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4. 9. 07:36

회색인

최인훈

 

1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않은가

1958년 어느 비가 내리는 가을 저녁에 독고준(獨孤俊)의 하숙집으로 그의 친구인 김학이 진로 소주 한 병과 말린 오징어 두 마리를 사 들고 찾아들었다.

학은 벌써 취해 있었다. 그는 침침한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자식은 이상한 데다 둥지를 틀고 있단 말이야, 하고 친구의 해사하면서 무슨 일에든지 신명을 내지 않는 우울한 눈빛을 얼핏 머리에 떠올렸다.

주인은 집에 있었다. 반색을 하는 품이 그답지 않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잘 왔어."

"정말?"

"믿지 못하는 친구군. 삶을 좀 고지식하게 받아들이란 말야. 좋다면 좋은 거야."

"아이쿠, 언제부터야."

그들은 큰 소리로 웃었다.

준은 그래도 주인이라고, 미안한데 어쩌구 중얼거리면서,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다 학이 들고 온 물건으로 술상을 차렸다.

", 한잔."

학은 술잔을 내밀어 준이 따르는 술을 받으려다가 황급히 손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술잔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왜 그래?"

준의 말.

"이게 뭐지? 묻었어……."

준은 목을 빼고 들여다보더니,

", 그거, 양치질할 때 쓰는 컵이야. 치약일 거야."

"자식이, 무슨 사람이 그래."

학은 종이로 컵 가장자리를 되게 문질러 댔다.

"아주 깨끗한 체하는데? 세균과 망상의 덩어리면서."

"딴소리 말어. 더러운 건 더러운 거야."

그들은 또 한 번 웃었다.

", ……."

학은 들고 온 종이봉투 속에서 얄팍한 팸플릿을 꺼내어 준에게 주었다.

"자네 거 이번에 실렸어. 틀린 글자나 없는지 몰라……."

그는 준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우리 동인(同人)들이 칭찬하더군. 자네 정말 동인 될 생각 없어?"

그것은 학이 적을 두고 있는 정치학과 학생들의 학술 동인지 갇힌 세대였다. 학의 요청으로 거기에 이를테면 초대투고를 한 것이 이번 호에 났다는 것이다. 준은 잔에 남은 술을 쭉 들이켜고 목차를 뒤졌다. 그의 글은 맨 뒤에 실려 있었다.

만일 우리나라가 식민지를 가졌다면 참 좋을 것이다. 먼저 그 많은 대학 졸업생들을 식민지 벼슬아치로 내보낼 수 있으니, 젊은 세대의 초조와 불안이 훨씬 누그러지고 따라서 사회의 무드가 느긋해질 것이다.

집안에서 싸우던 사람들도 밖에 나가면 경쟁의식이 훨씬 사그라지고 그 대신 현지의 문화 유적이나 살피면서 점잖은 취미를 기를 것이다. 여야가 아무리 치고받는 국회라 할지라도, 일이 식민지 통치에 관한 한 쉬쉬하면서 아무래도 민족은 이해공동체라는 본을 훌륭하게 드러내 보일 것이다. 무어니무어니 해도 유부녀 외입만 한 것이 없다고, 타족(他族) 족치면서 살아가는 것만큼 깨 쏟아지는 재미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치 싸움의 숨쉴 구멍이 생긴다. 심심하면 차볼 수 있는 개 옆구리가 말이다. 가령 수도 서울에 어마어마한 화재가 생겨서 온통 생지옥이 벌어져서 민심이 흉흉할 때, '땃벌떼' '백골단' 같은 애국단체를 풀어 놓아 '화재는 모()국 인들의 계획적 소행이다' 하는 헛말을 퍼뜨린다. 모국인이란 말할 것 없이 우리의 식민지 사람을 가리킨다. 불같이 성난 군중은 손에 손에 무기를 들고 당국의 치안 유지를 돕기 위해서 밀려간다. 불난 집이 성한다는 옛말이 옳다는 것이 이렇게 밝혀진다. 노동자들도, 인터내셔널이니 만국의 노동자니 하는 말에 그닥 입맛을 돋우지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값싼 식민지 노동군()의 내지(內地) 이동을 막으라고 요구하는 온건한 파업을 할 것이다. 경제 사정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현지 농민의 무지와 법의 불비를 농간질하여 엄청난 땅을 빼앗아서 본국(우리, 즉 한국 말이다) 농민을 옮겨다 앉힌다. 식민지의 이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조건에서는 웬만한 경영 솜씨라도 수지는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살림이 넉넉하니 짐승 사랑하기 모임 같은 풍류인의 구락부가 생겨서, 개장국집 앞에서 앉아서 버티기 데모를 하는 사진이 신문을 장식할 것이다. 하물며, 순경이 시민의 머리카락이라도 건드리는 날에는 생야단이 날 것이다. 대학에서는 국학(國學)의 연구가 성하고, 허균은 조나단 스위프트의 큰 선배며 토머스 모어의 선생이라고 밝혀질 것이며, 이퇴계의 사상이 현대 핵물리학의 원리를 어떻게 앞질렀나를 밝혀 낼 것이다. 우리들의 식민지를 가령 나빠유(NAPAJ)라고 부른다면 '정송강(鄭松江)과 나빠유를 바꾸지 않겠노라.' 이런 소리를 탕탕 할 것이다. 식민지가 얼을 찾아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곳 옛 지배층에게 뼈다귀나 던져 주어 지킴개로 부리며 지방별과 족보, 사주 같은 것을 부추겨 저희끼리 싸움질하게 부채질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너무 족쳐서 뜻하지 않는 일을 빚어 내지 않기 위하여 문치(文治) 비슷한 일을 물론 해야 한다. 불온한 청년들의 사명감을 꾀스럽게 돌려서 농촌 계몽으로 카타르시스시킨다. 한국 불교 조계종 분원(分院)을 두어 인생무상과 제법개공의 이()를 선전하여 '곤냐꾸(곤약)' 정책을 쓴다. 고려자기를 왁자지껄 선전하여, 이런 예술을 낳은 국민이 치자(治者)가 되어 있는 현실은 골백번 공평한 역사의 보수임을 알려 준다. 하도 태평천하라 도대체 우리는 무얼 하란 말이냐고 투덜거리는 앵그리 젊은 맨들의 귀여운 투정이 문학계를 즐겁고 볼 만하게 할 것이다. 문학 얘기가 났으니 말이지, 교양 있는 독자는 늘어가고 염가판이 쏟아져 나오고 고전의 보급이 희한할 만큼 잘 돼 있고, 이런 기름진 밑거름 위에, 국민사()이면서 인간사일 수 있는 활달 정묘한 산문이 낭자하게 꽃필 것이다. 한글의 역사가 낱낱이 캐지고, 방대한 국어사전이 쏟아져 나오고, 한 문학가는 '한국 문학의 에스프리는 첫째로 멋, 둘째는 멋, 그리고 셋째가 멋'이라고, 익살을 부릴 것이다. 음악의 발달은 아유 기막혀서 비엔나를 가리켜 '오스트리아의 서울'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국악(國樂)의 저, 다 죽었는가 하면 문득 되살아나며, 넋의 어깨춤이 절로 나는 백천 번 멋들어진 가락이 전세계의 음악팬을 환장하게 만들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제국주의를 대외 정책으로, 민주주의를 대내 정책으로 쓸 수 있었던 저 자유자재한, 행복한 시대는 영원히 가고 우리는 지금 국제 협조, 후진국 개발의 새 나팔이 야단스러운 새 유행 시대에 살고 있으니, 민주주의의 거름으로 써야 할 식민지를 부앙 천지 어느 곳에서 손에 넣을 수 있으랴. 그러나 식민지 없는 민주주의는 크나큰 모험이다.

나는 몹시 괴로워서 마침내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나의 여자 친구를 찾아가서 여차여차 자초지종을 말하고 묘안의 유무를 물었다. 그녀는 먼저 나의 애국심을 칭찬하고 난 다음 말하는 것이었다.

"식민지의 대용물을 찾아야죠."

"대용물?"

"그렇죠. 이제 식민지야 어떻게 얻겠어요? 그러니까 그것말고 그런 효력이 있는 다른 걸 찾아야죠."

"막 뺏고, 밟고, 퍼내도 아깝지 않을 그런 것이, 에이 여보쇼, 어딨단 말씀이오?"

"있지요."

"뭡니까?"

"사랑과 시간."

나는 경악하여 넉넉히 십 분 남짓을 망연자실한 끝에 모기 소리만하게 대꾸한 것이다.

"여자여, 그대의 언()이 미()하도다."

그리고는 그녀를 미친개처럼 키스하였다.

"잘 썼는데!"

그것은 당자인 준의 말이었다. 그는 잡지를 책상 위에 얹었다.

", 인정해. 그러니까 말이야, 아까 내 얘기 어때?"

"?"

"동인이 되라는 얘기 말야."

"정치학도들과 소설가 지망생이 동인이라는 건 좀 우습지 않아?"

"준이답잖은 옹졸한 말인데? 물론 정치과에 있는 애들끼리 서로 배우자는 게 뜻이지만, 그렇게 해서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정신적으로 묶이자는 건데, 동인들이 자네 원고를 보고 무슨 과에 다니느냔 거야. 국문과라니까, 어버이 살아실 제의 후예치고는 꽤 쓸 만하다는 거야. 정치 감각이 있다는 거야."

"어버이 살아실 제란 건 뭐야?"

"왜 어버이 살아실 제 효도를 다할 것이 하는 시조 있잖아?"

"그래서?"

"우리 패들 얘기가, 그게 무슨 예술이냔 거야. 시조라는 게 다 그런 투 아냐? 주어진 질서를 곧이곧대로 차원도 옮김이 없이 자수에 맞춰서 풀이하는 게 무슨 예술이야?"

"그런 점도 없지는 않아. 그러나 국문학의 전부가 시조는 아니야. 그리고 국문학은 운문보다 산문 쪽이 나아."

"전문이 아니니까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나. 고작해서 대학 입시 때 고대문 지식하고 일학년 때 교양 과목으로 얻어들은 것밖엔 없는 친구들이니까 좀 표현이 지나친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가 알기 론 요새 문학이란 것도 우습더군.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시공(時空)의 좌표가 부재란 말야. 한국인의 정신 풍토는 나침반과 시계가 없는 배 같은 거야. 그 시간이 그 시간, 조금도 다름이 없어. 어쩌다 소설을 읽어봐도 조금도 사무치지 않아. 문학에 소양이 없어서 그럴 테지만 요새 나오는 시 같은 건 아주 손든 지 오래. 그건 무슨 소리지? 우리만하면 그래도 한국에선 고급 독자에 들지 않아? 아무리 예술의 세계가 어려워졌대도 그 어려운 대목은 예술가가 맡고, 표현으로 나왔을 때는 적어도 최대공약수적인 얼굴을 하고 나와야 할 게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현대 예술이란, 벌써 그 길에 전문으로 몸담은 사람이어서 문학사와 작가 연구를 한 사람이 아니면 대뜸 작 품 하나만 가지고는 뜻이 오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렇다면 예술은 폐쇄사회를 만든 게 아닌가? 내 말은 유행가를 쓰라는 게 아니야. 역사적인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동시대인들에게만은 적어도 알 수 있는 형태와 감동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야. 문학사에서 평가는 어떻 게 돼 있는지 모르지만, 난 김동인보다는 이광수가 훨씬 좋더군. 김동인한테서는 역사 감각이란 걸 조금도 찾아볼 수 없어. 그가 역사 소설을 썼다는 것이 그 증거야. 그에게는 이야기로 들은 역사, 이미 화석이 된 역사밖에는 파악할 수 없었던 모양이지. 그의 현대 소설에는 날짜 표시가 없어. 그 인물들은 이조시대라도 좋고 일제시대라도 좋고 오늘이라도 좋은 사람들 아닌가? 그의 소설은 역사의 비명(碑銘)이 아니라 자연의 가락이야. 바람과 물 같은 것이야. 발가락이 닮았다는 단편 있잖아. 그래 발가락이 닮았으면 어쨌다는 거야? 삼천리강산이 다 일본을 닮아 가는 판에, 발가락쯤 닮아서 무에 그리 신기한 게 있겠어? 역사를 자연과 헷갈리고 인간을 씨돼지와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김동인은 일본의 침략을 독감 같은 걸로 알았던 모양이야. 그에 비하면 이광수는 훌륭해. 다른 작품은 다 말고 하나만 가지고도 그는 한국 최대의 작가야. 그 시대를 산 가장 전형적 한국 인텔 리의 한 사람을 무리 없이 그리고 있잖아? '살여울'에서 한 그의 사업이 성공했느냐 못 했느냐는 물 을 바가 아니지. 그는 그 당시 국내에서 살았던 낭만적인 인간의 꿈을 그린 거야. 그는 시대의 큰 줄기가 무엇인지를 보는 눈이 있었어. 이런 소설을 써달란 말이야. 우리 시대에 '허숭'이 살아 있다면 그가 무엇을 했겠는가를 써달란 말이야. 자네가 그런 걸 쓸 만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동인이 돼달라는 거야. 싫어?"

먼저 들어간 것이 있는 학은 꽤 취하는 모양이었다. 준은 오징어 다리를 씹고 있다가 학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쳤다.

"자네 문학 평론으로 돌아보지그래. 그리고 루카치한테 추천을 받아."

"루카치?"

", 헝가리 사람인데, 뭐랄까 이를테면 낭만적 마르크스주의자라 할까 그런 사람이야. , 취하는데……."

"농담이 아냐. 그만 빼고 자 어때, 내 면목을 세워 줄 수 없어?"

"내가 입회하면 자네 면목이 서나?"

"그래, 내가 권유하도록 맡았으니까?"

"그런 데 들어선 뭘 해?"

"이런, 몇 번 말해야 알아…… 아까도 얘기하잖았어? 취지를 말하면……."

 

"아니, 그걸 잊은 게 아냐. 그런 걸 해서는 뭘 하자는 거야. 부질없어. 그리구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하구 갑자기 회원이 된대도 잘 어울릴지 모르잖어?"

"다 좋은 애들이야."

"물론 그렇겠지. 그 점을 염려하는 게 아냐. 한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반드시 호감을 준다는 법은 없어. 그리구 난 현재로선 조직이라는 걸 믿을 수 없어."

"그건 자네 잘못이야. 크고 작고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사람은 조직을 통해서만 행동을 할 수 있는 거야. 이봐, 사람 일 알수 없는 거야. 언젠가 우리 패가 내각을 만드는 날이 올지 누가 알아? 그땐 자네한테 문교부 장관 한 자리 돌아오지 말란 법도 없을걸."

"정치과 학생은 다른데? 설득 방법이 리얼해."

"결국 거절하는 건가?"

"자네하고 나하고 이렇게 술이나 마시면 되잖아? 그보다 자네 정치학을 그만두고 문학 평론을 하지."

"하하하, 이번엔 내가 설득당하는 차례군. 어때, 내 의견에도 들을만한 데가 있나?"

"확실히 일리가 있어. 그러나 자네가 말한 한국 문학의 문제도 역시 한국적 상황 일반의 부분적인 형태라는 게 내 생각이야. 한국의 문학에는 신화(神話)가 없어. 한국의 정치처럼 말야. '비너스'란 낱말에서 서양 시인과 서양 독자가 주고받는 풍부한 내포와 외연(外延)이 우리에게는 존재치 않는단 말이거든. 서양의 빛나는 시어(詩語)나 관용어들이 우리의 대중 속에서 매춘부로 전락하는 사례를 얼마든지 들 수 있어. 가로되 '니콜라이의 종소리' '성모 마리아' '슬픔의 장미' '낙타와 신기루' '아라비아' 같은 거. 이런 말은 그쪽에서는 강렬한 점화력을 가진 말이야. 왜냐하면 그 말들 뒤에 역사가 있기 때문이야. '니콜라이의 종'하면 희랍 정교회의 역사와 비잔틴과 러시아 교회와 동로마 제국의 흥망이 그 밑에 깔려있는 게 아니겠나? '성모 마리아'는 더 말해서 뭣해? 바이블과 카톨릭 중세 기사 들의 순례와 수억의 인간이 긋는 성호(聖號)가 이 고유명사를 받치고 있지 않아? 탄식의 장미는? 장미꽃을 빼고서 서양 문학을 말하는 건 달을 빼고 이태백이를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사막' '낙타' '아라비아' 같은 것도 마찬가지야. 유럽의 모험과 통상(通商)의 역사를 빼고 이런 이미지를 이해할 수는 없을 거야. 그것은 아라비안나이트와 아라비아의 로렌스와의 이상한 혼합물이야. 주민과 풍토에서 떨어진 신화는 다만 철학일 뿐 신화는 아니야. 신화는 인간과 풍토가, 시간과 공간이 빚어낸 영혼의 성감대(性感帶). 거기를 건드리면 울고 웃고 발정하고 손톱을 박아 오는 그러한 지역이거든. 이 성감대가 없고 보면 애무는 부자연한 장난이며 실례이며 변태에 지나지 않고, 독자는 불감증의 게으른 잠에서 깨지 못해. 한국의 현대시와 그 독자는 서툰 부부와 같아. 그렇다고 우리는 돌아갈 만한 전통도 없다. 아니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전통은 자칫 우리들의 헤어날 수 없는 함정이기 십상 이다. 흥얼거리는 타령조와 질탕한 설움 속에 너울너울 춤추는 선인들의 미학은 불쌍한 우리들 개화 손(開化孫)들의, 그나마 탐탁지 못한 얼을 빼고 골을 훑어서 급기야 하이칼라 머리를 몽똥그려 상투를 꼬아 줄 테니까. 우리들에게 있어서 서양은 매춘부와 같고 선인들은 물귀신 같애. 귀신이래서 나쁜 것은 아니지. 다만 사이렌과 발푸르기스의 마녀들의 후손은 달을 포격하기에 이르렀으나 손오공의 후예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 이것이 문제가 아닌가? 하늘을 나는 모포와 사이렌의 피리는 살아 있다. 그러나 손오공의 여의봉은 어디 있는가? 그들의 경우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 있으나 우리는 끊어져 있다. 전위(前衛), 보수(保守)란 말은 우리들의 경우 이중의 뜻을 가지고 있어. 우리들에게도 전위란 여전히 서양적인 것일 수밖에 없지만, 정작 그 상대는 보수적 서양과 동양이라는 두 겹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저들은 단단한 벽돌 위에 얹힌 풍차와 싸우고 있으나 우리는 허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허깨비와 싸우고 있어. 우리는 돈키호테도 될 수 없어. 저들은 낡은 신화를 부수고 새 신화를 세우기 위해 시를 쓰지만, 우리에게는 부술 신화가 없고, 서양의 그것은 서양 시인들이 부술 것 이며 동양의 그것은 이미 폐허가 돼버렸으니 부수려야 부술 수 없어. 우리들은 패배한 종족이야. 상황은 뚜렷해. 우리들은 몇백 년 혹은 몇십 년씩 식민지민(植民地民)이었어. 동양은 백인들의 노예로서 세계사에 끌려 나왔어. 맞먹는 경기자로서가 아니야. 이 사실이 모든 것을 설명해. 피카소에게는 필연적인 일이 우리에게는 필연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이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봐. 에어플 레인을 날틀이라고 말해 본대서 무에 달라지겠는가 말이야. 비행기를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손이 비행기를 만들고 우리들의 몸이 비행기의 떨림에 더 많이 친근해지는 때에만 가능해. 문제는 말의 영역이 아니라 역사의 공간에 있지. 언어로 친다면 우리도 과히 빠지지 않아. 지난날 우리에게 언어는 즉 존재였지. 언어 그것이 목적이었지. 그러나 서양인들에게는 그것은 부호였어. 그것은 작업 을 위한 눈금이며 수획의 기록이었다는 거야. 서예(書藝)라는 예술이 이 같은 차이를 잘 말해 준다고 볼 수 있어. 언어가 부호이기를 그치고 존재로 승격했을 때 우리는 존재를 잃었지. 그래서 가장 풍부한 언어인 한자(漢字)는 가장 가난한 언어가 되었고 가장 소박한 표음문자는 그 속에 풍부한 역사의 육신을 가지게 되었어. 신화의 부재란, 사실은 역사의 부재였던 것이야. 언어는 생산하지 않아. 다만 역사, 행동만이 생산해. 언어는 그 생산고(生産高)를 기록할 뿐. 엘리자베스 시대(Elizabethan Age)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는 결코 기계적인 실러블의 배합의 결과가 아니라 구체적인 문화사적 부호인 거야. 그것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도 좋아. 가령 불독(Bulldog)이라도 좋아. 그렇더라도 그 시대가 동일한 것인 이상 우리는 불독 시대(Bulldog Age)에서 엘리자베스 시대와 동일한 심상(心象)을 받을 게 아닌가? 부잣집 딸이 설사 '천둥이'라는 이름을 가졌대도 거기서 따뜻한 유머와 화려한 익살을 볼 테지. 그러나 심봉사의 딸인 한, 그녀가 선화공주란 이름을 가졌대도 별수 없어. 거리에 나앉은 성명 철학자들을 찾는 것이 부질없는 건 이런 때문이야. 이렇게 말하면 시의 창조적 기능이나 예언으로서 의 기능을 잊었다고 할 테지만 창조나 예언도 인간에 관한 한 운명에 대한 모험이란 뜻일 테고, 운명에 대한 모험이란 어차피 역사에 대한 '반격 형식'이 아닌가? 우리가 무리했던 것은 우리들의 '현재'에 통과시킴이 없이 엉뚱하게 파리에 혹은 서라벌에 비약한 데 있지 않겠는가 말이야. 파리도 서라벌도 우리에겐 이방(異邦)이야. 이제까지 우리는 오해하고 있었어. 이 같은 현상이 왜 문학에 한한 일이겠어? 이건 한국의 상황 일반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문학 자체에만 책임을 묻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거야."

학은 술잔을 입에서 떼면서 귀를 기울였다. 철떡철떡 처마 끝을 떠나는 빗물 소리. 접시에 담긴 죽을 핥아먹는 개의 혓바닥소리 같은 철떡이는 가락이 이슥한 밤을 알렸다.

학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행동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행동하지 않으려는 거야."

"논리가 맞지 않는데?"

"알라딘의 램프는 아무 데도 없어.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날 궁전은 기대할 수 없어."

"그렇다면?"

"사랑과 시간이야."

"비겁한 도피다!"

"용감한 패배도 마찬가지지."

"패배를 거쳐서 사람은 자란다."

"무책임한 소리 말어. 자기 자신이 받는 피해는 그만두고라도 남에게 끼친 피해는 무얼로 갚겠나?"

"앉아서 굶어 죽자는 식이군."

"극단적인 비유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지. 내 뜻은 한국의 상황에서는 혁명도 불가능하다는 말이야. 개인적인 용기의 유무보다 훨씬 복잡해."

또 대화가 끊어졌다. 이번에는 침묵이 오래 끌었다. 학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더니 천천히 말했다.

"그것도 역시 거짓말이야. 혁명이 가능했던 시대라는 건 어디도 없었어. 그래서 혁명이 일어났던 거야. 이런 역설의 논리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만 뚫렸어. 그 의지의 발동을 망설이는 것을 나는 비겁이라고 부르는 수밖에는 없어."

"아마 그럴 거야."

준의 말투는 화난 듯했다. 학은 친구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방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휘청 했다. ? 하고 준이 눈으로 물었다.

"가겠어"

"비가 오잖아. 자고 가."

"아니, 오늘은 가봐야 돼."

"그래?"

준은 더 말리지 않고 친구를 따라 방을 나갔다. 바깥은 안에서 낙숫물 소리로 짐작한 푼수로는 덜한 비였다. 안개보다 조금 무거운, 그러나 몹시 차가운 가을비였다.

"정말 가겠어?"

준은 손바닥을 펴서 비를 받는 시늉을 하면서 다시 한번 물었으나 학은 곧장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대문을 나서기 전에 학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자네 말이 맞는지도 몰라."

줄곧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그의 말은 당돌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준의 가슴을 쳤다.

"조심해"

준은 그렇게만 말했다.

그는 방에 돌아와서 번듯이 드러누웠다. 갑자기 외로워졌다. 둘이서 소주 한 병을 비웠으면 그의 주량으로서는 무던한 편이었는데도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술이란 먹는 자리에 따라서 취하기도 하고 않기도 하는데 지금의 준이 그랬다.

그는, 빈 병과 오징어 쪽을 신문지에 버무려 마루에 내놓고, 대강 방을 훔친 다음에, 자리를 깔고 드러누웠다. 낙숫물 듣는 소리가 점점 굵어진다.

, , .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처마 밑에 받쳐 둔 양철대야에 떰벙떰벙 물 떨어지는 소리가 그 사이로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 , , 떰벙, , , , 떰벙. 매양 한결같이 끝없이 이어 가는 그 소리는 먼, 아주 먼 기억의 벌판으로 그의 마음을 천천히 천천히 몰고 간다. 북한의 고향집. 항구 도시에 연한 작은 마을. 멀리 제련소 굴뚝이 바라보이고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저 아래로 Y만의 해안선이 레이스 주름처럼 땅을 물고 들어오는 곳. 과수원을 하는 집이 그의 고향집이었다. 풍경을 이룬 부드럽고 구불구불한 둘레의 선() 속에서 자로 댄 듯이 하늘로 뻗친 하얀 굴뚝. 중학교 이 학년짜리 아이에게 그 희디흰 여름날의 굴뚝은 얼마나 놀랍고 달디 단 신비였던가. 그것은 여름 한낮이면 눈부신 빛의 기둥처럼 솜구름이 우쭐우쭐한 하늘 속으로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굴뚝이 아니고 그렇게 큰 장승이었다. 끝에서 쉴 새 없이 내뿜는 잿빛 연기. 준은 그것을 장승의 머리카락이라고 생각하였다. 형이 보면 항상 꾸중을 하였으나, 그는 학교가 파해서 돌아오면 과수원 끝쪽의 오래 묵은 사과나무 위에 올라앉아서 굴뚝과 바다를 바라보았다. 여름에 연기는 항상 바닷바람을 받아서 뭍으로 날린다. 바다에서는 바람만이 아니고 냄새와 빛깔도 오는 것이었다. 그 냄새로 사과꽃이 피고 그 빛깔 속에서 준의 소년 시절의 시간이 익었다. 어린 그의 꿈만큼 집의 사정은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토지개혁으로 과수원과 논의 태반이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집에서 부칠 수 있는 이 작은 과수원과 몇 마지기 논이 남은 살림은, 여섯 식구 입을 지탱하기에 빠듯한 것이었다. 가장인 형네 내외와 두 살짜리 조카. 생과부가 된 누나. 어머니와 준. 그것은 묘한 가족이었다. 끼니때에도 대체로 묵묵히 말이 없었다. 어머니와 누나는 모녀간이라느니보다 설움을 아는 과부끼리였다. 그녀들의 남편은 똑같이 해방이 된 이듬해, 그러니까 토지개혁이 있은 해에 월남했었다. 아버지가 월남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 덕분으로 일본 유학을 마친 후로는 줄곧 이 시골에서 과수원을 지켜 온 아버지는 공산당의 눈으로 보면 전형적인 봉건지주라는 것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막 이곳으로 왔을 무렵 소작인들의 편을 들어서 할아버지와 한동안 마찰이 있었던 것 같은 자그마한 반역(反逆)의 에피소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느 달무리가 진 늦은 봄날에 아버지는 집에서 사라졌다. 몇 달 동안이나 준에게는 아버지는 W시의 친척댁에 가 계시다는 설명이 주어졌다. 차츰 시간이 가면서 준은 아버지의 간 곳을 물어서는 안 되는 그런 곳에 아버지가 갔음을 알았다. 아버지는 이렇게 그의 소년 시대의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매부의 경우는 좀 달랐다. 그는 장인이 떠난 후에도 반년이나 있다가 월남했다. 그는 해방 직후 북한 사회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주관적 동반자(同伴者)의 한 사람이었다. 주관적이라고 해야 하는 까닭은, 본인은 공산 정권에 대해서 동반자 의식을 갖고 있었으나 공산당은 손톱눈만큼도 그를 동지로 알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런 엉뚱한 착각을 한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학병에 나갔다가 도망 왔던 것이다. 그는 그 일을 투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공산당의 동무들은 그런 것은 조금도 투쟁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투쟁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도대체 나쁘다는 것이었다. 학병이라는 특수 신분의 뿌리에는 한국의 봉건층과 일본 제국주의의 야합이 있었던 것이라고 매섭게 꾸짖었다. 매부는 당황했다. 그제야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해서 이 집에는 또 한 사람의 생과부가 생겨야 했다. 하기는 그들 두 사람은 아직 결혼식을 올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같은 W시의 고등학교를 다닐 때 눈이 맞았던 것이다. 해방 전 준이 국민학교 삼사학년 시절에 그는 젊은 두 사람의 만남에 가끔 어울리곤 했었다. 또 지금 생각하면 바둑이를 데리고 가는 셈 쳤겠으나 그런 대접을 받는 재미도 싫지는 않았다. 또 한 가지는 셋이 있을 때는 누나가 유별나게 준을 위했다. 보통 때는 학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남자의 앞에 있을 때 그녀는 지나치게 준을 끔직이 다르는 듯이 보였다는 얘기다. 좋아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여자는 마음까지도 더 착해지는 것일까.

아무튼 그러한 누나가 매부가 떠난 뒤로는 사람이 달라졌다. 여위고 통 말이 없는 그녀는 밭이나 과수원에서 일제시대에 입던 작업복을 걸치고 하루내 짜증 내는 일도 없이 맡겨진 일을 했다.

형으로 말하면, 매부하고 동창이었으나 매부가 재주가 넘쳐 보이고 미남자인 데 비하여 그는 말 없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덤덤한 사람이었다. 형수는 근처의 보통학교를 나온 시골 색시였다.

이런 환경은 어찌 보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가족마다 저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이 집안에서는 준의 행동을 간섭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가끔 잔소리를 들었고, 학기 말마다 가져오는 성적 통지부를 들고 고민해야 하는 때가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으나, 이제는 아무도 그럴 사람이 없었다.

밤이 깊어지면 이 집에서는 남모르는 의식(儀式)이 벌어졌다. 그것은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집안에서 제일 치우친 뒷방에는 라디오가 있었다. 일제로, 마이크 앞에 강아지가 앉은 표가 있는 그 다섯 구()짜리 라디오가 말하자면 신탁(神託)을 알리는 무당이었다. 그들은 깊은 밤에 보내는 남한의 대북 방송을 듣는 것이었다. 숨을 죽이고. 가슴 울렁이면서. 깊은 감동과 공감을 가지고. 전파를 타고 오는 여자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는 깊은 밤의 의식(儀式). 사랑하는 북한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그 여자의 목소리는, 독고준의 소년 시절을 수놓고 있는 아름다운 시()들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는 것 가운데 하나였다. 언제나 그 목소리와 더불어 시작하는 애국가의 가락은 그의 가슴을 달고 아릿한, 기쁨과 슬픔의 어느 것이라고 집어 낼 수 없는 야릇한 감동으로 막히게 했다. 언덕과 벌판의 한 모퉁이에 외따로 떨어진 집은 거의 완전하도록 안전한 곳이었으나 그들은 안심할 수 없는 신경을 달래는 방법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파수병 역할은 대개 어머니와 형수가 맡아 보았다. 그들은 라디오가 있는 방으로 지나가는 대청마루에서 다리미질을 하거나 적당한 일거리를 흩뜨려 놓아서 길을 막았다. 전파를 타고 호소하는 여자는 밤마다 놀라운 소식을 옮겨 주었다. 북한의 지배자들의 선전은 거짓말이라는 것. 북한은 감옥이라는 것. 자유와 행복을 뺏어 버리고 인민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무시무시한 감옥이며 북한 인민들은 그 감옥 속에 갇힌 죄수들이라는 것. 남한에서는 여러분을 하루바삐 구해 낼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자유. 꽃피는 문화. 세계와 통한 생활. 자유민들의 행복한 나라. 삼천리 금수강산. 이승만 박사. 김구 선생. 민주주의. 자유. 압제자들은 기어코 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민족의 얼을 빼앗고 그 대신 붉은 제국주의자들의 혼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토지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착한 국민의 재산을 빼앗아 공산당이 지배하는 새로운 소작인(小作人)의 나라를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그들은 신의주와 함흥에서 우리들의 어린 꽃봉오리들을 소련의 전차와 총검을 빌려서 무참히도 학살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희망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조국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 형제자매는 마()38선을 넘어서 그리운 당신들을 우리들의 품에 안을 날을 고대합니다. 자유로운 조국. 민주주의의 나라. 유토피아…… 그것은 아버지의 목소리였으며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 집안에서 그 목소리가 전하는 말을 의심할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준에게는 그것이 진리보다 더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아름다운 동화로 들렸다. 오색 무지개에 싸여서 꽃이 피고 털빛이 고운 새들이 지저귀는 남쪽 나라에서 들려 오는 훈훈한 꿈의 속삭임이었다.

준 자신은 그때 모르는 일이었지만 당시 북한에는 이 같은 밤의 의식을 지내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소문은 소문을 낳고 그러한 사람들의 티없는 가슴속에서 남조선은 이 세상에 없는 번영을 누렸다. 개인도 아니고 한 시대를 산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지니고 있었던 어떤 환상(幻像)을 다른 자리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실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준은 월남 후 가끔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마침내 그는 생각해 냈다. 아날로지에 의하는 길밖에는 없었다. 근세 유럽의 지식인들이 이탈리아에 보낸 미친 듯한 그리움. '미뇽의 노래'가 풍기는 향수의 몸부림 속에 그는 그 쌍둥이를 찾아냈다. 바이런, 괴테, 횔덜린, 니체 같은 그 시대의 엘리트들의 이탈리아에 대해서 품고 있던 환상의 강렬함. 그들은 이탈리아에 그들 영혼의 주소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의 전기를 읽어 볼 기회를 가진 사람이면 쉽사리 알 수 있다. 해방돼서 전쟁이 날 때까지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대해서 품고 있던 심상(心象)의 모습도 이에 닮은 모습이었다. 사회에 널리 퍼진 그와 같은 믿음이 그 속에 사는 티끌인 한 소년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고, 하물며 집안의 형편이 몸으로 그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돼 있는 바에야 더더구나 그러했다. 그것은 독고준에게는 분위기로 있었다. 그리고 시대의 분위기라는 것이야말로 여자의 성감처럼 복잡한 진리가 아니겠는가. 말로 나타내자면 어쩔 수 없이 빙글빙글 도는 길을 더듬어야 되면서도 동시대인에게는 곧바로 사실로 존재하는 것. 아버지가 사는 지역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는 이렇게 해서 그들 집안을 정신적인 망명가족으로 만들었던 것이며, 소년 독고준은 일찍이 그 나이에 망명인의 우울과 권태를 씹으며 자랐다.

비록 소년일망정 준에게도 박해의 시련이 있었다. 학교에서 소년단 집회가 열릴 때마다 그는 이단 심문소(異端審問所)에 불려 나간 배교자의 몫을 맡아야 했다. 그의 하찮은 생활의 잘못, 이를테면 지각이라든가 시간 중에 졸았다든가, 청소가 깨끗지 못했다든가 하는 일들이 빠짐 없이 그의 반동적 가족 성분에 연결돼서 검토되고 냉혹한 자기 비판이 강요되었다. 소년단 지도원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의 공산당 출장원 노릇을 맡아 보는 교원은, 미래의 공산당의 달걀인 그의 꼬마 영웅들소년단 간부들을 지휘하여 회의를 진행시키면서 준을 공격하였다. 그것은 꼭 여러 마리 사냥개를 풀어서 죄 없는 짐승을 물게 하는 사냥꾼의 솜씨 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 역사 시간이었다. 새로 온 역사 선생이 처음 가지는 시간이어서 학생들은 조금 굳어 있었다. 올봄에 교원대학을 나왔다는(그는 아직도 학생 옷을 입고 있었다) 젊은 선생은 출석을 부르고 나자 학생들을 한 바퀴 죽 훑어본 다음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 역사란 무엇일까요, 아는 사람?"

학생들은 약간 기가 질려서 눈만 말똥거릴 뿐 대뜸 반응은 없다.

"생각한 대로 말해 보십시오."

그 한마디에 끌리듯이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갔다.

", 역사란 옛날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역사는 지나간 일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입니다."

"역사란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의 지침으로 삼는 과학입니다."

이것은 준의 대답이었다. 선생님은 대답마다 싱글싱글하면서 고개를 옆으로만 흔들고 있다가 모두 지쳐 버리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

"동무들은 모두 아주 귀여운 부르주아 역사가들이군요."

이 불길한 부르주아란 선언 때문에 학생들은 기가 질려 버렸다.

"역사란 옛날 일도 아니고, 또 옛날을 돌이켜서 앞을 보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다 부르주아 역사가들이 인민을 속이기 위해서 만들어 낸 거짓말입니다. 역사란 계급투쟁의 과정입니다. 피지배 계급과 지배 계급 간의 피 흘린, 그리고 흘리고 있는 싸움의 과정, 이것이 역삽니다. 어떤 시대에 어떤 지배자들이 어떤 피압박 계급을 어떻게 착취했는가, 그들을 착취하기 위해서 어떤 전쟁을 했으며 어떤 문화를 만들어서 인민들의 눈을 속였는가를 연구하는 과학이 역삽니다. 이것은 일찍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세워 놓은 역사의 방법입니다. 즉 유물사관입니다. 이것만이 참다운 역사의 방법입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여러분은 압제자들에 대한 인민들의 반항의 역사를 배우는 것입니다."

중학교 일학년 생도들을 놓고 한 것을 생각하면 좀 너무한 일이었다. 사실 그 무렵 북한 땅에는 한 가지 종류의 진리의 말밖에는 없었다. 같은 진리라도 아이, 어른,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책임이 많은 사람, 책임이 적은 사람에 따라 몸에 맞게 처방된 진리의 양적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정말 너무한 것은 그날 저녁에 일어난 소년단 학급 총회였다. 학급 소년단 분단장은 느닷없이 준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독고준 동무는, 평소에 비열성적이며 낙후한 사업 태도를 가지고 일해 왔는데, 오늘 역사 시간에는 부르주아적인 말을 하여 역사의 참다운 정의를 알지 못하면서 과오를 범했습니다. 자아비판을 요구합니다."

분단장은 종이에 적은 것을 읽고 있었다. 소년단 지도원이 적어 준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날 준은 근 한 시간이나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그후 심심치 않게 계속됐다. 그는 점점 더 망명자가 되었다.

사과꽃이 피기 전 매우(梅雨)의 계절에 그는 밤늦도록 안방에서 책을 읽으면서 새웠다. 그 방에는 아버지와 형님, 누나의 세 사람이 읽어온 책들이 그득했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책이 다 그의 것이었다. 아버님 책은 거의 모두가 오래된 일본 법률책이었다. 그것들은 준에게 아무 쓸모 없는 휴지들이었다. 형과 누나의 책의 대부분은 소설이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누나가 밭일 속으로 망명(亡命)한 것처럼 그는 책 속으로 망명하였다. 그가 제일 좋아하며 되풀이 되풀이해서 읽은 책은 플랜더스의 개였다. 아름다운 사랑, 개와 사람 간에 맺어진 우정과 믿음, 어른들의 쓸데없는 겉치레, 소년의 야망, 우연이 빚어낸 비극. 아름답고 착한 소년이 바르고 씩씩하게 살다가 쓰러지는 모습이 그를 감동시켰다. 집 없는 아이도 그를 기쁘게 했다. 그것은 플랜더스의 개와는 거꾸로 바르고 굳센 사람이 끝에는 이기고야 마는 이야기였다. 레미 소년과 더불어 그는 프랑스 방방곡곡을 떠돌았다. 원숭이가 폐렴에 걸렸을 때 준은 몹시 슬펐다. 양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레미의 마음을 헤아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모험과 싸움의 이야기가 그의 어린 마음을 즐겁게 했다. 이런 쉬운 이야기만 읽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두툼한 나나를 몰래 읽고 있었다. 이 게으르고 방종한 여자의 이야기가 어쩌면 그렇게 재미있을까. 그는 나나가 벽난로 앞에서 맨몸뚱이가 되어 불을 쬐는 대목을 읽으면서 가슴이 뛰었다. 플랜더스의 개집 없는 아이와는 또 다른 세계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더 어찔하고 짜릿한 세계였다. 나나를 그는 몰래 읽었다. 어쩐지 남이 보는 데서 읽기는 계면쩍었기 때문에. 어머니 앞에서만은 그는 버젓이 그 책을 펴놓고 읽었다. 어머니는 한글과 한문을 조금 뜯어볼 뿐, 책을 못 읽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저 준이 아무 책이나 들고 있으면 공부하는 줄만 알고 몸이 상하겠다고 늘 말했다. 그럴 때 그는 사람을 속이고 있다는 죄의식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 그 자신 분명히 죄스럽다고 느낀 맨 처음 감정이었다. 죄의 기쁨 속에서도 이야기의 세계는 여전히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거꾸로선 세계, 물구나무선 마음의 나라였다.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고 현실이 더 거짓말 같은 질서였다. 이 같은 죄의 기쁨을 위해서 그는 나중에 값을 치러야만 했다. 그가 책을 읽고 있는 방 바깥 처마 끝에는 커다란 옹기 도가니가 늘 빗물받이로 놓여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철, , , 떰벙 떰벙, 하는 소리가 문득 그의 귀를 울렸다. 그는 한참씩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는 다시 책장을 넘겼다. 책을 읽고 있는 사이 그 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그의 주의력이 느슨해지면 그 소리는 다시 기어들었다. 사람이 들어서는 기척에 준은 머리를 들었다. 누님이 문간에 서 있었다. 그녀는 전에 없이 새옷을 갈아입고 치장을 하고 있었다. 준의 곁에 와 앉는데 엷은 분 냄새가 풍겼다. 그녀의 표정은 어딘지 심상치 않은 데가 있었다. 준은 말없이 누나를 쳐다보았다.

누나는 준이 읽고 있는 책을 들여다보다 말했다.

"준아, 나하고 얘기 좀 할까?"

준은 눈으로 대답하고 일어나 앉았다.

"준은 매부 얼굴이 생각나?"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 사진이 한 장 놓여 있었다. 준은 들여다보았다. 누나와 매부가 가지런히 앉아서 찍은 사진이었다. 두 사람 다 학생복 차림이었다. 사진 속의 두 사람은 활짝 웃고 있었다. 누나는 지금보다 갑절이나 젊고 싱싱해 보였다.

"셋이서 해수욕하던 생각 나니?"

누나는 사진을 이윽고 들여다보면서 혼자말처럼 물었다.

"."

준은 그녀가 왜 갑자기 매부 이야기를 묻는지 이상스러웠다. 그는 무료해서 읽던 책에 다시 손을 뻗치려다가 흠칫 굳어 버렸다. 누나가 털썩 방바닥에 엎드리면서 소리를 죽여 흐느끼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준은 한참이나 그녀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겨우 용기를 낸 그는 조심스레 누나의 어깨에 손은 얹었다.

"왜 그래, 응 누나?"

그녀는 거기 동생이 있는 것을 잊은 사람처럼 소리는 그대로 죽인 대로지만 세차게 몸부림치며 흐느꼈다. 준의 코허리와 가슴이 쥐어짜인 듯이 아파 오면서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누나의 설움이 그의 가슴으로 옮아와서 그를 흐느끼게 했다. 문밖에 기척이 나고 누군가 거기 머물러서는 듯했으나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들은 무척 오래 그런 자세대로 한 사람은 까닭이 있어서, 또 한 사람은 동기의 슬픔을 위해서 울었다.

이윽고 눈물을 거둔 누이는 준의 얼굴을 닦아 주고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가 놓아 주었다. 그리고 애써 웃어 보였다.

"누나가 바보지? 괜히 울고 싶어서 준이 방을 빌렸어."

준은 안심이 되면서 일부러 볼멘소리를 했다.

"뭐야 어른이, 이젠 울지 마."

"어마 얘는, 어른은 울 일이 없나 뭐."

그녀는 주먹을 들어 준의 머리를 찧는 시늉을 했다.

"어른은 괜히 울고 싶은 때가 있나?"

"그럼, 너두 이따가 자라면 다 알게 돼. 준인 어른이 돼서두 누나같이 약한 여자를 울리면 안 돼."

"여자를 왜 울려?"

"글쎄, 그것도 이담에 알게 돼."

그녀는 또 울먹해졌다. 오늘 저녁의 그녀는 울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예전의 그녀답게 보였다. 활발하고 수선스러웠던 옛날의 모습을 보면서 준은 왜 그런지 가슴이 훈훈해졌다. 그리고 속으로 난 누나가 좋아, 하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누이가 방에서 나간 다음에 그는 다시 책을 집어 들었으나 영 읽을 수 없었다. 허공의 한 곳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누이의 눈매가 자꾸 어른거렸다. 그는 책을 집어 던지고 누이가 하던 것처럼 허공을 보면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 , , 떰벙, , , , 떰벙.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비가 걷히고 나면 곧 사과꽃이 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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