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4. 4. 14:20

숭어

엄흥섭

 

1

숭엇마을은 산 가운데 처박힌 조그만 어촌이다.

질솥을 빼어 폭 엎어 놓은 것 같은 북쪽의 높직한 바위산은 이 마을의 뒤를 지키고 황소 등줄기 같은 남쪽의 나지막한 황토산은 이 마을의 앞울타리며 새악시 가리마 같은 동쪽의 잔솔밭 고갯길은 이 마을의 옆을 지키는 샛문이다.

만일 서쪽으로도 산이 둘러쳐 막혔더면 숭엇마을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돈짝만한 하늘 조각밖에 구경 못 하겠지만 자연의 조화는 과연 위대한 것이어서 동쪽에서 굽이쳐 흘러내려온 한 줄기 시냇가닥이 마냥 실오라기처럼 내뻗을 수 있을 만큼 서쪽은 너무도 속시원하게 툭 터져 넓은 들판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이 숭엇마을의 앞을 굽이쳐 흘러내리는 시내는 서쪽 들판을 십 리나 흘러내려 실오라기처럼 아슬아슬 보이지 않는 데서 H강 지류인 삼계천(三溪川)으로 합류해 버리었다.

숭엇마을 사람들은 이 시내 이름을 옥내玉川라 불렀다.

시냇바닥이 환하게 다 들여다보일 만큼 맑은 물줄기가 옥 같은 물방울을 지우며 찰랑찰랑 흘러내려가기 때문이다. 칠팔월 제철을 만나면 잉어, 숭어, 가물치, 은어, 장어 같은 민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숭엇마을까지 올라온다.

그 중에서 숭어가 제일 많이 잡힌다. 그러기 때문에 마을 이름이 숭엇마을이다.

그러나 어느 때 누구의 입으로 이 이름을 지었는지는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마을이 시내보다 먼저 생겼으면 달리 마을 이름이 있음직한 일이지만 일흔이 넘은 이 마을의 늙은이들도 숭엇마을이란 이름 외에는 다른 이름을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이어 듣지 못한 것을 보면 이 마을은 시내보다 확실히 나중에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일흔이 넘은 노인의 말에 의하면 자기들이 십사오 세이던 지금부터 육십여 년 전 그때에도 사십여 호의 호수(戶數)가 살았다 하며 그들의 증조, 고조까지도 이 마을에서 살았다 하니 적어도 이 마을에 인가가 생기고 부락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오백여 년 전 옛날의 일이 아니면 안 된다. 아니 그보다도 더 먼 몇만 년 전 원시시대부터일는지도 모른다.

 

2

늦은 여름 저녁 햇살이 내리쪼인다.

오십여 호나 되는 숭엇마을의 초가지붕들이 이 구석 저 구석 산골짜기 수수밭 모퉁이에 흩어져 하얗게 센 박통을 두세 개씩 궁굴리고 콩밭 언덕 감나무 도토리나무에서 매미떼가 요란하게 울기 시작한다.

춘보는 담배를 곰방대에 붙여 물고 마루 밑에서 숫돌을 끄집어내어 마당 한 귀퉁이 울타리 그늘에 박아 놓고는 부엌에 들어가 이 빠진 밥사발에 구정물을 반쯤 떠다 놓고 바지게에서 낫을 빼가지고 갈기 시작했다.

저녁때 낫만 갈문 뭘 하오, 글쎄. 반찬은 뭘 먹어. 콩밭 열무나 솎아 오래두…….”

물동이를 인 춘보 마누라가 한 손으로 동이 몸뚱이에 넘쳐흐르는 물방울을 훑어 뿌리며 마당으로 들어온다.

가만있어 낫 갈어 놓고 갈 테니…….”

춘보는 낫 이를 엄지손가락 배때기로 가만히 눌러 봤다.

물항아리에 동잇물을 붓느라고 츠르르 소리가 난다.

춘보는 낫을 갈아 바지게에 얹어 놓고 건너편 산밑 서 마지기 콩밭으로 건너갔다.

춘보는 콩포기 사이에서 듬성듬성 열무를 솎았다.

첫여름 콩씨를 뿌릴 때 밭임자인 산너머 김참봉이 콩밭에 열무씨를 같이 뿌리면 콩농사가 안 된다고 못 뿌리게 한 것을 춘보는 굳이 열무씨를 뿌려 두었다.

가을에 콩타작에 콩되나 얻어먹는다 하지마는 온 여름내 열무김치 한 그릇 못 담가먹을 일을 생각하니 슬며시 골이 올라온다.

무씨를 뿌린 춘보는 기어이 김참봉에게 불리어갔다.

그럼 자네네 열무 지어먹은 값일랑 콩타작에서 제할 터이니 그리 알게…….”

춘보는 김참봉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 나자,

여보 참봉어른! 열무를 갈어먹는다구 콩이 안 되면 얼마나 안 됩니까. 온 없는 놈 사정을 그렇게 몰라서야 온.”

하고 한바탕 뻗대었다.

춘보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열무망태를 메고 콩밭 모퉁이를 돌아나섰다.

산그늘에서 갑자기 볕으로 나서자 서쪽으로 다 기울어진 저녁해가 눈을 부신다. 앞정강이에 수그러진 나락 모가지가 걷어차이는 논두렁을 건너서 옥내언덕에 올라서자 네댓 마리의 손바닥 같은 붕어가 펄떡이며 얕은 물을 타고 위로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춘보는 아까운 놈을 놓쳤다고 일변 후회하였다.

춘보는 옥내에 뛰어들어 웅덩이 물에서 열무를 씻었다.

열무 벼락김치에 꽁보리밥을 고추장에 비벼먹고 난 그는 지게를 지고 뒷산 쪽으로 올라갔다.

저녁해가 넘어가자 사방은 벌써 어둑어둑해진다.

춘보는 어떤 콩밭 모퉁이에 앉아서 사방을 휘휘 둘러보고는 바지게에서 낫을 들고 바위틈을 기어올라가 싸릿대를 닥치는대로 베었다.

춘보는 은근히 켕기어 왔다.

거의 한 발씩이나 되는 싸릿대를 한아름 베어 두 팔로 내려 오기란 마치 큰 죄나 지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두근하기 시작한다.

춘보는 바지게에 담아 짊어지고 또 한번 사방을 휘휘 둘러보면서 휘청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싸릿대짐을 뒤안에다 부려 놓고 아내와 둘이서 얼른 다듬어 버렸다.

다듬은 싸리를 춘보는 꼬아 놓았던 가는 새끼로 발을 엮기 시작했다.

아빠, 이걸루 미기 잡어?”

네 살 난 딸년 옥순이가 발 엮는 춘보의 얼굴을 어둠 속으로 노리면서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그래! 미기 잡어 너 한 마리 구어 주마!”

아이 좋아, 나는 미기가 질 주와…… 맛있구.”

춘보는 딸년의 재롱을 들은 둥 만 둥 엮은 발을 둘둘 말아 남의 눈에 안 보이게 치워 버리었다.

 

3

밤이 되자 이지러진 스무날 달이 뾰조롬히 떠올라온다.

춘보는 담배를 피워 물고 고서방네 팽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이 팽나무 밑은 봄에서부터 가을까지 이 마을 사람들의 벽 없는 회의실이다.

모깃불을 태우는 연기가 팽나무 밑을 흐른다.

춘본가. 어서 오게!”

어서 오게!”

어서 오게!”

춘보는 고서방, 박서방, 진서방 들의 인사를 받고 가마니때기 한 귀퉁이에다 궁둥이를 붙이었다.

최생원, 전생원은 코들을 골고 잔다.

, 어서 비가 좀 쏟아져야 고깃마리나 올라올 터인데!”

내일 저녁에는 비가 오리!”

, 자네 이인이로군!”

비가 와야 제기 배추 부친 것도 싹이 터오를 터인데 큰일났어.”

그저 오늘 밤이라도 비가 좀 쏟아졌으면 당장에 숭어 바지게나 잡을 터인데…….”

아니 내일은 꼭 비가 올 기여, 내기허자구. 어저끼 밤보다도 오늘 밤이 더운 것만 보더라도 내일은 올 기여!”

좌우간 비 오기 전에 발, 소쿠리 들이나 튼튼히 장만해 두어야 헐걸.”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튿날――

이상하게도 하늘은 아침부터 검정구름에 덮이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며 무덥지근한 공기가 삼복중이나 마찬가지로 푹푹 내려치민다.

춘보는 새벽에 십 리나 넘는 S읍으로 마을 젊은 친구와 한 짐에 십오 전 남는 장작을 팔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콩알만씩 한 빗방울을 뚜드려맞았다.

춘보를 비롯하여 마을의 젊은 패들은 우장을 입고 대발과 싸리발과 용수, 소쿠리, 양철통 들을 들고 뛰어나오고 늙은이 여편네 들까지도 우장을 입고 뛰어나오기 시작한다.

춘보는 이 마을의 젊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물고기 잡는 데에 상당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춘보를 비롯한 삼십여 명의 젊은 친구들은 육칠 명씩 대여섯 패로 나뉘었다.

, , , , 무 다섯 패는 각각 이십여 미터씩 간격을 두고 흩어졌다.

그들의 한 패에는 다 각각 대발, 싸리발, 소쿠리, 용수, 양철통이 준비되어 있다.

첫번 그들은 흘러내리는 물결에 대발을 비스듬히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에까지 사이를 남기지 않고 단단히 눕히어 쳐놓고 양편에서 발 끝을 두 사람이 붙들고 있으면 삼사 인은 저 아래쪽 패들이 발 쳐놓은 바로 위에서부터 싸리발을 시냇바닥에 착 붙여 끌며 양편 귀퉁이를 단단히 훑어 올라오면서 고기떼를 위로 자꾸자꾸 몰아 올린다.

춘보는 한 손으로 용수를 들고 무엇이든지 대발 위에로 뛰어오르기만 기다리고 있다.

대발 위론 손바닥 같은 붕어가 뛰어오른다. 춘보는 벼락같이 꼬리를 붙들어선 용수 속에 집어넣는다.

이윽고 싸리발과 대발 사이가 가까워 오자 대발 위에로 숭어떼가 둘씩 셋씩 뛰어오른다. 놋날 같은 빗줄기를 무릅쓰고 그들은 대발 위에 뛰어오르는 숭어, 잉어, 가물치에게 정신을 쏠리었다.

대발 위에 은빛 뱃가죽을 번득이며 뛰어오르는 숭어떼를 한 손으로 단박에 빠치지 않고 집는 재주는 온 마을에서 춘보를 당할 사람이 없다.

대발과 몰아 올린 싸리발 사이가 착 붙게 될 때 춘보는 아래패와 위패에게 손을 공중에다 좌우로 흔들어 다 잡았다는 뜻을 표한다.

다른 패들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 이웃패에게 손을 흔들어 발들을 걷어올린다.

이리하여 일차의 숭어잡이가 끝나고 또다시 서너 시간 뒤에 제이차가 시작되었다.

비가 한창 쏟아졌기 때문에 시냇물은 황톳물이다.

황톳물인데도 고기떼가 올라온다. 삼차 사차까지 하는 동안에 이 마을 사람들은 잠을 못 자고 그대로 밤을 밝힌다.

밤중에도 고기떼는 올라온다. 그놈들의 눈은 어둡지도 않은 모양이다.

아니 고기를 잡기 위해서 대나무 횃불을 켜들어 옥내물이 너무 환해져 천당이나 들어오는 듯이 서로 밀치며 광명을 탐내면서 거슬러 올라오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이차, 삼차, 사차까지 벌어지는 것은 일 년 중에도 한 번이나 두 번, 많아야 세 번쯤밖에 없는 대규모의 성사(盛事).

춘보를 비롯한 젊은 사람들은 잡은 고기떼를 짊어지고 고서방네 팽나무 밑 넓은 마당으로 갔다.

춘보는 고기를 잡는 데 남보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만큼 잡은 고기를 나누는 데도 한몫 권리가 당당하다.

삼십여 개의 통과 그릇이 죽 팽나무 아래에 입들을 벌리고 늘어섰다.

공평하게 삼십여 개로 나누어지자 사람들은 아직도 끄먹끄먹 주둥이를 움직이며 물을 찾는 고기떼를 안고 제집으로 흩어져 갔다.

 

4

춘보가 제 모가치를 담은 물통엣것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거의 날이 다 밝은 새벽이었다.

어제 새벽부터 어디다가 엉덩짝조차 붙여 보기는 고사하고 고기잡이에 미쳐서 깜박 저녁을 굶은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지자 갑자기 뱃가죽이 등에 붙는 듯하더니 배가 몹시도 고파 오기 시작한다.

그것보다도 담배가 갑자기 생각난다.

, 한숨 자우. 곤허겠수!”

아내가 아침을 지으려고 보리쌀을 씻으러 우물로 나가면서 춘보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날이 다 샜는데 지금 눈붙였다 큰일나게…….”

춘보는 하품을 하면서 담뱃대에 성냥을 그어 댔다.

담배 연기를 빨아 푸하고 한 모금 내뿜으며 문밖을 맨발로 걸어나가는 아내의 발뒤꿈치를 쳐다봤다.

그 흔해빠진 고무신 한 켤레 못 사다 준 자기가 새삼스럽게 부끄러워 오자 선뜻 느껴지는 것은 어제 저녁때부터 지금까지 고생하고 잡아온 숭어 세 마리, 잉어 한 마리, 가물치 둘, 메기 하나를 장에 가서 팔아 가지고 그 돈으로 무엇보다도 먼저 아내의 고무신을 사고 싶은 생각이다.

사실 춘보는 어렸을 때부터 이 시내에서 숭어를 잡았으나 별로 먹어 보지는 못했다.

메기, 붕어, 송사리떼는 더러 풋고추를 넣고 조려먹은 일이 있으나 숭어나 잉어 같은 큰 놈은 사실 어떻게 먹어야 맛이 있을까를 생각하기보다도 장에 가지고 가면 몇십 전이나 받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숭어를 잡는 철이 대개는 추석절을 가까이 앞둔 때이므로 숭어를 잡아서 제각각 장으로 가서 팔아다 어린 자식들의 추석치레를 사가지고 오는 것은 거의 이 숭엇마을의 습관이요 풍속의 하나다.

춘보는 담뱃대를 털고 슬며시 일어나서 통 속에다 손을 넣어 한 놈을 건져 봤다.

파닥파닥 꿈틀거린다. 또 다른 놈을 건드려 봤다. 숭어, 잉어, 메기, 모조리 살아 있다.

춘보는 갑자기 용기가 뛰어올랐다.

죽은 뒤에 파는 것보다는 기왕에 팔려면은 한시라도 먼저 싱싱하게 살아 있을 때 파는 것이 한푼이라도 값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보리쌀을 씻어 가지고 들어오자 춘보는,

이걸 어떻게 헐까? 지져먹어 버릴까?”

하고 일부러 아내의 속을 훑었다.

여보! 당신두 딱허우, 죽기 전에 김참봉네 집에나 갔다 주고 와요.”

김참봉네 집에?”

춘보는 소리를 높이고 아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암만해도 콩밭에 열무를 갈지 말라는 것을 명령을 어기고 열무를 갈았기 때문에 올가을에는 정녕코 그나마 보리갈이조차 못 하고 빼앗기고 말 것 같은 위룽튀룽을 아내는 벌써 느낀 것이다.

난 장에 가지고 가 팔어 버릴 작정을 했지!”

춘보는 멍하고 통엣고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아빠!”

딸년 옥순이가 부스스 일어나 눈을 부비면서 춘보의 곁으로 대어든다.

옥순이년은 통 속에서 꿈틀하는 소리를 듣기가 바쁘게 통을 들여다보면서,

아버지 미기 잡었어? 미기 나 구우어 주어…….”

춘보는 옥순이가 조르는 바람에 메기를 꺼내어 봤다.

그래 구워 주지. 한 마리 더 팔면 몇 푼이 더 올라구. …….”

춘보는 메기를 잡아쥐고 세숫대야에다 따로 담았다.

메기놈은 숭어, 잉어놈들 틈에 짓눌리다가 제세상이나 만난 듯이 생기를 펄펄 내기 시작한다.

아내는 옥순이년을 흘기면서 메기를 다시 통에다 집어넣는다.

춘보는 어느 틈에 마루에 쓰러진 채 꼬박 한잠이 깊이 들었다.

아내가 흔드는 바람에 깨었을 때는 벌써 아침 밥상을 가져다 놓았다.

반찬이라고는 어제 콩밭에서 뽑아 온 열무 벼락절이와 된장에 풋고추, 그것뿐이다.

춘보는 어젯밤 굶은 것을 생각하고 닥치는대로 퍼먹다가 선뜻 고기가 든 물통으로 눈을 옮겼다.

저걸 김참봉에게 선사를 해? 그까짓 선사를 한다고 밭을 잡어 떼지 않을 리 있을라구…….’

춘보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내의 심경을 또 한번 그려 봤다.

밑바닥 뚫린 고무신짝 하나 없는 그로서 응당 신발을 바라고 있음직하건마는 통엣고기를 팔지 말고 밭임자 김참봉에게 선사하자는 아내의 말소리가 또 한번 귀에 울려 나오자 춘보는 어느 틈에 밥덩이가 목구멍에 걸리는 것 같았다.

 

5

춘보는 고기통을 들고 동편 산마루로 올라섰다.

갑자기 선선한 바람이 휙 하고 불어쳐 온다.

훤하게 툭 터진 동쪽 넓은 벌판, 그 벌판 한가운데 햇볕을 받아 눈이 부시는 양철지붕들이 여기저기 기와집들과 섞이어 팔백여 호가 오물오물 붙어 있는 S읍의 전모가 아슬아슬 내려다보인다.

춘보는 한참 동안을 껑충껑충 고갯길을 내려가다가 중턱 늙은 소나무 밑까지 와서 발길을 멈추고 통 속을 들여다봤다.

고기놈들은 절반이나 얼이 빠졌다. 양철통이 고개를 넘어오는 동안에 햇볕에 달아서 속엣물이 미적지근하다. 춘보는 삼거리 길을 왼쪽으로 휘어들어 약물터로 내려갔다. 미적지근한 통엣물을 따라 버리고 바위틈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을 바가지로 받아 부었다.

통 속의 고기떼는 소생수나 만난 듯이 펄떡펄떡 아가리들을 벌리고 숨들을 쉰다.

춘보는 싸릿가지를 두어 개 꺾어서 잎사귀를 훑어 통 속에 띄웠다.

춘보는 솔밭을 오 리나 헤치고 내려가 한참 만에 김참봉네 뒷동산으로 나섰다.

김참봉네 집은 좌우로 후면이 모두 팔뚝 같은 굵다란 대나무가 콩나물처럼 꽉 들어찬 한가운데 지은 지 백 년이 넘는다는 기와집이 입구자 형으로 들어박히어 있다.

춘보는 수수밭 사잇길로 뒤퉁뒤퉁 걸어나와 김참봉네 사랑방 대문앞까지 다다랐다.

어디서 별안간에 늑대 같은 한 쌍의 개가 뛰어나오더니 춘보에게 바싹 대어들며 컹컹 하고 짖기 시작한다.

춘보는 금방 개에게 물릴 것만 같다. 춘보는 고기통을 든 채 한 발자국을 물러섰다. 두 마리의 개는 더 신이 나서 사나웁게도 짖으며 바싹 대어든다.

춘보는 또 한 발을 뒤로 피하며 송곳 같은 개이빨을 경계하였다.

마침 대문이 삐드득 열리면서 김참봉이 담뱃대를 물고 나온다.

춘보는 굽신하고,

나리 안녕하십니까!”

하면서 인사를 던졌다.

김참봉은 들은 둥 만 둥 뿌루퉁한 표정으로,

응 춘본가! 뭘 가져왔나.”

하더니 바깥방 툇마루에 걸터앉는다.

, 어젯비에 옥내에서 잡은 것인데 몇 마리 안 되지만 한 때 반찬이나 해잡수라구…….”

춘보는 통을 참봉 앞에 내려놨다.

새파란 싸리잎 속에서 아직 죽지 않은 고기떼가 뻐끔뻐끔 숨을 쉰다.

! 숭언가?”

김참봉은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더니 그다지 반갑지 않은 표정을 하며 담뱃대를 돌부리에 탁탁 털고 나서,

그래, 나를 주려고 가져왔단 말이지?”

하고 힐끔 춘보의 얼굴을 노리더니 이윽고 아니꼬운 음성으로,

도로 가지고 가게. 자네네들이 나를 위해서 가지고 오는 것이라면 콩 한 쪽이라도 받겠네마는 자네부터라도 올 가을에 콩밭 떼일까 봐 미리 서두는 게 아닌가?”

춘보는 갑자기 성이 났다. 그러나 참봉의 그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춘보는,

별말씀을 다 허십니다!”

하고 시침을 떼었으나 자기 양심을 속인 것이 일변 거북하여 얼굴이 확 하고 달아올라 온다.

오늘 아침에도 자네 오기 전에 이따위 것들을 가지고 내게 찾어 온 자네 마을 사람들이 네 사람이나 있었네만 그까진 물고기 마리쯤 가져와 사정한다구 뗄 밭을 안 떼고 안 줄 논을 주겠나. 그게 다 어리석은 짓이지…… .”

김참봉은 서글픈 듯이 한바탕 껄껄 웃더니 한참 있다가 갑자기 성을 내며,

어서 가지고 가게! 그리고 당초에 자넨 내 밭 부쳐먹을 생각도 말게…….”

하고서는 담뱃대를 들고 안으로 휭 들어가 버린다.

춘보는 갑자기 후회가 떠올랐다. 공연히 아내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창피를 당하나 싶으매 물고기통을 땅바닥에 메내붙이고도 싶다.

그러나 숭어떼에겐 아무 죄도 없다고 느껴지자 더 머무를 필요도 없이 통을 다시 들고 휭 참봉 문간을 떠나서 S읍 쪽으로 걸었다.

S읍이나 진즉 갔더라면 아마 팔아 가지고 아내의 고무신 한 켤레, 고등어 한 손, 석유 십 전 어치, 옥순이년 줄 왜떡 두서너 개쯤은 사가지고 돌아섰을 일을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오늘의 자기가 어리석은 데에 화가 치밀었다.

한참 만에 춘보는 S읍으로 통한 커다란 신작로로 빠져나왔다.

늦은 여름의 한낮 볕은 바람도 불지 않고 쨍쨍 내리쪼인다.

춘보는 한참 만에 한 번씩 통 속을 들여다보곤 했다.

시간이 갈수록 고기떼는 점점 생기가 없어져 갔다. 금방 배때기를 보이고 죽어 떠오를 것만 같다.

춘보는 쏜살로 걸었다.

S읍을 오 리쯤 남긴 신작롯가에 여인숙 겸 갈보 술집으로 이름 있는 뚱보 술집을 지나치다가 춘보는 선뜻 직업심리를 움직였다.

살았을 때 팔아야 한푼이라도 더 받을 것이 생각되자 얼른 통을 술집 마루에 올려놓으며,

펄펄 뛰는 숭어, 잉어 사시유.”

하고 담뱃대를 꺼내었다.

갈보들이 둘이나 나와 통 속에 손을 넣어 숭어 몸뚱이를 들었다 놓기만 하더니,

얼마요 모다!”

하고 춘보의 표정을 훑는다.

한 마리 이십 전씩만 내시유!”

아이구, 이십 전이라니? 오늘 저녁때 읍에 가면 한 마리 오 전씩만 줘도 살걸 뭐! 안 사유.”

오늘은 웬 숭어장사가 식전부터 줄섰어!”

춘보는 자기 마을 사람들이 자기보다 훨씬 먼저 S읍에 팔러 나갔구나 느껴지자 경쟁에 뒤떨어진 조그만 울분이 스르르 치밀어 오른다.

춘보는 통을 들고 다시 S읍으로 걸음을 빨리했다.

S읍 장거리를 들어섰을 때는 벌써 점심때가 지났다.

춘보는 두서너 군데 죽은 숭어를 통에 담아 놓고 사러 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앉았는 숭엇마을 여편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춘보는 통을 한편 그늘진 길모퉁이에 옮겨 놓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의 얼굴들을 훑었다.

벌써 통 속의 것들은 모조리 배때기를 보이며 물 위에 떴다.

 

6

저녁때가 되어도 죽은 고기떼는 팔리지 않는다.

팔뚝 같은 것을 한 마리 오 전씩 해서 떨어 버리라는 어떤 떠벌이사내가 두세 번 조른 이외에는 여편네들은 흘금흘금 눈만 내리뜨고 지나쳐 버린다.

, 오 전은 더 받어야지…….”

춘보는 은근히 임자 만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춘보는 저녁때가 다 되어 어두워 올 때까지 팔지 못했다.

차라리 한 마리에 오 전씩에라도 팔아 버리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사람들은 이제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쳐 버린다.

춘보는 어두워 오는 날씨를 생각하고 일변 초조함을 이기지 못했다.

춘보는 오 전씩에라도 팔아 버리려고 이곳저곳으로 기웃거렸으나 저녁을 다 해먹고 난 사람들은 여섯 마리를 이십 전에 몰아 달라는 것이다.

춘보는 화가 치밀어 올라와 통을 메고 그대로 S읍을 나섰다.

벌써 어두워졌다.

춘본가, 같이 가세.”

어저께 한패가 되어 숭어를 잡던 박서방이 뒤에 따라온다.

여보게 자넨 팔지 못했내비그려, 냄새나는 것이…….”

자넨 얼마씩이나 받고 팔었나?”

팔 전씩 받고 팔어 버렸네 망헐것, 그것도 식전부터 골목으로 외치고 다닐 때엔 안 팔리더니 길거리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었더니만 웬 서울말 하는 여편네가 한목 사가데그려.”

언제 팔었나 그래.”

저녁때 팔었지. 그런데 춘보! 인제 물고기장사들 제발 그만들 두세…….”

옳은 말일세, 자넨 사십팔 전 받어 무엇 했나?”

고등어 두 마리 사고, 석유 좀 사고, 기 배가 고파 견딜 수 있던가. 오 전 어치 막걸리 한 사발에, 오 전 어치 국밥 사먹었지…….”

자네는 그래도 막걸리라두 먹었네그려.”

인제는 물고기 잡어도 다시는 안 팔러 올 작정일세.”

여보게 누군 그 생각이 없는 줄 아나, 재작년에 숭어 팔러 왔을 때도 반절을 썩히어 가지고 돌아갔고 작년에도 내년엔 다시 안 오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금년에 또 왔고 금년에 또 다시는 안 오겠다고 맹세했지만 내년 당하면 또 올걸 무어…….”

도대체 우리 마을 사람들이 숭어장사를 잘 못헌단 말이여. 오늘만 하더라도 한목 우밀려 너두나두 팔러 오니까 읍내 녀석들이 배 투기고 자꾸 싸게만 살려고 하지 않나!”

딴은 그렇지만 다른 것과 달러 죽어 썩어 버리면 누가 숭어 아니라 되민들 일전 한푼 주나.”

춘보는 통 속에서 올라오는 썩어 가는 비린내를 유달리 느끼었다.

, 펄펄 뛸 때 가만히 앉어서 고추장 회나 해먹을 걸 망할것 죽여서 썩히어 가지고 집으로 도루 가져가다니…….”

춘보는 박서방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솔밭고개를 넘어섰다.

이지러진 달이 뾰조롬히 떠오르기 시작했음인지 숭엇마을 서쪽 벌판이 훤하게 비추이고 산골짜기 집들은 어두컴컴한 속에서 모기 연기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춘보가 집에 들어왔을 때는 딸년은 마룻바닥에 엎어져서 자고 마당에서는 한 줄기 모깃불 타는 연기가 기어오르고 아내는 어디로 갔는지 없다.

뒷집에서 쿵덕쿵덕 맞방아 찧는 소리가 들려 온다.

춘보는 뒤안으로 돌아가서,

옥순아!”

하고 불렀다.

갑자기 절구 박자가 느려지더니 얼마 안 되어 아내의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나타난다.

성냥을 드윽 그어 마루에 걸린 사기등잔에다 불을 붙이어 놓고 난 아내는 통 속을 들여다보곤,

어쩌면 숭어를 그대로 들고 들어오.”

하곤 혀끝을 차기 시작한다.

춘보는 한마디도 대꾸를 하지 않고 밥상을 받고서는 반절이나 먹은 뒤에,

더 썩기 전에 지져나 놔두! 잔말 말고.”

하고선 아내의 잔소리를 막아 버린다.

아내는 세숫대야를 가져다 놓고 통 속의 고기떼를 죽 들어부었다.

비린 냄새와 상한 냄새가 홱 코를 찌른다.

아내는 커다란 자배기에 물을 떠다 놓고 도마와 칼을 들고 나온다.

춘보는 낡은 양철통 속에 모아 두었던 뜬숯을 손을 넣어 서너 주먹을 화로에 담아 가지고 마당으로 나왔다.

모깃불을 헤치고 나무토막이 탄 불덩이를 화로에 담아 붓고 춘보는 입으로 훌훌 뜬숯을 불었다.

뜬숯불이 새빨갛게 피어오르자 아내는 도마질을 하다가 말고 한쪽 손잡이 없는 남새 냄비에 간장을 따라 가지고 나온다.

토막을 쳐서 끓는 간장국에 집어 터뜨렸을 때는 썩은 생선 냄새가 더한층 코를 쏘았다.

춘보는 이맛살을 찡그리며,

제기, 펄펄 뛸 때 지져먹어 버릴 것을…….”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문밖 고추밭으로 나갔다.

이지러진 달빛이 이제야 숭엇마을에도 비치기 시작한다.

춘보는 달빛에 비추이는 풋고추를 두어 주먹 따가지고 들어왔다.

춘보는 꼭지를 따는 둥 마는 둥 씻지도 않고 냄비 뚜껑을 열고 집어넣었다.

아 고추를 씻지도 않고 넣우?”

아내가 질색을 하였으나 춘보는,

그까짓 썩은 고기 조리는데 애써 씻어서 무얼 히어…….”

하고 마루로 어슬렁어슬렁 기어올라 목침을 벤 채 어느 틈에 잠이 들어 버린다.

 

7

이튿날 아침 춘보의 아내는 썩은 숭어 조림을 밥상 한가운데 올려놓았다.

춘보는 아내와 딸년 셋이 조림 냄비를 둘러앉아 꽁보리밥을 씹었다.

춘보는 먼저 조림 국물을 떠먹었다. 짠 간장에서 퀘퀘하고 고리한 냄새가 코를 은근히 찌른다. 이번은 살을 한 토막 찍어먹었으나 마찬가지로 텁텁하고 타분한 냄새가 입속을 망쳐 놓았다.

아내는 꽁지 토막이 덜 상했다고 춘보의 앞으로 가리어 놓는다.

어린 딸년은 맛도 모르고 썩은 살토막을 밥 퍼먹듯이 집어먹는다.

춘보는 고추를 몇 개 가려먹고 꽁지 토막에서 살을 발라 딸년의 밥그릇에 던져 주곤 했다.

딸년은 가운데 토막을 셋이나 먹고 꽁지 토막을 둘이나 발라먹고도 또 먹으려고 입맛을 다시기 시작한다.

춘보는 딸년의 먹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옥순아! 밥허구 같이 먹어야 하는 거여.”

하고 밥그릇에다 꽁지 한 토막을 내어놓고 조림 냄비를 상 밑으로 내려놓았다.

워낙 한참에 조그만 창자에다 네댓 토막이나 먹어서 그런지 딸년은 밥도 잘 먹지 않고 숟가락으로 밥알을 세고 있다.

먹기 싫거든 그만 먹어라 이년아!”

춘보의 아내는 딸년의 밥그릇을 빼앗아 퍼먹어 버린다.

딸년은 멍하고 어미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스르르 상머리를 일어선다.

딸년은 일어서면서 장구통같이 팽팽한 뱃가죽을 불룩 내밀며 띵구적 걸음을 걸었다.

춘보는 선뜻 놀랐다.

저런! 저년 배가 너무 부르구먼그리여!”

아내가 따라 놀란다.

조고만 게 비린 것을 너무도 빠치니깨!”

춘보가 맞장구를 친다.

밖에 나가 뛰어다니다 와!”

아내는 딸년의 등을 밖으로 내민다.

딸년은 마루를 내려서더니 띵구적띵구적 밖으로 걸어나간다.

춘보는 아침을 먹고 건너편 산비탈 황토배기에 뿌렸던 김장배추씨가 이번 비에 떠내려가지나 않았나 하고 논둑을 끊고 건너갔다.

논두렁에 수그린 벼 모가지엔 아직 아침 이슬이 대롱대롱 매달려 반짝인다.

춘보는 황토배기 손바닥만한 밭고랑 모퉁이에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새파란 담배 연기가 높직한 하늘로 스르르 퍼져 버린다.

어디서인지 아침 매미 우는 소리가 멀리 들려 온다.

춘보는 쭈그리고 앉아서 소낙비에 사태가 나 앙상하게 잔돌만 내려깔린 밭뙈기를 내려다봤다.

배추씨는 다 흘러가 버렸는지 싹터 나는 놈이 여기저기 몇 개뿐이다.

춘보는 배추씨 이십 전 어치를 헛뿌렸구나 했다.

갑자기 또 배추씨를 사다 뿌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끼자 어저께 김참봉이 자기에게 준 모욕을 미루어 정녕 손바닥만한 이 밭뙈기에도 배추가 나면 한 치도 자라기 전에 뽑으라고 야단칠 것 같은 불안이 스르르 떠오른다.

춘보는 이 밭뙈기를 만들기 위해서 세 새벽과 네 저녁때를 괭이와 갈퀴를 들고 허리를 굽히었다.

물론 임자인 김참봉의 허락을 맡은 것은 아니었다. 김참봉에게 허락을 받으러 갔자 댓바람에 틀려 나자빠질 줄을 안 춘보는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간에 덮어놓고 밭을 몰래 만들고 씨도 몰래 뿌린 것이다.

물론 춘보의 집 근처에 부쳐먹을 만한 채전 밭뙈기가 한 개라도 춘보의 것이 있었다면 그는 이런 쑥스러운 모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춘보는 배추씨를 한 봉지 사려면 또다시 이삼십 전이 필요함을 느낀다.

그러자면 오늘 내일 사이에 또 장작장사를 두어 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춘보는 그 길로 바로 지게를 지고 서쪽으로 오 리쯤 떨어진 수렁배미 세 마지기 논둑으로 갔다.

수렁배미 세 마지기 논은 황토배기 너머 오주사의 논인데 금년 처음으로 춘보가 부치게 되었다.

춘보가 부치기 전에는 오주사네 나락 창고를 지어 준 일이 있는, 목수일로는 이 근방에 제법 알려져 있는 춘보의 외사촌 홍서방이 부치던 것인데 작년 가을 홍서방이 오주사네 나락 창고를 옆으로 네 간통을 늘려 달라는 주문을 받고 창고 지을 데로 뻗질린 감나무 가지를 베러 올라갔다가 다리를 헛디디어 두 길이 넘는 데서 옆으로 떨어져 다리병신이 된 뒤로는 금년부터 춘보가 맡게 된 것이다.

춘보는 우여하고 한 떼의 새를 쫓고 나서 바지게에서 낫을 꺼내서 한 뼘쯤 자란 논두렁 풀을 베기 시작했다.

한 바지게를 베어 담고 나니 앞뒤에 벨 풀이 아무것도 없다.

집에 돌아와 마당에 부리고 나자 아내가 뒤안에서 갈퀴를 들고 나와 갈퀴발로 풀을 헤쳐 널면서 조금 근심스런 어조로,

옥순이년 좀 봐, 아침에 지진 것을 그리 처먹더니 기여 맥혀서 누웠구만.”

하고 춘보의 얼굴을 살핀다.

소금이나 먹이지 왜.”

춘보는 담뱃대를 빨며 마루 위로 올라섰다.

딸년은 방 아랫목에 쓰러진 채 얼굴빛이 노래 가지고 칭얼칭얼 울기 시작한다. 눈이 벌겋고 눈곱이 끼었다.

춘보는 딸년의 뱃가죽을 만져 봤다. 아침 먹은 것이 내려가지 않은 것 같다.

여기가 아프냐? 옥순아!”

춘보는 가슴 밑을 가만히 누르면서 딸년의 얼굴을 살피었다.

딸년은 갑자기 이맛살을 찡그리고 울음을 터뜨리며 아프다는 표정을 한다.

춘보는 부엌으로 나와서 접시에 소금을 반 주먹쯤 담아 가지고 나오며 아내에게 냉수를 떠오라고 했다.

아까도 소금을 먹였는데…… 온 어린년이 지랄만 하지 소금을 먹어야지…….”

춘보는 소금 접시와 냉수 사발을 곁에 놓고 딸년을 일으켰다.

딸년은 벌써 기미를 알았던지 발버둥만 치고 일어나지 않는다.

춘보는 강제로 부둥켜안고 아내에게 먹이라고 명령했다. 딸년의 몸은 불덩이같이 끓는다.

싫여 싫여 쩌, 안 먹어…….”

딸년은 발버둥을 치며 냅다 울기 시작한다.

춘보는 한 손으로 딸년의 두 손을 꼭 붙들고 한 발로 다리를 누르고 한 손으로는 입을 벌리었다. 이 틈에 아내는 소금을 털어 넣고 냉수를 퍼부었다.

갑자기 울음 소리가 그치더니 으그르르 하고 소금물이 목구멍에서 끓어 오른다.

소금물은 딸년의 비위를 거슬렀던지 갑자기 바르르 떨면서 두 눈으로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는 으악하고 입을 벌린다.

, 게워라, 요강 요강!”

춘보는 얼른 딸년의 양편 옆구리를 달랑 들고 마루로 나갔다.

아내가 요강을 허둥지둥 찾아다 대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딸년은 요강이 오기 전에 마룻바닥에 아침 먹은 것을 흠뻑 게워 놓았다.

썩은 숭어 비린내가 그대로 코를 찌른다. 퀴퀴하고 타분하고 시척지근한 냄새는 갑자기 춘보의 비위를 뒤집어 놓는다.

딸년은 요강 앞에서 또 한번 으악하며 게우려고 악을 쓴다. 춘보는 주먹으로 가만가만 딸년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누런 똥물과 섞이어 꽁보리쌀이 여남은 개가 그대로 살아 나온다.

춘보는 눈살을 찌푸리며 공연히 썩은 숭어를 먹이었다고 후회하였다.

춘보는 날된장에 풋고추로 냉수에 꽁보리밥을 한 술 뜨고는 딸년을 굶기라고 이르고 빈 지게를 지고 황토고개를 넘었다.

오주사네 장작을 한 짐에 육십 전 외상으로 짊어지고 춘보는 그 길로 S읍으로 향하였다.

어저께 하루 종일 헤매다가 숭어도 팔지 못하고 그대로 썩히고 돌아온 S, 춘보는 오늘 또 장작이 얼른 팔리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적이 불안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8

다행히 장작은 칠십오 전에 S읍 가는 중간 술집에서 팔리었다. 십오 전이 남았다.

춘보는 쏜살로 S읍으로 들어가 배추씨를 십 전 주고 한 종지 사고 오 전으로는 절인 멸치 부스러기를 샀다.

춘보가 나뭇값 육십 전을 갚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벌써 어두운 밤이다. 부엌, 방 안이 캄캄하다.

옥순아!”

하고 마당에 들어서며 불렀으나 아무 소리가 없다. 부엌에서 무엇이 그릇을 만지는 소리가 난다.

춘보는 어둠 속으로 부엌을 흘기었다. 어렴풋이 부엌에 어른거리는 것은 딸년 옥순이의 그림자다.

옥순아!”

춘보는 등잔에 불을 켜려고 얼른 성냥을 그어 댔다.

이 순간 옥순이의 그림자가 부엌에서 또렷이 나타나더니 갑자기 하고 울기 시작한다.

이년아! 뭘 어두운데 들어가 처먹고 그러냐? ?”

춘보는 선뜻 아침에 남은 썩은 숭어 지짐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 미기 대가리 먹다가 가시에 걸렸구나.”

춘보는 얼른 딸년을 끌고 나와 입을 벌리고 성냥을 그어 댔다. 입에서 비린내가 난다.

가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딸년은 숨도 바르게 못 쉬고 침도 못 넘기고 말도 못 하고 연방 캑캑캑 소리만 토하면서 열 손가락을 사방으로 내흔들며 발광하기 시작한다.

이걸 어떻게 하나.”

춘보는 등줄기에서 마른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춘보는 달음질을 쳐 뒤꼍으로 가서는 아내가 혹 뒷집에서 품앗이 일이나 하지 않나 하고 불렀다.

아내는 두 집 건너 딴 이웃에 가서 품앗이 다림질을 하고서 한참만에야 왔다.

딸년의 목구멍에 걸린 숭어 가시는 좀처럼 나오지 않아 거의 위험상태에 떨어진 것 같다.

그 빌어먹을 놈의 썩은 숭어 조림은 안 먹을라문 내버리든지 않구 놓아 두었다가 왜 이 지경을 기여 맨드는 기여!”

망할 년 같으니 점심을 굶겼드니 배지가 출출하니까 부엌에 들어가 뒤진 게루그만.”

그러나저러나 가시를 어떻게 빼내나…… 제기…… 망할 놈의 숭어를 왜 잡었든고 내가.”

춘보는 일변 후회를 하면서 또 한번 하는 딸년의 목구멍을 성냥을 그어 대고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춘보의 눈에는 비치지 않았다.

아내는 부엌에서 무엇을 주먹 안에 꼭 쥐고 나오더니,

이년아 이걸 씹지 말구 꿀떡 생켜라.”

하고는 삶은 보리쌀 뭉친 것을 입안에 쑥 밀어넣는다.

풀기가 없는 보리쌀덩이는 금방 입안에서 부스스 흩어져 버린다. 여전히 가시는 완고하게도 넘어가지를 않았는지 딸년은 또다시 하고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며 손가락을 흔들면서 엉엉하고 울음보를 터뜨리었다.

춘보는 마른 땀이 변하여 진땀이 흘렀다. 가시를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첫째, 딸년보다도 보는 자기와 아내가 금방 미치고 말 것 같다.

아내는 감자를 또 한쪽 딸년의 입속에 억지로 밀어넣으며,

삼켜라 꿀떡 꿀떡.”

하고 눈살을 찡그리며 힘을 주었다.

딸년은 울음을 그치고 두 눈을 감았다 뜨며 감자를 씹지도 않고 꿀떡 삼킨다.

넘어갔냐?”

춘보는 거의 질식할 것같이 숨을 쉬면서 딸년의 대답을 기다렸다.

딸년은 마찬가지로 소리를 연발하며 질색을 한다.

춘보는 화가 치밀고 답답증이 나서 골목으로 뛰어나왔다. 팽나무 밑에서 고서방을 만나 가시 걸린 데에 무엇이 약이냐고 물었다.

초를 한두어 숟갈만 먹이면 가시가 삭지…….”

고서방은 태연하게 말했다.

춘보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초를 얻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 집에도 초가 없다.

춘보는 옆산 너머 김참봉네 집에나 앞산 황토배기 너머 오주사네 집에는 응당 부잣집이니까 몇 해 묵은 초라도 있을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춘보는 김참봉네 집에는 또다시 찾아가기가 싫었다.

춘보는 조그만 양재기를 한 개 들고 부리나케 오주사네 집으로 향했다.

오주사네 집은 벌써 안으로 대문이 굳게 잠겨져 있다.

춘보는 그제야 밤이 제법 깊어졌음을 깨달았다.

사랑방 대문짝도 여전히 잠겨져 있다.

춘보는 염치불고하고 대문짝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안에서 개가 컹컹 하고 어제 김참봉네 집처럼 두 놈이 한목 짖어 덤빈다.

대문짝을 아무리 흔들어도 안에서 어느 놈 하나 거 누구냐는 소리 한마디 하지 않는다.

춘보의 생각에는 이 집안 사람들이 혹은 자기를 강도로나 알고 겁들이 나서 그러나 하여,

여봅시요, 여봅시요하고 부드러운 발음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 소리가 없다.

춘보는 최후로 있는 힘을 다하여 문짝을 사정없이 흔들면서,

여봅시요!” 하고 좀더 큰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누구인지 못마땅한 듯이,

누구야?” 한다.

저 대단 미안합니다만 금방 어린애가 하나 다 죽어 가는데 댁에 먹는 초가 좀 있으면 좀 줍시사고요…….”

춘보는 공손히 입을 열었다.

? 없어. 누군데 아닌밤중에 대문을 걷어차고 야단이여?”

글쎄 염체불고하고 왔습니다.”

없어, !”

춘보는 화가 불같이 치밀었다. 춘보는 이제는 정녕코 다 키운 딸년 하나를 죽이나 싶은 생각이 스르르 머리를 지나치자 갑자기 무릎이 파각파각하며 걸음이 걸어지지 않는다.

춘보가 빈 양재기를 들고 돌아왔을 때엔 딸년은 지쳐서 입을 벌린 채 자빠져 잠이 들었고 아내는 초조한 표정을 하며 말없이 빈 양재기를 부엌으로 가져간다.

춘보는 잠자는 동안에 혹시 걸린 뼈다귀가 삭아 내려갔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하고 한숨을 쉬었다.

9

밤은 어느 때나 되었는지 춘보가 선뜻 잠이 깨었을 때는 사방은 고요하고 옥내에 물 흐르는 소리만이 어렴풋이 들리고 딸년의 끙끙 앓는 소리가 방 안 공기를 깨뜨린다.

춘보는 정신을 차리었다.

이지러진 달빛이 모기장을 바른 문 틈으로 기어들어와 끙끙거리는 딸년의 얼굴을 이상하게도 푸르게 비춘다.

춘보는 가만히 손바닥을 펴서 딸년의 뱃가죽을 만져 보았다.

뱃가죽은 굉장히 팽팽하다. 보리쌀, 삶은 감자, 그것들을 씹지도 않고 삼킨 것이 또 막히지나 않았나 싶으며 춘보는 일변 잠이 달아나 버리고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얼굴과 이마를 만지어 보았다.

얼굴 전체가 불덩이처럼 끓고 귀밑으로 땀이 주르르 흐른다.

딸년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온몸을 뒤틀며 깜짝 놀라기 시작한다.

춘보는 기가 막히었다. 어느 틈에 아내가 푸스스 일어난다.

어떻게 해여 이걸…….”

춘보는 허둥지둥 고의를 추켜 입고,

참기름이라도 있어야지 빌어먹을!”

혼자 중얼대며 문밖으로 나왔다. 이웃집은 모조리 잠이 들었다.

몇몇 친구를 두드려깨워 참기름을 뒤졌으나 한 방울도 구하지 못했다.

딸년은 맥이 풀어진 두 눈을 무섭게 뜨고 손발을 뒤틀며 입술을 앙다문 채 아래턱을 까불기 시작한다.

춘보는 전신에 있던 힘이 홱 하고 다 풀려 버리는 것 같다.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얘가 경기를 하내비 이걸 어쩌나…….”

하면서 뒤틀리는 두 팔과 까불리는 아래턱을 두 손으로 눌렀다.

춘보는 재작년에 세 살 먹었던 큰딸년을 여름과 가을 사이에 경기로 죽인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오자 옥순이년마저 죽이지나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과 겁이 홱 달려든다.

아내가 어디서인지 아주까리기름을 두어 숟가락 얻어다가 들까부는 아래턱을 벌리고 퍼먹였으나 목구멍에 채 넘어가지도 않아 기름은 그대로 주르르 밀려 흘러나와 버린다.

춘보는 금방 미칠 것 같았다. 숭어새끼 때문에 기여 딸자식을 죽이고 마는가 보다 싶으매 갑자기 이 세상이 이가 갈리었다.

펄펄 뛸 때 지져먹었어도, 아니 펄펄 뛸 때 S읍으로 가져갔어도 곧 팔렸을 것을…… 아니 썩은 그놈을 길거리에다 내버리고만 왔어도 이런 화근을 겪지 않을 것을…… 도대체 김참봉네 집안에만 선사하러 들르지 않았어도 관계치 않았을 것을…… 아니 아침에 딸년을 먹이지나 말았어도, 아니 맛있게 먹는 양이 가엾어서 그대로 제 마음껏 먹도록 놔두지만 않았어도, 아니 저녁때 장작 팔러 S읍에 또다시 가지만 않고 집에 있었어도, 아니 아내가 품앗이 다림질을 가지만 않았어도, 아니 아내가 썩은 지짐을 아껴 두지 말고 내버리기라도 했어도…… 이런 화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을…… 하고 후회 가닥이 한꺼번에 얽히어 떠올랐다.

아내는 여전히 뒤트는 딸년의 팔다리를 꽉 붙들고,

옥순아! 옥순아!”

하고 불렀으나 딸년은 대답할 생각조차 없이 더한층 다 풀어진 얼빠진 두 눈을 부릅뜨면서 두 입술을 앙다문 채 아래턱을 들까분다.

빌어먹을놈의 밤은 왜 이리 안 새누. 원 날이라도 얼른 밝아야 어째 보지…….”

춘보는 문짝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총총 빛난다.

어디서 나래를 턱턱 치며 닭이 꼬끼요하고 운다.

빌어먹을 인제야 첫닭이 우는구만.”

춘보는 커다랗게 한 줄기 숨을 내쉬고 또다시 딸년 곁으로 가 앉았다.

이 불길한 새벽은 춘보에겐 지루한 악몽처럼 더한층 더디 새었다.

먼동이 훤하게 터져 올랐을 때는 벌써 딸년은 하던 경기조차 할 힘을 잃어버리고 전연 혼수상태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춘보는 우는 아내를 달래면서 의원을 데리러 간다고 뛰어나간다.

숭엇마을에는 원래 의원이 없다.

황토배기 너머 오주사네 마을과 옆산 왕솔밭 너머 김참봉네 동리에는 의원이 산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의원이 숭엇마을 사람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얼굴이 기다랗고 키가 크고 족제비 털빛 같은 초라니 수염이 몇 개 나지 않은 쉰이 넘은 박주부는 김참봉네 전용의다. 언제든지 아랫배를 띵 내밀고 텁수룩한 수염을 위아래로 쓰다듬으며 망건에 갓을 쓰고 뚱그적거리며 걷는 노생원이란 의원은 오주사네 전용의다.

춘보는 첫딸년 때에 김참봉네 전용의인 박주부를 찾아갔으나 경기를 하면 죽느니라고 환약 한 개 얻지 못하고 돌아온 일이 있다.

춘보는 이를 갈면서 어제 밤중에 넘어갔던 황토배기를 허둥지둥 또 넘어갔다.

노생원은 아직도 사랑방에서 자고 있다. 일어나지도 않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경기? 어렵네. 약 쓸 생각 말고 가게. 게다가 가시에 걸렸으면 목도 부었을 터인데…….”

노생원은 그대로 옆으로 돌아누우며 또 잠을 들이려 한다.

춘보는 금방 대어들어 주먹으로 골통을 한바탕 갈겨 주고 싶은 생각이 불같이 일어났으나 그 동안에 암만해도 딸년이 아주 까무러져 버리지나 않았나 싶은 걱정이 뒤를 치밀어 올라왔기 때문에 이를 갈면서 허둥대고 또다시 산을 넘었다.

집에 왔을 때는 아내는 어린 딸년을 붙든 채 흑흑 느끼고만 있다.

딸년은 아주 정신을 잃어버렸다. 딸년의 숨소리는 점점 속해져 갔다.

아내는 기어이 목을 놓아 아이구하고 울음보를 터뜨리었다.

딸년은 갑자기 외마디 숨을 크게 한번 쉬고는 손을 부르르 떨면서 또 한번 얼이 다 빠진 두 눈을 무섭게 부릅뜨면서 삐그르륵 한 무더기 똥을 지리고 나더니 어느 틈엔지 스르르 그 큰 눈을 내리감는다. 이윽고 유달리 크게 딸꾹외마디 숨소리를 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춘보는 미친 사람처럼 허둥댔다.

춘보의 눈앞엔 어둠과 절벽이 번차례로 지나칠 뿐이다.

춘보는 뻐드러진 딸년의 곁에 일 초 동안이라도 더 앉았기가 싫었다.

춘보는 문짝을 홱 밀치고 마루로 툭 뛰어나왔다.

어느 틈에 춘보의 발등 위엔 손바닥만한 실겅에서 어제 사온 배추씨 담은 바가지가 울리어 떨어진다.

배추씨는 사방으로 퉁겨져 버리고 발등이 찌르르 아파 오기 시작한다.

춘보는 발길로 배추씨 바가지를 걷어찼다.

홱 하고 공중에 날린 바가지는 마당에 떨어지며 팩 소리를 내고는 두세 쪽으로 쪼개진다.

춘보는 그 길로 뒤안으로 돌아갔다.

갑자기 숭어 잡던 싸리발이 구렁이처럼 보기 싫어진다.

그는 어느 틈에 오른손에 낫을 들고 싸리발을 낱낱이 끊어 꺾어 버리었다.

낫자루를 붙든 주먹이 저절로 떨리며 이가 악물어진다.

춘보의 눈앞에는 갑자기 어저께 밭을 떼일까 봐 숭어통을 메고 김참봉네 집에 갈 때의 광경과 김참봉이 아니꼬운 표정으로 그까짓 것 가지고 왔다고 뗄 밭을 안 뗄 줄 아느냐?’던 음성이 스르르 귓전을 울리고 지나친다.

그렇다! 내가 어리석었다.’

춘보는 끄덕끄덕 그 광경을 만든 자기 자신이 더러웁기 짝이 없다고 느끼어지자 또 어느 틈에 어젯밤 오주사의 , 없어!’ 하고 외치던 싸늘한 소리, 또다시 식전에 약 쓸 생각도 말게하고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던 노생원의 몰인정한 얼굴들이 번차례로 나타난다.

춘보는 멍하고 잠깐 동안을 정신을 잃은 채 굴뚝 모퉁이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다.

춘보는 갑자기 주먹에 기운을 올린 채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춘보의 눈앞에는 앞산과 옆산이 하늘로 훨훨 올라갔다가 금방 땅에 떨어져 부서진다.

옥내가 토막토막 끊기어 공중으로 날았다가 다시 뭉치어 커다란 물덩이가 되더니 금시에 수천 수만 마리의 숭어, 잉어 떼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춘보에게 대어든다.

그리고는 갑자기 온 세상이 검게도 붉게도 보이더니 김참봉, 오주사, 박주부, 노생원 얼굴들이 뱅뱅 더돌아 눈앞을 어지럽게 한다.

춘보는 고함을 지르면서 두 팔을 벌리고는 뱅뱅 떠도는 네 얼굴을 잡으러 논두렁을 끊고 산으로 산으로 뛰어갔다.

한참 만에 춘보는 자기 몸이 제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음이 스르르 느껴지자 정신이 선뜻 들더니 바로 자기가 김참봉네 사랑방 기둥에 붙들린 채 수많은 동리 사람 가운데 싸이어 있게 된 걸 깨달았다.

춘보는 선뜻 바로 몇 분 전 자기가 이 집에 뛰어들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어렴풋이 느끼어지자 갑자기 본정신이 들며 느껴지는 것은 떨리어지는 공포뿐이었다. 절벽 같은 무서움뿐이었다.

춘보는 또다시 어느 틈에 본정신이 사라지며 하늘이 갑자기 무너지고 곁에 선 마을 사람들이 우글우글 숭어새끼로 변하여 뛰기 시작하는 속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무엇인지 한바탕 지껄이었다. 무엇인지 한바탕 너털대고 껄껄 웃어젖히었다.

출전:비판(19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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