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혼
어떤 이혼
서진우
철수는 회사 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몇 달을 이혼 문제로 아내와 말다툼을 한 이후라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 앞선다. 현관을 들어서니 집안에 냉냉한 기운이 감돈다. 대충 세수를 하고 거실의 식탁을 보니 서류가 하나 보인다. 진주가정법원이라고 발신이 되어 있고 처의 소장이 들어 있다. 이제 진짜로 일이 진행되나보다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20년 전 교회에서 사귀던 미숙과 연애 결혼을 한 철수는 이제 50줄에 들어서는 미숙의 이혼 요구를 이해할 수가 없다. 철수는 전기밥통을 열어보았다. 밥이 충분히 있었다. 철수는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몇 개 끄집어내어 밥을 퍼서 저녁을 먹었다. 이게 뭐람? 한집에 살면서 밥도 같이 안 먹고 밤의 잠자리도 같이 안 한 지가 3달이 넘었다. 뭔가 정리가 필요하긴 하다. 법적으로 이혼을 한다면 어차피 이 사태가 종결은 될 것이라 생각하며 아내가 쓴 소장을 읽어보았다.
소장의 내용은 시가 집에서 식구들이 자신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고 남편 또한 경제권을 독점하고 폭언을 일삼아서 같이 살 수 없으니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소장의 내용대로라면 1억6,000만 원 정도인 아파트를 50대50으로 분할하고 위자료로 5,000만 원을 주면 철수와 두 아이는 길가에 나 앉아야 할 형편이다. 철수와 미숙은 딸만 둘을 두고 있다. 큰아이는 이제 대학교에 진학하고 둘째는 이제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부부가 힘을 합쳐 아이들 뒷바라지하여도 힘든 형편에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아내가 끝내 야속하기만 하다.
다음날 철수는 사무실에서 평소에 알고 지내는 변호사 후배에게 전화를 하였다. 대충 상황을 설명하니 문서를 만들어 자신에게 보내 보라고 이야기한다. 철수는 저녁에 여동생 집에 가서 여동생과 처남과 같이 소장을 검토하고 답변서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반소를 제기하기로 하였다. 재산분할은 아이들 키우는 비용이 소요되므로 30% 정도 줄 수 있고 위자료를 청구해 철수가 이길 경우에는 아내는 빈손으로 집을 나갈 수밖에 없도록 반소에 필요한 자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메일로 후배 변호사에게 내용을 송부하였다.
며칠이 지난 후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용은 잘 정리되었고 자신과 사법연수원 생활을 같이 한 사법시험 동기라며 변호사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철수는 법원 거리를 돌며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법원 입구가 가까운 쪽에 후배가 소개해준 변호사 사무실이 보인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 갔다. 양쪽의 서류를 검토한 변호사는 자신이 변호를 맡겼다고 이야기한다. 철수는 변호사가 요구하는 수임계약서를 보았다. 이건 뭔가? 소송에 관한 모든 권한을 변호사에게 넘기기를 요구하지 않는가! 변호사는 1심이라고 명기를 하고 성과급을 10%로 한다고 적은 다음 철수에게 사인과 날인을 요구하였다. 철수는 수임계약서에 서명날인을 하고 이게 사람들이 집안 망하게 한다는 소송이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속으로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고 변호사 사무실을 나왔다.
시간은 지루하게 흐르고 변호사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하여도 별 이야기가 없다. 그렇게 두세 달이 흐른 후 법원에서 소환장이 왔다. 부부가 같이 조사관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법원에 출석하라는 내용이다.
진주법원은 건축한 지가 오래되어 많이 낡아 있다. 그리고 마침 형사 공판이 있는지 밧줄에 묶인 일단의 젊은이들이 재판정으로 호송되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도 살벌하고 주위에 손에 닿는 사람이 있으면 해칠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하였다. 철수는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지정된 사무실에 들어가니 여자 조사관이 있다. 그리고 결혼생활 내내 철수 부부의 일에 개입해온 미숙의 언니와 오빠가 같이 왔다. 철수는 직장생활을 하는 남자 동생과 동행하였다.
서류를 대충 본 조사관은 “두 분을 뵈니 바람을 피우거나 그런 것은 아니군요?”하고 이야기하였다. 철수와 미숙 두 사람은 그렇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럼 이혼 사유가 뭔가요?” 성격 차이 그런 건가요?” 두 사람은 그렇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이혼에 대해서는 두 분이 합의를 하십니까?” “예”,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조건을 합의하고 재판 진행을 중지 하십시요. 재판으로 들어가면 1심, 2심, 대법원까지 간다면, 두 분이 많은 고통을 당할 수 있고, 지금 여기서 합의를 하시면 협의이혼이 성립하여 간단하게 끝낼 수 있습니다. 두 분은 지금 협상을 할 수 있나요?” 이렇게 질문을 하였다. 철수는 협상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미숙은 자신이 없다. 사실은 이혼을 강행하게 된 것도 자기 친정 집안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고, 재산분할 관련해서 주장을 하는 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다. 식구들 특히 아버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미숙은 지금 합의할 수 없노라고 이야기하였다.
양쪽의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조사관은 “그럼 지금부터 조사에 들어가겠습니다”라며 질문을 시작하였다. “먼저 가족을 확인하겠습니다. 양쪽 집안의 식구들을 말씀해 주세요” 먼저 철수는 “연로한 어머니가 계시고, 직장생활을 하는 남동생과 강사 생활을 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둘이 딸인데 이름이 민주, 지연이고 첫째는 대학교 1학년이고 둘째는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라고 이야기하니 조사관은 명단을 종이에 적었다. “저는 어머니, 아버지가 생존해 계시고 오빠와 언니가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미숙은 대답하였다. 이 또한 조사관은 종이에 차례로 나열하였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성장하여 특별히 양육에 문제는 없군요?”라고 조사관은 말하였다. 그렇지만 철수의 입장에서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혼자서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더욱 어려운 것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미숙에게 아이들을 맡긴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아이들은 아버지가 맡는 것이 우리나라의 통속적인 개념에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남이신데 어머니는 누가 모시고 있나요?”라고 조사관은 철수에게 물었다. 철수는 “저의 형편상 직접 모시지 못하고 여동생이 모시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결혼 생활에 어머니 모시는 문제가 많이 영향을 미쳤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결혼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조사관은 두 사람을 보고 질문하였다. “같은 교회에 다녀 서로 알고 지내다가 3년간의 연애를 거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연애결혼이라면 많은 부분이 서로 이해가 되어 별문제가 없을 텐데요”라며 조사관은 약간 웃음을 보였다.
“그렇다면 부인께서는 남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하는데 내용은 무었인가요?"라고 조사관은 미숙을 보고 질문하였다. “처음에는 같은 교회에 다니고 하여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마는 결혼 후 6개월 만에 남편은 교회를 나가지 않고 아이들이 교회에 가는 것도 막았습니다. 그리고 장남이라는 것 때문에 항상 어머니 모실 생각이고 동생들 돌볼 생각밖에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에 저랑 상의하기보단 독단적으로 결정하곤 하였어요. 그리고 실제로 동생들의 군생활이나 결혼 등 일이 있을 때 저와 이야기하여 도와주는 외에 비밀리에 많은 금전적 지출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교회에 다니는 것도 못마땅하게 이야기하고 심지어는 교회 십일조에 대해서도 제가 소득이 없으니 십일조를 부담할 수 없다면서 저의 교회생활을 어렵게 만들었어요. 저의 집안은 3대째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집안인데 남편이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부터 친정 부모 형제로부터 많은 꾸지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문제나 집안 문제 등에 대해 생각이 다를 때면 항상 큰소리를 지르고 저를 무시하는 막말을 하곤 했어요 이런 형편에서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살자고 생각하였지만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어떤가요. 남편께서는 할 말이 있으신가요”라고 조사관은 철수를 보고 질문을 하였다. “사실, 전 독실한 기독교 신도가 아닙니다. 결혼 전에 장남이라는 약점 때문에 여자 사귀기가 힘들어 교회에 잠깐 다닌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꼭 종교가 같아야 같이 살 수가 있나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부양, 동생들 문제 등을 이야기하는데 어머니는 막내인 여동생이 모시고 있고, 동생들한테도 도움 준 것이 거의 없어 사실은 저의 동생들로부터 원망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많지 않은 월급에 가족 돌볼 여유도 많지 않은데 어떻게 동생들을 돕고 하겠습니까? 소장에 나오는 것은 대부분이 사실이 아닙니다. 거짓투성이이고 이것을 작성한 변호사를 고발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사실은 장남이지만 저의 처는 어머님이나 동생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조차 해준 적이 없습니다. 항상 동생들 돕느라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할 것이라는 처가 식구들의 생각에 사사건건 따져서 가정의 분위기를 해친 사람은 저가 아니고 저 사람입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도 처음에는 보통의 경우처럼 저의 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처가 교회에 여러 명목으로 헌금을 하는 바람에 집안에 돈이 모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돈을 쓰고 결과에 대해서도 저에게 상의나 보고도 없고 자기 마음대로 돈을 써버리기 때문에 내가 번 돈은 당신 돈이 아니니 교회에 헌금을 하고 싶으면 당신이 벌어서 하라고 하며 경제권을 회수했습니다. 사실 저희 식구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제가 자금관리를 맡은 후에 직장인이 이용할 수 있는 대출을 많이 끼고 구입하여 이제 겨우 대출금을 갚은 상태입니다. 최소한 우리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저축이 집에 있어야 하고 최근의 불확실한 경제 환경을 생각하면 노후 준비 등을 위해 주부가 최대한 저축해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 잘 알았습니다” 조사관은 양측의 소장에 나오는 다른 것들을 확인한 후 “다음에는 재판부에 의한 조정이 있습니다. 법원의 통지에 따라 조정이 통보될 것입니다. 그때 법원에 출석하세요” 하며 자리를 정리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두 분의 주소지가 같은데 이건 어떻게 된 건가요?” 두 사람은 대답이 없었다. 철수는 그렇게 내가 싫고 돈을 챙겨나갈 생각이면 미숙이 자기 친정 식구들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미숙 또한 재판까지 하면서 철수와 같은 집에 사는 것이 불편하지만 어디도 갈 데가 없다. 이혼에 대해 그렇게 설치던 친정 식구 누구 하나도 막상 혼자된 자신을 챙겨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하려면 재판에서 많은 금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집에서 도망치듯이 이혼하여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걱정되는 점도 있었다.
또다시 조금은 불편하기까지 한 동거를 하면서 2개월이 지났다. 이번에는 재판부가 구성되고 조정이 있으니 두 사람이 출석하라는 통지가 왔다. 양쪽의 변호사가 같이 참석한 조정에서 조사관이 조사할 때 나온 것 이상의 논쟁은 없었다. 그간의 재산형성과정, 아이들 양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철수의 입장에서는 전혀 물러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숙 또한 자신이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양보할 수가 없었다. 철수는 미숙의 소장에 자신이 심한 폭언을 일삼았다는 주장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였다.
조정이란 절차가 끝나니 변호사로부터 특별한 연락이 없다. 수임계약서에 적힌 대로 모든 권한을 자신이 행사하면서 변호사 끼리 법정에서 다투고 있는 모양이다. 간간이 식구들의 인증이나 증거자료 준비 등 변호사가 요구하는 서류를 만들면서 회사 일에 충실하려고 애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6개월여의 시간이 흐른 후, 증인신문이라며 증인을 선정하여 결심공판 직전의 공판을 수행한다고 연락이 왔다. 철수의 여동생과 미숙의 언니가 증인으로 채택되어 아주 원론적인 것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증인 심문이 끝났다. 철수는 이러한 재판 진행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신들 위주로 자신들 편한 대로 진행되고 진정한 진실은 아무도 모르게 변호사끼리 말싸움이나 하는 것이 재판인가 보다 생각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결심공판이 다가왔으나 철수는 법정에 가지 않았다. 보름 이내에 항소를 하지 않으면 고등법원에 항소할 권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간의 경과를 생각하면 지긋지긋하고 미숙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다. 한때 그렇게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 두 사람 모두 큰 후회를 하고 있었다.
판결은 철수에게 유리한 쪽으로 나왔다.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은 합의된 상태이니 위자료는 없고, 변호사 비용은 각자 부담 그리고 재산분할에서 미숙의 몫이 1/3로 결정되었다.
철수와 미숙은 서로 지쳤다. 미숙은 평상시대로 식사 준비 빨래 아이들 돌보기 등을 계속하면서 1년여의 시간이 흐르니 이혼소송 제기 당시의 분하던 마음도 많이 완화가 되고 여러 가지 결과를 생각할 때 아이들을 키우는 데 힘을 보태야 하지 않나 생각하니 자신이 독립을 하겠다는 생각이 허황된 것 같기도 하다. 또한 5,000만 원 정도의 돈을 가지고 어떻게 살까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하다. 철수의 가족들은 이제 이혼이 확정되었으니 미숙을 내보내라고 철수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철수 입장에서도 5,000만 원의 여윳돈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아파트를 매각해서 돈을 주려 해도 아파트 시세가 급격하게 오르고 있으니 팔 수도 없다. 그리고 철수는 현실적으로 또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하면 아이들 돌보고 집안일 하는 지금의 미숙과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묘한 관계로 며칠이 지난 후 미숙은 철수에게 이렇게 될 바에야 이혼을 취소하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래 그렇게 살자. 재판상 이혼이라 당사자들이 신고하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이혼이 성립되어 법적 부부가 아니라도 차이 나는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두 사람은 이상한 제2의 결혼을 하게 되고 일단은 지내던 대로 계속 지내기로 하였다. 이 모든 것이 그래도 연애시절 3년 동안 같이 즐거웠던 시절의 기억이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