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떨기 노스탤지어
한 떨기 노스탤지어
최일남
"이게 아냐."
기분이 영 언짢은 윤상호씨는 금방 뛰쳐나온 빌딩 앞에서 몸을 홱 돌렸다. 안에서 당한 불쾌감 때문이었는데 그가 막상 노려본 것은 회전문이었다. 오늘도 이 회전문이 자신을 밖으로 퍼낸 셈이라고 믿는다. 문을 떠밀 때의 호흡조절이 우선 쉽지 않다. 어느 순간에 날렵하고 자연스럽게 발을 들여놓을까 망설이지 않은 적이 드물다. 왼발 오른발의 선후를 지체없이 판단하는 것도 문제다. 대형호텔의 그것처럼 넷으로 나뉜 공간이 널찍널찍한데다 속도 또한 완만하면 사정이 다르다. 밀쳤다 하면 핑그르르 돌기 십상인 좁은 문은 정말이지 난감하다. 알맞게 투신(投身)하는 찰나를 놓쳐 빈 칸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왠지 아깝고, 뒤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경우엔 더 다급하고 멋쩍다.
돌아 나올 때라고 마음이 온전하랴. 조금만 어물거렸다가는 당장 뒤통수를 얻어맞을 것 같은 강박관념에 쫓겨 후닥닥 빠져나오기 예사다. 어려서 고무줄뛰기를 하던 여자들은 다소 나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때다.
회전문 수준은 아니지만 에스컬레이터 역시 투족(投足)의 어려움은 매일반이다. 줄창 회전하는 발판을 편안하게 겨냥하여 맨땅인 양 가볍게 몸을 싣는 예가 적다. 걸핏하면 대중이 어긋난다. 구둣바닥으로 느끼는 계단 경계선의 들어올림과 주저앉음에 작은 진저리를 친다. 어제 오늘 시작한 서울생활이라면 또 모른다. 거의 평생을 살면서도 익숙지 못한 것에는 어차피 친근하지 못한 사람의 덜떨어진 버릇이거니 여길밖에 없다.
그래서 윤상호씨는 언제부터인가 확신하게 되었다. ‘도시는 투족(投足)이다’라고 규정해버렸다. 왕년의 어떤 시장이 내걸었던 ‘도시는 선이다’는 표어를 고스란히 흉내 낸 폭이라고 인식하면 곤란하다. 그것은 막연한 대로 자동차 주행선이나 도로구획, 또는 치솟는 빌딩군과 대도시 스카이라인의 조화 등 턱없이 겉멋만 부린 인상을 풍긴다. 처음부터 통 가늠이 안 가는 말에 대한 나름의 해석은 그러한데, 후자는 훨씬 뜻이 명료하고 인간적이다. 그와같은 슈프레히코어의 자수 제한에 충실하면서,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어려워진 시민들의 보행에 작은 주의보를 발령했다고 볼 수 있다.
저마다 각각인 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서로 엇섞여 돌아가는 가운데, ?일투족?의 민첩도는 곳곳의 횡단보도에 이르러 마침내 예민하게 우열이 드러난다. 이에 비하면 세련된 회전문 출입 솜씨나 에스컬레이터 타기의 남다른 요령은 실용면에서 오히려 층하가 불가피할 판이다. 적신호가 청신호로 바뀌는 순간 보도에서 차도로 내려서는 절묘한 감각을 보았는가. 탕! 울린 출발신호와 간발의 차를 두지 않고 탈토(脫兎)처럼 내닫는 백미터 선수에 비유하면 과장이 지나칠 터이다. 하여간 그 정도로 뛰어난 동물적 응감력의 소유자가 도시에는 쌨다. 윤상호씨는 그런 사람들이 어쩌면 존경스럽다고까지 말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시간을 모아 무엇에 살겠다는 거냐 묻는 일 자체가 빙충맞고 괴이쩍다. 하다가 똑같이 성미 급한 운전자의 우회전 차와 직통으로 부딪쳐 결딴이라도 나면 어쩔 테냐? 염려할 것이 없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많은 그런 모험주의자들이야말로 ‘도시는 투족이다’는 슬로건의 선두주자들이라고 간주하면 그만이다. 앞서 달리는 자들은 시야가 항상 트여 있기 때문에 거침이 없고, 뒤처진 자들은 늑장의 여유로 그들을 비웃다가 드디어 종종걸음 치기 마련이다. 세계적으로 짧고 방정맞은 우리나라 청신호가 윤씨 또래 후발주자들을 그냥 놔둘 리 없는 탓이다. 너 잘 걸렸다는 투로 중도에 벌써 실룩실룩 점멸을 거듭함으로써 기어코 점잔깨나 빼려는 자들의 체면을 거덜내고 면박을 준다. 여기가 어디라고 큰대자 걸음이냐는 듯이 몰아붙인다. 따라서 순간의 일투족에 노상 엉거주춤한 층은 쓸데없는 일에 공연히 신경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안팎으로 나날이 겪어내는 덜미 잡힌 느낌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도 정신 바짝 차리고 발끝에 힘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빌딩 회전문에 잠깐 찡겨 있다가 빠져나온 윤상호씨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그게 다가 아니다. 회전문을 밀면서 언뜻 머리에 스친 조건반사식 느낌이야 언제나와 같았다. 잘게 저며 빨랑빨랑 떼는 젊은 걸음걸이와의 아득한 괴리감은 어디 가랴만 까짓 생각쯤 제쳐놓고 살아온 지 오래다. 상투적인 세대차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구나 그는 싫어하는 편이다. 그딴 논의 끝에 남는 것은 우수수 떨어지는 싸구려 세태론의 잔해와, 대안 없는 한숨의 퇴적뿐이라는 것을 잘 아는 까닭에 가슴에 담아두는 일 자체를 기피한다. 그렇다면 정작 그가 돌이키는 생각은 무엇인가.
몸을 백팔십 도로 돌린 다음 십 층짜리 건물에 바투 서서 기를 쓰고 위를 올려다보는 모양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고개를 뒤로 발딱 젖힌 채, 둘 셋 넷 다섯 여섯까지 세는가 하자 고개를 다시 떨궜다. 엷은 석양빛에도 한참 눈을 뜨지 못하는 불감당의 나이 탓이 클 게다. 아니면 이내 덮친 어지럼증 때문이던가. 어떻든 그는 그것으로 족했다. 애초에 겨눈 목표가 육층이었으므로 더 이상 목을 꺾을 이유가 없었다. 육층 소회의실에서 금방 겪은 일이 하도 허퉁하여 바깥에 나와서도 엉뚱한 짓을 했을 따름이니까.
신입사원들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부탁을 받고 찾아간 잡지사는 육층과 칠층을 모조리 쓸 만큼 잘나가는 회사다. 여성 위주의 여러 가지 잡지를 연령별 계층별로 나누어 대여섯 종이나 내는가 하면 단행본 출판도 매우 활발하다. 잡지에서 추린 것도 있지만 독립기획으로 발간하는 책이 더 많다.
윤상호씨로 말하면 새내기 사원들 상대의 강사 위촉을 처음 받은 것도 아니다. 심심찮게 기고가 노릇을 하는 한편, 그 자신의 여성지 편집장 경력이 암만이었던 까닭에 이미 삼년째 그 짓을 해오고 있다. 강의 내용이야 해마다 조금씩 고친다고는 해도 큰 줄기는 그게 그거다. 듣는 쪽이 늘 새로운 사람들이라는 점에 편승하여 안이하게 묵은 노트를 펴는 게으름을 피우는 셈이다.
그런데 해가 바뀔수록 반응이 시원찮았다. 신입사원 교육에는 그런 어중된 측면이 적지 않다. 시간 때우기로 시종하기 쉬운, 어차피 낯선 조우일 공산이 크다. 겉자락만 들추는 연사의 말에 청중 또한 국으로 귀만 빌려주고 있는 듯한 장면이 없을까 보냐. 더러더러 메모를 하는 얌전한 수강생이 있고, 지루하지 않도록 강사가 미리미리 매설해둔 최소탄(催笑彈)에 한껏 벙그는 여사원의 입이 있다. 말하는 쪽은 그런 때 싱그러운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개는 썰렁한 일방통행으로 끝나기 일쑤다. 이왕지사 해동갑이나 하면서 서로에게 배당된 시간을 죽이자는 분위기가 보통이다. 시작 박수에 비해 끝날 때의 박수가 한층 요란한 저의를 알 만하다.
아무리 그렇기로 오늘은 너무했다. 한해가 다르게 자신이 주워대는 이야기에 탄력이 붙지 않고 느슨하게 풀리는 것을 실감한다. 일껏 전달했다고 믿은 메씨지가 상대방의 울림통에 여간해서 닿지 않기 때문이다. 피차 지닌 진동수의 차이에서 오는 수도 있겠는데, 구체적으로는 언어 선택의 초기 단계에서 그만 평행선이 갈린다.
오늘도 그랬다.
가로 사고의 일상성에 더 친숙한 그들에게 매스컴 문장의 변천사를 세로로 간략하게 요약해줄 요량으로 실례를 줄줄이 들었다.
"여러분, 글은 사람이라는 말 아시죠? 글 속에 글쓴이의 개성이나 사람됨이 불가불 드러나기 십상이라는 의미로 귀에 못이 박이도록 자주 들은 말일 겁니다. 그런데 신문 잡지 문장은 그게 아니에요. 픽션 아닌 팩트, 즉 사실을 대중성 획득의 간략한 문체로 써야 하니까요."
각자 하기 나름이겠으나 앞으로의 우리 사회는 신문 못지않은 월간지와 주간지 시대가 꼭 올 것이라는 전망을 자상하게 풀이한 뒤에 한 말이었다. 선진 여러 나라의 월단위 주단위 매거진의 지대한 성가와 품격에 근거를 둔 그와 같은 예측은, 신문 잡지의 한국적 위상을 놓고 자격지심에 젖는 신참들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잡지 저널리즘에 대한 이상과 같은 소신은 윤상호씨의 평소 지론이기도 한 까닭에 건성으로 해본 소리가 아니었다.
?물론 저널리스트의 문장이라고 어찌 개성의 드러냄이 깡그리 무시되겠습니까. 그 사회 역시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잘 쓰고 못 쓴 글의 구분은 확연합니다. 다만 신속 정확을 최우선으로 치는 직업의 성격상 스타일북이 요구하는 기본적 규제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거지요. 현대 신문 문장의 특별한 모범이 없던 한말 당시의 서명 논설은 거의 다 명논설 아니었습니까. 최근엔 그러한 서사적 논설을 근대소설의 시초로 규정하는 학자도 있는걸요.?
이때 그새를 못 참고 따분해하는 기척이 뒤켠에서 발견되었다. 윤상호씨는 얼른 눈치채고 말을 바꿨다. 어떤 모임, 어느 장소에서나 그렇다. 약간 딱딱하다 싶은 얘기 앞에서 불과 오 분을 견디지 못하는 오늘날의 ‘재미병’ 환자들에겐 흥미 있는 예증(例證)이 약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까요. 천팔백팔십년대의 한성순보는 국한문 혼용이라기보다 한문에 토를 다는 꼴이었습니다. ‘心에’ ‘大한’ ‘靑한’ 등 동명사가 모두 한문이었습니다. 주관이 개입된 감탄사라든가 강조법만 한글로 적었습니다. ‘가라사대’ ‘차마 말하랴’ 이런 식이었답니다."
허리를 꼬던 풋내기들이 몸을 곧추세우는 기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
"독립신문이 나오면서 비로소 언문일치 문체가 시작됩니다. 한 기사를 읽어보지요."
이달 스무날 열두 시에 남촌 우물골 우물에서 오씨의 계집 하인이 물동우를 이다가 또아리가 빠지거날 사나희 한범이란 놈이 지내가기에 또아리를 너달라 하니 그놈이 너준 체하면서 은비녀를 빼가지고 도망하거날 계집 하인이 물동우를 던지고 고셩으로 뎌기 도적놈 간다 하니……
"어떻습니까. 요새로 치면 사쓰마와리(경찰출입) 기자가 쓴 기사인데, 범인이 잡혀 취조당하는 대목까지 다룬 삼십여 행의 기사를 한 문장으로 처리했습니다. 접속사라고는 겨우 ‘거날’ ‘하니’가 고작이었으며, 그 이전까지의 기본 어미(語尾) ‘하도다’를 ‘하였더라’로 바꾼 것이 특징입니다. 띄어쓰기도 여기서 보는 것처럼은 아니고, 다닥다닥 붙어 있구요…… 그런가 하면 천구백년대에 들어와서도 아직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주관을 배제하지 못했습니다. 대한매일신보의 예를 봅시다.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에 찬성한 이근택(李根澤)의 하인이 을사 오적의 한 사람인 자기 주인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달려드는 장면이에요. 한문투성이인지라 맛뵈기로 한두 줄만 옮기겠습니다. 묘사가 완전히 주관으로 되돌아가고 맙니다."
憤氣가 腦中으로 湧出하여 以饌刀로 擊狙하고 高聲叱曰…
"이러한 기사 스타일의 왔다갔다 현상은 조선, 동아일보가 보름 간격으로 창간된 천구백이십년에 이르러 한결 정돈된 체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변사조의 연파적 감상이 마구 들락거리고, ‘하였다더라’식 간접화법이 등장하여 우리를 웃겨요. 볼까요?"
지난 십구일 오전 세시부터 네시 사이에 경성 시내의 남쪽 하늘로부터 크기가 보자기 둘레 혹은 더 크다고도 하나 밋지 못하겠다만 한 별똥이 동북간으로 흘렀다더라……
"어때요. 웃기죠? 도대체 별똥 하나 흐른 걸 가지고 법석을 떨다니 어지간히 화제가 궁했던 모양입니다. 정상에서 벗어나 호기심을 자극하면 기사가 된다는 의미에서 망발은 아닐지 모르죠. 보통 별똥이 아니라 크기가 보자기만하다고 했으니까요. 허나 아무리 미터법이 아직 생활화되지 않았던 시대라 하더라도 보자기에 비유할 건 뭡니까. 그래 놓고 다시 ?믿지 못하겠다? 의심할 양이면 애초에 활자화하지 말았어야죠. 쓰는 사람조차 긴가민가한 사실을 누구더러 읽으라고 버젓이 기사로 다룹니까?"
수강생들은 그러나 웃지 않았다. 몇몇의 입가에 인색한 웃음이 머물다 말았다. "왜 이런다지?" 윤상호씨는 차츰 조급해졌다.
"이런 예가 하나둘 아닙니다. 기사 서두에는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는 리드〔前文〕를 먼저 올리지 않습디까. 그게 글쎄 제맘대로라니깐 그러네. 보세요."
듣는 자의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듯……
"이것은 슬픈 기사의 리드입니다."
약한 자여. 그대의 일흠은 여전히 여자인가?
"이것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성폭행을 당하고 우는 소녀 이야기의 앞머리입니다. 코미디언이 미리 웃거나 비극 전문의 배우가 먼저 울상을 짓는 모습 보았습니까? 없지요. 그렇게 되면 무슨 재밉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화자가 사전에 비탄조로 나오는 바람에 독자의 흥미를 반감시키고 만 셈입니다. 히든카드를 초장에 까발림으로써 손님을 다 쫓아버린 격이라구요. 안 그래요?"
말에 한껏 억양을 넣어 길게 뺄 때 빼고 애잔하게 죽일 때 죽였다. 제법 변사투 목소리를 가다듬어 수강생들을 향한 감정이입을 꾀했으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맥이 풀리는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이 왕왕 있잖은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경우, 당사자는 대개 계산을 한다. 즉흥연설이건 원고를 읽는 계제가 되었건 간에, 이 대목에서는 한바탕 웃겨야 한다든가 저 대목에 가서는 슬프게 긴장시켜야겠다고 벼른다. 그런 계산이 어긋나면 필시 허둥댄다. 며칠을 두고 기분이 찜찜한 속앓이가 계속된다. 더구나 잘잘잘 웃어줘야 할 고비에서 청중들이 멀쩡한 표정으로 정좌하고 있으면 스스로의 가슴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멍청한 이들 앞에 내가 왜 섰던가 후회가 일면서, 준비해 간 말의 가닥이나 순서가 지리멸렬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여 윤상호씨는 되도록 결혼식 주례를 서지 않는 편이다. 식장 밖에서는 서로서로 웃다가도 안에 들어오면 웬만한 농담에도 끄떡하지 않아 장례식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오히려 병원 영안실에서 웃음이 헤프다.
"내가 지금 예전 신문에서 들춘 기사들을 인용하며 여러분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문장 비판이 아닙니다. 천만에요. 시대 변천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이 다르듯 글투나 문장 스타일도 그 시대 나름의 문법이 있는 법이며, 우리 선배들은 그런 문법으로 당대의 앞서가는 지식인 구실을 충분히 해냈습니다. 단편적인 이 인용문 역시 내가 전부 긁어모은 것이 아니고, 한 친구가 지난날 지상에 발표했던 것을 건네받아 정리한 겁니다. 도서관 등을 뛰어다니며 얻은 자료와 내 경험을 보태어 강의노트를 만들었어요. 자기 손으로 직접 글을 쓰든 안 쓰든, 장차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글을 떠나서는 잡지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좀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이해하시고,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윤상호씨의 어투에는 어느덧 힘이 없어 보였다. 모두 해서 열대여섯 가량 될까.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신입사원들답게 앳된 얼굴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동 가운데에는 나이가 꽤 진득해 뵈는 청년도 끼여 있었다. 그런 축일수록 어쩐지 시들해하는 인상이다. 짜여진 시간표대로 교육을 받기는 받는다마는…… 하는 기미가 얼굴에 씌어 있다.
이 사람아. 조금만 참게. 나도 오늘은 왠지 심정이 처진 터여서 할당된 시간이나 채우고 곧 끝낼라네…… 빗나간 웃음의 물때 탓이었겠으나 반드시 그것 때문만이 아니라고 우기고 싶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들과 나 사이의 헤싱헤싱한 공기는 어디서 오는가.? 윤상호씨는 언뜻 머리에 떠오르는, 꼭 잡지제목 같은 생각을 굴리며 노트 속의 메모 쪽지를 몇 장 집어 고개를 들었다. 여성잡지와 독자의 관계를 말할 참이었다.
그러나 그의 오늘의 운수는 거기서 마지막 제동이 걸렸다. 그가 막 입을 떼기 위해 수강생들을 별뜻 없이 훑는 동안, 공교롭게도 맨 뒤쪽에 앉았던 남자 사원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엉거주춤하게 올리다 만 당자의 팔이 자기를 봐달라는 신호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의 시선이 그쪽으로 끌려간 것 같다.
"선생님."
"……응."
남자 사원이 앉은 채로 말했다.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되다마다. 서슴없이 해보라구. 안 그래도 나중에 질의응답 시간을 줄려고 했는데 중간에 하면 어때……"
이상하게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되일으키지 못해 은근히 안달하던 푼수다. 내 경험의 곳간은 네까짓 햇병아리들의 됫박 같은 궁금증을 섬〔石〕으로 갚아주고도 남을 만큼 풍성하다고 자신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답답한 의문이라고 해야 옳을 듯합니다만…… 요컨대 무의미합니다."
무의미하다?
"무엇이 어떻게……"
생뚱맞아도 분수가 있지 이 녀석이 어느 지경을 헤매는가 싶었다. 청년의 질문을 낚아채어 장면 전환을 꾀해야겠다는 궁리 따로, 수상쩍다는 불안 따로의 순간이 잠깐 흘렀다.
"선생님 말씀이 그래요. 까닭을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기분이 그냥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우스운데 저희는 별로 우습지 않은 감각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잘은 몰라도…… 정직한 심정입니다."
"그으래? 지금까지 한 말이 죄 의미없게 들린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화가 나는 한편으로 와르르 덮친 낙망의 더미에 깔려 두 다리가 허방을 짚은 듯 한참 떨렸다. 나는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허드레 지식을 곳간에 섬으로 쟁여놓고 이들에게 먹이려 했단 말인가. 잔뜩 골마지가 낀 문자의 나열에 유효기간이 석삼년도 넘어 아예 변질돼버린 초를 쳐 어쩌겠다는 겁니까? 사절의 손사래를 당한 꼴이다. 최소한 글자를 갖고 노는 세계에서만은 꿀리지 않는다고 확신했었다. 아무려나 이놈들은 아무데서나 정직하고, 시도 때도 없이 솔직하구나. 진저리를 쳤다.
"이게 아냐."
무의미의 면박에 쫓겨 허둥지둥 바깥으로 밀려난 모양의 윤상호씨는 아까처럼 또 중얼거렸다. 고개가 아프도록 올려다보던 육층서부터 눈을 밑으로 내리깔고 층수를 센다. 다섯 넷 셋 둘 하나까지 세었을 때는 핑 도는 현기증과 함께 왈칵 밀려든 피로를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택시에 얼른 몸을 부린다든가 버스를 탈 염을 내지 않았다. 가능한 한 마냥 걷기로 작심한다.
걸으면서, 초기 녹내장 환자의 아롱아롱 들썩이는 시계(視界)가 아니라도 으레 뿌연 거리를 걸으며 생각하기로 한다. 차차세대는 모를까 차세대조차 아직 따끈따끈한 경험법칙의 공존을 거부하는 내력이 우선 가슴에 맺힌다. 신문 문장의 끄트머리가 ‘하였다더라’에서 ‘했다’로 바뀌는 데 육십 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도 그 통에 끝내지 못하고 나왔다. 한바탕 호통치며 맞대결의 끝장을 볼 걸 그랬다는 후회가 앞섰다.
정반대의 후회가 이때 고개를 내민다. 쓸데없이 파르르 성을 내 화를 끓이는 대신, 허허 헛웃음 치면서 그들의 무의미를 어르고 구슬리지 못한 좀스러움이 마음에 걸린다. 나이가 시키는 노회한 너그러움이 그것 아닌가.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럴 때 그럴망정 도저히 참기 어려운 국면에 직면하면 몸부터 빼고 보는 성깔에 자족한다. 섣부른 화해보다는 말없음표 같은 자기 인멸이 낫다고 믿는 처지다. 그는 그러므로 파산적 같은 화이부동을 좋아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파와 쇠고기가 이루어내는 맛이 진짜 융합의 맛이라고 여긴다. 노소의 어울림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어차피 두 갈래로 뻗어나가야 제격인 것을 어거지로 겹치려 들면 오히려 병통이 생기기 쉽다. 필요할 때 만나 서로 받쳐주거나 타고 넘다가, 또다시 헤어져 제 갈 길을 가는 철길로 구실하면 그만이다.
이런 생각을 할 적마다 그는 자신이 묵은 인텔리겐치아의 한 사람임을 속절없이 의식한다. 따지고 보면 그런 말 자체가 쓸모없는 곳간에 나뒹구는, 팔리지 않는 재고품일 공산이 크다. 한들 대수랴? 모처럼 배에 힘을 주려고 애쓴다.
문물의 새 모드에만 집착하는 이들의 안목으로는 꿈자리 사나운 허섭스레기들의 집합처로 비칠 노령의 곳간엔들 어찌 챙길 것이 없겠는가. 그것들의 총화가 이를테면 윤상호씨 또래 인물들의 뱃심의 근거다. 시간을 단위로 헌것 새것을 구분하는 상식의 허구를 알기 때문에, 첨단에 질린 인심이 언제는 낡았다고 버린 자기 곳간을 찾을 날이 멀지 않다고 점친다. 레테르만 잘 바꾸면 구가 신이 된다. 신은 태생과 동시에 구의 운명을 타고나기 때문에 예정된 잠적 준비가 불가피하다. 그야말로 신구 분간이 무의미하다.
이것이 윤씨의 희망의 거처라면 거처다. 지진을 못 일으킬 정도로 노화했다고 치부한 땅에서도 생명수는 솟는다. 일백오십미터 지하에 묻힌 암반을 까부수고 얻은 물을 처녀수로 떠받드는 세상에서, 그를 노상 나무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한물간 듯한 여운을 풍기는 인텔리겐치아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윤상호씨의 곳간에서 꺼낸 말인데, 이따위 부스러기 언어들은 실상 그의 생애를 구획짓는 중간제목 역할을 한다. 오랜 편집자 생활을 통해 길들여진 버릇 탓이겠으되,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이 보낸 시절 시절을 일정 기간마다 적절히 쪼개어 레이아웃하기를 좋아했다.
하면 떠오른다. 깨끗이 사라졌다고 믿었던, 또는 차갑게 정지된 화면으로만 존재하던 것들이 제목을 달아주는 순간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썩썩 종이 자르는 가윗소리와, 쩍쩍 떼고 붙이는 스카치테이프의 투명한 질감과, 덕지덕지 처바르는 딱풀의 접착력과, 갖가지 색연필의 선연함과, 스무 장 이상을 끼우면 나선(螺旋)이 뒤틀리는 클립과, 삼각 뿔자와, 무엇보다 요긴한 모나미 볼펜과 원고지와…… 더불어 현신하였다.
어떻든 윤상호씨가 띄워올린 인텔리겐치아의 뒤를, 그리하여 따라가 보기로 한다. 그가 길을 걷다 말고 대책 없이 기운 마음으로 우연히 건져 올린 인연을 찾아가기로 하자.
초여름.
난생처음 방문하는 소도시였다.
애독자를 위한 현지좌담회라는 이름의, 잡지 홍보의 일환이었지.
‘저명’ 두 자가 안 붙으면 피차(본인과 지방 독자)간에 서운한 소설가와 여류 평론가를 모시고, 윤상호씨는 편집장 자격으로 사진부장 속기사 등과 함께 내려갔다.
현지의 환영 분위기는 미안할 정도로 융숭했다. 미리 기획한 대로 좌담회에 참석한 그 지역 인사는 모두 네 명이었다. 역시나 ‘유명’자가 붙는 교수 시인 등이었는데, 독자대표 격으로 나온 처녀 하나만 수수한 시민이었다.
그날의 좌담 테마는 아마 ‘여성의 사회진출과 그 문제점’ 비슷한 것이었을 게다. 시청에서 내준 방에서 두 시간 남짓 걸린 좌담회를 마치자마자 지역 유지가 베푼 만찬장으로 향했다. 떡 벌어진 상차림이 서먹했으나 최고의 잡지와 우리 지방의 영예 운운의 칭찬이 더 민망했다. 다섯 손가락으로 셀 정도의 잡지밖에 없던 때라 그럴 수도 있으려니 넘겨짚으면서도 맹탕 빈말은 아닐 것 같은 진지한 자세가 고마웠다.
그러나 공식행사가 지닌 분위기란 으레 그런 것이다. 윤상호씨는 다음날의 감동을 지금껏 잊지 못한다. 서울서 온 두 인사가 딴 볼일이 있다며 일찍 자리를 뜨자, 좌담회에 참석했던 처녀 독자는 내일 아침을 자기네 집에서 먹자고 잡지사측 사람들에게 제의했다. 오후의 기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으므로 꼭 초청에 응해달라고 간청하다시피 졸랐다. 여관에서 어차피 하룻밤을 묵을 수밖에 없었던 윤씨 일행은 못 이기는 척 호의를 받아들였다.
아침이 되어 일부러 여관까지 데리러 온 여자의 집은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꽤 넓은 마당에 비해 집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감나무와 석류가 한 그루씩 토담 위로 가지를 뻗고, 그 옆으로는 홍초 무더기가 한참 싱그러웠다. 우물가 살구나무의 시퍼런 열매는 입안에 신 침을 당장 고이게 만들었다. 맨드라미 봉선화 앉은뱅이류는 아무렇게나 자리 잡아, 꼴이 볼썽사나운 중병아리들의 발길에 속수무책으로 이리저리 짓밟혔다.
부모네와 인사를 하고 대청에 차린 아침상을 받았다. 그리고 식후에 따라 들어간 여자의 방에서 윤상호씨는 깜짝 놀랐다. 벽면을 가득 메운, 자기네 잡지에서 오려 붙인 화보들에 기가 질렸다.
“아니 어쩌자고 이렇게 많이……”
“유치하지요?”
“어디가요. 그게 아니라 정성이 너무 지극해서 그럽니다.”
포토 에쎄이라는 사진들이다. 석양이 부챗살로 퍼진 강가에서 그물질하는 어부의 씰루엣에 대고, 자잘한 활자가 무어라고 무어라고 토를 단다. 머리에 물동이를 인,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여인이, 치마 끝으로 몽롱한 아지랑이를 차며 걸어나온다. 사진작가와 시인의 합작품이다. ‘오씨의 계집 하인이 물동우를 이다가 또아리가 빠지거날 사나희 한범이란 놈이……’ 사건 기사와는 거리가 멀다.
"어쩐지 부끄럽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여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 손으로 만든 잡지 오가리가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몰랐거든요."
포토 에쎄이는 품과 비용이 적게 들뿐더러, 독자 돌려먹기도 쉬운 제작방식이라는 사실을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한다. 대개의 경우 사진작가는 예전에 찍어두었던 자기 작품 중에서 계절에 맞는 것을 고르면 된다. 시인은 산문 같은 운문이나 운문 같은 산문을 곁들인다.
"아무려면 어때요. 제가 좋으면 그만이죠."
"하기사……"
"여기도 있어요."
여자는 어른 키 높이와 맞먹는 책장 밑단에 가지런히 꽂힌 여러 권의 스크랩북을 꺼내 방바닥에 펼쳤다. 주제별로 정리한 스크랩북 속에서 그가 고심해서 붙인 제목과 캐치프레이즈와, 심지어 지형을 잘못 떠 위아래가 거꾸로 찍힌 연재소설 삽화까지 그를 반기듯 춤을 추었다. 다소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이 처자는 우리 잡지를 교과서나 인생독본처럼 모시는가?
"미스 리라고 하셨죠?"
"네. 고등학교 이학년 때 큰병을 앓았거든요. 무려 사 년 동안이나…… 하다 보니 중도에 공부를 작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안사정도 마침 꿀리기 시작해서 병이 다 나은 후에도 대학 진학을 꿈꾸기 어렵게 되었어요. 이래저래 반거충이 신세로 이렇게…… 어머 나 좀 봐. 괜한 궁상을 떨었네."
상대가 묻지도 않은 자기 처지를 미리 까발린 자책감 때문인지 미스 리의 양볼에 약간 붉은 기가 돌았다. 처음 대하는 남자 손님들이, 미구에 물어볼지도 모를 흔한 궁금증을 한꺼번에 입막음하자는 속셈이었을 게다. 그래도 미처 거두지 못한 면구스러움이 낯에 연한 연짓빛을 물들이게 했거늘, 바라보는 쪽에게는 그것이 화색으로도 비쳤다. 말을 바꾸면 미스 리의 얼굴이 그만큼 희다는 뜻이다. 통통한 몸매로 치면 병약한 구석이 없어 보일망정, 허망하게 자주 웃는 눈에 어떤 체념이 고여 있는 듯했다. 물론 세세한 묘사는 불가능하다. 그게 언젯적 일이라고 이제 와서 상상의 초상화를 그려봤자겠지만, 좌우지간 건강이 펄펄 넘치는 체질은 아니었다.
"어때요.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지나치게 얌전 뺐다가는 되레 손해보는 시대인데. 나중에 허겁지겁 수습하느라 덤비다가 낭패 보기 쉽거든요. 안 그렇습니까."
"여성지 제작을 하시노라면 만나느니 미인들이겠네요."
미스 리는 겸연쩍었나보다. 화제를 돌리자는 암시인가, 엉뚱한 질문이 되돌아왔다.
"웬걸요. 사무실에 처박혀 작업에 파묻히다 보면 봄이 오는지 가을이 가는지 도통 무감각해집니다. 초여름에 벌써 가을호 기획을 하는가 하면, 단풍도 들기 전에 다음해 정월의 패션 화보를 준비해야 합니다. 실속없이 세월을 서너 달씩 앞당겨 사는 가불(假拂)인생인데 그럴 겨를이 어딨습니까. 예쁜 여자 구경은커녕 계절 따라 바뀌는 경치 구경조차 제대로 못합니다."
"불쌍하시다. 그래도 잡지에는 매달 미인들 사진이 시글시글하던데요"
"그게 모두 그림의 떡이라는 겁니다. 일로 만나고 일 때문에 접촉하는 미녀들은, 속이 메스꺼울 지경으로 야한 화장품 냄새나 풍기고 사라질 따름입니다."
"어쩌면. 짐작했던 것과 너무 다르네."
"그 대신 똥냄새 하나는 다달이 실컷 맡습니다."
"네에?"
얼결에 손등으로 살짝 코를 가리는 시늉을 한다. 웃을락 말락 기묘한 표정이었다.
"발행날짜를 지키기 위해 매월 하순엔 직접 인쇄공장을 찾아가는 게 보통입니다. 그 자리에서 밤새 마지막 교정을 봐야 하거든요. 한데 꼭꼭 공장 변소 푸는 날과 겹칩니다."
초면의 어색한 공기를 빨리 걷어내려는 계산이 없지 않았다. 하자면 무장해제 표시가 선행돼야 했는데 그는 곧잘 이런 투로 농담을 던졌다. 자신의 일이나 행동을 우정 하시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믿는 편이다. 효과는 흔히 반반이다.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재밌는 분이시네요."
"내가요?"
"위트가 넘쳐요."
위트라고 했겠다?
청년 윤상호는 잘 얻어먹은 아침 뒤의 작은 실수에서 놓여난 기분이었다. 밋밋한 사이를 활달하게 트자고 꺼낸 말이 해놓고 보니 목에 걸리던 판이다. 경솔하게 배앝은 ‘똥냄새’를 도로 지울 수도 없는 단계에서 여자의 위트가 자기를 살리다니…… 하지만 그 위트는 또 이상한 이질감으로 처졌다.
다 아는 대로 말은 요물이다. 발설자의 생활양식이나 신분과 밀접하게 관련되면서 중앙과 변방을 가르기도 한다. 시대 변화의 속도를 대중하게 만드는 가운데, 말하는 자에 대한 듣는 자의 선입관 또한 항상 어쩔 수 없다. 따라서 식빵 쪼가리를 커피에 적셔 아침을 때우기 시작한 대도시의 위트와, 아직 오첩 반상기로 조반을 치르는 지역의 위트를 달리 의식한대서 굳이 나무랄 이유가 없다. 좋고 나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니까.
보라. 미스 리네 아침상에는 애호박찜이 올랐다. 곤죽으로 삶은 것도 아닌 것이, 사각사각 설익지도 않은 것이 맛맛으로 얹은 새우젓의 짭조름한 씹힘과 어울려 혀에 달았다. 밥솥 안에서 찜질당한 조기 새끼의 살점이야 별로 취할 것이 없다. 하지만 고춧가루와 마늘 다진 고명 덕에 입에 넣을 만하다. 데친 미나리가 조금 쇠기는 했어도 야들야들 저작(咀嚼)의 즐거움과 향내는 어디 가랴. 게다가 놋대접의 아욱국이 괜찮았다. 햇된장을 슴슴하게 푼 국물엔 수염 따낸 마른 새우를 띄웠더라. 고놈들이 미끈덕 대궁과 슬쩍 숨죽인 이파리의 감칠맛을 더 도왔다. 밥물을 떠 버무렸음직한 열무김치는 풋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버무리는 솜씨가 여간 아니라는 증좌다.
자 그걸 먹고 난 입으로 흘린 ‘위트’ 아닌가. 함부로 드러냈다가는 외려 큰코 다치리라. 그러는 당신네는 쌀밥 먹고 양똥 싸는 폭이길래 같은 말을 두고 서울과 시골을 차별하느냐는 반발과 마주치기 쉽다. 그러므로 이상한 낌새를 털끝만치도 내색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내친김에 보탤, 상칼한 외래어의 울림을 수줍게 되쏘는 풍물이 방안에는 또 있었다. 바람벽 구석에 비스듬히 세워놓은 수틀이 그거다. 대충 치우다가 그랬겠지. 가린다고 가린 보자기가 반쯤 젖혀지는 바람에 들통난 그림은 분명 학이었다. 빈 하늘에 걸린 달과 비상하는 학 외에 무언가를 더 놓다 만 듯한 미완성품이었다. 위로 길쭉하게 솟은 타원형 거울의 완만한 선 때문에 유난히 구식스러워 보이는 경대도 그렇다고 볼 수 있었다.
여자의 다소곳한 방안 풍경에 국한된 인상이기는 하지만, 생각 따로 생활 따로 놀던 오십년대 말 의식의 불균형을 거기서 발견할 수도 있을까. 생각은 이미 후진의 틀에서 벗어나 개발도상국으로 이륙하기 위한 활주를 계속중인데 생활은 아직 땅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랄까…… 이런 현상은 항용 본인보다 타인의 눈에 잘 띈다. 튀는 말을 미처 따라잡지 못하는 의식의 혼돈이 숱해 보인다. 그날 있었던 이런 장면은 또 어떤가.
"뭡니까. 내가 보면 못쓰나요?"
한옆에 앉아 건성건성 스크랩을 뒤적이던 사진부장이 또다른 스크랩북으로 손을 뻗은 때였다. 사진부장은 별달리 두 사람의 얘기 사이에 뛰어들 계제를 찾지 못해 무료한 동안을 보냈던 폭이다. 그런데 미스 리는 그가 새 스크랩북을 손에 들고 처음 한두 장을 들추자마자 빼앗다시피 그걸 가로챘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겉장을 얼른 덮은 다음 자기 무릎 밑으로 찔러넣었다. 엉겁결에 무안을 당한 사진부장은 둘째치고, 윤상호 역시 어리둥절할밖에 없었다. 얼굴은 웃고 있을지언정 표정은 온전치 못했다.
"이건 보지 마세요."
어느 틈엔가 부끄러움으로 홧홧해진 얼굴에 홍조가 번진다고 느꼈다.
"왜요?"
거의 반사적으로 물었다.
"그냥요."
"개인적인 비밀이 섞여 있는 모양이군요. 우리 잡지에서 스크랩한 내용이라면 그러고 말고 할 것이 없을 텐데."
"물론이지요. 어떤 잡지인데. 품위와 성실을 모토로 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교양지죠. 당신에게 높은 교양과 취미를,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의 감각을 갖게 할 것이라는 취지를 전적으로 믿는답니다."
"이러다 추락할까 두렵습니다. 비행기를 너무 태우셔서……"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비밀이라도 들어 있느냐는 앞대가리 질문은 무시한 셈이다. 낯 간지러운 칭찬만 잔뜩 늘어놓았거늘, 윤상호 편집장은 순순히 긴장을 풀지 않았다. 재빨리 감춘 스크랩 내용이 무엇인가를 엔간히 단련된 눈썰미로 좇다 말고, 미스 리가 덮치는 순간 훔쳐 본 제목(자신이 붙인)으로 어느새 감을 잡았다. 그 스크랩 묶음은 ?스 기사의 집대성에 틀림없다고.
그것도 여성 교양의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남녀 성기의 단면도만 대하고도 일단 이맛살을 찌푸리는 상황에서 윤상호네는 대담하고 미세하게 나갔다. 건강한 성생활에서 터지기 마련인 열락의 소리까지 담을 수준의 열린 정성으로, 묘사는 정확하고 설명은 구체적으로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초기엔 뜨악하던 반응이 차차 짙은 관심으로 바뀌었다. 덕택에 잡지 판매부수가 늘었다.
사람들은 대개 봄을 타든가 가을을 탄다. 계절에 민감한 축일수록 그러한데, 당시의 잡지는 으레 여름을 탔다. 어김없이 부수가 뚝 떨어진다. 그때마다 편집실에서는 쎅스 특집으로 쇠진한 잡지의 기력을 회복하자는 아이디어 아닌 아이디어를 들먹였다. 교양지의 일정한 한계를 지키면서 말이다.
하노라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나가는 경우가 없지 않다. 지나친 호기심의 연장으로 오입하는 경향이 왕왕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스 리의 저 스크랩북 속에도 그런 게 들어 있으리라고 짐작하는 건 당연하다. 아마도 전희(前戱) 후무(後撫)로 시작하여, 오르가스무스, 오나니, 레스비언, 소도미, 파라노이아, 리비도, 비너스의 언덕, 페티시스트, 오럴…… 어쩌고 하는, 요새로 치면 하나도 신기할 것이 없는 개코 같은 용어 등속이, 성 지식의 너울을 쓰고 등장할 터이다.
그런들 대수고 저런들 대수랴 싶은 마음이다. 다만 미스 리로서는 우리 잡지를 그러안고 나름의 교양을 쌓아가려니 넘겨짚었다. 바깥세상으로 뚫린 유일한 호기심의 창구이자 심심풀이 해소 욕구를 웬만큼 채워주는 매개체로 벗삼는 모양이다. 마침 입밖에 낸 미스 리의 말 역시 신통하게도 그 점을 짚었다.
"벌로 하는 칭찬이 아니에요. 이처럼 작은 고장에서 사는 여자들은 제풀에 숨이 꽉 막히기도 한답니다. 정확히 까닭을 설명하라면 말문이 막히지요. 구태여 댄다면 사는 형편들이 무척 권태로운 때문이라고나 할까. 정신적으로 우선 답답해요. 신선한 자극이 없고……"
"그런 때 우리 잡지가 적적한 나날을 달래준다?"
"그 이상이지요. 역할이 큽니다. 나를 따라 내 친구들도 꽤 많이 보게 되었는데 걔들 역시 배울 것이 많다고 그럽니다. 몰랐던 지식을 얻고, 그대로 흉내는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유행감각도 익힐 수 있거든요."
"저런! 부수 확장에도 공헌하셨군요."
"그런데요…… 유행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잡지 앞자락에 싣는 패션 화보 있죠. 왜 그리 촌스러워요? 모델도 그렇고, 어떤 땐 아주 궁색스러워 못 봐주겠더라구요."
"그래요?"
모처럼 환하게 미소짓는 여자의 기색이 밝다. 간혹 듣는 불만이기는 했으나 중소도시에 사는 독자한테서까지 비판받다니 의외였다. 실생활과 너무 많이 겉도는 사치를 피하자는 것이 당초의 편집의도였다. 모델로 국적 불명의 팔등신 대신 되도록 보통에 가까운 여성을 내세움으로써 독자와의 친밀감을 돋우려고 한 것인데.
"그럼요."
"우리 깐엔 독자의 처지를 참작해서 꾸민다고 꾸민 건데."
"아무리. 농담이시겠죠. 천하의 인텔리겐치아들이 여성들의 심리에 그토록 깜깜할라구요. 생활은 낮게, 생각은 높게. 이런 방침으로 잡지를 만든다고 선전하지 않았나요? 독자의 형편을 고려해주는 건 고맙습니다만 정말로 그랬다면 독자를 경멸한다는 소리 들어요. 구차한 살림에서 일시적이나마 해방되고픈 욕망마저 허영심으로 따돌리면 어쩝니까?"
"어이쿠! 된통 얻어맞았습니다."
에디터 윤상호는 손바닥으로 과장되게 자기 이마를 쳤다. 거푸 두 대를 맞았다고 생각했다. 인텔리겐치아가 하나고 촌스런 패션이 둘이다. 벽에 오려 붙인 사진과 정성껏 간수한 스크랩북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어떤 일에 쫀쫀하게 골몰하는 사람의 여간 깐깐한 성격은 때때로 피곤하다. 까딱하면 편집증으로 발전하여 접촉하기 팍팍하다.
한데 그날의 그는 애초에 무얼 밝히고 캘 의향이 없었다. 피차 호감으로 비롯된 자리라서 대견스러운 마음으로 응했다. 소싯적에 만난 후로 격절의 동안이 너무 길어 하마터면 낮춰잡을 뻔했던 사람을 새삼 괄목상대하는 감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자기네 잡지가 끼친 영향력과도 무관하지 않은 사실을 깨닫자 같잖게 차오르는 보람마저 확보할 수 있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자기를 인텔리겐치아로 추켜세운 발상이 엉뚱하고 열쩍기는 했다. 요새는 말할 나위 없다. 이런 용어는 그 무렵에도 적잖이 어색했다. 사어(死語) 대접까지는 안 받는다 하더라도 흔히 쓰지는 않았는데 서슴없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루바슈까를 걸치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틈틈이 홀짝인 보뜨까와 뻬치까에서 타오르는 불빛에 쐬어 눈이 더욱 형형한, 러시아 지식인의 연상 없이 수용하기 힘든…… 예컨대 꽤나 색이 바랜 말이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지나가는 칭찬도 칭찬이려니와 잡지를 통해 얻어들은 귀동냥의 복습이거니 어림했다. 그와같은 독서의 연장선상에서 도스또예프스끼나 체호프가 기억시킨 소박한 지식의 편린인들 어떤가.
그날의 만남이 미스 리대로는 유익했을지 모른다. 다달이 사 보는 책의 제작진에 대한 친근감 표시에 잇대어, 조심스럽게 골라낸 자기 말이 순순히 먹혀드는 기미에 흡족한 눈치였다. 은연중 드러낸 남들과의 차별성 노력도 윤상호는 놓치지 않았다.
실상 그가 제일 유념하는 것도 그 점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일을 하는 자들의 으뜸가는 고민은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이다. 말이 쉬워 독자를 위해 잡지를 엮는다고는 해도 그건 구름잡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몇사람의 실체를 잣대 삼아 그들의 기호를 확대 해석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다. 이런 측면에서 미스 리로 개별화된 집단을 또하나 상정(想定)하게 된 것은 다행이었는데, 웬만한 세상 인습이 얼추 그러려니 매길 수 있다. 교사는 우등생 그룹을 제쳐둔 채 수업을 진행하기 난감할 테다. 오죽하면 단 한사람의 애독자로 만족한다는 소설가도 있으렷다! 국민이나 민중은 너무너무 거창하다. 그랬다가는 큰일날 일이로되 글쎄……
그런 발상의 기조 위에서 매달 아이디어를 짜냈다. 때마침 불어닥친 나일론 바람을 소개하고, 교육과 가정이 감추고 가리려고만 했던 성(性)을 반투명의 화학섬유 속에서 끌어내어 건강하게 거풍(擧風)시키는 방법을 알렸다. 패션보다는 모드라는 표현에 중점을 둔 의상화보는 도리없이 눈요기에 치우쳤다. 가사 H라인, A라인, Y라인 등등의 알파벳시대가 지나면, 뉴 룩에 하이 네크가 차례대로 대기하는 식이었으므로 소재에 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어의조차 아리송한 쁘레따 뽀르떼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유행의 속도나 변화의 폭이 지금같이 숨가쁠 정도로 느닷없지는 않았다. 예측이 가능하달 것까지는 없어도 따라갈 만은 했다. 윤상호는 그래서 제 손으로 만든 잡지나 책의 목차를 꾸밀 때마다 가끔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사람의 삶은 출판물의 ‘차례’ 짜기와 어떻게 다른가를.
"괜히 엄살을 떠신다."
미스 리의 어투가 어느덧 허물없게 들린다.
"참말인데……"
"그건 그렇구요. 제 생각으로는 그래요. 오늘 같은 기회가 혹 또 생길 경우 순전히 독자들만의 좌담회를 열면 어떨까……"
"나쁘지 않겠죠. 많습니까? 이 지역에."
"다 알 수야 있나요. 하지만 제 친구들만 꼽아도 상당하답니다. 열심히들 읽어요. 물론 유명인사를 모신 좌담회가 어쨌다는 건 아니에요. 덕분에 제가 그렇게 존경하던 평론가를 뵙게 돼서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최덕림 여사?"
"네."
"이게 아냐."
공연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윤상호씨는 최덕림 여사의 병실 앞에 당도하자마자 망설였다. 미리 작정하고 나선 걸음이다.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을 부탁받는 순간 몇번이나 주저하던 문병을 결심하고 말았다. 잡지사와 병원은 도보로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였기 때문이다. 내내 걸어오는 동안 더듬은 옛 기억의 끄트머리에, 하필 최여사 얘기가 뛰어든 것도 우연찮다면 우연찮았다.
최덕림. 병실 문에 자그맣게 써붙인 명패가 어지간히 낯설다. 대신 개미허리는 저리 가랄 정도로 가는 원고 글씨가 뇌리를 스쳤다. 어찌나 획이 가는지, 가뜩이나 전기 사정이 나쁜 시절의 야근기자들이 교정을 보다 말고 신경질을 부릴 지경이었다. 그에게는 이런 유의 경험이 적지 않다. 아무개 하면 얼굴에 앞서 펼쳐지는 희한한 글씨체들…… 남몰래 혼자 고소(苦笑)한다. 아니 철 지난 직업의식의 잔재에 몸서리를 쳤다.
오랜만에 만난 지기와 악수를 하면서도 그런 적이 이따금 있다. 길바닥에 서서 꽉 쥔 손을 연방 흔들어대는 한편으로, 그의 회상은 상대의 원고 글씨를 불러들이기 바쁘다. 모든 경우에 죄 그런 건 아니다. 만남이 잦았던데다 육필의 모양새가 하도 유별난 사람에 한할 뿐이로되, 그 때문에 이상한 친화력이 더 붙는 느낌이 괜찮다. 글이 곧 사람이라면 글씨는 표정인 셈이다. 하나 이것도 옛이야기가 되어간다. 원고지는 A4용지로 바뀌고 글씨는 쓰는 것이 아니라 찍는 세상이다.
똑똑 노크를 했으나 아무 기척이 없었다. 둬 차례 더 두드린 다음에도 응답이 없자 손잡이를 비틀어 안으로 밀었다. 힘없이 문이 열렸다. 휑한 빈방의 들척지근한 공기가 무렴하여 흠흠, 헛기침을 터뜨릴 때까지도 조용했다. 그래서 몇발짝 나가다 말고 그는 우뚝 그 자리에 섰다. 병상의 이불이 조금 들썩이는가 했더니 백발의 노파가 어느새 벌떡 몸을 일으킨 탓이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앗 소리를 겨우 되삼켰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간병인 하나 없는 음산한 병실이 서먹하고 두려웠던 때문이다. 손님이 왔으니 누군가 나와보라는 계산이 없지 않았다. 가지런히 다듬은 백발은 귀티와 관록의 상징이기도 하다만, 산발의 백발은 귀신 귀자 귀티의 무섬증을 안겨주기도 하는가 싶었다. 그런 양반을 향해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건네다니.
"접니다. 윤상호! 알아보시겠습니까?"
제자리에 서서 재차 큰소리로 외쳤다.
"아 저 찌 한 개 완?"
"네에?"
말도 옳게 못하잖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제서야 인기척이 났다. 잰걸음으로 방안에 들어선 안노인 한분이 공손히 목례를 하고 주춤거렸다.
"윤상호라고 합니다. 옛날에 여성지 편집장을 했습니다. 선생님을 단골 필자로 모시고."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제 어머님이십니다."
눈으로는 병상의 최여사를 가리켰다.
"네에. 따님이 한 분 계시다더니……"
일찍 남편을 여의고 줄곧 혼자 지낸 최여사의 원래 직업은 의사다. 내과의사였는데, 병원을 친척에게 맡기고 글 쓰는 쪽으로 더 기울더니 아예 사회평론가로 나선 괴짜다.
"제가 깁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님을 쪽 빼닮으신 것 같습니다."
"글쎄요. 모녀가 함께 늙어간다고들 하지요."
자기도 노인줄에 들었는데 닮으면 무엇하고 안 닮았으면 어떻냐는 덤덤한 반응이었다.
"왜 안 가 꽈. 딸기."
"신경쓰지 마세요."
윤상호씨가 대꾸하기 전에 따님은 모친의 암호 같은 말을 걷어내듯 일렀다.
"중풍을 맞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의사소통은 되시나 보죠?"
차마 치매 소리는 입밖에 낼 수 없었다. 문병객더러 무턱대고 딸기를 조르는 걸 보니 치매가 확실한데도.
"웬걸요. 중풍에 노망에…… 정신이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집안이 유족하고 시집도 대단한 부자여서 청상의 궁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원시원한 성격을 놓고 독신의 자존을 염두에 둔 의식적인 활갯짓으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아니었다. 타고난 멋쟁이였다. 순댓국집에서는 땀과 더불어 게걸스럽고 양식집에 가면 그런 귀부인이 없었다. 수프를 입으로 떠넣는 것만 보아도 알조다. 안에서 바깥쪽으로 스푼을 가볍게 밀어 뜬 양이 매번 일정하다. 오므리는 입술의 감쪽같음과 반만 연 입으로 들락거리는 스푼의 경쾌한 속도와, 부드럽게 삼킬 때의 아무렇지 않게 평온한 목줄띠. 입맛을 다시지 않고도 여유있게 음미하며 넘기는 요령이 아니할 말로 환상적이었다. 그런 여인이 식탐이 가득한 눈으로 지금은 딸기를 달란다.
글도 정갈했던 편이다. 요즘은 ‘정을 통했다’고 쓰는 불륜행위를 그때는 ‘넘지 못할 선을 넘었다’고 묘사했대서가 아니다. 아베끄, 파트너, 트러블, 센쎄이션, 스무스, 골인(결혼에) 등속의 외래어에 일일이 꺾쇠 표시를 했던 관례로도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생활상의 여러 금기가 당시엔 많았다. 그걸 조금씩 깨고 나간 것이 최덕림 여사의 생각이요 글이다. 노화(老化)를 싫어하는 것이 잡지이므로 여류 평론가의 희소가치까지 가세한 그의 에쎄이가 편집자의 호감을 사는 건 정한 이치였다. ‘아프레걸의 모럴관념’ 등 타이틀이 벌써 그걸 암시하고 남는다.
"음…… 으막……"
갑자기 최여사가 소리쳤다. 동시에 카세트 레코더에서 묵직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언제 또 눌렀대요?"
따님이 어머니를 쳐다보며 비죽이 웃었다.
"에프엠 라디오를 켰나요?"
"테이프 레코더 겸용이죠. 저렇게 카세트를 쌓아두고는 심심하면 이것저것 갈아끼워요. 음감은 그런대로 분간하거든요."
팔을 뻗으면 닿는 머리맡 탁자 위에 라디오는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었다. 전주가 끝나고 볼륨을 조금 높인 노래는 뜻밖에도 「볼가강의 뱃노래」였다.
어기여차 어기여차
다시 한번 어기여차
힘을 합해서 당겨라
소리를 모아 끌어라
아이다다 아이다 아이다다 아이다
다시 한번 어기여차
어기여차 어기여차
카세트에서 장중하게 울려퍼지는 노랫말이야 러시아어였으나, 윤상호씨는 번역된 우리 가사에 꿰맞춰 구음으로 소리없이 따라 불렀다. 부르면서 찬찬히 최여사를 뜯어보았다. 이 노인네는 지금 정신이 말짱한 것이 아닌가 염탐하듯 살폈다. 늙은이들의 능청은 때때로 엉뚱하다. 무의식 상태로 입원해 있을망정 어슴푸레 정신이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개중에는 그러나 전혀 티를 내지 않는 위인도 있다고 듣는다. 반죽음의 자기 앞에서 지껄이는 산 살덩어리들의 대화에 평점을 매길 셈인가. 아 그 섬찌ㅅ함이라니.
아무튼 어쩌다 벌어지는 술판에서 「볼가강의 뱃노래」는 최여사의 십팔번이었다. 기분이 내킬 때마다 둔중한 베이스 창법으로 좌중을 한없이 가라앉게 만들었다. 더러는 누군가가 말렸다. 단순한 민요라고는 해도 시절이 시절인만큼 러시아 노래는 곤란하다는 투로 나오면 슬그머니 면박을 주기까지 했다. 그처럼 소아병적인 사고야말로 곤란하다면서, 마지막 대목의 ?어기여차?는 악보가 지시하듯 땅속으로 꺼져들어가는 흉내를 내면서 다같이 합창하자는 팔짓을 했다.
"예전에 우리가 많이 불렀던 노래군요."
윤상호씨의 말에 최덕림 여사가 메마른 입술을 달싹였으나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눈이 웃고 있는 양 보였을 뿐이다.
윤상호씨는 이쯤 해서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볼가’는 그새 들릴락 말락 하게 ?어기여차 어기여차? 마지막 노를 젓고 있었다. 영화의 페이드아웃 장면과 맞먹는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자 가슴 한 귀퉁이에 야릇한 감정이 괴어올랐다. 바삭 조각나기 직전의 노인네가 잔망스러운 아망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쓸쓸함의 절정에서 너와 내가 공유했던 긴장과 일탈의 시대를 재확인하자는 속셈이라고 친들 상관없다. 그것은 곧 달콤함이니까. 하지만 당신의 달콤함에 나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거부감이 앞섰다. 같은 과거에도 늙은 과거 젊은 과거가 있는 법인데, 나는 상대적으로 훨씬 젊기 때문에 당신의 세계에 선뜻 들어설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언제는 현실에서 당한 무의미를 과거 회상으로 벌충하기 위해 헤매다가, 이제는 퇴락한 노망 앞에서 그걸 되넘기려는 판인가. 그의 힘든 오후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