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전후(洪水前後)
홍수전후(洪水前後)
박화성
1
어제 한나절과 지난밤 새도록 작대기처럼 쏟아지던 비도 날이 새면서부터는 미친 듯이 날뛰던 빗발들을 잠깐 걷고 검은 구름장 속에서 무슨 의논들을 하였는지 멀어지지 않을 듯이 굳게 엉겨 붙었던 구름덩이들이 이쪽저쪽으로 슬슬 헤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몇 겹으로든지 첩첩이 덮여 있는 구름장인지라 검은 구름장이 슬그머니 찌어지자 그 속에서 검회색과 회색의 구름덩이가 몰켜 나와서 앞서간 구름의 뒤를 가는 듯 마는 듯 따라간다.
포플러나무들도 겨우 숨을 내쉬고 온갖 풀잎도 가만히 고개를 들고 지난밤의 무서운 광경을 그리며 몸을 떨면서 물방울을 털었다.
어디 가서 숨었던지 킹킹거리는 소리 한마디 없었던 검둥이가 어슬렁어슬렁 진흙투성이가 된 꼬리를 축 늘이고 마당으로 나오고 죽은 듯이 자빠져 있는 듯한 돼지조차 꿀꿀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물창 틈으로 주둥이를 내놓고 코를 벌씬거린다. 닭들고 영계들까지 몰려와서 웃퇴 위에 놓여 있는 보리 가마니 위에 올랐다 내렸다 하며 놀고 있다.
명칠이는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방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인제는 비도 그만 와야지 오늘 종이 퍼부었다가는 또 무슨 일이 날 것인데. 원 하늘이 하시는 노릇이라 알 수가 있어사제…….”
하고 하늘을 쳐다본다. 움직이고 있는 큰 하늘은 무서운 비밀이나 꾸미고 있는 듯이 명칠의 눈에 두렵게 보였다.
그는 천문학을 배우지는 않았다. 그러나 십사 년 동안 영산리(榮山里) 이 깊은 곳에 살면서 해마다 당해오는 물난리를 좋이 겪어오는 만큼 하늘의 모양과 구름덩이의 가고 오는 방향을 따라 대개 날씨는 어떻게 변하며 비 오는 껄쎄를 보아 비가 얼마큼이나 올 모양인지 짐작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만한 것쯤은 산간 농부나 어항 어부나 아니 도회지의 유복하다는 노인들까지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다시 소작인의 아들을 가지고 있는 명칠이, 더구나 한편으로 조그마한 배 두 개를 가지고 영산강의 어부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이 송서방은 나이는 지금 마흔다섯이건만 다른 육십 노인보다도 더 많은 천기에 대한 경험 지식과 선견의 밝음을 가지고 있었다.
송서방의 천후에 대한 지식이 노숙한 만치 그의 얼굴도 나이에 비하여 몹시 늙은 축이었다. 기름한 얼굴이었다. 육지와 강으로 쏘다니며 당하는 육체적 노동과 농부와 어부의 특수한 고통─ 날씨에 매여 살아가는 만큼 천후로 인하여 당하는 심리적 고통─ 이 하루도 그의 얼굴에서 주름을 펴준 날이 없었으매 영양 좋은 사람의 얼굴에서는 기름이 흐르고 혈색이 좋을 장년 시기의 한창때를 가진 명칠의 얼굴에는 그의 손등에서 볼 수 있는 고로(苦勞)의 주름살이 이마와 두 볼에 잔줄을 그었고 검고 누른 얼굴빛은 항상 영양이 적음을 탓하는 듯이 뜨거운 여름 볕에나마 붉어지지는 않고 검어가기만 하였다.
“논에 나가 보니까 어쩝딩껴? 인자는 고만 오먼 풍년이것지라우?”
송서방의 마누라는 부엌문 앞에 앉아서 보리를 갈면서 남편을 쳐다보고 물었다.
“암─ 은 비만 그만 오먼 금년은 대풍년이것데마는…….”
하고 다시 하늘을 쳐다본다. 그의 마누라는 보리 뜨물을 돼지 밥통에 주르르 부어주면서
“아이고 돼지막에 물이 흥근하게 관 있소. 그래도 또 비가 올라는가베.”
하고는 하늘을 쳐다본다. 가랑비가 뿌린다.
“엄마!”
두 살쟁이 계집애가 송서방 무릎에 덤썩 기어올라서 담뱃대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나님아! 이리 온!”
열한 살 먹은 쌀례가 아기를 데려가며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면서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 망설이다가
“아부지!”
하고 용기를 내어 아버지를 불렀다.
“왜 그래.”
송서방이 고개를 쌀례 족으로 돌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참외하고 수박하고 안 따 오시오?”
하고 쌀례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고 나님이를 안아 올리면서
“또 비가 딸아지먼 어디 따러 가겄소? 작년마냥 물이나 쪄버리면 한나 맛도 못 보고 말어버리게라우? 비 쏟아지기 전에 따 왔으면 좋겄구만.”
하고 성날 때에 하듯이 입을 내민다.
“저런 년 처먹을 일이나 밤낮 궁리해라. 애기나 업어줘. 그저 참외 수박 노래만 부르고 있다니께 거년은 허천병이 들었는 것이여.”
어머니가 부엌 속에서 소리를 지르며 야단친ㅋ다. 쌀례는 아기를 안고 돌아서면서 눈물을 씻다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밥 먹고 나서 따다가 주마.”
송서방은 점잖게 말하였다.
“나도 아부지 따러서 수박밭에 갈 테여.”
장독머리에 있는 손바닥만 한 꽃밭에서 쓰러진 복사꽃 나무를 다시 심고 있던 꽃례가 말하자
“나도 따러가랴.”
하고 검둥이를 데리고 툇마루 끝에서 놀던 여덟 살 되는 귀성이가 한자리 잡고 나섰다.
“저년은 열네 살이나 되는 년이 어린 동생 듣는 데서 못 할 소리가 없다니께. 이년아 어서 밥솥에 불이나 때─”
어머니의 둘쨋번 쏜 총알은 꽃례에게로 향하였다. 꽃례는 귀성이를 보고 혀를 날름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니 윤성이는 어디 갔는가?”
“언제 어지께 밤이 들어왔더라우? 또 대흥이네 집이 가서 그놈들하고 숙덕 공론이나 하고 자빠졌는가 부오그랴.”
송서방의 진중한 말소리의 정반대로 그 마누라의 소리는 콩알처럼 대굴대굴 부엌 속에서 굴러 나오는 듯이 쫑알거렸다.
“앵─ 참.”
송서방은 안간힘을 꿍 쓰면서 담배를 탁탁 털었따.
귀성의 손에서 검둥이가 주르르 빠져나가더니 획획 내두르는 꼬리 뒤에는 윤성이가 따라 들어왔다.
그 아버지의 골격을 닮은 건장한 체격을 가진 윤성이는 스무 살밖에 아니 되는 청년이건만 늠름한 장부의 티가 보였다. 그러나 소작인의 혈통을 가진 그의 얼굴빛은 역시 빈약하였다. 대대로 물려 나오는 오직 하나의 유산은 영양 부족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후손인 윤성이도 이 유산을 물려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의 큼직한 눈이 불평을 가득히 담고서 항상 빛나는 시선을 이리저리 쏘아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눈을 열기 있는 눈이라 샛별 같은 눈이라 칭찬하였으나 톳게리 허부자 그들의 지주 양반만은 그의 눈을 불량한 목자라고 비난하였다.
2
윤성이가 툇마루에 걸어앉으며
“간밤 비에 어디 상한 데나 없었소?”
하고 물었으나 송서방은 아무 말대답이 없었다.
“어째에 상한 데가 없어야? 앞개울물이 정제까지 들어왔더란다. 집안사람 누가 잠이나 잔 줄 아냐? 해마다 당하는 노릇인데 뭐! 번히 물 들 줄 알면서도 다른 집에 가서 퍼자고 온 것 봐. 언제나 철이 들는고 몰라.”
그 어머니는 부엌문 앞에 서서 아들을 흘겨보며 치맛귀에 손을 씻고 있다.
“어쩔 것이오? 이런 데서 살면서야 으례히 그런 일을 당할 줄 알어야지. 그러니께 어서 여기서 떠버리자고 안 합디까?”
하며 윤성이는 두 손으로 턱을 고이고 내리는 빗발을 바라다보고 있다. 윤성이가 들어올 때부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다가 이제는 기운차게 쏟아진다.
송서방은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윤성아 너 지금 무엇이라고 했냐?”
하고 곰방대에 새로 담배를 담으면서
“나이 이십이면 한 집안을 거느릴 자식이 거 무슨 철없는 소리여. 아니 누가 이런 데서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인가. 여름이 돼서 장마철만 들면 그저 맘이 조마하고 밤에 잠을 맘 놓고 못 자면서도 열네 해 동안 해마다 집구석이 물에 잠겨서 온갖 고생을 당하고 살기가 그리 좋아서 여기서 살고 있는 줄 아냐? 앵? 철없는 자식.”
하고 송사방은 담뱃불을 붙인다.
“글쎄 말이오 오직해야 이런 데서 해마다 그 노릇을 당하고 살고 있겄소만은 그래도 어떻게든지 떠날 도리를 해봐야지 이런 데서 항상 살다가는 큰일이 한 번 나고 말 것이오. 그러니께 일찌가니…….”
“옳지 네 말대로 일찌가니 허부자네 집이 가서 떼장이나 써서 새집 하나 얻으란 말이지야? 염치없는 자식.”
송서방은 윤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을 내어 그의 말을 무질러버렸다.
“이 집도 허부자네 집이던 것을 해마다 벌어서 집값을 갚었더람서라우. 그러니께 말이오. 이왕 그 집 논을 벌면서 또 집 하나 하나쯤 높즉한 데 있는 것을 얻어보란 말이지. 누가 뺏어오라고 했소? 안 주면 떼장도 놓지 어째라우?”
윤성이의 말소리가 거칠어졌다. 비는 쭉쭉 무서운 기세로 쏟아진다. 아이들도 아무 소리 없이 비 오는 것만 바라보고 있다.
“흥 또 불한당 같은 소리가 나오는구나. 사람의 운수복력이 다 팔자에 타고난 것인데 새파란 어린놈들이 손발 떨어지도록 벌어먹을 생각은 않고 그저 잘사는 사람 시기할 줄만 안단 말이여. 자 그 사람들이 땅을 안 주더냐? 집을 안 주더냐? 그 사람들이 없으면 우리 같은 작인은 굶어 죽어야 옳게? 아니 그런데 저번 한창 가물 때 논이 갈라지니께 너그들이 허부자네 집이 가서 소작료를 감해달라고 떠들어댔담서야? 그 대흥이 유동이 만성이 이런 놈들하고 물켜다니면서…… 앵─ 못된 놈들 같으니 경찰서에나 잡혀가고 지주 집에나 몰려가서 심술이나 부리고 하는 놈들하고 이놈 다시 또 붙어 단겨만 봐라. 다리뼈를 분질러놀 테니께…….”
하고 송서방은 다시 담뱃대를 힘 있게 빨면서 불을 댄다.
“천리란 것은 어기지 못하는 것이라 그렇게 몹시 가물다가도 기우제 몇 번에 비가 이렇게 많이 와서 물이 불어 모를 심어 곡식이 자라나 무엇 다─ 사람 살 대로만 되어간단 말이여. 다만 근본 복을 사주팔자에 못 타고나서 죽게 일하고도 평생을 이리 가난하게 사는 이것이 한탄이지. 남들 잘사는 것보고 욕할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그저 가난이 원수니라 가난이 원수여. 이놈의 데를 못 떠난 것도 가난하기 땜세 붙어사는 것이 아니여?”
하고 송서방은 꺼진 담뱃대에 다시 성냥을 그어 댄다. 윤성의 입가에는 비웃음의 미소가 떠올랐다. 천리를 말하고 운수에 맡기면서 다시 가난이 원수라는 것을 역설하는 그 아버지의 모순된 말소리에 하염없는 쓴 탄식이 나왔다.
‘우리 아버지도 멀지 않어서 모순을 깨달을 때가 올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하고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아버지뿐이 아니라 농민의 전부가 다 저 같은 생각에 굳이 잡혀 있는 것이 아니냐?’
그는 기침을 칵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부지! 참말로 우리 여기서 살지 말고 다른 데로 이사 갑시다 예? 나는 어저께 밤에도 무서워서 꼭 죽겠습디다.”
하고 쌀례가 말참례를 한다. 보리밥 냄새가 물큰 끼치자 귀성이가
“어무니 어서 밥 줘.”
하고 큰방 샛문에 붙어 서고 검둥이도 고개를 개웃하고 부엌 속을 들여다보고 서 있다.
비가 다시 줄기차게 쏟아진다.
“아버지 말씀대로 세상일이 다 사람 살 대로 되어가면 좋지마는 만일 이 비가 오늘 종일 내일 모레까지 쏟아져서 영산물이 넘고 우리 집이 떠내려가고 사람들이 죽고 동넷집이 무너지고 그렇게 되면 어쩔 것이오? 그때도 천리라고 앉어서 죽기를 바랄 것이오?”
윤성의 말소리는 몹시 뻣뻣하게 들렸다.
송서방은 화를 벌컥 내며,
“이 버릇없는 자식 같으니 뉘 말대답을 그렇게 하느냐? 꼭 네 말대로 고렇게 되어버렸으면 좋겄지야? 액─ 이놈 썩 나가거라. 그런 자식은 없어도 좋다 당장 나가─”
하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윤성이가 벌떡 일어나서 나가려고 할 때 그 어머니는 밥상을 가져다 툇마루에 놓으며
“아나 나가더래도 밥이나 먹고 나가거라.”
하였으나 윤성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나가버리고 말았다. 비는 점점 더 억세게 쏟아져서 이 식구들이 곱살 보리밥을 다 먹고 났을 때는 앞개울물이 넘치어서 남실남실 마당에까지 들이밀렸다. 송서방은 벌떡 일어났다.
“명칠이! 명칠이!”
요란스러운 빗소리를 뚫고 황급히 송서방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명칠이! 어이 명칠이!”
여러 사람의 부르는 소리가 앞내 저쪽 언덕에서 들려왔다. 송서방은 마주 소리쳤다.
“어이 덕성인가? 이 우중에 어찌 나왔는가?”
“어서 나오소. 자네 식구들만 데리고 어서 높은 데로 나와야지 큰일 날 것이네.”
덕성이의 외치는 소리도 빗소리에 꺾이어 도막도막 들렸다.
“내 걱정 말고 자네들이나 어서 가서 손볼 데 손보고 그러소. 해마다 당하는 노릇인데 설마 어쩔라던가?”
송서방은 어서 가라는 뜻으로 손을 치며 소리하였다.
“작년에도 자네가 고집 부리고 끄니─ 안 나오고 말았다고 본 사람들이 모두 욕하네. 그만 고집 부리고 어서 나오라니께. 저 봐─ 개울물도 넘어 들지 않는가? 그런데 영산강물이 넘어 들게 되면 어쩔라고 그러는가? 어서 지금 나오소 어이.”
이번에는 윤삼이가 소리쳤다. 우장을 쓴 그들의 모양은 빗발에 묻혀 안개 속으로 보이는 듯이 가물가물하였다.
한 지주의 전답을 함께 벌어먹고 산다는 야릇한 인연이 맺어준 우정과 오랫동안 이웃 동리에서 산다는 정리가 그들로 하여금 명칠이를 위하여 힘껏 소리치고 열심히 권고하게 하였으나 송서방은 끝끝내 그들만을 보내고 말았다.
십사 년을 지내는 동안 그는 죽음이란 것은 쉽사리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못하는 것이라고 단정해버릴 만한 죽음에 대한 경험철학의 고질적 신념을 가지게 된 것과 또 그에게는 배 두 척이 있어 비록 그 하나가 극히 작은 거룻배일망정 일곱 식구의 생명쯤이야 언제든지 구원해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마다 장마철이면 지비이 물에 잠겨서 위험한 고비를 당할지라도 친구들의 권고도 물리쳐버리고 식구들을 배에 태워서 물 빠지기를 기다리며 살아갔던 것이었다.
3
비는 잠시도 그치지 않고 퍼붓기만 하였다.
금성산맥으로부터 멀리 나주 영산포의 넓은 평야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경계로 컴컴한 하늘은 물에 싸여 허덕이고 있는 대지를 무겁게 누르고 비를 쏟고만 있었다.
하늘과 땅은 빗줄기로 연하여졌고 내리는 빗발마다에서 튀어나는 가는 물방울이 보얗게 물연기를 내고 있다.
점점 험악해가는 검은 하늘은 더욱 악착스럽게 폭우를 내리쏟는다. 하늘도 내려앉을 듯하고 땅도 폭 꺼질 듯하게 오직 두려운 빗소리만이 천지에 가득하였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가는 평시에 재주와 용기를 자랑하던 급행열차들도 이 위대한 대자연의 무서운 기세와 위엄 아래에서는 물 위에 기어가는 작은 벌레에 지나지 못하였다.
종일을 한결같은 위세로 쏟아지던 비는 기어코 남조선 각처에 있는 크고 작은 강물을 붇게 하고 개천을 넘치게 하고 수리조합의 제방을 헐고 방축과 원둑을 터쳐버리고 말았다.
강 연안과 낮은 지대에 있는 동리는 물에 잠기고 지붕까지 잠긴 집은 둥우리가 떠내려가고 헐어지고 사람들은 높은 곳으로 물을 피하여 올라가며 목을 놓고 울었다.
장성(長城), 능주(綾州), 남평(南平), 화순(和順), 옥과(玉果), 곡성(谷城), 순창(順昌), 담양(潭陽), 평창(平昌), 나주(羅州), 송정리(松汀里), 광주(光州) 등의 열두 골 물이 한데로 합하여 내려가는 길이 되어 있는 영산강의 물은 시시각각으로 불어만 갔다.
각처에서 들이밀리는 물이 영산강으로 몰려들어가서 영산강물은 불완전한 연안을 쿵쿵 헐어가며 철철 넘쳐흘렀다. 논을 삼키고 들을 삼키며 내려가다가 영산포 물길의 길 어귀인 개산(犬田)의 굽이에 닥치어 많고 많은 물이 좁은 어귀로 빠져나갈 길이 없으매 용감한 기세로 앞을 향하여 전진하던 영산강물의 연합 진군은 갑자기 뒤로 뒤로 퇴군할 수밖에 없었다.
무서운 힘의 기세로 몰려갔던 붉고 누른 물결이 다시 맹렬히 돌쳐서며 내려오는 물의 세력과 물러나는 반동적인 수력이 한데 합하여 두렵게 큰 위력을 가지고 불행한 운명에서 떨고 있는 영산포 시내를 휩싸버렸다. 내려갈 때 겨우 물결의 험한 손길을 면하였던 조금 높은 곳에 있던 전답과 인가들도 퇴군한 수군의 최후 발악적 습격에는 드디어 전멸하고 말았다.
언덕이 무너지며 집들도 함꼐 헐어지고 떠내려가지 못한 집들은 팍팍 찌그러졌다.
개산 시령산이며 운곡리 뒷산 등 높은 곳에는 아기들을 업고 안고 울며 부르짖는 사람들의 흰옷 그림자가 사납게 쏟아지는 빗발 속에서 처참한 광경을 곳곳이 나타내고 있었다.
나주 정거장은 물에 잠기고 기차선로는 끊어져 문명의 빛난 무기도 누르고 붉은 물결만은 이겨낼 수가 없었다.
삼도리, 길옥구, 옥정, 신기촌, 광볼, 덕치, 강경골, 가마테, 영산리, 새올, 톳게리, 도총, 돌고개, 원촌, 금천면, 신가리 등의 이재민들은 전부가 다 농민인 중에 가난한 상인들도 끼어 있었다.
왕곡면 옥곡리와 다시면 죽산리는 아주 전멸하여버리고 말았다.
물에 잠긴 영산포 시가를 경계하느라고 경종은 밤새도록 울고 울었으나 그릇 몇 개와 옷 보퉁이 하나씩을 들고 어린애들을 업고 안고서 높은 곳에서 물결에 삼켜진 집터들을 내려다보며 비에 폭 젖은 옷을 입고 울고 떨고 섰는 이재민들과 한 집 속에 칠팔 가족의 식구들이 웅게중게 모여 비 맞은 병아리들처럼 우들우들 떨며 있는 그들에게는 아무런 구원도 되지 못하는 차디찬 시끄러운 고동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영산교 높은 다리 밑에는 탁랑(濁浪)이 석 자의 거리를 남기고 흉녕한 손길을 넘실거리고 있고 시가 중에 있는 이층 지붕에는 발동선이 닿아 있으며 삼십사 년 전 신축년 대홍수 이래로 처음 당하는 그때보다 석 자가 더 자라는 대홍수이었다. 보통 장마 때에도 홍수의 재난을 받지 않으면 아니 되는 우리 주인공 송서방은 이 적파 속에서 어찌 되었는가?
4
악수1)로 퍼붓는 빗속에서 영산리 밤은 깊어갔다. 송서방 내외는 집 안에 들어온 물을 빼낸다 개울 둑을 쳐낸다 하느라고 종일을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기 때문에 밤이 되어 몸이 노곤해지며 졸음이 폭폭 왔다. 전에 해본 경험대로 대낀 보리를 있는 대로 다 털어서 밥을 한 솥 가득히 짓고 된장과 무짠지를 곁들여서 큰 바구니에 담아놓고 물 한 병을 담았다.
그리고 식구대로의 의복을 풀도 못한 채로 보퉁이에 싸고 그릇 몇 개를 넣어 묶어서 배 속에다 넣어두었다.
이제 물이 집 속에 가득히 들어 기둥에 매어둔 배 두 척이 둥둥 뜨면 식구들은 그 배 속에 들어가 물이 빠질 동안 그 밥과 물을 먹으면서 기다릴 심산이었다.
만단의 예비를 해두고서 물 들어오는 것을 지킬 양으로 아이들은 재우고 두 내외는 쭈그리고 앉아서 빗소리를 들어가며 밤을 새우려 하였으나 스르르 감겨지는 두 눈에 마당에 고인 물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 마는 듯하다가 그들은 안은 채 쓰러져 잠깐 잠이 들었다.
별안간 왁자하는 소리에 잠이 깨어 저승에서 들리는 듯이 처참하게 들려오는 고동 소리가 들렸다. 영산강물이 넘었다는 신호이었다.
뒤미처 송서방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명칠이! 명칠이!”
송서방은 화닥닥 뛰어 일어나 대답하였다.
“영산강물이 넘었다네. 큰일 났네. 어서 식구들 데리고 나오소.”
덕성이와 윤삼이는 새벽빛에 물빛이 희끄무레한 속으로 두 손을 치며 소리쳤다.
“어서 자네들이나 피하소. 사람의 생사화복이 천리대로 되는 것이니까 내가 여기서 피해 나간다고 죽을 놈이 안 죽는단가? 목숨만 길먼 불 속에서도 살아나는 것일세. 염려 말고 어서들 가소.”
송서방의 말소리는 극히 침착하였다.
“에이 돌뎅이 같은 사람! 어린것들이 불쌍하지도 않은가? 그래 안 나올 텐가?”
그들은 성이 나서 부르짖었다. 강물이 넘었다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여러 동리에서는 물을 피하려는 준비에 급급하여 여기저기서 마주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끼 못된 작자! 죽거나 말거나 하소. 우리는 가네 원 사람도 잉간해야지.”
성미 급한 덕성이는 악을 버럭 쓰고 휙 돌아서서 윤삼이를 데리고 가버렸다.
두 내외는 아이들을 깨우고 나서 보리 가마니를 날라다가 방 안에다 쌓았다. 보리 양식도 겉보리까지 다섯 가마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송서방은 큰 동아줄을 가지고 와서 기둥을 붙들어 매고 남은 한 가닥은 집 뒤에 서 있는 포플러나무에 매었다. 그리고 쭉 둘러서 있는 포플러나무마다 올라가서 굵은 줄을 매어 늘여놓고 장대를 한 개씩 걸쳐놓고 내려왔다.
앞뒤로 즐펀하게 있는 논밭을 삼키고 밀려오는 누른 물결은 넘실넘실 뱀의 혀끝처럼 남실거리며 차례차례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염치없이 마당으로 달려들었다. 이리저리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송서방의 걷어 올린 무릎을 넘어 황톳물은 넓적다리까지 올라왔다. 물결은 사정없이 닥쳐들었다. 툇마루로 방으로…….
아이들은 방 속, 찰랑거리는 물속에서 발을 구르고 울고 송서방 마누라는 어린애를 안고 갈팡질팡하였다.
송서방이 물에 잠긴 마당에 들어서서 아이들을 배에 태우려고 저쪽으로 밀려가는 큰 뱃줄을 잡아 내리려고 할 때 잠깐 사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붉은 물결이 영산강 하류 쪽에서 왈칵 달려들어 자기 딴은 굳게 잡아매어놓은 줄 알았던 큰 배가 물결에 휩싸여 떠밀렸다.
송서방의 식구들은 비명을 질렀다. 급한 물결에 떠밀린 큰 배는 물 가운데 밥 바구니와 물병을 담은 채 한 번 빙 돌다가 하류 쪽으로 떠내려간다. 송서방은 그 배를 잡으러 갈 듯이 허우적이며 쫓아가려 하였다.
“아이고 애기들을 어쩌라고 배 잡으려 갈라고 그래요? 윤성이는 어디 가서 안 오는고?”
마누라는 겁결에 당목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지르면서 남편을 불렀다. 송서방의 큰 보배요, 유일의 재산이 되는 그 큰 배가 떠내려가고 말아 송서방의 믿음과 희망은 아깝게 깨어지고 말았다. 그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뼈가 뚝 부러지는 것 같으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고 손에는 맥이 없어지는 듯하였다. 큰 배는 쫓아가면 잡힐 듯하였다. 송서방의 마음은 갑자기 황황하여졌다.
침착하고 진중하던 송서방의 온갖 정신은 큰 배를 따라가고 있었다. 두번째 부르는 마누라의 소리를 듣고서야 송서방은
“저─ 기 떠내려가는 배는 우리 배요.”
하고 누구에겐지 모르게 향하여 소리쳤다.
윤성이가 가슴에 닫는 물결을 헤치고 달려왔다. 송서방은 작은 배에 두 살 먹이와 쌀례와 귀성이와 꽃례에게 옷 보퉁이를 들려서 꽃례까지 타게 하는 동안 윤성이는 어머니를 포플러나무에 올라가게 하여 줄로 몸뚱이를 묶어놓고 다시 내려와서 아버지와 함께 물결과 싸우면서 작은 배를 끌어다가 큰 포플러나무에 매어놓았다.
“애기는 나 줘! 윤성아 애기는 이리 데려온나!”
하고 그의 어머니는 소리쳤다. 아기도 어머니의 소리를 듣고는 두 팔을 벌리고 포플러나무를 쳐다보며 킹킹거렸다. 물은 이미 포플러나무에도 얼마큼이나 올라왔다. 윤성이는 나님이를 안아다가 겨우 어머니에게로 올려보냈다. 어머니는 약한 줄에 몸을 맡겨 몸뚱이를 아래로 기울이고 두 팔을 벌려 아기를 안아다가 아기는 가운데 두고 다시 두 팔로 포플러나무를 안았다.
이 모든 비참한 광경을 모르는 체하고 비는 그대로 쏟아지고 물은 넘실넘실 급하게 늘어 윤성의 집도 절반 넘어 잠기고 영산포 시내와 이웃 동리에서 피난하는 사람들의 부르짖고 헤매는 그림자가 황황하게 덤비며 망망한 들에는 누른 물결보다도 붉은 물결이 도도하여 점점 나지막한 하늘에 접근하고 있는 듯하였다.
송서방과 윤성이도 푸플러나무에 각각 올라갔다. 작은 배에 웅기중익 모여 앉은 세 남매는 세차게 내리는 비 속에서도 그들의 부모와 오빠의 올라앉은 포플러나무를 번갈아 쳐다보느라고 얼굴 정면에 억센 빗줄기를 맞고 있었다.
“쳐다보지들 말고 가만히 엎대어 있거라. 가마니때기를 꽉 쓰고 꼼짝들 말어 응.”
하고 그들의 어머니는 가끔 소리쳤으나 나님이의 울음소리가 날 때마다 세 아이는 거적을 벗고 어머니를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가난한 농촌에 가뭄이라는 뒤를 질러 사람의 마음과 풀잎들을 태우던 하늘은 이제 다시 홍수로써 사람과 집과 곡식과 가축까지를 깨끗이 씻어버려주고 말았다.
이러한 비극을 연출시키고 그침 없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이날도 저물었다. 어두컴컴한 빛 속으로 납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과 뻔뻔스럽게 넘실거리는 흐린 물결은 서로 닿을 듯 닿을 듯하였다.
영산강 상류로서는 집이 몇 채인지 모르게 많이 떠내려오고 마주 보이는 거대한 건물인 정미공장도 물결에 쓸려 가버렸다. 오래된 집들은 대개 물속으로 슬그머니 가라앉았다. 윤성의 지붕에는 닭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떨고 있었다. 송서방은 배 속에 웅크리고 떨고 있는 자녀들과 지붕에 모여 있는 닭들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며 두 동무의 우정을 거절한 것을 절절히 후회하였다. 끽끽 하는 짐승의 비명이 들리며 검은 몸뚱이가 허우적이며 떠내려간다.
“아이고 아까운 내 돼지! 아이고 아깝고 불쌍해라…… 새끼조차 밴 것을 갖다가…….”
마누라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귀성이의 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어머니 우리 검둥이는 어디로 갔소?”
과연 그들은 검둥이의 간 곳을 모른다. 모두가 잠잠한 것을 보고
“나는 몰라 야. 검둥이가 죽었으면 나는 몰라.”
하고 귀성이가 울음을 내놓고 꽃례는 식구처럼 생각하던 닭들이 죽을 것을 생각하고 쌀례는 못 먹은 참외 수박 생각을 하며 덩달아 울면서 같이 검둥이를 조상하였다.
송서방의 집은 지붕에 닭들을 인 채로 어둠 속으로 흘러간다. 지붕에서 아물거리는 닭들의 흰 그림자가 아니 보일 때까지 송서방은 이때까지 참았던 울음을 목 놓아 울었다. 마누라도 소리를 내어 울고 아이들도 울었다. 어디선지 남녀의 부르짖는 소리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리며 가끔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이렌조차 목이 쉰 듯이 들렸다.
밤중에는 서로서로 잠자지 말라는 소리를 주고받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폭풍우는 점점 더 세어갔다. 일어나는 줄 모르게 일어난 바람이건만 괴롭고 두려운 지루한 이 밤이 겨우 지나고 새벽녘이 되었을 때는 붉은 물결이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처럼 펄쩍 뛰어 솟아 꿈틀거렸다. 물결은 점점 더 크게 솟아올랐다.
망망한 나주 바다에는 붉은 파도가 흉흉하였다. 물결이 뛸 때마다 작은 배 속에 있는 세 남매는 악을 쓰고 서로 붙들고 울었다.
송서방의 마누라는 그 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이틀 동안이나 온전히 굶은 연약한 기질에는 젖을 있는 대로 다 빨아 먹어버린 어린애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나님이는 엄마보다도 더 배가 고프다고 울었다. 가슴 속에 박혀서 젖꼭지만 입에 물고 젖이 나지 않는다고 킹킹거리다가 힘대로 쭉쭉 빨 때는 전신의 피가 몰키는 듯이 젖꼭지가 몹시도 아팠다.
그뿐이랴. 가끔 구렁이가 척척 나뭇가지에 걸치고 그의 어깨에 걸쳐 올라올 때마다 그는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구렁이에게 한 번씩 놀랄 때마다 전신에서는 식은땀이 쭉 흘렀다.
그는 나뭇가지에 걸쳐 있는 막대기를 겨우 한 손으로 잡아서 척척 엉기는 구렁이를 떼어내버려도 구렁이는 얼마든지 흘러가는 물결에서 감겨들었다. 고로와 굶음으로 기운이 저상한 송서방과 윤성이도 뱀의 수난으로 몇 배나 더 몸이 지쳐짐을 느꼈다.
바람의 기세가 더욱 험악해가는 것에 눌렸음인지 비는 훨씬 줄기가 가늘어지고 이따금 폭풍에 휩쓸려 굵은 빗방울이 훌뿌렸다. 송서방과 윤성이가 올라앉은 포플러 나뭇가지가 뚝뚝 분지러졌다. 작은 배는 물결대로 올랐다가 내려앉을 때마다 아이들은 기절하는 듯한 소리를 질렀다. 그중에도 쌀례와 귀성이는 배가 고프다고 어머니를 쳐다보며 울었다.
몇 번이나 구제하러 오는 듯한 배가 보이기는 하였으나 미친 물결이 방향 없이 날뛰는 이 근처에까지는 도저히 가까이 올 수가 없었던지 기어코 오지 못하고 말았다.
작은 배의 위험이 경각에 있는 것을 알아차린 윤성이는 자기를 묶었던 줄의 한끝으로 자기의 허리를 굳게 동이고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윤성의 뛰어내리는 것을 멀리 바라보던 그의 동지인 동무들은 아우성을 치며 배를 탁랑에 띄워 다섯 사람이 올라타고 이리로 오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윤성이는 포플러나무와 나무의 사이를 익숙한 헤엄질로 더듬어 작은 배의 줄을 잡았다. 동아줄의 길이대로 떠밀려 있는 배는 다행히 그 옆 포플러나무 근방에서 빙빙 돌면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한 팔로 물속에 들어 있는 포플러의 몸을 안고 한 손으로 필사적인 힘을 내어 줄을 당겼다. 몇 번인지 모르게 윤성의 몸은 떠밀릴 뻔하면서도
“얘들아! 나무 밑으로만 배가 가서 닿거든 누구든지 늘어진 줄만 잡고 뛰어 올라라.”
하고 외치는 소리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송서방이 나무마다 늘여놓은 줄 끝은 물에 잠겨졌다가도 바람에 따라 고기 뛰듯이 펄쩍 뛰며 날렸다.
귀성이가 먼저 줄을 뛰어 잡았다.
“얘─ 장하다.”
하고 송서방 내외와 윤성이는 감격한 소리로 귀성이를 칭찬하였다.
여덟 살 된 어린것이지만 극히 영리한 귀성이는 장난할 때부터 나무에 오르기를 다람쥐처럼 하였기 때문에 대롱대롱 매어달리며 애를 써서 줄을 타고 올라가 포플러나무를 안았다.
“아이고 꽃례도 줄을 잡았구나.”
환희에 찬 어머니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며 꽃례도 줄을 붙들고 최후의 용기와 힘을 내어 줄을 타고 올라갔다.
그 순간!
“아이고 저걱!”
“아이고 어매!”
하는 부르짖음과 함께 쌀례 혼자 남은 작은 배가 팔딱 뒤집히며 쌀례는 뛰는 물결에 휩쓸리고 말았다.
“아이고 어찌끄나! 쌀례야! 아이고 쌀례 떠내려가네! 사람 살리소!”
그 어머니는 쉬지 않고 울며 소리쳤다.
윤성이는 쌀례의 가는 방향대로 헤엄쳐 나가려 하였으나 허리를 붙들어 맨 굵은 줄은 우애와 의협심으로 가득 찬 윤성의 몸을 놓아주지 않았다. 떠내려가는 쌀례는 두 손을 저으며 허우적거렸다. 작고 붉은 손이 보일 때마다 송서방 내외는 악을 쓰며 물었다.
“사람 떠내려가네!”
하고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벌써 쌀례는 가물가물 작은 손을 보이며 멀찍이 떠내려갔다.
“어짜꼬! 쌀례야! 우리 쌀례 좀 건져주시오.”
“아이고매 쌀례야! 아이고 쌀례야!”
그 어머니는 나무 위에서 몸을 가누지를 못하고 소리를 치며 울었다. 꽃례와 귀성이도 목을 놓고 울고 송서방은 눈동자가 거꾸로 선 듯한 흥분을 느껴 숨을 씩씩거리며 몸을 떨고 있었다.
윤성이는 하는 수 없이 나무에 뛰어올라 쌀례의 떠내려간 것을 바라보고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이를 악물고 주린 사자처럼 꿍꿍 앓는 소리를 내다가 다시 주먹으로 포플러나무를 힘껏 두드리며 무겁고 뜨거운 깊은 한숨을 불기운같이 내뿜었다.
사람 떠내려간다는 소리에 사람들은 와글와글 물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영산교 위로 떼 지어 몰려갔다.
읍내 유지로 된 구호반과 각 신문 지국의 구호대들은 갈팡질팡하고 쫓아다녔다. 사람들은 영산교 위에서 줄을 자꾸 던졌다.
그러나 아무리 그것들이 목숨을 살리려는 생명의 줄이라 한들 맑은 정신은 이미 없어지고 오직 탁랑에 휩쓸려 떠내려오는 어린 쌀례의 눈에 어찌 물결에 밀리는 가느다란 줄이 보일 리가 있을 것이랴?
쌀례를 몰고 오던 험한 물결은 뭇사람의 안타까운 외침을 모른 체하고 다리 아래로 슬쩍 지나가버렸다.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읍내서 물 구경 왔던 부인들 중에는 물에 희생된 작은 제물의 흘러가는 뒤를 향하여 손에 들었던 우산을 던지며 소리쳐 우는 이도 있었다. 이 광경을 목도한 윤성의 동무들의 젊은 가슴은 훨훨 달아올랐다. 다섯 사람은 사납게 펄펄 솟아오르는 붉은 물결을 눈 흘기며 노를 저어 윤성에게로 향하였다. 노를 젓는 네 팔뚝에는 의분의 힘이 솟아올라 우들우들 떨렸다. 그러나 거의 가까이 그곳에 닿으려 하였을 때 급히 쳐내리는 물결에 노는 뚝꺽 분지러졌다. 논을 잃어버린 배는 금시에 전복되려 하였다.
그중의 두 사람은 물결에 향하여 호통 소리를 지르며 포플러나무에 뛰어올랐다. 물결에 떠밀려 위험에 빠진 배는 가까이 떠온 배에서 던지는 줄을 잡고 겨우 안전지대에 들어갔다.
삼십오 년 만에 처음인 큰 홍수를 빚어낸 무서운 비는 내리기 시작한 지 닷새 만에야 겨우 완전히 그쳤다. 폭풍도 쌀례를 죽이는 소동을 일으키고 나서는 잠이 든 지 하루가 지난 칠월 이십이일! 송서방의 일곱 식구가 포플러나무에 목숨을 맡기고 이 주야를 경과한 사흘째 되는 날에야 그들은 윤성의 동무들의 구원함을 받아 배를 타고 관중으로 들어왔다.
사흘이나 굶고 그 위에 몸을 두 팔에만 맡겨 나무에 매달렸던 그들은 ××일보 지국장의 안내로 여관방 안에 들어오자 아이들은 퍽퍽 쓰러졌다. 송서방은 정신 빠진 사람처럼 멀거니 앉았고 그의 마누라는 펄썩 주저앉으며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면서 울기를 시작하였다.
“아이고 쌀례야! 너만 없구나! 어디 가거 없냐! 아이고 쌀례야! 어린것이 무슨 죄로 물에 빠져 죽다니! 응? 이것이 무슨 일이여.”
그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또 한 번 방바닥을 두드렸다. 기운이 지쳐서 울음소리에 섞인 말소리조차 분명치 못하였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으끄나! 누구 죄로 어린 네가 그리도 몹시 몹시 그렇게도 불쌍하게 죽었단 말이냐! 아이고 원통하네! 참외 수박 노래를 그렇게도 불러쌓더니…… 아이고 쌀례야! 쌀례야!”
그는 몸부림을 탕탕 치며 쌀례를 부르면서 방바닥을 득득 할퀴었다.
“우리 쌀례는 지금 어디로 떠댕기는고? 만경창파 바다 중에 어디로 떠댕김서 애비 에미 원망을 하고 있으끄나! 아이고.”
그의 울음소리는 목구멍 속에서 콱콱 막혔다. 여관 안팎으로 모여 섰던 사람들 중에서는 흑흑 흐느끼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송서방은 주먹으로 눈물을 씻고 윤성이는 어머니를 붙들고 위로하였다.
“아이고 몹쓸 일도 있다! 어린것이 무슨 죄로 고기밥이 된단 말이냐. 아이고 쌀례야! 내 쌀례야! 왜 쌀례 죽였소? 왜 당신은 어린 자식을 죽였소?”
그는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며 송서방에게로 달려들었다.
“해마다 해마다 그 꼴을 당하면서도 무엇이 못 미더워서 그렇게들 두 번이나 와서 나오라 해도 안 나가고 뭉개드니마는 기어코 자식을 죽일랴고 고랬지라우? 아따 아따 하늘은 야속하네 하누님도 무정하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부르짖으며 몸부림을 쳤다.
꽃례와 윤성이는 앞뒤로 어머니를 붙들고 달래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귀성이와 꽃례 나님이까지고 소리를 내어 울고 송서방은 갑자기 ‘우후후’라는 소리를 내어 창자에서 우러나는 듯한 울음을 울었다.
“자식 잃고 집 잃고 곡식 잃고 아이고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살어갈꺼나.”
송서방의 말소리는 무겁게 울려 나왔다. 점심상이 들어왔으나 꽃례와 귀성이까지도 밥 한 그릇을 다 먹지 못하였다.
송서방과 윤성이는 신문 기자들이 묻는 대로 겨우 대답을 하고 있고 아이들은 구호반이 준 의복을 바꿔 입었다. 송서방의 마누라가 지친 듯이 한쪽에 가 누워 있는 곁에 어린애는 젖꼭지를 물고 있었다.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새벽에 어린것들을 데리고 여관에서 나온 소서방은 갈 곳이 없었다. 어디로 가나? 집터는 물에 잠긴 채 흔적도 아니 보이고 몸에는 비에 젖었던 헌 옷뿐이니 어린 자식들을 거느리고 장차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송서방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 윤성의 동무들이 몰려오다가 마주쳤다. 그들은 일곱 식구를 데리고 대흥이네 집으로 갔다. 평시에 송서방 내외가 그다지도 미워하던 유동이 만성이 대흥이거만 그들의 친절함을 말할 수가 없었다.
대흥의 부모는 그에게 방 한 칸을 주고 물이 빠질 때까지 있으라 하였다. 쌀과 나무와 반찬 등은 윤성의 동무들이 번갈아가며 가지고 왔다. 며칠을 지내는 동안 송서방 내외는 대흥이와 그 부모에게 점점 마음 깊은 온정을 느끼게 되었다. 대흥의 부친은 김선생이라고 부르는 전에 선생까지 지낸 사람이었으므로 송서방은 그를 딴 세계의 사람으로 대하여왔었다. 김선생은 대흥이와 같은 불량한 사람으로 윤성이까지 버려주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삼사일을 지내는 동안 이 집에 모이는 윤성의 동무들이나 이곳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허부자와는 정반대로 정답고 착하여서 송서방 자기네와 같은 가난한 농민들을 위하여서는 목숨이나 재산이라도 바치는 과연 믿을 수 있고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또 사흘이 지났다. 나주 영산포의 각 동리를 망해준 누른 물결은 볼일 다 보았다는 듯이 완전히 빠지고 조롱하는 듯이 따갑게 비치는 햇빛에 젖은 땅들은 말라가기까지 하였다. 피난 갔던 윤삼이와 덕성이가 김선생 집으로 찾아왔을 때 송서방은 그들을 붙들고 통곡하였다. 송서방의 식구는 영산리 그들의 짐터에 왔다. 활짝 씻겨버린 붉은 땅에는 다만 뜨물 동이와 물 항아리와 장독의 그릇 몇 개가 진흙투성이가 되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송서방의 마누라는 참외밭 자리로 달려갔다. 참외 수박의 줄기들이 흙물에 녹아버린 것을 보고 그는 땅에 주저앉아서 쌀례를 부르며 울었다.
송서방은 뿌리까지 녹아버린 논가로 빙빙 돌아다니며 한숨만 쉬었다. 윤성이는 아버지 곁으로 가까이 왔다.
“아부지! 이렇게 참혹한 일을 당한 것이 우리뿐만이 아닌 줄은 아시지라우? 아까 오면서 보시지 않었소? 팍 짜그러진 집들 헐어진 집들이 얼마나 많습데까? 그 사람들의 논도 다 이 모양이 되었을 것이오. 그러니 말이오 아무리 천리로 이렇게 됐다고 하지마는 요렇게까지 가련하게 된 사람들은 다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뿐이 아니오. 저번 날 김선생 말씀같이 울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어갈 도리를 깊이깊이 생각해봐야 안 쓰겄소?”
윤성의 말소리는 부드러우면서 힘이 있었다. 송서방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오냐, 알어들었다. 인제는 내가 그전 그 사람이 아니다. 내가 지금 김선생의 말이나 너그 동무들의 말이 다 옳고 우리한테 이익 되는 말인 줄 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말이라면 어떤 말이든지 듣고 그대로 할라고 작정했다. 참말로 울고만 있어서 쓸 것이냐? 손가락을 깨물고라도 살어갈 도리를 차려야지…….”
하고 다시 논들을 죽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편 참외밭에는 그의 마누라와 세 남매가 모여 앉아서 아직까지 울고 있었다.
“윤성아! 가서 그만들 울고 정신 차리라고 해라 응 어서.”
“예─ 그런디 오늘 밤 시령산에서 홍수에 해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의논을 한다고 하는데 아부지도 가시지요?”
윤성이가 아버지를 쳐다보고 물었다. 송서방은 무거운 발길을 돌리며
“암─ 은 가고말고. 다 우리 일인데…… 윤삼이랑 덕성이도 같이 갈 것이다.
하고 논둑길로 앞서서 걸어간다.
모든 일을 천리와 팔자로만 알아버리던 명칠이는 홍수로 인하여 딸과 집과 가축과 곡식들을 잃어버린 대신 그보다도 더 크고 귀중하고 위대한 무엇을 찾게 되었다. 그의 뒤를 따라가는 윤성의 입가에는 기쁨의 미소가 돌고 눈에는 아버지를 동무로 얻었다는 승리의 자랑의 빛이 가득하였다. 오정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청명한 하늘에 기운차게 울렸다.
1) 악수 물을 퍼붓듯이 세게 내리는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