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천변 풍경

Bollnow 2024. 3. 27. 09:04

천변 풍경

박태원

 

 제1절 청계천 빨래터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이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니, 요새, 웬 비웃이 그리 비싸우?”

 주근깨투성이 얼굴에, 눈, 코, 입이 그의 몸매나 한가지로 모두 조그맣게 생긴 이쁜이 어머니가, 왜목 욧잇을 물에 흔들며, 옆에 앉은 빨래꾼들을 둘러보았다.

 “아니, 얼말 주셨게요?”

 그보다는 한 십 년이나 젊은 듯, 갓 서른이나 그밖에는 더 안 되어 보이는 한 약국 집 귀돌어멈이 빨랫돌 위에 놓인 자회색 바지를 기운차게 방망이를 두드리며 되물었다. 왼편 목에 연주창 앓은 자국이 있는 그는, 언제고, 고개를 약간 왼편으로 갸우뚱한다.

 “글쎄, 요만밖에 안 되는 걸, 십삼 전을 줬구료. 것두 첨엔 어마허게 십오 전을 달라지? 아, 일 전만 더 깎재두 막무가내로군.”

 지금 생각해보아도 어이가 없는 듯이, 빨래 흔들던 손을 멈춘 채, 입을 딱 벌리고 옆에 앉은 이의 얼굴을 쳐다보려니까, 그의 건너편으로 서너 사람째 앉은 얼금뱅이 칠성어멈이,

 “그, 웬걸 그렇게 비싸게 주구 사셨에요? 어제 우리 안댁에서두 사셨는데 아마 한 마리에 팔 전꼴두 채 못 된다나 보던데…….”

 그리고 바른손에 들었던 방망이를 왼손에 갈아 들고는 한바탕 세차게 두드리는 것을, 언제 왔는지 그들의 머리 위 천변 길에서, 우선, 그 얼굴이 감때사납게 생긴 점룡이 어머니가 주춤하니 서서,

 “어유, 딱두 허우. 낱개루 사먹는 것허구, 한꺼번에 몇 두름씩 사먹는 것허구, 그래 같담? 한 마리 팔 전씩만 헌담야 우리 같은 사람두, 밤낮, 그 묵어빠진 배추김치 좀 안 먹구두 살게?”

 사내같이 우락부락한 소리로 하는 말에, 이쁜이 어머니는 고개를 끄떡여 동의를 표하기는 하면서도, 반은 혼잣말로,

 “그 묵은 통김치나마 넉넉하게나 있었으면 좋겠수. 우리 그나마두 낼만 먹으면 그만야.”

 욧잇을 빨랫돌 위에 올려놓은 채, 잠깐 손을 쉬고 한 그 말에는 대답이 없이,

 “그, 저번에 입었던 국사1) 저고리 아뉴?”

 점룡이 어머니는 허리를 굽히고, 그의 옆에 놓인 빨래 광주리를 내려다본다.

 “이거?”

 이쁜이 어머니는 일부러 몸을 돌려, 광주리에서 점룡이 어머니의 주위를 이끈 빨랫감을 집어들고,

 “글쎄, 한 번 입구, 오늘 첨 빤 게 이 꼴이구료? 모두 왼통 째지구. 내 기가 맥혀…….”

 “그러기에 나이 먹은 사람은 호살 말라는 게지. 딸은 안 해주구. 저만 해 입으니 그럴밖에…… 그거, 인조야?”

 “인존, 왜? 이 꼴에 이게 한 자 사십 전짜리 교직이라우.”

 “그게 사십 전예요?”

 귀돌어멈은 새삼스러이 그의 편을 돌아보고,

 “질기긴 외려 인조가 낫죠. 교직은 볼품은 있어두, 그저 첨 입을 그때뿐이지. 한 번 입으면 그만이니…….”

 그리고 다음은 상반신을 외로 틀어 흐응 하고 코를 푼다.

 요란스러이 종을 울리며 자전거가 지난다. 인력거가 지난다. 그러나, 이곳, 천변 길에 노는 아이들은 그러한 것에 결코 놀라지 않는다.

 “글쎄 골목 안으루들 들어가 놀어라, 난, 그저, 가슴이 늘 선뜩선뜩허는구나.”

 이맛살을 찌푸리고 소리를 질러 일러도 듣지 않는 아이들을 못마땅하게 둘러보다가,

 “참, 저건, 밤낮 애두 잘 봐.”

 점룡이 어머니가 하는 말에 그 편을 돌아보고,

 “잘 보지 않으면 그럼 어째? 매부 집에 와서 얻어먹구 있으려니, 그저 그럴밖에…….”

 “그래두 말이에유.”

하고, 칠성어멈은, 저도, 그 딱한 사나이 편을 돌아본 다음에,

 “매부 집이 어렵기나 하다면 그두 모를 일이죠만두, 그렇지두 않은 터에 점잖은 이가 자기 처남을 하인 대신 부려먹는 게, 그게 인산 아니죠.”

 눈을 끔벅거리며 하는 말을 점룡이 어머니가 다시 받아가지고,

 “뭐얼. 제가 다 변변치가 못해 그렇지. 나이 서른다섯이 되두룩 장가두 못가구, 뭐 하나 배운 것이라군 없구…… 그래 제까짓 게 어디 가서 뭘 해 먹구 살어? 작년 여름에두, 쥔 영감이, 처남, 용돈이나 뜯어먹게 해주느라, 밑천을 주어 야시장에서 애들 장난감 장수두 시켜봤건만, 뜯어먹기커녕은 밑천ᄁᆞ지 까먹어버리구…… 그나마 제 매부가 그저 멕여주는 것만 해두 고마운 일이지.”

 그리고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개천 건너 한약국 앞을 오락가락하는, 동저고리 바람에 아이를 업은 사나이를 바라다본다.

 “글쎄 그두 그렇지만요.”

 칠성어멈은 방망이를 다시 고쳐 쥐며,

 “그래두 처남 매부 새에 대접이 그러면 그게 결국은 자기 체면 깎이는 거 아녜요? 돈푼이나 있으니, 어디 장가래두 들여…….”

 그러나, 그가 채 말을 맺기 전에, 이때까지 잠자코 ᄈᆞᆯ래만 하던 귀돌어멈이 나서서,

 “돈푼이 있긴 뭬 있어? 전엔 괜찮았지만 지금은 뭐…….”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다 빤 자회색 바지를 앙세게 쥐어짠다.

 “그래두, 아들 대학교 보내구, 뭐구, 다 괜찮은가 보던데…….”

 칠성어멈이, 그래도 알 수 없다는 듯이, 중얼중얼하는 말을, 마침 뒤로 지나던 샘터 주인이, 일부러 걸음을 멈추어서까지 받아가지고,

 “괜찮은 게 다 뭐유. 그래 가만히 생각해보구료. 다른 얘긴 그만두구래두, 한 십 년 전에 첩 하나 얻어, 그래두 전세루 집 한 채 얻어줬던 걸, 사오 년 전엔 사글세 집으로 옮아 앉히구, 그게 그러껜 셋방이 됐다가, 이젠 아주 자기 집안으로 끌어들여, 큰마누라허구 한집 살림을 시키구 있으니, 그것 한 가지만 허드래두 벌써 알쪼 아니유? 게다 지금 들어 있는 집이나 점방이나 모두 은행에 들어가 있는 데다, 그 밖에두 이곳저곳에 빚이 여러 천 환 되는 모양이니…….”

 허, 허, 허, 하고 너털웃음을 한 번 웃고서, 몇 걸음 저편으로 걸어가다가, 생각난 듯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참 칠성네 아주머니, 빨래 삶는다지 않었수? 삶을 테건 어서 가져오슈. 아마 인제 곧 솥이 날 모양이니…….”

 그리고 새삼스러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호나 고개를 끄덕이고, 막, 나무장 공동 변소에라도 다녀 나오는 듯싶은 젊은 사람을 쳐다보고,

 “용돌이. 곧 좀 집이 가서 철사 좀 가지구 오게. 밤낮 예따가 줄 좀 멫 개 더 매놓는다면서 늘 잊어버리구, 잊어버리구…….”

 뒤는 또 무엇인지 입안말로 중얼거리며 돌아서다가, 마침 눈에 띈 큼직한 유리조각을,

 “그리 말래두 누가 또 예다 내버렸어?”

 허리를 굽혀 집어가지고는 개천 한복판을 향하여 팽개쳤다.

 “그래 어떡허다 그렇게 됐나유? 그래 뭣에 실팰 봤나유?”

 칠성어멈이 그 얽은 얼굴에 남의 일이라도 딱해하는 빛을 띠고, 반은 정신이 없이 제 옆에 놓인 빨래 광주리를 끌어 잡아당기며 주위에 앉은 이들에게 물은 말을, 그저 천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되는대로 이 아낙네 저 여편네하고 이 말 저 말 주고받던 점룡ㅇ 어머니가 또 나서서,

 “어떡하다 그러긴…… 그것두 다 말허자면 시절 탓이지. 그래, 이십 년두 전에 장사를 시작해서 한 십 년 잘해먹던 것이, 그게 벌써 한 십 년 될까? 고무신이 생겨가지구 내남즉 헐 것 없이 모두들 싸구 편헌 통에 그것만 신으니, 그래 정신2) 마른신3) 이 당최에 팔릴 까닭이 있어? 그걸 그 당시에 어떻게 정신을 좀 채려가지구서 무슨 도리든지 간에 생각해냈더라면 그래두 지금 저 지경은 안됐을 걸, 들어오는 돈이야 있거나 없거나, 그저 한창 세월 좋을 때나 한가지루, 그대루 살림은 떠벌린 살림이니, 그, 온전허겠수?…… 집, 잽혔겠다, 점방두, 들앉었겠다, 남에게 빚은 빚대루 졌겠다. 아, 그뿐인 줄 아우?”

 그는, 갑자기, 굽힌 허리에 얼굴조차 앞으로 쑥 내밀고, 한껏 낮은 음성으로,

 “누구 얘길 들으니까 말야…….”

하고 모든 사람의 머리를, 얼굴을 둘러보다가, 저편 바른쪽으로 눈이 가자, 변덕스럽게 별안간, 놀라는 표정을 짓고,

 “아니, 저이 좀 봐. 그래 남들, 아래서 흰 빨랠 허는데, 위에서 그저 염체두 좋게 처덕처덕 무새4) 빨랠 허니…….”

 소리소리 치는 그 통에 빨래꾼들도 그제서야 새삼스러이,

 “아니 저이가 그래…….”

 “그래 이렇게 구정물이 나는군그래.”

 “이게 무슨 심사야? 남의 빨랠 왼통 망쳐놨으니…….”

 “여보, 저리 내려가서 빨려건 빨우. 온, 참, 천하에…….”

 “아니, 저, 웬 예펜네야? 보지두 못허던 인데…….”

 뭐니, 뭐니, 그대로 한ㄴ데들 뒤범벅이 되어 야단야단 치는 통에, 그, 이곳에서 낯선 젊은 여인은, 겨우 한두 마디,

 “잠깐 헹구기만 했에요…….”

 “뭐, 회색 빨랜데 그것 좀 가지구…….”

 잠깐 말대꾸를 하여도 보았으나, 그만 얼굴을 붉힌 채, 조그만 빨래 보퉁이를 들고, 엉거주춤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모양을 일종 비웃음을 가지고 보고 있던 점룡이 어머니는 다시 칠성어멈쪽을 내려다보고,

 “그런데, 글쎄, 누구 얘길 들으니까 말야.”

하고 다음은 좀 더 은근한 목소리로,

 “그, 쥔 영감이, 왜, 지난번에 강원도 춘천엔가 댕겨오지 않었수? 그게 거기다 집을 보러 갔던 거라는군그래. 인제 왼 집안 식구가 모조리 그리 낙향을 헐 모양이지.”

 그는 자기 이야기에 거의 모든 빨래꾼들이 일하던 손을 멈추고, 놀라는 기색으로 자기 얼굴을 쳐다보는 것을, 이종 자랑 가득히 둘러보다가, 갑자기 또 눈살을 찌푸리고,

 “하여튼 남의 일이나마, 그, 안되지 않었수? 그 양반이 원래가 서울 태생이라는데, 더구나 한참 당년에 남부럽지 않게 지내다가, 일조일석에 그만 그 꼴이 되니…… 자기두 정신을 못 채리긴 했지만 그래두 말허자면 시절 탓이지. 사실 말이지 그만큼 얌전헌 이두 드물우. 첩을 두긴 했어두, 이번에 한집 살림을 시키기 전ᄁᆞ지, 단 하룻밤이래두 첩한테서 묵구 오는 일이란 없었으니…… 그저, 자정이 되나, 새로 한 점 두 점이 되나, 꼭 댁으루 돌아왔죠.”

 점룡이 어머니 이야기에 칠성어멈은 무턱대고 고개만 끄덕이다가, 그 말에 이르러 무심코,

 “그럼, 우리 댁 영감마님허군 아주 딴판이로구먼.”

 한마디 한 말을 귀돌어멈이 재빨리 받아가지고,

 “그럼 민주산, 아주 관철동 가서 사슈?”

하고, 지금 막 물에 흔들어서 빨랫돌 위에 올려놓은 인조견 단속곳에다 비누칠을 하려던 손을 멈추고 가늘게 간사한 눈을 떠본다.

 “가서 사실 건 없어두 밤마다 가시긴 그리 가시니까…… 낮엔 늘 댁에서 사무 보시구.”

 그러면서 신전5) 집 주인 이야기 듣느라 그사이 내버려두었던 빨래를 다시 시작하려니까, 저편에서 누군지,

 “오, 그래 민주사가 그렇게 빼빼 말렀군그래.”

하고 농치는 통에 모두들 소리를 내어 웃으니까,

 “어디 그래두 게서 주무시는 줄 아우? 요새 거기 마짱이라나 뭐라나 그게 밤마다 판이 벌어져, 그래 그저 날밤만 새우시나 본데…….”

 변명 비슷이 그러한 말을 한마다 하였으나, 그 즉시 그는 자기가 객ᄍᅠᆨ은 말을 하였다 뉘우쳤다. 주인마님이, 밤마다, 영감, 첩에게 가는 것이 못마땅해서 그러는 말도 말이겠지만,

 “그거 이제 경찰서에서래두 알기만 허면, 대번에 붙잡혀 가서 가진 욕 다 보구, 멫백 환씩 벌금 물구 허실 텐데, 그래두 밤마다 붙잡으시니…….”

하고 몇 번씩이든 혀를 차던 것이 생각나자, 그는 누가 뭐라든 주인집 이야기는 이제는 더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그래 점룡이 어머니가 또 한몫을 끼어,

 “참, 민주사가 늘 손속이 좋아서 많이 딴다는데, 그 입구 다니는 외투두, 그럼, 그게 공짜루 생긴 건가? 하, 하, 하.”

 사내 같은 웃음을 웃어도 칠성어멈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방망이만 놀리고 있었으나,

 “아니 그럼 이거 참 빨래 공짜루 허는 줄 알었습니까?”

 갑자기 샘터 주인의 우락부락한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편으로 눈을 주었다.

 위에서 무색 빨래를 하였다고 아까 타박을 받은, 그, 낯선 여편네가 이편 끝으로 내려와서, 하던 빨래를 대강 마치고서, 개천 둑에다 널판 쪽으로 비스듬히 짜놓은 사다리를 반이나 올라가고 있는 것을, 마침 빨랫줄을 매고 있던 샘터 주인이 발견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스물네댓이나 그밖에는 더 안 되어 보이는 그 여인은, 잠깐 어리둥절하여 빨래터 주인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그러믄, 돈을 내요?”

 이어없이 묻는 양이, 이곳 풍습에는 매우 어두운 듯싶다. 김첨지는 그대로 그곳에 서서 줄을 매면서도 더욱 기가 나서,

 “아니, 돈을 내요라니…… 그럼 이건, 누가, 남 자선사업으루 허는 줄 알었습디까? 뭐 이래저래 돈 드는 거, 노력 드는 거, 다 그만두구래두, 우선 해마다 경성부청에다 갖다 바치는 세금만 해두 수십 환야. 이건, 왜, 어림두 없이 이러는 거요?”

하고 으르딱딱거리는 통에, 다시 얼굴이 새빨개가지고,

 “그런 줄 누가 알었나요? 몰랐죠. 몰르구 그랬죠.”

하고, 그나마 몇 번인가 더듬어가며 어색하게 말하는 품이, 시골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되리라고는, 진작, 아까 짐작은 하였던 것이, 다시 상고해보니, 이것은 아주, 서울에 발을 들여놓았어도 바로 어제나 그저께가 분명하였다.

 그렇다고 알자, 빨래꾼들의 동정은, 역시, 그 아낙네에게로 몰려, 우선 점룡이 어머니가,

 “저런…… 그, 시굴서 첨 올라와, 몰르구 그랬군그래. 뭐, 빨래두 많진 않은가 본데, 그저 이번은 그냥 눌러봐주구료.”

 한마디 말해준 것을 기회로, 다른 여편네들도 각기 말들이 있어, 아무리 셈 속 빠른 주인으로서도 그것에는, 역시, 별수가 없어서,

 “여러분 말씀두 기시구 허니, 오늘은 어서 그냥 가슈. 요담버텀이나 정신 채리구…….”

 그리고 그는 큰기침으 한 번 하고, 아주 그 김에, 보기 좋게 개천 물에다 가래침을, 탁, 뱉었다.

 그제야 가만한 한숨조차 토하고, 부리나케 사다리를 위까지 올라가, 간신히 점룡이 어머니에게만 약간 머리를 굽혀 사례하는 뜻을 표하고, 그대로 도망질치듯 골목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그, 젊은 여편네의 뒷모양이, 그 골목을 다 나가기 전, 바른편으로 셋째 집 문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악스럽게도 보고 난 점룡이 어머니는, 무슨 크나큰 발견이나 한 듯이, 수다스럽게 다시 빨래터를 내려다보고,

 “그 젊은 게, 바루 요 골목 안 기생집으루 들어가는데그래. 필시 시골서 그 필원이네 찾어온 사람인 게야.”

 잠깐 말을 끊었다가, 문득, 혼자 신기한 듯이 눈을 끔벅거리고,

 “오라, 그 예펜네 아닌가?”

 “그 예펜네라니?”

 이쁜이 어머니가 다 한 빨래를 광주리에 담아 들고 일어서며 물었다.

 “아, 왜, 필원이네가 밤낮 그러지 않았어? 저이 시골, 바로 한 이웃에, 그저 밤낮 제 서방한테 얻어만 맞구 지내는 젊은 예펜네가 있다구. 그래 그동안 무던히 참어두 왔지만, 근래엔 딱 기집이 또 생겨 더구나 구박이 심해서 그대루 지낸단 수가 없어, 어떻게든 자식 데리구 서울루나 올러갈까 허는데 어디 남의집살 데 없겠냐구, 바루 요 며칠 전에두 편지를 했다던 그 예펜네 말야.”

 혼자 늘어놓는 그 말을 이쁜이 어머니는 입가에 가만한 웃음을 띤 채,

 “글쎄에.”

 한마디 할 그뿐으로, 고개를 돌려, 저편에서 빨래 삶는 솥에다 몇 개비 장작을 더 지피고 있는 김첨지에게다 대고,

 “얼마죠?”

 “어디요.”

 샘터 주인은 그대로 앉은 채, 상고머리에 구레나룻이 듬성듬성 난 얼굴만 돌려, 먼빛으로 그의 광주리에 담긴 빨래를 바라보고,

 “네, 십오 전만 냅쇼.”

 “저, 오늘두 못 가지고 나왔는데, 그럼 모두 얼마죠?”

 “저번 게 십오 전. 이십 전. 도합 삼십오 전이니까, 그럼 꼭 오십 전요.”

 “네, 모두 오십 전.”

 그리고 혓바닥을 내밀어 보고 사다리를 올라온 이쁜이 어머니의, 안을 접힌 고대6)를 펴주면서, 점룡이 어머니는 생각난 듯이,

 “참, 우리 이쁜이 혼인이 언제지? 날 택일했수?”

 이 마누라쟁이의 타고난 수다로, 이러한 말소리는 지극히 은근하고도 또 다정하다.

 “정작 날 택일은 안 했지만서두 역시 삼월 안이지.”

 “에구, 그럼 한 달두 채 못 남었구료. 오죽 바쁘겠수? 차려입기만 헌담야, 기생에두 걔 따를 년 없겠습디다.”

 이쁜이 어머니는, 그러나, 그 말에는 대답 없이, 빨래 광주리를 이고 저편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양을 잠깐 바라보다가 마침 개천 건너 남쪽 천변으로 기생 탄 인력거가 호기 있게 달려가는 것이 눈에 띄자, 그는, 순간에, 일종 부러움 가득한 얼굴을 해가지고,

 “뭐니, 뭐니 해두, 호강은 니가 제일이다.”

 거의 한숨조차 섞어서 하는 말을, 막 빨래를 마치고 일어서서 아픈 허리를 펴고 있던 귀돌어멈이 듣고,

 “누구, 말예요?”

 그의 얼굴을 쳐다보니까, 점룡이 어머니는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이,

 “언년이 말이오. 취옥이 말이야. 걔 어머니가 걔 기생으로 집어넣군 아주 막 호강허는데?…… 언년이가 바루 이쁜이허구 한 동갑이지. 열네 살부터 소리를 배워가지구, 작년 봄엔가, 열여덟에 머리를 얹었는데, 인젠 아주 잘 불려 다니는데?……”

 그리고 그는 또 소리를 낮추어,

 “그래, 내가 이쁜이 어머니헌테두 여러 번이나 권했지. 이쁜이두 곤반7)에다 넣으라구. 그럼 그년 팔자두 해롭지 않거니와 마누라두 딸의 덕을 볼 게 아니냐 말야? 헌데, 딸 기생에 넣어라는 걸, 이건 무슨 큰 욕이나 되는 줄 아는군그래, 이쁜이 어머니는. 내가 그 얘기만 꺼내면 아주 딱 질색이지. 그게 내 딸이 아니니까 맘대루 못허지, 그저 내 조카딸쯤마나 돼두, 꼭 우겨서 곤반에 넣구 말지. 아무렴 그렇다마다. 모두들 인물이 잘나지 못해 못 되는 게지. 아, 이쁜이 만큼만 이쁘다면야 그걸 왜 그냥 둬?…… 그야, 양반으루, 부자루, 다 같은 집안에다 시집이래두 보낸다면, 그건 혹 몰라두, 어려운 집 ᄄᆞᆯ자식은 그저 파닥지8)나 추하지 않으면 별수 없어. 소리나 가르쳐서 기생으루 내놓는 것밖엔…… 그래, 그렇지 않수?”

 입에 침이 마를 새 없이 늘어놓는 말을, 귀돌어멈은 쓴웃음을 웃으며 듣고만 있다가,

 “그래두, 기생이면 다 잘 버나요? 것두 기생 나름이죠.”

 “아무렴, 그야 그렇지.”

 “뭐, 저, 필원이네 안집 기생은, 지난달에 세 번 불려 갔는데, 모두 열 시간두 못 된다지 않어요? 그래 그걸 가지구 어떻게 살어요?”

 “글쎄, 인물두 밉진 않은데, 이상허게두 그리 세월이 없다는군. 허지만 말야. 어디, 기생 수입이란, 놀음에 불려 댕기는 그것뿐인가? 지금 말헌 명월이만 허드래두, 아무렴, 한 달에 열시간두 못 불려 댕기구, 대체, 맨밥은 먹게 되나? 그렇지만, 그 대신, 반해서 찾어다니는 작자가 있거든. 왜, 저, 은방 주인 말야. 그 사람이, 아, 겨우내, 양식허구, 나무허구, 대주지? 옷 해주지? 작년 동짓달엔 김장 담가줬지?…… 다아 그런 속이 있거든.”

 그리고 다음은 혼잣말같이,

 “그저 딸자식이 잘 벌어들이기만 하면야, 사내자식 외딴치지, 어디, 요새 사내 녀석들, 무슨 값이 나가나? 어림두 없지.”

 그러나 소리를 하다가 그제야 생각난 듯이,

 “아니, 참, 점룡이 녀석, 이 녀석, 어디 갔어? 해전에 왕십리 다녀오라구 그렇게 일러두 듣잖구.”

 마침, 빨래터에서 줄 매고 남은 철사를 들고 올라오는 용돌이라나 하는 젊은이를 보자,

 “우리 점룡이 녀석 봤어?”

 거의 달려들다시피 하여 묻는 것을 젊은이는 어이없는 얼굴로, 그를 흘긋 쳐다보고,

 “아니 바로 앞에다 두구 찾으세요?”

 “앞이라니?”

 점룡이 어머니가 새삼스러이 주위를 둘러보는 것을 용돌이는 턱으로 샘터를 둘러쌓은 거적담 하나 격한, 이웃 모래판을 가리키고,

 “저기 앉은 건 누구예요?”

 그곳에는 스물 안팎으로 대여섯까지의 젊은이들이 칠팔 명이나 동저고리 바람으로 모여들 앉아, 모래판에 깔아놓은 한 장 거적 위에서 윷돌을 놀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 한 달 전 정초의, 그 기분이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은 그들은, 제각기 가진 약간의 볼일은 결코 마음에 키우지 않는다.

 진작부터 그곳에 윷판이 벌어져 있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이때까지 빨래꾼들하고 객담만 하느라 그 속에서 점룡이 찾을 생각은 못 하고 있었던 그 수다스러운 마누라쟁이는, 부리나케 노름판 벌어진 바로 윗천변으로 걸음을 옮겨 아래를 굽어보고, 금세 표정을 험상궂게 꾸미고,

 “아니, 이 녀석. 그래 갔다 오란 심부름은 아주 제쳐두구 그저 똑 노름에만 팔렸으니, 그래 저런 죽일 녀석이…….”

 소리를 버럭 지르는 것을 이제껏 곰방대를 빼뚜름히 물고서, 천변에 쭈그리고 앉아 윷놀이만 구경하고 있던 칠성아범이,

 “하, 하, 그 가만둡쇼, 점룡이가 내리 따는 판인데요.”

 그리고 자기도 몸이 다는지 좀더 끝으로 바싹 다가앉는 것을, 점룡이 어머니는 어이없는 듯이,

 “그래 내리 따면 그게 멫십 전이나 되겠수? 온 참, 나이 먹은 이까지 주책없는 소릴 허지.”

 눈을 흘기는 것을, 칠성아범은 담뱃대를 고쳐 들고,

 “멫십 전이 뭐예요? 아까부터 혼자 장을 쳐서 따들인 게, 이래저래 이 환 각순9) 실허게 될걸.”

 역시, 순간에, 점룡이 어머니의 얼굴에는 적잖이 좋아하는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즉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얼른 표정을 엄숙히 하고,

 “그거 따면, 뭘 해? 그저 따거나 잃거나, 패가 망신허긴 으레 주색자깨(잡기)지. 돈이라 꼭 곧은 일을 해서 벌어야만 몸에 붙는 법입니다.”

 그리고 다시 노름판을 향하여,

 “아, 그래 이 녀석아. 일은 안 허구 밤낮 노름만 허니그래…….”

 소리를 다시, 버럭, 질러도 보았으나, 아래서는 당자 점룡이부터 고개 한번 들어보는 일 없이 잃은 놈은 잃은 놈대로, 딴 놈은 딴 놈대로, 몸들은 달 대로 달아가지고,

 “아니, 저거 막가는 거냐?”

 “이거, 왜 이래? 어째 가다 한 번 이기려는 걸, 고걸 배를 앓니?”

 제각기 판을 들여다보고 지껄이느라, 남이 여간 뭐라는 소리는 귀 근처에 범접도 안 시킨다.

 점룡이 어머니는 그 꼴을 못마땅하게 내려다보다가, 옆에 앉은 칠성아범을 돌아보고,

 “노름이란 천하에 고약헌 거유. 거기 미쳐 패가망신 안 허는 놈 없지. 그래두 따는 놈은 고땐 아주 이헌 것 같지? 허지만, 누가 따구서 일어서게 둬야지? 땄던 돈 다 털어 다시 잃어야만 경우가 일어서게 되니…….”

 올해 쉰한 살 먹은 저의 어머니가 후유 하고 한숨조차 토하거나 말거나, 점룡이는 윷을 모아 들고 말판을 노려본 뒤에, 가장 자신 있게,

 “두 모, 두 모 개면 되는구나.”

 말이 채 마치기 전에, 화닥, 솟았다 떨어진 윷이,

 “한 모다, 한 모야.”

 두 번째 솟았다 떨어진 윷이,

 “지화자 얼씨구, 얘 또 모다, 또 모야.”

 점룡이하고 한편은, 기가 나서 야단이요, 모처럼 한 번 이겨볼 듯싶다가 다시 형세가 불리한 편은, 그만 풀이 죽어 말이 없는 중에,

 “개든, 걸이든, 윷이든, 모든, 그저 뭘 치든 된다. 똑 도만 치지 말어라.”

 같은 편 주위를 들으며, 세 번째 머리 위로 올라갔던 윷이,

 “얘, 또 모다, 또 모야. 아주 뺄 모로구나.”

 열광한 나머지에, 하나가 옆에 앉은 놈의 덥수룩한 머리털을 꺼들고 발을 쾅쾅 구르는 것을,

 “아, 그, 참, 아주 흡사 미친 녀석들일세.”

 가장 기가 막히거나 하는 듯이, 흐, 흐, 웃음을 웃고 뭐라 또 입안말로 중얼거리다가, 진 편에서들 윷판에다 제각기 내던진 십 전짜리 백통전을, 점룡이가 세 푼인가 네 푼인가 제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는, 역시, 스스로 입가에 떠오른 웃음을 금치 못하였으나, 문득, 칠성아범이,

 “여, 점룡이 끝나거든 한잔 내야 허네.”

 한마디 하는 말에, 그만 찔끔하여,

 “온, 참, 걔가 술 사낼 돈이 어딨수? 저게 어디 딴 거유? 그저 입때꺼정, 쟤가 날마다 돈 들구 나와선 똑 남 존 일만 해왔는데…… 오늘 딴 게, 저게 어디 딴 건가? 지난번에두 방세 사 환을 들구 나와선 고대루 잃구 들왔는데…….”

 열이 나서 늘어놓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노름판에서 하나가 고개를 번쩍 들고,

 “원, 아주머니두 거짓말 좀 작작 허우. 그래 언제 점룡이가 사 환씩이나 잃었수? 여기 앉은 놈들, 밤낮 점룡이 존 일은 해줘두, 그 애 돈 단 오십 전 따본 놈이라군 없에요. 언제 사 환을 누구헌테 잃어?……”

 이때까지 지기만 했는지, 눈이 시뻘게가지고 하는 말에, 점룡이 어머니는 괴팍스럽게 입을 딱 벌리고,

 “아니, 온, 저 소리 좀 들어봐. 그래, 점룡이 녀석이 딴 게 뭐 있어? 밤낮 잃구만 들어오는걸…….”

 그러나, 그 말은 더 하지 않고 다음은 혼잣말같이,

 “에이 저 녀석이 언제 갔다 와. 내가 횡허케 다녀올밖에…….”

 돌아서서 몇 걸음 가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얘, 점룡아, 너, 아까, 아주머니 갖다준다는 돈 일 환, 이리 내놔라. 왕십리 내 지금 갈 테니…….”

 천변에 그러고 버티고 서서, 진 편에서들야, 곁눈질을 해가며,

 “은제, 점룡이가 밑천 가지고 했던가? 걔 주머니엔 애최 이십 전인가 그밖에 없던가 보던데…….”

 그러한 말을 하거나 말거나, 왼 눈 하나 까딱 않고, 정작 점룡이는 돈 넣은 주머니에 손도 넣지 않는 것을,

 “얘, 노마야.”

하고, 그는 노름판 옆에서 구경을 하고 섰는 애 녀석을 불러서,

 “저, 돈 주는 거 어서 받어가지구 올로나라.”

 기어코 백통전 열 닢으ㄹ손에 받아 쥔 다음에야,

 “그저, 남의 돈은 얼른 갚아야지.”

 그러한 말을 하며, 점룡이 어머니는 저편으로 걸어갔다.

 

 제2절 이발소 소년

 민주사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숫제 덥수룩할 때는 그래도 좀 덜하던 것이, 이발사의 가위 소리에 따라 가지런히 쳐지는 머리에, 흰 털이 어째 더 돋뵈는 것만 같아, 그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것은, 물론, 오늘 비롯한 것이 아니다 근년에 이르러 이발소 의자에 앉을 때마다 늘 느껴온 것이지만, 그 희끗희끗한 머리 터럭으로, 아무리 싫어도 자기 나이를 헤어 보게 되고, 그와 함께 작년에 얻어 들인 안성집과 사이의 연령의 현격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그에게는 적잖이 고통거리인 것이다. 민주사는 올해에 이미 천명(天命)을 알았고, 관철동에 살림을 시키고 있는 그의 작은마누랑는, 꼭, 그 절반인 스물다섯 살이었다.

 양 볼이 쪽 빠져, 가뜩이나 한 얼굴이 좀더 여위어 뵈고, 우글쭈글 보기 싫게 주름살이 잡힌 것을, 그는 우울하게 바라보며, 그래, 거의 하루 걸러큼씩은 마작을 하느라 날밤을 꼬박이 새우고 새우고 하여, 그래, 더욱이 건강을 해하고, 우선 혈식이 이렇게 나쁘다고,

 ‘좀 그 장난두 삼가야…….’

 그렇게 마음을 먹기도 하였으나, 다시 돌이켜, 외려 마작으로 밤을 새우면 새웠지, 꾼이 없어 판이 벌어지지 않는다든지 할 때, 그 젊은 계집의 경영이, 사실은, 더욱 두통거리인 것에 생각이 미치자, 그의 마음은 좀더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연해, 자기 머리 위에 가위를 놀리고 있는, 이제 스물대여섯이나 그밖에는 더 안 된 젊은 이발사의, 너무나 생기있어 보이는 얼굴을, 일종 질투를 가져 바라보며, 현대의 의술이 발달되었으니 뭐니 하는, 그 말이 다 헛말이라고, 은근히 그러한 것에조차 분노를 느꼈다. 자기가 그렇게 신임하는 젊은 약방 주인이 권하는 대로, 열심히 복용한 ‘요힌비’10)는, 그야 오직 잠시 동안의 정력을 도와 일으켜는 주는 것이었으나, 그 뒤에 그것이 가져오는 특이한 그 불쾌감과, 피로, 더욱이 심신의 쇠약이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그냥 그 임시 그 임시의 최정제 말고, 근본적으로 정기를 왕성하게 하는 약이나, 무슨 술법이 있다면, 돈 천 원쯤 아깝지 않다고, 그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였다. 민주사는, 그저, 그만한 정도의 부자다.

 그러나 그것이, 역시, 용이한 일이 아니라고 새삼스러이 느껴지자, 그는 이내 그것을 단념하고,

 ‘뭐, 내겐 그래두 돈이 있으니까…….’

 그러한 것을 생각하려 들었으나, 사실은, 자기가 가진 돈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될 뿐 아니라, 우선, 얼마 안 있어 시작될 부회의원 선거 전에, 그 비용으로, 한 이천 원 융통하지 않으면, 모처럼 별렀던 입후보도 적잖이 곤란한 일이라고, 문득 그러한 것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청춘’만큼은 불가능사가 아닌 듯싶은 ‘부귀’가 버썩 탐이 났었다.

 ‘뭐, 돈이 제일이지. 지위가 제일이지.’

 민주사는, 자칫하였더라면 입 밖에까지 내어 중얼거릴 뻔한 것에 스스로 놀라, 거울 속에서 다른 이들의 얼굴을 찾으려니까, 저편 한길로 난 창 앞에 앉아있는 이발소 아이놈의 얼굴이 이편을 향하고 있는 것과 시선이 마주쳐, 어째 그사이 그놈이 자기의 표정으로 자기의 마음속을 환하게 들여다본 것만 같아, 그는 제풀에 당황하여, 순간에,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그러나, 별로 민주사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다시 유리창 너머로, 석양녘의 천변 길을 오고 가는 행인들에게 눈을 주었다.

 소년은, 그곳에 앉아 바라볼 수 있는 바깥 풍경에,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손님이 벗어놓은 구두를 가지런히 놓고, 슬리퍼를 권하고, 담배 사러, 돈 바꾸러 잔심부름 다니고 그러는 이외에 그가 이발소에서 하는 일이란,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는 그것뿐으로, 이렇게 틈틈이 밖이라도 내다보지 않고는 이러한 곳에서, 누가 그저 밥만 얻어먹고 있겠느냐고, 그것은 좀 극단의 말이나, 하여튼, 그는 그렇게도 바깥 구경이 좋았다.

 그렇게 매일 내다보고 있는 중에, 양쪽 천변을 늘 지나다니는 사람들에 관한 여러 가지가 뭐 누구한테 배우지 않더라도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제 딴에는 너무나 신기하여, 그래, 그는, 곧잘, 이발하러 온 손님이 등 뒤에서,

 “인석. 뭘 이렇게 정신없이 보구 있니?”

하고라도 물을 양이면,

 “저것 좀 내다보세요.”

 바로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이 창밖을 손으로 가리키고,

 “저기, 개천에서 올라오는 저 사람이 인제 어딜 가는지 알아내시겠에요?”

 “어디, 누구.”

 손님이 넥타이 매던 손을 멈추고 그가 가리키는 곳을 내다보노라면, 딴은 낡은 노동복에 때 묻은 나이트캡을 쓰고, 아무렇게나 막돼먹은 놈이 덜렁덜렁 빨래터 사다리를 올라온다.

 “저거, 땅군 아니냐?”

 “땅꾼요?”

 “거지 대장 말야.”

 “저건 둘째 대장이에요. 근데 지금 어딜 가는지 아시겠에요?”

 “인석.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그러면 소년은 가장 자랑스러이,

 “인제 보세요. 저어 다리께 가게루 갈 테뇨.”

 “어디…… 참, 딴은 가게루 들어가는구나. 저눔이 담밸 사러 갔을까?”

 “아무것두 안 사구 그냥 나올 테니 보세요. 자, 다시 돌쳐서서 이쪽으로 오죠?”

 “그래 인젠 저눔이 어딜 가누?”

 “인제, 개천가 선술집으루 들어갈 테니 보세요.”

 “어디…… 참, 딴은 술집으루 들어가는구나. 그래두 저눔이 가게서 뭐든지 샀겠지, 그냥 거긴 갔다 올 까닭이 있나?”

 “왜 들어가는지 아르켜드리까요? 저 사람이, 곧잘, 다리 밑으루 들어가서, 게서, 거지들한테 돈으 십 전이구 이십 전이구, 얻어 갖거든요. 그래 그걸루 술두 사먹구, 밥두 사먹구 허는데, 그게 거지들이 동냥해 들인 거니, 이십 전이구, 삼십 전이구 간에, 모두 도전 한 푼짜릴 거 아녜요? 근데 저 사람이 동전가지군 절대 술집엘 안 들어가거든요 그래 언제든지 꼭 가게루 ㄱ서, 그걸 몯 십 전 짜리루 바꿔달래서…….”

하고 한창 재미가 나서 이야기를 하노라면, 그런 때마다 무슨 일이든 생기는 것도 공교로워,

 “인마, 잔소리 그만 허구, 어서 돈 좀 바꾸어 오너라.”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이발사 김성방이, 바로 젠 척하고 소리치는 것도 은근히 약이 오르는 노릇이다…….

 소년은, 아까 한나절 아이를 보아주던, 신전 집 주인의 짱구 대가리 처남이, 이번에는, 또 언제나 한가지로 물지게를 지고 천면에 나오는 것을 보고,

 ‘저이는, 밤낮, 생질의 아이나 봐주구, 물이나 길어주구, 그러다가 죽으려나?…….’

 어린 마음에도, 어쩐지, 그러한 그가 딱하게 생각되었으나, 그것도 잠시 동안의 일로, 문득 창 앞을 느린 걸음으로 점잖게 지나는 중년의 신사를 보자, 어린이의 입가에는, 제풀에, 명랑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 신사는, 우선, 몸이 뚱뚱하고, 더욱이 배가 앞으로 쑥 나왔다. 그것에 정비례하여, 그의 얼굴이 크고 또 살진 것은 물론이지만, 그 큰 얼굴에 또 그대로 정비례하여, 눈, 코, 귀, 입이 모두 크다. 그중에도 장관이 것은, 그의 코로, 그 이를테면 벌렁코 종류에 속하는 크고 둥근 콧잔등이가, 근래에는 단연히 금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전에 그가 애주하였을 때의 그 기념으로, 새빨갛게 주독이 든 것이, 여간 탐스럽지 않다. 그러한 얼굴에다, 그 위에, 그가 애용하는 중산모를 얹고, 실내화 신은 발을 천천히 옮겨 걸어갈 때, 그를 대하는 모든 사람이, 마음에 은근한 기쁨을 갖더라도, 그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그가 남의 앞에서 즐겨 꺼내보는 그 시계는 참말 금시계지만, 역시 참말 십팔금인 것같이 남이 알아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듯싶은 그 시곗줄이, 사실은 오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발소 안에서의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는 소년은, 그의 태도와 걸음걸이가 점잖으면 점잖을수록에, 더욱이 속으로 우스웠다.

 그 웃음에는, 그러나, 물론 악의 같은 것이 품어 있지는 안았다. 만약 있다면, 오히려 호의일 것이다. 자기의 매부가 부회의원인 것을 다시없는 명예로 알고, 때로, 육십 노모까지를 끼어서 온 가족을 인솔하고 백화점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는 취미를 가진 그를, 사실 이 소년이 미워한다든가 비웃는다든가 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가운데 다방골 안에 자택을 가지고 있는 그는, 바로 지척 사이인 광교 모퉁이 큰길거리에서 포목전을 경영하고 있었다. 아침에 점에 나왔다가 저녁때 집으로 돌아가는 이 신사는, 언제고, 골목에서 나와 배다리를 지나 북쪽 천변을 광교에까지 이르는 노차11)를 택하였다. 까닭에, 광교와 배다리 사이 북쪽 천변에 있는 이발소 창으로, 소년은 언제든 그렇게 가까이서 그를 조석으로 대한다. 그리고 대할 때마다 은근한 기쁨을 갖는다. 그 기쁨과 함께 어느 한 포목전 주인에게 갖는 기대라는 것을 아주 이 기회에 말하면, 그것은 신사의 머리 위에 얹혀 있는 중산모의 위치에 관한 것이었다.

 소년의 관찰에 의하면, 그의 중산모는 그의 머리 둘레에 비하여 크도 작도 않은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신사는, 결코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편안할 수 있도록 깊이 쓰는 일이 없었다. 그는, 문자 그대로, 그것을 머리 위에 사뿐 얹어놓은 채 걸어 다녔다. 어느 때고 갑자기 바람이라도 세차게 분다면, 그의 모자가 그대로 그곳에 안정되어 있을 수 없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소년은 그것에 적잖이 명랑한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모든 기대가 그러한 것과 같이, 이것도 그리 쉽사리 실현되지는 않았다…….

 오늘도 소년은 신사의 뒷모양을, 그가 배다리를 건너 골목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헛되이 바라보고 나서, 고개를 돌려 천변 너머 맞은편 카페로 눈을 주었다.

 밤이 완전히 이르기 전, 이 ‘평화’라는 옥호를 가진 카페의 외관은, 대부분의 카페가 그러하듯이, 보기에 언짢고, 또 불결하였다. 그나마 안에서 내비치는 전등불이 없을 때, 그 붉고 푸른 유리창은 더구나 속되었고, 창밖 좁은 터전에다, 명색만으로 옹색하게 옮겨다 심은 두어 그루 침엽송은, 게으르게 먼지와 티끌을 그 위에 가졌다.

 소년은, 그러나, 이루 그러한 것에 별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바로 조금 아까부터 그 밖에 서서, 혹 열려있는 창으로 그 안도 기웃거려보며, 혹 부엌으로 통한 문의, 한 장 깨어진 유리 대신, 서투른 솜씨로 발라놓은 얇은 반지가 한 귀퉁이 쭉 찢어진 그 사이로, 허리를 굽혀 그 안을 살펴도 보며 하는, 이미 오십 줄에 든 조그맣고 늙은 부인네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그이는 그 카페의 여급 ‘하나꼬’의 어머니다.

 ‘하나꼰, 아까, 목욕을 가나 보던데…….’

 소년은 속으로 그러한 것을 중얼거리며, 분명히 동대문 안인가 어디서 드난을 살고 있다는 그를 위하여, 모처럼 틈을 타서 딸 좀 보러 나왔던 것이 그만 가엾게도 허행이 되고 말 것을 애달파하였다.

 그러나, 물론, 아낙네는 그러한 것을 알 턱이 없다. 그는 그대로 애타는 걸음으로 문 앞을 오락가락한다. 이미 그의 얼굴은, 카페 안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고, 또, 여급들이 채 단장도 하기 전이 이 시각에. 객이라고는 아직 한 명도 와 있지 않건만, 저런 이들은 쓱 부엌으로라도 들어가서, 아무에게나 물어본다든가 그러는 일도 없이, 언제든 딸 만나보는 데 그렇게도 어려워한다.

 그가, 네 번째, 반쯤 열어젖힌 앞에서 발돋움을 하고서 그 안을 기룻거려보았을 때, 그러나 마침내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분명히 삼십이 넘은, 그리고 얼굴이나 맵시가 결코 어여쁘지 않은 여급이 때 묻은 행주치마를 두른 채 맨발에 흰 고무신을 꿰고 나왔다. ‘기미꼬’다. 밖에 나오는 그길로, 개천가로 다 가서지도 않고, 그대로 그곳에서 개천 속을 향하여, 사내 녀석같이 퉤하고 침을 뱉고, 문득 고개를 돌려 제 동무의 어머니를 발견하자,

 “아까, 목욕 갔에요.”

 표정도 고치는 일 없이 알려주는 그 말소리가, 개천을 건너 소년의 귀에까지 들리도록, 역시 그렇게도 크고 또 거칠다.

 저렇게 무뚝뚝하고, 못생기고, 또 늙은 것을, 대체 뭣 하러 여급으로 데려다 두었누 하고, 혹 모르는 이는 말해도, 그것은 참말 모르는 말로, 사실은 주인의 술을 그만큼 많이 팔아주는 계집도 드물었다. 우선 기미꼬는 제 자신 술을 잘 먹는다. 그래, 그의 차례에 온 손님들은, 자기들이 먹은 거의 갑절의 술값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곳에 오는 손님 중에는 무엇보다도 그러한 점에 있어 그를 좋게 여기지 않는 이가, 더러 있기는 있었다. 또 얼굴이 아름답지 못하고, 우선 젊지 못한 그 대신에, 그러면 구변이라도 능하고 애교라도 있느냐 하면, 또한 그렇지도 못하여, 어찌 가다 인사성 있게라도 좋은 말 한마디 한다든가, 유쾌한 웃음 한번 웃는다든가 그러는 일이 없다. 카페 같은 데 드나드는 사람들이 결코 좋아할 턱 없는, 온갖 요소만을 갖추고 있는 기미꼬가, 남보다도 특별나게 손님들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은, 이를테면, 적잖이 괴이한 일이나, 현대에 있어서는, 혹은 그러한 것도 소홀히 볼 수 없는 매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그에게도 남이 따르기 어려운 장점이 있기는 있었다. 그것은 협기다. 이 지구 위에 부모 형제는 이를 것도 없고, 소위 일가친척이라 할 아무 하나 가지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말하는 그는, 자기 자신,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도 고단한 생애만을 살아오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그래 그 까닭으로 하여 그러한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나, 하여튼 누구에게 대해서나, 그들의 참말 어려운 경우에 진정을 애쓰고 생각해주는 것만은, 사실, 무던하였다…….

 소년은 하나꼬 어머니가 광교 쪽을 바라보며 난처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한두 마디 기미꼬에게 말하고, 기미꼬가 또 큰 소리로,

 “그럼 그리 가보세요.”

하고 말하자, 그에게 목례를 하고 돌아서서 큰길로 향하여 걸어나가는 것을 보고,

 ‘아마, 목용탕으루 찾아가나 부다. 또, 돈 좀 해달라구 왔나?……’

 혼자 생각을 하며 고개를 조금 돌려, 저편 한약국 집에서 젊은 내외가 같이 나오는 것을 보자,

 ‘하여튼, 의는 좋아. 언제든지, 꼭, 동부인이지…….’

 제풀에 빙그레 웃음이 입가에 떠올랐다.

 그들 젊은 내외를 가리켜 의가 좋다는 것은, 다만, 이 이발소 소년 혼자의 의견이 아니다. 동경 어느 사립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한약국 집 큰아들이, 현재의 아내와 결혼을 한 것은 지금부터 햇수로 삼 년 전의 일이요, 그들이 서로 안 것은 그보다도 일 년이 일러, 같이 어깨를 가지런히 하여 거리를 산책하는 풍습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동경서 갓 나온 한약국 집 아들이, 역시 그해 봄에 ‘이화’를 나온 ‘신식 여자’와 ‘연애’를 한다는 소문은, 우선 빨래터에서 굉장하였고, 이를테면 완고하다 할 한약국 집 영감이, 이러한 젊은 사람들의 사이에 대하여, 어떠한 의견을 가질지는 의문이었으므로, 동리의 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법 흥미를 가지고 하회를 기다렸던 것이나, 아들의 말을 들어보고, 한 번 여자의 선을 보고 한 완고 영감이, 두말하지 않고 그들에게 선뜻 결혼을 허락해준 것은, 참말, 뜻밖의 일이었다. 그것으로, ‘영감’은 ‘개화’하였다는 칭찬을 동리에서 받았으나, 아들 내외의 행복에 대해서는, 객쩍게, 남들은, 또 말들이 많아 ‘연애를 해서 혼인했던 사람들이 더 새가 나쁘더군’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으나, 그들의 사랑은 참말 진실한 것인 듯싶어, 흔히 ‘신식 여자’라는 것에 대하여 공연히 빈정거려보고 싶어하는 동리의 완고 마누라쟁이로서도, 이제는 방침을 고쳐, 도리어 그들 젊은 내외를 썩 무던들 하다고, 그렇게 뒷공론이 돌게 된 것은 퍽이나 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소년은, 잘 닦아놓은 유리창문 너머로, 한약국 안, 사랑방에 손님과 대하여 앉아 있는 주인 영감을 바라보았다. 집도 그리 크지는 못하였고, 살림살이도 그다지 부유해 보이지는 않았으나, 남들 이야기를 들으면, 벼 천이나 실하게 하는 터라 한다. 그것도 그가 당대에 자기 한 사람의 손으로 모아놓은 것이라 생각하니, 그 허울은 별로 좋지 못한 약국 영감이, 소년의 눈에는 퍽이나 잘난 사람같이, 은근히 우러러보이는 것이다.

 주인 영감과 이야기를 마치고 시골 손님이 밖으로 나왔다. 벌써 오래전에 세탁소에 보냈어야만 할 다갈색 중절모를 쓰고, 특히 이번 서울 길에 다려 입고 나온 듯싶은 고동색 능견12) 두루마기에, 흰 고무신을 신은 그는, 문을 나올 때 흘깃 보니, 가엾게도 애꾸다. 이 천변에서 애꾸를 구경하기도 참말 오래간만이어서, 광교로 걸어나가는 그를 지켜보려 하였으나, 뒤미처 방에서 나온, 서사보는 홍서방이 대문간 옆 약 곳간에서 큼직한 약 부대를 끌어내는 것이 곁눈에 띄자, 그는 다시 그편으로 눈을 돌리며, 저도 모르게 침이 한 덩어리 목구멍을 넘어갔다.

 ‘참말이지, 계피를 얻어벅어본 지두 오래다…….’

 돌석이가 약국을 나가버린 지도 이미 열흘이나 가까웠다. 그 애 대신 누가 또 들어오려누. 약국 심부름하는 애들과 사귀어본 것도 돌석이 아래로 셋이나 되지만, 그 애같이, 한 쪽만 씹어도 입 안이 얼얼하게 매운 계피를 툭하면 갖다주고 갖다주고 하던 아이도 없었다.

 ‘자식이, 그냥 있지 않구 괜히 나가서…….’

 일은 고되고 월급은 적고 한 것이, 그가 약국을 나간 이유라지만,

 ‘어이 자식두…… 돈 일 전 못 받구 있는 나는 어쩌구…….’

 다른 약국에 비해 적다고 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먹고 오 환이면, 그게 얼마야 하고, 공연히, 심사가 좋지 못하였으나, 저녁 찬거리를 장만하러 귀돌어머니가 바구니를 들고 대문을 나오는 것을 보자,

 ‘참, 행랑 사람이 아직 안 들어와서, 그래, 저이가 빨래두 허구, 찬거리두 사러 가구…… 혼자서, 요샌 약 오를걸?……’

 그것은 어떻든, 약국 집에서 사람 부리는 것이 그리 심악하다거나 박하다거나 한 것도 아닌 모양인데, 역시 사람 만나기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지, 이번에 나간 하인도 일 년이나 그밖에는 더 안 살았다.

 ‘그저, 저 사람 하나지. 아주 죽을 때꺼정 그 집이서 살겠다구 헌다니까…….’

 시앗을 보고, 남편의 학대를 받고, 마침내는 단 하나 어린 자식마저 없애고, 이제는 이 세상에 믿고 살 모든 것을 잃은 귀돌어멈이, 한약국 집으로 안잠을 사러 들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지금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딸 기순이가 세상에 나오던 바로 그해 가을이다. 동리 아낙네들이, 모두 그를 무던한 여편네라 칭찬하고 있는 것을 잠깐 생각해보며, 배다리 반찬 가게로 향하는 귀돌어멈의, 왼편으로 약간 고개를 갸우뚱한 뒷모양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웃고 재깔이며 십칠팔 세씩 된 머리 땋아 늘인 색시가 세 명, 걸음을 맞추어 남쪽 천변을 걸어 내려온다. 흡사 학생같이 차렸으나, 손에들 들고 있는 것은 벤또싼 보자기로, 조금 전 다섯 시에, 전매국 의주통 공장이 파한 것이다. 모두 묘령들이라 그리 밉게는 보이지 않아도, 특히 가운데 서서 그중 웃기 잘하는 색시가 가히 미인이라 할 인물로, 우선, 그러한 공장 생활을 하는 여자답지 않게 혈색이 좋은 얼굴이 참말 탐스럽다. 교직 국사 저고리에, 지리뎅13) 검정 치마를 입고 납작 구두를 신은 맵시도 썩 어울리는 그 처녀는, 수표 다리께 사는 곰보 미장이의 누이로, 소년은, 그가 얼굴값을 하느라고 행실이 단정하지 못하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다.

 행실이 단정하지 못하기로 말하면, 이 색시의 형 되는 사람이 오히려 더하여, 지금은 과부가 되어 저의 오라비에게로 와서 지내나, 남편이 살았을 때에도 사내가 한둘은 아니었던 모양이요, 병도 병이려니와 그러한 것으로 남편은 속을 썩어, 그래, 서른여덟 살, 한창 살 나이에 죽었다고 남들의 뒷공론이 대단한 모양이다. 이미 서른넷이나 되어, 고운 티도 다 가시고, 이제 또 개가를 하느니 어쩌니 그러한 것이 문제될 턱도 없는 것이지만, 원래가 그러한 여자라 그대로 집에 두어두자니, 필경 추잡한 소문만 퍼뜨려놓을 것이요, 그것은 이제 쉬 시집을 보내야 할 둘째 누이를 가지고 있는 오라비로서, 정히 머릿골 아픈 노릇이라, 역시, 누구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다 과부 누이를 떠맡기고 싶어하는 모양이라 한다…….

 물을 다 싣고 난 신전 집 주인의 처남이, 다시 아이를 들쳐 업고 문간에 나왔을 때, 천변으로 창이 난 작은아들의 방에서 풍금 소리가 들려왔다. 「바그다드의 추장」, 물론, 소년은, 그 곡명을 알지는 못하였으나, 신전 집 작은아들이 즐겨서 타는 이 행진곡은, 그냥 귀로 듣기만 해도, 악한의 뒤를 추격하는 ‘청년’의 모양이 눈에 선하여, 절로 신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풍금을 타는 사람의 마음이 그래서, 듣는 이도 전만큼은 흥이 나지 않는 것일까? 이 봄에 대학을 마치면 의사로 나서게 되는 그는, 보통학교 적부터 음악에 취미를 가져, 하모니카와 대정금14)으로 시작된 노래 공부가, 이어서 풍금, 만돌린, 색소폰, 바이올린, ……그에게는 온갖 악기가 있었고, 그것들을 그는 어느 정도까지 희롱할 줄 알아,

 “어떻든 재주 한 가지는 제일이야.”

하고, 점룡이 어머니도 칭찬이 대단하였으나, 이제는 그것들을 다시 만져보려해도 쉽지 않아 기운이 기울어지는 것과 함께 악기 나부랭이도 혹은 전당포 곳간으로, 고물상 점두로 나가버리고, 이제는 하나 남은 풍금이 낡아서 몇 푼 돈이 안 되는 채, 때때로 젊은이의 심사를 위로해줄 뿐인 것이다.

 소년은 눈을 돌려, 두 집 걸러 신전 편을 바라보았다. 이월이라, 물론 파리야 있을 턱이 없는 일이지만, 이를테면, 저러한 것을 가리켜 ‘파리만 날리고 있다’─╴그렇게 말하는 것일 게다. 아까부터 보아야 누구 하나 찾아들지 않는 쓸쓸한 점방에 머리 박박 깎은 큰아들이 신문만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한약국 집에서 얻어온 어저께 신문일 것이다. 이 집에서 신문을 안 본 지도 여러 달 된다. 어린 마음에도 남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고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의 그러한 갸륵한 심정을 알아줄 턱 없이, 정신없이 그러고 앉아 있는 그가 질겁을 하게시리,

 “인마. 뭣에 또 정신이 팔렸니? 어서 선생님 머리 감겨드리지 않구…….”

 바로 등 뒤에서 소리를 꽥 지르는 것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게 주짜15)만 빼려드는 김서방이라, 소년은 은근히 골이 나서,

 “내가 인마에요? 내 이름은 어엿허게 재봉이예요.”

 볼멘소리를 하고, 민주사의 뒤를 따라 세면대로 걸어갔다.

 

 제3절 시골서 온 아이

 소년은, 드디어, 그렇게도 동경해 마지않던 서울로 올라오고야 말았다. 청량리를 들어서서 질펀한 거리를 달리는 승합자동차의 창 너머로, 소년이 우선 본 것은 전차라는 물건이었다. 시골 ‘가평’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것이, 그야, 전차 한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그는, 지금 곧, 우선 저 전차에 한번 올라타보았으면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감격을 일일이 아랑곳하지 않고, 동관 앞 자동차부에서 차를 내리자, 그대로 그를 이끌어 종로로 향한다.

 소년은 한길 한복판을 거의 쉴 사이 없이 달리는 전차에, 신기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싶게 올라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머리에, 등덜미에, 잠깐 동안 부러움 가득한 눈을 주었다.

 “아버지. 우린, 전차, 안 타요?”

 “아, 바로 저긴데, 전찬 뭣 허러 타니?”

 아무리 ‘바로 저기’라도, 잠깐 좀 타보면 어떠냐고, 소년은 적이 불평이었으나, 다음 순간, 그는 언제까지든 그것 한 가지에만 마음을 주고 있을 수 없게, 이제까지 시골구석에서 단순한 모든 것에 익숙해온 그의 어린 눈과 또 귀는 어지럽게도 바빴다.

 전차도 전차려니와, 웬 자동차며 자전거가 그렇게 쉴 새 없이 뒤를 이어서 달리느냐. 어디 ‘장’이 선 듯도 싶지 않건만, 사람은 또 웬 사람이 그리 거리에 넘치게 들끓느냐. 이층, 삼층, 사층…… 웬 집들이 이리 놓고, 또 그 위에는 무슨 간판이 그리 유난스레도 많이 걸려 있느냐. 시골서, ‘영리하다’, ‘똑똑하다’, 바로 별명 비슷이 불려온 소년으로도, 어느 틈엔가, 제풀에 딱 벌어진 제 입을 어쩌는 수 없이, 마분지 조각으로 고깔을 만들어 쓰고, 무엇인지 종잇조각을 돌리고 있는 사나이 모양에도, 그의 눈은, 쉽사리 놀라고, 수많은 깃대잡이 아이놈들의 앞장을 서서, 몽당수염 난 이가 신나게 부는 날라리 소리에도, 어린이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게 들떴다.

 몇 번인가 아버지의 모양을 군중 속에 잃어버릴 뻔하다가는 찾아내고, 찾아내고 한 소년은, 종로 네거리 굉대한 건물 앞에 이르러, 마침내,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예가 무슨 집이에요, 아버지.”

 “저, 화신상……, 화신상이란 데야.”

 “화신상이요? 그래, 아무나 들어가요?”

 “그럼, 아무나 들어가지.”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지금 그 안에 들어갈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는 겨우내 생각하고 또 생각한 나머지, ‘마소 새끼는 시골로, 사람 새끼는 서울로’의 속담을 그대로 쫓아, 아직 나이 어린 자식의 몸 위에 천만 가지 불안을 품었으면서도, ‘자식 하나, 사람 만들어보겠다’고, 이내 그의 손을 잡고 ‘한성’으로 올라온 것이다. 지난번 올라왔을 때 들르지 못한 화신상회에, 자기 자신 오래간만이니 잠깐 들어가보고도 싶었으나, 그는, 자식의 앞길을 결정하는 사무가 완전히 끝나기까지, 자기의 모든 거조가, 그렇게도 긴장되고, 또 경건하기를 바랐다.

 청계천변, 한약국 주인 방에, 가평서 올라온 부자는 주인 영감과 마주 대하여 앉았다.

 “얘가 자제요니까?”

 “네…… 얘, 인사 여쭤라.”

 소년은 주인 영감의 짧은 아랫수염과 뒤로 젖혀진 귓바퀴에, 시골 구장 영감을 생각해내며, 한껏 긴장한 마음으로 공손히 절을 하였다. 그는 처음 보는 주인 영감 앞에서 몸 가지기가 거북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도 그의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인물인 듯싶은 것이 또 마음에 부끄럽고 불안하였다. 그가 바로 검붉은 살빛까지 구장 영감과 흡사한 것에 비겨, 자기 아버지가 ‘시골뜨기’로, 다구나 ‘애꾸’라는 것을 생각할 때, 소년은 제풀에 얼굴이 붉어졌다.

 “너, 멫 살이지?”

 “네, 이놈이 지금 열네 살이랍니다.”

 소년은, 자기가 대답할 수 있기 전에, 아버지가 대신 말해준 것이, 또 불평이었다. 열네 살이면, 처음 보는 이 앞에서도 능히 그러한 것을 제 입으로 대답할 수 있다. 어른이 대신 말해줄 때, 모르는 이는 아이가 똑똑지 못한 것같이 잘못 알지도 모른다. 그는 광대뼈가 약간 나온 주인 영감의 옆얼굴을 곁눈질하며, 만일 이름을 묻거들랑, 아버지가 채 뭐라기 전에, 얼른,

 “창수예요.”

 그렇게 대답하리라고 정신을 바짝 차렸던 것이나, 주인 영감은 얼굴뿐이 아니라, 그 마음까지도 구장 영감을 닮아 심술궂은지, 슬쩍 그러한 것을 좀 물어주는 일도 없이, 조금 있다,

 “문간에 나가 구경이래두 허렴. 어디 먼 데는 가지 말구…….”

 그리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만 무슨 은근한 이야기가 있으려는지, 새로이들 궐련을 피워 물었다.

 소년은 곧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신기롭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가평이 아니라 서울이다. 나는 그렇게도 오고 싶어 마지않았던 서울에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이 생각이 소년의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그 모든 것에 감격을 주었다. 아무리 시골서 처음 올라온 소년의 마음에라도, 결코 그다지는 신기로울 수 없고, 또 아름다울 수 없는 이곳 ‘천변풍경’이, 오직 이곳이 서울이라는 그 까닭만으로, 그렇게도 아름다웠고, 또 신기하였다.

 창수는, 우선, 개천 속 빨래터로 눈을 주었다. 한 이십 명이나 모여든 빨래꾼들, 그들의 누구 하나 꺼리지 않고 제멋대로들 지절대는 소리와, 또 쉴 사이 없이 세차게 놀리는 방망이 소리가, 그의 귀에는 무던히도 상쾌하다.

 그는 눈을 들어, 이번에는 빨래터 바로 윗천변의, 나무장 간판이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윷을 놀지 않는 젊은이들이, 철망 친 그 앞에 앉아서들 잡담을 하고, 더러는 몸들을 유난스러이 전후좌우로 놀려가며, 그것은 또 무슨 장난인지, 서로 주먹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한다. 그것이 ‘권투’라는 것의 연습임을 배운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거니와, 그러한 장난도 창수의 눈에는 퍽이나 재미스러웠다.

 그러한 소년의 눈에, 천변을 오고 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 모두가, 한결같이 잘나만 보이는 것도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니냐. 인버네스 입은 민주사며, 중산모 쓴 포목전 주인이며, 인력거 위에 날아갈 듯이 앉아 있는 취옥이며, 그러한 모든 사람은 이를 것도 없거니와 다리 밑에 모여서들 지껄대고, 툭 치고, 아무렇게나 거적 위에서 뒹굴고, 그러는 깍정이16) 떼들도, 이곳이 결코 시골이 아니라 서울일진대, 그것들은 또 그만큼 행복일 수 있지 않느냐.

 더구나, 소년은, 줄창, 이곳에만 있어, 오직 이곳 풍경만 사랑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암만 좋은 구경이래두, 밤낮 본다면 물리고 만다…….’

 그러나 이제 창수는 ‘화신상’도 가볼 수 있고, ‘전차’도 탈 수 있고, 옳지, 또 가만히 서만 있어도 삼층 꼭대기, 사층 꼭대기로 데려다준다는 ‘승강기’라는 것이 있다지 않나. 수길이 말을 들으면, 머리가 어찔하게 현기증이 나더라지만, 그것은 타는 법을 몰라 그럴 것이다.

 ‘눈을 꼭 감고만 있으면 아무 상관이 없다…….’

 창수는, 말로만 들었지 정작 눈으로 본 일은 없는 ‘승강기’라는 물건을, 잠깐 머릿속에 아무렇게나 만들어보느라 골몰이었으나, 어느 틈엔가 제 곁에 서너 명의 아이들이 모여 선 것을 깨닫고, 그들을 둘러보았다.

 “얘가 시굴 아이다, 시굴 아이야.”

 칠팔 세나 그밖에 더 안 된 아이가, 옆에 있는 아이들을 둘러보고 그렇게 말하니까, 모두 고만고만한 또래의 딴 아이들이,

 “그래, 시굴 아이야, 시굴 아이…….”

 저마다 연방 고개를 끄덕이고, 열한두 살이나 그렇게 된 계집아이 등에 업혀있는 두세 살 된 갓난애조차, 잘 안 돌아가는 혀끝을 놀리어,

 “시구라, 시구라.”

하고, 빤히 저를 쳐다보는 것에, 소년은 그러한 것에도 쉽사리 붉어지는 제 얼굴을 아무렇게도 하는 수 없이, 문득, 등 뒤에서 요란스러이 울린 자전거 종소리에, 그만 질겁을 하여 한옆으로 허둥대며 비켜서는 꼴을 보고, 그 결코 그렇게는 놀라는 일이 없는 ‘서울 아이’들이, “하, 하, 하” 하고 가장 재미있는 듯싶게 한바탕을 웃었을 때, 소년은 귀밑까지 새빨개가지고 마음속에 끝없는 모욕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저를 비웃은 아이는, 옆에 모여 선 그 애들뿐이 아니다. 개천 건너 이발소 창 앞에 앉아, 저보다 좀 큰 아이가 아까부터 제 편만 지켜보고 있었던 듯싶어,

 “하, 하, 하…… 녀석, 놀라기는…….”

하고, 그러한 말을 하더니, 눈이 마주치자,

 “너 약국에, 오늘 들왔구나?”

 아주 어른같이 그러한 것을 묻는다. 창수는 또 변변치 못하게 얼굴을 붉히며, 가까스로 고개를 한 번 끄떡하고, 문득, 부모를 떠나 외따로이 이러한 곳에서 이제 어떻게 지내가나 겁이 부썩 나며, 그저 아버지가 ‘전차’나 태워주고, ‘화신상’이나 구경시켜주고, 또 ‘승강기’ 있다는 데도 데리고 가주고, 그러한 다음에, 같이 집으로나 다시 내려갔으면, 그러면 퍽 좋겠다고 침을 몇 덩어리나 삼키며, 저 혼자 속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년이, 그렇게, 서울에서의 자기에 대하여, 눈곱만 한 자신도 가질 수 없을 때, 그러나, 아버지는, 단 하룻밤이라 같이 묵어주는 일 없이, 그대로 무자비하게도 자기의 볼일만을 보러, 영등포라나 어디라나로 떠나버렸으므로, 어린 창수는, 대체, 혼자서, 이제, 어찌해야 좋을지, 끝없는 불안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야, 아버지는, 내일 아침 가평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이 한약국에를 들르마고, 그러한 말을 하였던 것이나, 그까짓 것이 그의 마음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 얼마 있다, 주인 영감이 ‘피죤’ 한 갑 사오라고 한 장의 일 원 지폐를 내어주었을 때, 담배 가게가 어디 붙어 있는지, 우선 그것부터 모르는 창수는 고만한 심부름에도 애가 쓰였다.

 돈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밖으로 나오는 그의 등에다 대고, 주인 영감은 생각난 듯이 한마디 하였다.

 “너, 담배 파는 데, 아니?”

 “네.”

 얼떨결에 그렇게 대답하고, 또 얼굴을 붉히며, 천변에 나와, 대체, 어디로 발길을 향해야 옳을지 분간을 못 하고 있었을 때,

 “너, 심부름 가니?”

 개천 건너 이발소 창 앞에 그저 앉아 있는, 아까 그 아이가 말을 또 걸어, 그래,

 “응.”

하고 대답하니까,

 “뭐. 무슨 심부름.”

 “담배.”

하니까, 마음씨는 착한 아이인 듯싶어,

 “저기, 배다리 가게서 판다.”

 일러주는 그 말이, 이 경의 창수에게는 퍽이나 고마웠다.

 창수는 한달음에 다리 모퉁이 반찬 가게로 뛰어갔다.

 “담배 한 갑 주세요. 마코요…… 아니, 저, 피죤요.”

 아버지는 늘 마코만 태우신다. 구장 영감도 피죤을 태우는 것을 못 보았다. ‘쥔 영감’은 참말 부잔가 보다…… 창수는 썩 지전을 내놓았다.

 주인 영감이 일 원 지폐를 그에게 주었던 것은, 혹은, 따로 잔돈이 있었으면서도, 그러한 간단한 셈이라도 소년이 칠 줄 아나 어떤가 시험해보려는 그러한 마음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창수는, 그러나, 그러한 것에 서투르지 않다. 마침내 그는, 한 갑의 담배와, 아홉 개의 백통전을, 주인 영감 책상머리에 갖다 놓고, 제 딴에는 무슨 크나큰 일이나 치른 듯이, 가만한 한숨조차 토하였던 것이나, 돈을 세어보고 난 주인 영감이, 뜻밖에도 눈살을 찌푸리고서, 가장 못마땅한 듯이 그의 얼굴을 면구스럽게 쳐다보며,

 “너, 얼마 거슬러 온 거냐?”

 한마디 말에, 그만 창수의 얼굴은 어처구니없이 붉어지고,

 “구십, 구십 전이죠. 왜, 저…….”

 변변하지 못하게 말소리조차 더듬어지는 것을, 제 자신, 어쩌는 수 없이,

 “그래, 이게 구십 전야?”

 주인 영감이 거의 음성조차 높여가지고, 그의 눈앞에 내보이는, 그 거술러 온 돈을 다시 한 번 세어보아도, 역시 틀림없이 아홉 푼이기는 하였으나, 성미 급하게 주인 영감이 마침내 집에서 보여주는 그중의 한 푼은, 둘레는 거의 십전짜리만이나 하였어도, 역시 틀림없는 오전짜리 백통전이 분명하였다.

 창수는 어굴이 무섭게까지 새빨개가지고, 대체, 이제 어찌해야 좋을 것인지, 어림이 도무지 서지 않았다. 이제까지 시골에 있어서도, 그는 이러한 경우를 당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한데, 이곳은, 더구나, 누구라 하나 아는 사람을 가지지 못한 서울 한복판이 아니냐? 소년은 금방 울 것 같은 마음으로 오전짜리 백통전을 내려다보며, 얼마 동안을 바보같이 그곳에 서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일,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좋았다. 대체, 이러한 경우에는 어떻게 하여야만 옳은 것인지, 우선, 그것만 알아낼 수 있더라도 당장 살 것 같았다.

 그러하였던 까닭에, 그때 옆에서 장부를 뒤적거리고 있던 홍서방이, 비로소 말참견을 하여

 “어여, 가게 한 번, 다시 갔다 오너라.”

 일러주었을 때, 창수는, 오직 그 말 한마디로 금시에 소생이나 하고 난 듯이, 가만히 숨 쉬고 부리나케 다시 가게로 달음질쳐 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창수가, 자신 없이, 그것도 더듬어가며 하는 말을, 반찬 가게 주인은 결코 끝까지도 들어주지 않았다.

 “얘, 어림두 없는 소리는, 허지두 말어라.”

 눈을 부라리며 한마디 하였을 뿐으로, 다음은, 마침 무엇을 사러 나온 칠성아범을 보고, 자기가 이 장사를 열네 해를 하였어도, 이제까지, 단 ‘고린전’ 한 푼 셈을 틀려본 일이 없었노라고, 그것을 역설하여, 단순한 민주사 집 하인의 찬동을 어렵지 않게 얻었다.

 창수는, 비애와, 애원과, 원망과…… 그러한 온갖 감정이 뒤범벅을 한 눈을 들어, 얼마 동안 가게 주인의 얼굴만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이 경우에 아무런 보람도 있을 턱 없이, 그대로 하는 수 없는 발길을 옮겨 다시 약국 앞에까지 왔던 것이나, 그냥 문 안으로 들어설 용기가 나지 않는 채, 담에 시름없이 몸을 기대서려니까, 이제까지 목구멍 너머에 눌러두었던 울음이, 바로 제 때나 만난 듯이 복받쳐 올랐다.

 고생이 되어도 좋다고, 어떠한 일이든지 하겠다고, 그저 서울로만 보내달라고, 어머니며, 아버지를 졸랐던 어제까지의 자기가 자꾸 뉘우쳐졌다. 아버지가 볼일 보러 간 곳이 대체 어디쯤인지, 만약 찾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리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하소하면, 아버지는, 물론, 이러한 경우에도 반드시 ‘자기의 편’일 것으로, 어린 아들을 좀더 고생시키는 일 없이, 다시 손을 이끌고 시골로 내려갈 것이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차 시간이 촉박하여, 단 오 분이라도 지체할 수가 없다고, 분주하게 약국에를 들른 아버지는, 결코, 창수에게 그러한 말을 할,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저, 주인 영감에게 향하여,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자식을, 잘 좀 나무라주시고, 지도해주시어, 어떻게 사람이 되게 해 주십사고, 그러한 것을 또 당부하였고, 창수에게는, 그저 매사를 주인어른 말씀대로만 꼭 해야 한다고, 집에 있을 때와는 다르니까,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그리고 또 몸 성히 잘 있어야 한다고, 집을 나오기 전에도 몇 번씩 당부하던 그 말을 또 한 번 되풀이하였을 뿐으로, 서투른 솜씨로 후추를 연질17)하고 있는 아들의 모양을, 잠깐 애달프게, 또 일종 미쁘게 내려다본 뒤,

 “얘.”

하고 은근히 아들에게,

 “그저 한시 쉬지 말구, 일을 부지런히 해야 헌다.”

 그렇게 또 한 번 타이르고서는, 다만 대문간까지라도 아들이 따라 나올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러한 아버지에게, 창수는 겨우 입을 열어,

 “아버지, 안녕히 내려가세요.”

 단 한 마디 인사말을, 그것도 거의 들릴까 말까 하게 중얼거려보았을 그뿐으로, 순간에 떠도는 눈물을, 남몰래 소매 끝으로 씻은 그 다음에, 얼른 다시 고개를 들어보았을 때에는, 이미 아버지의 모양을 이 한약국 구석진 방에 찾을 수 없었다. 창수는 별 까닭 없이 잠깐 그 안을 둘러보고, 그리고, 이제 혼잣몸이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갈 것인가─╴문득, 끝없는 외로움과 또 애탐을, 그는 마음 깊이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제3절 시골서 온 아이

 익숙지 않은 일에 얽매여 고생하는 것은 그러나 오직 창수 혼자의 슬픔이 아니다. 파랑 칠한 중문 하나 격하여 약국 안채에서는, 행랑에 든 지 사흘이 채 못 되는 만돌어멈이, 새아씨가 건넌방 툇마루에 내어놓았던 연분홍 하부다에18) 치마를, 그저 제 짐작으로, 다른 무명 빨래와 함께 잿물에다 막 삶았대서, 새아씨는 물론, 안방마님의 퉁명스러운 꾸지람을 듣고, 또 뒤이어, ‘이 댁에서 죽을 때까지 살겠다’는 안잠자기 귀돌어멈에게까지 핀잔을 맞아, 어리둥절한 채, 이제는 태워본대야 아무런 보람이 없는 애를, 혼자 부엌 속에서 태우고 있었다.

 고생은 날 적부터 타고난 제 팔자다. 가난한 것은, 이미 아무렇게도 하는 수 없는 것이었고, 잘못 만난 서방 탓으로, 밤낮 속을 썩이는 것에도, 이제는 완전히 익숙하였다. 그러나 그래도 ‘내 사내’라고 받들어왔던 남편이, 드디어 딴 계집을 얻어가지고, 그대로 차고, 때리며, 나가라 구박이 자심할 때, 한때는 죽어버릴까 하고, 그렇게 모진 마음조차 먹어보았던 것이나, 아직 철이 나기도 먼, 만돌이, 수돌이, 두 어린것을 생각하고는, 도저히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때, 문득, 생각나 것이 반년 전에 서울로 올라간 필원이네 소식이다. 한 이웃에 살며, 거의 매일같이 서로 마을을 다니던 필원이네가, 서울서 드난을 살며, 그래도 어떻게 탈 없이 지낸다는 것이, 그의 걸어갈 길을 지시해주었다. 그래, 남의집사는 것이 결코 수월치 않다는 것쯤은 짐작을 하면서도, 그래도, 그것이, 지금의 이 고생살이보다는 오히려 나으리라고, 오직 필원이네를 믿고 어린것들의 손목을 잡아, 난생처음, 서울로 올라온 그것이, 바로 지금으로부터 보름 전의 일이다.

 그는 그렇게 하여, 저의 앞길이 갑자기 터진 것같이, 한때는, 생각하였다. 열일곱 살에 사내를 알아가지고, 스물네 살 되는 이제까지, 시집살이 팔 년 동안에 눈곱만 한 기쁨도 준 일 없이, 오직 한숨과 눈물로만 날을 보내게 하여주던 남편과도, 이제는 참말 영이별이다. 그야, 어린것을 둘씩이나 데리고 아직도 새파랗게 젊은 몸이,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그것이 마음에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었으나, 그 무지하고 표독한 사내와 이렇게 떨어질 수 있는 것만 해도, 우선 얼마나 다행한지 몰랐다.

 그러나 넓은 서울 장안에서도, 그와 두 어린것을 용납해주도록 관대한 집은 드물었다.

 수소문을 하여 사람 구한다는 집을 차례로 다녀보았으나, 모든 것이 부질없는 일이었다. 행랑것으로는, 서방이 없는 것이 흠이었고, 안잠자기로는, 또 어린것이 둘씩이나 있는 것이 탈이었다. 그래, 만돌어미가 기진역진한 끝에, 또다시 모진 마음을 먹으려 들었을 때, 그것은 또 무슨 생각으로선지, 그렇게 구박을 하여 내쫓아놓고, 지금쯤은 새로 얻은 계집과 재미나게 살고 있어야만 옳을 만돌아비가, 제 계집의 뒤를 쫓아 서울에 나타났다.

 서울에 오던 당초에, 만돌어미가 필원이네를 보고 서러운 사정을 하소연한 다음, 이제는 애아버지와도 참말 영이별이라고, 그렇게 말하였을 때, 그보다는 네 살이나 위요, 또 그만큼 경난을 한 필원어멈이, 호젓하게 웃으면서,

 “내외 사이가, 어디 그렇게 쉽게 갈라지나? 다 어림없는 말이지.”

 그렇게 하던 말이,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옳았다.

 불행한 여성은, 어떻게 무정한 사내에게 좀더 반항해본다든가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운명에 맹종하기로 마음을 먹고, 안팎드난이라야 한대서, 서방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을 때는 들어갈 수 없었던 한약국 집에, 이제 네 식구는 필원이네의 극력 주선으로, 평생 처음인 남의 집 고용살이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조선 사람의 생활이면서도, 자기들이 이제껏 시골에서 경영해 오던 살림과는 전연 달라서, 처음 서울 올라온 여인은, 오직 밥 짓는 것 한 가지밖에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옳을 것인지, 밤낮 귀돌어머니의 핀잔만 맞아, 한 가지의 실책이 있을 때마다, 혹시나 이렇기 때문에 드난도 못 살고 쫓겨나는 것이나 아닐까, 그것이 마음에 겁났고, 또 아직은 별 행패가 없으나 제 버릇 개 줄 리 없이, 이제 당장이고 시골서 하던 그대로 술이나 처먹고, 애아범이 안팎을 소란하게나 만들면 어쩌는고 하고, 그는 그러한 것에, 자나 깨나, 애가 탔다.

 그러나 한 열흘이나 지나도록, 만돌아비는 아주 별 사람이나 된 듯싶게, 얌전하니 아무런 일도 일으키지는 않았다. 안잠자기 귀돌어멈은, 원래, 빨래터에서 들은 말이 있었던 까닭에, 행랑에서 크고 작고 간에 이제 쉬 무슨 분란이든 있으리라고, 그러한 것에 은근히 기대를 가졌었던 듯싶으나, 얼마 동안 유지되어가는 평화에, 그 왼편으로 기울어진 고개를 그는 좀더 기울여보곤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돌어미가 어리석게도, 혹은 참말, 서방이 이제는 맘보를 바로 가지고 못된 행실을 고치려는가 하고, 은근하게 기뻐하려 하였던 것은, 결코 옳지 않았다.

 어느 날 낮에 장작이 한 마차 들어와, 그것은 마땅히 행랑아범이 있어가지고, 헛간에다 쌓는 데 거들어야 하고, 또 당장 저녁에 땔 것만이라도 단 몇 단, 패어놓아야만 되는 것을 대체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갔는지, 만돌아비는 암만 찾아도 보이지 않아, 그래, 꾸지람은 어멈이 혼자 도맡아 받고, 그리고 혼자 좁은 가슴만 태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날 밤의 일이다.

 밤 열 시나 거의 되어서, 술까지 잔뜩 취해가지고 돌아온 애아범을 보고, 만돌어미는, 이내 참지 못하고,

 “아니, 그래, 바쁜데 일은 안 허구 어딜 또 갔었수?”

 한마디 불만을 토해놓았다. 여기가 만약 자기네들만이 사는 집이라면, 이제까지나 마찬가지로, 불행한 계집은, 결코 그러한 말 한마디 입 밖에 내어놓았을 리 없다. 그러나 자기들은 지금 남의 집에 드난을 살고 있는 것이었고, 더구나 불은 때야 하고 장작 팰 아범은 들어오지 않고 하였을 때, 주인 서방님이 서투른 도끼질을 하느라, 손바닥에 생채기조차 내었던 것이 마음에 어찌나 죄스러웠던지, 그는 그대로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돌아비는, 그러나, 그러한 모든 어려움을 결코 머릿속에 두지 않았다.

 “어디 갔다 오든, 이년아, 니가, 무슨 상관야?”

 말은 오직 그 한마디로, 다음에 무수한 주먹과 또 발길이, 가엾은 여인의 몸 위에 떨어졌다. 사내는, 결코, 제 본성을 고쳤던 것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계집의 팔자는 그리 쉽사리 좋아질 수 없다. 만돌어미는 그대로 독한 매를 맞으며, 방 안에 가득한 어린것들의 울음소리에 흥분할 대로 그는 흥분해가지고, 모두들 나중에 어떻게 되든지, 자기는 이대로 얻어맞아 죽기나 했으면, 참말이지 그것이 오히려 얼마나 나을지 모르겠다고, 불행한 여인은 이를 꽉 악물고,

 ‘정말이지 쥐기려거든, 제발 나 좀 쥐겨다우, 쥐겨다우…….’

 몸을 그곳에 그대로 내던져둔 채, 그는 쉴 사이 없이 그러한 것을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1) 국사 봄가을의 한복을 만드는 데 주로 쓰던 전통 옷감.

2) 정신 들기름에 절여 만든 가죽신. 진 땅에 신었으며, 신창에 징을 촘촘히 박아서 만듦.

3) 마른신 기름으로 겯지 않은 가죽신. 마른 땅에서만 신는 신.

4) 무새 무색. 물감을 들인 빛깔.

5) 신전 신 파는 가게.

6) 고대 깃고대. 옷의 깃을 붙이는 자리. 두 어깨솔 사이로 목뒤에 닿는 곳.

7) 곤반 권번. 일제 때 기생들의 조합.

8) 파닥지 ‘얼굴’의 비속어.

9) 각순 각수는. ‘각수’는 돈을 ‘원’ 단위로 셀 때 남는 몇 전이나 몇십 전을 일컬음.

10) 요힌비(ヨヒンビン, yohimbine) ‘요힘빈’. 식물 추출물의 하나. 혈관을 확장시켜 생식 중추의 반사흥분서을 촉진시킴.

11) 노차 노선의 차(車)

12) 능견 비단의 한 종류.

13) 지리뎅(ちりぬん, 縮緬) 지리멩. 견직물의 한 종류.

14) 대정금 일본 악기의 하나.

15) 주짜 말이나 행동이 분에 넘치며 버릇이 없는 것.

 

16) 깍정이 거지.

17) 연질 생후추를 약한 불에 말리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추정됨.

18) 하부다에(なぶたえ) 얇고 부드러우며 윤이 나는 순백의 견직물의 한 가지. 원문에는 ‘하부다이.’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