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자갑
양과자갑
염상섭
1
“계십니까? 나 좀 보세요…….”
안채의 뒷마당을 막은 차면 모퉁이에서, 여자의 거세면서도 뻑뻑한 목소리가 났다. 그러나 방 속에서는 내외간 이야기에 팔려서, 채 못 알아들은 모양인지, 대꾸도 없이 아낙네의 말소리가 이어 나온다.
“……그리키에 당신은 영어(英語) 헛배웠다는 거 아니요. 미국에는 공연히 다녀온 거 아니냔 말예요.”
무슨 말 끝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양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울화가 터지는 것을 참는 듯 가라앉은 깐죽깐죽한 목소리다.
“내 영어는, 어디, 집 얻어 대라구 배우고, 통역(通譯)하라구 배운 영어던가? 통역에나 써먹자고 미국 가서 공부했을라구…….”
영감의 목소리다. 목소리로 들어 나이는 한 사십 넘었을 것 같다.
차면 턱에 섰던 안라(安羅)는, 그러지 않아도 영문의 번역을 청하러 나온 길이라, 영어 노래 통에 귀가 반짝 띄어서 손에 든 종잇조각을 들여다보며 귀를 기울이고 섰는 것이다. 안라는 뒤채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주인이 영어를 안다는 말을 일전부터 들었기에 지금 이 타이프라이터로 찍은 공문서(公文書)를 급한 대로 읽어보아달라고 가지고 나온 길이다. 안라는 다시 소리를 내려다가, 또 방 안에서 중얼중얼하고 영감의 목소리가 나기에 그대로 멈칫 섰다.
“그 영어 한 자에 돈으로 따져도 몇십 원 몇백 원으로 논지가 아니거던. 미국 가서도 생돈 갖다 쓰면서 배운 거 아닌가! 허허.”
젊었을 때, 호강으로 살던 것을 회고(回顧)하는 술회(述懷)인 모양이다.
“그러니 뭘 해요? 되루 주구 말루 받지는 못한들, 그 비싼 영어를 써먹지를 못하니 딱하우. 안집 딸만 해두 쭉 째진 영어를 웬걸 하겠소마는 그래두 이런 크낙한 집을 얻어 든 걸 보우! 헝 내 참…….”
“허허허…… 이런 딱한 소리 봤나? 글쎄 내 영어는 집 어더 내는 영어, 통역하는 영어가 아니란밖에! 영어 못하는 셈만 치면 그만 아닌가? 그러지 말구 여보 마누라! 술이나 한잔 더 사오우. 당장 거리로 내쫓기야 하겠소. 정 갈 데가 없으면 방공굴로라도 들어가면 그만 아뇨. 나가라 들어오너라는 말 안 듣는 것만 해두 좋지.”
하고 영감은 껄껄 웃는다. 술 사오라는 말을 듣고 생각하니, 공일날 늦은 아침상을 받고 해장을 하고 있었던지 좀 주기가 있는 목소리다. 마누라는 술을 또 받아오라는 말에 어이가 없어 그런지, 방공굴로라도 들어간다는 객설에 화가 나서 그런지, 잠자코 있고 방 안은 괴괴하여졌다.
안라는 실없이 재미가 나서 엿듣다가,
“여보세요. 보배 어머니!”
하고 비로소 또 한 번 소리를 쳤다.
“네? 누구세요?”
주부의 곱살스러운 목소리가 나며 쇼지(미닫이─ 여기는 일본 집 뒤채다)의 허리께에 붙은 유리 안에서 주부의 얼굴이 해죽 비치더니 문을 밀치며,
“어서 오셔요.”
하고 툇마루로 나선다.
안집이 떠나온 지는 한 보름밖에 아니 되지마는 그리고 이 여자는 이 집 식구는 아닌 모양이지마는 안채가 떠나오던 날부터 보았고 안으로 물을 길으러 드나드는 동안에 몇 번 만나 말도 붙여보아서 잘 아나 뒤채의 주부가 보배 어머니인 줄은 알 리도 없고 그렇게 무관하게 말을 붙일 만큼 친숙해진 터도 아니지마는 주인마누라에게 들어서 안 모양이다.
“이거 미안하지만 보배 아버지께 좀 보아줍시사고 하세요.”
안라는 그 우둥퉁한 얼굴에 웃는 낯도 안 보이고 손에 들었던 종이쪽지를 내민다. 영수(英秀) 부인은 잠자코 주는 종이쪽지를 받으면서도 “……보아줍시사고 하세요” 하는 그 ‘하세요’가 보아주어야 할 의무나 이편에 있는 듯이 명령적으로 하는 말이 무심중간에도 좀 불쾌하여 이편도 처음의 좋은 낯이 살짝 변하면서 그 야단스럽게 화장한 얼굴을 말끔히 쳐다보았다.
노르끄레하게 물을 들여서 지진 부프한 곱슬머리가 처음 볼 때부터 이건 튀기인가 아닌가 하고 눈을 커닿게 뜨기도 하였지마는 누런 얼굴빛이라든지 영채가 없이 부옇게 뜬 거슴츠레한 뚱그런 검은 눈이 튀기는 아닌 것이 분명하였다. 질뚠하게 생긴 유착한 몸집과 빽빽해 보이는 어깨통이 어느 한구석 남자의 눈을 끌 데라고는 없으나 화장만은 머리와 같이 혼란하다. 제 바탕이 누르고 눈이 거슴츠레해서 거기에 걸맞게 하느라고 그랬던지 얼굴 전체를 검숭하게 꾸미고 눈가를 회색 빛깔로 더 거슴츠레하게 뺑끼칠 하듯이 칠한 데다가 눈썹은 꼬리께를 반은 깎고서 학교 아이의 에노구1)를 발랐는지 여기에는 고동색 칠을 한줄기 살짝 그었다.
이것은 어느 나라 화장술인지 그러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황인종과 흑인종의 튀기 같기도 하다. 화장이 여자의 몸가축만 아니라 취미와 교양 정도를 가리키는 것이요 시대 풍조라든지 생활의 쾌적과 심지어는 도시 풍경의 미화(美化)까지에 관계가 적지 않다고도 하겠지마는 본능적으로는 이성에 대한 소리없는 노래요 손짓이라 할진대 이 여자는 무엇을 상대로 누구더러 곱게 보아달라고 있는 솜씨를 다 부려서 이런 탈을 쓰고 다니는지? 영수 부인은 마주 보기가 면구스럽고 속이 느글느글해지는 것 같으면서 무심코 두 손이 퍼머넌트 한번 못 해본 자기 머리로 올라갔다.
“글쎄 여쭈어보죠.”
영수 부인은 A자 한 자도 땅김을 못하는 영문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한마디 하고 돌쳐선다. 남폄이 영어 한 자에 몇십 원 몇백 원 들여 배웠다고 금방 한 말이 귀에 남아 있어 그렇기도 하지마는 세상과 어울리맂 않는 괴벽한 남편의 성미를 뻔히 아는지라 무슨 딴청을 할지 몰라서 뒤를 두는 것이었다.
영수는 종이쪽지를 받아서 한번 쭉 훑어보고 내주며, “난 모르겠는걸. 갖다 줘!” 하고 눈짓을 끔뻑한다. 벌써 토라진 소리다. 아내는 남편에게로 가까이 가서 입을 거진 귀에다 대듯이 하며
“그러지 말구 어서 일러주세요. 주인의 누이라는데…….”
하고 속삭였다. 주인의 누이가 그다지 대수로운 것이 아니요, 또 그 말이 꽤 까다로운 남편의 비위를 더 거슬려놓을지? 애가 쓰이기는 하나, 당장 이 뒤채를 내놓으라고 날마다 얼굴만 보면 야단을 치는 집주인의 누이의 부탁이라면, 혹시는 아무리 예사롭지 않은 남편의 성미에도 다소곳이 들을까 싶어 이런 소리를 한 것이다.
“흥, 아니꼬운 소리! 주인이 그렇게 무섭다는 말인가? 허허허…….”
술이 점점 취하여가는지 이런 소리를 밖에서 들릴 만치 커닿게 하며 껄껄 웃는다. 아내는 자기 역시 그 계집애가 이것 좀 보아주슈 하고 퉁명스럽게 하던 말눈치가 못마땅은 하였으나, 남편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내 약주 사다 드릴게, 무슨 뜻인가 내게만 일러주시구려.”
하고 정말 손으로 비는 흉내를 내며 속삭인다. 남편은 흐응…… 하고 또 코웃음을 치면서도 술을 받아다가 준다는 바람에, 마음을 돌렸던지 종잇조각을 빼앗아서 다시 보며 일러준다.
“약초정─지금의 초동(草洞)이로군─초동 ××번지 소재 적산가옥(敵産家屋) 한 채를 김안라에게 관리(管理)시킨다는 증서로군. 말하자면 이것이 요새의 집문서야. 아닌 게 아니라 나보다 다들 재주가 좋아! 허허허…… 아니 마누라보다 재주가 좋단 말야. 마누라두 늙지나 않았더면 집 한 채 생기는걸! 허허허.”
“에구, 객설! 젊은 여편네면 누구나 다 집 한 채씩 준답디까?”
아내는 밖에서 안라가 들을까 보아 이렇게 입을 막으려는 것인데, 남편은 되레 껄껄 웃으며,
“누가 아니랬어! 김안라란 여자 이름 아닌가? 서양식 이름으로 ‘안나’라는 걸 게니…….”
마누라가 휙 나가며 미닫이를 딱 닫아버리는 바람에, 영수는 방 안에서 혼자 중얼거리다가 입을 닫쳐버린다.
“네, 대가 그런 줄은 아는데 이걸 좀 번역을 해 써줍시사는 것인데…… 그 집을 내가 들게는 댔으나 생전 내놓아야죠. 이것을 번역해 가지고 가서 보여주려구 해서 그래요.”
영수 부인이 남편에게 들은 대로 전해 들려주니까, 안라는 이런 소리를 또 한다. ‘안라’인지 ‘안나’인지 이름도 모를 여자가, 제붙이가 차지한 집에 곁방살이를 한다고, 제멋대로 넘보고 하는 수작인지는 모르되 번역을 해서 벗겨다가 보여야 할 것은 제 사정이요 이편이 그 시중까지 하라는 것은 친숙한 사이면 몰라도 날마다 집을 내놓으라고 오구를 치는 요새의 영수네 처지로는 여편네 마음에도 아까 청하는 말씨에부터 토라진 끝이라 아니꼽게 들렸다.
“지금 약주가 취하셔서 안 될걸요.”
술 핑계로 발뺌을 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여자는
“뭘 이만 것쯤 두어 줄 휙휙 적어주시면 그만일걸…….”
하고 종잇조각을 받으려고 아니 한다. 영수 부인은 슬며시 화가 나면서 망단하였다. 배짱이 이만이나 하기에 젊은 여자의 몸으로 이 판에 공으로 집 한 채를 울거낸 것이겠지마는, 또다시 남편에게 입을 벌렸다가는 당장 이 여자를 앞에 세워놓고 불호령이 나올 것이요, 그랬다가는 이 집에 하루도 더 붙어 있지는 못하고 쫓겨날 것이다. 바로 보름 전에 본 일이지마는, 저 안채에 든 사람을 하루 전에 나가라고 통고를 하여놓고 이튿날 ××가 오고 어쩌고 떠들썩하더니 세간을 끌어 길거리에 내놓고 식구들을 등덜미를 밀듯이 하여 당장으로 내쫓아버리는, 그런 당당한 권력들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떻든지 덧들여서는 당장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럼 두구 들어가슈. 딸년이 변변치는 못해두 이만 것은 번역할 듯하니 시켜보죠.”
하고, 또 한 번 자기가 꺾이는 수밖에 없었다.
“아, 따님이 그렇게 영어를 하셔요?”
안라는 눈이 더 둥그레지며 놀란다. 이름은 서양 여자 같은 이름을 붙이고, 양장에 얼굴을 서양 여자는 못 되어도 튀기만큼이라도 보이려고 갖은 솜씨를 부려서 도깨비 탈은 썼으나, 영어의 비럭질을 다녀야 하느니만치, 매우 안타까운 모양이요. 영어를 한다는 사람이면, 더구나 여자로서 영어를 하다니 부럽고 저만치 쳐다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나 영어를 하는 남편과 딸을 둔 이 부인에게는 조금치도 경의를 표하는 눈치가 없이 명령하듯이 떼만 쓰니, 이 부인이 영어를 몰라서 그러는지, 집 한 칸이 없고 곁방살이를 하는 이재민이라 해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마침 일요일이라, 저편 방에 들어앉아 책을 보고 있던 보배는 모친이 부르는 소리에 마루 끝으로 나왔다.
“너 이것 좀 번역해드릴 수 있겠니?”
모친은 아무리 딸이 L여중학 오 년생이지만 영어 실력을 알 수가 없다.
“네. 어디 내가 뭐 아나요?”
보배는 호기심이 나서 생글 웃으며 탐탁히 종잇조각을 모친에게서 받아 들고 한번 쭉 훑어본다.
부모 닮아서 키가 훌쩍 크고 날씬한 몸매가, 앞에 섰는 이 여자와 좋은 대조가 되거니와, 빛깔이 희고 갸름한 상이 귀염성 있는 예쁜 판이요, 더구나 상큼한 콧날과 또렷또렷한 눈매를 보면, 이 아버지의 이 딸답게, 맑고 강직한 성격이 엿보인다.
“해드리죠.” 보배는 청하는 이 여자보다도 도리어 상냥한 웃음을 생글 웃어 보이며 손쉽게 맡는다. 돈은 군정청 사환아이만큼도 못 벌어들이는, 대학의 시간강사이지마는, 영어로 소설도 쓰고 시도 읊는 영문학자인 자기 부친에게 이따위 대서소(代書所) 쇰직한 일을 청하는 것부터 딸의 생각에도 싫은 일이지마는, 보배는 제 영어의 실력을 실지에 써보는 데에 흥미와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보배가 종이쪽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니까, 안라도 성큼 뛰어올라와서 따라 들어간다. 실례합니다, 어쩌고 인사를 하는 것은, 일본 풍속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제 집같이 무람없는 것도 영수 부인은 실쭉하였으나, 모른 척하고 이편 방으로 들어갔다.
“못 한다고 쫓아 보낼 일이지, 그건 무엇 하자구 아랑곳을 하는 거야?”
남편은 또 눈살을 찌푸린다.
“에그 꿈에 볼까 봐 무서워. 그따위를 어쩌자구 보배 방에 들어가게 내버려 두드람!”
송충이가 목덜미로 기어들어가기나 하는 듯싶어 영수는 점점 더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움츠러뜨린다.
“내 이런 딱한 양반은! 들어오는 사람을 떼밀어 내쫓나, 세상에 당신 같아서야 어디 남하구 하룬들 살겠소.”
마누라가 속삭인다.
“그럼 커가는 딸자식을 데리구, 이 구석이 어떤 구석이라구…….”
“제발 입을 좀 봉하구 가만히 계세요. 누가 이런 구석에 하룬들 있으라구 붙듭니까?”
마누라는 술을 사러 나가려는지, 머리를 부리나케 빗는다. 영수는 거기에는 대꾸도 않고,
“일본엔 라샤멘이라구 양첩(洋妾)이 있겠다─이건 그것보다두…….” 하고, 누구더러 들으라는 것도 아니요, 혼자 개탄하듯이 또 쭝얼쭝얼하자니까, 마누라는 쪽 찌던 머리를 붙들고 일어나서 또 다가오며,
“이거 누구를 못살게 굴려구 이러시는 거요? 이렇게 잔소리로 판을 차리시면 술 안 사와요.”
여기에는 찔끔인지, 영수는 껄껄 웃고 만다.
2
영수 부인이 술병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오자니까, 안라인지 뭐시깽인지 검둥아가씨가 딸의 방에서 나와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주쳤다.
“어떻게, 잘됐소?”
“네. ……그런데 이래서 갖다 뵈구 내놓으래두 안 들어먹으면, 어떻게 댁에서라두 그리로 떠나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두 하는데……? 돈야 좀 목은 것을 내셔야 하겠지만…….”
영수 부인은, 이 여자는 어떻게 배워먹었기에 아침 내 성이 가시게 하고 가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별안간 불쑥 이건 무슨 구성없는 수작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멀뚱히 쳐다만 보다가, 비로소 짐작이 들면서,
“우리야 한시가 급하니까, 아무 데나 좋지만, 댁에서 못 내보내는 것을 더구나 우리 힘으로 내쫓는 재주가 있겠소?”
하고 핀잔을 주듯이 웃었다.
“어쨌든 나중에 의논, 좀 하심시다요.”
하고 검둥아가씨는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지금 뭐라는 소리요? 집을 얻어줄 테니 나가라는 거야?”
마누라가 방에 들어오니까, 밖에서 하던 소리를 재차 묻는다.
“얻어주긴?…… 당신 같으신 소리두 하슈. 그래두 덜 속아보신 게로구려?”
하고, 아내는 전기 곤로에 술을 따라놓으며 코웃음을 친다. 술심부름에 넌더리가 나서도 쏘는 소리를 하겠지마는, 작년 가을에, 이북서 오니까, 돈푼이나 가지고 온 줄 알고 그랬던지, 전에 안면이나 있던 젊은 아이가 나타나서, 집 한채를 얻어주마는 바람에, 건몸 달아서 술을 사다 준다, 고기를 사다 준다, 점심을 먹여야 하는 돈이 든다 하고, 없는 옷가지를 팔아가며 젊은애 꽁무니를 한참 쫓아다니다가는 발라맞추는 양이, 세상에는 피난민 등쳐먹는 그런 생화도 있구나─ 하고 헛물만 켜고 나가자빠진 일이 있은 뒤로, 아내는 그때에 자기 옷만 판 것이 분해서, 말끝만 나면 오금을 박는 것이다.
“그야 안 나가고 버티면, 저번 안채 사람 모양으로 어디던지 몸 붙일 데를 얻어라두 주는 것이지.”
“속 시원한 소리두 하슈, 그 여자 말요, 집을 얻어놓았는데, 정 안 나가거던 권리금을 내구 사서, 우리더러 내쫓고 올며가라는 수작이라우. 권리금 낼 돈두 없지만, 앓느니 죽지, 저희가 못 내쫓는 걸 우리는 무슨 재주루 돈 들여가면 내쫓구 가라는 거겠소.”
아내는 남편이 술 먹는 이외에는 별로 불만 있는 것은 아니나, 다만 세상 물정에 등한하고 주변이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 판에 미국 유학한 덕, 영어 잘하는 덕을 남보다 더 보아야 할 터인데, 겨우 대학에 시간강사로 몇 시간 맡은 것밖에는 밤낮 죽치고 들어앉아서 세상 한탄이나 하고, 누구는 어떠니 싫고, 누구는 아무기로서니 그럴 줄은 몰랐다고 욕설이나 하는 것이, 인제는 귀에 못이 박이다시피 되어 싫었다. 누구보다 먼저 덕을 보아야 하겠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전쟁 통에 아무 까닭 없이 미국 출신이란 트집으로 두 번이나 유치장 신세를 지고 한 번은 미결감 한 번은 감시소(監視所)라던가 하는 데에 갇혀 있다가, 해방 직전에 풀려나와서는, 울화에 떠서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마침 소개(疏開)한다는 바람에 몇 칸 안 되는 집이나마 팔아가지고 외가의 연줄을 더듬어 강원도 철원으로 갔던 것이, 결국은 오늘날 파산의 장본이 된 것이다. 설마 삼팔(三八)선에 ‘토치카’가 서고 철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서울이 여행권조차 얻을 수 없는 천리 만리 외국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하였지마는, 세 식구가 빈 몸뚱이로 간신히 서울에를 기어 들어섰더라도 남과 같이 주변성 있게 서둘렀으면 아무려나 집 한 채 못 얻어 걸릴 것이 아니었다고 부인은 분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어떻게 들어서 그런지, 난 벼슬하려 공부한 것이 아니라, 내가 통역하려 영어를 배웠던가 싶으냐 하며 꼬장꼬장한 소리만 하고 앉았으니, 전쟁 통에 그 고생을 하고 파산까지 하고서 이 지경으로 겨울은 닥쳐오는데 거리에 나앉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이었던가를 생각하면, 이판에 무슨 큰 수는 못 나도 그 보충은 될 만큼 약게 놀아야 살아가지 않는가 하는 불평이 나날이 쌓여가는 것이다.
“그래 벼슬을 하고 통역을 하는 것은 건국에 이바지하는 도리가 아니요?”
이렇게 권고를 해도,
“글쎄, 난 싫다는데 어쩌라는 거요?”
하고 눈을 곤두세우며 역정을 내는 것이었다.
“그럼 처자식을 거리로 나앉으라는 거요?”
하고 애원을 하면.
“흥, 그야 제 팔자대로 살겠지?”
하고 코대답이다. 스물한 살 먹은 맏아들놈을 병으로 내놓고 나서 소개를 한 뒤, 해방이 된 지 일 년이 넘도록 종무소식인 것을 부부간에라도 아무쪼록 입 밖에 내지 않고 지내자니 더욱이 속이 썩어서 술만 마시려 들고 세상일을 귀찮아하는 듯싶다는 동정도 가나, “저의 팔자대로 살겠지!” 하는 그 말은 이런데서 우러나오는 간국같이 쓰고 짠 소리일 것이다.
“그러니까 아까 그 색시가, 이 채에 들려고 몸이 달아 그러는 게로군? 그래 그 색시가 쥔마누라의 둘째 딸이란 말야?”
영수는 잠자코 술만 마시다가 한마디 한다. 주인마누라 말이, 자기 둘째 딸이 집에 몰려서, 이 뒤채로 들어오니까 어서 내주어야 하겠다는 말을 늘 들었기에 하는 말이다.
“글쎄요. 난 그 흑구자가 색시의 시뉘구, 둘째 딸이란 것은, 따루 있는 줄 알았더니…… 이 채에 와서들 둘째 딸이란 것이 그것이라면 큰딸과는 애비가 다른 것이지!”
영수댁은 이런 소리를 한다. 이 집은 원체 일본 사람이 여관이거나 마찌아이(待合) 같은 것을 경영하던 집인 듯싶은 크낙한 집인데, 미군이 쓴다고 해서 부랴부랴 내놓게 한 것인데, 급기야 와서 드는 사람을 보니, 기생퇴물 같은 똑딴 양장미인과 그 모친이란 오십쯤 된 중년 부인하고, 금옥이라는 열댓 살 된 계집애년의 세 식구뿐이요, 안라는 주인의 동생이란 말을 무슨 말 끝에 들은 법한데 하여간 여기 와서 자지는 않는다.
“아, 파닥지를 보면 모르나! 아무러면 그 귀신같은 것이 양장미인의 동생일리는 없으니, 남편의 누인지 시눈지! 검둥이의 첩인지? 허허허.”
영수도 안채의 양장미인을 힐끗 원공으로 한번 보고, 허허, 상당한 미인이라고 감탄도 하였지마는 주인이 어떤 작자인지 보지는 못하였어도 어느 놈의 소실이거니 하는 짐작은 든 것이다.
“그건 어쨌든 말눈치를 들으면 아마 미군들의 놀이터로 양요릿집이거나 호텔 같은 것을 만들겠다구 청을 해서 이 집을 맡아냈나 봅디다.”
“그야, 그렇겠지. 이 크낙한 집을 무엇에 쓰나. 하여간 이 뒤채는 우리에게는 똑 알맞은데…….”
영수는 방 안을 새삼스레 휘 돌아다보았다.
하여간 앞채는 아래위층에 방이 열서넛은 되고 그중에 팔조 십이조 하는 큰 방은 ‘댄스홀’이나 양식 식당으로 고쳐 꾸밀 수도 있고 장지를 떼어내면 얼마든지 넓게 쓸 수 있는 원체 요릿집으로 된 것이다. 이북에서 온 사람이 길이 좋아서 맡아놓고도 자본을 끌어내지 못하여 미루미루하다가 한 가구 두 가구 면에 못 이겨 피난민을 들이기 때문에 지금은 다다미가 엉망이 되었으니 외국인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면 그까짓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 뒤채는 원체 일인이 살 때에 늙은 주인의 거처였던지 팔조 사조 반에 온돌이 하나 있고 온돌에 달아서 아궁이 쪽으로 사랑 부엌 같은 것이 한 평가량 달려 있으니 부엌으로 넉넉히 쓰고 있는 터요, 변소까지 있다. 영수는 서울 올라와서 올봄까지 셋방으로 전전하며 고생을 하다가 요행 연줄이 닿아서 올 초봄에 힘에는 겨우건마는 세 식구 살림에는 똑 알맞아 그때 시세로는 비싼 줄 알면서도 이천 원씩 세를 내고 쫓겨 나간 전 주인에게 얻어 든 것이었다.
“그러나저러나 인제는 떠날 집까지 얻어받쳤다는 핑계가 또 하나 생겼으니 더 부쩍 들쌀 텐데 이걸 어떡한단 말요?”
이런 소리를 들으면 영수는 가뜩이나 막걸리 같은 시큰한 술맛이 더 없어졌다.
“바깥주인이 누군지나 알면 맞대놓고 담판이라두 하련마는…….”
영수는 입맛을 쩝쩝 다시고 앉았다.
“떠나온 지 벌써 보름이나 돼야 낯두 코빼기나 볼 수 있기에요. 자기 본집이 있고 며칠만큼씩 와서 자는 모양인데 마루 끝에 구두가 놓인 날두 얼굴을 뵈지 않구 색시두 밤낮 싸지르는지 꼼짝 않구 들어앉았는지 좀체 눈에 안 띕니다.”
아내는 저녁때 물을 길으러 들어가 보면 하루 걸러 이틀 걸러큼씩 엉정벙정하고 술들을 먹고 놀기도 하는 모양이니 원체 넓은 집이라 어디서들 노는지 부인의 방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한다.
동리 사람과 교제가 없으니 밖에 평판은 무어라는지 알 길 없고 부엌에서 물을 길으면서 금오이란 년에게 물어보면 주인이 간혹 미국 손님도 데리고 와서 놀고 간다 하나, 그 외에는 저도 사실 모르는지 주인의 단속이 도저해서 입을 봉하는지, 기가 나서 내평을 알자는 것은 아니나 좀체 말이 없고 드나드는 여자들은 뭐시깽이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잘못하다가 매음굴에 들어앉은 셈쯤 되지는 않을지?”
남편의 이 소리에 아내는
“설마! 사람들은 조촐하던데.”
하면서도 웃어버리는 양이 속으로는 그런 의혹도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여튼 모리배의 소굴로도 괜찮고 강도단 도박단의 소굴로도 십상일 거라. 그 요염(妖艶)한 미인의 얼굴을 보면 ‘지고마’단의 여왕 감으로 쩍말없을2) 거라.”
남편이 이런 소리를 하니까 아내는
“듣기 싫소. 무서운 소리 그만 하슈.”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간 누가 있으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 차가는 딸을 데렸는데 이런 구석에서 좋지 못한 꼴이나 보이고 들어앉았기가 하루가 민망하게 싫고 불현듯이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은 뒤로 영수 부인이 물을 길으러 들어가도 주인마누라가 그전같이 그리 실쭉해하는 내색도 보이지 않고 딸이란 미인도 간혹 눈에 띄면 좋은 낯으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집 사단도 요새 며칠은 그리 조르지 않고 ‘흑구자’가 나중에 의논하자던 초동집 문제도 아무 소식 없고 말았다. 보배 모친은 인제 아마 차차 영어 덕을 보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3
이른 저녁때다. 보배가 학교에 다녀오다가 이 집 문전에 와서 보니 미군 트럭이 한 채 놓이고 인부 두셋이 안락의자며 테이블이며 세간짐을 내려놓기에 부산하다. 또 무슨 세간짐이 오나 싶었다. 힐끔 보기에도 보통 조선집 세간은 아니요 어떤 양관(洋館)의 응접실을 그대로 옮겨오는지 훌륭한 응접세트다. 안락의자가 대여섯, 찬란한 무늬 있는 우단 소파(장의자)가 두엇, 번즐번즐한 큰 테이블이 두엇이요, 둘둘 만 양탄자까지 있다. 탁자니 화병이니 전기스토브니…… 보배는 서양 잡지의 그림에서나 보던 사치스런 제구들이다. 보배는 저런 것을 사자면 지금 시세로 아마 한 십만 원은 할 거라는 생각을 허턱대고 하며 옆 골짜기로 꼽들여 뒷문으로 들어오려니까 마당에 주인집 딸이 모친과 서서 이야기를 하다가 반색을 하는 눈치다. 한 지붕 밑에서 살건마는 서로 대면할 기회도 없고 이러한 뒤채에는 발그림자 하나 하지 않던 눈이 부실 듯한 이 미인이 섰는 것을 보니 보배 생각에는 진객이나 온 듯싶이 반갑기도 하고 부끄러운 생각도 든다. 학생봉에 너절한 외투를 걸친 자기 주제를 내려다보면 이 미인은 자기와는 저만치나 떨어진 딴 세상 사람 같다.
“마침 잘 왔다.너 이거 좀 봐드려라.”
모친은 마루 편으로 돌쳐서는 딸에게 뒤에서 말을 건다. 보배가 마루에 책보를 놓고 돌아서니까 주인 딸은 위에 입은 스웨터 포켓에서 착착 접은 편지 같은 종이쪽을 꺼내 들고 다가온다.
“미안하지만 이것 좀 보아주세요.”
생글 웃어 보이는 양이 저번 ‘흑구자’와는 딴판이다. 아무려니 이 여자는 살결이 희니 백인종에 가깝고 흑구자는 역시 흑구자기 때문은 아니리라. 보배는 종잇조각을 잠자코 받아서 펴 본다. 이렇게 씌어 있다.
사랑하는 미쓰 리.
어제는 고맙고 미안하였습니다. 말씀하신 응접세트를 보내드립니다. 유쾌한 방을 꾸미실 줄 압니다. 영업상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양 말고 알려주시오. 내일은 점심때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오정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의 진실한 벗, 리차드슨
보배는 그러면 그렇지 그 훌륭한 양가구를 돈으로야 샀으랴 하는 생각을 하며 번역을 하여 들려준다.
“사랑하는 미쓰 리…….”
보배는 ‘사랑하는’이란 말이 선뜻 입에서 아니 나와서 그만두어버릴까 하다가, 그거야 서양 사람의 편지투에 보통 쓰는 말이니 계관할 것이 무어 있으랴 하는 생각으로 학교에서 독본 번역하듯이 기계적으로 읽으면서도 귀밑이 뜨뜻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앞에 섰는 미인의 얼굴도 살짝 발개졌으나 그것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도리어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섰는 이 여자의 얼굴에는 반기는 듯하고 흡족해하는 화려한 웃음까지 떠올라왔다.
다 읽고 나니까 이 미인은 편지를 받으며 그래도 좀 열적은 듯이 웃으며
“고맙습니다. 이 ‘리차드슨’은 바깥양반 친구인데 어제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방에 아무 치장도 없는 것을 보고 접수해둔 양가구가 있으니 갖다가 쓸 테 거던 쓰라구 보내준 거예요.”
하며 변명 삼아 양가구의 내력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헤에, 그거 좋군요.”
모친은 얼마나 좋은 것인지 보지도 못하고 허청대고 대꾸를 하여준다. 이 부인도 딸의 입에서 ‘사랑하는’ 어쩌고 하는 소리가 흘러나올 제 에구 망측스러워라 하고 주름살 진 얼굴이 붉어졌던 것이다. 도대체 그러한 편지를 딸에게 번역을 시키게 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였으나 이것도 집 없는 탓이니 어쩌는 수 없다고 속으로 혀를 찾는 것이다.
“어머니 그 색시 남편이 있나요?”
안집 색시가 들어간 뒤에 보배는 모친을 따라 방으로 올라오며 이런 소리를 한다.
“아, 그럼 남편 있지. 왜 편지에 무어라구 했던?”
“글쎄 말예요. 편지에 ‘미쓰’라고 한 것은, 처녀에게 쓰는 말인데요, 지금 또 색시 말을 들으면, 바깥양반 친구니 어쩌니 하니 말이요…….”
보배는 그 색시가 서양 사람에게는 처녀 행세를 하는 것인지? 리차드슨이 ‘미세스’라고 쓸 것을 잘못 쓴 것인지 어정쩡해하는 것이다.
“누가 아니. 처녀거나 갈보거나 아랑곳할 것두 없지만, 아마 첩인가 보더라.”
이 말은 전부터 들은 말이다.
“옷 입은 맵시가 딴은 그래요. 하지만 기생인지도 모르죠.”
“그두 모르겠지만 그 어머니란 이가 얌전한 여염집 아낙네인 걸 보면 기생퇴물 같진 않구…….”
모친은 딸에게 그 꼴을 보이기도 싫고 이러니저러니 입초에 올리기도 싫으나, 대체 본탈이 무엇인구 하는 호기심은 모녀가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보배는 제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책보를 풀고 하면서도 지금 본 편지 사연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얼른 보기에는 아무런 사연도 없고, 물건을 보낸다는 말과 점심에 초대를 하듯이 내일 만나자는 말에 지나지 않으나, 남편과 친구라면서, 남편은 어째 아니 청하누? 하고 그 ‘미쓰’란 말과 같이 역시 보배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요 짐작이 잘 나서지를 않으니만치 궁금하다.
‘마이 디어 미쓰 리!’라는 첫 구절을 생각하면 훤칠한 코 큰 남자가 자그마한 이쁜 색시의 등을 툭툭 치는 양이 보이는 듯도 싶지마는, 어제는 고맙고 미안하였다는 말이, 남편이 어제 집에 데리고 와서 대접을 한 치사라고 아까 그 색시는 변명을 하였지마는 요새 며칠은 안채에 손님이 온 기척도 없었고 위아래층에 전등불이 캄캄히 꺼져 있었는데 그런 거짓말은 왜 하는지 그 역 할 수 없다.
보배는 대관절 그런 편지를 받는 여자의 마음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여보았다. 남자에게서 편지라고 받아본 일이 없는 보배는 징그러운 생각부터 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런 남자의 편지─ 아니 남자의 편지는 아니라도, 사랑하는 동무가 있어서 편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재미있게 지내보았으면 하는 충동도 깨닫는 것이었다.
보배는 다른 때 같으면 벌써 숙제장을 펴놓거나 영어책을 들고 나섰을 터인데 오늘은 책상 모퉁이에 멀거니 앉아서, 저고리에 솜을 두고 있는 모친의 손길만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 참 정말 요리점이고 뭐고 개업을 하나 보죠?”
‘리차드슨’이란 자의 편지 사연이 또 머리에 떠올라서 보배는 불쑥 이런 소리를 꺼냈다.
“응, 참 그 편지에도 그런 말눈치지?”
모친은 이렇게 대꾸는 하면서도 안집 이야기는 딸과 하고 싶지 않았다.
“요릿집을 차리고 갈보나 들끓고 하면 시끄럽구 챙피해서 어떻게 있에요.”
보배는 눈살을 찌푸린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어쩌면 이렇게 빡빡할 수가 있니!”
바느질을 붙들고 앉은 모친은 한숨을 내리쉰다.
“그래두 아버지께서 나스셔서 서둘러 보시면 적산집은 하나 걸리련마는…….”
“얘, 그런 꿈같은 소리는 하지두 마라. 아버지 수단에 그 좋아하시는 약주 한 잔인들 공짜가 걸린다던! 그런 쥐변성 없는 이는 처음 봤으니까…….”
모친은 부인의 주변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신이야 넋이야3) 하는 것이다.
“그런 말씀 마슈. 그럼 노인네가, 술판이나 얻어자시구 꿉적꿉적하구 다니셨다면 어쩔 뻔했겠에요.”
보배는 부친이 모친을 꼬집는 소리를 하면, 모친의 역성을 듣고, 모친이 부친에게 몰이해한 소리를 하면 부친 편을 드는 중립파였다. 모친도 딸의 말이 그럴싸하면서도
“세상에 늬 아버지같이 꼬장꼬장한 양반이 어디 있니? 물이 맑으면 고기가 없는 법야.”
하고 핀둥이를 준다.
“흐린 물에는 송사리는 꼬일지 몰라도, 큰 고기는 바다의 맑은 물 속에 놀죠!”
하고 보배는 생글 웃는다.
그 역 일리가 있다고 모친은 생각하며 딸이 벌써 자라서 그런 소리를 하게 되었나? 하고 신통한 듯이 웃는 낯으로 쳐다본다. 그러나 자기 남편 같은 성미로 남에게 잘 쌔지를 못하니 평생 고생이라는 생각이 늘 있는 것이다.
4
모친은 저고리에 솜을 다 두어서 어느 틈에 뒤집어가지고 안섶에 코를 빼고 도련에 인두질을 치고 나더니 착착 개켜서 인두판에 얹어 밀어놓고는 일어선다. 저녁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내려가는 모양이다. 보배도 따라 일어섰다.
“넌 웨 나오니? 어서 공부해라.”
다른 때 같으면 보배는 상을 물린 뒤에 설거지나 하고 부친의 손님이 와서 약주 시중이나 들게 되어야 부엌에 내려가는 것이지만 오늘은 어쩐지 마음이 뒤숭숭한 한편에 집 걱정에 팔려서 공부할 생각이 아니 나기에 따라나선 것이다.
“이리 주세요. 제가 씻지요.”
모친이 씻으려는 쌀 이남박을 보배는 씻었다. 요새 배급쌀이라는 것이 하도 돌멩이가 많이 섞여서 부친을 위하여 오백 원이나 주고 소꿉 같은 이남박을 샀지마는 세 식구 한 끼니 양식이래야 요 조그만 이남박의 바닥에 붙었다. 불과 서너 줌밖에 안 되는 쌀을 들여다보며 요까짓 쌀 때문에 모친은 배급날이면 어둑어둑해 일어나서 배급소 앞에 나가 떨고 섰다가 오늘은 배급을 주느니 안 주느니 하고 들락날락하는 것을 생각을 하던 보배는 씻던 쌀을 들여다보며 손을 쥐고 가만히 앉았다. 그나마 세 식구가 큰 양도 아니건마는 배를 곯리고 한 달에 부족한 소두 한 말을 사들이려고 모친이 애를 부덩부덩 쓰는 양을 생각하면 기가 막혔다. 쌀통장에 유령 인구 하나 못 넣은 것을 보면 주변 없기로는 부친만 나무랄 것이 아니라 세 식구가 매한가지지마는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까짓 더럽게 세상을 그렇게 살면 무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남의 앞에 어엿하니 마음이 언제나 가뜬하여 좋지 않으냐는 생각도 든다.
보배가 밥을 안치고 물 대중을 보아달라 하여서 모친이 찌개를 마련하다가 솥을 들여다보려니까 부엌문 밖에서
“계시요?”
하는 곱살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문이 바스스 열린다. 안채의 딸이 또 나왔다.
해죽 웃으며
“벌써 저녁 지세요?”
하고 들어온다. 손에는 무엇인지 종잇갑을 들었다.
“어서 오슈.”
모친은 속으로는 어쨌든지 웃는 낯으로 알은체를 하였다.
“아이구 학생아가씨가 밥을 지으시는군요.”
색시는 인사성 있게 말을 붙인다. 스물세 살을 먹도록 밥이라고 몇 번이나 지어보았을지? 더구나 살림 들어앉은 뒤로 부엌에 내려와보는 일이 없는 이 평민적(平民的) 공주(公主) 아까시의 눈에는 여학생의 밥 짓는 양이 신기해 보이는 모양이다.
“이건 변변치 않은 것이지만 장난삼아 맛보세요.”
하고 안집 색시는 손에 든 과자갑을 마루 끝에 내놓는다. 영어로 쓴 마분지 갑을 보면 초콜릿이나 드롭스인 모양이다.
“그건 뭐라구…… 그만두슈…… 우린 그런 서양 것 잘 먹을 줄두 모르구…… 갔다가 노인네나 드리슈.”
“아녜요 집에는 그런 것이 생겨두 아이들두 없구…… 학생아가씨 주세요.”
속눈썹이 긴 반짝하는 눈에 웃음을 머금어 보이며
“학생아가씨 좀 놀러 오슈. 저녁에는 더구나 아무두 없구 쓸쓸할 지경예요.”
하고 보배에게 이따라도 저녁 먹고 놀러 오라고 다지고 나간다. 보배는 웃어만 보였다.
“어쩌면 얼굴이 그림같이 곱고 그렇게 이뿔까요!”
보배는 안집 딸이 나간 뒤에 아궁이에서 타 나오는 불을 디밀며 이렇게 얼굴을 칭찬한다. 갸름한 판이 어느 한구석 흠잡을 데가 없이 너무 꼭 째어서 어떻게 보면 얄미작스럽기도 하나 원체 천성이 고운지 붙임성이 있고 귀여운 맛도 있어 보이는 얼굴이다.
“얼굴만 반반하면 뭘 하니? 그 어굴 땜을 하느라고 팔자가 센 거 아니냐?”
보배는 팔자가 세다는 뜻이 무엇인지도 자세히 모르겠고 그 여자가 어째서 팔자가 세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왕 여자로 태어난 바에는 그렇게 이뻐 봤더면 하는 부러운 생각을 어렴풋이 하며 과자갑을 들어서 영자를 들여다보려니까 모친은 끓는 찌개 맛을 보다가
“그것두 영어 덕이로구나!”
하고 웃는다.
“두 번씩이나 번역을 해준 인사겠지마는 아이년을 시켜 보내도 좋을 것을 손수 가져오구 너더러 놀러 오라구 하는 품이 너하구 친하자는 모양이라. 그러나가 서양 사람이 오면 너를 불러내서 통역이라도 해달라지 않을지 모르겠다.”
모친은 스렴시 딸더러 들어두라는 듯이 이런 소리를 한다.
“통역은 내가 회화를 할 줄이나 알게요!”
보배는 부친 덕에 간단한 회화라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설마 그런 여자의 서양 사람 교제에 통역을 써줄라구! 하는 생각이다. 그는 고사하고 ‘리차드슨’인가 하는 사람이 내일 만나자 하였으니 그런 사람을 만나면 손짓 눈짓으로 반벙어리 행세를 할 것을 생각을 하고는 혼자 웃었다.
“무언가 좀 뜯어보려므나.”
어린애가 없고 규모로만 사는 이 집에 캔디니 초콜릿이니 하는 것이 생전 들어와본 일도 없는지라 모친도 구경이나 하고 싶은 모양이다. 보배가 과자갑을 다시 들어서 거죽에 싼 파라핀지(紙)를 뜯으려니까 밖에서 “음!” 하고 부친이 들어오는 기척이 난다.
보배는 뜯던 과자갑을 든 채 부엌문을 열고 뜰로 나섰다. 모친도 뒤따라 나왔다.
“그건 뭐냐?”
하고 영수는 아내에게로 눈을 돌린다. 오다가 선술집에라도 들렀었는지 주기를 띤 낯빛이다.
“어디를 가셨다가 이렇게 늦으셨소?”
“응, 오다가 뉘게 끌려서 빈대떡집에 들어가보았지.”
빈대떡집이란 선술집 같은 데인 모양이다. 빈대떡을 몇 조각이나 먹었는지, 영수는 매우 신기가 좋았다.
“좋군요. 소원을 푸셨으니…….”
마누라도 실없이 웃었다.
“소원이라니? 소원이 빈대떡이란 말요?”
영감은 다리가 따분한지 유리창이 열린 마루에 가서 걸터앉으며 껄껄 웃는다.
“늘, 공술 한잔 안 걸린다구 하시기에 말이죠.”
마님은 부엌문 앞에 세워놓은 빗자루를 들고 와서 마당 앞을 쓴다.
“아무러면 내가 그런 소리를 했을까. 세상에 공게 어디 있을라구.”
“주변 없는 영감이나 공게 없지. 신문만 봐두 세상 것이 모두 공짜 같습디다요.”
“마누라두 인젠 늙었군! 그따위 천착한 허욕만 늘어가구…….”
영수는 구두끈을 풀고 마루로 올라선다. 보배도 손에 들었던 과자갑을 유리창으로 들여놓고, 시중을 들러 뒤따라 올라갔다. 영수는 모자와 외투를 벗어서 딸에게 주고 선들한 맛에 다시 마루 끝에 주저앉으며 과자갑을 들어 레테르에 쓴 영자를 들여다본다.
“이건 누가 가져왔니? 누가 왔었소?”
“오긴 누가 와요. 들여다보는 사람두 없지만, 생전 가야 사탕 한 알갱이 먹어보라구 갖다주는 사람 못 봤어.”
마누라는 모은 쓰레기를 쓰레받기에 긁어 담는다.
“내, 이렇게 공거 좋아하는 것 봤나!”
하고 영감은 웃다가,
“응, 저기서 내온 거로군?”
하고 영수는 인제야 알았다는 듯이 안채에 대고 턱짓을 해 보았다.
마나님은 잠자코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나서, 부엌에 들어가 끓는 찌개를 보고 나온다.
“그건 웨 내왔을꾸?”
영수는 저리 밀어놓은 과자갑을 또 한 번 돌려다본다. 집을 내놓으라고 들것질을 하는 판이요 음식을 서로 주고받고 하는 터도 아닌데, 안집에서 별안간 무슨 마음 먹고 그런 것을 주었을까? 하는 약간의 호기심도 있고, 어느 틈에 여편네끼리 사이가 좋아졌나 싶어 그것이 궁금한 것이었다. 안에서들 친해져서 대립 관계가 다소라도 완화되었다면, 당장 거리에 나앉는 수는 없으니 싫어도 삼동을 예서 나게 될까 하는 일루의 희망이 없지 않은 것이다.
“그야말로 공짜가 어디 있습디까?”
마님은 영감의 구두를 치우고 마루 끝에 앉으며 대꾸를 한다.
“그럼 웨?…….”
마님은 사내가 그까짓 것쯤 본체만체할 일이지, 잘게도 묻는다는 듯이 잠깐 잠자코 있다가,
“그것도 영어 덕이라우. 우리는 영어 덕두 고작해야 그런 것밖에 더 걸린답디까!…….”
하며, 또 영어 덕을 쳐들며 코웃음을 친다.
“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영감은 눈살이 찌푸려졌다.
“쟤가 또 편지를 번역해주었다우. 쥔 딸이 제게 온 영어 편지를 가지고 나와서 읽어달래서 번역을 해주었더니, 그 인사루 지금 손수 가지구 나왔구먼…….”
“흠…… 무슨 편진데?”
영감의 낯빛은 좀더 흐려졌다.
“정말 무슨 구락분지 요릿집인지 꾸미나 보군요. 조금 전에 서양 사람한테서, 훌륭한 양가구(洋家具)를 한 트럭크 실어오구, 그걸 받으라는 편진데, 어떤 놈팽인지 내일은 제 집으루 와달라는 그런 편진가 보던데…….”
“흠…….”
세 번째 ‘흠’에는 영감의 입귀가 뒤틀리며, 눈에 모가 났다. 마나님은 좀 점직한 생각이 들어서 영감을 달래듯이,
“저두 그런 편지를 읽어달래놓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든지, 입을 막느라고 그런지, 이때껏 얼씬두 안 하더 이쁜 아씨가 손수 그걸 들고 나와서 살살대며 보배더러 놀러 들어오라 하구 친하자는 눈치군요.”
하며 마나님도 그러는 동안에는 집 내놓으란 성화가 식어질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떠오른다.
“그까짓 것들하구 친해서는 무얼 해…….”
영수는 침이나 탁 뱉듯이 한마디 내던진다.
“……그 애하구 상종을 왜 하게 하드란 말요. 자라는 게집애년에게 그따위 편지를 읽어주라는 마누라가 딱하지!”
영수는 역정을 와락 낸다.
“그럼 어쩌우? 모르면 하는 수 없지만, 뻔히 아는 것을 모른다나. 이런 처지가 아니라두 그만 부탁을 안 들어줄 수 없는데, 어떻게 차차 그렇게 해서 매일같은 그 성화나 면하게 되면 좋지 않은가…….”
마나님은 무심코 한숨이 나온다.
“이런 처지란 어떤 처지란 말요? 딸자식을 시켜 그따위 연놈의 그런 더러운 편지쪽이나 번역을 시켜가며, 사탕 알갱이나 얻어먹고 앉았어야 할 처지란 말야?”
주지가 있는 벌건 얼굴이 퍼래지니까, 흙빛같이 되며, 눈을 까뒤집고 대든다.
“그건 누구 탓이오? 입찬소리 그만 하구, 그런 처지가 안 되게 만들어놓구려.”
마나님도 맞서며 벌떡 일어나서 댓돌 위에 피해 섰다.
“무어 어째? 이게 무언지나 알구 이야기요? ……이게 어떻게 생긴 것인지나 알구서 말을 해요!”
영수는 과자갑을 들어 내밀며 당조짐을 한다.
“……그래 이걸 딸자식에게 먹여야 옳단 말야? 보배 입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앉았으란 말야?”
하는 소리와 함께, 휙 하더니 과자갑이 땅에 털썩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와 함께 영수는 훌쩍 자기 서재로 들어가버린다.
어슴푸레해가는 초겨울의 푸른 하늘은, 드높고 수정알 눈동자처럼 맑았다. 사방이 괴괴하고, 햇발이 진 쓸쓸한 마당에 마나님은 얼이 빠진 듯이 섰다가 과자갑을 먼 광으로 찾아보니, 간반 틈쯤 격한 차면 너머로 굴러 떨어진 것이 차면 밑으로 보인다.
마나님은, 안에서 누가 보지나 않을까 하는 선뜻한 생각이 들면서 가만가만히 집으러 가려니까, 방에서 발자취를 죽이며 나오던 보배의,
“어머닌…….”
하고, 눈을 찌푸린 소리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듯이 뒤에서 난다.
그래도 보배 어머니는 도적질이나 하러 들어가듯이, 흘끔흘끔 안채를 엿보며 발소리를 죽이고 가서 과자갑을 집어들고 단걸음에 나왔다.
“에이 그건…….”
보배는 모친이 더러운 것이나 만지는 듯이 또 눈살을 찌푸린다. 모친의 거동이 천덕구니같이 보여서 더 싫었다.
“그럼 어쩌니! 누가 물건이 아까워서 그러니? 먹는 데 더러워 그러니? 내가 아쉬우니까 그렇지! 당장 내쫓기면 갈 데가 어디냐?…… 이 과자집을 제 울안에서 보고, 가만있을 사람은 누구요, 그 마음은 어떻겠니? 남 욕을 뵈두 체면이 있지…….”
모친의 말에도 고개가 숙었다. 보배는 소리 없이 한숨을 지으며, 어두워가는 마루 끝에서 언제까지 먼 산을 쳐다보고 섰다.
1) 에노구(えのぐ, 繪の具) ‘그림물감’의 일본말.
2) 쩍말없다 썩 잘되어 더 말할 나위 없다.
3) 신이야 넋이야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마구 털어놓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