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마을 사람들
학마을 사람들
이범선
자동찻길에 가재도 오르는 데 십 리, 내리는 데 십 리라는 영(嶺)을 구름을 뚫고 넘어, 또 그 밑의 골짜기를 삼십 리 더듬어 나가야 하는 마을이었다.
강원도 두메의 이 마을을 관(官)에서는 뭐라고 이름지었는지 몰라도, 그들은 자기네 곳을 학(鶴)마을이라고 불렀다.
무더기무더기 핀 진달래꽃이 분홍 무늬를 놓은 푸른 산들이 사면을 둘러싼 가운데 소복이 들어앉은 일곱 집이 이 마을의 전부였다. 영마루에서 내려다보면 꼭 새둥우리 같았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한 그루 늙은 소나무가 섰고, 그 소나무를 받들어 모시듯, 둘레에는 집집마다 울 안에 복숭아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때때로 목청을 돋우어 길게 우는 낮닭의 소리를 받아 우물가 버드나무 밑에서 애들이 부는 버들피리 소리가 ‘피리 피리 필릴리’ 영마루에까지 타고 피어올랐다.
이 학마을 이장(里長) 영감과 서당의 박 훈장(朴訓長)은, 지팡이로 턱을 괴고 영마루에 나란히 앉아 말없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둘이 다 오늘 아침, 면사무소(面事務所) 마당에서 손자들을 화물(貨物) 자동차에 실어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왜놈들은 끝내 이 두메에서까지 병정(兵丁)을 뽑아 냈던 것이다.
두 노인은 흐린 눈으로 똑같이, 저 밑에 마을 한가운데서 소나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아침부터 지금 낮이 기울도록, 삼십 리 길을 같이 걸어오면서도 거의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이윽고, 이장 영감이 지팡이와 함께 쥐었던 장죽으로, 걸터 앉은 바윗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학(鶴)이 안 온 지가 벌써 삼십 년이 넘어."
"그렇지, 올해 삼십육 년짼가?"
박 훈장은 여전히 마을을 내려다보는 채였다.
"내가 마흔넷이던 해니까, 그렇군. 꼭 서른여섯 해째구나."
이장 영감은 장죽에 담뱃가루를 담으며 한숨을 쉬었다. 또 다시, 그 느릿느릿한 잠꼬대 같은 대화마저 끊어졌다.
"꼬꼬……."
또 한 번 마을에서 닭이 울었다. 다음은 고요했다. 졸리도록 따스한 봄볕이 흰 무명 옷의 등에 간지러웠다. 이장 영감은 갓끈과 함께 흰 수염을 한 번 길게 쓸어 내렸다.
학마을. 얼마나 아름답고 포근한 마을이었노.
이장 영감은 어느 새 황소 같은 떠꺼머리총각으로 돌아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톳불을 돌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옛날, 학마을에는 해마다 봄이 되면 한 쌍의 학이 찾아오곤 했었다. 언제부터 학이 이 마을을 찾아오기 시작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올해 여든인 이장 영감이 아직 나기 전부터라 했다. 또, 그의 아버지가 나기도 더 전부터라 했다.
씨 뿌리기 시작할 바로 전에, 학은 꼭 찾아오곤 했었다. 그러고는 정해 두고 마을 한가운데 서 있는 노송(老松) 위에 집을 틀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노송을 학 나무라고 불렀다.
학이 돌아온 날은 학마을의 가장 큰 잔칫날이었다. [학나무 밑에선 호기롭게 떡을 쳤다. 서당에선 어른들이 모여 앉아 술상을 앞에 놓고 길고 느린 노래를 흥얼흥얼 하였다. 그러나 가장 즐겁기는 젊은이들이었다. 이 마을 젊은이들이 마음놓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날은 이날뿐이었다. 그 외에는 혼인 자치에서까지도 젊은이들은 술을 마셔서는 아니된다는 것이 이 학마을의 율법이었다.] 그 날은 밤이 깊도록 학 나무 밑에 화톳불이 이글이글 탔다. [아직 추운 삼월이라] 불가에 둘러앉은 젊은이들은 막걸리를 사발로 마구 들이켰다. 그러면 마을 처녀들은 이렇게 마셔 대는 막걸리와 안주를 떨어지지 않게 날라야 했다. 그런 때면, 그 처녀가 화톳불을 싸고 빙 둘러앉은 청년들 중 누구의 어깨 너머로 술이나 안주를 넘겨 놓는가가 문제였다. 처녀가 술이나 안주를 누구의 어깨 너머로 살짝 넘겨 놓으면, 그 때마다 일제히 ‘와’하고 함성을 올렸다. 술에 단 젊은이들의 검붉은 얼굴들이 와그르르 웃으면, 처녀들은 불빛에 빨가니 단 얼굴을 획 돌려 치마폭에 쌌다. 그 때, 탄실이는 꼭 억쇠----지금의 이장 영감의 어깨 너머로 듬뿍듬뿍 안주를 날라다 놓곤 하였다. 그러면 또, ‘와와’ 함성을 올렸다. 억쇠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탄실이는 긴 머리채를 흔들며 달아나면서도 억쇠를 향하여 눈을 흘기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억쇠는 그저 즐거웠다.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억쇠는 일어나 춤을 추었다. 젓가락으로 두들기는 사발 장단에 맞추어 덩실덩실 돌았다. 어느해엔가는 잔뜩 취하여 잠방이 띠가 풀린 것도 모르고 춤을 추다 웃음판에 그대로 나가넘어진 일도 있었다.
학으로 하여 즐거운 이야기는 마을 처녀들에게도 있었다. 처녀들도 역시 학이 좋았다.
그네들은 물을 길으러 박우물로 갔다. 그러자면 꼭 학 나무 밑을 지나가야 했다. 그런데 어쩌다 학의 똥이 처녀들의 물동이에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그 처녀는 그 해 안에 시집을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이 찬 처녀들은 물동이를 이고 학 나무 밑을 거닐 때면 걸음걸이가 더욱 의젓하였다. 한 해에 한둘은 꼭 물동이에 학의 똥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틀림없이 그 해 안에 시집을 가곤 하였다.
탄실이가 시집을 가던 해에도 그랬다. 물방앗간 옆 대추나무 밑에서 자근자근 빨간 댕기를 씹으며,
"학이……."
하고 탄실이가 고개를 숙였을 때, 억쇠는 구름 사이 으스름 달을 쳐다보았다. 탄실이는 이미 아버지가 정해 놓은 곳이 있었다. 한참만에 억쇠는 탄실이의 보동한 손목을 꽉 붙들었다. 그들은 그 길로 영을 넘었다. 호 호, 호 호……. 길가 나무 꼭대기에서 부엉새가 울었다. 그래도 억쇠의 굵은 팔에 안겨 걷는 탄실이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집을 가는 게 아니래서였던지 다음날 아침 그들은 탄실이 아버지한테 붙들리어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그 가을에 탄실이는 울며, 단풍 든 영을 넘어 이웃 마을로 시집을 가고 말았고, 다음 해부터는 학날이 와도 억쇠는 춤을 추지 않았다.
"학이 안 오던 그 핸 가물도 심하더니."/ "허 참, 나라가 망하던 판에 오죽해."/ 이장 영감은 장죽과 쌈지를 옆의 박 훈장에게 건네 주었다.
이장이 마흔네 살이 되던 해였다.
씨 뿌릴 준비를 다 해놓고 마을 사람들은 학을 기다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계절(季節)이 다 늦도록 학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하는 수 없어, 학 없이 씨를 뿌렸다. 가뭄이 들었다. 봄내, 여름내 비 한 방울 안 왔다. 모든 곡식은 바삭바삭 말라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헛되이 학 나무만 쳐다보았다. 학 나무에는 지난 해에 틀었던 학의 둥우리만이 빈 채 달려 있었다.
’학만 있었으면.’
마을 사람들은 여느 해에 그렇게도 영험하던 학의 생각이 몹시도 간절하였다. 이런 때면 학은 늘 하늘과 그들 사이에 있어 주었었다. 가뭄이 들어도 그들은 학 나무를 쳐다보았다. 그러면 학이 그 긴 주둥이를 하늘로 곧추고 ‘비오…, 비오….’ 울어 고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또 하늘은 꼭 비를 주시곤 했다. 장마가 져도 그들은 또 학을 쳐다보았다. 이번엔 학이 ‘가, 가’ 길게 울어 주기만 하면, 비는 곧 가시는 것이었다. 바람이 불 것도 그들은 미리 알 수 있었다. 학이 삭은 나뭇가지를 자꾸 둥우리로 물어 올리면 그들은 곡식을 빨리빨리 거둬들여야 했다.
그러던 그들은, 학이 없던 그 해, 그렇게 가뭄이 심해도 어떻게 하늘에 고해 볼 길이 없었다. 저녁때 들에서 돌아오다가는 빨간 놀을 등에 지고 그림자처럼 조용히 서서, 빤히, 석양을 받은 학의 빈 둥우리를 오랜 버릇으로 한참씩 쳐다보고 섰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리던 비 대신 기막힌 소문이 날아 들어왔다. 왜놈들이 우리 나라를 빼앗으러 나왔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며칠 동안 김을 맬 생각도 않고 학 나무 밑에 모여 앉아 멍히 맞은편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또 한 겹 더 겹쳐, 마을 안에 열병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한 집 두 집, 꼭 젊은 일꾼들이 앓아 누웠다. 거의 날마다 곡소리가 들렸다. 학마을은 그대로 무덤이었다.
다음 해 봄에도, 또 다음 해 봄에도 학은 돌아오지 않았고, 흉년만 계속되었다. 그러자 이제 학이 버리고 간 이 학마을에서는 살 수 없으리라는 말이 누구의 입에서부터인지 퍼져 나왔다.
한 집이 떠났다. 또, 한 집이 떠났다.
그들은 영마루에서 서서 한참씩 학 나무를 내려다보다가는, 드디어 산을 넘어 어디론지 떠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근 이십 가구나 되던 마을이 겨우 일곱 집만 남았다.
그 동안 이장 영감도 몇 번이나 밖으로 나가 살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번번이 그는 이 학마을을 버리지 못했다. 무쇠 같은 그의 가슴에 첫사랑이 뻘겋게 달아오르던 곳이라서만은 아니었다. 그저 어쩐지 이 학마을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빈 둥우리나마 아직 남아 있는 학 나무 밑을 떠나서 왜놈들이 들끓는 마당에 어딜 가면 살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에서였다. 남아 있는 딴 사람들도 그랬다. /학은 오지 않고 이름만 남은 학마을은 말 할 수 없이 고달팠다. /그래도 해마다 봄은 찾아 왔다.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타기 시작하면 그들은 양지쪽에 앉아 수숫대로 바자를 엮으며 어린 것들에게 가지가지 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어린애들에게는 그건 해마다 들어도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야기하는 어른들에게는 그건 슬픈 추억이었고, 또 봄마다 속아 벌써 삼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끝내 아주 버릴 수는 없는 희망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학이 어딜 갔을까?"
"알 수 없지."
"살아 있기는 살아 있을까?"
"학은 장생 불사(長生不死)라지 않아?"
"장생 불사."
이장 영감은 또 한 번 천천히 수염을 내리쓸다 그 끝을 쥐고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쾡 쾡, 쾡 쾡, 쾡 쾡, 쾡 쾡."
바로 그 때였다. 저 밑에 마을에서 꽹과리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 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신호(信號)였다.
이장 영감은 벌떡 일어섰다. 박 훈장도 담뱃대를 털며 따라 일어섰다. 그대로 꽹과리 소리는 울려 올라왔다. 잠든 듯 고요하던 마을에 새까만 사람의 그림자들이 왔다갔다하였다. 이장 영감은 눈에다 힘을 주고 마을을 살피고 있었다.
"학이다……. 학이다."
이장 영감은 힐끔 뒤의 박 훈장을 돌아보았다. 박 훈장도 이장 영감을 마주 보았다.
"학이다……. 학이다."
아직 메아리가 길게 꼬리를 떨고 있었다. 둘이 다 분명히 들었다. 그러나 둘이 다 똑같이 자기의 귀에 자신이 없었다. 쾡,쾡,쾡,쾡, 괭과리 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들은 얼른 손을 펴 갓양에 가져다 대었다. 하늘을 살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그 흐린 눈을 비비고 크게 떠도 그저 저만큼 둥실 흰 구름이 한점 보일 뿐, 학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번 더 눈을 비볐다. 그래도 역시 학은 없었다. 그저 흰 수염만이 그들의 턱에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날, 과연 학은 마을에 들어와 있었다. 영을 내려와 비로소 학이 돌아온 것을 본 이장 영감과 박 훈장은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
"왔다, 정말 왔어. 으흐흐."
"영감, 이게 꿈은 아니지, 응? 이장 영감, 꿈은 아니지? 으흐흐."
이장 영감과 박 훈장은 갓이 뒤로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고개를 젖혀 학 나무 꼭대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쓱 치켜든 긴 주둥이, 이마의 빨간 점, 늘씬히 내뺀 목, 눈처럼 흰 깃, 꼬리께 까만 깃에서는 안개가 피었다. 한 마리는 슬쩍 한 다리를 ㄴ자로 구부리고 섰고, 또 한 마리는 그 윗가지에서 길게 목을 빼고 두룩두룩 마을을 살펴보고 있었다.
옛날 본 그 학이었다. 꼭 그대로였다. 그들은 자꾸자꾸 솟아 나오는 눈물을 몇 번이나 손등으로 닦았다.
이장 영감과 박 훈장 뒤에 둘러선 마을 사람들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 괴여 있었다. 어린애들은 눈앞에 정말 살아 나타난 옛이야기가 그저 신비(神秘)스럽기만 했다.
"이젠 살았다."
"이제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게다."
"용하게 마을을 지켰지. 참, 몇십 년이고."
그들은 무엇인지 모르는 대로, 그저 그 어떤 커다란 희망에 가슴이 뿌듯했다.
학은 부지런히 집을 틀기 시작하였다.
유유히 마을 안을 날아 도는 학을 보면, 밭에서, 산에서 우물가에서 어디서든지 마을 사람들은 한참씩 일손을 멈추는 것이었다.
올감자 철이 되자, 학은 먹이를 잡아 물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새끼를 깐 것이다.
이젠 또, 둘만 앉으면 그저 학의 새끼 이야기였다. 학이 새끼를 까면 그 해에는 풍년(豊年)이 든다는 것이었다. 두 마리면 평년, 한 마리면 흉년./ 두 마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분명히 세 마리가 가지런히 둥우리 속에 턱을 올려놓고 어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노라는 아낙네도 있었다. 또 밭의 곡식이 된 품으로 미루어 틀림없이 세 마릴 거라고 떠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가만히 듣고 앉았던 노인들은, / "어, 그 바쁘기도 하지. 이제 새끼들이 좀더 커서 머리가 밖으로 나오기 전에야 누가 아노?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하고 웃는 것이었다.
올감자 철이 지나고 참외와 옥수수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학의 새끼는 이제, 제법 ‘짝짝’ 둥우리 속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는 어미학이 긴 주둥이 끝에 먹이를 물고 돌아와 두 날개를 위로 쓱 쳐들며 흠씰 가지에 와 닿으면, 다투어 조그마한 주둥이들을 벌리고 ‘짝짝’ 목을 길게 둥우리 밖에까지 빼내는 것이었다.
분명히 세 마리였다.
틀림없이 풍년일 거라 했다.
가뭄도 장마도 안 들었다. 논과 밭에는 오곡(五穀)이 무럭무럭 자랐다. 과연 그 해는 대풍(大豊)이었다. 앞들에서 김매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 뒷산에서 나무하는 애놈들이 제법 그 다음을 받아넘겼다. 한창 더위도 그 고비를 넘었다. 이젠 익기를 기다려 거둬들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봄에 왜놈들에게 병정으로 끌려나갔던 이장네 손자 덕이와 박 훈장네 손자 바우가, 커다란 왜병의 옷을 그냥 입은 채 마을로 돌아왔다.
"아, 우리 나라가 독립을 했어요, 독립을. 그걸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이장 영감과 박 훈장은 각각 손자들의 거센 손을 붙잡고, 또 엉엉 울었다. 내 나라를 도로 찾았대서인지, 죽었으리라고 생각했던 손자가 돌아왔대서인지, 그것조차 분간할 수 없는 기쁨이 그저 범벅이 되어 자꾸 눈물만 흘러내렸다.
학마을은 한껏 즐겁고 풍성하였다. 집집이 낟가리가 높이 솟았다.
앞뒷산에 단풍이 빨갛게 타올랐다. 하늘은 아득히 높아졌다. 학은 세 마리 새깨들에게 날기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둥우리 기슭에 나란히 올라선 새끼학들은 어미에게 비하여 그 모양이 몹시 초라하였다. 마을 애들은 웃었다. 그러면 어른들은 곧잘 학의 편이 되어 양반의 새끼는 어려선 미운 법이라 했다. 어미학이 둥우리 바로 윗가지에 올라서서 뭐라고 길게 한번 소리를 지르자 세 마리 새끼학은 일제히 둥우리를 걷어차고 날아갔다. 그러나 처음으로 펴 보는 날개는 잘 말을 듣지 않았다. 퍼덕퍼덕 날개는 첬으나 그건 난다기보다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한 마리는 학 나무 밑 마당에, 한 마리는 이장네 지붕 위에, 또 한 마리는 제법 멀리 밭 모서리에 선 뽕나무 위에 가 내렸다. 이렇게 그들은 날마다 나는 연습을 했다. 조금씩 조금씩 그 날아가 앉는 곳이 멀어져 갔다. 어제는 우물가에까지 날았었다. 오늘은 저 동구의 물방앗간까지 날았다. 또 오늘은 그 앞 못(池)께가지 날았는데, 자칫하면 물에 빠질 뻔했다. 마을 사람들은 마치 자기네 어린이의 재롱을 사랑하듯 하였다. 드디어 그들은 저 들 건너편 낭에 쓱 옆으로 솟아나온 소나무 위에까지 힘들지 않게 날았다. 이젠 모양도 한결 또렷또렷해졌다. 한 달쯤 되자 제법 어미들을 따라 보기좋게 마을 위를 빙빙 날아 돌았다. 어쩌다가 날개를 쭉 펴고 다섯 마리의 학이 한 줄로 휘 마을을 싸고도는 모양은 시원스러웠다. 9월 하순 어느날 새벽이었다. 학이 여느날과 달리 요란스레 울었다. 이장 영감은 잠결에 그 소리를 듣고 펄떡 일어났다. 그는 그게 무슨 뜻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꽹과리를 쳤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학 나무 둘레에 모였다. 다섯 마리의 학은 가장 높은 가지 위에 가지런히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이제는 그 긴 다리 색이 어미들보다 약간 노란 기운이 도는 것을 표해 보지 않고는 어미학과 새끼학들을 알아낼 수 없을 만큼 컸다. 해가 떴다. 이윽고 그들은 긴 목을 쑥 빼고 뾰족한 주둥이를 하늘로 곧추 올렸다. 맨 큰 학이 두 날개를 기지개를 펴듯 위로 들어올리며 슬쩍 다리를 꾸부렸다 하자 삐이르 긴 소리를 지르며 흠씰 가지에서 푸른 하늘로 솟아 올랐다. 그러자 다음 다음 다음 다음 차례로 뒤를 따랐다. 그들은 멋지게 동그라미를 그으며 마을을 돌았다. 한 바퀴 또 한 바퀴. 점점 높이 올랐다. 이젠 까마득히 하늘에 떳다. 그래도 삐르삐르 소리만은 똑똑히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꺾어져라 목을 뒤로 젖혔다. 두 손을 펴서 이마에 가져다 햇볕을 가리고 한없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반짝반짝 다섯 개의 은빛 점이 한 줄로 늘어섰다. 마지막 바퀴를 돌고 난 학들은 그리던 동그라미를 풀며 방향을 앞으로 잡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점이 하나씩 하나씩 남쪽 영마루를 넘어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한참이나 그대로 말없이 그 학들이 사라진 곳을 쏘아보고들 서 있었다.
다음 해 봄에도 학이 돌아왔다. 세 마리 새끼를 쳤다. 또, 풍년이었다. 또, 다음 해 봄에도 학은 왔다. 이번엔 두 마리를 쳤다. 평년이었다.
그 해 가을엔 이장네 손자 덕이가 장가를 들었다. 신부는 바로 이웃에 사는 봉네였다. 덕이는 어려서부터 봉네가 좋았다. 그러기에, 옥수수 같은 것을 꺾어 나눠 먹을 때면 으레 큰 쪽을 봉네에게 주곤 하였다. 바우도 같이 봉네를 좋아했다. 주워 온 밤에서 왕밤만을 골라 봉네를 주곤 하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철이 들며부터 봉네는 아주 쌀쌀해졌다. 물동이를 들고 사립문을 나오다가도, 덕이를 보면 획 돌아 들어가곤 하였다. 덕이에게만 아니라 바우에게도 그런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참 이상한 애라고 웃었다.
그러던 봉네의 태도가, 그들이 왜놈한테 끌려갔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뒤에는 또 좀 달랐다. 바우더러는 "돌아왔구나."하며 웃더라는데, 덕이한테는 안 그랬다. 여전히 싸늘했다. 물을 길으러 가려면 하는 수 없이 이장네 바깥 마당 학 나무 밑을 지나야 하는 봉네는 몇 번이나 덕이와 마주쳤다. 그럴 때면, 덕이가 미처 무슨 말을 찾기도 전에 푹 고개를 수그리고, 인사는커녕 쳐다도 안 보고 획 비켜 지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덕이는 이런 봉네가 몹시도 섭섭했다.
그렇게 거의 두 해를 지내 오던 어느 날이었다. 산에 가 나무를 해 지고 내려오던 덕이는, 마을 뒤 밤나무 숲 속에서 봉네를 만났다. 이번엔 덕이편에서 먼저 못 본 체 고개를 수그리고 걸었다. 그런데 그가 바로 봉네 코앞에까지 가도 그네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덕이를 보기만 하면 얼굴을 돌리고 달아나던, 마을 안에서의 봉네와는 달랐다. 덕이는 비로소 눈을 들었다. 그제야 봉네는 한 걸음 옆으로 비켜 섰다. 여전히 덕이를 쳐다보고 있는 봉네의 눈에는 스르르 윤기가 돌았다. 덕이는 길가에 나무 지게를 벗어 놓았다.
점점 더 윤이 났다. 봉네의 눈동자 속에 푸른 하늘이 부풀어오른다 하는 순간, 따르르 눈물이 뺨으로 굴렀다.
"학이……."
옛날 학마을 처녀 탄실이가 하던 그대로의 외마디 말이었다. 봉네는 가만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무명 적삼이 젖가슴에 찢어질 듯 팽팽하였다. 덕이는 봉네의 머리에서 새크무레한 땀내를 맡았다.
이장 영감은 종일 사랑방 벽에 뒷머리를 대고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언제나 무슨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하는 그의 버릇이었다.
할아버지에게 봉네 이야기를 하고 제 뜻을 말하는 손자 덕이놈은 무턱대고 탄실이와 영을 넘던 억쇠, 자기보다 훨씬 영리한 놈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이장 영감은 봉네의 심정을 덕이보다도 먼저 눈치채고 있었다. 그와 함께 또, 바우의 봉네에게 대한 숨은 정(情)도 알고 있는 이장 영감이었다. 그래, 덕이가 봉네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듣고만 있었다.
될 수만 있다면,봉네는 딴 마을로 시집을 보내고 싶었다. 덕이, 봉네, 바우. 이장 영감에게는 그들이 다 똑같은 자기의 손자 손녀처럼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 셋 중에 누구에게도 쓰라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저녁때가 거의 되어서야 이장 영감은 가만히 눈을 떴다. 마음을 작정하였다. 봉네는 그 옛날 탄실이어서는 안된다 했다. 또 그로해서 설사 무슨 변이 있다 해도 덕이의 일생이 또 억쇠 자기의 평생처럼 텅 빈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했다.
그 가을에 덕이와 봉네의 잔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잔치 전날 밤, 바우는 마을에서 사라졌다. 그의 홀어머니도, 또 늙은 할아버지 박 훈장도 몰랐다. 그러나 이장 영감만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또, 종일(終日) 사랑방 벽에 뒷머리를 대고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 해에도 골짜기의 눈이 녹고 진달래가 피자, 학이 찾아왔다. 예전처럼 부지런히 집을 틀고 새끼를 깠다. 두 마리의 어미학은 쉴새없이 먹이를 물어 올렸다. 그 때, 두 마리 새끼가 주둥이를 내둘렀다. 올해에도 평년작(平年作)은 된다고들, 우선 흉년(凶年)을 면한 것을 기뻐했다. 그러던 어느 비 내리는 아침이었다. 학 나무 밑에 아주 어린 새끼 한 마리가 떨어져 죽어 있었다. 아직 털도 채 나지 않은 학의 새끼는 머리와 눈만이 유난히 컸다.
"허, 그 참, 흉한 일이로군."
이장 영감과 박 훈장은 몹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이 같은 일은 적어도 그들이 하는 한에서는 일찍이 없던 일이었다. 참새는 긴 장마철에 미처 먹이를 댈 수 없으면 그중 약한 제 새끼를 골라 제 주둥이로 물어 내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나 학이 그런 잔혹한 짓을 한 일을 보지 못했었다. 그건 필시 무슨 딴 짐승의 짓이라 했다. 어쨌든 그게 학 자신의 뜻에서였건, 또는 딴 짐승의 짓이건 간에 이제 이 학마을에는 반드시 무슨 참변이 있을 게라고 다들 말없는 가운데 더욱더 무거운 불안을 느끼고들 있었다.
과연 무서운 변이 마을을 흔들고야 말았다. 그 일이 있은 지 한 달도 채 못 되어서였다. 별안간 하늘이 무너지고 산이 온통 갈라지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문을 걸고 집안에 틀어박혔다. 덜덜 떨며 문틈으로 밖의 학 나무를 살폈다. 학도 둥우리 안의 들어앉아 조용하였다. 밤낮 이틀이나 온 세상을 드르릉 드르릉 흔들었다. 사흘째 되던 날부터 그 소리가 차츰 남쪽으로 멀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밖으로 나왔다. 학의 동정부터 보았다. 한 마리는 여전히 둥우리 안에 들어 새끼를 품고 앉았고, 한 마리만이 그 바로 윗가지에 한 다리를 꼬부리고 나와 있었다.
그날 저녁때였다. 마을에는 또 딴 일이 벌어졌다. 난데없이 누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북쪽 영을 넘어 마을로 들어왔다. 쉰 명도 더 넘는 그들은 모두 어깨에 총을 메고 있었다. 그들은 이 마을 사람들을 해방(解放)시키러 왔노라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 해방이란 말의 뜻을 잘 알 수 없었다.[박 훈장마저 알기는 알면서도 어딘지 잘 모를 이야기라 했다. 그렇게 그들이 하루, 마을에 머물고 남쪽으로 나가면 이어서 또 딴 패들이 밀려들어왔다. 그들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갔다. 이렇게 몇 차례를 겪고 나서야 마을 사람들은 그 아무나 보고 동무 동무 하는 북한 괴뢰군인 것을 알았고, 또 큰 싸움이 벌어진 것도 알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야 비로소 학이 새끼를 물어 내버린 뜻을 알 것 같았다. 몇 차례나 들르던 그 괴뢰군 패가 좀 뜸했다.
그런 어느 날, 박 훈장네 바우가 소문도 없이 마을로 돌아왔다. 서울서 무슨 공장엘 다니다 왔노라는 바우는, 전에 없던 흉이 오른쪽 이마에서 눈썹까지 죽 굵게 그어져 있었다.
몇 해 밖에 나가 있던 바우는 여간 유식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학마을 사람들이 모르는 일을 많이 알고 있었다. 김일성 장군도 알았다. 인민군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밖에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물론이려니와 박 훈장도 모를 말을 곧잘 지껄였다. 착취니 반동이니 영웅적이니 붉은 기니 하는 따위들은 그가 마을 아낙네들에게까지 함부로 쓰는 동무라는 말과 같이 우리말이니 어찌 어찌 알 듯도 하였다. 그러나 그 밖에도 이건 무슨 수작인지 도무지 모를 말도 바우는 아는 모양이었다. 스탈린, 소련, 유엔, 탱크. 그 뿐이 아니었다. 바우는 또, 밖에 나가 있는 동안에 매우 훌륭해진 모양이었다. 그는 사날에 한 번씩은 근 사십 리 길이나 되는 면엘 꼭 다녀왔다. 그러고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싸움 형편을 전했다. 그 때마다 연방 해방(解放)이란 말을 썼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누런 군복을 입고 어깨에 총을 멘 사나이 셋이 학마을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이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박 동무를 찾았다. 마을 사람들은 박 동무라는 사람은 이 마을엔 없노라고 했다. 그들은 다시 박바우라고 했다. 그때에야 바우를 찾는 줄을 알았다. 그리고 또 바우가 그들과 한패라는 것도 알았다.
긴 연설(演說)을 한바탕 늘어놓고 나서 바우를 앞에 내다 세웠다. 이제부터는 박 동무가 이 마을의 인민 위원장이라고 했다. 인민 위원장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마을 사람들에게, 그들은 그게 바로 이 마을의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했다. 모를 일이었다. 학마을에서는 제일 나이 많은 남자가 이장일을 보아야만 했고, 또 그 이장이 학마을의 제일 어른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바우는 마을의 제일 높은 사람 행세(行勢)를 정말로 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박 훈장이 보다못해 그를 붙들고 나무랐다. 바우는 낯을 찌푸렸다. 할아버진 아무것도 모르니 제발 좀 가만히 계시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박 훈장 생각에도 영 어찌되는 셈판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바우는 더욱 자주 면(面)에 다녀 나왔다. 그러고는 하루에 두 번씩 마을 사람들을 학 나무 밑에 모았다. 소위 회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잘 모이지를 않았다. 바우는 반동이 무언지 ‘반동, 반동’ 하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잘 안 모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학이 전에 없이 새끼를 물어 떨어뜨리자 밀려들어온 그들은, 어쨌든 이 학마을을 잘 되게 해 줄 사람들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는 말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유를 안 바우는 그 길로 면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저녁때가 거의 되어, 그는 어깨에 총을 메고 돌아왔다. 그는 곧 또,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몇 사람이 총을 멘 바우를 구경한다고 모였다. 그 자리엣 바우는 또 떠들어댔다. 이마의 흉터가 더욱 험상스레 움직였다. 사업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든지 다 반동이라며 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반동은 사정없이 숙청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우선 저 학부터 처치해야 한다고 하며 학 나무 꼭대기를 가리켰다.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학 나무 그루에 새워 놓았던 총을 집어 들었다. 철커덕 총을 재었다. 총부리를 들어올렸다.
"바우!"
옆에 섰던 덕이가 바우의 팔을 붙들었다. 바우는 흠이 있는 오른쪽 눈썹을 쓱 치켜올리며 덕이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놔!"
바우는 덕이의 손을 뿌리쳤다. 덕이는 빈 주먹을 꽉 쥐었다.
학은 두 마리 다 바로 머리 위 가지에 앉아 있었다. 바우는 총을 겨누었다. 마을 사람들은 숨을 딱 멈추었다. 얼굴들이 새파래졌다. [무서운 일이었다.]그러나 누구 하나 감히 바우의 총앞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타다탕."
총 소리가 사면의 산을 흔들었다. 학은 훌쩍 달아났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마을 사람들은 얼른 바우의 얼굴부터 살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분명히 두 마리 다 훌쩍 위로 떠오르는 것을 보았는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날개를 축 늘어뜨린 한 마리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정신이 아찔하였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 때였다. 앓고 누웠던 이장 영감이 총 소리를 듣고 비틀비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다들 그 쪽으로 돌아섰다. 여전히 아무도 말이 없었다. 이장 영감은 긴 눈썹 밑에 쑥 들어간 눈으로 한 번 휘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마침내 그는, 저만큼 땅바닥에 빨래처럼 구겨 박힌 학의 주검을 보았다. 이장 영감이 여윈 볼이 씰룩씰룩 움직였다.
"학이! 누가 학을?"
무서운 노여움이 찬 소리였다. 이장 영감은 팔을 허우적거리며, 학이 쓰러진 쪽으로 한 걸음 옮겨 놓았다. 그러나 다음 또 한 발을 내딛다 말고 푹 그 자리에 까무러치고 말았다.
그날 밤 하늘엔 으스름 달이 떴었다. 남은 한 마리의 학은 미쳐 울었다. 끼역 끼역 긴 목에서 피를 토하듯 우는 학의 소리는 온몸에 소름이 쪽쪽 섰다. 무엇에 놀라는 것처럼 깍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푸르르 공중으로 솟아오르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밤하늘을 훨훨 날아 마을을 돌며 슬피슬피 우는 것이었다. 다시 학 나무 위에 와 앉아도 보았다. 꼭 거기 아직 같이 있을 것만 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달을 향하여 긴 주둥이를 들고 무엇을 고하듯 또 울었다. 마을은 고요하였다. 저주하는 듯 애통한 학의 울음소리만 삐르 삐르 밤하늘에 퍼져 나가 맞은편 산에 맞고는 길게 되돌아 울어 왔다. 누구 하나 이웃을 나오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자는 것도 아닌 모양 밤이 깊도록 이 집 저 집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날 아침에도 바우는 마을 사람들더러 학 나무 밑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한 사람도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잔뜩 화가 난 바우는 마을에 다 들리도록 고함을 쳤다.
"반동, 반동."
머리 위에서 푸드덕 ?隙? 놀라 날아갔다.
"반동, 반동."
메아리가 길게 흔들리며 바우에게로 되돌아왔다. 바우는 학 나무 밑에 서서 한참 덕이네 대문을 흘겨보다 말고,
"흥, 어디 보자."
하고 혼자말을 뱉고는 영을 넘어 면으로 갔다. 어깨에 가죽끈으로 해 멘 총을 흔들흔들 내저으며.
그 날, 바우는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는 안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번엔 그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또 궁금하고 불안했다.
그렇게 바우가 다시 마을에서 사라지고 며칠 이 못 되어, 또다시 그 무서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산들이 갈라지는 소리. 게다가 이번엔 비행기까지 요란스레 떠 다녔다. 이제야말로 정말 끝장이 나느니라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소리가 북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러자 이장 영감의 약을 지으러 장터에까지 나갔던 덕이는 새 소식을 알아 가지고 돌아왔다. 그 ‘동무, 동무’ 하던 패들이 우리 군대에게 쫓겨 도로 북으로 달아났다는 것과, 그 날 면에 나갔던 바우도 그 길로 그들을 따라 북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다시 학마을은 조용해졌다.
한 마리만 남은 학은 그래도 애써 새끼를 키웠다. 이장 영감은 사랑 툇마루 양지쪽에 나와 앉아 짝 잃은 학만 종일 쳐다보고 있었다. 문병을 온 박 훈장은 학을 쳐다보기가 두려운 듯 멍히 맞은편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망할 자식 같으니. 어디 가 피를 토하고 자빠졌는지." 혼자말로 중얼거리는 박 훈장의 말에 이장 영감은 못 들은 채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9월이 되었다. 이제 학의 새끼는 수월히 건너편 낭떠러지에까지 날았다. 그 날 아침에도 이장 영감은 일어나는 길로 앞문을 열었다. 학 나무 꼭대기를 쳐다보았다. 학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상한 예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좀더 자세히 둥우리를 살펴보았다. 역시 보이지 않았다. 아침부터 날기 연습을 하는가 했다. 그런데 학은 낮이 기울도록 안 보였다.
"갔구나!"
이장 영감은 긴 한숨을 쉬었다. 노해서 간 학은 앞으로 영영 안 돌아올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방에 들어와 목침을 베고 누웠다. 눈을 감았다. 눈물이주르르 귀로 흘러내렸다. 한창 농사 때에 석달 동안을 볶여난 그 해는농작물이 볼 게 없었다.
겨울이 되었다. 사면의 높은 영은 흰 눈으로 덮였다. 빈 학의 둥우리에도 소복이 흰 눈이 쌓였다. 마을 사람들은 산에 가 나무를 해다가 며칠에 한 번씩 장거리로 지고 나갔다. 그들은 그저 어서 봄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섣달 접어들면서부터 멀리 북녘 하늘에서 때때로 우르릉 우르릉 천둥 소리가 들려왔다. 필시 그건 무슨 흉조라고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장거리에 나무를 지고 나갔던 마을 사람 한 사람이 헐레벌떡거리며 이장네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이장님, 큰일났습니다. 장거리에서 지금 피난을 간다고 야단들이에요. 오랑캐가, 오랑캐가 새까맣게 밀고 나온다고, 지금……."
"음."
이장 영감은 수염 속에서 입을 한일자로 꼭 다물었다. 한 번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르르 눈을 감으며 벽에다 뒷머리를 대었다.
"덕이야, 꽹과리를 쳐라."
이윽고 이장 영감은 덕이를 불렀다.
다음 날은 흐릿한 하늘에서 솜 같은 눈송이가 펄펄 내리고 있었다.마을 사람들은 해뜰 무렵에 학 나무 밑으로 모여 들었다. 남자들은 지게에 지고, 여자들은 머리에 이고, 어린 것들은 싸 업거나 손목을 잡고 걸렸다.
이장 영감은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일 만해서 밖으로 나왔다. 토시를 손바닥에까지 끌어내려 지팡이를 싸 쥐었다.
"다 모였나 ?"
"네, 그런데 저 박 훈장님께서는……."
덕이가 어깨에 진 지게를 한 번 추어올리며 대답하였다.
"음."
이장 영감은 잠깐 무엇을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박 훈장이 이장 영감 곁으로 걸어갔다.
"영감!"
박 훈장은 지팡이 꼭대기에 올려놓은 이장 영감의 손등을 두 손으로 꼭 싸 쥐었다. 두 노인 손등에 사뿐사뿐 흰 눈송이가 날아와 앉았다.
"알지. 내 다 알지."
이장 영감은 고개를 수그린 채 중얼중얼하였다.
"그래도 내겐 그 놈 하나밖에 …… 혹시나 돌아올까 해서."
"그럼, 그렇고말고. 내 다 알지. "
이장 영감은 그저 고개만 자꾸 끄덕거렸다. 박 훈장은 이장 영감의 손을 다시 한 번 쓸어 보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털썩 이장네 마루에 주저앉아 버렸다. ‘으흐흐흐’ 하는 박 훈장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듯이, 이장 영감은 마을 사람들에게로 돌아섰다.
"그럼 가자. "
이장 영감은 봉네의 부축을 받으며 지팡이를 한 손에 들고 선두에 섰다. 그 뒤를 한 줄로 마을 사람들은 따라 걸었다.
박 훈장은 비틀비틀 학 나무 밑으로 나갔다. 그리고 어린애 모양 ‘으흐흐, 으흐흐’ 울며, 눈발 속에 사라져 가는 행렬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남자들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생전 처음 마을 밖으로나가는 그들이었다. 정작 영마루에 올라선 그들은 한참이나 마을쪽을 향하여 서 있었다. 펄펄 날리는 눈발 속에 앞이 뽀얗다. 마을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다들 울며 영을 넘어 내려갔다. 팔십 리를 걸었다. 그리고 겨우 화물차 꼭대기에 기어 올랐다. 빈대처럼 달아붙어 갈 수 있는 데까지 갔다. 부산이었다.
부산은 강원도 두메보다 봄이 일렀다. 한겨울을 그 속에서 난 창고 모퉁이에 파릇한 새싹이 돋아올랐다. 그들은 잊어버렸던 것처럼 새삼스레 마을이 그리웠다. 저녁때 모여 앉으면, 그들은 은근히 이장 영감의 얼굴을 살폈다. 이장 영감은 그저 가느스름하게 눈을 감고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따스한 날, 그들은 떠났다. 행장이 마을을 떠날 때보다 더 초라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람 수효가 줄었다. 여섯 가구 스물세 사람이던 것이, 지금 조그마한 보따리를 지고 이고 나선 것은 열아홉 사람뿐이다. 봉네의 남동생 하나는 병정으로 뽑혀 나갔고, 어린애들은 비지만 먹다 죽었다. 그리고 제일 큰 일은, 덕이 아버지가 부두 노동을 하다 궤짝에 치여 죽은 일이었다.
이번엔 기차를 탈 수도 없었다. 걸었다.
올 때만 해도 봉네가 옆에서 좀 거들기만 하면 되었던 이장 영감이었으나, 돌아가는 길에는 덕이와 봉네가 양쪽에서 부축을 해야 했다. 첫 날엔 오십 리, 다음날엔 사십 리, 삼십 리, 점점 줄어지다가는, 하루씩 어느 마을에고 들어가 쉬었다. 그러고는 또, 이장 영감을 선두로 하고 걸었다. 이장 영감은 점점 쇠약해졌다. 수염이 기운 없이 축 늘어졌다. 푹 꺼진 두 눈만이 애써 앞을 더듬고 있었다.
"아가, 늙은것이 공연히 널 고생을 시키는구나. 허허허."
길가에 앉아 쉴 때면, 혼자 돌아앉아 부어 터진 발가락을 어루만지는 봉네의 등을, 이장 영감은 가엽게 쓸어 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봉네는 얼른 신을 신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으로 돌아앉는 것이었다. 웃어 보이려고 해도 어쩐지 자꾸 눈물이 쏟아져 나와 봉네는 끝내 고개를 못 들곤 하였다.
보름째 되던 날이었다. 그들은 드디어 영마루에 섰다.
"야, 우리 마을이다."
애들이 제일 먼저 소리를 질렀다. 모두 바위 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멍히 저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들의 눈에는 떠나던 날처럼 또 눈물이 ‘징’ 소리를 내며 괴였다. 아무도 말이 없는 가운데 그저 여기저기서 코를 들이키는 소리만 들려 왔다.
마을은 변하였다.
학 나무는 타 새까만 뼈만 앙상하게 서 있었고, 또 이 쪽 이장네 집과 봉네네 집터에는 아직 녹지 않은 흰 눈 가운데 깨어진 장독이 하나 우뚝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딴 집들은 다행히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단 두 사람 남겨 두고 갔던 바우 어머니와 박 훈장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빈 마을은 눈 속에서 잠겨 있었다.
"갔지, 갔어."
"바우 녀석이 와서 데려갔을 테지."
"그리고 가면서 학 나무하고 이장 댁에 불을 놓았지, 뭘."
마을 사람들은 모여 앉기만 하면 분해하였다. 이장 영감은 박 훈장이 쓰던 서당 글방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여든에도 능히 멍석을 메어 나르던 이장 영감이었으나 이제 극도로 쇠약해진 그는 때때로 한숨을 길게 내쉬곤 하였다.
덕이는 이제 농사일이 시작되기 전에 집을 다시 지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괭이를 들고 옛 집터로 갔다. 그 날, 덕이는 무너진 벽 밑에서 반 타다 남은 시체를 하나 파내었다. 박 훈장이었다.
이장 영감은 덕이에게서 그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저 고개를끄덕거렸을 뿐이었다. 그래도 눈물이 베개로 굴러 떨어졌다.
그 날 밤, 이장 영감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덕이의 손을 더듬어 잡은 이장 영감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간신히 입을 움직였다.
"학, 학 나무를, 학 나무를……."
이장 영감은 잠들듯이 숨을 거두었다. 흰 수염이 길게 가슴을 내리덮고 있었다.
상여는 둘인데, 상주(喪主)는 덕이 한 사람이었다. 그 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뒷산으로 따라 올라갔다. 피난을 가던 때처럼 이장 영감이 앞서 갔다.
저녁때가 거의 다 되어서야 그들은 산을 내려왔다. 이번엔 덕이가 맨 앞에 두 주의 위패를 모시고 걸었고, 그 바로 뒤를 봉네가 흰 보자기로 뿌리를 싼 조그마한 애송 나무를 하나 어린애를 안은 것처럼 안고 따르고 있었다.
《현대문학》 (19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