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미아(迷兒)
우주의 미아(迷兒)
Robert Anson Heinlein
프롤로그
이것은 2119년, 유사이래 처음으로 행해진 항성간 비행 - 프록시마 켄타우리 탐험대의 이야기이다. 프록시마 켄타우리는 켄타우르스 자리의 주성인 알파 켄타우리로서 삼중 태양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거리는 4.25광년(약 40조 4천억 km)으로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이다. 이 인류 최초의 대 우주 비행을 위해서 만들어진 우주선 뱅거드호는 그때까지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뱅거드호는 지름이 수십 km가 넘는 타이어형으로서, 수천 명의 사람이 몇십, 몇백 년 동안, 아니 거의 반영구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화학 농장, 합성식품 공장,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여러 가지 공장, 각종 의료시설들을 갖춘 종합병원, 여러 가지 과학 연구소, 교육기관, 도서관, 영화관, 체육관, 천문대, 관측소, 우주선 내 모든 설비의 동력원이 되는 에너지 전환로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뱅거드호는 자전하면서 인공중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타이어의 축 부분으로 감에 따라서 인공중력이 줄어들면서 중심부는 완전한 무중력상태가 되는 것이다. 뱅거드호는 출발하고 나서 수십 년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우주 비행을 계속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우주선 내에 반란이 일어났다. 아마 너무나 오랜 세월을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승무원 사이에 그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한 탓이리라. 아무튼, 그 처참한 사건으로 선장을 비롯해서 항해 장교와 기술 장교 등 승무원의 90%가 죽었다. 농장은 황폐해지고 공장은 파괴되어 식료품이 부족하게 되었다. 우주선 내의 통신망이 두절되고, 곳곳의 자동문은 닫힌 채 열리지 않고 엘리베이터도 멈췄다. 그리고, 농장에 마구 자란 식물은 우주선 내의 여러 곳에서 무성한 정글을 이루었다. 원자로의 고장으로 방사능이 새어 나와 많은 사람이 원자병으로 죽었고,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이 20명에 1명 꼴로 무시무시한 돌연변이 - 뮤탄트 - 가 되었다. 우주선을 조종하는 기술은 물론, 모든 과학과 기술을 잊어버려서 사람들은 기계나 과학을 비방하고 미신을 믿는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도서관의 책이란 책은 모조리 에너지 전환로에 처넣어 불태워 버렸다. 2172년, 드디어 최후의 정상적인 남자가 죽음으로써 뱅거드호는 지구와의 연락도 끊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뱅거드호의 운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조심해! 뮤탄트가 있어."
갑자기 누군가가 날카롭게 외쳤다. 휴 호일랜드는 얼른 몸을 숨겼다. 곧 달걀만 한 총알이 휴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벽에 맞고 '꽝'하는 무서운 소리를 냈다. 만약 그 총알에 맞는다면 두개골이 산산조각나 버릴 것이다. 휴는 다음 행동에 옮겼다. 발을 오므려서 쇠벽을 힘껏 찼다. 그의 몸은 가로누운 채 화살처럼 날고 있었다. 손에는 어느새 뽑았는지 예리한 칼이 쥐어져 있었다. 이 계단 - 중력이 없는 계단 근처에서만 가능한 전법이다. 그는 총알이 날아간 근처까지 가자마자 몸을 굽혀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재빨리 그 앞의 통로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벌써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으로 휴의 동료 두 사람이 두둥실 반쯤 뜬 채 다가왔다.
"벌써 없어졌어?"
앨런 마호니가 말했다.
"아, 해치에서 내려오는 걸 언뜻 봤어. 여자인 것 같았는데...... 발이 4개인 것 같았어."
모트 타일러가 말했다. 세 사람은 친구 사이인 것 같다.
"벌써 잡혔을까?"
"누가 그런 놈을 잡고 싶어 하겠니? 나라도 잡지 않겠다."
앨런이 목을 움츠리며 이렇게 말했지만 휴는 달랐다.
"나 같으면 잡겠다. 만약 그놈이 겨냥한 게 5cm만 정확했다면 틀림없이 에너지 전환로에 맞았을 거야."
"그렇지만 이런 곳까지는 오지 말았어야 했어. 만약 선장에게 들키면 어떻게 되겠니?"
모트가 초조한 듯한 투로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통로와 계단이 온통 이상한 식물로 뒤덮여서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 이곳도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탓이겠지. 이곳의 식물도 뮤탄트, 즉 돌연변이의 괴물이었다.
"모트, 그런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 너는 아직 과학자가 된 것이 아니야. 우리 같은 젊은이에게는 가끔씩 이런 정도의 모험은 필요해. 별로 큰 죄가 아니라고 - 과학자들은 대개 젊었을 때는 이 정도의 모험을 해 봤을 거야.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
모트 타일러는 뭐라고 대꾸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앨런 마호니가 휴를 향해 돌아섰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 슬슬 여기를 나가야겠다.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온 것은 처음이잖아.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좀 무서워...... 몸이 붕붕 뜨는 것 같아서 기분도 좋지 않고. 빨리 중력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그러나, 휴는 아직도 칼을 손에 꽉 쥔 채 뮤탄트가 사라진 해치 쪽을 분한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앨런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앨런. 이제 슬슬 가자. 아래까지는 꽤 멀 거야."
세 사람은 그 근처를 조심스럽게 둘러보면서 해치 쪽으로 되돌아 왔다. 해치에는 쇠로 된 사다리가 놓여 있었지만, 세 사람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7~8m나 되는 아래 계단으로 그냥 뛰어내렸다. 그러나, 몸은 빠르게 떨어지지 않고 두둥실 공중에 뜨듯이 - 고속도 쵤영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천천히 떨어졌다.
그 계단 근처에도 이상한 식물이 우거져 있었다. 식물의 그늘이 드리워진 해치에서 세 사람은 아래계단으로 뛰어내렸다. 밑으로 밑으로 세 사람은 계속 뛰어내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어둑어둑한, 신비스러운 계단을 부지런히 내려왔다. 한 계단 내려올 적마다 세 사람이 내려오는 속도가 빨라지고, 바닥에 떨어질 때의 충격도 심해졌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중력이 커져가는 것이다. 마침내 앨런이 말을 꺼냈다.
"휴! 이젠 천천히 걷자. 아까 뛰어내릴 때는 다리가 아팠어."
"좋아 그렇게 하자. 그러나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이제 앞으로 얼마나 내려가야 하지? 계산해 봤니?"
그러자 모트가 곧 대답했다.
"앞으로 70계단만 내려가면 농장이 나올 거야."
앨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알았지?"
"갈 때 세어 두었어. 내려갈 적마다 하나씩 빼면 되잖아. 이 정도는 아무리 바보 같은 농사꾼이라도 알겠다."
"뭐라고"
앨런이 갑자기 허리띠의 칼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햇병아리 과학자라고 잘 대해 주려고 했더니, 이제는 용서하지 못하겠다. 나의 칼 솜씨를 보고 싶으냐?"
"좋아, 앨런"
휴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었다.
"마을 밖에서 결투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더구나 모트 말대로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꽤 몸이 무거워졌지? 자, 어서 서둘러서 돌아가자."
그리고 나서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 있다가 다시 신나게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중력은 점차로 커져갔다. 그렇게 조금 가니 갑자기 굉장히 밝은 곳이 나왔다. 그리고 천장의 높이가 지금까지의 3배나 되는 계단이 나왔다. 공기가 축축해지며 따뜻해지고, 눈에 익은 식물들이 우거져 있었다.
"아무래도 끝난 것 같아."
휴는 이렇게 말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 농장은 본 기억이 없는데...... 올라갈 때와는 다른 길로 내려온 것 같아."
"저쪽에 농부가 있다. 길을 물어보자."
모트는 우거진 식물 사이로 두려운 듯이 이쪽을 살피고 있는 남자를 불렀다.
"어이, 동지! 마을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지요?"
농부는 겁을 내면서 식물 사이에서 나와 묻는 말에 대답했다. 그 뒤, 3~4km를 더 가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은 넓은 터널이 나왔다. 그것은 그들이 왔던 마을로 들어가는 터널이었다. 터널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짐을 운반하는 사람, 앞치마를 두른 부인, 그리고 4명의 젊은이가 메는 가마를 타고 가는 위대한 과학자가 있었다. 그 옆에는 꽤 늠름한 몸집에 갑옷을 입은 호위병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다. 터널을 나오니 마을이었다. 무사히 마을에 도착하자 갑자기 맥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세 사람은 헤어졌다. 앨런의 집은 농사를 짓고, 모트의 아버지는 관청의 서기였다. 그리고 휴는 수도 수리상을 하는 숙부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휴는 죽 늘어서 있는 공동주택으로 들어갔다. 숙부는 거실에서 파이프를 물고 있었다.
"아 -, 휴, 또 탐험을 한 모양이구나?"
숙부는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그래요, 아저씨."
숙모가 저녁상을 휴 앞에 갔다놓았다.
"멋진 식사를, 아주머니."
"멋진 식사를, 휴."
휴는 배가 고팠으므로 서둘러서 먹기 시작하였다.
"어느 쪽을 탐험하고 왔니, 휴?"
"위요."
"위라는 건 알고 있어. 어디까지 갔었지?"
"거의 중력이 없는 계단까지 올라갔었어요. 그런데, 뮤탄트와 마주쳐서 하마터면 머리가 깨어질 뻔했어요."
숙부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 짓을 계속하다가는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휴, 일을 좀 열심히 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니?"
"일은 할거예요. 하지만, 아저씨 저는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애가 타서 견딜 수가 없어요."
"나도 역시 어릴 적에는 그랬었다."
숙부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주 돌아다녔지. 중앙 통로를 빠져나가 어디든지 갔었다. 길을 잃어서 이젠 정말 끝이로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고, 뮤탄트에게 쫓기다가 다쳐서 간신히 마을로 돌아오기도 했지. 이것 봐라. 이것이 그때 다친 상처란다."
숙부는 옷을 걷고 오래된 상처를 내보이며 어루만졌다. 그러나 휴는 그 흉터는 이제 보기 싫어졌고, 그 '대 모험'의 이야기도 듣기 싫었다. 더우기 숙부의 모험은 사실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좀 더 알고 싶다. 좀더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도대체 어째서 윗 계단으로 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일까? 왜 신은 그곳에 가면 안 된다고 정해 놓은것일까?"
휴는 언제나 생각하던 것을 또 생각했다. 그러나,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법을 비판하거나 신이 정해놓은 것들을 파고들거나 하는 짓은 금지되어 있다. 그런 짓을 하면 곧 심문회에 끌려가서 무서운 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너도 이젠 어린애가 아니다. 앞으로 할 일을 결정해야 되지 않겠니? 나의 수도 수리상 일을 이을 마음이 없다면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도 된다."
"알고 있어요, 아저씨"
숙부는 파이프를 털고 일어났다.
"알겠다. 나는 지금 증인에게 가는 길인데, 너도 함께 가겠니? 그 증인은 너를 조수로 삼고 싶어 한다. 너를 한번 오라고 했는데, 어때 가겠니?"
휴는 조금 생각한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겠어요, 아저씨"
휴는 식사를 급히 끝내고 아저씨를 따라 집을 나섰다. 증인은 광장 건너 반대쪽 공동주택의 첫 번째 집에 살고 있었다. 증인이니 하는 일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골치 아픈 일들을 해결하는 것으로서, 우주선 안에서는 대단히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증인은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인데, 나이가 무척 많아서 기력이 쇠약해지기는 했어도 자혜와 말솜씨만은 아직도 뛰어났다. 아저씨는 증인에게 수도 공사비를 지불하지 않는 농부에게서 어떻게 돈을 받아낼 수 있을까를 상담하러 간 것이다. 증인은 즉시 성서의 문구를 암송하더니 돈을 내지 않으면 물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대답했다. 숙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휴에게 '이제 증인과 이야기하거라.' 하고는 돌아가 버렸다. 증인은 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휴, 최근의 모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겠니?"
휴는 이번에 윗 계단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증인은 묵묵히, 그러나 때때로 귀를 기울이면서 듣고 있다가 이윽고 말했다.
"너는 꽤 예리한 눈과 귀를 가지고 있구나. 휴 내 밑에서 증인 수업을 받지 않겠니? 수도 수리상 보다는 이것이 좋을 것 같은데."
휴는 주저했다.
"하지만, 증인님, 저는 그전에 좀더 이 세상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흠, 예를 들면 어떤 것 말이지?"
"예를 들어, 저, 중력이 없는 곳의 위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런 것 말이예요."
증인은 휴를 쳐다보며 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런 것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다."
휴는 바싹 다가앉았다.
"증인님은 저 위까지 올라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증인은 눈을 돌렸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 나는 증인이다. 성서의 문구를 전부 외는데도 몇십 년이나 걸렸어. 그런 어린애 같은 놀이를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럼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건 모두 성서 안에 쓰여 있어. 잘 들어 보거라."
그렇게 말하고 증인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낭랑한 목소리로 성서 문구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휴도 물론 그 문구를 외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증인에게 반항할 수 없어서 무릎을 꿇은 채 듣고 있었다.
태초에 신이 있어 태초에 신은 어둠으로부터 계획을 만들어주셨다. 계획에서 배는 생기지 않았다. 아름다운 밤은 끝없이 계속되고 생명의 탱크는 끝없이 펼쳐있고 통로는 배를 돌고 계단은 신이 계시는 몹시 높은 곳까지 계속되고 문은 저절로 열리고 인간은 모두 즐겁게 그 의무를 다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신은 결정해 주시고 여행은 목적지로 향해 가기도 한다. 그래도 이윽고 저주의 날이 오기도 하고 황금시대는 끝나지 않는다. 반역자는 신을 거역하고 반역자는 선장을 상처 내고 반역자는 과학자를 죽였다. 반역자는 농부를, 여러 가지로 배에 탄 동료 친구를 혼란시키고 계획을 무산시키려 한다. 그래도 신의 가르침은 다시 부활하지 않는다. 가르치심을 말하시고 과학자를 따라서 선장을 존경하시오. 가르침은 금하고 있다. 금제를 어기면 안 된다. 신이 계시는 윗계단을 침범하면 안 된다. 계획을 진행하기 위함이니까 여행을 완성하기 위함이니까 가르치심을 등지는 것은 에너지 전환로에 넣어질 것이 분명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귀신이나 짐승 따위가 되어 뮤탄트 나라로 쫓겨나서 영원히 지옥을 헤메게 된다.
증인은 감았던 눈을 뜨고 휴를 바라보았다.
"알겠니? 두 번 다시 허락을 받지 않고 탐험 같은 것을 하면 안 된다."
휴는 일어서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사실은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만약 윗계단이 신이 있는 곳이라면, 왜 그 안에 뮤탄트 나라가 있는 걸까? 신이 우리들 편이라면 그것은 정말 웃기는 일이다. 또, 만일 뮤탄트가 신의 적이라면 신은 만능하니까 뮤탄트를 해치워버려야 하지 않을까......?' 그는 마음속에 언제나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증인은 물끄러미 휴를 바라보고 있다가, 휴가 입 속으로 투덜거리자 책상에 손을 뻗어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무언가를 쓰더니 휴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너의 마을의 넬슨 과학자에게 주어라."
휴는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신을 의심하는 것을 증인이 알아차린 것일까? 이것은 나를 고발하는 편지가 아닐까?’ 휴의 머리에 언뜻 그런 생각이 스쳤다. ‘만약 고발당한다면......, 심문회에 불려가면 금지된 윗 계단에 갔었던 것도 모두 탄로나 버린다. 그리고, 유죄를 선고받으면......, 그전부터 들어왔던 무서운 지하에서 길고 힘든 노동을 하든가, 그렇지 않고 좀 더 심한 죄라면 곧장 에너지 전환로에 보내질 것이다.’
그러나, 증인의 말에 반항하는 것은 더욱 용서받지 못할 큰 죄이다. 휴는 힘없이 그 방을 나왔다. 마을로 되돌아온 휴는 공동주택의 제일 위에 있는 넬슨 과학자의 커다란 집으로 갔다. 넬슨 과학자는 그 마을의 모든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는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다. 휴는 아직 넬슨 과학자를 단둘이서 만난 적이 없었다. 휴가 가슴을 죄면서 문을 두드리자 하녀가 나왔다. 편지를 주고 한참 기다리고 있으니까 들어오라고 했다. 몸이 마르고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넬슨 과학자는 큰 사무실 책상의 맞은편에서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았다.
“이리로 오게, 휴. 그 의자에 앉지.”
넬슨의 말투는 뜻밖에 부드러웠다. '이렇게 다정한 것을 보니, 고발당하지는 않은 모양이군.' 그는 조금은 안심했다. 그러나, 과학자의 다음 말은 한 번 더 휴를 놀라게 했다.
“휴 호일랜드, 너는 요즈음 자주 탐험을 하는 것 같은데, 어제도 금지된 구역에 들어갔었지?”
“그, 그렇습니다.”
휴는 얼굴이 굳어지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넬슨은 또 그를 놀라게 했다.
“아, 괜찮아. 건강하고 지혜로운 젊은이라면 아무리 금지해도 그 정도의 모험은 다 하니까. 나는 네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런 젊은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휴는 어안이 벙벙해서 넬슨 과학자를 다시 쳐다보았다.
“사실은 네가 태어났을 때, 너의 머리가 보통 아이보다 훨씬 커서 뮤탄트라는 진단이 내려졌었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너를 에너지 전환로에 넣어버리자고 주장했었지.”
그것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말렸다. 왜냐하면 네가 얼마 안 있어 훌륭한 과학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라고요?”
휴는 또다시 크게 놀랐다. 넬슨 과학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휴, 너 같은 젊은이에게는 농부나 평범한 직장인은 어울리지 않아. 증인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너에게 증인 교육을 시키려고 한 거야. 그러나, 네가 그것을 거절했기 때문에 나에게 보낸 것이다.”
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묵묵히 서 있었다. 넬슨 과학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너 같은 젊은이는 지도자가 되던지, 그렇지 않으면 에너지 전환로에 보내지든지 둘 중의 하나다.”
과학자는 휴를 노려보았다.
“휴, 너는 오늘부터 과학자 후보생으로 내 밑에서 일해야 한다.”
'배'는 무엇인가? 그로부터 휴의 일과는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모험도 단념하고, 모트나 앨런처럼 여자 친구와 노는 것도 그만두었다. 그는 넬슨 과학자가 읽는 책을 한쪽 귀퉁이에서 흘낏흘낏 넘겨다보았다. 그것은 오랜 옛날부터 '배'에 전해져 오는 책으로서, 성서처럼 오래된 책이었다. 그 내용을 처음 보는 휴로서는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단어 자체도 어렵고 고어체이며, 또 이상하게 간접적으로 표현해서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게다가, 내용 중에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것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인력의 법칙'이라는 것도 그중의 하나였다. '물체는 모두 서로 잡아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잡아당기는 힘을 인력이라고 하며, 인력은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에 반비례한다.' 책에는 이렇게 쓰여있지만, 휴는 그것을 아무래도 알 수 없었다. 자석과 쇠는 서로 잡아당긴다. 그러나, 보통 물체와 자석을 쉽사리 잡아당기지 않는다. 게다가, 만약 인력이라는 것이 어디에나 있는 것이라면, 왜 윗계단에 올라가면 몸이 뜨는 것일까? 왜 저 위와 이 아래 사이에는 인력이 다른 것일까? 휴는 그것을 넬슨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넬슨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옛날 책에는 모두 그런 식으로 쓰여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많지. 사실은 인력의 법칙이라는 것은 인간의 사랑의 법칙이다. 질량이 곧 사랑인 것이지. 결국 인간끼리는, 사랑이 강하면 강할수록 서로 끌어당기게 된다는 말이야. 그러나, 그것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끌어당기는 힘이 약해지거든. '인력의 법칙'이란 바로 그런 뜻이다. 이제는 알겠니?”
휴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알쏭달쏭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더 정확한 해답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과학자의 가르침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또, 옛날 책에는 '여행'이라는 말도 자주 나왔다. 휴는 과학자에게 그것이 어떤 뜻인지 물어보았다.
“옛날 책에는 '배'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배'는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가 아닌가요? 세계가 어딘가로 움직이고 있다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이것도 역시 옛날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비유이다. 휴, 너도 말했듯이 '배'는 지금 우리들이 있는 세계이고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움직인다는 말은 있을 수가 없지. 하지만, 그것을 정신적인 의미로 생각해보렴.”
“정신적이라고 한다면 ...?”
넬슨 과학자는 또 빙그레 웃었다.
“결국 우리들의 이 세계는 신의 계획에 의해 만들어져서 그 목적지 - 곧 천국으로 가는 '배'이다. 휴, 성서에는 천국이 켄타우리라고 쓰여 있단다. 우리들은 신의 계시에 따라서 머지않아 모두 켄타우리로 가게 될 것이다.”
이것도 역시 아리송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휴는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는 편이 새로운 것을 차례 차례로 배워 나가는데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얼마 뒤에 휴는 시험에 합격하여 하급 과학자가 되었다. 하급 과학자의 주요 임무는 에너지 전환로의 조절과 연료 보충이었다. 그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마을의 여기저기에서 운반되어 오는 폐물을 정리하고, 그 물질에 맞게 열을 올리거나 내리면 되는 것이다. 전환로의 주임은 빌 에르츠라는 과학자였다. 휴는 그와도 곧 친해졌다. 단, 죽은 사람이나 사형수를 에너지 전환로에 집어넣는 것만은 아직까지도 익숙해지지 않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서 일하고, 먹고, 자고, 그리고 전환로에 들어가 여행을 끝마치는 것이다. - 그런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여행은 그런 것만 있는 것일까? 하지만, 휴는 어떤 다른 해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에너지 전환로와 이어지는 파이프의 고장을 조사하기 위해 여럿이서 조금 위의 계단으로 올라갔다. 파이프가 고장난 곳은 곧 발견되어 수리를 시작했다. 수리를 하면서 휴는 또 옛날 책에서 읽었던 지옥이라든가 우주라는 신화를 아련히 떠올렸다. 도대체 우주라는 것은 - 무한의 우주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 우주에 떠있는 지구라는 것은 또 무엇일까? '정말 옛날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것만 생각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뒤쪽 벽에서 갑자기 수십 명의 뮤탄트가 나타났다. 다음 순간 슬로트 머신 소리가 나면서 총알이 휴의 명치에 명중했다. 그는 곧 의식을 잃었다. -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그대로 정신을 잃은 것이다. 뮤탄트의 포로 몸 하나에 두개의 머리를 가진 조-짐 그레고리는 자기끼리 바둑을 두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트럼프를 했었는데 오른쪽 머리인 조가 왼쪽 머리인 짐이 속임수를 썼다고 하며 싸움을 걸었다. 그래서 그것을 그만둬 버렸다. 바둑이라면 두 사람이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에 속임수를 쓸 염려는 없는 것이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조-짐은 칼을 뽑아 금방이라도 던질 자세를 취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어떤 남자가 등을 돌리고 들어왔다. 이것은 조-짐의 방에 들어올 때의 습관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누구를 불문하고 조-짐의 칼이 날아가게 된다. 들어온 사람은 120~130cm밖에 안 되는 머리가 매우 작은 난쟁이였다. 그러나, 가슴이 두껍고 팔이 굵어서 무서운 힘을 가졌으리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난쟁이는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어떤 남자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조-짐은 칼을 칼집에 넣었다.
“그놈을 바닥에 내려놓고 문을 닫아.”
짐이 명령했다.
“이놈은 뭐지?”
바닥에 눕혀진 남자는 아직 젊었고, 늘씬하게 뻗은 건장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죽은 듯이 보였지만 아무 데도 상처가 없고 피도 흘리지 않았다.
“나, 이놈을 먹을 테야. 그래도 되지?”
난쟁이가 말했다. 지능이 좀 모자라 보였고, 그리고 바보같이 반쯤 벌리고 있는 입에선 침이 계속 흘러나왔다.
“보보 이놈을 네가 죽였느냐?”
보보는 조그만 머리를 흔들며 끄덕거렸다.
“슬로트 머신을 여기에 쏘았어.”
그는 엄지손가락을 뒤로 젖혀서 비스듬히 누워있는 젊은이의 명치에 갖다 대었다.
“잘했어, 훌륭해.”
조-짐은 젊은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놈은 아직 살아있어. 그래 입을 열게 하자.”
조가 그를 정신차리게 했다. 그러자, 젊은이는 '음--' 하며 몸을 움직이고 눈을 떴다. 보보가 눈을 번뜩이며 자기 배를 어루만졌다.
“나, 배고파 죽겠어. 이놈을 먹고 싶어.”
조-짐은 방구석에 있는 금고를 열고 그 안에서 큰 돼지고기 덩어리를 꺼내 보보에게 던져주었다.
“간다, 가.”
보보는 기쁜 듯이 입맛을 다시고 고기를 씹어 먹으면서 나갔다. 조-짐은 포로를 발로 건드려 보았다.
“눈을 떠, 임마! 너는 어떤 놈이냐?”
젊은이는 몸을 떨며 두 손으로 머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뮤탄트의 포로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 하면서 허리춤에 있는 칼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칼은 없고 칼집만 매달려 있었다. 조-짐은 자기의 칼을 빼서 젊은이의 눈앞에 들이대었다.
“얌전히 굴면 죽이진 않는다. 이름이 뭐냐?”
젊은이는 머리가 둘 달린 괴물을 노려보았다.
“안돼, 조. 이놈은 우리들의 먹이로 하는 게 좋아.”
짐이 이렇게 말했으나 조는 머리를 저었다.
“그건 나중에 해도 돼. 나는 이놈과 이야기를 하고 싶단 말이야. 너의 이름을 말해.”
“휴 호일랜드요.”
포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너의 마을은?
“170계단 밑에 있는 농촌이오.”
“뮤탄트 나라에는 뭘 하러 왔지? 우리들의 정세를 살피러 왔나?”
휴는 화가 울컥 치밀어 올라 입술을 깨물고 잠자코 있었다.
“이봐, 조, 어지간히 해둬. 이놈은 단지 어리석은 백성일 뿐이야. 죽여버리는 게 좋아.”
“아니야. 입을 열 때까지 가둬 두자.”
조는 이렇게 말하고 칼을 들이대며 휴를 방구석에 있는 작은 반침 안에 처넣었다. 문을 닫으니까 안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휴 호일랜드는 주위의 벽에 손을 대어보았다. 그러나, 주위는 차가운 쇠벽으로 둘러싸였다. 그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저 괴물들이 나를 죽여서 먹어 치워 버리지는 않을까?' 도대체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심하게 아팠다. 배가 고프고 목도 말랐다. 그러면서 점점 의식이 멀어져갔다. 다시 문이 열렸을 때 휴는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눈앞에다 물이 들어있는 컵을 내밀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을 뻗어 그것을 잡으려고 하자 컵이 뒤로 쑥 물러났다.
“물이 마시고 싶으냐?”
머리가 둘 달린 뮤탄트가 말했다. 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을 주면 말을 할텐가?”
그는 고개를 저으려고 했으나 목이 너무 말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컵이 앞으로 나왔다. 휴는 재빨리 컵에 달려들어 반이나 흘리면서 단숨에 마셨다.
“너무 급히 마시면 잘못하다간 죽어버린다. 자, 말해봐. 말하면 물과 먹을것을 더 주겠다.”
휴는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뮤탄트의 포로가 된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도망쳐 버릴테다. 그때까지는 이곳을 잘 살펴두자. 그리고, 다음에는 많은 동료들과 함께 와서 이놈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말테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머리 둘 달린 뮤탄트는 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곧 알아차린 듯했다.
“좋아, 휴.”
조가 말했다.
“만약, 네가 혼자 이 방에서 나가는 것을 보면 누구든지 너를 죽여도 좋다고 모두에게 말해두겠다. 너는 세 계단도 못 내려가서 죽을 것이다. 알았나?”
짐이 이어서 덧붙였다.
“그러니까, 군말 말고 우리들의 종노릇이나 하면서 있는 편이 좋아. 알았지?”
뮤탄트의 종으로서 휴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뜻밖에 조-짐은 휴에게 심하게 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일도 별로 시키지 않았다. 보보와 함께 물을 떠올리고 음식물을 운반하는 이외에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다. 조-짐은 글을 읽고 쓸 줄도 알고 있었다. 뮤탄트는 모두 무서운 야만인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휴에게 있어서 이것은 대단히 놀랄만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조-짐, 특히 조는 책을 많이 읽어서 여러 가지를 알고 있었다. 단, 조-짐의 지식은 휴의 지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조-짐은 '배'안의 과학자들을 모두 경멸하고 있었다.
“그 과학자들은 모두 바보들이야.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녀석들이야.“
토론을 좋아하는 조는 곧잘 이렇게 말했다. 휴는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어째서죠? 우리들은 성서의 문구를 모두 외우고 있고, 또 그 뜻도 알고 있어요. 과학자가 없다면 '배'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흥, 그럴까? 그럼, 내가 한 가지 묻겠는데, '여행'에 대해서 알고 있나?”
“물론 알고 말고요.”
“그럼, 어떤 의미인지 말해 봐.”
“‘여행'이라는 단어 그 자체는 무의미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어디로 움직인다는 말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들의 인생을 가리켜 ‘여행’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들은 ‘여행’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켄타우리’- 즉 신의 세계로 가게 되는 거죠.”
휴는 조금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자, 조-짐이 웃음을 터뜨렸다. 휴는 또 울컥했다. 비웃음을 받을 만큼 자신이 잘못 말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유도 없이 사람을 놀리며 웃는 너희들이야말로 정말 야만인이다!’ 휴는 마음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한참 있다가 웃음을 그치고 조가 말했다.
“너는 정말 그것을 믿고 있니? 너는 옛날 책을 읽은 모양인데......, 그런데도 ‘여행’이라는 것이 정말 어딘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없단 말이지?”
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짐이 말을 이었다.
“‘배’라는 것은 커다란 교통기관인데, 그것이 어딘가로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켄타우리라고 하는 것은 바로 ‘배’의 목적지다.- 이렇게 생각한 적은 없었니?”
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배’는 아무 데도 가지 않잖아요. ‘배’ 그 자체가 세계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배’ 안을 여행하고 있지요. 그러나, ‘배’가 교통기관이며 또 어딘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억지예요!”
조는 갑자기 진지한 태도가 되었다. 그 얼굴에는 조금 전까지의 장난기 어린 표정은 모두 없어졌다.
“그러나, 휴, 만약 ‘배’보다도 훨씬 크고 넓은 장소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나? 그리고, 우리들이 ‘배’ 안을 걷는 것처럼 ‘배’가 그 안을 움직이고 있다면?”
휴는 머리를 저었다.
“어처구니가 없군요. ‘배’보다 큰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잠깐, 그럼 너는 ‘배’의 바깥은 어떻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바깥이라고요? 그런 것은 없어요. ‘배’의 바닥은 제일 아래 갑판이며 그것뿐이에요. 더 밑은 없어요.”
“그렇다면 그 제일 아래 갑판을 칼로 구멍을 냈다고 생각해봐. 그럼, 어디가 나올 것 같니?”
“갑판이 너무 단단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불가능해요.”
조는 속이 타서 머리를 내저었다.
“그러니까, 만약에 구멍을 뚫는다면 하고 말했잖아! 잘 생각해 봐”
휴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떻게 될까? 깊고 깊은 구멍이 뚫려서 그곳으로 거꾸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휴는 소름이 끼쳤다.
“이제 알겠나? 바로 그것이다. 휴. 이 ‘배’의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 펼쳐져 있어.”
조가 말했다.
“그런 무서운 일이! 믿을 수 없어요.”
조가 벌떡 일어났다. 멍하니 있던 짐이 놀라서 조에게
“뭐야? 어디에 가려는 거지?”
“휴를 무중력 구역에 데리고 가려고 그래”
“무엇 때문에?”
“이 녀석의 우둔한 머리에 조금 정상적인 생각을 넣어주려고 말이야.”
“쓸데없는 일이야. 조 그걸 보면 이놈은 기절해 버릴 게 뻔해.”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나는 이놈을 훈련시켜 보고 싶어”
“어이쿠! 또 호기심이 발동했군.”
짐은 그렇게 말했으나 더 이상은 반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조-짐은 방 밖에서 자고 있는 보보를 일으켜 앞세우고 뮤탄트 나라의 안을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휴에게 있어서 최초의 경험이었다. 뮤탄트 나라는 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거기에는 아래 계단처럼 풀도 나무도 돋아나 있지 않고, 단지 녹이 슬고 깨진 아주 오래된 설비나 도구들이 뒹굴어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뒤틀리고 끊어진 칼집이나 깨진 보일러 따위에서 괴상한 모양을 한 뮤탄트가 한 손에 칼을 들고 튀어나왔다. 그러나, 뮤탄트들은 조-짐의 모습을 보자마자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길을 비켜주었다. 조-짐은 뮤탄트들에게 너그러운 지도자인 것 같았다. 뮤탄트들은 휴를 보고는 무서운 표정을 지었으나 절대로 손을 대지는 않았다. 조-짐이 그렇게 명령해 두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나라를 쳐들어왔다가는 도저히 당해내질 못하겠구나 뮤탄트는 짐을 존경하고 그의 명령에는 절대로 복종하고 있다. 더구나 조 -짐은 매우 머리가 좋다. 아마 우리가 지고 말 거야.' 휴는 조-짐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일행은 사다리를 타고 점점 위로 올라갔다. 갑판을 한번 오를 때마다 중력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드디어 중력이 거의 없는 계단까지 왔다. 무심코 발을 강하게 디디면 그 순간 몸이 둥실 떠올라 좀처럼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었다. 휴는 지금까지 탐험을 여러 차례 했지만 이렇게 중력이 없는 곳까지는 와본 적이 없었다. 어쩐지 몸이 불안정해서 기분이 나빴다. 더욱 위로 올라가자 이제는 발이 거의 바닥에 닿지 않게 되었다. 벽이라든지 난간, 파이프 같은 것들을 붙잡고 몸을 그냥 앞으로 밀어내기만 해도 몸이 붕 떠올랐다. 조-짐 일행은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가볍게 글자 그대로 나는 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보보는 들떠서 마구 떠들어대며 기둥이나 천장 사이를 마치 이상한 물고기처럼 자유자재로 헤엄치고 다녔다. 잠시 뒤에 일행은 놀랍도록 넓은 장소에 다다랐다. 갑판은 비스듬하게 경사지고 맨 끝쪽은 천장과 맞닿아 있었다. '거대한 원통모양의 방이로군 아무래도 여기가 끝인가 보다.' 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짐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방 주위에 널려있는 거대한 원통형의 기둥 쪽으로 헤엄쳐 갔다. 그곳으로 한참 가니 드디어 통로가 나왔다. 통로의 끝에는 단단한 해치 모양의 문이 달려있었다. 조-짐은 그 문에 붙어있는 단추를 눌렀다. 문은 금속이 스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문의 안쪽에는 작은 방이 있었고, 그 앞에 또 하나의 튼튼한 문이 달려있었다. 그 문에 쓰여있는 글자를 본 순간, 휴는 등이 오싹해서 그만 제자리에서 꼼짝못하고 말았다. 문에는 '주조종실'이라는 푯말이 빛나고 있는 것이었다. 휴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그는 주조종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성서의 문구 안에도 있는데 - 매우 신성한 곳이며 절대로 인간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몇 군데나 쓰여 있었다.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신의 노여움을 사서 시커멓게 타죽는다. - 성서의 문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금 나는 그 무서운 주조종실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조-짐이 돌아보았다.
“이리 와 휴. 뭘 하고 있나?”
“하지만.”
“뭐가 하지만이야 어서 따라와!”
“하지만 여기는 주조종실입니다. 이런 곳에 들어가면”
“들어가면 어떻게 된다는 거지?
“신의 노여움을 사서”
“바보 같으니!”
짐이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자 조용히 따라와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 끌고 갈 테다.”
조-짐은 문에 달려 있는 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휴는 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강한 호기심이 꿈틀꿈틀 가슴 저 밑바닥에서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는 숨을 죽이며 이를 악물고 조-짐의 머리 사이로 방안을 넘겨다보았다. 그곳은 길이가 10m도 넘는 듯한 넓은 방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이 구석구석까지 밝게 비추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원통형의 기계가 우람하게 놓여 있었다. 그 기계에는 무수한 단추와 스위치 다이얼 등이 있었고, 또 수백, 수천 개의 신호등이 반짝거리며 모여 있었다. 마치, 그 기계 자체가 하나의 큰 금속 생물인 것 같았다. 조-짐은 곧장 그 기계 앞으로 걸어갔다. 기계 앞에는 그때까지 휴가 본 적이 없는 이상한 의자가 세 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의자의 팔걸이에도 많은 종류의 다이얼과 단추가 줄지어 있어서, 앉은 사람이 손을 뻗기만 하면 그 어느 것에나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에는 몇백 개나 되는 자동 기계류가 펼쳐져 있었다. 휴는 눈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기계류는 모두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계기의 바늘은 모두 한쪽으로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기 앉아!”
조-짐이 오른쪽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휴는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다, 당치도 않아요......! 싫어요!”
“뭐라고?”
“저...... 여기는 '신'의 방이에요. 저것은 '신'의 의자고요. 이런 곳에 앉으면 벌을 받게 됩니다.”
“바보 같은 소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어서 앉지 못해!”
조가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휴가 곧 앉지 않으면 때릴 기세였다. 휴는 할 수 없이 시키는 대로 머뭇거리면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손을 계기류에서 멀리 놓았다. 잘못해서 손을 댔다가는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의자에 앉아보니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마치 커다란 동물의 팔 안에 포근히 안긴 것처럼 편안했다. 게다가, 의자는 주문해서 만들기나 한 것처럼 그의 몸에 꼭 맞았다. 조-짐도 가운데 의자에 앉았다. 그 의자 맨 앞의 계기판 위에 '선장착석'이라는 새빨간 글씨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자기 좌석 앞을 보니 '2등 우주 항해사 착석'이라는 빨간 글씨가
빛나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조금 뒤에 조-짐이 앉은자리가 선장용 좌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기가 앉아 있는 곳이 2등 우주 항해사의 자리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2등 우주 항해사라는 말은 못 들어 본 것 같은데......? 하급 과학자 같은 건가?' 휴는 이런 것을 아련히 생각했다. 그러나, 어쨌든 여기는 먼 옛날 '선장'이나 '2등 우주 항해사'가 무엇인가를 했던 곳이다. 그것도 꽤 중요한 것을 ---. 조-짐 쪽을 흘끔 쳐다보니까 그가 오른손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눈앞의 스크린에 '가속도-제로'라는 문자가 나오고, 계속해서 '주 엔진 -입력 제로'라는 글씨가 나오더니 조금 뒤에 꺼져버렸다. 휴는 무슨 일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것은 마술과 같이 무척 신기해 보였다.
“놀라지 마라. 이 방의 빛을 모두 꺼야겠다.”
조-짐이 말했다.
“빛을?”
휴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빛이 전혀 없는 어둠이라는 것을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지금가지 두세 차례 어두컴컴한 막다른 골목에 잘못 들어가서 나오지 못한 적은 있었다. 그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었다.
“설마, 그런......?”
그러자 조-짐이 함께 빙긋 웃었다.
“그것도 네가 끄는 거야.”
조가 말했다.
“왼쪽 앞을 봐. 거기에 작고 하얀빛이 나는 것이 있을 거야.”
휴는 조가 말한 곳을 보았다. 의자의 팔걸이 앞에 여덟 개의 작은 빛이 늘어서 있었다. 그 안쪽에서 여러 가지 빛이 비치고 있었고, 그것이 플래스틱 같은 표면까지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손으로 가려 봐. 이 조종실의 빛이 꺼질 테니까.”
“하지만......”
“해보라니까!”
짐이 큰 소리로 외쳤다. 휴는 머뭇거렸다. 그러나, 두려움과 동시에 호기심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는 작은 빛 쪽으로 슬슬 손을 뻗쳤다. 손 끝을 8개의 빛 중 하나 위에 놓자 지금까지 은색으로 찬란하던 둥근 천장의 1/8이 희미한 납색으로 변했다. 휴가 손을 점점 뻗쳐가니까 천장의 빛은 차례차례 어두워지고, 드디어 계기반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희미한 빛 이외에는 아무 빛도 없는 어둠이 되어버렸다. 휴는 흠칫하고서 방을 둘러보았다. 계기반의 빛으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조-짐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 좋아. 이제부터 너에게 '밖'을 보여주겠다.”
“저것 봐! 저것이 별이다.”
조-짐이 각각 말했다. 그리고 손을 뻗치자 의자 앞에 붙어있는 무슨 장치가 조금 흔들렸다.
“뚜---.”
갑자기 휴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이상한 세계가 펼쳐졌다. 그것은 검은 빌로드 위에 박힌 수많은 보석 같았다. 그러나, 보통 보석이 아니라 - 하나하나가 살아서 타고 있으며, 또 성스럽게 빛나고 있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빛이었다. 그 검고 끝없이 넓은 어둠은 휴의 마음을 완전히 마비시켜 버렸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그 어둠 속으로 한없이 굴러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아아---!”
휴는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의자의 팔걸이를 거머쥐고 몸이 흔들리지 않게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휴는 배 안의 인생 말고도 멋진 것이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았다. 휴의 마음은 마구 흔들리고 어지러웠다. 그는 한참 동안 완전히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채 그 광경만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나?”
조-짐이 물었지만 휴는 아무 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때, 조-짐이 자기 자리에 있는 장치로 주 조종실 안을 밝게 했다. 천장의 안쪽이 밝아지기 시작하자 별빛은 엷어지면서 차츰 사라져갔다. 휴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가슴이 욱신욱신거리고 심장이 마치 몇백 m나 달려온 것처럼 마구 뛰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휴. 갑자기 벙어리가 되었나?”
짐이 또 물었다. 그러나, 휴는 아직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별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에 그는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휴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것이 밖입니까?”
“그렇다.”
“그리고......, 저 빛나고 있는 것...... 저것은 무엇이죠?”
“저건 별이다.”
“별이 뭔데요?”
“자기 스스로 무서운 열을 가지고 타고 있는 거대한 덩어리이다. 저렇게 작아 보이지만 사실은 놀랄 정도로 커. ---이 배 같은 것과는 전혀 비교가 안 될 정도지.”
“설마 그런......?”
“사실이다. 저 작은 빛은, 몇천만 km, 몇 억 km나 떨어져 있는 거야.”
“뭐라고요!”
휴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배의 밖으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밖이라고 하지 않았나. 저것이 이 배의 밖에 펼쳐져 있는 우주이다. 곧 세계인 것이다!”
휴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바보에게 그런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리야. 내가 말했잖아, 시간 낭비라고.”
짐이 조를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
“그러지 마라, 짐. 기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날아보라고 하는 건 무리야. 우리들도 이것을 이해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 이것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마련이야.”
“그건 그렇지만......, 그러나 우리들과 이 녀석과는 살아온 방법이 달라.”
휴는 어렴풋이 두 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었다. 머릿속이 계속 빙빙 돌았다.
“조, 가르쳐 주세요. 아까 우리들이 저 별이라는 것을 보고 있었을 때 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된 거지, 짐? 이 녀석은 이해를 빨리 하는 것 같지 않아?”
짐은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나, 그 얼굴에도 뜻밖이라는 듯 가벼운 경련이 일어났다.
“네 말대로야, 휴. 유리들은 - 이 배는 언제나 우주 공간을 날고 있어.”
“하지만......, 우주 공간을 날아서 어디로 가는 건가요?”
“그것은 몰라.”
조-짐은 짧게 대답했다.
“아마 저 별 중의 하나를 행해서 가고 있을 거다. 켄타우리라는 별로”
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켄타우리로의 우주여행...... 멀고 먼, 아득히 먼 여행......”
휴는 입 속으로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그날은 그 정도에서 끝내고 일행은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 뒤에 휴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조-짐이 가지고 있는 책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읽어나갔다. 지금까지 읽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도 모두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휴는 읽고 또 읽었다. 잠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도 아까운 것 같았다. 조-짐은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일도 거의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휴가 아무리 책을 읽어도 나무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모르는 것을 물으면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고, 또 휴가 물어보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조-짐과의 대화를 통해 휴는 책으로는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배웠다. 배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처음으로 알았다. 배 - 우주선은 수백 년 전 인간이 태어난 지구라는 행성에서 만들어 쏘아 올린 것이었다. 처음에 우주선에 탄 사람들 곧 휴들의 조상은 모두 뛰어난 과학자이며 기술자들이었다. 그리고, 모두들 맡은 일을 열심히 해가면서 멀고 먼 우주 여행을 시작했다. 모두가 서로 같은 배를 탄 동지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주선은 켄타우리를 향해 날아갔다. 처음에 우주여행은 매우 순탄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 휴로서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일 이후 우주선 안은 뒤죽박죽이 되고,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며 자기 동료 이외의 사람은 모두 적으로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모든 과학과 기술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이것은 휴에게도 현기증 날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다. 그렇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이 있었다. 특히, 지구라는 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휴에게 지구는 그저 끝없이 크다는 것으로만 느껴졌다. 산, 강이라든가, 특히 바다라는 것은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을 들어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더욱 이상한 것은 지구 위에서는 인간이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조? 그렇게 되면 모두 우주로 떨어져 나갈 게 아닙니까?”
휴는 조에게 물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지구에는 중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중력이라는 말은 물론 휴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그것을 사랑의 법칙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조-짐은 마구 웃어댔다. 그리고는 겨우 웃음을 그치고 설명해 주었다.
“중력이라는 것은 물체를 잡아 당기는 힘으로서 인력이라고도 한다. 물질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중력이 있다. 지구라는 것도 대단히 큰 물질 덩어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 표면에 있는 것은 모두 지구중력에 의해 지구 표면에 매달려 있게 되는 거야. 그러므로 결코 떨어지지 않지.”
“음......, 그렇다면 이 우주선 안에도 그 인력의 법칙이 작용합니까?”
“물론이지.”
“그렇다면 왜 아랫계단에 가면 몸이 무거워지고, 윗 계단에 가면 가벼워집니까?”
“아, 그것은 조금 다른 경우야. 여기에 있는 것은 중력은 중력이지만 인공중력이야. 이것은 원심력이야.”
휴는 원심력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심력이 우주선 안에서 응용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처음 알았다.
“돌에 끈을 매서 휘두르면 돌은 멀리 날아가려고 하지. 그것이 원심력이다. 이 우주선은 원반형으로 되어 있으며, 또 빙빙 돌고있다. 그러니까, 원반 안에 원심력이 생겨서 안에 있는 것이 바깥으로 날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바깥에 벽이 있기 때문에 날아가지 않고, 그 대신 그것이 무게로 느껴지는 것이다.”
조는 천천히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그러므로 아래 계단 - 곧, 우주선을 형성하고 있는 원반의 끝부분으로 갈수록 무거운 감이 들고, 반대로 윗계단 - 곧 원반의 중심부로 다가감에 따라 가벼워져서 결국에는 무게가 없어지는 것이지. 주조종실은 정확히 그 중심부에 있기 때문에 무게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주선의 회전을 정지시키면 원심력이 없어지며 따라서 무게도 없어지고, 사람들이 모두 둥둥 떠오르게 된다. 어때, 알겠나?”
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짐은 휴를 몇 번이나 주조종실에 데리고 가서 조종장치의 사용법과 우주 항행에 필요한 계기를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휴는 조-짐도 그다지 자세한 것까지는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곧 알았다. 그래서, 휴는 조종법에 관한 책을 찾아서 읽어 곧 조-짐보다도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휴가 제일 놀란 것은 우주선의 장치가 거의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오랜 옛날, 이 우주선을 설계했던 사람들은 우주 여행이 매우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동안에 거의 인간이 손을 대지 않아도 되게끔 모든 장치를 자동식으로 해놓은 것이다. 또, 그런 장치류가 고장나거나 낡으면 자동적으로 부품이 교환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휴는 옛날 과학자의 치밀한 준비성에 대해서 크게 감탄했다. 어느 날 휴는 또 조-짐과 함께 주조종실에 가 보았다. 전과 같이 조종석에 앉아서 가속이라고 쓰여있는 단추 위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자, 스크린에 주 엔진 기관사 없음이라는 글씨가 나타났다.
“저것은 어떤 뜻이지요?”
휴는 조-짐에게 물어보았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조가 대답하며 목을 움츠렸다.
“이 맞은편에 있는 주 엔진실의 기관사석에서 해보니까 선장 없음이라는 글씨가 나오던데 어떻게 된 걸까?”
“그럼......”
휴는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이렇게 말했다.
“만약, 기관사석과 선장석 양쪽에서 동시에 가속 스위치를 누르면 어떻게 될까요?”
“모르겠는데.”
조-짐은 관심이 없다는 듯이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휴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아마 배의 주 엔진에 연료가 주입되고 엔진이 돌기 시작하겠지. 그리고 나서 그 뒤에는...? 휴는. 그 이상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아니 그것보다도 무엇인가가 두려워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마 그때는 굉장한 소리가 나면서 이 거대한 우주선은 어둡고 어두운 대우주 속을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날기 시작하겠지...... '한 번 해보고 싶은데.' 휴는 문득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느 날, 휴는 또 조-짐을 졸라서 주조종실에 갔다. 그곳에서 빛을 모두 끄고 멋진 대우주의 광경에 흠뻑 도취되어 보았다.
“조-짐...”
“왜 ?”
“정말 멋있어요.”
“뭐가 ?”
“저것 말이에요. 저 별, 저 대우주 말입니다.”
휴는 팔을 들어서 둥근 천장 가득히 펼쳐져 있는 대우주의 장대한 광경을 가리켰다. 조-짐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마치 내가 저 거대한 우주의 일부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짐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휴는 마음을 굳혔다. 그것은 아까부터 말하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당신들은 어째서 그 일을 해보려고도 하지 않죠, 조-짐?”
“그 일이라니, 무슨 일 말인가?”
조-짐은 놀란 표정으로 휴를 쳐다보았다.
“주 엔진을 가속시켜서 빨리 저 별까지 날아가는 것 말이에요.!”
조-짐은 어안이 벙벙해서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 휴는 얼른 앞으로 나아갔다.
“저 우주의 어딘가에는 지구와 같은 행성이 많이 있을 거예요. 그 안의 어딘가에 내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 우주선을 처음으로 만들었던 사람들도 그럴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 뜻에 따라서 다른 별에 내리는 것이 우리들, 이 우주선에 탄 사람들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짐이 큰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조는 표정이 굳어져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 일이라는 게 고작 그거야?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생각도 하지마, 휴. 그런 것은 모두 지나가 버린 옛날의 꿈이야. 이제는 모두 끝나버렸단 말이야.”
“뭐라고요? 왜 그게 꿈입니까? 어째서 끝나 버렸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것은......”
조는 도중에 말이 막혔다.
“그것은 너무나도 큰 일이기 때문이야.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이지. 그런 일을 하려면 잘 훈련을 받은 승무원들이 많이 필요해. 그런데, 여기에는 아무도 없어. 모두 보보 같이 모자라는 정신이상자들 뿐이거든.”
“그렇게 많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휴는 반대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마 열 명 정도일 겁니다. 이 우주선에는 사람이 직접 조종해야 하는 것은 몇 가지 없습니다. 그러니까 열 명만 있어도 우리들 손으로 이 우주선을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조는 머리를 저었다.
“그것만은 안돼, 휴. 첫째로, 우리들은 이 장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도 몰라. 아니, 거의 모른다고 하는 편이 좋아.”
조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처럼 천천히 말했다.
“두 번째로, 만약 우리 손으로 조종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실제로는 조종할 수 없어.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 우주선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고, 또 어디로 향해 날아가고 있는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단 말이야. 이런 상태에서 우주선을 조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요.”
휴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었다.
“계기만 정확하게 읽을 수 있으면 가능합니다. 아마 컴퓨터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그것을 알아내면 돼요. 조-짐, 그렇게만 되면 가능해요. 그렇지 않겠어요?”
짐은 휴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글쎄......, 이야기를 듣고 보니 될 것도 같은데.”
“우리 한 번 해봐요, 조-짐!”
“그렇지만 사람이 부족해. 이곳의 뮤탄트들은 안돼.”
휴는 조-짐에게 바싹 다가앉으며 말했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아랫계단에는 나처럼 젊은 과학자가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여기에 데리고 와서 당신이 훈련시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안돼.”
짐이 경멸하듯이 말했다.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나도 이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만약에 허락만 해준다면 당장이라도 아랫 계단에 내려가서 그 사람들을 데리고 오겠어요. 그렇게 하면 당신이 그들을 훈련시켜서......”
“우리들을 잘 봐, 휴”
휴는 머리를 기웃거려서 조-짐을 바라보았다.
“무엇으로 보이지?”
“무엇으로 보이냐고요? 조-짐으로 보이는데요.”
“아니야. 네가 보고있는 것은 뮤탄트다.”
조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우리들은 뮤탄트야. 알겠니, 휴? 너희들 과학자는 뮤탄트와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아.”
휴는 머리를 크게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자는 농부와는 달라서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협력합니다. 내가 그 좋은 예예요. 나는 저 대 우주를 본 순간, 당신들이 옳다는 것을 알았어요.”
휴는 열심히 설명했다.
“문제는 그 과학자들이 뮤탄트 나라를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에요. 그것은 당신의 힘으로 되겠죠?”
“물론 그것은 할 수 있지.”
짐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러나, 정말 그 과학자들이 우리의 일을 도와줄까?”
“틀림없이 도와줄 것입니다. 그 문제는 내게 맡기십시오.”
“그럼, 누가 그 과학자들을 부르러 가지? 우리들이 갔다가는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을 거야. 상대는커녕 모두 덤벼들어서 우리를 죽여 에너지 전환로에 처넣어 버릴 것이 뻔해.”
“아, 물론 내가 데리러 가야죠. 처음에는 여기에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행동하다가 기회를 봐서 그들을 설득해 보겠어요.”
조-짐은 물끄러미 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너, 설마 그들을 데리고 우리가 있는 곳에 쳐들어 올 작정은 아니겠지?”
휴는 머리를 휘저으며 눈을 크게 뜨고 조-짐을 바라보았다.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나를 믿어주세요.”
조-짐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뒤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휴.”
“예.”
“우리들은 결심했다.”
조가 말했다.
“너를 아래 계단으로 보내겠다.”
보보가 길을 안내해 주었다. 도중의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뮤탄트들이 이쪽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보보와 함께 가기 때문에 아무런 위험도 없었다. 이윽고 보보와 휴는 휴가 살던 마을 근처의 계단인 무인 지대까지 내려왔다.
“고마와, 보보. 덕분에 무사히 왔어. 멋진 식사를!”
휴가 섭섭해하며 말하자 난쟁이는 빙긋이 웃고는 내려왔던 사다리를 타고 재빨리 올라갔다. 그의 모습은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휴는 허리의 칼에 손을 대어 보았다. 포로가 되었을 때 빼앗긴 이래 참으로 오랫만에 만져보는 칼의 감촉은 매우 좋았다. 휴는 걷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보조 에너지 전환로 방이 있다. 그는 거기에 가서 빌 에르츠 주임을 만날 작정이었다. 200m 정도 걸어가니까 전에 본 기억이 있는 듯한 전환로의 방문이 보였다. 그 옆에 보초가 한사람 서 있었다. 보초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주임을 만나고 싶소.”
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은 누구요?”
“휴 호일랜드요.”
‘무슨 용건입니까?“
“그건 주임을 만나서 이야기할 거니까 우선 들여보내 주시오. 에르츠 주임은 있겠지요?”
“에르츠 주임?”
보초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주임은 없소.”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빌 에르츠 밑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고요.”
보초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빌 에르츠라면..... 아, 기관장 말이군. 당신은 어떻게 그런 것도 모르지요? 도대체 어디에 갔다 온거요?”
보초는 머리를 점점 더 의심스러운 듯한 눈으로 훑어보았다.
“아, 그렇군. 내가 깜빡 실수를 했소.”
휴는 난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끼면서, 자신이 없는 동안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보초는 많은 표정을 지으며 에르츠는 사무실에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휴가 안으로 들어가자 에르츠는 책상에서 얼굴을 들었다.
“오, 돌아왔구나, 휴! 이거 정말 놀랄 일인 걸! 우리들은 자네가 여행하러 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명단에서 지워버렸는데.”
“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겠지. 상당히 고생을 한 모양이군. 벌써 흰 머리카락이 난 것을 보니....”
휴는 깜짝 놀랐다. 흰 머리카락이 났다는 것은 자신은 전혀 몰랐었기 때문이었다. 뮤탄트 나라에는 거울 같은 것이 없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는 자신이 얼마나 긴 시간을 뮤탄트 나라에서 보냈는지 모르고 있었다. 휴는 고장난 파이프를 수리하는 중에 뮤탄트에게 공격을 받아서 정신을 잃은 것, 정신을 차려보니 뮤탄트 나라에 옮겨져 있었던 것, 그 뒤 죽 노예로 일해 온 것 등을 간단히 말했다. 빌 에르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이거 좀 곤란하게 되었는데...... 자네가 이렇게 돌아왔으니 어떻게 하지? 전에 자네가 일하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곤란하고...... 모트 타일러가 자네의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휴는 모트 타일러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어디서나 잘난 체하면서 무슨 조그만 일에도 규칙을 들고나오는 그 모트. 휴는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었다.
“그건 상관없습니다.”
“아니, 걱정 말게. 자네의 계급에 맞는 일을 찾아볼 테니까.”
빌 에르츠는 공책을 꺼내어 훌훌 넘겼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들어주시겠습니까, 기관장님?”
“그건 나의 일이 아닐세. 자네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평의회에서 결정할 거야. 정말 이건 전례없는 일이니까. 우리들은 지금까지 뮤탄트를 상대로 싸워오는 동안에 많은 과학자를 잃었다. 살아 돌아온 건 자네가 처음이야.”
“아니, 먼저 기관장님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뮤탄트 나라에 가서 놀라운 것을 많이 보고 들었어요. 그것에 대해 당신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히 중요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곧장 기관장님에게 온 겁니다. 꼭 들어주십시오. 나는 ----.”
빌의 얼굴에 갑자기 긴장의 빛이 돌기 시작했다.
“어서 시작하게.”
빌 에르츠는 갑자기 긴장의 빛이 돌기 시작했다.
“어서 시작하게.”
빌 에르츠는 몸을 바짝 앞으로 내밀었다.
“자네는 뮤탄트 나라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있었어. 그렇다면, 그놈들 나라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겠지. 자 어서 말해 보게나.”
휴는 입술을 핥았다.
“뮤탄트 나라는, 기관장님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좀 달라요. 뮤탄트 나라의 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우리들은 뮤탄트에 대한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건 무슨 말이지?”
“들어 보세요.”
휴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배가 사실은 대우주를 날고 있는 우주선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주조종실에서 보았던 그 황홀한 대우주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휴는 빌의 표정을 살피면서 이야기해 나갔다. 그러나, 빌은 거의 표정이 없었다. 단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이렇게 진실을 알게 된 이상 빨리 우리들의 조상이 시작했던 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뮤탄트들과의 무익한 싸움을 그만두고 그들과 협력을 해야 합니다.”
휴는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말했다.
“나는 뮤탄트 나라의 통치자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싸움을 그만두고 함께 일을 해보자고 약속했어요. 내가 주임님, 아니 기관장님에게 제일 먼저 온 것은, 당신이라면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젊은 과학자들이 당신의 말이라면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빌 기관장님 도와주십시오. 지금이 배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휴는 이야기를 끝내고 에르츠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에르츠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상 위만 바라보고 있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이야기야, 휴. 이렇게 중요한 일을 지금 당장 나도 결정할 수는 없네. 생각해보겠네.“
“물론 그렇지요. 나도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을 주조종실까지 데리고 가서 저 대우주의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당신도 틀림없이 믿게 될 겁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기 전에 뮤탄트들에게 잡혀서 죽음을 당해 버릴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전하게 주조종실까지 데려갈 수 있도록 뮤탄트의 통치자와 약속을 하고 왔어요. 나와 함께 행동하기만 하면 당신은 절대로 안전합니다.”
빌 에르츠의 무표정한 얼굴에 무엇인가가 언뜻 나타났지만 그게 뭔지 휴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오늘 하루 생각할 여유를 주게, 휴. 내일 아침까지 잘 생각해 보겠네. 내가 대답할 때까지 이 일은 절대로 아무에게도 이야기해서는 안 돼. 함부로 이야기했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네.”
“그렇게 하지요.”
휴의 다짐을 받고 나자, 겨우 빌의 얼굴색이 좋아졌다.
“그런데, 자네 무척 배가 고프고 피곤할 텐데...... 내 사무실 안에 있는 방을 하나 준비해줄 테니까 식사를 하고 자는 게 좋겠네.”
“예, 감사합니다.”
“내일까지 푹 쉬게나.”
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직원이 와서 휴를 어떤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무척 피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식사를 끝내니 졸음이 쏟아져 왔다. 그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곧 잠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 굉장히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휴는 하품을 크게 하고 일어났다. 그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재빨리 허리띠를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칼집만이 있었다. 그는 방문의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그는 갇혀버린 것이었다. '큰일났다! 내가 방심을 했구나......' 그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방에는 문이 하나밖에 없다. 아무리 해도 도망갈 방법이 없었다. '빌 에르츠가 평의회에 나를 보고한 게 틀림없어. 아마 평의회에서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