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求命)보트
구명(求命)보트
Stephen Crane
사실대로 적어 보려 한 이야기.
침몰한 기선 <코모도어>호에 탔던
네 명의 경험담이기에.
1
그들 중 아무도 하늘의 색깔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들의 시선은 곧바로 앞을, 그들을 향해 엄습하는 파도 쪽에 고정되어있었다. 흰 포말로 부서지는 정상부를 제외하면 파도는 흙탕물 색깔이었다. 그들은 바다의 색깔을 익히 알고 있었다. 배가 철썩임에 따라 수평선이 오르락내리락 요동하며,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였고, 날카로운 바위같이 험난한 윤곽으로 보였다.
지금 그들이 타고 있는 구명정보다도 큰 목욕통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있을 법하였다. 파도는 짓궂고 야만스럽게 느닷없이 크게 밀려왔으며, 부서지는 포말의 파도 정상 하나하나가 이 작은 배를 조종하는 데에 많은 애로를 제공하였다.
요리사는 배 바닥에 철퍽 앉아서 자기와 대양을 갈라놓고 있는 6인치 남짓한 뱃전을 두 눈으로 바라보았다. 살찐 그의 팔에는 소매가 걷어붙여졌고, 바닥의 물을 퍼내느라고 몸을 앞으로 숙일 때마다 단추를 풀어 젖힌 조끼자락이 흔들렸다. 이따금 그는 “아이고,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라고 중얼거렸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그는 술렁이는 바다의 동쪽에 시선을 주었다.
보트에 있는 두 개의 노 가운데 하나를 키 삼아 배의 방향을 잡고 있는 주유사(注油士)는 선미(船尾) 너머로 밀어닥치는 파도를 비키기 위하여 가끔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얄팍한 작은 노였기에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한 노였다.
또 하나의 노를 젓고 있는 종군기자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가 뭣 때문에 여기서 이러고 있나를 궁금하게 생각했다.
부상을 당한 채 지금은 뱃머리에 누워 있는 선장은 회사가 망한다든가, 군대가 패전을 당한다든가, 배가 침몰한다든가 할 때 가장 용맹스럽고 가장 인내심이 많은 사람조차도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빠지게 마련인 깊은 실의와 무관심 지경에 함몰해 있었다. 단 하루건 또는 10년이건 한 척의 배를 지휘하였던 사람이 그 배에 대해서 느끼는 애착은 깊은 법이다. 그러기에 새벽바다의 어둠속에 벌어졌던 그 광경과, 흰 깃봉이 달린 돛대꼭지가 파도 속에 흔들리며 점점 물속으로 내려가다가 드디어 잠겨버렸던 그 장면의 인상이 지금도 강하게 그에게 남아있었다. 그 사건이 있은 뒤, 그의 음성에도 이상이 생겼다. 아직 꿋꿋하긴 하지만 어딘가 깊은 슬픔이 깃들고 웅변이나 눈물을 추월한 무슨 특질이 엿보였다.
“빌리, 배를 약간 더 남쪽으로 돌리게.”라고 선장이 말하였다.
“약간 남쪽으로, 알았습니다.”하고 주유사가 복창하였다.
이 배에 앉아있는 것은 날뛰는 야생마 등에 타고 있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었고, 크기에 있어서도 대단한 차이가 없었다. 이 배도 동물처럼 날뛰고 고개를 쳐들었다가 물속에 코를 박기도 하였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배가 그 파도를 타고 넘으려는 모습은 흡사 엄청나게 높은 장애물을 뛰어 넘으려는 말(馬)같이 보였다. 배가 이 물의 벽을 곱드러지듯 넘어가는 방식은 신기하달밖에 없었다. 그뿐 아니라 그 벽의 정상에 다다르면 꼭대기로부터 달음질쳐 내려오는 흰 물거품을 넘기 위해 더 높이, 공중에서 뛰어야하는 과제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정상을 가까스로 넘은 뒤에는 배가 내리막길을 한없이 달음질쳐 내려가서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위협 앞에 몸을 출썩이는 것이다.
이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각별한 불편이란, 하나의 파도를 겨우 성공적으로 극복한 후에도 그에 못지않게 치명적인―이 배를 물속에 잠기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듯이 보이는 또 하나의 파도가, 바로 뒤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10피트 길이의 작은 배를 타고 보면, 그런 배를 타고 대해로 나가는 따위의 경험이 결코 없는 보통 사람에겐 상상도 못 할 바다의 위력에 관한 윤곽을, 그 연달은 파도는 제공하고 있다. 이 흙탕물 물벽은 다가올 때마다 배에 탄 사람의 시야를 온통 가로막는다. 그래서 이것이야말로 바다의 마지막 분노의 폭발이고 마지막 안간힘이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파도의 움직임에는 무섭도록 우아한 구석이 있었고, 정상부에서 포말이 이를 가는 소리 이외에는 소리 없이 밀어닥쳤다.
희미한 햇빛 속에서 승무원들의 얼굴은 잿빛으로 보였을 것이다. 꾸준히 선미 쪽을 주시하고 있는 그들의 눈은 기이한 광채로 빛났었을 것이다. 아마 관람석에서 그 모습을 보았으면 아마도 틀림없이 그 광경은 괴이하게도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구경할 시간이 없었고, 설혹 여가가 있다 하더라도 머리를 써야할 다른 일들이 너무 많았다. 태양이 꾸준히 중천을 향해 올라갔고, 바다의 색깔이 흙빛으로부터 호박색 줄무늬가 섞인 에메랄드 같은 초록빛으로 변하고 거품이 흩어지는 눈같이 보이는 것으로 미뤄보아 그들은 이제 날이 완전히 밝았음을 알 수 있었다. 날이 밝은 과정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다만 그 결과를 밀어 닥치는 파도의 색깔에서 깨달았을 뿐이었다.
요리사와 종군기자는 토막 난 말투로 해난구조소와 대피소 사이의 차이에 관한 논란을 벌였다. 요리사가, “모스키토 인레트 등대 바로 북쪽에 대피소가 하나 있으니까 우릴 보자마자 배를 타고 나와서 구조할 거야.”라고 말했었다.
“누가 우릴 보자마자?”라고 종군기자가 물었다.
“근무원들이.”하고 요리사가 답하였다.
“대피소에는 근무자들이 없어.”하고 종군기자가 말하였다. “내가 알기에는 대피소란 난파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의복과 양식을 저장해두는 곳이야. 거기엔 상근 근무조가 없어요.”
“아냐, 있어요.”하고 요리사가 우겼다.
“아냐, 없어요.”하고 종군기자가 맞섰다.
“어떻든, 그 곳은 아직도 멀었어.”하고 선미에서 주유사가 말했다.
“하긴 모스키토 인레트 등대 근처에 있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대피소가 아니라 어쩌면 해난 구조소인지도 모르지.”하고 요리사가 말했다.
“그 곳은 아직도 멀었어.”라고 주유사가 고물간에서 말했다.
2
파도 하나하나의 꼭대기에서 배가 춤을 출 때마다 세찬 바람이 모자를 안 쓴 그들의 알머리를 후려쳤고, 배의 꽁무니가 철썩하고 떨어져 물을 치면 물벼락이 그들을 스쳐갔다. 이 파도의 정상 하나하나는 마치 산꼭대기나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그 정상에 올랐을 때는 빛나고 바람에 찢겨 요동하는 망망대해가 저 아래에 한눈에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현란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바다가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노닐고 에메랄드색, 흰색, 그리고 호박색의 빛이 뒤섞인 그 광경은 아마도 찬란한 절경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육지로 부는 게 천만 다행이로군.”하고 요리사가 말했다. “안 그랬더라면 우리는 어디쯤 가 있을까? 볼 장 다 봤겠지?”
“맞았어.”하고 종군기자가 말하였다.
바쁜 주유사도 동감을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물간에 있던 선장이 조크와 경멸과 비극을 함께 담은 듯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볼 장이 아직 남아 있을 것 같나?”하고 선장이 물었다.
그러자 세 사람은 헛기침으로 다소 얼버무리는 외에는 아무 대꾸도 못했다. 지금 어떤 낙관론을 펴는 것은 유치하고 어리석은 일임을 그들 모두가 느꼈지만, 분명히 좀 전의 희망적 상황인식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런 때 젊은 사람은 고집 세게 생각하는 법이다. 반면에,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공개적으로 절망을 공언하는 것 역시 상황윤리로 금물이다. 그래서 그들은 입을 다문 것이다.
“걱정 마, 우린 무사히 육지에 닿을 거야.”하고 선장이 부하들을 달랬다.
그러나 그의 어조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기에 주유사가 입을 열었다.
“암요! 이 바람이 바뀌지만 않는다면!”
요리사는 물을 퍼내고 있었다. “암요! 육지 근처의 파도에서 깨지지만 않는다면.”
갈매기들이 먼 곳, 가까운 곳에 날고 있었다. 이따금 갈매기들은 마치 강풍에 빨랫줄에서 나부끼는 양탄자같이 파도를 타고 구비치는 갈색의 해초뭉치 근처 물위에 내려앉았다. 새들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고, 그 모습을 배에 탄 사람들은 부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이 새들은 수천 마일 내륙지방에 있는 뇌조(雷鳥)무리가 이 노한 바다의 격동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금도 두려워하는 눈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갈매기들은 가끔 배에 아주 가까이까지 접근하여 까만 구슬 같은 눈을 똑바로 뜨고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볼 때, 그 갈매기들의 모습에는 어딘가 음산하고 불길한 구석까지 있어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노한 음성으로 저리가라고 쫓는 것이었다. 그중 한 마리가 날아와서 선장의 머리 위에 내려앉을 기세를 보였다. 그 갈매기는 배와 평행하여 날면서 선회하지 않고 병아리 모양으로 공중에서 짧게 옆으로 날았다. 그 갈매기의 시선은 선장의 머리 위에 끈덕지게 고정되어 있었다.
“고약한 놈.”하고 주유사가 말했다. “네 꼬라지가 마치 재크나이프를 깎아 만든 놈 같구나.” 요리사와 종군기자도 갈매기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선장은 물론 밧줄로 그 갈매기를 후려치고 싶었으나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자칫 몸을 잘못 놀리다가는 과중한 짐을 실은 이 배가 전복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빈손으로 조심해서 부드럽게 그 갈매기를 쫓았다. 새가 착륙의 의도를 포기하고 난후 선장은 자기의 머리가 안전하여졌기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다른 사람들도 왠지 소름끼치고 불길한 것으로 여겨졌던 새가 사라졌기에 역시 안심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주유사와 종군기자가 노를 저었다. 젓고 또 저었다.
그들은 같은 좌석에 나란히 앉아 각기 노 하나씩을 저었다. 그러다가 주유사가 두 개를 다 저었다. 다음엔 종군기자가 두 개를 다 저었고, 다음엔 주유사, 그 다음엔 종군기자가 노를 저었다. 그들은 노를 젓고 또 저었다. 선미에 비스듬히 누웠던 사람이 노 저을 차례로 자리바꿈 할 때면 아주 미묘한 장면이 벌어졌다. 작은 배에서 자리바꿈을 하는 것보다는 암탉이 끼고 있는 계란을 훔쳐내는 쪽이 훨씬 쉬운 노릇이었다. 먼저 고물에 있는 사람이 뱃전에 의지하면서 마치 자기 몸이 세브르의 고급도자기나 되듯이, 조심조심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면 노를 젓던 쪽이 반대편 뱃전을 손으로 잡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 과정은 각별하게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이뤄졌다. 그들이 서로 몸을 옆으로 돌리며 엇갈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밀어닥치는 파도를 눈여겨 주시했다. 그리고 선장이 외쳤다. “조심해! 조심해!”
이따금 나타나는 갈색의 해초뭉치는 섬이나 땅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들은 분명히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모로나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그것은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배가 서서히 육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주는 구실을 했다.
이물간에는, 배가 커다란 파도를 타고 높이 솟은 뒤에, 조심스럽게 일어서 본 선장은 모스키토 인레트의 등대가 보였었다고 말했다. 이윽고 요리사도 자기 역시 보았노라고 말했다. 그때 종군기자가 노를 젓고 있었는데, 딱히 왠지는 몰라도 자기도 그 등대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육지를 등지고 앉아 있었고, 파도를 조심하는 것이 더 중요하였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동안 고개를 돌려볼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드디어 약간 약한 파도가 닥치는 기회를 포착하여, 배가 그 정상에 올랐을 때 빨리 고개를 돌려 서쪽 수평선을 훑어보았다.
“보여?”하고 선장이 물었다.
“아뇨.”하고 종군기자가 천천히 말했다.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다시 봐요.”하고 선장이 말하면서 손가락질했다. “바로 이 방향으로.”
다음 파도 꼭대기에서 종군기자는 지시된 방향을 보았다. 이번에는 요동하는 수평선상에 움직이지 않는 작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꼭 바늘 끝만 한 것이었다. 그렇게 작은 등대를 찾아낸다는 것은 애탄 눈이 아니고서는 못 할 일이었다.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요, 선장님?”
“풍향이 바뀌지 않고, 이 배가 침몰하지 않으면, 저리로 안 갈 도리도 없겠지.”하고 선장이 답하였다.
산 같은 파도에 밀려 출렁이고, 그 파도의 꼭대기에서는 무서운 물벼락을 맞는 이 작은 배는 주위에 해초뭉치가 없을 때는 전진하는지 안 하는지조차 가름할 수 없는 속도로 전진하였다. 그 배는 오대양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기적적으로 뒤집히지 않고 출렁이는 미미한 물건같이 보였다. 이따금 물벼락이 마치 흰색의 화염처럼 그들을 뒤덮었다.
“요리사, 물을 퍼내게.”하고 선장이 조용히 말했다.
“알았습니다, 선장님.”하고 요리사가 명랑하게 응답하였다.
3
바다에서 난파당한 사람들 사이에 싹트는 우애(友愛)를 글로 묘사하기는 매우 어렵다. 아무도 그렇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이에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애는 이 배에 깃들었고, 각자는 그것이 자기를 훈훈하게 덥혀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주특기는 선장, 주유사, 요리사, 종군기자로 각각 달랐지만 그들은 이제 친구였고, 보통의 경우 이상으로 철통같이 다져진 우정으로 묶인 친구들이었다. 부상으로 이물간의 음료수통에 기대어 누워있는 선장은 항상 낮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지만, 이들 세 사람의 잡탕 승무원들 이상으로 더 순종적이고 민첩하게 분부를 받들던 부하를 보질 못했다. 그것은 공동의 안전을 위한 최선책을 인정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뭔가 개인적이고도 흉금을 트고 느끼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선장을 위한 헌신적 노력 다음에는 서로간의 동지애가 있었다. 그것은, 예컨대 인간을 냉소적인 눈으로 보도록 교육받았던 종군기자 같은 사람까지도 이것이 그의 인생에서 최고의 경험임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이에 언급하지도 않았다.
“돛이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선장이 말했다. “내 외투를 노에다 걸쳐볼까. 그럼 자네들이 좀 쉴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서 요리사와 종군기자가 돛대를 붙잡고 외투를 펼쳐들었다. 주유사가 키를 잡았더니 새로운 장비를 갖춘 배가 꽤 속력을 내며 전진하였다. 이따금 주유사는 파도가 부서져 덮치는 것을 막기 위해 날카롭게 고물노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그 외에는 돛을 단 것이 대성공이었다.
그동안에 등대는 서서히 커져 보이고 있었다. 이젠 거의 색깔을 띨 정도였고, 수평선상에 회색의 작은 그늘처럼 보였다. 이 작은 회색의 그림자를 훔쳐보기 위하여 노꾼들이 자주 고개 돌려 뒤돌아보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마침내, 요동하는 파도의 정상에 배가 올랐을 때마다 사람들은 이제 육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등대가 하늘 속에선 꼿꼿한 그림자였다면 육지는 바다와 접한 길고 검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그것은 분명히 종잇장보다도 얇은 것이었다. “우리 위치는 뉴 스머나 바로 반대쪽이 돼 있을 거야.”하고 요리사가 말했는데, 그는 이 해안지방을 스쿠너로 자주 왕복했었다. “헌데 선장님, 저기 있는 해난 구조소는 약 1년 전에 폐쇄됐던 생각이 납니다.”
“그랬어?”
서서히 바람이 잤다. 이제 요리사와 종군기자는 노를 높이 쳐들기 위해 고생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파도는 여전히 밀어 덮쳐댔고, 전진하지 못하는 이 작은 배는 그 파도를 넘느라고 호되게 애를 먹었다. 주유사와 종군기자가 번갈아 노를 저었다.
배가 난파하는 것은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승무원들이 그에 대한 대비훈련을 쌓고, 또 최상의 컨디션일 때 그런 사고가 나게 만들 수만 있다면 바다에서 익사하는 사람의 수효가 줄어들 것이다. 이 작은 배에 탄 네 사람 중 아무도 이 구명정에 올라타기 전 2주야동안 잠잤다고 할 만큼 눈을 붙여보지도 못했고, 또 배가 침수되어 허덕이는 갑판에서 우왕좌왕하는 동안 배불리 먹어두는 것도 잊었었다.
이런저런 이유와 다른 이유 때문에 주유사도 종군기자도 지금 노젓는 일에 신물이 나 있었다. 종군기자는 도대체 이 세상에서 노젓는 일을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천진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악마적 징벌이었다. 제아무리 정신이상에 걸린 사람이라도 노젓기란 근육에 대한 적이요 잔등이에 대한 죄악이라는 결론을 내릴 도리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가 좌중의 사람들에게 노젓기에 관한 그에 생각을 피력했더니 피곤에 지친 얼굴의 주유사가 전적으로 동감이라는 듯이 미소 지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배가 침몰하기 전에 주유사는 기관실에서 교대 없이 이중으로 연속근무를 했었다.
“쉬어가며 하라구.”라고 선장이 말했다. “기운을 다 빼지 말아. 육지 근처에서 파도를 뚫으려면 헤엄을 쳐야 할 테니까 기운이 있는 대로 다 필요하게 돼. 천천히 쉬면서 노를 저으라구.”
바다 위로 육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검은 선에 불과했던 것이 검은 선, 흰 선, 나무, 백사장 등으로 변하였다. 마침내 선장은 해안에 집 한 채가 보인다고 말했다. “그게 대피소 건물일 거야, 틀림없이.”라고 요리사가 말했다. “머지않아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이리로 마중 나올 거야.”
먼 곳의 등대가 높이 서 있었다.
“등대지기가 망원경으로 보고 있다면 우리를 알아볼 텐데.”라고 선장이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이 구조대에게 연락하겠지.”
“우리 배의 다른 구명정들 중 하나도 해안에 닿아서 사람들에게 난파소식을 알리지 못했을 거야.”라고 주유사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만약 그랬다면 구조대의 구명정들이 우릴 찾느라고 이 근처에 출동해 있을 텐테.”
바다로부터 육지가 서서히 그리고 아름답게 부상했다. 바람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북동풍이었던 것이 동남풍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여태껏 못 듣던 새로운 소리가 그들 귀에 들렸다. 그것은 해안을 치고 부서지는 파도의 소리였다.
“이젠 아예 등대 쪽으론 못가겠는데.”라고 선장이 말했다. “뱃머리를 약간 더 북쪽으로 돌리게, 빌리.”하고 선장이 말했다.
“약간 더 북쪽으로, 알았습니다.”라고 주유사가 복창했다.
그래서 배는 다시 한번 바람을 등지도록 뱃머리를 돌렸고, 노꾼을 빼고는 모두가 가까워지는 육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육지가 접근함에 따라서 의구심과 불안이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사라져가고 있었다. 배를 가누는 것이 아직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명랑한 기분이 서서히 감도는 것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한 시간쯤 뒤에는 육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의 등뼈는 이제 이 배에서 균형을 잡는 데 익숙하였기에 야생의 망아지처럼 날뛰는 이 배를 마치 곡마단 단원처럼 솜씨 좋게 타내었다.
종군기자는 온몸이 흠뻑 물에 젖었다고 생각했지만 우연히 웃옷 호주머니를 만지다가 여덟 개비의 여송연을 발견했다. 네 개는 바닷물에 젖었지만 네 개는 말짱하였다. 여기저기 뒤진 끝에 누군가가 세 개비의 건조한 성냥을 찾아냈다. 그래서 장차 있을 구조의 보장을 눈앞에 두고, 이 네 명의 집 없는 천사들은 작은 배를 탄 채로 커다란 여송연을 뻐끔거리며 인간들의 선악에 관한 심판을 내려 보았다. 모두 물 한 모금씩을 마셨다.
4
“여보게, 요리사, 자네가 말하는 대피소엔 전혀 인기척이 없구먼.”하고 선장이 입을 열었다.
“정말요.”하고 요리사가 대꾸했다. “우리를 못 보다니 이상한데!”
넓고 낮은 해변이 사람들 눈 아래에 펼쳐졌다.
나직한 사구(砂丘) 위에 군데군데 검게 식물이 무성한 것이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는 분명했고, 이따금 육지로 달음질쳐 올라가는 파도의 흰 혓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집 한 채가 하늘에 검게 윤곽 잡혀 보였다. 남쪽에는 날씬한 등대가 회색의 모습을 우뚝 드러내 보였다.
조류와 바람과 파도가 배를 북쪽으로 몰아쳤다.
“우리를 못 보다니 이상하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여기서는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약간 잠잠했지만, 그래도 그 소리는 여전히 천둥 같고 막강했다. 배가 커다란 파도를 타고 넘었을 때, 그들은 앉아서 그 포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배는 틀림없이 전복할 거야.”라고 모두들 말하였다.
반경 20마일 이내에 해난구조소가 없었음이 사실이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몰랐었고, 따라서 그들은 구조소에 근무하는 구조원들의 시력을 나무라는 야무지고 상스러운 욕설을 퍼부었다. 상을 찌푸리고 이 배에 앉은 네 사람은 욕설 창조의 신기록을 세웠다.
“우릴 못 보다니 이상한데.”
아까까지의 명랑한 기분이 완전히 사라졌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들은 근무자들의 온갖 무능, 무지, 심지어는 비겁까지도 상상하여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사람이 사는 육지가 코앞에 있는데도 거기로부터 아무도 구조의 손을 뻗쳐주지 않는 것을 사뭇 원망했다.
“하는 수 없지.”하고 드디어 선장이 말했다. “우리가 한번 시도해볼 밖에. 여기 너무 오래 있다가는 배가 침수한 뒤에 헤엄칠 기운이 남아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거야.”
그래서 노젓고 있던 주유사가 배를 곧바로 해안선 쪽으로 돌렸다. 온몸이 갑자기 긴장했다. 모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모두 함께 육지에 도달하지 못하면―――”하고 선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육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내 최후에 관한 소식을 어디다 전해야 할지 자네들 알고 있겠지?”
이어서 그들은 서로 주소와 부탁의 말을 교환했다. 이들 머릿속을 오간 생각은 큰 분노에 차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익사해야 한다면―――내가 익사해야 한다면―――내가 익사해야 한다면, 바다를 지배하는 일곱 해신의 이름을 빌어, 무슨 까닭에 여기까지 와서 모래와 나무만을 사모해야 함이, 내게 허락된 전부일까? 드디어 성스러운 생명의 치즈를 막 맛볼 수 있기 직전에 내 코를 딴 곳으로 끌어가기 위하여 여기까지 나를 보냈더란 말인가? 그건 터무니없는 일이다. 운명의 여신이란 얼간이가 하는 짓이 겨우 이것뿐이라면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권한을 빼앗아야 마땅하다. 여신은 자기 의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노파에 불과하다. 나를 익사케 하도록 결정했었다면 왜 애당초에 죽여서 그 동안의 고통을 면하게 못하였느냔 말이다. 이 사건 전부는 부조리하다…… 그러나 아니다, 운명의 여신이 나를 익사케 할 리가 없다. 감히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할 리가 없다. 이렇게 고생시킨 뒤에 말이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하늘의 구름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래 나를 물에 빠져죽게 해 봐라, 그럼 내가 너를 뭐라고 욕할는지 들어보렴!”
바로 이때에 밀어닥친 큰 파도는 그것들 중 특대호(特大號)였다. 파도는 이 작은 배를 부수고 물거품 속에 흩트리려는 듯이 보였다. 그 파도의 포효소리는 사전준비나 하는 듯이 길게 이를 가는 소리로 들렸다. 바다에 낯선 사람들 중 누가 감히, 이 작은 배가 그렇게 엄청난 파도의 높이를 따라 올라갈 수 있으리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으랴. 해안은 아직도 멀었다. 주유사는 노련한 수부였다. 그는 재빨리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3분을 더 지탱 못할 텐데 헤엄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어요. 선장님, 배를 다시 외해(外海)로 뺄까요?”
“좋소, 빼시오!”라고 선장은 말했다.
주유사는 기적적으로 그리고 민첩하고 착실한 솜씨로, 밀치는 파도 한 복판에서 배를 돌려 다시 안전한 외해로 나왔다.
배가 구비치는 파도를 타고 흔들리면서 다시 깊은 바다로 나갔을 때 깊은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누군가가 우울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하여튼 지금쯤은 해변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봤겠지.”
갈매기들이 바람을 뚫고 회색의 황량한 동녘을 향해 빗겨 날아올라갔다. 거무칙칙한 구름장, 그리고 마치 불타는 건물에서 나는 연기 같은 붉은 빛의 구름장이 몰고 오는 질풍이 동남쪽으로부터 불어 닥쳤다.
“저 구조대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지? 참 귀여운 양반들이지?”
“우릴 아직도 못 보다니 이상하군.”
“어쩌면 우리가 스포츠 삼아 여기서 이러고 있는 줄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낚시질이나 하는 걸로 볼지도 모르지. 어쩌면 우리를 바보천치로 볼지도 몰라.”
지루하게 긴 오후였다. 조류가 바뀌어 배를 남쪽으로 밀어내려 하였으나 바람과 파도는 북쪽으로 쏠렸다. 저 멀리, 해안선과 바다와 하늘이 어울려 거대한 각을 이루는 곳에는 해안도시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르는 작은 점이 보였다.
“스튼 오거스틴인가?”
선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기엔 모스키토 인레트에 너무 가까워.”
부단히 주유사가 노를 저은 다음 종군기자가 저었다. 다시 그 후에 주유사가 교대하였다. 그것은 진을 빼는 일이었다. 한 인간의 등짝이 1개 연대병력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아픔과 고통의 한계보다도 더 많은 아픔을 느끼게 하는 자리가 되었다. 등짝은 비록 비좁은 넓이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근육의 상충, 얽힘, 댕기기, 매듭, 기타의 고통의 자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빌리, 노젓기를 좋아한 적 있었소?”하고 종군기자가 물었다.
“천만에, 빌어먹을!”하고 주유사가 답했다.
노 저을 자리를 물려주고 뱃바닥에 누울 때에는 육신의 힘이 빠져 손가락을 놀려보는 외에는 세상에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 빠진다. 뱃바닥에는 찬 바닷물이 출렁이는데 그는 그 속에 첨벙 눕는다. 가로장 대를 베게삼아 누운 그의 머리는 파도의 정상으로부터 불과 수 인치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며, 그나마 이따금 각별히 거센 파도가 밀어닥치면 물벼락이 쳐서 다시 홈빡 물을 뒤집어쓴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하나도 괴롭지 않다. 만약 배가 전복했다면 그는 마치 푹신한 매트리스라도 만난 듯이 대해(大海) 위에 안락하게 몸을 내던졌을 게다.
“저기 봐, 해변에 사람이 있다!”
“어디?”
“저기! 보여? 보여?”
“맞았어! 걸어가고 있다.”
“이제 멈췄어, 저것 봐! 우리 쪽을 보고 있어!”
“우릴 보고 손을 흔들어!”
“맞았어! 정말야!”
“아, 이젠 살았다! 이젠 살았어! 반시간 이내에 구명정이 나올 거야!”
“저 사람이 가고 있어, 달리기 시작했어. 저기 저 집 쪽으로 가고 있어.”
먼 해변은 바다보다도 낮게 보였고, 그들은 노를 저어서 그 막대기 있는 곳으로 갔다. 괴상하게도 우연한 일로 배 속에는 목욕타월 한 장이 있었다. 선장은 타월을 그 막대기에 잡아매어 흔들어 보였다. 노를 젓는 사람은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딴 사람에게 물어볼 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 사람 지금 뭘 하고 있지?”
“지금은 다시 움직이지 않고 서 있어. 아마 유심히 보고 있나봐……다시 움직여. 집 쪽으로……이제 다시 멈췄어.”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
“아니, 지금은 아냐! 아까는 그랬었는데.”
“저것 봐! 사람이 또 하나 나왔어!”
“저 사람은 뛰고 있어.”
“저 달리는 꼴 좀 봐!”
“아니, 자전거를 탔어. 이제 아까 그 사람과 만났어. 두 사람 다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 저것 봐!”
“뭔가 해변으로 올라오고 있다.”
“도대체 저게 뭐지?”
“배같이 보이는데.”
“암, 틀림없이 배일 거야.”
“아냐, 바퀴가 달렸는데.”
“맞아, 그래. 하지만 구명정일 거야. 해변에서는 구명정을 마차에 싣고 끄는 법이니까.”
“저건 틀림없이 구명정이야.”
“아냐, 저건, 버스야.”
“구명보트라니까.”
“아냐! 저건 버스야. 이젠 확실히 보여. 맞지? 호텔에서 쓰는 합승버스야.”
“옳아, 그 말이 맞았어. 틀림없이 버스야. 버스를 가지고 뭘 하는 거지! 어쩌면 타고 돌아다니면서 구조대원을 집합시키는지도 모르지.”
“그럴듯한데, 저것 봐! 작은 검정색 깃발을 흔드는 사람이 있어. 버스의 승강구에 서 있어. 아까 그 두 사람이 다가오고 있어. 이제 모두 함께 얘기를 하고 있어. 깃발을 든 사람을 잘 봐요. 깃발을 흔드는 게 아닌지도 모르겠어.”
“저런 깃발이 아니잖아! 저건 그 사람 재킷이야. 틀림없어, 자기 재킷이야.”
“맞았어. 그 사람 재킷이야. 재킷을 벗어서 머리 위에서 휘두르고 있는 거야. 재킷 흔드는 꼴 좀 봐요.”
“아, 하지만 여기에는 해난구조소가 없어요. 저건 겨울철 피한 휴양호텔에서 손님들을 버스에 태우고 와서 우리가 물에 빠지는 것을 구경시키는 거야.”
“재킷을 흔드는 바보 녀석은 뭘 하고 있는 거지? 도대체 무슨 신호지?”
“우리를 보고 북쪽으로 가라고 말하려는 것 같아. 그 쪽에 가면 구조소가 있는 게 틀림없어.”
“아냐! 저 사람은 우리가 고기잡이하는 걸로 생각하는 게 틀림없어. 그래서 그냥 우릴 보고 아는 체하는 것뿐야. 그렇지? 윌리?”
“저 신호를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무슨 뜻일까?”
“아무 뜻도 없어. 저 사람은 그냥 놀고 있는 거야.”
“저 사람의 신호가 우리보고 상륙을 다시 시도해보라든지, 외해로 나가서 기다리라든지, 북쪽으로 가라든지, 남쪽으로 가라든지, 지옥으로 빠지라든지―무엇이든 한 가지 뜻이 있다면 그럴듯하겠지만. 저놈 봐! 저놈은 그냥 저기 서서 재킷을 바퀴 돌리듯 돌리고만 있으니, 바보 같은 놈!”
“사람들이 더 오고 있는데.”
“이젠 꽤 큰 군중이 되었는데. 저것 봐! 저건 배가 아닌가?”
“어디? 아, 알겠어, 저건 배가 아니야.”
“저 사람은 아직도 재킷을 휘두르고 있어.”
“아마 우리가 그 꼴을 보고 좋아하는 걸로 아는 모양이지? 아무 의미도 없는 저 짓을 왜 그만두지 않을까?”
“나도 모르겠어. 우리보고 북쪽으로 가라고 말하는 것 같아. 그쪽 어디에 구조소가 있을 거야.”
“아직도 지치지 않고 휘두르고 있는 꼴 좀 봐.”
“언제까지 저럴 셈이지. 우리를 본 뒤 내내 재킷을 휘두르고 있는데. 저 천치 같은 놈. 왜 사람을 동원해서 배를 내지 않느냔 말야. 낚싯배, 돛을 단 작은 낚싯배 같으면 무난히 여기까지 나올 수 있을 텐데. 왜 아무 대책도 안 세울까?”
“이젠 다 잘 될 거야.”
“이제 우리를 봤으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배를 내서 이리로 올 거야.”
나직한 육지 위 하늘에 노리끼리한 색조가 깃들었다. 바다 위의 그늘이 서서히 짙어졌다. 이와 더불어 바람에 냉기가 서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떨기 시작했다.
“제기랄!”하고 그들 중 한 사람이 기분 언짢은 심정을 토로했다. “여기서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건가! 여기서 밤새껏 침몰하고만 있을 건가!”
“여기서 밤을 새우게야 되겠어? 걱정 마! 우릴 봤으니까 머지않아 우리를 구하러 이리로 나올 거야.”
해변은 차츰 어두워졌다. 재킷을 휘두르는 사람의 모습도 차츰 이 어둠속에 녹아들었고, 그 어둠은 마찬가지로 버스와 다른 사람들도 차차 삼켜버렸다. 뱃전을 우렁차게 때리며 물벼락이 칠 때면 사람들은 몸을 움츠리면서 마치 부젓갈로 낙인을 찍히는 사람처럼 비명을 질렀다.
“저고리를 휘두른 놈을 잡았으면 좋겠다. 그 놈을 이 물 속에 퐁당 잡아넣고 목욕을 시켜봤으면.”
“왜? 그 사람이 어쨌기에?”
“아니 아무 짓도 안 했어. 녀석 매우 즐거워 보였으니까 말이지.”
그러는 동안에 주유사가 노를 저었고, 다음에는 종군기자가, 또 그다음에는 다시 주유사가 노를 저었다. 잿빛 얼굴로 몸을 앞으로 숙인 그들은 납덩이 같이 무거운 양쪽 노를 번갈아 번갈아 기계적으로 놀렸다. 등대의 모습은 남쪽 수평선상으로부터 사라졌다. 드디어 희미한 별 하나가 수평선상 바다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것을 함께 삼키는 암흑이 오기 전에 서쪽 하늘은 한 때 얼룩진 노을이 스쳤고, 동쪽바다는 이미 검은 색이었다. 육지도 그 모습이 사라졌고, 다만 낮고 적막한 우레 같은 파도 부서지는 소리만 그 존재를 알렸다.
“내가 익사해야 한다면―내가 익사해야 한다면―내가 익사해야 한다면, 바다를 지배하는 칠(七) 해신의 이름을 빌어, 무슨 까닭에 여기까지 와서 모래와 나무만을 사모해야 함이, 내게 허락된 전부일까? 드디어 성스러운 생명의 치즈를 맛볼 수 있기 직전에 내 코를 당겨 딴 곳으로 끌어가기 위해 여기까지 날 보냈더란 말인가?”
물통 위에 몸을 굽힌 인내심 많은 선장은 가끔 노를 젓는 사람에게 주의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뱃머리를 바로 잡아! 뱃머리를 바로잡아!”
“네, 뱃머리를 바로잡겠습니다.”하고 복창하는 음성은 피곤에 지치고 낮은 음성이었다.
분명히 고요한 저녁이었다. 노꾼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닥에 철퍽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노꾼의 눈에는, 이따금 정상의 작은 파도가 으르렁대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그지없이 불길한 침묵 속에 밀어닥치는 검은 파도가 가까스로 시야에 들어올 뿐이었다.
요리사는 가로장 막대에 이마를 대고 엎드려 있었다. 그는 코 밑의 물을 아무 관심 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전혀 딴 광경이 차 있었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빌리, 어떤 종류의 파이를 제일 좋아하지?”하고 그는 꿈꾸듯이 중얼거렸다.
5
“파이라구?”하고 주유사와 종군기자가 정신이 번쩍 든 듯 동시에 소리쳤다.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 몹쓸 친구!”
“글쎄, 방금 햄샌드위치 생각이 나서 말야, 그리고―”하고 요리사가 말했다.
덮개가 없는 구명보트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은 지루했다. 드디어 밤이 깃들자 남쪽 바다에서 걷혀지는 광선이 완전한 황금빛으로 변하였다. 북쪽 수평선상에는 수면 바로 위를 감도는 푸르스름한 광채의 작은 불빛이 새로이 피어올랐다. 이 두 가지 빛이 지금 온 누리의 유일한 장식물이었다. 그 밖에는 파도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람이 고물간에 움츠리고 있었다. 노꾼이 다리를 뻗으면 고물에 누워있는 사람들 밑으로 발을 넣어 온기를 얻을 수 있으니 이 배의 크기가 얼마만 한지는 가히 짐작이 가리라. 사실상 고물에 누운 사람이 뻗은 다리는 중간에서 노꾼의 좌석 밑을 통과하여 반대편에 있는 선장한테까지 닿을 지경이었다. 이따금, 피곤에 지친 노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도가 뱃전으로 넘쳐들어 얼음같이 찬 밤바다의 물을 퍼부어 사람들을 다시 찬물에 흠뻑 젖게 만들었다. 그럴 때면 그들은 몸을 꼬고 신음소리를 낸 다음 다시 깊은 잠에 취했고, 뱃바닥에 고인 물은 배의 요동과 함께 이리저리로 밀고 써는 것이었다.
주유사와 종군기자가 사이의 교대계획은 한 사람이 더 이상 노를 젓지 못할 때까지 젓다가, 뱃바닥의 바닷물 시트에 누워있는 상대방을 깨우는 거다. 주유사는 고개가 앞으로 숙여지고, 몰아닥치는 잠에 눈이 안 보이게 될 때까지 노를 저었다. 그런 뒤에도 그는 더 저었다. 그런 후에 그는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 이름을 부르고 흔들며, “잠깐 교대해 주겠나?”하고 미안한 듯이 말했다.
“물론이지, 빌리.”하며 종군기자는 잠을 깨어 몸을 채찍질하여 일어나 앉는다. 그들은 조심해서 자리바꿈을 하고, 주유사는 바닥에 고인 물속에 누워있는 요리사 곁에 쓰러지자마자 이내 곯아떨어져 버렸다.
심한 바다의 격동은 이제 멎었다. 밀리는 파도 소리도 이제는 이를 갈지는 않았다. 노꾼의 임무도 뱃머리의 방향을 잘 잡아주어 파도의 출렁임이 배를 뒤집지 못하도록 막아주고, 파도의 정상이 스치고 지나갈 때에 배에 물이 차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일뿐이었다. 검은 파도가 소리 없이 밀려오기 때문에 어둠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거의 뱃머리 위에 덮치고서야 비로소 노꾼이 그것을 알아차리는 때도 자주 있었다.
낮은 목소리로 종군기자가 선장에게 말을 걸었다. 이 무쇠 인간 같은 선장은 언제나 눈을 뜨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기자는 그가 깨어 있는지 잠을 자고 있는지 확신을 못 했다.
“선장님, 배를 저 북쪽 불빛 쪽으로 향하게 할까요?”
여전히 침착한 음성이 대답했다.
“그러시오. 왼쪽 뱃머리와 그 불빛 사이에 2포인트(방위각) 간격을 두시오.”
요리사는, 코르크로 만들어진 조잡한 물건이나마 그것이 추위를 막는 도움이 될까 하여 구명대를 착용한 채로 잠자고 있었다. 그래서 노꾼이 교대하자마자 덜덜 떨리는 추위에 잇소리를 내며 어김없이 요리사 곁에 쓰러져 잠들 때, 그는 마치 난로처럼 보였다.
종군기자는 노를 저으면서 발치에서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요리사의 한 팔은 주유사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찢어진 옷, 핼쑥한 얼굴을 한 그들은 바로 바다의 젖먹이, 숲속의 젖먹이들을 기괴하게 그려 놓은 형국이었다.
뒤에, 아마도 그가 멍청하게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 모양인지 와락 파도가 소리를 내며 배 위로 덮쳤다. 구명대를 착용한 요리사가 바다로 떠내려가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요리사는 계속 잠을 잤지만 주유사는 눈을 껌뻑이며 새삼 추위에 떨면서 일어나 앉았다.
“빌리, 정말 미안해.”하고 종군기자가 사죄했다.
“괜찮아.”하고 주유사는 다시 눕자마자 잠들어버렸다.
이윽고 선장마저도 꾸벅꾸벅 졸았다. 그래서 종군기자는 이 세상 바다 위에 떠 있는 사람은 자기뿐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파도를 타고 건너오는 바람은 소리를 내었고, 그 소리는 이 세상의 끝보다도 더 슬픈 소리였다.
배 뒤쪽에서 갑자기 길게 물을 가르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푸른빛의 화염 같은 인광(燐光) 한 줄기가 검은 파도를 갈랐다. 마치 거대한 칼날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종군기자가 놀라서 입을 벌린 채로 바다를 바라보았으나 모든 것이 고요하였다.
갑자기 또 한 번 물을 가르는 소리가 나고 푸른 불빛이 다시 또 번득였는데, 이번에는 배의 옆구리 쪽이었다. 노를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 종군기자는 거대한 지느러미가 그림자처럼 물을 가르고 달리며, 물방울을 알알이 흩날리며 길게 빛나는 자국을 남기는 것을 보았다.
종군기자는 어깨너머로 선장을 쳐다보았다. 선장의 얼굴은 가려져있었고 아마 잠들어 있는 듯싶었다. 기자는 바다의 젖먹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분명히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하소연 할 곳 없는 종군기자는 한쪽으로 약간 비켜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낮은 음성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배 곁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왼편 아니면 오른편에, 길게 혹은 짧게 간격을 두고, 그 물방울 튀기는 섬광이 나타났으며, 검은 지느러미가 부르르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놈의 속력과 힘은 감탄할만했다. 그것은 거대한 포탄 같은 힘으로 바닷물을 갈랐다.
그러나 꾸준히 따라오는 이놈의 존재도 만약 들놀이에 나선 사람이 보았다면 꽤 질겁하였겠지만 지금 난파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겁을 주지 못하였다. 그는 다만 맥없이 바다를 들여다보면서 나직한 소리로 욕을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가 놈과 단둘만 있기를 원치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는 동료 중 누구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우연히 잠 깨어 함께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선장은 물통을 안은 채 굳어 있었고, 주유사와 요리사도 바닥에 누워 끝없는 잠에 빠져 있었다.
6
“내가 익사해야 한다면―내가 익사해야 한다면―내가 익사해야 한다면, 바다를 지배하는 세븐 해신의 이름을 빌어, 무슨 까닭에 여기까지 와서 모래와 나무만을 사모해야 함이, 내게 허락된 전부일까……?”
이 음산한 밤사이에, 그것이 언어도단의 부당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미친 세븐 해신이 자기를 익사케 하려고 작정한 게 아닐까하고, 그는 결론짓지 않을 수 없었음을 여기에 밝혀둔다. 이처럼 사력을 다해 노력한 사람을 익사케 함은 진정 언어도단의 부당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한 처사를 극히 부자연스러운 죄악이리라고 느꼈다. 하기야 갤리선이 오색 돛을 달고 운집하던 시대 이래로 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자연이 그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아 그를 처치했고, 우주가 손실을 입은 게 아니라는 것을 그가 눈치 챘을 때, 그의 첫 반응은 신전을 향해 벽돌장을 던지고 싶은 심경이 되지만, 다음엔 던질 벽돌도 맞을 신전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이것을 증오한다. 눈에 보이는 자연의 표현은 어느 것이나 그의 비웃음의 표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욕할 구체적 대상이 없을 때에 그는 우상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애원해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에 대한 자연의 응답은 겨울밤하늘에 박힌 차가운 별, 바로 그것이라고 그는 느낀다. 그런 뒤부터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의 비애를 깨닫는다.
이 작은 배에 탄 사람들은 이런 주제를 놓고 상의해본 것은 아니지만, 각자 마음속에서 말없이 되씹어 보았음에 틀림없다. 그들 얼굴에는 통틀어 매우 지쳤다는 표정 이외에는 아무런 다른 표정이 없었다. 주고받는 말은 오로지 배를 조종하는 것에 국한되었다.
종군기자의 이런 기분이 노래로 표현되려한 것인 냥, 까닭 없이 의문 한 토막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자기가 그 구절을 잊었었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있었지만, 느닷없이 그것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외인부대 병사가 알지에에서 죽어가노라,
여인의 보살핌도 여인의 눈물도 없이,
다만 곁에 서 있는 전우의 손을 잡으며,
“난 영영 내 고국을 못 보겠지.”라고 말했노라.
어렸을 때, 종군기자는 외인부대의 병사가 알지에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었지만, 그는 그 사실을 하나도 중요하게 느끼지 않았었다. 수 없이 많은 동급생들이 그 병사의 곤경을 그에게 떠들썩하게 일러주었지만 결과는 그의 완전한 무관심 외의 아무 결과도 낳지 못했다. 그는 외인부대의 병사가 알지에에서 죽어간다는 사실을 자기와 관련 있는 일로 생각해보질 않았고, 또 슬퍼할만 한 일이라고 여긴 적도 없었다. 그에게는 연필알이 부러지는 일보다도 더 사소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것이 기묘하게도 인간적이고 생명력 있는 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이제 차를 마시면서 난로 앞에서 발을 따뜻하게 녹이고 있는 시인의 심금을 울린 몇 구절의 싯귀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엄숙하고 구슬프고 섬세한 하나의 현실로 부각되는 것이었다.
종군기자는 그 병사의 모습을 명백하게 볼 수 있었다. 병사는 모래 위에 발을 뻗은 채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다. 그의 핏기 없는 왼손이 사라지려는 생명을 붙잡으려고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았으나 그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린다. 저 멀리 알제리아의 지평선에는 노을져가는 서쪽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나직한 도시의 윤곽이 보인다. 점차로 둔해지는 그 병사의 입술 움직임을 마음속에 그려보면서 지금 열심히 노젓고 있는 종군기자는 애틋하고도 그지없이 사심(私心)없는 이해에 감정이 격해진다. 그는 알지에에서 죽어가고 있는 그 병사에 동정하는 것이었다.
배를 따라오며 시기를 기다리던 놈은 시간이 너무 지체되니까 지루해진 모양이었다. 칼로 물을 가르는 듯한 소리도 안 들리고 인광의 긴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 북쪽의 불빛은 여전하였지만 배와의 거리가 더 가까워지지 않는 듯하였다. 이따금 파도가 부서지는 굉음이 종군기자의 귀에 들렸고, 그럴 때면 그는 배를 외해 쪽으로 돌리고 힘을 다하여 노를 저었다. 남쪽에는 누군가가 해변에다 화톳불을 피웠는지 그 불빛이 보였다. 물론 너무 멀고 낮았기 때문에 화염이 직접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 배면에 있는 절벽에 그 반사광이 장밋빛으로 어른거리는 것을 배에서 볼 수 있었다. 거센 바람이 느닷없이 불어와서 파도가 살쾡이처럼 덮쳤고, 파도의 정상은 빛나는 포말로 부서졌다.
이물간에서 선장은 물통에 의지하며 일어나 앉았다.
“되게 밤이 길군.”하고 선장은 종군기자에게 말을 걸었다. 선장은 해안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구조소 친구들 꽤나 늑장 부리네.”
“아까 상어가 설치는 것 보셨어요?”
“응, 봤어. 되게 큰 놈이더군.”
“깨 있으신 걸 알았더라면 마음이 든든했었을 텐데.”
잠시 후 종군기자는 뱃바닥을 행해 말했다.
“빌리!” 서서히 그의 잠이 깨어나는 눈치였다. “빌리, 좀 교대해 주겠어?”
“물론이지!”하고 주유사가 말했다.
차갑지만 안락한 뱃바닥의 물속으로 누운 종군기자는 요리사의 구명에 바싹 몸을 붙이자마자, 턱이 떨려 요란하게 이 맞추는 소리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내 잠들어버렸다. 어찌나 단잠이었던지 금방 눈을 붙였다는 느낌인데 이내 피곤의 극에 달한 음성이 그의 잠을 깨는 것이었다.
“좀 교대해 주겠나?”
“물론이지, 빌리.”
북쪽에 보이던 불빛이 신기하게도 사라졌으나 종군기자는 선장의 지시로 방위(方位)를 잡았다. 뒤에 그들은 배를 더 멀리 외해로 빼내었다. 선장은 노 하나를 가지고 선미에서 배를 외해를 향하도록 유지하라고 요리사에게 지시했다. 파도가 육지에 부딪히는 굉음이 들리면 크게 소리치라는 지시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종군기자와 주유사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저 친구들 원기를 회복할 기회를 줘야지.”라고 선장이 말했다. 그들은 몸을 웅크리고 누워서 약간 덜덜 떠는 듯하더니 이내 죽은 사람처럼 잠들어버렸다. 요리사가 키를 잡는 동안 또 한 마리의 상어가,―――아니 어쩌면 아까의 바로 그 상어였을지도 모르지만―――나타났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아무도 몰랐다.
배가 파도를 타고 노니는 동안 이따금 파도가 뱃전을 때려 물벼락을 쳐서 그들은 다시금 홈빡 몸이 젖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잠을 깨우지는 못했다. 바람과 물의 불길한 칼부림도 마치 미라같이 누운 그들에겐 아무런 영향을 못 줬다.
“여보게들.”하고 선장이 매우 미안하다는 투로 말했다. “배가 너무 육지에 근접했으니까 둘 중 누구든 배를 더 밖으로 빼야겠네.” 잠이 깬 종군기자는 맞부딪는 파도의 격돌소리를 들었다.
그가 노를 젓고 있는 동안 선장이 그에게 약간의 위스키와 물을 주었고, 그것이 몸속의 떨림을 가라앉혔다. “내가 용케 살아남는다 치고 어느 놈이 배를 젓는 노의 사진이라도 내게 보여주는 날이면 가만두지―”
드디어 짤막한 대화가 또 이어진다.
“빌리……빌리, 좀 교대해 주겠나?”
“물론이지.”하고 주유사가 말했다.
7
종군기자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하늘과 바다는 다시 새벽의 회색빛이 되어 있었다. 이윽고 진홍색과 황금색이 바다를 수놓았다. 드디어 아침이 완연하여졌고, 하늘이 짙푸른 색이 되고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모래톱에는 여기저기 검은 오두막집들이 산재해있었고, 높다랗고 하얀 풍차가 보였다. 해변에는 사람도 개도 자전거도 보이지 않았다. 그 오두막집들은 사람이 안사는 유령부락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은 해변을 두루 살폈다. 그리고 구수회의가 뒤따랐다.
“글쎄, 구조대가 안 나온다면 우리가 상륙 시도를 당장에 결행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어. 여기서 더 오래 우물쭈물하다가는 기운이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될 거야.”라고 선장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선장의 조리 있는 말에 묵묵히 승복했다. 그래서 뱃머리를 해변으로 돌렸다.
종군기자는 저 높다란 풍차 탑 위에 아무도 올라간 사람이 없거나, 만약 있다 하여도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탑은 개미들의 곤경에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거인이었다. 종군기자 생각에는, 그것이 어느 정도 인간의 고투(苦鬪)를 담담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대자연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바람속의 자연, 그리고 인간의 눈에 비친 자연. 그렇게 보니까 자연이 그에게는 잔인하지도 않고, 자혜롭지도 않고, 간악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였다. 다만 자연은 무관심할 뿐, 철저하게 무관심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처해서 우주의 무관심을 깨달은 인간이 자기의 평생을 얼룩지게 한 수많은 결함을 정시하고 그것들의 쓴맛을 마음속으로 맛보게 하여 다시 한번의 기회가 부여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무덤가에 서서 얻은 이 새로운 생소함에서 사물에 관한 선악의 판별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명확하여졌으며, 만약 그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가 부여된다면 자기는 언동을 삼가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소개를 받을 때나 차를 함께 마실 때에 더 착하게 더 명랑하게 처신하리라는 것을 다짐한다.
“그럼 잘 들어.”하고 선장은 말했다. “배는 틀림없이 물속으로 가라앉을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되도록 육지 가까이까지 배를 몰고 가서 침수하면 빨리 물에 뛰어들어 해변을 향해 헤엄치는 것뿐이야. 침착하게 행동하고,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는 물에 뛰어들지 말아요.”
주유사가 노를 잡았다. 그는 어깨너머로 해변을 훑어보았다.
“선장님, 내 생각에는 배의 방향을 돌려 뱃머리를 외해로 돌렸다가 후진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주유사가 말했다.
“좋아, 빌리.”하고 선장이 말했다. “후진으로 들어가세.”
그래서 주유사가 배의 방향을 반대로 돌리자 고물에 앉아 있던 요리사와 종군기자는 호젓하고 무관심한 해변을 주시하기 위해서는 어깨너머로 바라봐야만 했다.
육지를 향해 밀려드는 거대한 파도가 배를 하늘 높이 추켜올렸고, 사람들은 경사진 해변으로 달음질쳐 올라가는 흰 물결의 선을 다시 한번 볼 수 있게 되었다.
“도저히 육지 가까이까지는 못 가겠는걸.”하고 선장이 말했다.
엄습하는 파도와 파도 사이에 여유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해변 쪽을 얼른 훔쳐보았고, 그럴 때의 그들 눈표정은 아주 독특했다. 타인들의 얼굴을 관찰한 종군기자는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지만 그들의 눈길이 의미하는바 전부는 알 길이 없었다.
그 자신은 너무 피곤하여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생각을 하도록 자신의 두뇌를 채찍질했지만, 이제 그의 두뇌는 근육의 고통으로 꽉 차 있었고, 그의 근육은 앞으로 어찌되든 관심이 없다는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다만 여기서 물에 빠져 죽는다면 참 딱한 노릇이라는 생각이 떠오를 뿐이었다.
다급한 대화도, 피곤도, 또 흥분도 없었다. 그들은 다만 해변을 바라볼 뿐이었다.
“배에서 뛰어내릴 때엔 되도록 멀찍이 뛰는 것을 잊지 말게.”라고 선장이 말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다 쪽으로 밀리는 파도의 정상이 갑자기 배 위에 부서지고, 비말(飛沫)의 물벼락이 배를 덮쳤다.
“조심해.”하고 선장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은 해변을 보던 시선을 잔물결로 옮기고 기다렸다. 배는 경사진 파도를 타고 올라 정상에서 한번 공중으로 떴다가 파도의 반대편 경사를 타고 줄달음질 쳤다. 배 안에 물이 약간 찼고, 요리사가 물을 펴냈다. 그러나 다른 파도가 또 밀려와서 부서졌다. 용솟음치는 흰 파도의 홍수가 배를 거의 수직으로 직립하게 만들었다. 사방으로부터 물이 밀어닥쳤다. 이때 종군기자는 뱃전을 잡고 있었으나, 물이 밀어닥치자 마치 손 적시기가 싫다는 듯 빨리 손을 불러들였다.
물의 무게에 짓눌린 작은 배는 빙글빙글 돌며 물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
“요리사, 물을 퍼!”하고 선장이 말했다.
“알았습니다, 선장님.”하고 요리사가 말했다.
“이봐요, 다음 파도에는 틀림없이 침몰할 거야.”라고 주유사가 말하였다. “배에서 되도록 멀리로 뛰는 것 잊지 말아요.”
세 번째 파도가, 거대하고, 격노하고, 무자비한 파도가 밀어닥쳤다. 그것이 배를 삼키려는 순간 이와 때를 같이하여 사람들은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뱃바닥에 구명대가 하나 있었는데, 바다로 뛰어들면서 종군기자는 그것을 왼손으로 잡아 가슴에 안았다.
정월(正月)의 바닷물은 얼음 같았다. 그는 이내 플로리다 연안의 수온치고는 예상보다 더 차다고 생각했다. 흐리멍덩한 그의 두뇌로서는 그 사실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상황에 대한 그의 견해와 혼합되어 눈물을 자아낼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듯이 느껴졌다. 물은 차가웠다.
바다 표면으로 솟아 나온 그는 요란한 물소리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였다. 그런 뒤에 그는 바다에 떠 있는 일행을 보았다. 주유사가 제일 앞장 서 있었다. 그는 꿋꿋하게 빠른 속도로 헤엄치고 있었다. 종군기자 왼쪽 멀리에 흰 코르크 구명대를 착용한 커다란 요리사의 등이 보였고, 그의 뒤에는 선장이 성한 쪽의 손으로 뒤집혀진 배의 용골을 붙잡고 있었다.
해변은 뭣인가 요지부동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고, 종군기자는 이 혼란 틈에서도 그것을 머리에 기억했다.
그것은 또한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기자는 해변에 닿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천천히 팔을 놀렸다. 구명대 한 조각이 그의 가슴에 까려 있었기에 파도를 타고 미끄러질 때에는 마치 썰매를 타는 것 같은 형국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고비가 되는 애로가 기다리는 지점에 그가 도달했다. 어떤 성질의 조류에 말려들었는지를 검토하려고 헤엄치는 동작을 중단하지는 않았지만 웬일인지 아무리 애를 써도 전혀 나가지 못했다. 앞에 보이는 해변은 마치 연극무대의 무대 장치 같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그 세밀한 구석구석을 알아볼 수 있었다.
훨씬 왼쪽으로 요리사가 지나가자 선장은 “요리사, 드러누워, 드러누워서 노를 사용하라구!”라고 외쳤다.
“알았습니다.”하고 답한 요리사는 드러누워서 노를 저어 마치 카누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선장이 한 손으로 매어 달린 배가 기자 왼쪽으로 역시 전진하였다. 파도 때문에 배가 요동을 치지만 않았다면 선장은 마치 판자울타리 너머로 뭣인가를 기웃거리려고 발돋움을 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종군기자는 선장이 아직도 배에 매달려 있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해변을 향해 계속 지나갔다.―주유사, 요리사, 선장이 순으로―그리고 맨 뒤에 물통이 경쾌하게 파도를 타고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종군기자는 이 괴상하고도 새로운 적―조류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희게 경사진 모래밭과 초록색의 절벽, 그리고 그 위를 묵묵히 수놓고 있는 작은 오두막, 이런 것이 보이는 해변이 마치 그림처럼 그의 안전에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가까운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그에게는 브리타니나 알지에의 풍경화를 화랑에서 구경하는 관람객 같은 기분이 들게 하였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물에 빠져 죽을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어쩌면 인간은 그 자신의 죽음을 자연계의 마지막 현상으로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얼마 뒤 한 파도가 그를 그 정체된 조류로부터 밀어내주었는지 갑자기 그는 해변을 향해 다시금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뒤에, 아직도 배의 용골을 한 손으로 잡고 매달린 선장이 해변을 등진 채 그를 향해 소리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리 와! 배에 매달려!”
배와 선장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애쓰는 동안 종군기자는 사람이 지칠 대로 지치고 나면 익사한다는 것이 오히려 안락을 의미하며, 마음을 편안히 먹을 수 있는 투쟁의 중지를 의미하여 오히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시의 그는 오랫동안 일시적 고통을 제일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죽은 것보다도 다치는 것이 더 두려웠다.
이윽고 해변을 따라 달음질치는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은 놀라운 속도로 옷을 벗고 있었다. 재킷, 바지, 셔츠 그 모두가 요술같이 벗겨졌다.
“배 있는 곳으로 와.”하고 선장이 소리쳤다.
“알았어요, 선장님.” 종군기자가 팔을 놀리면서 보니까 선장이 배를 떠나고 있었다. 이윽고 종군기자는 그 나름대로의 마술을 부렸다. 큰 파도 하나가 가볍게 그리고 대한한 속도로 그를 싣고 가 보트가 있는 곳을 넘어 훨씬 저편으로 운반하여 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이 사건이 체조의 곡예, 바다의 기적 같다고 생각했다. 파도 속에 전복된 배란 헤엄치는 사람에겐 결코 장난감이 아니었다.
종군기자는 물이 허리에 닿는 곳까지 도달하였지만 잠시도 발을 땅에 대고 설 수가 없었다. 파도가 밀어닥칠 때마다 넘어졌고, 또 저류는 저류대로 그의 하체를 끌어 당겼기 때문이다.
그 순간 그는 아까 옷을 벗으며 달리던 사람을 보았다. 그는 옷을 벗으면서 달려와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었다. 그 사람은 먼저 요리사를 잡아끌어 해변으로 올려놓고, 다음에는 선장에게로 가려하였지만 선장이 그에게 손짓하여 종군기자 쪽으로 보냈다. 그는 겨울철에 헐벗은 나목처럼 완전나체였지만 그의 머리에는 후광이 비쳐보였다. 성자와 같이 찬란해보였다. 그는 종군기자의 손을 덥석 잡아 한참 당기더니 와락 밀쳤다. 그런 완력에 익숙지 않은 종군기자는, “고맙소.”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저건 뭐야?”하고 외쳤다. 그러면서 그는 저편을 빨리 손가락질했다. 종군기자는 “빨리 가보시오.”라고 말했다.
얕은 물속에 주유사가 얼굴을 아래로 하고 엎어져 있었다. 그의 이마는 물결이 썰 때마다 정기적으로 모래밭에 닿았다.
종군기자는 그 뒤에 일어난 일을 하나도 몰랐다. 안전한 육지에 닿자마자 그는 쓰러졌다.― 온몸의 구석구석으로 모래밭을 치면서. 그것은 마치 지붕으로부터 떨어지는 것과도 같았지만, 이 경우는 그런 낙상이 오히려 감사하였다.
해변은 일시에 담요, 옷가지, 술병 따위를 든 남자들과 커피주전자와 또 난파당한 사람들에게는 신성하게 보이는 기타의 물품을 가지고 온 아낙네들로 가득 찬 듯이 보였다. 바다로부터 온 사람들에 대한 육지의 환영은 따뜻하고 관대했다. 그러나 말없이 물을 뚝뚝 흘리는 시체는 서서히 해변 위로 운반되었고, 그에 대한 육지의 환영은, 생자의 경우와는 달리, 불길한 무덤의 후대가 있을 뿐이었다.
밤이 되자 흰 물결이 달빛을 받아 노닐었고, 바람이 바다의 목소리를 해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실어다 주었으며, 그들은 이제 우주의 신비의 해설자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