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We Can Remember For You Wholesale)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We Can Remember For You Wholesale)
Philip K. Dick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성을 원했다. 그 계곡. 그 계곡을 걸어 다니면 어떤 기분이 들까? 대단하고 또 대단할 거야. 그가 점차 의식을 찾아감에 따라 그 꿈도 커져만 갔다. 꿈과 그 갈망 모두. 그는 자신을 감싸는 다른 세계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직 정부 요원이나 고위 관료들만이 본 적 있는 그 세계를. 그와 같은 평범한 사무원이라면?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일어날 거예요, 말 거예요?” 그의 아내 커스틴이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와 같이 뿌루퉁한 목소리였다. “일어날 생각이면 망할 스토브 위에 있는 뜨거운 커피 버튼 좀 눌러줘요.”
“알았어.” 더글러스 퀘일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맨발로 침대에서 복합아파트 부엌까지 걸어갔다. 성실하게 뜨거운 커피 버튼을 누른 다음, 그는 식탁에 앉아 딘 스위프트 코담배가 들어있는 금속 용기를 꺼냈다. 기분 좋게 코담배 냄새를 들이마시자 보내시 혼합물이 그의 코를 쏘고 입천장을 아리게 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들이마셨다. 이 냄새를 맡으며 잠이 깰 뿐 아니라, 그의 꿈이, 밤 동안의 욕망과 무작위적인 소원들이 이성적인 바람의 형태를 이루기 때문이었다.
갈 거야. 나는 죽기 전에 화성에 가겠어. 그는 생각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꿈을 꾸는 그 자신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의 햇살이, 아내가 침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상의 소리가, 모든 것이 그가 누구인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한심한 저임금 사무직일 뿐이지. 그는 씁쓸하게 속으로 생각했다. 커스틴은 최소한 하루에 한 번씩 이 사실을 상기시켜주었고, 그는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다. 남편을 꿈에서 깨워 다시 지상으로 데려오는 것이야말로 아내의 역할이니까. 지구로 끌고 내려온다, 이 말이지.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이 경우에 딱 맞는 재치 있는 표현이었다.
“뭘 그렇게 실실대요?” 아내가 당당하게 부엌으로 쳐들어오며 말했다. 긴 핑크색 가운이 그녀 뒤로 끌리고 있었다. “분명 또 꿈이겠죠. 당신은 언제나 꿈 생각뿐이니까.”
“맞아.”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부엌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공중 부양 차량과 공중 차로, 그리고 힘차게 일터로 달려가는 바쁜 사람들도 가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저 안으로 합류하게 될 것이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분명 다른 여자를 꿈꾼 거겠죠.” 아내는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냐. 신에 대한 생각이야. 전쟁의 신. 멋진 크레이터가 있고, 그 표면 아래에는 온갖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신 말이야.”
“여보, 잘 들어요.” 커스틴은 그의 아래에 쪼그려 앉아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고약한 장난기가 가셔있었다. “대양의 밑바닥, 우리 행성의 바닷속이야말로 그보다 훨씬 더, 무한히 더 아름다워요. 당신도 그 사실을 알잖아요. 모두가 알고 있어요.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서, 같이 인조 아가미 옷을 빌려 입고, 일 년 내내 열려있다는 그 수중 리조트에 가서 시간을 보내봐요. 거기다 추가로―”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듣고 있지도 않군요. 좀 들어봐요. 여기 당신의 그 이상한 화성에 대한 집착보다, 말도 안 되는 충동보다 훨씬 나은 것이 있다니까요. 그런데 당신은 내 말을 듣지도 않죠!” 그녀의 목소리는 찌를 듯이 높아졌다. “하느님 맙소사, 당신은 끝장이에요. 더그! 당신 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래요?”
“출근을 해야겠지. 그렇게 될 운명인 거야.” 그는 식사도 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내는 그를 흘겨보았다. “갈수록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고요. 매일 갈수록 더 광적이 되잖아요. 그러다가 어떻게 될지 알아요?”
“화성에 가겠지.”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옷장 문을 열고 직장에 입고 갈 깨끗한 셔츠를 찾기 시작했다.
택시에서 내린 더글러스 퀘일은 사람이 꽉 들어찬 인공 보도 세 개를 천천히 건너 현대적이고 멋진 형상의 유혹적인 출입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늦은 아침의 교통을 막으며 잠시 멈춰 서서는 계속 색깔이 변하는 네온사인을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도 이 간판을 자세히 살펴보곤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 와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그는 뭔가 다른 일을 시도하려 하고 있었다. 지금이든 나중이든 언젠가는 반드시 하게 될 일을.
리콜 주식회사(Rekal. Incorporated)
이것이 해답이 될 수 있을까? 환상은 아무리 설득력 있는 것이라도 그저 환상일 뿐이었다. 최소한 객관적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주관적으로 본다면― 완전히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쨌든 그는 오늘 예약을 잡아 놓았었다. 오 분 후였다.
그는 약한 스모그 기운이 있는 시카고의 공기를 들이마신 다음, 정신없이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입구를 지나 접수처 앞까지 걸어갔다.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깔끔한 옷차림의 금발 아가씨가 쾌활하게 인사를 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퀘일 씨.”
“예. 레칼 코스에 대해 문의하러 왔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요.”
“레칼이 아니라 리콜입니다.” 접수원이 그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그녀는 매끈한 팔꿈치 옆에 있는 수화기를 집어 들고는 거기에 대고 말했다. “더글러스 퀘일 씨가 오셨습니다, 매클래인 씨. 들어가시라고 할까요? 너무 이른가요?”
“읨 아음 웜 엄 웜.” 전화기에서 웅얼대는 소리가 났다.
“알겠습니다. 퀘일 씨,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매클래인 씨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가 머뭇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접수원이 뒤에서 외쳤다. “D호실입니다, 퀘일 씨. 오른쪽을 보시면 됩니다.”
길을 잃어버려 헤매며 짧지만 당황스러운 시간을 보낸 후, 퀘일은 원하던 방을 찾아냈다. 문은 열려있었고, 방 안에는 커다란 진품 호두나무 책상 앞에 온화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최신 유행의 화성 개구리 가죽 정장을 입고 앉아있었다. 그의 복장만 딱 보고도, 퀘일은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앉아요, 더글러스.” 매클레인은 그를 부르며 책상 앞에 놓인 의자를 향해 통통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니까, 화성에 다녀오고 싶다는 거지요. 아주 좋아요.”
퀘일은 긴장한 채 자리에 앉았다. “이 비용을 낼 값어치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돈은 엄청나게 많이 드는데, 제가 실제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거의 실제로 화성에 갔다 오는 것만큼이나 비용이 많이 든다고, 그는 생각했다.
“선생이 여행을 다녀왔다는 확실한 증거를 얻게 되지요.” 매클레인은 단호하게 그의 말에 반대를 표했다. “필요한 모든 증거를 얻게 됩니다. 자, 보여드리죠.” 그는 자신의 훌륭한 책상 서랍을 열고는, 서류철을 뒤적여 돋을새김이 들어간 마분지 조각을 꺼내며 말했다. “우주선 표 조각입니다. 화성에 갔다 왔다는 증명이 되지요. 엽서도 있습니다.” 그는 네 장의 3D 총천연색 엽서를 꺼내어 퀘일이 볼 수 있도록 책상 위에 늘어놓았다. “사진도 있지요. 카메라를 빌려서 찍은 화성의 풍경 사진도 있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퀘일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선생이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200포스크레드어치의 기념품도 있습니다. 이건 다음 달 안에 화성에서 도착하지요. 그리고 여권에는 화성에 다녀오느라 맞은 예방 접종 증명서가 찍히게 됩니다. 게다가.” 그는 날카롭게 퀘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엇보다 선생 본인이 화성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나도, 우리 회사도, 이곳에 왔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선생 마음속에서는 실제 여행과 같은 거예요. 그건 확실하게 보증하죠. 2주일 어치의 리콜입니다. 아주 사소한 세부사항까지 전부 들어가 있죠. 이걸 기억하세요. 만약 선생이 실제로 화성에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전액을 환불해 드립니다. 아시겠어요?”
“하지만 제가 실제로 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온갖 증거를 공급해준다 해도, 제가 그곳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요. 게다가 저는 인터플랜 사의 비밀 요원도 아닙니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리콜 상사에서 사실적인 기억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오기야 했지만 말이다.
“퀘일 씨. 우리 회사에 쓴 편지에서 말하기를, 실제로 화성에 가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아주 약간의 가능성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쓰셨지요? 금액도 부담할 수 없고, 다른 무엇보다 인터플랜이나 다른 조직의 비밀 요원이 될 만한 사람도 아니니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선생의 에헴, 평생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내 말이 맞지 않나요, 선생?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없고, 화성에 갈 수 없지요. 하지만 과거에 그런 사람이었고, 화성에 다녀온 사람은 될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보증하지요. 그리고 이건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부대 비용은 전혀 없지요.” 그는 퀘일을 향해 격려하듯 웃어 보였다.
“그 추가 현실성 기억이라는 것이 그 정도로 믿을 만합니까?” 퀘일이 물었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죠. 선생이 만약 인터플랜 사의 요원으로 화성에 다녀왔다면, 지금쯤 상당히 많은 것을 잊어버렸을 겁니다. 우리가 진짜 기억을 연구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기억조차도 빠른 속도로 세부사항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하더군요. 영원히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워낙 깊은 곳에 기억을 심기 때문에 조금도 잊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잠든 동안 공급되는 기억은 화성에서 몇 년 동안 살았던 우리 측의 전문가들이 만든 내용이죠. 어떤 경우든 우리는 이오타 한 개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씁니다. 게다가 비교적 쉬운 가상현실을 선택하셨지 않습니까. 만약 명왕성을 선택했거나 내행성 연방의 황제가 되고 싶다고 하셨다면, 우리 측의 난이도도 올라갔을 테고 비용도 그에 맞춰 상당히 상승했을 겁니다.”
퀘일은 손을 뻗어 지갑을 꺼내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제 평생의 꿈인 데다 실제로는 실행에 옮길 가능성도 없으니까요. 이걸로 만족해야겠지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매클레인은 강경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받아들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애매모호 하고 누락 된 내용도 있고, 심심하면 생략되고 왜곡도 되는 진짜 기억― 그것들이 바로 차선책인 겁니다.” 그는 돈을 받고는 책상의 버튼을 눌렀다. “자, 퀘일 씨.” 그가 이렇게 말함과 동시에, 덩치 좋은 남자 두 명이 그의 사무실 안으로 신속하게 들어왔다. “선생은 지금 비밀 요원이 되어 화성으로 향하기 직전입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땀으로 축축한 퀘일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아니, 향한 후 다시 돌아오기 직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오늘 오후 4시 30분에, 선생은 여기 테라로 돌아오시게 될 겁니다. 택시가 선생을 아파트로 모셔다드릴 것이고, 선생은 저를 만나거나 이곳에 왔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시게 될 겁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존재를 들었다는 기억조차도 하지 못하시게 되겠지요.”
퀘일의 입은 긴장으로 바싹 말라붙었다. 그는 두 명의 기술자를 따라 사무실을 나갔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이 기술자들에게 달려 있었다.
내가 실제로 화성에 다녀왔다고 믿게 될까? 내가 평생의 소원을 실현했다고? 그는 무언가가 잘못될 것만 같다는 직관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될는지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직접 기다려서 파악해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였다.
매클레인의 책상에 있는 통신기가 울렸다. 이 회사의 작업 공간과 연결해주는 통신기였다. 목소리 하나가 그를 향해 말했다. “퀘일 씨의 마취가 끝났습니다. 직접 감독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그냥 진행할까요?”
“늘 하던 작업 아닌가. 자네가 직접 알아서 하게, 로웨. 별문제 없을 걸세.” 다른 행성에 여행을 다녀오는 인공 기억은 ―비밀 요원으로서 다녀오는 것이든, 그게 아니든 간에― 이 회사에서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게 되는 작업이었다. 한 달에 스무 건은 처리하는 것 같다니까. 이 행성 간 여행 대용품이야말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고 있어.
“말씀대로 하지요, 매클레인 씨.” 로웨는 이렇게 말하고는 통신기를 내렸다.
매클레인은 그의 사무실 뒤에 있는 저장실로 가서 3번 꾸러미 ‘화성으로의 여행’과 62번 꾸러미 ‘인터플랜 비밀 요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두 개의 꾸러미를 꺼내 들고 책상으로 돌아와서, 자리에 편하게 앉아 그 꾸러미의 내용물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실험실 기술자들이 열심히 가짜 기억을 심는 동안 퀘일의 아파트에 숨겨놓을 물건들이었다.
1포스크레드를 지불하고 암거래로 구입한 보조 화기. 매클레인은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물건이지. 비용도 제일 많이 드는 물건이고. 그다음은 콩알 크기의 송신기였다. 요원이 사로잡힐 경우에는 삼켜버릴 수 있는 물건이었다. 실제 물건과 놀랄 정도로 비슷한 암호책……. 이 회사의 물건들은 상당히 정교했다. 가능한 한도 내에서 실제 미군 제식 물품을 기본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외에 별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물건이지만, 퀘일의 상상 속 여행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그의 기억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증거품이 되는 물건들도 있었다. 오래된 50센트짜리 은화 한 개, 존 단의 설교를 잘못 인용한 구절이 적혀있는, 티슈 두께의 반투명한 종이쪽, 화성의 술집에서 가져온 종이 성냥갑, 화성 돔 국영 집단농장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 숟가락, 도청용 코일―
인터콤이 울렸다. “매클레인 씨, 신경 쓰시게 해서 죄송합니다만 조금 안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일단 오셔서 보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퀘일 씨에게 진정제를 투여했는데 말입니다, 나르키드린이 효과를 보기는 했어요. 완벽하게 의식을 잃고 수용 상태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곧 가겠네.” 매클레인은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즉시 사무실을 떠났다. 잠시 후, 그는 작업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더글러스 퀘일은 위생 침대 위에 누워서 천천히, 고르게 숨을 쉬고 있었다. 눈은 감은 상태였다. 주변에 서 있는 기술자 두 명과 방금 들어온 매클레인을 간신히, 희미하게 인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거짓 기억 패턴을 삽입할 공간이 없는 건가?” 매클레인은 짜증이 났다. “그냥 업무 시간 중에서 2주 어치를 빼면 되는 일 아닌가. 서부 이민국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는 모양인데, 공기업이니 분명 이 친구도 작년에 2주 휴가를 갔을 테고. 그 자리에 대신 집어넣으면 되겠군.” 이런 사소한 문제는 언제나 그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었다.
“지금 문제는 좀 다른 겁니다.” 로웨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는 침대 위로 몸을 굽히고는 퀘일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에게 했던 이야기를 매클레인 씨께 다시 좀 해드리게.” 그리고 그는 매클레인에게 말했다. “잘 들어보십시오.”
침대에 무력하게 누워있던 남자의 녹회색 눈이 매클레인의 얼굴을 향했다. 눈빛이 매서워졌는데, 라고 매클레인은 생각했다. 잘 연마된 준보석 같은 무기물의 느낌이 나는 눈빛이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이었다. 광택이 너무 차가웠다. “또 뭘 원하는 거지?” 퀘일은 날카롭게 말했다. “이미 내 위장을 벗겨냈지 않나. 당장 꺼지지 않으면 네놈들 전부 박살 내주겠어.” 그는 매클레인을 관찰하며 덧붙였다. “특히 당신. 당신이 이 대응 작전의 책임자인 모양인데.”
로웨가 물었다. “화성에 얼마나 오래 있었지?”
“한 달이다.” 퀘일이 불쾌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곳에 간 목적은?” 로웨가 다시 물었다.
퀘일의 얇은 입술이 비틀렸다. 그는 로웨를 바라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자, 적개심이 묻어 흐르는 목소리가 천천히 새어 나왔다. “인터플랜 요원이다. 이미 네놈들한테 전부 말했듯이 말이야. 내가 말하는 걸 전부 기록하고 있지 않나? 나를 귀찮게 하지 말고 네놈들 대장한테는 녹화한 내용이나 보여주면 될 것 아닌가.” 그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강렬한 눈빛도 사라졌다. 매클레인은 순간 안도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로웨는 조용히 말했다. “강인한 남자입니다, 매클레인 씨.”
“우리가 다시 저 기억 연쇄를 잊도록 만들면 그렇지도 않을 걸세. 예전처럼 다시 양순한 사람이 될 거야.” 매클레인은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퀘일을 보고 말했다. “이래서 당신이 그렇게 열렬히 화성에 가고 싶어 했던 게로군.”
퀘일은 다시 눈을 뜨지 않고 말했다. “화성에 가고 싶어 했던 적은 없다. 임무였을 뿐이지. 임무를 받은 이상 그것을 수행해야 했으니까. 아, 그래, 호기심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누구라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겠나?” 그는 다시 눈을 뜨고 자기 앞의 세 사람을, 그중에서도 특히 매클레인을 유심히 관찰했다. “대단한 약을 가지고 계시더군.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던 일을 떠올리게 해줬어.” 그리고 그는 생각에 잠겼다. “커스틴은 어떻게 된 걸까.” 그는 반쯤 혼잣말로 뇌까렸다. “이 음모의 일부분인가? 나를 감시하기 위해 보낸 인터플랜의 접선책이었던 걸까……. 내가 기억을 되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화성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을 비웃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군.” 그는 희미하게 모든 것을 이해한 자의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곧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매클레인은 그를 보고 말했다. “부디 내 말을 믿어주시오, 퀘일 씨. 우리는 우연히 이 사태에 말려든 것뿐이오. 우리 회사에서 하는 일이 원래―”
“당신 말은 믿겠소.” 퀘일이 말했다. 그는 이제 지쳐 보였다. 약물이 계속해서 그의 의식을 흐리게 만들고, 무의식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어디 있었다고 했더라? 화성이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아― 화성을 보고 싶다는 것은 알겠는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나는 사무원일 뿐인걸. 아무것도 아닌 사무원.”
로웨는 몸을 일으키며 그의 상급자를 보고 말했다. “이 사람은 지금 실제로 한 여행에 상응하는 거짓 기억을 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 이유인 거짓 이유도 말이죠.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나르키드린에 완전히 전 상태니까요. 그 여행이 아주 선명하게 생각나는 모양입니다. 최소한 진정제를 맞은 상태에서는 말이죠. 하지만 그런 상태가 아니면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 같군요. 누군가가 아마도 정부의 군사과학 연구소에서 표층 의식의 기억을 지워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화성에 가는 일이나 비밀 요원이 되는 일이 그에게 뭔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뿐이지요. 그것까지 지울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 것들은 기억이 아니라 욕망이니까요. 애초에 그가 그 임무에 자원하게 만들었던 욕망과 같은 종류겠죠.”
킬러라는 이름의 다른 기술자가 매클레인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진짜 기억 위에 가짜 기억을 덧붙여볼까요?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진짜 여행의 일부를 기억해낼 수도 있고, 혼란을 불러와 정신병적인 간극이 생겨버릴지도 모르지요. 자기 머릿속에 두 가지의 상반된 전제를 동시에 가지게 되는 겁니다. 자신이 화성에 갔었다는 기억과 간 적이 없다는 기억을 말이죠. 자기가 인터플랜의 요원이라는 기억과 그 요원 놀음이 전부 거짓이라는 기억을 가지게 될 겁니다. 저는 이 친구에게 가짜 기억을 전혀 심지 않고 의식이 돌아오게 하는 쪽이 나으리라 봅니다. 이건 민감한 문제예요.”
“나도 동의하네.” 매클레인이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친구가 진정제 효과에서 벗어나면 뭘 기억하게 될지 예측할 수 있겠나?”
로웨가 말했다. “예측하기 힘듭니다. 아마도 이제는 실제 여행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남아있겠죠. 그리고 그 여행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 상당히 의심하게 될 거고요. 아마 우리 프로그램에서 톱니바퀴가 하나 빠졌나보다라고 결론을 내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여기 왔던 일도 기억해내겠죠. 그건 지워지지 않았으니까요― 지우라고 하시며 지우겠습니다만.”
“이 친구는 건드리지 않을수록 좋아. 우리가 함부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네. 자기가 진짜 인터플랜 요원인 줄도 모르고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위장하고 있는 스파이를 하나 끄집어낸 셈이니, 멍청한 짓은 충분히 했네. 아니,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하나.” 자신을 더글러스 퀘일이라 칭하는 이 남자와는, 최대한 빨리 관계를 끊는 편이 이득이었다.
“3번과 62번 꾸러미를 이 사람 아파트에 가져다 놓으실 겁니까?” 로웨가 물었다.
“아니. 그리고 대금의 절반을 환불할 생각일세.”
“절반이라! 왜 절반입니까?”
매클레인은 어설프게 변명했다. “그 정도면 괜찮은 절충안이잖는가.”
택시를 타고 시카고 끄트머리의 주거 지역에 있는 자기 아파트로 돌아가면서, 퀘일은 속으로 생각했다. 테라에 돌아오니 참 좋군.
화성에서 보낸 한 달간의 기억은 벌써 희미해져 갔다. 이제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커다랗게 입을 벌린 크레이터의 모습, 고대부터 천천히 마모되다가 다시 살아 움직이는 구릉지대의 모습 정도였다.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는 먼지뿐인 세계, 산소통에 남은 산소 잔량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화성의 생물이 있었다. 평범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회갈색의 선인장과 아귀벌레들.
사실 그는 다 죽어가는 화성의 동물들을 채집해 왔다. 세관에 걸리지 않고 몰래 들여온 것이다. 어차피 위험할 일은 별로 없었다. 이런 동물들은 지구의 무거운 대기 아래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
그는 화성 아귀벌레가 든 상자를 찾으려 외투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상자 대신 편지봉투를 하나 찾았다.
봉투를 열어보니, 안에는 당황스럽게도 570포스크레드의 금액이, 소액 화폐로 들어있었다.
내가 이걸 어디서 받은 거지? 그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가진 돈은 여행 중에 전부 써버렸는데?
돈과 함께 있던 종이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대금 절반 환불. 매클레인.” 그리고 날짜가, 오늘의 날짜가 있었다.
“리콜이군.”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뭘 떠올리라는 말씀이십니까, 신사 또는 숙녀분?”1) 택시의 로봇 기사가 정중하게 물었다.
“전화번호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신사 또는 숙녀분.” 한쪽 공간이 열리며, 쿡 카운티 지역의 마이크로테이프 전화번호부가 나왔다.
“뭔가 철자가 이상했어.” 퀘일은 이렇게 말하며 사업체 부분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공포를,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공포를 느꼈다. 그는 운전사 로봇을 보고 말했다. “여기 있군. 이리 데려다주십시오. 생각을 바꿨습니다. 집으로는 안 갑니다.”
“알겠습니다, 신사 또는 숙녀분.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로봇 기사가 말했다. 잠시 후, 택시는 지금까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전화 좀 써도 됩니까?”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로봇 기사는 이렇게 말하며, 커다란 최신식 3D 컬로 전화를 그에게 건넸다.
그는 자기 아파트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기다리자, 작지만 놀라울 정도로 현실감 있는 커스틴의 모습이 작은 화면에 떠올랐다. 그는 그녀를 보고 말했다. “화성에 갔다 왔어.”
“술 마셨군요. 아니면 더 심한 걸 했거나.” 그녀의 입술이 비웃는 것처럼 뒤틀렸다.
“신께 맹세코 정말이야.”
“언제요?”
“나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모의 여행이었던 것 같아. 그 인공인지 확장 현실인지 하는 기억을 집어 넣어주는 장치를 써서 하는 거 말이야. 실제로 갔다 온 건 아니고.”
“술 취한 거 맞군요.” 커스틴은 별 감흥 없이 이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기를 내려놓는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언제나 똑같은 말투야. 언제나 저렇게 비꼬기만 하지. 자기는 뭐든 알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끝내주는 결혼이라니까. 하느님 맙소사. 그는 참담한 기분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잠시 후, 택시는 현대적이고 아주 매력적인 분홍색 건물 앞에 멈췄다. 건물 위에는 계속해서 색깔이 변하는 네온사인 간판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리콜 주식회사’
허리 위로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고상한 차림새의 접수원은, 그를 보고 순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솜씨 좋게 자신을 추슬러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퀘일 씨. 자, 잘 지내셨어요? 뭔가 놓고 가신 물건이 있나요?”
“요금을 마저 환불받으러 왔습니다.” 그가 말했다.
접수원은 그사이 조금 더 평상심을 회복했다. “요금이라니요?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네요, 퀘일 씨. 확장 현실 여행이 가능한지 문의하러 오셨었는데요, 제가 알고 있기로는 실제로 여행을 하지는 않으셨어요.” 접수원은 희고 매끄러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저는 전부 기억합니다, 아가씨. 이 모든 일이 시작되게 만든, 제가 처음에 리콜 주식회사에 보냈던 편지부터 말입니다. 여기 와서 매클레인 씨와 만났던 것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서 기술자 두 명이 저를 데려가서는 약물을 투여해 의식을 잃게 만들었었죠.” 회사에서 요금의 절반을 돌려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화성 여행’을 한 기억이 제대로 주입되지 않았던 것이다. 최소한 그들이 말했던 것처럼 완벽하게 되지는 않은 것이 분명했다.
“퀘일 씨, 선생님은 평범한 사무원이시지만 꽤 잘생기신 분이고, 화를 내시면 그 멋진 얼굴이 망가져요. 기분이 좀 나아지실 것 같다면, 음, 시간을 내드릴 생각도 있는데…….”
그는 이제 화가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당신도 기억한단 말입니다. 당신 가슴이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던 것, 그건 기억에 남아있어요. 그리고 매클레인 씨가 내가 리콜 사를 방문했던 사실을 기억해내면 전액 환불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도 기억합니다. 매클레인 씨는 어디 있습니까?”
잠시 후, 아마도 그들이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시간을 끈 이후에 그는 다시 한번 훌륭한 호두나무 책상 앞에 앉게 되었다. 바로 그날 한 시간쯤 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기술이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퀘일이 비꼬듯 말했다. 이제 그의 실망과 혐오감은 폭발 직전이었다. “말씀하신 인터플랜 요원으로 화성을 여행한 소위 ‘기억’이라는 건 애매모호한 데다 여기저기 모순투성이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당신네 사원들과 대화했던 내용도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이 건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가져가야겠습니다.” 이제 그는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어서, 다른 사람과 싸우는 일은 피하려 하는 평소의 습관 따위는 저만치 날아간 지 오래였다.
매클레인은 비참하면서도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인정하겠소, 퀘일 씨. 남은 대금은 전부 환불해드리지. 우리가 당신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겠소.” 그는 체념한 말투였다.
퀘일은 그를 보며 따지듯 말했다. “내가 화성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수 있다고 했던 물건도 전혀 주지 않았죠. 당신이 그렇게 춤추고 노래하며 광고해댄 것들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단 말입니다. 우주선 표 조각조차도. 우편엽서도 여권도 없죠. 예방주사 확인 증명서도 없지 않습니까. 또―”
“진정해봐요, 퀘일.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아니, 관둡시다.” 매클레인은 도중에 말을 멈추고, 인터콤 버튼을 눌렀다. “셜리, 570포스크레드를 더글러스 퀘일 앞으로 발행하는 자기앞수표 형태로 좀 가져다주겠나? 고맙네.” 그는 버튼에서 손을 떼고는 퀘일을 노려보았다.
수표는 즉시 도착했다. 접수원은 수표를 매클레인 앞에 내려놓고는 즉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고, 사무실에는 여전히 육중한 호두나무 책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만 남았다.
“충고 한가지 하겠소.” 매클레인은 수표에 서명하여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절대로 당신의, 에헴, 최근 있었던 화성 여행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마시오.”
“무슨 여행 말입니까?”
“뭐, 바로 그 자세요.” 매클레인은 완고한 자세로 말했다. “당신이 부분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 여행 말이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양 행동하시오.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내 충고를 받아들여요. 우리 모두에게 그편이 더 나을 거요.” 그는 진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자, 그럼 퀘일 씨, 다른 사업 문제도 있고, 다른 고객분들도 기다리고 계시니 이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퀘일을 문 쪽으로 안내했다.
퀘일은 문을 열면서 말했다. “이렇게 한심하게 일을 처리하는 회사는 고객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는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퀘일은 공정거래위원회 테라 지부에 보낼 항의 편지의 내용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타자기 앞에 앉기만 하면 즉시 시작할 것이었다. 다른 고객들이 리콜 주식회사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분명 그의 의무였다.
아파트로 돌아온 그는 헤르메스 로켓 휴대용 타자기 앞에 앉은 채로 카본지를 찾아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순간 어딘지 친숙한 작은 상자가 눈에 띄었다. 화성에서 잡은 동물들을 담아서 세관을 무사히 빠져나왔던 바로 그 상자였다.
상자를 열어보니 믿을 수 없게도 여섯 마리의 죽은 아귀벌레와 화성벌레가 먹는 여러 종류의 단세포 생물이 들어있었다. 미생물들은 말라버린 데다 먼지가 앉아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크고 검은 외계의 바위를 뒤집어 이놈들을 찾는 데 하루 종일 걸렸던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겁고 보람찬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화성에 갔던 적이 없잖아.
하지만 이걸 보면―
갈색 봉투에 담긴 식료품을 한 아름 든 채로, 커스틴이 문가에 모습을 보였다. “왜 대낮에 집에 와있는 거예요?” 언제나 똑같은 그녀의 목소리에는 비난이 실려있었다. 그는 아내를 보고 물었다.
“내가 화성에 갔었나? 당신은 알겠지.”
“아뇨, 당연히 안 갔죠. 당신이 더 잘 알 거 아녜요. 언제나 거기 가겠다고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지 않았어요?”
“세상에, 아무래도 정말로 갔다 왔던 것 같아. 그리고 동시에 가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쪽인지 선택해요.”
“어떻게 선택을 해? 양쪽 기억이 전부 내 머릿속에 새겨져 있는데, 하나는 진짜고 하나는 가짠데도 어느 게 진짜인지 알 방법이 없단 말이야. 당신 기억에 의존해도 되잖아? 당신 머리까지 손대지는 않았을 거 아냐.” 최소한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을 터였다―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소한 이 정도는.
커스틴은 감정을 억누른 목소리로, 평온하게 말했다. “더그. 당신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끝이에요. 난 떠날 거라고요.”
“나한테 문제가 생겼다고. 어쩌면 정신이상을 겪게 될지도 몰라. 아니수도 있겠지만―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고. 정신이상이라면 모든 일이 설명될 테니까.” 이제 그의 목소리는 쉬고 갈라져 있었다.
커스틴은 식료품 봉투를 내려놓고는 옷장 쪽으로 걸어갔다. “농담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조용히 말하고는, 외투를 꺼내 입고 아파트 문 쪽으로 돌아가며 억양 없는 말투로 말했다.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요. 이건 이별 인사예요, 더그. 당신이 이 상황을 이겨내길 바랄게요. 정말로 그러길 기도하죠. 당신을 위해서요.”
“기다려, 확실하게 얘기는 해줘. 내가 갔는지, 가지 않았는지― 어느 게 진실인지 말이야.” 하지만 그들이 당신 기억까지 바꿔놓았을 수도 있겠군, 이라고 그는 순간 생각했다.
문이 닫혔다. 아내가 떠난 것이다. 마침내!
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자, 그건 됐고. 이제 손을 드시지, 퀘일. 그리고 몸을 돌려서 이쪽을 봐주실까.”
퀘일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지 않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는 인터플랜 보안 경비대의 보라색 제복을 입고, UN 제식 총기로 보이는 총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다. 명확하게 딱 짚어 말할 수 없는, 무언가 흐릿하고 왜곡된 느낌이 드는 익숙함이었다. 그래서 그는 엉거주춤하게 양손을 들었다.
“자네는 화성 여행에 대해 기억해냈지. 우리는 오늘 자네가 한 행동과 자네 생각을 전부 알고 있어. 특히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리콜 주식회사에서 집으로 올 때 했던 생각에 대해서 말이야. 자네 두개골 속에 원격 송신기가 들어있거든. 그걸로 계속해서 정보를 들었던 거지.”
원격 송신기는 루나에서 발견된 플라즈마 생명체를 사용한 도구였다. 퀘일은 혐오감에 몸을 떨었다. 그 생물은 그의 두뇌 안에 살면서, 계속 내용물을 먹어치우며 그의 생각을 들어왔을 터였다. 인터플랜에서는 이 생물을 사용했다. 심지어는 방송에서 보도한 적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끔찍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은 사실인 것으로 보였다.
“왜 납니까?” 퀘일이 목쉰 소리로 물었다. 그가 대체 무엇을 하거나 생각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 일이 대체 리콜 주식회사와는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리콜 주식회사와는 아무 관련 없는 일이야. 자네와 우리 사이의 일이지. 나는 아직 자네 머릿속 송신기로부터 자네 정신 활동을 전부 전송받고 있다고.” 보안 요원은 자기 오른쪽 귀를 툭툭 쳐 보였다. 하얀색 플러그가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니 경고를 해야겠군. 자네가 생각하는 내용은 자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이야. 어차피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지. 자네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떠들고 다녔거든. 가장 골치 아픈 일은, 자네가 나르키드린을 맞은 상태로 리콜 주식회사 사람들에게 자네 여행에 대해 죄다 이야기해 버렸다는 거야. 기술자 두 명과 그 회사 사장 매클레인 씨를 상대로 말이지. 자네가 간 장소, 의뢰한 사람, 그곳에서 한 행동의 일부까지 전부 불어버렸거든. 그 사람들은 상당히 겁을 먹었어. 자네하고 눈을 마주친 것 자체를 후회하고 있겠지. 올바른 판단이야.”
퀘일은 입을 열었다. “나는 여행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건 전부 매클레인의 기술자들이 엉망으로 심어놓은 가짜 연쇄 기억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책상 서랍 속에 있는 화성 생물이 든 상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동물들을 채집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도. 그 기억은 진실 같았다. 그리고 화성 생물이 든 상자, 그것은 분명 진짜였다. 매클레인이 가져온 물건이 아닌 이상 말이다. 어쩌면 그 상자도 매클레인이 그토록 능수능란하게 선전하던 ‘증거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은 화성에 다녀온 기억을 납득할 수가 없는데, 불행하게도 인터플랜 측에서는 받아들인 모양이군. 저들은 내가 정말로 화성에 다녀왔고, 내가 그 사실을 최소한 일부는 깨달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저 자네가 화성에 다녀왔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게 아니야.” 인터플랜 보안 요원이 그의 생각에 대답하며 말했다. “자네가 우리에게 문제가 될 정도로 많이 기억해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 그리고 자네 표층 의식에 있는 기억만 지워서는 아무 소용 없다는 사실도 말이야. 그랬다가는 자네는 다시 리콜 주식회사를 찾아갈 테고, 우리는 이런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테니까. 게다가 우리 측에서는 우리 요원이 아닌 사람에 대해서는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매클레인과 그의 회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지. 어쨌든 매클레인이 뭐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그는 퀘일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거야 법적으로는 자네도 마찬가지지. 기억을 되찾으려는 생각으로 리콜 주식회사에 간 것은 아니니까. 우리도 잘 알고 있지만, 자네는 그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이유로 그곳에 간 것뿐이야. 모험을 좋아하지만, 평범하고 따분한 사람들 말이지. 하지만 불행하게도 자네는 평범하지도, 다분하지도 않아. 게다가 지금까지 자극이라면 넘칠 정도로 즐겼지. 이 우주에서 자네에게 가장 필요하지 않은 것이 바로 리콜 주식회사였을 거라고. 자네에게도, 우리에게도 이보다 더 골치 아프고 위협적인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물론 매클레인에게도 말이지.”
“왜 내가 여행을, 당신네가 주장하는 그 여행을 했다는 사실과 그곳에서 한 일을 떠올리면 안 되는 겁니까?” 퀘일이 물었다.
“왜냐하면 자네가 한 일이, 대중들이 우리를 보면 떠올리는 ‘모든 것을 지켜주는 깨끗한 아버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 때문이지. 자네는 우리가 절대로 직접 하지 않는 일을 대신 해줬거든. 나르키드린 덕분에 곧 기억해내겠지만 말이지. 그 죽은 벌레와 물풀이 들어있는 상자는 자네가 돌아온 이후로, 자네 책상 서랍 속에 6개월 동안 들어있었어. 그리고 자네가 그 상자에 호기심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 자네가 리콜 주식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내기 전까지, 우리는 그 상자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고. 서둘러서 그 상자를 찾아내러 왔건만 운이 없었지. 시간이 부족했어.”
두 번째 인터플랜 보안 요원이 합류했고, 둘은 잠시 의논을 했다. 그동안 퀘일은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이제 더 많은 것이 기억나고 있었다. 보안 요원이 나르키드린에 대해 한 말은 옳았다. 아마 인터플랜 쪽에서도 그런 약물을 사용한 적이 있는 듯했다. 아마? 그는 너무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죄수에게 나르키드린을 주사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 그런 것을 본 걸까? 테라의 어딘가인가? 루나에서였을 가능성이 더 높겠군. 아직 상당히 불완전하지만 빠른 속도로 구멍이 메워지고 있는 기억 속에서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뭔가가 떠올랐다. 그들이 그를 화성으로 보낸 이유,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까지.
그들이 기억을 지운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세상에.” 먼저 들어왔던 인터플랜 보안 요원이 동료와의 대화를 중단하며 말했다. 퀘일의 생각을 읽은 것이 분명했다. “이제 훨씬 골치 아픈 문제가 되었군. 매우 곤란해졌어.” 그는 퀘일을 총으로 겨누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네를 죽여야겠어. 즉시 말이야.”
그의 동료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꼭 즉시 죽여야 하나? 그냥 인터플랜 뉴욕 지부로 데려가서 그쪽 친구들에게 맡기는 게―”
“저 친구가 왜 자기를 즉시 죽여야 하는지 떠올려 버렸다고.” 첫 번째 요원이 말했다. 이제 그 역시 불안해 보였다. 그러나 퀘일은 그의 불안이 동료와는 다른 이유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제 그의 기억은 거의 전부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상대 요원의 긴장 역시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화성에서 사람 하나를 죽였지.” 퀘일은 거칠게 말했다. “열다섯 명이 경호하는 사람을 말이야. 그들 중에는 당신들같이 밀수입한 총기로 무장한 자들도 있었어.” 그는 5년 동안 인터플랜에 의해 암살자로, 프로 살인자로 훈련받았던 것이다. 그는 무장한 적을 해치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두 명의 보안 요원과 같은 적들 말이다. 그리고 송신기를 꽂고 있는 요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충분히 빠르게 움직이기만 하면―
총이 발사됐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가 총을 든 요원을 손날로 쳐 넘어트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는 총을 들고, 아직 당황하고 있는 다른 요원 쪽을 겨눴다.
“내 생각을 읽은 모양이지. 내가 뭘 하려는지 알고 있었지만 막을 수는 없었어.” 퀘일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부상을 당한 요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그리고 자네를 총으로 쏠 생각도 없는 모양이야. 그것도 읽었지. 이 친구도 자기가 끝장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도 그걸 알고 있다는 것도 안다고. 이봐, 퀘일.” 그는 비틀대면서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는 그 총을 쓸 수 없어. 총을 돌려주면 자네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하지. 청문회가 열릴 테고, 내가 아니라 인터플랜에서 더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결정을 내릴 거야. 어쩌면 자네 기억을 한 번 더 지워주려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자네를 죽이려고 했던 이유를 자네도 잘 알겠지. 자네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어. 따라서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자네를 죽일 이유도 없어진 셈이야.”
퀘일은 총을 움켜쥔 채로 복합아파트를 뛰쳐나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가며 생각해다. 따라오면 죽이겠다. 그러니 얌전히 있어. 그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마구 눌렀고,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요원은 그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의 간결하고 확고한 생각을 읽은 후 운을 시험해보지 않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그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도망친 것이다― 일단은. 그러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잠시 후 그는 서둘러 보행자 통로를 걸어가는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웠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죽음을 피하기는 한 것이다. 바로 그가 사는 복합아파트에서, 그자들은 그를 즉시 사살하려 했었다.
그리고 분명 또 쫓아오겠지. 나를 찾기만 하면 말이야. 게다가 내 머릿속에 송신기가 박혀있는 이상,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야.
우습게도 그는 리콜 주식회사에 부탁했던 것을 완벽하게 얻은 셈이었다. 모험, 위험, 인터플랜 보안 요원, 목숨이 위험한 화성으로의 비밀 여행― 그가 거짓 기억으로 원했던 것 모두를.
그리고 이제는 그도 그런 모든 것이 단순한 기억일 때의 장점을 절절히 깨닫고 있었다.
그는 홀로 공원 벤치에 앉아 퍼트 떼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성의 두 개의 위성에서 들여온 새와 비슷한 동물로, 지구의 강한 중력 아래에서도 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화성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뭘 어쩔 수 있겠는가? 화성에서는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그가 지도자를 암살한 정치 조직이 우주선에서 내리자마자 그를 발견할 터였다. 그러면 인터플랜과 그 조직 양쪽에게 쫓기는 신세가 될 것이다.
내 생각 들을 수 있나? 그는 생각했다. 피해망상증에 빠질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혼자 앉아서도 그들이 자기를 감시하고 기록하고 의논한다고 느끼다니……. 그는 몸을 떨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은 채 목적지 없이 걷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를 가든 당신들은 나를 따라다니겠지. 내가 머릿속에 이 장치를 가지고 있는 이상 말이야.
당신들과 거래를 하겠어. 그는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그들을 향해 생각했다. 당신들 내 머릿속에 다시 가짜 기억을 심어줄 수 있나? 예전과 같이 평범하고 반복되는 삶을 살며, 화성에는 갈 수 없었던 그런 기억 말이야. 인터플랜 제복을 가까이서 본 적도 없고 총을 잡아본 적도 없는 기억을.
그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대답했다. “이미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나.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을 거네.”
그는 깜짝 놀라 생각을 멈추었다.
“예전에는 이런 방식으로 자네와 교신을 하곤 했지. 화성의 현장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을 때는 말이야. 이런 교신을 한 지도 몇 개월이 지났군. 사실 두 번 다시는 교신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자네 지금 어디 있나?”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소.” 퀘일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당신네들 요원의 총에 의한 죽음 말이오, 라고 마음속으로 덧붙였다. “왜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리콜의 기술이 먹히지 않는 건가?” 그가 물었다.
“예전에 말한 대로네. 자네에게 일반적이고 평범한 기억을 넣어준다고 해도, 자네는― 초조해질 걸세. 결국 리콜 주식회사나 그 경쟁 업체 중 하나를 찾아가게 될 걸세. 우리는 이런 일을 또 겪을 수는 없어.”
“그러면 내 진짜 기억을 제거한 다음에, 일반적인 것보다 훨씬 강렬한 기억을 넣는 것은 어떻소. 내 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걸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잖소. 당신들이 나를 고용한 이유도 그 때문일 테고. 하지만 그와 비슷한 등급의 다른 뭔가를 생각해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테라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는데 교육 재단에 전 재산을 기부해 버렸다는 것은 어떻소. 아니면 유명한 외우주 탐험가였든가, 그런 종류의 기억이면 되지 않겠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퀘일은 절박하게 말을 이었다. “좀 해보시오. 당신네 최상급 군대 심리학자들 있잖소. 내 마음속을 살펴봐요. 내가 꿈꾸는 가장 허황된 백일몽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보는 거요. 여자. 그래, 몇천 명의 여자 어떻소. 돈 후안같이 말이오. 지구나 루나, 화성의 모든 도시에 정부를 두고 있는 우주 규모의 바람둥이인 거지. 질려서 그만두기는 했지만 말이오. 어서, 뭐든 좀 생각해봐요.”
“그러면 포기하고 항복하겠다는 말인가? 만약 우리가 그런 해결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한다면?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의 머릿속 목소리가 물었다.
잠시 머뭇거린 후, 그는 대답했다. “그렇소.” 당신네가 나를 그 즉시 죽여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 부담 정도는 안고 가겠소. 그는 생각했다.
“그럼 자네가 먼저 움직이게. 우리에게 자수하면 그쪽으로 일을 추진해보겠네. 하지만 우리가 실패한다면, 자네의 진짜 기억이 이번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다면―”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후에 목소리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자네를 죽여야 할 거네. 자네도 당연히 이해하겠지만. 어떤가, 퀘일. 그래도 해보고 싶나?”
“그렇소.” 그는 대답했다. 이제 다른 길은 거의 확실한 죽음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택하면 적어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 많지는 않아도.
“우리 뉴욕주 병영으로 출두하기 바라네. 5번가 580번지, 12층일세. 자네가 도착하면 우리 정신분석가들을 동원해 작업을 시작하겠네. 성격 프로 파일 실험을 할 거야. 자네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환상이 무엇인지 알아낸 다음, 자네를 리콜 주식회사로 데려가서 그 환상을 과거 기억의 형태로 대신 이루어주겠네. 그리고― 행운을 비네. 우리는 자네에게 빚을 진 셈이네. 자네는 우리에게 유용한 도구였으니 말이야.” 목소리에는 악의가 담겨있지 않았다. 그들, 즉 조직에서도 나름 그를 동정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고맙소.” 퀘일은 이렇게 말하고는, 로봇 택시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엄격한 얼굴의 나이 든 인터플랜 정신분석가가 입을 열었다. “퀘일 씨, 매우 흥미로운 종류의 소원 성취형 환상을 품고 계시더군요. 아마도 당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절대로 의식적으로는 즐기거나 인정하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흔히 있는 일이지요. 제 말을 듣고 너무 기분이 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인터플랜의 선임 요원이 그 말을 듣고 유쾌하게 말했다. “너무 기분이 상하지 않는 편이 나을 거요. 그랬다가는 총알 세례를 받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정신 성숙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간주할 수 있는 인터플랜의 비밀 요원이 되고 싶다는 소망과는 달리, 이 환상은 당신의 기묘한 어릴 적 꿈에서 나온 것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 환상은 이런 겁니다. 당신은 아홉 살이고, 시골길을 홀로 걷고 있습니다. 다른 항성계에서 온 생전 처음 보는 우주선이 당신 앞에 착륙합니다. 지구에서 그 우주선을 본 사람은 오직 퀘일 씨, 당신밖에 없습니다. 그 안에서 내린 외계인들은 매우 작고 무력합니다. 거의 들쥐 정도 수준이죠. 하지만 그들은 지구를 침공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 선행 부대가 작전 수행 신호만 보내면, 몇십만 대의 우주선이 그들을 뒤따라 오게 되어 있지요.”
“그리고 내가 그걸 막는 거겠군요. 혼자서 그놈들을 다 쓸어버리는 거겠죠. 아마 발로 밟아서 말입니다.” 퀘일은 흥미와 역겨움을 동시에 느끼며 말했다.
정신분석가는 침착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침공을 막는 것은 맞지만, 우주인들을 죽여서 막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그들이 무엇을 하러 왔는지를 그들의 의사소통 수단인 텔레파시를 통해 알게 되었으면서도, 그들에게 친절함과 자비를 보였던 겁니다. 그 외계인들은 지성을 가진 존재가 그런 자비로운 성향을 보이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감사로 당신과 약속을 한가지 하게 되는 겁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지구를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인가요.” 퀘일이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정신분석가는 인터플랜 선임 요원을 향해 말했다. “보시다시피 겉으로는 비웃는 척하지만, 그의 성향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그냥 존재하기만 해도, 그러니까 목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외계인이 지구를 지배하는 일을 막고 있는 셈인 거군요. 말하자면 테라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 말이죠.” 퀘일은 점점 더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이 환상은 당신 정신의 기저부에 위치해요. 평생을 가는 어린아이의 환상인 겁니다. 수면요법과 약물요법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기억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 안에 언제나 존재했던 환상입니다. 무의식 속에 파묻히기는 했지만, 한 번도 사라지지는 않은 거죠.”
집중해서 이 대화를 듣던 매클레인을 향해, 선임 요원이 물었다. “저렇게 극단적인 가상현실을 주입하는 것이 가능하겠소?”
“우리를 찾아오는 고객들은 온갖 종류의 환상을 들고 옵니다. 사실 이보다 더 지독한 것도 많이 겪어봤어요. 이런 거라면 물론 할 수 있습니다. 24시간이 지나면, 이 사람은 그저 지구를 구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구를 구했다고 믿게 될 겁니다.” 매클레인이 대답했다.
선임 요원이 말했다. “그럼 작업을 시작하면 되겠군. 준비 삼아서, 우리는 그가 화성 여행을 했던 기억을 미리 지워버렸소.”
“무슨 화성 여행 말입니까?” 퀘일이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 그는 머뭇거리며 자신의 질문을 그저 속에만 담아두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이제 보안대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와 매클레인 선임 요원은 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즉시 시카고에 있는 리콜 주식회사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요원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구의 매클레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못될 건덕지도 없습니다.” 매클레인은 진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화성이나 인터플랜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 아닙니까. 혼자 힘으로 다른 항성계에서 온 외계인 침략자들을 막아내는 기억이니까요.” 그는 그 생각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들이란, 정말 무슨 꿈을 꾸는 건지. 게다가 폭력이 아니라 순전히 도덕의 힘을 이용해서라니. 어떤 면에서는 기발하지요.” 그는 리넨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 좀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매클레인이 덧붙였다.
선임 요원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오만한 꿈이기도 하지. 자기가 죽으면 침공이 재개되는 거니까. 기억해내지 못한 것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오. 내가 지금까지 들은 것 중에서 가장 허황된 꿈이니까. 우리가 이런 자를 고용하고 있었다는 생각만 하면.” 그는 비난의 감정이 담긴 눈빛을 퀘일을 쳐다보았다.
리콜 주식회사에 도착하자, 접수원 셜리가 잔뜩 긴장한 채로 그들을 맞았다. “잘 돌아오셨어요, 퀘일 씨.”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동요 때문에, 오늘은 형광 오렌지색으로 칠해놓은 그녀의 멜론 모양 가슴이 흔들거렸다. “저번에 오셨을 때는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지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좀 나을 거예요.”
여전히 깔끔하게 접힌 아일랜드 리넨 손수건을 자신의 빛나는 이마를 문지르면서, 매클레인은 말했다. “그래야겠지.” 그는 즉시 로웨와 킬러를 불러들였고, 더글러스 퀘일은 그들과 함께 작업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셜리와 선임 요원을 대동하고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제 기다릴 뿐이었다.
“이런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꾸러미가 있나요, 매클레인 씨?” 셜리가 물었다. 그녀는 초조하게 움직이다가 매클레인에게 부딪히고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머릿속으로 기억을 떠올리려다가, 포기하고는 정규 목록을 참조하기 시작했다. “81번, 20번, 6번 꾸러미를 조합하면 될 것 같군.” 그는 이렇게 말하고 책상 뒤쪽의 저장고 방으로 가서 해당 꾸러미를 찾아다가는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81번 꾸러미에는 치유 지팡이가 들어있지. 다른 항성계에서 온 종족이, 감사의 징표로 고객에게― 이 경우에는 퀘일 씨에게― 준 물건이네.”
“그거 진짜 되는 건가?” 선임 요원이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예전에는 그랬지요. 하지만, 에헴, 그 친구가 주변 사람들을 치료하느라 예전에 다 써버렸습니다. 이제는 그저 추억의 물건일 뿐이죠. 하지만 예전에는 상당히 멋지게 작동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20번 꾸러미를 열었다. “이건 지구를 구해준 것에 대해 UN 사무총장이 수여한 감사장입니다. 퀘일의 상상 속에서는 그를 제외한 그 누구도 지구 침략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 문제가 있지만, 이야기를 진실에 가깝게 만들려면 이것도 쓰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그리고 그는 6번 꾸러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건 뭐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셜리와 인터플랜 요원이 흥미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비닐 가방을 열었다.
“이상한 글자로 쓴 문서인데요.” 셜리가 말했다.
“이건 그들이 누구고,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주는 문서지. 이곳과 그들의 항성계 사이의 항해 기록을 표시한 성도도 들어있어. 물론 그 친구들의 글자로 되어있으니까 읽을 수는 없지. 하지만 그들이 그의 언어로 번역해서 들려주던 일이 기억은 날 거야.” 그는 세 가지 물건을 책상 가운데로 가져다 놓았다. “이걸 퀘일의 아파트에 가져다 놓으면 될 겁니다.” 그는 선임 요원을 보고 말했다. “집에 도착해서 이걸 찾을 수 있도록 말이죠. 이게 자기 환상의 증거가 될 겁니다. SOP― 표준 운영절차(Standard Operating Procedure)대로입니다.” 그는 로웨와 킬러 쪽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지 걱정하며, 가볍게 웃었다.
인터콤이 울려왔다. “매클레인 씨,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로웨의 목소리였다. 매클레인은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대로 얼어붙은 듯 말을 멈췄다. “뭔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와서 보시고 판단을 내려주셔야 할 것 같아요. 저번 경우와 마찬가지로, 퀘일은 나르키드린이 잘 들어서 무의식 상태가 되었습니다. 긴장도 풀고 수용 가능 상태가 되었지요. 그런데―”
매클레인은 서둘러 작업장으로 달려갔다.
더글러스 퀘일은 천천히, 고르게 숨을 쉬며 위생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눈은 반쯤 감긴 채, 주변 사람들은 희미하게밖에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로웨는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친구에게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지구를 구한 거짓 기억을 정확히 어디에 삽입할지 결정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더글러스 퀘일은 진정제 약효에 젖은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기억도 못 하게 될 예정이었다고요. 하지만 그런 사건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받아들이기 힘드시겠지만, 선생. 선생은 방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오. 매클레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퀘일은 웅얼거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 “두루마리도 줬어요. 감사 표시래요. 내 아파트에 감춰놓았어요. 나중에 보여드릴게요.”
그를 따라 들어온 선임 요원을 보며, 매클레인은 말했다. “글쎄, 아무래도 이 친구를 죽이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군요. 죽였다가는 그 외계인들이 돌아올 테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투명한 지팡이도 선물로 줬어요.” 이제 퀘일은 눈을 완전히 감은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당신들이 나를 화성으로 보냈을 때, 그자를 죽일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지팡이의 힘이었어요. 그 지팡이는 지금 화성 아귀벌레와 말라비틀어진 식물이 든 상자하고 같이 내 책상 서랍에 들어 있어요.”
인터플랜 요원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몸을 돌려서 작업장에서 나갔다.
아무래도 내가 준비한 증거물들은 전부 치워버려야겠어. 매클레인은 체념하며 생각했다. 그는 천천히 한 걸음씩 사무실로 걸어갔다. UN 사무총장이 보내준 감사장도. 어찌 됐든―
아마도 조금만 기다리면 진짜 감사장이 도착할 테니까.
1) 회사 이름인 리콜Rekal과 떠올리다, 기억해내다 라는 뜻의 recall은 발음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