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역(山役)
산역(山役)
윤후명
"여길 파야겠군요."
그녀가 발뒤꿈치로 짚은 곳을 가리키며 말했을 때 산역꾼들은 도무지 신빙성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망설이는 눈치였다. 두 사람은 삽자루를 어깨에 울러메고 있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곡괭이를 거꾸로 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자신을 잃은 채 공성(攻城)을 머뭇거리는 옛날 병사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녀는 바다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한번 말했다.
"여기라구요. 내가 분명히 알고 있어요. 어서 파야지 시간이 없어요."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머리 속에서 배어나온 땀이 목줄기를 흘러 내리며 차갑게 식고 있었다.
"도대체 어딜 어떻게 파란 말요, 아가씨?"
아직도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 노골적으로 담긴 말이었다. 그녀 자신도 그녀를 믿을 수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기도 했다. 곧 해가 떠오르려는지 사방이 환해지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연록색으로 밝아지며 아침 골바람에 팔랑거렸다.
"자 보세요. 저기 바다가 보이죠?"
그녀는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그녀의 손가락이 향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쬐끔 뵈누만."
곡괭이를 든 산역꾼이 가늘게 실눈을 뜨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됐어요. 그럼 그 바다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파세요."
"바달 향해서 일직선으로?"
"예, 자 어서요. 여기예요."
사실 그녀는 올라오면서 내내 그렇게 해야 하리라고 다짐했던 것이다. 어떻게든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는가 하면서. 그제서야 산역꾼들은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정에 이를 때까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뒤를 따라오는 산역꾼들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위로만 올라 가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나타냈다. 그것은 그들의 곡괭이와 삽이 돌투성이의 산길을 간헐적으로 내리찍는 것으로 강하게 표현되었다. 그 소리는 해가 채 떠오르지 않은 산기슭을 둔하게 울리며 그녀의 귀를 이상하게 아리게 했다.
그녀는 막상 최씨 아저씨의 유언에 따라 산으로 오기는 했지만, 최씨 아저씨의 죽음은 오히려 그보다도 다른 두 가지 점에서 확실한 느낌으로 전달되었다. 한 가지는 최씨 아저씨의 영구(靈柩)가 먼 길을 달려와 그녀네 집에서 일단 머물러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기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한 느낌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장례가 끝나고 나면 그녀네 식구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구에 의한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네가 사는 집은 최씨 아저씨의 소유였기 때문이었다.
영구차로 오는 인원이 먹을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것도 큰일이었다. 그러나 역시 흥겨운 잔치를 준비하는 것과는 달리 그 과정은 죽음의 그림자를 끌고 다녔고, 그래서 일종의 경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일을 관장하는 그녀의 어머니는 시종 여사제(女司祭)처럼 얼굴이 이상하게 고양된 채 굳어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새벽부터 그녀는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웃집으로 돌아다니며 국을 끓일 만한 큰 솥을 구해 오는 것부터 일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미 장의사에서 온 산역꾼 셋은 그녀의 거동만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갑자기 변을 당한 최씨 아저씨가 막 숨을 거두면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새로 산 산꼭대기에 내 묏자리가 있어. 그걸 그애가 알 걸세."
부음을 듣고 서울로 달려간 아버지가 임종한 사람으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듣고, 서둘러 준비하라는 전갈을 보내왔을 때 그녀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씨 아저씨가 그녀 자신에게 묏자리를 알려준 적이 있었던가조차 그녀는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죽은 사람의 말이므로 무언가 긍정적인 자세로 기억을 더듬어 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결과 어렴풋이 윤곽은 떠올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어렴풋이었다.
"글쎄, 산꼭대기라고 하니깐 짚이는 데가 있기는 하지만, 그 얘길 정확하게 했던 것 같진 않은걸요. 최씨 아저씨가 저에게 무덤 자리를 얘기할 필요부터 없는 것 아녜요?"
그녀는 안타깝게 말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죽은 최씨 아저씨는 이미 그녀를 향해서 오기 위해 수의를 걸치고 있는 참이라는 점이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마다하려면 누군가가 그 수의를 벗겨야만 할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누가 그럴 수 있을 것인가. 또 죽은 사람이 일임하고 갔다고 해서 아무 데나 묘혈을 파라고 지시하면 그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방면에 지식이 있을 리 없는 그녀였지만, 묏자리는 예로부터 까다로운 것이어서 좌청룡(左靑龍)이나 우백호(右白虎) 따위의 말까지 어른거리며, 손쉽게 마치 거름 구덩이 파듯 할 수는 없는 것임을 강박하고 있었다. 그녀가 난색을 표하자 산역꾼들은 화를 내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마당귀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만 빽빽 빨아댔다. 피우는 게 아니라 학대하는 것처럼 빨아댔다. 마지 못하여 그녀는 산역꾼들을 데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산역꾼들보다 그녀가 더 시급한 문제였다.
이 나이에 주검을 안내하는 길라잡이가 된다는 것은 무척 걸맞지 않는다,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사태는 별수 없이 급했다. 영구차가 도착하여 최씨 아저씨의 유택(幽宅)을 아무 데서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죽은 사람의 분노를 친구들이 대신 터뜨릴 것이 분명하며, 게다가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친구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 또한 그녀가 마냥 그러고 있는다면 일당이라도 벌기 위해 왔던 산역꾼들은 그녀의 몸에다가라도 구덩이를 파려고 대들지도 몰랐다.
"제길, 이런 일은 처음이구만, 도대체 어쩌자는 게요, 아가씨?"
최씨 아저씨가 지칭한 그 새로 산 산이란 집으로부터 해안과 반대 방위에 있었다. 언젠가 그것을 매입하기 전 현지답사를 할 때 최씨 아저씨는 그녀를 동반한 적이 있었다. 그녀로서는 우연한 동행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묏자리를 그녀가 알고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히 그때의 일이 어느 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최씨 아저씨와 제대로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은 그때까지 통틀어 한 시간 남짓이나 되면 다행이었다. 최씨 아저씨가 일찍이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 산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시간을 할애할 아무런 까닭도 없는 것이었다. 어느 편이냐 하면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위해 비록 친구라는 입장에서이긴 했지만 집 한 채를 조건 없이 빌려 주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상당히 불편한 감정까지도 품고 있었다. 그것이 알게 모르게 본의 아닌 독소대(毒素帶)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시집을 가도 좋을 만한 그녀의 나이가 또한 그런 나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새벽부터 큰 솥을 구하러 이웃집을 들락거리자 얘깃거리 없는 아낙네는 우선 그런 말부터 입초사에 올렸다.
"처녀가 시집이라도 가는가베. 국수를 삶을라는가?"
"벌써 무슨 시집이에요?"
"그럼?"
그녀는 사실대로 말을 해야 좋을지 어떨지 얼른 판단되지 않았으나, 뭐 숨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씨 아저씨가 돌아가셨어요. 저희집 주인이요."
"최씨가? 나이가 몇인데 벌써?"
"교통사고래요."
아낙네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쯧쯧 혀를 찼다. 아낙네는 오래 묵은 무쇠솥을 들고나오며, 그 무쇠솥만큼이나 오랜 세월 저쪽을 회상하는 듯이 보였다.
"큰솥이라곤 이것뿐이야. 요샌 양은솥이 제격인데."
"아녜요. 새 솥 걸 자리도 없어서 마당에 아궁지를 만들 참이었으니 오히려 그게 제격이에요."
"그 최씨가 처음 왔을 때 내가 중매를 나섰지. 그런데 최씨 편에서 한사코 막무가내야."
"아, 네에."
그녀는 마음이 쫓기고 있었으나 솥을 빈 대가로 아낙네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마누라가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 거였구만."
"아, 일찍이 헤어졌다니까요. 그 부인을 말하는 거겠죠."
"헤어졌다…."
아낙네는 무엇인가 조리 있는 말을 찾으려는 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계속했다.
"헤어졌다는 게 좀 복잡한 것인 모양이었어. 자세한 걸 어디 그 사람이 얘기하는 사람인가… 아무튼 죽었다니… 좋은 사람이었는데."
최씨 아저씨는 결혼에 실패하고 이 지방으로 내려와 자리잡은 뒤 수산물 중개업에 손을 대는 것으로 그 상처를 달래는 방편을 삼았다고 했다. 그것은 그녀가 최씨 아저씨와 함께 산을 답사하면서 최씨 아저씨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기도 했다.
그녀네 식구가 최씨 아저씨의 구옥(舊屋)을 빌어 들어간 것은 아버지가 최후의 기대를 걸고 차렸던 작은 음료 공장이 문을 닫게 됨으로써였다. 최후의 기대라고 말하는 것은 아버지가 공직을 물러나 퇴직금으로 차린 보세 공장이 그보다 먼저 문을 닫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보세 공장의 재고를 헐값에 정리한 자금으로 소규모의 강정음료(强精飮料) 공장을 차렸던 것이 다시 도산했던 것이다. 그러자 담보로 잡혔던 집마저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그녀네는 그야말로 알거지가 되어 버렸다. 집달리들이 구둣발 그대로 안방까지 들이닥쳐 마구 들어내놓은 가재 도구 옆에서 이틀 밤을 지샌 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각한 의논 끝에 드디어 최씨 아저씨의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안 돼요. 염치도 없지."
처음에 어머니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침울한 거부의 모습이 어머니를 초라하게 보이게 했다.
"그럼 어떡하오.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아버지는 넋을 잃은 사람처럼, 그러나 고통스럽게 말했다. 불행이란 결코 혼자서 오는 법이 아니라고 했으므로 아버지의 몰락이 가져온 불행은 어떠한 동료를 거느리고 오고 가는지 차츰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좀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잖아요."
"무슨 좋은 방법? 이 꼴을 알면 빚장이들이 더욱 극성을 떨 텐데. 우린 야반도주라도 해야 된단 말요."
그 의논은 하루종일 그런 식으로 계속되다가 어머니의 힘없는 수락으로 일단락을 지었다. 무슨 일에서나 대안 없는 반대란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때 그녀는 그것이 시골로 가는 것을 뜻함을 처음 알았다. 지도에서 보면 바닷가와 꽤 가까웠으나 바다를 보자면 몇 정거장 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다. 최씨 아저씨의 집에 도착한 며칠 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바닷가로 갔었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불안과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좌절감을 조금이라도 털어버리기 위해서였다. 실상 바다의 냄새가 그립기도 했다. 바다에서 맡을 수 있는 것은 짭짤한 염분이 밴 바닷바람의 냄새만이 아니었다.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서 있으면 어디선가 저 용연향(龍涎香) 냄새 같은 것이 풍겨 왔다. 고래의 부패한 내장에서 분비되어 나오는 병적인 배설분의 향료. 늙거나 병든 그 큰 젖먹이 동물이, 가라앉은 선체처럼 바다 밑에 몸뚱이를 가라앉힌 채 썩어 간다는 상상은 황홀한 것이었고, 거기서 나오는 무진장한 용연향으로 말미암아 그 해역을 항해하는 배의 외롭디 외로운 선원이 마침내 질식한다는 환상마저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날 그녀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해안은 사라센의 칼처럼 언월형(偃月形)으로 둥글게 굽어 있었다.
그들은 그 푸르게 벼러진 칼날 부분을 따라 걸었다. 커다란 칼날은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감에 따라 무지한 살육으로 이가 빠진 것처럼 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등도 그 실패한 인생을 표정하듯 굽어 있었다.
언제가 "아버지는 어떤 꿈을 가지셨더랬어요?" 하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다소 부끄러워하는 듯했다. 아버지는 시대에 걸맞지 않게 무용에 뜻을 두었다가 좌절되면서 어른이 되었다고 했고, 그래서인지 거북이 딱딱한 갑골(甲骨)을 등에 지고 있는 것처럼 그 좌절을 인생의 등에 지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아버지는 남자로서 무용을 택할 수 없었던 상황을 변명하는 것으로 인생 전체의 실패를 변명하려고 했다. 아버지가 무용을 하려 했었다는 사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고, 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만을 따진다면 구태여 좌절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손을 대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최초의 좌절이 이를테면 수렁이어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 가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귀중한 좌절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없게 하는지도 몰랐다. 다만 젊은 시절의 병든 결실이 만약 있다면 그것은 오래도록 두고두고 낫지 않는 관절염이었다. 아버지를 그런 식으로 무용과 결부시켜야 한다는 것은 왠지 서글픈 일이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독창적인 꿈이 아니라 시대적인 배경으로 인한 순간적인 감상(感想)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는 백계(白系) 러시아인들의 폴카를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어두워지려는 저녁 무렵,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발랄라이카를 켜며 유랑의 신세를 춤으로 달랬던 그들.
아버지의 어느 구석에 집시와 같은 무리를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있었던 것일까.
모래톱이 끝나는 곳에 간이 횟집이 늘어서서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플라스틱 용기 속에 갇혀 체념한 듯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며, 꽁무니에 긴 창자를 매달고 있는 해삼, 여드름이 극심한 남학생 같은 멍게 따위를 들여다 보며 잠시 우울을 달래려고 하였다.
"해삼은 위급을 느낄 때 창자를 빼낸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는 것과 같아."
아버지는 무언가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해삼의 창자에 대해서가 아닌, 인생의 무엇인가에 대해. 아버지는 소주 한 병과 안주를 시키고서도 누구에겐가 쫓기는 사람처럼 불안해했다.
그런 아버지의 분위기가 바다의 향수에 젖으려는 그녀의 감관(感官)을 시퍼렇게 멍들게 할 뿐이었다. 그녀는 무디게 우울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각에, 횟집 종업원이 물통에서 뱀같이 긴 것을 꺼내 땅바닥에 패대기치는 것이 들어왔다. 그놈은 온몸에 모래를 묻힌 채 꿈틀거렸다. 꿈틀거리는 놈의 대가리를 낚아챘는가 했더니 어느새 껍질을 홀랑 벗겨 버리는 것이었다.
놈은 흰 살이 드러났으나 여전히 창피한 줄도 모르고 꿈틀거렸다. 그것은 무우채 위에 놓여 나왔을 때 목화송이처럼 되어 순결해 보였다. 아버지는 그것을 안주로 쓴 소주를 조금씩 들이켰다.
"여기서 살면서 다시 서울로 나갈 길을 모색해 보자. 한 일년 지나면 채권자들도 잠잠해질 테고."
아버지는 담담히 말했으나 그 말은 플라스틱 용기 속에 갇혀 헤엄치는 고기처럼 무력한 지느러미를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되겠지요. 너무 낙심하시지 마세요."
"그래. 어떻게 되겠지. 너야말로 너무 낙심하지 말려무나."
아버지는 그 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최씨 아저씨의 집에서의 생활은 어두운 막을 올렸던 것이었다.
최씨 아저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우체부가 500cc자리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사랑하는 소년처럼 달려와서 전했던 것인데, 대문 밖에 오토바이를 멈춘 그는 퉁명스럽게 "전보요!" 하는 소리와 함게 쪽지를 마당으로 집어 던지고는 쏜살같이 되돌아가 버렸다. 어찌나 급하게 가는지 올 때와는 달리 꼭 첫아이를 해산하는 아내를 둔 남편 같았다. 그가 쓴 빨간 헬멧은, 쉽게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 아이 때문에 골이 잔뜩 나서 빨개진 것 같았다. 그 무렵 그녀는 가벼운 조증(躁症)과 울증(鬱症) 사이를 물개처럼 곤두박칠치고 있었고, 따라서 우체부가 설혹 그녀의 사망 통지서를 가져왔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기세로 있었다. 기쁘면 기쁜 대로 기뻐할 테고, 슬프면 슬픈 대로 슬퍼할 테니까. 그녀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마당에 내려가 그 쪽지를 집어들고 마치 연애편지라도 되는 양 감미로운 기분으로 펼쳐 보았다.
쉽게 새겨지지가 않았다. 그녀는 고고학자가 그렇게 하듯 조심스럽게 판독하여 하나의 문장을 구성할 수가 있었다.
최씨 아저씨의 죽음은 집안에 싸늘한 기류를 몰고왔다. 그것은 단순히 싸늘한 것이 아니어서 몸의 어느 부분인지 모를 곳을 시리게 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먹고 싶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처럼 그랬다. 저녁 무렵에 전보를 받았으므로 다음날 차편을 이용하여 아버지가 빈소(殯所)로 떠나자 집안은 죽은 주인을 근조(謹弔)하는 듯 썰렁한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언가 헤어날 길 없이 아득한 절망감. 최씨 아저씨는 살았을 때도 미상불 그런 기류를 몰고 다녔다.
언젠가 한 번, 이사하고 얼마 뒤엔가 그는 집주인으로서 당연한 방문을 했었다.
"집이 워낙 낡아서 불편할 거야."
그는 이러저리 집을 둘러보며, 살 곳을 마련해 주어 고마워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하인처럼 옆에 붙어서서 "아니, 아니" 하고만 있었다. 그것은 실패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연약한 정직성을 드러내는 태도였다. 그럴 때 그녀는 최씨 아저씨에게 야릇한 적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집에는 벌레가 굉장히 많아요."
그녀는 그녀의 감정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짐짓 지적했다. 아닌게 아니라 온갖 벌레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집이긴 했다.
"벌레?"
"네, 벌레요. 독충들이에요."
방아깨비니 여치 따위도 있으므로 모두가 독충이라는 표현은 틀리는 것이겠지만, 가래처럼 큰 집게를 가지고 기어다니는 것은 말로만 듣던 전갈인지도 몰랐고, 또 지네도 있었다.
그래서 한약방 같은 데서 말린 묶음으로 파는 그것이 살아서 벽을 기어갈 때는 처르륵처르륵 하는 쇳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네는 샛노란 페인트로 띠를 두른 캐터필터처럼 움직이면서 그런 소리를 냈다.
"산을 끼고 있어서 그렇겠지만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는데."
최씨 아저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네도 있는 걸요."
"지네?"
"그럼요. 큰 독지네예요."
갑자기 최씨 아저씨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최씨 아저씨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하아, 통닭을 좋아하는 모양이로군."
"통닭요?"
"음."
그렇다. 최씨 아저씨는 자수성가한 사람답게 박물학에도 견식이 넓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지네가 나타나기 전날 그녀들은 닭을 볶아 먹었다. 그것이 축축한 돌 밑이나 낙엽 밑에 우굴거리고 있던 지네들을 부르게 되었던 것임을 최씨 아저씨는 안 보고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지네가 닭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지네잡이에 닭뼈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이야기 끝에 최씨 아저씨는, 새삼스럽게 내려온 뜻은 산을 하나 사려는 데 있으며, 현지 답사를 하기 위해 그녀를 동반해야겠다고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자네는 관절이 아직도 나쁘질 않나."
최씨 아저씨는 서울에 근거를 두고 지방의 전원 안식처를 마련하려는 많은 여유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답게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산은 사서 뭘 하게?"
"글쎄 꼭 뭘 하려구 하는 건 아닐세. 그냥 뭐라 할까, 잘 설명은 안 되지만, 사고 싶네."
그녀로서는 최씨 아저씨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를 갖고 있지 못했다. 벌레 따위를 지적해야 하는 적의라면 그것은 차라리 경의에 가까운 것이라고 해서 관언이 아닐 터이었다.
산은 돌이 많아 별로 쓸모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쓸모라는 것처럼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은 그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물며 사람조차도 사람에 따라 쓸모가 전혀 다른 것이 아닌가. 최씨 아저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앞장서 산을 올라갔다. 아무 말도 없이 오르는 일에만 열중했기 때문에 산을 사려는 목적이 혼자서만 등산하려는 데 있지나 않은가 의혹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자기만의 등산을 하기 위해 산을 사야 한다면 결국은 세상 전체를 다 사야 하고 또 해와 달은 물론 별까지도 다 매점(買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이윽고 산꼭대기에 이르러 최씨 아저씨는 더 올라갈 곳이 없는 것에 실망한 사람처럼 발길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득 바라보니 뜻밖에도 바다가 보였다. 그것은 삼각형 쐐기처럼 앞의 산협(山峽) 사이에 박혀 있는 꼴이었다. 그래서 선뜻 바다라는 확신을 갖기가 어려웠고 그녀는 최씨 아저씨에게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건 분명히 바다지요?"
최씨 아저씨도 어느새 그 쪽을 향해 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래, 바다다."
오래전에 그것이 바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가라앉은 어조였다. 아주 작게 갈라진 채 보였으나 분명히 깊은 해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나타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완벽한 자아를 갖춘 소년을 보는 느낌이었다.
"바다를 좋아하나보군."
최씨 아저씨가 말했다.
"네. 그렇지만 무서워해요."
그것은 솔직한 표현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바다에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에 대해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을 굳게 가지고 있었다.
최씨 아저씨가 사려는 산에서 바라보이는 그 바다는, 그토록 많은 고깃배와 어부를 통째로 삼킨 누범(累犯)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미수(未遂)에 그친 것처럼 무언가 생생한 감동을 지니고 있었다. 가난과 슬픔과 아우성이 한데 어울려 녹아서 더욱 색감 좋은 해갑청(蟹甲靑)의 청록색을 띠는 것일까.
"여기서 바다가 보인다니 신기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 그 점에 끌려서 살까 한다. 한 이십 년 전쯤 내가 이 지방에 처음 와서 자리 잡았을 때 왔던 적이 있지."
"그러셨군요."
"그 뒤로 왠지 잊혀지지 않는 곳이 되었어. 왜 그럴까."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그렇지. 나는 그저 우연히 올라 왔다가 저 바다를 보았다. 그것뿐이었다. 그때 나는 인생에 회의를 느껴 죽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
어떻게 서슴없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놀랍게 생각되었으나, 최씨 아저씨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왜요?"
"결혼에 실패했기 때문이지. 내가 결혼을 했을 때는 전쟁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드디어 전쟁이 나서 나는 갑자기 길가에서 전쟁터로 끌려 갔고, 실종이 되고 말았어."
"실종이 되다니요? 자기자신이 실종되었다고도 할 수가 있나요?"
그러자 최씨 아저씨는,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비웃는 듯한 웃음을 띠었다.
"아니, 바로 말하면 나는 포로가 되었는데 남들은 다 내가 죽은 줄로만 알게 되었지. 아무리 전쟁 때라도 소식은 전할 수가 있는 법인데, 내 경우는 그게 안 되었거든."
"예…."
"전쟁이 끝난 후 돌아와 보니까 아내는 친구와 살고 있었어. 어쩔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나는 이 지방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은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생선 장사를 시작했지. 돈을 버는 것만이 내 유일한 안식이 되었어. 한가하게 있으면 절망, 그렇지 절망이라고 해야겠지. 그것이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유대인들이 지독하게 돈을 버는 이유를 알았다고나 할까. 하여튼 돈 버는 재미는 그것대로 있었어."
최씨 아저씨는 남의 이야기를 하듯 말했다. 지나치게 솔직한 고백이어서 그가 돈을 번 원동력은 열심히 일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말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데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최씨 아저씨가 묏자리 이야기를 했다면 바로 그 뒤라고 할 수 있었다. 최씨 아저씨는 말했다.
"이런 데 묻히면 죽어서도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겠군."
아마 최씨 아저씨의 묘혈을 파기 위해 산역꾼을 데리고 올 처지가 되리라는 것을 만에 하나라도 내다볼 수 있었다면 실례를 무릅쓰고라도 자세한 위치를 잡아두었거나 아니면 그때 미리 사양을 해두었으리라. 아마 후자 편이긴 했겠지만.
"이런 산꼭대기에도 묘를 써요?"
그녀는 일반적인 상식을 말하려 했을 뿐이었다.
"글쎄, 어떤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제주도에 가면 바닷가 산 위에도 묘를 쓰지."
"제주도에서요?"
"그렇다."
제주도에 가 본 적이 없는 그녀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죽어서는 누구도 바다를 볼 수가 없겠지요."
최씨 아저씨는 어느새 앉았던 곳에서 일어나 서성거리고 있었다. 최씨 아저씨가 앉았던 그곳은 정확하게 어디인 것일까. 그녀는 산역꾼들에게 파라고 지시한 곳이 그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괜찮은 일이다라고 그녀는 스스로를 안심시켰지만 열댓 걸음씩 왔다 갔다 하면서 바라보아도 바다는 언제나 낯설디 낯선 쐐기꼴을 변형시키지 않아 쉽사리 안심이 되지 않았다. 내려다보이는 세상 모두가 선염(渲染)된 것처럼 몽롱하기도 했다. 그때 보았던 어떤 한 형태를 결정적으로 볼 수만 있다면 그곳은 틀림없이 최씨 아저씨가 죽어서도 바다를 볼 수 있겠다던 곳일 텐데. 그리하여 밤이면 최씨 아저씨는 촉루를 빛내며 바닷소리를 귀담아 들을 수 있을 텐데.
그녀가 뛰다시피 산길을 내려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영구차가 도착해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지런히 식사들을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모두들 아직까지 산에서 소식이 없으니 낭패다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 어디쯤이냐?"
숨을 헐떡이며 들어서는 그녀를 붙들고 아버지는 조급하게 물었다. 밤을 새우고 와서인지 초췌한 그 얼굴은 어느 거리에서 본 희미한 얼굴 같았다.
"산꼭대기라고 하셨잖아요? 아, 목말라."
그녀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펌프로 달려가 입을 들이대고 물을 마셨다.
"그렇지. 그렇지만 그건 너만 아는 곳이니까 말이다."
"하여간 산꼭대기예요."
그녀는 어떻게 되어 최씨 아저씨의 죽음에 그녀가 그토록 깊이 개입되어 버렸는지 몰라 울화까지 치밀었다. 더구나 새벽부터 부산을 떨어 몸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아버지는 그녀의 상황을 눈치채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와서 모두들 흡족한 모양이었다. 밥을 더 달라는 사람, 국을 더 달라는 사람, 김치를 더 달라는 사람, 감자조림이 맛이 있다는 사람 등의 말소리로 식사의 대단원이 장식되고 있었다. 죽은 사람을 잘 보내기 위해서 산 사람은 그만큼 또 잘 먹어야 하는 것이었고, 그리고 죽는다는 것도 별수없이 일상의 일이었다.
"여기서도 꽤 먼 모양일세?"
누군가가 아버지에게 묏자리의 위치를 묻기도 하였다.
"아니, 뭐 찻길이야 다 온 셈이지. 그치만 산꼭대기니까 든든히들 먹어 두게."
이런 말이 오가는 중에 한편에서는 산으로 관을 메고 올라가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음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좁은 집안에 방이며 마루며 가득 찬 참례객들은 무슨 대회를 위해 임의로 차출되어 온 사람들처럼 우왕좌왕했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녀가 산으로 떠난 이후 지금까지 내내,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는 그들을 맞을 채비에 바빴을 것이고 또 그들이 도착한 후에는 그들의 시중을 들기에 바빴을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마당을 몇번씩 가로지르며 눈코 뜰 새가 없어 했다. 그런 중에도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하는 사람들에 의해 행동 반경이 작아졌기에 그것은 이상한 축제의 마지막 같았다.
언젠가 밤바다를 배를 타고 여행할 때 3등 선실의 열기에 못 견뎌 갑판으로 올라가 데크에 몸을 기대고 망망한 어둠을 배경으로 했을 때 선실의 계단을 타고 들려오던 동떨어진 삶의 소리. 어둡고 묘막(渺漠)한 세계를 끝없이 항해하는 운명을 타고난 어떤 삶의 집단. 그 미끈한 향락의 소리…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 둘 곯아떨어져 버리면 그만큼의 정적이 무섭게 불어난다. 그것은 그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안겨 주는 일이었다. 일종의 배반감 같은 외로움이었다.
축제는 끝났다. 어느덧 모두들 경건을 그들의 신발처럼 되찾으려고 서두르고 있었다.
"넌 밥을 먹었니? 안먹었으면 빨리 먹어라. 니가 안내를 해야 다들 가시지."
아버지의 말을 듣자 그녀는 그제서야 배가 심하게 고파옴을 느꼈다.
"네. 뭘 좀 먹어야겠군요."
그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모두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바깥으로 몰려나가고들 있었다.
"서둘러야겠네. 해가 중천이네 그려."
"어서 감세."
그녀는 부엌 쪽으로 향했다. 서둘러 먹고 다시 주검의 길잡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부엌은 언제나처럼 어두컴컴했다. 어머니는 부뚜막 앞에 서서 부엌에 머물러 길흉을 점친다는 조왕대신처럼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는 부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아무 그릇의 밥이나 주워들고 국에 말아먹기 시작했다.
"묏자리는 어디다 썼니?"
"엄마두. 낸들 아우? 산꼭대기라기에 거기다 파게 했지 뭐. 이런 일 두 번 치르다간 생사람 잡겠네."
혼자 산까지 다녀온 것을 칭찬은 못 할 바에 꼬치꼬치 캐물어야만 하겠느냐고 그녀는 아버지에게 그랬듯이 일부러 뽀로통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 소리도 없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산꼭대기라두 좋은 자리가 있을 꺼 아니냐?."
"내가 좋은 자릴 어떻게 알어? 암튼 바다가 보여."
"바다가?"
"응."
그녀는 다시 후루룩후루룩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모두들 차에 앉아 기다리는 것일까, 집안은 삽시간에 무덤처럼 조용해졌다.
죽음의 그림자가 던지고 있는 그 고요 속에서 갑자기 가냘프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생각되었다. 그 소리는 아주 먼 데서 들려오는 가냘픈 음률처럼 귀를 의심케 했지만 결코 놓칠 수 없는 소리였다. 그녀는 돌아보았다. 어머니였다. 그녀는 채 다 먹지 못한 밥그릇을 들고 일어나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어머니는 부뚜막 앞에 서서 이쪽으로 등을 보인 채 울음을 참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왜 그래 엄마? 곧 집을 내줘야 된대?"
그 말을 듣자 어머니의 흐느낌 소리는 갑자기 조율 안된 악기처럼 불협화음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래 엄마. 응?"
"아무것두 아니다. 사람이 죽었으니까, 괜히 눈물이 나는구나. 너는 어서 가야지."
"엄마두 싱겁긴."
그녀는 먹다 남은 밥그릇의 밥을 다시 후루룩 먹고 빈 그릇을 설거지 통에 집어넣었다. 이윽고 다시 떠날 준비는 완료된 셈이었다. 그녀는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어머니가 왠지 외로워 보였다. 부엌을 나오려고 하자 어머니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녀 쪽을 보고 있었다. 언제 울었냐는 듯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져 그 앞에 우뚝 서 버렸다. 창백한 얼굴이 한 걸음 다가왔다.
"집은…."
어머니는 말을 꺼내다 말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집은 이제 니 집이 됐어."
"집이 내 집이 돼? 왜?"
어머니는 다시 입술을 꼭 깨물었다. 얼굴이 백랍(白蠟)처럼 하얗게 되었는가 했더니 경련마저 파르르 일고 있었다.
"돌아가신 네 아버지가 너에게 남기셨어. 바다가 보이는 산도."
"돌아가신 아버지?"
그녀는 한꺼번에 밀려와 벼랑에 부딪히는 먼 파도 소리를 듣는 듯했다. 어머니는 석상처럼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 모든 사실을 한꺼번에 설명하고 있었다.
쏴아쏴아 와르릉.
파도는 연신 밀려와 벼랑에 부딪히고 있었다. 그와 함께 그녀는 모든 사람이 알고 그리고 묵계해 온 속에서 오랜 세월 자신도 모르게 견뎌야 했던 무서운 고립감이 비로소 한 마리의 비굴한 짐승처럼 꿈틀거리며 그녀의 내부를 가로지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최씨 아저씨는 그 고립감과 그리고 아버지의 무덤을 그녀에게 남기고 간 셈이었다. 그녀는 부엌의 문설주에 몸을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