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는 천사의 향기
늑대는 천사의 향기
무라카미 류
그 카페는 신주쿠의 후생연금 홀 맞은편에 있었다. 록 카페였던 그 곳은 비틀즈의 앨범에도 있는 '러버 소울'이라는 이름이었다.
나는 니시 규슈의 기지촌에서 상경하자마자 곧바로 그 가게를 드나들게 되었다. 그 곳은 이른바 히피라고 하는 장발의 인간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오키나와나 요코다, 요코즈카 같은 곳으로부터 마약 밀매꾼도 모여들었다. 나는 상경 후 두 달 동안은 기치조지의 이노가시라 공원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에서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과 함게 살았다. 하지만 나는 본래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어서 '러버 소울'에서 밤을 지새는 경우가 많았다. '러버 소울'에서는 맥주나 콜라 한 잔을 시켜 놓고 열 시간 이상을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히피나 방랑족이라 불리는 인간들이 모이는 장소는 그 밖에도 많았다. 신주쿠 역의 동쪽 출구로 나가면 '풍월당'이라는 유명한 카페가 있었지만 그 곳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곳에는 폐쇄적인 동료의식 같은 것과 소수 집단 문화의 냄새가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버 소울'에서는 단골손님들이 거의 별명으로 통했다. 별명 중에서도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특히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것만 해도 그리스도라는 별명을 가진 히피가 네 명은 있었다. 지저스도 둘이 있었고 짐이나 조이, 미크, 빌리, 조지, 제로 같은 이름들도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메그, 파피, 제니스, 샐리, 메리, 그레이스, 신시아 같은 갖가지 미국식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켄이라고 불리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셰프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콧수염을 길렀지만 나이는 나와 동갑인 열여덟이었다. 그는 그 해에 요코하마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러버 소울'에서는 한 사람이 앨범 하나를 틀어 달라고 신청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핑크 플로이드의 '움마굼마'를 신청할 때 DJ부스 옆에 있다가, 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하나 보지? 하고 도회지 사람 특유의 악센트가 담긴 표준어로 말을 걸어 왔다. '러버 소울'에도 지방 출신들이 많았고 아파트의 친구들과는 규슈 사투리를 썼기 때문에 그의 깨끗한 표준어 말씨가 무척이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난 사실은 이렇게 어둠침침하고 얼간이처럼 큰 볼륨으로 록 음악을 틀어대는 장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는 DJ부스에서 조금 떨어진 소파에 나란히 앉아 그렇게 말을 꺼냈다. '러버 소울'은 임대료가 싼 지하 1층이었기 때문에 실내가 꽤 널찍했다.
소파나 의자가 불규칙하게 놓여 있었고 테이블 대신 흰 칠을 한 정사각형의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는데 한밤중이 되어 가게 안에 사람이 꽉 들어차면 손님들은 상자 위나 바닥에 앉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난 아르헨티나나 사막 같은 데로 가서 양치기가 되고 싶었어. 그 후에 시를 쓰게 되는 바람에 양치기가 되는 건 포기했지만 그래서 모두들 나를 셰프라고 부르게 됐지. 셰프라는 건 셰퍼드를 줄인 말이야."
셰프와 나는 핑크 플로이드가 떠나가라 울려대는 속에서 서로의 귀에 입을 대로 큰소리로 앤디 워홀과 로트레아몽, 루리드와 짐 모리슨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 네가 핑크 플로이드를 신청하는 걸 보고 정말 반가웠어. 여기 있는 애들은 하나같이 하드 록이나 블루스 밖에 모르잖아? 얼마 전에는 블라인드 페이스하고 레드 제플린이 번갈아 가며 모두 여덟 번이나 나왔거든. 나도 그런 곡들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렇지 여덟 번씩은 너무 지루하잖아. 내가 '모어'를 신청했으니까 이제 핑크 플로이드를 계속해서 두 장 틀게 될 거야."
30분쯤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사이에 '모어'의 첫번째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셰프라는 이름은 짐이나 존, 지저스에 비해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쓰는 독특한 말씨와 억양의 표준어도 신선했지만 나이가 같았기 때문에 친구가 되리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당시 나는 특별히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밖에는 사귀지 않았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나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하고만 사귀고자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거나 마약 밀매를 하는 연하의 인간들도 상당수가 '러버 소울'에 드나들고 있어서 아는 사이가 되기는 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셰프와 나는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엄청난 음량으로 가게 안에 울려 퍼지고 있는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이 '모어'에서 '움마굼마'로 바뀔 즈음 셰프와 큰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한 장발의 남자에게 시선을 쏟고 있었다. 그 장발의 남자는 가게의 단골손님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뭔지 모를 약에 흠뻑 취해 있었다. '러버 소울'의 손님 치고는 나이가 꽤 많아서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그는 머리는 길었지만 옷차림은 정상적인 샐러리맨의 느낌이었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칙칙한 잿빛 바지에 검정 가죽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는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인 것 같았다. 불량소녀를 하나 낚아서 함께 이 카페에 왔고 비싼 돈을 주고 환각제 같은 것을 사서 난생 처음으로 이상한 감각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두 팔을 새처럼 활짝 벌리고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는 천천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다른 단골손님들은,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하는 표정으로 테이블 사이를 비슬비슬 돌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단골손님들도 가게에서 환각제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지만 냄새가 강한 마리화나는 반드시 환풍기가 있는 화장실에서 피운다거나, 수면제나 헤로인을 해도 흐느적거릴 정도로 취하거나 토하는 일이 없게 한다거나, 코카인을 해도 모르는 여자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껴안지는 않는다. 하는 암묵의 규칙이 있었다. 다른 손님들이나 가게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모두들 '러버소울'을 좋아했기 때문에 출입 금지를 당하거나 가게가 영업정지를 당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엷은 웃음을 띠고 비칠거리며 돌고 있는 그 남자는 누가 보나 낯선 존재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위험한 존재였다. 그 남자가 뭔가 성가신 일을 일으켜서 구급차나 경찰이 나타나게 되면 모두에게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가 빙글빙글 돌면서 셰프와 내 앞을 오자 얼굴에 조명을 받아 눈이 보였다. 동공이 있는 대로 확대되어 있었다. LSD를 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지나치게 많은 양을 한 것 같았다.
'움마굼마'는 두 장짜리 앨범으로 첫째 장은 라이브, 둘째 장은 스튜디오 녹음이었다. 나는 라이브 쪽의 A면을 신청했고 그것이 가게 안에 흐르고 있었다. 아주 아름답고 화음의 조화가 완벽한 부분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 남자는 아마도 그 음악에 취해 자신이 새가 된 기분으로 가게 안을 빙긍빙글 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A면의 그 곡은 중간부터 곡조가 바뀌어 버린다. 악의에 찬 불협화음이 겹치면서 신경이 삐죽삐죽 곤두서는 부분이 시작되어 그것이 차츰 높은 볼륨으로 한동안 계속되다가 마지막에 보컬과 신시사이저의 절규와도 같은 음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LSD와 메스칼린을 하고 A면을 들어 본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새처럼 돌고 있는 그 남자가 어떤 기분이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불협화음의 부분이 시작되자마자 남자의 표정이 변했다. 엷은 웃음이 사라지고 양미간에 주름이 잡히면서 빙글빙글 도는 것을 멈추더니 괴로운 듯 가슴을 누르면서 이따금씩 몸을 웅크렸다. 저거 위험한데, 하고 내가 셰프에게 말했다. 누가 빨리 화장실에라도 데려가 주면 좋을 텐데. 그 남자는 괴로운 표정에서 이번에는 공포에 질린 표정이 되었다. 차츰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과 같은 최악의 분열 상태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불안해하거나 두려워 할 것 없다고 누군가 끊임없이 옆에서 말을 걸어 주지 않으면 안 될 발광 직전의 정신 상태에 이르렀는데도 그 낯선 남자는 점점 더 볼륨이 높아져 가는 불협화음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는 새파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더니 나오 셰프로부터 2, 3미터 떨어진 곳에 웅크리고 주저앉았다. 셰프는 아이구 저 병신, 하며 그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우리가 앉아 있는 소파 쪽으로 다가오는 짙은 화장의 낯선 여자에게 앉은 채로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 때 신시사이저의 절규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웅크리고 앉아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빛은 완전히 자제력을 잃고 있었다. 그러고는 어깨와 얼굴에 있는 대로 힘이 들어가더니 곧바로 옆 테이블에 있던 두꺼운 유리 재떨이를 집어 들고는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외치면서 우리 쪽으로 힘껏 내던졌다. 나는 셰프에게로 몸을 날리면서 소파에 엎드렸다. 유리 재떨이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와 그 때까지 셰프의 얼굴이 있던 위치에서 아크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우리의 목덜미와 등에도 유리 조각이 떨어졌다. 재떨이를 던진 남자는 곧바로 옆에 있던 여자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려고 했지만 거꾸로 주변의 다른 남자들에게 붙들려 바닥에 몸이 깔려버렸다. 손수건으로 유리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털어 내며 셰프가, 큰일날 뻔 했어, 하고 웃었다.
"네가 없었으면 큰일날 뻔했어. 정통으로 얼굴에 맞았을 것 아냐."
LSD를 하고 돌아 버린 남자 덕분에 우리는 그 후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셰프가 다니는 대학 구내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셰프의 부모가 사는 집에도 한 번 초대되어 저녁 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의 집은 요코하마의 도츠카 구에 있는 평범한 단독주택이었다. 나는 그 집에서 기모노를 입은 온화한 인상의 어머니와 건축사 일을 하며 라틴 음악을 좋아한다는 아버지, 그리고 순진하고 수줍음 많은 그의 누나도 소개 받았다.
셰프에게는 애인이 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중 어느 하나를 끼워 셋이서 놀러 다니곤 했다. 셰프와 나는 서로에게 자신의 친구를 소개하지는 않았다. 날아온 재떨이를 둘이서 피했을 뿐이었지만 위기감을 공유했다는 특별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지독히도 깡마른 연상의 여자를 사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셰프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녀와는 오랜 시간동안 오로지 섹스만 하는 관계였기 때문에 위기감을 공유했던 친구에게 소개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셰프의 애인은 둘 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외모나 성격, 직업이 서로 대조적이었다.
한 사람은 루나라는 별명을 가진 화장품 가게의 미용사원이었다. 스물네 살이었지만 몸집이 크고 화장이 진해서 좀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무엇이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여자여서 셰프 말고도 만나는 남자가 몇 명 더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도 않고 신이 나서 이야기하곤 했다. 그녀는 옷과 장신구, 화장품을 미친 듯이 좋아했다. 그래서 자신을 큰 부자와 결혼하여 밍크 코트와 보석으로 몸을 휘감고 사는 것이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녀는 술이나 약에 취하면 옆에 있는 사람을 끌어안고 키스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그 무렵 사귀고 있던 말라깽이 여자처럼 색정광은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건강하고 성격이 대범했던 것이다. 나는 루나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또 하나는 사치코라고 하는, 대사관에 다니는 수수하고 몸집이 작은 여자였다. 그녀는 화장도 거의 하지 않았다. 책을 좋아했고 셰프의 시가 마음에 들어서 사귀게 되었다고 했다. 셰프는 고등학교 시절에 자비로 시집을 낸 적이 있었다. 자비출판이었지만 등사판 같은 것이 아니고 식자를 쳐서 인쇄하고 겉표지 안쪽으로 등까지 댄 제대로 된 시집이었고 내가 보기에는 작품의 수준도 상당히 뛰어났다. 그 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했던 시가 한 편 있었는데 제목이 '혀'라는 작품이었다. 그 시는 해질녁에 철길을 걷다가 압사한 시체를 발견하는 소년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혀가 죽는 순간에 그렇게 길게 빠져 나올 줄은 몰랐다.'
사립대학의 상과에 들어가서도 셰프는 계속해서 시를 쓰고 있었다.
루나와 셋이 만날 때는 약이나 술에 취해 '러버 소울'을 중심으로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끝이었다.
사치코를 만날 때는 록 음악에 꽝꽝 울려대는 '러버 소울'에서도 마치 무슨 의식이라도 행하듯 셰프의 시 노트를 보고 느낀 것을 서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고 나서 밥 딜런이며 짐 모리스나 랭보, 로트레아모으, 셀린느, 주네, 바타유, 르 클레지오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 사치코가 훨씬 더 좋아. 루나는 외모나 성격이 화려해서 데리고 다니기에는 그럴듯하지. 얘기하는 것도 재밌어서 사귀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사치코가 더 낫지 않니?"
그런 질문을 받고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난처했다. 어느 비 오는 토요일 오후에 둘아 찻집에서 사치코를 기다리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사치코라는 여자도 나름대로 매력은 있지만 그래도 나는 루나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둘 다 네 애인인데 내가 어떻게 누가 더 좋다는 얘기를 할 수 있어? 하고 대답했다.
"루나는 나말고도 남자가 몇이나 더 있어. 그건 너도 알잖아. 걘 누구한테나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까."
그녀는 매력이 있어, 다른 남자가 있어도 상관없잖아, 결혼을 한 것도 아닌데.
"루나가 마음에 든다는 얘기로구나."
그러고 나서 셰프는 뭔가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너 루나 한 번 사귀어 볼래? 좀 이상한 부탁이지만 사실은 사치코가 요즘 나한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눈치채기 시작한 것 같거든. 그래서 난 루나하고 원만하게 헤어졌으면 하는데 사실 루나는 굉장히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라 헤어지자고 하면 무척 상처를 받을 거야. 그래서 네가 사귀어 주면 걔도 외롭지 않고 서로 좋을 거라는 생각이지. 그래, 상식적인 얘기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 실례되는 얘기이고. 하지만 루나는 저를 재미있게 해주는 남자라면 누구든 상관 안 할거야. 걘 그런 여자거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하고 내가 말했다. 루나는 아주 정직하고 마음씨 상냥한 여자야, 그건 셰프 너도 알잖아, 난 루나가 마음에 들긴 해도 남의 여자한테 손대는 짓은 안 해.
"그건 또 뭐야? 너희 집 가훈 같은 거냐?"
그게 아니라니까, 하고 말하며 나는 웃었다. 셰프도 웃었다. 남자는 누구든지, 하고 나는 말했다. 기본적으로 여자를 위해서 노력을 하잖아? 나말고 다른 남자가 이미 공들여 놓은 여자한테는 흥미가 없어.
"알았어."
웃으면서 셰프가 말했다.
"그 정도로 확고한 정책을 가지고 있다면야 루나 얘기는 없었던 걸로 해야지 뭐. 하지만 사치코한테는 절대로 아무 말하지 말아 줘. 걔는 숫처녀야. 나도 아직 키스밖에는 안 했거든. 난 걔하고 결혼하고 싶어."
결혼? 하고 나는 큰소리를 냈다. 열 여덟 살에 결혼을 생각한다구? 하고 내가 물었을 때 사치코가 나타났다. 수수한 빛깔의 원피스와 아무렇게나 빗은 짧은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 셰프는 사치코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지금 사치코하고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를 켄한테 하고 있던 중이야."
셰프가 그런 말을 하자 사치코는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 셋이 있을 때 사치코는 시나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빼고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루나에 대해서는 나는 몇 번이고 셰프를 부럽게 생각했다. 내가 사귀고 있던 여자가 지독히 빼빼 말랐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큼직큼직하고 화려한 얼굴과 몸매를 지닌 루나의 나체를 상상하면 몹시도 욕정이 끓어올랐다. 사치코에게는 욕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외모가 평범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문학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재미없게 느껴졌다. 그녀는 프랑스 대사관에 다니고 있기 때문인지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원서로 모든 작품을 읽었다며 장 주네를 숭배했다. 툭하면 "장 주네가 만약 남색가가 아니었다면 그런 작품은 못 썼을 거야."하는 식의 말을 하곤 했다. 남색가가 아니었더라도 주네는 훌륭한 작품을 썼을 거야, 하고 내가 반론을 폈지만 그녀는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원서로 읽지 않고는 모른다고 나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역시 시 쓰는 걸 퍼스트 프라이어리티로 삼아서 살고 싶어."
셰프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그렇게 말하자 사치코는 아무렴, 그렇지, 하는 투로 몇 번씩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그렇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감안해서 상과 대학에 들어갔던 거야. 시인이라고 해서 옛날처럼 꽃이다 새다 하고 풍월이나 읊어 가지고는 안 되잖아? 난 무역상사 직원이 돼서 전세계를 여행할 거야. 그래서 무역상사 직원만이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생활의 기반도 단단히 다져 두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 시인으로 성공하려면 나를 이해해 주면서 생활을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사치코는 그런 점에서 더할 나위 없는 상대일 거야. 켄도 아마 찬성해 줄 거라고 믿어."
찬성이고 반대고가 아니고, 하고 내가 말했다. 난 한 번도 장래의 일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단하다'고 밖엔 할 말이 없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건, 내 또래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거든.
그로부터 약 반 년 후, 나는 요코다 기지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된다. 기치조지의 록 카페에서 만난 괴짜중의 괴짜 같은 연상의 여자와 흑인 병사들만이 살고 있는 후츠사의 아파트에서 동거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 후 '러버 소울'에도 가지 않게 되었고 자연히 셰프와도 만나지 않게 되었다.
연상의 여자와 엉망진창인 생활을 계속하다가 1년 반 후에 그 생활은 파탄이 났다. 결국 2년을 낙제한 꼴로 미술대학에 다시 들어가 세이부 신주쿠 선이 지나는 평범한 동네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을 무렵 우연히 셰프와 사치코를 만났다. 오차노미즈에 있는 레코드 가게의 수입 음반 코너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신간 악보를 찾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기에 돌아보았더니 셰프와 시치코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사치코는 헤어 스타일과 옷차림이 예전 그대로였고 셰프는 상과 대학의 3학년생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핑크 플로이드하고 어지간히도 인연이 깊은 모양이다."
셰프가 그렇게 말했다. 우리 셋은 근처에 있는 찻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 하고 사치코가 내게 물었다. 나이를 열 살은 더 먹은 것처럼 보여. 나는 요코다 기지 부근에서 연상의 여자와 사는 동안 일어났던 일을 몇 가지 이야기했다. 극히 일부분만을 이야기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시인 지망의 대학생과 주네를 숭배하는 프랑스 대사관 직원에게는 충분히 자극적이었던 것 같다. 자살 미수, 치사량에 가까운 마약 흡입, 정신병원, 착란 증세, 흑인 병사들과의 난교.
셰프는 헤어질 때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려 주었다. 나도 내 전화번호를 건네 주었다.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흘 후에 전화를 한 쪽은 셰프가 아니라 사치코였다.
"잠깐 만날 수 있을까. 셰프하고의 일로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사치코는 세이부 신주쿠 역 구내의 찻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에 안 갈래? 택시 타면 금방이야."
요요기와 하라쥬쿠 중간쯤에 두 사람이 사는 모르타르 외벽의 목조 아파트가 있었다. 여섯 첩짜리와 네 첩 반짜리 방에 비좁은 주방, 세미 더블 사이즈의 침대, 화장대, 작은 책상, 책장, 그리고 비행기와 헬리콥터가 프린트되어 있는 베이지색의 커튼. 나는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사치코가 컵 두 개와 백포도주를 들고 옆에 와서 앉더니 말했다.
"안아 줘."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하며 나는 웃었다. 넌 내 친구의 여자잖아. 난 그런 건 싫어, 하고 말하자 사치코는, 그럼 키스만이라도 해줘, 하며 얼굴을 갖다 댔다. 가볍게 입술을 대려는 순간 사치코는 내 뒷덜미로 팔을 돌리더니 힘껏 끌어당기며 입 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켄이 하고 싶지 않다면 할 수 없지 뭐. 여자의 성욕은 애걸해서 섹스를 해야 할 정도로 강한 게 아닌 것 같으니까."
입술을 떼며 그렇게 말하고 사치코는 컵 두 개에 와인을 따랐다. 우리는 백포도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에선 나오는 영화를 봤다. 장 루이 트란티냥 주연, 르네 클레망 감독의 '늑대는 천사의 향기'였다, 영화의 처음 부분을 볼 때는 광고 방송이 나오는 사이에 키스를 하거나 옷 위로 서로의 몸을 더듬기도 했지만 중간부터는 영화에 빠져 들었다.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제대로 봐야 하는 건데. 하고 내가 말하자 사치코도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잠시 동안은 둘 다 말을 하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자신도 모르는 부분에서 이미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것이 아름다운 경우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사치코는 말없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요코다 기지를 떠난 이래 여자를 멀리하고 지내온 나는 그녀의 유혹에 지고 말았다.
"셰프는 지금 버스 세차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벌거벗은 채로 사치코가 말했다.
"둘이 사는 거니까 일을 해서 집세나 생활비의 절반은 벌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어. 켄, 너는 셰프를 어떻게 생각하니? 예전부터 어떻게 생각했어? 예를 들어 걔한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생각해, 하고 내가 대답하자 시치코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몇 번씩이나 고개를 젓는 바람에 뜻밖에도 크고 모양도 예쁜 젖가슴이 옆으로 출렁거렸다.
"장래의 일을 생각하는 남자한테는 재능 같은 게 없는 법이야. 셰프는 언제나 시 쓰는 일과 그것을 뒷받침할 생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잖니. 그건 너도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다고 생각했지.
"먹고 산다는 건 물론 중요한 일이기는 해도 하찮은 일이야. 생활에 대해서는 지독히도 불성실하면서 시에 대해서만 진지해져야지 시를 쓸 수 있는 것 아니겠니. 난 사실은 너 같은 사람이 시를 쓰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고 나서 사치코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시 같은 건 싫어, 하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어째서? 하고 다시 물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조금 전에 보았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싫어하는 데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어도 되잖아."
'러버 소울'을 드나들며 셰프를 만난 때로부터 거의 10년쯤이 지나 작가가 되고 영화를 찍게 된 나는 야외 촬영을 나갔던 사이판에서 루나를 만났다. 루나는 고향인 나가노로 돌아가 그 곳에서 미용실을 열었고 건축업자와 결혼했다고 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사이판에는 상점가의 상인들끼리 여행을 온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켜 디스코 클럽에서 신나게 놀았다. 루나는 셰프를 거의 잊고 있었다.
셰프는 무역상사 직원이 되지는 않고 한 대형 백화점에 취직했는데 지금도 해마다 연하장을 보내온다. 사치코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는 없다.
사치코와는 그녀가 셰프와 헤어지고 난 뒤에도 가끔 만났다. 내가 첫 소설을 내놓았을 무렵 그녀는 대사관 일을 그만두고 프랑스로 떠났다. 꼭 한 번, 장 루이 트란티냥의 사진이 들어있는 그림엽서를 보내왔지만 그후로는 연락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