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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들

Bollnow 2024. 4. 13. 11:05

사기꾼들

Jeffrey Archer

 

해밀턴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 8월 헨리와 수잔 케네디 부부의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을 때였다.

해밀턴은 부모로부터 막대한 재산 이외에는 물려받은 것이 별로 없는 불행한 인종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책 읽을 시간은 물론이고 연극이나 오페라를 볼 시간도 전혀 없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버나드 쇼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 고르바초프에서 피카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화제에 끼어드는 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실업자가 그의 회사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의 급료보다 아주 적은 실업수당을 받는 것에 왜 불평불만을 하는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실업수당조차 빙고나 술로 써버릴 뿐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술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그날 밤, 그곳에는 또 한 명의 손님이 있었다.

와인 협회 회장인 프레디 바커가 내 아내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해밀턴과는 달리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바커는 고생 끝에 기울어가는 협회 재정을 다시 일으킨 공로자일 뿐만 아니라 와인에 관해서는 당대 일류의 권위자로서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로부터 유익한 전문지식을 듣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바커가 한마디 할 때마다 그의 깊은 지식을 엿볼 수 있었으므로, 그에게 이야기를 시키기만 한다면 필시 탁견을 듣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입속에서 살살 녹을 것 같은 시금치 수플레가 탁자에 놓여지는 동안 헨리는 사람들에게 와인을 따르며 다녔다.

바커는 잔을 코에 가까이 대고 끄덕였다.

"건국 2백 주년 축하 해에 이런 근사한 오스트레일리언 샤브리는 정말로 안성맞춤이에요. 분명히 프랑스인도 조만간 오스트레일리아의 백포도주를 경계하기 시작할 겁니다."

"오스트레 일리아라고요?"

해밀턴이 컵을 놓고 설마 하는 얼굴로 말했다.

"맥주나 벌컥벌컥 마셔대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와인에 대해서 이해할 리가 있나?"

"곧 이해할 겁니다,"

바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스트레 일리아인은‥‥‥‥"

"2백 주년 축제는 축제라도,"

해밀턴이 무시하며 계속해서 말했다.

"그들이 축하하고 있는 것은 2백 년 동안의 가석방에 지나지 않아요."

해밀턴 이외에는 아무도 그 농담에 웃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우리나라의 범죄자들을 그 나라에 보내고 싶은 심정이오."

사람들은 그 말이 그의 본심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해밀턴은 독을 탄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처럼 조심조심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판사들이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옆에 앉은 남자가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갖가지 고견보다는 요리 쪽으로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나는 비프 웰링톤을 아주 좋아했고, 수잔은 부슬부슬 흐트러지지 않는 케이크와 처음으로 고기를 맛본 올리버 트위스트가 떠오를 만큼 연한 고기 요리를 좋아했다. 그 덕분에 해밀턴이 잘난 체하는 것에도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다.

해밀턴이 퍼디에 의한 자유당 재건의 가능성과 노동조합운동에 있어서 아더 스카길의 역할에 관해 거침없이 떠들어대고 있을 때 바커는 프랑스산 적포도주에 대한 찬사를 헨리에게 겨우 전할 수 있었다.

"나는 내 고용인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소,"

해밀턴은 단숨에 잔을 비우고 말했다.

"나는 클로즈드 숍(노동조합원만으로 운영되는 사업장)을 경영하고 있소."

그는 다시 자신의 서툰 농담에 아주 이상하게 웃으며 빈 잔이 마법으로 채워지기라도 하듯이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실제로 잔을 채운 것은 마법이 아니라 헨리였다.

그것도 해밀턴이 느끼고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 눈에 띄지 않게. 그 뒤에 잠시 이야기가 중단되었을 때, 내 아내가 노동조합운동은 진정한 사회적 필요에 의해서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농담이시겠지요, 부인."

해밀턴이 말했다.

"아무리 호의적인 눈으로 보더라도 오늘날 영국의 쇠약을 초래한 최대의 원흥은 노동조합이에요. 조합은 자신들 이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론 톳드와 포드의 대실패를 보면 그것은 더욱 분명해질 거예요."

수잔이 접시를 치우기 시작했고, 그것을 기회로 헨리를 팔꿈치로 찔러 신호를 하자 그는 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곧 맛있는 소스를 친 딸기 과자가 나왔다.

이 훌륭한 작품에 손을 대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잔은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는 유모처럼 주의 깊게 6등분을 했고, 그 사이에 헨리가 1981년산 와인의 코르크를 뽑았다.

바커는 기대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해밀턴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수상이 내각에 하트파를 너무 많이 기용하는 것도 나는 마음에 안 들어요."

"당신이라면 대신 누구를 기용하겠습니까?"

바커가 무심히 질문했다.

해밀턴이 이름을 든 신사들은 죄 없는 유아의 학살이 육아 계획의 연장이라고 헤롯 왕이 말한다면 쉽게 그것을 믿을 만한 사람들 뿐이었다. 나는 다시 수잔의 요리에 주의를 빼앗겼다.

더구나 거기에는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마지막으로 체다 치즈가 나왔다. 나는 그것을 한 입 맛본 순간에 케인샴의 알비스 브라더즈 농장 것임을 알았다.

누구나 자신을 가지는 분야가 한 가지씩은 있지만 내 경우에는 체다 치즈가 그것이었다.

치즈와 함께 헨리가 그날 밤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포르투갈산 적포도주를 따르며 다녔다.

"선디만 1970년 것입니다."

그는 그 방면의 전문가 잔에 처음의 몇 방울을 따르면서 넌지시 중얼거렸다.

", 물론."

바커는 잔을 코에 가까이 갖다 대며 말했다.

"금방 알겠네요, 선디만 특유의 따뜻한 색깔. 하지만 특이한 감칠맛이 있습니다. 조금 재워 두었지요, 헨리. 선디만은 오래된 것일수록 맛이 더욱 좋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와인의 상당한 권위자라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해밀턴이 말했다. 그것은 이날 밤 그가 처음 한 질문이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닙니다."

바커가 말을 했다.

"하지만‥‥‥‥

"모두 사기꾼이에요, 와인의 권위자라는 녀석들은."

해밀턴이 상대방의 말을 가로채서 말했다.

"냄새를 맡고 잔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맛보고 뱉어내고서 무턱대고 까다로운 말을 늘어놓으며 우리에게 조용히 들으라고 하지요. 감칠맛과 색깔이 어쩌구저쩌구 해요. 나는 그렇게 간단히는 속지 않아요."

"당신을 속이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커가 불끈해서 말했다.

"당신은 아까부터 우리를 속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소. '아아, 물론 금방 알았습니다'라는 상투적인 문구로요. , 정직하게 인정하는 게 어때요?"

"그럴 생각은‥‥‥‥"

"뭣하면 내가 그것을 증명해주지요."

우리 다섯 명은 이 불유쾌한 손님을 망연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다음은 도대체 어떻게 될까를 생각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해밀턴이 계속했다.

"세프튼 흘의 와인 수집창고는 영국에서 최고래요.

그것은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은 것인데, 솔직히 말해서 내게는 그 전통을 유지할 시간이 없었어요."

바커는 그것도 당연하다는 듯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 집사는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잘 알고 있어요. 나는 다음 주 토요일에 당신을 점심에 초대해서 네 종류의 최고 빈테지 와인을 선보일 생각이오. 그래서 당신에게 내기를 청하오."

그는 바커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덧붙였다.

"한 병당 5백 대 50파운드로 못 맞추는데 걸겠소. 어떻소? 이 내기는 매력적일 텐데요."

그는 저명한 와인 협회 회장에게 도전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내기 돈이 너무 많아 도저히‥‥‥‥"

"도전에는 응할 수 없다는 거요. 바커? 그렇다면 당신은 사기꾼에다 겁쟁이요."

거북한 침묵 뒤에 바커가 대답했다.

"괜찮겠지요. 아무래도 당신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군요."

해밀턴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당신도 입회인으로서 함께 오시오, 헨리, 그리고 이쪽 작가 선생도 함께 데리고 와 주시오."

나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그렇게 하면 취향이 다른 것도 쓸 수 있을 거요."

해밀턴은 우리 아내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메리는 내게 빈정거리는 듯한 미소를 보냈다.

헨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았지만, 나는 눈 앞에서 전개되는 드라마의 관객이 되는 것에 무척 흥미가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여 승낙했다.

"좋소."

해밀턴은 옷깃에 냅킨을 건 채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다음 주 토요일에 세프튼 흘에서 세 분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소. 12시 반이 어떻겠소?"

그는 수잔에게 인사를 했다.

"유감스럽지만 저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초대 손님 속에 끼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뿌리치듯 대답했다.

"토요일 점심에는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어서요."

해밀턴은 어떻든 상관없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이 엉뚱한 손님이 돌아간 뒤에 우리는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는데 이윽고 헨리가 과감히 말했다.

"여러 가지로 미안했어요.

그의 어머니와 우리 숙모님이 오랜 친구 사이신데 몇 번이나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라는 숙모님 말씀이 있었거든요. 아무도 초대해 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바커가 말했다.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가능한 한 노력하지요. 그리고 오늘 밤 근사한 대접을 받은 답례를 하고 싶습니다.

그 토요일 밤을 비워두셨으면 해요. 실은 세프튼 흘 근처에 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던 여인숙이 있어요. '해밀턴 암즈'라는 이름의 여인숙인데, 듣기로는 요리도 상당하지만 와인 리스트가‥‥‥"

그는 잠시 주저했다.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 말하기로는 아주 뛰어나대요."

헨리와 나는 수첩에서 스케줄을 뒤져보고, 그 자리에서 그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날부터 10일 동안 종종 세프튼 해밀턴을 생각하며 불안과 기대 속에서 약속한 점심 식사를 기다렸다.

토요일 오전에 우리 세 사람은 헨리가 운전하는 차로 세프튼 파크로 출발하여 12시 반이 조금 지났을 때 도착했다.

실제로 거대한 철문을 통과한 것은 12시 반 정각이었지만, 현관에 도착했을 때는 1237분이 되어 있었다.

중후한 오크나무 문은, 우리가 노크하기도 전에 정장 차림을 한 키가 크고 우아한 남자에 의해 열렸다.

그 남자는 집사 애담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우리를 난로에서 장작이 불타고 있는 거실로 안내했다.

난로 위에는 세프튼 해밀턴의 할아버지라 여겨지는 위엄있는 인물사진이 장식되어 있었다.

반대쪽 벽에는 워털루 전쟁을 그린 거대한 태피스트리와 크리미아 전쟁을 소재로 한 큰 유화가 걸려 있었다.

골동품 가구가 방 안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고, 원반을 던지는 고대 그리스인의 조각상도 보였다.

나는 방 안을 둘러보면서 20세기에 속하는 것은 전화뿐이라고 생각했다.

해밀턴이 운 나쁜 해변 마을을 덮치는 허리케인 같은 기세로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난롯불을 등지고 섰다.

"위스키!"

그는 애담즈에게 큰소리로 명령했다.

"바커는?"

"난 괜찮습니다."

바커는 희미한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과연. 미래를 가능한 한 민감하게 해두자는 거군요?"

바커는 상대하지 않았다. 점심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그 집의 대지가 7천 에이커나 되고,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가장 근사하다고 소문이 난 사냥터가 대지 내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프튼 흘은 전부 112개의 방으로 되어 있다.

그중에는 해밀턴이 어릴 적부터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방도 하나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붕 면적만도 1.5에이커가 된다고 했는데 그 면적은 우리 집 정원과 같은 크기였다.

방구석에 있는 큰 시계가 1시를 쳤다.

"경기 개시 시간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해밀턴은 부하 병사들이 뒤를 따를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 장군처럼 가슴을 펴고 방을 나갔다.

사실 우리는 그를 따라 10야드나 되는 복도를 지나 식당까지 걸어가야 했다.

이윽고 우리들은 2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17세기 오크나무 식탁에 앉았다.

식탁 중앙에는 조지 왕조 풍의 유리병이 둘, 라벨이 없는 병이 둘 놓여져 있었다.

한 병에는 투명한 백포도주, 또 한 병에는 빨간 포도주 또 한 병과, 나머지 두 개의 병에는 다른 것보다 색이 짙은 백포도주와 황갈색이 감도는 붉은 포도주가 들어 있었다.

네 종류의 와인 앞에는 횐 종이가 한 장씩 엎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각 병 옆에 50파운드짜리 지폐 다발이 놓여 있었다.

해밀턴은 식탁 상석 큰 의자에 앉았고, 바커와 내가 마주 보는 형태로 와인을 사이에 두고 식탁 중앙에 앉았고, 헨리가 말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집사는 주인의 의자 뒤에서 한발 물러나 서 있었다.

집사가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하자 네 명의 급사가 첫 번째 요리를 날라왔다. 생선과 새우 요리가 놓여졌다.

애담즈가 주인의 신호를 받아 한 병을 집어 들어 바커의 잔을 채웠다.

바커는 집사가 식탁을 한 바퀴 돌아서 다른 세 명의 잔에도 다 따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의식을 시작했다.

우선 처음에 컵 속의 액체를 천천히 돌리면서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 다음으로 향기를 들이마셨다.

순간의 주저와 함께 의외라는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그는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

"흐음,"

이윽고 그는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대단한 골칫거리군요."

그리고 나서 그는 만일을 위해서 다시 한번 향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얼굴을 들어 납득이 갔는지 미소를 지었다.

해밀턴은 살짝 입을 벌리고 가만히 상대를 쳐다보았지만 그로서는 어울리지 않게 침묵을 지켰다.

바커는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몬타니 테트 드 큐베, 1985,"

전문가답게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다.

"양조원은 루이 라톨입니다."

우리는 일제히 해밀턴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바커와는 대조적으로 기분 나쁘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렇소. 양조원은 라톨이오. 하지만 그쯤은 토마토케첩을 병에 담았던 것이 하인츠라는 것과 똑같은 것이어서 자랑할 것이 못되오. 게다가 내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은 1982년이었으니까 당신이 틀렸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소."

그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집사 쪽을 돌아다보았다. 애담즈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바커가 카드를 뒤집었다. 거기에는

"슈발리에 몬랏세 레 드모와젤, 1983."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카드를 쳐다보았다.

"이것으로 한 번 졌소. 나머지는 세 개요."

해밀턴은 바커의 반응을 마음에 두지 않고 말했다.

다시 급사들이 나타나서 새우 요리 접시를 치우고 곧 담백한 맛의 라이초우를 날라왔다.

요리가 놓이는 동안 바커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머지 세 병의 유리병과 병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고 해밀턴이 다음 주에 예정된 시즌 최초의 사냥 초대 손님 이름을 헨리에게 과시하는 것을 듣고 있지도 않았다.

그 이름들은 해밀턴이 이상적인 각료로서 열거했던 이름과 거의 일치하고 있었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바커는 라이초우를 아주 조금 먹으면서 애담즈가 첫 번째 유리병을 컵에 따르기를 기다렸다.

처음 실패 뒤에 새우 요리를 먹다 남기고 가끔 물을 마셨을 뿐이었다.

"애담즈와 나는 오전 내내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서 이 변변치 않은 도전을 위해 와인을 골랐으니 이번에는 정확히 맞췄으면 하오."

해밀턴이 말했다. 만족감이 자연스레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바커는 다시 잔을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시간을 들일 생각인 듯 여러 번 향기를 들이마시고 나서 겨우 컵에 입을 갖다 대고 맛보았다.

순간 알았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띠며 그는 주저함이 없이 단숨에 말했다.

"시트 라 르 비엘, 1978."

"이번에는 연도는 정답이었지만, 당신은 이 와인을 모독했소."

바커는 즉시 카드를 뒤집어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읽었다.

"샤트 라피트 1978."

나 같은 사람조차도 샤트 라피트 1978년이라면 누구나가 한 번쯤 마셔보고 싶어 하는 포도주의 명품 중의 명품인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바커는 침묵하고 라이초우를 계속 먹었다.

해밀턴은 하프 타임 스코어와 마찬가지로 그 와인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으로 내가 번 돈은 1백 파운드, 와인협회 회장은 제로요." 그는 지적했다.

헨리와 나는 찜찜해하며 세 번째 요리가 나을 때까지 다음 이야깃거리를 찾는 데 고심했다.

세 번째 요리는 레몬과 라임 수플레로 모양이나 맛이 수잔의 요리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럼 세 번째에 도전하시겠소?"

해밀턴이 힘있게 물었다. 애담즈가 유리병을 들어 와인을 따르며 다녔다.

놀랍게도 그는 바커의 잔에 따를 때 와인을 조금 흘렸다.

"정신 차려."

해밀턴이 꾸짖었다.

"정신 차려."

"죄송합니다."

애담즈는 사과했다. 그리고 나무 테이블에 흘린 와인을 냅킨으로 닦았다.

그러면서 쫓기는 듯한 표정으로 바커를 보았는데, 그것은 와인을 흘린 것과는 무관하다고 나는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식탁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침묵을 지켰다.

바커는 세 번째 잔을 돌리고 향기를 들이마셨고 끝으로 와인을 맛보는 의식을 행했다.

이번에는 더욱 오랜 시간을 들였다.

해밀턴은 기다리다 지쳐서 뭉툭한 손가락으로 제임스 1세 시대의 큰 식탁을 톡톡 두드렸다.

"이건 소테르누입니다."

바커가 말했다.

"그런 것은 바보라도 알 수 있소,"

해밀턴이 말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제조 연대지요."

와인 협회 회장은 주저했다.

"샤또 기로, 1976."

냉정하게 대답했다.

"적어도 당신은 초지일관하고 있구려. 늘 틀린다는 점이 그것이오."

바커는 카드를 뒤집었다.

"샤또 디켐, 1980."

그는 설마하는 투로 말했다.

그것은 나 같은 사람도 고급 레스토랑의 와인 메뉴 끝에서 본 적이 있을 뿐이고, 유감스럽지만 한 번도 맛을 본 적이 없는 명품이었다.

바커가 알아맞추지 못한 것이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바커는 항의하려고 해밀턴 쪽을 향했는데, 그때 6피트 3인치나 되는 장신의 애담즈가 주인 뒤에 서서 떨고 있는 것을 나와 함께 틀림없이 보았을 것이다. 나는 해밀턴이 방에서 나가기를 바랬다.

그렇게 되면 애담즈에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이유를 물어볼 수가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세프튼 흘 주인은 아주 바빴다.

한편 바커는 잠시 집사를 바라보고 있다가 상대의 불안을 눈치챈 듯 곧 눈을 감고 20분 뒤에 마지막 병의 것이 따라질 때까지 말하지 않았다.

"완벽한 수치를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

해밀턴이 말했다.

여러 종류의 치즈를 얹은 치즈 보드가 식탁에 놓였고, 각자가 좋아하는 치즈를 꺼냈다.

나는 어디까지나 체다를 고집했는데 준비한 치즈가 서머셋산이 아니라는 것을 입을 댄 순간 이미 알 수가 있었다.

그사이에 창백한 얼굴로 집사가 와인을 따르며 다녔다.

나는 그가 실신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네 잔을 다 따르고 애담즈는 주인의 의자에서 한발 물러나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해밀턴은 이변을 느끼지 못했다.

바커는 그때까지와 달리 의식을 행하지 않고 그냥 마셨다.

"테일러입니다."

"그렇소,"

해밀턴이 말했다.

"하지만 포르트의 와인 상 가운데 신뢰할 수 있는 곳은 세계에서 세 회사밖에 없으니, 문제는 연도라는 것을 그 방면의 권위자이신 당신이라면 잘 아실 텐데요, 바커 씨."

프레디는 끄덕이며 동의했다.

"1975년 것입니다."

그는 단정했고, 재빨리 카드를 뒤집어보았다.

"테일러, 1927."

바커는 다시 주인에게 험악한 시선을 보냈지만 상대는 배를·움켜쥐고 웃고 있었다.

집사가 고뇌에 찬 눈길로 손님을 마주 쳐다보았다.

바커는 아주 잠시 주저했을 뿐이었고, 안주머니에서 수표책을 꺼내서 '세프튼 해밀턴'이란 이름과 2백 파운드란 금액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서명한 수표를 말없이 해밀턴 쪽으로 밀어주었다.

"돈을 지불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닐 거요."

해밀턴이 승리에 취해 말했다. 바커는 일어서서 잠시 쉬었다가 말했다.

"정말로 나는 사기꾼입니다."

"맞소."

해밀턴이 말했다.

생애에서 가장 불유쾌한 시간을 보낸 뒤에 나는 헨리, 그리고 프레디 바커와 함께 4시가 지나서야 겨우 세프튼 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돌아가는 차 속에서는 세 사람 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마 헨리와 나는, 처음 발언권은 바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겨우 바커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몇 시간은 나와 함께 있어도 거북스럽기만 할 테니까 자네들이 허락한다면 운동을 위해서 잠시 걷고 730분경 '해밀턴 암즈'에서 저녁 식사하러 다시 만났으면 하네."

그 말만 하더니 바커는 헨리에게 신호를 하여 차를 세웠다.

우리는 그가 차에서 내려 시골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을 배웅했다.

헨리는 친구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차를 출발시키지 않았다. 그날의 일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전적으로 바커 편이었다. 와인 협회 회장인 사람이 왜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범했을까?

예를 들면 나는 디킨즈를 1페이지만 읽어도 그것이 그레암 그린의 작품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왓슨 박사처럼 나도 납득이 갈 만한 설명을 듣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심경이었다.

그날 밤 7시 반이 지나자마자 '해밀턴 암즈' 의 프라이비트 바 난로 앞에 우리가 앉아 있는 곳으로 바커가 도착했다.

그는 오랜 시간 걸은 덕분에 기분이 말끔해진 것 같았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점심시간의 사건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몇 분이 지났을 때 내가 문 위의 낡은 시계를 보려고 뒤돌아섰을 때 해밀턴 집의 집사가 계산대에 앉아서 가게 주인과 진지하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점심시간에 보였던 것과 똑같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았다면 나는 그의 존재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가게 주인도 간접 세무국 관리에게 서비스를 생릭한 걸 들키기라도 한 것 같은 꺼림칙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그는 메뉴를 갖고 우리에게로 왔다.

"메뉴는 필요 없소."

바커가 말했다.

"이 가게 평판은 널리 알려져 있소. 요리는 당신께 맡기겠소. 당신이 추천해 주는 걸 기꺼이 먹기로 하겠소."

"감사합니다."

주인은 바커에게 와인 리스트를 건넸다.

바커는 가죽 표지의 와인 리스트를 잠시 쳐다보다 곧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와인도 당신이 골라 주시오. 당신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을 것 같구려."

"잘 알겠습니다."

주인은 바커에게서 와인 리스트를 받으며 대답했다. 나는 여우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바커가 이 가게에 온 건 오늘이 처음이라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주인이 조리실로 사라진 뒤에 우리는 두서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죽였다.

이윽고 15분쯤 지나자 주인이 다시 나타났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옆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부 해서 열두 테이블밖에 없는 데다가 비어 있는 것은 우리 테이블뿐이었으므로, 이 가게가 크게 번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주인은 우리가 세프튼 흘에서 점심을 한 뒤라 많이는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콘소메 뒤에 오리 저민 것이 나오는 가벼운 저녁이었다.

그가 선택한 와인이 전부 병으로 나온 것도 내게는 의외였고, 그래서 아마 하우스 와인을 골랐을 거라고 상상했다.

어느 와인이나 점심때 세프튼 홀에서 마신 것보다는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내 단련되어 있지 않은 혀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바커는 한 모금 마실 적마다 차분히 맛을 보다가 한 번은 못 참겠다는 듯,

"이거야말로 진짜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날 밤의 마지막 장식으로 우리는 식후 여유로운 기분으로 근사한 포도주와 여송연을 즐겼다.

거기서 처음으로 헨리가 해밀턴의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점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수수께끼를 풀어주게."

"아직 어떻게 할까 헤매고 있네만,"

바커가 말했다.

"딱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네. 해밀턴의 아버지는 와인에 대해 정통했지만, 아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네."

그때 가게 주인이 바커 옆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나는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달라고 재촉하고 있었을 것이다.

"근사한 식사였소,"

바커가 말했다.

"와인도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소."

"부끄럽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계산서를 건네면서 말했다. 나는 호기심 때문에 계산서를 훔쳐보았다.

그리고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산서의 금액은 2백 파운드였다.

의외로 바커는 "비교적 싸군."이라는 한 마디 감상을 말했을 뿐이었다. 그는 수표를 써서 주인에게 건네면서 덧붙였다.

"샤트 디켐, 1980년산을 마신 것은 오늘이 두 번째였고, 테일러 1927년산은 처음이오."

주인은 미소를 띠었다.

"분명히 둘 다 마음에 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귀한 것을 사기꾼이 마시게 하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하시겠지요."

바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주인이 계산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수표를 집사에게 건넨다. 집사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고 나서 빙그레 웃고 잘게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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