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여수의 사랑
한강
상처의 시절은 단단히 기억하지,
밀려온 진눈깨비조차 / 참 따뜻한
나라라고 (김명인의 시 [여수])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灣)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불타오를 것이다. 찝찔한 바닷바람은 격렬하게 우산을 까뒤집고 여자들의 치마를, 머리카락을 허공으로 솟구치게 할 것이다.
얼마만큼 왔을까.
통곡하는 여자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빗물이 객실 차창에 여러 줄기의 빗금을 내리긋고 있었다. 간간이 벼락이 빛났다. 무엇인가를 연달아 부수고 무너뜨리는 듯한 기차 바퀴 소리, 누군가의 가슴이 찢어지고 그것이 영원히 아물지 않는 것 같은 빗소리가 아련한 뇌성을 삼켰다. 음산한 하늘 아래 나무들은 비바람에 뿌리 뽑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젖은 줄기와 가지가 금방이라도 부러질듯 휘어졌다. 노랗고 붉게 탈색된 낙엽들이 무수한 불티처럼 바람 부는 방향으로 흩날렸다. 조금 큰 활엽수들은 의연하게, 줄기가 여린 묘목들과 갈대숲은 송두리째 제 몸을 고통에 바치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도, 그들의 뿌리를 움켜 안은 대지도 놀라운 힘으로 인내하고 있었다. 무수한 보릿잎 같은 빗자국들이 차창과 내 충혈된 눈을 할퀴었다.
손목시계는 얼추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열차가 종착역인 여수에 닿으려면 앞으로도 두 시간 가까이 철로를 달려야 했다.
나는 깍지 끼고 있던 손매듭을 풀어 허리 아래로 늘어뜨렸다. 캐시밀론 냄새가 희미하게 풍기는 좌석 등받이에 상체를 밀착했다. 며칠 잠을 설쳤던 탓에 저절로 눈꺼풀이 감겼으나, 심장은 여전히 초조하게 두근거리며 의식의 한 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감은 눈 앞에 물고기들이 맴돌기 시작했다. 반경 이십 센티미터가 채 안 되는 둥그런 어항, 그 속에 감질나게 몇 가닥 흔들리고 있는 청록색 수초들, 수초를 투명한 지느러미로 건드리며 빙글빙글 맴을 그리는 금붕어,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불현듯 나는 두 개의 층계를 한꺼번에 헛디딘 것처럼 소스라치며 가수면에서 깨어났다. 그 물고기들은 죽었다.
어제 아침 나는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죽은 금붕어를 비닐 봉지에 싸서 대문 밖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자흔이 떠난 뒤의 나흘 동안 그녀의 물고기들은 아침마다 한 마리씩 두 마리씩 허연 배를 뒤집으며 수면으로 떠올랐다. 자흔히 하던 것과 똑같이 정성껏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주었지만 나는 그것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쓸모 없어진 어항의 물을 쿨렁쿨렁 소리를 내며 수채 구멍에 비웠다. 미끈거리는 어항 유리 안쪽을 물비누로 씻고 마른 행주로 물기를 닦아낸 뒤 높다란 선반 위에 엎어놓았다. 갑작스러운 욕지기가 치밀어오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우욱, 하는 신음과 함께 타액과 물이 싱크대 홈통에 토해졌다.
뱃속에 남은 것들을 마저 게우기 위해 나는 목젖 깊이 검지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직 용해되지 않은 파랗고 노란 알약과 캡슐들이 흐물흐물한 위액을 뒤집어쓴 채 토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다시 욕지기가 치밀었다. 수채 구멍으로 알약들을 밀어 넣었다. 구토한 다음이면 으레 입 속에 고여드는 낯익은 체념과 회한 따위를 곱씹으며 나는 거칠게 수도꼭지를 틀었다. 맵싸한 소독약품 냄새가 풍기는 수돗물에 입을 헹구었다. 세면장의 계단턱을 무릎으로 짚고 방문을 열었다. 고무 슬리퍼를 벗어 던졌다. 장판 바닥에 쓰러지듯 상체를 엎디었다. 이런 순간에 자흔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으므로 이마를 방바닥에 짓찧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나직한 목소리의 환청은 이미 귓전까지 다가와 내 먹먹한 고막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 왜 그런 짓을 해요?
처음 내가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고 토악질하는 것을 발견한 저녁에 자흔이 던졌던 물음이었다. 여간 눈여겨보지 않았다가는 다시 만났을 때 알아볼 수 없겠다 싶을 만큼 눈 코 입 어느 하나에도 특색이 없는 생김새의 자흔은 목소리만은 놀라울 만큼 아름다웠다.
손가락을 집어 넣으면 멀쩡한 사람이라도 위경련을 해요. 정선 씨가 이러는 거 의사 선생님도 알고 있어요? 싱크대 홈통에 고개를 처박은 나의 어깨를 붙안으며 자흔은 나무라듯이 재차 물었었다. 그녀의 다급한 물음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는 수도꼭지에 입술을 들이댔다. 이미 깨끗해진 혓바닥과 입천장을 손가락으로 문질러가며 연거퍼 헹구었다.
상관 말아요.
나는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더러워, 더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구요.
그날 저녁 나는 언제나처럼 쉴 새 없이 싱크대로 달려가서 손을 씻었었다. 손이 청결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손을 씻고 세수를 했다. 손가락 끝이 우툴두툴하게 불어오를 때까지 비눗물로 문지르고 닦아대다가 나는 기어이 토악질을 하고 만 것이었다.
뭐가요? 뭐가 더럽다는 거예요?
자흔이 묻는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어깨를 붙들고 있는 자흔의 몸을 밀어냈다. 다시 홈통에 머리를 처박고 토하기 시작했다. 저녁 내내 씻어낸 쓰라린 뺨을 타고 생리적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뺨이, 목줄기가 따끔따끔하게 젖었다. 눈물로 흐릿하게 가려진 시야 옆으로 자흔의 맨발은 차가운 세면장 바닥을 안타까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 그만 해요.
자흔은 내 등을 두드리며 속삭였다. 그녀의 서늘한 손가락이 내 뜨겁게 젖은 이마와 뺨을 어루만지려 했다. 내가 그 손짓을 뿌리치자 자흔은 둘 데 없어진 열 손가락들을 가지런히 허공에 펼치며 쓸쓸한 어조로 중얼거렸었다.
이젠 괜찮아요...... 그만 해요.
해질녘에 밀려 나가는 썰물처럼 환청은 천천히 귓가에서 잦아들었다. 자취방 유리창 가득 늦가을 오전의 다사로운 햇살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장판 바닥에 엎디었던 몸을 굼벵이처럼 모로 누이며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명치 끝이 찢기듯이 아파왔다. 적요한 햇빛 속으로 무수한 먼지 입자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답구나, 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먼지는 진눈깨비 같았다. 먼 하늘로부터 춤추며 내려와 따뜻한 바닷물결 위로 흐느끼듯 스미는 진눈깨비......, 여수의 진눈깨비였다.
열차는 여전히 비바람을 뚫고 달리고 있었다.
습기 먹은 스피커를 통해 차장은 불분명한 목소리로 남원(南原)역이 가까웠음을 알려왔다. 추레한 차림의 아낙들이 둘씩 셋씩 일어나 선반에서 짐을 내리고 우산을 챙기느라고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수까지 열차는 아직도 많은 역들을 남겨두고 있었다.
자흔의 이름자는 흔치 않은 것이어서 한자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녀는 그때마다 그들에게 '기쁠 흔(欣)자예요.'라고 짤막하게 대답하곤 했다. 대답과 함께 자흔은 매우 익숙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는데, 그것은 이름자와는 달리 조금도 기쁘지 않은 표정이었다. 언젠가 나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내심 그녀의 이름에서 자취라든가, 흔적이라든가 하는 다소 우울한 단어들을 기대하고 있었다. 자흔의 의외의 대답을 듣고 그 웃음을 보았을 때 나는 심술궂게도 '난자된 흔적'이라는 말을 떠올렸었다. 자흔의 무관심하고 지쳐 보이는 미소에서 드러나는 무수한 세월의 상흔, 나보다 두 살 어린 스물여섯 살 처녀의 표정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어둠 탓이었을까.
그때 나는 얼핏 그 어둠이 자흔의 지성의 그늘일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지 외로운 표정일 뿐이었다.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기다려온 사람들에게서 손쉽게 발견되는 표정이기도 했다. 열차를 기다리며 승강장에 서 있는 얼굴들, 늦은 밤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차창 밖의 휘황한 네온 사인을 바라다보는 눈빛들, 출근 무렵 살갗이 터질 듯한 지하철을 타고 말없이 몸 부대끼는 사람들의 메마른 광대뼈 같은 데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기쁠 흔(欣)자예요.'라고 뇌까리는 자흔의 목소리는 마치 그 모든 사람들의 외로움을 빻아다가 반죽해 놓은 흰 떡살같이 고즈넉했다.
내가 자흔을 만난 것은 지난 늦봄, 머리털을 태울 듯이 햇빛이 이글거리던 일요일 오후였다.
그 무렵 나는 자취방을 함께 쓸 사람을 찾고 있었다. 원래 그 방에 전세 들었던 대학 후배가 일년 전에 군대에 가면서 나에게 월세를 놓았고, 그후로 나는 부산에 있는 그 후배의 어머니의 계좌에 매달 삼십만 원씩을 입금하며 지내고 있었다. 빠듯한 월급에 혼자서 그 월세를 감당할 수는 없었으므로 룸메이트를 구해서 지냈는데, 그네들은 석 달이 멀다 하고 짐을 꾸려 떠나버리곤 했다.
마지막으로 떠난 사람은 친한 친구의 고등학교 후배였는데,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녀에게는 유난히 책이 많았다. 각종 월간, 계간 잡지에서부터 교양 문고와 수많은 단행본들이 네 평 남짓한 방의 절반을 차지했다. 나에게도 책이 적지 않은 편이라서 어쩌다 방문해 오는 사람들마다 '왠 간이 도서관을 차렸느냐'고 농을 걸어올 지경이었다. 저녁 늦게 퇴근하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낡은 종이 냄새와 곰팡이 냄새들이 물씬 코를 찔렀고 그것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책꽂이를 걸레로 닦곤 했다. 출근 시간에 늦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권 한 권의 책낱장들을 후루룩 들추어가며 먼지를 털었다. 그러잖아도 아침 저녁으로 방바닥을 쓸고 닦고 한번 씻은 손을 연거퍼 씻는 나의 결벽증에 불만을 표시했던 후배는 어느 날 자다가 일어나 그 광경을 보고 질겁을 했다. 잠옷바람으로 머리를 풀어헤치고 눈을 번쩍이며 책을 털고 있는 내 모습이 흡사 유령 같았다는 것이었다.
더러워서, 더러움을 견딜 수 없어서 나는 그 후배의 손가방까지 열고 거기 담긴 얇은 시집들의 책갈피까지 후루룩 털었다. 동 트기 전부터 창문을 열어 더러운 방안 공기를 내보내고 책꽂이와 창틀을 닦은 걸레를 두들겨 빨았다. 그래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진 어느 날 저녁 후배에게 '너무 낡아 누렇게 변색된 책들은 종이 상자에 넣어 세면장에 내놓는 게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아연해진 표정으로 내 초조히 빛나는 눈을 들여다보았다.
...... 제가 나가는 게 좋겠네요.
수초간의 침묵 뒤에 후배는 메마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다음주 일요일에 후배는 떠났다. 그 많은 책들을 다시 노끈으로 묶고 상자에 넣어 소형 이삿짐 트럭에 가득 싣고 난 뒤, 그녀는 아직도 불쾌함이 가시지 않은 안색으로 나에게 말했다.
기분 나쁘게는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보기에 언니한테는 치료가 필요한 것 같아요.
자흔을 만나던 그 휴일 오후까지 나는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내 결벽증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만큼 소문이 퍼져 있었다. 자취방을 거쳐간 사람들이 저마다 나에 대한 말을 퍼뜨리고 다니리라는 생각이 내 초조한 신경을 들쑤셔놓았다. 나로서는 조금의 악의도 품고 있지 않은데 단호히 떠나버린 그네들, 다시 찾아오는 것은 고사하고 안부 전화조차도 하지 않는 그네들에게 나는 은밀하게 상처받고 있었다. 더군다나 중간에 알음알음으로 소개해 준 사람들에게까지 나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친하던 사람들을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참기 힘든 것이었고, 결국 나는 애초에 전혀 모르던 사람과 지내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날 오후 나는 십육절 백지 석 장에 검정 싸인펜으로 '동숙자(女) 구함.
세면장이 딸린 작은 방. 월세 15만 원 선불에 보증금 없음.'이라는 문구와 내 전화번호와 약도를 또박또박 적었다. 동네가 작으니 석 장이면 충분하리라 여겨졌으며, 얼마간 기다려보아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지역신문에 광고를 낼 생각이었다.
그 어설픈 광고지들과 풀통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섰을 때 인적 없는 골목에는 하오의 강렬한 햇빛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어느 집에선가 빨래 삶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골목 끝 연립주택 놀이터에서 어린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려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전봇대에 광고지를 붙였을 때, 나는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흘긋 뒤를 돌아보았다.
삼 미터쯤 떨어진 단독주택의 문간에 낯선 젊은 여자가 혼자 서서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발 옆에는 큼직한 여행 가방 두 개가 놓여 있었고, 한 손에는 조잡한 기하 무늬의 보자기로 싼 큼직한 보퉁이가 들려 있었다. 골목에 아무도 없는 줄만 알았던 나는 다소 놀랐다. 저렇게 주저리주저리 짐까지 싸들고 있는 사람을 못 보고 지나쳤구나 하고 생각하며 골목을 걸어 내려가다가, 문득 무엇인가가 목덜미를 잡아 끄는 느낌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더 이상 나를 지켜 보고 있지 않았다. 보퉁이를 겨드랑이에 끼고 두 가방을 양손에 든 채 간신히 몇 발짝을 햇빛 가운데로 옮겨놓는가 싶더니 다시 짐들을 흙바닥에 팽개쳐 놓았다. 때늦은 두꺼운 외투를 걸친 여자의 얼굴에는 쉴 새 없이 땀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녀는 손수건도 없이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는 손바닥으로 그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닦는 동작에 너무도 몰입해 있어서 이를테면 마치 이목구비까지, 더 나아가 고유한 존재까지도 손바닥으로 닦아내버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흡사 들지 않는 칼날로 단단한 과일의 내피(內皮)를 도려내려는 것 같은 집요한 손놀림이었다.
남은 광고지들을 동네 수퍼마켓에 딸린 공중전화 박스와 버스 정류장 옆 영화 광고판의 여백에 붙이고 난 뒤, 나는 풀통을 트레이닝복 주머니에 집어넣고 빈 손을 털며 골목길을 걸어 올라왔다. 반쯤 열린 대문을 열고 주인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였다. 툇마루에 앉아 고구마순을 다듬고 있던 주인집 할머니가 고개를 치어들며 나에게 대뜸 물었다.
아가씨가 무슨 광고를 붙였어?
어떻게 벌써 발견했는가 싶어 멋쩍게 웃으면서 '그렇게 됐어요.' 하고 대답하려는데 마루 한 켠에 걸터앉아 있던 여자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좀전에 골목에서 보았던 그 여자였다. 아까와 같이 아무런 존재감도 없이 거기 앉아 있었던 탓에 나는 미처 그녀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아가씨가 광고를 보고 왔다는데.......
그때 여자는 가벼운 목례를 하며 소리 없이 웃었는데, 그것은 백치스럽게 느껴질 만큼 무구(無垢)한 웃음이었다. 가까이서 본 여자의 땀에 젖은 긴 머리카락은 몹시 헝클어져 있었다. 두꺼운 겨울 외투는 이제 보니 단추가 하나씩 어긋나게 채워져서 정강이께의 밑단이 가자로 각져 있었다. 닦는 일을 게을리하여 검은 색에 가까워진 고동색 구두는 옆쪽의 밑창이 반 뼘쯤 떨어져서 걸을 때마다 흰 맨발의 살갗이 드러났다.
그 허술하고 이상스럽기까지 한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비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은 순전히 그녀의 얼굴에 어린 고즈넉한 표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자는 무척 지친 기색이었다. 오랫동안 여행하다가 돌아온 사람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피로와 너그러움이 그녀의 얼굴에 저녁 역광 같은 따뜻한 그늘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어딘가 친숙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묘한 분위기 때문에, 나는 외투째로 두들겨 빨아주고 싶을만큼 단정치 못한 그 여자에게 막연한 호감을 느꼈다.
여행중이세요?
여자와 함께 세면장을 통해 자취방으로 들어서면서 내가 물었을 때, 그녀는 내 질문을 듣지 못한 듯 어릿어릿한 눈짓으로 방의 내부를 살피고 있었다.
......어항이 없네요.
그것이 그녀가 나에게 던진 최초의 말이었다. 그녀의 말씨는 허술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나긋나긋하고 쾌활했다.
난 어항이 있는 집이 좋은데.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여자는 키득키득 낮은 웃음 소리를 냈다. 찰나, 그녀의 무구한 웃음 소리를 뒤집어쓴 내 삭막한 자취방의 공기는 순식간에 한 색조 환하게 덧칠된 것처럼 보였다.
간략하게 통성명을 한 뒤 '생활비는 매달 십만 원씩 월세와 함께 거두고, 세금과 식비와 난방비 등속으로 아껴 써봐서 모자라는 돈은 다시 각출하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여 남는 돈은 벙어리 저금통에 저축해서 나중에 헤어지게 될 때 반분하고' 어쩌고 하는 너저분한 원칙들을 주섬주섬 늘어놓고 나자 그녀는 대뜸 외투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만원권 지폐 스물다섯 장을 세어서 건네면서 그녀는 물었다.
그럼 오늘부터 살아도 되는 건가요?
당황한 내가 머뭇거리며 지폐를 받아들자 그녀는 무거운 외투를 벗어 아무렇게나 방바닥에 내던졌다. 그녀는 '아아.' 하고 음울하게 가라앉아 있던 눈을 빛냈다. 마치 방금까지 꾸어온 무서운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물 좀 주세요, 목말라요.
남쪽이 가까워질수록 차창 밖의 산세는 완만해졌고, 빗발은 더욱 거세어졌다. 이삭을 훑어낸 빈 황톳빛 논들은 단풍 든 능선을 향해 아득하게 뻗어나가 있었다. 논두렁에 꽂힌 허수아비들은 젖은 누더기를 바람에 펄럭이며 묵묵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오십 대 후반의 아낙은 이 객실 저 객실을 옮겨 다니며 두 좌석이 나란히 비어 있는 곳이 눈에 띄면 거기 눕는 식으로 하여 세 시간 넘게 잠을 잤다고 했다. 누운 곳마다 자리 주인들이 비켜줄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아무데도 잠들 곳이 없어진 뒤에야 아낙은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아든 것이었다.
여태 난 편안히 잤어. 아가씨두 나 없는 새에 누워서 한숨 붙이지 그랬어?
웃음을 함빡 머금으며 자랑스럽게 말하던 아낙은 잠깐 사이에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무슨 흉몽을 꾸는지 이따금씩 흐으음, 흐으음, 하는 신음 소리를 입가로 흘리면서도 아낙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잠든 아낙의 얼굴에는 평생의 슬픔 같은 고랑과 잔주름들이 깊숙이 패어 있었고, 퇴색한 젖빛 블라우스 소매 끝으로 꼬깃꼬깃한 흰 내복이 낼름 혀를 내밀고 있었다.
... 지난번 약은 먹으면 오히려 구역질이 났어요.
어항을 비우고 토악질을 하고 난 어제 오후였다. 위경련에 뒤따르는 안두통(眼頭痛) 때문에 오른쪽 눈두덩을 검지 손가락으로 짓누르며 내가 의사에게 말했을 때, 오십대 후반의 의사는 때이른 저승꽃이 돋기 시작한 민둥머리를 들어올리며 입꼬리에 단정한 미소를 지었었다.
약을 먹고 구역질을 하면 곤란하지요... 약한 걸로 해드리지요.
의사의 볼펜이 손바닥만한 갱지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 나를 위한 처방이 적히고 있었다. 내 고질적인 통증을 일시적으로나마 구해 줄 묘방이 그 쪽지 안에 있었다.
과로하시는군요?
불쑥 의사는 점술가처럼 단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며칠간 죽을 드십시오.
의사의 손짓에 따라 진찰대에 눕자 섬뜩한 감촉의 청진기가 내 명치와 배를 두드렸다. 이어 의사의 노련한 손가락들이 배 이곳 저곳을 누를 때마다 입을 굳게 다물려 했지만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 이번엔 좀 심하군요. 주사 두 대 맞으시고... 내일도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의사는 다시 제자리에 앉아 처방전을 완성하고 있었다. 진찰대에서 상체를 일으키고 앉아 윗옷을 추스르며 나는 진찰실 창문의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드는 찬란한 햇빛을 보았다. 아, 금요일인 이날은 휴가의 첫날인 것이었다. 번잡한 회사 일정을 비집고 가까스로 얻어낸, 주말까지 끼워진 이박삼일의 휴가였다. 그 시간쯤 나는 서울에 남아 있지 않아야 했다. 여수로 향하는 일곱 시 삼십 분 첫 기차에 올라 있어야 했다.
내일은 곤란한데요, 실은....
나는 통증을 참으며 말했다.
오늘부터 모레까지 휴가예요. 가봐야 할 데가....
어째서 여수에 가야 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치밀었으므로 나는 말을 끊어버렸다. 그곳에서 누구를, 무엇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 그렇다면 경과를 봐서 월요일에 오세요. 약은 삼일분 지어드리지요.
늙은 의사는 처방전을 건네주며 '휴가 잘 보내십시오.'라고 사무적으로 인사했다. 벌써 삼 년 넘게 단골이어서 나의 내장과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의사였다. 처음 이 병원을 찾았을 때 나는 고통과 공포에 지질려 있었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나의 얼굴을 일별한 의사의 눈에 놀란 기색이 스쳐 지나갔었다.
대설(大雪)도 지난 늦겨울이었다. 오한이 들어 있던 나는 격앙된 목소리를 떨며 의사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몰라요. 잊을 만하면 꼭 이렇게 되고 말아요. 보세요, 전 이렇게... 이렇게 새파랗게 젊은데 말예요. 대학병원에서 내시경 검사까지 해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군요. 아무 병이 없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럴 수도 있나요. 난 아파요, 정말로 아프단 말입니다.
여태껏 누구에게도 그렇게 많은 고통을 한꺼번에 호소한 적이 없었으므로 내 가슴은 뛰고 있었다. 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진찰을 마친 뒤, 늙은 의사는 예의 단정적인 억양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과로하시는군요?
그 말에 서린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냉정하고 사무적인 음색 때문에, 그리고 이토록 냉정한 의사가 인정할 만큼 내가 피로에 시달려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위로를 받았던 것이었다. 수많은 내과를 전전하던 끝에 시장통의 초라한 건물 이층에 자리한 그 병원의 단골이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날 엉덩이를 까내리고 얼굴이 희고 입매가 새침한 간호사가 놓는 주사를 맞은 뒤 우중충한 병원 계단을 걸어 내려왔을 때, 전자오락실과 함께 쓰는 현관 바깥으로는 언제부턴지 모르게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썬팅이 군데군데 벗겨진 유리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와락 외투 속으로 파고 들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하늘을 노려보자 서득한 눈송이들이 하얗게 속눈썹에 맺혔다.
어제 오후, 삼 년이 지났어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그 음침한 현관을 빠져 나왔을 때 시장통은 온통 가을 햇빛으로 찬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주사 맞은 자리가 몹시 뻐근했으므로 나는 어기적거리며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지하철역 입구의 층계로 발을 내딛기 전에 문득 좌우를 살폈을 때, 결혼예복 대여점에는 반라의 마네킹이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채 진열되어 있었고 그 옆의 지하 레스토랑 간판은 먼지투성이의 불 꺼진 색전구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실업자와 대학생과 중년 여인들이 가득한 지하철의 진동에 가볍게 몸을 흔들리며 나는 주사 기운이 혈관과 림프관을 타고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요동치던 안두통이 서서히 잠잠해졌고 경직되었던 위장은 차츰 말랑말랑해졌다.
이렇게 고요해질 통증인 것을, 지난밤에는, 또 수없이 반복되었던 그밤들에는 이런 순간을 믿지 못하였다. 마치 밤이 깊을 때마다 새벽을 믿지 못하듯이, 겨울이 올 때마다 봄을 의심하듯이 나는 어리석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하였던 것이다.
전철은 어두운 터널을 달리고 있었다. 검은 유리창에 반사되어 음화처럼 어른거리는 낯선 얼굴들을 바라다보며 나는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망연히 서 있었다. 이제 자취방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의료보험증과 지갑만을 앞주머니에 찔러넣고 휘청거리며 빠져 나왔던 눅눅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가. 싸늘한 세면장에서 흰죽을 끓이고 그것을 억지로 떠넘겨야 하는가. 식간마다 내복약을 챙겨 입 속에 털어 넣어야 하는가. 과연 나는 내일 여수로 갈 수 있을까. 이제 이십 년도 더 지나버린 그곳으로, 정말 갈 생각이었던가.
손바닥이 손톱에 패이도록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나는 어두운 전철 유리창을 쏘아보고 있었다.
자흔과 나의 생활은 한마디로 물과 기름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 우리들의 자취방을 찾았던 선배 하나는 '두 사람이 꼭 자매처럼 닮았구나.'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순전히 우리 두 사람이 오직 한 가지 공통점으로 지니고 있는 피로한 기색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내가 자흔에게서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녀가 돈을 대하는 태도였다. 자흔은 아무데나 눈에 보이는 곳에 자신의 소지품들을 늘어놓곤 했는데, 화장대며 싱크대며 세면장 문턱에까지 토큰과 동전들, 심지어 만원권 지폐까지 뒹굴고 있기 일쑤였다. 함께 살게 될 무렵 자흔은 무직 상태였고 금전적으로 어려운 눈치였는데도 그랬고, 한 달쯤 지나 건넛동네 봉제공장에 다니면서부터는 더욱 심해졌다.
나는 몇번이고 여기 저기 널려 있는 자흔의 돈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나는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너저분한 것을 싫어할 뿐 아니라 돈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수해서는 안된다고 교육받은 사람이다, 도대체 당신은 소유욕이라는 것도 없는 사람인가? 하고 당부하고 애원하고 따지다시피했지만 그때마다 자흔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기만 했을 뿐 조금도 달라지는 기색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작고 마른 몸집인 자흔은 그에 어울리지 않게 행동거지에 조심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화가 난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문을 쾅쾅 소리가 나게 닫고 다녔다. 처음 그녀가 밥을 푼 뒤 부숴뜨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전기밥솥 뚜껑을 닫는 것을 보았을 때는 어쩌면 자기 물건이 아니라고 저렇게 함부로 다루는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모든 행동들이 자흔의 악의 없고 무원칙한 성격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자흔은 자신의 몸조차 함부로 다루었다. 옷을 갈아입을 때 보면 얻어맞은 사람처럼 몸 여기 저기에 푸릇푸릇한 멍이 들어 있기 일쑤였고, 공장에서도 바늘에 곧잘 손이 찔리는지 검지나 엄지손가락에서 소형 밴드가 떠나는 날이 없었다. 주말 같은 때에 시장에 같이 다니다 보면 자흔은 유난히 사람들과 어깨를 잘 부딪쳤다. 유리문이 없는 줄 알고 심상하게 지나쳐 가려다가 이마와 무릎을 찧곤 했고, 뒤에서 다가오는 승용차나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곤 해서 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자흔과 함께 걸을 때면 나는 어린아이를 동반한 사람처럼 그녀가 행여 차에 치이지나 않는지, 무엇에 걸려 넘어지지나 않는지를 살피느라고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당사자인 자흔은 마치 알지 못하는 무슨 거대한 뒷힘에 보호라도 받고 있는 양 태평하고도 무심하게 거리를 활보하곤 하였다.
그렇게 모든 것을 생각 없이 다루는 자흔이 유일하게 소중히 여기던 것은 물고기들이었다. 함께 살게 된 지 사흘째 되던 날, 저녁 늦게 퇴근한 나를 반기며 자흔은 어항을 가리켰다. 손톱만한 어린 금붕어들이 한가롭게 유영하고 있는 물 속을 들여다보며 자흔은 나지막하게 웃으며 물었다.
보기 좋지요?
떨어진 치마 안단을 스카치 테이프로 봉하고 다닐 만큼 무신경하던 그녀는 물고기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성을 퍼부었다. 하루 두 번씩 듬뿍 먹이를 주고, 이틀에 한 번씩 깨끗한 물을 갈아주었다. 사료가 떨어지면 늦은 밤이라도 시장을 헤매어 커다란 봉지째 한아름 사들고 돌아오곤 했다. 먹다 남은 식빵이나 다 먹은 카스텔라 종이에 붙은 빵가루는 언제나 물고기들의 몫이었다. 행여 조금이라도 붙어 있을까 카스텔라 종이가 찢어지도록 꼼꼼히 떼고 긁어낸 빵가루들을 수면에 뿌린 뒤 자흔은 분주히 먹이를 삼키는 물고기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곤 했다. 언제였던가, 그러고 있다가 그녀는 나에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어요.
자흔은 내 고향이 여수라는 것을 알자 우울한 얼굴에 환희에 찬 경련이 일어날 만큼 반가움을 표시했었다. 그녀는 틈만 나면 나와 함께 여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어했다.
난 그곳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곳에 대한 얘기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그녀에게 여러 차례 그렇게 못박아두었으나 자흔은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나는 일곱 살에 그곳을 떠나왔고 줄곧 외가가 있는 수원에서 자랐으니 실제로 내 고향은 수원이라고 하자 자흔은 '그렇다고 어떻게 고향이 바뀔 수 있어요?'라고 어린아이 같은 어조로 반문했다. 당혹스러워진 나는 내 나이 다섯 살에 어머니가, 일곱 살에 아버지가 죽은 그 곳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여놓지 않아왔다는 것까지 분명하게 밝혔으나 헛일이었다. 시시때때로 자흔은 기름한 흰자위 가운데 맺힌 유난히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목소리를 높여 재잘거리곤 했다.
여수항의 밤 불빛을 봤어요?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너본 적 있어요? 돌산도 죽포 바닷가의 눈부신 하늘을 봤어요? 오동도에 가봤어요? 오동도의 동백나무들은 언제나 나무 껍질 위로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아요....
어느 날 내가 꼬막 한 접시에 붉은 양념을 하여 밥상에 올렸을 때 그녀는 숟가락을 들다 말고 느닷없이 어깨를 떨며 오열을 터뜨렸었다. 영문을 모르고 울음을 달래는 나에게 자흔은 흐느끼며 어이없는 말을 되풀이했다.
... 여수가, 여수가 울고 있는 것 같아요.
고향이 어디냐고 내가 자흔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마치 대답하기 곤란한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받은 것처럼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외틀었었다. 잠시 껄끄러운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인천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다시 전주라고 정정했다. 그녀는 다시 아니예요, 남원이에요, 라고 말했고 삼례, 곡성, 순천까지 끄집어냈다.
...... 아니오, 사실은 여수예요.
어안이 벙벙해진 내 얼굴을 흘긋 건너다보며 자흔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했다. 내가 반신반의한 말투로 그러면 여수 어디에 살았느냐고 묻자 자흔은 더욱 당황스러워하는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잘 몰라요... 워낙 어릴 때 떠나와서요.
나 역시 어릴 때 여수를 떠나왔지만 미평, 여서 따위의 동(洞) 이름 몇 가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면 몇 살 때 떠나온 것이냐고 물었을 때 자흔은 잠자코 내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나는 마치 그녀에게 몹쓸 괴로움을 준 것처럼 느껴져서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 여수를 떠나와서 지금까지 어디에서 살았느냐는 질문에는 자흔은 선선히 대답했다. 인천과 속초와 대구와 충무와 광주, 그리고 그밖의 자잘한 소도시들에 대하여 자흔은 마치 노래하는 것 같은 천진한 어조로 이야기해 주었다.
... 제주도만 빼고는 각 도마다 일 년 이상씩 살아본 셈이에요.
여덟 살 때 전주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자흔을 데리고 충무로 가서 식당을 차렸다고 했다. 어머니는 몇 년 뒤 중매로 만난 남자에게 개가를 했고, 자흔은 의붓아버지의 집이 있는 대구에서 일 년쯤 살다가 어머니의 친정이 있는 속초로 옮겨갔다. 속초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자흔은 다시 대구로 내려가 어머니가 소개해 준 조그만 서점의 점원으로 기식하고 일하며 일 년 가량을 지냈다.
... 거기서 사랑도 했더랬어요.
자흔은 막연하고 외로운 웃음을 지으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 코딱지만한 서점에 뭐 볼 게 있다고 맨날 인상 쓰고 들어와서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어려운 책만 찾다가 나가는 대학생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주문해 둔 책들을 먼저 읽어보느라고 난 종종 밤을 새웠는데, 책 내용이라는 게 맨날 죽음이 어떻고 운명이 어떻고 처절한 고독이 어떻고.... 내가 밤새 먼저 읽은 책을 그 사람이 사 들고 나갈 때면 가슴이 아팠어요. 고작해야 스물 서넛이나 먹었을 나이인데, 솜털 뽀송뽀송해야 할 남자애가 그렇게 우울한 책들만 읽는다는 게, 그렇게 꺼멓게 타들어간 얼굴로 살아간다는 게 싫었어요. ... 그냥 그렇게 싫기만 했는데, 언젠가부터 하루 일이 끝나고 서점 뒤에 딸린 골방에서 새우잠을 잘 때면 그 사람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 사람 손을 잡아주고 싶다, 옷깃을 매만져주고 뺨을 쓸어주고 싶다, 지금, 바로 지금 내 곁에 그 사람이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눈물나게 좋을까.......
'함께 있다.' '지금 함께 있다.' 하고 주문처럼 외우면서 선잠에 들었다가 눈을 뜨면 그 사람은 옆에 없었지요. 당연한 일인데도 그걸 견딜 수 없었어요. 단 한 순간이라도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한마디라도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나는 불을 켜고 서가를 서성거렸어요. 아무 책이라도 붙들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활자들을 읽고, 또 읽고 ... 그러다가 겨우 잠들어 새벽에 일어나보면 베갯잇이 온통 젖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 자흔은 마침내 다시 대학생이 책을 사러 오면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한데 그로부터 며칠 뒤 자흔이 일하는 서점에 찾아온 대학생 옆에는 처음보는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고 했다. 대학생은 평소처럼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몹시 허둥지둥하고, 말을 더듬고, 여자가 불쑥불쑥 뜻없는 말을 던질 때마다 어쩔 줄을 몰라했다는 것이었다. 자흔의 표현에 따르면 여자는 인형처럼 예쁘기는 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고 했다. 대학생은 어렵사리 책 한 권을 골라서는 표지 다음 장에 정성 들여 서명을 한 뒤 여자에게 건네었는데, 그것은 그 무렵 새로 번역되어 나온 영미(英美) 연애시선집이었다. 대학생과 여자가 나간 뒤로 한 권 더 남아 있던 그 책을 읽으며 자흔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 그 책의 첫구절은 아직도 기억나요. 사랑이여, 그대는 내 영혼이 애타게 갈망하는 모든 것.... ― E.A.포우, 「하늘에 계신 그대에게」
자흔은 희미하게 눈자위를 빛내며 소리를 죽여 웃었다.
... 내가 바보 같은가요?
며칠 뒤 짐을 싸들고 그 서점을 나온 자흔은 창원에 있는 조그만 무역회사의 경리직으로 들어가 일했고, 그 회사가 부도 때문에 문을 닫은 뒤로는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그 달 벌어 그 달 쓰는 생활을 해왔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떠돌아다니는 것이 몸에 배어서인지 일 년쯤 한곳에 있으면 떠나고 싶어지곤 해서 어찌어찌 전국을 누비다가 서울에까지 입성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두 개의 여행 가방과 계절이 지난 옷 보퉁이, 그리고 얼마 전까지 묵었던 천안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상여금과 월급이 자흔의 재산 전부였다. 그것들을 들고 그녀는 이 서울 변두리 동네까지 찾아든 것이었다.
제가 살아본 도시들 중에는 서울이 제일 정머리 없어요.
긴 이야기를 마친 자흔은 지독한 여독에 찌들린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그렇게 뇌까렸다.
...... 오래 못 있을 것 같아요.
자흔의 마지막 독백을 들으며 나는 어렴풋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무엇이 젊은 그녀에게서 미래를 지워내버린 것인지, 아무런 희망 없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다니게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자흔이 지쳤다는 것, 이십 몇 년이 아니라 천 년이나 이천 년쯤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 사람처럼 외로워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다만 신기한 것은 때때로 자흔의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이었다. 모든 것에 지쳤으나 결코 모든 것을 버리지 않은 것 같은 무구하고도 빛나는 웃음이 순간 순간 거짓말처럼 그녀의 어둠을 지워내버리곤 했다. 그런 자흔을 보면서 나는 종종 어떻게 사람이 저토록 희망 없이 세상을 긍정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의아해지곤 했던 것이었다.
이를테면 자흔과 나란히 앉아서 아홉 시 뉴스를 볼 때면 나는 언제나 나도 모르게 한마디씩 '개자식들!' '미친 놈들!' 이라고 내뱉곤 했는데, 그때마다 자흔은 키득키득 웃으며 즉흥적인 곡조를 흥얼거렸다. 개자식들, 개자식들, 개자식들......자흔은 내가 방금 뱉은 욕지거리가 아름다운 가사인 양 세면장과 방을 들락날락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그녀가 나를 놀리려 한다고 생각될 만큼 끈질기게 계속되곤 했고, 한번은 참다 못해 '그만해 둬요.'라고 말하려고 자흔을 돌아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자흔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오히려 그 얼굴에는 견고한 평화가 어른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개자식들, 나쁜 놈들, 더러운 놈들...... 따위의 가사에 붙여진 곡조는 어린아이를 잠재우는 자장가처럼 부드럽고 따스했다. 그때 나는 도대체 이 여자가 누구인지, 무슨 생각으로 사는 사람인지, 이 사람을 비난해야 하는 것인지 어쩐지를 알 수 없어 망연히 자흔의 얼굴을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내가 위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처음 본 자흔은 언니처럼, 마치 어머니처럼 나를 반듯이 눕혀 놓고 배를 쓰다듬어주었다. 자흔의 손바닥은 따스하였고, 싫증내지 않고 계속해서 나의 배를 문지르는 손길에는 안타까움과 정성이 가득하였다. 그녀는 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서 귓바퀴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뭐래요? 지병 같은 거 갖고 살기에 정선 씨는 아직 젊은 것 같아요....
자흔은 얼마 안 있어 내가 '이제 그만 됐어요. 괜찮아졌어요.'라고 말하자 뛸 듯이 기뻐하며 외쳤다.
내 약손이 효력이 있네! 그럼 잠깐 눈을 붙여봐요.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밤을 위해 나는 서랍 속에 일정량의 신경 안정제를 넣어두고 있었다. 옆에 누운 자흔이 잠들기를 기다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단골 내과 의사가 처방해 준 파랗고 노란 내복약보다도 잘 듣는 조그만 알약들을 한꺼번에 삼키며 나는 오한 든 사람처럼 어깨와 고개를 덜덜 떨고 있었다.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하고 생각하며 물컵을 탁자에 내려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 새벽 어둠 속에서 자흔은 고요한 숨소리를 규칙적으로 내쉬며 잠들어 있었다. 다 큰 어른이 그렇게 순식간에 곤히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만큼 자흔의 잠든 얼굴은 평화로웠다. 마치 세상의 모든 고통과 회한들이 그녀의 천진한 영혼과 함께 잠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얼굴을 나는 그후로도 종종 보았다. 자흔은 이불을 펴고 누우면 내가 형광등을 끄기도 전에 이미 잠들어 있곤 했다. 언젠가 그녀는 나에게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난 어디에서든 머리만 바닥에 닿으면 잘 수 있어요.
그러나 새벽이 되어 자명종 시계가 울리고 창문으로 희부윰한 빛이 스며들 때면 자흔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식은 땀을 흘리며 누워 있었다. 내가 출근 준비를 하려고 불을 켜고 세면장을 들락거리기 시작하면 자흔은 상체를 반쯤 일으킨 채 눈을 감고 앉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흩어져 내려 절반쯤 가려진 자흔의 얼굴은 핏기가 없는 데다가 입가와 뺨에 온통 하얗게 버짐이 피어 흡사 분가루를 뒤집어쓴 광대 인형 같았다.
그렇게 수분 동안 어깨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던 자흔은 가까스로 팔을 뻗어 앉은뱅이 책상에 놓인 녹음기의 재생 단추를 눌렀다. 낡은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음악은 언제나 똑같은 춤곡풍의 아리아였다.
만일 그대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하오.
하지만 만일 그대가 날 사랑한다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달려와 주오!
―『카르멘』중, 「하바네라」
경쾌한 노랫말과 가락에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몸짓으로 자흔은 장판 바닥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제야 풀려있던 태엽이 감겼다는 듯이, 다 떨어진 밧데리에 충전이 시작되었다는 듯이, 그녀는 기계적으로 이불을 개키고, 장롱 문을 열고, 베개와 담요를 집어 넣었다. 정열적인 아리아는 자흔의 허리와 어깨를 채찍처럼 내갈겼으며, 그녀는 묵묵히 그것을 맞으며 맥 없는 손과 발을 움직거리고 있었다. 그런 자흔의 얼굴이 너무도 어둡고 외로워서 나는 내심 사람이 저렇게까지 불행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흔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놀라울 만큼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곤 했다. 들쑥날쑥하지만 희고 깨끗한 떡니에 형광등 불빛이 쟁그렁 부서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곧 바스러져버릴 것 같은 몸짓을 하고 있던 여자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환한 얼굴이었다.
또 아침이네요.
아름답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흔은 아침 인사를 했다.
다시 아침이 왔다는 것이 기쁘다는 것인지 혹은 지겹다는 것인지, 신기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괴롭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는 단조로운 억양으로 자흔은 또박또박 그렇게 인사하곤 했다. 그리고는 다시 이루 말할 수 없이 지쳐 보이는 얼굴이 되어 밥술을 떠넘기고는 나와 함께 자취방을 나섰다.
제발 그 똑같은 음악 좀 바꾸면 안돼요? 자흔 씨는 도대체 그 음악이 아니면 아무것도 못할 사람 같아요.
언제였던가, 그 지루할 만큼 명랑한 아리아를 견딜 수가 없어진 내가 그렇게 투덜댔을 때 자흔은 헝클어진 머리털을 아무렇게나 쓸어올리며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 여수로 가면, 나한테도 음악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열차는 삼 분간 정차했던 구례구(求禮區)역을 떠나고 있었다. 섬진강의 드넓고 짙푸른 물살은 검은 빗발을 타고 올라가 검푸른 하늘에까지 아득하게 잇닿아 있었다. 강한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젖은 황토흙이 먼 산자락을 타고 안개처럼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그 거대한 흙바람 위로, 차창에 반사된 공허하고 낯선 얼굴이 메마른 눈빛으로 이편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선 씨 안색이 며칠 전부터 왜 그래? 갑자기 휴가는 왜? 어디 아파?
갑작스럽게 금요일과 토요일 양일의 휴가원을 내고 돌아왔을 때 앞자리의 부서 선배가 나에게 불쑥 던진 말이었다.
내 언젠가 그럴 줄 알았어. 그만하면 웬만큼 된 일들을 무슨 충성 났다고 혼자서 야근하면서 정리하고, 또 정리하고.... 그래가지고 어디 몸이 배겨나겠어? 젊다고 몸 함부로 굴리면 그 스트레스 어느 날 한꺼번에 터진다구.
악의인지 선의인지 잘 분별되지 않는 선배의 말에 내가 할 수 없이 웃어 보였을 때, 그녀는 책상으로 고개를 떨구며 뾰죽하게 덧붙였다.
사람이 좀 허투루 살아봐, 천 년 만 년 살 것도 아니면서....
그러나 그날 밤도 나는 자리를 비우게 된 시간만큼의 일을 보충하기 위해 늦도록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뻐근한 고개를 뒤로 젖히면 빈 등받이 의자들은 어딘가 씁쓸한 모습으로 각자의 책상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중얼거리거나 한숨을 쉬어 정적을 깨면 그 소리로 인해 더욱 내가 혼자임이 실감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용케 침묵을 지켰다. 숨소리를 죽이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일했다. 그러나 마침내 일을 마치고 사무실 문을 잠그고 두꺼비집 퓨즈를 내린 뒤 엉거주춤한 자세로 불 꺼진 계단을 더듬어 밟아가다가 나는 아, 하고 낮은 신음을 토했다. 자흔의 얼굴은 어느 사이엔가 의식을 비집고 돌아와 눈앞의 어둠 속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안타까워하는 것 같은, 그러나 안타까움을 발설할 수 없음을 괴로워하는 것 같은 눈길로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뭐가 그렇게 두려워요?
서울의 대기가 오래 된 면실유처럼 역한 열기를 내어뿜으며 끓어오르기 시작하던 7월 어느 토요일 저녁이었다. 자흔과 나는 파리한 형광등이 가늘게 떨고 있는 지하철역 구내 파출소에 앉아 있었다. 그날 자흔이 지갑을 소매치기 당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새로 들어온 폴란드 감독의 영화를 볼 예정이었다. 종종 혼자서 영화를 보고는 눈두덩이 빨갛게 부어서 돌아오곤 하던 자흔은 또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우리는 의좋은 자매처럼 밤 늦은 제과점에서 식빵을 사들고 자취방으로 돌아갔을 것이었다.
1호선으로 갈아타려고 막 승강장으로 나왔을 때였어요. 열려 있던 가방으로 누가 그냥 손을 집어 넣어서 가져간 모양이에요. 섬뜩한 한기같이, 누군가 나를 해치려 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설마 하고 가방 속을 보니까 지갑이 없었어요. 사람이 워낙 많아서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난 그냥 멍청히 서 있었어요.......
역 구내 파출소에서는 두 개의 책상이 衁자로 놓여 있었고, 젊은 의경과 사십대의 경관은 책상 한 개씩을 차지하고 반쯤 뜬 눈으로 졸고 있다가 자흔과 나를 맞았다. 자흔은 눈에 띄게 허둥거리고 있었다. '진정하고 앉아보세요.' 하고 의자를 끌어다놓는 경관에게 고맙다는 말조차 잊은 채 그녀는 '찾을 수 있을까요? 찾을 수 없을까요?' 하고 다급한 물음을 연신 되풀이했다. 나는 이미 찾을 수 없게 된 물건이고 경찰서에 가보았자 번거롭기만 한 일이라고 설득했지만 자흔은 내 손을 잡아 끌며 이곳으로 뛰어들어온 것이었다.
...... 그러니까 검은 색 비닐 지갑하고 그 안에 있던 주민등록증, 현금 사만오천 원 가량, 자취방 열쇠, 그게 분실물 전부라는 말입니까?
경관은 나른한 얼굴로 누런 갱지에 조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입을 딱 벌리고 하품을 하는 그의 눈에 흥건한 눈물이 맺혔다. 그 현금은 자흔의 공장에 물량이 밀려 지난 일요일에 특근했던 수당을 하필 이날 받는 바람에 생긴 것이었다. 자흔에게는 소중한 돈이었지만 경관에게야 하잘것 없는 것일 터였다. 지갑도 열쇠도 주민등록증도 모두 맥빠지는 분실물이라는 듯이 그는 권태로운 어조로 다시 한번 물었다.
......그게 전붑니까?
자흔은 한동안 손가락들을 꼼지락거리고 있다가 가까스로 입을 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좀 전에 비해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서서히 충격이 가시자 지갑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굴에는 우울한 체념의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열차표가 한 장 들었어요.
어디고 가는 푭니까?
경찰관은 조금은 흥미가 생겼다는 듯이 고개를 쳐들어 자흔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자흔은 눈살을 모으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손놀림이 차츰 거칠어졌다. 내가 처음 그녀를 보았던 골목길에서처럼 자흔은 자신의 눈과 코와 입을, 얼굴 윤곽까지를 집요하게 닦아내고 있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얼굴을 닦던 두 손을 무릎 위로 내려뜨리며 대답했다.
...... 여수.
그때 내 몸 속 어디에선가 가냘픈 유리 그릇 같은 것이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부서졌다.
그동안 나는 자흔이 지껄이곤 했던 여수에 대한 이야기를 애써 귀담아 듣지 않고 있었다. 그곳이 자흔의 고향이라는 말도 아마 사실이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여수에 대한 집착이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미처 짐작도 하지 못하였다.
언제 떠나는 푭니까?
자흔은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무엇이 스쳐가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지치고 외로운 얼굴에 여수(麗水) 아닌 여수(旅愁)가 어두운 그림자를 끌고 지나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윽고 자흔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내일 밤, 열 시 삼십오 분 차예요.
그날 밤 자취방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자흔에게 물었다. 왜 미리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여수에 가려고 했는가, 여수에는 누가 있는가, 어디서 언제까지 묵을 생각이었는가. 자흔은 그 가운데 어느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고집스러운 침묵을 깨고 자흔이 입을 연 것은 방에 돌아와 손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형광등을 끈 뒤 한식경이 지났을 때였다.
... 지금 대구에 계신 어머니, 내 친어머니가 아녜요.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당연히 자흔이 잠들어 있는 줄만 알았던 나는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골목의 가등 빛이 모로 누워 있는 자흔의 얼굴을 어슴푸레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빛에 드러난 자흔의 음울한 시선은 방안 곳곳에 깃든 혼탁한 어둠을 차례차례 끌어다가 어루만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살쯤 되었을 때 나는 강보에 싸인 채로 열차 안에서 발견됐대요. ... 보호자 없이 울고 있는 것을 서울역에서 발견한 역원들이 파출소까지 데려다주었대요.
자흔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내 고향, 여수가 아닐지도 몰라요. 다만 그 기차가 여수발 서울행 통일호였다고 하니까 어릴 때부터 그곳이 내 고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지나가는 얘기라도 여수, 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쩡 하고 울리곤 했어요.
두 살바기 자흔은 일 년 가까이 보호기관을 떠돌다가 인천에 있는 시립 고아원에 들어갔고, 곧 입양이 되었으나 다섯 살이 지나도록 한마디도 말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태만에 고아원에 돌려보내졌다고 했다.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논까지 오갔던 어린 자흔의 말이 터진 것은 양부모에게서 돌아온 지 석 달쯤 지난 여름이었는데, 자흔이 제일 처음 뱉은 한마디는 엄마도 아빠도 아니었다고 했다. 바보라고 곧잘 놀림을 받던 어린 그녀는 어느 날 미끄럼틀에서 어떤 아인가가 등을 미는 바람에 데굴데굴 굴러서 미끄럼 받침대를 지나 흙밭에 고꾸라졌다고 했다. 지켜 보던 교사가 달려와 어린 자흔의 상처 난 무릎을 만지려 했고, 그때 그녀는 두 눈 가득 눈물을 담은 채 분명한 말씨로 '너무 아파요'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 이듬해 자흔은 전주의 어느 유복한 가정에 입양되었으나, 2년도 채 못 되어 양아버지가 죽고 그의 회사가 문을 닫자 예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어머니를 따라 충무로 옮겨 갔다고 했다. 그후 오갈 데 없는 식객인 자신을 고등학교까지 마치게 해준 양어머니와 속초의 외삼촌 댁에는 명절 무렵마다 간단한 선물들을 소포로 부치곤 할 뿐이라고 했다. 안부 전화도 가끔 걸곤 하는데, 자신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장거리 통화가 끝나려 할 때마다 '언제 한번 오너라.'라고 덧붙이는 그분들의 담담한 목소리가 어쩐지 자꾸만 '이제 그만 연락하거라.' 하는 말 같이 들린다는 것이었다.
결국 기찻간에서 발견된 그 순간부터 이미 자신은 평생토록 떠돌아다니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고 말하며, 자흔은 짐짓 일그러뜨린 입술로 웃어 보였다.
...... 어느 곳 하나 고향이 아니었어요. 모든 도시가 곧 떠나야 할 낯선 곳이었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길을 잃은 기분이었죠. 여수에 가보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어요.
자흔은 갑작스럽게 정색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잔뜩 웅크려서 모로 누웠던 몸을 반듯이 누이며,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괴롭지도 않아요.
그것이 그날 밤 그녀가 말한 전부였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말을 지껄였다는 것이 쓸쓸하다는 듯이, 자흔은 예의 기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불가해하고 고즈넉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어째서 나는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자흔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던가. 무엇이 내 몸 속에서 잠들어 있던 혈관 하나 하나를 끄집어내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던가.
여름 탓이었을는지도 모른다. 모든 도시의 뒷골목에서 살인과 패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울컥울컥한 무더위가 한 달도 넘게 계속된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모처럼 잘 지내고 있는 룸메이트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 탓에 차츰 사그러들고 있었던 내 결벽증이 발작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온갖 눈병과 귓병이 지하철과 버스 손잡이를 통해 옮겨 다녔다. 나는 내 살갗에 다른 사람의 살이 닿는 게 싫어서 기를 쓰고 세 정거장 네 정거장의 거리를 걸어다녔다. 복사열이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위에서의 체감온도는 오십도에 가깝다고 했다. 땀은 이마에서, 목에서, 겨드랑이에서, 사타구니와 종아리와 발가락 하나하나에서까지 흥건하게 흘러내렸고, 숨을 헐떡이며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퇴근하여 자취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온몸의 피부가 발갛게 부어오르도록 비누칠을 하고 수건으로 문질러대곤 했다. 몸에 땀이 차는 끈적끈적한 느낌을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땀샘을 모조리 도려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콜레라가 창궐했다고 했고 나는 버스 옆좌석에 앉은 사람이 그 나라에서 돌아온 여행객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곤 했다.
여행객이 아니라면 여행객의 가족일지도 모른다. 여행객의 직장 동료일지도 모른다.
나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아무 일에도 열중할 수 없을 만큼 병원균들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흔의 허술한 생활 태도가 나를 더더욱 괴롭게 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자흔이 휴일에 한꺼번에 빨려고 대야에 구겨서 쌓아놓은 옷가지들을 나는 밤중에라도 자청해서 빨아 널어놓았다. 며칠 동안 열대 우기의 날씨처럼 비가 내리다 말다 하며 후덥지근했던 적이 있었는데, 젖은 빨래감들이 풍기는 냄새를 견디지 못한 나는 그것들을 빨아 말리느라고 한밤중에 때아닌 연탄 보일러를 때야 했다. 두 사람이 그날 하룻밤을 꼬박 세면장 바닥에서 지새운 것은 물론이었다.
급기야 나는 모든 사물에서 썩어가는 냄새를 맡기에 이르렀다. 나의 손에 코를 들이대면 내 살이 썩어가고 있었고 책을 펼치면 종잇장들이 손가락 끝에 엉기며 부패한 냄새를 풍겼다. 구정물 냄새가 세면장의 수채 구멍을 통해 범람하고 있었다. 수돗물과 나무 주걱과 도마, 심지어 플라스틱으로 만든 밥그릇들에서마저 악취가 났다.
나는 자흔이 음식을 만드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조리대 가까이에는 다가오지도 못하게 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고 내 지나친 호의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녀는 차츰 나의 혐오와 공포를 깨달았다. 밖에서 돌아온 자흔이 손을 씻지 않은 채 문고리를 잡으면 나는 기어코 비눗물로 그것을 닦아내야만 했다. 마치 자흔이 모든 병원체의 숙주라도 되는 듯이, 나는 그녀의 손이 내 몸에 스치기만 해도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위와 눈병과 콜레라보다도 나를 괴롭혔던 것은 자흔에게서 풍겨오기 시작한 여수의 냄새였다. 방금 목욕을 하고 들어온 자흔의 젖은 머리털에서 나는 여수 앞바다의 짠물 냄새를 맡았다. 그녀의 손에서도 입에서도 여수 선착장에 버려진 상한 생선들의 냄새가 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흔의 잠든 얼굴에 그곳 부두의 검붉은 노을이 어리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손을 뻗는 곳에서마다 꿈틀거리는 선창가의 노랫소리, 구슬피 흐느껴 우는 소리, 밤새워 가슴을 앓는 소리들이 뒤섞여 들려왔다. 조그만 체구의 내 어머니가 숨을 거두며 마지막으로 토해냈던 무시무시한 기침 소리가 자취방의 벽면을 타고 음습한 메아리를 울렸다.
제발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어느 날 밤 싱크대 앞에서 공포에 지질린 목소리로 내가 그렇게 외쳤을 때, 자흔은 내 어깨에 얹었던 손을 거두며 뒷걸음질을 쳤다. 가스렌지 위에서는 저녁 찌개가 끓고 있었고, 세면장 가득 밥 뜸 드는 다정한 냄새가 자욱이 깔려 있었다.
... 내가 뭘 잘못했나요?
자흔이 더듬거리며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격한 동작으로 가스렌지 불을 끄고 앞치마를 벗으며 외쳤다.
내 얼굴을 보고 이야기도 하지 말아요....
이를 악물며 나는 분명한 말씨로 덧붙였다.
더러우니까.
자흔은 그날 이후 몇차례 나에게 말을 붙여보려 했으나 잔인하게도 나는 아무 대답도 표정도 없이 뒷모습을 보여버리는 것으로 응수하였다. 그때마다 그녀는 꺼내려던 첫 마디를 더듬으며 되삼켰고, 내 정수리 깊숙이 내리꽂히는 듯한 고통스러운 한숨을 몰아쉬곤 했다.
열대야는 계속되었다.
성능이 좋지 않은 선풍기는 회전을 할 때마다 머릿속을 긁는 듯한 마찰음을 냈으며, 우리는 속옷바람으로 멀리 떨어져 누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닦아도 닦아도 땀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밤새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간간이 더운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한마디의 말도 주고 받지 않은 채, 새벽이 올 때까지 우리는 등을 돌리고 누워 미지근한 장판바닥을 뒹굴곤 했다.
자흔은 눈에 보이게 우울해져 가고 있었다. 그녀의 무구한 웃음 소리가 사라진 자취방의 공기는 무겁고 혼탁했다. 일찍 퇴근한 두 사람이 말없이 따로 따로 벽에 기대어 앉아 있자면 적요한 방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자흔의 물고기들뿐이었다. 투명한 어항 속에서 쉴 새 없이 거품을 뿜으며 맴을 그리는 금붕어들....... 오십 년만에 서울에 찾아왔다는 잔인한 여름은 그렇게 천천히 우리의 끈적거리는 몸뚱이를 짖이기며 지나가고 있었다.
비닐 호스로 쏟아붓는 듯한 빗물이 어지럽게 차창을 뒤덮었다. 차창 밖으로는 무수한 나뭇잎새들이 툭툭 부러져 나부꼈다. 번들거리는 감색 비닐 우비와 검정색 장화 차림의 농군이 논두렁 위로 몰아치는 비바람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거인의 다리를 온몸으로 밀어내듯이 농군은 한 걸음 한 걸음을 힘겹게 내어딛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아낙은 주름진 얼굴 가득 질박하고 순한 작별의 웃음을 지어 보인 후 순천(順天) 역에서 내렸다. 시시각각 열차는 남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제 여수에 닿으려면 삼십 분도 남지 않았다.
가슴이 조여오고 있었다. 지금껏 나는 내 발로 다시 그곳에 가게 되리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언젠가 우연히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등을 떠밀리듯 어쩔 수 없는 일로 가서 그곳의 하늘과 바다를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어했던 나였다.
차창 밖으로 자그마한 순천의 포구가 스쳐 지나갔다. 듬성듬성 붉은 빛으로 물든 동산이, 젖은 벌판이, 짙푸른 머리채를 나부끼는 사철나무숲이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자흔은 저 풍경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저 멀어져가는 풍경을 끝까지 지켜보기 위해 애타게 고개를 뒤로 꺾으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가지 않을께요, 라고 자흔은 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말했었다.
약속할께요, 가지 않을께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자흔은 떠났다. 왔을 때처럼 허술하게 많은 흔적들을 남기고 떠났다. 다 말랐는데 세면장 빨랫줄에 널어놓은 흰 양말 한 켤레, 새벽에 머리를 감고 갔는지 세숫대야에 붙어 있는 긴 머리카락 여러 가닥, 이를 닦은 뒤 깜박 잊고 칫솔통에 도로 꽂아놓았을 노란 칫솔, 필요도 없는데 화장대 서랍에 넣어놓은 동강난 머리핀, 하도 반복하여 테너 가수의 목소리가 한 음조 낮게 늘어지기 시작한 테이프까지 빠뜨리고 갔다.
자흔이 봉제공장을 그만둔 것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무더위가 입추와 말복을 거치며 급격하게 누그러져갈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야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세면장 문의 자물쇠는 열쇠가 꽂힌 채 열려 있었다. 의아해 하며 어두운 세면장에 들어선 순간 내 구둣발에 물컹하게 밟히는 것이 있었다.
자흔이었다. 소리도 칠 수 없을 만큼 놀란 나는 불을 켜고 자흔의 몸을 가까스로 끌어다가 방문 앞 계단턱에 앉혔다. 의식을 잃은 그녀의 늘어진 팔뚝에는 핏자국이 엉기어 있었다. 얼굴에도, 긴 치맛단 아래 드러난 다리 곳곳에도 피멍이 들어 있었다.
공장에서 돌아오던 골목길에서 자흔은 맞은편으로부터 빠른 속력으로 달려오던 자전거에 받힌 것이었다. 어둠 때문에 그녀는 자전거에 탄 사람의 얼굴 윤곽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아마도 십대였다고 짐작되는 그 사람은 겁에 질린 나머지 자흔을 근처 연립주택 앞에 눕혀놓고 달아나버린 모양이었다. 자흔은 자신이 어떻게 의식을 차리고 기어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열쇠를 문을 열고 들어선 찰나 '돌아왔구나' 하고 안도했던 기억뿐이며 그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 나는 괜찮다는 자흔을 억지로 병원에 끌고 가 엑스선 촬영을 했다. 촬영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복도 철제 의자에 나란히 앉았을 때, 그녀는 줄곧 내리깔고 있던 눈길을 들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자흔의 눈길에는 온갖 미움과 질책과 원망 대신 형언할 수 없는 쓸쓸함이 아득하게 배어 있어서, 어깨를 맞대고 있었지만 마치 불러도 들을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떨어져 앉은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얼마 안 있어 중년의 간호사가 자흔을 호명했다. 절름거리는 자흔을 부축하여 진찰실에 들어가자 뒷머리를 짧게 치켜올린 젊은 의사는 라이트 박스에 비친 엑스선 사진을 알루미늄 막대로 무성의하게 짚으며 그녀의 뼈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밤마다 자흔은 뜨거운 물수건으로 자신의 다리를 찜질했다. 타박상 때문에 팔에 기력이 없는지 플라스틱 대야에 젖은 수건을 비틀어 짤 때면 바싹 여윈 팔뚝뿐 아니라 고개와 온 상반신까지 후두둑 몸부림을 치곤 했다. 보다 못한 내가 도우려고 나설 때마다 괜찮아요, 아프지 않아요, 라고 완강히 만류하던 자흔은 그러나 통증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일주일이 꼬박 지나자 겨우 근육통이 풀리고 걷는 데에 지장이 없게 되었지만 자흔은 공장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 새벽이 밝아도 음악을 틀지 않았고, '다녀올께요.' 인사하며 내가 출근할 때까지 멍한 눈으로 창문을 올려다보며 누워 있었다. 퇴근하여 돌아와서 보면 자흔은 내가 나간 동안 밥 한술도 뜨지 않은 채 어항 앞에 바싹 붙어 앉아 부유(浮遊)하는 물고기들을 향해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고 있곤 했다.
날은 갔다. 간간이 비가 내렸고 초가을의 햇살은 건조하고 따갑게 도시 위로 내리꽂혔다. 자흔의 몸 곳곳에 맺혔던 피멍은 시간이 흐름과 함께 어느덧 풀려가고 있었으나 그녀의 마음 속의 멍울은 더욱 옹골차게 맺혀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작적인 결벽증은 여름과 함께 수그러들었지만 폭음 끝의 숙취 같은 황폐함이 내 몸과 마음을 귀퉁이에서부터 서서히 무너뜨려오고 있었다. 온갖 욕망과 고통과 좌절이 뒤범벅 되어 있던 시궁창이 오랫동안 햇빛 아래 방치되어 말라붙은 자리처럼, 악취를 풍기는 흙바람이 쉴 새 없이 내 메마른 얼굴을 뒤덮으며 불어대고 있었다.
언젠가 자흔이 나에게 고백했던 것처럼 하루가 시작될 때마다 나는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하루가 끝나면 차라리 모든 것이 함께 끝나기를 바랬다. 날마다 눈에 보이게 무너져가는 자흔의 모습을 지켜 보는 것은 차라리 고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달포가 흐르고, 그 위로 다시 몇 주가 흘러갔을 때였다.
저녁상을 물린 뒤 자흔은 엉금엉금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고, 방 문을 소리 없이 닫고 나와 그릇을 씻던 나는 기어이 물 묻은 접시를 내동댕이치며 세면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버지, 아... 아버지.
나는 이빨 사이로 주먹을 악물며 신음 소리를 막았다. 잠든 줄만 알았던 자흔이 힘없는 몸짓으로 문을 열고 나온 것은 그때였다. 멍하게 풀려있던 그녀의 시선이 한 순간 알 수 없는 빛을 머금고 나의 울고 있는 눈과 부딪혔다.
...... 당신 때문이야....
싱크대에 상체를 기대어 주저앉으며 나는 불분명하게 내뱉었다.
당신 때문에 내가 견딜 수가 없어.......
푸르게 질린 입술을 떨고 있는 나에게 자흔은 슬리퍼도 신지 않은 맨발로 다가왔다. 몇 달 사이에 몰라보게 여윈 그녀의 걸음걸이는 마치 허공을 딛고 오는 사람처럼 허전거리고 있었다.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싱크대에 기대어 앉으며, 그녀는 또렷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두려워요?
삼십 촉 백열전구의 불빛을 받은 자흔의 눈두덩에는 푸르스름한 병색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으로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자흔은 나, 내일 떠날 거예요, 라고 말했다.
어설프게 쌓아놓았던 설거지 그릇들이 쟁그렁,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나는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그것들을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혀 끝에 들큰한 맛이 느껴져 수돗물에 입을 헹구자 맑은 피가 섞여 나았다. 조금 전에 칫솔을 세게 문지른 탓에 상처 난 잇몸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 어째서?
다시 자흔의 옆에 주저앉으며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서요? 그 몸으로 어딜 간단 말예요?
무서운 침묵이 자흔과 나 사이에 가로놓이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팔을 거머잡았다. 들리지 않는 소리로 입만 달싹이며 되뇌었다. 날 용서해 줘요. 몸서리쳐지는 한기가 내 어깨와 목덜미를 억세게 물어뜯고 있었다.
...... 어디로 간단 말예요?
모든 벌레가 울음을 멈추고 모든 꽃과 나무들이 생장을 멈춘 것 같았다. 정적이, 모든 산이 몸을 웅크리고 모든 하늘과 땅이 물러나 앉은 것 같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입 속에 들큰하게 고이는 핏물을 조금씩 목구멍으로 넘기며 나는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자흔의 잠긴 목소리가 나직하게 세면장의 타일 벽과 바닥에 울리기 시작한 것은 내가 더 이상 그 침묵을 견딜 수 없다고, 무슨 말이든 소리치고 울부짖어버리고 싶다고 느낀 찰나였다.
...... 여수 앞바다의 해안을 따라 한없이 동쪽으로 가면 소제라는 이름의 시골 마을이 있어요. 아마 정선 씨는 못 가봤을 거예요. 나도 타고가던 버스가 고장나는 바람에 우연히 내리게 된 후락한 마을이었으니까요....
자흔의 목소리는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게 잦아들어 있었다.
그때가 저녁 무렵이었는데... 완만한 뒷산 능선에는 해가 지고 있었고 그 주위로 새 깃털 같은 구름이 노다지처럼 노랗게 번쩍이고 있었어요. 그 풍경이 어쩐지 마음에 들어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대신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봤지요. 길 여기저기에 소들이 쟁반만한 똥을 갈겨놓은 진짜 시골이었어요. 뒷짐 진 손으로 염소를 끌고 다니는 백발 성성한 노인도 보고, 하얗고 누런 머릿수건을 동치고 탈곡하는 아낙네들, 그 옆에서 일을 거드는 상고머리 소년들도 보고....... 그렇게 한없이 올라가니까 논이 끝나는 곳에 착하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무덤 몇 개가 비석도 없이 길가에 돋아 있었어요. 더 올라가면 캄캄해질 것 같고 해서 그쯤에서 내려가보려고 돌아섰지요. 마을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둥그런 만(灣)과 다도해 섬들이 파란 바다를 둘러싼 모양이 꼭 가느다란 푸른 실 하나 하나를 촘촘히 엮어논 것 같이 잔잔했어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그냥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마을 앞 버려진 부두에는 누더기 같은 천막이며 더러운 판자떼기들이 뒹굴고, 검푸는 물결은 갯벌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가 밀려가고.... 염소 울음 소리, 새소리, 바람, 두엄 냄새, 일하는 아낙네들...... 그 가운데 어느 하나 낯익은 것이 없었는데도 마치 내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품속에 돌아와 있는 것 같았어요.
... 기쁘면서도 초조하고, 어쩐지 안타깝고 괴로운 마음으로 언덕받이 마을을 내려와 바다를 끼고 한없이 걸었어요. 시시각각 바다는 저물어가고, 아스라이 보이는 여수항에 빨갛고 노란 불빛들이 켜지고, 마침내 건너편 섬에도 하나 둘 불이 밝혀졌어요. 울음을 참느라 나는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어요. 그걸, ... 그걸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흔은 자신의 이야기에 취한 듯 두 눈 가득 넘칠 듯한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 바로 거기가 내 고향이었던 거예요. 그때까지 나한테는 모든 곳이 낯선 곳이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가깝고 먼 모든 산과 바다가 내 고향하고 살을 맞대고 있는 거예요. 난 너무 기뻐서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죽는 게 무섭지 않다는 걸 그때 난 처음 알았어요. 별게 아니었어요, 저 정다운 하늘, 바람, 땅, 물과 섞이면 그만이었어요, ... 이 거추장스러운 몸만 벗으면 나는 더 이상 외로울 필요가 없겠지요, 더 이상 나일 필요도 없으니까요. ...... 내 외로운 운명이 그렇게 찬란하게 끝날 거라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얼마나 큰 소리로 그 기쁨을 외치고 싶었는지, 난 그때 갯바닥을 뒹굴면서 마구 몸에 상처를 냈어요. 더운 피를 흘려 개펄에 섞고 싶었어요. 나를 낳은 땅의 흙이 내 상처 난 혈관 속으로 스며들어오게 하고 싶었어요.......
세면장 타일 벽 너머의 보이지 않는 먼 곳을 응시한 채, 자흔은 길고 습기 찬 한숨을 몰아쉬었다.
... 그러니까 어디로 가든, 난 그곳으로 가는 거예요.......
열차가 여천(麗川)역을 지났을 때 비바람은 바야흐로 절정에 이르러 모든 나무들을 뿌리 뽑을 듯이 몰아치고 있었다. 선로 양편을 둘러싼 짙푸른 사철나무숲 위로 하늘은 눈부신 벼락과 함께 조각조각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순천과 여천에서 상당수의 승객이 빠져나간 뒤여서, 객실의 좌석들은 삼분의 이도 넘게 비어 있었고 복도에는 비닐 봉지와 빈 맥주병들이 함부로 굴러대고 있었다.
이제 하차를 준비해야 했다.
나는 선반에서 가방을 내려 물병과 내복약 한 첩을 꺼냈다. 물을 머금은 뒤 고개를 뒤로 젖혔다. 객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몇 정의 알약과 가루약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역하고 쓴 약들이 메마른 식도를 타고 빈 내장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내 거짓말 같은 젊음이, 스스로 기쁨을 저버렸던 저 모든 나날이 아득하게 천장 위로 멀어지고 있었다.
여수, 그 앞바다는 아직도 검푸른 파도를 세우며 선착장의 철선들을 향해 밀물져 오르고 있을 것인가. 나 살던 여인숙 골목의 밤은, 부두 끝 선술집의 노랫소리는 아직도 통곡처럼 자지러지고 있을 것인가. 입술에 묻은 가루약을 닦다 말고 문득 나는 움츠러드는 손바닥을 눈앞에 펼쳤다.
더러운 손이었다.
손일 씻고 싶었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여태껏 삼켜온 모든 것을 다 토해내고 싶었다. 벌겋게 열이 오를 때가지 나는 두 손바닥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동생 미선의 따스한 손바닥, 내가 뿌리쳐버린 손바닥의 온기가 내 불붙는 듯한 머릿속을 헤집었다.
언니, 같이 가, 아, 아부지......!
잘 뛰지 못하는 미선의 손을 냅다 뿌리치고 달아나던 나는 그 아이의 혀 짧은 외침이 부두 아래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치는 소리를 들었다. 뒤돌아보았을 때 미선의 조막손과 조그만 머리통은 거품을 뿜으며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있는 힘껏 달렸으나 얼마 못 가 붙잡혔다. 술에 젖은 아버지의 가슴을 밀어내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썼다. 아버지의 역한 숨결이 내 이마에, 눈에 뜨겁게 끼얹어졌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다. 부두 시멘트 바닥이 급경사로 기울었다. 미선이를 집어 던진 아버지는 이번에는 반항하는 나를 목에 감아 안은 것이다. 짙푸른 물살 속으로 머리부터 곤두박질쳤다. 눈과 입과 코로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짠물, 짠물.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젖은 시멘트 바닥 위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까마득히 높은 하늘 위에서 뭉클뭉클 피어오르는 흰 적란운 덩어리들이었다. 나를 둥그렇게 둘러싼 사람들의 입에서 '살았다.' '살았다.' 하는 낮은 탄성들이 돌림노래처럼 퍼져 나갔다. 방금 짠물과 음식을 토하여 엉망이 된 윗옷자락에 손바닥을 부비며, 누운 채로 나는 빠개질 듯한 고개를 쳐들었다.
죽을라면 혼자 죽을 것이지 어쩐다고 죄 없는 어린 것들을.......
자줏빛 꽃무늬 몸빼를 걸친 아낙이 검게 그을려 번들거리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맞은편에 서 있던 다른 아낙이 짐짓 큰소리로 장단을 맞추었다.
... 제 어매가 살아서 이 징한 꼴을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잉.
멀리 떨어져 있던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울려온 것은 그때였다.
......저것 혼자서 살아난 것이 정말로 다행한 일인지 모르겄네.
이 열차는 종착역인 여수, 여수역에 도착하게 되겠습니다. 열차 교환관계로 예정보다 오분 가량 연착되었사오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습기 먹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차장의 목소리는 남도의 곰살궂은 억양을 타고 한산한 객실 의자들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귀에 익은 억양은 그 순간 가장 먼저 나에게 실감으로 다가온 여수의 인상이었다.
어제 오후, 병원을 나서서 지하철에 올랐던 나는 언젠가 자흔이 지갑을 잃어버렸던 그 번잡한 역에서 1호선으로 바꾸어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평일 오후인데도 서울역 대합실은 떠나려는 사람들로 몹시 붐비고 있었다. 내일 오전 열 시 삼십오 분발 통일호... 여수 한 장이오.
매표구에서 내가 더듬대며 행선지와 시간을 말했을 때, 말쑥한 제모를 쓴 삼십대 중반의 역무원은 잘 듣지 못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가 싶어 내가 머뭇거리자 역무원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어디라구요?'라고 되물었고, 그 물음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울부짖듯이 그에게 '여수!'라고 외쳤던 것이었다.
열차표와 함께 거스름돈으로 밀려 나온 몇 장의 천 원권과 동전들을 서둘러 바지 호주머니에 구겨 넣은 뒤, 나는 도망치듯 휘황한 대합실을 빠져나왔다. 역 광장 가장자리에 일렬로 늘어선 공중전화 박스 중 한 곳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꺼번에 백동전 두 개를 집어넣고 가장 먼저 기억나는 친구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친구가 삼 년 가까이 시간 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 교무실이었는데, 전화를 받은 중년의 여교사는 나의 친구가 퇴근한 지 오래라고 했다. 이번에는 집으로 전화를 하자 친구의 어머니는 그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친구의 전화번호를 누르자 단정한 목소리의 자동응답이 흘러 나왔다.
삐 소리가 울리면 메시지를 남겨주십시오.
금속음이 울렸고, 나는 망설이다가 이내 재발신 단추를 눌렀다.
선배의 집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후배는 출장 중이라고 했다. 모두가 통화 중이었고, 모두가 자리를 비웠고, 모두가 바빴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유리문을 열고 나왔을 때 황량한 역 광장에는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수많은 역에서 떠나온 사람들이 저마다 지친 얼굴로 택시를 잡기 위해, 떠나는 버스를 잡아타기 위해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이제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은 남아 있지 않았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한두 방울 가문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을 향해 나는 걷기 시작했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불 꺼진 자취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역 구내에 들어서자마자 전동차는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을 남기고 떠났다. 퇴근 무렵이었고, 하루의 일을 마친 사람들이 시시각각 안전선을 따라 모여들고 있었다. 선로는 어둡고 깊었다.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은 마치 똑같은 주형틀에서 빚어져 나온 것 모양 천편일률적인 외로움과 피로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마침내 오래 기다렸던 전동차가 라이트를 밝히며 천천히 승강장으로 들어왔을 때, 저마다의 눈에서 어슴푸레하게 빛났다가 이내 스러지는 무감각한 희망들을 나는 보았다.
...... 가지 말아요.
자흔이 떠나기 전날 밤, 이가 부딪히도록 차가운 체면장 바닥에 웅크려 앉아 나는 자흔의 앙상한 팔을 붙안고 애원했었다. 처음에는 '안돼요.'라고 또렷이 대답했던 자흔은 '가지 말아요. 가면 안 돼요.'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떨고 있는 나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끌어다 안았다. 앓고 있는 어린아이를 안타까이 달래듯이 그녀는 대답했다. 그래요, 가지 않을께요.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어린 어머니의 아련한 품속처럼, 수천수만의 물고기 비늘들이 떠올라 빛나는 것 같던 봄날의 여수 앞바다처럼 자흔의 가슴은 다사롭고 푸근하였다.
그리고 새벽녘이 되어 내가 깊이 잠든 사이에 자흔은 떠났다. 밑창이 떨어진 단벌 구두를 꿰어 신고, 두 개의 불썽 사나운 여행 가방과 옷 보퉁이를 싸들고 갔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사위가 훤하게 밝아 있었다. 아무렇게나 못에 걸리고 바닥에 널려 있던 자흔의 소지품들이 사라진 방은 낯설고 적막했다. 온 방과 세면장이 안개 같은 정적으로 부옇게 젖어 있었다.
갔구나, 하고 나는 소리 내어 중얼거려보았다. 새삼스러운 눈으로 니스칠이 벗겨진 장판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니스칠이 벗겨진 베니어판문에 걸린 거울 앞에 섰다. 꺼멓게 타들어간 얼굴에 퀭한 눈두덩, 그 속에 고통이 지질린 짐승의 애원하는 듯한 눈빛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타인의 얼굴을 무례하게 들여다보다가 주의를 받은 사람처럼 황황히 눈길을 피했다. 수 초간 허공을 더듬다가 다시 거울 속의 눈빛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거울 속의 얼굴은 나를 향해 핏기 없는 팥죽색 입술을 달싹였다.
...... 아버지.
자흔이 떠난 뒤의 나흘 동안 나는 한 번도 책장과 창틀의 먼지를 닦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집요한 걸레질도, 때묻을 겨를도 없는 흰 걸레를 몇 번이고 두들겨 빨아야만 했던 강박 증상도 사라지고 없었다. 퇴근하여 돌아와 누우면 한번도 맛본 적 없는 평화가 피로한 육신을 어루만지며 밀려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 틈으로 적요한 햇빛이 춤을 추었다. 자흔의 말간 얼굴이 그 햇빛과 먼지 속에 고요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예리한 칼날이 겨드랑이로부터 젖가슴까지의 살갗을 한 꺼풀 한 꺼풀 저미어오는 것 같은 슬픔에 나는 눈을 감아버리곤 했다. 그러나 토악질만은 멈출 수 없었다. 이제는 '왜 그런 짓을 해요?'라고 물으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자흔이 없었으므로 나는 마음 놓고 구역질을 했다. 그녀의 부재를 확인할 때마다, 내 더러운 손바닥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욕지기를 느꼈다. 내가 뿌리친 자흔의 손, 그녀가 가지런히 허공에 펼쳐 보이곤 했던 열 손가락들이 내 수많은 혈관들을 비집고 살갗 속으로, 숭숭 구멍 뚫린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열차가 멈추었다.
승객들은 저마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간혹 머리 위에 웬만한 사람의 몸퉁만한 짐들을 이고 승강장으로 내려섰다. 나갈 차례를 기다리며 나는 객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차창 밖 승강장에는 얼마나 바람이 불어대는지 승객들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금방이라도 뒤집혀질 듯 흩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마다 빗물에 젖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승객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역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여수, 마침내 그곳의 승강장에 내려서자 바람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쳤다. 무겁게 가라앉은 잿빛 하늘은 눈부신 얼음 조각 같은 빗발들을 내 악문 입술을 향해 내리꽂았다. 키득키득, 한옥식 역사의 검푸른 기와지붕 위로 자흔의 아련한 웃음 소리가 폭우와 함께 넘쳐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