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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시집

Bollnow 2024. 3. 26. 05:59

요한 시집

장용학

 

한 옛날 깊고 깊은 산 속에 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토끼 한 마리 살고 있는 그것은 일곱 가지 색으로 꾸며진 꽃 같은 집이었습니다. 토끼는 그 벽이 대리석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나갈 구멍이라고 없이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게 땅속 깊이에 쿡 막혀 든 그 속으로 바위들이 어떻게 그리 묘하게 엇갈렸는지 용히 한 줄로 틈이 뚫어져 거기로 흘러든 가느다란 햇살이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것처럼 방안에다 찬란한 스펙트럼의 여울을 쳐 놓았던 것입니다. 도무지 불행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일곱 가지 고운 무지개색밖에 거기에는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그가 그 일곱 가지 고운 빛이 실은 천장 가까이에 있는 창문 같은 데로 흘러든 것이라는 것을 겨우 깨닫기는 자기도 모르게 어딘지 몸이 간지러워지는 것 같으면서 그저 까닭 모르게 무엇이 그립고 아쉬워만 지는 시절에 들어서였습니다. 말하자면 이 깊은 땅속에서도 사춘기는 찾아온 것이었고, 밖으로 향했던 그의 마음이 내면으로 돌이켜진 것입니다.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고운 빛을 흘러들게 하는 저 바깥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

이를테면 그것은 하나의 개안(開眼)이라고 할까. 혁명이었습니다. 이때까지 그렇게 탐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던 그 돌집이 그로부터 갑자기 보잘것없는 것으로 비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올빼미가 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바깥 세계로 나갈 구멍은 역시 없었습니다. 두드려도 보고 울면서 몸으로 떠밀어도 보았으나 끄덕도 하지 않는 돌 바위였습니다. 차디찬 감옥의 벽이었습니다. 갇혀 있는 자기의 위치를 깨달아야 했을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서 살게 되었던가?

모릅니다. 그런 까다로운 문제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 보아도 일곱 가지 색으로 엉클어지는 기억 저쪽에 무엇이 무한한 무슨 느낌을 주는 무슨 세계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지금 눈망울에 그리고 있는 바깥 세계를 두고 그렇게 느껴지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면서부터 이곳에 산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결국 이렇게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야 바깥 세계가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수평선은 늘 그 저쪽이 그리워지는 무()를 반주하고 있었다.

그 저쪽에 뭐가 있다는 말인가. 여기와 같은 언덕이 질펀하게 경사를 이루고 있을 뿐이 아니겠는가? 거기서는 또 누가 이리를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이 무슨 시늉인가……

(누혜)가 죽은 뒤로는 나는 바위 그늘에 가만히 앉아서 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온다 온다 하던 배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봄이 가고 여름의 파도가 해안선을 물어뜯어도 배는 오지 않았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시 가고, 푸른 입김이 젖어 들던 땅에 녹음이 짙어 가는 무렵 드디어 나는 매에 몸을 실었다.

누에는 철조망에 목을 메고 죽었다.

포로수용소에서도 모두들 누혜를 누에라고 불렀다. 그래서 포로라는 이름이 아직 낯이 설어서, 모두가 한 가지로 허탈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실없는 친구들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그를 이렇게 놀려 주기도 했다.

뽕 뽕 뽕잎이 떨어진다. 뽕 뽕 뽕잎이 떨어진다.”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누에는 죽어서 비단을 남긴다 하하……"

그는 비단을 남기고 싶어 한 것이 아니었다. 봉황새가 되어 용이 되어 푸른 하늘 저쪽으로 날아가 보고 싶어 했다.

그는 의용군이 아니고 이북에서부터 쳐내려온 괴뢰군이었다. 그런데 수용소가 어수선해졌을 때에도 적기가(赤旗歌)는 부르려 하지 않고 틈만 있으면 누워서 푸른 하늘을 쳐다보기를 좋아했다.

내 살이 뜯겨 나가고 내 피가 흘러내린 이 전쟁은 과연 내 전쟁이었던가?”

한편에서 세계의 고아가 된 포로병의 가슴속을 이렇게 거래하던 회의는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하다가 마침내 생에 대한 애착에 부딪쳤다. 한 개의 나사못으로밖에 취급을 받지 못했던 자기의 삶에 대한 애착이었다. 살아야 하겠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남을 죽이기 시작했다. 싸움은 다시 일어났다. 남을 죽여야 내가 살 것 같았다. 남해의 고도에는 붉은 기와 푸른 기가 다시 바닷바람에 맞서서 휘날리게 되었다. 살기 위하여 그들은 두 깃발 밑에 갈려 서서 피투성이의 몸부림을 쳤다.

그런데 거기서는 시체에서 팔다리를 뜯어내고 눈을 뽑고, , 코를 도려냈다. 아니면 바위를 쳐서 으깨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서 변소에 갔다 처넣었다. 사상의 이름으로, 계급의 이름으로, 인민이란 이름으로! 그들은 생이 장난감인 줄 안다. 인간을 배추벌레인 줄 안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도리가 없었다. ‘인간 밖에서 일어나는 한 에피소드로 돌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공기 가운데서 누혜는 여전히 하늘을 먹고 살고 있었다. 언제부터 나는 그의 옆에 오므리고 앉는 버릇을 길렀다. 나는 반편 취급이니까 그렇게 하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점점 험악해 가는 그들의 서슬이 그의 그런 생활 태도를 언제까지 그대로 둬 둘 리가 없었다. 하루는 감나무 아래로 불리어 나갔다.

동무! 우리는 동무를 인민의 적이며 전쟁 도발자의 집단인 미제의 앞잡이로 몰고 싶지 않단 말이오. 어떻소 동무 ……동무! 왜 말이 없소?”

그들의 어세는 불러낼 때의 기세와는 달리 사정하는 투가 되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그는 이번 전쟁에서 나타난 용감성으로 최고 훈장을 받은 인민의 영웅이기도 하였다.

동무 ! 그래 민족 반역자로 봐두 좋단 말이오!”

……………………

그들의 얼굴에 살기가 올랐다.

대답해라! 너는 반동분자다!”

……………………

여전히 대답이 없다. 대답은 두 가지 중에 하나여야 한다. 그런데 그는 그 두 가지가 다 자기의 대답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타락한!”“반역자!”“인민의 적!” 이런 고함소리가 쏟아지면서 몽둥이가 연달아 그의 어깨로 날아들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소 같은 줄 몰랐다. 말뚝처럼 서 있다. 몽둥이가 머리에 떨어졌다. 그제는 비틀거리면서 쓰러진다. 거기에 있는 발길이 모두 한두 번씩 걷어찬다.

글들이 물러간 뒤에 가보니 그의 눈은 하늘에 떠 있었다.

눈물이 가늘게 흐르고 있다.

우러러보니 여름날의 구름이 본토로 희게 떠가고 있다.

나도 그의 옆에 누워 푸른 하늘로 눈을 떴다. 지상의 검은 그림자는 티 한 점 비치지 않은 거울같이 평화로운 하늘……

저기다 곡식을 심어 봤으면 좋겠네……

그를 위로하느라고 이렇게 말해 봤다.

산두 없구 저렇게 너른데 그래두 풍년이 안들까? 평화 시대가 안 올까……

곡식이 나면 인간들은 거기에두 말뚝을 박는다.”

나는 그가 어째서 죽음의 장소로 철조망을 택했는가 하는 것을 그의 유서를 읽어 볼 때까지는 깨닫지 못했다. 그때까지도 내 눈에 보인 것은 내가 눈알을 손바닥에 들고 서 있어야 했던 안 세계와 감시병이 향수를 노래하고 있었던 밖 세계, 이 두 개의 세계뿐이었다. 세계를 둘로 갈라놓은, 따라서 두 개의 세계를 이어 놓고도 있는 철조망은, 눈망울에 비쳐는 들었건만 보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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