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3. 27. 08:56

차부

윤기정

 

1

갓난이 아버지는 해 저물 무렵에야 점심겸 저녁겸 얼러서 막걸리 한 사발에다 국 한 그릇을 받아먹은 것이 시장해 그랬던지 머리가 띵하고 눈이 개개 풀리기 시작해 전신이 착 까부러지고 꼬박꼬박 졸려옴을 견디다 못해서 한 칸이라고 해도 넓은 반 칸통밖에 안 되는 움파리 같은 벽문방 한 귀퉁이에 쓰러져 세상모르고 새우등 잠을 자다가

"인력거!"

하고 부르는 바람에 곤하게 들었던 잠을 소스라쳐 깨었다. 허나 자기 차례는 아니라고 스스로 짐작하였다. 곁에 누웠던 춘보는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잠이 덜 깬 목소리로

"!"

하고 방문을 왈칵 열며 밖으로 나갔다.

갓난아버지도 겉묻어 일어나 눈을 손등으로 비비고 한편 구석 벽에 오도카니 걸려있는 군데군데 찌그러지고 녹이 슬고 벗겨지고 게다가 장침 끝이 부러져 어느게 단침인지 장침인지 얼핏 알아볼 수 없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사발시계를 쳐다보았다. 침 한 개는 한시를 가리키고 또 한 개는 열두시를 가리키고 있다. 자정인지 새로 한시인지 얼핏 알아맞힐 수는 없어도 자정이 지난 것만은 틀림없다고 짐작하면서 속으로 아차, 늦었구나.’하면서 벌떡 일어나 선반에 얹힌 등을 집어 내렸다. 방문 옆에는 만춘이가 코를 드르릉드르릉 골며 동여가도 모르게 썩 잘 자고 있었다.

춘보 바로 다음 차례가 만춘이니까 그들과 자기만 남겨놓고 다른 네 사람은 의례히 버릇이 되다시피 한 밥벌이를 나간 것이다.

밖에서는 삯을 다투느라고 옥신각신한다. 꽤 한참 웅얼거렸는데도 그저 타는 기색이 없을 제는 이틀 만에 하나 걸린 손님이 재수 없는 김에 더 재수 없이 무척 인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갓난이 아버지는 좀 부아가 끓었다. 그래 한 손에 쥔 등을 더 힘 있게 쥐며 방문을 내밀려 할 때 손도 채 대기전에 저절로 왈칵 열렸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밖을 내다보니 춘보가 우뚝 섰다.

"생전벌이는 못해먹어도 그 값에는 안 가요. 내 원 재수가 없으려니까."

춘보는 어지간히 속이 상한 듯이 좀 거친 목소리로 이렇게 메다붙이듯 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온다.

갓난이 아버지는 그대로 잠자코 나가려다가 이런 고비에 아무 말도 안 하면 서운해할까 봐

"어딜 가는데 얼마라게 그래?"

"제길할거. 속상하네 속상해. 내 원 재수 없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별게 다 걸려. 여기서 계동막바지까지 이십 전에 가잔다네. 그것도 과하다구 그래39년 만에 하나 걸리는 게 요따위야."

하고 담배 연기에 글어서 시커멓게 된 신문지로 바른 벽을 등지고 기대앉는다.

"그만두게. 곧 일 원짜리 벌이가 걸릴는지 누가 아나."

갓난아버지는 이렇게 배속 유한 소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방 안에서는 여전히 혼자 투덜투덜한다. 춘보로서는 화도 남직하다. 바로 자기 다음 차례니까 어제 아침에 자기가 삼십전 받은 그것도 나흘만에 돌아온 벌이로 나갔다가 들어온 이후 지금같이 삯을 다투다가 그저 간 손님조차 한 사람도 없었다. 어젯밤에도 춘보와 만춘이만은 그나마 차례를 바라고 밥벌이도 나가지 못하였다. 실상은 나갔던 사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허탕을 치고 돌아오기는 했지만.

갓난아버지는 오늘밤도 어찌될 줄 모르는 뜬벌이를 믿고서 허리를 굽혀 인력거 앞채를 잡고 그다지 신나지 않게 일어섰다.

 

2

오늘이야 설마

이런 소리를 몇 번인지 입속으로 되풀이하면서 힘없이 빈 인력거를 끌고 좁은 골목을 아로새겨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던 갓난아버지는 첫 여름이지만 밤이 이슥해지니까 그런지 술이 깨느라고 그런지 약간 선선해짐을 느껴 어깨를 소승기며 온몸을 움칫하였다. 좀 추운 기운에 겉묻어 허기증도 연달아난다. 허나 주머니 속에 돈이라고는 일전 한 푼 없다. 아까 담뿍 오전 남았던 거로 막걸리 한잔을 먹었기 때문에.

큰길을 막 나서려니까 전차 하나가 동대문 쪽을 향하고 좀 빠르게 내려가는 것을 본 그는 아까 방안에서 본 시계가 한시가 아니라 열두시 막 지난 줄을 알 수 있었다. 넓은 길바닥을 나서보니 다른 날보다 유난히 거리가 휘황한 듯하다. 전등불이 어제보다도 더 많이 는 것처럼 무척 밝아 보인다. 마침 자동차 한 대가 무슨 괴물처럼 두 눈을 부라리며 먼지를 날리고 이 세상에는 저밖에 없다는 듯이 호기 있게 지나간다. 그 뒤미처 연달아 둘 셋이 또 지나간다. 이번에는 반대편 쪽으로 기세있게 커다란 소리조차 지르며 둘씩이나 줄 대 지나간다.

그는 한참동안 얼빠진 사람처럼 멀거니 선 채 오고 가는 괴물들을 시기하는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자동차가 자기네 살림살이를 날로 못살게 구는 수수께끼 같은 괴물로 밖에는 더 달리 보이지 않는다. 그래 살기 띤 눈초리로 그 괴물들을 쏘아보다가 대세를 짐작할 수 없다는 듯이 좀 실망하는 낯으로 다시 어슬렁어슬렁 빈 인력거를 끌면서 종로로 향하여 내려갔다.

청년회관 앞에서 내려가려니까 붉은 불을 단 전차가 웅장한 소리를 내며 전속력을 다하여 쏜살같이 지나간다.

옳지, 이제는 우리 세상이다.’

막차가 내려가는 것을 본 그는 입 안으로 가만히 부르짖었다.

허나 한낱 불안은 마음 한 귀퉁이에서 고개를 든다. 괴물들은 쉴새 없이 그전보다도 더 많이 왔다 갔다 한다.

그는 슬슬 걸으면서 머리를 들어 이리저리 둘러보니 자기와 같은 밥벌이꾼들은 그럼직한 곳이란 곳은 벌써 모조리 진을 치고 서서들 있다. 으리으리하게 우뚝우뚝 솟은 양옥집, 거기다가 밝은 빛이 나다 못해 새파란 색이 나는 전등으로 꾸미고 또는 빨갛고 푸른빛 나는 실 같은 불이 얼기설기 얽혀 있고 오색이 영롱한 불이 번갈아가며 꺼졌다 켜졌다하는 그 밑에 옹기종기 서서 있는 인력거들은 마치 주춧돌 아래로 지나가는 개미처럼밖에 안 보인다.

때마침 반취나 된 듯한 조선옷 입은 이 하나가 약간 비틀거리며 마주 올라온다. 갓난아버지는 입을 열어

"타고 갑쇼.“

하고 말을 건네려다가 저편에서 머뭇머뭇하는 것을 눈치챈 그는 여기서 먼저 말 내는 것이 그리 이롭지 못할 줄 알고 그 사람의 거동만 은근히 살폈다.

그 사람은 잠깐 우뚝 섰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대로 지나쳐 간다. 이렇게 된 바에야 이쪽에서도 말 건넬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래 하는 수 없이 다시 어슬렁어슬렁 탑골공원 앞을 바라보고 내려가려니까 건너편 야시들도 벌써 걷어치우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어지간히 취한 듯한 양복쟁이 혼자서 넓은 길이 좁다고 비틀거리며 올라온다. 그는 우뚝 서서 양복쟁이가 가깝게 오기를 기다려 좀 재바르게,

"타고 가시죠. 대단 취하신 모양인데요."

하고 허리를 굽혀 앞채를 땅에다 내려놓으려 할 때

"아따 니가 술 사주었니?"

하는 바람에 이키, 또 틀렸구나.’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고 굽혔던 허리를 다시 펴면서

"대단 취하신 모양이니까 실수하실까 봐 타고 가시자는 거죠."

사실 말하는 소리 들어 봐서는 그다지 취하지 않은 모양 같다.

"권에 비지떡이라구 그럼 어디 타볼까. 참 삯을 정해야지. - 현저정까지 얼마줘?"

"처분해 주시죠."

"안 돼 안 돼. 가서 딴소리하는걸."

"삼십 전만 줍쇼."

"응 삼십 전? 언문만 하지."

"언문이라뇨?"

그는 몰라서 되채 물은 게 아니다.

"이거 어디 백성야. 그래 언문도 몰라. 그러면 반이란 말도 못 알아먹겠구먼, 십오 전이란 말이야. 이 사람아."

"망령이시죠. 그 돈 받고야 가겠습니까. 십 리나 되는 데를!"

"그 사람 미쳤군. 젊은 사람이 망령이야. 안가면 그만둬라. 이렇게 인족거로 걸어가지술은 한숨인가 눈물이런가"

양복쟁이는 목청을 높여 노래를 빼며 뒤도 안 돌아다보고 여전히 갈지자걸음으로 걸어간다. 갓난아버지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의 부러 비틀거리는 듯한 뒷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쓰디쓴 웃음을 한번 싱긋 웃었다.

 

3

아무리 큰길이라고 하더라도 차차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성기고 띄엄띄엄 짐을 벌이고 있던 장사꾼들도 짐을 걷어치우고는 집으로 돌아가 번거롭고 복대기치고 왁자하던 이 거리도 깊어가는 밤을 쫓아 점점 쓸쓸해졌다.

카페, 찻집, -

이렇게 몇 군데 문 앞에 버정거리던 그는 마침내 우미관 골목 윗 모퉁이 무슨 회관이라고하는 카페 - 문전 - 보기 싫은 괴물도 둘이나 있고 동간들도 서넛이 서서 있는 틈을 비집고 들어섰다.

처음부터 이 근처에 진을 칠 것이로되 조금 늦게 나온 탓으로 벌써 육칠 명이나 이 언저리를 솔개미 모양으로 빙빙 돌기 때문에 할 수없이 다른 곳으로 헛되이 돌아다니다가 다시 이곳은 찾아온 것이다. 이곳이라고 뭐 신통하랴 하면서도 전에 몇 번 재미를 본 적이 있는지라. 혹시하는 요행수를 바라고 울긋불긋한 불빛이 은은히 흘러나오는 유리 창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서 있었다.

안에서 떠들썩하더니만 양복쟁이 두 명이 밖으로 나온다. 뒤미처 얼숭덜숭하게 무늬논 옷 입은 어여쁜 아가씨 두 분이 문에 연해 서서 또 오라는지 뭐라는지 연지 두껍게 바른 입술을 제비 모양으로 쫑긋거리며 하얀 손을 높이 들어 흔든다. 그들도 고개를 돌이켜 영어 같은 소리를 던지고 달려드는 인력거꾼들을 귀찮은 듯이 비키며 자동차 안에 몸을 실었다. 그들을 태운 자동차는 굉장한 승자 모양으로 소리를 내어 움직인 다음 먼지와 휘발유 냄새만 풍기고 유유히 차차 빠르게 달려 마침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갓난아버지는 이때처럼 자동차가 미운 적은 일찌기 없다. 옆에 한대 남아있는 것을 곁눈질로 흘겨볼 때에 자기의 인력거라도 들어서 힘껏 메다치고 싶은 마음이 걷잡을 새 없이 복받쳐 오른다.

때마침 안에서 나올 손님을 재촉함인지 혼비백산할 만치 경적을 울렸다. 그는 불시에 꽥 지르는 이 소리에 소스라쳐 놀라지 아니치 못하였다. 온몸이 졸아드는 것처럼 자지러졌다. 괴물은 당장 자기를 해치려는 줄 눈치채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맥이 풀린 채 어안이 벙벙해 가만히 서 있었다.

얼마쯤 지난 뒤 또 안으로부터 떠들썩하는 소리가 나며 여러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닫혔던 문이 소리도 안 내며 열리더니 이번에는 조선옷, 양복서껀 입은 축 셋이 세상 만난 듯이 흥청거리며 나온다.

아까처럼 인력거꾼들은 그들 앞으로 모여들었다. 나오던 사람 중에 하나가 자동차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운전수에게 말을 건넨다.

"빈차요?"

"빈차는 빈차죠만. 손님께서 안 부르셨다면"

"상관있소. 아모나 탑시다 그려."

"안 됩니다. 다른 차 부르시죠."

그는 더 말해야 소용없는 줄 짐작했던지 다시 돌아선다. 인력거꾼들은 기회나 만난 듯이 좀 큰 목소리로 제가끔

"인력거 타고 가시죠."

"세 분이 타고들 갑쇼."

"타면 자동차 타지 인력거 안 탄다."

"요즘은 인력거가 되려 비싼 걸천천히 걸어들 가세."

"싸게 해드릴께 탑쇼."

하고 갓난아버지는 말을 건넨다.

"아무리 싸대도 자동차보다 더 쌀 수 없을걸. 그래 더구나 셋이 탄다면."

"암 그렇구말구. 아무리 해도 오십 전 안 들 수는 없을 테지."

하고 한사람이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또 한 사람마저 그 뒤를 따라

"같은 오십 전이면 난 자동차 타네. 누가 갑갑하게 인력거를 탄담. - 어서들 가세. 가다가 빈 차 지나가거든 불러 타지."

이렇게 승강이를 하는 동안에 두 축이나 그 안에서 나와 자동차나 인력거는 탈 꿈도 안 꾸고 그대로들 지나쳐 갔다. 이러니저러니하고 찧고 까불던 세 사람도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뒤미처 나오기를 기다리던 자동차도 네 사람의 손님을 싣고 네 대의 인력거를 빈정거리는 듯이 뒤로 남겨 논 채 의기양양하게 쏜살같이 닫는다. 네 동간은 숨기랴 숨길 수 없는 시기하는 눈초리로 차차 멀리 사라지는 괴물의 뒷모양을 쏘아보며 넋 잃은 사람들처럼 멍하니 서있다. 아주 그림자까지 사라진 뒤까지도 그들은 멀거니 선 채 용이히 고개를 돌릴 줄 몰랐다. 갓난아버지는 부아가 넘 늘었다. 심통이 났다. 그래 전신을 탕탕 메다붙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신신치 않은 병문벌이가 그나마 한 달 전부터 차차 뜨고 하루 한 번씩 삯이 많으나 적으나 밥벌이가 걸려 뜬벌이라고 시작한 것이 도리어 정말벌이로 여기던 것조차 횡이틀 사흘씩 골방으로 건너뛰는 그 까닭이 자동차 값을 또 내린 때문이 확실하다고 그는 새삼스럽게 깨달은 듯이 느꼈다.

휑하니 쓸쓸해진 거리는 아까보다도 더한층 사람의 자취가 뜨다. 나올 손님을 기다리는 이곳도 문 닫을 때가 닥쳐온다. 허나 쏜살같이 닫는 괴물만은 여전히 이따금씩 내 세상이라는 듯이 왔다 갔다할 뿐. 간혹 괴물들 틈에 끼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숨찬 듯이 헐떡이며 오고 가고 하는 인력거, 부들부들 떨며 빠르지는 못하나마 앞으로 나가는 것 마치 뒤로 뒷걸음치는 것처럼 안타가워 보인다.

"타고 가십쇼."

불을 더러 끈 아까보다 좀 어슴푸레한 그 안에서 나온 두 청년은 대꾸도 않고 그대로 지나가 버린다. 곤드레만드레가 된 폼이

"타고들 가시죠."

"안 탄다, 안 타. 사람이 끄는 걸, 사람이 타다니. 백제."

"! 위대한 인도주의자여"

이렇게 빈정거리는 좀 커다란 목소리가 고요해진 밤거리의 쓸쓸한 공기를 여지없이 흔들어 놓았다.

 

4

갓난아버지는 마침내 믿었던 밥벌이조차 이틀째 허탕을 치고 병문을 향해 힘없이 돌아설 때 쓸쓸해진 밤거리와도 같이 서운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서글픈 생각이 마음속에 빈틈없이 스며든다. 털끝만치도 남한테 피침한 소리 아니 피침한 소리는커녕 일언반구의 위로나 동정하는 말만 듣는대도 당장 눈물이 쑥 쏟아질 성싶다.

허나 외로이 밤거리를 오직 여러 전등불에 비쳐 때로는 크고 작고 어느덧 뚱뚱하고 홀쭉해지는 몇 갈래의 자기의 그림자만을 동무 삼고 억제할 수 없는 처량한 심회를 억지로 누르면 맥 풀린 사람처럼 천천히 걷기 싫은 걸음을 걸었다.

"아버지, - 할아버지가 쌀 팔아 달라구."

몇 발자국 안 가서 갓난이의 음성이 이렇게 똑똑히 들리는 듯하다. 과연 내일 아침거리가 걱정이다.

많지 못한 찬밥 덩이로 하루를 연명해온 절뚝발이 아버지는 어미 없는 손녀를 시켜 아침 일찍 쌀 팔아 달라고 반드시 병문으로 내보낼 것이다. 쌀 팔아 달라는 어린 딸의 목소리가 자기 귀의 엉겁을 한 듯이 징하게 들린다. 그는 기가 막혔다. 가난한 살림살이가 지긋지긋 진절머리가 난다고 하더니만 다섯 해 전에 두 살 난 어린 것을 내버리고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도망가 버린 아내가 때로는 얄밉고 원망스럽다가도 밥 못 짓도록 궁이 낄 때에는 도리어 잘 가버렸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불시에 도망간 아내의 얼굴이 어른거리다가 문득 사라지고 갓난이의 해죽이 웃는 귀여운 얼굴이 뚜렷이 나타난다. 애미 정 모르고 할아버지 손에 자라난 불쌍한 어린것과 병신 홀아버지를 간혹 굶길 적마다 사내답게 떡 벌어진 기운찬 그의 가슴은 칼로 에이는 듯이 쓰라림을 맛보았다. 그는 또다시 내일 아침에 좀 말하기 거북한 듯한 어린 딸의 얼굴을 그려볼 때 새삼스럽게 그놈의 자동차가 무척 미웠다. 운전수조차 원수처럼 생각된다. 마침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간다. 그는 도끼눈을 뜨고 당장 쫓아가 이제는 아무짝에 쓸모없이 된 듯싶은 이 인력거를 들어쳐 보기 좋게 부셔 버릴 듯이 쏘아본다. 또 마음 한 귀퉁이에서는 큰 바위돌을 들어서 한숨에 힘껏 내려쳐 산산조각을 내어 가루같이 만들고도 싶고 또는 전기전대를 빼가지고 그놈의 괴물들을 닥치는 대로 모조리 때려 부수고 싶다.

그는 머리가 어찔하더니만 현기가 심해 한참동안을 우두커니 서서 간신히 진정한 다음에 다시 걷기를 시작하였다.

아차, 내 잘못했다. 아까 먼젓번 십오 전이라도 받고 갈걸.이런 판에 십오 전이 어디냐.’

그는 언문만 하자는 그 사람 놓친 게 이제 와서는 적이 후회되는 듯이 입만으로 웅얼거렸다. 허나 어쩔 수 없는 깨진 파기라고 생각한 다음 고개를 숙여 땅만 굽어보고 걷는다. 그가 별안간 이렇게 하는 것은 그 자신으로도 헛짓인 줄 마음 먹으면서 그래도 혹시 하는 요행수를 바라는 때문이었다.

눈에 좀 이상스런 물건만 띠면 발부리로 건드려 보기도 하고 뭉개보기도 하고 지근지근 대보기도 하고, 넌지시 차보기도 여러 차례 하였다. 지갑 같은 것은 고사하고 돈이 든듯한 것은 하나도 땅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종이 부스러기를 눈여겨보았다. 그렇다고 십 원이나 오 원짜리는 마음도 못 먹었다. 기껏 일 원짜리를 바랐다.

, 단 한 장이라도 하느님 덕분에.’

그는 이렇게 정성껏 바라기를 마지않았다. 허나 종시 그것조차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하고 말았다.

제길할 거. 내 왜 이리 어리석은 짓을 해입으로는 이런 말을 되풀이하면서도 먼저 먹었던 마음을 쉽게 흘려버리지 못하였다.

이번에는 오십 전짜리 한 푼이라도하고 아까만 못지않은 정성을 다해 찾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얼마 걷지 않는 동안에 몇 번인지 모르게 생철 조각을 보고도 가슴이 선뜩하고, 맥주병 마개를 보고도, 돈인가 싶고 가래침을 보고도 집으려 하였다. 돈이 아닌가 하고 속을 적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근처에 아무도 없지만 아마 저게 돈이지 하고 마음먹을 적마다 누가 곁에서 보는 것 같아 가슴을 조이면서 두리번거렸다. ‘이러다가 정말 있으면 어떻하나.’하고 죄 진 사람처럼 얼굴을 붉히다가도 종시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분한 생각이 먼저 먹었던 마음을 보기 좋게 흘려버린다. 그래 그는 열심히 땅만 살피며 걸어간다. 이렇게 한참동안을 걸었으나 오십 전은커녕 일 전 한 푼 눈에 띠지 않는다. 바랐던 바는 갈수록 어그러지고 말았다. 일전도 못 줍는 주제에 이번에는 하는 수 없이 또 떨어져 십전이 되었다.

밝기를 기다리는 거리의 전등불은 잠 못 자고 애써 벌겋게 핏줄 선 두 눈으로 단 십 전만이라도 얻어질까 하고 초조해하는 그의 모양을 비웃는 듯이 흘겨보고들 있다.

 

5

오늘 벌이가 헛되이 돌아감과 마찬가지로 요행수를 바라던 것도 허튼수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보니 내일 아침거리가 정말 걱정이다. 외상은 막무가내그러면 누구한테 꾸어나 볼까. 그러나 될성부르지 않다. 여러 동간을 차례차례 손꼽아 보았으나 깡그리 남에게 돈을 취해 줄만치 난사람은 하나도 없다. 신신치 않은 벌이로는 밥 지어 먹기도 곤란한데다가 너 나 할 것 없이 제 인력거 가진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좀 주머니 귀퉁이에 언제가다 돈냥이나 남으면 빚 갚느라고 눈코 뜰 새가 없다.

인력거가 허술해진다거나 어디가 부러지고 깨져 고치거나 또는 부속품 같은 것을 사야만 할 때에는 그 돈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인력거를 잡히고 빚을 얻어 쓰는 것이 그들의 버릇으로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너나 할 것 없이 빚구덩이에서 헤나질 못한다. 갓난이 아버지는 자기의 가엾은 신세와 불쌍한 집안 식구를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이십 년 인력거꾼 노릇에 반반히 제 인력거 하나 가지지 못한 자기나 삼십년 목수 노릇에 집 한 칸 가지지 못하고 남의 집 행랑방, 그나마 삼 원씩 내는 사글세를 요새처럼 못 내면 나종판에는 집 짓다 떨어져 부러진 다리를 부둥켜안고 굶어서 거리 죽음을 면치 못할 병신 아버지의 눈물겨운 모양을 눈앞에 그려볼 때 숨이 막히고 기막히는 품이 당장 미칠 듯싶다. ‘인력거 끌다가는 굶어 죽겠다. 뭐든지 딴 노릇을 해야겠다.’

이렇게 외마디 소리처럼 소리 내 부르짖는 그의 눈앞에는 구루마 끌고 다니는 과일장사, 아이스크림장사, 얼음과자장사이처럼 여러 그림자가 번갈아 휙휙 지나간다. 그것도 밑천이 있어야 안하나 하는 생각이 들 매, 그 역시 허튼 수작이라고 고개를 내흔들었다.

이러고 보니 그로서는 막다른 골목을 당도한 듯한 느낌이 들어 한참동안 곰곰이 이리궁리 저리궁리 생각하다가 마침내 옳다. 도적질이다. 도적질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지 않으냐.’ 하고 그는 사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가슴에선 벌써 두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약간 떨리는 몸을 억제하면서 어느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섰다. 무엇이 저쪽에서 바람결에 버석만 해도 소스라쳐 놀라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 같고 자기의 그림자가 땅에 비낀 것만을 보아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런 비할 데 없이 불안한 마음을 오십 평생에 일찍이 한 번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인력거를 한참동안 빨리 끌고 난 때처럼 숨이 점점 가빠지다가 종당에는 헐떡거려진다. 오늘날까지 갖은 고생을 다해 내려왔지만 이처럼 괴로워 본 적은 없었다. 그는 마침내 괴로움과 불안을 참다못하여 굳게 먹었던 마음을 다시 돌이키지 않을 수 없었다. ‘차마 도적질은 못하겠다. 굶어 죽더라도. 하기도 전에 이처럼 괴로울 제 훔치고 난다면 얼마나 마음이 볶일까?’

 

마음을 갈아먹은 뒤 얼마동안 안심은 되었으나 허기 중에 눈이 컴컴해진다. 자기가 시장함을 이처럼 못 견디겠는걸 생각하매 병신 아버지와 어린 딸년의 배고파하는 초조한 형상이 눈앞에 어렴풋이 나타나 그는 다시금 결심하였다. ‘에이 빌어먹을 거. 무엇이든지 훔치자.’

그는 미친 사람처럼 부르짖으며 어느 빈지 드린 가게 앞에 우뚝 섰다. 몇 번이나 좌우를 둘러보며 죽을힘을 다해가지고 빈지를 지근거려 보았다. 열릴 성싶지 않다. 그리하여 생각을 고쳐서 어느 집 담이라도 뛰어넘기로 하고 가게 앞을 누가 쫓는 듯이 좀 재바른 발씨로 그곳을 급히 떠났다.

얼마 만에 전등불도 그리 없는 좀 우중충하고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중턱쯤 오다가 어느 담모퉁이에 인력거체를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무엇이 미심쩍은 듯이 이쪽저쪽을 휘휘 두리번거리고 나서 인력거 발 놓는 방탕 위로 올라서서 담 안을 넘어다보았다. 그리 높지 않은 담이라 힘 안 들이고 손쉽게 넘어갈 수는 있지만은 넘어갈까 말까하고 가슴을 귀로 들으면서 망상거리던 판에 별안간 어느 구석에선지 젖먹이 어린애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일어난다.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도적놈의 마음이라 인기척에 놀라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도 갓난이의 어렸을 적 울던 울음소리가 불시에 생각나서 더 한층 놀라고 만 것이다. 그래서 땅 아래로 얼핏 뛰어내려 인력거 체를 다시 잡으며 무거운 머리를 내저으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혈속이라고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어린 딸을 애미 없이 젖 없는 고생, 어멈 그늘에서 자라지 못한 뭇 설움, 배곯고 헐벗은 설움, 이처럼 가지가지의 고생만을 시켜오다가 나중 판에는 도적놈의 딸이라는 누명을 들씌워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일 죽을지, 모래 어떨지 모르는 병신 아버지에게 병신인 것도 불쌍한데 게다가 도적놈 병신 우에다가 덧붙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들어오던 길로 돌아서서 맥 풀린 다리를 힘없이 옮겨 놓는다.

아무도 없는 갈수록 쓸쓸한 밤거리를 혼자서 얼빠진 사람처럼 걸어가는 것이 마치 꿈길을 걷는 것 같다. 이렇게 한참 걸어오는 사이에 그는 차츰차츰 세상이 모두가 귀찮은 생각이 든다. ‘제길할, 나 한 몸 죽으면 고만이다. 죽은 담에야 누가 아나

다음 생각은 어떻게 죽을까 하는 것이다. 일상 하던 버릇으로 주머니에 손이 갔다. ‘비상 사 먹고 죽으려도 노랑전 한 푼 없다는 말이 내게 두고 맞았구나. 어쩌면 요렇게도 알뜰히 톡톡 털었니. 설사 있더라도 지금은 살 수도 없다.’

그는 또 어떻게 죽을까 하고 궁리해보았다.

옳다. 물에 빠져 죽자. 춘보 녀석이 툭하면 나 한 몸이 한강수 깊은 물에 풍덩실 빠져 죽으면 그만인걸하더니 이제 내 코에 닥쳤구나. 이 길로 한강 철교로 가자.

그는 한강 가는 쪽을 향하고 얼마동안 걷기를 재촉하였다. 기운이 점점 까부라져서 걸음조차 안 걸린다. 죽으러 가는 놈의 걸음걸이가 그리 활발하거나 빠를 게 없는 데다가 허기증이 갈수록 심해져 그대로 자지러질 것 같다. 이렇게 걷다가는 밝기 전에 대갈수도 없겠지만 더 걸을 수도 없다. 그래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번에는 목을 매 죽기로 결심하고 새끼를 이리저리 둘러 찾았다. 그것조차 눈에 띠지 않는다. 지금까지 걸어오던 길을 다시 돌쳐 서서 얼마쯤 또 걸었다. 길 한 모퉁이 나무가게 같은 곳이 눈에 띤다. 그는 그리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하여 그의 손에는 어렵지 않게 한 발 남짓한 좀먹은 새끼줄 한 오라기가 쥐여졌다. 허나 새끼 쥔 손은 부르르 떨리기 시작하였다. 손만이 아니라 전신에 소름이 쭉 끼치며 사시나무 떨리듯 걷잡을 새 없이 막 떨린다.

그의 눈앞에 혓바닥을 기다랗게 빼물고 두 눈을 홉뜬 채 축 늘어진 자기 자신이 나타났다. 그래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질겁을 해 몸서리를 쳤다. 그 흉악한 모양은 여전히 눈에서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오히려 더 똑똑하게 어른거려 어쩔 줄을 모르겠다. 절름발이 아버지가 한 손으로 송장을 붙들고 또 한 손으론 땅바닥을 너무 두드리며 기막혀 우는 모양, 뒤미처 갓난이가 달려들며 송장을 얼싸안고 몸부림치며 느껴 우는 광경을 아무리 흘려버리려고 암만 애써도 도무지 흘려지지 않는다. 애쓰면 애쓸수록 그 보기 흉한 안타까운 광경은 더욱 똑똑해질 뿐이다. 그는 견디다 못해서 고개를 힘 있게 흔들면서 못 죽겠다. 못 죽어. 의지할 데 없는 늙은 아버지와 철모르는 어린 딸년을 두고는 차마 못 죽겠다.’라고 손에 쥔 새끼를 멀리 팽개쳤다.

 

6

한밤동안 길에서 헤맨 갓난아버지는 몇 시간 지내온 일과 지금 자기가 서있는 것을 꿈인지? 생시인지? 저승인지? 이승인지? 무엇이 무엇인지? 자기조차 잊어버리고 내일 하루 살 걱정을 하며 오도마니 섰다가 그대로 땅바닥에 펄썩 주저앉으며 아래와 같이 힘없이 부르짖었다.

어떡하나. 어쩌면 좋은가.’

짧은 여름밤이라 어느덧 동편 하늘에는 먼동이 트느라고 훤해온다. 그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체 넋 잃고 얼빠진 사람처럼 차차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멀거니 바라만 보며 아래와 같은 말을 두 번째 힘없이 되풀이해 부르짖었다.

어떡하나? 어쩌면 좋은가?’

<조광>, 193611월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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