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대장
용병대장
서정인
눈이 와서 전화를 했다.
방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아가씨가 음식 주문을 받아가자, 그녀가 말했다.
하늘이 흐리더니,
눈발이 희끗거리고, 함박눈이 함부로 내렸다.
물론 날씨야 조만간 개었다.
송송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안 그쳤으면 되었다.
그날 밤,
석 달 전인가 넉 달 전인가 사촌동생의 남편이 옆에 있어서 전화 받기가 거북했었다.
사촌이 오는데, 그 남편이 못 왔냐? 여자 혼자 있는 집이라도 그랬다.
사람 사는 데 사람 오는 것이 흉 되었냐? 밤 열 시라도 그랬다.
낮에 오는데, 밤에 못 왔냐? 밤에 오는데, 시간 정했냐?
열한 시에는 못 왔냐? 동생이 잠깐 동네 가게에 가면 안 되었냐?
사랑이 없으면 불타는 집이었다.
콰트로첸토라는 말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탈리아 말로 사백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서기 일천사백 년을 의미했고, 그해부터 시작되는 십오 세기를 가리켰다.
서기 십오 세기는 거기서 문예가 부흥하던 때였다.
희한하게도, 용병 대장들이 희랍 인문학을 되찾고 되살리는 일을 후원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마 그들이 저지른 못된 짓들을 그렇게 해서나 삭치고자 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썼다.
그런 용병 대장들 중에 시지스몬도라는 사람이 있었다.
얼마나 가까이 있었길래 전화를 받을 수 없었느냐지만, 반드시 침대에 같이 누워야만 가까이 있었냐?
방 안에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는 한방에 있어도 멀리 있었고, 집 안에 딴사람들이 없을 때는 거실에 있고 안방에 있어도 가까이 있었다.
사랑도 그랬다.
그것은 사람들이 흔히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욕정을 그것으로 여겼다.
호킨스라는 사람이 수치화한 것에 따르면, 천 점, 또는 칠백 점 만점에 사랑은 오백 점이고, 욕망은 백이십오 점이었다.
시지스몬도 판돌포 말라테스타는 리미니, 파노, 체세나의 영주였다.
그는 창업주 말라테스타 다 베루키오의 현손이었다.
베루키오는 거칠고 억센 군인이었다.
그는 수많은 전투들을 견뎌내고 백 살까지 살았다.
그는 그의 나이 스물일곱에 리미니의 촌장이 되었고, 오랜 세월의 투쟁 끝에 마침내 황제 당 지도자들을 도시에서 몰아냈다.
그는 그 도시의 황제 당 우두머리 몬타냐 데 파르치아티를 잡아 가뒀고, 그의 아들 말라테스티노가 그를 죽였다.
그들 부자는 사나운 사냥개들로 이름이 났다.
단테는 『신곡』 지옥 27편에서 그를 늙은 마스틴이라고 불렀다.
마스틴, 즉 마스티노는 얼굴이 불독처럼 생겼고, 다리가 불독보다 더 긴, 황갈색의 털을 가진 커다란 사냥개였다.
그 무렵 교황 당과 황제 당이 누구의 지배를 지지할 것이냐를 놓고 사생결단을 했다.
사정은 리미니에서 아드리아 바닷가를 끼고 북북서로 사십팔 킬로미터 떨어진 라벤나에서도 같았다.
거기서는 귀도 다 폴렌타가 세력을 떨쳤다.
그도 교황 당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황제 당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시칠리아의 왕이고, 슈바벤의 공작이고, 독일의 왕이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는 1239년에 교황 당의 손에 떨어진 라벤나를 이듬해 탈환했고, 그때 그의 아버지 람베르토는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는 반평생의 와신상담 끝에 1275년, 가까운 리미니의 말라테스타 집안의 도움을 받아 라벤나를 장악하고 황제 당을 축출했다.
그해 그 두 집안들은 사돈을 맺었다.
그것은 순전히 정략적 결혼이었다.
사랑은 사백 점인 이성보다 높고, 육백 점인 평화보다 낮았다.
천 명 중에 넷만이 사랑을 했다.
그것은 ‘조건 없고, 변함없고, 영원했다’.
그것을 하면 ‘뇌에서 엔돌핀이 분비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랑은 애욕이었다.
그것은 소유욕보다 더 나쁜 배타적 독점욕과, 피와 살의 정욕과, 좌절하면 분노와 증오로 변하는 오만이었다.
그것보다 더 행복으로부터 먼 것이 없었다.
사랑은 행복이었다.
사랑이 천국이라면 애욕은 지옥이었다.
늙은 사냥개에게는 아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 셋이 적출이었다.
나중에 리미니 수비 대장이 된 용감한 말라테스타 2세는 그의 큰아들이었다.
천리안 말라테스티노 달로키오말고도, 절름발이 지오반니와 잘생긴 파올로가 있었다.
그와 그의 부인은 그들과 함께 라벤나의 귀도 다 폴렌타 집안에서 온 청혼 답례 사절을 불러들였다.
신부는 열다섯 살 난 귀도의 딸 프란체스카였다.
“성주님께서 청혼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주인께서는 이 혼인이 성사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고맙소.”
사나운 사냥개가 말했다.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시오. 신랑 지오반니는 나의 오른팔 같은 왼팔이오.”
그는 좌우를 살폈다.
당사자 지오반니가 안 보였다.
그는 파올로를 사신에게 소개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참 금품이나 토지는 별도로 필요없어요.”
그의 부인 콘코르디아 디 엔리게토가 얼른 덧붙였다.
“우리 두 도시들 사이의 우호와 결속 이상으로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어요?”
“몬토네 강과 론코 강 연안은 바다 쪽으로도 비옥하지만, 내륙 쪽으로도 풍요롭지요? 범람한 침니는 다 정리됐어요?”
천리안이 그렇게 말하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 그의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늙은 사냥개는 눈만 껌뻑껌뻑했다.
라벤나는 몬토네와 론코가 아드리아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하구에 바다로부터 십 킬로미터 떨어져서 있었다.
“마레키아 강이나 사비오 강 연안들보다는 낮아서 기름지기는 해도 축축합니다. 성주님의 관대한 결정을 들으시면 우리 성주님도 기뻐하시고 같은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마레키아는 리미니에서 바다로 빠졌고, 사비오는 체세나를 관통하고, 그 두 도시들 사이, 라벤나 쪽에 더 가까이서 아드리아로 흘렀다.
“지금 그곳 형편은 어떠하오?”
미래의 수비 대장이 물었다.
“잘 돼갑니다. 하도 오래돼서 아직 황제 당 사람들의 뿌리가 완강하긴 하지만, 황제 없는 황제 당이 무슨 맥을 쓰겠습니까? 프리드리히 2세가 죽은 지 이십 오 년이 됐습니다.”
“그 후계자들이 있지 않소?”
마스틴이 으르렁거리듯 볼멘 소리를 했다.
“다 죽었습니다. 죽기 전에도 황제의 광휘에 가려서 빛을 못 보았지만요. 첫 부인한테서 낳은 하인리히 7세는 생전에 사이가 안 좋았지요. 그는 황제에게 반역을 했으니까요. 그는 황제가 죽기 팔 년 전에 서른한 살 나이로 칼라브리아, 마르티라노의 감옥에서 죽었지요. 아마 자살이었어요. 둘째 부인한테서 얻은 콘라드 4세는 황제가 죽은 뒤 사 년에 스물여섯의 나이로 라벨로에서 죽었습니다. 황제의 총애를 받은 사생아 엔치오는 시칠리아와 독일의 왕들이었던 이복 형제들과는 달리 사르데냐의 왕이었는데, 황제가 죽기 일 년 전에 볼로냐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얼마 전 죽을 때까지 볼로냐의 궁전에 유폐되었어요. 이십삼 년을 갇히기는 했지만, 쉰 줄까지 산 황제의 아들은 아마 그밖에 없어요. 그의 죽음은 황제가 일으킨 바람의 마지막 숨이었지요. 황제의 또 하나의 사생아,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왕 만프레드는 황제 죽고 팔 년 뒤, 팔레르모에서 왕위에 올랐는데, 그해에 교황 알렉산데르 4세에 의해서 파문되었고, 팔 년 뒤 베네벤토에서 패전하고 죽었어요. 여기가 어디냐? 서른넷의 젊은 왕이 창에 찔려 죽어가면서 물었어요. 베네벤툼입니다. 그럴 리가 있냐. 말레벤토겠지. 왕이 맞았어요. 그곳은 원래 말레벤툼이었어요.”
“독일 왕은 그들의 조상이 노르만 사람들이라 그렇다 치고, 또 시칠리아 왕은 그들의 고향이 거기이니 그렇다 치고, 사르데냐 왕은 어떻게 된 거요?”
천리안이 물었다.
“엔치오가 사르데냐의 공주 아델라시아와 결혼을 했어요. 황제가 그를 그 섬의 왕으로 임명했지요. 그것이 황제와 교황 사이를 결정적으로 갈라놨어요. 그 땅은 교황의 봉토였거든요.”
“교황은 보고만 있었어요?”
경건한 콘코르디아가 물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는 살아 있는 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 9세는 이듬해 삼월 이십일 종려 일요일에 황제를 파문했습니다. 두 번째였습니다.”
“수난 일요일에 왜 종려 잎을 뿌리지요?”
수비 대장감이 말했다.
그는 그가 라벤나에서 무슨 일을 맡고 있는지 궁금했다.
“예수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섭니다.”
“왜 하필 종려를 뿌리냐고요?”
“그야 그 나무가 거기에 많아서 그러겠지요. 딴 데서는 딴 나뭇가지들을 꺾어서 뿌립니다.”
“어떻게 파문당한 사람을 또 파문해요? 왜 하필 종려 일요일에 파문했을까요?”
콘코르디아는 아들의 엉뚱한 질문이 못마땅했다.
그녀는 일부러 그를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두 번만 당했을라고요. 세 번 당했습니다. 처음은 그레고리우스가 교황에 선출된 해였습니다. 좀 성급했지요. 그가 원래 성질이 좀 과격했습니다. 그 이듬해, 죽은 지 이 년밖에 안 된 그의 친구 프란체스코 다시시를 시성했어요.”
“성 프란체스코는 성스러운 분이니까요. 그는 평생을 가난과 종교에 헌신하지 않았어요? 황제는 왜 처음 파문됐어요?”
콘코르디아는 논리적이었다.
“십자군 안 떠난다고요. 황제는 황제 대관식 때는 물론이고, 그보다 팔 년 전에 있었던 독일 왕 대관식 때도 성지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황제는 스물여섯 살 젊은 나이에 로마 베드로 성당에서 교황에 의하여 제위에 올랐어요.”
“황제가 서약을 안 지켰어요?”
“지켰지요. 좀 늦었지요. 예루살렘으로 떠나려고 브린디시에 모였는데, 역질이 퍼졌어요. 황제는 파문, 안 파문 간에, 파문당한 이듬해에 십자군 원정길을 떠났지요. 그는 십자군을 가기 전에 이미 예루살렘의 왕이 되었어요, 명목상이었지만. 그리고 성지에 가서는 이집트의 술탄으로부터 피 흘리지 않고 협상으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과 나자렛을 얻어냈어요. 파문당한 황제가 그 이듬해 삼월 예루살렘의 신성 무덤 교회에서 스스로 예루살렘의 왕으로 대관했어요.”
“인물은 인물이오. 어떻게 가지 않고 왕이 되고, 싸우지 않고 땅을 뺏소?”
주인이 감탄했다.
“회교도들로부터 땅을 얻어낸 것은 황제의 인품과 위력이었겠지만, 가기 전에 왕이 된 것은 쉬웠습니다. 그는 브리엔의 이 욜란드와 결혼했는데, 그녀가 예루살렘의 왕의 후계자였고, 땅을 잃은 예루살렘의 왕은 일흔 살을 훨씬 넘긴 노인이었습니다.”
“또 결혼했어요?”
안주인이 물었다.
“삼 년 전에 상처를 했습니다.”
“성지를 회복했으면 교황과 화해가 됐소?”
주인이 안주인의 어리석은 물음을 일축하고 물었다.
“사면은 됐는데 화해는 안 됐습니다. 골은 더 깊었습니다.”
“사면은 용서고, 용서는 화해 아니에요?”
안주인이 물었다.
“아닙니다. 파문한 사람을 또 파문할 수도 있고, 파문을 사면받은 사람을 또 파문할 수도 있습니다. 사면은 앞의 파문을 거두어들인다는 뜻이지, 다음에 다시 파문 안 하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사면은 파문과 마찬가지로 별뜻이 없습니다.”
“예수의 지상 대리인도 속세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겠지요.”
주인이 말했다.
“아닙니다. 대리인이 지상의 힘과 영광과 부귀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황제는 교황에게 그가 시성한 그의 친구처럼 가난과 고행과 구도와 기도에 전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속세에 너무 욕심을 낸다고 생각했습니다.”
“황제가 세상을 다 차지하는 것은 욕심 아니오?”
주인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황제의 욕심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상이라니, 세상에 세상 말고 또 무엇이 있소?”
아닙니다, 아닙니다,에 골이 난 베루키오가 이상한 일도 다 있다는 듯이 늙은 사신을 쳐다보았다.
“황제는 예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런, 아니, 설마, 하고 탄성을 지르고, 성호를 긋고, 입을 다문 채 눈을 멀뚱거렸다.
늙은 사절이 계속했다.
“황제는 예수의 무덤 교회에서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그 자신을 메시아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그가 예루살렘에 온 것은 인리, 이에수스 나자레누스 렉스 이우다이오룸이 종려 일요일에 거기에 들어온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교황이 그를 십이 년 뒤 두 번째 파문했을 때 종려 일요일을 택했을 것입니다, 표면상의 이유는 사르데냐였지만. 교황은 황제를 두려워했습니다. 예수의 사도가 속세의 권세와 재물을 탐한 것도 칠거지악, 일곱 가지 죽을 죄였지만, 황제가 종말론, 재림론을 주장한 것도 신성모독이었습니다. 그는 두 번째로부터 육 년 뒤, 세 번째 파문을 당했습니다. 파문당하고 오 년 뒤에 죽었지만, 그것 때문에 그가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를 죽인 것은 속세의 힘이었습니다. 그는 죽기 삼 년 전, 독일 땅에 이어서 이탈리아 땅을 많이 잃었습니다. 그가 죽기 이 년 전에 그의 재상이 감옥에서 자살했고, 일 년 전에 그의 아들이 볼로냐에서 붙들렸습니다.”
늙은 젤라시오는 사람들이 잠잠했으므로 말을 그쳤다.
그와 나이가 비슷했지만, 더 젊어 보이는 주인이 그에게 물었다.
“선생은 라벤나에서 무슨 일을 보시오? 역사에 정통하면 못 할 일이 없겠지요?”
“편지를 씁니다. 하는 일, 아무것도 없습니다. 힘이 있어야 성주님을 돕지요. 힘은 젊었을 때도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과거를 아는 것은 현재를 아는 것이고, 현재를 아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현재를 알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한테 일을 시킬 수 있고, 사람들이 한 일을 재판할 수 있고, 잘한 일을 상 줄 수 있고, 못한 일을 벌줄 수 있습니다. 군주가 할 일 전부입니다. 군주의 편지를 쓴다는 것은, 그것이 교서든, 선언이든, 서약이든, 항의든, 소환이든, 호소든, 군주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군주를 교육하고, 그를 생각하게 하고, 그의 생각을 정리하고, 마침내는 그의 생각을 명문화하여 그를 실천하게 합니다. 힘은 소한테도 있고, 용기는 개한테도 있습니다.”
늙은 사냥개의 말은 그의 진심에서 나왔다.
그에게 현재는 혼돈이었고, 과거는 추상이었다.
도대체 동서남북을 알 수 없었다.
쫓긴 토끼가 덤불에 머리를 처박고 가슴을 할딱이는 형국이었다.
옛날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없는데, 그들이 한 일의 옳고 그름을 어떻게 판단한단 말인가?
플라미니우스의 로마 길에 세워진 이정표처럼, 누가 손가락으로 가리켜주기만 한다면, 그는 그쪽으로 속력껏 달려갈 자신은 있었다.
방향 없이 뛰면 뛴 것만큼 손해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마음껏 뛸 수 있단 말인가.
“바로 그래서입니다.”
키가 더 컸지만, 머리통이 큰 주인보다 더 작아 보이는 손님이 주름진 얼굴에 회한의 빛을 띠고 말했다.
“피에트로 델라 비냐는 글재주가 뛰어났습니다. 그는 프리드리히 2세의 편지를 썼습니다. 사사로운 서한도 썼고, 칙서와 성명과 외교 문서도 썼고, 법전도 썼습니다. 그는 황제의 측근이었고, 총신이었고, 나중에는 재상이었습니다. 그가 예순 살에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황제를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옥에 갇혔습니다. 황제와 재상, 둘 다에게 불행이었습니다.”
그는 말을 마쳤다.
무반이 문반을 말로 달래기는 힘들었지만, 주인은 좋은 말, 웃는 얼굴로, 그를 위로하고 칭찬했다.
늙은 사신은 덕담을 더 늘어놓고, 후한 행하를 사례한 뒤, 자리를 떴다.
“잘될까요?”
장막 뒤에서 나온 못생긴 당사자 지안치오토가 침울하게 말했다.
“너는 어디 갔다가 인제 왔냐? 너는 하라는 대로만 해라.”
베루키오가 말했다.
콘코르디아가 그녀의 남편을 쳐다보았다.
절름발이는 그의 아버지를 믿었다.
“잘될까요?”
그의 어머니가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았다.
“지참금 말은 꺼내지 말 걸 그랬어요. 혼수라니요, 신부 몸값을 줘도 모자랄 판에. 그 흥정을 해야 하는 건데, 엉뚱한 이야기만 했어요.”
큰아들이 불평했다.
“잘돼야지. 원래 하고 싶은 말은 못 하는 법이다. 군사는 몇 명쯤 뺄 수 있냐?”
그가 수비대 장교인 아들에게 물었다.
“탄 군사는 이백이나 삼백요. 걷는 사람들은 힘들어요. 훈련 중인 사람들 말고는요. 이왕에 보낸 원병도 있는데, 또 보낼라고요? 설마 청혼을 거절하겠어요?”
천리안이 말했다.
큰아들에게는 이웃 성보다 이 성이 더 급했다.
“청혼했다고, 형편이 안 닿아도 허혼하냐? 군사는 원군도 출정이다. 쳐들어가야만 이기냐? 어찌 됐든 우리 군대가 저쪽에 무혈입성했다. 우리 사람들은 남의 집에 가 있어도 우리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우리들 때문에 든든하다면, 우리들한테도 그들이 바람막이가 된다. 보내는 것은 보낼 수 있다는 것이고, 보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남는다는 자랑이다. 보낼 수만 있다면 많이 보낼수록 좋다. 못 오게 하면 성문을 부수고라도 들어가는 판에, 문 열어놓고 오라는데 안 들어가냐? 여자나 요새나 마찬가지다. 라벤나가 문을 열었다. 프리실라도 마찬가지다. 라벤나에 우리의 정예를 보냈다. 우리의 좋은 꼴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우리다. 풀비아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안의 정예를 보낸다.”
“그렇지만 아버지, 없는 정예를 어떻게 보내요?”
수비 장교가 다리를 저는 동생을 흘낏 쳐다보고 말했다.
시거든 떫지나 말지, 얼굴은 왜 저렇게 먹다 남은 반쪽 피자 같았냐?
“있는 정예를 보낸다. 보내면 그것이 정예다.”
“프리첼라가 누구요? 성문 밖에서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성문이 열리자마자 남새를 싣고 노새를 몰아 성문을 들어오는 벨라리바의 청과 장수 파비오의 딸이오?”
코르디아가 도끼눈을 하고 대들었다.
아해들은 불길이 엉뚱한 데로 번지는 것에 당혹했다.
“그만들 하세요.”
아무도 입을 못 여는 가운데, 다리 저는 당사자 시안카토 지오반니, 즉 지안치오토가, 그의 아버지가 미처 뭐라고 말하기 전에, 지겹다는 듯이 분연히 말했다.
그의 말은 효과가 있었다.
그의 말의 억양 때문이었는지, 그의 용모 때문이었는지, 그의 입장 때문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아마 다였다.
다리를 절고 못생겼지만, 그는 용감한 군인이었고, 훌륭한 정치가였다.
늙은 사냥개는 도끼눈이나 창눈 정도로 움찔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을 그녀에게 알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떻게 해? 어떻게 그걸 알려?
어떻게 해야 노새 같은 그 여자가 헛수고의 불필요를 깨달아?
그와 그녀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프리실라와 풀비아와 프리첼라와 프란체스카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가 더 심했다.
“우리 집에서 나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정예다. 정예가 딴것이 아니다. 최고면 정예다. 너희들 하나하나가 모두 나한테는 최고다.”
그의 말이 콘코르디아의 입을 막았다.
“그렇지만 젤라시오 같은 치밀한 사람이 그냥 갔을까요? 수소문 안 했을까요? 사람을 하나 딸려놓긴 했습니다만.”
“그랬으면 됐다. 옛날에 해박한 것을 보니까 오늘에 관심이 없겠더라. 그런 사람들은 과거를 알면 현재는 저절로 알게 된다고 생각하고, 현재를 등한히 하기 쉽다. 현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냐? 아무 일 없을 거다.”
젤라시오는 착잡했다.
그는 늙은 사냥개가 바랐던 것처럼 그렇게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이 그의 임무였냐? 그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그것에 따라 그의 행동이 달라졌다.
프란체스카 공주의 결혼이었냐? 귀도의 부탁대로 그녀의 혼인을 성사하는 것이었냐?
성혼이 그의 임무였다면, 그는 그것을 수행했다.
그의 임무는 단순한 성혼이 아니었다. 그 이상이었다.
리미니 성주의 둘째아들이 불구라는 풍문은 인근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소문에 지오반니는 단순히 다리를 절 뿐만 아니라, 천질을 앓았다.
그가 간질 발작을 하면, 입에 퍼런 게거품을 물고 눈에 흰자를 번득이면서 다리를 꼬고 떨었다.
그의 얼굴은 지랄병 할 때마다 이지러져서 반쪽이 되었다.
사람들은 본 것처럼 말했다.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안 본 것을 본 것보다 더 믿었다.
본 것은 자신이 없었다.
감각이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금방 본 것도 아니라고 우기면 고개를 갸우뚱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당사자를 직접 만나보는 것이었다.
당사자는 회담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소문의 증거가 아니었을까? 사실, 만나본다고 해도, 대놓고 그의 건강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만일 소문이 사실이라면, 절반만이라도 사실이라면, 그의 임무는 성혼을 막는 것이었다.
그의 관심이 성주의 작은딸의 개인적 혼사에 있었냐?
프란체스카는 나라를 위해서 결혼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
아버지를 위해서 보도 듣도 못한 사람한테 시집을 가려는 것 아니냐?
그가 할 일은, 나라를 위해서, 그런 그들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저쪽에 험이 있으면, 그만큼 돌아올 것도 컸다.
이쪽에서 노리는 것은 보상이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더욱 좋았다.
우호가 됐든, 원병이 됐든, 병신 신랑에 얹혀올 것이 그만큼 더 많았다.
그의 임무는 초과 달성됐냐?
그는 프란체스카에게는 물론 귀도에게도, 개인적으로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프로 파트리아, 나라를 위해서?도 그것을 씻어주지 못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서, 도시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버리고, 딸의 행복을 짓밟는다 하더라도, 옆에서 아무도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도울 권리는 없었다.
그것은 인간적 배신이었다.
그것이 야망을 위해서 신의를 헌신짝처럼 밥 먹듯이 저버리는 용병 대장에게 대한 것이라 하더라도, 배신은 배신이었다.
그는 프란체스카에게 아무 원한이 없었다.
원한이 있으면 배신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었다.
다만, 덜 고통스러웠다.
인간적 수치와 고뇌가 덜했다.
그는 이상하게도 프란체스카보다 귀도가 더 마음에 걸렸다.
그가 그의 상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 그랬냐?
순진무구하고 가련청초한 공주보다 무지막지하고 잔인무도한 용병이 더 배반하기 어려운 것은 유혹 때문이었다.
배반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 때문이었다.
보복이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그 정도는 이제 그의 나이가 가르쳐주었다.
그는 그의 욕심을 달랬다.
“선생님, 가시지요.”
그의 종자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아마 출국까지는 아니고 출성 증명 같은 것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시안카토가 다리만 저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랄병은 헛소문인 듯합니다.
눈들을 둥그렇게 뜨고 되레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냐고요. 저가 어떻게 압니까?”
“어려움은 없었느냐? 티는 안 내었느냐?”
“왜 없었겠습니까? 적진 속에서 춤을 추는데, 왜 귀찮은 놈들이 없었겠습니까? 다 짐작을 했었습니다. 아무 일 없었습니다. 보기보다 멍청하데요.”
“긴장을 해서 그런다. 네가 말이다. 그 사람들이야 즈그들 집이라 맘을 놓았을 것 아니냐. 가자.”
그는 마음을 정했다. 본 대로 말하자.
안 본 것은 말하지 말자.
그래도 쌌다.
“저, 알베르토라고 있거든요. 제 친군데요, 우리나라 같으면 잡혀갈 소리도 막 떠들었어요. 저는 듣기만 했어요. 저의 외사촌의 먼 인척 되는 사람인데요, 저와 나이가 같거든요.”
“어디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 안 그러면 네가 일하기가 쉬웠겠냐? 뭐라더냐?”
“다 아는 얘기였습니다.”
“그게 오라 찰 소리였냐?”
“예, 주인님. 아는 이야기가 아니면 감옥 갈 일이 없었습니다.”
“딴은 그렇구나. 그것이 무엇이었냐?”
“지오반니는 사람들이 지안치오토라고 불렀습니다. 지안치오토 앞에는, 희랍 배 앞에 ‘검은’이 붙고, 우릭세스 앞에 ‘약삭빠른’이 붙듯, 시안카토가 붙어다녔습니다.”
“또 호메로스냐? 너는 희랍 사람 아니면 말을 못 하냐? 웨르길리우스를 읽으라고 했지 않느냐?”
“번역으로 읽으면, 라틴 공부하기에는 희랍 사람이나 로마 사람이나 마찬가집니다. 마로는 호메로스에다 대면 책상물림입니다. 희랍 시인은 진중의사로 직접 트로아스에 갔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 정돕니다. 그가 묘사한 대로 항로를 잡았더니, 영락없이 우릭세스가 간 뱃길이 되었답니다. 그는 육지에서 본 대로가 아니라, 바다에서 본 대로 항해를 보았습니다. 어떤 뱃사람 하나가 라틴 말 공부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선생이 그에게 웨르길리우스를 가르쳤습니다. 얼마간 공부가 되었을 때, 선생이 학생에게 영웅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무슨 영웅이오, 하고 뱃사람이 되물었습니다. 무슨 영웅이라니, 아니, 아이네아스 말일세, 아이네아스, 하고 선생이 말했습니다. 아, 아이네아스요? 그가 영웅이오? 참, 나는 그가 사젠 줄 알았지요, 하고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본 대로가 아니라 그들이 그들을 본 대로 보았더니 어떻더냐?”
“우리가 잘 보았습니다. 우리가 본 대로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가 본 대로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들을 보는 대로 보았습니다. 지안치오토는 다리를 많이 절었고, 그것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리를 절지 않는 사람보다 더 용맹하고 잔혹했고, 그보다 더 잔인한 사람은 그의 형과 아버지뿐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형과 아버지보다 더 영리했고, 그들처럼 방탕했습니다. 사생아가 없을 리 없습니다. 아직 어려서 안 나타났습니다.”
“나이가 몇이냐?”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새로 안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서른일 수도 있고, 서른다섯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 사이일 것입니다. 잘생긴 그의 동생 파올로는 스물여덟에서 서른셋 사입니다. 파올로는 집안 내력대로 무자비하지만, 그의 사나움은 그의 아버지와 형들에게 가렸고, 평소 말수가 적어서 음흉한 쪽이었습니다. 그는 피렌체에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용맹한 사람들이 할 일은 많았습니다. 그는 결혼을 해서 아들이 둘이었습니다.”
“고생했다. 사례는 했느냐? 함부로 입을 열지 마라.”
그들은 말라테스타 집안 사람들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
그들이 떠난 지 며칠 뒤 알베르토로 보이는 사람의 시체가 루비콘 강기슭에 버려졌다.
천삼백여 년 전 카이사르가 넘었던 강이었다.
결혼식은 한 달 뒤에 있었다.
살벌한 전시라, 언제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몰라, 결혼에 필요한 최소한만 가지고 간소하게 치렀지만, 평화스러울 때의 호화스러운 결혼식보다 더 축제였다.
살생의 와중에서 결혼한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었다.
그것은 천지에 가득 찬 죽음에다가 삶의 기운을 보탰다.
살기가 등등해서 작은 생기라도 흔적이 났다.
그것은 반목과 증오와 살상과 전쟁에 풍자고, 반어고, 역설이고, 저항이었다.
주례말고는 양쪽 집안 사람들만 참석한 결혼식에서 지오반니 대신에 파올로가 신부의 손을 잡았다.
신랑이 바뀐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혼인성사를 주관한 주교밖에 없었는데, 그는 너무 늙어서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그의 기억과 상충하자, 눈을 몇 번 껌벅거린 다음, 이미 신임을 잃은 그의 기억력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이 그를 배반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리미니 사람들은 잘 알아서 이상할 것이 없었고, 라벤나 사람들은, 리미니 사람들의 생각에, 몰라서 이상할 것이 없었다.
말라테스타가 옆에 앉은 귀도를, 눈앞의 허공에 고정된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흰자만으로 살폈다.
라벤나의 용병 대장은 침착하다 못해 침울했고, 밑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그럴 이유가 있었다.
젤라시오는 성실해서 사실을 가슴에 감추어둘 수 없었다.
그는 그것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한참을 눈을 크게 뜨고 눈알을 빙빙 돌리면서 침음숙고하더니, 그에게 입을 다물라고 명령했다.
그는 그 자신의 혈육을 배신하기로 작정했다.
마음을 먹기까지 망설임이 있지, 한번 정한 다음에는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그 결정을 지지했다.
그는 느긋한 뱃보로 자리에 착 눌러앉아 있었다.
그의 옆엣사나이가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뒤꼭지에 있는 눈으로 그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속는 줄을 알고 있으니 속이 편했다.
알고 속는 것도 속는 것은 속는 것이었지만, 안 줄을 모르는 동안은 속을 만했다.
그 무지가 충분한 보상이었다.
그는 통쾌와 통분이 엇갈린 흥분을 지그시 눌렀다.
사흘 잔치가 당연했지만, 양쪽 성들의 황제 당 놈들이 그들을 그렇게 한가롭게 놔두지 않았다.
식이 끝나자, 그는 그의 딸을 안아주었다.
신랑은 쳐다보도 않았다.
어린 딸이 그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다 나라를 위해서였다.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어울려서 축배를 여러 배 들고, 점심을 먹고, 서둘러 떠났다.
젤라시오는 배신을 안 하고 배신을 했다.
“엄마, 가지 마. 엄마 가면 나도 같이 가.”
“나도 그러고 싶다. 그렇지만 너는 바로 전에 성 마리아 앞에 맹세를 했지 않니. 이제 사람은 너희들을 떼어놓을 수가 없다, 하느님이 갈라놓기 전에는.”
“맹서는 말이고, 말은 바람이야. 엄마, 가고 싶어.”
“아, 빈곤 서약을 할 걸 그랬구나. 한번 나간 바람을 어디서 붙잡냐?”
손님들이 안뜰의 알돌들 위로 말발굽 소리들을 남기고 사라졌다.
해가 설핏하자, 용병 대장이 부하들을 위해서 새로 벌인 잔치도 끝나고, 늦게 온 하객들도 떠났다. 신랑 신부는 신방에 들었다.
방은 컸다.
이중 구획 진 천장은 하늘처럼 높았고, 대리석을 깐 바닥은 땅처럼 넓었다.
“데펜덴트 리크니 라퀘아리부스 아우레이스 인켄시 에트 녹템 플람미스 푼날리아 윈쿤트.(횃불들이 황금의 널빤지 천장에 매달렸고, 불꽃의 심지들이 밤을 이겼다.)”
프란체스카는 비련의 여왕 디도가 아이네아스를 환대하는 방이 생각났다.
물론 그곳의 어둠을 쫓은 것은 천장의 횃불이 아니라 벽의 촛불들이었다. 한쪽 구석에 정사각형의 커다랗고 높은 침대가 하나 있었다.
그 침대 위로 천장 바로 밑에, 침대보다 조금 더 큰 지붕이 있었고, 그 높은 지붕으로부터 세 가닥 휘장들이 길게 바닥에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휘장들은 침대 높이께에서 바짓가랑이가 발목에서 묶이듯이 끈으로 잡매어져 있어서, 옆구리 쪽과 발치 쪽으로 두 군데에 사람이 드나들 넓은 틈이 나 있었다.
머리맡 옆 벽에는 위는 둥글고 밑은 반듯한 커다란 창이 나 있었다.
그 창 앞에 침대 옆구리께를 향해서 접는 의자가 하나 놓였고, 발치께에도 간이 의자 하나가 있었다.
침대 밑에는 양탄자가 휘장들 밖에까지 깔렸다.
침대와 떨어져서, 역시 양탄자가 깔리고, 그 위에 둥근 탁자와 등이 높고 양쪽 팔걸이에까지 두꺼운 널빤지를 댄 무슨 왕좌 같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옷을 벗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는 벽 쪽으로 기어가서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신랑이 형제들과 친구들의 떠들썩한 인사들을 받으면서 들어왔다.
그가 벽의 불들을 끄고 침대로 기어올라 왔다.
그녀는 신랑이 바뀐 것을 이튿날, 너무 늦은 다음에 알았다.
그녀의 분노와 좌절과 고뇌와 허탈은 두 집안들에서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절이 하도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같은 해에 있었던 리미니와 라벤나 사이의 또 하나의 유대를 위한, 그녀의 오빠 베르나르디노와 지오반니의 동생 맏달렌나의 결혼 같은 것들 속에 묻혀서, 그녀의 불행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물론 겹사돈 양가 사람들에게도 곧 잊혀졌다.
십 년이 흘렀다.
프란체스카와 지오반니 사이에 딸이 하나 생겼다.
콘코르디아였다.
지오반니는 프란체스카말고도 처가 또 있었다. 티발델로 잠브라시 디 파엔차의 딸, 잠브라시나는 판토리니 바트의 미망인이었다.
그녀에게서 지오반니는 바트, 귀도, 람베르토, 마르게리타, 렌가르두치아를 얻었다.
그에게 세번째 처, 타데아가 있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그는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공들을 세웠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날개가 되어 파엔차 근교, 세니오 강에서 귀도 다 몬테펠트로의 황제 당 군대를 쳐부쉈고, 포를리베시의 포위를 당한 로베르사노의 성에 원군을 갔고, 귀도 다 폴렌타를 도와 트라베르사리와 싸웠다.
그는 페사로의 촌장 직에 위촉되었다.
파올로는 그의 처, 오라빌레 베아트리체에게서 아들 둘을 얻었다.
우베르토와 마르게리타였다.
그는 그러껜가의 이월에서 이듬해 이월까지 피렌체에 가서 연봉 이천 리라를 받고 의용대장을 했다.
리미니에서 피렌체까지는 삼백 리가 훨씬 넘었다.
바로 가면 더 가깝겠지만, 서북에서 동남으로 뻗은 아펜니노 산맥을 넘기가 힘들어, 서북으로 포를리로 가서, 팔테로나 산을 비껴, 서남으로 피렌체에 갔다.
포를리까지 백 리가 짱짱하고, 거기서 피렌체까지 이백 리가 짱짱했다.
피렌체에서 돌아온 파올로가 어느 날 프란체스카와 단둘이 아서 왕의 원탁 기사 랜슬럿과 왕비 기네비어의 비련을 읽다가 포옹했다.
그들의 사련의 시작이었다.
마침내 하인이 그들의 불륜을 주인에게 알렸다.
지오반니가 현장을 덮쳤다.
파올로가 달아나다가 소매 없는 긴 겉옷이 못에 걸렸다.
용병 대장이 쓰러진 형제 용병 대장 가슴에 칼을 묻었다.
여자도 격분한 그의 칼을 피할 수 없었다.
십오 년 뒤, 삼월 이십오일인가 사월 팔일, 금요일 저녁, 여행의 첫날에 단테가 그들을 지옥 어귀에서 만났다.
그가 말했다.
“사부님, 바람에 가볍게 날리는 저 두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웨르길리우스가 그에게 말했다.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을 저렇게 만든 사랑으로 물어보아라.”
곧 바람이 그들을 그들 쪽으로 몰고 왔을 때,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고단한 영혼들이여, 막는 사람이 없으면 이야기 좀 합시다.”
열망에 의해서 이끌린 비둘기들이 날개를 활짝 펴고 그들 자신의 뜻으로 그들의 사랑의 보금자리로 하늘을 날 듯이, 그 혼백들이 디도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해로운 공기를 통해서 그들에게로 왔다.
그의 다정한 목소리의 절절함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오, 검푸른 공기 속으로 와서, 땅을 피로 물들인 우리들을 알은체하는 온화하고 점잖은 살아 있는 사람이여, 그대가 우리의 뒤틀린 불운에 동정하는 것 같으니, 만일 우주의 지배자가 우리의 친구라면, 그에게 그대의 평화를 빌고 싶소. 바람이 지금처럼 잠잠하다면, 그대가 무엇을 듣고 싶고 무엇을 말하고 싶든 간에 우리는 그것을 듣고 이야기하겠소. 내가 태어난 도시는 포강이 그것의 여러 줄기들과 함께 흘러와서 쉬는 어귀에 자리 잡았소. 부드러운 마음을 금방 붙잡는 사랑이 내가 빼앗긴 아름다운 몸의 저 사람을 사로잡았소. 그 방법은 지금도 고통스럽소.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랑할 핑계를 허락하지 않는 사랑이 나를 그에 대한 그렇게도 큰 기쁨으로 사로잡아, 보시다시피 지금도 그것은 나를 떠나지 않소. 사랑이 우리 둘을 하나의 죽음으로 끌고 갔소. 우리의 생명을 끈 사람을 카이나가 기다리고 있소.”
상처 입은 영혼들의 말을 듣고 나서, 그는 얼굴을 숙이고 시인이 무엇을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까지 그대로 오래 있었다.
“무슨 달콤한 생각들이, 무슨 열망들이, 그들을 이 애처로운 궁지로 몰았을까요”
하고 그가 대답했다.
그가 그들을 향해서 다시 말했다.
“프란체스카여, 그대의 고뇌가 나를 슬픔과 연민의 눈물을 짓게 하오. 말 좀 하시오, 달콤한 한숨을 짓던 시절에, 무엇으로, 어떻게, 사랑이 그대에게 수상한 열망들을 아는 것을 허락했소?”
그녀가 말했다.
“비참 속에서 행복했던 때를 회상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소. 이것을 그대의 스승은 아시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우리의 사랑의 첫 뿌리를 알고 싶은 열망이 이와 같다면, 나는 울면서 말하는 사람처럼 행동하겠소. 어느 날 우리는 심심파적으로 랜슬럿에 관해서 사랑이 어떻게 그를 구속했는가를 읽었소. 우리들은 단둘이었고, 아무 의심도 없었소. 읽으면서 여러 번 우리들의 눈들이 만났소. 우리들의 얼굴색들이 변했소. 그러나 우리들을 압도한 것은 단 한 순간이었소. 좋아하는 미소가 어떻게 그런 연인에게 입 맞춰지는가를 읽고 있었을 때, 나에게서 결코 갈라지지 않을 그가 나의 입에 온몸을 떨면서 입 맞췄소. 그 책과 그 책을 쓴 사람이 갈레오토(뚜쟁이)였소. 그날 우리는 그것을 더 읽지 않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