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늘도 키보드다
하지만, 오늘도 키보드다
구효서
1. 아무것도 없다
우리에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로 알려졌으나, 아직도일반 팬들에겐 그다지 잘 알려져 있다고 할 수는 없는 폴란드 태생의 영화감독 크지쉬토프 키에슬롭스키, 그의 최근영화 <푸른색>이 곧 국내극장에서 상영될 거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 오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영화 <십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십계명을 주제로 한, 한 시간짜리 영화 열 개를 모아 놓은 6백 분 상당의 연작물이다.
그중 <제1계(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에서는, 우리 일상에 파고든 컴퓨터와 모든 사고와 믿음의 척도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컴퓨터의 존재에 대해 충격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컴퓨터의 연산과 추리와 자동제어기능에 매력을 느끼면서 점차 이 전자기기에 몰입해 가게 되는데, 나중에는 컴퓨터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결정과 행동도 하지 않게 된다. 삶 자체를 전자기기에 의존하게 된다는 말이다.
어린 아들이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도 되겠는가’라는 물음을 컴퓨터에 의뢰하고, 컴퓨터는 기온과 얼음의 두께와 빙결정도 따위를 근거로 OK라는 판정을 내린다. 이들은 안심하고 스케이트를 타다 얼음이 깨져 익사한다.
요즘은 그런 일이 없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몇몇 소설 쓰는 친구들한테서 우울한 전화를 받곤 했다.
"먹혔어"
이 한마디로 그의 상황을 짐작하기엔 모자람이없었다. 컴퓨터가 그의 원고를 잡아먹었다는 말이다.
집에다 기기를 들여놓고 섣불리 키를 두드리다 실수를 한 것이다. 요즈막엔 다들 도사가 돼서 그런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지만, 초기엔 많이들 그랬었다. 박상우, 이순원, 윤대녕이 그랬다. 최수철은 사라진 원고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춘천 시내를 돌아다녔었다고 한다. 남들보다 늦게 기기를 장만한 박완서 선생님도 원고 날린 얘기를 하실 때면 놀랍도록 수줍어하신다. 모두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인 모양이다.
"유정룡한테 알아봐. 도사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이라는 건 그 정도였다.
그 뒤로 그들을 만나 확인한 바로는 아무도 원고를 되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흔적이 없으니까. 원고에 썼다면 적어도 파지는 있을 것 아닌가. 원고지가 불에 타버렸다면 재라도 있을 것이다. '아 저게 내가 쓴 그 원고의 잔해구나!' 하고 통곡이라도 할 것이다. 그러나 없다. 아무것도 없다. 어찌할 바를 모를밖에.
이순원이나 윤대녕의 경우는 삼백 장 넘게 잃어버렸단다. 그만큼 쓰려면 적어도 한 달은 매달렸을 텐데. 이 경우엔 잃어버렸다는 말도 적절치 않다. 시간까지도 잡아먹는다는, 블랙홀로 빨려든 것이다. 나라고 예외일 순 없었다.<자동차는 날지 못한다>라는 단편을 그렇게 해서 날려 버린 적이 있었다. 파일을 아무리 불러내도 응답이 없다. 설마설마, 믿어지지 않았다. 몇 차례 미친 듯이 호출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 막막함이 해일처럼 닥쳤다.
얼른 복원해 보자,하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게 복원될 리 만무했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 한들 백 장이 넘는 원고를 어떻게 원래 모습으로 고스란히 되살린단 말인가. 일주일을 넘게 쓴 원곤데, 사방공사(砂防工事)를 하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복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쓰자, 하고 또 달려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단편적으로 남아 있던 기억들이 맹렬하게 방해를 하고 나섰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약속된 마감일이 3일 남아 있었다.
책상에 앉아 애꿎은 머리를 쥐어뜯다가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질식할 것만 같았다. 죽도록 사랑했던 애인이 죽으면 이런 기분일까.
얼른 머리를 비워야지. 깨끗하게 바람에 씻기우고 심기일전 다시 쓰는 거야. 근처의 야산에 올라 바람을 쏘였다. 야생화가 피어 있는 풀숲을 이리저리 쏘다니며 심호흡도 하고 맨손체조도 했다. 없었던 일로 치자고 하염없이 자신을 타일렀다.
것참, 어떻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담. 질량 에너지 보존법칙도 쓸 데 없구만 물질이란 건 전무의 상태에서 생겨나지도 않고, 전무의 상태로 돌아가지도 않는다든데, 그럼 이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나 규명될 문젠가.
혼자 시부렁거리며 괜찮다, 괜찮다를 되뇌었다. 대단한 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그놈을 쓰려고 일주일 내내 골몰했고 오랜 시간 키보드를 두드렸는데......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어디서 보상을 받나...... 글세 괜찮다니깐.
가까스로 맘을 추스리고, 언덕을 뛰어 내려왔다. 언덕을 다 내려왔을 때 오른쪽 볼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젠장 눈물이었다.
2. 함몰되는 것들
마감을 단 1초도 넘기지 않는다는 이상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던 나는 3일 만에 기어이 단편 하나를 완성하긴 했다. 잃어버린 원고의 기억들로 끊임없이 들쑤심 당하면서, 전투를 하듯 백 장을 쓰곤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물론 원고지가 아닌 키보드로. 당장 컴퓨터를 때려 부술 것처럼 분노하던 친구들도 나처럼 여전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갑자기 세상에서 전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컴퓨터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그날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눈물을 나는 물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영혼을 뒤흔드는 그 무엇이 없으면 눈물샘이 과연 자극받겠는가. 전자기기라는 것이 이처럼 어느새 영혼 근처에까지 바짝 접근해 있다. 이제 여간해서는 실수를 하지 않는 친구들, 어찌 보면 그들은 도사가 아니라, 잘 길들여진 부림 짐승이다. 시스템을 능숙하게 운영할 줄 안다는 건 시스템을 정복한 것이자, 시스템한테 정복당한 것이다.
한번 원고를 잡아먹힌 사람은 조심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키 하나를 누를 때도 신중해진다. 조심스럽다거나 신중하다는 말엔 그래도 좀 체면이 있는 셈이다. 벌벌 떨 정도야 아니겠지만, 적어도 숙달이 되기 전까지는 노심초사다, 노심초사.
인간이 만든 물건인데, 하고 얕본 나머지들 깝작거리며 키보드를 투닥탁탁 두드리다 보기 좋게 한 방 얻어맞은 꼴이다. 정신을 차린 뒤로는 그놈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하는데 이건 차라리 눈물겹다. 어느 정도 능숙해지자 펜으로 쓰는 걸 주사 맞는 것처럼이나 싫어한다. 펜이라면 백화점에서 카드로 물건 사고 청구서에 사인을 할 때에 필요할까. "진양슈퍼에 들러 면실유, 피자치즈, 호두 아이스크림 살 것. 영수증 반드시 받을 것" 따위를 메모하는데도 부팅을 시킨다. 중독이다.
펜으로 쓰는 글씨는 회화다. 그림이라는 얘기다. 예쁜 글씨가 있는가 하면 미운 글씨도 있다. 뾰족한 글씨가 있는가 하면 둥글둥글한 글씨도 있다. 그림이 화가이듯, 글씨는 그 사람이다. 필적이 범죄 수의 중요한 단서가 되지 않던가. 이제 필체에 관한 한 모두가 익명이다. 두어 차례 소설 응모작 예심이라는 걸 봤는데, 제 손으로 쓴 사람은 이백 명에 겨우 한 사람 나올까말까다.
글씨 쓰기는 손이 상하좌우 강약 완급을 조절한다. 매우 예술적인 작업인데 키보드는 그렇지 못하다. 오로지 누를 뿐이다. 비정하다. 글씨는 글씨 쓰는 사람의 그 날 기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똑같이 '야, 비가 온다'라고 썼어도 꾹꾹 눌러 쓴 글씨와 슬쩍슬쩍 스친 글씨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컴퓨터는 오로지 상하운동이 있을 뿐인데, 꾹꾹 눌러 치나 슬쩍 슬쩍 치나 "아, 비가 온다"'는 매번 똑같이 제품이다.
책상에 앉거나 방바닥에 엎드려 원고지에 무언가를 스적스적거린다. 잠시 골몰한다. 화가 난 듯 원고지를 찢어 구긴다. 던져 버린다 -------- 이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던 작가의 전형적인 작업 모습이었다.
'8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워드 프로세서로 습작을 하던 작가 지망생은 없었다. 유사 이래 모든 사람은 붓이나 펜으로 글을 써 왔다. 수동타자기라는 것도 기껏 백 년의 역사밖에 갖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가들은 종이 위에 그려지는 자신의 독특한 필체를 보며 작업을 해 왔으며, 그 필체가 작품의 분위기라든가 문체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었을 거란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필체가 다 같아졌다. 새로운 글자꼴들이 속속 개발되곤 있지만, 그건 어차피 내 필체가 아니다. 이 나라의 소설가. 시인 중에 사분의 일은 아마 똑같은 글자꼴을 쓰거나 매우 흡사한 글자꼴을 사용할 것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분명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여겨졌던 필체가 평균화되져 버렸으니, 모든 작가들의 작품이 혹시 닮아가는 건 아닐까.
닮든 말든, 우선 내 악필부터 해결하고 보자라는 이유로 기기를 장만한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악필로는 김윤식, 박완서, 유안진, 이승훈 선생님 등이다. 물론 이들은 달필이 지나친 경우다. 박완서 선생은 얼마 전부터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머지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김윤식 선생님의 경우는 오퍼레이터들이 골머리를 앓는다. 아마 잡지사마다 김선생님의 원고를 전문으로 해독하는 기자가 따로 있을 것이다. 특히 원고지 칸을 무시하고 글을 써서 늘 원고료 손해를 보는 분이 바로 김선생님이다. 원고지로는 분명 백 장인데 조판을 해 보면 백이십 장 분량이 되니까.
이승훈선생님 같은 분은 글씨가 깨알보다 작다(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그러니 다른 원고에 비해 오자나 탈자가 많이 날 수밖에 없다. 이런 분들에겐 키만 누르면 번듯한 글씨가 튀어나오는 컴퓨터가 그리 손해만 끼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구입 동기야 어떻든, 컴퓨터를 사용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운용체계를 습득해야 한다. 컴퓨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지 그 이상은 하지 못한다. 우리가 컴퓨터를 교육시킬 수는 없다. 교육은 우리들 인간이 받는다. 결국 우리가 그에 알맞게 변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 생리에 길들여진다.
모니터에 떠 있는 글자들은 종이에 적혀 있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모니터의 글자는 항상 잠정적이다.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감쪽같이 수정할 수도 있다. 아직 디스켓에 입력되지 않은 상태의 글자들은 램 RAM 위에 떠 있는 환상과도 같은 것이니까.
램 위의 것은 언제나 삭제와 수정이 가능하므로 잠정적인 것이다. 반면 종이 위에 적히는 것은 언제나 결정적이다. 수정한 흔적이 보인다. 화이트 커렉션으로 지워도 자국은 남는다. 한 개의 문장이 되기까지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쳤는지 그 족적이 종이 위에 질펀하게 남는다는 것이다.
비정하고 완전무결한 컴퓨터의 글쓰기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즉 '과정'을 무화시킨다. 이러한 과정이 무화됨으로써 글 쓰는 사람이 갖게 된또 하나의 부담이 있다. 흔적과 과정이 사라졌기 때문에 원고는 늘 초고라는 것이다. 비록 디스켓에 입력을 시킨다 해도 언제 어디서나 호출해서 다시 고칠 수가 있다. 현재에 이르는 복잡하고 고뇌 어린 과정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으니 왠지 더 손을 대야만 할 것 같다. 창작하는 일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는 하지만, 작업 과정이 무화됨으로써 져야 하는 이 부담은 시시포스적이고, 거의 숙명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종이 위에 글자를 그려나가던 사람이 손끝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회화적 기능이 상실되며 단순한 터치 기능만 남게 된다.
다시 글자를 쓴다는 일은, 오랫동안 인형의 눈에다 물감만 찍던 불우한 화가가 다시 캔버스 앞에 선 것과 같을 것이다. 옛날에 떠나 온 고향마을의 고샅을 더듬는 노인처럼 낭패스럽다. 시내에서 벗을 만나 전화번호를 적어 주거나 주소를 적을 때도 고통을 느껴야 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끙끙거리며 쓰지만, 글씨는 역시 일그러지고 찌그러진다.
소설가 함정임씨의 글씨는 밉다. 한 직장에 오랫동안 함께 근무했기 때문에 그녀의 글씨를 나는 잘 안다. 그녀의 글씨는 함몰돼 있다.
"글씨가 왜 그래요?"
그때만 해도 나는 기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원래는 잘 썼었어요"
키보드를 두드린 뒤로 그렇게 변했다는 게 그녀의 변명이었다. 그녀는 그때 이미 밤마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그렇게까지 달라질 수가 있을까. 그녀의 글씨가 본디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안건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한 두어 달 총무과 일을 보게 됐었는데, 우연히 그녀의 자필 이력서를 보게 됐던 것이다. 아주 예쁘고 균형 잡힌 글씨로 채워져 있었다. 지금은 그녀의 글씨보다 내 글씨가 훨씬 밉다.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글씨라면 자랑할만했었으니까. 편안한 군대 생활도 글씨 때문이었다. 간질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 같은 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연민과 향수가 겹친다. 한낮에는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다가, 밤이 깊으면 아내와 신문지를 펼쳐 놓고 뚜걱뚜걱 붓글씨를 쓴다.
"어때 이쁘지?"라고 나는 아내에게 묻곤 한다. 그러나 아내의 눈빛은 번번이 마땅찮다.
3. 오염된 활자와의 전쟁
칠팔 년 전만 하더라도 사식, 즉 사진식자라는 말이 그다지 흔한 말은 아니었다. 아직도 서점에서 어쩌다 활판 인쇄된 책자를 찾아볼 순 있지만, 그것들은 이미 칠팔 년 전에 인쇄된 것들이다. 지형이라는 모양으로 보존돼 오다가 이제는 그것마저 필름화되어 있다. 유난히 소란스럽던 활판인쇄 시설이 이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을 것이다. 늘 손끝이 새까맣던, 그렇게 많은 문선공들이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 버렸다.
중고등학교 교지나 <학원>지에 실린 자신의 글을 보고 글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작가들이 많을 것이다. 활자화. 그것은 며칠 동안 지속되던 감동이요, 환희요, 신기함이었다. 활자라는 것이 지니는 속성과, 활자에 대한 사회학적인 분석 따위야 그 나이에 알 턱이 없다. 그냥 좋았던 것이다. 내 글이 책에 나왔으니까.
원고가 활자로 변신하기까지의 노정은 그만큼 길고도 험했던 것이다. 그러자니 자연 치열한 선고(選稿)과정이 있었을 테고, 활자화되기 위한 제일 조건은 이른바 글의 수준이었을 것이다.활자화 되려면 글을 잘 써야 한다 ------- 재론할 여지가 없는 말이었다.
그 감동과 환희의 시간을 다시 맛보기 위해서는 열심히 문장력을 키워야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활판은 이제 인쇄 박물관에 나가야 볼 수 있게 됐다. 사진 식자라는 것도 눈부시게 매력적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시들해졌다. 레이저프린터니 어쩌니 그러던 게 또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프린터에서 뽑혀져 나온 게 그대로 책이다.
자신의 글이 활자화되는 데는 이제 문장력 따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냥 자판을 두드리고, 인쇄 명령만 내리면 된다.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토스트라도 씹으면서 "2시에 올게 집 잘 봐"라는 문장을 친다. 그러면 즉석에서 멋들어지게 인쇄된다.
적어도 지금은 활자화에 대한 설레는 기대가 글쓰기의 동기가 될 수 없는 시대다. 불행하다면 불행하겠지만, 글쓰기란 결국 활자화 그 자체와는 무관한 거라는 사실을 애시당초 깨닫게 해준다는 건 다행일 수도 있다. 그 대신 우리는 활자의 공해 속에 살게 됐다.
한 도시에 한두 개밖에 없었던 인쇄소가 집집마다 하나씩 갖춰진 꼴이다. 제 나름대로 쓰고 인쇄하고 돌려 읽는다. 자신의 글을 활자화하는 데 이제 어떤 기준도 없다. 따라서 활자화의 가치는 그만큼 떨어진다.
그러나 문학이라는 것은 반드시 활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활자화의 가치가 아무리 떨어져도 이 명제는 변하지 않는다. 여기에 문학의 딜레마가 있다. 활자의 공해 속에서 문학은 과연 문학적 활자와 비문학적 활자의 기준을 스스로 어떻게 마련해 나갈 것인가. 이 시대의 작가들은 오염된 활자와의 힘겨운 변별 투쟁의 과제를 안고 있다. 출판 및 판매의 판도가 뒤바뀌었던 지난해는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지나가 버렸다.
활자화에 대한 설레는 기대를 앗아간 것과 마찬가지로 컴퓨터는 글쓰기의 성취감마저 얼마간 빼앗아 가버린 것 같다. "아, 이제 한 편 탈고했구나"라는 기분이 좀처럼 들지 않으니까.
이 얘기는 앞에서 말한 "과정의 무화" 혹은 "램활자의 잠재성"과 얼마간 중복되는 말이다. 내가 써 놓은 원고에 고치고 지운 흔적 ----- 이것은 때로 처절한 전투의 흔적과도 같은 것이다 ------ 이 보이지 않음으로써 손끝 하나 대지 않은 원고 같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쳐도 원고는 빤질빤질한 맨얼굴을 하고 있다.
이렇게도 써 보고 저렇게도 써 보고, 몇 번을 고치고 지우고, 손때도 묻고 때론 눈물까지 묻히면서, 몇 날 밤 너덜너덜 써 내려간 원고를 아주 깨끗한 원고지에 정성껏 정서를 하고 기지개를 켠다. 원고 끝에 '끝'자를 자랑스럽게 적고 오늘은 오랜만에 벗을 만나 술이라도 한잔 걸칠까 ------- 이것이 성취감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 게 없다. 시샘 많은 색시처럼 늘 새침한 맨얼굴로 시치미를 딱 떼고 있어서, 웬지 더 어루만져줘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벗을 만나 술 한잔할 시간을 빼앗기고 말 수밖에.
4. 디스켓에 갇힌 기억
명함 크기만 한 전자계산기가 나오면서 주판은 없어졌다. 은행 수납계 여직원들의 현란하고 신들린 손놀림을 볼 수가 없어졌다. 전자수첩이 나오면서 기존의 다이어리가 없어졌다. 이 전자수첩은 주소와 전화번호는 물론 일간. 월간. 연간 계획표까지 작성할 수 있다. 누구누구 생일, 결혼기념일, 기일을 기억하고 관리해 준다.
컴퓨터는 원고지면서 인쇄소면서 커다란 창고다. 김장김치를 빼곤 뭐든지 다 저장할 수 있다. 저장한 걸 언제든지 편리하게 빼 볼 수 있다. 일어설 필요도 없고, 서가를 뒤지며 먼지를 마실 필요도 없다. 도서관엘 가거나 은행에 갈 필요도 없다.
이 커다란 창고는 더 큰 장고들과 물꼬를 트고 있다. 걷지 않고 이지 않고 그 더 큰 창고들의 물건을 한순간에 날라 올 수 있다.
넣고 빼기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우린 가끔 이럴 기억 세포로 혼돈하고 있다. 머릿속에 들여놓아야 할것을 디스켓에 들여놓는다. 소설을 쓰다가도 필요한 자료를 화면한 귀퉁이에 언제든지 불러낼 수 있다. 복잡한 것들 다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억이란 자칫 흐려질 수도 있고 혼동될 수도 있는데, 디스켓은 그런 일이 없다.
전자계산기가 있으니까 굳이 암산할 필요가 없다. 전자수첩이 있으니까 친구의 전화번호를 암기할 필요가 없다. 다양한 소프트웨어, 데이터 뱅크, 컴퓨터 통신이 있으니까 필요할 때 얻어 쓰면 된다. 머리가 할 일을 컴퓨터가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저장기능만을 주로 이용하는 꼴이다. 인간의 뇌라는 것은 어떤 정보를 단순히 저장하는 기능만 하는 게 아니질 않은가. 기억량과 정보전달 속도는 그야말로 엄청난데, 분석력이랄지 종합력 면에서 컴퓨터는 아직 놀랄 만큼 저능이다. "Out of sight, out of mind"를 번역하라니까 "보이지 않는 바보"란다.
파일에 저장된 정보는 아직 독립적이고 단편화되어있다. 그것들이 인간의 뇌작용이 일으키는 것만큼 유기적인 것이 되려면 얼마나 낳은 세월이 걸려야 할지 알 수 없다. 머릿속에 저장해야 할 정보를 디스켓에 넣어 두면 정보 상호간의 유기적인 관련성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앞의 자료에는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도망을 쳤다. 뒷자료에선 빨간 옷의 여자가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는 "빨간 옷의 여자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라고 자문하지 않는다. 그런 식이다. 모든 자료를 파일에다 저장하려고만 하면 자료들 스스로 자신들 사이에 놓여진 섹터의 벽을 허물지 못한다. 1차 자료들이 바탕이 되어 제3, 제4의 자료들이 재생산되는 걸 이 벽은 방해한다.
뇌 속에 저장된 정보는 그 양에 관계 없이 한눈에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파일에 저장된 정보는 필요한 부분만을 단편적으로 볼 수 있고, 그때 나머지 정보들은 가려져 있다. 마치 모니터에 나타나는 원고량이 가로 몇 자, 세로 몇 행으로 한정돼있는 것과 같다. 모니터 원고는 전체적으로 볼 수 없다.
번거롭긴 해도 원고지는 수십 장을 한꺼번에 펼쳐 놓고 볼 수는 있다. 아주 작은 차이일망정, 이런 차이는 소설의 서사구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각자의 영역에 갇힌 상태로 기억돼 있는 자료들, 그리고 절대적으로 한정된 화면(앞뒤 화면을 자유자재로 밀고 당길 순 있지만 화면엔 늘 한정된 자수와 행수만 나온다) -------- 이것이 점점 짧아지고 스피디해지는 문장, 인과관계를 무시한 구성, 의식과 형식의 해체 따위와 과연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일까.
내 어머니의 기억은 참으로 빛난다. 수첩도 연필도 없이 칠십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의 기억력은 아름답다. 왜 아름다운고 하니, 어머니의 기억은 디스켓에 저장된 기억들처럼 비정하지 않으니까. 디스켓의 기억은 화석처럼 지워지지 않고, 자료들 각자가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고 보장받는다. 기억이 평면적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것은 이미 기억 속에서 자료들끼리 서로 타협을 했거나 싸움을 해서 일정한 질서를 갖고 살고 있다. 없어질 건 없어지고, 흐려질 건 흐려졌다. 사무친 것은 사무친 대로 남아 있다. 입체적이다.
새벽밥을 짓느라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그 아궁이 앞에서 하루치와 한 달치와 일 년치의 살림살이를 머릿속으로만 궁리해 오셨다. 그러면서도 빚을 갚는데 10원 하나 틀리지 않았다. 전쟁이 나던 해는 날마다 푸른이내가 대나무 숲에 걸려 있었다는 것과, 내가 태어나던 해는 감빛이 일출처럼 붉었었다는 걸 세밀하게 기억하신다. 나는 아침을 먹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3일 전에 읽었던 장편의 주인공은 독후감 파일을 뒤적여야 알 수 있다.
소설을 쓰게 된 뒤로는 나는 여전히 어머니가 해주시는 지난 얘기들에 즐겁게 빠져든다. 기억력에 이 붙으면 "또 하나 해줄까?" 하고 어머니는 신바람이 나신다. 기억이 "살아 있어서" 일 것이다.
어제도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외삼촌댁 전화가 뭐죠?"라고 물었다. 이제는 치아가 다 빠져서 발음이 정확치는 않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즉각 외삼촌댁 전화번호를 알려 주셨다.
이다음 아이들이 내게 지난 얘기 좀 해 달라면 난 어떡할까. 명색이 소설가인 체면에 "파일 복사해줄 테니 볼 테면 봐라"라고 할 순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