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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 비료 공장

Bollnow 2024. 4. 7. 06:19

질소 비료 공장

이북명

 

1

아직 이십 분이나! ……기 시간도 안 간다.”

문호는 소음같이 피곤한 육신을 기지개 펴면서 중얼거렸다.

아침 일곱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쉴새없이 급속도로 돌아가는 분리기에서 흘러내리는 하얀 사탕가루 같은 유안(硫安)을 도록고에 받아서 엔드리스에 운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층에서 가끔 낙숫물같이 떨어지는 유산은 문호(문호뿐 아니다)의 작업복을 벌집같이 구멍을 내어 주었다. 그리고 유안 결정(結晶)이 마치 얼음이 얼어붙은 듯이 들어붙어서 걸을 때마다 와사삭 와사삭 쓰리었다. 짜개신발(지카다비)은 며칠 안 신어서 꺾이는 부분마다 칼로 엔 듯이 싹싹 끊어졌다. 그러나 유산과 유안이 묻은 데는 씻을 수가 없었다. 씻으면 몬작몬작 다 녹아빠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손이나 얼굴에 묻은 유산은 몇 번이고 수도에 달려가서 씻지 않으면 안 된다. 유일한 재산인 육신을 빵꾸낼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그는 불행히 요전번에 이층을 올려다보다가 위로부터 떨어지는 유안 결정이 눈에 들어가서 그때부터 눈이 텁텁하게 잘 보이지 않았다. 시력이 대번에 십도나 나빠졌다는 말과 안경을 쓰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으나 문호는 그대로 참고 있었다.

벌어 먹자면 할 수 없는 일이지.’

하고 문호는 생각하였을 뿐이다.

질소비료공장이 처음 H라는 조그만 이 어촌에 터를 닦을 때부터 문호는 직공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런 관계로 지금은 삯전이 꽤 많은 편이었으나 그러나 일급 팔십오 전이라는 돈으로는 다섯 식구를 살리고 나면 그 밖에 병이라든가 다른 용에는 갈라 붙일 여유가 없었다.

고된 노동과 이 공장의 특수한 공기는 벌써 문호의 가슴속 어느 부분을 파먹기 시작한 지가 오래다. 그러나 약을 먹을 수는 없었다.

약을 먹을 수 없는 대신에 한 달이면 닷새는 쉬어야 하였다.

이십 분이면 아직 몇 도록고냐?”

그는 자기의 흐린 눈을 부비며 또 한번 시계를 쳐다보았다.

가기는 가는 셈이냐? 대관절.”

이 사람아, 시계가 구멍이…… 빵꾸가 나겠네.”

농담 좋아하는 용수가 그의 어깨를 탁 친다.

참 정말 시간도 안 가네.”

그는 다시 도록고를 밟기 시작하였다.

빨리 가면 빨리 신단지야.”

오래 가면 뭘 하나?”

죽으면 또 뭘 하나? 한때 한때는 다 있는 거야.”

암 살구야 볼 일이지.”

하고 도록고를 밀고 오던 상호가 별안간 말을 던진다.

미래는 ××의 것이니까.”

요건 아직 파랑파랑한 때니까 큰소리를 탕탕 치는구나. 요녀석 대감 나이나 돼봐라.”

문호의 말을 받아치며 용수가 상호에게,

이 사람 저 영감한테 연설을 좀 해주게. 오백 년 자던 잠을 깨게…… 만국 노동자() 철의 식()으로…….”

그들은 만국 노동자여 ××하자하는 말을 잘하는 철호를 호자를 떼어 버리고 그저 철이라고 불렀다.

하고 문호는 그 근방을 휘둘러 보았다. 요행 감독은 보이지 않았다.

! 미역국 먹을 소리 마라.”

미역국마따나, 참 이 사람 자네 오카미상(마누라)…… 이번은 쌍둥이같이 아내 배가 남산이데그려.”

그러기에 말야. 좀 조동아리들을 가만히 가지고 있으란 말이야. 남까지 걸리게 말고…… 받는 소는 씩 하지 않고도 받는다네…… 왜 친목회사건을 못 보나? 툭하면 등걸음(미역국)일세.”

기실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한참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도 요놈 수상하구나 하고 회사 ××실로 불러들이는 판이다. 일터를 찾는 노동자가 알감자같이 들여밀리는 맛에 이전에 이삼 전씩 올려 주던 승급(昇給)도 그만 까먹고 까불릴 생각만 하는 판이라.

그러기에 말일세. 까불리지 않도록 하잔 말이야. 피차…….”

! 요전 친목회 일만 보게. 그리고 또 철호 일만 보게. 꼭꼭 일러바치는 놈이 있는데야 어쩌나.”

아니 철호가 어쨌나?”

철호도 미안미안하데.”

하고 문호가 말을 이으려다가,

…… 왔다.”

사 년이나 공장에서 눈치코치를 치러 낸 문호는 두 사람에게 눈짓을 하고 아니 멎은 채 살같이 도록고를 재빠르게 밀었다. 웃을 줄 모르는 감독이 우줄우줄 걸어오고 있다.

쇠 썩는 냄새, 급도로 돌아가는 기계에서 타는 기름 냄새, 거미줄 같은 물색 칠한 파이프 짬으로 씨, 씨 하며 새어 나오는 암모니아 냄새가 서로 얽히어 마스크를 쓴 그들의 코를 잔침질한다. 눈독도 그리고 식욕까지를 빼앗아 가는 고약한 냄새다. 뿐만 아니라 얼굴이 노래지고 기침을 컥컥 하게 된다. 게다가 콘크리트 벽과 바닥이 흔들리는 요란한 모터와 블로어(送風機) 벨트의 소리에 신경은 극도로 과민해지고 가슴은 빈 구역이 치민다.

나이 먹고 공장에 있은 지 오랜 문호는 숨이 차고 선땀이 흘렀다. 컹 하고 기침을 하면 가슴은 구새먹은 나무같이 펑 소리가 나고 찌르듯 아픈 기운이 흐른다. 그러나 감독! 미역국…… 이런 생각이 나서 그는 기침을 누르고 땀을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

사이렌이 목 메인 소리를 뿜었다. 점심시간이다.

하며 문호는 도록고를 내놓고 기계 짬에 박아 두었던 넝마에 손을 씻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2

식당에 들어서 보니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게시가 씌어 있다.

 

금일 점심 후 제품 창고에서 유안 대 유산 발리볼 시합이 있으니 선수는 물론 유안 동무는 맹렬한 응원을 하라.

 

가래질하듯 점심을 퍼넣고 직공들은 제품창고에 모였다. 넓이 삼십 칸 길이 사십 칸이나 되는 아스팔트로 꾸민 창고! 장차 그들의 땀과 기름으로 만들어질 비료가 차는 이 창고! 이곳이 지금 그들의 유일한 운동장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벌써 네트가 쳐 있다. 유안의 뚱뚱보 성만이가 이 틈에 낀 밥알을 혀끝으로 쑤시며 나왔다. 이런 운동이 있을 때마다 그는 으레 심판장이 되었다.

선수들은 벌써 좋아라고 볼을 쳐 넘기기도 하고 연락을 취하며 스매싱을 넣기도 한다.

식카리야레(기운 내라), 이기면 술 사준다.”

말썽 좋아하는 용수가 말문을 떼자,

이기는 양반은 유산 양반, 지는 놈은 유안 놈!”

하고 말솜씨에는 둘째로 가라면 역증을 낼 만한 유산의 철암이가 재빠르게 맞불을 놓는다. 그리고 서로 볼을 주고받고 하며 유쾌한 웃음 소리가 가끔 터졌다.

이마카라 하지메낫스(이제부터 시작하겠소).”

조금 지나서 성만이가 호각을 호로록 불었다. 선수들은 몸자세를 가다듬었다. 유안에서 유산으로 볼을 넘기자 시합은 시작되었다.

지지 마라.

스매싱을…….

……(생략)……

유안 야케다(기권해라).

유산 야케다.

야지 소리, 박수 소리, 고함 소리, 달리는 소리, 부딪는 소리에 창고는 떠들썩하였다. 시합이 점점 격렬하여질수록 소리 소리는 높아 갔다. 취업 사이렌이 날 때까지에 점수가 많이 난 쪽이 이기는 규정이다.

 

유안 - 9…… 15…… 27

유산 - 7…… 17…… 23

 

2723이 되었을 때에 급사가 나와서 철호를 찾았다.

공장장이 부릅니다, 얼른.”

하고 급사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피하듯이 시합하는 것을 비슬비슬 곁눈질하며 돌아간다.

시합이 흥미의 마루턱을 올라가는 중에서도 몇몇 사람의 시선은 이 불시의 침입자에게로 쏠렸다. 벌써 불길한 예감이 몇 사람의 가슴을 쳤다.

해고!’

그러나 누구보다도 철호 자신의 예감이 제일 따가웠다.

결국 내 차례가 왔구나.’

……얼마 전 어느 날 저녁 동윤이 영구, 창호, 철호네의 발의로 유안 친목회를 서호(西湖) 해안 백사장에서 벌인 일이 있다. 아직 아무런 회합도 조직도 없는 그들 중에서 맨 나아간 몇몇 사람이 무슨 형식으로든지 모임의 터전을 닦으려고 친목회를 묶었던 것이다. 살을 아프게 하고 뼈를 저리게 하는 그 가운데서 스스로 깨달아진 모임의 조그만 싹이었던 것이다. 발의자인 철호 외 몇 사람은 물론 친목이라는 막연한 공원(公園)에 언제까지든지 그들을 놀게 하자는 것이 아니었으나 지금의 형편으로는 그 이상의 형태를 드러낼 수가 없었다.

출전:조선일보(1932.5.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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