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4. 7. 06:13

답싸리

이북명

 

1

닭의 목을 쥐고 자는지 늙은 사람들에게는 새벽잠이 없다. 먼동이 틀 임시하여 일어난 호룡(虎龍)영감은 토마루에다가 담배 한 대를 맛나게 피우고 나더니 인분통을 들고 어두컴컴한 변소로 들어갔다. 선잠에서 깬 똥파리떼가 으앙 하고 호룡영감에게 달려들었다. 호룡영감은 인분에다 오줌을 섞어서 한 통 퍼담아 들고 방문 앞으로 나왔다. 대문 밖에 나가 개천물 두 바가지를 떠다가 통에 붓고 나뭇가지로 쿨렁쿨렁 저었다. 인분은 아주 훌거워졌다. 고약스런 인분 냄새가 무럭무럭 떠올라서 호룡영감의 콧구멍을 주먹으로 쥐어박는 듯이 쿡쿡 찔렀으나 호룡영감은 콧마루 한번 씰룩하지 않는다. 해마다 이 계절이 오면 호룡영감의 가슴에는 남 알지 못하는 욕심이 하늘하늘 불타 올랐다. 돈푼이나 있는 집 영감 같으면 호사 끝에 허리가 꼬부라져 벌써 지팡이를 장만할 나이 되었으나 그런 호사를 못 한 덕으로 우리 호룡영감은 아직 완전하다. 인분 한 통을 코타령을 하면서 외손에 가볍게 들고 다니는 기력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만이 아닌가! 영감의 나이 금년에 육십! 다섯 평이 되나마나 한 마당 그 중에서 방문 앞 한 평쯤 내놓고는 온 마당이 어린 댑싸리로 푹 덮였다. 그뿐인가? 수숫대 바자 밑에는 한 미돌(미터) 가량씩 간격을 두고 보동보동 살찐 호박모가 덩굴을 수숫대에 틀어감으면서 자라고 있다. 밤이슬을 잘 맞은 뜨락의 식물들이 팔팔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다. 호룡영감은 등빠진 무명적삼 소매를 훌쩍 걷어 올리고 나서 똥물을 바가지에 담아 들고는 댑싸리 사이를 앉은걸음을 치면서 뿌리마다에 알맞춤씩 부어 준다. 댑싸리에 거름을 주고 난 다음에 호박모에다는 댑싸리보다 다량으로 똥물을 부어 주었다.

암만해도 호박모가 모자라…….”

호룡영감이 허리를 펴면서 하는 말이다.

구슬 같은 이슬을 잠북 머금은 시원하고도 명랑한 여름 아침 공기를 독한 인분 냄새가 슬슬 굽이치면서 흐른다. 댑싸리와 호박모에 거름을 주고 나도 전깃불은 깜박깜박 졸면서 모기와 하루살이의 성화를 받고 있다. 밝기 쉬운 여름 아침이나 아직 밝자면 대담배를 천천히 너댓 대 피울 시간은 있다.

상금 자니? 해 올라온다 일어나거라.”

호룡영감은 부엌문을 향하여 이렇게 소리를 치고 인분통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대문 앞을 숨막히게 S강 제방이 가로막고 있다. 통행로는 S강 제방 뿌리와 대문 사이의 넓이 한 미돌이나 될까? 하는 개천뿐이다. 이 개천에다 큰 돌을 두 개를 놓고 그 돌을 다리삼아 통행하고 있다. 하수가 빠질 데 없는 이 마을에 장마가 계속이 되면 집집 마루 앞까지 만경황파가 되었다. 이때가 되면 이 동리 주민들은 발간 까치 벌레가 이글거리는 하수를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맨발로 건너다닌다. 철없는 어린애들은 이 물에서 목욕을 한다.

호룡영감네 집 앞 제방은 제방이자 곧 호룡영감의 밭이다. 제방 중허리까지 무성하던 풀을 빤빤히 갈고 댑싸리가 한 뼘씩이나 간을 두고 장하게 들어섰다. 우리 호룡영감의 농사는 풍년이다.

이 쌍놈에 개들아.”

호룡영감은 댑싸리밭에서 물어둘러 내치면서 어부중을 하고 있는 개를 향하여 흙덩어리를 주워 던지면서 소리를 지른다. 개들은 심술궂은 호룡영감을 원망하는 듯이 컹컹 짖으면서 S제방 위로 뛰어올라갔다.

워리워리 꼬도꼬도.”

호룡영감은 손바닥에다 흙덩어리를 놓아 내밀면서 개를 호린다. 그러나 한번 혼난 개들은 호리면 호릴수록 컹컹 짖으면서 방천 저쪽으로 넘어간다.

한 마리 붙들기만 해라. 잡아먹는다.”

호룡영감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아까 마당에서 하던 대로 댑싸리 밭 가운데에 수캐앉음을 앉아서 뿌리마다에 거름을 준다. 호룡영감의 이마와 등에 땀이 축축이 내돋았다. 거름을 다 주고 난 다음에 호룡영감은 조심조심히 댑싸리의 맨 윗순을 똑똑 잘라 주었다. 댑싸리는 순을 잘라 주면 잘 자라기 때문이다.

빈 인분통과 바가지를 대문 앞 하수에 씻어서 제자리에 들여다놓고 또 한번 부엌문을 향하여 소리를 치고 호룡영감은 손을 툭툭 털면서 S제방 위에 올라섰다. 소오줌만큼씩 몇 줄로 졸졸 흐르는 S강물 위를 회색의 솜 같은 안개가 낮게 슬슬 흘러다니고 있다. 건너편 제방 너머 보이는 집과 나무들, 즉 농촌의 한폭의 풍경이 안개에 싸여서 수평선 저쪽 멀리 떠보이는 신기루 같은 환멸의 감을 준다. 그 신기루와 회색의 솜을 뚫고 여름 아침 녹신녹신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호룡영감의 이마에 달린 땀방울을 하나둘씩 따가지고 귀밑을 스쳐서 뒤로 날아가곤 한다.

그러나 호룡영감은 이 모든 강변 풍경에는 아무 감흥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회색 안개가 자욱한 강을 내려다볼 때 그 강바닥이 전부가 자기의 전답이 되어 주었으면 하고 천근같이 무거운 한숨을 내뿜었을 뿐이다.

호룡영감은 가래침을 거세게 내뱉고 풀섶에 앉아서 곰방대에다 희연을 꼭 눌러 담아 붙여 물었다. 담배 맛이 꿀같이 단지 건장이 흐르는 것을 담배 연기에 반죽하여 목을 울리면서 넘기곤 한다. 호룡영감이 발목까지 오는 강물에 들어서서 물모래로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다시 방천 위에 올라섰을 때 아랫마을에 있는 점쟁이 신훈장이 호박모를 신문지에 싸쥐고 털털걸음으로 내려왔다.

신훈장 아니우? 일즉허니 어디 갔다 오우?”

하 금년은 호박모두 어떻게 이밥운지 다섯 집안에 가서 제우 몇 모종 얻어 가지구 오는 길이우.”

호룡영감도 호박모가 그리웠다. 마당 구석에다 호박씨를 뿌려 놓기는 하였으나 아내가 모르고 소금물을 주어서 모조리 죽어 버렸다. 거리에서 호박모를 파는 줄은 알지만 호룡영감은 돈을 주고 사서까지 심을 생각은 없었다. 호룡영감에게는 아직 호박모 여남은 모종이 필요하였다. 그렇게 구하던 호박모를 보더니 호룡영감은 눈이 번쩍 띄었다.

많군. 몇 모종 나를 줍겐…….”

호룡영감은 호박모를 어루만지면서 사정을 붙인다.

원 천만에, 상금 이만큼 더 있어야 하겠습메…….”

뉘 집에서 얻었습메?”

안 줄 줄 아는 호룡영감은 호박모 얻은 처소를 알아 가지고 손수 가볼 생각으로 이렇게 물었다.

윗말 곱장영감네게서…….”

호룡영감은 곱장영감이란 말을 듣더니 귀가 바짝 떠서 이야기하던 신훈장을 방천 위에 내버려두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잦은걸음으로 곱장영감네 집으로 떠났다. 호룡영감은 곱장영감하고 희롱하기까지 친한 처지다. 곱장영감네게 가보았으나 벌써 호박모는 남지 않았다. 호룡영감은 사정 사정하여서 겨우 네 모종을 얻어 가지고 왔다. 집에 돌아온 호룡영감은 호미를 쥐고 나가더니 앞집 고부덕이네 앞 방천의 풀을 호미로 빤빤히 긁기 시작하였다. 거기다 호박모를 심을 생각이다.

저 영감이 망령을 부리는군. 방천을 저렇게…….”

장마에 방천이 미어지면 어쩌자구 저 두상이, 영감 그만두오, 괜히 콩밥 먹지 말구…….”

아침 산보객들이 호룡영감의 환장한 듯한 행동을 보고 저희끼리 수군거리기도 하고 입바른 사람은 그러지 못하게 짠말로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호룡영감은 눈도 거들떠보지 않고 숨차서 헐떡거리면서 호미로 풀뿌리를 빡빡 긁어 버린다. 그러면서 도리어 산보객들을 욕하는 것이다.

미친놈들 같으니, 저놈들 배부르니 내 배꺼정 부른 줄 아니? 여북하면 방천을 갈겠니…….”

호룡영감은 입으로 흘러들어가는 땀방울을 푸내뿜으면서 거대스럽게 풀을 긁는다. 영감의 머리끝까지 삶에 대한 욕심이 어룽거리고 있다.

호룡영감이 방천풀을 한 평이나 긁어 모았을 때 아들 경덕이가 수건을 어깨에 걸고 칫솔을 입에 물고 나왔다. 강으로 세수하러 나가는 길이다. 경덕은 작년 봄에 그것도 겨우 보통학교를 나와서 학교 소개로 T백화점 점원으로 취직이 되어서 지금까지 착실히 다니는 아이다. 아버지와는 성미가 정반대로 양처럼 유순하고 거짓말을 하기를 몹시 무서워하는 정직한 소년이다. 경덕은 아버지의 지나친 행동이 볼썽 사나워서,

아버지, 방천의 풀은 왜 자꾸만 뽑소. 남들이 욕하는데 그만두오.”

경덕은 이마를 찡그려 울상을 지으면서 뾰로통한 음성을 아버지 등에다 던진다.

야 이놈의 종재야, 너를 시비하라니.”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들에게 뚝 잡아떼는 듯한 거센 소리를 던진다.

물내기에 방천이 터지문 어떡하겠소.”

이놈, 너를 그런 걱정을 하라니? 빨리 밥이나 먹구 가게(상점) 나 가거라.”

아버지는 어디까지든지 아들의 말을 짓밟아 버린다.

글쎄 그만두오. 예럼(이웃)에서 자꾸만 시비를 하는데.”

아들은 자기를 어디까지든지 젖비린내 나는 어린아이로 취급하는 아버지가 아니꼬웠다.

야 이 간나새끼야, 애비 하는 일에 참견이 무슨 참견이냐.”

아버지는 훌쩍 뛰어 일어나더니 불꽃이 튀어나올 듯한 두 눈으로 아들을 쏘아본다.

경덕은 아버지의 무서운 기세에 눌려서 아무 말도 못 하고 혼자 무어라고 두덜대면서 방천을 넘어갔다. 분풀이로 아버지 보는 데서 댑싸리와 호박모를 빼내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생각이 어린 가슴에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호룡영감은 두어 평 잘 되게 방천을 갈았다. 간 풀을 안아서 제방위에다 쭉 널어 놓았다. 쨍쨍한 이틀 볕만 보이면 두 때 땔나무는 되었다. 그러고 나서 호룡영감은 두어 발자국씩 간을 두고 호미 끝으로 네 군데를 파고 물을 조금씩 붓고 호박모를 심었다. 그리고 호박모가 이글이글 불붙는 햇볕에 시들어 죽지 않게 냄비 깨어진 것, 물동이 깨어진 조각을 주워다가 호박모를 덮어 주고 네 귀에다 말뚝을 박고 새끼줄을 띠어 놓았다. 호룡영감은 방천 위에서 부닥지를 하는 개를 멀리 쫓고 집에 들어가서 감자 아침을 먹었다.

 

 

2

호룡영감이 이 S제방 밑 집으로 이사온 것이 작년 삼월이다. 아직까지 이 마을은 대부분이 부유지다. 백골의 사태가 났던 이 부유지에 부락이 형성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하여튼 이 지구(地區)가 비약적 발전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 오륙 년 전까지도 이 지구는 못 살고 죽은 귀신의 굴로 이름난 모래둥이로 백주에도 사람 그림자를 볼 수 없는 빈터였다. 지금으로부터 칠팔십 년 전 때의 일이라고 한다. 그때 이 모래둥이는 공동묘지였다. 그런 것을 당시의 지방정청에서 묘지의 정리를 단행하게 되어 이 모래둥이의 묘를 기한부로 발굴하여 이장하기를 엄명하였다. 부유한 생활을 하는 자손들은 선조의 백골을 파서 시산에 이장을 하였으나 영락한 자손들과 위가 첩첩하게 있는 어린 백골들은 그냥 내버려두었다. 또 어느 뼈가 자기 조상의 뼌지 알지 못하여 한 백골을 가지고 사오 명이 내해니 네해니 하고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칼부림질을 하여 살상이 난 일까지 있었다. 나라에 대한 모든 희망과 생활에 대한 안정을 잃어버린 때의 민중들은 조상의 해골을 명산에 안장하는 데서 부귀를 누리고 다자손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이 H지방의 민지(民誌)에 게재 될 만한 유명한 백골란(白骨亂)이다. 백골란 때 자손을 찾지 못한 해골, 임자 없는 무덤은 그냥 깊이 파묻어두었다. 그랬던 것이 그 모래가 기성상 풍우에 씻기고 날리고 흐르고 하는 통에 백골들이 모래 위에 나타나게 되었다. 마치 바닷가에 조개껍질이 어지럽게 쌓여 있는 것과도 같이 백골이 볼썽사납게 굴러다녔다. 지금도 눈밝은 개들이 사람의 두개골을 물고 다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호룡영감의 증조부의 묘도 이 모래둥이에 있었다. 그러나 영락한 호룡영감의 조부는 백골란 때 아버지의 백골을 찾아내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것을 호룡영감은 늘상 섭섭하게 생각한다. 육십 평생을 밑바닥생활만 하여 온 호룡영감은 조상의 벌을 받아 못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때도 있다. 금년 봄 어느 따뜻한 날 아침에 호룡영감이 방천 위에 앉아 있으려니까 말 같은 놈의 개가 사람의 두개골을 물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것이 자기의 증조부의 두개골이겠다는 제 육감에 찔려서 한 십 분 동안이나 그 개를 쫓아다녀서 겨우 두개골을 빼앗았다. 호룡영감은 그 두개골을 자문잠사하게 자기 집 마당 한구석에다 파묻고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밤늦게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드린다.

이렇던 사피나무둥(옛적에 이 모래둥이에 늙은 사피나무가 많이 서 있었다고 해서 지금 사람들은 이 마을을 이렇게 부른다)’은 지금에는 생활에서 버림을 받고 광명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최후의 피란 부락으로 변하여졌다. 그러나 작금에 와서는 이 피란처도 점점 자본의 물살에 휩쓸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건전하고 공기 신선하고 전망이 좋은 이 마을에는 네 귀 풍덩기와집들이 와니스 기름 냄새를 발산하기 시작하고 성냥갑 같은 이층 양옥이 모든 자기 외의 생활을 비웃는 듯이 높이 솟아 있다. 이리하여 벌써 제이의 피란처를 찾아 S강을 건너간 집도 이삼 호 있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호룡영감이라고 어찌 등이 달아나지 않으랴! 그러나 지나간 그들의 고생은 시금치 먹기였다. 앞으로 닥쳐올 고생, 앞으로 밀면 밀수록 뒤로 밀리는 생활을 생각한다면 호룡영감이 방천을 갈아 밭을 만드는 것도 그렇게 미련한 행동은 아니다. 째어지나 미어지나 발악은 쓸 데까지 써보아야 하지를 않는가! 외래 자본의 진출, 여기에 따른 K읍 대화학비료공장의 건설, 기하급수적 증가를 보이는 H부의 인구, 소시민과 소자본가의 필연적 패배……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 사피나무둥으로 밀려나왔다. 이리하여 부락 형성된 지금은 제법 사피나무둥은 부내에 편입까지 되지 않았는가! 셋방으로 돌아다니던 호룡영감은 작년 이월에 문중의 산이 K읍 비료공장에 팔려서 그 돈을 분배하는 데 한몫 끼여서 육십이 원이 생겼다. 그것으로 지금 집터 열 평을 사가지고 말장집을 지었던 것이다. 이 집 한 칸이 호룡영감의 총자본이다. 그러나 집은 밥을 제조하는 기관은 아니다. 작년 봄에 호룡영감은 생각하던 끝에 마당과 방천 밑에 댑싸리와 호박을 심었다. 가을에 댑싸리를 사십 자루나 매어서 한 자루에 십 전씩 받고 팔아서 사 원을 얻고 호박을 팔아서 일 원 오십 전을 샀다. 호룡영감은 그 돈으로 겨우살이 광목 바지저고리를 꾸미고 김장을 한 동이 담갔다. 아들이 한 달에 받는 월급이라는 것이 육 원밖에 못 된다. 이 원은 자기 잡비로 쓰고 사 원을 집에 들여놓는다. 이 사 원에다 아내가 품을 팔아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형편이다. 작년의 경험도 있고 해서 금년은 대규모로 방천을 갈고 댑싸리를 대량으로 심었다. 그리고 호박농사도 굉장히 할 배짱이다. 물론 머리가 콘크리트같이 융통성이 없고 세상 변천을 알지 못하는 호룡영감이나 여름마다 습래하는 S강의 범람을 알고 오만 주민이 제방 걱정을 하고 가슴을 졸이며 전전긍긍하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방천이라도 갈고 댑싸리, 호박을 심어서 푼푼전이라도 얻어 생활에 보태지 않고는 제방이 터져 죽을 때까지 살아갈 일이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가난이 쇠아들이라고는 하지만 나이 원수라 수건을 동이고 노동도 못 하고 지게를 지고 나설 수도 없는 우리 호룡영감의 사정도 딱할 만치 딱하다. 이 호룡영감의 머리에 남을 위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앉을 여유가 어디 있을까! 호룡영감은 이 자기의 경작 구역 내에는 아이들은 물론 개, 날짐승까지도 건드리지 못하게 말장을 박고 새끼줄을 치고 지킨다. 그러나 호룡영감의 계획은 이로써 끊치지 않았다. 호박을 따고 댑싸리를 베고 계절이 늦지만 않으면 그 자리에다 가을 배추를 심을 계획이다. 호룡영감은 자기의 외아들 경덕이보다도 댑싸리와 호박모를 더 애지중지하며 보살펴 준다.

금년은 일흔닷 냥(십오 원)은 사야지…… 호룡영감은 은근히 이렇게 혼자 궁리는 하면서도 자기의 계획을 일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경쟁자가 생기고 권리의 침해자가 생길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3

곱장영감네게서 얻어 온 호박모와 다른 데서 얻어 온 일곱 모종의 호박모가 하룻밤 비를 만나더니 한 모종도 실수 없이 기운 좋게 줄이 뻗기 시작하였다. 호룡영감은 비가 갠 날 아침에 긴 말장을 가지고 호박덕을 하여 주었다. 새끼로 입구자로 그물을 떠치고 호박줄을 조심스럽게 끌어다가 새끼그물에다 붙이고 노끈으로 여간 매어 주었다.

호룡영감이 호박줄을 모조리 매어 주고 집에 들어가서 감자 아침을 먹고 담배 한 대를 붙여 물고 돗자리를 쥐고 대문을 나섰을 때 호룡영감의 입에서는 벼락이 떨어졌다. 앞집 고부덕이란 계집아이가 호박순을 자르는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네 이놈의 간나야.”

호룡영감은 입에 물었던 담뱃대를 빼들고 고부덕을 쫓았다.

엄마야.”

고부덕은 자른 호박순을 내던지고 넋나간 소리를 지르면서 방천으로 달려 올라가다가 풀잎에 미끄러져서 넘어졌다.

이 썅 못된놈의 간나야, 다시…….”

호룡영감은 이렇게 소리를 치면서 담뱃대 꼭지로 엎드러진 고부덕의 엉덩이를 힘을 주어 내리갈겼다.

아가 가 가…….”

고부덕은 맞은 엉덩이를 움켜쥐고 소스라치게 울면서 풀숲으로 대굴대굴 굴렀다.

이 쥐새끼 같은 간나야, 다시 꺾겠니?”

호룡영감은 담뱃대를 쥔 손을 내떨면서 으르렁거린다.

아이아이 아이 그러겠소.”

고부덕은 고사리 같은 손을 삭삭 비비면서 머리를 좌우로 내흔든다.

다시 한번 꺾어 봐라, 모가지를 배틀어 죽인다.”

호룡영감이 이렇게 으르고 호박덕에 가서 순 잘린 호박모를 살피고 있을 때 이웃집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그 집 아이에게 급보를 들은 고부덕 어미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달려나왔다. 고부덕 어미라면 이 마을에서 영악스럽기는 제일가는 부인이다. 남편은 K읍 공사 지대로 돈벌이를 가고 지금은 혼자서 고부덕을 데리고 그날그날 채석장에 나가서 돌을 깨고 이삼십 전씩 벌어다가 살아가는 부인이다. 동리에서는 하도 영악스럽기에 악돌이라는 별호까지 붙여 주었다. 그러나 죽은 아들의 이름을 떼어다가 그만 박돌이라고 흔히 부른다.

박돌은 미친 개모양으로 거품을 입술에 물고 치마고리가 빠져서 뒷문이 열린 줄도 모르고 달려나오더니 풀 위에 누워 우는 딸을 안아 세우고 치마를 들고 맞은 자리를 들여다보았다. 맞은 자리가 일전 동화대로 끔찍스럽게 발갛게 파랗게 부어올랐다. 박돌은 딸의 손목을 뿌리치기 바쁘게 앉아서 호박모를 어루만지는 호룡영감의 멱살을 어깨너머로 쥐어 뒤로 채쳤다. 호룡영감은 아무 저항력도 없이 두어 번 대굴대굴 굴러서 하수구 가에 쓰러진 채 한참 일어 못 났다. 너무나 의외의 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간나 호랑아, 자아(저 아이)를 죽여 다구.”

호룡영감을 이 마을에서는 호랑영감이라고 불렀다. 호룡하고 호랑하고 비슷한 점도 있기는 하지만 호랑같이 강하다는 데서 붙인 별호다.

네 이년 이 죽일년아.”

호룡영감은 어질어질 일어나더니 갑자기 기운을 돋우어 가지고 벽력 같은 소리를 지른다.

거센 목소리가 오고 가고 하자 좋은 구경이 생겼다고 구경 좋아하는 이 동리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슬슬 모여 왔다.

이 두상아, 야 엉뎅이를 봐라. 호박모를 빼났으문 아들 죽이겠구나. 자 모두 이거 보우.”

박돌은 딸의 치마를 들고 검퍼렇게 부어오른 상처를 모여 선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보인다. 동리 사람의 동정이 자기에게로 모여지게 하자는 박돌의 수작이다.

네이 도적년 같으니, 네 간나만 중하구 내 호박모는 크지 않다는 말이냐?”

호룡영감도 뱃심 좋게 내버틴다. 아내가 맨발로 뛰어나와서 영감의 팔을 끌어당기면서 말린다.

왜 이러니? 이년 이거 놓아.”

호룡영감이 팔을 홱 뿌리치는 바람에 늙은 아내는 뒤로 곤드라졌다.

도적년이라니 그래 두상네 집에 가서 무슨 거 도적질했단 말입메?”

곰처럼 땀이 난 박돌은 입술에 거품을 물고 덤벼든다. 얼굴에서 악이 이글이글 끓는다. 모여 선 군중은 구경만 할 뿐 한 사람도 나서서 말리자는 사람은 없다.

이년 그래 작년 동삼에 헛간 지붕에다 널어 놓은 은어(도루묵)를 훔치다가 내한테 들켜나지 않었니? 이 도적년아.”

호룡영감은 박돌의 패풍을 떨기 시작한다.

내 언제 그랬니, 이 간나 두상아. 지난 오월달에 웃장에 가서 놋식기를 도적질하다가 들켜서 젊은 사람들한테 허연 쉼(수염)을 끌기우면서 망신하던 일은 어쩌구, 퉤퉤 더럽다.”

박돌은 가래침을 호룡영감의 면상을 향하여 내뱉었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고 호박모 싸움이 패풍 싸움으로 변하여졌다.

이년 나는 그런 일이 없다. 너년이나 도적질하지 나는 안 그런다.”

호룡영감은 담뱃대로 박돌의 면상을 겨누면서 목대를 세운다.

그때 마침 신훈장이 올라오다가 이 광경을 보고 뛰어들었다.

이게 무슨 즛이오, 낫살씩 먹은 사람들이…….”

신훈장은 호룡영감도 으레 대하는 처지요 박돌이도 점치러 다녀서 선생으로 모시는 터다. 중재자로는 훌륭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신훈장이다.

아니 글쎄 선생님, 야 엉뎅이를 보시우. 호박순을 하나 잘랐다구 이렇게 때릴 데 어디 있소.”

박돌은 고부덕의 치마를 들고 상처를 신훈장에게 보이면서 안타까운 듯이 말한다.

저년이 글쎄 늙은 사람을 풀 위에 메쳐 놓고 막 쥐어박겠소. 저 쳐죽일년이 이런 법을 보았소?”

둘이 다 제 잘하였다는 발명뿐이다.

글쎄 누가 옳든 그르든 그만두라니까.”

신훈장은 호룡영감의 등을 밀면서 말한다.

아니오.”

그때 박돌이가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신훈장 앞에 나섰다.

제 따()두 아닌 방천을 이렇게 파뒤지구 댑싸리, 호박을 심구는 거는 경무청에서 말하지 않소?”

이년 경무청에 가서 일르겠으문 일러라.”

아니 일르잔 말두 안 한다. 우리집 앞에 있는 방천을 내놓아라. 우리두 호박을 심구겠다.”

호랑영감이 호박모 심은 데는 바로 박돌네 앞 방천이다.

이년 내가 먼저 잡은 따이다.”

호룡영감은 거룩하게 호령한다.

아니 영감이 돈을 주구 사단 말입메. 안 됩메. 내놓아 훈야 합메.”

못 내놓겠다. 할 것이 있거든 해봐라.”

호룡영감이 이렇게 대꾸를 하면서 대문 앞까지 신훈장에게 등을 밀려 갔을 때다.

안 되기는 무엇이 안 돼. 어디 죽을 내기를 해보자.”

박돌은 이렇게 악을 부리면서 달려가더니 호룡영감의 호박모 열한모종을 단참에 모조리 뽑아 버렸다.

이 못된 간나야 호박모를…….”

호룡영감은 표범처럼 험상궂은 얼굴로 박돌에게 덤벼들었다. 수펌과 암펌의 육박전이 시작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싸움은 석양까지 계속이 되었다. 결과는 박돌의 승리로 돌아갔다.

호룡영감은 할 수 없이 댑싸리를 심은 위쪽을 다시 갈고 박돌이가 뽑아 버린 호박모를 다시 심었다.

세상에 범보다 더 무서운 년두 있다.”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호박모를 심었다. 이 싸움은 방천 밑 집들에게 커다란 충동과 각성을 주었다. 이 땅 싸움에 귀뜬 아랫마을 사람들은 이만큼 내 땅이니 저만큼 네 땅이니 하면서 서로 자기 집 앞 방천을 구분하였다. 그리고 이날 밤부터 방천을 갈고 호박모와 댑싸리를 심기 시작한 집도 있다. 그런 광경을 볼 때 호룡영감은 분하기가 짝이 없었다. 박돌이도 그날 저녁에 장마당에 가서 호박모를 오 전 어치를 사다가 호룡영감이 심었던 자리에다 심고 새끼줄을 띠어 놓았다. 호룡영감은 화가 치밀어서 그 화풀이로 다모토리(선술집) 소주 석 잔을 사마시고 밤늦게까지 방천 위에 앉아서 누구를 욕질하였다.

 

4

영감 계시우.”

이튿날 아침 해뜨기 전에 S×정목 총대가 호룡영감을 찾아왔다. 댑싸리에 물을 주던 호룡영감은 총대가 무엇 때문에 일쯔거니 자기를 찾아왔는지 대략 짐작할 수가 있었다. 호룡영감은 불쾌한 얼굴로 총대를 대하였다.

영감 거 무슨 짓이오.”

총대는 처음부터 아름답지 못한 목소리로 공박을 준다. 호룡영감은 토마루에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꿀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아무 말이 없다.

수십만 원을 들여서 쌓은 방천을 영감이 지금 헐어 버리자는 거요.”

그러니 어떡하겠소.”

호룡영감은 몸 한번 깐닥하지 않고 대답한다.

그러니 어떡허다니? 그래 저 방천이 터지면 영감이 육만여 명이나 되는 부내 주민을 모두 먹여 살려 주겠소?”

젊은 총대는 붉으락푸르락하면서 호룡영감을 내려박는다.

글쎄 낸들 이런 줄 저런 줄을 모르겠수. 그러니 가난이 쇠아들이라구 달리 무슨 수가 있어야지요. 죽지 못해 한 일이 아니오.”

호룡영감은 조금도 아첨이나 애걸하는 빛 없이 가장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아들이 벌구 노친이 벌구 했으면 황소미밥이나 못 얻어먹어서 이런 무서운 일을 저질렀소. 파출소에서 알면 영감은 당장 콩밥을 먹소.”

호룡영감은 하고 싶은 대로 하여 보아라 하는 듯이 댓진이 끓는 담뱃대만 맥없이 빨고 앉았다. 가난하게 살아 보니 되지도 못한 연놈들에게서 이소리 저소리 듣는 것이 섧기도 하고 원통하기도 하였다. 총대는 주머니에서 궐련 한 대를 끄집어내어 붙여 물더니 아까보다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금년은 기와라 이렇게 저질러 놓은 일이니 할 수 없거니와 내년부터는 절대로 댑싸리나 호박을 못 심으오. 그리고 내년 봄에는 풀 뽑은 자리에다 뙤를 떠다 심어서 원상 회복을 하여야 하오. 명령이니까 꼭 지켜야 하오.”

젊은 총대는 억지로 위엄을 보이느라고 원상 회복이니 명령이니 하는 관용어를 내세우고 기세가 등등하여 가버렸다.

범 잡은 포수의 서슬이군. 흥 되기는 되겠다.”

호룡영감은 총대가 미처 대문을 나가기도 전에 총대의 등에다 이렇게 빈정댔다.

총대가 가자 집안에서 숨을 죽이고 총대의 말을 듣고 앉았던 경덕이가 방문을 사납게 열고 나왔다. 꼬부라진 얼굴 표정이다.

아버지는 왜 남이 싫다는 일을 자꾸만 하오.”

아들도 아버지의 모든 행동이 아니꼬웠다.

야 이 간나 새끼야, 너를 걱정하라니.”

화가 치민 아버지는 아들에게 분풀이를 한다.

방천을 헐어서 밭을 만드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소.”

아들도 악이 났다. 죽어라 자기 잘못을 뉘우칠 줄을 모르고 다짜고짜로 자기 한 일만 옳다고 내미는 아버지가 밉기 짝이 없었다.

야 이 간나 새끼야, 애비 하는 일에 참견이 무슨 참견이냐.”

아버지는 후닥닥 뛰어 일어나더니 아들의 중의 머리를 보기 좋게 두 번 갈겼다. 그것은 살기 위하여서는 물질 외에는 너 같은 것도 쓸데없다는 최후의 울분과 이상 더 참을 수 없는 분노의 폭발이다. 그러나 아들을 때리고 난 다음 순간 아버지는 몹시도 가슴 아팠다. 굶지 말자고 한 일이 아들에게까지 미움을 받고 보니 그 이 형체 있다면 도끼로 패어 버리고 싶었다. 아들은 두 손으로 머리를 부둥키고 앉아 킥킥 느끼면서 울다가 게다를 끌고 마당에 내려섰다.

오 오 무슨 잘한 일을 했다구 막 때리구…….”

아들은 눈물을 씻고 아버지를 노려보다가 대문 밖으로 나갔다.

상금 주둥이질을 하니 저놈의 간나 새끼는 애비 하는 일은 하나 빼지 않구 모두 나물이겠다.”

경덕은 방천으로 올라가다가 아버지에 대한 분풀이로 댑싸리 세 대를 잡아 빼었다. 그리고 호박 한 모종을 게다 끝으로 짓질러 버리고 방천 너머로 뛰어 넘어갔다. 약간 속이 시원하였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아버지에 대한 반항의 객관적 표현이다.

아버지는 화가 치밀어서 담뱃대 꼭지를 돌 위에 탁탁 두드려 담뱃재를 털어 버리고 삽을 쥐고 밖으로 나갔다. 방천을 절반쯤 올라가다가 호룡영감은 깜짝 놀라며 발을 멈췄다. 댑싸리가 세 모종이 넘어져 있고 호박모가 한 모종이 짓밟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이거 어느 연놈이 이렇게 했나 개돼지 같은 간나 스나 당장 벼락을 맞어 죽어라.”

호룡영감은 입에 담지 못할 악설을 퍼부으면서 댑싸리를 도로 심고 호박모를 호박덕에 다시 매어 주었다.

보기만 했더면 손모가지를 도끼로 찍어 버려 줄걸…….”

아버지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방천을 넘어갔다. 바지를 신다리까지 걷고 강물에 들어선 호룡영감은 삽으로 물모래를 떠서 한군데 모으기 시작한다.

뒷마을 높은 어떤 부자가 한 평에 팔십 전씩 사가지고 매립하는데 우차를 사용하면 한 평에 모래를 열 수레를 넣어야 한다. 한 수레에 이십팔 전씩이래도 열 수레에 이 원 팔십 전이다. 영리한 부자는 명안을 생각하여 내었다. 마을 부인네들에게 한 하코(상자)에 팔 전씩 주고 모래를 함지박에 이우게 하였다. 스무 하코면 훌륭히 땅 한 평을 매립할 수가 있다. 스무 하코라도 이팔에 십육, 일 원 육십 전이니 이 얼마나 이익인가!

마을 부인네들은 좋은 돈벌이가 생겼다고 첫새벽부터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가지고 함지박을 이고 늪가로 몰려들었다. 경덕 어머니라고 그 축에서 빠질 리가 없었다. 아니 맨 먼저 참가하였다. 부지런히 이어 나르면 하루에 여덟 하코는 할 수가 있다. 육십사 전 벌이다. 이리하여 나중에는 중류 가정 부인들까지 참가하게 되었다.

호룡영감은 아내가 모래를 축들보다 빨리 나르게 하느라고 짬만 있으면 강에 나가서 모래를 한군데다 쌓았다. 이렇게 하면 이어 나르는 데 빠르기도 하려니와 물이 씐 모래는 물모래보다 훨씬 가볍고 의복을 말지 않았다.

H부 건설과 화학공장의 설치, 여기에 따르는 기하급수적 인구의 증가, 신흥도시 기분에 춤추는 호경기 따라 건축열이 팽창하여진 작금에는 이런 매립공사는 계속하여 얼마든지 있었다. 이것이 방천 밑 부락민의 생활을 어느 정도까지 도와 주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팅팅 불은 젖통을 드러내 놓고 땀을 철철 흘리면서 맨발로 모래를 이어 나르는 부인네들에게는 절박한 생활에 대한 불안 외에는 아무 기쁨도 없었다.

호룡영감이 모래를 작은 무덤만큼 쌓았을 때다. 허리가 부러지는 듯이 아파서 삽을 지팡이삼아 짚고 허리를 펴면서 무심히 집 쪽을 바라보았을 때다. 바로 댑싸리밭이라고 짐작되는 방천 아래로 일본말 한 필이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호룡영감은 곱이 낀 눈을 비비고 나서 뒷집 황철나무를 보고 말이 내려간 지점을 짐작하여 보니 틀림없는 댑싸리밭이다.

호룡영감은 이거 큰일났다고 삽을 끌고 방천 위에 올라서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키가 구 척이나 되는 말이 댑싸리밭에 들어서서 댑싸리순을 막 잘라 먹고 있다.

저런…….”

호룡영감은 삽을 메고 숨차게 달려가더니 다짜고짜로 삽으로 말 엉덩이를 멋들어지게 갈겼다.

이 못된 간나 말아.”

호룡영감이 모로 서서 갈겼으니 말이지 만약 정면으로 서 갈겼다면 말이 후다닥 뛰는 통에 뒷발굽에 채서 그냥 어디가 부러지든지 공동묘지로 가든지 하였을 것이다. 놀란 말은 뛰어서 방천 위로 올라갔다.

영감.”

방천 위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승마복에 도리우치모(사냥모자)를 눌러 쓴 중년 신사가 넋나간 소리를 치면서 일어섰다. 곁에 누웠던 승냥이 같은 셰퍼드 견이 주인을 따라 일어나서 호룡영감을 노려보고 섰다.

이 썅간나 말아.”

호룡영감은 자기를 원망스러운 듯이 바라보고 섰는 말을 이렇게 욕하면서 때릴 양으로 삽을 둘러메었다. 말은 놀라서 방천 너머로 뛰어 넘어갔다.

영감.”

승마복 입은 신사가 하세게 소리를 치면서 호룡영감 곁으로 나아왔다.

저기 당신 말이오?”

호룡영감은 신사의 곁에 바싹 나아서면서 언치를 건다. 또 무슨 벼락이 떨어지고야 말 듯한 호룡영감의 거동이다.

왜 그로오. 내가 말 임자요.”

신사도 어지간히 약이 오른 모양이다.

남의 댑싸리밭을 저렇게 맨들어 놓았으니 어떡헐 테요?”

댑싸리가 한 이십 모종이 말굽에 짓밟혀서 아주 볼 형편이 없게 드러누웠다.

남의 댑싸리밭? 방천에 난 풀을 말이 밟었는데 댑싸리밭이란 무슨 말이오.”

신사는 태연스럽게 말한다. 셰퍼드 견은 점잖게 앉아서 호룡영감의 거동만 쏘아보고 있다.

방천에 난 풀? 이놈 저기 내 밭이다.”

호룡영감은 호령을 한다.

이놈이라니 이 영감이 정신이 빠졌나…….”

신사도 눈을 부릅뜬다.

이놈 무에 어째? 안 된다. 댑싸릿값을 내라.”

호룡영감이 신사의 양복 앞섶을 쥐려고 팔을 내민 순간이었다. 잠자코 앉았던 셰퍼드가 주인의 위기를 감지하였는지 비호같이 뛰어들더니 호룡영감의 왼쪽 넓적다리를 물었다.

아이규…….”

호룡영감은 넓적다리를 껴안으면서 그 자리에 푹 꼬꾸라졌다.

아 영감 어디 봅세다.”

신사는 황황히 호룡영감의 바지를 걷고 본다. 한 줄에 네 군데씩 두 줄로 개 이가 박혔던 자리에서 검붉은 피가 눈물만큼씩 내밀었다.

아이구 이놈…….”

호룡영감은 단말마적 비명을 지른다. 이 비명에 놀란 집에서는 아내와 아들이 밥술을 내던지고 뛰어나왔다. 경덕은 신사와 한바탕 싸울 결심을 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방천으로 뛰어올라갔다.

!”

경덕은 신사를 정면으로 대하였을 때 깜짝 놀라면서,

주인님이시오.”

하고 각별하게 인사를 하였다. 승마 신사는 T백화점 주인이었다. 자주 주인 집으로 심부름을 다녀서 낯익은 셰퍼드는 경덕을 보더니 꼬리를 저으면서 경덕의 다리 살에다 몸을 비빈다. 그것은 마치 잘못하였다고 사죄하는 듯한 모양이다.

너의 아버지냐?”

신사도 손수건으로 손과 입술을 닦으면서 경덕에게 묻는다.

.”

그때야 비로소 신사도 모자를 벗어 쥐고 호룡영감에게 미안한 인사를 드린다.

자기 아들 상점 주인인 줄 알자 호룡영감은 아들의 어깨를 붙잡고 일어섰다.

이거 참 미안하외다. 나는 경덕이가 주인인 줄은 모르구 실례갔수다.”

호룡영감의 노기와 비명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그 그림자조차 찾아 보기 어렵게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물린 자리가 아프오?”

좀 아프기는 하나 괜찮수다. 우리 최문집은 옛적부터 개독을 타지 않는 집안이우.”

이렇게 말하고 나자 호룡영감은 실없는 소리를 하였구나 하고 가늘게 후회했다.

참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신사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돌아서서 포켓 속에 손을 찌르고 무엇을 뒤적거리더니 경덕에게,

야 경덕아, 이것으로 아버지에게 약을 사드려라.”

신사는 일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주었다.

왜 그러시우 그만두시우.”

어머니가 몸을 쪼그리고 서서 말린다.

쌍개면 독이 있겠지만 서양개니까 독은 없을 것입니다만…….”

신사는 세 사람의 인사를 귓등으로 흘려 버리면서 바삐 말을 뛰어 가버렸다.

그 돈을 이리 보내라.”

신사가 떠나자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돈 이 원을 찾았다.

호룡영감은 아내를 시켜 물린 자리를 자꾸만 빨리었다. 그러나 피는 나오지를 않았다.

호룡영감은 아내에게 돈 이 전을 주어서 장마당에 가서 가지를 사오게 하였다. 개독을 치는 데는 가지가 명약이라는 이야기를 전부터 들어 두었던 것이다. 호룡영감은 물린 자리에다가 가지를 쓸어서 붙이고 점심때나 되어서 국수 한 그릇을 사다가 물치에서 파낸 산 지렁이를 십여 마리를 넣어서 눈을 꼭 감고 국수와 함께 먹었다. 개한테 물린 데는 산 지렁이도 명약이다. 하여튼 호룡영감은 돈 들지 않는 약으로 개독을 제거하려는 심산이다. 그리고 석양에 신사에게서 받은 돈 이 원으로 감자를 너 말을 샀다. 너 말이면 엿새는 그럭저럭 살 수가 있었다.

 

5

경덕이가 T백화점을 쫓겨난 것은 바로 이 사건이 있은 엿새 후 석양이다.

이유는 이러하다.

T백화점 주인의 아들 창수는 십칠 세(경덕은 십육 세)의 소년 난봉꾼이다. 공부하기가 죽기보다 더 싫어서 학교도 보통학교 삼학년까지 가고는 안 다니고 지금은 술 먹고 담배 피우고 극장에만 다니는 아이다. 사람질을 하기는 꿈에도 틀린 아들을 아버지는 문제 밖으로 쳤다. 밉다고 아들에게는 귀떨어진 돈 일 전 한푼 주지를 않고 그의 자유를 구속하였다.

돈을 쓸 데는 많고 주지도 않고 하니 최후의 수단을 피운 것이 상점 점원들을 얼러 가지고 값 많은 물건을 훔쳐 내는 것이었다. 그날 점심때다.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 상점으로 온 창수는 경덕에게 아버지가 오늘 저녁차로 경성으로 여행을 가는데 제일 좋은 트렁크를 하나 가져오란다고 능청을 부렸다.

경덕은 창수의 습성을 아는지라 모르겠다고 머리를 내흔들었다. 창수는 눈을 붉히면서 경덕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콱콱 찔러 주기도 하였다. 그래도 경덕은 창수의 요구를 끝까지 거절하였다. 창수는 경덕을 어르다 못해 최후의 일계를 꾸몄다. 트렁크를 가지고 함께 아버지 있는 데까지 가자는 것이다. 경덕의 입장에 있어서 이 요구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경덕은 십팔 원 오십 전 레테르가 붙은 악어껍질 트렁크를 쥐고 창수를 따라 상점을 나섰다. 창수는 좁은 골목길로만 경덕을 데리고 갔다.

어디루 가니?”

숨막힐 듯한 좁은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경덕은 가슴이 울렁거려나서 이렇게 물었다.

가방을 여게 보내라, 그러구 너는 상점으로 가거라.”

창수는 재미성 없는 얼굴에다 쓴웃음을 띄우면서 트렁크를 빼앗으려고 하였다.

안 된다. 너 아버지 있는 데까지 가자.”

경덕은 트렁크를 가슴에 부둥켜안았다.

안 놓겠니이? 간나 새끼 죽여 치운다.”

창수의 이 말과 동시에 그의 주먹이 경덕의 오른쪽 볼따구니를 쥐어박았다.

아구.”

경덕은 트렁크를 놓고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버렸다. 그 사이에 창수는 트렁크를 쥐고 삼십육계를 놓아 버렸다. 경덕은 한참 엉엉 느끼면서 울다가 상점으로 갔다.

이 사실을 오후 세시나 되어서 경덕은 주인에게 고백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경덕을 창수와 공모하였다고 몰았다. 경덕은 울면서 그렇지 않다고 백번 천번 자기의 결백함을 발명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너무나 무자비하게도 경덕의 고백을 짓밟아 버리고 그 위에 불량 점원의 레테르를 붙여서 경덕을 그 즉시로 쫓아냈다.

집에 돌아와서 울면서 자기의 억울함을 말하는 아들의 말을 듣고 누웠던 호룡영감은 비호같이 자리에 일어나 앉으면서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저 죽일놈이 제 아들놈이 패가잔 줄은 모르구 죄 없는 내 아들을 쫓어냈겠다. 이놈 어디 보자.”

호룡영감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 왜 이러오.”

경덕이가 아버지의 바지 뒤에 매달렸다.

이거 놓아라. 내 그놈에게 가서 한바탕 해대구 그 길로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맡어 가지구 오겠다.”

호룡영감의 오장육부는 푸득푸득 뛰었다.

글쎄 그만두오.”

아내가 한사코 말린다.

호룡영감은 한참 발악을 쓰다가 기진하여 도로 자리에 누웠다. 누워서 T백화점 주인을 죽일놈 살릴놈 하고 저녁때까지 욕질하였다.

호룡영감은 개에게 물린 이튿날부터 지팡이를 짚고 댑싸리, 호박모 시종을 하였다. 물린 자리가 띠금띠금 쏘고 아픈 것도 꾹 참고 욕심이 나서 일을 하였다. 그러다가 경덕이가 백화점을 쫓겨난 이틀 전날 아침부터 물린 자리가 팅팅 부어오르고 몸에 열이 생겨서 할 수 없이 자리에 누웠다. 이 소문을 들은 동리 영감네들이 마을 돌이삼아 문병을 왔다.

개한테 물린 데는 그 개의 간이 약이지, 약이 없은면다.”

늙은 문병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 개를 잡아 간을 내어 먹으라고 호룡영감에게 타일러 주었다. 호룡영감도 그럴듯이 보이던 상처가 다시 부어오르고 몸에 열까지 떠오르게 되니 어지간히 겁이 생겼다. T백화점 주인놈의 분풀이도 할 겸 호룡영감은 그 개의 간을 먹을 결심을 하였다.

경덕이가 백화점을 쫓겨난 사흘 후 아침에 호룡영감은 아들을 머리맡에 불러 앉혔다.

경덕아, 네 애비는 아마 죽을 것 같다.”

호룡영감은 아들을 겁먹일 작정으로 이렇게 무서운 말을 하였다. 과연 그 말은 효과가 있었다. 어린 아들은 죽는다는 말을 듣고 낯색을 흐리면서 눈을 크게 떴다.

이 병을 고치는 데는 단 한 가지 약뿐이다.”

호룡영감의 능청스러운 말이다.

무슨 약이오?”

내 다리를 문 개를 잡아서 그 간을 먹어야 낫는단다.”

그 개를 주인이 칠십 원에 샀다는데…….”

이놈, 개만 크구 애비 죽는 것은 무섭지 않으냐. 불효막대한 놈 같으니…… 이놈 내 이야기를 들어 봐라.”

호룡영감은 옛날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효성하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려 주었다. 문병을 온 늙은 영감네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식이 하는 도리라고 경덕에게 타일러 주었다.

경덕은 무에가 무엔지 정신이 어리둥절하여져서 선악을 판단할 수 가 없었다. 개 간을 먹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는다는 말이 제일 따가웠고 동시에 그의 마음에다 그렇게 하기를 강요하였다. 개와 아버지를 비교하여 보면 물론 아버지가 더 중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는 것보다 개가 죽는 것이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경덕은 암만 생각하여 보아도 아버지를 살리고 효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경덕은 입술을 악물어 맹세하였다.

석양에 경덕은 무서움에 뛰노는 가슴을 내리누르면서 T백화점 주인네 집 앞에 갔다. 대문짬으로 몇 번이나 정원을 살펴보았으나 (개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루 갔을까?’

경덕은 가시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마음이 짜릿짜릿하였다. 그만 갈까 하고도 생각하여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으면 나는 혼자다…….

경덕은 이렇게 공상을 하면서 주인 첩의 집으로 갔다.

퐁은 첩의 집 마당에 누워 있었다.

경덕은 조그만 흙덩이를 주워서 퐁을 향하여 던졌다. 자던 퐁이 놀라 머리를 들고 사방을 살피다가 대문 밖에 섰는 경덕을 보더니 슬렁슬렁 뛰어나왔다. 그리고는 하도 만나 본 지가 오래라는 듯이 훌쩍훌쩍 뛰면서 경덕에게 희롱을 붙였다. 퐁은 경덕을 따라왔다.

경덕은 퐁을 데리고 사람 없는 좁은 골목길로만 들어섰다. 그러다가 곱장영감네 옆길을 빠져서 방천 위에 올라섰을 때 경덕은 웬일인지 갑자기 애수와 불안의 습격을 받았다. 퐁이 뼈가 저리도록 가엾어났다. 몇 분 후에 죽는다는 줄도 모르고 자기들 주인 대신 튼튼히 믿고 따라오는 퐁을 볼 때 무서운 생각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어디서 누가 이 기미를 알고 자기를 뒤쫓아오는 듯한 제 육감에 찔리기도 하였다. 경덕은 걸을 수가 없어서 풀밭에 맥없이 앉았다. 퐁도 앉았다. 경덕은 퐁의 기름기 도는 등을 부드러운 손으로 어루만져 주었다.

퐁 너는 죽는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살려야겠다.’

경덕의 두 눈에서 어느덧 뜨거운 눈물이 두 볼따구니를 쭉 흘렀다. 퐁은 경덕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살그머니 경덕의 볼따구니의 눈물을 싹싹 핥아 주었다.

경덕은 자기 혀를 빼어 들었다. 퐁은 조심스럽게 경덕의 혀를 핥아 주었다. 경덕은 퐁의 등에다 손을 올려놓은 채 눈물어린 눈으로 물마른 S강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호하고 한숨을 내뿜고 일어났다. 집이 가까이 보일수록 경덕의 마음은 쪼그라지고 가슴은 푸덕푸덕 뛰놀았다. 경덕이가 퐁을 데리고 자기 집 마당에 들어갔을 때에는 토마루에 늙은이 세 분이 앉아 있고 뒷마을 우차꾼 춘만이가 숫돌에다 식칼을 썩썩 갈고 있었다.

욕봤군.”

경덕을 칭찬하는 늙은이도 있다. 퐁은 눈치 차렸는지 밖으로 뛰어나갔다. 경덕은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호령에 할 수 없이 따라 나가서 귀를 끌고 들어왔다.

경덕은 자기 아버지와 모든 사람이 미워났다. 모두가 자기와는 다른 악독한 사람들같이 보였다. 소리쳐 울고 싶은 생각이 나고 분하기가 짝이 없었다. 경덕은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춘만이가 시키는 대로 머리털로 짠 밧줄을 올콩하여 퐁의 목에다 걸었다. 춘만은 밧줄 한쪽끝을 대문 아래 구멍으로 밖에 내밀고 밖에 나가서 대문을 단단히 잠갔다. 그리고 밖에서 밧줄을 잡아당겼다. 퐁은 끌려서 점점 대문 밑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살려 달라는 듯이 경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둥을 붙들고 눈물만 뚝뚝 떨구던 경덕은 퐁이 비명을 지르면서 물똥을 갈기는 것을 보자 뒷문을 나가 수숫대 바자 구멍을 빠져 미친 사람처럼 방천 위를 달렸다. 언제까지든지 퐁의 비명이 귀에 들려 왔다.

퐁을 먹구 모두 죽어라, 모두 죽어라.”

이렇게 선소리를 치면서 방천 위를 달렸다.

이날 밤 늦게까지 호룡영감네 집에서는 술취한 영감네들의 요란스러운 이야깃소리가 들렸다. 한잔 마신 김에 노래를 부르는 늙은이도 있다. 노래가 끝나고 영감네들이 헤어져 가고 새벽이 되어도 경덕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도 개고기를 많이 먹이자고 늙은 부모는 눈이 빠지게 기다렸으나 경덕은 돌아오지를 않았다.

집을 뛰어나간 경덕은 그날 밤 동무의 집에서 자고 그 이튿날 아침에 T백화점 주인네 집 동정을 살피려고 주인네 집 대문 앞을 어름어름하다가 주인의 아들 창수에게 붙잡혀서 귀통을 한 개 얻어맞고 모든 것을 자백하였던 것이다.

출전:조선문학속간7(19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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