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4. 12. 06:54

닭제

황순원

 

소년은 수탉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늙은 수탉은 모가지에 온통 붉은 살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저 꼬리와 날갯죽지 끝에 윤기 없는 털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볏도 거무죽죽하게 졸아들어 생기가 없었다. 이제는 소년이 손짓해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도 않으니까, 수탉은 뜰안에서만 발톱 없는 다리로 휘뚝거리며 소년을 따라다녔다. 소년이 밖에 나가고 없으면 수탉은 응달을 찾아 혼자 졸기만 했다.

그날은 소년과 함께 응달에 앉아있었다. 소년은 늙은 수탉의 목을 쓸어주고 그새 더 드러난 등의 붉은 살을 애처롭게 쓰다듬어주었다. 수탉은 또 오래간만에 받는 소년의 애무를 죽지를 떨면서 받고 있었다.

마침 동네 반수염감이 그 앞을 지나다가, 그 닭 어서 잡아나 먹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제 뱀이 돼 나갈 거라고 했다. 소년은 얼른 닭의 목에서 손을 떼었다. 반수영감은 얼굴에 주름을 잡으며, 아마 이제는 울지도 못할 것이라고 알아맞히고 나서, 벌써 목은 뱀허리 같이 되지 않았느냐 하고는 뒷짐을 지고 가버렸다.

소년은 수탉의 목을 지켜보다가 처마 밑으로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새끼를 깐 제비집이 있었다. 며칠 전에 제비들이 야단을 쳐서 나와 보니 뱀이란 놈이 제비집을 노리고 기둥을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을 소년의 아버지가 가랫날로 뱀의 허리를 찍어냈다. 그 제비집이 지금은 어미들이 먹이를 물러 나가고 새끼들만 노란 주둥이를 밖으로 내민 채 조용하였다.

소년은 사실 뱀의 허리 같이 된 수탉의 모가지를 다시 내려다보면서 이 수탉이 뱀이 되어 제비집으로 올라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머리를 옆으로 젓고는 뜰 구석으로 가 새끼오라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수탉에게 손짓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늙은 수탉은 이 또한 오래간만에 휘뚝거리는 다리로 소년의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소년은 동구 밖 갈밭에 이르렀다. 마을에서는 이곳에 큰 구렁이가 산다고들 했다. 장마철 붉은 강물에 떠내려 오던 구렁이가 갈밭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흐린 날 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갈밭 쪽에서 똘똘똘똘거리는 소리를 구렁이 우는 소리라고 일러주곤 하였다. 그리고 늦가을에 갈대를 다 베고 난 자리에는 구렁이구멍이라는 큰 구멍이 나 있곤 하였다. 말똥을 풀어 넣으면 구렁이가 나온다고 하면서도 아이들은 여태까지 어른들이 한 번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구렁이가 봄에 구멍에서 기어 나와 거기 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갈밭 속을 소년은 두 손으로 헤치며 수탉을 데리고 들어갔다.

갈대가 꽤 많이 밑으로부터 꺾여 넘어져있는 곳에서 소년은 서고 말았다. 빨간 댕기 하나가 거기 떨어져 있었다. 댕기는 마을 반수영감의 증손녀가 흘린 거였다. 반수영감의 증손녀는 벌써부터 등네 교사의 조카와 이곳에서 만나고 있었다. 소년은 들고 온 새끼로 수탉의 목을 메기 시작하였다.

늙은 수탉은 처음에는 이 역시 소년의 애무인 줄만 알고 날갯죽지를 떨었다. 그러다가 소년이 목에 맨 새끼를 죄니까 한 번 크게 죽지를 떨고는 꼼짝않고 말았다. 소년은 죽은 수탉을 댕기 옆에 버리고 엉킨 갈밭을 급하게 헤치고 나왔다.

그리고는 단숨에 집까지 뛰었다. 집에 와서는 제비집이 있는 처마 밑 기둥에 얼굴을 비비며 울기 시작하였다. 해가 기울도록 울었다. 소년의 부모가 들에서 돌아와 소년의 사뭇 창백해진 얼굴을 보고는 놀라고 겁나했다.

소년은 그날부터 자리에 눕고 말았다. 소년의 부모는 여러 가지로 소년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으나 소년은 아무데고 아픈 데는 없다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곧잘 무엇에 깜짝깜짝 놀라고 조그만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달달 떨곤 하였다. 그리고 때로는 문을 열어젖히고는 먹이를 받아먹으면서 지지거리는 제비집을 쳐다 보는 것이었다. 그러는 소년은 날로 몸이 야위어갔다.

하루는 반수영감이 소년의 집에 들렀다가, 늙은 수탉은 어떻게 했느냐고 잡아먹었느냐고 하며, 눈곱 낀 눈으로 뜰 구석으로 살피었다. 소년의 부모는, 글쎄 며칠 전부터 뵈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누워 있는 소년에게로 눈을 돌렸다. 반수영감은 그럴 줄 알았다고, 소년이 이렇게 앓아누운 것은 다름아닌 그 늙은 수탉이 종내 뱀이 돼가지고 독기를 소년에게 뿜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년의 어머니가 겁먹은 음성으로, 그럼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늙은 닭이 흉하다더니 종시 이 모양이 됐다고,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없이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아내더러 왜 이리 사위를 떠느냐고 하면서도 역시 자기도 마음이 언짢아 눈살을 찌푸렸다.

반수영감은 소년의 부모를 밖으로 내보낸 후, 소년의 이모부더러 복숭아나뭇가지를 꺾어오게 했다. 그리고 반수영감은 대에 담배를 붙여 물고 힘껏 빨아서는 소년의 얼굴에 내뿜기 시작했다. 소년은 눈을 감은 채 생담뱃내에 못이겨 캑캑거리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내둘렀다. 그러면 반수영감은 이것이 소년의 몸 속에 든 뱀의 독기가 담뱃내에 못이겨 그러는거라고 하면서, 내두르는 소년의 고개를 따라 생담뱃내를 자꾸 내뿜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이 숨이 막혀 까무라치듯 하니까 반수영감은 담뱃내를 뿜던 것을 멈추고 곁의 소년의 이모부더러 복숭아나뭇가지로 소년의 몸을 갈기라는 것이었다. 소년이 이번에는 복숭아나뭇가지 매질에 몸을 비틀라치면 반수영감은 소년의 몸속에 든 뱀의 독기가 담뱃내에 혼이 나 어쩔 줄 모르다가 복숭아 기운에 잠시 깨어난 것이라고 했다.

삽시간에 소년의 가는 몸에는 복숭아나뭇가지 매자국이 푸르게 늘어나갔다. 소년의 부모는 밖에서 매 때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며 가슴을 떨었다.

마침 동네 교사가 모여선 구경꾼들한테서 반수영감이 담뱃내로 소년의 몸속에 든 뱀의 독기를 풀고 있다는 말을 듣고 방안으로 들어와 반수영감과 소년의 이모부를 소년에게서 떼놓았다.

교사는 그냥 눈을 감고 숨차하는 소년의 이마와 인중에 침을 주기 시작했다. 어느새 교사의 곁에 와 웅크리고 앉았던 소년의 어머니가 치맛고름으로 소년의 이마와 코밑에 밴 피를 훔치다가 소년이 눈을 뜨니까 그것이 기쁘고 신기스러워 다시 소리 없는 울음을 우는 것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도 소년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는 자기가 누군지 알겠느냐고 했다.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둘러선 동네 사람들을 둘러보고 나서 곧 눈을 처마 밑 제비집으로 가져가며 작은 소리로, 언제쯤 제비새끼가 날게 되느냐고 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의 헛소리를 한다고 새로운 눈물을 자꾸만 흘렸다. 반수영감은, 그까짓 신통치 않는 침질로 무엇이 낫겠느냐고 중얼거리며 쓴 담배만 빨아 삼키고 있었다.

소년은 나날이 더 수척해만 갔다. 그리고 소년의 부모가 이사람저사람 말을 듣고 여러 가지 약을 써보았으나, 때때로 깜짝깜짝 놀라며 작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달달 떠는 증세는 멎지 않았다.

그러한 어느 날, 그러니까 다 큰 제비새끼 다섯 마리가 머리를 밖으로 내밀고 먹이를 기다리던 날 오후, 소년은 흡사 늙은 수탉이 휘뜩이듯이 휘뚝거리는 걸음으로 동구밖 갈밭까지 갔다. 갈꽃이 패기 시작하고 있었다. 소년은 무성한 갈대잎에 손등과 목이 긁히는 줄도 모르고 수탉을 목매어 던진 곳으로 들어갔다. 거기 늙은 수탉이 그냥 새끼에 목이 매인 채로 있는 것을 보고야 해쓱한 얼굴에 안심된 빛을 띠웠다. 그러나 다음 순간 소년은 그 이상 몸을 가눌 힘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죽은 수탉의 가슴패기와 날개죽지 밑은 벌써 썩어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파란 쉬파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소년의 얼굴에 잘못 앉았다가는 썩은 수탉에게 옮겨 앉곤 하였다.

소년의 집에서는 소년이 온데 간 데 없어져 야단법석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곧 몰려왔으나 물론 누구 하나 소년을 본 사람은 없었다. 동네 사람들 틈에 끼어 반수영감은 또, 분명히 이번에는 재너머에 있는 못에 소년이 빠졌기 쉽다고 했다. 못은 갈밭과 반대편에 있는 재를 하나 넘어야 하는 곳에 있었다. 두꺼운 이끼가 앉은 수면은 언제나 짙은 녹색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못 밑 감탕흙 속에 는 여러 해 묵은, 이제 용이 돼가는 미꾸라지가 파묻혀있으리라는 것이 마을 어른들의 공론이었다. 못은 언제나 무겁게 잠잠하였고, 그저 소나기가 밀려와야 둔한 연잎이 재를 넘은 마을의 미류나무보다 큰 빗소리를 낼 정도였다. 어느 그렇게 비가 내리는 날 저녁, 마을에서는 나물을 캐러 갔던 한 소녀가 없어져 며칠 뒤에야 흰배를 수치스러운 지도 모르고 드러놓은 채 이 못물 위에 떠있는 것을 발견한 일이 있었다. 반수영감은 그때로 못속의 용 돼가는 미꾸라지가 소녀를 호린 거라고 했다. 비내리는 밤에는 지금도 못가에서 소녀가 빨래를 하면서 통곡한다는 말이 마을에 떠돌고 있었다. 반수영감은, 이번에 소년이 못에 빠진 것은 용 돼가는 미꾸라지의 장난이 아니고, 소녀 귀신이 혼자 있기 적적해서 호려 갔음에 틀림없다고 했다. 이 말에 동네 사람들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네 어른들이 각기 장대 하나씩을 들고 나왔다. 소년의 아버지고 장대를 쥐고 못 있는 데로 달려갔다. 소년의 어머니가 자기도 가 못에 빠져 죽어버리고 말겠다는 것을 소년의 이모와 동네 아낙네들이 겨우 붙잡아 말렸다. 그러자 소년의 어머니는 동네 한 여인의 어깨에 매달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마침 교사가 와서 동네 사람들이 못으로들 달려갔다는 말을 듣고는, 기운없는 애가 어떻게 그곳까지 갈 수 있느냐고 하면서, 남은 동네 청년 몇 명을 데리고 마을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동네 밖으로 나가던 한 청년이 동구 밖 갈밭 머리에 새로 꺽인 갈대를 보고 그리로 따라 들어가 거기 쓰러져 있는 소년을 찾아내었다.

소년의 어머니가 먼저 달려와 소년을 쓸어안고 미처 울음소리도 못 내고 흑흑거리기만 하였다. 소년의 이모가 겨우 눈을 뜬 소년에게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고 물었다. 소년은 겨우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옆의 썩은 수탉에게로 눈을 돌렸다.

썩은 수탉 몸에 들끓는 구더리들이 물낡은 반수영감의 증손녀 댕기에도 가 기어다녔다. 그동안 반수영감의 증손녀와 교사의 조카는 소년이 목맨 수탉을 갈밭에 버린 다음부터는 재너머 못으로 가는 길 안쪽에 있는 기왓가마로 비밀한 자리를 옮겨 만나고 있었다. 교사가 새끼오라기 끝을 잡아드니까, 썩은 수탉의 목이 새끼 맨 짬으로 문드러졌다. 소년은 깜짝 놀라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온몸을 떨었다.

교사가 소년의 병은 자기가 기르던 수탉이 죽으니까 목을 매어 갈밭에 버리고 나서 그 심화로 생긴 병이라 하면서 다른 수탉 한 마리를 사다 주면 나으리라고 하였다. 소년의 이모부가 곧 기왓가마 앞을 지나고 못 뒤를 돌아 장터로 가서 큰 얼룩수탉을 한 마리 사 안고 왔다. 안긴 채 수탉은 목을 뽑고 높이 울었다. 그러나 소년은 잠깐 눈을 볏 붉은 얼룩수탉에게 한 번 눈을 주었을 뿐 돌아누워 처마 밑 제비새끼를 쳐다보면서, 제비새끼가 언제쯤 날게 되느냐고 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또 헛소리를 한다고 치맛귀를 물어뜯으며 소리 없이 울기 시작하였다.

반수영감은 그까짓 교사 놈이 뭘 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쓴 담배만 빨아 삼키고 있었다.

소년은 그냥 몸이 야위어만 가며, 무엇에 깜짝깜짝 놀라고 작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달달 떨곤 하는 동안에 동네에서는 교사의 조카와 반수영감의 증손녀가 안개 심한 밤을 타서 도망을 갔다. 반수영감은, 이런 망신이 없다고, 더구나 교사의 조카같은 녀석하고 달아난 것이 원통하다고 하면서 , 얼마동안은 밖에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반수영감이, 자기 증손녀가 역시 무던하기는 하다고 하며, 그래도 증조부 자기를 잊지 않고 겨우살이 한 벌을 보냈다고 하면서, 뒷짐을 지고 온 동네로 다니며 소문을 놓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반수영감의 새 겨우살이 온 것을 구경한 사람은 없었다.

동구 밖 갈밭의 흰꽃이 남김없이 다 패고, 다섯 마리 제비새끼가 축가지 않고 완전히 날 수 있던 날, 소년은 그 제비들을 내다보며 미소를 얼굴 가득 띠웠다. 소년의 얼굴을 지키고 있던 소년의 부모와 이모는 지금 소년이 마지막 웃음을 웃는다고 막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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