡식을 실은 배가 어제 도착하였으니 가장 어려운 고비는 넘기게 된 셈이다. 그러나 그 누더기를 걸치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벌판을 헤매는 유령들이며, 점점 더 타들어 가는 고원지대, 말라붙은 땅덩이, 발밑에서 햇볕에 달은 돌들이 먼지처럼 부서지는 것 등등……차마 잊을 수 없는 참상이다. 양들은 수천 마리씩 떼죽음을 하고, 사람들도 여기 저기서 몇몇이 숨을 거두었다.

이와 같은 참상을 바라보며, 외딴 학교에서 수도승처럼 파묻혀, 그가 가지고 있는 하찮은 것과, 따분한 인생에 만족하며 사아온 그는 진흙 벽이나, 조그마한 송판과 생나무로 만든 선반, 그리고 매주 한 번씩 실어오는 음료수와 시량의 보급 속에서 스스로 장관이라도 된 듯이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 예고도 없이 비가 내릴 겨를도 없이 갑자기 눈이 쏟아진 것이다. 아무도 막아 낼 수 없고 사람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그렇게 살기 어려운 고장이었다. 그런데 그 고장에서 태어난 다류는 어디를 가나 귀양살이인 것을 면치 못하였다.

그는 학교 앞 둑으로 나왔다. 그 두 사나이는 이제 언덕 위에 이르렀다. 말을 탄 사람은 그와 구면인 늙은 헌병 발두치였다. 헌병은 한 아랍인을 묶은 끈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아랍인은 손이 묶인 채 고개를 숙이고 헌병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헌병은 다류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였지만, 아랍인을 감시하기에 바빠서 미처 인사를 받지도 못했다. 그는 푸른색의 지에라바(回敎徒의 옷)를 입고, 두툼한 털양말에 샌들을 신었으며, 머리에는 좁고 짧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왔다. 헌병은 뒤따라오는 아랍인이 힘에 겹지 않도록 천천히 말을 몰고 있었다. 헌병은 목소리가 들릴 만한 곳에 이르자 소리쳤다.

엘 아뫼르에서 오는 길이오. 3킬로를 한 시간이나 왔소.

다류는 아무 대꾸도 않았다. 두터운 쟈켓을 입은 탓으로 키는 작고 어깨만 넓어 보이는 그는 다만 그들이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랍인은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들어와서 좀 녹이시죠.

그들이 둑 위에 이르자 다류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노끈을 잡은 채 말에서 내려 위로 뻗친 콧수염을 벌름거리며 웃어 보였다. 햇볕에 그을은 이마 밑에 움푹 파인 새까만 눈과 주름살에 둘러싸인 입은 조심스럽고 착실한 인상을 주었다. 헌병은 말을 헛간에 매 두고,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돌아왔다. 다류는 그들을 자기 방으로 인도했다.

교실에다 불을 때도록 하죠. 거기가 더 편할 테니까.

하고 헌병은 말하였다. 다류가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왔을 때, 헌병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랍인을 묶은 노끈을 끌러 주었다. 그러나 손은 묶인채 난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처음에 다류는 흑인종같이 크고 두툼하며 반질반질한 아랍인의 입술만이 눈에 띄었으나, 자세히 보니 코는 날이 서고 새까만 눈은 열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고집 세게 생긴 이마가 머리띠 밑으로 드러나 보이고, 거무죽죽하고 추위에 여윈 듯한 얼굴에는 불안감과 반항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다류를 뚫어지게 바라보자 그의 가슴은 뜨끔하였다.

옆방으로 가시죠. 차를 끓여 드리죠.

다류는 이렇게 말하였다.

고맙소. 이게 무슨 고생이람! 어서 은퇴해야지.

헌병은 이렇게 말하며 아랍인을 불렀다.

, 이리 와!

아랍인은 묶인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자리에서 일어나 찬찬히 교실로 들어섰다.

다류는 차와 의자를 갖고 왔다. 헌병은 맨 앞의 핵생용 책상 위에 걸터앉고, 아랍인은 창문과 테이블 사이에 놓인 난로 앞 교단에 기대어 쭈그리고 있었다. 다류는 그 앞에 찻잔을 내밀려다가 묶인 손목을 보고 주저하였다.

풀어도 괜찮지요?

풀어야지. 데리고 오느라고 그런 거니까……」

하면서 헌병은 일어서려고 하였다. 다류는 찻잔을 마룻바닥에 놓고 아랍인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랍인은 열띤 눈으로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밧줄이 풀리자 그는 부어오른 손목을 마주 부비고 나서 찻잔을 들고 쭉쭉 들이마시는 것이었다.

됐어.

하며 다류가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시죠?

헌병은 찻잔에서 콧수염을 꺼내더니

그저 여기까지 왔지.

하는 것이었다.

거 괴상한 학생들이군! 그럼 당신들 여기서 잘 적정이세요?

아니, 나는 엘 아뫼르로 돌아갈 테니 당신이 이 자를 텡귀로 좀 데려다주슈. 합동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헌병은 다류에게 다정한 미소를 던졌다.

무슨 말씀이죠? 사람을 놀리기에요?

하고 다류는 반문하였다.

천만에, 나는 명령을 받았소.

명령요 나는……」

다류는 주춤하였다. 그는 늙은 코르시카 영감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 직책이 아니니까요.

거 무슨 소리지? 전시에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하오!

그렇다면 선전포고를 할 때까지 기다리지오.

헌병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소. 그러나 명령을 받았소. 당신과도 관계가 있오. 공기가 뒤숭숭한 것 같소. 새로운 폭동이 일어날 모양이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선 동원된 거나 마찬가지라오.

다류는 여전히 완강하게 버티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당신을 좋아하오. 내 심정을 좀 알아줘야지. 엘 아뫼르에는 헌병이 모두 열두 사람뿐인데 꽤 넓은 지역을 순찰해야 해요. 그러므로 부득이 돌아가야 하오. 이자를 당신에게 맡기고 곧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소. 이자를 거기 둘 수는 없소. 마을 사람들은 이 자를 구출하려고 법석들이오. 내일 하지기 전까지 당신이 이자를 탱귀까지 데리고 가야 되어. 당신 같은 장정에게는 20킬로쯤은 겁날 것 없을 테니까. 데리고 가기만 하면 일은 끝나오. 그리고 돌아와서 학생들과 다시 재미있는 나날을 보내면 되지 않소.

벽 뒤에서 말이 재채기를 하며 발굽으로 땅을 구르는 소리가 들여왔다. 다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은 말끔히 개었다. 눈에 덮인 고원 위에 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눈이 모두 녹으면 태양은 다시 대지 위를 지배할 것이며 돌밭을 태워 버릴 것이다. 하늘은 변함없이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적막한 대지 위에 건조한 햇볕이 내리비칠 것이다.

그렇지만…….

하고 다류는 헌병에게 돌아서며 말하였다.

대체 이 자가 무슨 짓을 했어요?

그는 헌병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이 자는 불어를 아나요?

한마디도 못 하오. 우리는 이 자를 한 달 전부터 찾아다녔는데, 한 패거리들이 숨겨 주었소. 이 자는 자기 4촌 형을 죽였다오.

우리의 적수(敵手)인가요?

그렇지야 않을 테지. 그러나 혹시 모르겠소.

왜 죽였을까요?

잘은 모르지만 집안싸움으로, 서로 곡식 꿈질을 했던 모양이오. 아무튼 낫으로 염소를 죽이듯이 자기 사촌을 푹 찔러 죽였단 말이오.

헌병이 자기 목에 칼을 찌르는 시늉을 하자 아랍인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류는 그 사나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지닌 악독과 증오와 피비린내 나는 광증(狂症)에 대하여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오는 것을 느꼈다.

난로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의 차가 끓어올랐다. 헌병에게 한 잔 더 권하고 머뭇거리다가 아랍인에게도 다시 따라 주었다. 아랍인은 벌떡벌떡 마셔 버렸다. 다류는 아랍인이 팔을 올렸을 때 옷깃이 벌어진 사이로 그의 메마른 가습을 보았다.

고맙소. 그럼 나는 가겠소.

헌병은 말하였다.

그는 일어서서 아랍인에게 다가가면서 호주머니에서 노끈 하나를 꺼내었다.

어떻게 하시려구요?

다류는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헌병은 난처한 표정으로 노끈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럴 필요는 없지 않아요?

늙은 헌병은 머뭇거렸다.

좋도록 하시오. 물론 무기는 갖고 있죠?

엽총이 있어요.

어디 있소?

고리짝 속에요.

머리맡에 놓고 자도록 해요.

그건 왜요? 난 두렵지 않은데요.

당치 않은 소리 마시오. 만일 그들이 들고 일어나면 꼼짝 못 하고 일을 당하는 거요. 우리는 모두 같은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문제없어요. 나는 그들이 밀어닥치는 것을 살필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요.

헌병이 웃기 시작하자 콧수염이 곧 흰 이빨을 덮어버렸다.

시간이 있다구? 그래 내가 하려는 말이 버로 그거요. 당신은 언제나 좀 애브노멀하다니까. 그래서 난 당신을 좋아하지. 우리 아들놈도 그랬지.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권총을 빼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갖고 있소. 난 여기서 엘 어뫼르까지 가는데 두 자루의 총은 필요 없소.

권총은 검은 테이블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헌병이 다류에게로 돌아섰을 때, 가죽 냄새와 말 냄새가 동시에 풍겨왔다.

박듀치씨!

갑자기 다류가 말하였다.

만사가 귀찮군요. 그자부터 그렇구요. 그리고 나는 그를 연행하지 않겠어요. 필요하다면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 짓은 못해요.

노헌병은 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하긴 나도 이 자를 노끈으로 묶기 싫소. 이 짓을 여러 해 해 오지만 아직도 이런 일에 익숙하지 못할 뿐 아니라 때로는 부끄럼을 느낄 때도 있소. 그러나 그냥 놔둘 수도 없는 일 아니겠소.

여하튼 나는 연행하지 못하겠어요.

다류는 되풀이 말하였다.

이건 명령이오. 거듭 말하지만 순종해야 하오.

내가 한 말을 부대에 가서 이야기하시죠. 나는 그를 연행 못 하겠어요.

헌병은 무슨 궁리를 하는 눈치였다.

천만에, 나는 돌아가서 아무 소리도 않겠소. 만일 당신이 우릴 버릴 생각이라면 좋은 대로 하시오. 난 당신을 고발할 생각은 없으니. 나는 죄수를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했을 뿐이오. 당신은 서류에 서명을 해야 되오.

필요 없어요. 난 당신이 죄인을 위탁한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나를 못살게 굴지 마시오. 당신의 본심은 잘 알고 있지만, 당신은 이 고장 사람이고 우리는 같은 족속이 아니겠소. 어쨌든 서명은 해야 하오.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다류는 서랍을 열고 4각형의 조그마한 잉크병과 그가 펜 습자로 쓸 때 사용하는 <셰르장 마죠오르>표의 촉이 달린 빨간 펜대를 꺼내어 서명을 하였다. 헌병은 서명한 종이를 소중하게 접어서 지갑 속에 넣고 문 앞으로 걸어갔다.

바래다 드리죠.하고 다류가 말하였다.

그런 예의를 지킬 필요는 없소. 나에게 창피를 줄 때는 언제고…….

헌병은 옆에 앉아 있는 아랍인을 가만히 바라다보더니 서글픈 얼굴을 하고 코를 훌쩍이며 문 앞으로 돌아섰다.

잘 있소!

한마디 던지고 그가 밖으로 나가자 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창 너머로 그의 모습이 어른거리더니 곧 발자국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판장 뒤에서 말이 서성거리고 암탉들이 놀라 도망쳤다. 잠시 후에 헌병은 말 고삐를 잡고 창문 앞을 지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덕을 향해 말과 함께 사라졌다. 이어서 커다란 돌들이 구른 소리가 들려왔다. 다류는 죄수에게로 돌아왔다. 조수는 몸을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을 잠시도 그에게서 때지 않았다. 다류는 아랍말로, 기다려!하고는 자기 방 문지방을 넘어서다 말고, 마음을 돌이켜 테이블에 되돌아와 권총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가 버렸다.

그는 한동안 소파 위에 누워서 차츰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지내는 동안에 그의 마음을 괴롭히던 바로 그 정적이었다. 그때 그는 사막으로부터 그 고원을 갈라놓은 산줄기 밑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일자리를 구했던 것이다. 그 고장에서 북향은 초록빛과 검정빛, 남향은 다홍색이거나 자색의 벽돌이 여름의 경계를 명시하고 있었다.

그는 같은 고원의 좀 더 북쪽 지방에 보직(補職)을 받았다. 처음에는 사방 돌밖에 눈에 뜨이지 않는 그 고장에서 고독과 정적으로 하여 몹시 괴로웠다. 간혹 눈에 띄는 밭고랑 같은 것은 그에게 농사를 연상시켰으나 그것은 다만 건축에 쓸 돌을 파내느라고 자연히 만들어진 고랑이었다. 여기서는 밭을 간다기보다는 돌을 주워내기 위해 땅을 파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구덩이 속에서 흙 부스러기를 긁어내어 초라한 정원에 거름으로 사용한 적도 있다. 아마도 그 고장은 4분의 3은 돌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도시가 생겨났다가 사나운 햇볕에 타서 사라지곤 하였다. 사람들은 그 고장에서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헐뜯기도 하며 죽어갔던 것이다. 사막에서는 자기나 아랍인 죄수나 보잘 없기로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막을 떠나서는 살길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교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아랍인은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고 자기는 아무 결단을 내릴 필요도 없이 혼자 남게 되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마음이 후련해지는데 스스로 놀랐다. 그러나 죄수는 도망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는 테이블과 난로 사이에서 다리를 펴고 잠들어 있었다. 좀 심술꾸러기 같은 두터운 입술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리 와!

하고 다류는 그에게 말하였다. 아랍인은 일어나서 그의 뒤를 따라왔다. 다류는 방안에 들어서자 창문 곁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그는 다류를 쳐다보면서 의자에 앉았다.

배고파?

.

하고 죄수는 대답하였다.

다류는 두 벌의 식기를 꺼내었다. 밀가루와 기름을 접시에 개어서 과자 반죽을 하여 가스풍로에 불을 붙였다. 과자가 익는 동안에 헛간으로 치즈, 계란, 대추 그리고 가루우유를 가지러 갔다. 과자가 다 익자 그는 식히려고 창가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나서 물에 푼 우유를 데우고 마지막으로 계란을 부쳤다. 그러는 동안에 오른쪽 호주머니에는 권총이 덜거덕거렸다. 그러자 그는 접시를 놓고 교실로 가서 권총을 테이블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그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캄캄한 밤이 되었다. 그는 등불을 켜고 아랍인에게 음식을 권하였다.

들게.

아랍인은 과자 조각을 재빨리 입에 가져가더니 머뭇거렸다.

선생님은 안 드십니까?

자네 먹은 다음에 먹지.

아랍인은 두꺼운 입술을 벌리고 약간 주저하다가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이 과자를 깨물었다. 식사가 끝나자 아랍인은 교사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심판관이십니까?

아냐, 나는 자네를 내일까지 보호하는 것뿐이야.

배가 고프니까 먹지.

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다류는 일어나서 밖을 나갔다.

그는 헛간에서 야영(野營) 침대 하나를 들고 와서 자기 침대와 수직으로 테이블과 난로 사이에 놓았다. 그리고 한 구석에 세워두고 서류 선반으로 쓰던 트렁크에서 두 장의 담요를 꺼내어 침대 위에 깔았다. 별로 할 일도 없는 그는 자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의 할 일이란 그 사나이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는 분노에 가득 찼을 때의 사나이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그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다만 가무잡잡하게 빛나는 사나이의 눈과 동물적인 입술이 유난히 눈에 뜨일 따름이었다.

왜 사촌 형을 주였지?

그는 사나이가 놀랄만큼 적의를 품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놈이 동낭치기에 뒤쫓아가서 해치웠지요.

그는 얼굴을 들면서 말하였다. 그들은 둘이 다 일종의 불쾌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인제 저는 어떻게 되나요?

불안한가?

사나이는 시선을 돌리면서 몸을 웅크렸다.

후회하나?

아랍인은 입을 벌린 채 그를 쳐다보았다. 아마도 말뜻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다류는 마음이 초조하였다. 두 침대를 놓고, 큼직한 몸뚱이를 눕힐 생각을 하니 어쩐지 마음이 꺼림칙하였다.

이것이 자네 침댈세. 어서 자게.

그는 자기 감정을 억제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랍인은 조용히 말하였다.

여보세요!

다류는 그를 쳐다보았다.

헌병이 내일 또 오나요?

나는 잘 모르겠어.

선생님도 우리와 함께 가나요?

모르겠는데, 왜 묻지?

죄수는 창문 쪽으로 발을 두고 담요 위에 누웠다. 등불이 그의 눈으로 곧장 비쳐오므로 그는 눈을 감아버렸다.

왜 묻지?

다류는 침대 앞에 서서 다시 물었다. 아랍인은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불빛 아래서 눈을 껌뻑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다류를 쳐다보았다.

선생님도 함께 가 주세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다류는 그날 밤 뜬 눈으로 새웠다. 그는 옷을 홀딱 벗고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알몸이 되자 불안한 생각이 들어 옷을 다시 입으려고 했지만, 마음을 돌이켜 어깨를 으쓱 치켜올리고 말았다. 남들도 그렇게 하고 자는 것을 보았으며 만일 필요할 때엔 언제든지 적을 때려눕혀 두 동강이를 내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그 사나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 사나이는 밝은 불빛 아래 천장을 향해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다류가 불을 끄자 어둠이 한숨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별도 없는 하늘이 고요히 움직이는 것이 내다보이는 창가에서, 밤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었다. 다류는 자기 앞에 누워 있는 몸뚱이를 곧 알아볼수 있었다. 아랍인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눈은 뜬 모양이었다.

학교 주위를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마도 그 바람이 구름을 몰아내면 내일 아침에는 밝은 햇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바람이 차츰 기세를 올렸다. 암탉들이 소란을 부리더니 조용해 졌다. 아랍인은 다류 쪽으로 등을 돌리고 모로 누워 있었다. 그는 끙끙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점점 세차게, 그리고 규칙적으로 변해가는 그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류는 그 숨소리가 너무나 똑똑히 들려오기 때문에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그는 꿈만 꾸었다. 1년 전부터 혼자 자던 자기 방에 딴 사람이 잔다는 것이 어쩐지 부자연스러웠다.

자기가 거부한 일종의 우애를 그 사나이는 그에게 강요했기 때문에 그는 괴로웠던 것이다. 병정이든 죄수이든 간에 한방을 쓰는 사람들은 마치 꿈속에서 알몸이 되어 사회적인 지위를 초월하여 영원한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손을 마주 잡듯이 기이한 인연을 맺게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다류는 몸을 움직였다. 그는 자기의 어리석은 짓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잠을 자려고 하였다.

잠시 후에 아랍인은 몸을 약간 움직였다. 다류는 눈이 말똥거렸다. 죄수가 다시 몸을 움직이자 다류는 긴장하였다. 아랍인 죄수는 천천히 팔을 집고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거의 몽유병자와 같은 동작이었다. 그는 몸을 돌리지 않고 침대 위에 우두커니 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하였다. 다류는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는 테이블 서랍 속에 넣어둔 권총을 생각하였다. 곧 행동을 취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그는 사나이를 감시하고 있었다. 죄수는 발을 땅에 내려놓더니 한참 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류는 아랍인이 걷기 시작하지 그를 부르려고 하였다. 그는 자연스럽고 조용한 태도로 헛간으로 통한 문을 향해 발을 옮겨놓았다.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열어 놓은 채 밖으로 나갔다. 다류는 가만히 있었다. <도망쳤군. 시원하게 잘 됐어> 이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암탉들이 떠들지 않는 것을 보니 그는 반대쪽 언덕에 있는 모양이었다. 어렴풋이 어디선가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랍인이 돌아와서 슬그머니 문을 닫고 조용히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야 비로소 그 물소리의 정체를 알아냈다. 다류는 그제서야 그에게로 등을 돌리고 잠이 들었다. 얼마 뒤에 꿈속에서 학교 주변을 거니는 발길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꿈을 꾸고 있어. 꿈이야.

이렇게 잠꼬대를 하면서 자고 있었다.

 

그가 깨어났을 땐 하늘은 훤히 밝았다. 잘 들어맞지 않는 창문 틈으로 차고 맑은 공기가 스며들었다. 아랍인은 담요 속에서 입을 벌린 채 웅크리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다류가 흔들어 깨우자, 그는 벌떡 일어나 미친 듯한 눈초리로 다류를 쳐다보았으나,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겁에 질린 얼굴을 하여 다류를 한 발짝 뒤로 물러서게 하였다.

나야, 그렇게 무서워할 것 없어. 아침을 먹어야지.

아랍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자고 대답하였다. 그의 마음은 가라앉은 듯싶었으나 어쩐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커피가 끓었다. 두 사람은 야영 침대 위에 앉아서 과자를 씹으며 커피를 마셨다. 다류는 아랍인을 뒷마루 지붕 밑으로 데리고 가서 세수를 하라고 수도를 가리켜 주고 방으로 돌아와 방안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나서 교실을 지나 둑으로 나갔다. 푸른 하늘에는 벌써 해가 떠올라 신선한 햇살이 황막한 고원을 비추고 있었다. 언덕에서는 군데군데 눈이 녹아내렸다. 돌들도 따뜻한 햇빛을 쪼이게 될 것이다. 다류는 둑 한쪽 끝에 쭈그리고 앉아서 황막한 당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헌병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헌병의 작별인사가 그의 귓전을 울리고 있었다. 그는 까닭 모르게 공허하고 무기력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그때 학교 저편에서 죄수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다류는 그 소리를 듣자 본의 아닌 화가 나서 돌을 집어 던졌다. 돌은 쌩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 눈 위에 떨어졌다. 아랍인의 어리석은 범죄가 그에게 반발을 일으키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를 넘겨다 준다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이었다. 그것은 생각만 하여도 굴욕감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아랍인을 자기에게 보낸 동족들과 살인을 하고도 도망칠 줄 모르는 아랍인을 원망하였다. 그는 일어나서 둑을 빙빙 돌다가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아랍인은 헛간 시멘트 바닥에 허리를 굽히고 두 손가락으로 이를 닦고 있었다. 다류는 그것을 보고 있다가 이윽고,

이리 와!

하고 말하였다. 그는 죄수의 앞장을 서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쟈켓 위에다 사냥용 저고리를 덧입고 군화를 신었다. 그리고 아랍인이 벙거지를 쓰고 샌들을 신는 것을 기다렸다.

그들은 학교 앞을 지나자, 다류는 아랍인에게 출구(出口)를 가리키며.

가게!

하고 말하였다.

아랍인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나도 같이 갈까?

다류가 물었다. 아랍인은 밖으로 나갔다. 다류는 방에 들어가서 비스켓과 대추와 설탕을 싸 들었다. 그는 교실을 나서기 전에 테이블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문지방을 넘어서자 문을 닫아걸었다.

이리로 가야 해.

하고 다류는 말하였다. 그는 죄수더러 뒤따르라 하고 동쪽을 향해 걸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서 학교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돌아와서 교사 주위를 살폈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랍인은 영문 모를 그의 거동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가지.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들은 한 시간쯤 걸어간 후에 석회암으로 된 산 밑에서 쉬었다. 눈은 점점 더 빨리 녹기 시작하였다. 태양은 곧 진탕물을 빨아올려 삽시간에 고원지대를 말라붙게 하고,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다시 출발했을 때 흙이 발밑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때때로 새소리가 공간을 뚫고 들려왔다. 그들은 심호홉을 하여 신선한 공기와 햇볕을 들이마셨다. 푸른 하늘 아래, 이제는 거의 황금빛이 된 낯익은 대자연의 품에 안겨 생기가 솟아올랐다. 그들은 남쪽을 향해 다시 한 시간쯤 걸어갔다. 드디어 부스러지기 쉬운 바위로 된 평탄한 언덕에 이르렀다. 거기서부터 고원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즉 동쪽으로는 메마른 몇 그루의 나무가 보이는 평원(平原)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기복(起伏)이 심한 바윗돌로 뒤덮인 벌판으로 뻗어 있었다.

다류는 두 방향을 살펴보았다. 멀리 지평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을 뿐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아랍인에게로 돌아섰다. 아랍인은 어리둥절하여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류는 그에게 보따리를 내밀었다.

받아 둬. 대추하고 빵하고 사탕이야. 이틀은 먹을 거야. 자 여기 돈 천 프랑.

아랍인은 보따리와 돈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그는 받아든 것을 어찌할지 몰라 어물어물하고 있었다.

보게.

다류는 동쪽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기가 텡귀로 가는 길이야. 두 시간만 더 걸어가면 되네. 거기에서 경찰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네.

아랍인은 여전히 보따리와 돈을 두 손에 든 채,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류는 그의 팔을 잡아끌고 남쪽으로 몸을 돌리게 하였다.

그들이 서 있던 높은 지대 밑에 보일락말락 하는 길이 있었다.

이게 고원을 횡단하는 길이야. 여기서 하루만 더 걸으면, 초원과 목자들을 만날 수 있을걸세. 그들은 그들의 법도에 따라 자네를 숨겨 줄 걸세.

아랍인은 다류에게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선생님!

하고 그는 입을 열었다. 다류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아냐, 아무 말도 말게. 자 나는 그만 가 보겠네.

그는 돌아섰다. 학교 쪽으로 두어 걸음 옮겨놓다가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아랍인을 되돌아보고 발길을 재촉하였다. 한동안 그는 차가운 땅 위에 힘차게 들이는 자기 발걸음 소리 밖에는 듣지 못하였다.

그는 말없이 걸어가다가 얼마 후 후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랍인은 여전히 언덕 위에 서서 팔을 아래로 내리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류는 목이 조여드는 것 같아 무어라고 한 마디 투덜거리고 손을 내저으며 발길을 재촉하였다. 그가 다시 멈추어 서서 돌아보았을 때 아랍인은 이미 가 버리고 언덕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늘에 높이 솟은 해는 그의 이마 위를 뜨겁게 내리쪼였다. 그는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결심이라도 한 듯이 길을 되돌아갔다. 언덕에 이르렀을 때,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했다. 그는 언덕을 바삐 기어오르느라고 숨을 헐떡거렸다.

 

바위로 덮인 벌판이 남쪽으로 훤히 내다보였다. 그리고 동쪽 평원에서는 벌써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 엷은 안개 속에서 감으로 가는 길을 천천히 걷고 있는 아랍인을 발견하자 다류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는 이윽고 교실 창문 앞에 서서 고원 위로 신선한 햇살이 출렁이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등 뒤의 칠판 위에는 프랑스의 강()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 서투른 분필 글씨로 <너는 우리 형을 끌고 갔다. 두고 보자.>라고 씌어 있었다.

다류는 하늘을, 고원을, 그리고 바다가 있는 곳까지 뻗고 있는 저 너머 눈이 모자라는 먼 땅을 바라보았다. 그가 그토록 사랑한 넓은 허허벌판에 그는 혼자 서 있었다.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