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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예(苗裔)

Bollnow 2024. 3. 29. 06:02

묘예(苗裔)

계용묵

 

들에도 한 점의 바람이 없다.

거름 썩은 논귀의 진장물 위에 두 다리를 힘없이 쭉 버드러치고 뚱뚱 떠서 헐떡이는 개구리, 나른히 시든 풀잎 위에 깃을 축 늘어뜨리고 붙어 조는 잠자리 - 보기만 하여도 기분조차 덥다.

양산으로 볕을 가리었다고는 하나 등에 업힌 손자나, 손자를 업은 할아버지나 다 같이 땀에 떴다. 턱밑에 흘러내리는 땀을 할아버지는 건성 머리를 흔들어 떨며 가랫밥 위의 고르지 못한 논두렁길을 허덕허덕 지팡이로 더듬는다.

"엄마, ?"

조는 듯 갸웃이 한쪽 볼을 할아버지의 등에 기대었던 손자는 또 머리를 든다.

"엄마 이제 젖 주디."

언제나 어르던 말 그대로 얼러는 보나, 아직도 엄마의 김터까지에는 한참이나 걸어내야 하겠다.

아무리 늙었다고는 해도 작년만 같더라도 이런 논틀이 같은 것은 볏짐을 잔뜩 지고도 날다시피 걸어냈다. 칠십 여생을 진날 마른날이 없이 짓이겨 내며 잔뼈를 굵히고 늙혀 온 길이다. 다리만 성하고 보면 그까짓 가랫밥 길쯤 한 십 리는 어느 겨를에 걸어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늙음에 풍까지 맞은 다리는 그렇게 마음대로 척척 몸을 실어 옮겨 놓을 수가 없다. 지팡이를 다리 삼아 운용을 하자니 힘은 들고 걸어지지는 않고.

날마다 젖이 늘 늦어져 울어 내는 손자가 측은해서 오늘은 좀 일찍 나온다고 한 것이 다리에 힘은 날마다 줄어드는 듯 며칠 전보다도 한결 더 걸어지지 않음이 현격하다. 해는 벌써 한낮이 기울었거니 아침에 한 번 젖꼭지를 물려 본 아이가 아니 보챌 수 없다.

"엄마 젖?"

"엄마 젖 준대두? 이제 조꼼만 더 참으믄."

할아버지는 무거운 몸을 지긋둥 지긋둥 좀 더 지팡이에 힘을 실어본다.

그러나 제 한 몸만 해도 한 다리로 걸어내긴 된 짐이었다. 아무리 젖먹이의 어린것이라고는 해도 그것은 숨주머니다. 결코 헐한 짐이 아닌 것이다. 맥을 조금만 놓다가도 그것의 요동을 받을 땐 자꾸만 한 편으로 쓰러지려는 위태로움을 느끼게까지 된다.

하건만 할아버지는 그것이 조금도 괴롭지 않다. 그 괴로움 속에 도리어 낙이 있음을 맛보는 것이다. 자기의 잔등이에 만일 이 손자의 숨소리가 없다면 자기의 여생은 얼마나 쓸쓸한 것일까. 앞날의 영원한 행복은 이 잔등이엣 것의 숨소리를 두고는 다시없을 것만 같게 여겨지는 것이다.

손이 모자라서 남 다 떼는 김을 떼지 못하고 이렇게 김이 늦어져 혼가이 떨쳐나서도 쩔쩔매는 것을 보면 단박이라도 머리에 수건을 자르고 논배미로 뛰어들든지 그렇지 않으면 수차에라도 기어올라 다만 한 이랑의 김이라도, 다만 한 바퀴의 물이라도 메고 돌리고 하여 보고 싶은 마음은 참아 낼 길이 없으나, 다리가 말을 안 들어 바로 요 며칠 전에도 한 번은 남모르게 슬그니 수차 위로 올라섰다가 물을 한 바퀴도 못 돌리고 뒤로 나자빠져 물만 먹고 기어 나오던 일을 뒤미처 생각 할 땐 인젠 자기의 천생인 직능을 잃은 듯이 그리하여 인생으로서의 온갖 힘을 다 잃은 듯이 눈앞이 아득한 적막을 느끼다가도 자기에겐 이미 성장한 아들이 있고 그 밑에 또 어린 손자가 있음을 헤아릴 땐, 그리하여 그것은 이제 무력해진 자기의 직능에 대를 이어 주는 생명의 연장인 것임을 미루어 보고는 도리어 알 수 없는 생의 의욕에 이렇게 손자를 자기의 품속에서 키울 수 있게 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몰랐다.

"엄마!"

손자는 엄마를 보았다. 반가움에 손을 내저으며 요동을 한다.

그러나 온 정신을 감탕 속에 모으고 수굿이 머리를 모속에 묻은 엄마의 귀에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저 수굿하고 풀을 고르고 감탕을 주물러야 하는 것이 그의 할 일이었다.

"엄마! 엄마!"

손자는 자꾸 뒤로 자빠져 나오며 머리를 흔들어 낸다.

"젖 멕이구 봐? 아무래두 오늘은 못 다 맬 걸 멀."

건너쪽 개울에서 논귀로 물을 퍼올리던 아버지가 먼저 보고 아내에게 말을 건넨다.

절절 끓는 이 폭양에 밑에서 웃통을 쭉 벗고 사루마다 바람으로 수차 위에 올라서 쉬임 없이 연해 바퀴를 짚어 넘기는 아들- 볕에 그을고 들바람에 씻긴 그 적동색 살갗, 다리를 드놓을 때마다 떡 벌어진 어깻죽지와 울근거리는 근육, 불근거리는 종아리, 그 건강, 그 힘- 볼 때마다 할아버지는 만족하다. 이미 자기는 그것을 감당할 능력을 잃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그 억센 힘은 손자를 위하여 앞날을 바라보기에 아무러한 미련도 없을 것 같은 것이다.

"너두 좀 쉐서 푸람? 아무래두 오늘은 못 다 풀 걸."

손자를 어미에게 내어 주고 두렁 위에 펄썩 주저앉으며 할아버지는 자식을 올려다본다.

"쉬다니요! 물이 자라질 않아서 김이 더 늦어지는데요."

"날이 무던히 덥구나."

"아부님 제 걱정은 마르우. 그까짓 물 한 열흘쯤 못 퍼 넘으갔소."

마음까지 든든한 아들이다.

"그래두 정 힘들문 좀씩 쉐서 푸군 해라. 제 몸은 제레 돌봐야디."

"저야 지금 한참 혈기에 무슨 걱정이 있소. 이 더위에 아부님이 그저 그걸 날마다 업으시구……."

"아니로다. 난 그게 낙이로다. 내 잔등에 그 재석이 없어만 봐라, 내가 오즉 적적하겠네. 늘그막에 자식 기르는 낙 없이 무슨 맛에 산단 말이냐?"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퍼렇게 불은 엄마의 젖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한참이나 빨고 난 손자는 그제야 마음이 가득한 듯이 젖꼭지를 놓고 엄마의 얼굴을 치어다보며 벙긋 웃는다.

"! !"

할아버지는 무릎을 돋우 세우며 혀를 채어 손자를 어른다.

손자는 소리를 내어 깨륵거리며 할아버지를 향하여 그 조그마한 두 팔을 날개같이 벌리고 안기려 내어 쏜다.

할아버지도 같이 팔을 벌려 건너오는 손자를 가슴에다 바싹 받아 안았다.

엄마의 젖을 빨아먹고는 으레 자기의 품속으로 건너와 안길 줄 아는 손자, 그것을 받아 안을 때의 귀여움, 할아버지는 어떻게 할 줄을 몰라 손자의 뺨을 옴옴 빨아내며 말랑거리는 엉덩이를 찰싹찰싹 두드렸다.

손자는 나날이 다르게 살이 포동포동 오르고, 할아버지는 나날이 다르게 살이 삐듯삐듯 깎이어 내린다. 김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할아버지의 다리는 지팡이를 짚고 나마 손자를 등에 없을 기력을 잃었다.

마치 한 떨기의 풀이 서리를 맞고 추위를 몰아오는 거센 바람에 떡잎이 점점 시들어 말리듯이, 그러나 시들수록 그 떡잎 속에서 힘찬 생명이 새파랗게 봄 준비를 하고 기다리듯이 기력이 점점 쇠퇴하여 가는 할아버지의 품안에선 그 어린 손자가 모락모락 자라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완전히 다리를 못 쓰고 앉아서 뭉개게 되었을 때엔, 손자는 가끔 일어설 공부까지 하였다.

"서어마 서마 -서마 -."

할아버지는 방안이 좁다 기어다니며 짬짬이 일어서 보기에 힘을 넣는 손자를 바라보다가 그 일어섬을 자기의 힘으로 도와나 주려는 듯이 물팍걸음으로 쫓아다니며 대고 손을 공중으로 추어올려 격려를 하였다.

그러면 손자는 더욱 신이 나서 일어서 보려고 애를 쓰기는 하나 그것은 아직 조계였다.

겨우 한 팔이 방바닥에서 떨어졌는가 하면 그만 한 다리가 모로 쏠리어 픽픽 주저앉고 만다.

그리고는 마치 떡잎을 헤치고 나올 힘이 부족한 듯이, 그리하여 그 묵은 떨기 속에서 좀 더 단련을 하려는 것처럼 벌레벌레 쭈르르 기어 와서는 할아버지의 품속으로 기어든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섬의 더딤이 여간 마음에 섭섭하지 않다. 대개는 아이들이 열 달이나 그만한 세월이 흐르면 다 설 줄을 아는데 왜 이리 손자의 섬은 더딜꼬? 풀마나 하듯 짬짬이 손을 잡아 일어 세워선 끌어서 걸려도 보며 단련을 시키나 할아버지의 손의 의지가 없이는 아무리 애를 써내도 제 힘으로는 설 줄을 몰랐다.

그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접어들어서도 손자는 완전히 일어서지를 못했다.

봄이 왔다.

마을 안은 살구꽃에 붉고, 산 속은 새소리에 푸르다.

농가에서는 또 농사 준비에 한창 바빠야 할 시절이다.

헛간 구석에 아무렇게나 처박아 두었던 연장을 들어내 먼지를 털고 물러난 사개를 맞추는 마치 소리가 날마다 마을 안에 요란하다.

봄이 왔다고만 해도 할아버지의 마음은 길러 온 버릇을 잊지 못해 방안에 누워서도 씨를 뿌리고 재를 덮고 자구를 밟고 - 생각에 못 잊히는데 마치에 맞아 물러났던 연장의 사개가 치칙 소리를 내며 들어가 맞는 부딪침 소리를 들을 땐 자기도 금방 밭길이에 한몫 메고 나서야 할 것만 같아 봄뜻에 서두는 마음을 이겨 낼 길이 없었다.

"우리 밭은 웬제 가네?"

마당에서 연장 수선에 바쁜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우린 낼 보리밭 냄을 내게 했어요."

"자구 밟을 꾼이 없갔구나?"

"제 에미와 밟으래디요."

자구나마 허치 않는 다리, 할아버지는 답답함을 못 참았다. 지팡이를 구석에서 당기어 문을 밀었다.

앞집의 지붕 너머로 바라보이는 누동의 오리나무 그 가지마다에 하이얗게 앉은 왁새들 - 한창 둥지를 틀기에 바쁘다. 수놈은 줄불이 나게 나뭇가지를 물어 오고 암놈은 둥지를 지키며 앉았다가 그것을 받아쌓고 - 금년에도 여전히 왁새가 누동으로 들어와 둥지 트는 것이 할아버지는 여간 반갑지 않다.

할아버지는 왁새처럼 사랑하는 새가 없었다. 왁새는 그해의 그 마을의 농사를 말하는 영조다. 왁새가 촌중에 봄마다 들어와서 새끼를 쳐 내가야 그 촌중에 운이 든다는 것은 예로부터 들어오는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장난받이 아이들이 알을 내리러 오르내리는 것을 할아버지는 한사코 말려 오며 보호를 하여 오는 그 왁새인 것이다. 그 왁새가 잊지 않고 이 봄에도 또 들어왔다. 들어와서 봄 역사를 한다. 왁새와 같이 농사를 위하여 봄을 맞고 싶은 마음-.

그러나 자기에겐 손자를 보는 일밖엔 인제 더 던지어진 일이 없다. 오직 거기에 정성을 다함으로 힘을 쓸 것이 자기에게 남은 책임이다.

손자, 그것은 인생의 봄 싹이다. 그것을 가꾸어 내는 것은 좀 더 뜻있는 일인지 모른다. 한창 서려고 공부하는 손자, 그 아양이 더할 수 없이 귀여워진다.

눈을 돌려 방안을 살피었다.

그러나 손자는 방안에 없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조금 전에 밖으로 나가자고 어미를 졸라 등으로 기어들며 쪼륵시던 것을 생각했다.

제나 내나 꼭 같이 걸음은 걸을 수 없는 몸이건만 손자는 호령 일령으로 마음대로 어미의 등에서 바깥출입을 하는 자유를 행사한다! 자기는 인제 모든 것을 손자에게 바치고 난 몸인 것 같다.

"애놈 밖에 있네?"

아무의 대답도 없다.

"애놈 밖에 없어?"

"들어가요."

대문 밖으로 들려오는 어미의 대답. 필시 어디를 갔다가 돌아오는 모양이다. 이윽고 방안으로 들어와 업었던 손자를 내려놓는다. 손자의 손에는 한 포기의 꽃이 들렸다. 화편 안이 새빨간 할미꽃이다.

뒷산에 올라갔다가 산소갓 잔디판에 핀 꽃 할미꽃을 자꾸만 꺾어 내래서 꺾어 주었노라는 어미의 말을 들으며 할아버지는 품속으로 기어드는 손자를 안고 코끝에 닿는 꽃향기에 봄의 조화를 잊었던 것처럼 그 신비스러움에 다시금 놀랐다.

저렇게 새빨갛게 예쁜 꽃이 어떻게 새까만 땅속에서 생기어 날꼬? 죽으면 하잘것없는 한 줌의 흙밖에 더 되어지는 것이 없을 것 같던 적막하던 마음은 저런 꽃을 피워내는 거름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니 장차 자기의 죽음도 사람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정서를 자아내게 하는 그런 보람이 되는 것이라면 생각과 같은 그런 적막한 죽음이 아닐 것 같다.

이렇게 되는 것이 죽음의 원칙일까? 원칙이라면 자기는 농사꾼이니까 아마 곡식을 키우는 거름이 될 것만 같다. 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원하고 싶은 일이랴! 당장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다. 자기는 땅속에서 벼를 빚어내고 손자는 땅 위에서 그것을 가꾸어 키우고-.

할아버지는 다시금 손자가 귀여움을 느낀다. 품안을 두 팔로 얼싸안았다. 그러나 안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손자는 품 안에 있지 않았다. 언제 품을 빠져나갔던지 발치 구석에 세웠던 호미를 더듬어 들고 그것을 의지해서나마 서 보려는 것처럼 일어설 공부에 일심이다. 한 팔은 완전히 땅에서 떨어졌다.

"서어마! 서어마! 서어마!"

할아버지는 손자나 마찬가지로 안타깝게 마저 떼어 보려는 호미를 든 다른 한 손에 눈을 주고 부르짖었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격려 소리에 더욱 흥이 실려 조심스럽게 몸에 힘을 주며 손을 떼었다, 짚었다 한다.

"서마 공둥! 서마 공둥!"

할아버지는 그 호미 든 한 편 손도 점점 떨어져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어쩔 줄을 모르고 두 팔을 들어 허공을 치받으며 얼러댄다.

"서마 공둥! 서마 공둥!"

부르짖다 할아버지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 추며 무릎을 탁 쳤다. 손자는 필경 일어서고야 만 것이다.

그러 일어선 것도 아니요 호미를 들고 일어선 손자, 할아버지는 어떻게도 만족한지 몰랐다.

아이가 처음으로 일어설 때에 가지고 일어서는 그 물건으로 장래 그 아이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할아버지는 그대로 믿어 온다. 호미를 들고 일어섰다는 것은 필시 농사를 상징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성장함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하더라도 이제 그것은 틀림없이 자기의 뒤를 이음으로 집안의 대를 농사로 이어 갈 것임이 마음에 놓였다.

일어선 것이 너무도 기꺼워 벙글거리고 섰는 손자의 손목을 할아버지는 잡았다. 손자는 지긋지긋 걸어와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몸을 내어다 던지는 듯이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만족한 듯이 할아버지를 치어다보며 끼르륵 웃는다.

"그저 내 손주 싸디 요놈이!"

할아버지는 품안에 들어오는 손자를 바싹 끌어안으며 엉덩이를 뚜드려 냈다.

<매신사진순보>(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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