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관 약전
조동관 약전
성석제
1
똥깐의 본명은 동관이며 성은 조이다. 그럴싸한 자호(字號)가 있을 리 없고 이름난 조상도, 남긴 후손도 없다. 동관이라는 이름이 똥깐으로 변한 데는 수다한 사연이 있어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똥깐이와 한 시대를 산 사람들이 똥깐이를 낳고 똥깐이를 만들고 똥깐이를 죽이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일부로 평범한 사람 조동관을 자신들과는 다른 비범한 인간 똥깐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똥깐이 살다간 은척읍에서 세 살 먹은 아이부터 여든 먹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동관을 칭할 때 똥깐이라고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똥깐이 보고 듣는 데서는 아무도 그를 동관으로도, 똥깐으로도 부를 수 없었다.
똥깐은 이란성 쌍둥이의 동생으로 태어났는데 죽을 때까지 형 은관과 대략 일천 회 이상의 드잡이질을 벌였다. 그 드잡이질은 똥깐의 타고난 체격에 담력과 기술, 자잘한 흉터를 안겨주며 그가 은척 역사상 불세출의 깡패로 우뚝 서는 바탕이 되었다. 은관은 성격이 비교적 온건하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걸 좋아해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이미 합기도 삼 단, 유도 사 단, 태권도 삼 단의 면장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결과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조십단>이었다. 나쁘게 발음하면 그대로 욕이 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은관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 그 별명으로 부르지 않았고 없는 데서도 혹시 신출귀몰하는 그들 형제가 주변에 없나 살피고 나서 <똥깐이가 조씹다니하고 술 먹다가 전당포 주인을 깔고 앉은 사연> 등을 즐겼다.
그런 이야기가 은척읍 사람들에게 재밋거리가 된 것은 그때 은척에 살던 사람들 대부분이 텔레비전이나 신문, 라디오를 보거나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볼 돈도 없었고 볼 생각도 없었으며 볼 수도 없었다. 따라서 은관 형제의 이야기는 그들의 뉴스였고 연재소설이자 연속극이며 스포츠였고, 무엇보다도 신화였다.
똥깐은 성장함에 따라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개망나니짓으로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는데 열다섯 살 때부터 외상 안 주는 집 깨부수는 일은 다반사요, 외상으로 밥 먹고 외상으로 반찬 먹고 외상으로 오입하고 외상으로 차 마시고 게트림하고 외상으로 만화 보고 외상으로 다른 아이들을 두들겨 팬 뒤 외상으로 약을 사주었다. 그 와중에서 읍내 사람들의 뇌리에 동관을 결정적으로 똥깐으로 각인시킨 일은 이른바 <역전 파출소 단독 점거 사건>이다. 똥깐은 언젠가부터 자신이 태를 묻고 터를 잡은 곳이 좁다고 느끼게 되면서 점차 활동 반경을 넓혀나갔다. 거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기차였다. 똥깐의 집은 은척의 근대화의 상징이라 할 만한 기차역 바로 앞에 있었다. 기차역 주변은 은척에서 가장 번화하고 시설이 잘된 곳인데도 불구하고 사시사철 수챗물이 질질 흐르는 도랑이 곳곳에 복병처럼 숨어 있었고 바지도 입지 않은 새카만 아이들이 누런 똥을 뻐득뻐득 싸대곤 했다. 비가 오면 진창이 되는 도로 옆에 야트막이 처마를 잇닿아 지은 가게들에선 매일 먼지와 파리가 날아다녔고 그 뒤 가난의 꿀물이 졸졸 흐르는 골목골목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이놈아, 날 죽여라, 살려라 하는 고함과 악다구니, 배곯은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똥깐은 기차역 앞 석탄 하치장 한구석을 본거지로 삼아 거기서 쪼그리고 앉아 화투도 치고 윷도 놀고 술추렴도 하다가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허리를 쭉 펴고 하품을 한 다음 어슬렁어슬렁 기차를 타러 갔다. 똥깐은 태어나서 한 번도 표를 산 적이 없었고 표를 살 줄도 몰랐으나 역무원들 누구도 감히 똥깐을 제지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역무원이 은척에 살고 있고 처자와 함께 다만 며칠이라도 더 살아야 하는 한. 기차를 타면 똥깐은 일단 기차 통로를 오가는 행상에게서 외상으로 삶은 계란을 한 줄 받아들고 첫번째 칸에서 마지막 칸까지 천천히 시찰했다. 가끔 가난한 소매치기가 역시 가난한 승객의 주머니를 털다가 들켜서 조그만 주머니칼을 휘두르는 일이 있었고 술 취한 승객끼리 힘없는 주먹질로 서로의 코피를 터뜨리는 일도 있었지만 똥깐의 관심은 그런 데에 있지 않았다. 똥깐은 이미 여자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는 제 또래의 여학생들이 한동안 좋은 표적이 되었다. 생애를 통틀어 학교를 다닌 기간이 세 달도 안 되는 똥깐은 뒤로 머리를 질끈 땋고 풀을 먹여 빳빳하고 새하얀 칼라에 검정 교복을 입은 새침한 여학생들을 신기한 애완동물로 생각했다. 똥깐은 독사처럼 머리를 꼿꼿이 들고 통로를 지나가며 쥐구멍을 찾는 여학생들의 턱을 일일이 들어 감상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그중 유난히 새침하고 도도하고 제 꼴값을 하려던 몇몇은 냄새 나는 기차 변소에 끌려가 난행을 당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소문뿐, 누가 사실을 확인해 보랴. 그러나 똥깐은 곧 풋내 나는 여학생들에서 공단이 있는 인근 도시의 제사(製絲) 공장, 신발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스무 살 남짓한 성숙한 처녀들에게 관심의 눈길을 옮겨갔다. 처녀들은 주말이나 명절에 집에 다니러 왔다가 휴일 늦은 오후에 기차를 타고 도시의 기숙사며 자취방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그런 처녀들로만 주말 오후의 기찻간이 꽉 차곤 했다. 도시풍의 번쩍이는 나일론 옷에 슬슬 화장을 하기 시작한 처녀들을 사냥하기 위해 똥깐은 주말이면 은척을 비웠다. 똥깐이 없는 주말에는 그의 형 조십단이 오토바이를 붕붕거리며 은척 읍내를 휩쓸고 다녔다. 하여튼 똥깐이 이 년 이상 주말을 기차에서 보내는 동안 정복한 진짜 처녀만 해도, 호적상 처녀의 수는 훨씬 많았을 테지만, 백 명이 넘는다는 전설을 낳았다.
2
그러나 하늘이 무심치 않아 천하의 처녀 사냥꾼 똥깐에게도 천적이 나타났다. 그런데 처녀 사냥꾼의 천적은 처녀가 아니었다. 언뜻 보아도 스무 살은 훌쩍 넘어 보이고 떠꺼머리 총각 백 명은 능히 그의 치맛속에 돌돌 말아 다닐 것처럼 보이는 그 여인은 은척 사람들이 구경도 못한 알록달록한 양산을 쓰고 촌놈 가슴을 활랑거리게 하는 요란한 화장품 냄새를 풍기며 똥깐의 팔에 매달려 한들한들 은척에 나타났다. 도시에서 뭇 사내깨나 홀렸을 듯, 그러고서 뭇 사내의 손길에 농락당하여 골병이 든듯, 닳고 때묻었으나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약해 보이고 앙칼져 보이면서도 수심이 깃들인 눈초리의 그 여인이 왜 똥깐을 따라 은척까지 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여하튼 똥깐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 여인과 다정히 팔짱을 끼고 늙은 홀어머니와 덩치가 남산만 한 제 형 은관이 사는 단칸짜리 방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그 골목 특유의 악다구니 소리와 한숨 소리가 울려 퍼진 후 똥깐은 들창이 달린 조그만 방에 신방을 차렸다. 홀어머니와 은관은 비루먹은 나귀를 팔아 나귀가 들어 있던 마굿간에 방을 들여 살게 되었다.
그러기를 몇 달이나 했을까. 주말이고 주중이고 기찻간이고 읍내고 간에 똥깐을 본 사람은 없었다. 매일 간장 종지만큼의 코피를 쏟아가며 방 안에서만 지낸다는 소문이었다. 똥깐이 보이지를 않으니 그전에는 그렇게도 똥깐을 꺼림칙해하던 읍내 사람들 사이엔 어쩐지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변소를 하루에 한 번 가는 게 정상이듯 하루 한 번 똥깐이 설치고 다니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은 은척에서는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조십단이 부지런히 오토바이를 타고 읍내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나름대로 맹활약을 했지만 똥깐에 비하면 어림도 없었다. 날파리와 벌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고대하던 대로, 몇 달 동안의 고요와 평화가 모이고 썩어 부글부글 끓어오른 가스가 한꺼번에 활화산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똥깐이 포효하며 방안에서 뛰어나왔는데 그 전말은 이렇다.
시어머니가 될 뻔한 똥깐의 홀어머니가 똥깐이 낮잠을 자는 사이 며느리가 될 뻔한 여인에게 빗자루를 거꾸로 내민 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 얘야. 너는 메주 냄새 나는 어두운 방에서 매일 먹고 자고 놀고 하는 게 지겹지도 않니. 이리 나와서 빗자루질이라도 해 보거라. 얼마나 몸이 상쾌해지는지 모른단다. 그러고도 미진하면 걸어다녀.
아이, 씨팔. 안 그래도 구들장만 지고 누워 있으니 몸에 좀이 슬 지경인데 저 노인네가 노망을 했나, 뭘 잘못 처먹었나. 오냐, 잘됐다. 내가 이런 집구석 아니면 갈 데가 없어서 있는 줄 아나 보지. 야, 똥깐아, 빨리 일어나! 누나 간다잉?
그때 잠에 취해 있던 똥깐의 대답인즉.
- 그래? 누나, 잘 가아. 그동안 즐거웠어. 또 만나.
그런데 그걸 달리 들은 사람이 또 있으니.
- 이년이 오냐오냐 했더니 어디를 기어오르고 있어. 가긴 어딜 간다는 거야. 다리몽뎅이를 확 분질러버릴라.
엄마, 한쪽에 좀 찌그러져 있어. 둘 다 입 다물어, 안 다물어! 다시 또 낮잠 깨워봐. 그땐 줄초상날 줄 알어.
그러고선 다시 코를 골며 잠에 빠졌다던가. 그러나 고부 사이가 될 뻔한 두 여인 사이의 전운은 가라앉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될 뻔한 사람은 소리도 없이 방에 들어와 여인을 꼬집고 할퀴고 머리를 쥐어뜯었고 며느리가 될 뻔한 사람도 지지 않고 마주 손톱을 세워 덤벼들었다는데, 경험이라는 면에서는 시어머니 편이, 날카로움과 힘에서는 며느리 쪽이 각각 우세를 차지해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고요한 싸움이 몇십 분은 계속되었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얼굴에 멍이 들고 삼단 같은 머리카락이 한줌은 뜯겨나갔고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이가 세 대 흔들리고 한동안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드세게 팔목이 비틀리는 부상을 입었다. 그러고 나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짐을 싸서 짐이라야 기껏 가방 하나만큼도 안 되었지만, 양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고 시어머니는 목을 매달 끈을 찾아 밖으로 나가 한동안 똥깐의 집에서는 똥깐이 코고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니다. 그 난리가 나도 모르고 잠을 자던 천하의 잠보 똥깐이 얼핏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들창으로 그 여자가 구슬픈 눈길로 방안을 들여다보는 것을 보았다는 말이 있다. 아니다. 구슬픈 눈길로 오래오래 똥깐의 방안을 들여다보는 그 여자의 꿈을 꾸었다는 말도 있다. 하여간 잠에서 깬 똥깐, 언제나 옆에 있어야 할 허벅지를 더듬으려다가 손이 허전해서, 또 혀처럼 심부름을 시켜대던 노모를 몇 번 불러보고는 대답이 없으니 허전해하며 하는 말.
- 어어, 잘 잤다. 그런데 이것들이 다 어디로 갔어?
그러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문을 열고 나오니 눈이 부시고 어지럼증이 나서 몇 걸음 가기도 전에 폭삭 주저앉고 말았는데 그때 멀리 기차역 플랫폼에서 아른아른한 양산을 든 여인이 기차를 타고 있었더란다. 이상하다. 은척에서 내 허락받고 저런 양산 쓰는 여자는 하나밖에 없는데? 맞다, 똥깐이. 그대의 마누라가 도망친다!
똥깐은 그제야 사태를 짐작하고 전속력으로 기차를 향해 달려갔다. 뛰어가는 도중 평소에는 눈을 감고도 건너다닐 수 있던 수챗물 도랑에 발이 빠졌고 새로 역에 근무하게 된 신참이 똥깐이를 몰라보고 개찰구로 달려나가는 똥깐을 잡으려다가 그 냄새 나는 발에 턱을 얻어맞고 한방에 뻗어버리는 사소한 일이 있기도 했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똥깐이 기차에 당도했을 때 이미 문은 닫히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똥깐이 환장을 하게 된 것은 달리기 시작한 기차 안에서 손을 흔드는 한 여인을 보고 난 다음부터다. 똥깐은 젖먹던 힘을 다해 뛰었지만 기차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필생의 사랑을 잃고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똥깐은 대합실로 돌아오면서 역장이 애지중지하는 화분을 박살냈고 이어서, 대합실로 돌아와 긴 의자 두어 개를 보기 좋게 뒤집어버렸고 이어서, 매점에 들어가 제가 찾는 술이 나올 때까지 아수라장을 만들었고 이어서, 술을 마시며 제가 왕년에 깨다 못한 성한 유리를 한 장씩 깨기 시작해 결국은 몽땅 다 깨버렸고 더 깰 유리창이 없자 거리로 진출했다. 늘 하듯이 웃통을 훌떡 벗고, 다 나와! 개애애애새끼들! 외치면서 길거리에 납작 엎드린 가게 유리창을 발로 차기 시작해서, 몇 달 동안 걸렀던 일과를 하루 만에 한꺼번에 해치우려는 듯 큰길까지 가는 동안 가게란 가게에서 유리란 유리는 몽땅 깨뜨렸다. 그 여인이 그냥 곱게 갔으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련만, 그 여인이 어디서 배운 인사법인지 들창과 기차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든 게 유리가 횡액을 만나고 유리 가게 주인이 횡재를 만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똥깐이가 드디어 나타났다!
- 더욱더 용맹스럽고 늠름해진 것 같군, 우리의 똥깐이.
남의 유리가 깨졌을 때 가장 덕을 보게 될 유리 가게 주인과 늘상 파리를 날리던 철물 가게 주인은 그런 대화를 주고받았고, 가게 유리가 깨진 사람들끼리는 한숨과 눈물을 지으며 서로를 껴안았다.
- 내 유리 누가 물어주나, 응? 어쩌면 좋아.
- 지나가는 강아지한테 물어달라고 해. 강아지한테 물리는 게 똥깐이한테 먹히는 것보다는 훨씬 덜 아플걸?
- 그런데 신고를 한 게 언젠데 아직 출동을 안 하는 거야, 이 망할 놈들은
- 오면 뭘 해. 누가 똥깐이를 당하겠어. 무적의 똥깐이를.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그 당시 경찰은 골치 아픈 신고가 들어오면 전혀 엉뚱한 데로 가서 '어라, 여기가 거기가 아닌가? 신고를 똑바로 해야지' 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어슬렁어슬렁 파출소로 돌아와서 월급을 타가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날 역전 파출소 경찰들은 불운했다. 똥깐은 경찰이 신고를 받고 늑장부리며 준비를 하고 엉뚱한 데로 출동하기도 전에 역전 파출소에 유리가 많은 것을 알고는 바로 그 안으로 쳐들어갔던 것이다. 똥깐이 등장하자 늙은 경찰들은 몽땅 밖으로 도망쳐 버렸고 철없는 젊은 친구들이
방망이를 들고 몇 번 아래위로 흔들다가 곧바로 똥깐의 강력한 주먹과 발길질에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미리 밖에 나와 있던 나이든 경찰이 젊은 경찰을 위로하며 하는 말.
- 그러게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우니 피하는 게지. 진작 나왔으면 공매도 안 맞고 얼마나 좋아. 유리야 나중에 본서에 신청하면 안 끼워주겠어? 아이구, 저거 경비전환데 저걸 그냥 한 주먹에 박살을 내버리네. 괜찮아, 저것도 신청하면 돼. 그렇지?
드디어 본서에서 기동타격대 출동. 기동타격대는 긴급 사태를 대비해 젊고 유능한 경찰들을 오분대기조로 편성 운영하고 있었는데 오분대기조가 출동한 것은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오십 분도 넘어서였다. 그나마 파출소 가까이로는 오지 못하고 마이크를 쥐고 '조똥깐! 좋은 말로 할 때 밖으로 나와라! 안 나오면 몸에 해로운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한 소리가 오분대기조 기동타격 출동조치의 전부였다. 그러나 똥깐은 다정하고 걱정스러운 그 소리마저 듣기 싫었는지 자신이 깬 유리창의 삐죽삐죽한 구멍에 목을 들이밀고는, '오냐, 한 발짝만 더 가까이 와봐. 목을 확 돌려버릴 거야!' 하고 협박인지 예언인지 단호한 의사 표시를 했다.
3
오분대기조 지휘관은 옆에 있던 경찰에게 물었다.
- 그렇게 하라고 부탁해 볼까?
- 그러면 더 안 합니다. 똥깐이가 누굽니까. 잘못 말했다가 찍히면 제 명에 못 죽을걸요. 말한 사람을 봐뒀다가 나중에 그 사람 목을 저기다 싸악, 돌릴지도 몰라요.
지휘관은 자신의 목 주위를 만지며 떨리는 소리로 말하기를.
- 그럼 어떡해, 마냥 기다리는 거야?
그 경찰의 대답.
- 그게 최선의 전략입니다. 이제 두고 보세요. 술 취했지, 피 흘렸지 금방 잠이 들걸요. 오늘은 낮잠을 덜 잤다는 첩보도 들어와 있습니다.
- 맞아. 내가 이때까지 들어본 건의 가운데 최고의 건의를 들었어. 당신은 정말 우리 기동타격대의 보배야.
- 저야 뭐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민중의 지팡이가 되려 할 뿐입니다요.
그렇게 그들이 서로를 아껴주는 동안 과연 똥깐에게는 잠의 여신이 빗자루를 타고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달려왔다. 똥깐은 은척에서 최초로 조직된 기동타격대에 코를 골며 체포된 최초의 범죄자였다.
똥깐이 재판을 받고 감옥으로 갔을 때 읍내 사람들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은척이 낳은 유사 이래 최고의 깡패, 천재 외상꾼, 싸움꾼, 호색한, 트집 잡기의 귀재가 은척 읍내에 군림한 지가 수십 수백 년은 되는 것 같았는데 똥깐은 소년범을 수용하는 교도소로 갔던 것이다.
-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은척을 열 번은 들었다 놓은 장사가 아직 소년이었단 말인가. 이제 똥깐이가 어른이 되면 은척에 유리는 하나도 남아나지 않겠네.
어떤 이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똥깐이 감옥에 가 있는 동안 길거리의 유리들은 발악처럼 매일 반짝이고 번쩍였다. 계절이 두 번 바뀌고 나서 똥깐은 보무도 당당하게 은척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똥깐의 일거수일투족에 숨을 죽였지만 똥깐은 더 이상 은척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감옥에서 수백 수천 번 맹세한 대로 그 여인을 찾아 동에 번쩍 서에 반짝 전국을 누비기 시작한 것이다. 그뒤로 몇 년, 똥깐의 순애보가 은척 사람들의 가슴을 사정없이 적셨다. 똥깐은 그 여인의 고향이라는 절해고도에서 그 여인을 기다리는 어부가 되었다…… 똥깐은 그 여인을 보았다는 사람의 말을 듣고 서울로 올라가 역전 창녀촌에서 여관 조바를 하며 그 여인을 기다렸다…… 똥깐은 또 그 여인의 육촌 언니가 하는 가게 일을 거들며 일년을 기다렸다…… 무보수나 다름없이 묵묵하고 성실히 일을 하며 오로지 한 여자를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똥깐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육촌 언니가 정식으로 청혼을 했으나 거절을 당했다…… 똥깐은 또 그 여인과 닮은 여인이 몇 년 전에 다녀갔다던 나이트 클럽에 취직을 했다…… 낮에는 잠도 자지 않고 그 여인이 올지도 모르는 공원에 나가 앉아 있었다…… 건강과 잠버릇을 해치고는 홀연히 은척에 내려와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차역 플랫폼에 나가서 그 여인을 기다렸다…… 이만하면 하늘이 감동하고 땅이 울 지경인데 그 여인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 여인으로서는 그럴 이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마침내 문득 똥깐이 제정신을 차리는 날이 왔다. 그 순간 읍내의 유리들은 빛을 잃었고 은척 사람들은 한동안 발 뻗고 자던 시절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이유는 분명치 않다. 그의 형 은관이 그 무렵 결혼을 했는데 결혼한 여자가 지겨울 정도의 잔소리꾼에 한시도 감시의 눈을 늦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은관은 노름에 빠졌는데 은관과 노름을 해서 딸 생각을 하는 노름꾼이 은척에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수 없었던 고로 그는 늘 이기기만 했다. 상승(常勝)의 싱거움을 견디기 위해서 은관은 노름판에 차 배달을 나오는 다방 아가씨 가운데 말을 닮은 아가씨를 올라탔는데 하필이면 은관의 엉덩이가 들썩이던 그 시간에 그의 부인이 들이닥쳤다. 은관의 머리칼을 잡아챈 그의 부인은 은관의 신체의 일부가 다른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그 뿌리를 잡고 늘어져 어디까지 갔다더라? 그 건물 옥상까지 가서 온 읍내 사람들이 다 듣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쳤는데, 그 내용인즉 '어허, 읍내 사람들이오. 여기 좀 보소. 이게 내 서방 물건인데 쥐불알만하지요? 이것도 잘 못 놀리다가는 이렇게 죽습니다이' 하고는 옥상 난간에 제 서방 머리를 박아서 피칠갑을 하게 만들며 노름판에서 돈 잃은 읍내 사람들에게 며칠은 입에 올리고도 남을 이야깃거리를 안겨주었다. 순전히 공짜로. 그 다음부터 은관은 그 좋은 노름도 여자 올라타는 일도 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똥깐이 거기서 충격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4
그다음. 세상에는 그 여자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누군가 똥깐에게 해주었다는 말도 있다. 어쩌면, 세상에는 서른 살 넘은 도시 술집 출신의 병든 여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도 곁들였을 것이다. 그 다음. 그녀가 떠나간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바라보던 끝에 똥깐의 시력이 형편없이 떨어져 눈에 뵈는 것이 없게 되었기 때문에 똥깐이 똥깐으로 돌아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다음. 똥깐이 자기에게 남은 시간과 힘, 어거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자연적인 깨달음을 얻었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그 모든 것이 조금씩 똥깐을 똥깐으로 돌아오게 했을 것이다. 하여간 똥깐은 언제부터인가 과거의 천재적인 행각을 능가하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사랑 때문에 허비한 시간을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 하루도 쉬지 않고 도둑질, 외상, 싸움, 강탈, 폭언, 협박, 부녀자 희롱, 고성방가, 노상방뇨, 흥정떼고 싸움 붙이기 가운데 두세 가지를 실천에 옮겼다. 똥깐은 잠깐 사이에 다시 읍내 최고의 깡패, 백수건달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의 그림자만 비치면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치는 명성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 도대체 경찰은 뭘 했고 뭘 하고 뭘 하려 했는가. 바로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할 참이다. 똥깐이 당대의 깡패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를 뛰어넘는 명성과 위엄을 획득하게 한 그 사건, 조똥깐의 생애 마지막을 불꽃처럼 장식한 그 사건에 대하여.
무능하고 게으른 경찰을 비난하는 읍민들의 원성이 하늘까지 닿았을 때 문득 새로운 경찰서장이 부임해 왔다. 경찰서장은 부임 일성으로 '읍 전체에 만연한 공권력 불신 풍조를 불식하고 사회기강을 문란케 하는 악질 폭력 범죄를 적발, 단호히 조치하는 동시, 공권력의 권위를 회복하여 새 시대의 새로운 경찰상을 구현하자'고 역설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은척 출신의 경찰들 가운데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경찰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알아들은 사람 중에서 그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가 말겠지, 하고 남몰래 고개를 살랑살랑 젓고 말았다. 어쨌든 유식한 신임 경찰서장은 부임을 기념하는 거창한 행사가 끝난 뒤, 관할 지역 내의 경찰 간부를 대동하고 민정시찰 겸 근무기강 점검에 나섰다. 경찰서장은 정복에 번쩍거리는 견장과 훈장인지 뭔지 찰랑거리는 뭔가를 달고 있었는데 하여간 그는 번쩍거리고 찰랑거리는 걸 어지간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던가 보다.
똥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역전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와 술을 대작하는 사람은 쌍둥이 형 은관이었는데 그 무렵 은관은 부인과의 전쟁에서 치명적인 패배를 당한 뒤라 꽤나 의기소침해 있었다. 형제는 <여자란 백해무익한 존재>라는 주제에 관해 오랜만에 의견 일치를 본 참이었다. 거기다가 낮부터 마신 술이 오르자 두 사람은 거나한 기분으로 자신들 나름의 시찰을 나갔다. 은관은 늘 하던 대로 오토바이를 탔고 똥깐은 뒤에 태워주겠다는 형의 제안을 가볍게 일축하고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팔자걸음으로 역전 파출소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역전 파출소 앞은 기차역으로 가는 길과 읍내를 관통하는 주도로가 만나는 삼거리였다. 신임 경찰서장은 검은 승용차에 탄 채 주도로에서 역전 파출소 쪽으로 오고 있던 참이었다. 그 뒤로는 정복을 입은 간부들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온 읍내에 신임 서장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 워낙 천천히 움직였던 까닭에 많은 사람이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가 착각을 했다. 역전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과 파출소장이 파출소 앞에 도열한 채 신임 경찰서장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광경이 은관의 눈에 먼저, 그리고 약간 나중에 근시인 똥깐의 눈에 들어왔다. 은관과 똥깐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풍경을 의아하게 여기며 파출소 앞으로 접근했다. 그날 그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았다. 반면 역전 파출소장은 은관과 똥깐이 자신들을 향해 오는 걸 알아채고는 사색이 되었다. 하필 전임지에서 철없는 호랑이로 소문난 신임 경찰서장이 시찰을 하러 오는 이때에 천하무적의 똥깐이 그의 쌍둥이 형 은관까지 대동하고 오고 있다니. 파출소장은 바람처럼 빠르게 똥깐 형제에게 달려갔다. 살기 위해서라면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해야 하는 법. 너무 빨리 뛴 탓에 막상 형제앞에 선 파출소장은 헐떡거리며 말을 꺼내지 못했다. 형제는 의아한 눈으로 헐떡거리는 파출소장을 바라보았다.
- 아저씨? 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그러슈?
- 저, 저, 저, 거시기……
- 아, 왜 그러냐구? 뒷집 돼지가 알을 낳았소?
- 하, 하, 하, 자, 네, 들……
파출소장은 멀리 떨어진 부하들의 몸짓에서 신임 경찰서장이 거의 당도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더욱 초조해져서 '자네들 농담 솜씨는 날로 발전하는구만. 심심한 경의를 표하는 바일세. 그런데 말이야. 오늘은 날 살려주는 셈치고 잠깐만 어디 가서 공짜술을 먹든가 노름을 하는 게 어떤가. 지금 눈이 오려고 하잖아. 이런 날은 그저 뜨뜻한 구들장 지고 육백이나 치는 게 최곤데 말이야. 내 생각이 어때요? 그렇게 해주실래요?'하고 늘어놓으려는 말의 십만분의 일도 하지 못하고 그저 헐떡이다가 말았다. 그러는 동안 경찰서장의 검은 승용차의 앞부분이 유서 깊은 역전 파출소 앞에 당도했다. 파출소장은 다시 두 주먹을 쥐고 전력을 다해 파출소 앞으로 달려갔고 똥깐과 은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파출소장의 뒤를 따라 천천히 역전 파출소 쪽으로 향했다.
- 전체 차렷! 서장님께 경례!
파출소장이 파출소에 당도하기 전에 눈치 빠른 차석이 구령을 내렸고 도열한 경찰들은 딱, 소리가 나도록 거수경례를 했다. 경찰서장은 유리문을 내리면서 물었다.
- 소장은 어디 갔나?
평소 돋보기 없이도 신문을 볼 수 있다는 걸 자랑삼던 차석은 폭풍처럼 달려오고 있는 늙은 소장 쪽으로 눈을 돌리며 우렁찬 소리로 대답했다.
- 지금 오시고 계십니닷!
- 이 사람이 지금 제정신인가? 어떻게 상관이 시찰을 온다는데 자리를 비울 수 있나?
아무리 눈치 빠른 차석이라도 대답할 수 없는 건 대답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때 브레이크 파열음이 나며, 아니 구두 밑창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파출소장이 당도했다. 그러나 파출소장은 똥깐 형제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장 앞에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는 파출소장을 바라보던 신임 경찰서장은 지휘봉을 꺼내 자신보다 몇 해는 더 살았을 파출소장의 살찐 배를 꾸욱, 찔렀다. 파출소장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가 경찰서장이 다시 배를 편하게 찌를 수 있도록 앞으로 다가서곤 했다. 그러면서 제발 그 배 덕분에 뒤에서 다가오고 있을 똥깐 형제가 신임 서장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동시에 서장도 똥깐과 은관을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파출소장의 바람이야 어떻든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다.
왜, 짐승들 가운데 수컷들은 자신의 영역에 오줌 똥을갈긴다거나 나무 둥치에 자국을 내서 자신이 지배자임을 표시하지 않는가. 그 안에 다른 수컷이 들어오면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본능적으로 공격한다. 서장도 똥깐도 한 지역의 지배자로서의 자각이 강했다. 이미 다른 수컷이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경계심을 돋우고 있었다.
- 야, 저 아저씨들 뭐 하는 것 같냐? 재미있겠는데.
은관이 오토바이를 멈추며 경찰 아저씨들이 다 듣고도 남을 정도로 우렁차게 외쳤다. 똥깐은 코를 벌름거리면서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다른 수컷이 누구인가를 찾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 서 있던 경찰, 배를 찔리고 있는 파출소장 모두 은관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눈을 질끈 감았고 어떤 사람은 처마밑 그늘 속으로 물러섰고 어떤 사람은 자다 말고 일어나 창문을 살짝 열었다. 어떤 사람은 눈을 반짝였고 어떤 사람은 귀를 쫑긋거렸다. 신임 경찰서장은 눈가를 찡그렸다.
- 저놈이 지금 뭐라 하는가?
파출소장은 눈을 감았다. 그는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그냥 지나가게 해달라고, 부처님, 공자님, 예수님을 불렀다. 그러나 그때까지 파출소장의 기도를 들어주었던 모든 신과 성인이 그때만은 그의 기도를 못 들은 척했다. 똥깐이 게슴츠레한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면서 경찰서장이 타고 있는 검고 커다란 승용차 앞에 멈췄다.
- 야, 차 좋은데. 음, 아주 좋아.
똥깐은 진정으로 감격한 듯 차의 지붕을 툭툭 두드렸다. 그 차는 은척에서는 보기 드문 최고급 관용차로 자존심 강한 서장이 손수 매일 닦고 손보고 조이고 기름 치는 차였다. 그 우아한 몸에 똥깐의 곰발바닥 같은 손바닥이 닿더니 쓰윽 훑고는 움푹한 자리까지 만들었으니, 그 차가 사람이라고 한다면 기절을 했을 것이나 차는 사람이 아니니까 기절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서장이 유리문으로 고개를 빼고 호령을 했다.
- 네 이노옴, 이 무엄한 놈! 감히 본관의 관용차에 손을 대다니.
'여봐라, 이놈을 당장 무릎을 꿇리고 주리를 틀어라' 하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서장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파출소장이 마지막 남은 충성심을 짜내 서장의 얼굴을 자신의 축축하고 살찐 배로 가렸기 때문이었다.
- 서장님, 위험합니다. 자리를 피하십시……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똥깐의 눈이 세모꼴로 변하고 코에서 거센 콧김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눈치 빠른 차석은 기동타격대를 부르러 파출소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다른 경찰들은 추운 바람 맞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온다 만다 하면서 한나절을 보내게 한 서장에 대한 원망에다 '쉬어'라는 명령을 들은 바 없었던 까닭에 부동자세를 유지한 채 비교적 자유로운 눈알만 굴리면서 되어가는 꼴을 보고 있었다.
-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똥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솥뚜껑 같은 손이 파출소장의 허리를 돌아 들어가 신임 서장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 어, 이거 왜 이래. 놔! 놔!
똥깐에게 멱살을 잡힌 다음에야, 경찰서장 아니라 그의 할아비라도 읍내 사람들이 똥깐이에게 멱살을 잡힌 뒤에 보이는 의례적인 반항밖에 더하겠는가. 서장은 목을 캑캑거리며 차에서 끌려나왔고 훈장을 찰랑거리며 똥깐의 아래위로 들어올려졌다 말았다 했다. 그제서야 경찰들이 부동자세를 풀었다.
- 놔요, 놔! 놓고 얘기해요.
- 참게, 이 사람. 새로 온 서장님이시라네.
그 순간에도 경찰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침착한 경찰도 물론 있었다.
- 읍민 여러분! 어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어느새 구름처럼 불어난 읍민들은 그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서로에게 말을 걸었다.
- 자네 점심은 먹었는가. 어떻게 여기까지 걸음을 했어?
- 우리는 구경을 원하거든. 우리에게 오락을 주면 좋겠어.
눈치 빠른 장사치들도 한몫했다.
- 엿 사요, 엿. 고소한 깨엿, 짝짝 붙는 찹쌀엿,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후박엿!
일단 발동을 건 이상 싸움기계 똥깐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적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어떤 충고도 만류도 처세훈도 소용이 없었다. 똥깐은 서장의 넥타이를 잡고 멧돼지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서장은 목이 졸려 죽지 않으려면 충직한 사냥개처럼 똥깐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뒤를 은관이 오토바이를 타고 따랐고 경찰들이 뒤를 이었고 읍민들이 뒤를 따랐다. 따라서 역전 파출소에서 기차역까지 수백 명이 달리기로 이동하는, 은척읍 사상초유의 장관이 연출되었다.
5
선두에 선 똥깐과 서장, 그리고 은관이 탄 오토바이가 철로를 넘어갔을 때 하필 하루 두 번 운행하는 열차가 눈치도 없이 달려들어와 경찰을 포함한 군중을 가로막았다. 군중들은 발을 구르며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기다려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안 사람들이 하나 둘씩 기차 끝을 돌아 현장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나 있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던가.
똥깐은 서장을 수챗물이 흐르는 도랑에 처박았다가 수챗물이 얼어붙어 자신이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는, 도랑 위에서 힘차게 날아오른 다음 서장의 가슴을 엉덩이로 깔고 앉음으로써 서장에게 평생 처음 겪는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이어서, 형 은관에게 함께 도약과 착지의 즐거움을 누리자고 권유, 두 사람은 도랑 밖에서 손에 손을 잡고 공중으로 도약, 나란히 서장의 몸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그게 서장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안겨주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를 듣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흰 연기를 뿜으며 사라졌다. 물론 도망친 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치운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자신을 몰라보는, 도시에서 온 건방진 녀석, 차가 좀 괜찮다고 재는 인간을 혼내준 것으로 생각했다. 그 길로 경치 좋은 강가에 있는 조그만 할머니의 조그만 가겟방으로 가서 <집 나간 여자와 집 안 나가는 여자가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대화를 태연하고 심도 있게 나누고는 한밤이 되자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토바이에서 내리던 은관은 즉시 체포되었다. 너무 취해서 반항할 수도 없었고 반항할 마음도 먹지 않았다.
'왜 이러는데?' 한마디 묻고는 자신을 체포한 경찰의 품에 쓰러져 코를 골기 시작했다. 똥깐은 쌍둥이 형보다 힘이 센 만큼이나 술도 더 셌다. 그리고 그의 명성은 형에 비할 수 없이 높았다. 자신을 향해 머뭇머뭇 다가오는 일개 분대의 경찰 가운데 몇 명은 때려눕히고 몇 명은 어깨를 짚고 뛰어넘어 산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후에 <똥깐이 바위>로 명명되고 <똥깐이 굴>로 이름지어지는 굴이 있는 바위는 읍내 전체를 굽어보고 있는 남산의 중턱에 있었다. 뭉툭히 솟아올랐다는 점 말고는 전혀 특별한 게 없어 이름 하나도 얻지 못했던 그 바위에 있는 굴 역시 공식적으로는 아무 이름도 없었다. 그 굴은 여관이 없는 시대에 여관이 없는 읍내에 살면서 여관에 갈 돈은 없으되 여관 가기를 갈망하는 무수한 청춘 남녀들의 밀회 장소였다. 올라가는 데 밥 한끼 먹을 시간이 걸리고 뾰족구두 신고서 올라가기에는 제법 가팔랐지만 그들, 연인들의 열화와 같은 정열을 누를 수는 없었다. 그곳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모포를 가져다 놓은 다음부터 연인들 사이에서는 <모포굴>이라고 불린 적도 있다. 똥깐이 한밤중에 그 바위까지 한달음에 달려 올라갔을 때는 누구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무수한 남녀가 깔고 깔리는 동안 닳아빠지게 된 더럽고 얇은 모포는 있었다.
경찰은 한밤중에 범인을 추적하는 일이 용이하지 않다, 아군끼리 오인할 수 있다, 부상자가 속출한다, 다른 일도 많은데 모든 경찰이 다 거기로 몰려가면 은척은 누가 지키나 등등의 갖가지 이유를 들어 추적을 포기했다. 똥깐은 주위의 나무 부스러기를 끌어모아 불을 피운 다음 모포를 돌돌 감고 굴 안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이웃 도시에서 빌려온 경찰견에 빌려온 기동타격대까지 동원된 대규모 추격전이 전개되었다. 추격대는 삼십 분에 걸친 수색 끝에 똥깐의 흔적을 발견했다. 똥깐이 있던 동굴에서 연기가 솟아올랐기 때문이었다. 바위로 올라가는 길은 너무 좁아서 두 사람도 같이 지나갈 수 없었다. 한 사람씩 가면 되겠지만 혼자서는 무서워서 못 가겠다는 게 모든 경찰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지휘관은 빌려온 핸드마이크에 입을 대고 이렇게 외쳐야 했다.
- 똥깐이, 잘 잤나? 너는 지금 완전히 포위됐다. 항복하면 살려준다. 어서 두 손 들고 나와라.
잠보 똥깐은 버릇대로라면 열시까지는 자야 하는데 삼십 분이나 일찍 잠을 깨는 바람에 성이 날 대로 났다. 댓바람에 굴 밖으로 뛰어나오며 돌을 집어던졌는데 그게 마침 등을 돌리고 오줌을 누던 기동타격대 가운데 한 사람의 머리를 정통으로 타격했다.
- 아이고메, 나 죽네에!
- 전방 두 시 방향 적 출현, 소대 포복!
그때 남산은 물론 온 읍내에 다 들리도록 우렁찬 똥깐의 포효가 울려퍼졌다.
- 야, 이놈들아! 용기가 있으면 올라와 봐라! 올라와서 일대일로 붙어보잔 말이다!
기동타격대는 부상자를 후송하네, 구르네, 엎어지네 하면서 소동을 벌인 다음 작전을 변경했다. 잠과 술에서 덜 깬 은관을 데려온 것이다. 은관은 경찰이 적어준 종이를 보면서 떠듬떠듬 읽어 내려갔다.
- 사랑하는 똥깐이. 엄마가 걱정한다. 나도 걱정이다. 우리는 네, 여…… 염려 덕분에 무사히 잘 있다……. 아저씨, 이 글자가 뭐야?
- 빨자다, 빨!
포승을 쥐고 있던 경찰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은관은 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 빨리 내려와서 자수해라. 우리도 언젠가는 오손도손, 아이 씨, 안 보여! 손도 시려워. 난 몰라!
그래서 혈육을 동원한 눈물겨운 설득 작전도 수포로 끝났다. 똥깐은 오 분에 한 번씩온 읍내가 떠나가라 욕을 했다.
- 야, 이 ○물에 밥 말아먹을 놈들아……. 니 에미하고 ○해서 ○새끼 낳아서 다시 ○할 놈들아……. 오오, 이 ○만 하는 놈들아……. ○물에 튀겨서 ○물로 식혔다가 ○물을 채워서 ○순대 만들어먹을 놈들아……
6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처절한 욕이었고 욕이 끝나는 순간마다 돌을 집어던졌다. 따라서 욕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고 있던 경찰 가운데 몇 명의 부상자가 더 나왔는데 다행히 맨 처음 부상당한 사람과는 달리 들것으로 수송할 것까지는 없었다. 다시 밤이 왔고 기동타격대는 야간 장비가 없어 야간 작전이 불가능하다는 작전계획을 짜고 내려왔다. 사흘째 되는 날, 춥고 허기진 똥깐의 상태를 짐작한 기동타격대는 바위 아래쪽 움푹한 곳에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대며 똥깐에게 심리적인 타격을 가했다. 똥깐이 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때쯤에는 온 읍내 사람들의 눈과 귀가 모두 남산 위의 못생긴 바위에 집중되어 있었다. 집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 똥깐이가 대단하기는 대단해. 나는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저렇게 웅장하고 다양한 욕을 들어보기는 처음일세.
- 얼마 못 버틸걸. 사람이 욕만 잘한다고 살 수 있나. 입고 있는 것도 변변치 못하대. 거기 먹을 게 있겠나, 덮을 게 있겠나.
- 나는 똥깐이가 절대 그냥 내려오지는 않을 거라고 믿네.
- 그냥 내려오지 않으면? 호랑이라도 잡아올까?
- 꼴뚜기 사려, 꽁치 사려어, 밴댕이젓 사려
- 여봐요. 거 왜 남 장사하는 집 문전에서 비린내를 풍기고 그래?
- 맞아. 하도 욕을 퍼부으니 온 읍내에서 욕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애들 교육은 어떻게 할지, 원.
- 그런데 말야, 희한해. 난 하루라도 똥깐이 욕을 듣지 않으면 잠이 안 와. 몸도 찌뿌드드하고. 버릇이 됐나 봐. 그 욕을 듣고 있으면 꼭 안마를 받는 것같이 시원해.
병원에 누워 있던 서장은 삼십 분마다 사람을 보내 당장 똥깐을 체포해 오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로서는 공직 생활 수십 년에 처음 겪는 망신이었고 똥깐인지 변소인지를 못 잡으면 수챗물에 내동댕이쳐진 체면이며 훈장이 평생 회복 될 것 같지 않았다. 따라서 똥깐이가 산에서 버틴 지 사흘째 되는 날 밤에는 핑계를 대는 데는 선수인 경찰들도 밤새 잠복 근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똥깐은 굳세게 잘 버텼다. 잠옷이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누더기나 다름없는 모포를 뒤집어쓰고 원시적인 무기인 돌로만 무장하고 타고난 욕설과 독기로. 마침내 그의 욕설이 그치자 읍내 사람들은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되어 하나씩 둘씩 남산으로 눈길과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눈발이 희끗희끗 비치는가 했더니 삽시간에 폭설로 변했다. 눈은 그 동안 똥깐이 퍼부어댔던 욕이 퍼진 대기를 정화하고 욕이 내려앉은 땅을 덮으려는 듯 쉬지 않고 내렸다. 눈사람인지 사람인지 구별이 안 되는 행렬이 남산 입구에서 바위로 올라가는 유일한 통로인 좁은 산길을 메웠다.
한없이 내리퍼붓던 눈이 문득 그치고, 느닷없이 침묵과 고요가 은척을 엄습했다. 누구도 입을 떼지 않고 바람도 소리를 죽이던 바로 그때, 그 순간. 아뿔싸, 오호라, 슬프도다, 어쩔 것인가, 똥깐의 죽음을 알리는 비보가 전해졌다. 그는 얼어 죽었다. 자신말고는 아무도 없는 동굴에서, 쥐뼈인지 비둘기뼈인지 작고 메마른 뼈 몇 개가 그의 발 주변에 흩어져 있었고 아주 가는 뼈 하나가 그의 입에서 멧돼지의 어금니마냥 튀어나와 있었다. 뻣뻣한 똥깐의 시체를 모포에 말아 들것에 싣고 내려오던 기동타격대 행렬은 말없이 눈을 맞으며 자신들을 지켜보는 눈사람의 행렬과 마주쳤다. 이 행렬은 저 행렬을 무언으로 비난했고 저 행렬은 이 행렬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뜻을 무언으로 전하며 한동안 눈을 맞고 서 있었다. 어쨌든 은척에서 태어나 은척에서 살다가 은척에서 죽을 사람들은 모두 한패였다.
아무것도 이해 못 한 사람은 은척에서 나지 않았고 은척에서 살아본 적도 없으며 은척에서 죽을 리도 없는 신임 경찰서장이었다. 그는 똥깐의 돌에 맞은 사람이 그 상처와 관계없이 몇 주 뒤 교통사고로 죽자 그 경찰을 기리는 비석을 남산의 바위 앞에 건립토록 했다. 비석 앞면에는 <경찰충령비(警察忠靈碑)>라는 큼직한 글씨가 새겨졌고 뒷면에는 아무개 서장이 은척의 치안을 위협하는 불량도배를 소탕하여 정의와 질서를 구현한 경위, 그 소탕작전에 참여했다 장렬히 산화한 경찰 아무개를 기려비를 세우는 데 읍내 유리 가게, 철물점, 어물전, 양복점, 술집, 기타의 주인장들을 얼마나 고심하여 건립위원으로 위촉했는가 등등의 사연이 국한문 혼용체로 비뚤비뚤 적혀 있었다. 경찰서장은 그 비가 세워지던 날,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내놓은 유지들과 경찰 전원을 참석시킨 가운데 거창한 제막식까지 지냈다. 그가 은척 경찰서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룩했던 최고의 업적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외에는 한 일이 없었다.
똥깐이 화장터에서 한줌 연기로 사라지고 얼마 뒤 누군가 순직 경찰을 기리는 비석의 뒷면에 있는 경찰서장의 이름을 정으로 까서 지우고 <똥깐이가>라고 쓰고 난 다음부터 생겨난 일들을 적어본다.
경찰서장은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부패와 독직 혐의를 받아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 그 혐의 가운데 하나는 아무개의 비를 오석으로 건립한다면서 주민들에게 돈을 걷은 뒤, 조잡한 화강암으로 바꿔쳐 성금을 횡령한 것이었다. 남산의 못생긴 바위에는 <똥깐이 바위>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아래의 굴에는 <똥깐이 굴>이라는 이름이 보태졌고, 그 앞의 비석은 <똥깐이 비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훌륭한 깡패가 되려는 소년은 모름지기 그 바위, 그 굴, 그 비석으로 순례를 떠나야 한다는 전통이 생겨났다.
멋모르는 사람은 그 신성한 장소에서 똥깐이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고 보다가 방뇨나 방분의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었다. 그걸 실천에 옮기다가 벼락에 맞아 제가 싼 똥을 깔고 죽은 사람이 생긴 이후에는 누구도 감히 그렇게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멀지 않은 곳에 이동식 화장실이 생긴 것은 똥깐이 죽은 뒤 이십 년 만의 일이었다.
수많은 경찰서장이 오고 갔다. 그들은 조동관 사건의 전말을 듣고 가슴에 새겨 몸가짐을 바로했다. 경찰들 역시 가끔 남산에 있는 바위를 올려볼 때마다 똥깐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에 수준이 점차 향상되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모범 경찰이 은척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똥깐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달구어지고 이야기 속에서 다듬어져 마침내 그의 짧고 치열한 일생이 전(傳)으로 남기에 이른다.
그 이름은 조동관약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