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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동생

Bollnow 2024. 4. 14. 07:10

예수의 동생

시오노 나나미

 

나는 지금까지도 그해 봄에 일어났던 사건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고 형은 12살 위였다. 우리들이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유월절의 축제로 떠들썩한 예루살렘에 갔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유대교의 율법대로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매년 유월절 축제에는 신전에 참배하러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도 매년 예루살렘에 갔지만 그때까지는 부모님이 가시니까 그냥 따라가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해는 달랐다. 율법에 팔레스티나에 사는 유대인 남자들은 12살부터 축일날 예루살렘에 오르는 것이 규정되었기 때문에 12살이 된 형 예수도 처음으로 예루살렘 참배의 훌륭한 자격을 얻게 되었다. 아직 그 나이가 되지 않은 나는 늘 그랬듯이 덤에 불과했지만.

나사렛 마을이 있는 갈릴리 지방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까지 내려가는 길은 굉장히 거칠고 험했지만 유월절 축제 전후에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 사람들과 뒤섞여 어머니를 태운 나귀를 아버지가 끌고 우리들은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형은 웬일인지 혼자 우리들 뒤로 축 처져 걷고 있었다. 아버지 요셉은 어린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형이 우리를 놓치지 않도록 네가 주의해서 살피렴. 나는 이 당나귀한테 신경써야 하니까."

그래서 동생인 내가 뒤처져 있던 형에게 달려가 그의 손을 잡아끌어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왔다.

축일이 끝나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뒤로 한 채 나사렛으로 되돌아가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되돌아간다는 기쁨에 어머니를 태운 당나귀 앞을 걷고 있던 나는 한참 길을 와서야 비로소 내게 주어진 임무를 생각해 냈다. 그래서 얼른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에는 따라오고 있어야 할 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란 나는 바로 부모님께 그 사실을 알렸다.

부모님은 무척이나 걱정하셨다. 마음이 여린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결국 우리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만약 형이 뒤처져 있다면 이 길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디선가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그 길을 되돌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면서도 아버지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형의 모습을 설명하며 그런 소년을 보지 못했냐고 물었지만 모두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우리들은 한참 동안 예루살렘의 거리를 찾아다녔다. 온종일 걸어 다녀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오는 것 같았지만 시내라 당나귀에서 내려 걸어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도 피곤해 보여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를 3일째. 더 이상 어디를 찾아봐야 할지 몰라 절망감에 빠져 있던 우리들은 축일도 끝나 학자들만이 남아 있을 신전으로 갔다. 부모님은 이제 신께 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형이 있었다. 학자들 사이에 앉아 그들과 질문하고 답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대교의 학자들은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그런 대답을 할 줄 아는 형의 지혜에 감탄하여 신기해하고 있는 듯했다.

형을 보자 부모님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편으로는 놀라했다. 어머니는 형에게 물었다.

"애야. 왜 이런 곳에 있는 거니? 우리들이 얼마나 걱정하며 찾아다녔는 줄 아니?"

그러자 형은 이렇게 대답했다.

"절 왜 찾아다니셨어요? 제가 제 아버지 집에 있다는 걸 모르셨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형의 말에 아연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동생인 나로서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형의 태도에 화가 났을 뿐이었다.

그래도 결국 우리들은 형을 신전에서 데려 나와 나사렛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사렛에서 전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된 후에도 형에게서 특별히 예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지만 가끔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머니 마리아는 걱정스런 표정을 보이셨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요셉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열두 살이 되었어도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축하하는 일은 없었다. 어머니와 두 소년만이 예루살렘까지 참배를 드리러 가기에는 많은 위험이 따랐고 집안의 생계를 도맡던 사람을 잃은 이런 상황에서는 그럴 만한 돈도 없었다.

형과 나는 아버지가 하셨던 목수 일을 이어받았다. 율법에 정해진 시간대로 성실히 일을 하니 먹고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우리 집은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난했지만 적어도 상복을 벗으려고 하지 않는 어머니를 고생시키지 않아도 될 만큼의 생활은 가능했다.

하지만 형이 일하는 태도는 정신을 차린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기분이 산란해지는지 엉터리 작품을 만들곤 했다. 그래서 형에게 맡긴 것들은 모두 동생인 내가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서야 의뢰인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고 형에게 불평을 하러 갔다가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오곤 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당한 형은 언제나 미안하다는 듯, 그러나 사실은 조금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으니까. '정말 큰 문제야' 하고는 생각했지만 정작 나 자신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형은 일을 하지 않을 때면 작업장 한쪽 구석에 앉아 책을 읽었다. 책이라고 해야 우리 집에 있었던 것은 유대의 낡은 예언서 사본뿐이었으나 형은 그 책의 내용을 다 암기할 만큼 수십 번씩이나 읽었다. 그럭저럭 우리 형제가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는 검소했지만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형 예수가 20대 후반에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다. 어느 봄날, 형은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안 것은 저녁 식사 때가 다 되어서였다. 나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형을 찾아 작업장은 물론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예루살렘에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검소한 나사렛의 한 교회당에도 가보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형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머니와 내가 오랜 여행을 마티고 돌아온 마을 사람들에게 요르단강 근처에서 형을 보았다는 말을 들은 것은 여름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그 사람은 또 이런 얘기도 해주었다.

"요르단 강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낙타 가죽으로 만든 옷을 몸에 두르고 허리에 가죽띠를 맸으며 메뚜기와 굴을 먹으며 생활하는 요한이라는 이름의 성자에게 강물로 세례인지 뭔지를 받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목수 요셉의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내게 형을 찾아보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어머니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머니가 아버지 요셉과 약혼중이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밤 어머니는 꿈을 꾸었는데 세 개의 큰 날개를 단 천사가 나타나 근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께 신의 인사를 전합니다. 은총에 가득 찬 그대여! 주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아직 어린 소녀였던 어머니는 놀라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천사는 계속 말했다.

"마리아, 두려워 마세요! 당신은 주의 은총을 얻었습니다. 당신은 곧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을 것입니다. 그 아이를 예수라고 부르세요. 후에 그 아이는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또 위대하신 주님에 의해 아버지 다윗의 왕좌를 이어받고 영원히 야고보의 집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긴장으로 뻣뻣이 굳이 있던 마리아가 물었다.

"전 아직 남자를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요?"

천사는 그녀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성령이 그대에게 내려가 고귀한 힘의 그림자가 그대를 덮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난 아이는 성스러운 분으로 신의 아들이십니다. 당신의 친척 엘리자벳도 나이가 많은데 임신하지 않았습니까. 아이를 낳을 수 없다던 그녀도 임신한 지 벌써 6개월이나 되었습니다. 신께서 못하시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성녀 마리아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천사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은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채 앉아 있었다고 한다.

마리아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이 꿈에 대해 약혼자 요셉에게 털어놓지 않고 먼저 산지의 우다 마을을 향해 서둘러 출발했다. 그 마을에 도착해서는 망설임 없이 사가랴의 집으로 갔다. 사가랴의 엘리자벳은 자신을 찾아온 마리아를 기쁘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던 자신에게 신께서 아이를 주셨으며 태어나게 될 아이를 요한으로 부르라는 계시가 있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유대를 떠나 나사렛으로 돌아오는 마리아의 마음은 그곳을 찾아갈 때와는 달리 굉장히 편안했으며 이제 아무 생각 없이 신의 뜻만을 따르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나사렛 마을로 돌아온 마리아는 약혼자 요셉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목수 요셉은 그녀의 이야기에 무척 놀랐지만 마리아를 의심하거나 비난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이 결혼한 후에도 아내에게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 무렵 전 로마 제국령 내에 인구조사를 명한다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조칙이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팔레스티나에도 전해졌다. 사람들은 모두 이름을 신고하기 위해 자신들의 본적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요셉도 눈에 띌 정도로 배가 부른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갈릴리의 나사렛 마을에서 유대의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있는 동안 마리아에게 산기가 돌았다. 여관에 방이 없어 난처해하던 요셉에게 여관 주인은 정원 구석에 있는 마구간에라도 머무르라고 했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곳에서 첫아이를 낳았다. 급한 대로 갓난아이를 흰 천으로 감싸서 말 구유 속에 눕혔다. 양치기 몇 명이 아기를 보러 왔기 때문에 초라한 산실도 꽤 떠들썩했다. 양치기들은 저마다 천사의 계시를 받았다며 속삭여댔다.

그 아이의 이름은 천사가 알려준 대로 예수라고 불렀다. 아버지 요셉은 아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으며 그뿐만 아니라 아내와 아기에게 매우 다정히 대해 주었다. 어찌된 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3명의 귀인이 마구간을 찾아와 구유 속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에게 절을 하며 값비싼 선물을 한 것이 가난하고 무식한 이 유대인 목수의 마음을 경건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헤롯 왕이 갓난아기를 발견하는 대로 다 죽이라고 명령한 소문이 들려왔을 때에도 아기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멀리 이집트로 달아나기까지 했을 것이다. 갓난아기를 안고 당나귀에 몸을 실은 어머니의 뱃속에는 이미 내가 생겨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그의 다정함과 성실함 때문에 어머니가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마리아는 이집트에서 돌아온 뒤로는 모든 일이 평온했기 때문에 이제까지 아들 예수에게 일어났던 이상한 일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의 형도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형이 12살이 되던 해에 있었던 그 예루살렘 신전 사건 때까지는 어머니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 후에도 예수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어머니 마리아도 그런 아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가 생각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체념과 그냥 이대로 결혼이라도 해서 평범하게 살아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반신반의하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갑작스런 형의 가출과 세례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올 것이 왔다고 느낀 어머니는 내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후 어머니는 왠지 갑자기 늙어 버린 듯했으며 형의 소식을 전해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저 조용히 한숨만 내쉬며 듣고 계셨다.

처음 얼마 동안은 가끔씩 들려오던 형 예수의 소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나사렛에도 수없이 많이 전해졌다.

요르단 강에서 형에게 세례를 해준 엘리자벳의 아들 요한은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나는 물로 여러분들에게 세례를 드리지만 곧 나보다 강한 분이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분은 성령과 불로 여러분들에게 세례해 주실 것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가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즉 메시아는 바로 그분이시니까요."

사람들은 요한이 구세주라고 말한 그 사람이 언제 유대에 나타날지 궁금해했다.

또 요르단 강가에서 세례를 받은 예수는 그 후 황야로 들어가 그곳에서 40일씩이나 단식을 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뼈와 가죽만 남아 있을 형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내 가슴이 아파오는데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하셨을까.

그 무렵부터 형이 갈릴리에 있는 여러 마을의 교회당을 돌아다니며 설교한다고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감동하여 열심히 그의 설교를 귀담아듣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리고 형은 이곳 나사렛에도 왔다. 어머니와 내가 그 소식을 들은 것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였는데, 그 사람은 형 예수가 마을 교회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나와 어머니는 모든 일을 제쳐놓고 교회당으로 달려갔다.

교회 안은 호기심으로 몰려온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저 사람들 틈새로 제단에 서서 설교하고 있는 형을 살짝 보았을 뿐이다. 형은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흰색의 긴 옷을 걸치고 있었으며 얼마나 야위었는지 전보다 키가 커 보였다. 우리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 목수 요셉의 아들 아니야?"

그래도 설교가 끝난 뒤 몇몇 친절한 사람들이 우리 대신 단상 위에 서 있는 예수에게 말해 주었다.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이 당신을 만나러 여기에 와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그제야 사람들 틈에 치여 이리저리 떠밀리고 있던 어머니를 알아보고는 우리가 형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었다. 하지만 잠시 안도감에 젖어 있던 어머니와 내가 형을 향해 앞으로 걸어가려고 했을 때였다. 예수의 목소리가 마치 하늘 위에서 내려오듯 들려왔다.

"나의 어머니라니 누굴 말하는 것입니까. 나의 형제라니요. 나의 어머니, 나의 형제는 신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 말에 나와 어머니는 더 이상 그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형이 말한 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이라도 다정하게 대해 줄 수는 없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그토록 사랑에 대해 설명하고 다니면서 말이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울음 소리를 들었다.

교회당에서의 일이 있은 후 형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소식들이 들려왔다.

절망적인 변을 고쳐줬다거나 심지어는 죽은 사람까지 되살아나게 했다는 얘기며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불어나게 해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등 예수가 보여준 기적에 대한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기적을 보일 때마다 신자들의 수는 한층 더 늘어았으며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는 사람이 내게 이야기해 준 적도 있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마을에서 마을로 기적을 보이며 설교하고 다니는 예수의 뒤에는 집과 부모형제를 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으며 그들은 나의 형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야말로 메시아이고 그리스도이며,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는 유대민족을 구하기 위해 신께서 본내신 유대 민족이 그토록 기다리던 구세주라고 했다. 이 사람들은 예수가 가르친 것처럼 유대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신의 나라가 가까워졌습니다!" 하고 외치고는 예수의 가르침을 믿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그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생겨났고 심지어 예수를 '미친놈, 거짓 예언자, 신을 모독하는 자'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러나 사람들이 전하는 예수의 가르침은 나와 같은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불경스러운 것을 말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산 위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드려 주었다는 가르침도 극히 당연한 얘기들 뿐이어서 나도 그런 말은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신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말은 내 가슴속에도 남았다. 단지 그토록 멍청하고 다정한 미소를 짓기만 하던 형이 어떻게 이런 세련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순간 내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지만.

유월절 축제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여느 때처럼 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내게 어머니는 다급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예수가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아이가 예루살렘에 가서 좋은 일이 있었던 적이 없어. 나는 걱정이 되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구나. 그래서 그 아이를 따라가 볼 생각인데 너도 같이 가지 않겠니?"

나는 형이 집을 나간 후 홀로 남으신 어머니만을 모시고 살기로 결심했다. 그런 어머니가 가시고 싶다고 하니 할 수 없었다. 나는 약간의 먹을 것만을 챙겨 어머니를 당나귀에 태우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와 나는 급히 서둘렀기 때문에 유월절 이틀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축일을 맞으려던 그 해의 예루살렌은 떠들썩하기보다 어수선했다. 전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한 예수를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웃옷을 벗어 혹은 나뭇가지를 잘라 길바닥에 깔아 주며 맞았다고 했다.

예수의 앞에 서거나 뒤에서 따르던 이 사람들은.

"다윗의 아들에게 호산나, 축복하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신. 하늘의 고귀하신 분께, 호산나!"

하고 외치며 신전을 향하는 예수를 따랐다고 했다.

신전에 들어선 예수는 그곳에서 상점을 벌여 놓고 있던 행상들의 좌판을 부수고 환전상의 간판을 쓰러뜨리며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고 한다.

"내 집은 기도하는 곳이다.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 수는 없다!"

이 일로 그는 자신들이 믿는 율법만이 신의 법도라고 믿던 유대교의 랍비들이나 가게가 부서진 상인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예루살렘의 거리는 유월절 축제가 가까와 옴에 따라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들과 정통 유대교를 배신한 자라고 믿는 사람들로 나뉘어졌다. 거리 여기저기에서 이 두 무리 사이의 작은 분쟁들이 끊이지 않아 분별 있는 사람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어머니와 내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도 형 예수는 신전이나 그 외의 장소에서 공공연히 설교를 계속했다. 예수의 주위로 몰려들어 그의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점점 늘어나 이제는 어머니와 내가 바란다고 해도 형에게 쉽게 다가가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만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해도 어머니는 원치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형을 걱정하고는 있었지만 육친을 버리는 자만이 전정한 신앙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형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직접 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예루살렘 시내의 낡은 여관에 여장을 풀고 나서 형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의 뒤를 조용히 따라가기만 했다.

그래서 이른 아침 겟세마네의 동산에서 형이 잡혔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체포된 형이 대사제 카야파에게로 끌려갔다는 것을 안 어머니와 나는 서둘러 대사제의 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가까스로 정원 한쪽 구석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형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거친 목소리로 형을 다그치는 율법학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그리스도인지 뭔지 하는 신의 아들이냐?"

"그렇습니다."

그 질문에 조용히 대답하는 형의 목소리 또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뺨을 때리는 소리도, 로마 총독 필라트에게 끌고가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언쟁의 소리도 들렸다. 모든 것을 듣고 있던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모습은 너무도 애처로워 보였다.

필라트의 관저에서는 정원에도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단지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만이 관저 밖에까지 들려왔다.

"십자가에 매달아라!"

그리고 총독이 퇴장하자 형의 옷이 벗겨졌으며 대신 빨간 망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머리에 씌운 뒤 기둥에 묶어 채찍질하며 '유대의 왕이시여' 하고 소리치고는 서로 웃어댔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형이 두 명의 강도와 함께 골고다라는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될 거라는 소문은 한밤중에도 예루살렘 전체에 퍼졌다. 나는 어머니께 숙소에 남아 계시라고 권했지만 평소에는 상냥하시던 어머니는 그날따라 화를 내시며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국 형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형장으로 끌려갈 길목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밖에 없었다.

길 양쪽에는 호기심에 달려나온 사람들과 예수를 믿는 사람들로 꽉 차 있어 어머니와 나는 간신히 기둥 뒤의 좁은 공간을 발견했다. 얼마 후 가까이 다가오는 형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는 굉장히 여위었으며 벌거벗은 몸에는 채찍질 당한 상처가 여기저기 남아 있었고 머리에 씌어진 가시관의 가시가 이마를 찌를 때마다 흐르는 피가 땀과 뒤섞여 남자인 내 마음까지 송곳으로 찌를는 듯 날카로은 고통이 느껴졌다. 내 옆에 서 있던 어머니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괴로운 듯 눈앞을 지나쳐 가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울고만 계셨다.

골고다 언덕은 병사들에 의해 통제되었으므로 사람들은 멀찍이 둘러서서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도 군중들 맨 앞에는 예스를 따랐던 여자들, 막달라 마리아나 그 외의 다른 여자들이 차지하고 앉아 병사들의 제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울러나 기도를 했다. 그러나 정작 예수를 자신의 뱃속에서 키웠던 어머니 마리아는 맨 뒤쪽에 앉아 조용히 눈물만 흘리셨다. 잠시 후 형은 처형되었다.

"아버지시여, 왜 저를 버리시나요!"

하고 외치면서...

그날 나는 슬픔에 잠겨 한마디도 하지 않는 어머니를 당나귀에 태우고 예루살렘을 떠났다. 그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어머니 마리아는 마치 기름이 떨어진 등불이 조금씩 꺼져가듯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우리들에게도 3일 후에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전해졌지만 어머니는 그것에 조금도 동요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천국에서 형을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형은 더 다정하고 따뜻하게 어머니를 맞아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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