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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누에고치

Bollnow 2024. 4. 13. 10:59

붉은 누에고치

아베고보

 

날이 저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둘러 보금자리를 찾아가지만, 내겐 돌아갈 집이 없다. 거리에 이렇게 많은 집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데 내 집이 한 채도 없는 건 왜일까? .... 하고 수없이 되새긴 의문을 다시 되풀이하면서 나는 집들 사이의 좁은 틈바구니를 천천히 걷고 있다.

전봇대에 기대어 소변을 보는데, 그곳에 마침 새끼줄 자투리가 떨어져 있어서 난 목을 매고 싶어졌다. 새끼줄은 곁눈치로 내 목을 노려보면서, 형제여, 내 안에서 쉬거라 하고 손짓했다. 정말 나도 쉬고 싶다. 하지만 쉴 수가 없다. 난 새끼줄과 형제가 아니며, 게다가 아직 왜 내 집이 없는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밤은 매일 찾아온다. 밤이 오면 쉬어야만 한다. 쉬기 위해서는 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내 집이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난 뭔가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집이 없는 게 아니라 단순히 잊어버리고 만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예를 들면.... 말야. 우연히 지나는 길에 어느 한 집 앞에서 발을 멈추고, 이게 내 집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집과 비교해서 특별히 그럴만한 가능성을 암시하는 특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건 어느 집에 대해서나 마찬가지이며, 또 그것은 내 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아무런 증거도 될 수 없다. 용기를 내어 자, 문을 두들겨 보자.

다행히도 반쯤 열린 창으로 친절해 보이는 여자가 내다보며 웃었다. 희망의 기운이 심장 가까이 스며들어, 내 심장은 평평하게 넓어져서 깃발이 되어 펄럭이고 있다. 나도 웃으며 신사답게 인사를 했다.

"잠깐 말씀 좀 여쭙겠는데요. 여기가 제 집이 아닌가요?"

여자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어머, 댁은 누구신가요?"

난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그만 말문이 막혔다. 뭐라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누구라는 것이 지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그녀에게 어떻게 납득시켜야만 할까? 난 다소 자포자기적인 기분으로,

"어쨌든 여기가 제집이 아니라면, 그걸 증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머나..."

그녀의 얼굴이 겁에 질렸다. 그게 내 신경을 건드린다.

"증거가 없다면, 제 집이라고 생각해도 괜찮겠군요."

"하지만 여긴 내 집이에요."

"그게 어쨌다는 건가요? 당신 집이라고 해서 내 집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죠!"

대답 대신 여자의 얼굴이 벽으로 변하여 창문을 가로막았다. 누군가의 소유라는 것은 길. 난 계속 걷고 있다. 내 집이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목을 맬 수도 없다.

이게 누구야 내 발에 휘감기는 게? 목을 맬 새끼줄이라면 그리 성급하게 굴지 말아. 그렇게 보채지 말아. 아니 그게 아닌데. 이건 탄력 있는 명주실이군. 집어 당겨보니 그 끄트머리가 구두의 해진 틈 속에서 끊임없이 주르르 풀려나온다. 이건 참 묘하다는 생각에 이끌려 끌어당기자 더욱 기묘한 일이 생겼다. 점차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더 이상 지면과 직각으로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지축이 기울고 인력의 방향이 바뀐 것일까?

탁 소리를 내며 구두가 발에서 벗겨져 지면에 떨어지자 난 사태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축이 뒤흔들린 게 아니라 내 한쪽 발이 짧아진 것이었다. 실을 잡아당김에 따라 내 발이 점점 짧아져 가고 있었다. 닳아 떨어진 윗저고리 팔꿈치가 터지듯이 내 발이 풀려나가고 있다. 그 실은 수세미 섬유처럼 분해된 내 발이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한걸음도 걸을 수가 없다. 망연자실하여 내내 서 있자, 이번에는 손안에서 명주시로 변형된 발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르르 기어 나와서는 전혀 내손을 빌리지도 않고 저절로 풀려나가 뱀처럼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왼쪽 발이 전부 풀려버리자 실은 자연히 오른쪽 발로 옮겨졌다. 실은 이윽고 내 전신을 봉지처럼 감쌌지만 그래도 여전히 풀려 허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어깨로 차례로 풀려나가, 풀어진 실은 봉지 안쪽에서부터 단단히 굳혀져 갔다. 그리고 끝내 난 소멸했다.

거기엔 커다란 텅 빈 누에고치만이 남았다.

아아, 이제서야 쉴 수가 있다. 석양이 누에고치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이것만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내 집이다. 하지만 집이 생겼어도 이번엔 돌아갈 내가 없다.

누에고치 안에서 시간이 멈춰졌다. 밖은 어두워졌지만, 누에고치 안은 언제나 황혼으로 안쪽에서 비춰지는 저녁 노을색으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 두드러진 특징이 그의 눈에 띄지 않을리가 없었다. 그는 누에고치가 된 나를 철로 건널목과 레일 사이에서 발견했다. 처음엔 화를 냈지만, 곧 신기한 물건을 주웠다고 생각했는지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잠시 그 안에서 데굴데굴 구른 후, 그의 아들 장난감 상자 속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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