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이야기
쑥 이야기
최일남
쑥을 캐다 말고 인순(仁順)이는 산을 바라보았다.
두 봉우리가 쫑긋하게 솟아 있는 산 모양이, 토끼 귀를 닮았대서 토이산(兎耳山)이라 부른다는 냇물 건너 먼 산에는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산허리를 둘러싸고, 먼지를 뿌린 듯한 부우연 대기 속에 보이는 산봉우리는 졸리도록 아득하다.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좋다. 참 좋다.
몸이 괜히 우쭐거리고 가슴이 다 울먹인다. 한참을 넋나간 사람 모양 멍하니 앉아 있던 인순이는, 앉은 자리의 풀을 뿌드득 한주먹 뽑아서 탁 팽개치며, 발로는 잔디풀을 부욱 밀어 으깨었다. 홑적삼 하나만을 걸친 등허리 위로 하도 따뜻하게 쪼속쪼속 스며드는 햇볕 이 어쩐지 근질근질하기도 해서, 무엇을 오드득 씹든가 힘껏 쥐어뜯어 보고 싶은 충동이 치미는 것이었다. 인순이는 쑥을 질근질근 깨물었다. 입안이 쓰다기보다 왈칵 구역질이 난다.
“퉤퉤.”
배앝았다. 쪽박처럼 일그러진 어머니의 새카만 얼굴이 힐끗 쳐다본다.
“배고프냐?”
“아니.”
얼른 대답한다.
“후유우.”
어머니는 한숨을 짓는다.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입으로 후우 내뿜으면 되는, 그렇게 익숙해진 한숨이다.
“어머닌 안 고푸?”
“…….”
대답이 없다. 야위다 못해 막가지처럼 뻣뻣하게 뻗어난 손가락들이 징그럽다. 쭈그리고 앉아 바싹 마른 몸뚱이의 중간에 이 달이 산월이라는, 분묘를 연상케 하는 불룩한 배가 보기 흉하게 두 무릎과 가슴패기 사이에 끼여서 색색 괴로워하는 어머니는, 단 십 분을 제대로 배기지 못해 자주 풀밭에 반쯤 누워서 숨을 돌리곤 한다.
인순이는 어머니가 딴 낯모르는 사람인 양 느껴졌다. 어쩌면 저렇게도 야위었담. 광대뼈가 보기 사납게 불거지고 손질 한번 않은 헝클어진 머릿단에 남루한 옷차림새가 밤에 본다면 흡사 얘기속에 나오는 귀신 형용이라고 하겠다.
“어마나, 할미꽃 봐!”
인순이는 저만치 떨어져 피어있는 할미꽃 옆으로 걸어가서 꽃이 귀여워 감싸주는 시늉을 한다. 어머니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되레 화라도 난듯이, 칼날이 거의 땅에 묻히도록 힘을 주어 푹푹 찔러댄다. 인순이는 허리를 추켜 올렸다. 몸빼의 고무줄 허리띠가 더욱 배를 졸라맨다. 아침에 훌쩍였던 쑥죽은 이미 가뭇이 없고(흔적이 조금도 없다), 밥꼴 을 본 지가 옛일인 듯 까마득하다. 눈이 침침해지고, 언뜻 하늘을 우러르면 빨강이 노랑이 푸른 점점이가 여기저기 번쩍번쩍 하늘에 박혔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그 속에는 어쩌다가 ‘그놈의 것’도 보인다. 행여 꿈에라도 볼까 싶은…… 쑥물만 빨고 자랐을 테니 살결이 온통 풀색 같은 쑥애기! 아 마 눈깔은 새파랗게 생길는지도 몰라! 정말 그럴 수가 있을까?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더는 하늘을 안 보았다.
봄철 한 달 동안을 밥꼴을 못 보고 아침 저녁을 거의 쑥죽으로만 살아온 인순에게는, 어머니가 낳을 애기는 어쩌면 살결이 쑥빛을 닮아 퍼럴 것이리라 생각되어 남몰래 혼자 속으로 두려워 해 오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어머니나 자기의 살빛도 차차 퍼런 색깔로 변해가는 듯만 했다. 뒤볼 때 보면, 대변은 말할 것도 없고 오줌도 다소는 퍼렇게 보인다. 자기 몸뚱어리의 어느 곳이든 쥐어 짠다면 창병 걸린 닭 똥물 비슷한 거무튀튀한 쑥물이 금방 비어져 나올 것 같았다.
“어머니!”
오랜만에 부르는 소리에도 어머니는 대꾸 대신 고개만 돌려 준다.
“애긴 언제?”
“언제라니?”
“언제 낳아요?”
일부러 응석조로 대든다.
“모른다.”
어머니의 대답은 매몰스럽다.
“사내? 기집애?”
“쓸데없는 소리 작작허구 부지런히 캐어. 이대로 가다간 내다 팔기는커녕 우리 먹을 것도 모자라겠다.”
아닌 게 아니라 군데군데 허옇게 널려 있는 쑥꾼들이 매일같이 캐 나르고 보니 인제 쑥 캐는 일도 좀 해 어려워졌다. 인순이는 불현듯 또 고개를 들었다. 양 떼처럼 듬성 널려 있는 구름 사이로 이번엔 아버지의 얼굴이 그려진다. 보고 싶은 아버지! 지금쯤은 무얼 하고 계시는지, 어머니와 단둘이의 생활 속에 언제나 기다려지고 그립고 한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노무자로 뽑혀 간 것은 작년 겨울 동지(冬至)도 지나서 함박눈이 펑펑 퍼붓던 어느 날 석양이었다. 벌이를 나갔다가 붙잡혀서 하룻밤을 읍내 농업 창고에서 새우고 나서 이튿날 트럭을 타고 떠날 무렵, 어머니는 오지도 못하고 인순이 혼자서 어머니가 싸 준 김밥을 들고 와서 아버지를 찾았을 때, 아버지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섰는 인순이에게 울지 말고 어서 돌아가라고 타이르고는 사람들 틈으로 헤쳐 들어갔다.
그 후 인순이와 어머니는 말할 수 없는 곤경에서 빠듯빠듯한 그날그날을 보내어 왔다. 어머니는 고구마를 쪄서 팔았다. 밀가루 빵도 받아다 팔았다.
그러나 장삿속에 익숙치 못한 어머니는 번번이 밑지기만 했다. 봄에 접어들면서는 기어코 본전마저 다 잘리우고야 말았다. 그 뒤로 어머니는 만삭 이 된 몸을 무릅쓰고 나물이 채 나오지도 않은 이른 봄부터 인순이를 앞세우고 쑥을 캐러 나섰다. 뾰족뾰족 갓 자란 나물은 하루 종일을 캐어도 좀체 불지가 않았다. 그걸 삶아서 된장에 무쳐 끼니를 때우고 혹 낫게 캔 날 은 시장에 내다 팔아서 됫박쌀을 바꾸어 한 주먹씩 섞어서 죽을 끓여 간신히 연명해 왔다. 이제와서는 쑥 맛이 어떤 것인지 멍멍하다. 오줌을 누고 나서 새벽잠이 살풋 들었던 인순이는 누가 앓는 것 같은 소리에 가만히 눈을 떠 봤다. 아직 날이 밝지는 않은 성싶은데 창호지로 발라 놓은 판자 틈바구니들이 희유끄름하게 비친다.
“으응 으응…….”
머리맡에서 또다시 앓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 인순이는 벌떡 일어났다. 무슨 흥건한 물에 손이 잠긴다. 비린내가 확 끼친다. 자리에서 일어나 웃목 쪽을 쳐다본 순간, “에그머니!” 되게 놀랐기 때문에 깊은 땅속에서나 들려오는 듯한 비명과 함께 미처 고쳐 앉을 사이도 없이 인순이는 소스라쳐 놀라면서 뒤로 물러났다. 무섭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머리를 함부로 흐트린 어머니가 이를 악물어 팔을 뒤고 짚고는 간신히 벽에 기대어 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앞에는 목침 덩이만 한 무슨 덩어리가 꿈적거리고 있다. 그것이 이내,
“응애! 응애애!”
하면서, 보매보다는 야무진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딴은 저게 갓난아기였던가 하고 짐짓 굽어보려던 찰나, “앗!”
인순이는 기겁을 하며 일어섰다. 그것이다. 그것이다! 언뜻 보니 아, 쑥, 쑥 물이 거무튀튀하게 근방에 흥건하고 갓난아기도 그 빛으로 보이지 않는가! “아앙 ----".”
인순이는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이잉!”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옆으로 벽에 기대었던 어머니가 몸을 가누지 못해 애쓰더니 기어코 아기 위로 까무러쳐 쓰러졌다.
“꾸꾹…….”
모기 소리만큼이나 가늘게 개구리 울음소리 비슷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어머니잇!”
있는 힘을 다 내어 어머니를 부르면서 그러나 인순이는 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아니, 이게 원.”
한참만에 뒷집 용규네 할머니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
“애기 엄마, 정신 차려요, 정신을.”
산모를 한옆으로 눕히며 갓난이를 안는다.
“어찌된 일이우?”
뒤미처 종민네 어머니가 쫓아왔다.
“쯧쯧, 이 물 같은 것을 글쎄 눌러서 숨이 졌구려.” “저걸 어째. 쯧쯧, 이 일을 어떡허우?”
“어떡허긴 별 수 있소. 한 번 죽은 건 헐 수 없지만 산 산모나 구해야 할 게 아뇨. 어서 더운 물이라도 좀 데워요.”
동네 사람들의 간호로 더운 물로 수족을 문지르고 미음 죽을 먹이고 하여, 까무러쳤던 인순네 어머니는 간신히 정신을 회복하였다.
“참, 세상에 이런 참혹한 일도 있담.”
“여북했으면 정신을 잃고 제 자식 위로 넘어졌겠소. 내내 쑥으로만 연명해 왔으니 기신이 없었던 게지. 산모라도 살았으니 다행이죠.” “인순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기가 맥히겠수.”
“그러게 말이우.”
도와주러 왔던 동네 사람들은 제각기 한마디씩을 남기고는 돌아갔다.
어머니가 자리에 눕게 된 후로 인순이는 혼자서 쑥을 캐 날랐다. 그러나 성한 사람도 부지할 수 없는 그까짓 것이 누워 있는 사람의 구미를 당길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그런 내색을 뵈지 않으려 딸의 수고를 치하하기에 애썼고, 인순이는 인순이대로 열한 살이란 나이에 동떨어지게 가려운 데 손이 가도록 어머니의 몸을 보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인순이는 쑥을 캐어 가지고 시장으로 나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쌀가게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장날이 아닌 촌 시장, 더구나 해가 저물어 가는 석양에는 사람들의 왕래도 퍽 한산하고 인순이가 좀 늦은 탓인지 다른 나물 장사들도 없이 인순이 혼자만이었다. 인순이는 자기 옆에 있는 쌀가게를 쳐다보았다. 하얀 쌀이 둥지에 수북하게 쌓인 옆으로 보리, 팥 녹두 등이 소꿉장난하듯 골고루 놓여 있다. 인순이는 뜻밖에 쌀이 부러워졌다. 마치 이때까지는 쌀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가 새삼스럽게 발견한 것처럼. 쌀! 저 좋은 쌀, 저것이 밥이 된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 그 밥을 한 번 맘껏 배불리 먹어봤으면 죽어도 한이 없을 성싶었다.
‘어머니에게도 내가 쌀밥을 지어 드린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도 생각해 보았다. 인순이는 저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한번 만져라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주인은 아까부터 바로 옆에 있는 대포 술집에서 막걸리를 먹고 있는 걸 안다. 지금도, “하하하.”하고, 그의 탁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마침 잘 되었다. 인순이는 나물 소쿠리를 쌀둥지 곁으로 바짝 끄집어당겨 앉았다. 그리고 눈으로는 연신 앞쪽을 바라보면서 한편 손으로는 쌀을 만지작거렸다. 꽉 한 주먹을 쥐었다.
살며시 주먹을 펴면 손가락 사이로 조르르 빠져나가는 감촉이 어찌도 흐뭇한지, 그녀는 한참 동안 그것을 되풀이하다가 필경 대여섯 알쯤 입으로 집어넣었다. 똑 깨물었다. 단번에 양쪽 어금니에서 단침이 흘러나와 쌀알 을 감춘다.
또 한 번, 또 한 번, 이번엔 조금 많이 털어 넣었다. 고소한 뜨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인순이는 자꾸만 씹었다. 그러다가 이것을 집으로 가져가서 어머니와 밥을 지어 먹으려니 작정하고는, 아무 거리낌 없이 소쿠리를 쌀둥지에다 대어 쑥을 한옆으로 제치고 쌀을 쓱 밀어 넣고 있던 인순이는, “턱!”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앞으로 거꾸러졌다. 뒤미처 우악스런 손이 인순이의 머리를 나꿔채었다.
“이년! 괘씸한 년, 조막만한 것이 벌써부터 남의 물건을 훔쳐! 도둑년, 늬 애비가 그렇게 가르치던, 배라먹을 년!”
인순이는 그제서야 쌀이 남의 것이었고 자기는 그것을 도둑질하다가 들켰다는 사실을 깨닫자, 생후 처음 당해보는 일에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뛰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텁석부리 싸전 주인은 쑥 소쿠리를 내동댕이치며 큰 벼슬이라도 한 듯이 소리소리 치면서 인순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돌돌 뱅뱅이를 돌리는 것이었다.
“흥! 세상이 안 될라니깐 두루 요런 깍쟁이가 다 생기거던, 응 요런 깍쟁이가!”
하면서, 더 세게 머리채를 나꿔채었다가 힘껏 던져버렸다.
“아이구머니!”
술집 벽에 호되게 부딪힌 인순이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나자빠졌다.
“아가, 허리가 지금도 쑤시냐?”
“응, 여기 여기가.”
인순이는 몸을 모로 일으키며 등골을 가리킨다. 어머니는 머릿밑으로 손을 넣어 인순이를 일으켜 세운 채 그녀의 입에다 미음 숟갈을 갖다 댄다.
“아가, 인순아. 미음 좀 떠 넣을까?”
인순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쌀장수한테 혼땜이 난 후 인순이는 오늘까지 사흘을 두고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 있다. 텁석부리가 동댕이치는 바람에 야윌 대로 야위어서 팔랑개 비 같은 인순이의 몸은 하필 벽 모서리에 부닥쳐서 꼼짝을 못하고 누워 있는 것을, 마침 너더댓 발자국 앞의 가게에서 풀떡빵을 벌여 놓고 있던 용규 아버지가 집에까지 업고 왔다. 그것도 텁석부리는, 어느 때까지든지 제 에미 애비가 찾아올 때까지 내버려 두라는 것을 인순네 집 형편을 사정사정 얘기해서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암것도 안 먹으면 큰일난다, 큰일나.”
인순이는 아무 말 없이 사르르 감았던 눈을 뜬다.
“오늘도 쑥 캐루 가?”
“안 간다.”
“왜?”
“먹을 게 있어.”
“무엇이?”
“……보리.”
“보리? 어데서 났어?”
“배급이란다.”
“무슨 배급?”
“노무자.”
“인제버텀 글로 살우?”
“아아니.”
“그럼?”
“그런 걱정 말구 어서 이것이나 받아먹어.”
그러나 인순이는 손으로 미음을 떼밀면서, “어머니.”
말똥말똥 쳐다본다.
“이렇게 오래 아프면 죽지?”
“방정맞은 소리…….”
“사람이 죽으면 어데로 가?”
“모른다.”
“천당? 지옥?”
“……나는 그런 건 몰라.”
“사람이 죽으면 천당과 지옥으로 갈려 간대. 천당은 아름다운 꽃밭이구, 지옥은 무서운 짐승들이 들끓는 곳이구……. 착한 사람은 천당으로 가서 재밌게 살구, 나쁜 짓 한 사람은 지옥으로 끌려가서 무서운 벌을 받는대.” 딸의 의욋 소리에 어머니는 잠자코 눈만 끄먹거릴 뿐이었다.
“누가 그러던?”
“계숙이가. 예배당에서 선생님이 그러드래.”
“…….”
“어머니, 난 죽으면 어데로 가우?”
“…….”
“아무래도 지옥으로 갈 것만 같애!”
“기집애두 별 미친 소릴.”
“아냐, 꼭 그럴 거야.”
인순이는 또 어젯밤의 무서운 꿈이 떠올랐다. 퍼어런 벌판이었다. 마냥 망망한 벌판이었다. 그것이 온통 쑥밭이었다. 인순이는 어머니와 마주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쑥 밑동을 칼로 베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많은 쑥들이 저절로 모두 목이 훌훌 잘려서 공중으로 날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목을 잘리운 쑥 밑동들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중에 서는 분명코 어머니가 애기를 낳았을 때 들었던 ‘응애 응애’ 소리도 들려오는 것이었다.
인순이도 왈칵 무서운 생각이 들어 엉엉 울었다. 들판을 도망질쳤다. 마구 달렸다. 그런데 공중에서 날고 있던 쑥들이 이제는 달려가는 인순이를 향해 머리 얼굴 어깨 가슴 할 것 없이 한사코 덤벼드는 것이었다. 인순이는 있는 힘을 다하여 우선 얼굴에 달라붙는 쑥을 떼기 위하여 죽어라고 울면서 제 얼굴을 쥐어뜯으며 철썩! 때렸다. 그와 동시에 퍼뜩 눈이 떠졌다. 다행히도 꿈이었다. 등에서는 찬물을 끼얹는 듯한 소름이 쪽 끼쳤다. 지금 생각해도 무서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 꿈은 다름이 아니라 이제까지 수다(수효가 많음)한 쑥 모가지를 베어온 자기는 죽으면 꼭 그 지옥이란 곳으로 끌려갈 것이란 징조라고 믿었다.
“어머니, 지옥에도 쑥이 있수? 꼭 있을 거야, 그치?”
“얘가 왜 이렇게…… 더 아프냐?”
“쑥을 만나믄 어떡해? 죽기 싫여! 난 안 죽을 테야.”
인순이 어머니는 딸이 허기증이 났기 때문에 자꾸만 헛소리를 하는 것이려니 믿고는 인순이를 꼬옥 껴안고 달래어 본다.
“아버지가 오시거던 고운 옷이랑 해 줄게. 어서 이걸 먹어라.”
“무슨 옷?”
“고운 옷이지. 우리 인순이가 입때까지 못 입어 본…….”
“무슨 색?”
“글쎄, 노랑 저고리에 수박색 치마로 할까?”
“수박색은 무슨 빛깔?”
“퍼어렇지.”
“퍼어런…… 싫여 싫여. 퍼어런 색은 안 입을 테야.”
“그럼?”
“으응, 분홍색.”
“분홍색도 좋지.”
“정말?”
“암.”
“어쩌믄! 난 어머니가 지일 좋아.”
“그래.”
어머니의 눈에 글썽글썽 고였던 눈물이 기어코 한 방울 인순이에게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