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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Bollnow 2024. 3. 25. 18:11

야간비행

임정연

 

당신은 강물을 보고 있다.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바람이 당신 흰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불어간다. 당신은 추운 듯 어깨를 옹송그린다. 내가 옆으로 다가앉으며 손을 붙잡자 어깨를 틀며 손가락을 빼내려고 버둥거린다. 당신 손은 야위었다. 나는 어깨에 둘러져 있는 회색 카디건을 위로 끌어 올려준다. 바람이 카디건을 들 출 때마다 당신 굽은 어깨도 떨린다. 바람과 반대로 햇살은 온기가 있다. 봄기운을 담고 있는 공기가 폐 속 가득 흘러든다. 고개를 들어 멀리 산허리를 훑던 당신 눈길이 다시 강물로 빠진다. 강물은 시멘트를 풀어놓은 듯 부옇다. 아직 싹을 틔우지 않은 수양버들이 마른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 있다. 강 둔치를 핥으며 잘금잘금 물결이 일렁인다. 탁한 물위로 페트병과 과자봉지와 형광색 슬리퍼가 떠간다. 당신 눈길도 그것들을 따라 흘러간다. 강 옆으로 난 길을 유치원생 아이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아이들 등에 짊어진 노란색 가방이 유채꽃망울처럼 흔들린다. 당신 고개가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릴 따라 움직인다. 찬바람에 흰색 머리칼이 더풀거린다. 당신은 거스러미가 허옇게 일어난 입술을 달싹인다. 정섭일 네년이 버렸지? 오살할 년……. 당신은 아이들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고개를 틀어 나를 노려보는 당신 이마로 퍼런 힘줄이 튀어나온다. 당신 눈이 금세 붉어지며 젖는다. 정섭일 찾아와, 이년아, 정섭일. 당신은 흐느낀다. 나는 울고 있는 당신 뒤에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덤덤하게 바라본다. 당신이 내게 아무리 패악을 부려도 상관없다. 옛날의 나였다면 어림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오빠가 없어진 작년부터 당신은 잘 걷지 못한다. 마루에서 쓰러진 뒤 한 달 가까이 방에만 누워 있었다.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던 당신 피붙이. 그 아들이 없는 당신은 낡은 스웨터처럼 초라하다. 당신 울음소리가 잦아든다. 한기가 이는 듯 몸을 떤다. 나는 휠체어 손잡이를 붙잡는다. 바퀴에 무엇이 걸렸는지 휠체어가 밀리지 않으며 기우뚱거린다. 당신 몸도 옆으로 기울어진다. 공포로 당신 눈이 커다랗게 벌어져 있다. 순간, 손을 탁 놓고 싶은 충동에 화들짝 놀란다. 강물을 향해서 곤두박질치는 당신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허우적대며 물속으로 잠겨드는 당신 모습도 스친다. 황급히 휠체어를 붙든다. 바퀴에 무엇이 걸렸는지 허리를 숙이고 본다. 커다란 돌멩이다. 언제 굴러들어 온 것일까. 박힌 돌을 기어이 빼내고야 마는 굴러들어 온 돌. 당신은 어깨를 움츠리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자정이 가까워 온다. 마음이 급해진다. 당신과 있는 동안 야간 비행(夜間 飛行) 가고 싶은 걸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좀이 쑤시고 발바닥도 근질거렸다. 당신은 이제 잠들었다. 누비이불을 끌어다 덮어준다. 살금살금 일어나 머리맡에 켜두었던 스탠드를 끈다. 당신은 별 일이 없는 한 내가 돌아오는 새벽까지 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윗목에 놓아둔 스테인리스 요강을 발로 차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어나온다. 방문에 귀를 대보고 혹 당신이 깨지 않았나 잠시 서성거린다. 당신의 낮고 고른 숨소리가 새어나온다. 마루에 걸린 가족사진을 올려다본다. 오빠는 초코파이를 움켜쥔 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찡그리고 있다. 눈빛은 카메라가 아닌 다른 것을 보고 있다. 오빠를 붙잡는 것에 지쳐버린 사진사는 대충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아버지가 죽기 일 년 전에 찍은 사진이다. 전립선암 말기였던 아버지는 빠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카멜색 중절모를 쓰고 있다. 젓가락처럼 마른 아버지 옆에 서 있는 당신은 녹색 블라우스 솔기가 터질 듯 빵빵하다. 당신과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면 늙은 톨스토이가 부인 소냐와 함께 서 있는 사진이 떠오른다. 흰 수염이 얼굴의 반을 덮은 톨스토이는 앙상하게 마른 얼굴로 냉담한 미소를 짓고 있고, 소냐는 퉁퉁한 허리를 비스듬히 돌린 채 카메라를 쏘아보고 있다. 소냐는 딴 생각에 빠져 있는 듯도 하고 화나 있는 듯 굳은 얼굴이다. 두 사람의 표정은 같은 사진 속에 들어가 있는 것조차 마땅치 않은 얼굴이다. 저 사진을 찍을 때 당신도 그랬을까. 아버지 옆에 서 있는 당신은 소냐보다 더 불편한 기색이 흐른다. 당신은 그때 몹시 살이 쪄 있었다. 아버지가 약 기운과 토악질 때문에 식사를 못해도 당신은 그런 아버지 앞에서 고기를 볶고 생선을 구워 오빠와 함께 먹었다. 마루에 서 있으면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와 오빠가 수저로 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반에 묽게 끓인 쌀죽을 얹어 아버지 방에 갖다 드렸다. 죽기 며칠 전부터 아버지는 죽마저 잘 삼키지 못했다. 아버지가 죽 그릇을 밀치는 사이로 건넌방에서 오빠가 더 달라는 듯 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병신 새끼. 아버지는 천장으로 고개를 돌리며 가래 끓는 소리를 내었다. 아버지의 앙상한 목 언저리로 검푸른 죽음이 가득했다. 당신은 카메라를 쏘듯이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사진 속 아버지는 오히려 담담해 보인다. 아버지는 죽음 앞에 이미 모든 것을 다 포기한 얼굴이다. 뒤통수가 당기는 것 같아 조금 전 닫은 당신 방문을 돌아본다. 밤바람이 문풍지를 흔들고 지나는 게 보인다. 마당에 켜둔 낡고 오래된 등 때문에 마루가 휑하다.

가족사진을 찍은 날은 당신 쉰일곱 생일이었다. 그날, 당신은 집으로 온 사진사에게 아버지 영정사진도 함께 찍게 했다. 마루에 오래된 나무 의자를 갖다놓을 때 삐걱이던 소리와 이년아, 소철 화분 좀 이쪽으로 치우라니까, 하며 내게 이르던 당신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 오빠는 내가 마루 뒤쪽에 끌어다 둔 소철 화분 속에서 흙을 파내고 있었다. 사진사가 셔터를 누르기 전 오빠를 붙들어 내 옆에 세워 놓았다. 그러나 오빠는 금세 달아나 작은 방에서 초코파이를 먹고 있었다. 손아귀에 쥔 초코파이를 다 먹기도 전에 다른 손은 새것을 움켜쥐었다. 오빠는 초코파이, 접시, 자동차 바퀴, 동전 등 둥근 것에 집착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초코파이였다. 오빠 방에는 베어먹다 만 초코파이와 아직 뜯지도 않은 과자 상자가 어른 키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오빠가 있을 적에는 방은 개미와 바퀴벌레가 들끓었다. 오빠는 벌레들 때문에 때가 낀 검은 손톱으로 살갗을 긁어댔다. 얼굴과 다리, 팔뚝에는 긁다 생긴 딱지와 부스럼이 엉겨붙어 있었다. 손은 시럽이 묻어 언제나 진득거렸다. 방이나 마루에 굴러다니는 초코파이를 줍는 사람은 당신이었다. 당신은 어느 날부터 오빠가 남긴 초코파이를 먹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 당신은 장을 보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오빠를 잃어버렸다. 서른세 살의 오빠는 스무 해가 넘도록 살았던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신은 오빠가 고속도로에서 누군가의 차에 치여 횡사했을지도 모른다고 더듬거렸다. 그날 바로 돌아가려고 집에 들른 내 손에는 여행가방조차 들려있지 않았다.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워놓은 승용차가 걱정이 돼 엉거주춤 일어서는 내 다리를 당신이 기어와 붙들었다. 확 밀쳐버리고 싶었는데 웬일인지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당신은 내 다리에 얼굴을 비벼대었다. 정섭일 좀 찾아줘라. 제발, 정섭일 찾아줘. 3 년만에 본 당신은 두 눈이 푹 꺼지고 몸은 죽기 전의 아버지처럼 말라 있었다. 당신은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는 듯 마른 울음을 삼켰다. 왜 나는 그때 당신을 뿌리치고 떠나지 못했을까. 나는 한 번도 당신에게 따스한 정을 느낀 적이 없는데, 왜 그대로 주저앉았을까.

오빠 방문을 연다. 불기가 들어가지 않는 방은 썰렁하다. 방에서는 눅눅한 냄새와 무언가 썩는 듯한 구리 터분한 냄새가 섞여 난다. 두 단짜리 옷장과 비취색 하이그로시로 만든 책상이 방에 놓여 있다. 물건을 치우지 못하게 한 것은 당신이다. 당신은 아직도 오빠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는 걸까. 오빠의 쿨쩍이는 모습이 검은 유리창에 어른거린다. 집을 떠나기 며칠 전, 밖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버스에서 내려 큰길을 따라 올라오다가 가게로 들어가는 그를 보았다. 오빠 옆에는 웬일인지 당신이 보이지 않았다. 전봇대 위 줄에 앉아 있던 참새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게 밖에 서서 구두로 보도블록을 차며 서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빠는 나오지 않았다. 안에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얼굴이 잔뜩 지질린 채 입으로 거품 같은 침을 흘리며 오빠가 뛰쳐나왔다. 오빠 손에는 뚜껑이 열린 초코파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오빠 뒤로 낯익은 가게 여자가 빗자루를 쥐고 쫓아 나왔다. 오빠는 얼마 뛰지 못하고 여자에게 붙잡혔다. 오빠의 다리 사이로 초코파이가 쏟아졌다. 여자는 가지고 있던 빗자루로 오빠의 다리와 어깨를 마구 두드려댔다. 병신이 이젠 물건까지 손대네, 기막혀서. 오빠는 아픈 지 몸을 웅크리고 흔들었다. 빗자루가 오빠의 움츠리며 떨고 있는 몸 여기저기를 날고 있을 때도 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여자는 땅에 떨어진 초코파이를 주워 담았다. 상자를 들고 오빠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나는 골목에 서서 대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안에서 당신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신 목소리는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고 기운찼다. 훔쳐? 이런 애가 뭘 훔쳐, 정신나갔어? 이 여편네야! 쫓아오니까 무서워서 도망친 거라고. 당신 큰소리에 기가 눌린 듯 가게 여자는 우물거렸다.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온 가게 여자와 골목에 서 있던 내 눈이 부딪쳤다. 당신과 드잡이라도 했는지 여자의 머리칼은 헝클어져 있고 치맛단이 옆으로 틀어져 있었다. 여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미안하다고만 했으면 여자는 그냥 돌아섰을 것이다. 한 동네에서 그리 야박하게 굴 여자도 아닌 것 같았다. 가게 여자는 내게 들으라는 듯 종알거렸다. 기가 막혀서,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여자는 침을 칵 뱉고는 등을 돌렸다. 걸진 침이 내 구두코로 날아와 붙었다. 수돗가에는 배가 터진 초코파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빵에서 나온 흰 매시멜로가 바닥에 달라붙어 미끈거렸다. 오빠가 들고 나왔던 상자는 봉숭아 화단에 뒤집혀져 있었다. 당신은 빗자루로 마당에 떨어진 초코파이를 쓸기 시작했다. 내가 들어온 지도 모르는 듯했다. 오빠는 쿨쩍이면서 초코파이를 베어먹었다.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입으로 함께 쓸려 들어갔다. 병신. 나는 손가락을 빨고 있는 그를 노려보았다. 반이 젖혀져 있는 체크무늬 커튼이 밖에서 흘러 들어온 불빛에 어둡게 떠 있다. 창가로 다가서서 커튼을 들춘다. 오빠 방에서는 집 뒤 공터가 내다보인다.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창문이 바람에 덜커덕거린다. 한 여름에는 웃자란 잡풀이 키를 넘고 있지만 지금은 마른 줄기가 밤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검은 유리창에 떠 있는 단발머리 여자도 바람에 흔들린다. 시커먼 물체 하나가 빠르게 공터를 가로지른다. 짧은 섬광 같은 것이 번쩍 어둠 속에 빛난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창턱에 팔꿈치를 짓이긴다. 들고양이다. 야산을 돌아다니며 쥐를 잡아먹고 있는 들고양이는 날이 추우면 마을까지 내려온다. 집 주변을 어슬렁대며 쓰레기봉지를 파헤치고 대문이 열린 집으로 기어들어 부엌까지 숨어든다. 아직도 저 어둠 바깥 속에 숨어 노려보는 것 같아 황급히 커튼을 친다. 책상 위에 있던 낡은 스케치북이 팔꿈치에 부딪쳐 떨어진다. 첫 장을 넘겨본다. 4B 연필로 그린 오빠 얼굴이 보인다. 그림 속 오빠는 멀쩡한 사람 같다. 항상 불안하게 굴리던 눈동자도 없고 침을 흘리던 입술도 아니다. 언제나 오른쪽 머리칼을 쥐어뜯어 그쪽만 새 꽁지처럼 바짝 올라붙은 머리도 아니다. 검은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살짝 꼬리가 올라간 입은 웃음마저 띠고 있다. 머리칼도 단정하다. 당신이 그린 것일까. 예전에 당신은 곧잘 오빠에게 연필을 쥐어주고 선이나 동그라미를 그리게 했었다. 오빠는 동그라미는 잘 그렸다. 자신이 관심 있던 것이라서 그런지 스케치북 한 장에 온통 빙글빙글 원을 그려놓았다. 오빠가 그린 동그라미는 컴퍼스로 그린 것처럼 정확했다. 그것을 보며 당신은 기쁨에 못 이겨 칭찬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오빠는 네모도 삼각형도 그리지 못했다. 당신이 연필을 쥐어주고 그려보라고 독촉을 해대면 상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책상 서랍에 휴대전화가 들어 있다.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먼지가 앉아 있다. 전화기는 배터리가 분리된 채다. 어느 밤, 시끄럽게 울려대던 벨소리에 화가 치밀어 뽑아버렸을 것이다. 휴대전화 안쪽에 이 차장과 찍은 스티커 사진이 붙어 있다. 이 차장은 플래시에 놀란 듯 두 눈을 감아버렸다. 이 차장은 사진 붙여 논 걸 보고 질색을 했다. 그러나 붉은 색 치렁치렁한 가발을 쓴 채 눈을 감은 남자가 이 차장인 줄 사무실 사람들도 모르는 눈치였다. 내 자리에 앉으면 그의 뒤통수가 바라다 보였다. 희끗희끗한 새치가 많은 머리였다. 가끔 이 차장은 모텔 침대에 엎드려 내게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했다. 휴지 가득 뽑은 흰머리를 보면서 이젠 너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니? 하며 클클거렸다. 그러곤 자정이 되기 전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야근중이야. 기다리지 말고 자. 그만 좀 징징거려. 전화를 끊을 때 이 차장의 목소리는 짜증이 나 있었다. 디자인실의 팀장인 그가 나만 만나는 눈치는 아닌 듯했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그에게 꼬여드는 여자들도 많은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이상 이 차장의 손길을 뿌리치는 건 쉽지 않았다. 그와 만나는 동안 서른이 넘었다. 이제 당신과 오빠가 있는 집은 내게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배터리를 들어 끼운다.

철 대문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닫힌다. 쌀쌀한 밤공기가 훅 하고 끼쳐온다. 스웨터 성근 올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든다. 이빨이 딱딱 부딪치며 몸이 부르르 떨린다. 치마 주머니에 들어 있던 스카프를 꺼내 머리에 둘러 감는다. 금세 콧물이 인중을 따라 흘러내린다. 강으로 내려가는 시멘트 계단을 내려간다. 질러가기 위해서는 이 길이 제일 빠르다. 낮게 엎드린 강물이 물개 등처럼 번들거린다. 물 속에서 툭 소리와 함께 무언가 펄쩍 허공을 향해 튀어 오른다. 물고기일 것이다. 강물은 탁해도 물고기는 제법 버글거린다. 고속도로로 나오자 바람이 한결 강해진다. 서울을 향해 올라가는 상행선 방향 차들이 미친 듯 속도를 낸다. 속도에 취한 인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밖에서 만난 여자에게서 나를 낳았던 때도 아버지 인생의 고속(高速)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집장사를 시작할 무렵 막 다세대주택 붐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놀고 있는 임야를 헐값에 사들여 다세대주택을 짓고 팔았다. 현장에 나가 있느라 일년에 반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의 속도에 취해 갈팡질팡해댈 무렵 당신은 오빠 외에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당신은 결혼하자마자 아버지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결혼한 지 일년이 되도록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차라리 잘 되었다고 안심했다고 했다. 그러다 덜컥 들어서 버린 것이 오빠였다. 오빠를 뱃속에 가지고 있는 동안 당신은 아버지 때문에 까맣게 말라갔다. 당신은 오빠가 발달장애로 태어난 것이 아버지 탓이라고 믿고 있다.

차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 도로를 가로지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름날 새벽 집으로 돌아올 때 고속도로 위에 널브러져 있는 다람쥐나 수리부엉이의 터진 내장을 본 적이 있다. 수리부엉이는 커다란 눈을 홉뜬 채 날개가 부러지고 뱃가죽이 터져 있었다. 손으로 만져보면 수리부엉이 몸은 아직 따뜻했다. 검붉은 핏자국 사이로 꺼멓게 개미들이 몰려들었다. 오빠 방에서 보았던 작고 검은 약탈자들이었다. 공터 마른 흙에 집을 짓고 살던 개미들은 단내를 맡고 창문을 향해 줄을 지어 모여들었다. 오빠가 뜯어먹다 놔 둔 초코파이는 자고 일어나면 포장지 속으로 벌레들이 버글거렸다. 오빠는 그 옆에서 침을 흘리며 잠들어 있었다. 당신에게 나도 그런 약탈자가 아니었을까. 포대기에 싸인 나를 받아 안을 때 젊은 당신은 벌레 보듯 진저리 쳤을까. 나는 번득이며 달려오는 차들의 헤드라이트에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작은 종이 딸랑이는 문을 밀고 들어가자 마스카라 여자가 커다란 마른 헝겊으로 찻잔을 닦다 나를 쳐다본다. 여자 눈은 짙게 칠한 마스카라 때문에 검은 웅덩이처럼 보인다. 여자의 눈을 볼 때마다 나는 아마조네스를 떠올린다. 악어와 독거미와 지네가 우글거리는 축축한 숲 속에 숨어 사냥감을 기다리고 있었을 아마조네스들의 검은 눈을. 내가 바텐 앞 둥근 의자에 걸터앉자 여자는 CD 케이스에서 음반을 꺼내들어 바꾼다. 맑은 유리가루가 부서져 공중에서 쏟아지고 있는 듯 신시사이저 음악이 귀를 타고 흐른다. 뒤를 이어 클라리넷이 강을 따라 내리는 물줄기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제스로 툴의 `fly by night´. 나는 턱을 바텐에 대고 몸을 기울인다. 마스카라 여자가 갓을 씌운 등 스위치를 내린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본다. 검은 하늘에 무수한 형광색 별들이 빛나고 있다. 크기도 제 각각이다. 별들은 밤하늘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한다. 내 몸도 흐른다. 이제 마스카라 여자와 나는 야간 비행을 시작한다. 승객은 아직 없다. 가끔 생에서 불시착하는 사람들, 우리가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달빛이 통 유리창으로 밀려들어온다. 여자는 보라색 촛불에 불을 붙인다. 라벤더 냄새가 코로 날아들며 몸이 나른해진다. 여자가 내 앞에 젖은 냅킨을 담은 재떨이를 놓아준다. 밤참 줄까? 여자의 목소리는 여느 날처럼 은근하다. 여자의 속셈이 무언지 뻔히 알고 있다. 나를 이곳에 더 오래 붙들어두려는 속셈이다. 여자의 눈이 촛불 아래서 은은하게 빛난다.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다 비벼 끈다. 여자는 진에 마티니를 섞어 내 앞에 갖다 놓아준다. 술잔에 비스듬히 꽂힌 레몬 조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른 거 만들어 줄까? 나는 고개를 젓는다. 졸음이 밀려와 바텐에 턱을 기댄다.

내가 이곳을 드나든 것은 작년부터다. 근처 소읍에 갔던 날이었던 것 같다. 당신이 약을 먹고 잠든 후 골목에 세워 두었던 차를 빼서 나왔다. 병원에 들러야 했다. 날짜가 많이 지나 있었다.

사무실에 휴가 신청서를 내놓고 나오다 이 차장과 마주쳤다. 이 차장 옆에는 다른 동료도 있었다. 이 차장이 병간호 잘 해드려요, 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아래 직원에게 쓰는 평범한 말투였다. 좀 더 따뜻한 말이 흘러나올 거라고 기대했던 탓일까. 맥이 탁 풀렸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핸들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 차장의 뒷모습이 자꾸 머릿속으로 밟혔다. 하지만 그에게 말하지 않은 건 잘한 일 같았다. 이 차장이 안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속도로에 차들이 많지 않았다. 속도를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간 것은 집에서 달려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을 때였다. 근처 소읍은 조용했다. 나무 계단을 올라가는데 처음으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작은 산부인과였다. 바깥에서와 달리 대기실은 의외로 깨끗했다. 둥근 소파위로 희고 빳빳한 면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탁자 위의 잡지도 잘 정돈되어 쌓여 있었다. 내 눈길을 잡아 끈 것은 창가를 따라 피어 있는 제라늄의 붉은 꽃잎이었다. 나는 손을 모아 쥐고 접수대로 걸어갔다. 들어올린 내 두 다리 사이로 걸어오며 여의사가 라텍스 장갑을 끼었다. 차가운 금속기구가 아랫도리 속으로 거칠게 파고들었다. 섬뜩한 이물감에 놀라 다리가 뒤틀어졌다. 뒤꿈치로 수술대의 시트를 마구 내려 찼다. 어서 마취주사 놔. 여의사가 소리를 질렀다. 팔뚝에 마취 주사를 찌르고 나서 간호사는 자, 세 보세요, 하나 둘 셋, 하고 말했다. 하나 둘 셋…… 가물거리는 눈 속으로 침대 옆 쓰레기통에 핏물이 밴 휴지가 보였다. 붉은 휴지는 창가를 따라 떨어진 제라늄 꽃잎 같았다. 붉은 꽃잎들이 일시에 내 얼굴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액셀을 밟는 발이 자꾸 흔들렸다. 손에서 식은땀까지 솟아났다. 강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차를 세웠다. 강 저편에 유리로 지붕을 덮은 집이 보였다. 햇살이 유리에 부딪쳐 반짝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 깃대에 바람에 펄럭이며 작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비행기였다. 초록색 리스가 걸린 문을 밀고 들어가자 검은 웅덩이처럼 눈을 까맣게 칠한 여자가 일어났다. 스피커에서 제스로 툴의 `fly by night´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비척비척 걸어서 바텐 앞 의자에 주저앉았다. 눈앞으로 가위를 든 오빠가 몸을 흔들고 있었다. 좀 전에 내 몸 속을 훑어 내렸을 가위 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부앙? 부앙? 부앙? 오빠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메아리쳤다. 레코드판은 여전히 밤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멀리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차들의 소음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를 들으니 눈이 서서히 감겨오는 것 같다. 두 눈이 감겨오려고 하는데 딸랑, 문소리가 난다. 검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서 카페 안을 둘러보고 있다. 수은등이 불을 밝히고 있는 정원에는 남자가 타고 온 듯한 승용차가 서 있다. 남자는 어디를 향해 달리다 이곳에 불시착한 것일까. 고속도로에서 속도에 취하지 않고 한눈파는 사람만이 야간 비행을 할 수가 있다. 어둑한 실내를 돌아보던 남자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다. 남자는 천장의 형광색 별들을 올려다보다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여자가 뜨거운 물이 담긴 잔을 남자 앞에 놓아준다. 남자는 코트를 벗어 옆 의자에 걸쳐놓는다.

십 년 전에 듣고 처음이군요.” 남자가 담뱃불을 붙이며 조니 워커 블루를 손으로 가리킨다. 마스카라 여자가 술병을 바텐에 올려놓는다. 남자가 태우고 있는 담배 연기가 세 사람 머리위로 흩어진다. 진 토닉 잔은 이미 비었다. 여자가 위스키 잔을 내 앞에 놓는다.

학생 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무전여행 한 적 있어요. 그때 많이 들었던 곡인데. 제스로 툴이 생텍쥐페리 `야간 비행´을 읽고 만들었다지요?” 남자가 자신의 잔에다 위스키를 따르다 빈 술잔을 앞에 놓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남자가 내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부어준다. 나는 감기려는 눈을 겨우 치뜬다.

떠나라, 떠나라고 속삭이는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무전여행을 갔나요? 크래커 위에 햄과 치즈를 얹던 마스카라 여자가 남자를 돌아보며 작게 웃는다. 접시를 바텐에 놓으며 여자는 나를 향해 눈을 찡긋한다. 남자가 괜찮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으로선 드물게 런던 필하모닉과 협연했고, 멤버 다들 옥스퍼드 졸업한 수재들이었고요. 내 말에 남자가 입에다 햄 조각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남자가 한 잔 마시고 내게도 한 잔 따라준다. 나는 머릿속으로 숫자를 센다. 남자 한 잔, 나 한 잔. 남자 두 잔, 나 두 잔. 잔을 들어 남자와 챙 부딪친다. 호박색 술이 촛불에 흔들린다. 술이 고프다. 얼마나 마셔야 더 이상 그립지 않을까. 양주병이 바닥이 난다. 남자가 레미 마르탱을 달라고 소리친다. 화장실에 가서 몇 번 게우고 나서도 나는 끝없이 잔을 비운다. 몇 잔을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페치카 속에서 탁탁 나무 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무 타는 냄새와 천장에서 쏟아지는 별들과 술 때문에 자꾸만 눈이 감긴다. 더 마셔야 되는데. …… 유리조각이 부서지는 검은 하늘을 따라 내 몸이 끝없이 날아간다.

벽이 울리는 둔중한 소리에 눈을 뜬다. 목이 말라 주변을 둘러본다. 머리가 어지럽다. 바지를 벗은 남자가 침대에 엎어져 코를 골고 있다. 남자의 벗은 엉덩이가 천장을 향해 솟아 있다. 벽이 울리는 소리는 남자의 코고는 소리였다. 남자가 몸을 뒤채며 시트 속으로 파고들자 둥근 엉덩이도 사라진다. 스탠드가 놓여 있는 탁자에 남자가 꺼내 놓은 수표가 놓여 있다. 남자와 나는 걸어서 모텔까지 왔을 것이다. 고속도로를 따라 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온다. 남자와 함께 양주 두 병을 비우고 맥주를 대여섯 병 마신 것이 떠오른다. 그 정도면 마스카라 여자가 서운해할 정도는 아니다. 남자는 아랫도리를 벗고 있는데 나는 멀쩡하게 치마를 입고 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물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켠다. 탁자 위 수표를 집어든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내가 잠이 든 것은 고작 몇 시간 정도일 것이다. 남자는 아침에 깨어나 자신이 갈 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당신은 한사코 목욕을 하지 않으려고 버틴다. 며칠 씻지 않은 당신 몸에서는 게장 삭히는 냄새가 난다. 마당에 휠체어를 내놓고 방으로 들어가 누워 있는 당신을 안아 올린다. 예전이라면 당신을 들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당신은 방안을 떠다니는 먼지처럼 가볍다. 손에 들린 당신에게선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허수아비 같은 당신을 안고 마루를 걸어오는 나를, 녹색 블라우스를 입은 뚱뚱한 당신이 내려다보고 있다. 당신은 밖으로 나가는 줄 알고 가만히 있다가 휠체어가 세면장으로 향하자 손바닥으로 의자 팔걸이를 누르며 버팅긴다. 네년이 정섭일 죽였지? 이제 그것도 모자라 나도 죽이련? 오살할 년. 당신 입에서 흰 거품이 부글거린다. 당신 눈은 나를 바라보지만 초점이 없다. 네년이 정섭일 얼마나 미워했는지 다 알어,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년. 당신 입에서 튄 침방울이 내 얼굴로 날아든다. 목욕탕 문을 닫고 욕조에 더운물을 가득 받는다. 미리 보일러를 켜놓았기 때문에 물은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잘 나온다. 당신이 입고 있는 바지와 울 카디건을 벗긴다.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당신은 팔을 휘저어댄다. 겉옷을 벗겨내고 팬티를 입은 그대로 담근다. 더운 물 속에 들어간 당신은 몸이 금세 발갛게 익는다. 당신은 기운이 빠지는지 더 이상 버둥대지 못하고 욕조에 기댄다. 당신의 거죽 같은 엉덩이를 들고서 팬티를 벗겨 내린다. 쪼글거리는 치골 사이로 성근 흰색 거웃이 몇 개 매달려 있다. 오빠를 낳았던 당신 자궁은 오그라들어 이제 뱃가죽 밑에 간신히 붙어 있을 것이다. 오빠가 성한 자식이었다면 날 미워하지 않았을까. 내가 오빠를 미워했다고 하지만 당신이 날 더 미워했다. 열 살 무렵부터 나는 당신이 친 엄마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내 아버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이 집을 떠나 멀리 갈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었다. 학교 뒤편으론 길게 신작로가 나 있었다. 신작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기차가 멈춰서는 건널목이 나왔다. 한 번은 신호 대기중인 기차를 향해 뛰어들었다가 역무원에게 붙잡혀 크게 혼나기도 했다. 레일 위를 굴러가는 기차를 보고 있으면 타고 싶어서 발바닥이 근질거렸다. 어린 시절 내내 손님처럼 집에 들르는 아버지도, 오빠에게 매달려 내 학용품도 챙겨주지 않는 당신도 싫었다. 그날, 당신은 오빠와 상에 붙어 앉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양반다리를 한 오빠가 앞뒤로 몸을 흔들어댔다. 당신은 오빠에게 세모를 그려주며 똑같이 그리면 사탕을 주겠다고 어르고 있었다. , 해볼래? 당신 말을 오빠가 그대로 따라 했다. , 해볼래? 오빠는 스케치북을 보고 히죽 웃더니 연필을 쥐었다. 어긋나게 연필을 쥐고 있는 오빠의 팔목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오빠는 당신이 그린 세모를 쳐다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나 스케치북에 오빠가 그린 것은 동그라미였다. 컴퍼스를 돌리지 않으면 나나 당신이나 그런 동그라미는 그리지 못할 것이다. 둥그런 거 말고 세모 말야, 세모. 당신이 소리를 질렀다. 비행기, 비행기 같은 거, 부앙, 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가 세모야. 오빠의 눈이 천장을 향해 올라갔다. 부앙? 부앙? 오빠가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일이 많아 피곤했던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당신과 오빠는 마루에서 아직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며칠 뒤면 이 집을 떠날 거였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다. 떠나면 나는 당신과 오빠를 잊은 채 살 것이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잠결에 무엇이 갉작이는 소리에 불현듯 눈을 치떴다. 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오빠가 책상에 올라앉아 가위로 레코드판을 자르고 있었다. 가위질을 하면서 오빠는 몸을 앞뒤로 계속 흔들어댔다. 오빠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좋아했다. 책상이나 담은 물론 남의 집 지붕에 오르다 떨어진 적도 많았다. 번개처럼 일어나 오빠 손에 들린 레코드판을 나꿔챘다. 제스로 툴의 곡이 담긴 판이었다. 판은 둥그렇게 잘려져 있었다. 레코드 넣는 집에 하늘을 나는 비행기 모습이 있는 게 화근이었다. 어렵게 구한 데다가 몹시 아끼는 판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오빠 뺨을 향해 날아갔다. 병신아, 이걸 동강내 놓으면 어떡해! 오빠가 책상에서 뛰어내리며 비명을 질러대었다. 방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져 다리를 비틀었다. 겁이 나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잠옷 바람의 당신이 뛰어 들어왔다. 당신은 내 머리채를 잡아끌어 바닥에 패대기쳤다. 이년아, 이 오살할 년아. 오빠 눈이 돌아가고 있었다. 게거품이 입술을 타고 흘러 넘쳤다. 당신 손이 내 머리카락을 쥐고 흔들었다. 당신 눈은 독기로 출렁였다. 당신 몸은 가시발린 생선살처럼 힘이 없다. 비누를 묻힌 타월을 들고 다리부터 닦기 시작한다. 손에 와 닿는 피부가 미농지보다 더 얇게 느껴진다. 힘을 주어 쥐면 당신은 바스러질 것 같다. 당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타월을 쥐고 있는 내 손만 쳐다본다. 당신도 기운 없이 물 속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 다리를 닦고 나서 당신의 허벅지와 치골을 따라 비누거품을 문지른다. 당신의 굳은 다리가 움찔하고 뒤틀린다. 등을 따라 타월을 옮기는 손끝으로 당신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내게 몸을 맡기고 있는 당신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당신도 나와 눈이 마주치기 싫어 비누거품이 보글거리는 물 속만 보는 걸까. 얼굴을 씻기고 머리를 감기니 당신 목욕도 끝이다. 욕조 물을 빼고 새 물을 받아 당신을 헹군다. 마른 수건으로 몸을 구석구석 닦아준다. 미리 갖다놓은 새 옷을 입히고 당신을 들어 휠체어에 앉힌다. 햇볕이 쏟아지고 있는 마당에 당신을 내놓고 세면장 청소를 시작한다. 세제를 풀어 욕조에 낀 때를 벗겨내고 있는데 어디선가 휴대전화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따뜻한 봄볕 아래 고개를 파묻고 잠들어 있다. 찌푸린 표정이 풀린 당신 얼굴은 순한 양 같다. 오빠 방 책상에 놓인 휴대전화가 울리는 소리다. 빨간 불이 신호처럼 반짝이는 휴대전화를 바라본다. 세제 거품이 묻어 있는 손끝이 떨린다. 예감은 맞았다. 이 차장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입 속 침이 졸아드는 것 같아 나는 창문 밖 빈 공터만 노려본다. 이 차장의 화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다. 수없이 네게 전화를 했었어. 왜 연락도 하지 않는 거야? 회사는 아예 그만둔 거야? 이 차장은 이곳으로 내려오겠다고 한다. 말린다고 말을 들을 사람인가. 나는 그에게 카페를 알려준다. 어차피 막다른 골목에선 한 번쯤 마주치는 법이다.

카페는 괴괴하다. 마스카라 여자는 보이지 않고 안은 텅 비어 있다. 밤이면 타닥타닥 불을 피워 올리던 페치카도 꺼져 있다. 나무 바닥에 발소리를 울리며 바텐까지 걸어간다. 인기척을 느꼈을 텐데도 여자는 나오지 않는다. 새벽이면 거무스름해 보이던 통 유리창도 말끔하다. 햇빛이 쏟아지는 허공을 따라 흰 먼지들이 떠다니고 있다. 바텐 옆으로 나 있는 쪽문을 열고 기어 들어간다. 뒤쪽의 선반에서 유자청이 들어 있는 유리병을 꺼낸다. 도자기 잔을 두 개 꺼내 세 스푼씩 덜어낸다. 설탕을 집어넣다가 불현듯 놀라 손을 멈춘다. 기울어진 스푼을 따라 검은 설탕이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갔지만 다시 비우지 않는다. 가스레인지에 주전자를 올리고 끓기를 기다린다. 기포가 올라오며 뚜껑이 들썩거린다. 하나 둘 셋…… 뚜껑이 들썩일 때마다 내 눈동자도 따라 흔들린다. 눈앞에 제라늄의 붉은 꽃잎들이 흩어졌다. 내 몸 속 붉은 꽃잎도 찢겼다. 창가를 따라 떨어져 버렸다. 나무 계단을 내려오는데 욕지기가 치솟았다. 어서 차로 돌아가고 싶었다. 사람들이 날 볼 수 없는 곳에 몸을 숨기고 싶었다. 나는 차 속에서 굳어진 채 꼼짝도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당신이 깨나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 순간, 포대기에 싸인 날 받아 안았을 젊은 당신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당신이 보고 싶었다. 가스레인지 불을 끈다. 주전자를 기울여 잔에 붓고 있는데 이 차장이 들어온다. 바텐에 서 있는 나를 쏘아본다. 먼길을 달려오느라 그의 머리칼은 흩어져 있다. 전보다 살이 쪄 있는 듯도 보이고 흰 머리칼은 더 늘었다. 나는 찻잔을 얹은 쟁반을 들고 쪽문을 밀고 나온다. 페치카 앞에 놓인 자리로 먼저 걸어가 앉는다. 이 차장은 문 앞에 그대로 서 있다. 나도 이 차장의 눈을 피하지 않고 노려본다. 잔을 들어 유자차를 한 모금 마신다. 차가 너무 달지만 그냥 삼킨다. 그가 주춤거리며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얼굴 선이 딱딱하게 긴장되어 있다. 그도 나도 입을 열지 않는다. 한동안 긴 침묵이 흐른다. 그는 앞에 놓인 차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유자차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 못 잊겠다. 다시 시작하자. 창 너머 강줄기를 보고 있는 내게 그가 말을 꺼낸다. 강물은 흐르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쩌면 별을 찾아 흘러가는 게 아닐까. 어서 밤이 왔으면. 나도 저 끝없는 밤하늘을 별을 찾아 흘러가고 싶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유자차가 들어 있는 찻잔을 들어 이 차장의 머리에 쏟아 붓는다. 그가 놀란 듯 눈을 치뜨며 어깨를 뒤튼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끈끈한 설탕물이 탁자로 떨어진다. 누런 유자 한 조각이 그의 턱에 달라붙어 있다. 이 차장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당신, 아직도 내가 필요해? 난 흥미 사라졌어. 다신 수작부리지 마, 나쁜 새끼. 마지막 말에 힘을 주어 뱉는다. 이 차장이 몸을 일으키려다 주저앉는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또박또박 걸어 나온다. 언제 왔는지 마스카라 여자가 바텐에 팔꿈치를 기대고 서 있다. 까만 눈을 총총 빛내며 나와 그를 보고 있다. 그녀가 무슨 일야? 하고 소곤대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선다. 오늘 새벽 이곳에 불시착한 남자는 있을까.

당신은 휠체어에 앉아 마루에 놓인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탤런트들이 몰려나와 소란 떨어대는 화면을 멍청하게 쳐다본다. 나는 스케치북을 펴놓고 마루에 엎드린다. 오빠 모습이 담긴 전단지라도 먼저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연필로 오빠 얼굴을 천천히 그리기 시작한다. 먼저 둥그렇게 얼굴을 그린다. 막막해져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올려다본다. 울 것 같이 얼굴을 찡그린 옆모습을 곰곰이 바라본다. 뺨을 올려붙이던 것이 생각나 마음이 씁쓸하다. 나는 동그라미를 그린 바깥에 날개와 꼬리를 붙인다. 비행기는 곧 밤하늘을 날아올라 먼 비행을 떠날 것 같다. 이 집을 떠나고자 했던 것은 나였다. 그런데 지금 나와 당신은 이곳에 남아 있다. 날아가 버린 건 오빠다. 아니 시간이다. 얼굴을 감싸쥐다 당신을 돌아본다. 당신 고개가 한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당신은 낮게 코를 골며 잠들어 있다. 낮에 목욕을 해서 고단할 것이다. 당신을 안아들어 방에다 눕힌다. 누비이불을 끌어 와 덮어준다. 당신은 별 일이 없는 한 내가 돌아오는 새벽까지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야간 비행을 하러 간다. 철 대문이 바람에 턱턱 부딪힌다. 방문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들고양이가 공터를 휘젓고 내달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흘레라도 붙었는지 들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쌀쌀한 봄밤을 찢는다. 야간 비행하기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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